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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기자가 간다] 여성도 항공·산악 구조…119에 편견은 없다

    [명예기자가 간다] 여성도 항공·산악 구조…119에 편견은 없다

    ‘금녀의 벽’으로 여겨지던 119 구조 업무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중앙119구조본부는 각 시도 소방본부에서 대응하기 힘든 대형 재난에 대비하고 특수 사고에 신속히 대응하고자 지난 1995년 설립됐다. 2012년 구미 불산 가스 누출 사고 당시 현장에서 누출 밸브를 잠근 것은 중앙119구조본부 대원들이었다. 119구조본부는 ‘소방계의 별동대’라는 별명에 걸맞게 일반 소방서에서 보기 힘든 장비들을 갖추고 최정예 구조대원으로 이뤄져 있다. 각종 구조 기술을 훈련하고 새 기술도 연구·개발한다. 이 곳에 남성 소방대원들도 근무하기 힘든 현장 업무를 수행 중인 여성 소방대원이 있어 화제다. 배유진(27) 대원은 충남 소방관으로 약 1년 6개월을 근무한 뒤 중앙119구조본부 경력경쟁 채용(구급 분야)에 다시 응시해 여성 최초의 항공구조구급대원이 됐다. 특히 지난달 23일~이달 3일 2주간 중앙119구조본부에서 진행된 특수항공구조 전문훈련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항공구조구급대원이 되기 위해 2주간 구조 수영과 헬기 이탈, 호이스트 구조, 헬기 해상추락 때 승무원 구조 등 남자 대원들도 버티기 힘든 고난도 훈련을 모두 통과했다.현재 중앙119구조본부에는 배 대원뿐 아니라 전문적 구조 현장분야에서 근무하는 여성대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인명구조견 업무를 담당하는 이진희 대원과 산악구조와 도시탐색구조 업무를 담당하는 신민지 대원, 인명구조견센터에서 훈련사로 근무하는 정소애 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자는 구조 업무를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국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최강의 구조대원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채인천 명예기자(소방청 대변인실 소방경)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이모가 남긴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반세기 전 한 가족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뒤로 드문드문 들어선 새하얀 양옥 주택, 젊은 부부와 두 어린 아이가 함빡 웃는다. 1970년대 초 울산의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 사택이다. 막내의 가슴에는 유공유치원 이름표가 달랑거린다.울산에 정유공장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단지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택 단지나 사원 아파트가 함께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공장과 함께 사택과 클럽을 조성하고, 유치원과 볼링장, 실내 수영장도 운영했다. 도심의 사원 아파트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되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탄광촌이나 철도 관사 등이 쉽게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살림집으로 회사에서 공급하는 주택(社宅)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옥타비아 힐의 아버지가 추종했던 200년 전 영국 사람 로버트 오언(초상화·1771~1858)은 대개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의 주거를 기업의 주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계곡 골짜기의 뉴 래나크에서 말이다. “오언은 그전에 맨체스터에 있었어요. 같은 산업혁명 상황이라고 해도, 맨체스터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후에 엥겔스(1820~1895)가 나쁜 주거 환경을 묘사해서 보고서를 낸 곳이죠. 소셜리스트라는 말로 워낙 알려졌지만, 오언은 도시를 만드는 것, 타운 플래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에요. 도시 계획 자체가 오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오언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오언은 웨일스 대장장이의 아들로, 9살 때 런던으로 상경해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면 방적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던 맨체스터로 옮겼고, 20대 초에는 작은 공장을 인수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맨체스터에서 철학과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 나갔다. 20대 말인 1800년엔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산골로 들어가 뉴 래나크 면 방적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발명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의 수방적기를 도입해 데이비드 데일(1739~1806)이라는 기업가가 차린 공장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여러 공장이나 탄광이 그렇듯, 수력을 기계 동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낙차가 큰 물 근처에 공장을 두어야 했고, 클라이드 강의 수려한 계곡이 바로 그랬다. “맨체스터에서 왜 래나크로 갔을까. 맨체스터에서 스스로 일하면서 노동자들 현실을 봤겠죠. 산업 혁명에 따른 문제를 풀지 못할 문제라고 보느냐, 아니면 풀 수 있느냐, 거기에서 두 길이 나뉘는 거예요.” 오언이 래나크로 간 것은 사랑에 빠져서였다. 데이비드 데일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출신의 격차가 컸다. 장인의 환심을 사려고 기업의 주주가 된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운영이 문제였다. 인근 주민들은 전통적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공장에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기술자들은 먼 도시에 살았다. 공장에는 교회 구빈원에서 노동력이랍시고 보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과 일에 별 의욕이 없는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뿐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마시고 뻗어 버리는 노동자들을 구타하거나, 적게 먹는 아이들을 초과 노동시키면서 영국은 위대한 산업화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몸집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아이들은 거대한 방적기 아래를 드나들며 실오라기를 줍고 실을 잇는 데 동원되었다.오언은 맨체스터 생활을 접고 뉴 래나크로 이사를 갔다. 그는 뉴 래나크에서 일하려고 먼 곳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반듯한 집과 더 많은 월급을 먼저 주기로 했다. 공장 곁에 사택을 조성해 한 가족이 한집에서 살게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일이 줄어도 월급을 주고,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게 했다. 마을 안에 매점을 조성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했는데, 월급은 적게 주면서 공산품은 턱없이 비싸게 팔아 두 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식민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제국의 기업가들이 꾀한 기본 모델이었다. 1817년에 오언은 뉴 래나크에 노동자 자녀와 고아들을 위해서 영국 최초로 초등학교를 두었다. 오언의 경영 방식은 해마다 더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왔지만, 다른 주주들은 노동자를 위하느라 기업주의 이익을 줄인다며 투자에 훼방을 놓았다. 오언은 1813년에 반대자들의 주식을 몽땅 사 버렸다. 이후 10여 년간 이 산골 공장 마을은 유럽 곳곳의 정치가, 왕족의 방문 행차를 맞았다. 방문객들은 청결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에 만족한 활기찬 노동자들이 사업성을 높이고 수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한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대단히 놀랐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소개한 글이 1817년에 발표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다. “오언의 상상도는 뉴 래나크를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글로 썼는데, 나중에 그림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엄청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그걸 직접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닌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달라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은 거지요. 물론 이상 도시 계획은 그전에 르네상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언이 다른 점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산업, 기계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하고 연결한 거죠. 그리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 냈어요.” 오언은 실업의 원인을 기업주들의 잘못된 수익 목표에 두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13)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장은 기계화되어 엄청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고서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결국 불황이 닥쳤다. 그러자 기업주들은 노동자부터 대량 해고해 버렸다. 경기에 따라 해고되고 취업되는 노동자들은 결코 기술을 쌓거나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오언의 대안은 인구 1000명 안팎의 작은 일자리 공동체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언론에 실리면서 환영과 함께 맹렬한 비난도 받았는데, 먹고살 만한 노동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서 결과적으로는 실업 빈민 수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아무리 수익성으로 증명해 보여도 기업주들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 데 질린 오언은 1925년에 큰 이익을 본 뉴 래나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 만든 도면과 모형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워싱턴 하원에서 모형을 전시하고, 마침내 인디애나주의 개신교 정착촌 뉴 하모니에서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중이떠중이 몰려든 사기꾼과 알코올 중독자들은 월급만 받고 일하려 들지 않았다. 뉴 래나크에서 25년 동안 모은 재산을 2년 만에 날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에게 공상가라느니, 협동주의 운동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원에서 발표한 오언의 개념도는 이렇다. 네 방향의 반듯한 도로와 텃밭에 둘러싸인 블록이 있다. 블록 한가운데에는 공공시설과 어린이집, 각급 학교, 공동 부엌, 강당, 클럽, 도서관과 종교 시설이 들어간다. 야외는 녹지로 조성되어 운동과 여가 장소로 이용된다. 블록의 세 변에는 노동자를 포함한 4인 가족마다 방 4개짜리 주택들이 계획된다. 나머지 한 변은 독신자와 고아 숙소, 먼 곳에서 놀러 온 친지나 가족들을 위한 손님방, 교사나 의사의 관사, 공동 창고가 들어선다. 한쪽 도로 건너편에는 이들이 노동할 공장이나 회사가, 반대쪽 건너편에는 입주민들에게 식량으로 공급될 논밭과 과수원이 배치된다. 공장과 주거, 곧 사택 단지 사이에는 키 큰 나무를 심어 적절히 분리한다. “그 그림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공상적이었는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거죠. 오언은 미봉책으로 조금조금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새로 만들어서 해결해 보자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내용을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언제부터 쓸 수가 있었느냐고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못했잖아요.” 오언의 계획은 이후 여러 추종자들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일본, 수많은 근대 국가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학교도 바로 그렇게 조성된 사택 단지나 아파트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공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뉴 래나크라는 공장에서, 동시대 현실에서 직접 마주친 문제를 해결해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도시 주택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도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에요. 서구 사례에서 대응하기 쉬운 짝을 찾아서 사지선다형처럼 고르려고 한 거지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물로 나온 도시의 모양은 비슷한데, 근본적인 해결이 나오지는 않아요.”사택 살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모네 가족도 이모부의 전근에 따라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의 주소는 사택이 아니라 강남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언의 개념도가 착실하게 실현된 200년 후 대한민국의 귀결은 협동조합이나 화폐 없는 공동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월급보다 더 큰 재미를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오언을 따른다며 사택을 짓고 특정 종교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 든 기업주도 역사상 많았다. 강점기 일제 관료의 사택은 문화재가 될지언정, 우리 노동자의 공단 사택과 클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주택 청약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사하지 않고 일터 가까이에 거주할 권리, 회사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따질 수는 없었을까. 새벽 5시부터 30도를 오가는 날, 아득하게 펼쳐진 아파트 숲 사이를 매일 1시간 넘게 땀 흘리며 출근해야 하는 신도시 노동자들은 벌써 피곤하다.
  • [특별한 동행] 불법 번식장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강아지들

