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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경제 민주주의, 고통 분담이 필수 전제 조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10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구체적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며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선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지만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유명무실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을 국가를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나 “일자리 위기를 근본 원인이자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통용된 ‘경제 민주화’ 대신 굳이 경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완성할 최후의 과제가 경제 민주주의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궁극적으로 국가의 존립마저 흔든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현 정부가 경제 민주주의를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로 선언한 것은 도도히 흐르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짚은 것이지만 우리가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5년 전 당선자 신분으로 중소기업인들과 만나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혀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의 대선 공약인 경제 민주화는 재계의 조직적인 반대와 정권의 실천 의지 부족으로 1년도 안 돼 좌초됐다. 이명박 정부 역시 서민 경제를 앞세워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부르짖었지만 일회성 정치적 구호로 막을 내렸다. 현 정부 초기부터 일자리 창출 등을 둘러싸고 재계와 마찰을 빚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민주주의 실천 과정에서 정부의 공정하고 엄격한 법 집행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기득권을 거머쥔 대기업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대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을 강화해 엄정하게 집행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 민주주의가 현실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등 우리 사회 구성원인 경제주체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경제 기득권을 거머쥐고 있는 대기업들이 스스로 고통 분담에 나서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 역시 재벌과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동참해야 경제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날 수 있다.
  • [열린세상] 재벌개혁이 경제민주주의다/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재벌개혁이 경제민주주의다/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대통령 한 사람 바꿨을 뿐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헬조선’ 탈출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헌정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대선 득표율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눈시울 적시는 이벤트도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사이다로 배부를 수는 없다.” 그래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과제로 제시한 경제민주주의는 반드시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다. 작금의 한국 상황에서 경제민주주의는 재벌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주의의 요체이다. 한국 재벌들은 탄생에서부터 민주주의와는 친화성이 없다. 오히려 재벌들은 독재체제의 최대 수혜자였고 민주화의 최대 걸림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의 산업화는 정부에 의한 재벌육성이었고 농민과 노동자는 ‘선성장 후분배론’의 희생양이었다.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 공권력과 재벌들은 근대 산업사회의 기본권인 노동 3권을 유린했다. 기업에 대한 특혜는 총수 개인들에게까지 이어져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법 앞의 평등’을 짓밟았다. 지금도 정경유착이라는 적폐의 중심에 재벌들이 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편법상속을 통해 소위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면서 봉건귀족에 버금가는 신분이 형성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성장이 지연되고 국민경제의 일자리 창출능력이 위축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불안이 고조되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마저 발생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임기 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목표가 출발부터 스텝이 약간 꼬이고 있다. 대통령 방문에 고무되어 모든 비정규직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인천공항공사는 임금 삭감을 뜻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재입사와 자회사 설립을 고려하더니 급기야 노조도 참여하는 ‘좋은 일자리 자문단’을 설치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권고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반대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전국에 30만개 가맹점에서 월매출 5000만원에도 수익이 0이 되는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는 높은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라 본사의 수탈적 ‘갑질’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재벌의 하청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도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와 같은 횡포로 지불능력이 크게 약화되어 종업원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벌개혁을 통해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어야 비로소 중소기업에서도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일자리위원회가 계획하듯이 임금보조를 통해 중소기업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떨어뜨리고 재벌기업에 의한 수탈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할 빌미가 될 수 있다. 재벌개혁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국 현실에서 시장은 경제학원론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되는 독과점시장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들 시장에서는 재벌들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현실에서 “시장친화적 재벌개혁”은 “재벌친화적 재벌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 무중력 공간이 아니라 제도와 관행의 촘촘한 망이라면 재벌개혁은 이 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경제민주주의에 부합되는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실사구시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정 농단의 기억이 생생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지금이 아니면 구조적 재벌개혁과 경제민주주의는 물 건너간다. 경제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재벌개혁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 무상급식 주도한 ‘혁신 아이콘’… 수능·자사고 등 대수술할 듯

