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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 인공지능 번역 앱이 곰돌이 푸를 인식못하는 이유

    최고 인공지능 번역 앱이 곰돌이 푸를 인식못하는 이유

    중국 최고의 인공지능(AI) 기업 아이플라이텍(iFlytek·科大訊飛)의 번역 앱이 중국 민주화 운동인 톈안먼, 독립, 시진핑, 시 주석의 별명인 위니 더 푸 등의 민감한 단어를 검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8일 보아오 포럼,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 등 각종 국제행사에서 사용된 아이플라이텍의 번역 앱에 민감단어 검열 기능이 있다고 보도했다. 톈안먼과 같은 민감한 단어를 입력하면 아예 인식이 되지 않고 번역도 되지 않는다. 타이완 독립을 입력하면 타이완만 번역하고 독립이란 단어는 번역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사인 바이두의 번역 앱은 중국 당국이 검열하는 민감한 단어도 번역이 가능하다.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한 아이플라이텍은 중국 인공지능 기업으로 음성을 인식해 자동 번역하는 앱을 개발했다. 음성은 번역이 되어 자동으로 문자로 제공되는 데 민감한 단어나 이름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아직까지 디지털 번역 서비스까지는 검열하지 않는다고 익명의 아이플라이텍 소식통은 전했다. 아이플라이텍의 번역 앱이 민감 단어를 거르는 이유는 중국 당국의 인터넷 통제 정책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대 인터넷 사용자 보유국인 중국은 소셜네트워크의 문자 메시지까지 검열한다. 지난주 중국 인터넷 판공실은 이달 30일까지 모든 인터넷 플랫폼에 온라인 상에서 사회 운동에 대한 내용이 퍼지는 것에 대한 현황 보고를 하라고 지시했다. 아이플라이텍이 거르는 위니 더 푸는 시 주석의 별명으로 곰돌이 푸의 사진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에서는 자동 삭제된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민주화항쟁 성지’ 향린교회, 역사 속으로

    명동성당과 함께 1987년 민주화항쟁을 대표하는 명소인 향린교회(서울 을지로2가 164-11) 건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7일 개신교계와 향린교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향린교회는 최근 재개발 시행사에 현 건물을 매각하고 다른 곳에 교회 건물을 세워 옮기기로 확정했다. 지난 5월 교회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공동의회를 통해 교회 건물과 용지를 매각키로 한 결정에 따른 조치이다. 이에 따라 중구청에서 사업승인이 나면 본격적인 철거와 이주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향린교회는 민중신학자 안병무(1922-1996) 등 청년 12명을 중심으로 결성된 종교공동체가 1953년 5월 남산 기슭 고아원 터에 교회를 세운 게 시초다. 원래 특정 교파에 소속하지 않는 평신도 독립교회로 출발했다가 1959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다. 남대문시장이 있는 남창동으로 옮겼다가 1967년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교회 종탑이나 십자가를 건물 바깥에 세우지 않는 것을 비롯해 예배실 천장을 낮추고 고딕창 등의 장식적 요소를 일절 쓰지 않는 교회로 유명하다. 특히 1987년 5월 종교계와 정치계, 학생운동조직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본은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켜 그해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조직이다. 향린교회는 조만간 신도와 목회자 등 교회 내부의 의견을 수렴해 4대문 안으로 이전 장소를 확정할 예정이다. 특히 민주화 운동 등 역사성을 고려해 교회 건물 일부를 살리면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을 만드는 방법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5·18 배후 북한군 배후‘ 퍼뜨린 지만원, 소송냈다 패소

    “5·18 배후 북한군 배후‘ 퍼뜨린 지만원, 소송냈다 패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북한이 배후 조종한 사건’이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를 받은 지만원씨가 국가 상대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 이원)는 27일 지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지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방심위의 제재가 타당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지씨가 역사적 사실을 정면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5·18 민주화 운동은 1980년 당시 이른바 신군부 세력의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맞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사건이라는 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데 원고의 글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북한이 배후 조종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보면 원고의 게시글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지역, 집단, 개인을 비하하고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방심위가 네이버에 게시글 삭제를 요구한 것은 재량권 일탈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방심위는 지씨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게시글을 올리자 지난 4월 네이버 측에 시정 요구를 해 게시글을 삭제했다. 