    [특별한 동행] 불법 번식장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강아지들

    불법 번식장, 일명 강아지 공장에서의 화재 사고 후 개들이 구조됐다. 지난해 11월, 동물자유연대 조영련 실장은 경기도 시흥시에 “불법 번식장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직원들과 현장을 방문했다. 번식장은 비닐하우스 안, 조립식 패널 건물로 지어진 불법 건축물로 모두 3동이었다. 그 안에는 개들이 한 마리씩 들어 있는 철창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조 실장은 “100여 마리 이상 되는 개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포메라니안, 말티즈, 푸들과 같은 인기 종들이었다”고 전했다. 불법 번식장이라고 판단한 동물자유연대는 지자체 담당자와 다시 현장을 찾았다. 번식장 주인은 “번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그렇게 번식장 주인과 동물단체가 대치하는 사이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번식장에 불이나 철창 안에 갇혀 있던 개들이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개 30여 마리가 현장에서 즉사했고, 화를 면한 100여 마리가 구조됐다. 구조된 개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개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조 실장은 “모견에게 나타나는 자궁축농증과 좁은 철창 안에 평생 있어야 했기에 뒷다리 관절에 문제가 있었다. 출산을 많이 한 모견은 나이에 비해 이빨의 노후화가 현저히 빨리 진행된 상태라 전 발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힘겨운 치료를 이겨낸 개들은 현재 악몽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남양주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에서 만난 조 실장은 “구조된 개들 대부분 입양 간 상태다. 아프거나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현재 보호 중인 개들을 만나 봤다. 녀석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취재진의 카메라에 매달리고 연신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지난 3월 22일부터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반려동물 관련 영업 관리가 강화됐다. 강아지 공장 같은 반려동물 생산업 신고제는 허가제로 전환됐다. 미등록 무허가 영업자에 대한 벌금은 1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향조정됐다. 그럼에도 보다 근본적인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 실장은 “해외에서는 그 나라에서 인정받은 ‘브리더(breeder·사육자)’들만이 반려동물 번식에 종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허가 내고 등록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사육자로서 먼저 전문성과 윤리성이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번식장 모견은 평생 비좁은 철망 안에서 강제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쓸모가 없어지면 식용으로 팔려나간다. 개의 평균 수명은 15년이지만, 번식장의 모견은 고작 4, 5년 정도다. 또한 새로 태어난 강아지는 경매장을 거쳐 애견숍이나 동물병원 진열장으로 들어간다.조 실장은 “반려견을 물건 사듯이 사는 소비자들의 행태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반려동물을 쉽게 사고, 파는 행위를 근절할 법 계정 강화도 중요하지만, 키우고자 하는 분들의 생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15년 이상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 실장은 반려견 구매 시 주의할 점에 대해 “인터넷에서 싸게 파는 경우, 특히 의심해봐야 한다. 또 펫샵에서는 강아지 출생 과정이 기록된 매매 계약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정 분양으로 입양할 경우, 그 집을 방문해 모견과 아빠견을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여기에 “무엇보다 지자체 보호소나 동물단체에서 입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특별한 동행’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는 인터뷰 형식의 짧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하면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위험에서 구조된 동물들의 사연과 현재 모습을 통해 개선되어야 할 점들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초록 입은 기네스 까만 속내, 아일랜드 국민 맥주로 포장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초록 입은 기네스 까만 속내, 아일랜드 국민 맥주로 포장

