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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통합과 화합 되새겨”

    문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통합과 화합 되새겨”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서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고 말했다.최근 자유한국당이 보수우파 진영의 정체성을 계승하겠다면서 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나란히 걸었다. 독재정부를 수립했던 이·박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세운 김 전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여러 업적들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 아래에 함께 모였다”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온 정치지도자들이 많이 계시지만 김영삼이라는 이름은 그 가운데서도 높이 솟아 빛나고 있다. 김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고난을 헤쳐오신 손명순 여사와 유족들께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독재 권력과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면서 “거제도의 젊은 초선의원은 ‘바른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을 가슴에 새겼고, 40여년의 민주화 여정을 거쳐 도달한 곳은 군사독재의 끝, 문민정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민정부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가치와 의미는 결코 폄하되거나 축소될 수 없다”면서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4.19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항쟁·6월항쟁이 역사에서 제 자리를 찾았던 때가 바로 문민정부”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 13일 담화문에서 ‘문민정부의 출범과 그 개혁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문민정부를 넘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신 것”이라면서 “법과 정의에 기초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군사독재시대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이뤄졌고, 군의 사조직을 척결하고, 광주학살의 책임자를 법정에 세웠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경제정의의 출발이었다”고 덧붙였다. “문민정부가 연 민주주의의 지평 속에서 김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되새긴다”는 발언에 대해 연합뉴스는 “자신이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소속으로 ’김대중 정부‘의 유지를 이어 정권을 재창출한 만큼 부산·경남 지역의 민주화 세력을 상징하는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받아 안아 민주주의의 장애물인 지역 구도를 타파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최근 자유한국당은 민주화를 이룬 업적을 이어받겠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나서서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을 강조한 것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뜻과 함께 과거 하나였던 민주 세력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고 연합뉴스는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경남 거제 출신에 경남중·고 후배이기도 한 문 대통령은 실제로 1990년 ‘3당 합당’을 하기 전까지 부산을 기반으로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맞은 거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맞은 거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22일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거제시는 이날 오전 10시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난 장목면 대계마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 앞 광장에서 서거 2주기 추도식을 개최했다. 거제시민과 김 전 대통령 친·인척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김 전 대통령이 보여준 흔들림 없는 민주정신, 개혁정신이 사회 곳곳에 튼튼히 뿌리를 내렸다”며 “보고 싶고, 그리우면서 존경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 전 대통령 자택경호와 대선 유세 경호를 맡았고 청와대 가족경호팀장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은 “국가원수 이전에 자상하신 아버지, 고향 대선배님으로 대해주셨던 따뜻한 순간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김 전 대통령의 셋째 여동생인 김호림(82)씨는 오빠의 육성과 회고 영상이 나올 때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김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현철씨는 유족을 대표해 영상 인사를 했다. 그는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고향 거제도를 잊지 않고 자랑스러워 하셨다”며 “아버님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시는 거제시민들께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추도사 후에는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손명순 여사에게 자주 들려줬거나 들었던 노래 ‘메기의 추억’, ‘청산에 살어리랏다’가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은 김 전 대통령 사진에 헌화한 데 이어 기록전시관을 둘러보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발생한 IMF 외환위기로 많은 업적이 가려졌지만, 이 땅에 민주화의 새벽을 연 정치인이자 국가 발전의 초석을 다진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 정치 기반인 부산·경남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한편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서거 2주기 추모행사로 ‘소망나무 키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사 측은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방문객들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과 개인적인 소망을 적은 뒤 전시관 1층 소망나무에 달도록 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진성 후보자 “헌법전문에 ‘5·18’ 삽입, 사회적 합의 있으면 가능”

    이진성 후보자 “헌법전문에 ‘5·18’ 삽입, 사회적 합의 있으면 가능”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헌법 개정 시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삽입하는 방안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국회에서 결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22일 말했다.이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8 등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으로 정립됐고 법률로 (피해) 보상도 되고 있다. 저도 당연히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후보자는 “‘5·16 혁명’이 헌법에 들어가 있다가 군사정변이고 쿠데타라는 결론 아래 그것을 삭제하고 현재 전문으로 돼 있는 것처럼 (5·18 정신을 추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후보자는 개정 헌법에 ‘안전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는 방안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나 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때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안전권을 헌법에 신설한다는 것은 아주 좋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인지 시점과 관련 ‘최초 보고 시각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는 질의에 “그런 자료가 있고 사실이라면 인지 시점이 10시에서 더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 시낭송까지…여야 공방 없는 ‘잠잠한 청문회’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 시낭송까지…여야 공방 없는 ‘잠잠한 청문회’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시를 낭송하는 등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여야 의원들도 격한 공방 없이 이 후보자에게 각종 현안에 대한 질문을 하는 등 잠잠한 분위기 속에서 청문회가 진행됐다. 여권에서는 적폐청산 이슈에, 야권에서는 후보자의 안보관을 검증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아울러 야권은 이 후보자가 지나치게 친정부 성향을 보이지 않을지, 또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후보자는 인사말부터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는 시를 낭송하는 등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영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시를 감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고, 같은 당 강병원 의원도 “인사말이 정말 감명 깊고 가슴을 울렸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는 신상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은 “후보자의 재산증식 과정이나 카드결제 내역 등을 살펴봤지만 큰 흠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생활보다는 후보자의 소신과 철학, 헌법준수 의지를 중심으로 질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선 여당에서는 군의 정치관여 문제, 블랙리스트 의혹 등 지난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논란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군의 정치관여는 헌법에 대한 중차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이 후보자는 “당연히 헌법 위반”이라고 답했다. 김 의원은 “(문화예술인을) 자의적으로 분류하고 차별해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지적했고, 이 후보자도 이에 동의했다. 김 의원은 ‘사유재산제도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지 않나’라며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대기업 경제력 집중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고전적 의미에서 자유시장경제를 해야 할 단계는 아니다”며 “토지는 한정돼 있는데 특정인이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밝혔다. 반면 야권은 후보자의 안보관 검증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북한을 주적 봐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느냐’,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야당은 또 후보자가 헌재소장으로서 정부 측에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은 “헌법 재판관 9인 가운데는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3인 등이 참여한다. 헌재가 독립성을 잘 갖추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한국당 이철규 의원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바라보지 말고 국민 전체를 바라봐달라”고 당부했다. 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지난 10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관 회의를 열어 공석인 헌재소장 임명을 빨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지 않았나”라고 질의하면서 “그런데 헌재 측에서는 주무관이 ‘그런 회의를 한 적도 없다’고 답변하더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철규 의원도 “헌재소장 대행체제에 대한 후보자의 의견을 확실히 밝혀달라”고 거들었다. 이에 이 후보자는 “헌재 내부 문제가 아닌 외부 문제로 헌재의 위신이나 신뢰가 추락하는 사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신상과 관련한 문제도 일부 거론됐다. 이 의원은 “모친을 직접 부양하고 있으면서, 왜 공직자 재산등록 때에는 모친 재산에 대해 ‘독립생계를 유지한다’며 고지 거부를 했나”라고 질의했다. 이 후보자는 이에 “선친이 무공수훈자여서 군인연금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한국당 윤상직 의원은 “퇴임하고 나서 변호사 개업은 안 할 것이냐”라고 물었고, 이에 이 후보자는 “대학 강의를 해보니 그것만큼 좋은 일이…(없더라)”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승호 PD, MBC 사장 출마 선언 “반드시 MBC 재건해야”