    무상급식 주도한 ‘혁신 아이콘’… 수능·자사고 등 대수술할 듯

    경기교육감 때 ‘인권 조례’ 성과… 19대 대선 ‘文선대위원장’ 맡아 수능 절대평가 등 교육공약 설계… 논문 표절·위장전입 의혹 주목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에게는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따라붙는다. 민선 1·2기 경기교육감 시절 보편적 교육복지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금의 진보교육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김 후보자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번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혁신학교 확대, 초·중등교육 권한의 교육청 이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 등을 비롯한 문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설계했다. 이에 따라 일찌감치 이번 정부 첫 사회부총리 교육부 장관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2015년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에서 불거졌던 석사·박사 논문 표절 논란과 위장 전입 의혹이 새롭게 불거지면서 인선이 예상보다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회 통과가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에 청와대가 실제로 다른 후보도 검토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올 7월 발표하기로 한 2021학년도 수능 개선과 고교 내신산출 제도 개선, 올 10월 예정된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 등 전기고 입시계획 발표 등 교육 공약들이 분초를 다툴 정도로 시급한 데다가, 김 후보자가 설계한 교육 공약을 지휘할 인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장관 인선에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각종 교육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교육을 설계한 김 후보자가 이를 풀어나가는 게 합당하며, 진보 교육감 흐름이 이어지는 추세 속에서 집권 초 교육 개혁을 추진하는 데 김 후보자 이외에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집중포화가 예상되지만, 김 후보자가 이를 통과한다면 문 대통령의 교육 공약도 추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공식 석상에서 수능 절대평가가 이뤄지는 시점을 지금 중학교 3학년이 치르는 2021학년도로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1949년 광주 출신인 김 후보자는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경영학 석사, 박사를 수료했다. 1983년 한신대 경영학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한 뒤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전국교수단체연대회의 의장, 전국교수공공부문연구회 회장 등 진보성향 교수단체에서 활동했다. 2009년 14대 경기교육감에 당선된 뒤 15대 교육감을 역임했다. 교육감 연임 등으로 승승장구하다 사퇴하고 2015년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출마했지만, 당내 조직력 등에서 밀리면서 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인 김진표 전 의원에게 패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정치활동을 이어 왔다. 현재 혁신더하기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30주년 맞은 6월 항쟁

    30주년 맞은 6월 항쟁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하면서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6·10 항쟁은 1987년 군부독재에 항거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궐기한 시민항쟁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뉴스 분석] “밥이 민주주의 되어야” 사회적 대타협에 초점

    [뉴스 분석] “밥이 민주주의 되어야” 사회적 대타협에 초점

    노사정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양보·연대·포용으로 격차 완화 경제 권력구조 개편 해석도문재인(얼굴)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민주주의’란 새로운 화두를 던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천명한 경제민주주의는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개념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문재인표’ 경제정책인 J노믹스와도 맞닿아 있다. J노믹스의 철학적 배경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경제민주화’란 표현 대신 ‘경제민주주의’란 표현을 쓸 것으로 알려졌다.여권도 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 일성에 즉각 호응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10일 논평을 통해 “정치권은 새 시대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6·10항쟁 기념사에서 “정치민주화뿐 아니라 사회·경제민주화까지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고 말해 경제민주주의가 여권의 주요 화두로 부상했음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이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제민주주의의 개념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압축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는 동안 사회·정치적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았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는 미성숙해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나타난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분배의 정의(正義)’ 실현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경제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 사회 불평등이 지나치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또한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재벌개혁,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적폐 청산 등 뿌리 깊은 경제 권력구조 개편을 예고한 대목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를 ‘제왕적 대통령’의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경제민주주의를 이룰 핵심적 가치로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제시했으며 “우리가 도약할 미래는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 가는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6·10항쟁의 중심이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이 아니었듯 경제민주주의의 주체 역시 노사정 등 모든 경제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적으로 경제민주주의가 바라는 ‘이상 사회’는 완전한 고용과 그에 상응한 사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진 복지사회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정부의 시장경제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창출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무상급식 도입 주도 ‘혁신의 아이콘’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무상급식 도입 주도 ‘혁신의 아이콘’

    청와대는 11일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자오간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상곤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대표적인 진보성향 인사로, 교육계 내에서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경기도교육감 시절 무상급식을 비롯한 공교육 정상화 정책을 추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1959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 내정자는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1971년에는 교련반대운동 등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후 강제 징집되기도 했다. 서울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83년부터 2009년까지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6년에는 6월 항쟁 교수선언을 주도하고 이듬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창립을 주도해 1995년부터 3년간 민교협 공동의장을 맡았다. 김 후보자는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격 사퇴, 경기도지사 경선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곧이어 7·30 수원을(권선) 재선거 당시 공천을 신청했지만, 전략공천을 통해 당시 백혜련 변호사가 낙점되면서 여의도 입성에 실패했다. 이후 ‘혁신더하기연구소’를 창립, 공공부문의 정책 혁신에 대한 연구작업을 이어가면서 정치혁신을 주제로 책을 준비하는 등 정치 무대로의 재기를 모색했다. 김 후보자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기구 위원장을 맡으며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쇄신작업 전권을 부여받아 ‘혁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작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 8·27 전당대회 때 당권에 도전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이번 대선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 광주(68) ▲ 광주제일고-서울대 경영학과 ▲ 서울대 총학생회장 ▲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교무처장 ▲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장 ▲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 한국산업노동학회장 ▲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 경기도교육청 14·15대 교육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공동중앙선대위원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6월 항쟁 30주년, 거리의 사람들