    英 식민지 독립운동 때 영국 흡수 주장 기네스 가문 민족주의자 직원들 해고 아일랜드 자치법안 저지 위해 로비도 아이리시 입맛 담겨도 정신은 못 담아영국의 이웃 ‘아일랜드’는 기네스 맥주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수도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공장과 기네스가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템플바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입니다. 아침부터 문을 연 펍에 들어가면 할아버지들은 기네스 맥주 한 잔을 옆에 놓고 신문을 보고 있고요. 일과를 마친 밤에도 사람들은 펍에 모여 기네스를 들고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아일랜드 최대 축제인 ‘성패트릭데이’에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리시들이 국가를 상징하는 초록색 클로버가 그려진 옷을 입고 기네스를 마십니다. 영국에 700년 동안 지배당한 아일랜드 민족이 “술과 음악을 좋아하고 한이 많다”고들 하는데 여기서 ‘술’이란 기네스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도 기네스는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친숙한 수입 맥주 가운데 하나죠. 아일랜드와 기네스 맥주의 역사에는 여러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더블린에 기네스 양조장을 처음 세운 이는 아서 기네스입니다. 기네스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귀족 가문이었는데요. 조부와 아버지로부터 양조 기술을 배운 아서는 1700년대 당시 영국에서 대유행했던 ‘포터’(스타우트) 스타일의 맥주를 아일랜드에서 만들어 팔아 보기로 합니다. 포터는 강한 불에 구워 검게 탄 맥아를 에일 방식으로 만든 흑맥주입니다. 아서는 1759년 폐허로 있던 더블린의 한 양조장을 헐값에 9000년간 계약을 맺고 임대해 본격적으로 포터를 생산했는데, 이 맥주는 순식간에 아일랜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죠. 입소문이 퍼지자 기네스 맥주는 영국에 이어 가까운 유럽 국가에도 수출됐습니다. 아서는 맥주로 큰돈을 벌었죠. 그럼 기네스가 탄생했던 당시 아일랜드 상황을 떠올려 볼까요? 아일랜드가 1921년에 독립을 했으니 당시 아일랜드섬은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독립 과정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독립은 1916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영국군이 전쟁을 치른 결과였죠. 대신 아일랜드섬은 남북으로 쪼개집니다. 종교 갈등 때문이었는데요. 과거 잉글랜드 개신교(성공회)인들이 대거 이주해 북부 지방에 정착했기 때문에 개신교도 수가 많은 북쪽에선 영국 잔류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북부 얼스터 지방의 6개 주는 독자적 의회를 구성해 영국의 구성원으로 남았고,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됐습니다. 가톨릭이 국교인 남쪽 아일랜드가 오늘날 아일랜드공화국입니다. 기네스 가문은 줄곧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반대하고 아일랜드의 영국 흡수를 주장한 통일당(Unionist)을 후원했습니다. 1798년에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아서를 영국의 스파이라고 고발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을 정도입니다. 후손들도 아서의 뜻을 이어받아 통일당을 지지했는데요. 기네스 가문은 1913년에는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1916년에는 IRA와 영국군을 지원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직원들을 해고하기도 했고요. 목숨 걸고 독립한 과거 남쪽의 아일랜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기네스는 매우 껄끄러운 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맥주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건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함입니다. 기네스 속에는 이처럼 보통의 이야기 이상이 담겨 있답니다. 스타우트 가운데 기네스처럼 균형이 완벽하고 음용성이 뛰어난 맥주도 드뭅니다. 기네스가 세계적인 스타우트 맥주로 거듭난 이유이기도 하죠. macduck@seoul.co.kr
  • [특별한 동행]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위해 길러진 개들의 사연

    [특별한 동행]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위해 길러진 개들의 사연

    “살아남은 애들은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죽은 사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동물자유연대 조영련 실장은 지난해 1월 경기도 여주시의 한 개농장에 대해 이 같이 증언했다. 당시 조 실장은 “개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상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29구의 개 사체가 참혹하게 널브러져 있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20여 마리의 개들은 오랜 굶주림으로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농장주는 개들이 병들어 죽은 것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조 실장은 “지속적이고, 고의적으로 굶겨 죽인 것”이라며 “대부분 굶어 죽거나, 동사해 죽은 상태였다. 살아남은 20여 마리 개들도 아사 직전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농장주는 개들을 왜 이렇게 방치했던 것일까. 이유는 비상식적이다. 음식물쓰레기 처리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조 실장은 “시로부터 (‘음식물쓰레기 처리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수거한 잔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을 세워 제출해야 한다. 그 용도로 개들을 키운 것이다. 농장주는 개들이 크면 (식용으로)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위해 개들을 키웠다는 의미다. 동물 학대가 명백한 상황. 조 실장은 “동물학대 행위가 드러난다고 해도 개들의 소유권이 농장주에게 남는 현행법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동물을 생명이 아닌, 개인재산으로 보기 때문에 농장주가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구조할 수 없는 것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우선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농장주로부터 개들을 격리조치 했다. 이후 농장주를 설득해 소유권 포기각서를 받아냈고, 구조된 개들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로 옮겼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1항 동물학대 금지에 따르면,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학대로 인정한다. 이를 근거로 동물자유연대는 농장주를 동물학대로 고발했다. 그 결과 농장주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개농장주가 음식물쓰레기 처리업 행위를 못하도록 여주시청에 제기한 민원도 받아들여졌다.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구조된 개들은 현재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갔다. 조 실장은 “일부 개들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고 무서워하는 애들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3월 22일부터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동물학대 처벌이 강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조 실장은 “무엇보다 담당 지자체나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가 아쉽다”며 “동물학대가 인지되면, 담당 공무원이나 경찰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지자체는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과 예산 확보부터 생각한다. 그 사이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특별한 동행’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는 인터뷰 형식의 짧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하면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위험에서 구조된 동물들의 사연과 현재 모습을 통해 개선되어야 할 점들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민지영 “유산 후 동물 새끼만 봐도 눈물 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민지영 “유산 후 동물 새끼만 봐도 눈물 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민지영이 유산의 아픔을 털어놨다. 1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민지영이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의원을 찾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한의사는 민지영에게 “마음이 불편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민지영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30분 지나있다”고 답했다. 이에 한의사는 “부부가 아무리 친하고 사랑해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시댁이라는 개념이 있으면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보다 눈치를 보지 않겠느냐. 마음의 갈등이 편안하진 않다. 그런 걸 어떻게 풀어주느냐. 거기에 결정적인 유산이라는 것은 가장 치명타 역할을 해서 마음이 편하진 못하다. 가슴도 많이 뛰고 그렇다”고 민지영의 상태를 설명했다. 민지영은 “TV에 동물이 나오면 엄마 동물, 새끼 동물이 나온다. 그것만 봐도 눈물이 난다. 유산을 하면 아이가 더 빨리 들어선다고 하더라. 그래서 저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도 든다”고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시어머니는 “아직도 (유산이)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걸 떨쳐버려라. 우린 정말로 네 건강만 챙기고 있다. 아기 생각도 하지 말고 네가 건강해져야 해”라며 위로했다. 한편 민지영은 지난 1월 1살 연하의 쇼호스트 김형균과 2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영교 교수의 ‘애견 미용 노하우’