    최승호 PD, MBC 사장 출마 선언 “반드시 MBC 재건해야”

    MBC에서 해직된 프로듀서(PD)이자 현재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PD인 최승호 PD가 “반드시 MBC를 재건해야 한다”면서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MBC 사장 출사표를 던졌다. 김장겸 사장 해임 결의안을 통과시킨 방송문화진흥회는 이날부터 오는 27일까지 차기 MBC 사장 후보자를 공모한다.최 PD는 20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경영자로서 조직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게 급선무”라면서 “공정방송 상징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 MBC를 살리는 데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출마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최 PD는 또 “어느 때보다 새 리더십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큰 것 같다”면서 “나는 MBC 정상화 투쟁 한 가운데 있었다고 자부한다. MBC 해직자이자 뉴스타파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무너지는 MBC 문제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누구보다 MBC에 대한 충정이 크고 또 영화 ‘공범자들’ 연출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론화했다”고 덧붙였다. 향후 MBC에 필요한 리더십을 묻는 질문에 최 PD는 “우리 시대만 해도 경영진과 간부들이 일방향적으로 후배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관행으로 여겨졌지만 시대 환경이 바뀌었다. 그런 리더십으로는 도저히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개별적인 기자·PD·아나운서·엔지니어들이 각각 자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언론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로막았던 것이 지난 9년의 MBC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현 MBC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최 PD는 “청산과 재건”이라면서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임명되고 난 후 잘못된 결정이 반복돼 왔다. 현 경영진과 간부들은 MBC를 오염시켜 왔다. 청산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1986년 12월 MBC에 입사한 최 PD는 그동안 ‘방송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PD저널리즘을 개척한 언론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한학수 MBC PD와 함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파헤쳤고, 2010년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편 등을 통해 ‘한국PD대상’, ‘한국방송대상’, ‘송건호언론상’, ‘안종필언론상’ 등 각종 언론인상을 휩쓸었다. 그는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中, 속옷 패션쇼 모델 비자거부는 당연한 보복

    中, 속옷 패션쇼 모델 비자거부는 당연한 보복

    상하이에서 20일 열린 세계 최대 속옷 패션쇼 ‘빅토리아 시크릿’에 참여하려 했던 미국 모델 지지 하디드(22)와 팝스타 케이티 페리(33)의 중국 입국이 거부당했다. 두 사람은 중국 비자가 거부당해서 패션쇼에 참여할 수 없게 됐는데 중국 관영 영자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9일 비자 거부는 두 스타가 자초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매년 열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올해 23회째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올해 패션쇼에는 중국인 모델도 6명이나 무대에 섰다. 여기에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높은 모델’ 중 한 명인 중국 모델 리우웬도 있다.환구시보의 영자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많은 사람이 지지 하디드와 케이티 페리가 패션쇼에 서지 못하는 것을 정치적 이유라고 의심하는데, 지난 2월 하디드는 아시아 인종을 비하하는 의미의 ‘찢어진 눈’을 흉내내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2년전 페리는 대만에서 공연하면서 대만 국기를 몸에 두르고 해바라기가 수놓아진 옷을 입어 중국 네티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해바라기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이어 중국 언론은 하디드가 사죄를 하고, 페리도 지난달 중국에서는 중국법과 규제를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화난 마음을 풀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두 스타의 비자 거부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그동안 행적으로 미루어 충분히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받는 하디드나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페리는 보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비자 거부가 중국에서 활동하려면 중국 법을 따라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연예산업은 개방되어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무시될 수는 없다”며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의 기본적인 가치를 어기는 스타들이 중국에서 공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중국 본토의 네티즌들은 홍콩이나 대만의 연예인들이 달라이 라마나 대만과 홍콩의 독립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든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자주 입씨름을 벌였다. 글로벌타임스는 해외 언론이 중국 네티즌들에게 정치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라고 가르칠 수 없다며 비자 거부를 비난한 서방 언론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번 비자 거부 사태는 중국 시장이 팽창하면서 더욱 예민해지고 영향력 행사까지 가능해진 중국 여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란 게 관영매체의 해석이다. 빅토리아 패션쇼도 1120억 위안(약 18조 6000억원)에 이르는 중국 여성 속옷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거래량 줄어도… 집값은 ‘요지부동’ 전세는 ‘보합’

    거래량 줄어도… 집값은 ‘요지부동’ 전세는 ‘보합’