방심위 규정상 역사적 사실을 현저히 왜곡하거나 특정 지역 주민이나 특정 집단을 차별·비하하는 글에 대해선 시정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지씨는 해당 글에서 “5·18은 북으로부터 파견된 특수군 600명이 또 다른 수백 명의 광주 부나비들을 도구로 이용해 감히 계엄군을 한껏 농락하고 대한민국을 능욕한 특수작전이었다”고 주장했다. 지씨는 2015년에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방심위로부터 제재를 받자 소송을 냈다. 당시에도 법원은 지씨의 동영상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라지는 ‘총여’] 페미니즘 혐오 때문에?… 총여학생회 34년 만에 ‘전멸 위기’

    [사라지는 ‘총여’] 페미니즘 혐오 때문에?… 총여학생회 34년 만에 ‘전멸 위기’

    대학에서 여학생의 권익과 인권을 대변하는 기구인 ‘총여학생회’(총여)가 역사의 뒤안길로 하나둘씩 퇴장하고 있다.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처음 생긴 이후 민주화 운동과 여성 운동을 이끌며 전국 대학에 90개가 넘을 정도로 번성했던 총여가 34년 만에 전멸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동국대는 지난 21일 학생 총투표를 실시해 총여 폐지를 결정했다. 유권자 1만 2755명 가운데 7036명(투표율 55.2%)이 투표해 찬성 5343표(75.9%), 반대 1574표(22.4%), 무효 119표(1.7%)로 총여 폐지 안건이 가결됐다. 이 학교 총여는 2015년부터 2년간 회장 공석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지난해 활동을 재개했지만 동력이 실리지 않았다. 2017년 총여 회장 임은씨는 “폐지 투표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총여가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면서 “학내 성차별 문제를 사소하게 여기는 현재 상황이 총여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말해준다”며 폐지에 반대했다. 투표 결과가 이대로 확정되면 서울 내 종합대학 가운데 활동하는 총여 조직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가 된다. 지난 10년간 총여 회장 후보자가 없었던 광운대도 조만간 총여 폐지 투표를 한다. 다만 활동 중단 상태였던 연세대 총여가 지난 23일 회장 당선자를 배출해 재개편을 논의 중이다. 앞서 성균관대에서는 지난달 15일 총여 폐지가 확정됐다. 성균관대에서는 총여 재건을 추진했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성성어디가)가 “성평등 정치의 백래시(반발)였음을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면서 “폐지가 결정된 이후 소수자 정치는 더 활기를 띠어야 한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총여 회장 입후보자였던 노서영씨는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동시에 이에 반발하는 학내의 백래시가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페미니즘 향한 ‘백래시’... 온라인 반대 여론서 시작 총여는 2000년대 이후 세력이 점차 약화됐고, 2015년쯤부터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 총여가 폐지된 48개 학교를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28곳이 최근 3년 사이에 없어졌다. 이는 2015년 메갈리안 등장,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거리로 나온 시기와 일치한다. 특히 미투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불편한 용기’의 대규모 여성 시위가 있었던 올해에는 총여 폐지 움직임이 정점을 찍었다. 연세대, 성균관대, 동국대 등 주요 대학에서 총여 재개편안이나 폐지안이 통과됐고 광운대도 조만간 폐지 투표를 한다. 공교롭게도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질수록 총여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총여 폐지의 시작은 온라인 공간에 올라온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혐오 글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나 학내 익명 게시판이 진원지가 됐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 아모(23)씨는 “최근 페미니즘 관련 소모임이 생겨나도 남성들이 적극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익명 게시판에 페미니즘은 피해망상이라는 식의 원색적 비난이 계속 올라온다”고 전했다. 연세대생인 노모(21)씨도 “남학생들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쉽게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에서도 지난해 익명 게시판과 총여 이메일에 “페미니스트는 사회악”, “뇌에 먼지가 찼다”는 등의 비하 발언이 쏟아졌고, 총여 회장과 부회장의 신상정보가 온라인에 나돌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동력을 얻은 총여에 대한 반발은 결국 학내 다수 여론으로 확산됐고, 학생회를 통한 폐지 안건 발의에 이어 학생 총투표로 이어졌다. 