    서영교 교수의 ‘애견 미용 노하우’

    한국애견협회 미용심사위원으로 애견미용 전문가이자 현재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전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서영교 교수. 19년간 쌓고 다듬어진 그녀만의 애견미용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강아지 관리법과 위생미용 노하우를 직접 확인해 보고 집에서도 직접 따라해 보면 어떨까. 반려견 미용의 시작은 역시 브러시. 강아지 털 종류에 맞는 브러시를 선택한 후 힘을 가해 털을 억지로 빗질하지 말고 부드럽게 ‘터치’ 한다는 맘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엉켜서 빗질이 잘 안 되는 부위는 빗으로 뜯지 말고 엉킨 털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살살 피도록 한다. 빗질을 하다보면 외부기생충에 감염이 됐는지, 피부 뾰루지가 있는지 등 강아지 피부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얼굴을 브러시 할 땐 잘못하면 빗으로 눈을 찌를 수 있어 눈 주위 위쪽 부분부터 조심스럽게 빗질해주면 좋다. 귀털은 귀 끝 피부가 얇기 때문에 귀털의 엉킨 부분을 빗으로 강제로 잡아 당기면 피부가 찢어지거나 상할 수 있어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브러시로 온 몸을 꼼꼼히 정리한 후엔 발바닥, 배, 똥꼬 주변 털을 깎고 다듬는다. 발바닥 털은 바닥에 딛는 발바닥 ‘패드’ 부위만 보이게끔 전동브러시를 이용해 세심하게 다듬는다. 발목 부위 털도 역시, 발바닥에 닿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해 주면 강아지가 네 발로 바닥에 섰을 때 털이 끌리지 않아 보기도 좋고 강아지가 움직이는데 미끄러지지 않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똥꼬털은 똥꼬 주변을 ‘마름모’ 모양으로 깎는다는 생각으로 다듬어 주면 된다. 똥꼬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깎게 되면 자칫 민감한 부위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부분 털은 한 쪽다리를 들거나 강아지가 선 상태에서 시도하는 것이 좋으며 젖꼭지나 생식기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정리해주면 된다. 그 외 발톱 깎을 때 발톱 혈관을 건드리지 않고 발톱만 깎은 후 그라인더로 갈아주는 법, 이어클리너 사용으로 귀청소 말끔하게 하는 법 등 보다 효과적일 뿐 아니라 위생적으로 강아지를 관리하는 법을 확인할 수 있다. 장소협조: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제주도 실종 여성, 마지막 행적 담긴 CCTV 영상 공개

    제주도 실종 여성, 마지막 행적 담긴 CCTV 영상 공개

    제주도에서 6일째 실종 상태인 여성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편의점 CCTV 영상이 공개됐다. 31일 제주동부경찰서와 제주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에서 지난 25일 실종된 최모(38·여·경기도 안산)씨를 찾기 위한 수색이 엿새째 진행되고 있다. 최씨는 지난 10일부터 제주시 세화포구 방파제 끝 부분에 있는 캠핑카에서 남편과 어린 아들·딸 등 가족과 캠핑을 해왔다. 지난 25일 저녁 남편과 이웃 마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후 캠핑카로 들어왔으며 당일 11시 5분부터 다음 날인 26일 0시 20분 사이 실종됐다. 최씨 남편에 따르면 최씨는 딸, 아들과 함께 카라반에서 야영을 하다 음주 상태로 홀로 밖으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최씨는 실종 직전인 25일 밤 11시 5분쯤 근처 편의점에 들른 것으로 확인됐다 .편의점 CCTV에는 그가 소주 1병과 김밥, 커피를 사는 모습이 찍혀 있다. 경찰은 최씨의 실종 기간이 길어지자 지난 29일 오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해경, 소방, 해군 300여 명이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30일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슬리퍼 한쪽이 근처 해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최씨가 바다에 실수로 빠졌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과 범죄 피해를 봤을 가능성 등 모든 점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물에 빠져 숨졌을 경우 수일이 지나도 시신이 떠오르지 않는 점에 대해 의문스럽다는 여론이 있다”며 “최종 행적과 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수색하면서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수색 범위를 구체화하기 위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길 물어보는 척하며 아이폰 훔치는 도둑

    길 물어보는 척하며 아이폰 훔치는 도둑

    사람의 친절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훔쳐 간 도둑의 간 큰 행동이 CCTV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6일(현지시간) 잉글랜드 남동부 에식스(Essex)주의 사우스엔드(Southend)에서 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훔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27일 보도했다. 사무실 내부 CCTV에 녹화된 영상에는 한 남성이 지도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담겼다. 남성은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의 책상에 지도를 내밀며 길을 물어본다. 다른 직원까지 남성의 옆으로 다가와 그를 돕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다. 그때 길을 물어보던 남성이 지도를 슬쩍 직원의 휴대전화 위에 놓는다. 지도로 휴대전화를 직원들의 시야에서 차단한 남성은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며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이어 남성이 가게에서 나가기 위해 지도를 들었을 때 휴대전화는 책상 위에서 사라진 상태다. 지도를 잡은 손으로 휴대전화를 슬쩍 움켜쥔 것이다. 휴대전화를 도둑맞은 사실을 알게 된 후, 회사 측은 CCTV를 공개하며 도둑의 이 같은 수법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사진·영상=Daniel Kalemasi/유튜브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문재인·트럼프 사진 내건 주중 北대사관