    아파트값 1년새 0.93% 상승 서울 3.4%·수도권 2.1% 올라지역별 편차 심해 지방은 하락 아파트 매매 시장과 전세 시장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매매 시장은 강도 높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반면 전세 시장은 안정세를 이어 가고 있다. ‘8·2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발표될 때만 해도 정부와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당장 주택 거래량이 감소한 뒤 집값도 떨어지는 후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 시장이 안정되면서 전형적인 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각종 대책 발표가 큰 폭의 거래량 감소의 충격은 안겨줬지만 당장 아파트값 하락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19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0월 말 전국 아파트값은 지난해 말 대비 0.93% 상승했고, 이 기간 아파트 전셋값은 0.60%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지역별 편차는 심했다. 특히 거래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특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이 두드러졌다. 서울 주택 거래량(신고 기준)은 7월 1만 5168건, 8월 1만 5421건에서 9월에는 8652건으로 절반이나 감소했다. 강남권은 7, 8월에는 월간 1000건이 넘었지만 9월에는 505건으로 반 토막 났다. 그럼에도 아파트값은 강세를 띠었다.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은 2.12%를 기록했고, 서울은 3.38%나 올랐다. 부산도 2.23% 상승했고, 세종은 4.37% 상승했다. 반면 지방 아파트 가격은 0.19% 떨어졌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강남권이 주도했다. 강남구 4.04%, 송파구 5.36%, 강동구 4.16%를 기록해 전국 평균보다 3배 이상 올랐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사업의 불확실성이 가시면서 집주인들이 희망 매도가를 올려 부르고, 여전히 투자자들이 찾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 강남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8·2대책 때보다 오른 값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강북에서도 나타났다. 노원구는 3.35%, 용산구는 3.50% 올랐다.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주택 거래는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매매 시장과 달리 아파트 전세 시장은 전국적으로 안정세를 지켰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적으로 아파트 38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지난해 입주 물량 29만 3000가구보다 30%가량 늘어난 것이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 폭증으로 2014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낮은 전셋값 상승률을 유지했고, 2009년 이후 홀수 해에 전셋값이 많이 오르던 ‘홀수 해의 저주’도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해마다 큰 폭으로 올랐던 수도권 아파트 전세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전세값 상승률은 1.95%를 기록했고 수도권은 1.46% 상승에 그쳐 세입자들이 근심을 덜었다. 서울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전셋값 상승이 두드러졌지만, 재건축 이주 등의 수요가 몰린 국지적 현상으로 우려 수준은 아니다. 강동구 4.75%, 송파구 3.07% 상승한 것으로 빼고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다. 지방은 매매가와 함께 전셋값도 떨어져 0.2% 하락률을 기록했다. 부산은 0.99% 떨어졌고, 세종시는 무려 11.31% 하락했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내년 이후 아파트 시장은 변수가 많다. 우선 4월 이후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조치가 확정되면 집주인들이 다주택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아파트 매물이 증가할 수 있다. 투자 수요가 움츠러들면서 신규 매수세가 사라져 집값 상승세가 멈출 수 있다. 주택정책 로드맵에 어느 정도 강도 높은 대책이 담기냐에 따라서도 아파트 시장 판도가 달라진다. 주택임대사업등록 의무화,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이른바 주택 민주화 정책 도입 시기나 규제 정도에 따라 아파트값이 출렁일 수도 있다. 전세 시장은 내년에도 안정세가 이어질 수 있다. 내년 전국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44만여 가구로 올해보다 16% 늘어난다. 서울이 3만 4345가구로 올해보다 30% 가까이 증가하고 경기도에서는 16만 3000여 가구로 올해보다 28% 이상 증가한다. 입주 물량 증가는 올해, 내년, 2019년에도 계속된다. 거래 침체,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따른 자금 마련 어려움 등이 겹쳐 전세 물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 주택 처분이 지연돼 입주가 지연되고, 잔금 마련의 길이 막히면서 전세 매물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희순 강원대 교수도 “입주 물량 증가와 함께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 전세 물량이 증가하고 전셋값이 하락 압박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씨줄날줄] 재난 대피 훈련/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재난 대피 훈련/김균미 수석논설위원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반복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 사람들이 많다. 1년 전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했던 경주의 한 유치원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원생들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줄지어 출입문을 향해 달려갔다. 70여명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10초 남짓. 한 초등학교에서도 비상벨이 울리자 책상 아래로 몸을 낮췄다가 진동이 멈추자 전교생이 순식간에 운동장으로 뛰어나오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실시해 온 지진 대피 훈련으로 대피가 몸에 익었던 것이다.평소 훈련한 대로 침착하게 대피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지난 8월 민방위의 날 훈련 장면이 떠올랐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와 괌 포위사격 위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8월 23일 오후 2시 전국에서 ‘제404차 민방위의 날 훈련’이 실시됐다. 북한의 장사정포, 미사일, 화생방 등 공습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들 중에서 몇 명이나 실제로 건물 지하나 밖으로 대피했는지 궁금하다. 민방위 훈련이 요식행위가 된 지 오래다. 올 들어 전국민이 참여한 대피 훈련도 8월 훈련이 유일하다. 초·중·고교 때 매월 한 번씩 학교에서 민방위 훈련을 받았던 40대 중반 이후 세대에게조차도 민방위 훈련은 귀찮은 것, 왜 하는지 모르는 시늉만 내도 되는 것이 돼버렸다. 훈련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 됐다. 민방위의 날 훈련은 1972년 1월 제1차 ‘민방공·소방의 날’ 훈련이 시초다. 1975년 6월 27일 ‘민방공·소방의 날’ 훈련을 ‘민방위의 날’ 훈련으로 개정했다. 이후 매월 15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민방위의 날 훈련을 실시해 오다 민주화와 국제 정세 변화, 남북 긴장관계 완화 등으로 1989년 연 9회, 1992년 연 3회로 축소됐다가 2011년 이후로는 연 1, 2회 실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보면 다양한 재난상황 시 대피 방법 등이 자세히 나와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포털을 찾을까 싶다. 불안감을 조장할 필요는 없지만 구체적인 대피 방법 등 손에 잡히는 정보를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민방위 훈련은 방공교육과 직결돼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지진 등 자연재난과 안보위기에 대비하는 생존훈련으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어린이, 노인 등 약자를 도와야 할 어른들이 대피 매뉴얼도 몰라 우왕좌왕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어른들이 변해야 한다.
  • “바른정당과 연대, 저능아가 하는 것”