연세대에서 일어난 페미니스트 은하선씨 강연 반대 움직임은 총여 반대 기류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돼 버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다소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총여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완전히 배제된 것에 대한 비판이다. 동국대는 폐지안 발의부터 총투표까지 모든 절차가 일주일 이내에 이뤄졌다. 연세대도 재개편 추진단 출범부터 통과까지 2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임은씨는 “총투표 근거 회칙이 투표 2주 전에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면서 “사실상 총여를 없애려고 만든 회칙”이라고 비판했다.●“다른 대안 찾아야” vs “총여 여전히 필요” 총여가 존폐의 기로에 내몰리게 된 것이 학생회의 ‘탈정치화’와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2000년대 이후 대학 내 ‘운동권’이 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자 일부 정치색을 띠었던 총여도 굳이 조직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신자유주의 이후 젊은 세대는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누군가가 자신을 대변해주길 바라기보다 직접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총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면서 “총여를 유지하려면 학생 개인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총여가 사라진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 인권 활동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성성어디가’는 학내 다른 모임과 연대해 소수자 인권 축제를 개최하는 등 학내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1989년 총여가 해산된 고려대에서도 여학생위원회, 소수자인권위원회 등이 연대해 성폭력과 여성 인권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여대생이 더는 소수이거나 약자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총여가 스스로 내부 개편을 추진한 사례도 있다. 2014년 폐지 투표가 부결된 이후 충북에서 유일하게 총여를 유지한 충북대는 총여를 학생인권위원회로 재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학교 총여 회장 후보로 나선 허난희(21)씨는 “학내에 총여에 대한 반발 여론이 퍼져 있고, 여학생이 반드시 학내에서 약자의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장애인 등 소수자는 물론 학생 전체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구로 개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총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 양(量)적인 평등은 이뤄졌을지 몰라도 질(質)적인 평등은 아직 멀었다는 이유에서다. 대학 내에서 남자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려면 총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총학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총여처럼 폐지론이 나오진 않는다”면서 “대학은 아직 성평등한 공간이 아니며, 학생회도 남성 중심이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별로 총여의 문제점과 대안을 서로 진단한 뒤 연대해 나가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전두환,5·18때 전남도청 재진입작전 최종결정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5월 27일 시민의 최후 항거지였던 ‘옛 전남도청 재진압 작전(이른바 상무충정작전)’을 두 차례에 걸쳐 점검한 뒤 최종 결정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전두환씨는 1980년 5월26일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소준열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겸 전남북계엄분소장을 보안사령부로 불러 도청 재진압 작전을 논의·점검한 것으로 나타났다. 5·18 기록관은 ‘12·12, 5·18 실록(1997년 5월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발간·이하 실록)’ ‘제5공화국 전사’ 검찰 수사·재판 기록 등을 토대로 전씨와 보안사의 5·18 관련 행적을 분석해 23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전씨는 5월25일 오후 12시15분쯤부터 2시간가량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등과 상무충정작전 지침을 검토하고 5월27일 새벽 도청을 재진압키로 했다. 5월26일 오전 전씨는 보안사에서 재진압 작전과 관련한 두 번째 회의를 가졌다. 정호용 특전사령관, 노태우, 백운택 9사단장 등 하나회 회원들(이상 육사 11기)과 소준열 전교사령관(육사 10기)이 함께했다. 전씨는 5월26일 두 번째 회의 자리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작전 계획을 보고받고 작전에 필요한 가발(침투시 변장용)을 지원했다. 전씨는 당시 광주에 있던 정호용·소준열을 헬기로 호출, 회의에 참석케 한 것으로 5·18 기록관은 분석했다. 정 특전사령관은 5월26일 오후 2시쯤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충격용 수류탄과 항공사진을 받아 같은 날 오후 9시쯤 광주 송정리 비행장에 도착했다. 