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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협중앙회 상조사업 검토

    신협중앙회가 ‘상조(喪助)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태종 회장은 신협 창립 50주년을 맞아 ‘2010 아시아신협연합회(ACCU) 포럼 및 총회’가 열리고 있는 5일 대전 신협연수원에서 “경영안정화와 서민지원 측면에서 상조사업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힌 뒤 “신협이 상조사업에 진출하면 서민 복지를 그 만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상조업체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관리체계 등으로 불신이 커지는 시점에서 자산 43조원의 신협이 진출하면 파장이 적잖을 전망이다. 신협은 오는 7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갖고 ‘2020년 자산 100조원, 조합원 1000만명 시대’를 선포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일제강점기 통감·총독 면면을 읽다

    일제강점기 통감·총독 면면을 읽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는 것은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다. 짐승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본군 위안부의 치욕을 견뎌왔던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삶의 존엄과 일제의 야만성에 새삼 가슴 저려올 수 있다. 아니면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혹은 이광수의 매국적인 행위를 다시 접하며 공분을 키울 수도 있다. 또는 조선의 청년을 일제의 야만적인 전쟁터의 부속품으로 내모는 시를 쓰며 자신의 천재적 문재(文才)를 악용했던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 혹은 서정주를 돌이키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물론 그리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몇 남지 않았을 장삼이사 평범한 어르신들이라도 당시 일제의 지긋지긋함을 증명할 구체적인 유·소년의 사례 몇 가지씩은 충분히 갖고 있다. 친일문제 연구에 천착해온 서울신문 기자 출신의 재야사학자 정일성(68)씨는 약간 다른 곳에서 일제 강점기의 기억을 돌이킨다. 그는 최근 펴낸 ‘인물로 본 일제 조선지배 40년’(지식산업사 펴냄)에서 당시 식민지 조선 지배의 최일선을 진두지휘했던 일본 제국주의 인물들, 즉 통감과 총독의 면면과 구체적인 행적을 똑똑히 살피고 기록함으로써 일제 식민지배의 야만성과 폭압성, 조선의 백성들이 겪었던 고통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 그는 1910년 이전,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1905년 을사늑약을 실질적인 강점기의 시작으로 본다. 그는 초대 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와 그를 이은 두 번째 통감 소네 아라스케를 제외하고 총독을 지낸 8명은 모두 육군, 또는 해군 대장 출신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조선 지배의 야만성과 폭력성의 또다른 이유라고 분석한다. 지난 2일 정씨를 만났다. 그는 “도대체 일제 시대 통감· 총독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 이러한 인물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총독의 얼굴이 모두 군인이었던 만큼 식민통치가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강점기의 역사를 학문적이기보다는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책은 강제 징용, 창씨개명, 강제 동원, 문화재 약탈, 무참한 학살 등을 어느 시대에, 누가 했는지를 여러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실사구시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또한 적극적인 부역자로서 친일파 관료들의 규모와 내용 또한 여러 자료로 뒷받침하고 있다. 초대 통감이자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그랜드 비전’의 틀을 만든 이토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문화재 약탈을 자행한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 강제 병합의 주역인 통감으로 초대 총독까지 겸한 데라우치 마사타케, 3·1만세운동을 학살의 장으로 삼은 하세가와 요시미치(2대 총독), 기만적인 문화통치를 펼친 사이토 마코토(3, 5대 총독) 등 10명의 통감· 총독이 일본에서 갖는 정치적 위상과 성장 배경, 개인적 특징 등을 면밀히 조사해 기록했다. 정씨는 특히 제7대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를 ‘조선의 히틀러’라고 불렀다. “모국어를 빼앗아 정신을 말살하려 했으며, 창씨개명을 주도해 민족의 뿌리까지 빼앗으려 했던 가장 악질적인 총독이었다.”고 말했다. 이력을 다시 들여다 보니 그는 30년 가깝게 서울신문사 기자 생활을 했다. 1985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메이지유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관심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를 쏟아냈다. ‘황국사관의 실체’, ‘후쿠자와 유키치-탈아론을 어떻게 펼쳤는가’, ‘이토 히로부미-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등 ‘인물로 본’까지 포함해 평균 2년에 한 권 꼴로 저서를 냈다. 책 뒤쪽에 일제의 한국 병탄 조약문들을 모아놓았다. 외교권과 사법권을 박탈해가는 일한협약, 한국병합 조약 등을 따라 읽노라면 100년 전 역사 속 우리의 무력함과 치욕감, 그들의 야만적인 폭압에 저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또한 두 번째 부록으로 통감·총독 시절에 도지사를 맡았던 인물들의 실명이 총독(통감) 임기와 맞물려서 나열된다. 당대의 적극적 친일부역자들의 대표쯤이 되겠다. 객관적 사실의 힘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감정을 뒤흔든다. 2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다윈과 한국사회… 대화로 풀다

