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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앞 집회 논란’ 헌법 앞에 서다

    ‘청와대 앞 집회 논란’ 헌법 앞에 서다

    ‘청와대 반경 100m’ 구역에서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위헌심판대’에 올랐다.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16일 “청와대 앞 100m 이내 장소에서 모든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집회·시위 장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현행 집시법 11조는 청와대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공관 등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 옥외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참여연대 측은 “청와대 주변 100m 공간도 시민들이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데 있어 예외 공간일 수 없다”면서 “위험성이 없는 소규모 비폭력집회까지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의 경호상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 관저는 청와대 외곽 담장을 기준으로 100m 이상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관저는 이미 대통령경호법과 테러방지법 등으로 중첩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면서 “청와대 앞길 통행이 24시간 허용되고 있고, 이미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청와대 앞 100m 이내 집회는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앞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처음이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국내 외교기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참여연대가 2013년에 낸 ‘국회 앞 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소원과 2016년 ‘법원 앞 집회 금지’에 대한 위헌 제청 등은 계류 중이다. 청와대 등 국가 주요 시설물 주변 집회 금지 조항은 경호상 목적과 업무 방해 차단 등을 위해 명문화됐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격·폭력 집회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면서 이제는 허용해도 된다는 주장에 차츰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법률 전문가들도 현행 집시법이 ‘과도한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안전 문제와 소음 등은 다른 법률 조항으로도 보호와 규제가 되는 만큼 장소에 있어서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집시법은 민주화가 정착되기 이전의 집회·시위를 규제·단속하려 만든 법”이라면서 “시민들이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통해 역량을 보여 줬으니 집회 장소에 대한 금지 규제도 점차 줄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국가 주요 시설물 주변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일부 지역에서만 예외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연방집회법에 따라 주요 기관 인근에서 벌어지는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출입에 방해가 되지 않을 때에만 연방 내무장관과 해당 기관장이 허가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9·11테러 이후 백악관, 국회의사당, 법원 등 주변(15.24~152.4m)을 집회·시위 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특히 백악관 주변 집회·시위는 허가제로 하되, 최대 인원을 7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서울플러스 칼럼] 경제민주화 무엇이 문제인가?/황종성 경제 칼럼니스트

    [서울플러스 칼럼] 경제민주화 무엇이 문제인가?/황종성 경제 칼럼니스트

    ●경제민주화, 현 정부의 역량으로 풀어내야 4만불로 도약한다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것은 고전경제학인 자유시장경제 사상에 젖어있는 대기업 총수들로서는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다. 서양에서 건너온 경제학 교과서는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인데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사회주의가 가미된 강제이론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제시했던 경제학자들도 대기업의 불공정이 눈에 보이지만 어떠한 법령으로 조정해야 할지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계속 세월을 허비한 게 사실이다.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덩치 큰 형님들이 체구가 작은 동생들과의 거래에서 좀 신사적으로 공정하게 거래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대기업이 살아야 낙수효과로 경제가 산다는 친 대기업 프랜드리 정책이었다. 박근혜 정부 또한 김종인을 내세워 표를 얻은 다음 친 대기업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이해가 부족한 역대 대통령들이 대기업에 규율을 가하는 경제민주화 작업에 도전하기보다는 국정의 당면과제에 매몰되었고 여당이나 야당의 대치상황의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몇 명 이서 쉽사리 발의될 문제도 아니다. 정부 관계부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대기업과 하청기업간의 갑을관계를 해소해야헌법 119조 1항의 자유시장경제에 기초해서 시장을 자유롭게 방치 할 경우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와 얼룩말 관계가 되는 것으로 자연적으로 자의적 타의적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전통시장에서 농산물 등을 단순거래 할 경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서 가격이 형성되지만 을이 갑에게 부품을 지속적으로 납품해야 하는 관계에서는 도면을 제출할 수밖에 없고, 원가가 노출될 수밖에 없고, 기술이 노출될 수밖에 없고, 원가를 낮추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고, 요구가 통하지 않으면 도면을 경쟁사에 넘겨서 투 트랙으로 납품 받을 수밖에 없고, 기술을 모방할 수밖에 없듯이 대기업의 끝없는 탐욕으로 약자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처참한 불공정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시장경제라는 명목으로 국가에서 손쉽게 통제하기가 불가능했다. 또한 갑을 관계에 쫓기다 보니 하청기업들은 원하는 제 값을 받을 수 없는 구조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기업은 이러한 중소기업의 희생으로 가격경쟁력이 생성되고 독점계약으로 독과점하게 되고 경쟁자가 생성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대기업 부익부 중소기업 빈익빈이 되어 10대 대기업의 유보금 700조원 시대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결국 국가는 방관할 수 없어서 공정거래 위원회를 만들고 공정한 룰로 공정거래를 유도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하청기업의 특허는 대기업 것이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대기업이 변리사를 통해서 기술탈취가 가능한 맹랑한 법 그 자체로 다른 내용만 추가하면 별도의 특허나 실용신안이 가능하다. 한국의 고무줄 특허법으로 힘이 약한 중소기업은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 특허제도이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신기술이 있어도 특허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기술 노출을 줄이는 방편인 것이다. 대기업과 특허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중소기업은 시간 싸움에서 감당이 안 되고 기술 싸움에서 지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서는 중소기업의 원천특허 주변에 방어 특허를 즐비하게 내놓기 때문에 방어 특허에 매몰되고 만다. 소송 기간 동안 제품은 충분히 팔아먹고 제품 사이클이 끝나서 빈 껍데기만 남게 되니 기력만 허비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싸워보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특허나 실용신안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중소기업 하는 것은 기업의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없어서 무수한 기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특허가 활성화되려면! 특허료 연납을 폐지하고 방어개념의 특허는 반려하고 원천특허에 더 기회를 주고, 잠자는 특허는 평가기관에서 가치를 평가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곳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특허 괴물을 차단하는 등 전문가의 토론을 거쳐서 특허법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급여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기업과 하청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모든 원가가 노출되어 중소기업이 원하는 제 값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회사를 유지 관리하고 직원들 봉급 주고 나면 다음 단계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져서 기술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조달될 수 없는 신기술 부품과 로열티는 선진국에서 비싼 값 주고 수입해야 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제값을 주고 물건을 사주는 것은 미래시장을 위한 투자이고 국가에 대한 애국이다.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재육성 되지 않는 환경이 안타까운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의 독점은 공정한 분배의 균형이 깨져버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은 살고 하청 관계의 중소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이다. 이렇듯 대기업은 구매에서 남기고 매출에서 남기니 배부른 것이다. 대기업 사원 평균 연봉이 1억이면 하청 관계의 중소기업은 평균 3800만원 정도인 것이다. 대기업의 한정된 채용은 최고의 인재를 골라 쓰지만 중소기업 채용은 청소년이 취직을 기피하므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매우 심각하다. 부모로부터 용돈 받고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취직하지 않는 캥거루족이 100만명이다. 경제가 민주화되지 않는 결정판이다. ●경제가 민주화되려면 기회의 분배가 경제민주화의 결정판이다. 대기업 품목의 독점을 막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경제민주화법 119조 2항에서는 국가의 판단에 따라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의 고부가 상품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기회가 분배되고 모두의 소득분배가 공평해지는 것이다. 99%의 중소기업이 88%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이 될 수 있도록 대기업품목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은 대기업보다 강소기업의 수가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에는 자동차회사만 250개가 있고 휴대폰 회사도 250개가 존재하듯이 기업 활동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서 법령에 없는 사항은 공무원의 제지를 받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경제가 민주화되는 것이다. 중국처럼 기업이 원하는 기회를 마음껏 풀어헤쳐야 만 가지 기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독점기회를 나눌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법 119조 2항의 법령을 만들어서 대기업이 백화점식으로 계열사를 만드는 선단식 재벌 지배구조를 지양하고 중견기업들이 1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길을 터 주어야 할 것이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으로는 경제민주화 불가능 한국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10대 재벌 평균 계열사가 80여개로 순환출자로 아전인수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단식 재벌경영의 토대가 중견기업들을 재벌그룹에 가두고 고성장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재벌 쪽에 편중되어 있는 국가 경제의 부가 낙수효과 없이 자본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중소기업들의 활력이 저하되어 재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재벌개혁의 과제는 포트폴리오 이상의 법인을 가질 수 없도록 수량 제한을 해주는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과일나무를 자유분방하게 자연상태로 놔두고 성장시키면 과일이 너무 열려 가지가 찢어지는 것보다 적정수량의 전지를 통하여 건강한 수량을 갖는 것이 경제적인 것이다. 대기업의 내수판매를 향한 수평적 시장 분야 잠식보다는 자본과 기술력을 통한 해외 진출 시장으로 더욱 수준 높은 미래 먹거리로 달러를 벌어들여야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대기업이 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한 가지 품목의 탄탄한 재벌이 변화무쌍한 80개 계열사 관리하는 것보다 집중력의 힘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재벌이 한 가지 품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줘야 롯데 신격호 회장이 재판에 출석하여 “내 회삿돈 내가 자녀에게 주는데 무엇이 문제냐” 라고 하였다. 연로하여서 경영을 망각하였다 해도 장사에 있어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119조 1항의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은 사유재산인 것이다. 1년에 3억원 이상의 개인소득에 대하여 42%의 합산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소득의 거의 반을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이 소득을 다시 상속하려면 또다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야 한다. 기업을 운영해서 법인세, 개인 소득세, 재산세, 상속 증여세를 내다보면 3중 과세 당하는 납세구조인 것이다. 기업 하나 운영하면 국가 유지세금 3중 과세와 고용인 먹여 살리는 기업인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애국자이다. 재벌들 또한 이러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재벌개혁 또한 모두가 섭섭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 주어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미래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개혁이야말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활력 법안으로 개혁해야 1인 대기업이 가능한 나라 100% 지분 100% 상속세 없이 상속이 가능한 나라로 당근을 주어야 재벌해체가 가능하다. 100% 상속은 강력한 소유욕을 충족시키며 평생 노력하면 자기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기업의 활력을 북돋운다. 100% 상속세 면제는 금수저가 아니고 고용을 책임지는 고용상속이다. 상속세의 면제는 일벌레 인증서나 다름없다. 100% 상속은 안정된 고용상속이다. 고용 안정화가 일자리 풍부한 경제민주화의 표상인 것이다. 80개의 5% 지분보다 1개의 100% 지분을 가지고 세계화의 드넓은 시장에서 집중하는 것이 이 시대 대기업의 역할인 것이다.
  • [데스크 시각] 일대일로와 新남·북방 정책/오일만 경제정책부장

