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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리 사퇴 방글라, 과도정부 착수… ‘노벨상’ 유누스 수반으로

    총리 사퇴 방글라, 과도정부 착수… ‘노벨상’ 유누스 수반으로

    대통령, 野 등과 회동 후 선거 약속가택연금 지도자·시위대 전원 석방유누스 “해방의 날” 직책 수용 뜻인도로 탈출한 총리 英으로 망명설 셰이크 하시나(77) 방글라데시 총리가 퇴진 시위를 이기지 못하고 인도로 피신했지만 약탈과 방화로 인한 혼돈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실권을 가진 총리가 물러나면서 국정을 이어받은 모하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은 과도정부 구성을 논의하고 시위 지도부가 요구한 무함마드 유누스(84)를 최고 고문으로 옹립하는 등 격해진 민심을 달랠 방안을 내놓고 있다. AP통신은 6일(현지시간) 하시나 총리의 사임 발표 뒤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와 그의 퇴진을 반겼지만 일부는 폭력적으로 변해 정부 건물을 공격하고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과격분자들은 친정부 성향 TV 방송국들을 파괴하고 여당 인사가 운영하는 호텔에 불을 질렀다. 하시나 총리의 아버지이자 방글라데시 독립 영웅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1920~1975) 초대 대통령의 동상도 무너뜨렸다. 사임 발표 뒤에도 40명 넘는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하부딘 대통령은 군부 및 야당 지도자와 긴급 회의를 열어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최대한 빨리 차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야당 지도자인 칼레다 지아(78) 전 총리를 비롯해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이들을 모두 석방하기로 했다. 지아 전 총리는 하시나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로 2018년 부패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고 가택연금 생활을 해 왔다.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빈곤퇴치 운동가인 유누스를 과도정부 수반에 앉혀야 한다는 학생 시위대 지도부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치료차 프랑스에 있는 유누스도 이날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우리는 또 다른 해방의 날을 맞고 있다”며 직책 수용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젊은이들이 총탄에 맞섰고 부모와 친구들이 동참했으며 그 규모가 전국적으로 수천만 명에 달해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시위 지도자들을 구타하고 투옥해 학생들을 낙담시키고 분열시키려는 정부의 일반적인 전술은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유누스는 최대한 빨리 귀국해 과도정부를 이끌고 총선을 관리할 계획이다. 전날 군용기로 탈출한 하시나 총리는 수도 뉴델리에서 40㎞가량 떨어진 우타르프라데시주 가지아바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그는 인도 정부의 도움을 거절하고 영국에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1975년 군사 쿠데타 때 아버지와 가족 대부분이 처형됐지만 하시나 총리와 여동생은 해외여행 중이어서 살아남았다. 1981년 고국으로 돌아와 현 집권당인 아와미연맹(AL)을 이끌며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1990년 군사 정권이 붕괴한 뒤 1996~2001년 총리를 지냈고, 2009년 재집권해 15년째 집권했다.하시나 총리는 노동집약 산업을 집중 육성해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이후 방글라데시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6%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정적과 야권을 탄압하면서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 1월 총선이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여 반정부 민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6월 대법원이 독립전쟁 후손에 대해 공무원 채용 30% 할당제를 부활하는 판결을 내자 반감이 폭발했다. 지난달 15일 수도 다카에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었고 이튿날 아부 사예드(25)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분노가 전국으로 번졌다. 시위대가 총리 탄핵을 외치고 군부도 이에 동조해 압박하자 하시나 총리는 망명을 택했다. 그가 예기치 않게 정계를 떠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미국과 인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새로운 도전이 생겨났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이날 진단했다. 최악의 실업률과 부정부패, 기후변화 등으로 신음하는 방글라데시로서는 당장 경제적 지원을 끌어낼 수 있는 중국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누가 돼도 워싱턴보다 베이징을 선호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 ‘포상금 10억’ 金 따고 돈방석 앉은 홍콩 선수…‘이 논란’에 돌연 은퇴

    ‘포상금 10억’ 金 따고 돈방석 앉은 홍콩 선수…‘이 논란’에 돌연 은퇴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 홍콩에 첫 금메달을 선물한 펜싱 선수 비비안 콩이 과거 홍콩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중국을 옹호하는 논문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비비안 콩은 지난달 27일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그가 3년 전에 쓴 석사학위 논문이 지난주부터 온라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2021년 중국 인민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 제출된 이 논문에서 콩은 ‘우산 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비난하면서 중국 당국의 탄압과 국가보안법 제정에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에는 당시 시위대가 금융중심가인 센트럴을 점령한 것을 ‘혼란과 불법 행위’로 규정하며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비난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2020년 제정된 홍콩국가보안법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법안이 시행된 이후 홍콩 민주진영을 대표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구속·기소되거나 해외로 도피했고 ‘친중 애국자’만 홍콩 입법회(의회) 등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콩의 논문 내용이 알려지자 네이선 로 전 입법회(의회) 의원 등 민주 진영 인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 진영 인사들뿐만 아니라 홍콩 팬들 상당수도 논문이 공개된 이후 콩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뒤 영국으로 망명한 네이선 로는 “콩의 승리를 축하한 것이 큰 실수였다”며 그의 정치적 입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콩은 지난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20여년간 운동에 전념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고 격려하고 지지해 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3번째 올림픽 참가를 마무리한 뒤 펜싱선수로서의 삶에 작별 인사를 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욱 성장해 홍콩에 보답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며 자선기금 설립 등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논문 논란 등 구체적인 은퇴 결정 사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매체들도 콩의 은퇴 소식은 보도했지만 논문 논란 등은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사설] 증오와 가짜뉴스 뒤엉킨 英 폭력사태, 남 일 아니다