    ‘그것이 알고싶다’…6월 항쟁 30주년, 거리의 사람들

    10일 밤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정신을 통해 평범한 시민들이 이끈 변화를 돌아본다.이날 1079회는 ‘6월 항쟁 30주년 - 거리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방송된다. 45년째 명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탁필점 할머니는 “전경들이 저리 올라가면 내가 셔터 올려 빨리 가, 전경들 나갔으니 빨리 가, 그럼 학생들 우 도망가요”라며 30년 전 6·10 민주항쟁 당시를 회상했다. 탁필점 할머니는 지금도 명동의 거리를 보면 그 날이 선명히 떠오른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호를 외치던 날, 전경을 피해 최루탄을 피해 도망치는 학생들을 가게 안으로 숨겨줬다. 당시 한양대 간호학과 학생이었던 유진경씨는 “부상자가 분명히 생길 거 같으니까 그냥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냥,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내가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유씨는 친구들과 의료진단에서 함께 활동했다. 다치는 사람이 생기면 치료를 하는 것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내 일’ 이었다고 회상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했던 30년 전 6월 거리 위의 사람들의 표현은 달랐지만 바람은 같았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의한 희생은 사람들을 거리로 모이게 했고 함께 분노하고 행동하게 했다. 1987년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한국(현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창근씨는 “누가 자기 목숨이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고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1987년 당시 택시기사였던 박채영씨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사람(허세욱)이 FTA를 반대하고 어..청바지가 다 타가지고서 그 바지에서 떨어진 건 동전 서너 개더라... 남은 게”라고 전했다. 노동조합을 만든 주동자로, 85년도 한국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창근 씨. 5년 만에 복직이 됐지만 IMF이후 구조조정을 이유로 2002년에 또 다시 해고된다. 사측은 민영화 반대 파업을 하는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정당한 파업도, 요구도 그저 불법으로 치부됐다. 창근 씨의 동료 고(故) 배달호 씨는 분신으로서 부당함에 저항했다. 박채영 씨 역시 동료를 잃었다. 본인의 권유로 택시 노조에서 함께 활동하던 고(故) 허세욱 씨. 2007년 4월 1일 한미 FTA 협상을 중단하라며,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분신했다. 그의 유서엔, 본인을 위해 모금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모두 다 ‘비정규직이니까’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건 일상의 삶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 위에서 부딪히며 이루어 낸 민주주의가 왜 그들에겐 희망이 되지 못한 걸까. 87년 6월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부상자 박철희씨는 “삼성중공업에 딱 소속된 분들만 중공업 인이지 저희들은 그냥 노가다더라고요. 현장에서 일하는 노가다. 환경자체는 굉장히 위험하고”라고 말했다. 철희씨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을 동생을 생각하며 떠올렸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형제는 일을 나갔다. 납기일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공정이 진행된 탓에 혼재해서 이루어져선 안 될 작업들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골리앗 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이 부딪히며 임시휴게소를 덮쳤다. 짧은 휴식 틈에 일어난 사고, 이 날 사상자는 서른한 명 모두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철희씨는 눈앞에서 동생의 사고 장면을 봤다. 끝내 동생은 목숨을 잃었다. 적은 돈으로 짧은 기간 안에 일을 끝마치기 위해 원청이 고용한 하청업체 직원들은 원청의 이윤을 위해 상주하는 위험 속에 놓여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30년 전의 바람. 여전히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다. 부산의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독재타도에 맞섰던 고(故) 이태춘씨. 아들을 잃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 여든 여섯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씨의 어머니인 박영옥씨는 “너 민주화 운동 잘했다. 우리나라 네가 죽고 나서 다 잘 되고 잘 산다”라고 말했다.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묻고, 앞으로 함께 나아갈 민주주의를 고민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10 민주항쟁 30주년…문 대통령, 이한열 어머니·박종철 형과 ‘광야에서’ 제창