    다윈과 한국사회… 대화로 풀다

    찰스 다윈(1809~1882)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들끓었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념의 뿌리를 뒤흔든 탓이다. 당시 우스터 주교의 부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사실이라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는 말은 다윈의 진화론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진화론이 낳은 파장과 그늘은 오히려 그 이후에 더욱 심각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대표적 저서 자본론 1권을 다윈에게 헌정했다.’는 헛소문이 돌 정도로 사회주의적 유물론자들에게도 충격을 줬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혁명이론의 정당성을 자연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본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장례식장에서 “다윈이 자연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인간사회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한 연설은 유물론자들이 다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설명해준다. 또 1940년대 구 소련에서는 다윈의 이론을 신성불가침으로 받아들인 생물학자 리셴코가 당시 서구에서 입증된 ‘개체발생 이후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멘델학설을 부정하며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반동으로 몰아 숙청했을 정도로 정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그뿐만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 중 핵심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은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설명되더니, 나중에는 그의 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으로 슬그머니 표현을 바꿔서 자유주의 자본주의자들이 열광하는 이론으로 변모했다. 약소 국가와 민족을 침략, 정복해 식민지를 넓혀가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들이 못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약육강식형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이러한 것의 이론적 토대로서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영국 생물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는 도시마다 역 앞에 군중이 모여 그를 환영한 것 또한 자본주의가 다윈을 받아들인 태도의 단면이다. 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 양쪽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윈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그만큼 다윈이 남긴 학문적 성과는 과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종교,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뿌리가 된 셈이다. 또 그만큼 불완전한 상태로 열려 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학문의 한 핵심축이기도 하다. 이는 다윈이 남겨준 짙은 그늘이 지구를 절반 가까이 돌아 동양, 한국사회에서도 의미있게 논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200년 전 태어난 다윈이 150년 전에 쓴 저작이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분야에 걸쳐 학제 간 연구-이른바 통섭(統攝)적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최종덕 상지대 교수가 대화의 한 편을 맡고, 학문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학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 시인이면서 생명윤리에 주목하고 있는 전방욱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의철학을 전공한 인문의학자 강신익 인제대 교수, 노장철학 전공자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론을 연구하는 김시천 인제대 연구교수 등이 번갈아 또다른 한 편에 서서 대화를 나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이 신화의 이미지로 포장되는 것의 문제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뿌리가 된 다윈, 환경과 생태의 위기 대처로서 진화론 공부, 진화론과 동양적 사유의 상관성 등 폭넓고 발걸음 빠르게 문제의식들을 펼쳐낸다. 그들이 진리에 다가가는 방식은 ‘대화’다. 2000년 전 동양에서 공자가 제자들과 정치·경제·도덕·교육 등 숱한 의제를 다뤘던 방식이었고, 비슷한 시기 서양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자 플라톤, 소피스트들과 다투고 논쟁하며 진리를 도출해 냈던 방식이었다. 특히 김시천 연구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당연히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과학적 진화론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잉태한 총체적 사유구조를 뜻함을 보여준다. 생명의 역사와 문명의 시간을 사유하는, 서로의 궤적을 확인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새로운 범주의 고전 해석을 바라보는 것도 이목을 끈다. 이와 함께 ‘찰스 다윈 평전’(전2권,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김영사 펴냄)은 태어나서 비글호 항해를 거친 시절인 1858년까지의 삶과 ‘종의 기원’을 펴낸 1859년부터 말년까지로 나눠 정리했다. 두 책 모두 ‘종의 기원’ 텍스트 자체는 없지만 개념의 정립과 함께 얽혀 있는 뒷얘기, 주변부 사례 등 풍성한 맥락의 설명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다윈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해주며 ‘종의 기원’ 원저를 읽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2만 3000원, ‘…평전’ 각권 3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전쟁 속 만주 조선인

    한국전쟁은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의 국군이 각각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벌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뛰어든 또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사라진 만주 조선인이 그들이다. ‘또 하나의 한국전쟁’(염인호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사의 일부가 된 만주 조선인들의 삶과 투쟁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옌볜, 지린, 무단장시 등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신문들, 중국 당국의 문서 자료 등을 통해 만주 조선인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만주 조선인들은 일제 시기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강한 조국애와 민족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전 중국 관내 지방과 소련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군·동북항일련군 출신의 조선인 지도자들은 해방과 함께 만주로 들어와 조선인사회를 이끌었다. 이들은 만주를 조국통일 역량의 산실로 키우자며 만주 기지론을 주창했다. 국공내전을 통해 청년들을 단련시켰고, 북한과 옌볜 각지에 정치군사학교를 설립해 혁명간부를 양성했다. 이렇게 단련된 만주 조선인부대는 1949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입북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남진한 북한 인민군 21개 연대 가운데 10개 연대는 만주 조선인 부대였다. 이들의 입북을 중공의 파병으로 간주해온 기존 견해와 달리 저자는 조선인의 귀환이라고 주장한다. 전쟁 초반 북한 인민군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역전되고, 이어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하면서 만주 조선인사회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국공내전을 지원한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았던 만주 조선인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중국 내 여타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 일반 사회에 흡수됐다. 한편 재중 한국독립당의 우익세력도 만주 조선인에 대해 북한과 비슷한 맥락의 통일전략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과 합작해 민주세력을 마련해놓고 남한과 호응해 북한의 공산세력을 몰아낸다는 전략이었다. 만주의 국민당 점령지역 곳곳에서 한독당은 조선인 사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1947년 공산당의 하계 공세 이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결정적인 수세에 몰리자 한독당의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고립된 채 중공군에게 포위된 선양시 인근 국민당 지구 조선인들은 대탈출을 감행했다. 1만여명의 탈출자들은 톈진에서 배를 타고 남한으로 귀국했고, 남겨진 민주자위군 대원들은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3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프로배구] LIG손보·현대캐피탈 4강행