    [사설] 증오와 가짜뉴스 뒤엉킨 英 폭력사태, 남 일 아니다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이 무슬림이라는 거짓 정보가 발단이 된 영국의 폭력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범인을 영국인이라고 밝히고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법원이 미성년자 범인의 신원을 공개했는데도 시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양상이다. 영국 전역에서 시위대가 벽돌과 유리병을 던지고 상점을 약탈하며 경찰을 폭행해 200명 이상이 체포됐다. 13년 만에 최악의 폭력 시위로 번진 것이다. 지난달 29일 리버풀 인근 사우스포트의 어린이 댄스 교실에 침입한 범인이 흉기를 휘둘러 어린이 3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사건이 발단이었다. 17세 피의자가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SNS에 퍼졌다. 사우스포트와 런던 등지에서 반이슬람, 반이민을 주장하는 극우파의 폭력 시위가 촉발됐다. 영국 폭력 사태에서 주목되는 것은 ‘범인은 무슬림’이라는 거짓 정보를 누가 생산했느냐다. 이슬람과 아프리카·중동의 이민·난민을 배격하는 극우파의 소행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러시아를 배후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폭력 시위가 확산하는 것은 뿌리 깊은 영국 사회의 인종차별 때문으로 보인다. 2011년 토트넘에서 흑인 청년이 경찰의 검문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영국 전역에서 폭력과 방화, 약탈 사태가 일어나 홍역을 치렀다. 영국 사태가 남의 일만이 아닌 것은 공동체의 분열과 대립, 증오가 우리 사회에서도 만만치 않게 목격되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 보고서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정치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했다. 진보와 보수 갈등은 92.3%가 심각하다고 봤다. 빈부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화 이후 진영 대립은 커지고 외국인 노동자 증가는 불가피해졌다. 내 편 아닌 남을 배척하는 풍조에 가짜 정보를 퍼트리는 극단 세력, SNS라는 삼박자를 갖췄다. 영국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셜미디어 회사나 정부의 치밀한 선제적 대책이 필요해졌음을 절감한다.
  • 방글라데시 민주화 시위서 최소 91명 사망

    방글라데시 민주화 시위서 최소 91명 사망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수만 명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면서 4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충돌이 일어나 최소 91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당했다. 최소 13명의 경찰관을 포함한 사망자 수는 방글라데시 최근 역사상 어느 시위에서도 하루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로는 가장 많은 숫자이며, 학생들이 공무원 할당제 폐지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7월 19일에 보고된 67명의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정부는 현지시간 4일 오후 6시부터 무기한 전국 통행금지령을 선포했는데, 이는 지난달 시작된 현재 시위에서 처음으로 취한 조치다. 또한 5일부터 3일간의 공휴일을 발표했다. 이러한 폭동으로 인해 정부는 인터넷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었고, 이는 하시나의 20년 집권 기간 중 가장 큰 시험이 되었으며, 그녀는 주요 야당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선거를 보이콧한 가운데 4선에 성공했다. 하시나 총리의 비판가들과 인권 단체들은 그녀의 정부가 시위대를 상대로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녀와 그녀의 장관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날 시위대가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했고, 학생 시위대는 정부 사임을 요구하며 비협조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폭력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하시나 정부는 육군, 해군, 공군, 경찰 및 기타 기관의 수장들이 참석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 후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학생이 아니라 국가를 불안정화하려는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다. 1억 7천만 명의 국민이 사는 나라에서 폭력이 일어나면서 경찰서와 여당 사무실이 공격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북서쪽 시라즈간지 지구에서 경찰관 13명이 구타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지구에서는 의원 2명의 집에 불이 나서 9명이 사망했다. 경찰과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수도 다카의 여러 곳에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져 학생 2명과 여당 대표를 포함한 최소 1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인도 외무부는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자국민들에게 방글라데시로 여행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 [사설] 野 독주 속 ‘한동훈 체제’, 정치복원 시험대 올랐다

    [사설] 野 독주 속 ‘한동훈 체제’, 정치복원 시험대 올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하고 ‘한동훈호’의 닻을 올렸다. 친윤의 정점식 의원이 물러난 새 정책위의장 자리에 계파색이 약한 4선의 김상훈 의원을 내정했고 오늘은 지명직 최고위원에 김종혁 전 조직부총장을 지명한다.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 9명 중 친한동훈계 5명이 포진함으로써 한 대표 주도의 당무 운영이 가능해졌다. 전당대회에서 보여 준 전례 없는 비방전과 분열을 딛고 ‘한동훈 체제’는 대표를 중심으로 당내 상처를 봉합하고 결속과 단결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 가는 파트너로서 여당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탄핵과 특검밖에 모르는 거대 야당과는 차별화한 자세로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는 200석 가까운 야당 연합에 휘둘려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식물 상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비록 108석의 소수당이지만 국민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정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야당의 폭주에 눌리지 않고 불필요한 정쟁에 휘말리지 않으며 민생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국회다. 국회가 제자리를 찾는 데 여당 주도의 단호한 추진력이 절실하다. 당정이 소통의 폭을 넓혀 다양한 정책을 생산해야 한다. 무엇보다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국민연금·교육·노동 개혁을 주도하고 규제를 풀어 투자와 신기술, 서비스를 창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오는 18일 전당대회에서 대표 재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전 대표와 어떻게든 정치 복원의 물꼬를 터야 한다. 야당의 거친 독주 속에 해법이 보이지 않게 꽉 막힌 정국을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 뚫어 낸다면 정치 신인인 한 대표의 정치 역량은 두 배로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당리당략과 정치공세에 매몰된 야당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한 대표의 신선한 정치력을 기대해 본다.
  • [김형오 칼럼] ‘이재명의 결단’을 기대한다