    6·10 민주항쟁 30주년…문 대통령, 이한열 어머니·박종철 형과 ‘광야에서’ 제창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촛불집회의 의미를 되새겼다.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이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박종철 열사의 형인 박종부 씨와 자리에서 일어나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가요인 ‘광야에서’를 제창했다. 문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07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었다. 검은색 정장에 감색 넥타이를 맨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함세웅 신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스님 등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다. 이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 내외의 옆자리에는 배은심 여사와 박종부 씨가 앉았다. 4부 요인이나 정당대표 대신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상징성을 가진 인사를 예우한다는 뜻을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앞서 국가 행사의 의전 양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배 여사와 박 씨 외에도 대통령 주변에는 시민사회 원로 인사와 6·10 항쟁 희생자 유족들이 자리했다. 지선스님은 문 대통령에게 “그간 억눌린 많은 바람이 있으시겠으나 한꺼번에 이를 이룰 수 없는 상황도 함께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엷은 미소를 띠며 이를 들은 문 대통령은 지선스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6·10 민주항쟁과 촛불집회로 민주주의를 이어온 시민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강조했다. 30년 전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문 대통령은 “청년부터 원로까지, 제주에서 서울까지, 영호남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함성,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은 시대의 흐름을 독재에서 민주로 바꿔냈고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았다”며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고 덧붙였다. 행사장에 상영된 기념 영상에 30년 전 6월 항쟁 당시 친구인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거리 시위에 나선 사진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잠시 감상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6·10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문 대통령이 정치분야에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숙단계에 올라섰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으로서의 민주주의’인 경제 민주화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본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새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경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키워드로는 ‘통합’을 제시했다. 지역과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이 전제되지 않고는 실질적 개혁과 진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의미가 기념사에 녹아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5·18 기념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 현충일 추념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천명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4·19 혁명부터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고,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경제 민주화’ 대신 ‘경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썼다. 10년 전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6·10 항쟁은 아직 절반의 승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30주년 기념사에서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따라 탄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혁명’으로 미완의 6월 항쟁이 완수됐다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고,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온 민주세력과 문재인 정부가 맥을 같이 함을 강조함으로써 새 정부의 정통성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보다 강조한 대목은 6월 항쟁이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며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실질적 민주화의 방향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압축 표현했다.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양대 요소인 △제도와 △실질적 내용에 있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진전을 가져오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후퇴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등 우리사회 시스템을 형성하는 핵심기관들과 제도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해나가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보다 무게를 둔 것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내용상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유지하기 함들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자리 문제를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꼽았다.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시스템을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며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6월 항쟁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저출산 문제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의 현실적 한계도 고백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바꿔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는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여전히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응축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룬 민주화 운동의 전통과 유산이 특정 지역만의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이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영·호남의 민주화 열사의 이름을 나란히 열거했다. 지난달 5·18 기념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전남대생 박관현, 노동자 표정두, 서울대생 조성만, 숭실대생 박래전’의 이름을 부르며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이들도 함께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유산이 특정 지역의 전유물일 수 없고 시민들이 지역의 틀을 넘어 연대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문 대통령 자신과 친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월 항쟁 30년] 이한열 열사 떠나보낸 곳에서…오늘 서울광장서 민주항쟁 기념식

    ‘6·29선언’을 낳은 6·10 민주항쟁의 30주년 정부 주최 기념식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10일 열린다.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10년 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열렸던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다. 올해 기념식의 주제는 ‘기억과 다짐’으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다짐하는 축제의 장으로 진행된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민주화운동단체,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해 참가 신청한 일반시민과 학생 등 5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 낭독, 기념공연, 노래 ‘광야에서’를 제창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87세대와 촛불세대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된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외에 주목받지 못했던 황보영국, 이태춘 열사를 기리는 기회도 갖는다. 황보 열사는 1987년 5월 17일 부산상고 앞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태춘 열사는 6월 부산에서 민주항쟁 시위 도중 쓰러져 운명했다. 이날 서울광장뿐 아니라 부산, 성남, 원주, 목포에서도 기념식이 열린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6월 항쟁 30년] “촛불집회가 87년 체제·헌법 수호”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87년 체제와 헌법이 촛불집회를 가능하게 했고, 촛불집회는 87년 체제와 헌법을 수호했다.” 9일 서울대 법학대학원에서 열린 ‘6월 민주화운동 30주년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헌법’ 국제학술대회에서 6·10항쟁의 의의와 촛불집회의 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학술대회는 한국헌법학회와 서울대 아시아태평양법연구소, 서울대 법학연구소가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장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87년 체제는 민주화운동이 헌법 개정을 촉발하고 헌법을 정치권의 편의적 개헌 없이 10년 넘게 유지한 유일한 체제”라며 “지난해 촛불집회가 비폭력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은 광장 정치를 용인한 민주주의, 정당의 대통령 탄핵,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조치 등을 가능하게 한 87년 헌법과 체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국운 한동대 법과대학 교수는 “87년 헌법은 한국전쟁에 의해 탄생한 군부세력과 6월 민주화운동으로 결집된 민주화세력의 타협으로 형성됐다”며 “5·16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군부세력과 5·18운동의 강제 진압을 드러내고자 한 민주화세력은 87년 헌법에 두 사건을 명시하지 않고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만 표현함으로써 타협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후 양 세력의 타협으로 형성된 87년 체제를 되돌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를 후퇴시키려 하자 촛불집회가 일어난 것”이라며 “촛불집회는 이런 퇴행을 87년 체제 성과를 최대한 동원해 막아냈던 헌정사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차관급 5명 인사] 황인성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장, 참여정부 시절 靑 근무한 시민사회운동가