    [데스크 시각] 일대일로와 新남·북방 정책/오일만 경제정책부장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경제협력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사드 문제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지만 예측불허의 동북아 정세에 비춰 한·중 관계 개선이란 더 큰 국익을 선택한 것이다. 첫 시동은 다음달 2일 열리는 한·중 경제장관 회의다. 1년 9개월 만에 재개되는 이번 회의에서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허리펑 중국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주임(장관)이 나선다.초미의 관심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와 ‘신남방·신북방 정책’이 어떻게 접목되느냐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과거 아시아와 유럽 문명의 통로였던 실크로드를 내륙과 해양 양면에서 부활시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향후 30년간 지속될 중국의 핵심 경제 전략이다. 지난 19차 당대회에서 당장(黨章)에 포함시켰다. 당장에 명문화했다는 것은 우리로 치면 헌법 조항이나 다름없다. 신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퇴로를 끊고 중국의 모든 자원과 정책을 쏟아붓겠다는 배수진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신남방 정책은 북쪽으로 러시아와 유라시아, 남쪽으로는 아세안과 인도와의 연결을 통해 역내 국가들 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 금융위기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 국가 성장 동력을 살리면서 북핵 위기로 촉발된 안보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겠다는 의미다. 현실성을 떠나 정권의 명운이 걸린 승부수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무리 양국 정상이 상생을 외치고 손을 맞잡아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제역량과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중국은 25년 전의 후진국이 아니다. 2030년 전후로 미국 경제를 추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한·중 경협은 초기 우리의 기술과 중국의 노동력이 결합하는 수직적 보완관계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다. 한·중 경협은 협력과 경쟁이 교차하는 2인3각의 게임으로 변했다. 우리가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해야 중국과의 협력이 가능해졌다. 먹고 먹히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윈윈을 추구하는 고난도 전략이 필요해졌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4차혁명 시대는 한·중 간 경협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개혁·개방 70주년을 맞은 중국은 4차혁명 시대 미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 중국은 10여년 전부터 IT 벤처의 생태계를 만들어 냈고 드론,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중심지다. 우리 역시 혁신성장의 기반을 4차혁명에 빅데이터와 AI 등 13개 분야를 혁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과 맥이 닿는 한·중 경협이 한반도의 신북방정책과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동남아를 통한 신남방정책으로 확대될 경우 양국 간 협력 공간은 기대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우리의 오랜 꿈인 유라시아와 환태평양, 인도양을 엮는 ‘한반도 그랜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목표가 중국의 패권 전략에 말려드는 ‘허황된 꿈’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구한말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 언제 먹힐지 모르며 전전긍긍했던 약소국이 아니다. 경제 10위 대국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고 스스로 민주화의 대업을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스스로 한·미 동맹의 하부구조에 그 역할과 위상을 국한시켜 비하해선 안 된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대통령을 조롱하고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 대통령의 말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런 사대적 행태로는 그 어떤 비전도 실현할 수 없다. oilman@seoul.co.kr
  • 얻어맞더라도…사회적 약자 위해 링 위에 서다