    문재인·트럼프 사진 내건 주중 北대사관

    ‘친교 두터이’ 설명 등 붙여 ‘사진 외교’북한이 그동안 체제 선전 장소로 써 온 주중 북한대사관 옥외 게시판에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내걸었다. 29일 베이징 차오양구 북한대사관 정문 옆의 대형 게시판에는 최근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 도배했던 사진들이 일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난 사진들이 새로 게시됐다. 이 게시판에는 지난 4월 1차 북·중 정상회담 사진이 걸리기 전만 해도 광명성 4호 위성과 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 등 군사 무기를 뽐내는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북한이 드러내고 싶은 메시지를 사진으로 보여 주는 게시판 성격에 비춰 볼 때 한국과 미국 지도자의 사진들이 처음으로 걸린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남·북 관련 사진은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장면부터 함께 산책하는 장면, 부부 동반 기념사진이 걸렸다. 아울러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세기의 악수 장면, 단독 회담부터 공동성명 서명 장면, 산책 사진들도 게시됐다. 주중 북한대사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산책하는 사진에 “트럼프 대통령과 산책을 하며 친교를 두터이 하는 김정은 동지”라는 설명도 달았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지난 3월, 5월, 6월 세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하는 사진은 게시판의 정중앙을 차지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7일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한 것과 동시에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조문했다. 특히 마오쩌둥의 아들로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마오안잉의 묘소에 특별히 화환을 놓고 추모해, 중국에 대한 각별한 예우를 표시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김정은이 조문화환 보낸 조선족 항일열사 리민은 누구

    김정은이 조문화환 보낸 조선족 항일열사 리민은 누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6일 조선족 항일 투사인 리민(李敏)의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리민은 조선족 여성으로 중국에서 헤이룽장성 정협 부주석이라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조선족으로 전국 정협 부주석이라는 최고 지위에 오른 조남기 장군의 지난 6월 부고에는 애도를 표하지 않았던 북한이 리민에게 각별한 조의를 보낸 것은 김일성 주석과의 인연 때문으로 분석된다.  1924년생인 리민은 지난 21일 심장발작으로 9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남편은 헤이룽장성 성장이었던 천레이(陳雷)로 2006년 그의 사망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문을 보내고 선양 주재 북한 총영사가 장례에 참석했다.  천레이와 리민의 결혼은 반대가 많았는데 김일성 주석의 지지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석의 서거 당시 외국인 조문객은 받지 않았지만 천레이와 리민 부부의 조문은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지시로 이뤄졌다. 당시 천레이는 “우리가 왜 외국인인가. 형님이 서거하셨는데 왜 조문하러 가지 못하느냐”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석이 1930년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옥살이한 뒤 도주해 한 때 머물렀던 곳도 천 전 성장의 고향인 하얼빈이었다. 김 주석은 1964년 중국 방문 당시 하얼빈을 찾아 천 전 성장을 만나기도 했다.  리민은 반일(反日) 가풍이 강한 가정에서 자라 1936년 12살의 나이에 항일부대에 참가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잃었다. 항일전쟁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리민의 가장 큰 공적은 중국 교과서의 항일전쟁 역사 수정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에서는 1937년 7월 베이징에서 일어난 루거우차오 사건을 항일전쟁의 발발로 삼았다. 루거우차오 사건은 베이징 근교에서 중국 제29군의 발포 때문에 행방 불명자가 생겼다는 구실로 일본군이 주력 부대를 출동시켜 루거우차오를 점령한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리민은 1931년 중국 동베이 지역에서 일어난 9·18사변이 항일전쟁의 시작으로 여기지지 않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10년 동안 교과서 수정 운동을 벌였다. 만주 사변으로도 불리는 9·18사변은 일본 관동군이 1931년 만주를 중국 침략을 위한 전쟁의 병참 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고자 벌인 침략 전쟁을 말한다.  지난해 중국 교육부는 리민의 노력에 소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의 중국 항일전쟁 역사를 8년에서 14년으로 고치라는 공식 통지를 발송했다. 리민은 누구보다 교과서 수정에 기뻐했다. 그녀의 아들인 천샤오펑(陳曉峰)도 황해도 광산 개발에 투자하는 등 북한과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김정은 미군 유해 송환하고 직접 찾아간 곳은

    김정은 미군 유해 송환하고 직접 찾아간 곳은

    “이 땅의 산천초목에는 중국동지들의 붉은 피가 스며 있고 광활한 중국의 대지에는 조선혁명가들의 넋이 잠들고 있다. 조(북)·중 관계는 결코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피와 생명을 바쳐가며 맺어진 전투적 우의와 진실한 신뢰로 굳게 결합 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하고 공고한 친선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의 유해 55구가 고향으로 출발한 27일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찾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위와 같이 말하며 중국을 형제의 나라이자 위대한 벗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중국 공산당 정부를 건립한 마오쩌둥의 아들로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마오안잉의 묘소에 특별히 화환을 놓고 추모했다.  정전 협정 체결 65주년인 27일은 북한의 휴무일로 거리 곳곳에는 국기로 가득했다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 평양 주재기자는 28일 전했다. 국기 외에도 ‘혁명강군불패’ ‘경축 65주년’ ‘위대한 승리 7·27’ 등의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인민경제의 주체성’ ‘전 역량을 기여해서 7차 당 대회를 관철하자’ 등과 같은 경제건설 노선을 강조한 표어도 눈에 띄었다.  뤼차오(呂超) 중국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소장은 환구시보를 통해 “미군 유해 송환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 약속을 행동에 옮긴 것으로 미국도 마땅히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 줄 때가 됐다”며 “미군 유해 송환은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했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지 말고 상응하는 성의를 미국이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미군 유해 송환과 중국군 묘지 참배를 같은 날에 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등거리외교를 펼쳤던 김일성 주석의 외교술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보여준다는 평가를 낳았다. 배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개 도살을 멈춰주세요”…폭염 속 진행된 개 식용 반대 퍼포먼스