    프로배구 LIG손해보험과 현대캐피탈이 수원·IBK기업은행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LIG손보는 1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남자부 B조 예선리그에서 KEPCO45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25-23 25-10 15-25 20-25 15-12)로 물리치고 2연승, 조 1위로 준결승리그에 진출했다. KEPCO45가 2연패를 당하면서 현대캐피탈이 조 2위(1승1패)로 준결승리그 막차티켓을 거머쥐었다. LIG손보는 김요한(14점)-페피치(21점)의 유기적인 호흡과 김철홍(14점)의 블로킹을 앞세워 1·2세트를 이겼다. 벼랑 끝에 몰린 KEPCO45는 김상기-이병주의 호흡이 살아나며 3·4세트를 가져왔다. 5세트 6-6 동점에서 LIG가 김요한·페피치의 정확한 강타로 점수를 버는 동안, KEPCO45는 하경민·밀로스(28점)의 잇딴 실책으로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대적으로 전력을 보강하며 돌풍을 꿈꾸던 KEPCO45는 2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물러났다. A조 예선리그에서는 대한항공이 우리캐피탈에 3-1(34-36 25-18 25-20 25-17) 역전승을 거두고 조 1위를 확정지었다. 듀스를 거듭한 1세트는 우리캐피탈이 36-34로 가져왔지만, 대한항공이 내리 3세트를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대한항공은 2일 LIG손보와 준결승리그 첫 경기를 치르고, 우리캐피탈-현대캐피탈은 3일 대결한다. 앞선 여자부 경기에선 GS칼텍스가 지난 시즌 리그챔피언 KT&G를 3-1(25-14 23-25 25-18 25-21)로 누르고 기사회생했다. 김민지가 25점으로 분전했고, 정대영(15점)-나혜원(13점)이 뒤를 받쳤다. GS칼텍스와 KT&G는 2, 3일에 치러지는 준결승리그 2차전에서 결승행의 희망을 엿본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컴백’ 투애니원, 4인 4색 티저공개 ‘4차원 콘셉트?’

    ‘컴백’ 투애니원, 4인 4색 티저공개 ‘4차원 콘셉트?’

    걸그룹 투애니원(2NE1)이 오는 9일 발매되는 첫 정규앨범 ‘투애니원’(To anyone) 공개에 앞서 새로운 콘셉트와 트랙리스트를 공개했다. 9월 1일 오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의 블로그 YG-LIFE (yg-life.com)을 통해 베일이 가려져있던 투애니원 멤버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앞서 파격적인 패션,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으로 주목받았던 씨엘, 공민지, 박봄, 산다라박은 이번에도 각각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티저이미지로 팬들의 기대를 고조시켰다. 먼저 금발머리로 돌아온 CL은 검은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으로 강하고 파워 넘치는 모습을 선보였다. 반면 물기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와 선글라스 아래로 투명한 피부, 붉은 입술 등은 카리스마와는 상반되는 여성미를 연출했다. 푸른 바탕의 그래피티를 배경으로한 공민지는 날카로운 금속 가시가 달린 후드로 한껏 스타일을 뽐냈다. 어린 얼굴을 살려주는 까만 앞머리와 독특한 그림의 타투가 불량스러우면서도 발랄한 매력을 살려낸다. 몰라보게 홀쭉해진 모습으로 ‘상추 다이어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박봄은 붉은 머리로 ‘여전사’ 같은 강인함을 강조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꺼운 눈화장으로 이목구비를 부각시켰다. 그간 스커트의상으로 여성적인 매력을 강조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니다. 동안의 상징으로 불리는 산다라박은 공작새의 깃털을 연상케 하는 푸른 드레스로 여신 이미지를 완성했다. 배경과 의상의 원단이 기괴하면서면서도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완성했다. 사진과 함께 공개된 앨범트랙리스트에 따라 타이틀곡은 ‘Go away’, ‘Can’t nobody’, ‘박수쳐’ 총 3곡 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투애니원의 무대는 오는 9월 12일 SBS ‘인기가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일 오픈된 양현석 대표의 블로그는 YG 소속가수들의 음반 작업과 연습 과정, 일상 생활 등을 매일 기록하여 당일 공개하는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며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비공개 자료들이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 = 양현석 블로그 YG-LIFE (yg-life.com)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원걸’ 소희, 키 인증 사진…“귀엽다 vs 정말 165cm?”▶ 유재석-박명수, ‘2PM 겨냥한’ 2PR 결성…가요계 출격▶ 박한별, 속옷화보로 명품 8등신 몸매 ‘섹시미 폴폴’▶ 나르샤, ‘청춘불패’ 녹화중 실신 “정확한 병명은…”▶ 장미인애, 누드화보 공개…“지금, 가장 아름다운 시기”
  • 이재은, 후덕해진 몸매 눈길..섹시화보는 옛말?