    [차관급 5명 인사] 황인성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장, 참여정부 시절 靑 근무한 시민사회운동가

    황인성 신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오랜 기간 민주화 운동 및 평화통일 분야에서 활동한 시민사회운동가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황 처장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처장 등을 지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당시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을 보좌했으며 이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승진했다. ▲경남 사천(64) ▲진주고-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외교통상부 평화협력대사 ▲한신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 [단독] 되찾은 광장의 역설… 젊은 활동가가 사라진다

    [단독] 되찾은 광장의 역설… 젊은 활동가가 사라진다

    “100만원 월급에 사회적 응원도 실종…국민 힘 토양으로 확장된 민주주의를”1987년 6월 10일 시위 진압 경찰과 맞선 넥타이 부대 뒤편에 ‘이들’이 있었다. 30년 후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던 촛불 시민 뒤에도 ‘이들’이 있었다. 이들, 이땅의 민주주의를 맨몸으로 이끌어 낸 시민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지금도 세월호 천막 안에서 봉사하고, 환경 운동 현장에서 부당함을 소리친다. 모금을 진행하고 광장에 무대를 만들며 약자의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80년대 이들을 향했던 사회의 박수와 응원은 사라졌고, 100만원 남짓의 박봉에 젊은 지원자는 줄고 있다. 시민운동의 중심을 ‘조직’에서 ‘광장’으로 바꿔놓은 30년의 세월은 이들에게도 변태(變態)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화를 넘어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한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활동가들이 필요한 세상인 것이다. 지난 6일 ‘6월 민주항쟁 30년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서우영(52) 사무국장과 이서영(30) 기획홍보팀장을 만나 시민운동의 미래를 물었다. “6·10 항쟁에서 신념을 지닌 개인이 모인 조직 운동이 절정을 이루었다면, 촛불로 열린 광장의 시대는 보수뿐 아니라 진보의 개혁과 변화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87년 당시 민주주의가 독재에 대한 투쟁을 의미했다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다변화된 모습입니다. 시민운동도, 활동가도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85학번으로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서 국장은 이제는 ‘조직’이 아니라 ‘광장’이 원하는 시민활동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80년대는 고문과 같은 절대 폭력에 숭고하게 희생된 선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관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조직과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국민의 힘을 토양으로 한 민주화 운동이 필요합니다. 변화에 실패하면 시민운동은 전설로 사라져 갈 겁니다.”“헬조선 해답은 민주주의… 광장의 경험으로 불신사회 이겨내야” 80년대 폭력·현재는 정치 무능이 문제경쟁으로 내모는 사회구조 바꿔나가야 이 팀장은 “우리 나이에 운동권은 좀 이상한 친구로 여긴다”고 운을 뗐다. “80년 5월이 6월 항쟁을 낳았다면 촛불집회는 결국 세월호가 낳은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절대 폭력이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납득할 수 없는 무능력이 문제였던 거죠. 무능력하고 부조리한 정치·경제 구조를 말하는 겁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부조리와 싸운 결과)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권리가 아니라 의무가 된 것 같아요.” 서 국장은 지금의 시민운동 양태를 ‘풍요 속 빈곤’으로 정리했다. 더 많은 보통사람들이 참여하는 광장의 시대가 열렸지만 정작 젊은 활동가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매년 1000명의 시민활동가가 나왔다면 지금은 100명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나 같은 50대가 가장 많고 20, 30대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박봉에 사회적 존경도 사라졌으니까요. 87년에는 원할 때 취직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위 ‘헬조선’ 아닙니까.” 이 팀장은 신념과 100만원 수준의 적은 월급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활동가들이 많다고 전했다. “수익 창출 구조가 없으니까 생활도 그렇지만, 활동의 영역도 줄어듭니다. 자신의 신념이 있으니 못 떠나고 자학하고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같이 활동하자고 권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겁니다.” 서 국장은 “그래도 광장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 “선배들은 광장의 시대에 뛸 젊은 활동가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일례로 촛불집회에서 보여 준 광장의 일상적인 후원과 지원을 조직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어제의 청년이 오늘의 청년을 위해 할 일은 모두를 경쟁의 대상으로 만든 사회적 구조를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이 팀장은 “과거 민주주의가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자유 평등, 인권의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환경, 젠더, 혐오의 문제 등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민주주의는 이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단어가 됐다”고 했다. 서 국장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확장된 민주주의는 (87세대가 아닌) 87년이 만들어 놓은 제도적 민주주의 토양에서 자란 젊은 세대가 이끄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 팀장은 또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큰 불신은 결국 민주주의가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사람들의 피해의식, 박탈감, 동료 시민에 대한 불신 등은 모두 민주주의 결핍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내가 베푼 만큼 나도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합니다. 광장의 경험을 일상과 어떻게 이어갈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입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한열 열사 영정 든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