    [김형오 칼럼] ‘이재명의 결단’을 기대한다

    이재명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제왕적 대표다. 중반을 넘어선 당대표 경선에서 90%를 넘나드는 득표를 이어 가고 있다. 주변 인물들의 충성과 아부는 노골적이다. 불과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대선후보를 거쳐 당을 장악하고 대표를 연임하는 정치인은 우리 정치사에 일찍이 없었다. 민주화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당에서 전개되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일극체제, 사당화의 길로 가고 있다.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당의 아버지들’도 이런 압도적인 당 장악력을 갖지 못했다. 정치는 대중의 지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전쟁터에서나 씀 직한 유니폼화된 정당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더이상 확장할 수 없다. 이를 잘 아는 사람이 그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맹목적으로 당을 이끌 순 없을 것이다. 몰상식 야만의 정치에 국회 질식 요즘 정치를 보노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정치가 어찌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대결과 투쟁의 공간으로 추락했나. 국회가 어찌 국민의 합의점을 찾는 공론의 장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나. 민심·민주·국민을 말끝마다 들먹이면서 왜 반대로 가고 있나. 국가시스템이 어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망가지고 오남용될 수 있는가.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안은 탄핵소추 전 자진사퇴한 방송통신위원장 2명을 포함하면 모두 13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제왕적 ‘여의도 대통령’ 책임 커 지난 총선 지역구 민심(득표율)은 국민의힘 45.1% 대 민주당 50.5%로 5.4% 포인트 차였으나 의석수는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다수당이 됐다고 뭐든 맘대로 해도 되는가. 국회를 스스로 규율하던 합의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국회의장은 국회법 못지않게 여야 합의를 늘 존중해 왔다. 나도 2008년 개원 협상 때 여당의 절대적 우위(한나라당 153석, 민주당 81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여야 합의를 촉구하고 기다린 바가 있다. 우리 국회가 쌓아 온 민주화의 성과요, 전통이다. 13대 이후 20대 국회까지 30년 이상을 여야가 싸우고 대화하며 힘들게 만들어 놓은 불문율이 곧 여야 합의 정신이다. 민심을 반영하는 국회가 되기 위함이었다. 여야 합의 정신이 항상 지켜졌던 건 아니지만 그 정신은 살아있었다. 갈등의 클라이맥스에는 극적 타결로 감동을 주거나 다수결로 최종 표가름을 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였고 국회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이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망가지고 있다. 이런 관행은 20대 국회 말, 선거법 개정부터 깨지기 시작해 지난 21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와해된다. 극적 타결은커녕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다. 사진 찍히기용으로 몇 차례 앉았다간 곧바로 밀어붙인다. 이번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더 심하다. 힘과 머릿수와 뻔뻔함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가 온 것이다. 상대에 대해서는 증오와 복수심이 들끓는다. 하늘 아래 한 국민이라 할 수 없을 정도다. 팬덤이 앞장서고 몇몇 의원이 총대를 멘다. 안목과 소신, 합리적 판단은 공포와 겁박에 움츠러든다. 소수의 농단에 의해 다수결로 포장된 결과만 있을 뿐이다. 히틀러가 그랬고, 6·25 때 붉은 완장부대가 그랬다. 심지어 한일합방을 강제하던 친일 매국노도 그것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이라 우겼다. 여야 합의 정신이 사라진 퇴행의 국회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이재명 전 대표가 등장한 시점이 공교롭다. 팬덤정치, 선동정치, 포퓰리즘의 꼭짓점에 그가 서 있다. 당도, 국회도 한 방향으로 도구화되고 있다. 그 지향점은 어디인가. 대권을 향한 노골적인 길트기다.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다. 4개 법정에 서야 하는 당대표를 위한 방어벽이고 정치의 사법화다. 그야말로 총공세다. 민생과 관계없는 특별법과 특검, 탄핵을 수시로 남발한다. 수사검사를 탄핵발의하고 대통령 탄핵 청문회를 가동한다. 전엔 듣기 어려웠던 탄핵이라는 용어가 상시화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죽기살기 싸움하는 검투사가 득실거리는 콜로세움에 가깝다. 법을 빙자한 ‘떳떳한 몰염치’와 몰상식이 판을 친다. 헌법과 법률이 유린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자신과 나라 살리려면 달라져야 아직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있다. 극심한 갈등과 대결을 치유하고 정치 피로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자. 인공지능 시대 기술패권전쟁에서 살아남을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전 대표의 결단이 요구된다. ‘정쟁의 중단’과 ‘국회의 정상화’를 선언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길만이 갈라진 나라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여권이 변하지 않는데 우리가 왜 변한단 말인가 반문할지 모른다. 그래서 리더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소 표차로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지지율 30%를 넘기도 힘에 부치는 상태다. 국회의 일방 강행 입법에 대통령 거부권이 유일한 방어수단인 약체 정부 아닌가. 정책이든 개혁이든 뭐하나 제대로 추진할 수 없는 상태다. 정쟁 중단, 정치 정상화 결단을 오늘의 국회와 정치의 책임은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에게 있다. 그런데도 마치 강한 권력에 맞서는 양, 국회를 싸움터로 만들고 약자 코스프레를 한다. 이 전 대표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자신도 나라도 살 수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신을 버릴 때 살 수 있었다. 이 전 대표만이 야만의 기차를 세울 수 있고 이 난국을 풀 수 있다. 그의 ‘먹사니즘’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려면 ‘정쟁 중단과 정치 정상화’의 결단으로 입증해야 한다. 사법 리스크에 대한 공격적 방어나 당의 획일화는 자신도 나라도 그르치는 길이다. 진정 강력한 지도력은 내 편을 뛰어넘을 때 생기는 법이다.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야당 대표로서 한번이라도 제대로 양보하고 협조한 적이 있는가.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이 전 대표의 결단을 촉구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 시대 뒤처진 온갖 규제… 공들여 쌓은 산업 생태계 무너질라[월요인터뷰]

    시대 뒤처진 온갖 규제… 공들여 쌓은 산업 생태계 무너질라[월요인터뷰]