    이재은, 후덕해진 몸매 눈길..섹시화보는 옛말?

    배우 이재은이 한층 후덕해진 몸매로 눈길을 끌었다. 이재은은 31일 열린 MBC 드라마넷 ‘조선과학수사대-별순검 시즌3’의 제작 발표회에 참석했다. 이날 어깨가 드러나는 검정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이전에 비해 체중이 많이 불어난 모습이었다. 이재은은 그간 마른 체구는 아니지만 볼륨 있는 몸매로 섹시화보까지 찍었던 바 있어 그녀의 이날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불과 몇 개월 전인 올 초 MBC 일일극 ‘살맛납니다’에 출연할 때보다도 체중이 더 늘어 보인 것. 하지만 해맑은 웃음과 당당한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역시절부터 활동했던 이재은은 "여기서 내가 제일 선배인데 왜 항상 끝자리에 앉히는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등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재은 외에 정호빈 성지루 민석 민지아 이두일 등이 출연하는 추리 수사극 ‘별순검 시즌3’는 다음달 4일 첫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이대선 기자 ▶ [NTN포토] 이재은, ‘우리 남편 멋지죠?’▶ ‘홍대 계란녀’ 과거이력 속속 드러나…‘하남비’ 출연자▶ 슈퍼스타K 조문근, 10월 가수데뷔…서인국-길학미 뒤 잇는다▶ 허가윤, 실제나이 논란…2살 어린 리지에게 ‘언니?’▶ 예한, 시크릿 ‘3년 6개월’ 표절 주장…"내노래 ‘나쁜여자’ 베껴"
  • [NTN포토] 민지아, ‘당당한 몸매, 당당한 걸음걸이’

    [NTN포토] 민지아, ‘당당한 몸매, 당당한 걸음걸이’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배우 민지아가 31일 오후 서울 행당동 CGV 왕십리에서 열린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3(연출 이승영·김미숙·박수철/제작 MBC프로덕션)’ 제작발표회에 입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속 현대적 과학수사를 다룬 ‘별순검 시즌3’는 수사극이라는 장르에 괴수 어드벤처, 테러인질극 등 다른 장르적 요소를 접합시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9월 4일 첫 방송.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NTN포토] ‘전편과 다른 별순검 시즌3, 많이 기대해주세요’

    [NTN포토] ‘전편과 다른 별순검 시즌3, 많이 기대해주세요’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배우 이두일 이재은 민지아 민석 성지루 정호빈이 31일 오후 서울 행당동 CGV 왕십리에서 열린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3(연출 이승영·김미숙·박수철/제작 MBC프로덕션)’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속 현대적 과학수사를 다룬 ‘별순검 시즌3’는 수사극이라는 장르에 괴수 어드벤처, 테러인질극 등 다른 장르적 요소를 접합시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9월 4일 첫 방송.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NTN포토] ‘초복이’ 민지아, ‘청순한 조선시대 여순검’

    [NTN포토] ‘초복이’ 민지아, ‘청순한 조선시대 여순검’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배우 민지아가 31일 오후 서울 행당동 CGV 왕십리에서 열린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3(연출 이승영·김미숙·박수철/제작 MBC프로덕션)’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속 현대적 과학수사를 다룬 ‘별순검 시즌3’는 수사극이라는 장르에 괴수 어드벤처, 테러인질극 등 다른 장르적 요소를 접합시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9월 4일 첫 방송.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NTN포토] 민지아, ‘하늘하늘한 원피스로 멋낸 조선시대 여순검’

    [NTN포토] 민지아, ‘하늘하늘한 원피스로 멋낸 조선시대 여순검’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배우 민지아가 31일 오후 서울 행당동 CGV 왕십리에서 열린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3(연출 이승영·김미숙·박수철/제작 MBC프로덕션)’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속 현대적 과학수사를 다룬 ‘별순검 시즌3’는 수사극이라는 장르에 괴수 어드벤처, 테러인질극 등 다른 장르적 요소를 접합시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9월 4일 첫 방송.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NTN포토] 민지아, ‘아슬아슬 계단오르기’

    [NTN포토] 민지아, ‘아슬아슬 계단오르기’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배우 민지아가 31일 오후 서울 행당동 CGV 왕십리에서 열린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3(연출 이승영·김미숙·박수철/제작 MBC프로덕션)’ 제작발표회에 입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속 현대적 과학수사를 다룬 ‘별순검 시즌3’는 수사극이라는 장르에 괴수 어드벤처, 테러인질극 등 다른 장르적 요소를 접합시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9월 4일 첫 방송.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이재은, 후덕해진 몸매 눈길..섹시화보는 옛말?

    이재은, 후덕해진 몸매 눈길..섹시화보는 옛말?