    “바른정당과 연대, 저능아가 하는 것”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통합포럼’이 두 당의 협력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안보정책’과 ‘지역주의’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책·선거 연대에 속도를 높였다.국민통합포럼이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는 ‘중도보수통합’을 천명한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 선출 뒤 처음 마련된 자리였다. 국민의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장인 이태규 의원은 ‘구존동이’(求存同異·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를 언급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장애물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 권위주의든 보수든 역대 정권은 한반도 평화 유지와 관리를 위해 남북 관계 개선과 협력을 추구했다”면서 “적대적 대북정책을 지향한 정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미 핵공유 협정이 체결되면 유사시 언제든 미국의 핵자산을 쓸수 있기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위협 요소가 될 수 없다고 천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브레인인 이 의원의 주장에 화답하듯 바른정당 싱크탱크인 바른정책연구소장인 김세연 의원도 “핵공유 협정은 바른정당의 안보정책 브랜드일 정도로 선제적으로 밝힌 바 있다”면서 “국민의당도 진지하게 논의를 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바른정책연구소의 최홍재 부소장은 “최근 세 차례의 대선·총선을 보면 영남에서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있고 호남에서도 김 전 대통령 이후 특정 정당에 얽매이는 현상이 약화됐다”면서 “적대적 양당 구조가 사라진 이 시기가 지역주의를 극복할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훈훈한 장면은 계속됐다. 최 부소장이 최근 바른정당 비전위원회가 추모 묵념에 ‘민주열사를 위한 묵념’을 포함시킨 것을 언급하며 “중도개혁보수정당은 역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통합 정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은 “산업화가 독재라는 부분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혁혁한 공로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묵은 갈등을 뛰어넘어 실용적인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지역정치와 패권 청산을 명분으로 양당 간 선거연대의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국민의당 내 비(非)안철수계 인사는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특히 박지원 의원은 “그렇게 딱 ‘둘이 하겠다’는 것은 명분상에도 그렇고 정치적 실리 면에서도 조금 저능아들이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의원들한테 ‘나갈 데가 있느냐, 나갈 테면 나가 보라’ 이러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짓밟는다면 나갈 데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탈당 가능성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바른정당 정도로 취급하려고 하나 우리도 원내교섭단체가 돼야 할 수 있다. 그런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사북 석탄역사체험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사북 석탄역사체험관

    '연탄재 함부로 /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작, 1994) ● 사북항쟁, 80년대 민주화의 첫 불씨를 지피다. 1980년 4월 21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소속 노동자들은 분노하였다. 60년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나라 곳곳에서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연탄 수요의 급증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더구나 70년대에 뼈저리게 경험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정부로 하여금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처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이에 정부는 석탄산업 육성정책이라는 명목하에 전국에 산재한 탄전들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며 생산량을 끌어 올린다. 우선 강원도 정선, 태백 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50년대에 채굴을 시작한 함북탄광을 따라 60년대에 문을 연 사북탄좌, 원동탄좌,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등이 정부시책에 따라 각종 특혜를 얻는 조건으로 탄전에 노동자들을 대거 몰아 넣기 시작한다. 사북에서는 통금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정도로 정부는 탄광 산업에 온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 중에서 1963년도에 문을 연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23개 광구(3609ha)를 소유한 동양 최대 민영 탄광으로 1974년에는 석탄 100만톤을 생산하였고, 1978년에는 우리나라 석탄 생산량 1등을 차지할 정도의 거대 탄좌였다. 바로 이곳에서 일이 터지고 만다. 바로 노조 지부장이 전체광산노조에서 결정한 42.75% 임금인상 약속을 뒤로 한 채 회사 측과 20% 인상안에 합의를 한다. 결국 막장 속에서 곪을 대로 곪아버린 광부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분노는 결국 집단 노동쟁의 형태로 표출된다. 하루 3교대 여덟 시간의 연속 노동, 4,000m까지 내려간 지하 갱 속에서 분진 마스크조차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의 산소 부족으로 인한 탈진상태, 더구나 대기업과 어용노조의 틈바구니에서 이중 착취로 인한 임금 동결 상태의 지속은 결국 광부들로 하여금 곡괭이와 몽둥이를 들고 사북 시내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당시 신군부가 장악한 정부는 79년 10·26 사건 이후 전국 각처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민주화 요구를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사북 광부들의 집단 항거는 맨 발등에 떨어진 불똥처럼 신군부에게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국내 석탄 공급의 13%을 차지하던 이곳의 대규모 집단 파업은 여느 공장의 파업 형태와는 처음부터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시민들과는 달리 격한 노동의 현장에 있던 광부들의 항거는 조직적, 집단적이었고 완력에 있어서도 이미 경찰력을 가벼이 밀어내고 있었다. 더구나 채굴을 위한 다이너마이트 수 톤이 사북 광부들의 수중에 있는 상태여서 하늘 모르던 신군부의 권력도 광부들,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있던 광부들의 눈치를 살살 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에 신군부 측은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한다’라는 파격적인 조건 아래 순진한 노동자 대표들과 합의를 유도하였다. 다시 광부들은 무사히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순진하게' 믿었다. 2주 후 합동수사본부는 불시에 70여 명의 광부와 부녀자들을 연행하고, 이중 25명을 일반 법원이 아닌 군법회의에 회부하게 된다. 신군부는 속였고 광부들은 속았다. 이러한 사북에서 일어난 일련의 항쟁 양상들과 정부의 식언 행위는 불과 보름 뒤에 발생하였던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시민군들의 대정부 항거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직도 뜨거운 연탄재로 남아 있는 사북 석탄역사체험관으로 가 보자. ● 밥벌이의 뜨거움을 기억하라, 석탄역사체험관으로 사북의 7, 80년대는 김훈 작가의 표현처럼 오직 '밥벌이'만이 존재한 곳이었다. 밥벌이가 목숨이라는 것을 막장에서 광부들은 몸으로 느꼈다. 그래도 밥을 벌기 위해 낯선 사북 땅에 도착한 가장들의 눈앞에 흩날리던 탄가루는 신기루였다. 그들은 고단한 운명의 검은 무게를 막장에서 매일 지고 나르며 가족들에게 밥을 먹였다. 한 시간 남짓 광차를 타고 들어간 지하 갱도 4000미터에서 도시락을 열 때마다 메이는 것은 목이 아니라 숨이었다. 물이 아니라 산소가 필요했다. 오늘 갓 막장에 들어온 신입이 펼치는 어설픈 인생의 넋두리 따위는 애당초 씨도 안 먹힐 만큼 밥벌이가 고되고 고된 곳이 탄광이었다. 그러하기에 도시 사람들이 내뱉는, 미사여구 덕지덕지 붙은 삶에 대한 관념적인 의미따위는 사북 땅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갱도에 들어갈 때의 인원과 나올 때 인원은 늘상 달랐기에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탄차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검은 탄가루 가득한 밥벌이도 1989년 석탄 합리화 정책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04년 10월 31일을 끝으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탄전의 마지막 갱차의 불을 껐다. 이에 광부와 주민들이 주축이 된 석탄유물보존위원회가 출범하였고, 현재 사북석탄유물보존관의 이름으로 동원탄좌의 시간들은 다시금 남게 되었다. 현재 2,900여종 36,000여점의 유물들이 폐광 당시의 모습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광부들이 지나왔던 삶의 고단함을 지금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층에는 수 백명의 광부들의 동시에 몸을 씻던 샤워실, 보안장비실, 채탄장비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진전외 14개의 다양한 사무실이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2층에는 광부복장체험 안전등실, 도면실, 문서자료실 외에 9개의 다양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야외에 나오면 광산장비전시장, 광부인차 탑승체험장, 40여년 갱속에서 나온 폐석으로 쌓아올린 인공산인 경석장, 영상실 등이 있어 반나절 훌쩍 넘는 시간을 40여 년 전 시간으로 되돌려 준다. <사북석탄역사체험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만약에 영월, 정선 지역을 방문한다면 꼭 방문하길 강력히 권유한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이드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더더욱. 3. 가는 방법은? -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하이원길 57-3 / 문의) 033-592-4333 4. 감탄하는 점은? - 모든 자료들. 특히 광차를 타고 들어간 갱도 체험.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위치가 험한 곳이어서 방문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문서전시실, 광부인차 탑승체험.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한식당 ‘운암정’(590-7631), 해장국 ‘석탄회관’(592-8233), 곤드레밥 ‘백운정’(592-2004), 고추장찌개 ‘참조은데이’(592-9233), 청국장 ‘원주식당’(592-2944) / 지역번호 (033) 8. 홈페이지 주소는? - www.jeongseon.go.kr/hb/sb/sub03_03_01_04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청령포, 김삿갓박물관, 하이원리조트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국내 방문지 중에서 손꼽히는 의미있는 곳이자 유익한 곳이다. 폐광당시 그대로 보존된 동원탄좌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7,80년대가 보인다. 꼭 가보길 강력히 권유한다. 모든 비용은 무료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5·18 공수부대 소령 ‘암매장’ 양심고백…“땅에 묻은 젊은이, 지금도 아른거려”