    “개 도살을 멈춰주세요”…폭염 속 진행된 개 식용 반대 퍼포먼스

    28일 오후 동물권 단체 케어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 식용 반대를 요구하는 ‘철창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날 케어는 가로 76㎝·세로 47㎝ 크기의 철창에 사람이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서울 낮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간 폭염 상황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온몸에 식용 물감으로 피를 두르고, 직접 좁은 철장에 들어가 죽어가는 개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박소연 대표는 “한 사람이 들어가도 힘든 공간 속에 개 6~7마리를 넣어 이동시킨다”면서 “개 식용 산업 중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인 철장 안에 들어간 고통들을 재연해내기 위해서 해당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철창 뒤로는 케어 회원 50여 명이 ‘STOP THE KILLING’(스탑 더 킬링) 피켓을 들고 개 도살 금지를 요구했다. 박소연 대표는 “동물의 도살을 명시적으로 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법이 하루빨리 통과되도록 국민의 많은 지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관광객 앞에서 멧돼지 사냥하는 표범

    관광객 앞에서 멧돼지 사냥하는 표범

    야생 표범이 완벽한 위장술로 멧돼지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팀바바티 자연보호구역(Timbavati Private Nature Reserve)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표범 한 마리가 4마리의 멧돼지 무리를 사냥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멧돼지들은 주변을 살피며 흙더미 굴에서 조심조심 나온다. 멧돼지 무리 뒤로 표범이 얼굴을 살짝 내밀며 적절한 사냥 순간을 살피지만, 멧돼지들은 표범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멧돼지들이 안심하며 밖으로 줄줄이 나오는 순간, 표범은 멧돼지 무리에 달려든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멧돼지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지만 표범은 멧돼지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 표범은 몸부림치는 멧돼지의 목덜미를 꽉 물며 숨통을 끊는다. 당시 사파리 투어를 진행 중이던 현장안내원 채드 코킹(Chad Cocking, 35)은 표범의 사냥 순간을 눈앞에서 포착한 후 영상에 담았다. 채드는 “표범의 사냥 순간을 그렇게 극적으로 목격할 줄은 몰랐다”면서 “표범은 처음엔 굴에서 두 번째로 나온 멧돼지를 사냥하려고 했지만 순간 마음을 바꿔 마지막 멧돼지를 사냥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관광객들은 표범의 사냥을 보고 놀라워했지만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사냥을 보는 것이 슬플 수 있지만 포식자들은 사냥해서 먹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Daniel Kalemasi/유튜브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100초 인터뷰] 평범한 두 여자의 반란 ‘네 발로 지하철 이용하기’

    [100초 인터뷰] 평범한 두 여자의 반란 ‘네 발로 지하철 이용하기’

    지하철마다 제각각인 휠체어 전용 칸 위치 담은 안내지도 만드는 두 여성“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발 벗고 나서는 것’뿐입니다.”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일조하고 싶다는 평범한 두 여성이 있다. ‘마마쁠’이라는 독특한 팀 이름도 갖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발품을 파는 것 밖에 없다”는 이예슬(26)씨와 박소영(26)씨가 그 주인공이다. “사람들이 따뜻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밝힌 두 사람을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만났다. 먼저 ‘마마쁠’이란 이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란다. 이예슬씨는 “저희 두 사람이 혼자일 때는 불운이 빈번하게 따르는 편인데, 이상하게 둘이 있으면 불운이 일어나지 않는다”라며 웃었다. ‘불운의 평범한 두 여자가 만나 플러스 효과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홍보마케팅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이예슬씨와 대학원 진학을 앞둔 박소영씨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지하철 이용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통 약자들을 떠올렸다. 휠체어 전용 칸 위치가 지하철 호선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하여 휠체어와 유모차 이용객들이 휠체어 전용 칸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휠체어 전용 칸 안내지도’를 제작, 역사 승강기에 붙인다는 계획을 세웠다.이들의 프로젝트는 ‘네 발로 지하철 이용하기’다. 사회복지사 활동 경험이 있는 박소영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박씨는 “장애인분들과 동행하는 일이 잦았는데, 지하철 호선마다 휠체어 전용 칸 위치가 달라 불편함을 느꼈다. 안내지도가 있으면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승객들 역시 편리할 것 같아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목표가 정해지자 두 사람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1호선부터 9호선, 분당선 등 수도권 지하철을 직접 발로 뛰며 휠체어 전용 칸 위치를 조사했다. 동시에 지하철 안내지도 제작에 필요한 비용 마련을 위해 스토리펀딩을 진행했다. 다행히 두 사람 취지에 공감한 많은 사람이 뜻을 함께했다. 디자인은 미술을 전공한 친구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제작된 안내 지도를 과연 지하철역 승강장에 부착할 수 있을지가 여전히 미지수이다. 이예슬씨는 해당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관계 기관 설득에 노력하겠다”면서도 “허가가 나지 않더라도 장애인 전용 칸 안내지도 제작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며, 안내지도는 장애인 협회나 부모 모임 카페 등을 통해 공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목표도 세우고 있다. 이예슬씨는 “모든 사람들이 따뜻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저희가 영향력이나 힘은 없지만, 저희 이름처럼 두 발 벗고 나서서 할 수 있는 많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소영씨는 “뜻이 있는 분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언제든 열려 있으니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며 동참을 부탁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묻던 시대 ‘회색인’으로 자유 찾은 최인훈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묻던 시대 ‘회색인’으로 자유 찾은 최인훈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이 지난 23일 타계했다. 첫 문장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만으로도 시대의 분위기를 오롯이 드러낸 ‘광장’은 남도 북도, 좌도 우도 선택할 수 없었던 ‘이명준’의 고뇌를 통해 지금도 유효한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선생은 등단 이후 소설, 희곡, 평론, 에세이 등을 시시때때로 발표한 성실한 작가였고, 서울예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자취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선생은 오랫동안 ‘광장’의 후광에 가려 있었다. ‘광장’도 그렇지만 ‘회색인’이야말로 ‘인간’ 최인훈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배경은 4·19 직전, 정확하게는 1958년 가을부터 1959년 여름까지로, 소설 쓰는 청년 독고준은 실상 작가 자신이다. 독고준의 주변을 맴도는 김학은 급진적인 행동을 통해서라도 사회 변혁을 이뤄 내야 한다고 믿는 정치학도다. 그런 김학의 열정이 독고준은 버겁기만 하다. 김학은 ‘갇힌 세대’ 동인으로 독고준을 끌어들이려 하지만, 그에게 ‘갇힌 세대’는 제호 그대로 사방이 꽉 막힌 공간일 뿐이다. 현호성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헌신짝보다 못하고, 권력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는 누구보다 빠르다. 뭐든 극단으로 치닫는 주변 인물들을 보며 독고준은 몸서리친다. 공상과 상상을 오가는 사이 독고준은 자신이 시대적 이데올로기, 더더욱 현실로부터 소외된 인간임을 발견한다. 선생은 ‘회색인’을 두고 “통과의례 규정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어떤 원시인 젊은이의 공방(空房)의 기록”이라고 회상한 바 있는데, 그 원시인 젊은이가 바로 독고준이자 최인훈인 셈이다. 독고준은 경계에 선 인물이었다. 이데올로기의 덫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끝없이 사유의 거리를 활보했다. 외로웠지만 자유로웠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지만, 당시 ‘회색인’은 독고준 혹은 최인훈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경험에 이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끝이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양 극단의 머리를 차지한 사람들을 빼고는, 이 땅을 살아간 모든 이들이 회색인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충돌하는 세계사에서 우리는 주연이 아닌 한낱 엑스트라”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시대는 암울했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물음이 오히려 정당한 시절이었다. 그 안에 갇힌 독고준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은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주의가 횡행하던 시절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극단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해야만 했던 시대정신을 위배하고 독고준은 스스로에게 침잠한다. 출구가 어디인지, 아드리아네의 실이 무엇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에 그는 낡은 단어지만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일 수밖에 없었던 ‘자유’를 찾아 나선다. 시대에 대한 냉소라고 하기보다 초월, 아니 범인(凡人)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일 터.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침잠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 혹은 형태가 무엇인지를 묻는, 어쩌면 최인훈은 20세기 중반을 살면서 21세기적 가치관을 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광장’의 이명준이, ‘회색인’의 독고준이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을 생각한다. 선생이 명쾌하게 말하지 않고 떠나셨으니 다시 작품을 통해 궁구할 뿐이다. 이데올로기가 충돌할 리 없는 그곳에서 선생이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교도통신 “한·일, DJ·오부치 선언 20주년 새 공동선언 발표 논의”