    배우 이재은이 한층 후덕해진 몸매로 눈길을 끌었다. 이재은은 31일 열린 MBC 드라마넷 ‘조선과학수사대-별순검 시즌3’의 제작 발표회에 참석했다. 이날 어깨가 드러나는 검정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이전에 비해 체중이 많이 불어난 모습이었다. 이재은은 그간 마른 체구는 아니지만 볼륨 있는 몸매로 섹시화보까지 찍었던 바 있어 그녀의 이날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불과 몇 개월 전인 올 초 MBC 일일극 ‘살맛납니다’에 출연할 때보다도 체중이 더 늘어 보인 것. 하지만 해맑은 웃음과 당당한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역시절부터 활동했던 이재은은 "여기서 내가 제일 선배인데 왜 항상 끝자리에 앉히는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등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재은 외에 정호빈 성지루 민석 민지아 이두일 등이 출연하는 추리 수사극 ‘별순검 시즌3’는 다음달 4일 첫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이대선 기자 ▶ [NTN포토] 이재은, ‘우리 남편 멋지죠?’▶ ‘홍대 계란녀’ 과거이력 속속 드러나…‘하남비’ 출연자▶ 슈퍼스타K 조문근, 10월 가수데뷔…서인국-길학미 뒤 잇는다▶ ‘청순글래머’ 신세경, 핑크슬립으로 귀여운 섹시소녀 변신▶ 예한, 시크릿 ‘3년 6개월’ 표절 주장…"내노래 ‘나쁜여자’ 베껴"
  • [사설] 국치 100년, 이제 한반도 주변 격변 주체 돼야

    어제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로 전락한 국치(國恥) 100년을 맞았다. 36년의 일제 식민통치 기간 우리 민족은 존재를 깡그리 부정당했다. 비참한 처지였다. 이런 굴욕은 일제의 침략 야욕도 문제였지만 우리 민족 내부의 준비 부족에도 기인했다. 서구 제국주의가 세계 이곳저곳에서 정복 쟁탈전을 벌이던 19세기 후반 무능한 조선의 지배층은 눈과 귀를 닫고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뒤늦게 서구 제국의 힘을 빌려 일본의 야욕을 분쇄하려 했지만 미국과 일본, 영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 간 뒷거래에 무참하게 농락당하고 말았다. 일제 패망 뒤엔 남북으로 분단됐다. 오늘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0년을 제외하고 민족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던 중국이 올 2분기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미국과 G2(양강 체제)를 형성했다. 중국은 한반도 안보에 열쇠를 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 자연 한·미, 북·중 대결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올해 두 번째 정상회담은 한·미와 북·중 간 대결구도 심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과 중국의 접근에 미국은 이번 주초 추가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발표하는 등 한반도 주변 동아시아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주변 격변에서 이번에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면밀한 정세분석을 통해 빈틈없는 질서 재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정세를 이끌 외교전략을 펴자. 100년 전 국치의 굴욕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교훈을 살려내야 한다. 특히 북한이라는 변수는 오늘 대한민국 외교에서는 숙명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북한과 중국의 접근을 포함한 동아시아 격변에 주체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가의 치욕, 더 이상은 안 된다.
  • “100년전 치욕 잊지말되 이젠 미래를”

    “100년전 치욕 잊지말되 이젠 미래를”