    얻어맞더라도…사회적 약자 위해 링 위에 서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보면서 ‘링 위에서 끝끝내 버텨서 쓴 글이구나’ 했어요. 링에 올라가 줄곧 두드려 맞으면서도 내려오지 않은 거죠.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지’, ‘어떻게 감히 링 위에 올라갈 용기를 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아픔을 분투하듯 끝까지 파고든 소설을 이야기하며 젊은 학자는 감탄했다.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살핀다는 동질감 때문일 터다. 다른 게 있다면 그의 ‘링 위에서의 싸움’에서는 약자들이 어떤 사회적 원인 때문에 아픈지 증명하는 데이터가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이다. 사회적 폭력과 차별, 혐오, 고립 등이 해고 노동자, 참사 피해자, 성적 소수자,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등의 몸에 상처와 질병을 새겨넣었음을 드러내고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그의 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펴낸 첫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으로 지난해 연말 여러 언론사, 출판계 안팎의 단체에서 ‘올해의 저자’로 뽑힌 사회역학자 김승섭(39)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다. 개인의 질병에 사회의 책임을 묻는 그의 저술은 자연스레 인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며 한국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 공동체인지 민낯을 보여 주며 자성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역학이라는 국내에선 생경한 분야를 다룬 과학서로는 이례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현재까지 8쇄, 2만 3000부를 찍었다. 저자도 반응을 체감하고 있을까. “환호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제 일상은 똑같아요. 외부 강연, 방송 출연도 다 거절하고 있고요. 학교에서는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하고 집에서는 아이들 돌보느라(그는 세 딸을 둔 아빠다) 바쁘니 달라질 게 없죠. 다만 제가 해 온 일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크게 격려받는 기분이에요.” ●산재 피해자들에 감명 ‘사회역학’ 입문 얼마 전 찾아간 고려대 과학관에 있는 김 교수의 연구실 책상 위 벽엔 ‘매일 두 시간 읽기’라는 결심이 써 붙여져 있었다. “하루라도 공부를 안 하면 티가 난다”는 그는 연구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려 사람 많은 자리엔 거의 나가지 않고 밥도 혼자 먹는다. 아침에 샌드위치 두 개를 사 연구실에서 두 끼를 해결하기도 한다. 명문대 의대생이었던 그가 안락한 미래와 연결된 의사 대신, 박사학위 수여자가 나온 지 10여년밖에 안 된 신생 학문인 ‘사회역학’(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자가 된 이유는 뭘까. ‘어린 시절 특별히 정의롭지도 용감하지도 않던 내가 어쩌다가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꿈을 꾸고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을까’란 자문자답에서 그는 의대 본과 1학년 겨울방학을 떠올린다. 산업재해를 당한 이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한 달간 상근 자원봉사자로 일했을 때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 했을 때 알아챘다.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걸. 하지만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유쾌함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상처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환경 필요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감수성’을 평생 간직하려는 꿈은 약자에게 아픔과 고통을 가하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학문에 몸담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목차에 열거된 그의 연구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망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성적 소수자 등 어김없이 한국사회의 가장 아픈 현장 한가운데에 있다. 상처, 질병을 낳은 ‘원인의 원인’을 캐내기 위해 피해자, 소수자들이 가장 힘겨워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때문에 그 역시 울기도 하고 괴로울 때도 많다고. 하지만 김 교수는 “나도 가능하면 평안하고 싶지만 내게 다가오는 고통들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며 “얻어맞는다 해도 내가 선택한 링 위에서 싸우니 좋은 인생인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책에서 김 교수는 ‘피해자 개인에게, 자원과 자본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인과관계 부담을 떠넘기는 한국사회의 취약함이 세월호 참사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해결과 치유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세월호 얘기를 꺼내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이야말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어요. ‘지겹다’고 말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지적했듯 무력감이 자리해 있어요. 마음은 아픈데 지난 몇 년간 사회적 분위기나 대응은 그 상처를 점점 깊어지게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갔으니까요. 그러지 않았다면 ‘세월호’가 누구도 입에 올리기 불편해하는 이름은 안 됐을 거예요.” 세월호 이후에도 사회구조적 폭력으로 인한 아픔은 되풀이됐다. 그는 불행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피해자 목소리’를 담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정책 입안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리 짐작해도 상처의 본질을 잘 몰라요. 하지만 많은 국가기관의 관련 보고서들은 자신들의 지원에 대한 성과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쓰죠. 처절한 실패나 아픔의 이야기가 안 나오니 그동안에는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도 부재했고요.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려웠어요. 쌍용차 해고노동자 사태 사례만 해도 그토록 많이 죽고 아파했던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목소리에서 배우지 못하면 한국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할 때 한 걸음도 떼지 못합니다.” ●고용불안 탓 인권 말도 못 꺼내 상처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모든 공동체와 개인은 어려움과 상처를 겪어요. 트라우마는 없어지거나 완전히 치유되지도 않죠. 상처를 가지고 살 수 있게 되는 것, 숨 쉴 수 있게 되는 것뿐이에요. 때문에 그 상처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중요해요. 2011년 노르웨이 우토야섬 테러 사건이 났을 때 노르웨이 총리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이 폭력에 대해 더 나은 민주주의로, 더 나은 인간성으로 복수하겠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사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겠구나, 각성이 들었죠. 우리도 이 문장을 곱씹어 봤으면 좋겠어요.” 우토야섬 테러는 2011년 극우주의자인 안데르스 브레이비크가 당시 이 섬에서 열린 노동당 청소년 정치캠프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7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를 빚어내기 위한 그의 연구는 계속된다. 김 교수의 다음 연구 역시 한국사회의 병폐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마트, 백화점, 면세점 등 서비스 노동자의 건강 연구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 하청·파견 노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 이런 추세가 한국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올 것이란 문제의식에서 뿌리를 낸 주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건 너무도 명백한 일이죠. 서비스 업종이 특히 심합니다. 마트,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화장실에 제때 못 가 방광염에 걸리는 비율이 전체의 20.7%(지난해 9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마트,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 판매 노동자 2204명을 설문한 결과)예요. 인력이 한 명밖에 없는 시간이 2시간가량으로 꽤 길고, 고객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이용하지 못해 화장실 개수가 턱없이 적으니까요. 의자가 없어 혹은 의자 사용이 금지돼 있어 하지정맥류에 걸리는 사람도 전체 응답자의 17.2%나 돼요. 서비스 노동자들이 소변을 제때 못 봐 방광염에 걸리고, 하지정맥류로 고생해도 앉지 못하는 현실은 ‘고객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아름답고 비싼 상품들 뒤에서 누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는 걸 알려 줍니다. 서비스 노동자들의 몸을 연구한 데이터를 통해 블랙컨슈머 문제, 인력 부족 문제 등을 함께 짚어 보고 싶어요.” ●‘성소수자 낙인 효과’ 연구도 진행 이와 함께 한국에서 특히 심한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 효과’가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바이러스 환자의 신규 감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책에서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을 전했다. 그의 연구가 그런 사회로 발을 내딛게 할 ‘징검돌’인 셈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의정 포커스] 송인기 노원구의원 “공공시설물 하나라도 세금 허투루 못 쓰게”

    [의정 포커스] 송인기 노원구의원 “공공시설물 하나라도 세금 허투루 못 쓰게”

    “구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견제와 감시를 철저히 하겠습니다.”송인기(국민의당) 노원구의원은 지난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의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집행부를 제대로 감독하는 데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송 의원은 7대 구의회에서 통과시킨 ‘노원구 공공시설물 등의 설치 및 건립비용 공개에 관한 조례안’을 그 예로 들었다. 노원구에서 공공시설물을 설치하거나 건립할 때 투입된 비용을 공개함으로써 예산 집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노원구에 부족한 체육문화복지시설도 확대하고자 힘썼다. 지난해에는 수락산역 어울림 체육센터 건립 확정, 상계 125 생활 체육시설 조성 사업 추진 등의 성과를 냈다. 전남 고흥에서 나고 자란 송 의원은 조선대학교 재학생 시절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15년간 교직을 맡았다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송 의원은 처음 교사로 발령난 중학교에서 교장이 그에게 한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당시 교장은 송 의원에게 ‘교사로서 최소한의 양심만 가지고 생활하라’고 했다고 한다. 송 의원은 “구의원을 하면서도 ‘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한다면 이 자리가 욕되지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끝으로 지방자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기초의원 공천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때문에 기초의원들이 당과 지역위원장의 눈치를 보면서 여러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양정철 “노무현·문재인, 언어로 국민과 소통 중히 여겨”

    양정철 “노무현·문재인, 언어로 국민과 소통 중히 여겨”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가치는 바로 ‘언어의 민주화’에 있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세상을 바꾸는 언어’라는 제목의 책을 15일 냈다. 지난해 5월 대선 승리 이후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돌연 해외로 떠난 양 전 비서관은 일본 등에서 책을 집필했다.양 전 비서관은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노무현, 문재인 두 분의 가치를 내 나름 방식으로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7~8페이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에서 “두 분은 상당히 다르지만, 많이 비슷하다. 그중 하나가 말과 글, 즉 언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일을 대단히 중히 여긴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은 ‘언어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참여정부 5년과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의미를 찾았다. 친노무현계의 정치적 흥망을 지켜봤던 그가 발견한 또 다른 ‘언어의 힘’은 바로 침묵과 낮은 목소리라고도 했다.지난해 촛불집회도 결국 ‘언어 민주화’로 볼 수 있다며 “그 많은 시위 참여자들이 일순간 불을 끄고 침묵으로 말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얼마나 크고 깊고 장엄한 것인지 보여줬다”(58페이지)고 평가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한 양 전 비서관은 현 정부 초기 일부 언론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호칭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여사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대통령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는 부적절하다”면서 “‘대통령’이란 단어 자체가 존칭이듯이, ‘영부인’이란 호칭도 하나의 존칭이다. 부를 때에는 ‘영부인님’, 공식 명칭으로는 ‘대통령 부인 OOO씨’가 오히려 깍듯한 표현”(129페이지)이라고 밝혔다. 양 전 비서관은 차기 대통령의 덕목으로 ‘언어능력’을 꼽았다. 그는 ‘다음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단락에서 “대한민국이, 세련되고 절제된 자기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대통령-국회의장-총리를 동시에 갖게 된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생각한다”(219페이지)고 밝혔다. 그는 책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본인만의 언어 능력이 뛰어난 분’으로, 이낙연 국무총리는 ‘(언어능력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으로 각각 묘사했다. 정치 복귀설에 대해 수차례 선을 그었던 양 전 비서관은 신간 출간에 맞춰 잠시 귀국한다. 오는 30일과 2월 6일 북콘서트를 열고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 설 예정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퍼블릭 뷰] 영원불멸의 가치는 국민의 봉사자… ‘흡혈귀’ 아닌 ‘자양분’ 되라