    5·18 공수부대 소령 ‘암매장’ 양심고백…“땅에 묻은 젊은이, 지금도 아른거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계엄군의 유혈 진압에 희생돼 행방 불명된 사람들에 대한 발굴 작업이 옛 광주교도소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당시 군 작전에 참가했던 공수부대 지휘관이 시민군 3명을 직접 암매장했다고 양심 고백을 했다. 신순용 전 소령이 그 주인공이다. 신씨는 “모든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억울하게 죽은 시민의 영령이라도 위로를 해주고 명예를 회복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신씨는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20일 새벽 당시 공수부대 지휘관으로 광주에 도착했다고 증언했다. 5월 20일은 군에 시민군을 향한 발포 명령이 떨어진 날이다. 같은 날 밤 11시 전남대 인근 광주역 앞에서 제3공수여단 소속 군인의 발포로 시민 4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 날인 21일 계엄군은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군을 향해 집단 발포를 감행했다. 신씨는 광주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로부터 “앞에 온 공수부대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쫓아와서 그냥 곤봉이나 총 개머리판이나···하여튼 뿔뿔이 도망가니까 쉽게 얘기해서 개패듯이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중상자들은 차에다가 막 툭툭 던져서 싣고 어디론가 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다 신씨는 점심 때가 돼서 밥을 먹으려고 했을 때 “저쪽에서 기관총 소리라 드드득 하면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이후 신씨는 충격적인 지시를 하달받았다. “쳐다보니까 트럭에다 기관총 싣고 3명 정도가 드드득 하고, 그 옆에 길이 있잖아요. 거기로 쭉 지나가니까 조준사격을 해서 (시위대 3명이) 죽었죠. 죽어서 그걸 대대장이 처리하라고 하고, 갖다 묻으라고 해서 묻었죠.” 신씨는 사망한 사람들이 모두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민간인들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대대장의 지시로 신씨는 옛 광주교도소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 있는 야산에 시신을 묻었다고 고백했다. “시체를 수거해서 매장시키라고 지시를 받고. 조그만 야산이 있으니까 소나무숲도 있으니까 거기다 적당한 데 묻으라고”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 신씨의 설명이다. 신씨는 ‘그 당시에 어느 정도나 되는 인원이 그런 식으로 묻혔다고 알고 계세요’라고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조준사격해서 몇 명이 죽으면 차량에서 굴러떨어지고 또 오고 10여 차례 이상을 반복해서 왔으니까 줄잡아서 20~30명, 이십몇 명쯤 죽었지 않나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로 신씨는 “중구난방으로, 정확히 표시해 놓고 한 것도 아니고. 그 다음에 묻으라면 자기도 땅 파고 묻기 좋은 데다 중구난방으로. 일정하게 묻는 게 아니라서 찾기 어렵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7년이 흘렀지만 신씨는 지금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양심 고백을 하게 된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군에 있을 때부터 마음이 안 좋았죠. 군에서 과도한 진압을 해서 사태가 악화되고, 또 발포로 인해서 많은 시민들이 희생이 됐는데 거기에 대한 염치도,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고 반성도 없이 시민들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또 군인들이 이십몇 명이 희생됐는데 그거는 아군이 오인사격으로 인해서···.”전두환씨가 지금까지도 ‘나는 발포명령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씨는 “말이 안 된다”면서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데, (전두환씨의 주장은) 상식밖의 말”이라고 비판했다. 1980년 5월 20일 광주에 갔을 때 신씨의 나이는 32살이었다고 한다. 사회자는 “(신씨가 당시) 32살이면 밑의 군인들, 젊은 군인들도 사실은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채 그 격앙된 상황 속에서 발포명령 내리고 쏘라니까 쏘고 암매장하라니까 매장하고. 그 짐을 평생 지고 가야 한다는 건, 젊은 군인들 중에도 피해자들이 있는 것”이라면서 신씨를 위로했다. 신씨는 지금도 자신이 매장했던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면서 “모든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억울하게 죽은 시민의 영령이라도 위로를 해 주고 명예를 회복시켜줬으면 좋겠다. 또 앞으로 철저히 규명을 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분권광장] 30년 만에 돌아온 절호의 개헌 기회/최문순 강원도지사