이후 20사단장, 3·7·11공수여단장을 소집해 장비를 분배하고 ‘침투 시작 시간’을 27일 오전 4시로 밝힌 뒤 각 여단의 임무를 재확인했다. 소 전교사령관은 정 특전사령관보다 5시간 먼저(26일 오후 4시) 광주비행장을 찾아 공수여단 장병들을 격려하고, ‘27일 새벽 0시1분부터 작전을 개시하라’고 지시했다. 전씨가 5월26일 광주비행장과 전교사에 대기 중인 계엄군 사병들에게 중식용 소 7마리를 지원하는 ‘잔치판’을 열어주고 격려금 전달을 지시했다는 기록(505보안대 작성)도 있다. 5월 25일(한국감시단 상황보고 7호)·26일자 미국 기밀문서에도 ‘교착상태를 종료하고 시내로 진입해야 한다는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려진 육군 실력자 전두환은 이제 군사행동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도시를 재장악하기 위한 군사작전이 24~36시간 내 실시될 것이라고 함’이라고 나와 있다. 이같은 기록으로 미뤄 전씨가 재진압 작전 결정회의에 두 차례 참석해 사실상 작전을 이끈 것으로 5·18 기록관은 분석했다. 재진압 작전 때 도청에서 반독재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최후 항쟁을 벌이던 시민군 16명은 3공수가 쏜 M16 총탄에 희생당했다. 나의갑 5·18 기록관장은 “이들 기록과 달리 전두환 지시로 1982년 5월 발간된 5공화국 전사에는 시국 수습 방안, 전두환이 재진압작전 결정 모임에 두차례 참석한 사실 등을 누락시켰다. 반드시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밝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철야 몰린 15세 여공… 가슴 후비는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철야 몰린 15세 여공… 가슴 후비는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9회 가리봉동(구로공단의 신화)편이 지난 17일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집결한 투어단은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금천 순이의 집)~가리봉시장~디지털단지 오거리~마리오 아울렛~수출의 다리 순으로 다녔다. 이번 특별답사기는 김동률 서강대 교수가 맡았다.식권이 한 장 나오는 날은 잔업, 두 장 나오는 날은 철야하는 날이다. 철야하는 밤, 공장 입구에는 ‘타이밍’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386세대들이 공부하면서 한번쯤 삼켜 봤을, 잠을 쫓는 바로 그 각성제다. 불량품이 나올까 봐 공단의 십대 소녀들에게 반강제로 먹인 것이다.고된 철야를 끝내고 돌아가 쉬는 곳은 벌집이다. 두세 평 남짓한 벌집엔 벌이 살지 않는다. 사람이 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공들이 살았다. 벌집의 필수품은 취사도구와 비키니 옷장, 가족사진이다. 벽지는 신문지. 공동구입한 카세트가 사과박스로 만든 간이책상 위에 놓여 있다. 너무 늦게 찾아와 송구스런 마음이 앞선다. 구로공단 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은 구로공단 노동자 거주지가 모델이다. 두 평 남짓한 방, 지금은 사라진 ‘후지카 석유곤로’가 맨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방구석 앉은뱅이 책상이 남루하다.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했을까. 책상에 놓인 ‘철학에세이’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을 보니 갑자기 먹먹해진다. 신문지로 도배한 벽에는 잘생긴 할리우드 미남배우와 팝송가수 사진 열댓 장을 다닥다닥 끼워 넣은 액자가 있다. 그리고 파리똥이 얼룩진 누런 벽에 붙어 있는 낡은 액자가 인상적이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아득한 시절, 이발소 그림에 곧잘 등장하던 푸시킨의 시 ‘삶’이다.여공들은 돈을 아끼려고 좁은 방에서 3~4명이 살았다. 이런 방이 6개 잇대어 있는데 화장실은 달랑 하나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으리라. 생활관 측에 따르면 과거 이 일대에서 일했던 중년여성들이 혼자 오거나 옛 동료들과 찾는다고 한다. 자신의 곤고했던 시절을 피붙이에게도 알리기 싫었을까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쪽방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체험관을 둘러보지 못하고 흐느끼며 떠난다고 전했다. 작가 신경숙도 한때 ‘벌집’에 살며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1970년대 후반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 여공으로 산 신경숙은 소설 ‘외딴방’에서 ‘서른일곱 개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이라고 묘사했다. 구로공단은 진한 땀 냄새와 애환이 배어 있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발점이다. 70년대 중반 전성기 때 이 일대에서 일하던 십만 노동자의 대부분은 십대 소녀였다. 공순이라 불리며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 땅의 수많은 누나, 언니, 여동생들이다. 그들이 흘린 회한과 서러움의 눈물에 대해 우리는 오늘 말을 아껴야 한다. 적어도 이 공간을 찾는 순간만큼은 누구든 옷깃을 여미며 한없는 연민과 함께 예의를 차려야겠다. 그들은 대개 가부장적인 전통사회에서 오빠, 남동생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희생한 이 땅의 ‘효순이’들이다. 그리고 이 공간과 절묘하게 묘사한 딱 떨어지는 노래가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찾사의 ‘사계’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훌쩍 커버린 딸아이가 아주 어렸던 시절, 노래를 듣던 딸아이가 말했다. “넘 슬퍼.”