    [퍼블릭 뷰] 영원불멸의 가치는 국민의 봉사자… ‘흡혈귀’ 아닌 ‘자양분’ 되라

    매일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 2개를 들고 문도 닫지 못한 채 덜컹거리며 달리는 만원 버스에 매달려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민주화 시위와 최루탄 가스 그리고 학기마다 반복되는 휴업·휴학으로 강의를 제대로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미래가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절 시위를 계속할 것이냐 취업을 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끝에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고 33년여의 공직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복지부동, 무능·부패 집단, 영혼 없는 사람 등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고 우리나라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기로에 선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33년 공직생활 온갖 비난ㆍ수모에도 공익 추구 영원불멸의 제1가치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는 사실이다. 사익보다 공익과 국익을 우선시해야 한다. 공직 사회를 스스로 평가하면서 그 기준을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개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동시대의 외국 공무원은 물론 사기업 등 민간 분야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표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 법령 탓만 말고 국민 원하는 새 대안 찾아야 담당하는 업무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공무원은 정부 정책 방향과 현행 법령 체계 안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환경 변화에 뒤처져서도 안 된다. 구체적인 개별 사항에 관한 전문지식에 집착하지 않되 전문가 집단이나 국민들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재량권을 행사하되 ‘법령 때문에 안 된다’는 부정적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고 조속한 법령 개정 등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른바 ‘청부’(淸富)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이제 더이상 공무원은 못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을 부린다든가 부정·비리에 연루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흡혈귀’가 아닌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힘이 있는 자에게 당당한 견제자로서 역할하되 힘이 없는 이웃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 의식 함양에 앞장서야 한다. 나 스스로 일상생활에서 공중도덕을 지키되 남을 배려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내 업무를 통해 일반 국민들이 그 덕목을 지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물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 공권력 회복 위해선 스스로 뼈 깎는 노력 해야 정치 지도자들께도 한말씀 드린다. 더이상 공무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비리에 연루되거나 업무에 태만했을 때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나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공무원들을 여론몰이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도의적 책임은 직업 공무원이 아니라 정무직 공무원이 지도록 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께도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아직 공무원들이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계속 꾸짖어 주시되 공무원들을 유혹하거나 또는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후배 공무원들이여 힘을 내시라. 우리는 그대들의 능력과 충성심을 굳게 믿고 있다. 공권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이 최우선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과 기대감을 뛰어넘어 감사한 마음과 세계 일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힘차게 나가자.
  • “신의 사랑엔 ‘이성애 중심’ 없어” 성소수자 품는 임보라 목사

    “신의 사랑엔 ‘이성애 중심’ 없어” 성소수자 품는 임보라 목사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작다고 약한 것이 아니고, 소수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이치를 이 땅에 이루겠습니다.” 14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열린 분가 5주년 기념예배에서 예배 이끄미가 이같이 말하자 참석자 40여명은 “소외된 이웃들이 편히 밟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멜로디언, 리코더, 기타의 소박한 반주에 맞춰 교인들은 5주년 기념 찬송가 ‘섬돌의 노래’를 합창했다. 임보라(50) 목사는 여섯 색깔 무지개로 장식된 설교대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눠 줬다. 2013년 1월 마포구 ‘문턱 없는 밥집’에서 첫 예배를 올리며 시작한 섬돌향린교회가 어느덧 5주년을 맞았다. 섬돌향린교회는 성인 교인 500명이 넘으면 분가를 한다는 안병무 향린교회 공동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명동향린교회에서 독립했다. 교회가 몸집 불리기에만 연연하고 공동체 정신은 뒷전으로 하는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임 목사는 87학번으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대학생활을 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원에서 진보신학을 공부하면서 향린교회와 연이 닿았다.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논란이 한창이던 10년 전쯤 교회 내 소모임에서 성소수자·여성 인권 등을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성소수자를 품는 교회를 이끌게 됐다. 5년 전 79명으로 시작한 작은 교회는 지난해 말 재적인원 150명이 넘었다. 지난해에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8개 교단에서는 임 목사가 소속된 향린교회에 임 목사의 파문을 요구했고 친교교류금지 결정까지 했다. 다행히 임 목사가 속한 향린교회에서 “성소수자 관련 목회에 대해 이단 시비를 거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토론과 연구를 통해 의논할 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캐나다 연합교회는 임 목사에 대한 지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임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등 보수교단에서는 지난해 교단법을 고쳐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은 출교시킬 수 있게 했다”며 “몇몇 목사님들은 교단에 소환돼 권고조치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회의 성숙성을 보는 지표가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며 “성소수자뿐 아니라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고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목사는 올해 ‘퀴어 성서 주석’ 번역본 발간을 앞두고 있다. 보수교회의 성소수자 혐오 근거가 되는 구절을 중심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서를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임 목사는 “신의 사랑에는 ‘이성애 중심’ 조건이 없다고 알려주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청량리 역세권·4구역 재개발… 동대문, 동북권 중심으로”