    “무효!/ 이로부터 우정의 천년이 있다/ 앞이 있다/ 거기로 가는 길이 있다/ 오늘 그 길의 첫걸음이 여기 있다.”(고은 시인)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29일. 비극적 한국근대사를 우정으로 다시 써야 한다는 고은 시인의 자작시 낭송이 울려 퍼졌다. 서울 충무로 세종호텔에 마련된 행사장이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5월과 7월 한·일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 총장과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 한·일 지식인 20여명이 마주 보며 마음을 나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들은 앞서 고종의 옛 집무실에서부터 서울 남산의 옛 통감부 관저 터까지 을사늑약과 강제병합의 현장을 ‘침묵’하며 행진했다.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국권 피탈의 치욕을 되새기자는 행사가 잇따랐다. 한국과 일본의 117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는 서울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앞 공원의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서 표석을 제막했다. 이곳은 100년 전 이완용 총리대신과 일본의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현장이다. 실행위는 이어 성균관대에서 ‘한·일시민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식민지 범죄를 적시하고 현안별 해결책과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광복회도 서울 탑골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앞에서 독립유공자유족회와 공동으로 ‘한·일강제병합 100년’ 행사를 열었다. 독립유공자유족회가 1995년부터 매년 경술국치일에 추모제를 개최해 왔지만 이처럼 대규모 한·일 강제병합 행사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시론] 한·일 강제병합 100년, 일본의 선택/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시론] 한·일 강제병합 100년, 일본의 선택/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주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강연에서 현재 일본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서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문제만 분석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어제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최근 일본 총리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일 양국의 양심있는 지식인 각 1000명이 일본의 한국병합이 잘못된 것이라는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 총리는 일본의 한국합병이 전적으로 무효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본 내부의 반대여론을 의식해서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일본을 방위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일본의 식민통치는 그 당시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는 서구 열강이 다 같이 했는데 왜 일본만 가지고 그러느냐?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합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같이 반대 여론이 강한 것인가? 일본의 역사교육 탓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 여타의 아시아 제국의 역사는 실패한 역사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메이지시대부터 러·일전쟁까지의 역사는 긍정적인 것으로, 만주사변 이후의 역사는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양평화를 위해 조선을 식민지배 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니 작년부터 3년간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에 구름’이 일본의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거기서 이토 히로부미를 야마가다 아리도모 등 강경파를 제압하고 조선의 자치를 주장한 자치론자로 미화하고 있지 않은가? 원작자가 영화나 드라마로 방영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예(家)의 붕괴, 윤리의 타락, 경제의 불황 등 일본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간의 역사만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 ‘이예’제도가 시작된 14~15세기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동아시아의 격변기였다. 12세기에는 유례가 없는 몽고의 세계제국이 건설되어 주자학을 관학으로 정착시켰다. 그래서 그 영향 하에 있던 명·조선·월남이 자의건 타의건 간에 주자학을 관학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중앙집권적인 문치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서로 싸우기보다는 서로 협력해 오랫동안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교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족·사회·국가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무사를 억압하고 군사를 기르지 않은 채 외교로 국가안보를 지키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길을 따르지 않았다. 섬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노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계속 무사(사무라이)가 지배하는 분권적 무치주의 국가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일으켜 대륙진출을 하려다 조선·명나라 연합군에 패배했다(일본에서는 승리한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그리고 서세동점의 시대가 되자 일본의 분권적 무치주의가 서양의 그것과 같다고 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동북아 제국을 식민지로 편입시키고, 이를 아시아 전체로 확산해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면 이러한 일본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 때문에 아시아 제국의 희생 위에 열강에 편입됐고, 아시아의 선두주자로 호황을 누렸다. 그렇지만 서구 자본주의가 쇠퇴할 조짐이 보이는 현 시점에서 과연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탈아입구를 버리고 아시아의 유교체제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과 협동해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전제조건은 아시아인에 대한 침략과 패악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것은 흔쾌히 배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나 아시아인의 새로운 번영의 기틀을 제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예(家)의 붕괴, 윤리의 타락, 경제의 불황 등 일본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간의 역사만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 [고전톡톡 다시읽기] 대중지성의 산물 햄릿

