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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2025년의 3·1 정신은 무엇일까

    [열린세상] 2025년의 3·1 정신은 무엇일까

    이번 삼일절은 근래에 들어서 가장 정치적인 삼일절이었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정국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계속 격화되면서, 탄핵 반대 시위와 탄핵 찬성 시위가 삼일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치적 삼일절은 실제 역사 속 3·1 정신의 왜곡일까. 확실히 3·1운동을 독립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위한 비폭력 평화 시위로 한정한다면 2020년대에 정치적인 이유로 3·1 정신을 동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치적 동원이 실제 3·1운동의 역사와 부합하는 것임을 인식해 볼 필요도 있다. 우선 3·1운동은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폭발한 국민운동이었다. 그리고 3·1운동으로 등장한 한국인의 ‘일치단결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이후 한국 현대사를 수놓을 무수한 갈등과 분열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족 의지의 폭발로서 3·1운동은 한국 공화 정치의 시작이었다. 대한제국 황실이 일본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않고 국권을 넘겨준 이전 경술국치와는 달랐다. 왕조와 국가의 구분이 희미하던 당시에는 왕가의 항복으로 독립 정신도 타격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왕조의 소멸은 동시에 정치적 상상력이 만개하게 도왔다. 독립을 꿈꾸고, 독립한 나라를 개명되고 발전된 나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타올랐고, 국민 한 명 한 명이 그 과업에 참여하겠다며 태극기를 흔든 것이다. 민족 의지의 폭발은 당연히 민족 지식인과 후대 지도자들에게도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한국인은 나라를 허무하게 넘겨주는 무기력한 민족이 아니라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단합력과 의지를 지닌 민족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하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독립을 해야 하고, 독립 후에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독립운동가들은 분열을 거듭했다. 이 노선 투쟁에서 이기는 자가, 3·1이 보여 준 국민 단결의 에너지를 독점해 새로운 나라를 그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단결을 향한 염원이 다원성의 부재와 동의어였음은 해방 정국에서도 드러났다. 국내외 민족 운동가들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자신의 뜻을 따르게 ‘단결’시키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그 논쟁은 해방 정국의 혼란, 나아가 분단과 참혹한 전쟁으로 확대됐다. 물론 3·1에서 발현된 일치단결의 정신은 대한민국이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국인들이 보인 일치단결의 에너지가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수준이라는 생생한 증거로서 3·1 정신을 잇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그에 버금가는 합의가 등장하지 못하자 문제가 생겼다. 단결할 목표가 없어진 상태에서 오직 단결만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 결과 6공화국의 민주정치는 파행에 이르렀고, 끝내는 2020년대에도 서로 다른 두 세력이 3·1 정신의 계승을 주장하며 대립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3·1 정신을 내려놓아야만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단결하고자 하는 충동은 한국인의 강력한 심리적 경향이다. 한 번 단결하기까지는 힘들지만, 일단 정해지면 놀라운 속도의 집단적 동기화가 이루어져 예상도 못 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는 단결의 강조로 빚어지는 다양성의 부재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단결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합의의 부재일 수도 있다. 지정학, 인공지능(AI), 미디어 등 모든 면에서 앞으로 벌어질 이 대격변의 시기를 통과해 새로운 한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굴하는 것, 아마 그것이 3·1의 정신을 높은 차원에서 회복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갈등으로 얼룩진 2025년의 삼일절에, 우리에게 여전히 에너지는 남아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찾아보고 싶다. 임명묵 작가
  • [서울광장] 90년대 학번계급론

    [서울광장] 90년대 학번계급론

    서태지가 열고 IMF가 닫은 1990년대. 선진국 진입을 기대하며 파격 패션을 한 채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인터뷰하던 신세대의 시대였다. 문화혁명의 서막, 자유와 개성의 시대로 기억되는 시기인데 정작 90년대 학번들의 감상은 조금 다르다. 철들기 시작했으나 어른이 되기 전의 눈높이로 본 90년대는 창조의 가짓수만큼 소멸이 잦은 시대였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 1997년 IMF 외환위기까지. “난 알아요”라는 선언이 무색하게 알던 것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586으로 통칭되는 60년대생, 80년대 학번들에게 ‘86’이란 숫자는 그 자체로 특권이었다. 대학 진학률이 낮고 남학생이 다수였기에 대졸자란 지위가 엘리트 배지가 됐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치며 대학은 지위재 기능을 잃어 갔다. 대학 진학률은 1990년 33.2%에서 1999년 66.6%로 급증했다. ‘잘 살아보세’의 개발도상 시대를 지나 ‘다 바꿔보자’는 필요가 분출하며 진학률 외 다른 사회변화도 빨랐다. 그래서 90년대는 해마다 달랐고, 학번은 나이 지표를 넘어 시대적 좌표가 됐다. 한 해 수능을 두 번 본 94학번, IMF 때 졸업한 95학번, 비정규직 시대 초입에 섰던 99학번까지 스스로를 시대의 실험대상이자 희생양으로 여기는 정서가 90년대 대학생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이전 세대보다 풍요롭게 성장했고 이후 세대보다 취업과 자산 증식은 수월했다. 위처럼 비비기엔 자존심이, 아래처럼 개기기엔 현실이 용납하지 않는 전형적인 낀 세대의 모습이 그래서 형성됐다. 출생 연도나 학번이 나뉘는 1년 사이에도 변화는 대단했다. 서태지, 박진영, 방시혁으로 대표되는 72년생은 X세대란 호칭에 가장 자부심을 보일 만한 이들이다. K팝의 기틀을 다지며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재해석해 한국 음악을 세계 보편 문화로 승화시켰다. 기존 가요의 정서를 지배하던 ‘뽕’의 종언이기도 했다. 비디오 대여점, 공중전화, 디스켓처럼 장르의 종식이 드물지 않았던 90년대. 한 시대의 끝물 현상과 맞물리는 학번들이 유독 많다. 이를테면 서장훈 나이인 74년생, 93학번은 IMF 직후 저렴해진 부동산으로 ‘건물주의 꿈’이 가능했던 자산버블의 마지막을 경험했다.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인 78년생, 97학번은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마지막으로 목격했다. 신입생 때 IMF를 겪은 그들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적 성취를 중시하는 새 시대의 첫 주자가 됐다. 졸업하면서 IMF를 겪은 76년생, 연예계 용띠클럽을 구성하기도 한 이들에게선 성실함이 덕목인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가 보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나이로 주목받는 73년생, 92학번은 어떨까. ‘투머치 토커’ 박찬호가 이 나이대 가장 유명인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이들이 훈계를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훈계가 가능한 건 92학번의 선험적 자질보다는 후천적 환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IMF 직격탄을 맞기 이전 후배들은 아직 선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의 경로를 모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IMF 이후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면서 선후배 간 위계질서는 흐릿해졌고, 요즘 시대 훈계는 꼰대질로 폄하되며 자제해야 할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렇게 아주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90년대 학번은 정치권에선 이방인이었고, 이는 한국 정치 의제의 빈곤으로 이어졌다. 80년대를 그린 영화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시위 참여와 구류살이가 연인들의 이별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오랜 기간 정치 의제와 연결됐다. 하지만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그려낸 취업 걱정과 연애의 어려움, 전통적 가족관으로 인한 고민과 같은 90년대 청춘들의 일상 속 고민들은 정치적으로 의제화되지 못했다. 그래서 92학번 한동훈이 정치에서도 성공하려면 수많은 변화에 응전해야 했던 90년대 젊은 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을 복기해야 할 것이다. ‘586은 거르고’식의 갈등 정치에만 머문다면, 결국 X세대도 그저 그렇게 늙었음을 확인시키는 데 그칠 것이다. 한 시대의 끝과 시작,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홍희경 논설위원
  • ‘능구렁이’ 된 AI… 법원 폭동 사태 극우 주장 되묻자 ‘위험한 답변’ [비하人드 AI]

    ‘능구렁이’ 된 AI… 법원 폭동 사태 극우 주장 되묻자 ‘위험한 답변’ [비하人드 AI]