    한국과 일본 정부가 오는 10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26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5월 한국에서 발족된 ‘한·일 문화·인적교류TF(태스크포스)’와 일본에서 곧 출범할 ‘한·일 문화교류 전문가 모임’의 제언을 바탕으로 양국 정부가 새로운 공동선언 채택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국 측이 새로운 공동선언 작성을 계속 요청해 왔으며, 이에 일본 정부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의 공조를 중시하고 있어 공동선언 발표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도통신은 또 “아베 신조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을 요청하고 있는데, 만약 방일이 성사되면 두 정상이 공동선언을 함께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1998년 10월 8일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두 나라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문서화하는 등 전체 11개 항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다양한 변수들이 있어 새로운 공동선언의 성사 여부는 전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교도통신은 “(위안부 합의 등)역사 문제에 대한 양국 간 인식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동선언이 실제로 추진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했다.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해 총리직을 계속 맡게될 지 여부도 단언할 수 없는 가운데, 3연임이 되더라도 임기 초 자국내 정치 사정 등이 감안될 공산이 크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불길 속 두 아이 안고 창문에 매달린 ‘슈퍼맨’ 아빠

    불길 속 두 아이 안고 창문에 매달린 ‘슈퍼맨’ 아빠

    24일 오전 6시 23분쯤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의 한 빌라 4층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30대 가장의 침착한 대응으로 가족 모두가 무사히 구조됐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4층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고, A씨(36)가 불길을 피해 1살, 4살 자녀 2명을 안고 창문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A씨 부부는 불길이 번지지 않은 창문에서 아이들을 안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구조대는 에어 매트를 펼쳐놓고 3층으로 진입해 아이 2명을 우선 구조하고 A씨 부부까지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구조 과정에 A씨가 화상을 입고 아내(31)가 연기를 마셨으나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관계자는 “화염 속에서 1살, 4살 자녀 2명을 지켜낸 아빠의 부성애가 눈물겹다”면서 “비좁은 골목길 안쪽 언덕 위 빌라였으나 주민의 질서 있는 현장통제 협조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영상=경기 의정부소방서 제공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폭염 속 그늘막 쉼터에 등장한 양산의 정체