    ‘햄릿’의 저자 셰익스피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가이다. 당대의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당시 영국 식민지)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그 말을 두고 영국인들의 오만함이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400년 동안 셰익스피어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끼친 거대한 영향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원래 셰익스피어는 배우로 출발해서 나중에는 자신이 소속된 극단의 주주이자 전속작가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극단은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을 연극 흥행을 이유로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햄릿’ 공연을 했던 배우, 주로 조연급 배우들이 극단 밖에서 대사를 외워내고, 그것을 재구성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본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햄릿’은 1603년쯤 처음으로 전체적인 작품 꼴을 갖추었고, 이후 계속 수정 증보 과정을 거친다. 1623년 셰익스피어의 동료배우들이 극단에 보존된 자료들을 토대로 다시 작품을 완성해낸다. 결국 ‘햄릿’은 애초부터 판본이 정해져 있지 않았을뿐더러 여기에 번역본이라는 한국적 차이까지 감안하면, 그 어디에도 셰익스피어가 쓴 그대로의 것은 없는 셈이다. 또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12세기 말부터 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설화, 덴마크 역사 이야기 등의 집합적 맥락에서 ‘햄릿’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햄릿’은 셰익스피어라는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연극 공연, 배우들의 기억, 극단의 자료 등등이 모두 합쳐진 그야말로 집단 생산물인 셈이다. 한 개인의 개별적 능력이 아니라, 그의 시대가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발현된 것이다. 시대의 집합적 배치 속에 들어가 공동체적 기반 속에서 삶의 리듬을 조율해낸 것이 ‘햄릿’이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통한 대중지성의 창작물! 그리고 그 ‘햄릿’은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영화, 드라마, 미술, 그림책, 애니메이션, 심지어 컴퓨터 오락게임까지. ‘햄릿’은 아직도 계속 생산되는 중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내일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100년 전 제국주의 국가들의 잔인한 정복 쟁탈전에 휘말렸을 때 무기력했다. 인재도 없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자체 방어를 위한 군사력도 약했다. 재정은 거덜났다. 결국 미국, 일본, 영국의 식민지 나눠먹기 제물이 되었다. 강국들에 무참하게 농락당하다 나라를 잃고 말았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장기판’의 졸(卒) 신세였다. 1907년 주한 영국 총영사였던 헨리 코번은 우리의 처지를 강국 일본, 러시아, 중국 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통받는 장기판의 졸에 비유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은 무력한 나라들을 문명국의 합법적인 먹잇감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조선인을 퇴화한, 몰락중인 인종으로 봤다고 ‘임페리얼 크루즈’(프리뷰)라는 책이 소개했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대한제국 지배를 용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굴욕의 결정판이었다. 고종은 미국·일본의 나눠먹기를 전혀 몰랐다. 미국을 형님 같은 나라로만 생각했다. 1905년 을사늑약 두 달 전까지 미국에 애처롭게 매달렸다. 일본과 비밀거래를 계속한 미국은 을사늑약을 묵인, 조장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를 인정한 첫 번째 나라가 된다. 국제외교는 비정했다. 일본은 어땠던가. 17세기 초부터 쇄국정책을 펴면서도 네덜란드에만은 나가사키의 작은 섬에서의 교역을 허용, 세계정세를 계속 파악한다. 외교전을 통해 19세기 말 근대화를 단행, 부국강병책으로 제국주의 열강 일원이 됐다. 비백인, 비기독교 국가로서는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인접국을 집어삼키며 욱일승천했다.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엄한 대가를 치렀지만 경제외교력으로 부활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국가에 외교는 중차대하다. 외교력은 경제력, 국운을 좌우한다. 2008년 경제위기는 외교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 중심 외교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이라는 다극화 구조도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만 외교를 의지해서는 안 될 시대다. 국익에 따른 치열한 합종연횡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합종연횡의 시대, 외교무대에 천사는 없다. 긴장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변수라는 숙명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힘겨운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한다. 리비아, 이란 제재 문제 등 절박한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하는 팍팍한 처지다. 오늘도 국제외교 현장에서 속내를 감춘 채 미소짓는 비정한 외교전을 수시로 체험하고 있다. 정복 쟁탈전은 없지만 외교전은 여전히 살벌하다. 우리는 100년 전 처참한 굴욕을 당했다. 그 굴욕을 씻기 위한 노력이 아직도 부족한가. 많은 유학생과 상사원들이 세계로 나가 국제정세 흐름 파악은 빠르다. 하지만 자원확보 경쟁 등 경제외교를 포함한 총체적인 외교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외교전을 펼 촉수인 기업과 배후지원을 할 외교관의 협조 체제가 미약하다. 외교의 일관성, 정교함, 치밀함을 보강해야 한다. 장기전략에 따른 외교를 해야 한다. 21세기 원대한 외교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외교 정책의 큰 틀이 바뀌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 냉정하게, 기민하게 국제정세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만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지역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외교관 선발과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 외교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100년 전처럼 오늘날 외교현장에도 천사 같은 미소가 넘친다. 미소 뒤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 시절 미국은 대한제국을 속였다. 등에 비수도 꽂았다. 결국 일본도 속였다. 각국이 속고 속이는 외교전은 여전하다. 지금 외교 현장에서 미소 뒤에 숨겨진 비수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이 다시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taein@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과거 100년’ 학계 돌아보다

    [경술국치 100년] ‘과거 100년’ 학계 돌아보다

    학계가 요즘 씨름하고 있는 주제도 경술국치 100년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애국지사 현창(顯彰) 어떻게 할 것인가-역사의 경험에서 배운다’라는 제목의 학술대회를 연 데 이어 한국역사연구회(‘강제병합 100년에 되돌아보는 일본의 한국침략과 식민통치 체제의 수립’), 한국근현대사학회(‘20세기 한국·한국인의 역사와 기억의 변용’), 동북아역사재단(‘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 등도 잇따라 세미나를 열었다. 학술지들도 가세하고 나섰다. ‘역사비평’ 가을호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승렬(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연세대 연구교수의 글을 실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유명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언덕 위의 구름’에서 침략자인 ‘메이지 일본’을 순진무구한 소년의 이미지로 포장하는 모습을 지적한 뒤 “올바른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해서는 성장에서 공공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 명예교수도 100년 전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편입됨)론을 주장한 일본이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동아시아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는 독립운동가 12명을 다뤘다. 한글학계의 거두로 상해임시정부에도 몸담았으나 광복 뒤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의장을 지냈다가 연안파 숙청 때 제거돼 남북 양쪽에서 모두 지워진 김두봉,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냈으나 월북해 남한에서는 잊혀진 김원봉 등도 포함시켰다. “이들에게 이념이란 광복을 위한 것이었을 뿐인데, 후대 사람들이 이념의 잣대로 폄하하고 있다.”는 주장이 이채롭다.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린 ‘식민지 100년:제국·식민의 기억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 특집도 눈에 띈다. 뉴라이트 진영이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편집진이 내세웠던 ‘탈근대론’(좁은 의미의 근대비판주의)이 실은 친일옹호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대목이 특히 시선을 붙잡는다. 우선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연된 정의-두 개의 보고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기둥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탈을 약탈로 제한한 뒤 식민지 수탈을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일본이 돈 한 푼 안 주고 조선의 물건을 빼앗아간 것은 아니니 수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 대통령까지 나서 비판하는 것이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다. 이영훈식 논리에 따르면 대기업 역시 돈을 아예 안 준 것은 아니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일파 윤치호를 옹호한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에 대해서도 따끔한 질문을 던진다. “한 인간이 택한 정치적 행위가 옳은가 그른가라는 실천적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음에도 굳이 친일행위에 대해서만은 판단을 유보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 연구원은 “행위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있는데 이를 (박 교수 주장처럼) 구조의 문제로 돌리면 우리는 역사와 사회 앞에서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탈근대론은 식민주의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근대 자체가 식민주의를 잉태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 다시 말해 근본적인 책임을 묻는 작업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탈근대론이 책임회피론으로 이용되는 것일까. 하정일 원광대 국문과 교수의 ‘탈근대주의의 과잉 식민성 혹은 신실증주의’란 글에 해답이 숨어 있다. 하 교수는 탈근대론을 일종의 ‘신실증주의’라 부른다. 그는 “탈근대론자들의 신실증주의는 판단 중지 상태에서의 해석을 특징으로 한다.”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비평적 행위는 쓸모없는 일이고 남는 건 해석뿐”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판단을 중지하는 이유는 일제 치하 등과 같은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탈근대론이라는 서구 최신 모델을 들여와 그럴듯하게 치장했지만 한풀 벗기고 나면 ‘식민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그럼 그 시절에 일본에 세금 낸 사람은 모두 친일파란 얘기냐.’라는 식의 어거지로 흐르는 이유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한·일 시민단체 의기투합 ‘미래 100년’ 물꼬 트다