    ‘네이버에게 물어봐’는 이제 옛말이 됐다. 포털사이트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무엇이든 물어보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생성형 AI는 궁금한 것은 물론 고민과 연애 상담까지 해 준다. 그렇다면 이 ‘척척박사’를 믿어도 될까. 지난 한 달여간 생성형 AI 7개 모델에 상식과 윤리, 정치적 견해 등 가치판단이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개발 국가와 성능을 고려해 챗GPT, 제미나이, 그록(이상 미국), 딥시크, 큐원(이상 중국), 프랑스의 르챗, 한국의 클로바X를 골랐다. 거침없는 AI의 미래 예측50년 내 남북통일 가능성 ‘제각각’챗GPT 최대 70%… 클로바X 30%AI는 전문가들이 쉽사리 결론 내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에도 몇 초 만에 답변을 내놨다. 남한과 북한이 50년 내에 통일될 확률을 물었더니 챗GPT는 60~70%라고 답했다. 북한 체제가 시간이 갈수록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근거로 제시했다. 클로바X는 가장 낮은 30%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치·경제·문화적 차이를 줄이기엔 50년이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각국의 승리 가능성을 물어보니 ‘미국 40%, 중국 30%, 다극체계 30%’(제미나이)처럼 각자 그럴듯한 수치를 들이댔다. 각각의 AI 서비스 화면에 적힌 ‘AI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해 보였다. 자신만만하던 AI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직면하자 어물쩍 넘어가는 능구렁이가 됐다. 국내외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물으면 “양면성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기 일쑤였다. 중국의 딥시크가 특히 민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독재자냐’고 묻자 딥시크는 시 주석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쭉 써 내려가다가 갑자기 “죄송합니다. 나의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다른 얘기 하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어로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을 때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천명의 시민이 정부에 의해 사망하거나 다쳤다”고 하더니 같은 질문을 중국어와 영어로 하자 말문을 닫았다.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자치구를 탄압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중국은 모든 지역에서 법에 따라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외교부가 늘 내놓는 이른바 ‘모범 답안’이다. 그런데 역시 중국에서 개발된 알리바바의 큐원은 딥시크처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AI 전문가는 “딥시크가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사용자가 늘자 자동검열 알고리즘과 인간의 실시간 검열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 같다”고 예측했다. 딥시크가 몸을 사리는 게 문제라면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개발한 그록3는 너무 솔직한 게 탈이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2026년 화성 탐사 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을 묻자 그록3는 50%의 비교적 높은 가능성을 제시한 뒤 “머스크의 실행력이 가능성을 높인다”는 다소 편파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머스크는 그록3를 ‘선 넘는 답변’도 마다하지 않는 AI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치, 윤리적 문제에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 논쟁적인 토론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 CivAI 공동 창립인 루커스 핸슨은 “그록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형성되는 인식이 정치적 분열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명백한 오류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클로바X는 ‘한국의 독립에 공이 큰 인물을 꼽아 달라’고 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AI가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자 범죄자를 옹호하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예컨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을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보낸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하거나 “25년이 넘는 수감 기간의 변화를 보면 조건부 석방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옹호하는 식이다.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에 대해 “명백한 불법”이라던 AI들은 폭동 주동자와 극우 유튜버의 주장을 덧붙여 묻자 말을 바꿨다. 폭동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행과 정책 대립 때문”이라고 하거나 “억울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법원이 감형해 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극단주의가 개혁이나 혁명의 원동력이 됐다”는 위험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AI를 가치관, 역사관 정립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콘텐츠만 노출시켜 편향성을 심화시키는 알고리즘의 폐해가 AI로 인해 더욱 심각해지고,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잘해 주는 AI만 맹신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과 함께 편향성을 생성형 AI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인공지능 법률사무소 인텔리콘 대표 임영익 변호사는 “AI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독립적인 감사를 통해 편향을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열하거나, 솔직하거나 딥시크, 中 불리한 질문하자 ‘침묵’ 그록3 ‘머스크 호평’ 편파적 설명네덜란드는 2019년 AI 오류에서 비롯된 보육료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네덜란드 정부는 보육료 부정수급을 해결하겠다며 적발 시스템에 AI를 탑재했다. 그런데 AI는 보육료 수급 현황을 검토하면서 특정 국적, 소득 등을 부정수급자 의심의 판단 근거로 삼는 오류를 저질렀다. 수급자와 동일한 국적을 가진 사람 중 범죄자 비율이 높으면 평범한 수급자도 무조건 의심자로 분류했다. AI는 의심자가 서류 작성에서 사소한 오류를 범해도 지체 없이 부정수급자로 낙인찍고 그동안 받은 모든 보육료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네덜란드 의회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 ‘전례 없는 불의’에 따르면 피해 가구가 2만 6000가구에 이르렀다. 10만 유로(약 1억 5000만원)가 넘는 보육료 반환이 청구돼 파산한 가구도 있었다. 이 스캔들로 총리와 내각이 총사퇴했다. 아마존은 2018년 AI 기반 채용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AI는 남성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성차별’을 저질렀다. 2015년 출시한 구글 포토앱은 AI로 사진을 인식해 태그를 붙이며 흑인을 고릴라라고 판단하는 ‘인종차별’의 오류를 범했다. 국내에서도 AI로 인한 차별 문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2020년엔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채용 과정에서 탈락한 지원자에게 AI 면접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적인 AI 분야 권위자이자 2018년 튜링상 수상자인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안전을 무시하고 나아가고 있다”며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현명한 개발 방식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장진복 김중래 명종원 이성진 기자
  • 전북대 앞에서 맞붙은 尹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전북대 앞에서 맞붙은 尹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두고 정치 진영 간 갈등이 교육계로 옮겨붙은 가운데 전북에서도 탄핵 찬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전북대·전북권 탄핵 반대 대학연합회는 3일 오후 3시 전북대 구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쳤다. 전북에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합회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계몽령’이고 계엄령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윤 대통령은 저들이 얘기하는 ‘내란 수괴’가 결코 아니고 민주당의 입법 독재야말로 진정한 내란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탄핵이 인용되고 반국가세력이 득세한 후엔 후회한들 늦는다”며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우린 일어나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2시 30분에는 애국 전북대학교 민주동문회와 전북지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탄핵 찬성 집회가 개최됐다. 윤석열 퇴진 전북운동본부 관계자들과 전북대 출신 서난이 전북도의원, 신유정·최서연 전주시의원 등이 참석한 집회에서 이들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내란동조 세력이 발붙일 곳은 이 땅 어디에도 없다“며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하고 내란에 동조하는 극우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대학생위원회도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대학 연합의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위원회는 “탄핵 반대 집회 장소인 전북대학교는 4·19 혁명의 발원지이자 5·18 민주화운동 첫 희생자인 이세종 열사의 모교”라면서 “전북의 대학생들이 피 흘려 지킨 민주화의 땅에서 어떻게 반민주 내란수괴를 옹호할 수 있는지, 원칙과 법치를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현실을 똑바로 주시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무자비한 권력남용을 국민의 권력이라 오판해선 안 된다”며 “45년 전, 전북대학교에서 이세종 열사의 용기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처럼, 오늘날에도 응원봉을 들고 국회로 달려가고 남태령에서 끝끝내 추위를 버텨낸 이들이 있어 민주공화국의 질서와 가치가 무너지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중외교, 한미동맹 근간으로 하되 국익중심 유연성 확보해야[K이슈 플랫폼]

    미중외교, 한미동맹 근간으로 하되 국익중심 유연성 확보해야[K이슈 플랫폼]

    우호적인 中 활용… 美 올인 넘어야美이익 우선 트럼프, 일시적 아니다민감 분야 美 공조, 대중 협력 확대한미동맹 강화돼야 中도 우호 유지트럼프 행보는 협상 전략으로 봐야美 대중 제재, 韓 산업 분야에는 기회K이슈플랫폼은 다툼만 있고 해결이 없는 우리 사회에 합의를 통한 정책방향 제시를 목표로 기획됐다. 주최자인 [진실과 정론]은 K정책플랫폼(이사장 전광우), 한반도선진화재단(박재완), 안민정책포럼(유일호), 경제사회연구원(최대석)으로 구성된 싱크탱크 연대이다. 의제 : 미중 간 외교전략 방향토론자 :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전략적 유연성)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전략적 명확성)사회 : 박지영 경제사회연구원장원고 : 박진 K정책플랫폼 공동원장(KDI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중심주의, 대중국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우리의 미중 간 외교전략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기치 아래 확실히 미국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미중 간 균형외교를 펼칠 것인가. 1. 기본 입장 [사회] 기본입장을 설명해 주시지요. [김흥규] 21세기 들어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자유주의 패권시대의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을 맞아 중국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과 대등하거나 일부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미국의 중국 견제도 이러한 미국의 위기감에 기인한 것이지요. 지금 세계는 미중러를 세 축으로 하면서 유럽연합(EU), 인도, 개도국들이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극화 시대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은 대중국 포위를 돌파하기 위해 한국 등 주변국에 우호적 태도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간 미국에 올인했던 전략적 경직성을 넘어서는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주재우] 중국의 사회주의 노선은 최종 목표인 공산주의 실현을 위한 전략입니다. 중국이 현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한 경제적,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며 미국의 세계 패권은 당분간 유지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모호성을 표방하면 미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얻어내야 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미원자력협정이 그 예입니다. [사회] 김 교수님은 우리가 한미동맹 포기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김흥규]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므로 한미동맹은 불가피합니다. 중국은 안보상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고 중국도 우리와 동맹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중국과 우리의 체제상 차이도 크고요. [사회] 주 교수님은 우리가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주재우]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는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훼손을 비용으로 지불해선 안 됩니다. 한미동맹이 강화돼야 중국도 우리에게 우호적 태도를 유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회] 그렇다면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미중 사이에서 최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원칙에 합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 좋습니다. 2.사안별 검토 [사회] 구체적 사안별로 살펴볼까요. 미국은 중국에 대해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수출 및 투자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협력해야 할까요. [주재우] 이러한 제한 조치는 과학기술 차원을 넘는 안보 이슈입니다. 한미동맹을 인정한다면 협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 구축은 중국과 많은 산업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우리로서는 기회이지요. [김흥규] 민감 분야에서 미국과의 공조는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미중 경제 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습니다. 미중 전략경쟁에 제약받지 않으며 미국의 양해를 얻을 수 있는 한중 협력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회] 민감 분야에서는 미국과 공조하되 그 외 분야에선 유연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가 가능하겠습니다. [사회]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외교적 대응과 유사시의 군사적 대응은 어때야 할까요. [주재우] 우리 정부는 대만해협에서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습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원칙에도 부합합니다. 유사시 미국이 대만에 개입하면 우리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중국과의 군사 충돌은 피해야 합니다.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이동할 경우 그 공백을 노린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김흥규] 대체로 공감합니다. 다만 하나의 중국 원칙, 즉 대만 국민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중국 통일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하나의 중국은 인정하되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에 합의가 가능하겠네요. [사회] 미래에 한중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주재우] 한미일 동맹입니다. 저는 중국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동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중국이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 서해의 잠정수역조치구역 등에서 군사도발을 일삼는 등 영토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지요. [김흥규] 일본과의 관계 개선과 협력은 필요하나 동맹까지는 불필요합니다. 중국·러시아·북한이 3국 동맹을 체결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은 동북아 냉전체제를 재등장시켜 우리의 국익과 전략적 유연성을 크게 제약할 겁니다. 제가 향후 우려하는 바는 트럼프 행정부가 제주도 강정항을 미군 해군기지로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강정항의 전략적 가치는 엄청납니다. 당연히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로 반발할 것입니다. 저는 제주 미군기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직접 뛰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미군 함정을 수리하고 물품을 조달하는 수준은 가능하겠지요. [주재우] 저는 우리 영해를 지키기 위해 제주에 한미 연합 해군기지의 설립을 찬성하고 이를 대미, 대중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이견의 배경 [사회] 두 분의 의견은 결국 두 가지 전망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중국이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여기에는 중국 경제의 성장 전망, 미국의 패권 유지 가능성, 미국의 대중 견제 효과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겠습니다. [주재우]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9000억 달러를 넘겼는데 이는 2위인 중국의 세 배가 넘고 2~11위를 더한 지출과 비슷합니다. 전 세계 항공모함 22척 중 미국이 11척을, 중국은 2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독일, 일본, 한국 등 70여개국에 800여개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 제1의 농산물 수출국이자 영화 제작국입니다. 전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EU나 인도는 중국·러시아와 안보적 경쟁 관계에 있어 긴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아프리카 등 일부 개도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개도국은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은 당분간 유지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중 견제는 거대 인구를 바탕으로 미국의 견제를 버텨 낼 수는 있겠지만 성장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흥규] 트럼프의 등장은 중국에 위기이지만 중국은 이를 기술독립과 세계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활용할 것입니다. 2012년 조사에선 미국 대비 67% 수준이던 중국의 기술 수준은 2022년엔 82.6%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고 지금은 거의 대등한 수준에 올라왔습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조업의 35%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을 포함한 2~9위 제조업국의 역량을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무역의존도는 21.5% 정도에 불과해 트럼프의 관세 등 대중 압박은 큰 충격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미국의 대중 견제는 전 세계적인 호응도 얻기 힘들고 미국도 이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포기하고 세계는 국가별 각축 시대로 진입하는 것일까요. [김흥규] 트럼프의 정책에 이미 서방 연대는 없고 미국의 이익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번 미국·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서방의 분열을 가시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트럼프는 단순히 대중 전략경쟁 우위라는 목표를 넘어 19세기적인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백인사회의 우월주의와 그 좌절감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어 일시적인 현상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지요. [주재우] 표면적으로는 서방의 분열로 보이지만 오히려 서방 중심의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재정비의 일환으로 봐야 합니다. 미국은 자유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중인 것이지요.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협상전략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회] 전망에 대한 이견은 합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로 풀어야지요. 국제 정세의 미래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겠네요. 합리적 토론을 해 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 ‘일베 논란’에 눈물 흘린 전효성 “실수 뼈저리게 느꼈다”