    1939년 9월 주권을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일곱 살 되던 해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족상잔의 비극이 터지면서 고향 서울을 떠나 경남 밀양과 부산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전국의 피란민들이 모여 판잣집을 쌓아 올린 부산 구덕산에 천막으로 지은 임시 중학교에 다니며 학업을 이어 갔다. 경기고 2학년 때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얼마후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고교 자퇴 3개월 만이었다. ‘직업이 경제단체 회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손경식(85)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겸 CJ그룹 회장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누구보다 왕성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그를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 회관에서 만났다.가장 큰 걱정은 개정 노조법수많은 교섭으로 경영 차질 우려불법 파업 책임조차 물을 수 없어대통령 거부권 요청할 정도로 절박공정거래 관련 제도 개선 시급기업 총수까지 형사처벌 너무 심해기업 전체 경쟁력까지 흔들리게 돼공정거래법 규제 축소·폐지로 가야격동의 세월 견딘 85세 현역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 다할 것합리성 중시 MZ들에게 기대 커존경하는 기업인 故이병철 회장법대생 시절 청년 손경식은 사법시험 공부에만 매진하는 친구들과 달리 일반 기업 취업으로 진로를 택했다. 법조인보다는 기업인의 활동무대가 훨씬 넓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1961년 한일은행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미국 대학원 유학을 거쳐 1968년 사돈어른인 고 이병철(1910~1987) 삼성 창업회장의 부름을 받고 이 회장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친누나 고 손복남 여사가 이 창업회장의 장남 고 이맹희 CJ명예회장의 부인이자 이재현(64) CJ그룹 회장의 모친이다. 당시는 이 창업회장이 한국비료공업을 국가에 헌납하고 다음 사업을 구상하던 때였다. 그런 그에게 손 회장은 미국 경영 환경에 밝고 영민한 ‘믿을맨’이었다. 손 회장은 이듬해 출범한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 설립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에서는 이때를 그의 56년 경영인 인생의 시발점으로 본다. 이후 삼성화재 부회장을 거쳐 1995년부터 지금까지 CJ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고 경총 회장직은 2018년 3월 취임해 올해 2월 4연임했다. 반평생을 전문 경영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을 묻자 1초의 고민도 없이 이병철 회장을 꼽았다. “이 회장님은 제가 가장 가까이서 모셔서 많이 아는데 참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1968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얼마 뒤 ‘삼성에 들어와서 일하라’는 회장님의 연락이 온 게 시작입니다. 삼성전자공업을 창업하기까지 사업의 답을 찾기 위해 직접 해외로 나가 현지 경영자들에게 사업성을 묻고 배우며 심사숙고하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죠. 이 회장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님이나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구신 초대 창업자 모두를 존경합니다.” -광복과 전쟁, 산업화, 민주화까지 한국 현대사를 직접 겪으셨다. 대한민국의 변화를 목도한 소회가 궁금하다. “시대마다 경제·산업 정책 특성이 있는데 우리가 처음 일어선 때가 1953년 휴전부터다. 그때 삼성이 제일제당, 제일모직을 만들고 이어 현대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다. LG는 금성사로 전자공업을 일으켰는데 그땐 우리가 기술이 없으니까 일본, 미국 가서 기술도 사오고 기술 배우려고 합작투자도 많이 하며 ‘기술 없는 설움’을 참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첨단 산업에서 우리 기술력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하는데 경직된 채용과 임금 구조, 과열된 노사관계, 시대에 뒤처진 각종 규제 등이 성장을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특유의 교육열에 힘입어 짧은 기간에 사람을 키워 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기술력이 곧 경제력인 상황 속에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 -한국 경영계를 대표하는 단체 수장으로 요즘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가.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법안이 22대 국회 들어 더욱 ‘개악’돼 다시 추진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가 아닌 자’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원청 사업자는 수백 개의 하청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또 기업의 투자 결정, 생산 라인 증설·이전과 같은 경영 판단에 반대하는 파업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반대로 기업은 불법 파업에 대한 노조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법이 통과된다면 우리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산업 경쟁력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야당이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구도인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제가 개인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내 정책의 키(주도권)를 쥐고 계신 분들을 따로 만나 설득하기도 하고, 경총을 비롯한 6개 경제단체가 공동으로 국회 청원에 나서기도 하며 야권에 경영계의 우려 목소리와 법 개정이 초래할 악영향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안이 통과된다면 또다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경영인 입장에서는 절박한 상황이다.” -올해 신년 간담회에서 ‘규제 개혁’을 경총의 주요 사업으로 꼽았다. 어떤 규제부터 고쳐야 하는가. “공정거래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우리 산업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다. 기업들의 투명성은 크게 개선됐고, 국민과 언론에 의한 사회적 감시 기능까지 대폭 확충됐음에도 아직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기업에 너무 엄격하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로 표현되는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가 대표적이다. 규제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동일인(기업 총수)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어 기업에 큰 부담이다. 꼭 필요한 내부 거래까지 위축되고,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기업 전체 경쟁력이 흔들리게 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사익편취 규제는 외국처럼 상법으로 규율하고 공정거래법상 규제는 축소 및 폐지하는 방향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한다.” -지난해 반도체를 비롯해 수출 부진으로 우리 경제가 어려웠다. 올해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수출이 회복되면서 우리 경제 성장률은 2% 중반 수준으로 높아지고 물가는 2% 정도 떨어질 것으로 본다. 다만 글로벌 경기 부진, 고금리 같은 불안 요인들이 여전해 우리 경제 회복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중국 경제와 미국 대선도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계에도 인맥이 탄탄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조 바이든(82) 미국 대통령이 나보다 나이가 아랜데 최근 인지·사고력 논란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재미있고 유머 감각이 있는 유쾌한 호인인데.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 때 워싱턴의 한 오찬회에서 만났었다. 내 명함을 보더니 ‘당신은 체어맨(회장)이어서 참 좋겠다. 나는 바이스(부)라서 아무런 힘도 없는데’라며 유머로 상대방을 편하게 대해 주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그보다 나이가 세 살 많지만 건강검진에서 인지력, 기억력, 청력 다 정상으로 나온다. 어깨가 좀 좋지 않아 예전만큼 공(골프)을 못 칠 뿐이다(웃음).”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우리 경제·산업의 영향은. “대선이 11월이니까 아직 좀 남지 않았나. 누가 더 우세하다 그런 걸 보긴 이른 시기 같다. 민주당 후보가 (바이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되면서 박빙 끝 근소한 차이의 승자가 나올 것으로 본다. 다만 트럼프가 재집권하는 경우 경제, 산업의 직접적인 변화보다 안보·대북 문제에 대한 우려를 개인적으로는 더 크게 하고 있다. 그분은 ‘주한미군 철수’, ‘김정은은 내 친구’ 이러시는데 우리에게는 단순히 경영계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불확실성 증대’가 될 수 있다.” -이른바 MZ세대가 사회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데 기업 경영에서도 변화를 느끼나. “그들이 앞으로 사회를 이끌고 나갈 사람들이다. 기대가 크다. 특히 노사관계에 있어 ‘MZ노조’, 즉 젊은 노조의 등장에 우리 노동운동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다. (최근 파업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노조도 MZ세대가 주축이라 기대했는데 조금은 실망했다. 하지만 MZ세대가 정파성보다는 합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결국 좋은 방향으로 갈 거라고 믿는다. 경영과 산업 현장에서 ‘합리성’을 넘어서는 가치는 없다.” -경영인 손경식이 아닌 자연인 손경식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은 없나. “언젠가 그런 때(은퇴)를 맞이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 기대수명도, 활동 연령도 더 길어지고 있지 않나. 내 좌우명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다. 지금 파리에서 올림픽을 하는데 제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1964년에도 (일본 도쿄) 올림픽이 열렸었다. 그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내용의 수필을 보며 공감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그 이후에는 사회봉사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쉬는 날은 어차피 오게 돼 있다.”
  • ‘숨’ ‘아름다운 얼굴’, 소설가 송기원 별세