    [경술국치 100년] 한·일 시민단체 의기투합 ‘미래 100년’ 물꼬 트다

    #장면1 지난 5월10일 오전 11시30분 한국의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와 일본 도쿄 일본교육회관은 각각 취재기자들과 방송 카메라로 북적댔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대표들은 “100년 전 한국과 일본이 맺은 병합조약은 불의부당한 만큼 무효다.”라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한국에서 109명, 일본에서 105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후 서명에 참여한 두 나라 지식인 숫자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불법’이라는 표현 앞에 망설이던 일본 지식인들도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무효 선언과 사과 담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에게 전달했다. #장면2 지식인 공동선언문이 나오기 몇 달 전,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의미심장한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 실행위원회’다. 결성은 일본 시민들이 먼저였다. 올 1월31일 도쿄 와세다 봉사원에서 창립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일본 사회의 왜곡된 과거사 인식,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일본 시민들의 역할 등을 둘러싸고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이후 ‘일본 실행위원회’는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수차례 벌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3월 ‘한국 실행위원회’가 꾸려졌다. 부끄러운 과거’ 100년을 반성하고 ‘발전적인 미래’ 100년을 모색하기 위한 한·일 두 나라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식인들이 주로 전자(前者)를 책임지고 있다면 후자를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민단체의 대표 격인 한·일 실행위원회는 을사늑약 체결일인 지난 22일부터 선포일인 29일까지를 ‘강제병합 100년 한·일 시민대회’ 기간으로 정했다. 22일 도쿄에서 개막식을 가졌고, 29일 서울에서 폐막식을 갖는다. 박한용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 실행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은 “폐막식에서 식민지배 자체가 반인륜적 범죄임을 국제적으로 천명할 방침”이라며 “한·일 시민 공동선언문 외에 부속문서로서 한·일 시민행동 계획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한·일 시민 공동선언을 기초로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시민 공동선언을 끌어내는 한편 국제행동프로그램을 만들어 동아시아 시민연대조직도 구성할 작정이다. 해외에서도 동참한다. 일본이 벌인 전쟁에 강제 동원된 러시아 사할린 한인의 후예들은 29일 사할린에 모여 강제병합 100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집회를 갖는다. 전쟁 뒤 방치한 일본의 법적·역사적 책임을 묻고 강제 동원에 대한 사과와 배상도 요구할 계획이다. 시민대회 기간 국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와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고찰하는 국제학술대회 등이 열렸다. 백범 김구 선생 유적지를 좇아 전국 1470㎞를 자전거로 순례하기도 했다. 국내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사업 공동추진위원회’(이하 100추위)는 아시아 차세대 평화 리더들을 위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100추위는 지난해 4월 30여개 단체로 출발해 116개 단체로 세를 불렸다. 12주 과정의 강좌는 두 나라 역사에 대한 실체적 접근과 함께 역사 속 평화의 의미, 시민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청소년들과의 공유도 모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얼마 전에는 ‘100년 전의 한국사’라는 책도 펴냈다.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원했다는데 사실일까?’ ‘갑오개혁 주인공들이 돌에 맞아 죽은 까닭은?’ ‘일본에 병합을 요청한 조선인은 누구인가?’ 등 지난 100년의 역사를 쉽고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문답식으로 풀어 썼다. 일반인은 물론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교육현장의 역사 교사와 역사학자, 대학 교수 등이 함께 중요 질문을 발췌해 만들었다. 100추위는 지난해 8월 일본·타이완 등의 시민단체와 국제 합동워크숍을 가진 이래 ‘전쟁 없는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주제로 순회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서울, 도쿄, 오사카, 교토를 거쳐 중국 난징, 미국 워싱턴, 뉴욕, LA, 독일 베를린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원로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지식인들의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시민들부터 진정한 역사적 화해를 통해 국가 간 화해, 나아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 질서의 출발점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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