    ‘일베 논란’에 눈물 흘린 전효성 “실수 뼈저리게 느꼈다”

    그룹 ‘시크릿’ 출신 가수 전효성이 과거 자신의 말실수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1일 방송된 JTBC 예능 ‘아는 형님’에는 삼일절을 맞아 한국사 일타강사 최태성을 비롯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자격증을 취득한 이상엽, 전효성이 출연했다. 이상엽은 1급, 전효성은 3급을 취득한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 이상엽은 한능검을 취득한 배경에 대해 “사람들이 날 너무 바보로 생각해서 공부하게 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신동이 “취득하고 나서 바보 이미지가 없어졌느냐”고 묻자, 이상엽은 “아닌 거 같다”고 답했다. 전효성은 “12년 전에 말실수한 적이 있다”며 “스스로 ‘나 미친 거 아니냐’라고 충격을 받았고, 창피해서 공부를 결심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당시 댓글에 ‘그럼 한능검을 따든지’라는 글이 있었다”며 “나에겐 동아줄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공부하면서 내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를 접한 강호동이 “역사에 관심 있는 방송인들이 진짜 많다”고 묻자, 최태성은 “효성이는 연예인 중에서도 초창기에 한능검을 도전한 사례”라며 “사실 요즘 연예인들이 세상 가장 무서운 말 할 때가 언제냐면 역사 이야기할 때”라고 답했다. 그는 “왜냐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무 감이 없는 것”이라며 “이찬원, 파비앙, 조나단, 김동현도 함께 공부했다. 최근에는 NCT가 감사 인사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효성은 지난 2013년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서 민주화시키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민주화한다’는 표현은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획일화·하향평준화 등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전효성은 눈물을 흘리며 두 차례 사과했고, 이후 한능검에 응시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편, 전효성은 삼일절을 맞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는 이름 모를 수많은 분들의 희생 끝에 얻어진 것이라는 소중함”이라며 “우리는 모두 역사에 빚을 지고 있다. 무임승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큰별샘(역사강사 최태성)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독립 만세”라고 전했다.
  • 3·1절에 다시 떠올리는 어느 항일혁명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세책길]

    3·1절에 다시 떠올리는 어느 항일혁명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세책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나라로 갈라져 살고 있는 이 유난스럽고 징글맞은 민족을 설명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경험이 많다”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조지아대학교 정치학과 박한식 교수를 인터뷰해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쓸 당시 들었던 말이었다. 과연 생각해보면 우리만큼 온갖 개고생과 산전수전을 겪어본 민족집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외세 침입과 식민지 경험, 독립운동, 대규모 이민, 강제징용과 징병, 해방과 분단, 전쟁, 독재와 쿠데타, 민주화운동과 탄핵, 산업화와 민주화… 대충 이런 것들을 최근 100년 즈음에 모조리 경험해본 나라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는다. 거기가 저개발국부터 시작해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까지 겪은 건 전세계에 한민족의 남쪽 절반 뿐이다. 거기다 지난해 연말 친위쿠데타를 위한 계엄령까지 경험했으니 전세계 사람들에게 늘어놓을 경험담이 하나 더 늘었다.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고 시련과 풍파가 휘몰아치는 걸 흔히 ‘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어느 젊은 혁명가의 초상’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대학 시절 많이 읽히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金山, 1905~1938)이었다. 김산은 1937년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자리잡고 있던 옌안(延安)을 방문했던 미국인 기자 님 웨일스와 우연히 만난 일을 계기로 자신의 일생을 들려줬고, 님 웨일스는 김산의 일대기를 ‘아리랑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1941년 출간했다. ‘아리랑’이 국내번역본이 나온 건 1984년이었다. 내가 대학 시절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김산이라는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본명이 장지락(張志樂)이라는 게 밝혀진 건 한참 뒤였다. 정부에선 2005년에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대학시절에도 그렇고 최근 출간한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를 쓰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도 나를 가장 매혹시킨 건 김산의 파란만장한 인생 행로가 아녔나 싶다. 김산은 1905년에 평안북도 룡천군에서 태어났다. 룡천군은 압록강 바로 남쪽에 있어서 중국과도 가까운 곳이다. 그는 3·1운동 후 일본 도쿄에서 공부했고, 일본을 떠나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다녔다. 김산은 상하이에 가서 임시정부 관련 활동을 하는 한편 흥사단과 의열단에도 가입했다. 1925년 광둥[廣東]으로 간 뒤 황푸군관학교와 중산대학에서 공부했다. 조선민족동맹 결성에 참여했고 대표 자격으로 옌안에 파견되어 항일군정대학(抗日軍政大學)에서 강의했다. 님 웨일스를 만난 건 그 즈음이었다. 그 때 김산은 32세였지만 엄청난 경험으로 님 웨일스를 놀라게 했다. “그 체험의 광대함에 놀랐다. 그의 이야기는 조선, 일본, 만주에 걸쳐서 전개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혁명의 박진감 넘치는 과정에까지 미치고 있었다(46쪽).” 김산은 님 웨일스와 영어로 인터뷰를 했고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다. 몽골어도 약간은 알고 있었다. 에스페란토를 공부해 에스페란토로 쓴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여러 차례 투옥되거나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숱하게 넘긴 김산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잃지 않았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464쪽).” 혁명 위해 연애도 포기했던 두 혁명가의 뜨거웠던 첫사랑‘아리랑’에서 김산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금강산의 붉은 승려’ 김충창을 꼽는다. 실제 이름은 운암(雲巖) 김성숙(金星淑, 1898-1969)이었다. 김산은 김성숙을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로 소개하면서, “(김성숙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149쪽)”인 동시에 “나를 공산주의자로 만든 사람(192쪽)”이라고 표현했다. 김산은 김성숙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날카롭고, 아주 지적인 정신력을 내뿜는 사람이었으며, 뛰어난 미남이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우리 사이에는 평생 변치 않을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192~193쪽).” 김산과 김성숙은 1926년 광저우로 활동무대를 옮겼는데 이 즈음 두 사람은 “조선혁명가들이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님 웨일스, 186쪽)”며 굳게 결심했다. 하지만 광저우에 가자마자 김성숙은 일본어 과외선생을 하다가 제자인 중국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첫사랑이면서 격심한 연애였다. 상대 아가씨는 중산대학에 다니는 아름다운 광동 아가씨로 대단히 현대적이었으며 부르주아였다(212~213쪽).” 김산은 김성숙이 그 중국인 아가씨(두쥔훼이)와 결혼한 걸 꽤 서운하게 생각했다. 김성숙은 김산에게 “네가 아가씨를 알게 된다면 나보다도 훨씬 깊이 빠져들 거야”라고 말했지만 김산은 “나는 절대로 결혼 따위는 안 해요”라고 쏘아붙였다(313쪽). 하지만 사람 일이란 건 참 모를 일이다. 김산은 몇 년 뒤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김산은 김성숙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의 낭만적인 난센스를 모조리 용서합니다. 실은 오늘 밤 나는 어느 사람이 저지른 어떠한 일이라도 용서해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김형이 내게 한 말이 맞았어요.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정확했어요(341쪽).” 김산은 님 웨일스가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옌안을 떠난 직후인 1938년 비밀리에 처형당했다. 중국공산당은 증거도 없이 그를 일본 간첩으로 간주했다. 1983년이 되어서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은 김산의 누명을 풀어줬다. 김성숙은 1945년 해방이 된 뒤 그렇게 사랑했던 부인과 세 아들을 두고 홀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으로 함께 돌아올 교통편을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데다 곧바로 이어진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꼼짝없는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김성숙은 그 후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김성숙은 1951년 부산에서 ‘부역자’로 체포돼 1개월, 1957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개월, 5·16 쿠데타 이후 ‘반국가행위’ 죄목으로 또다시 10개월 징역을 살았다. 지인들이 비라도 피하라며 지어 준 ‘피우정(避雨亭)’에서 1969년 세상을 떠났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고 2004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두쥔훼이는 학교 교장으로 일하다 1981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김산의 이야기 속에는 가혹한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민족의 20세기가 응축돼 있다. 김산은 나라를 잃은 좌절감과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 속에 세계를 누비나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절친한 벗이었던 김성숙은 해방 이후 오히려 가족과 헤어지고 억울한 감옥생활을 거치며 홀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런 아픔과 좌절 속에서 조금씩 전진해온 김산이나 김성숙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살만한 공동체로 성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106주년 3.1절을 맞아 한 젊은 조선인 혁명가의 초상인 ‘아리랑’을 다시 읽는다.
  • 崔대행, 3·1절 기념사…“한일협력 반드시 필요한 국제정세”