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랬다. 가리봉동은 한국사회의 슬픈 역사와 함께한다. 오래전 그날 나는 오랜만에 ‘노찾사’의 ‘사계’를 틀었고, 옆에 있던,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초딩’ 딸아이가 그냥 슬퍼했다. 가리봉동은 이 땅에서 가장 슬프고 서러운 낮은 동네였다.또 다른 역사도 있다. 험악했던 그 시절, 그러나 가리봉동에는 목숨을 내건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구석구석에 위장취업한 또 다른 젊음들이다. 70년대 말부터 본격화한 엘리트 대학생들의 노동현장 투신은 한국 사회의 특이현상으로 시대정신(Zeitgeist)의 상징이었다. ‘학출’(학생운동 출신), ‘학삐리’로 불리던 그들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던지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들을 ‘위장취업자’로, 노동현장에서는 ‘먹물’로, 정권에서는 ‘불순세력’, ‘좌경용공세력’으로 불렀다. 개발연대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실제로 그 시절, 기업에선 아래와 같은 위장취업자 색출 지침까지 배포되고 학습됐다. ‘이력서의 필체가 기재된 학력에 비해 좋거나, 안경을 쓰거나 대학생들이 잘 입는 복장을 한 근로자, 대학가의 속어를 무의식적으로 쓰거나 노동법에 밝은 자, 이유없이 동료에게 친절한 자….’그들은 앞서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들과는 달리 스스로 공장을 택한 자발적 ‘공돌이’, ‘공순이’였다.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 ‘우골탑’ 대학에 보낸 촉망받던 아들딸들이 고시공부 안 하고 제 발로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가 됐다. 가난한 부모의 기대와 눈물을 모질게 외면한 채 노동현장으로 뛰어든 청춘들.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젊은 학출들은 동료 노동자들과 연대했지만, 때론 갈등했다. 대학생, 그것도 일류 대학생과 공돌이, 공순이라는 태생적 차이 때문에 적잖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서울대 재학 중 공장에 뛰어든 심상정 국회의원은 노동자들과 정서적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청춘을 바쳐 민주화를 부르짖던 그들도 이제 꽃다운 꿈을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시나브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금천 순이의 집은 주로 공간적, 건축적인 면에 치중한 다른 문화유산과는 달리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 있는 사회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개발연대, 힘들었던 그 시절을 한번쯤 돌아보고 싶은 자는 당장 가리봉 오거리로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철거된 가리봉동 133-52 벌집 문짝들을 이용해 재현해 놓은 순이의 집을 보며 침묵에 잠겨야 한다. ‘폭풍이 부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지진 난 땅에서도 샘은 솟고/ 초토 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밤길이 멀어도 아침 해 동산을 빛내고/ 오늘이 고달파도 보람찬 내일이 있다/오! 젊은 날의 꿈이여, 낭만이여 영원히’ 그 시절을 재현한 여공의 방, 낡은 액자에 끼워져 있던 바이런의 시 ‘희망’이다. 그렇다.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리(The best is yet to be). 우리는 그렇게 믿고 살아냈다. 글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 한국당 러브콜 거절하는 정책 전문가들

    경제·외교 분야도 합류 요청에 일부 난색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후 정책 정당의 이미지를 만들려는 자유한국당이 정책 자문을 구할 전문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18일 “‘격세지감’이란 말이 딱이다. 야당이 되고 나니 정보가 부족해지는 것은 물론 전문가로부터도 외면받는 상황”이라며 “한국당 간판으로는 누구도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국당이 친박·비박, 잔류파·복당파로 나뉘어 계파 갈등만 표출하는 등 지리멸렬한 상황이 지속되자 보수 성향의 학자마저도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전문가 고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전문가가 상대적으로 야당보다는 여당을 선호하는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것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한국당 몫 조사위원 추천 미달 사태다. 국회는 5·18진상조사위를 꾸리기로 하고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한국당이 조사위원 추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5·18진상조사위가 두 달째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 한국당은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5·18진상조사위원 추천을 위한 공모 절차를 밟기로 했다. 지난 8월 출범한 국가안보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위원장으로는 전옥현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임명했다. 