    ‘숨’ ‘아름다운 얼굴’, 소설가 송기원 별세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숨’, ‘아름다운 얼굴’ 등의 작품을 남긴 작가 송기원이 별세했다. 77세. 1일 문학계에 따르면 전남 해남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송기원은 숙환으로 치료를 받아 오다 전날 오후 숨을 거뒀다. 1947년 전남 보성 출생인 고인은 1967년 고교 재학 당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각각 시와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실천문학사 주간으로 일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과의 인연도 있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을 맡아 현재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김이설 소설가를 발굴했다. 남긴 작품으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숨’(2021) 등이 있다. 빈소는 대전 유성구 선병원 장례식장 VIP 3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042)825-9494.
  •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소설로는 구도의 길 모색…작가 송기원 별세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소설로는 구도의 길 모색…작가 송기원 별세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숨’, ‘아름다운 얼굴’ 등의 작품을 남긴 작가 송기원이 별세했다. 77세. 1일 문학계에 따르면 전남 해남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송기원은 숙환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전날 오후 숨을 거뒀다. 1947년 전남 보성 출생인 고인은 1967년 고교 재학 당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현 중앙대 문창과)에 입학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소설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소설가 이호철이 구속되자 문인들과 함께 데모에 나섰다가 처음 구속됐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 ‘1990년’ 오봉옥 시인 필화사건 등 총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실천문학사의 주간으로 일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과의 인연도 있었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으로 현재는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김이설 소설가를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울신문 수도권 섹션인 ‘서울인’에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남긴 작품으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 ‘숨’(2021),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2006) 등이 있다. 자전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는 1996년 김영빈 감독의 연출로 박상민, 최민수 등이 출연한 ‘나에게 오라’라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생전에 고인은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과 제24회 동인문학상, 제9회 오영수문학상, 제6회 김동리문학상, 제11회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 명상, 수묵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빈소는 대전 유성구 선병원 장례식장 VIP 3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042)825-9494.
  • 58년 개띠 “지금이 가장 불안해” 70년 개띠 “언제 도태될지 몰라” 94년 개띠 “미래도 희망도 없어”

    58년 개띠 “지금이 가장 불안해” 70년 개띠 “언제 도태될지 몰라” 94년 개띠 “미래도 희망도 없어”

    “노년층 사회적 지지 강화 우선중장년엔 안정성 보장하는 정책청년은 공정한 고용환경 지원을” ‘58년 개띠’ A씨(66)는 언제까지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대 때는 ‘서울의 봄’과 5·18민주화운동을, 39세(199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50세(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격동의 현대사 속에 부침을 겪었지만 지금이 가장 불안하다. 재취업한 파트타임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쥐꼬리만 한 연금 외에는 노후 대책도 마땅히 없어서다. ‘70년 개띠’ 대기업 부장 B씨(54)는 최근 입사 동기 몇을 떠나보냈다. 임원의 꿈은 접었지만 언제 도태될지 가시방석이다. 내년에는 임금피크제다. ‘94년 개띠’ C씨(30)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고학력·고스펙에도 수년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같은 ‘개띠’지만 불안은 세대별로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불안 인식의 코호트 간 비교’ 보고서에서 이런 세대별 불안 양상을 짚었다. 2020년(3117명 대상), 2021년(1000명), 2022년(3575명) 설문·방문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코호트란 특정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처럼 통계상 인자를 공유하는 집단을 뜻한다. 베이비부머 핵심 세대인 1957~ 1967년생은 급속한 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지만 빈부 격차에 따른 불안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중추 역할(30~40세)을 할 때 외환위기로 거리로 내몰린 경험이 있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위기관리 불안’이 컸다. 노동시장 진입 시점에 외환위기, 장년기에 금융위기를 맞아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1968~1975년생은 일자리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조직 적응 불안이 컸다. 외환·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붕괴를 목도한 1970년대 중반 이전 출생 세대는 위험 관리와 거버넌스에 대한 불안을 크게 느꼈다. 반면 1976년생 이후부터는 생활 속 불안을 두드러지게 느꼈다. 1976~1985년생은 세대를 통틀어 사회적 박탈과 편법 사회에 대한 불안이 컸다. 차별 경험 수준에서 1위를 한 1986~2001년생은 어느 세대보다도 고학력·고스펙이지만 최악의 취업난에 미래 자체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었다. 돈·연줄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불안으로 이어졌다. 구혜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청년 코호트는 공정한 고용 환경, 중장년 코호트는 안정성 보장, 노년 코호트는 사회적 지지 강화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 세대별로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홍준표, 여야 극한대립 두고 “나라 운영 이래도 되나”

    홍준표, 여야 극한대립 두고 “나라 운영 이래도 되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29일 여야가 극한대립을 이어가는 데 대해 “나라 운영이 이래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홍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진영 논리에 묻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치 못하고 패거리 지어 매일 같이 서로 물어뜯는 일에만 집중하는 지금, 이대로 가도 되는가”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이승만의 건국 시대,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시대, YS(김영삼 전 대통령)·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시대를 넘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라며 “나라가 이래도 되는가”라고 했다. 홍 시장은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를 언급하며 우리나라가 ‘너트크래커(Nutcracker·호두 까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상황을 너트크래커 사이에 낀 호두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에 북핵 위기까지 안보 문제는 날로 엄중해지고 미중 패권 시대에 너트크래커가 되어 그 돌파구도 못 찾고 있는데 나라 운영이 이래도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홍 시장은 또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 오로지 소패권주의만 판치는 시대, 이 암울한 니전투구(泥戰鬪拘) 시대를 어찌 넘어가야 하는가”라고 했다.
  • [지방시대] 네 이름의 의미는