    [자치단체장 25시] “청량리 역세권·4구역 재개발… 동대문, 동북권 중심으로”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동대문구 주민들이 동대문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안전하면서도 발전하는 동대문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 구청장은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대문구는 청량리 역세권 형성, 청량리 4구역 재개발 공사 착수, 한방진흥센터 건립 등으로 곳곳에 개발과 재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 같은 사업들이 계속 발전해 동대문이 동북권 중심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총력을 쏟겠다”고 말했다.→2018년 무술년 새해 각오는. -동대문 구민들이 우리 구가 안전하고 우리 구에 사는 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같은 일념으로 구민을 섬기고 있고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다. 살기 좋은 동대문구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친절, 청렴, 그리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정책이다. 구민들이 동대문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겠다. 구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구청장, 편안하게 소통하는 구청장, 고민하고 실천하는 구청장으로서 동대문구가 보다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 우리 36만 동대문구민 여러분, 2018년 무술년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건강과 화목이 깃들길 기원한다. →새해 구정 운영 방향은. -동대문구는 청량리 역세권 형성, 청량리 4구역 재개발 공사 착수, 한방진흥센터 건립 등으로 곳곳에 개발과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퇴색한 구도심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교통, 문화, 경제가 꽃피는 동북권 중심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이 사업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챙기겠다. 2010년 민선 5기 취임 이후 민선 6기를 연임하면서 사람이 살기 좋은, 사람이 중심인 행복도시를 만들기 위해 교육·복지·안전·문화·경제·환경 등 6개 분야에서 핵심 과제를 선정하고 사업을 추진해 온 만큼 구정 운영 성과들이 성공적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이번 임기를 잘 마무리해 주민들로부터 한층 깊은 신뢰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지난해 구정평가가 좋았는데.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주관 메니페스토 공약실천 분야 최우수상을 2년 연속 받았다. 2015년부터 2년 연속 전국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우수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지역사회발전 공헌대상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지방자치행정대상, 한국의 지방자치 경영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14일 시민단체로부터 ‘예산효율화 최우수 지방자치단체 상’을 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상은 서울시 25개 구청장의 업무추진비를 분석한 결과 동대문구가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했다는 의미로 주어졌는데 앞으로도 지방재정이 어려운 만큼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힘쓰겠다. 이 모든 실적이 36만 구민과 1300여명의 우리 구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만큼 구민들을 더욱 잘 섬기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구민들을 친가족과 형제처럼 받들어 나가겠다. →민선6기 4년을 돌아볼 때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동대문구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별로 없었다. 구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안전에 신경을 썼고 주거 환경이나 주민들의 거주 여건 향상에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연말 경강선KTX가 개통되고 청량리역이 서울역과 함께 시·종착역이 되면서 서울 동북지역 관문으로서의 역할도 강화하게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서울약령시에 한의약 복합문화체험시설인 한방진흥센터도 개관했다.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약재의 70%를 처리하는 국내 최대의 한방시장인 서울약령시의 특성을 살려 동대문구 지역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청량리종합시장 등 11개 재래시장을 재생하는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동대문에 사는 게 안전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시가 발전하고 있고 구민들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민선6기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구 재정이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국민 세금만으로 모자라 늘 부족해서 죄송하고 아쉬울 뿐이다. 사업 부문에서는 당초 2017년 말까지 완료했어야 하는 배봉산 해맞이 조성 공사가 올해 상반기로 다소 늦춰진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6년 9월 배봉산 정상에 8230㎡ 규모 해맞이공원을 조성하던 중 삼국시대 고구려 유적인 배봉산 보루성이 발굴됐고, 지난해 2월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일정이 다소 늦춰졌다. 공사가 최대한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방분권 논의가 활발한데 지방자치 발전에 대한 제안이 있다면.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민들을 지근거리에서 만나는 기초지방정부에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 특히 복지수요는 늘어 가는데 세수부족에 따른 재정문제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사이의 힘겨루기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정권의 공약이행과 국가 재정의 어려움을 이유로 지방정부에 각종 재정적 부담을 떠넘기고 있지만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부족한 재정으로 지방정부 자체 업무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 방향은 바로 증세와 분권이다. 소비세, 소득세 중심의 세입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하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도 8대2에서 6대4로 바뀌어야 한다.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자치단체만의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권한 침해도 개선돼야 한다. 지방보조금에 대한 적절한 통제 수단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 방향은 권한을 침해하는 사전 통제 방식이 아닌 사후 책임 강화 방향으로 가야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 있다. →서울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방분권은 박원순 시장 시대에 들어 제대로 시작되었다고 많은 구청장들이 입을 모은다. 2016년 박원순 시장의 통 큰 결단으로 조정교부율을 21%에서 22.6%로 인상, 액수로는 2728억원을 25개구에 나눠 준 일이 있다. 보통 구청장이 1년에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이 50억원 내외라고 하는데 1개 구당 100억원 이상을 배정받은 셈이다. 서울시는 재정이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치구를 지원한 것이다. 앞으로도 서울시와 자치구가 신뢰와 믿음을 토대로 주민들이 맞춤형 행정을 체감할 수 있도록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갔으면 한다. 다만 한방진흥센터 운영비가 연 10억~15억원가량 들어가는데, 서울시가 운영권을 가져가는 쪽으로 생각하기보다 구의 실정을 가장 잘 아는 구에 계속 맡기는 식으로 고려해 주면 좋겠다. →구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데. -하루 평균 민원인을 10팀 정도 만난다. 인원으로 따지면 최대 100명 정도다. 매년 14개 동을 돌며 동정보고회를 개최하고 동 주민센터에 직접 나가 일일동장 행사도 한다. 각계각층 주민들의 소중한 의견을 현장에서 여과 없이 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소통은 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충과 불편을 보다 빠르고 가깝게 알 수 있는 열쇠이다. 주민들의 소리를 제대로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자치단체 고유의 색깔을 지닌 행정서비스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 앞으로도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뛰는 현장 중심 리더십으로 민생을 살펴 나갈 것이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1979년 10·16 부마항쟁 당시 부산 동아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수배령을 받고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듬해 발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85년 5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동의장으로 출범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선전부장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동대문이 지역구인 민주당 최훈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동대문을 제2의 고향 삼아 동대문구를 위해 일해 왔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98년 민선 2기 이후 2010년 7월부터 5~6기 구청장을 연임하고 있다. 동대문구는 어떤 곳 부도심 근린생활기능을 수행하는 동부 서울의 중심지로 천호대로, 왕산로 등 주요 간선도로가 관통하고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동북 관문의 역할도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성동구,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경계로 중랑구, 북쪽으로는 성북구와 접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산업연구원 등 8개 전문연구시설과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서울시립대 등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각종 전략개발계획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 [단독] 기무사도 움직인 ‘1987’

    [단독] 기무사도 움직인 ‘1987’

    이석구 사령관 “자성 계기로” 李총리도 관람 후 눈시울 붉혀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및 축소·은폐 사건과 1987년 6월 시민항쟁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1987’이 5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체 부대원들이 사령관 특별 당부에 따라 이 영화를 모두 관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이낙연 총리도 ‘1987’을 관람, ‘1987’이 흥행 몰이를 하면서 사회 전반에 신드롬이 일고 있다. 14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무사 부대원들은 부대가 정한 ‘월간 문화의 날’(매월 둘째주 수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소속 부서 단위로 서울 용산, 경기 안양 등의 영화관에서 ‘1987’을 단체관람했다. 영화 관람은 이석구 사령관의 당부에 따른 것이다. 먼저 영화를 관람한 이 사령관은 “과거 인권침해의 과오를 떠올리며 자성과 반성의 계기로 삼자”며 모든 부대원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는 경찰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졌지만,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도 당시 이른바 ‘서빙고 별관’을 운영하며 운동권 학생과 민주인사 사찰, 불법구금, 고문을 일삼았던 터여서 이 영화를 제3자처럼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대다수 기무부대원은 고문 장면 등을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 세대의 일이지만 마치 자기 일인 듯 부끄럽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일부 부서는 영화관람 직후 다시 모여 기무사의 어두웠던 과거사를 주제로 토론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를 되새겼다고 한다. 서빙고 별관은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독재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고문시설이다. ‘서빙고 호텔’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한번 끌려가면 성한 몸으로 나오기 어려워 민주인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4년 폐쇄돼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 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영화관에서 페이스북 친구 20명과 함께 ‘1987’을 본 이 총리는 영화 관람 후 소감을 묻자 눈시울을 붉힌 채 한동안 침묵한 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한시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리는 “권력이 광기에 휩싸이면 영화에 나온 그 정도 폭력도 자행한다. 그런 위험성을 줄여 가는게 민주화”라고 덧붙였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경찰, 1차 수사권·대공수사 넘겨받는다