전 전 차장은 특위 구성을 위해 보수성향의 외교안보 전문가에게 합류를 요청했지만 일부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지금 한국당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다”며 “아마 다른 전문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한국당은 시장에 확산되고 있는 경제 위기와 각종 경제지표로 나타나고 있는 위기 징후에 적극 대응하고자 다양한 영역의 경제계 인사와 원로 경제학자 등 전문가그룹을 중심으로 비상시국경제회의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비상시국경제회의를 구성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김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강조하면서 경제 위기 관련 원탁회의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생각대로 안 된 것”이라며 “다음달 11일까지가 임기인 김 원내대표한테 (경제 원로·전문가가) 줄을 서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일부에서는 소위 ‘에이스급’ 전문가가 아닌 비주류나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인사가 찾아와 난감하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여당 때와 달리 정보 부족과 검증 미흡으로 황망한 일이 속출하는 것도 한국당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김용태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딸의 대학 입학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2시간여 만에 공식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당의 중장기적 정책 밑그림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조언과 자문이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당의 내분 상황에서는 이런 것이 무리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직접 참여보다는 관망하는 경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文대통령 “국가 관계서 배제 없는 포용 중요”

    문재인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르즈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디지털 시대에 ‘배제하지 않는 포용’은 더욱 중요하다. 디지털 격차가 경제적 격차와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개발도상국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APEC 디지털혁신기금’ 창설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미래와 포용적 성장’을 화두로 열린 이번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다. 근원적 해결을 위해 ‘다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새 국가 비전으로 채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포용성은 국가 관계에서도 중요하다”며 “회원국 간 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기회와 호혜적 협력을 보장할 때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를 회의장에서 만나 전날 양국 축구대표팀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것을 축하했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 대표팀이 모리슨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배려한 걸까요. 어제 1대1 무승부를 서로 축하했다”며 두 정상이 양손 검지손가락을 하나씩 들고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렸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우상호, 이언주 저격 “부산 영도, 철새도래지 아니다”

    우상호, 이언주 저격 “부산 영도, 철새도래지 아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유한국당 입당설에 휩싸인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을 정치 철새에 비유했다. 우 의원은 16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최근 ‘보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언주 의원에 대해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인 경기 광명 당선이 어려우니 당과 지역을 옮기려는 정략적 의도”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이언주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천재로 평가하고,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역사가 평가할 문제”라며 유보적 입장을 밝혀 보수 진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각에서는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이언주 의원이 당적을 옮겨 3선에 도전할 거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의원은 부산 출신이다. 