    崔대행, 3·1절 기념사…“한일협력 반드시 필요한 국제정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절을 맞아 “지금처럼 엄중한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1일 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숭의여자대학교 숭의음악당에서 열린 ‘제106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 민족이 대의를 위해 하나가 됐던 통합의 정신”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지금,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민주화와 산업화의 기적도 사상누각이 될 것”이라며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세대가 자랑스러워할 조국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이라고 말했다. 최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으로서 국경일 기념사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대외 관계에 초점을 두는 3·1절 기념사의 전례에 따라 대북·대일 기조를 두루 언급하면서도 탄핵정국에서 증폭한 국민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통합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다. 최 대행은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시켜야 한다”며 “관용과 협치의 문화를 조성해야 하고 통합의 기반이 되는 튼튼한 경제를 일궈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생경제 회복, 경제양극화 완화, 사회적 약자 동행 등을 언급하면서 “각 부문의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인구위기·기후변화 등에 적극 대처하면서 지역 균형발전 정책으로 함께 잘 사는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미래지향적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대북 현안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한미동맹에 기반한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해 북한의 도발을 단호히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되 대화의 길은 항상 열어놓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대일 정책 기조로는 “올해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양국이 함께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면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특히 지금처럼 엄중한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광주시, 대구서 2·28정신 계승·민주역사 ‘연대’

    광주시, 대구서 2·28정신 계승·민주역사 ‘연대’

    광주광역시 대표단은 28일 대구를 방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구2·28민주운동의 정신 계승과 민주역사 연대·협력을 이어갔다. 광주시 대표단은 이날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65주년 대구2·28민주운동 국가기념식’에 참석, 2·28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대표단은 고광완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신수정 광주시의회 의장, 5·18행사위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기념식에 앞서 대구 두류공원 2·28민주운동기념탑을 찾아 헌화·참배했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경북고 등 대구지역 8개교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 민주운동으로, 3·8민주의거와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특히 정의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뤄졌던 숭고한 희생정신이 담긴 5·18민주화운동과 대구 2·28민주운동의 동질감은 영호남 화합의 가장 모범적인 협력관계로 불리는 달빛동맹의 정신적 원천이 되고 있다.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에서 따온 ‘달빛동맹’의 시작은 지난 200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시와 대구시가 의료산업 공동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달빛동맹’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이후 2013년 3월 ‘달빛동맹 공동협력 협약’을 통해 교류가 본격화됐다. ‘대구 2·28 민주운동 기념식’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시장 등 대표단이 교차 참석하며 상호 역사적 사건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연대와 우의를 다지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부터 대구 민주운동(2·28), 부마항쟁(10·16), 제주항쟁(4·3) 등 민주역사를 보유한 도시들과 민주정신 계승문화 확산을 위해 상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광완 행정부시장은 “앞으로도 두 지역이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진정한 의미의 형제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친한계 “단톡방서 나가달라”…김상욱, 5·18유족회 감사장 받았다

    친한계 “단톡방서 나가달라”…김상욱, 5·18유족회 감사장 받았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5·18 유족회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5·18 유족회는 2·28 민주운동 기념일을 맞아 김상욱 의원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광주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를 열어 대다수 광주 시민들의 반발을 샀던 가운데 김상욱 의원은 지난 24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김상욱 의원은 함께 온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조합원 20여명과 미리 준비한 국화 1500송이를 묘비에 헌화하며 오월 영령의 넋을 기렸다. 김상욱 의원은 오월 영령에 참배한 뒤 “중앙정치에 책임 있는 한 사람으로서 (광주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에) 깊은 송구함을 올리고 싶다”라며 “5·18민주화운동 정신과 역사적 아픔이 서린 ‘민주주의의 상징’ 광주에서의 탄핵반대·계엄찬동 집회는 민주주의 본질에 대한 모욕이자 훼손”이라고 말했다. 김상욱 의원은 최근 친한(친한동훈)계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단톡방)인 ‘시작2’에서 나온 사실을 밝힌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상욱 의원은 지난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단톡방을 나오게 된 게 광주행이 결정적인 사유였냐’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전에는 아무런 이견이나 분란은 없었다”라고 답했다. 김상욱 의원은 “최근 친한계 쪽에서 요청이 있어서 단톡방을 나간 것은 사실”이라며 “추정컨대 (조기 대선을 위한 당내) 경선을 앞두고 친윤(친윤석열계)이었던 분들과 (친한계가) 뭔가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그런 노력을 하는 데 있어서 저의 존재가 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김상욱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때 찬성표를 던진 이후 줄곧 국민의힘 당론을 따르는 대신 개인적 소신에 따라 국회의원 활동을 해왔다. 유족회는 김상욱 의원이 정의·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소신을 지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재혁 유족회장은 “김상욱 의원이 보여준 결단과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라며 “5·18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가 됐다”라고 말했다.
  •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시초’ 2·28민주운동 65주년 기념식 거행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시초’ 2·28민주운동 65주년 기념식 거행

    국내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평가받는 2·28민주운동 기념식이 28일 오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거행됐다. 국가보훈부 주재로 거행된 이날 기념식에는 각계 기관·단체 대표, 2·28민주운동 유공자와 유족, 8개 고교 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지역 국회의원,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등이 주요 인사로 모습을 보였다. 기념식은 ‘봄을 향한 첫걸음’을 주제로 해 학생 밴드 공연, 각 학교의 참여 이야기 소개, 기념사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주요 인사들은 기념식 참석에 앞서 대구두류공원 2·28민주운동기념탑 앞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강 장관은 기념사를 통해 “2·28민주운동은 단순한 학생운동이 아닌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린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며 “대구에서 시작된 이 위대한 움직임은 우리 사회가 정의와 자유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2·28민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며 모든 학생이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꿈과 희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 유공자를 포함한 국가유공자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임을 기억하며, 이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 보훈 정책을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경북고를 비롯한 대구 8개 고등학교 학생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저항 운동이다. 이는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3·15의거, 4·19혁명의 도화선이 돼 국내 첫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2·28민주운동 기념일이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에 따라 이후 기념식은 매년 정부가 주관해 국가 행사로 개최해오고 있다.
  • 전남대·조선대 구성원 “특정세력, 탄핵 반대 집회” 강력 규탄

    전남대·조선대 구성원 “특정세력, 탄핵 반대 집회” 강력 규탄

    지난 1980년 5월 당시 ‘오월광주’의 주축이 됐던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구성원들 극우 보수단체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등 9개 단체는 27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스포츠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란 옹호 세력들은 더 이상 광주와 민족 전남대를 훼손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들단체는 “대통령 윤석열 파면선고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다음달 1일 전국대학생 탄핵반대 시국선언대회가 열린다고 한다”며 “서울과 부산 등에서 시작한 대학가 시국선언을 보면, 극우세력이 참여자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10명도 안 되는 대학생을 앞세워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전남대에서도 일부 학생이 오늘 ‘부정선거 조사촉구 시국선언’을 하겠다고 하고, 극우 유튜버들도 집회를 열기로 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발원지인 전남대학교를 더럽히려 하고 있다”며 “구성원들은 반민주적인 불법세력들로 인해 전남대가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의 힘으로 전남대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킬 것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대학교 일부 학생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예고하자 학내 구성원들이 강력 반발했다. 조선대 교수평의회와 교원노조, 총학생회와 총동창회 등 10개 단체는 27일 성명을 내고 “조선대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일부 극우 성향 단체들이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명목으로 전국 대학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28일 조선대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계획되는 것에 깊은 우려와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이번 집회 목적은 어떤 객관적 근거도 없는 거짓이고 파렴치한 행위다”며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민주 절차를 부정하는 이러한 반민주적 선동이 조선대 내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단체들은 특히 △외부 극우 세력의 정치적 선동과 학내 혼란 조성 강력 규탄 △학문 전당 본연의 역할 유지하도록 대응 등을 강조했다. 학내 혼란이 발생할 경우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 [열린세상] ‘87년 체제’ 한계와 관료주의

    [열린세상] ‘87년 체제’ 한계와 관료주의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 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세간의 관심은 탄핵 인용 여부에 집중돼 있지만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우리 체제는 각기 다른 방식의 혼란에 빠질 것이며 ‘87년 체제, 즉 제6공화국은 끝났다’는 논의가 다시금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독재와 군정 시절에는 ‘산업화’라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87년 체제 이후 ‘민주화가 곧 선진화’라는 착각 속에서 정작 ‘경제 민주화와 선진화’는 요원한 상태에 머물러 왔다. 오히려 이전 체제의 부조리가 어설프게 뒤섞이며 ‘불완전한 선진화’라는 모순적 상황을 초래했다. 아울러 ‘초저출생’과 ‘지방 소멸’이라는 파국적 사태를 우려해야 할 시점이다. 이전 체제의 부조리가 어설프게 뒤섞인 대표적 사례가 ‘관료주의’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도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를 출범시키며 주장한 내용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체제는 입법, 사법, 행정 삼권 분립이지만 여기에 더해 선출되지 않았으며 위헌적인 ‘숨어 있는 제4의 권력’, 즉 ‘관료주의’를 갖고 있다.” 요지는 미국조차 선출되지 않은 관료주의가 권력화해 국가를 좀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우리나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직설적인 날카로운 지적이다. 만약 우리의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내역’을 DoGE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분석할 기회가 있다면 ‘대한민국 관료주의도 기괴하다’는 회신이 돌아올 것이 뻔하다. 실제로 다양한 사례가 공개 내역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부동산 개발업에 몰두하는 종북·진보 세력의 모순부터 각종 제도를 악용한 수십억 원대 부동산 상속 및 증여세 탈루 같은 부정한 축재 사례도 존재한다. 하지만 크게 문제시된 전례는 드물다. ‘공개돼도 처벌받지 않음’을 반복 학습하며 특정 부처 중심의 민관 이권 카르텔로 확장됐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대통령실 파견 관료가 주도하는 심야 회합은 87년 체제 이후 수십 년간 비공식적으로 진행됐다. 이는 가히 밤의 대통령실이라 할 만하다. 대통령실의 업무 내용이 다음날 아침 매체에 바로 보도돼 대통령실이 큰 혼란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 회합이 주요 경로였기 때문이다. 이런 회합에서 ‘규제 장악이 새로운 시대의 권력’이라는 시각이 고착화되며 관료주의를 형성하는 데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후진적 규제 체계가 우리의 관료주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지만 ‘액티브X’로 상징되던 갈라파고스적 정보기술(IT) 규제가 대표적이었다. 또한 고도 자율주행 연구 중 취득되는 이미지 및 동영상 데이터를 하나하나 익명화 처리해야 하는 개인정보 보호법은 연구 단계에서부터 진행을 막는 신종 규제로, 과학기술과 산업 선진화를 가로막는 후진적 체계의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후진적 규제 체계로 인해 87년 체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민주화에도 이전 체제의 산업화 성과를 창의적으로 승계하지 못했다. 그 결과 경제 민주화가 아닌 경제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는 단순한 비효율성을 넘어 국가 경제 경쟁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문제인 공공의 부패로 자리잡았다. 과학기술 성과가 국가 선진화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규제 선진화가 우선돼야 한다. 단편적인 규제 샌드박스 같은 이벤트로는 근원적인 연구개발이나 첨단 산업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대선은 공허한 ‘정권 교체’와 ‘개헌’이 아니라 ‘후진적 규제 체계의 선진화를 위한 관료주의 타파’가 핵심 의제로 선결돼야 한다. 관료주의 타파로 시작하는 규제 체계의 선진화야말로 유능한 정치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며, 87년 체제라는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제7공화국으로 시대를 교체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 보수 심장 대구 찾은 김동연, “7공화국 만들어 삶 교체·통합”