    경찰, 1차 수사권·대공수사 넘겨받는다

    안보수사처 신설·자치경찰 확대 검찰 직접수사, 특수수사로 한정 고위직 수사는 공수처로 이관 국정원 대북·해외 기능만 전담경찰이 청와대의 수사권 조정에 따라 수사를 종결해 기소·불기소 의견까지 제시하는 ‘1차적 수사권’를 갖는다. 신설된 ‘안보수사처’(가칭)에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는다. 검찰은 독립기구로 추진 중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고위직 수사를 넘긴다. 현재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검찰이 바로 가져올 수 있지만, 앞으로는 기소 유지를 위한 2차적·보충적 수사권만 갖도록 한다. 다만, 경제·금융 등 특수수사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한다. 국가정보원은 국내 정치와 대공 수사에서 손을 떼고 대북·해외 정보수집만 전담한다. 청와대는 3대 권력기관의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균형에 따라 권력 남용 통제를 추진하는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14일 발표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브리핑에서 “민주화 시대가 열린 후에도 권력기관은 조직 편의에 따라 국민 반대편에 서 왔고, 이들 권력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국정 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며 “촛불시민혁명에 따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고 개혁안의 배경을 밝혔다. 조 수석은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언급하고서 “2015년 백남기 농민이 목숨을 잃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원인에는 검·경 권력기관의 잘못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 개혁에 대해 청와대는 “방대한 조직과 거대 기능이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비대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 수사·행정경찰을 분리한다. 안보수사처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처’가 될지 ‘국’이 될지 국회 사법개혁특위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국정원 대공인력의 이동 규모와 어떤 직급을 부여할지는 경찰·국정원·행정안전부가 협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수석은 검찰에 대해 “국정원 댓글 사건, 정윤회 문건 등 정치권력의 이해 및 기득권 유지를 위해 검찰권을 오·남용했다”고 지적한 뒤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 수사 이관, 직접수사 축소,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을 제시했다. 국정원은 유명무실했던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된다. 대공수사권 이관에 따른 대북정보 수집 능력 저하 우려와 관련, 이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압도적 다수는 정보와 수사를 분리하고 있다”면서 “국정원의 대북 정보기능은 더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안들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관련 상임위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신설 등에 강하게 반대해 진통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조 수석은 “국회 결단으로 대한민국 기틀을 바로잡은 때로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권력기관 개혁안] 국민 위한 검·경·국정원으로… 상호 견제·권력남용 통제

    [권력기관 개혁안] 국민 위한 검·경·국정원으로… 상호 견제·권력남용 통제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권력기관은 조직의 편의에 따라 국민 반대편에 서 왔다. 이들 권력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국정 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조국 청와대 민정수석)31년 전인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끝에 숨진 14일, 청와대는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의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군사독재 시절 최고권력자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됐던 이들 기관은 민주화 이후 환골탈태를 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농단 특검 및 검찰 수사와 재판,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활동 등에서 보듯 국가시스템의 붕괴가 진행됐다. 그 증거가 ‘탄핵’이다. 권력기관이 부패한 권력층과 자신들의 불합리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힘을 남용한 탓이다. 때문에 개혁안은 권력기관이 오로지 국민을 위해 권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혁을 추진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한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제도개혁에 의한 권력기관과 정치의 단절을 강조했다.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며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7개월여 만에 내놓은 개혁안의 방향은 크게 3가지다. ▲과거 적폐의 철저한 단절·청산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에 따라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으로 전환 ▲상호견제와 균형에 따른 권력남용 통제 등이다. 적폐에 대한 단절과 청산은 검·경이 핵심이다. 국정원은 일찌감치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해 과거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조사하고 수사 의뢰를 끝냈다. 경찰은 민간조사단이 꾸려지는 대로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사건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진상조사 대상을 검토하고 조사단을 구성한다.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전환이 개혁안의 배경에 해당한다면 ‘상호견제와 균형 원칙’은 세부방안이다. 문 대통령의 핵심공약이기도 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수사권 조정,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 안보수사처 신설, 경찰 비대화를 막기 위한 자치경찰제 도입 등이 골자에 해당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공수처는 검사·판사, 고위직 경찰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고, 공수처 소속 검사나 수사관의 범죄는 검·경이 모두 수사할 수 있다”면서 “기관별로 자신의 범죄를 수사할 수 없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운영 지지도가 70%를 웃도는 시점에서 청와대가 권력기관 개혁드라이브를 거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 실패와 관련, 문 대통령은 “당시 사법개혁위원회 같은 기구에 맡겨서 객관적으로 제도개혁을 했어야 햇는데, 검·경 자율 조정으로 맡겨놨다”면서 “결국 접근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반성한다”고 지난해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밝혔다. 물론, 개혁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공회전’만 하다 끝난다.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여소야대의 국회 지형을 돌파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야권 반발이 무뎌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민주당 지지율이 50%, 대통령 지지도가 70% 선인데 공수처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은 80%를 넘는다”면서 “여야가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신의 사랑엔 ‘이성애 중심’ 없어”…성소수자 품는 임보라 목사

    “신의 사랑엔 ‘이성애 중심’ 없어”…성소수자 품는 임보라 목사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작다고 약한 것이 아니고, 소수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이치를 이 땅에 이루겠습니다.” 14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열린 분가 5주년 기념예배에서 예배 이끄미가 이같이 말하자 참석자 40여명은 “소외된 이웃들이 편히 밟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공동체가 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멜로디언, 리코더, 기타의 소박한 반주에 맞춰 교인들은 5주년 기념 찬송가 ‘섬돌의 노래’를 합창했다. 임보라(50) 목사는 여섯 색깔 무지개로 장식된 설교대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눠 줬다.2013년 1월 마포구 ‘문턱 없는 밥집’에서 첫 예배를 올리며 시작한 섬돌향린교회가 어느덧 5주년을 맞았다. 섬돌향린교회는 성인 교인 500명이 넘으면 분가를 한다는 안병무 향린교회 공동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명동향린교회에서 독립했다. 교회가 몸집 불리기에만 연연하고 공동체 정신은 뒷전으로 하는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임 목사는 87학번으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대학생활을 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원에서 진보신학을 공부하면서 향린교회와 연이 닿았다.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논란이 한창이던 10년 전쯤 교회 내 소모임에서 성소수자·여성 인권 등을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성소수자를 품는 교회를 이끌게 됐다. 5년 전 79명으로 시작한 작은 교회는 지난해 말 재적인원 150명이 넘었다. 지난해에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8개 교단에서는 임 목사가 소속된 향린교회에 임 목사의 파문을 요구했고 친교교류금지 결정까지 했다. 다행히 임 목사가 속한 향린교회에서 “성소수자 관련 목회에 대해 이단 시비를 거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토론과 연구를 통해 의논할 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캐나다 연합교회는 임 목사에 대한 지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임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등 보수교단에서는 지난해 교단법을 고쳐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은 출교시킬 수 있게 했다”며 “몇몇 목사님들은 교단에 소환돼 권고조치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회의 성숙성을 보는 지표가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며 “성소수자뿐 아니라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고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목사는 올해 ‘퀴어 성서 주석’ 번역본 발간을 앞두고 있다. 보수교회의 성소수자 혐오 근거가 되는 구절을 중심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서를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임 목사는 “신의 사랑에는 ‘이성애 중심’ 조건이 없다고 알려주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단독] 영화 ‘1987’ 기무사도 움직였다, 사령관 특별 당부로 전 부대원 관람

    [단독] 영화 ‘1987’ 기무사도 움직였다, 사령관 특별 당부로 전 부대원 관람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및 축소·은폐 사건과 1987년 6월 시민항쟁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1987’이 5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체 부대원들이 사령관 특별 당부에 따라 이 영화를 모두 관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무사 부대원들은 부대가 정한 ‘월간 문화의 날’(매월 둘째주 수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소속 부서 단위로 서울 용산, 경기 안양 등의 영화관에서 ‘1987’을 단체관람했다. 영화 관람은 이석구 사령관의 당부에 따른 것이다. 먼저 영화를 관람한 이 사령관은 “과거 인권침해의 과오를 떠올리며 자성과 반성의 계기로 삼자”며 모든 부대원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는 경찰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졌지만,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도 당시 이른바 ‘서빙고 별관’을 운영하며 운동권 학생과 민주인사 사찰, 불법구금, 고문을 일삼았던 터여서 이 영화를 제3자처럼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대다수 기무부대원은 고문 장면 등을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 세대의 일이지만 마치 자기 일인 듯 부끄럽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일부 부서는 영화관람 직후 다시 모여 기무사의 어두웠던 과거사를 주제로 토론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를 되새겼다고 한다. 서빙고 별관은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독재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고문시설이다. ‘서빙고 호텔’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한번 끌려가면 성한 몸으로 나오기 어려워 민주인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4년 폐쇄돼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 있다. 기무사는 민주화 이후 민간인 사찰을 비롯한 인권침해적 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등 환골탈태를 모색했지만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 시절 사이버 댓글 활동을 통해 불법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사실이 최근 또다시 드러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벌이는 기무사가 영화 ‘1987’ 단체관람 이후 진정을 담은 자성과 반성의 개혁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조국 민정수석 “박종철 고문치사, 검경·안기부 합심해 진실 은폐”