    폭염 속 그늘막 쉼터에 등장한 양산의 정체

    “너무 더우면, 누구나 쓰셔도 돼요” 서울 광화문 인근 횡단보도에 있는 그늘막 쉼터에는 이런 안내문과 양산이 꽂혀 있다. 해당 양산은 설치미술가 이효열 작가가 진행하는 ‘우리의 그늘’ 캠페인의 일환이다. 폭염 속 시민들에게 작은 그늘막이 되어주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다. 25일 오전 서울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이효열 작가는 “더운 여름, 시민들에게 작은 그늘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캠페인에 대해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그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소개하며 “폭염 속, 양산 하나로 안전하게 집까지 갈 수 있다면 더 시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목적을 설명했다. 양산은 주로 새벽 시간대에 설치된다. 날이 밝으면, 이 작가는 다시 현장을 찾아 비어 있는 양산 통을 채운다. 통에는 ‘너무 더우면, 누구나 양산 쓰셔도 돼요’와 ‘우리의 그늘’ 캠페인 안내문이 적혀 있다. 그가 준비한 양산 손잡이에는 ‘Yeol(열)’이라는 표시가 새겨져 있다. 다만, 이 작가가 양산을 사비로 직접 마련하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올여름 서울지역 100여 곳 설치를 목표로 하는 이 작가는 “시민들 반응이 좋을수록 양산이 많이 필요하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는 계속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많은 사람이 양산을 이용했으면 한다”며 “물론 이용 후 다시 원위치에 놓아 주면 좋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된다. 다른 그늘막 쉼터가 비어 있는 것을 보면, 거기에 꽂아 주시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덧붙였다. 그는 ‘우리의 그늘’ 캠페인에 대해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캠페인’이 되길 희망했다. 이 작가는 “여분의 양산이 있는 분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비어 있는 통에 양산을 놓고 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캠페인의 궁극적 목표를 전했다. 한편 이효열 작가는 겨울이면 ‘네모난 봄’ 캠페인을 진행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고 있다. 그는 2014년 겨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서울 도심 버스정류장 의자에 노란 방석을 설치하고 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1945년 ‘소련 신탁통치 주장’ 가짜뉴스에 통일정부 수립 물거품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1945년 ‘소련 신탁통치 주장’ 가짜뉴스에 통일정부 수립 물거품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파쇼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데 성명 석 자가 반파쇼의 위원장이 되고, 나는 총동원 조직을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인데 성명 석 자가 위원회의 상무가 되어 있다. 이만 정도는 참을 수 있지만….”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는 1946년 1월 5일자 서울신문에 개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결의한 신탁통치 문제를 놓고 극우와 극좌 진영이 벌인 헤게모니 싸움에서 양쪽이 그의 이름을 멋대로 도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홍명희는 당시 서울신문 고문이었다. 당시 한민당과 이승만이 주도하던 극우 진영은 김구의 임시정부를 앞세워 ‘반탁’ 대중운동에 총력전을 펴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1945년 12월 28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이하 총동원)를 결성해 대중운동으로 미군정 권력을 이양받으려 했다. 공산당, 인민당 등 좌익도 30일 반파쇼공동투쟁위원회(이하 반파쇼)를 결성해 ‘반탁’의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양쪽에 일제 병탄기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추구한 신간회를 주도했던 홍명희는 명분 확보와 외연 확장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반파쇼 측은 돌연 반탁의 기치를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 지지’(찬탁)로 바꿨다. 반파쇼는 1월 3일 개최한 ‘민족통일자주독립촉성시민대회’를 애초 공지한 것과 달리 외상회의 결정 지지 행사로 진행했다. 본의 아니게 ‘반탁’과 ‘찬탁’에 양다리를 걸치게 된 홍명희로서는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탁통치는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밝힌 바 있었다. 좌익의 시민대회 이후 국론은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정국 주도권은 극좌와 극우의 손으로 넘어갔다. 해방 후 가장 강력했던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 혹은 좌우합작 추진 세력은 민주통일전선 기치를 꺼내기조차 힘들었다. 이들은 우선 통일된 임시정부를 세운 뒤 신탁통치를 거부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했지만, 흥분한 대중들에게 먹혀들 리 만무였다. 한민당의 공식 입장과 달리 ‘반탁 운동’에 회의적이었던 수석총무 송진우가 12월 30일 암살당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론 분열에 이어 분단, 나아가 골육상잔의 길로 내몬 찬탁·반탁의 충돌은 어이없게도 한 토막 ‘가짜뉴스’에서 비롯됐다. 1945년 12월 27일 석간신문들은 합동통신을 받아 미국 번스 국무장관이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훈령 한 토막을 보도했다. “번스가 (3국 외상회담) 출발 당시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이것을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소련이 한반도 38도선 이북을 집어삼키기 위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자주독립은 어디로, 독립·신탁론 대립”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 서울신문은 “아(조선) 독립 문제 표면화” “미, 즉시 실현 주장”이라는 제목 아래 훈령 내용이라고 전해진 것만 간단히 보도했다. 출처도 애매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이 기사는 미군 태평양사령부가 발행하는 태평양판 성조지에 보도된 것을 합동통신이 전재한 것으로 취재원도 없었다. 훈령 내용 역시 그동안 미 국무부가 밝힌 입장과 전혀 달랐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내용도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그러나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28일자에서 1면 전부를 ‘탁치’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채웠다. 29일 미 군정청에서 외상회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한국에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최장 5년간 신탁통치를 하되 미국과 소련 대표로 구성되는 공동회의가 임시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신탁통치만 앞세워 간단히 처리했고, 나머지 지면은 ‘반탁 운동’으로 채웠다. “한국은 신탁통치를 받게 되겠지만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 기간은 최장 5년”이라고 보도한 서울신문과 대조를 이뤘다. 신탁통치를 한사코 밀어붙인 것은 미국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전후 식민지 신탁통치 구상을 처음 밝힌 이래 1943년 영국의 앤서니 이든 총리와의 워싱턴 회담에 이어 11월 스탈린과의 테헤란 회담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공식화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선 ‘신탁통치 20년’ 안을 제시했다. 루스벨트에 이은 트루먼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10월 20일 존 카트 빈센트 미 국무부 극동국장은 외교정책협의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조선은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국은 따라서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조선에서 반탁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빈센트는 1월 16일 “조선 임시정부가 통일적인 통치와 치안의 능력을 보여 줄 때에는 탁치를 실현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연합 3국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그날 동아일보는 소련이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소련이 한국에서 ‘신탁통치의 원흉’으로 악마화되자 스탈린은 1월 23일 윌리엄 해리먼 주소련 미국대사를 불러 ‘회담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통보했다. 24일 관영 타스통신은 회담 과정을 소상히 보도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다짜고짜 “근거 없는 타스통신 보도”라고 비난했다(1월 26일자). 27일 미 국무부는 “타스통신 보도가 맞다”고 확인했다. 가짜뉴스임이 드러났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친일파들은 즉각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세력의 일원이 됐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친일 매판의 과거를 세탁하고 ‘민족지’로 분식했다.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적 염원은 분단 정부 건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이승만과 한민당의 꿈은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대성공은 이후 가짜뉴스의 거대한 뿌리가 됐다. 그 대상이 소련과 좌익에서 북한과 민주세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 관련 뉴스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마따나 “백지수표”처럼 이용됐다. 아무렇게나 쓰고 말해도 되는 대상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 조선일보 25일자 사설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남파간첩 배후설이다. 1986년 11월 16일자엔 ‘세계적 특종’이라며 1면 톱으로 김일성 주석 암살 의혹을 보도했다. 김 주석은 다음날 조선중앙TV에 나타났다. 이후 성혜림 망명설,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신병설, 평양 계엄령 선포설, 조명록 전 군총정치국장 쿠데타설 등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 기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는 북한의 인간어뢰설을 제기해 세계적인 비웃음을 사더니, 2012년엔 김정남이 일본 도쿄신문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필요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는 기사를 창작했다. 2018년 1월 북한 공연단을 이끌고 남쪽을 방문한 현송월은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음란물 제작 취급 혐의로 공개 총살’당한 인물이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할 때 방문 취재기자들에게 1인당 1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가짜뉴스에 청와대 대변인이 발끈했지만, 이런 전례를 생각하면 특별한 ‘가짜’도 아니었다. ‘해방일기’의 저자 김기협 교수의 1945년 12월 27일 ‘일기’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동아일보가 아직 살아 있는 신문이라면 해마다 12월 27일에는 1945년 12월 27일 내보낸 이 기사에 대한 사과문과 반성문을 실어야 한다. 언론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례로 이 기사는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극악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짜뉴스의 거대한 뿌리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가짜뉴스를 잘 활용해 최고의 영향력을 구가하는 매체가 달라졌을 뿐이다. 혹자는 법적 처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북한 관련 오보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눈 밝은 시민들의 양심과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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