    보수 심장 대구 찾은 김동연, “7공화국 만들어 삶 교체·통합”

    김동연 경기지사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광주를 방문한 데 이어 우리나라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로 찾았다. 김 지사가 도지사 취임 이후 공식 일정으로 대구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잠룡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지사는 27일 오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자리한 ‘2·28 민주운동기념탑’을 찾아 참배하며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한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내일이 2·28민주기념일 65주년이다. 애국의 심장,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제7공화국을 시작하자는 간절한 호소를 드리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며 “이제는 탄핵이나 정권교체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삶의 교체, 그리고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호소를 (대구시민들에게)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의 GRDP가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꼴찌인 17위이다. 유일하게 1인당 GRDP가 3000만 원이 안 되는 도시가 바로 대구”라며 “경제를 살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제7공화국의 새로운 출범 그리고 삶의 교체 그리고 지금 찢어진 대한민국의 통합 이런 것을 통해서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통한 우리 국민의 미래 먹거리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서문시장 방문해서 서민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 말씀도 들어보고 제가 구상하는 경제정책의 새로운 것들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그런 계기로 삼고자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참배를 마친 뒤 2·28민주운동기념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특강을 하며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지사는 내일(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동한다.
  • [전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후진술

    [전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후진술

    존경하는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리고 이 재판을 관심가지고 지켜봐주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84일이 지났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날들이었지만, 감사와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동안 우리 국민들께 참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국민께서 일하라고 맡겨주신 시간에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송구스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국민들께서 여전히 저를 믿어주고 계신 모습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몇 시간 후 해제했을 때는 많은 분들께서 이해를 못하셨습니다. 지금도 어리둥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계엄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과거의 부정적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악용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입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이 나라가 지금 망국적 위기 상황에 처해있음을 선언하는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함께 나서 달라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 윤석열 개인을 위한 선택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대통령에게 가장 편하고 쉬운 길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굳이 벌이지 않고 사회 여러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임기 5년을 안온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일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치열하게 싸울 일도 없고 어려운 선택을 할 일도 없어집니다. 그렇게 적당히 일하면서 5년을 지내면, 퇴임 대통령의 예우를 누리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저 개인의 삶만 생각한다면, 정치적 반대 세력의 거센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비상계엄을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저는 비상계엄을 결심했을 때 제게 엄청난 어려움이 닥칠 것을 당연히 예감했습니다. 거대 야당은 제가 독재를 하고 집권 연장을 위해 비상계엄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내란죄를 씌우려는 공작 프레임입니다.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고작 280명의 실무장도 하지 않은 병력만 투입하도록 했겠습니까? 주말 아닌 평일에 계엄 선포를 하고 계엄을 선포한 후에 병력을 이동시키도록 했겠습니까? 심판정 증거 조사에 의하면, 그나마 계엄 해제 요구 결의 이전에 국회에 들어간 병력은 106명에 불과하고, 본관까지 들어간 병력은 겨우 15명입니다. 15명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이유도, 자신들의 근무 위치가 본관인데 입구를 시민들이 막고 있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불 꺼진 창문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또한, 해제 요구 결의가 이루어진 이후에 즉시 모든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투입된 군 병력이 워낙 소수이다 보니, 국회 외곽 경비와 질서 유지는 경찰에 요청했습니다. 부상당한 군인들은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은 단 한 명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국방부장관에게 이번 비상계엄의 목적이 ‘대국민 호소용’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신속히 뒤따를 것이므로, 계엄 상태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사전에 군 지휘관들에게 그대로 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병력을 실무장하지 않은 상태로 투입함으로써, 군의 임무를 경비와 질서 유지로 확실하게 제한한 것입니다. 많은 병력이 무장 상태로 투입되면, 아무리 조심하고 자제하라고 해도 군중과 충돌하기 쉽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고, 실제 결과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소수 병력, 비무장, 경험 있는 장병, 이 세 가지를 국방부장관에게 명확히 지시한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은 이것을 내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병력 투입 2시간이 불과 시간도 안 되는데,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방송으로 전 세계, 전 국민에게 시작한다고 알리고, 국회가 그만두라고 한다고 바로 병력을 철수하고 그만두는 내란을 보셨습니까?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하고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거대 야당의 주장은, 어떻게든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정략적인 선동 공작일 뿐입니다. 대통령의 법적 권한인 계엄 선포에 따라 계엄 사무를 하고 질서 유지 업무를 담당한 공직자들이, 이러한 내란 몰이 공작에 의해 지금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합니다. 이 분들이 대통령의 장기독재를 위해 일을 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장기독재를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분들이고,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 더 바랄 것도 없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대통령의 법적 권한 행사에 따라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한 것뿐입니다.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대통령의 자리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국정을 살피다 보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들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얼마 뒤면 큰 위기로 닥칠 일들이 대통령의 시야에는 들어옵니다. 서서히 끓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습니다. 언제 위기가 아닌 때가 있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위기가 돌발 현안 수준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국가 존립의 위기, 총체적 시스템의 위기라는 점에서 그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투입했습니다. 미국이 국가비상사태인가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와 마약 카르텔, 그리고 에너지 부족 등 미국이 당면한 위기에 맞서, 미국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의 결단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들과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세력이 연계하여,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짜뉴스, 여론조작, 선전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당장 2023년 적발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만 봐도, 반국가세력의 실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여 직접 지령을 받고, 군사시설 정보 등을 북한에 넘겼습니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총파업을 하고, 미국 바이든 대통령 방한 반대, 한미 연합훈련 반대, 이태원 참사 반정부 시위 등 활동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북한의 지시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지난 대선 직후에는 “대통령 탄핵의 불씨를 지피라”면서 구체적인 행동 지령까지 내려왔습니다. 실제로 2022년3월26일 ‘윤석열 선제 탄핵’ 집회가 열렸고, 2024년 12월 초까지 무려 178회의 대통령 퇴진, 탄핵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집회에는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 언론노조 등이 참여했고, 거대 야당 의원들도 발언대에 올랐습니다. 북한의 지령대로 된 것 아닙니까?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첩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체제 전복 활동으로 더욱 진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간첩 활동을 막는 우리 사회의 방어막은 오히려 약해지고 곳곳에 구멍이 난 상태입니다. 지난 민주당 정권의 입법 강행으로 2024년 1월 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박탈되고 말았습니다. 간첩단 사건은 노하우를 가진 기관에서 장기간 치밀하게 내사 수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경찰에 대공수사권이 넘어가 버렸습니다. 간첩이 활개치는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게다가 애써 잡아도 재판이 장기간 방치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간첩 사건이 민노총 간첩단, 창원 간첩단, 청주 간첩단, 제주 간첩단 등 4건이나 됩니다. 그런데, 청주 간첩단 사건은 1심 판결까지 29개월이 넘게 걸렸고, 민노총 간첩단 사건도 1심 판결에 1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이들은 구속 기간 만료 후 석방되어, 1심 판결로 법정구속이 될 때까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현재 창원 간첩단 사건은 2년 가까이 재판이 중단되어 있고, 제주 간첩단 사건도 1년 10개월 째 재판이 파행 중입니다. 이들도 모두 석방된 상태입니다. 간첩을 잡지도 못하고, 잡아도 제대로 처벌도 못하는데, 이런 상황이 과연 정상입니까? 그런데도 거대 야당은 민노총을 옹호하기 바쁘고,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에 이어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대공수사에 쓰이는 특활비마저 전액 삭감해서 0원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간첩을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중국인들이 드론을 띄워 우리 군사기지, 국정원, 국제공항과 국내 미군 군사시설을 촬영하다 연이어 적발됐습니다. 이들을 간첩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거대 야당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국가 핵심기술을 유출하는 산업 스파이도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기술 유출 피해가 수십조 원에 달하는데, 3분의 2가 중국으로 유출됩니다. 중국은 사진 한 장만 잘못 찍어도 우리 국민을 마음대로 구금하는 강력한 ‘반간첩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거대 야당은 산업 스파이를 막기 위한 간첩죄 법률 개정조차 가로막고 있습니다. 또한, 거대 야당은 방산물자를 수출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방산 비밀 자료를 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거대 야당이 반대하면 방산물자 수출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국회에 제출된 방산 비밀 자료들이 제대로 보안 유지가 되며, 적대 세력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방산 기밀 자료가 이렇게 유출되면 상대국에서 우리 방산 물자를 수입하겠습니까? 북한, 중국, 러시아가 원치 않는 자유세계에 방산 수출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방산 수출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닙니다. 수출 상대국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더 나아가 자유세계 많은 국가들과 국방협력을 이뤄서, 우리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산 수출을 권장하기는커녕 방해하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거대 야당은 우리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군을 무력화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파병하며, 러시아와 군사 밀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안보 위협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살피기 위해 참관단을 보내려하자 거대 야당은 당시 신원식 국방장관 탄핵까지 겁박하며 이를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심지어 거대 야당은 우크라이나 참관단 파견, 대북 확성기와 오물 풍선 대응 검토 등, 우리 군의 정당한 안보 활동까지 외환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대통령을 ‘전쟁광’이라고 비난하고,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합동 훈련을 ‘극단적 친일 행위’ 라고 매도했습니다. 1차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한 것이 탄핵 사유라고 명기하기까지 했습니다. 190석에 달하는 무소불위의 거대 야당이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 편이 아니라, 북한, 중국, 러시아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이뿐이 아닙니다. 거대 야당은 핵심 국방 예산을 삭감하여 우리 군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거대 야당은 전체 예산 가운데 겨우 0.65%를 깎았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0.65%가 어디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사람의 두 눈을 빼놓고, 몸 전체에서 겨우 눈알 두 개 뺐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거대 야당이 삭감한 국방예산은 우리 군의 눈알과 같은 예산입니다. 