    조국 민정수석 “박종철 고문치사, 검경·안기부 합심해 진실 은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을 언급하며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개혁을 천명했다. 조 수석은 “권력기관에 의해 22살 청년 박종철이 죽임을 당했고 검찰과 경찰,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옛 국정원)가 합심해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며 “그간 국민의 반대편에 있었던 권력기관의 악순환을 끊겠다”고 발표했다.조 수석은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개혁방안을 직접 브리핑했다. 조 수석은 “민주화 시대가 열린 후에도 권력기관은 조직 편의에 따라 국민의 반대편에 서 왔고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국정농단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며 ”촛불 시민혁명에 따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은 박종철 열사 31주기이기도 하다. 조 수석은 1987년 서울대 대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연세대 정문에서 최루탄을 맞고 숨졌던 이한열 열사를 공식 언급하며 검경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과거 폭력적 행태를 질타했다. 조 수석은 ”31년 전 오늘 22살 청년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며 “당시 박종철은 영장 없이 불법체포돼 대공분실로 끌려가 선배 소재지를 대라는 것과 함께 물고문을 받고 숨졌다“고 말했다. 특히 조 수석은 ”검·경·안기부가 합심해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며 “영화 ‘1987’처럼 최환 검사 개인은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검찰 전체는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이어 ”그해 7월에는 경찰 최루탄을 맞고 이한열 열사가 끝내 사망했다”며 “많은 국민이 ‘1987’을 보면서 시대 참상에 참담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수석은 1987년 당시 서울대 법대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이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조 수석은 ”2015년 백남기 농민이 목숨을 잃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원인에는 검·경 권력기관의 잘못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겨냥했다. 조 수석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의 정신 따라 권력기관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도록 거듭나야 한다”며 “이런 정신 아래 문재인 정부는 권력기관을 재편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조 수석은 그동안 개개 권력기관 개혁방안이 발표됐지만 전체 설명이 부족했기에 권력기구 재편 전반에 대해 국민에 설명한다고 밝힌 뒤 “권력구조 개편 모습은 청와대가 새롭게 창안해 제시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시민사회의 오랜 논의를 거쳐 대통령 대선공약과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 개혁위원회,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등이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개혁안을 내놨고 이를 대폭 수용해 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조 수석은 개혁안을 위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조 수석은 “국회가 동의해야 권력기관 개혁이 이뤄진다”며 “최근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존중하고 경청하겠다”고 말한 뒤 “이제부터는 국회의 시간으로, 이 시간이 국회 결단으로 대한민국 기틀을 바로잡을 때로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요청했다. 이어 조 수석은 “개혁방안을 이뤄낼 근본적인 힘은 국민에 있다”며 “국민 관심이 있어야 국가 권력기관이 생명과 인권을 유린하는 등 퇴행적 행태를 안 한다”며 여론에도 호도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박 대통령께서는 총탄을 맞으신 직후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에 의해서 급거 군서울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시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2014년 10월 의료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1996년 내놓은 노래 ‘70년대에 바침’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 사망 소식을 전하는 당시 정부 발표 내용으로 시작된다. ● 한발의 총성으로 막 내린 1970년대,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등을 불러 술자리를 즐기던 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을 거뒀다. 김재규는 이후 법정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저격한 것이다”라고 외쳤다.당시 11살이던 신해철은 훗날 노래를 통해 이렇게 회상했다.“한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은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신씨의 회상처럼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친애하는 민주정의당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각계 귀빈 여러분. 새역사, 새시대, 새정치를 개척해 나가자는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부름을 받고 나는 오늘 심심한 사유와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정당의 총재라는 위치,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라는 위치가 얼마나...”국민들은 민주화를 꿈꿨지만 그 결과는 신군부 전두환 정권 등장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발동하고, 이튿날인 18일 민주화운동이 들끓었던 광주에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국민을 향한 잔혹한 학살까지 자행했다. ● 전두환과 1980년 5월 광주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보다는 영화를 통해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1987년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를 시작으로 이후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26년’ 등 영화인들은 저마다의 관점과 방식으로 정권의 폭압성과 민중의 저항을 그렸다. 영화 관객, 더 넓게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는 단연 2017년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꼽힌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큰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1980년 5월 광주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폭압과 학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극장에서만 누적 관객 1218만명 이상을 기록하며 역대 국내 개봉 영화 관객수 9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광주 5·18’이라는 시대적 배경 외에도 상당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소속 일본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19일 오전 ‘계엄령이 내려진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짤막한 내용의 일본 언론보도를 보고 당일 오후 서울로 향했다.서울에 도착한 힌츠페터는 이튿날인 20일 오전 자신이 묵었던 호텔의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영화 속 ‘만섭’은 이후 실존인물 김사복으로 확인됐다. 김사복씨의 도움으로 광주 현지 취재에 성공한 힌츠페터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세계에 고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진실은 한국에만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한국에서는 국가의 감시를 피해 대학가와 성당 등에서만 힌츠페터의 다큐멘터리가 비밀스럽게 상영됐다. 부산에서는 1987년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이 영상이 상영됐는데,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 ‘탁’ 치니 ‘억’하고 죽어야만 했던 1987년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정치권의 화두로도 떠오른 영화 ‘1987’ 속 대사다. 이 영화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 사망까지 실제 1987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았다. 1987년 1월 13일 밤 12시 무렵.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당시 민주화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박종철은 경찰의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에도 선배 박종운에 대해 진술하지 않고 저항하다 의식을 잃었고 14일 오전 11시 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중앙일보 기자가 검찰을 통해 ‘서울대생 사망 사건’의 단서를 포착했고,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16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고, 박종철군의 친구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했다”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사망 당일 밤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으나 이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최환 검사는 부검을 지시하며 ‘사체보존명령’을 내렸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최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딱 보는 순간 ‘이건 고문이다’는 직감이 왔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모를 폭로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 가담 경관은 2명이 아닌 5명이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고문 살인 규탄 및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노무현·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이끄는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6월 항쟁을 이끌었고, 서울에서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왔다.6월 9일 서울 연세대에서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한 학생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이다. 이한열은 한 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숨을 거뒀다. 당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이 부축당한 채 피 흘리는 사진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리며 전두환 정권의 폭압성을 세계에 고발했다.전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군부정권은 결국 6월 29일 백기를 들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이날 국민이 요구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6·29 선언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선이 이뤄지면서 길었던 군사정권 시대가 저물고 민주화가 오는 듯 했으나, 당시 대선에서 민주화 세력의 두 거목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각각 출마하며 여당 후보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라는 역대 대선 최저 득표율로 당선됐다. ‘실질적 민주화’ 역시 5년 뒤로 유예됐다.●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말하다 대한민국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형식적·실질적 민주 국가로 거듭났으나 이후 경제성장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 과거 박정희 향수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힘입어 탄생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훼손됐다. 결국 헌법까지 유린하며 국정을 흔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뒤 구속됐고,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018년 국민들은 다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신해철씨는 노래에서 1970년대를 ‘옳고 틀림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대답은 무엇일까. 70~80년대 독재권력과 맞서 싸웠던, 이제는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이렇다.“6월 항쟁, 또 그 앞에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독재권력 이게 힘들었지만 못지않게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 그런 말이었다. 지금도 ‘정권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게 있느냐’ 그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 이 영화(1987)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안내상 민주화운동 “지하서 과격한 활동..폭탄 설치까지” 우상호 우현 사진 ‘눈길’