    [분권광장] 30년 만에 돌아온 절호의 개헌 기회/최문순 강원도지사

    개헌은 ‘새판 짜기’다. 지금까지 커 버린 몸에 맞춰 새 옷을 입는 것과 같다. 못 입는 옷은 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헌은 일종의 혁명이다. 인류의 역사가 곧 분권의 역사다. 중앙 집중하는 국가는 늘 쇠퇴했다. 분권을 빨리 이뤄 내는 국가가 패권국가가 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얻어 낸 지방자치에 기반한 자치분권 체제를 이제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출 방식이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중앙집권적 체제는 여전하다. 아직까지 충분한 자치분권이 확립되지 않았고 주민생활 속으로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공공기관이나 언론 등 시스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같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지금의 정치, 경제 위기는 새로운 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헌법은 6월 항쟁처럼 피흘리는 혁명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기능이 다했다. 1987년 헌법을 분권형 헌법 개정으로 재설계해 새 시대의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중앙집권적 권력 질서로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국민들의 창의성과 지역의 자발적 동력을 소화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 돈과 권력을 최대한 국민에게 가깝게 줘야 한다. 답보 상태에 빠진 경제 활력을 위해서라도 연방제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분권을 제공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국가와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정 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 실현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이 확립된 자치권의 보장을 위해 자신들의 헌법을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해 가고 있다. 이런 선진국의 추세와 우리나라의 국가 발전 단계, 그리고 국민 의식 수준을 볼 때 2018년 개헌은 반드시 지방자치와 분권이 담보된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가야 한다. 특히 양극화를 해소하고 안팎으로 갈라진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결집하려면 분권 개헌이 유일한 해법이다. 이제 통합의 그릇을 만들어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갈라진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담아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넘고 새롭게 도약할 힘을 모을 수 있게 통합 대국을 향한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요구이고 명령이다. 지금의 국가 체계는 돈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다. 현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중앙에서 내려오는 사업비가 지역 주민에게까지 직접 도달하지 않고 소수에게 몰려 지역에 사는 사람은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체계로 돼 있다. 이것을 나눠주고 분권해야 한다. 돈과 권력을 나눠 도와 시·군, 읍·면·동으로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30년 만에 펼쳐지는 두 가지 큰 행사가 있다. 하나는 1988년 이후 30년 만에 치러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고 다른 하나는 개헌이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우리가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까 의구심을 드러내는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정치적 타협이 이뤄져 6·29선언이 이뤄지고 6공화국도 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이와 똑같이 정치적 격동이 이어지고 있다.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동계올림픽은 선진국만 치를 수 있는 올림픽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동시에 진정한 자치분권이 실현되는 제7공화국도 제대로 열어야 한다. 동계올림픽과 함께 ‘30년 평행이론’으로 교차하며 도출된 지방분권형 개헌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30년 만에 돌아온 이 절호의 개헌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국민주권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
  • [한 권의 청렴] 출판기념회에 직원도 안 부른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의 ‘약속’

    [한 권의 청렴] 출판기념회에 직원도 안 부른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의 ‘약속’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이 책 ‘청렴한 구청장 유덕열의 약속’을 펴낸다. ‘동대문에는 대문이 없다’, ‘나의 꿈 나의 도전’, ‘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등에 이어 네 번째로 출간하는 책이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3일 구청 2층 강당에서 열린다.책은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事人如天)는 좌우명으로 그동안 펼쳐 온 구정 및 구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화들을 담았다. 경희대 김민웅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엮어냈다. 전남 나주 출신인 유 구청장은 민주화 인사 출신이다. 1979년 10·17 부마항쟁 당시 동아대 시위를 주도했던 유 구청장은 수배령을 받고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듬해 발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검거돼 삼청교육대 등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김대중을 의장으로 하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결성된 뒤 민추협 선전부장으로 일하며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6·29 항복 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는 데 기여했다. 1985년 최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동대문구와 인연을 맺었다. 제4대 서울시의원(운영위원장, 원내대표)을 거쳐 민선 2기 동대문구청장에 당선돼 ‘청렴 최우수구, 친절 최우수구, 행정서비스 최우수 자치단체’로 뽑혔다. 2010년 민선 5기에 이어 2014년 민선 6기 구청장으로 연임 중이다. 2015년과 지난해 전국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책은 이 같은 인생 역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유 구청장은 출판기념회를 치르기 위해 당일 오후 반차를 냈으며, 직원들에게도 참석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유 구청장은 “출판기념회는 36만 동대문구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미약하나마 최선을 다했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라면서 “남은 임기 동안에도 공약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함으로써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초심을 잃지 않는 구청장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MB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이 기회주신다 했다”

    MB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이 기회주신다 했다”