    이한열 열사 영정 든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고(故)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된 9일 온라인 상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큰 화제가 됐다.이한열 열사 장례 집회에서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과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학생 2명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이 사진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학생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다.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학생은 배우 우현씨다. 이 사진은 당시 미국의 한 시사잡지에서 ‘이 주의 사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우 전 대표는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같은 학교 경영학과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정문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을 때 현장에 함께 있었다. 배우 우현씨는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 우 전 대표는 7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 광주’에 출연해 당시 상황에 대해 “1987년 6월 9일 당시 집회와 시위는 평화적이었고, 다음날 총궐기를 위한 출정식이었기 때문에 학생이 희생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며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당시 너무나 괴로웠고 (충격적인 사실에) 넋이 나갔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장도 하지 않고 평화적 집회를 하던 학생들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곧바로 겨누고 총 쏘듯이 최루탄을 발사했기 때문에, (학생회장인) 저는 대열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이한열 군은 재빨리 피하지 않고 끝까지 선두를 지키다가 희생이 됐다”며 “처음에는 ‘치료받으면 괜찮겠지’하고 병원으로 옮겼는데 응급실에서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7월 5일 결국 숨을 거뒀다”고 회고했다. 배우 우현도 지난 4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최루탄이나 이런 탄은 보통 시위 진압용이라 해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45도 이상 각도로 쏴야 하는데 그 즈음에는 직격탄으로 빵빵 쏴대는 그런 분위기가 많았다”고 떠올렸다. 또 우현은 2014년 한 방송에서 “내가 1980년대 중반, 대학 다니던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두차례 갔다와 군대를 못 가게 됐다”며 “군대에 꼭 가고 싶었는데 지금도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외숙 신임 법제처장 “대통령 탄핵, 헌법교과서에나 있지, 대한민국 현실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해”

    김외숙 신임 법제처장 “대통령 탄핵, 헌법교과서에나 있지, 대한민국 현실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해”

    신임 법제처장으로 임명된 김외숙(50·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가 과거에 썼던 ‘틴핵국회를 보고’란 제목의 칼럼이 9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는 헌법교과서에나 있는 것이지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이다”며 “후진적인 정치현실을 부끄러워” 했다.김외숙 법제처장은 2004년 3월 법률신문의 월요법창에서 “탄핵국회가 불러일으킨 엄청난 파장으로 나라 안이 온통 시끄러워진 것도, 나라밖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었다”며 “ 대외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기적처럼 눈부신 경제성장과 커다란 민주화의 진전을 성취해 낸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발전을 주목하고 선망해 온 다른 국가들에게 오늘의 우리는 과연 어떻게 비쳐질 것인지 못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에 의한 탄핵안이 가결된 것을 두고 쓴 칼럼이다. 이 칼럼에서 그는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자신들의 안일과 욕심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짓에 골몰하는 그들(국회의원들)을 부끄러워함이다”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들 국회의원에게 있다고 믿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까지 하니 말이다”고 지적했다. 특히 “탄핵국회가 있던 날, 국회의장이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던 말이 아직 귓전을 맴돈다. ‘대한민국은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전진해야만 한다”면서도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그에게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고 칼럼을 맺었다. 김외숙 신임 법제처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활동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니...”...민주화 운동, 30년 전 바로 오늘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니...”...민주화 운동, 30년 전 바로 오늘