    [지방시대] 네 이름의 의미는

    출산을 앞뒀거나, 막 새 생명을 안은 부모가 특히 신경 쓰는 일 중 하나는 ‘이름 짓기’다. 어디 부모뿐이겠는가. 온 가족과 지인이 관심을 쏟는다. 결과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생년월일시’를 들고 작명소를 찾거나 스마트폰 작명 앱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용하다는 절에서 이름 몇 개를 턱 받아오고 친구는 소아과 대기명단에서 봤다며 유행하는 이름을 늘어놓는다. 예상되는 별명도 유추한다. ‘이름의 의미’를 모두 잘 알아서다. 그래서일까. 경남 창원시가 ‘이름’ 때문에 시끄럽다. 대표 축제인 ‘마산국화축제’가 ‘마산가고파국화축제’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져서다. 지난 22일 창원시의회에서 마산국화축제 명칭 변경 내용을 담은 창원시 축제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대안)이 가결됐다. 개정안 원안이 상임위원회에서 숙의 부족을 이유로 상정되지 않자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대안을 제출했고, 같은 당 의장이 이를 직권상정해 표결에 부친 결과다. 이로써 오는 10월 축제는 마산가고파국화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리게 됐다. 마산국화축제는 2000년 첫 개최 이후 마산국화박람회, 마산가고파국화축제, 가고파국화축제로 불리다 2019년 마산국화축제라는 이름으로 굳혀졌는데 다시 ‘가고파’를 사용하게 됐다. 갈등의 발단은 시조시인 이은상(1903~1982)을 향한 엇갈린 평가와 그가 지은 ‘가고파’다. 민주화단체 등은 이은상을 독재 부역자, 3·15로 대표되는 마산 도시 정체성을 정면으로 거스른 인물이라 말한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 앞서 ‘문인 유세단’을 조직해 전국을 돌며 이승만을 ‘국부’라 칭했다거나 3·15의거는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라고, 마산시민을 두고는 ‘과오의 연속은 이적의 결과가 된다’라고 말하며 의거를 폄하·왜곡했다는 게 예다. 박정희의 유신 선포 지지성명을 발표하거나 전두환에게 찬사를 보내고 국정자문위원을 지낸 일도 꺼낸다. 반면 이은상기념사업회는 평생을 문학과 민족정신 고취에 진력한 시인이라고 치켜세운다. 1960년 ‘마산사건이 촉발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한 답변을 두고 3·15 폄훼라 하는 건 억지라고 강조한다.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표현을 놓고는 “비상사태에서 데모가 확산하는 것은 과오의 연속으로 볼 수 있으므로, 지성적인 절제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발언”이라고 주장한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 국립서울현충원 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일도 언급한다. 이은상과 가고파를 둘러싼 논쟁은 처음이 아니다. 2005년 이은상 아호를 딴 노산문학관이 마산문학관으로 바뀌거나 2013년 마산역광장 ‘가고파 노산 이은상 시비’ 옆에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가 세워진 일이 있었다. 거론될 때마다 갈등을 불러오는 이은상과 가고파를 보며 몇 가지 의문을 품는다. 첫째, 축제 흥행 측면에서 봤을 때 가고파는 얼마나 효과적일까. 마산국화축제는 2019년 역대 최대인 211만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는데 이때 축제 이름은 마산국화축제였다. 둘째, 가고파를 대체할 상징은 찾지 못하는 것일까. 마산의 문학이 가고파에 머물러 있진 않은가. 셋째, 가고파 사용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충분했을까. 세상사 복잡함을 알 리 없는 국화는 여느 때처럼 활짝 필 테다. 그사이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올해 국화축제를 찾는 이들에게 ‘이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가고파는 향수일까, 독재일까, 그저 그런 낱말일까. 이창언 전국부 기자
  • 정의가 없는 자선… 가난은 계속된다

    정의가 없는 자선… 가난은 계속된다

    물이 말라 버리고 파리가 들끓는 아프리카 지역의 아사 직전 아동의 모습을 비추고, 이어 유명한 연예인이 등장해 구호의 손길을 호소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광고 영상이다. 구호의 손길이 수십 년째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인다. 유엔 통계자문위원, 유럽 그린뉴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 뒤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남동부 스와질란드에서 자란 저자는 성인이 돼 구호단체 월드비전에 들어갔고 다시 스와질란드로 돌아와 구호 활동에 종사했다. 죽어 가는 에이즈 환자를 돌보고, 실업자를 위해 소득 창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농민들에게 새로운 농사법을 교육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실제로 활동하면서 이런 문제보다 자본주의 탓에 일어나는 일들이 더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대 제약회사가 에이즈 복제약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보조금을 받은 미국이나 유럽의 농가가 더 낮은 가격으로 곡물을 생산하고 있었다. 스와질란드 정부는 서구 은행들로부터 막대한 채무에 짓눌려 제대로 된 사회 서비스를 할 수 없었다. 저자는 구호의 손길이 당장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지금의 글로벌 경제 시스템 안에서는 국가 간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국주의 수탈의 역사, 신자유주의의 탄생,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평등한 정책, 그리고 선진국들의 반민주주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증상이 아니라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첫 조치로 개도국의 부채 부담을 탕감하는 일을 내놓는다. 가난한 나라들이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을 스스로 통제할 주권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 서구와 미국 위주의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의 민주화를 내놓는다. 이는 기울어진 국제교역 시스템을 바로잡는 일이다. 글로벌 최저임금제와 보편 기본소득 등도 해법으로 제시한다.
  • ‘홍어족’에 ‘좋아요’ 이진숙 “자연인 때 중립 아녔지만, 그 표현 혐오”