    바레인을 방문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4일 페이스북에 전날 밤 자신이 한 강연 전문을 올렸다.이 전 대통령은 13일 바레인 정부 장관과 외교사절 등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나의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라면서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 했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배고픔을 참고 공부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저에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재임 시 나는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다. 기업 경영자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이제는 학술적 개념으로 자리 잡고 통용되는 ‘녹색성장’을 처음 주창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경제가 침몰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지만 2년 후인 2010년에는 다시 ‘한국은 위기를 통제하는 데 만점을 받았다’고 평가했다”며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나의 재산을 가난한, 제가 어렸을 때 힘들었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에 모두 출연했다”고 덧붙였다. 강연 후 가진 질의응답에서 한 청중이 ‘한국엔 정치적 동요가 많았는데 어떻게 사회를 발전시켰냐’고 묻자, MB는 “노동자, 정부, 기업 여러 분야에서 여러 충돌의 여지가 있지만 이것을 그래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조화 시켜서 오늘날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5·18 마지막 수배자’ 영원히 후배들 곁에 머물다

    ‘5·18 마지막 수배자’ 영원히 후배들 곁에 머물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평화를 염원했던 남편의 삶과 정신이 후배들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5·18 마지막 수배자’인 고 윤한봉씨의 부인 신경희(56)씨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윤씨의 모교인 전남대가 농업생명과학대학 2호관(205호)을 ‘합수(合水) 윤한봉 기념강의실’(합수강의실)로 정하고 14일 오전 11시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는 소식에 대한 반응이다. 호남지방에서 합수는 똥과 오줌이 합쳐진 거름을 가리킨다. 윤씨는 생전에 “사회의 밑거름이 되겠다”며 합수를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전남대와 ‘합수 윤한봉 기념사업회’는 2007년 윤씨가 사망한 이후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기념 공간 조성 등 추모사업을 벌여 왔다. 제적 상태에 있던 고인에게 지난 2월 입학 46년 만에 명예졸업증서(학사)를 수여했으며, 이번 강의실 마련도 추모사업의 하나다. 신씨는 “전남대 측이 기념강의실을 마련해 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면서 “남편은 미국 망명 기간에는 조국의 민주화에 헌신했고, 귀국 이후엔 5·18정신 계승 활동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신씨는 전남대에 500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신씨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남편의 뜻을 잇기 위해 그가 받은 민청학련사건 무죄 국가 배상금의 일부를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내놨다”고 했다. 신씨는 윤씨의 미국 망명 기간 ‘로스앤젤레스 민족학교’ 총무를 맡는 등 곁에서 돕다가 윤씨가 귀국한 지 2년째인 1995년 한국으로 건너와 결혼했다. 이후 남편과 함께 5·18기념재단과 민족미래연구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활발한 시민사회활동을 펼쳤다. 신씨는 현재 전남의 한 수련관에서 청소년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윤씨는 전남대 농대 축산과에 다니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이듬해 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이후에도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으로 투옥과 도피 생활을 반복했다. 5·18 민주화운동 때는 내란음모죄로 수배된 뒤 화물선에 숨어들어 미국으로 밀항했다. 12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에서도 민족학교와 재미한국청년연합 등을 만들어 통일과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1993년 5·18 수배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수배가 해제되자 귀국해 5·18 정신을 계승하는 활동을 벌였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 시신, 교도소 감시탑 지하에 유기 뒤 콘크리트 밀폐”

    “5·18 시신, 교도소 감시탑 지하에 유기 뒤 콘크리트 밀폐”

    옛 광주교도소 감시탑 지하공간에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시신을 묻고 콘크리트로 밀폐했다는 증언이 최초로 나왔다.‘5·18 행방불명자 시신을 임시매장한 뒤 항쟁 직후 다른 장소로 옮겼을 것’이라는 5월 단체 추론과 일치하는 증언인 만큼 사실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1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옛 광주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했던 A씨는 최근 매체 5·18 암매장과 관련한 제보를 했다. A씨는 “교도소 제1감시탑 지하에 교도관인 나도 접근 못 하는 보안구역이 있었다”면서 “5·18 때 교도소 주변에 묻었던 시신을 꺼내 유기한 장소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신을 유기한 지하공간은 콘크리트로 입구를 밀폐했다고 들었다. 제1감시탑은 교도소 4개의 감시탑 중 가장 규모가 큰 데다 지하공간 구조도 독특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제보 출처에 대해 “제1감시탑 경비를 담당하면서 상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라며 “직접 사실관계를 입증하거나 관련 기록을 제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5·18기념재단은 A씨의 제보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옛 광주교도소 시설물을 소유한 법무부와 진위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재단은 옛 교도소 설계도를 확보해 제1감시탑 지하에 도면과 구조가 다른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5·18 당시 교도관으로 재직했던 퇴직자를 수소문 중이다. 또 오는 15일 옛 교도소 일원에서 진행 예정인 땅속탐사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 조사로 감시탑 지하에 밀폐된 공간이 존재하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진술은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와 ‘12·12 및 5·18 사건’ 검찰 수사에서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나 감시탑 지하공간에서 콘크리트까지 동원해 시신을 유기했다는 증언은 지난 37년 동안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5·18재단은 검찰 수사기록에 담긴 3공수여단 지휘관 진술과 암매장지 약도 등을 토대로 옛 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행방불명자 유해를 찾고 있으나 8개 배관 줄기와 생활 쓰레기만 발견했다. 재단은 암매장 추정지에 과거 굴착 이력이 남겨진 만큼 행불자 유해가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호회 엿보기] ‘좋은 벗’ 붓 삼아…매주 월요일 그녀들은 꿈을 색칠한다