    안내상 민주화운동 “지하서 과격한 활동..폭탄 설치까지” 우상호 우현 사진 ‘눈길’

    배우 안내상과 우현이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다.11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故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MC 김구라는 이와 관련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 속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의 모습이 담겨있다. 당시 우상호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부의장으로서 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을 이끌었다. 우현은 연세대 신학과 재학생으로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 안내상 역시 우현의 연세대 신학과 동기다. 우상호 의원은 “사진을 잘 보면 우현씨 머리는 삭발 한 것이다. 이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이다”라고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우상호 의원은 “우현씨를 워낙 오래 만났는데, 나는 우현씨가 못생긴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와서 1위를 해 놀랐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유시민 작가는 “안내상은 지하에서 더 과격한 활동을 했다”며 “우상호 의원이나 나처럼 잡혀가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고 중요한 인물들은 지하에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은 “안내상은 지난 1988년 광주광역시의 미국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지금도 미국을 못 갈 것”이라면서 “한국 블랙리스트엔 없는데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내상은 당시 사건 직후 자수, 8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또 우상호 의원은 “우현, 안내상이 내 신혼집에서 함께 지냈다. 그 인연으로 그들과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문식, 이종혁, 이필모 등의 배우들과 친분을 갖게 됐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우상호 “연대 민주항쟁 동문 배우 안내상·우현” 일화 레알?

    우상호 “연대 민주항쟁 동문 배우 안내상·우현” 일화 레알?

    민주화 운동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전 한양대 총학생 회장)과 함께 ‘꽃미남 총학생 회장’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던 우상호(56)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87년 당시 민주항쟁을 같이 했던 연세대 동문 배우 안내상(54)과 우현(54)과의 인연을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우 의원은 연대 신학과 출신인 안내상이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며 사연을 소개했다.우상호 의원은 11일 방송된 JTBC 시사프로그램 ‘썰전’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과 이한열 사망 등 6월 항쟁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우 의원은 1987년 당시 연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김구라가 “안내상도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사진엔 없다”고 말하자 우 의원은 “당시 집회는 총학생회 집행부가 주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시민 작가도 “안내상은 지하에서 더 과격한 활동을 했다”면서 “우 의원이나 나처럼 잡혀가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고 중요한 인물들은 지하에서 활동했다”며 안내상의 활약상을 전했다. 우 의원은 “안내상은 1988년 미국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며 “(지금도) 미국을 못 갈 것이다. 한국 블랙리스트엔 없는데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안내상, 우현(연대 철학과)이 내 신혼집에서 함께 지냈다”며 “그 인연으로 그들과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문식, 이종혁, 이필모 등의 배우들과 나 역시도 친분을 가지게 됐다”고 인연을 공개했다.배우 우현은 우 의원과 함께 빛바랜 고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 사진 속에서 우 의원은 이 열사의 장례 집회 당시 이 열사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고 우현은 태극기를 든 채 침통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국의 한 시사잡지의 ‘이 주의 사진’으로 소개됐다. 6월 항쟁 당시 연대 총학생회장이던 우 의원은 6월 항쟁 당시 연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현장에 함께 있었다. 우현은 당시 연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 우 의원은 “(우현이) 사회부장을 해서 집회를 주도했었다”며 4·13 호헌조치 당시 연대생들이 항의를 하기 위해 삭발을 했던 때를 설명했다. 우 의원은 “그때 (우현에게) ‘단식을 할래? 삭발을 할래?’ 했는데 우현이 굶는 건 못한다고 해서 우현이 삭발을, 내가 단식을 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우 의원은 우현이 MBC ‘무한도전’의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특집에 출연했을 때를 언급하며 “내 신혼 때 같이 살았는데 못 생겼다고 한번도 생각 안해봤는데 ‘무한도전’에서 1위했다”며 “‘못생겼나?’ 했다. 귀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킨 선배 박종운은 누구?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킨 선배 박종운은 누구?

    영화 ‘1987’이 흥행을 일으키면서 영화 속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고(故)박종철과 그의 선배 박종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 열사가 불법 체포돼 치안본부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에게 고문·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87년 1월 13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경찰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체포한 것이다. ‘박종운이 어디 있느냐’는 심문에 박종철은 선배의 소재를 발설하지 않고 갖은 고문을 견디다 죽음에 이르렀다.선배 박종운은 2000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까지 세 번 도전해 낙선한 바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써 군부독재 반대 시위를 이끈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종운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이 정당을 선택해서 정치활동을 펼치는 것에 대해 변절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박종운이 그 당을 선택해서 갔을 때 박종철씨 유가족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과 같은 진영으로 갔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우 대표는 “박종운, 우상호 같은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 (누군가의) 죽음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종운이는 종철이를 생각하면 정치를 안 하든가,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작가 김훈 요즘 구청에 가 본다면/주현진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작가 김훈 요즘 구청에 가 본다면/주현진 사회2부 차장

    “호적초본을 떼어 주면서 턱으로 사물을 가리키는 구청 직원들….”김훈 작가는 수필 ‘광야를 달리는 말’에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 힘 없는 민초들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증오스러운 인간 군상의 하나로 구청 직원을 꼽으며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구청과 동사무소(현 동주민센터)에서는 오만한 태도로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하니 요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서비스 수준을 떠올릴 때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서울 동대문구청 직원들은 종합민원실을 중심으로 매일 아침 전 직원이 “미소 짓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라는 구호로 하루를 시작할 만큼 ‘친절 민원’으로 유명하지만, 이런 풍경이 쉽게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1998년 구청장 첫 임기 시작과 함께 직원들에게 친절 민원을 요구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호텔 직원이 아니다”라며 거부하는 불만 여론이 비등했다. 구청이 민원인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것이다. 그러자 유 구청장이 직접 나섰다. 매일 아침 출근한 뒤 종합민원실 앞에 서서 찾아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기관의 장이 민원인에게 친절 캠페인을 벌이자 간부들은 물론 직원들의 태도도 바뀌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태도와 정책도 변하는 법. 동대문구청 종합민원실에 민원신청서 작성 방법이나 부서 위치를 안내해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등장하고, 혼인신고 포토존, 작은 도서관 등 민원인들이 좋아할 만한 서비스 시설이 구청과 지역에 속속 조성된 것도 구청장의 친절 민원 철학이 낳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자체 공무원 사이에 친절 봉사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이뤄진 지방자치의 실시와 관련이 있다. 1995년 민선 1기 실시 이후부터 2014년 민선 6기까지 총 6번의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중앙당의 공천만큼 주민 만족도가 당락을 가르는 요인이 되면서 지자체 서비스가 향상됐다. 유권자의 눈치를 보고 표로 심판받아야 하는 지자체장은 임기가 보장된 임명직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보신주의에 안주하려는 공무원 조직을 다잡지 않을 수 없다. 지자체 사이에 행정 경쟁이 달아오르면 주민 생활은 편리해진다. 종로구가 청진동 일대 대형 빌딩과 지하철역 등을 지하보도로 잇는 ‘청진구역 지하보도 조성사업’을 이끌어 국내에 처음 지하도시 개념을 적용하면서 시내 보행은 더욱 편리해졌다. 버스 정류장과 같은 대기 장소에 여름이면 햇볕을 가려 주는 가림막이 세워지고 겨울이면 바람을 막아 주는 텐트가 등장한 것도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민선 실시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생활정치는 이처럼 지자체를 통해 구현되는 게 많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대통령 선거보다 아직 20% 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생활정치의 직접 대상자인 유권자들이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와는 격이 다르다며 낮춰 보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 작가가 묘사한 턱으로 가리키는 오만한 구청 직원이 사라진 것처럼 지역 행정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마을 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구체화하려면 좋은 지역 리더가 필요하다. 민선 7기를 뽑는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다.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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