    ‘홍어족’에 ‘좋아요’ 이진숙 “자연인 때 중립 아녔지만, 그 표현 혐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25일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준수하며 그 뜻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발언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나타낸다는 야당 측 비판에 “자연인, 정당인일 때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은 게 사실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후보자는 또 ‘홍어족’(전라도민을 폄하하는 혐오 표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글에 과거 ‘좋아요’를 눌렀다는 지적에는 “그 표현을 아주 혐오하고, 한 번도 그 표현을 사용한 적 없다. 지인 글에 무심코 ‘좋아요’를 누른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준법정신이 부족하다’고 기록된 데 대해서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름대로는 힘든 시기를 거쳤으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모든 면이 모범적이고 대단히 긍정적으로 나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5년에 걸쳐 4번 교통법규 위반을 한 게 사실이고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1건도 검색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인생을 모범적으로 살았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특정 시기의 특정한 것만 인용해서 비판하는 것은 ‘체리피킹’이다”라고 지적했다.한편, 이 후보자는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에 대해 “공정거래법과 조금 부딪히는 면이 있어 임명되면 차근차근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단통법 제재 취지와 통신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공정거래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게 적절하냐는 물음에 “공정위는 자유경쟁을 장려하는 입장이고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규제를 해주는 게 이롭다는 측면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공정위가 이동통신3사의 가입자 유치 실적에 따라 장려금을 조절해 담합했다고 판단한 건에 대해서는 “단통법과도 관련이 있는데 소비자를 위해 지원금을 사실상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며 “철저하게 따져 이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또 통합미디어법과 관련해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규제는 방통위에서, 진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하는데 이에 통합미디어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통합미디어법은 TV와 라디오 등 기존 미디어와 OTT를 아우르는 법으로,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OTT에 대한 규제를 신설하고 기존 방송 규제는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이진숙 청문회 첫날… 野 “제3 이동관” 탄핵 시사

    이진숙 청문회 첫날… 野 “제3 이동관” 탄핵 시사

    이동관·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이 24일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첫날부터 탄핵을 시사했다. 박민규 민주당 의원은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불법적 2인 구조에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KBS 이사 선임을 강행할 것”이라며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도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결국 후보자는 길어야 몇 달짜리 ‘제3의 이동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를 포함해 직전 1년간 세 차례나 방통위원장 청문회를 연 것은 결국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인선 때문이다. 여당은 방문진 이사들을 교체해 MBC 사장을 친여 성향 인사로 바꾸려 하고, 민주당은 이를 막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에 오른 후 또다시 탄핵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그간 방통위원장 탄핵의 이유로 삼은 ‘2인 방통위 체제’에 대해서도 공방이 오갔다. 이 후보자는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 동안에라도 야당에서 위원을 추천하고 표결했다면 5인 체제가 완성됐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미완의 2인 (방통위) 구성에 대해 말할 때 조심하라. 제가 당사자”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을 단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방통위법상 국회 추천 위원 몫으로 내정됐지만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지 않아 사퇴한 바 있다. 야당은 이 후보자의 MBC 보도본부장 시절 세월호 참사 보도와 ‘전원 구조’ 오보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이 후보자는 대전 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에 대해선 “단 만원도 업무 외 쓴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정치 편향성 공방도 이어졌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 사태에 대한 이 후보자 의견을 물었고 이 후보자는 “건건이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황 의원이 “이러니 극우 유튜버 같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하자 이 후보자는 “인신 모독”이라고 맞받았다. 최 위원장과 이 후보자 간 신경전도 벌어졌다. 최 위원장은 이 후보자가 청문회 증인 선서를 마치고 증서를 제출한 뒤 뒤돌아 자리로 가자 “제가 인사하려고 했는데 돌아서 가시니 뻘쭘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후보자는 다시 최 위원장에게 다가갔고 서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 위원장은 이 후보자에게 “저와 싸우려 하시면 안 된다”고 속삭였다.
  • 野 김두관 “尹과 대화 가능”… ‘임기 단축’ 개헌 제안

    野 김두관 “尹과 대화 가능”… ‘임기 단축’ 개헌 제안

    金 “尹·李 치킨게임… 상생 없어”2년 뒤 지선·대선 동시 시행 주장 8·18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 선두를 굳히는 가운데 경쟁자인 김두관 후보는 본인만이 윤석열 대통령 및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대표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하며 표심 호소에 나섰다. 김 후보는 24일 민주당 당사 내 당원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이재명’으로는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개헌을 추진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이 후보는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둘 다 죽어야 끝나는 ‘치킨 게임’을 하고 있다”며 “저는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와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개헌을 통해 2026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함께 시행하자고 주장했다. 이어 “5·18 광주민주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역사와 정신을 전문에 담고 국민의 기본권 확대도 강화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국회가 내년 6월 말까지 국민 여론을 수렴해 합의·의결하자”고 제안했다. 김 후보가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 후보 지지자들에 대해 ‘집단 쓰레기’라는 표현을 썼다가 당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국면 전환에 나선 것이지만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는 힘든 상황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그래도 (후보 간에) 어느 정도 경쟁이 돼야 한다. (지금 상황이) 썩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며 일방적인 선거 구도에 대해 우려했다. 이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한 대표를 향해 “국회에는 여야가 있어도 국민 앞에, 민생 앞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민생 부문의 협력을 제안했다.
  • 이재명 “국민 앞 여야 따로 없어”…김두관 “대통령 임기 1년 단축”

    이재명 “국민 앞 여야 따로 없어”…김두관 “대통령 임기 1년 단축”

    8·18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 선두를 굳히는 가운데 경쟁자인 김두관 후보는 본인만이 윤석열 대통령 및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대표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하며 표심 호소에 나섰다. 김 후보는 24일 민주당 당사 내 당원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이재명’으로는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개헌을 추진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이 후보는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둘 다 죽어야 끝나는 ‘치킨 게임’을 하고 있다”며 “저는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와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개헌을 통해 2026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함께 시행하자고 주장했다. 이어 “5·18 광주민주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역사와 정신을 전문에 담고 국민의 기본권 확대도 강화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국회가 내년 6월 말까지 국민 여론을 수렴해 합의·의결하자”고 제안했다. 김 후보가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 후보 지지자들에 대해 ‘집단 쓰레기’라는 표현을 썼다가 당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국면 전환에 나선 것이지만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는 힘든 상황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그래도 (후보 간에) 어느 정도 경쟁이 돼야 한다. (지금 상황이) 썩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며 일방적인 선거 구도에 대해 우려했다. 이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한 대표를 향해 “국회에는 여야가 있어도 국민 앞에, 민생 앞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민생 부문의 협력을 제안했다.
  • 이슬처럼 떠난 ‘뒷것’ 김민기…설경구·장현성 ‘눈물’ 배웅