    꼭 30년 전인 1987년 6월 9일, 6월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직후 모습의 컬러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진이 전시된 이한열기념사업회를 찾은 어머니 배은심씨는 사진 속의 아들을 한없이 어루만지다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니...”라고 되뇌었다고 KBS가 9일 전했다.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 열사 최후 모습의 컬러 사진은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로 한국에 와 았던 네이션 벤 기자가 찍은 것이다. 그가 제공한 당시 사진에는 거리가 안개 낀 것처럼 최루가스가 자욱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민주화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선보이는 사진전 ‘1987년을 돌아보다’를 야외 역사마당에서 연다고 9일 밝혔다. 전시기간은 10일부터 8월 27일까지다. 이번 전시에는 1987년 1월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6월 민주항쟁, 그해 12월 개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까지 30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이 나온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 전시와는 별도로 26일부터 9월 3일까지 민주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民(민)이 主(주)인이 되다’를 열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주화 30년 전 바로 오늘...

    민주화 30년 전 바로 오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민주화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선보이는 사진전 ‘1987년을 돌아보다’를 야외 역사마당에서 연다고 9일 밝혔다. 전시기간은 10일부터 8월 27일까지다. 이번 전시에는 1987년 1월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6월 민주항쟁, 그해 12월 개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까지 30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이 나온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 전시와는 별도로 26일부터 9월 3일까지 민주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民(민)이 主(주)인이 되다’를 열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역사의 물길 바꾼 민주항쟁 모습은

    역사의 물길 바꾼 민주항쟁 모습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민주화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선보이는 사진전 ‘1987년을 돌아보다’를 10일부터 8월 27일까지 야외 역사마당에서 연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1987년 1월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6월 민주항쟁, 그해 12월 개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까지 30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이 나온다. 또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해 ‘비폭력으로 저항한다’, ‘연행을 거부한다’, ‘연행되면 묵비권을 행사한다’ 등의 지침을 담은 6·10 국민대회 행동요강과 다양한 신문기사도 공개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 전시와는 별도로 26일부터 9월 3일까지 민주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民(민)이 主(주)인이 되다’를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석영 “언어와 역사의 감옥에 갇혀 있다… 지금도”

    황석영 “언어와 역사의 감옥에 갇혀 있다… 지금도”

    “당신은 북에 가서 김일성을 여러 번 만났으니까 아무리 못 살아도 한 칠팔 년은 살아야지. 작가에겐 이런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 백반 아닌가. 틀림없이 나가자마자 이런 얘기 다 쓸 거면서….” “이 양반들 병 주고 약 주네.”1993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방북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황석영 작가가 수사관과 나눈 대화다.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지 2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작가는 “지금도 감옥에 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들과 필연으로 얽혔던 작가 개인의 생애를 기록한 자전(自傳)을 ‘수인’(囚人·전 2권, 문학동네)이라 이름 붙인 건 그 때문이다. “작가는 누구나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어 자체가 감옥이니 거기서 놓여날 수가 없죠. 분단된 한반도란 장소도 감옥이고요.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나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를 만나면 나한테 덕담이라고 ‘서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난 네가 참 부럽다’고 해요. 오에 선배가 그랬을 땐 ‘맨날 난리법석인 나라에 사니까 소설 쓸 거리가 많지?’라며 비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시니컬하게 ‘나는 당신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죠. 역사라는 엄처시하가 늘 도사리는 상황에서 사회적 요구, 책임으로부터의 자유가 가능할까요. 저는 평생 작가로서 자유를 추구해 왔지만 늘 자유롭지 않은 모순적인 삶을 살았죠. 이번 책을 내면서 비로소 석방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수인’은 5년간의 수감 생활을 가운데 놓고 유년·청년 시절, 베트남 참전 시절, 광주민주화항쟁, 방북과 망명 시절 등을 오가며 전개된다. 2004년 일간지에 연재했던 자전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를 대폭 손질한 것으로, 광주민주화항쟁부터 수감 생활을 끝내는 기간까지 20여년이 더해졌다. 작가는 “아마 말년까지 속박 속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며 “그래서 감옥을 현재 시간으로 놓고 들락날락하면서 천을 짜듯 시간을 얽어놨다”고 소개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온 삶이지만 노작가는 수줍은 소년의 어투로 언제나 돌아갈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고 고백했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문단엔 ‘쟤는 다시 글 못 쓸 거다’란 소문이 파다하게 났어요. 친한 고은 시인까지 그랬으니까요(웃음). 하지만 나는 노름꾼이 다 들어먹고 패망해서 새벽 끗발이 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평온하더라고. 15년간 글을 안 썼지만 내 지나온 삶이 문학적 삶이었다고 믿었죠. 우여곡절도, 착오도 많았지만 젊었을 때부터 저는 작품과 인생을 합치시키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문학이 제 집이었던 거죠. 캄캄한 밤에도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언제나 저를 끌고 갔습니다.” 책은 당초 지난해 여름쯤 나올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나온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 넘어) 감수 작업과 지난해 말 촛불정국으로 늦춰졌다. 작가는 “지난 5월 광주항쟁 무렵 ‘넘어 넘어’가 나오고 6월 항쟁 30주년을 맞는 이맘때 자전이 나와 우연의 일치치곤 기묘하다”고 했다. “박정희가 일으킨 5·16쿠데타가 터졌을 때가 열아홉이었는데 그의 딸인 박근혜가 탄핵으로 물러난 올해가 일흔다섯이니 대장부 한평생이 걸렸네요. 제가 열아홉부터 일흔다섯이 될 때까지 한국 현대사는 평탄치 않았고 지금도 미지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촛불 이후 새로운 출구에 와 있죠. 그러니 제 자전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나와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월은 제 몫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기록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종교 간 화해·민주화운동 한평생…개신교계의 큰 스승을 떠올리다