    [동호회 엿보기] ‘좋은 벗’ 붓 삼아…매주 월요일 그녀들은 꿈을 색칠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팔레트에 짜 놓은 물감들을 보면 녀석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나는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어떤 색깔일까? 아무것도 없는 하얀 캔버스에 스케치하고 붓을 들어 색칠할 때면 벅차오르는 기분에 심장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진 않을까 걱정도 해 봅니다.”# 가락지처럼… 15년간 女공무원들 끈끈한 우정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기계발과 힐링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 경기 이천시청 그림 동호회 ‘가락지’다. 가락지는 여성들이 장식으로 손가락에 끼는 두 짝의 고리를 말한다. 이름 그대로 회원들 간의 영원한 우정을 뜻하기도 한다. 이천시청의 여성공무원만으로 출발했다. 가락지회의 역사는 2003년 시작돼 15년 전통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남성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모든 공직자에게 문이 열려 있다. 근래에 신입회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 동호회의 인기를 보여 주고 있다. # 퇴직 기념전시회 ‘전통’… 낙후지역 벽화 동참도 15명이 활동하고 있는 가락지회는 매주 월요일 퇴근 후 데생·수채화·유화 등 그림을 그린다. 학교에서 받던 미술수업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작 활동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처음 시작하는 회원이나 그림 그리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회원들은 지도 선생님의 도움도 받기도 한다. 그냥 그림이 좋다는 이유로 10여년 세월을 넘기면서 그림 작업으로 친목과 정을 나눈다. 전시관, 미술관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그림의 소재를 얻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회원 모두가 저마다 꿈을 그려 가는 곳이다. 박경미(여성가족과) 회장은 “직장을 인연으로 만난 좋은 벗들과 그림 그리는 여유로움으로 행복을 공유하며 자유롭게 작업한다. 지친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뿌듯한 성취감도 느낀다”며 “자기계발에 한몫하고 있다는 게 이 동호회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말한다. # “취미로 시작했다 출품… 화가 꿈 이룬 회원도”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퇴직하는 회원들을 위해 후배들이 퇴임기념 전시회를 열어 주는 게 전통이 됐다. 2012년 서광자(전 상수도사업소장) 회원과 지난 6월 말 박회자(전 예산공보담당관) 회원의 퇴임기념 전시회를 했다. 2010년 이천시청직장동호회전시회, 여성문화대학 전시전 등 수차례 초청돼 작품전을 갖기도 했다. 경로당 어르신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어르신들의 고충의 소리를 귀에 담기도 하며, 낙후된 요꼴마을 담벽에 벽화 그리기에 동참하는 등 재능 기부로 행복한 동행을 실천하기도 한다. 이미연(민주화공원사무소) 총무는 “취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매년 작품전과 공무원 미술대전, 기예경진대회에 출품도 하고 달력을 제작하는 등 전문가의 반열에 들어 퇴직 후 예술가의 길을 걷는 분도 있다”고 귀띔한다. 어릴 적 화가의 꿈을 꿨던 이들에게 잃어버렸던 꿈을 찾아 주는 동심의 공간인 가락지회 방에는 매주 월요일 저녁 회원 모두가 각자의 꿈에 색칠을 하는 열기가 가득 찬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대구 간 홍준표 “박정희만 한 지도자 없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다음주 서울 여의도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을 내걸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나흘 앞둔 10일 대구를 방문해 이같이 밝히고 문재인 정부와 “한 판 붙겠다”고 덧붙였다. 홍 대표의 이런 발언은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조치에 마음이 상한 대구·경북(TK) 민심을 다독이는 한편 보수 우파 진영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홍 대표는 대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미래포럼 21’ 토론회에 참석해 “공과가 있지만 강단과 결기, 추진력을 보면 대한민국 지도자 중 그만 한 지도자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홍 대표는 다음주 최고위원회 논의를 거쳐 건국의 아버지 이 전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 전 대통령, 민주화의 아버지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홍 대표는 이어 변창훈 검사의 투신 사망 사건과 관련해 “SNS를 보면 이 정권을 자살정권이라고 하는데 공수처라도 만들어 정권의 개 노릇을 하는 검찰을 견제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홍 대표는 앞서 페이스북에 “일부 잔박(잔류 친박근혜)들이 당대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패악”이라고 비난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교도소 암매장 발굴 범위 넓히기로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내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암매장됐을 것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장소에 대한 발굴 조사가 범위를 넓혀 더 정밀하게 진행된다. 5·18기념재단은 10일 발굴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구간 내에서는 암매장과 직접 관련된 구덩이 흔적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6일부터 발굴 조사가 시작된 1구간은 5·18 당시 3공수여단 16대대가 주둔했던 교도소 북측(담양 방면) 담장 바깥쪽, 전체 117m(폭 3~5m) 중 40m 구간이다. 재단은 이에 따라 1구간의 발굴 조사 범위를 교도소 담장에서 2m 떨어진 곳부터 폭 2.5여m, 길이 40m 구간을 추가로 발굴하는 등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 재단은 이를 위해 오는 13~14일 발굴 장소를 덮고 있는 콘크리트를 절단해 제거하고 15일부터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2~3구간의 발굴 작업도 예정대로 진행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한국당, 박근혜 내리고 박정희 올리고…TK민심 보듬기?

    한국당, 박근혜 내리고 박정희 올리고…TK민심 보듬기?

    당사에 MB·박근혜 사진 내리고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 걸기로홍준표 “오천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줘…그만한 지도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 존경해”박근혜 출당에 마음 상한 TK 민심 달래기+보수 정체성 확인 자유한국당이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사건 등으로 출당시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을 내리고 대신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다음주부터 걸기로 했다. 이승만, 김영삼 등 보수 진영의 전직 대통령의 사진도 같이 걸 예정이다.홍준표 대표는 10일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미래포럼21 토론회에 참석해 “다음 주 최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여의도 당사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의 아버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이어 “이 나라를 건국하고, 오천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으며, 민주화까지 이룬 세 분 대통령의 업적을 이어받겠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공과가 있지만, 이 민족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강단과 결기, 추진력을 보면 대한민국 지도자 가운데 그만한 지도자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홍 대표가 전직 3명의 대통령 중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각별한 존경심을 표시한 것은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 조치에 마음이 상한 TK(대구·경북) 민심을 다독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겠다는 것은 보수우파 진영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보수대통합을 견인해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한국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 전 대통령의 사진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는 박 전 대통령 사진을 여의도 당사 당 대표 및 사무총장 사무실에 걸었지만, 현재는 아무런 사진도 걸려 있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당 대표실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여의도 당사 입구에는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의 흉상을 설치해 놓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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