    이슬처럼 떠난 ‘뒷것’ 김민기…설경구·장현성 ‘눈물’ 배웅

    “그저 고맙지. 할 만큼 다 했어. 가족이 걱정이지.” 20세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이자 가수이며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30여 년간 이끈 연출가 김민기는 21일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24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을 엄수한 뒤 아르코꿈밭극장으로 향했다. 아르코꿈밭극장은 고인이 생전 33년간 작품을 올리고 신인 배우들을 발굴한 소극장 학전이 있던 곳이다. 생전 그에게 ‘빚졌다’고 했던 수많은 추모객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배우 장현성과 설경구, 황정민, 배성우, 최덕문, 방은진, 가수 박학기, 박승화, 이적,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을 비롯한 약 70여 명의 추모객들이 함께 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들은 학전 담벼락에 고인의 영정 사진을 세워두고 묵념을 한 뒤 지하에 있는 학전블루소극장으로 내려가 비공개로 추모의 시간을 가졌고, 유족들이 극장에서 나오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운구차에 탑승했다. 누군가 떠나는 차를 향해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학전에서 오랫동안 라이브 밴드를 했던 이인권씨가 고인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을 색소폰으로 연주하자 잦아들던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고인의 대표 연출작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섰던 그는 “선생님(김민기)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주가 끝나고도 추모객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장현성은 울먹거리며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은 가족장으로 하기로 했으니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겠다”며 “마지막까지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설경구 역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고인은 1951년 3월 31일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뒤 1971년 ‘아침이슬’이 담긴 첫 앨범을 통해 공식 데뷔했다. ‘아침이슬’이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리면서 금지곡 판정을 받았고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노동 현장에 들어가 노래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1991년 대학로에 공연장 학전을 연 뒤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일궈냈다. 2004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 극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학전은 만성적 적자와 고인의 건강 악화로 지난 3월 폐관했다. 고인은 통원 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양희은 “故김민기, 어린 날 저의 우상” ‘아침 이슬’이 수록된 음반을 내고 가요계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를 통해 김민기를 추모했다. 양희은은 24일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에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선곡한 뒤 “가수이자 작사·작곡가, 공연 연출가, 그런 수식어로도 부족한 김민기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양희은은 ‘아침 이슬’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대목을 좋아했다는 그는 “‘아침 이슬’은 당시 정부에서 선정한 건전가요 상도 받았는데 1년 후 금지곡이 됐고 80년대 중반에서야 해금됐다. 선생은 요주의인물이 되어 힘든 일을 많이 당했을 텐데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어 이 정도밖에 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으로 칭한 양희은은 자신이 부른 김민기의 곡들을 읊어 내려가며 고인을 기렸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가수 김민기, 세상 떠나기 전 한 말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가수 김민기, 세상 떠나기 전 한 말

    “그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이다.”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는 21일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조금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날 오후 8시 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이어 “보고 싶은 가족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만나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김민기는 지난해 발견된 위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건강이 악화했고, 이후 통원 치료를 받으며 경기 일산 자택에서 지내왔다. 김 팀장은 ‘고인이 눈을 감기 직전 유언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서는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했다. 김 팀장은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씨가 와도 ‘밥은 먹었냐’고 하실 분”이라며 “(평소 성격을 미뤄)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미술에 몰두했던 학생이었으나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붓을 놓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1년 ‘아침이슬’이 담긴 첫 앨범을 통해 공식 데뷔했다. ‘아침이슬’이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리면서 금지곡 판정을 받았고,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노동 현장에 들어가 노래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 뒤로는 공연을 연출하며 스타들을 배출했다. 그곳에서 1000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열며 팬들과 호흡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 스타였다. 권진원, 나윤선, 윤도현,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김민기 없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 고인은 2008년 ‘지하철 1호선’의 4000번째 공연을 올렸을 당시를 학전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은 바 있다.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고인이 연출하지 않은 작품은 할 수 없다”면서 “김민기가 연출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염원한다면 유족들과 이야기해서 학전의 40주년, 50주년, 100주년에 맞춰 한 번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김민기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뮤지컬 ‘의형제’(2000), ‘개똥이’(2006)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올해 3월 15일 학전이 개관 33주년 만에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연출한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가 됐다. 그는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발인일인 24일 오전 옛 학전이 자리한 아르코꿈밭극장에 들렀다가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에서 영면에 든다.
  • 외국인 독립유공자 76명뿐… “예산·인력 부족에 자료 발굴 등 미흡” [대한외국인]

    외국인 독립유공자 76명뿐… “예산·인력 부족에 자료 발굴 등 미흡” [대한외국인]

    정부 차원에서 독립운동 공로를 공식 인정받은 ‘대한외국인’은 총 76명이다. 18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외국 국적으로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95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 후손 19명(중국 7명, 러시아 11명, 멕시코 1명)을 뺀 ‘순수’ 외국인은 8개국 76명이다. 중국이 34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이 22명으로 뒤를 이었다. 영국과 캐나다가 각각 6명이었고 호주 3명, 아일랜드 2명, 프랑스 1명 등이다. 일본인도 2명 포함돼 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은 1950년(12명)과 1968년(23명), 2015년(10명)에 가장 많았다. 1950년대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미국인들이 주로 서훈을 받았으며 그 뒤 다양한 국가와 배경을 가진 이들로 확대됐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이후에도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도움을 준 사례가 적지 않다. 한미협회에서 활동했던 존 W 스태거스 변호사나 폴 프레더릭 더글러스 총장, 프레더릭 브라운 해리스 목사는 한미 간 가교 역할을 했다. 특히 해리스 목사는 미국이 한국에 경제원조를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선교사 조지 피치 부부는 대한적십자사 설립 준비를 도왔고, 프랭크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일하며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민주화에도 이바지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자료 발굴과 정리 등에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보훈부가 운영하는 ‘독립운동자 공적정보’는 현재까지 다이리(戴笠), 뤼톈민(呂天民), 왕주이(汪竹一), 리수전(李淑珍), 허상치(何尙祺) 등 중국인 5명과 모리스 윌리엄, 제이 제롬 윌리엄스, 스태거스, 스티븐 A 벡 등 미국인 4명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확인한 결과 다이리는 1946년, 뤼톈민 1942년, 윌리엄 1973년, 윌리엄스 1961년, 벡은 1941년 사망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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