    종교 간 화해·민주화운동 한평생…개신교계의 큰 스승을 떠올리다

    경동교회 설립자,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자…. 여해(如海) 강원용(1917~2006) 목사는 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종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로 불린다. 평생 복음의 실천과 행동을 중시하며 교회 연합과 일치, 종교 간 화해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삶으로 해서 한국 개신교계의 큰 스승으로 꼽힌다.강원용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강원용 인간화의 길 평화의 길’,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 ‘강원용과 한국방송’(이상 한길사), ‘여해 강원용 아카이브북’(대화출판사) 등 평전 시리즈가 출간된 데 이어 강 목사의 삶을 기리기 위한 여해상이 제정됐다. 그런가 하면 강 목사가 설립한 경동교회에서는 오는 12월까지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종교개혁 500주년·강원용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평신도 포럼’이 개최된다. 강 목사의 생일인 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주최로 열릴 여해문화제 ‘여해와 함께’는 개신교계의 큰 관심이 쏠리는 행사이다.함경남도 이원군에서 출생한 강 목사는 1931년 개신교에 입교했고 1935년 만주 북간도 용정중학교에서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 등과 교유했다. 이 무렵 은진중학교 교사였던 김재준 목사를 만나 개신교 신앙에 눈떴으며 1945년 김 목사와 함께 야고보교회(경동교회)를 설립했다. 특히 배타시하던 이웃 종교 간 대화와 소통을 시도한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1965년)은 한국 기독교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 거듭 회자되는 큰 사건으로 꼽힌다. 광복과 분단 시절에는 민족의 선각자로서, 혁명과 독재정권의 격변기에선 소외된 자를 위해 살아간 인물로 기억된다. 여해문화제 ‘여해와 함께’는 개신교계의 거목 강 목사의 사상과 실천을 이어받고자 다짐하는 공동체 시간으로 마련됐다. 주최 측인 여해와함께는 행사와 관련, “여해는 가고 없지만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인간화, 대화, 평화의 메시지는 여전히 오늘도 큰 무게를 지닌 채 우리 곁에 살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제는 제1회 여해상 시상식과 평전 출판기념회, 평전 시리즈 저자와의 대화, 다큐멘터리 영상전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 처음 제정, 시상하는 여해상은 고인의 정신을 기려 사회·문화·종교 분야에서 인간화와 평화에 공헌한 인물이나 기관에 수여하는 상이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본상을, 고인과 함께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데 공헌한 독일 출신 노베르트 한스 클라인 목사와 한송죽 경동교회 전도사가 특별상을 받는다. 여해상 운영위원회는 “몽양 여운형은 좌와 우의 갈등을 넘어 민족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며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몽양의 사상을 계승 발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고 본상 선정 이유를 들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부영 이사장이 수상할 예정이다. 한편 노베르트 한스 클라인 목사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 과정에 물심양면으로 공헌한 점을, 한송죽 전도사는 그리스도교 복음 전파에 일생을 헌신한 점을 선정 사유로 꼽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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