북한 핵과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의 핵심인 정찰자산 예산을 대폭 삭감했습니다. 핵심 전력인 지위정찰사업 예산을 2024년 대비 4852억원 감액했고, 전술 데이터링크 시스템 성능 개량 사업은 무려 78%를 삭감했습니다. 우리 국민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KAMD, 즉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도 예산 삭감으로 개발이 중단될 위기입니다. 장거리 함대공 유도탄 사업을 위해 예산 119억 5900만 원을 책정했지만, 96%를 삭감하고 5억원만 남겼습니다. 정밀유도포탄 연구개발 사업은 84%를 삭감했습니다. 아무리 주먹이 세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싸울 수 없듯이, 감시정찰 자산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무기도 무용지물입니다. 게다가, 최근 북한의 드론 공격이 가장 큰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드론 방어 예산 100억원 가운데 무려 99억 5400만원을 깎아서, 사업을 아예 중단시켰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이렇게 핵심 예산만 딱딱 골라 삭감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지난 민주당 정권은 국군 방첩사령부의 수사요원을 2분의 가1 량 대폭 감축하여, 군과 방산에 대한 정보활동과 방첩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또, 과거 간첩사건과 연루된 인물을 국정원의 주요 핵심 간부로 발령내서, 방첩 기관인지 정보 유출 기관인지 모를 조직으로 방치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정부 시절 이런 일들을 주도한 인물들이, 여전히 거대 야당의 핵심 세력으로서 국가 안보를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 들어, 국정원이 국가안보의 중추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였고, 국군 방첩사의 역량 보강을 위해 힘썼습니다만, 아직 문제의 뿌리를 제대로 다 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부수고 깨뜨리기는 쉬워도, 세우고 만들기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시·사변에 못지않은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거대 야당은 야당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탓하기 전에, 공당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와 신뢰를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원칙, 국가안보, 핵심 국익 수호만 함께 한다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기꺼이 대화하고 타협할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에 좌파, 우파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공산당 1당 독재, 유물론에 입각한 전체주의가 다양한 속임수로 우리 대한민국에 스며드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이런 세력과 타협하고 흥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와 교역도 할 수 있고, 국제협력, 상호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스며드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국방안보만큼 중요한 정치안보입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공당이라면 이런 세력을 옹호하고 이런 세력과 손잡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거대 야당은 제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대통령 선제 탄핵을 주장했고,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 왔습니다. 거대 야당은 이러한 폭주까지도 국회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국회의 헌법적 권한은 국민을 위해 쓰라고 부여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부 기능을 마비시키는데 그 권한을 악용한다면, 이는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는 국헌 문란에 다름 아닙니다. 또한, 거대 야당은 제가 비상계엄으로 국회의 권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며 내란 몰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 야당은 제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정부의 권능을 마비시켜 왔습니다. 마치 정부를 마비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국회의 권한을 마구 휘둘러 왔습니다.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출입도 막지 않았고 국회 의결도 전혀 방해하지 않은 2시간 반짜리 비상계엄과,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줄탄핵, 입법 예산 폭거로 정부를 마비시켜 온 거대 야당 가운데, 어느 쪽이 상대의 권능을 마비시키고 침해한 것입니까? 거대 야당은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방통위원장, 검사 감사 , 원장에 이르기까지 탄핵하고, 탄핵하고, 또 탄핵했습니다. 탄핵 사유가 되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대 야당 대표를 노려봤다고 장관을 탄핵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탄핵해서 직무를 정지시켜놓고, 정작 헌재 탄핵심판에서는 탄핵 사유를 변경하는 황당한 일도 반복해 왔습니다. 얼마 전 중앙지검장 등 검사들에 대한 탄핵심판을 재판관 여러분께서 직접 진행하시지 않았습니까? 기자회견장에서 거짓말을 했다는데 실제로는 그 기자회견에 나오지도 않았고, 국정감사에서 허위증언을 했다는데 정작 국정감사에 출석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탄핵사유조차 틀렸는데도, 일단 직무부터 정지시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입니까? 거대 야당의 공직자 줄탄핵은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차원을 넘어, 헌정질서 붕괴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거대 야당은 연일 진상규명을 외치면서, 참사를 정쟁에 이용했습니다. 급기야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민노총 간첩단에게 보낸 지령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번 특대형 참사를 계기로 사회 내부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과 같은 정세 국면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한 분출시켜라’ 거대 야당이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단과 사실상 똑같은 일을 벌인 것입니다. 이야말로 사회의 , 갈등과 혼란을 키우는 ‘선동 탄핵’이라 할 것입니다. 거대 야당은 자신들의 당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도 줄줄이 탄핵하고, 서울중앙지검장까지 탄핵했습니다. 검사 탄핵은 그 자체로도 수사 방해지만, 검사 탄핵을 지켜보는 판사들에 대한 겁박이 되기 마련입니다.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고, 야당 대표의 범죄를 심판할 판사들까지 압박하기 위한 ‘방탄 탄핵’인 것입니다. 급기야 거대 야당은 지난 정부의 이적행위를 감사하던 감사원장까지 탄핵했습니다. 거대 야당은 감사원장 탄핵소추안에 ‘사드 정식 배치 고의 지연 의혹’ 감사를 탄핵 사유로 포함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민주당 정부의 안보 라인 고위직 인사 4명이 주한 중국대사관 무관에게 사드 배치, 작전명, 작전 일시, 작전 내용 등 국가 기밀 정보를 넘겨준 간첩 사건입니다. 감사원은 이를 적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감사 조치를 진행하였는데, 이것이 탄핵 사유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간첩 행위를 무마하기 위한 ‘이적 탄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헌법 파괴 행위지만, 이적 행위까지 탄핵으로 덮는 것을 보며 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망국적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 한편 정부 각 부처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사용 집행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산하기관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처의 수장들을 탄핵소추로 직무정지시켜 그 부처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심각하게 저해한다면, 기회비용과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국가와 국민에 얼마나 막대한 피해와 손해를 입히는 것이 되겠습니까? 거대 야당은 공직자를 무차별 탄핵소추하고 소추인단 변호사 비용도 국민 세금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억울하게 탄핵소추된 공직자들은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자기 개인 자금으로 변호사 비용까지 조달해야 합니다. 정부 공직자들은 거대 야당의 이러한 폭거에 한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거대 야당은 ‘선동 탄핵’, ‘방탄 탄핵’, ‘이적 탄핵’으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거 가운데 대통령 선거가 기간도 가장 길고 국민적 관심도 가장 큽니다. 그만큼 직선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은 다른 선출직 공직자에 비해 그 무게가 다릅니다.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은 한마디로 대통령 직선제 확보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대 야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동조세력과 연대하여,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자를 상대로 선제 탄핵, 퇴진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지난 2년 반 동안 오로지 대통령 끌어내리기를 목표로 한 정부 공직자 줄탄핵, 입법과 예산 폭거를 계속해 왔습니다. 헌법이 정한 정당한 견제와 균형이 아닌, 민주적 정당성의 상징인 직선 대통령 끌어내리기 공작을 쉼 없이 해온 것입니다. 이것이 국헌문란이 아니면 도대체 어떤 것이 국헌문란 행위이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거대 야당의 이런 지속적인 국헌문란 행위는, 국가 정체성과 대외 관계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과 동떨어진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선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줄탄핵, 입법 예산 폭거는 어느 면에서 보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를 가지고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제왕적 거대 야당의 폭주가 대한민국 존립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계엄 이후 벌어진 일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정말 제왕적 대통령이라면, 공수처, 경찰, 검찰이 앞 다퉈서 저를 수사하겠다고 나서고,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가 영장 쇼핑, 공문서 위조까지 해가면서 저를 체포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상 계엄에 투입된 군 병력이 총 570명에 불과한데, 불법적으로 대통령 한 사람 체포하겠다고 대통령 관저에 3000~40000 명이 넘는 경찰력을 동원했습니다. 대통령과 거대 야당 가운데, 어느 쪽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까? 제가 비상계엄을 결단한 이유는, 이 나라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주권자인 국민들께 이러한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리고, 국민들께서 매서운 감시와 비판으로 이들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자 했습니다. 국정 마비와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입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가 위기 상황과 비상사태에 처해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국민을 억압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께서 비상사태의 극복에 직접 나서주십사 하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그런데 거대 야당은 제가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계엄을 해제한 그날부터 탄핵 시동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비상계엄은 범죄가 아니고,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행사입니다. 저는 긴급 국무회의를 거쳐 방송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질서 유지를 위해 국회에 최소한의 병력을 투입했으며, 국회가 해제 요구 결의를 하자 즉각 병력을 철수하고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계엄을 해제했습니다. 다 알고 계시다시피, 2023년 중앙선관위를 포함한 국가기관들이 북한에 의해 심각한 해킹을 당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이 같은 사실을 국정원으로부터 통보받고도 다른 국가기관들과 달리 점검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한 일부 점검 결과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중앙선관위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입니다. 선거의 공정과 직결되는 중앙선관위의 전산시스템 보안 문제는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 공공재이자 공공 자산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선거 소송에서 드러난 다량의 가짜 부정 투표용지, 그리고 투표 결과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통계학과 수리과학적 논거 등에 비추어, 중앙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에 대한 투명한 점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런 조치들의 어떤 부분이 내란이고 범죄라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비상계엄 자체가 불법이라면 계엄법은 왜 있으며, 합동참모본부에 계엄과는 왜 존재합니까?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는 2021년 6월 29일 처음으로 정치 참여를 선언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영광의 길이 아니라 형극의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직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신 어떤 분은, 우리나라 대통령직은 저주의 길이라면서, 저를 만류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라는 헌정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정치 참여를 선언하면서, 국민께 드린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분들, 이런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청년들이 마음껏 뛰는 역동적인 나라,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나라, 국제 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국민께 약속을 드렸습니다. 거대 의석과 이권 카르텔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는 데 맞서,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드리겠다고 국민 앞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이 약속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된 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습니다. 글로벌 복합위기로 인한 대외 환경의 어려움이 계속 됐습니다. 지난 민주당 정부의 잘못된 소주성 정책과 부동산 정책은, 우리 경제와 민생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계속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라도 노력하면 풀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우리 기업, 우리 국민과 함께 뛰면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기쁘고 보람있는 일도 많았고, 부족하고 아쉬운 일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지키는 제복 입은 공직자에 대한 처우 개선 추진이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지난 민주당 정권은 반일 선동에만 열을 올렸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질렀고, 우리 인구의 두배 반이 넘는 경제강국 일본과 수출액 차이가 이제 불과 수십억 불 규모로 좁혀졌습니다. 20년 전에 비해 100분의 1, 지난 민주당 정부에 비해 수십분의 1로 줄어든 것입니다. 또, 작년에 서른 번이나 열었던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기억이 많이 납니다. 국민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많은 일을 현장에서 해결해 드리면서, 국민과 같이 웃기도 했고 같이 울기도 했습니다. 수도권, 영남, 호남, 충청, 강원, 제주까지, 전국 모든 지역을 다니면서, 지역 발전 방안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우리 국민들께서 전국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서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다시 그렇게 일할 기회가 있을까, 마음이 아립니다. 1박 4일의 살인적 일정으로 미국에 가서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발표했을 때는 정말 보람이 컸고 마음도 든든했습니다. 방산 수출의 물꼬를 트고, 팀코리아가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을 때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아쉬웠던 순간도 떠오릅니다. 기업과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법안들은 하염없이 뒤로 미뤄놓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위헌적 법안, 핵심 국익에 반하는 법안들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될 때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국방, 치안, 민생을 위해 꼭 필요한 아킬레스건 예산들이 삭감됐을 때는 막막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잠시 멈춰 서 있지만, 많은 국민들, 특히 우리 청년들이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주권을 되찾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망국적 위기 상황을 알리고 헌법제정권력인 주권자들께서 나서주시기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비상계엄의 목적을 상당 부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진심을 이해해주시는 우리 국민, 우리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되면, 나중에 또 다시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로 이미 많은 국민과 청년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나라 지키기에 나서고 계신데, 계엄을 또 선포할 이유가 있습니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동안 심판정에서 다뤄진 쟁점들 가운데, 두 가지 쟁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세세한 사실관계를 언급하기보다 상식의 선에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제가 국회의 , 원을 체포하거나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의원들을 체포하고 끌어내서 계엄 해제를 늦추거나 막는다 한들, 온 국민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그 다음에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엄 당일 국회의장의 발언대로, 국회는 어디서든 본회의를 열어서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나 소설에는 나오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을 하려면 군으로 국가를 완전 장악하는 계획과 정치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이 그랬습니까? 계엄 사무를 담당할 주요 지휘관들이 비상계엄 직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심판정 증거 조사에서 다 드러났습니다. 장관 재가를 받아 지방 휴가를 가거나, 부부 동반 만찬, 간부 만찬 회식을 하다가 계엄이 선포된 직후에야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았습니다. 준비된 치밀한 작전 계획이나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혼선과 허술함도 있었습니다. 국방부장관이나 지휘관들이나 경험이 풍부한 군사 전문가들인데 왜 이랬겠습니까? 12.3 계엄 선포는 계엄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이고 과거 계엄과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민주주의를 수십 년 경험하고 몸에 밴 우리 50만 군이, 임기 5년 단임 대통령의 사병 역할을 할 리가 있습니까? 제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는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국회의 망국적 독재로 나라가 위기에 졌으니, 이를 인식하시고 감시와 비판의 견제를 직접 해주십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화국의 대의제 위기에 헌법제정권력인 주권자가 직접 나서달라는 호소였습니다. 의원을 체포하거나 끌어내라고 했다는 주장은, 국회에 280명의 질서 유지 병력만 계획한 상태에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국회가 비어있는 주말도 아니고, 회기 중인 평일에 이런 병력으로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국회의원만 300명이고,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을 합치면 몇 천 명이 넘습니다. TV 생중계를 보더라도, 계엄 선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국회 경내와 본관에는 수천 명의 국회 관계자와 민간인들이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계엄 선포후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질서유지 병력이 도착하였고, 국회 경내에 진입한 병력이 106명, 본관에 들어간 병력이 겨우 15명인데,이렇게 극소수 병력을 투입해 놓고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끌어내라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게다가 “의결정족수가 차지 않았으니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는데, 의결정족수가 차지 않았으면 더 이상 못 들어가게 막아야지 끌어낸다는 것은 상식에 반합니다. 본관에 진입한 군인들은 본회의장이 어딘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무엇 하나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도 끌려 나오거나 체포된 일이 없었으며, 군인이 민간인에게 폭행당한 일은 있어도 민간인을 폭행하거나 위해를 가한 일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는 것과 같은 허황된 것입니다. 거대 야당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에 기해서 선포된 계엄을 불법 내란으로 둔갑시켜 탄핵소추를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헌법재판소 심판에서는 탄핵 사유에서 내란을 삭제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기탄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란이냐 아니냐는 긴 시간의 복잡한 심리를 통해 가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란이냐 아니냐는 판례에서 보듯이 실제 일어난 일과 진행된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고, 누가 봐도 쉽게 바로 알 수 있어야 내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대 야당과 소추단이 헌재 심판 대상에서 내란을 삭제한 이유는, 심리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란의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12.3 계엄은 발령부터 해제까지 역사상 가장 빨리 종결된 계엄입니다. 그러다보니 계엄사령부 조직도 구성되지 못했고, 예하 수사 본부 조직도 만들어지지 못한 채, 그냥 계엄이 종료되었습니다. 겨우 몇 시간 평화적으로 진행된 계엄을 내란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비상계엄 국무회의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계엄 당일 국무회의는 국무회의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무회의를 할 것이 아니었다면, 12월 3일 밤에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실에 도대체 왜 온 것입니까? 국무회의가 아니라 간담회 정도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날 상황이 간담회 할 상황입니까? 간담회는 의사정족수도 없는데, 왜 국무회의 의사정족수가 찰 때까지 기다렸겠습니까? 당일 저녁 8시 30분부터 국무위원들이 차례로 오기 시작했고, 저는 국무위원들에게 비상계엄에 대해 설명하고, 국방부장관이 계엄의 개요가 기재된 비상계엄선포문을 나눠주었습니다. 국무위원들은 경제적, 외교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고, 저는 대통령으로서, 각 부처를 관장하는 국무위원들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가 비상상황이고 비상조치가 필요함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각 부처 장관의 우려 사항, 예를 들어 경제부총리의 금융시장 혼란 우려와 외교부장관의 우방국 관계 우려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국무위원들이 과거의 계엄을 연상하고 있어서,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의사정족수 충족 이후 국무회의 시간은 5분이었지만, 그 전에 이미 충분히 논의를 한 것입니다. 다음날 새벽 계엄 해제 국무회의는 소요시간이 단 1분이었습니다. 실제 정례, 주례 국무회의의 경우에도, 모두 발언 마무리 , 발언 등을 하고 많은 안건을 다루기 때문에 1시간 가량 걸리지만, 개별 안건의 심의 시간은 극히 짧습니다. 또한 비상계엄을 위한 국무회의를, 정례, 주례 국무회의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보안 유지가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 혼란도 줄이고 질서유지 병력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은 지난 심판정에서 “국무회의를 100 여 차례 참석했지만, 이번 국무회의처럼 실질적으로 열띤 토론이나 의사 전달이 있었던 것은 처음” 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국무회의 배석을 위해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을 대통령실로 나오도록 했고, 국가안보의 문제이기도 해서 국정원장도 참석시켰습니다. 1993년 8월 13일 김영삼 대통령께서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발표했을 당시에도, 국무위원들은 소집 직전까지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고, 국무회의록도 사후에 작성됐습니다. 그때 상황은 이인제 당시 노동부장관께서 이미 자세히 설명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두고 국무회의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고, 당시 헌법재판소는 긴급명령 발동을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밖의 여러 쟁점들에 대해서는 변호인단의 변론으로 갈음하겠습니다. 헌법재판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는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제가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래서, 임기 전반부 동안 역대 정부들이 표를 잃을까봐 하지 못했던 교육, 노동, 연금의 3대 개혁을 중심으로 국정개혁과제를 과감하게 추진했습니다. 3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유보통합의 첫걸음을 떼었고, 늘봄학교와 융복합 고등교육, 그리고 지역 산업과의 연계 강화를 위한 과감한 권한 이전 등 교육개혁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노사법치의 틀을 새롭게 세우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동 유연화와 노동보호의 노동개혁 물꼬도 텄습니다. 국가적 난제였던 연금개혁도, 역대 정부 최초로 방대한 수리 분석과 심층 여론 조사를 진행하였고, 수용성이 높은 방안을 만들어서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국민과 유권자에게 약속한 공약과 국정과제의 실천, 민생에 영향이 큰 사회개혁의 추진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러한 스케줄에 맞춰 일해 온 것입니다. 어느 정권이나 임기 초기에는 선거 공약과 국정과제 이행이 우선이므로,정치개혁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전직 대통령들의 5년 임기가 금방 다 지나갔고,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는 87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치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또,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와 행정의 문턱을 더 낮춰야 합니다.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미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임기 중반 이후에는 개헌과 선거제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희생과 결단 없이는 헌법 개정과 정치개혁을 할 수 없으니, 내가 이를 해내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 전직 대통령들이 후보 시절 공약하고도 이행하지 못한 청와대 국민 반환도 당선 직후 바로 추진하고 이행한 바 있습니다. 잔여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여,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하여,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개헌과 정치개혁 과정에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도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결국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가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정, 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하여,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입니다. 우리 경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질서의 급변과 글로벌 경제 안보의 , 불확실성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국가노선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글로벌 중추 외교 기조로 역대 가장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하고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냈던 경험으로, 대외관계에서 국익을 지키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존경하는 헌법재판관 여러분, 먼저, 촉박한 일정의 탄핵심판이었지만, 충실한 심리에 애써주신 헌법재판관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심리는, 내란 탄핵에서 내란 삭제를 주도한 소추단 측이 제시한 쟁점 위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 제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와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드릴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면으로 성실하게 관련 자료를 제출하였으니, 대통령으로서 고뇌의 결단을 한 이유를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많은 국가 기밀정보를 다루는 대통령으로서 재판관님들께 모두 설명드릴 수 없는 부분에까지 재판관님들의 지혜와 혜안이 미칠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재판관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합니다. 저는 대통령에 출마할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지난 12.3 계엄과 탄핵 소추 이후 엄동설한에 저를 지키겠다며 거리로 나선 국민들을 보았습니다. 저를 비판하고 질책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를 지금까지 믿어주시고 응원을 보내주고 계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꾸짖는 국민의 질책도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청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도 계엄 목격…尹 파면해야”

    정청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도 계엄 목격…尹 파면해야”

    탄핵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12·3 내란의 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도 계엄을 목격했다”며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지난 4일 변론에서 “(계엄 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 같은 걸 쫓는 느낌”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25일 정 위원장은 “전 국민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무장한 군인들의 폭력 행위를 봤다”며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파면해야 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이미 성숙 돼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로부터 나라를 지킨 것도 국민”이라며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들 교육해 오늘날 민주화 산업화를 이뤄낸 주인공도 국민이고, 올림픽 금메달 스포츠 강국을 이룬 것도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은 나라와 헌법을 사랑하는 국민을 총칼로 죽이려 했고, 피로 쓴 민주주의의 역사를 혀로 지우려 했다”고 비난했다.
  • 광주서 ‘이 흉내’ 낸 中틱톡커 ‘경악’…“조롱이다” 서경덕도 분노했다

    광주서 ‘이 흉내’ 낸 中틱톡커 ‘경악’…“조롱이다” 서경덕도 분노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 흉내를 내며 광주를 돌아다니는 한 중국 틱톡커의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광주 시민을 조롱한 것”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25일 서경덕 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 남성은 ‘폭설과 함께 광주에 전두환이 돌아왔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는데, 이는 그야말로 광주 시민을 조롱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영상 속에서 남성은 5·18민주화운동의 성지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인 광주에 나타났다. 점퍼 차림에 군화를 신고 이마를 훤히 드러낸 채 붉은색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전 전 대통령을 바로 연상케 한다. 이 남성은 광주송적역과 국립광주박물관, 청와대 등에서 영상을 찍었다.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 앞에 서 있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이와 관련해 서 교수는 “어떻게 남의 나라의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해 영상을 제작할 생각을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또 지난 11일 중국 프로축구 구단 산둥 타이산의 일부 홈팬이 광주FC와의 경기 도중 원정 팬 쪽을 향해 전두환·김정은 사진을 펼쳐 들며 도발한 것을 상기하며 “중국인들의 이러한 어이없는 행위들은 중국을 고립국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광주FC 측은 “광주광역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행위”라며 “AFC에 공식 항의 서한을 내고 철저한 조사와 징계를 요구하겠다”고 대응했다. 이에 산둥 타이산은 14일 “일부 관중의 무례한 행동은 결코 산둥 타이산 축구 클럽과 타이산 팬들을 대표할 수 없다”며 사과했다. 구단 측은 해당 팬들에게 홈 경기 영구 관람 금지라는 제재를 가했다. 국제축구협회(FIFA)는 축구 경기에서의 정치적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AFC의 규정에 따르면 경기장에서 특정 국가나 인물을 이용해 상대를 모욕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단에 대해 경기장 폐쇄나 벌금형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 [씨줄날줄] 미·우크라 광물협정

    [씨줄날줄] 미·우크라 광물협정

    2010년 미국 하원 과학기술위원회는 희토류 연구 자금지원 법안을 승인했다. 중국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갈등에서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겠다며 일본을 압박한 시점이었다. 중국의 희토류 시장 장악 움직임은 미중 자원전쟁을 가속화시킨 계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매장 희토류 지분의 50%를 요구하는 광물협정안을 제안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래안보에 대한 보장이 없다”며 거절하자 압박 강도를 높였다. 드론 운용 등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미국의 위성통신망 이용을 끊을 수 있다는 협박이다. 군사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 등의 수익으로 5000억 달러(약 719조원) 규모의 재건기금을 만들어 미국이 관리하는 광물협정안도 제시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운 대가라는 것이다. 5000억 달러는 미국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금의 4배가 넘는 규모다. 협정안에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수복할 경우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원 수익의 66%를 기금에 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세계의 경찰’ 미국은 이제 먼 전설이 되는가 싶다. 전쟁 피해에 허덕이는 우크라이나의 고난을 틈타 이권을 챙기려는 약육강식 논리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전쟁 비용을 회수할 수 있고, 재건 비용을 충당한다는 기금의 목적이 뚜렷하다면 우크라이나로서는 고용 창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관건은 미국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한국식 모델’ 요구가 관철될 수 있느냐다. 72년 전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북한·중국이 전개하는 정전협정을 반대하며 휴전협정 서명을 거부한 끝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따냈다. 세계 유례없는 동맹의 울타리 안에서 산업화·민주화의 토대를 그렇게 마련했다. 이승만의 외교역량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박성원 논설위원
  • “행복하십니까?” 삶 만족도↓…자살률은 다시 최고 수준

    “행복하십니까?” 삶 만족도↓…자살률은 다시 최고 수준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자살률은 상승했다. 한국, 이대로 괜찮을까.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지만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 높은 자살률 등 사회전반의 활력은 약화하고, 빈부격차, 이념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민의 행복 수준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24일 통계청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 상승하던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4년 만에 하락 전환했다. OECD 38개국 중 33위로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반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7.3명으로 상승하며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삶 만족도 6.4점…2019년 이후 첫 하락삶 만족도는 객관적 삶의 조건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0∼10점으로 측정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5.7점에서 지속 상승해 2018년 6.1까지 오른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2023년 6.4점으로 전년보다 0.1점 하락했다. 2019년 6.0으로 하락한 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지속해서 보합·상승했지만, 2023년 4년 만에 다시 하락 전환했다. 가족관계 만족도도 2022년 64.5%에서 2023년 63.5%로 하락했다. 대인 신뢰도 역시 2022년 54.6%에서 2023년 52.7%로 떨어졌다. 기관 신뢰도 또한 52.8%에서 51.1%로 하락했다. 여가 시간은 2022년 4.2시간에서 2023년 4.1시간으로 줄었다. 반면 고용률(62.7%)과 대학졸업자 취업률(70.3%), 사회단체 참여율(58.2%) 등 지표는 2022년보다 개선되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소득 낮을수록 삶 만족도↓ OECD 38개국 중 33위삶의 만족도는 소득수준별로 차이를 보였다.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가구의 삶의 만족도는 5.7점으로 평균보다 0.7점 낮았다. 소득이 100만∼200만원 미만인 가구는 6.1점, 200만∼300만원 미만인 가구는 6.2점이었다. 반면 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가구의 만족도는 6.6점으로 평균을 상회했다. 연령별로 보면 삶의 만족도는 19∼29세와 30∼39세에서 각각 6.5를 기록했다. 40∼49세 삶의 만족도는 6.6이었다. 반면 고령층인 50∼59세(6.4)와 60세 이상(6.2)의 삶의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삶의 만족도는 여전히 최하위권이었다. 세계행복보고서의 국제 비교 결과를 보면 한국의 삶의 만족도는 2021∼2023년에 6.06점으로 OECD 평균(6.69점)보다 0.63점 낮았다. 38개국 중 만족도 순위는 33위로 하위권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만족도가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 콜롬비아, 그리스, 헝가리, 포르투갈 등이었다. 10만명당 자살률 27.3명…2014년 이후 최고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사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하 자살률)은 2022년 25.2명에서 2023년 27.3명으로 상승했다. 자살률은 2011년 31.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하락해 2017년 24.3명까지 떨어졌다. 이후 상승·하락을 반복하다 2023년 비교적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2014년(27.3명) 이후 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자살률이 38.3명으로 더 높았다. 여성의 자살률은 16.5명이었다. 한국의 자살률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OECD에서 작성하는 국제 비교 자료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2021년 10만 명당 24.3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한국 다음은 리투아니아(18.5명), 슬로베니아(15.7명) 순이었다. 2000년 이후 OECD 국가의 자살률은 대부분 하락 추세다. 2000년 자살률이 높았던 라트비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의 국가는 이후 지속 하락해 현재 15명 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 박강산 서울시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사저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서둘러야”

    박강산 서울시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사저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서둘러야”

    서울시의회 박강산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21일 서울시의회 제328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사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마포구는 동교동 사저가 한 개인 사업자에게 매각되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훼손될 우려가 생기자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신청서를 서울시에 제출했고,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제9차 서울특별시 국가유산위원회 기념물분과 회의를 개최하여 10명의 위원이 해당 내용을 심의했으나 보류 판정을 내렸다. 박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당시 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현장조사에는 건축분과 2명과 관계 전문가 2명으로 총 4명이 참여했고 그중 3명은 한국정치사와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에 등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다른 1명은 근현대 문화유산 조건인 건축물의 50년 연한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실제로 동교동 사저에서 1961년부터 거주했으나 철거 및 재건축으로 등기부등본상에는 2000년 건축으로 표기되어 있다”며 “서울시가 한 언론보도를 통해서 이미 입장을 밝혔듯이 건축물이 아닌 기념물 형태로 신속히 심의하고 의결해야 한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11일 KBS의 보도를 통해 동교동 사저 건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터 등을 포함해서 기념물 형태로 심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추가 조사와 서울시의 결정, 국가유산청의 최종 심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한편 국민의힘 소속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현재 김대중재단 권노갑 이사장과 배기선 사무총장 등이 속한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 보존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주길 바란다”는 의견을 표한 바 있다. 이에 박 의원은 “지금의 난세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하다”며 “서울시도 마포구 못지않게 전향적으로 나서주기를 요청한다”고 말하며 서울시의 신속한 로드맵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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