우상호 의원은 “철새는 직항하는 철새와 경유하는 철새로 나뉘는데 이언주 의원은 경유형 철새”라며 “자유한국당에 가고 싶으면 바로 가면 되지 국민의당을 통해서 바른미래당을 거쳐 가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 의원은 “부산 영도는 바닷가지만 철새도래지는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우 의원은 이언주 의원의 성향에 대해 “운동권보다 더 좌파”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언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있고, 제가 원내대표를 할 때 예산안을 논의하면서 법인세 인상 대신 고소득층 과세구간을 신설하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하니 이 의원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법인세 인상인데 원내대표가 그것도 관철을 못했느냐’며 화를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우 의원은 “당시는 운동권 출신인 나보다 나은 분이라고 생각했고 진정성이 느껴졌는데 이제 보수의 길을 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또 “우리 당이 이언주 의원의 행보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있는데 이 의원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당 입당설과 관련해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부인한 바 있다. 앞서 9일 이 의원은 자유한국당 청년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청년바람포럼’에 강연자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아직 입당은 아니다”라면서도 한국당과 뜻을 같이 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헌법소원까지 개입한 법원행정처

    강제징용, 전교조, 통합진보당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법원행정처가 헌법재판소 사건까지 개입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이 제기한 업무방해 헌법소원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2년 2월 접수 뒤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아 헌재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처는 2015년 7월부터 헌재의 주요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의혹을 받고 있다.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서다. 한일협정 헌법소원, 민주화운동 보상, 과거사 소멸시효, 형사소송 성공보수 무효, GS칼텍스 사건 등 당시 법조계가 주목하던 사건들이다. 이런 내용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적시돼 있다. 대부분은 정보 수집으로 끝났지만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업무방해 사건은 청와대를 통해 압박을 시도한 정황이 나온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2012년 업무방해와 관련해 헌소를 제기했다. 이들은 앞서 2010년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 특근을 거부했고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이미 특근 거부 등에 대해 유죄라고 판결한 상태였다. 행정처는 헌재 평의에서 한정위헌이 다수였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정위헌 결정이 나올 경우 대법 판결과 배치되고, 최고법원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임 전 차장은 2015년 11월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이 보고서에는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면 대법 판결의 법률 해석을 전면 부정하는 최초의 사례로 사법기관 갈등을 부추겨 두 기관의 정면충돌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결국 국가 안정의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업무방해 한정위헌 논리는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숙원 사업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고, 불법 파업이 폭증해 산업계와 재계의 부담이 급증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임 전 차장은 당시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뒤 청와대 관계자에게 해당 문건을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헌재 소송까지 개입한 법원행정처…“민주노총 숙원사업으로 불법 파업 폭증”

    헌재 소송까지 개입한 법원행정처…“민주노총 숙원사업으로 불법 파업 폭증”

     강제징용, 전교조, 통합진보당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법원행정처는 헌법재판소 재판까지 개입하려 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이 제기한 업무방해 헌법소원 사건이다. 행정처는 청와대에 청탁을 넣었고, 2012년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은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처는 2015년 7월부터 헌재의 주요 사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의혹을 받고 있다.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서다. 한일협정 헌법소원, 민주화운동 보상, 과거사 소멸시효, 형사소송 성공보수 무효, GS칼텍스 사건 등 당시 법조계가 주목하던 사건들이다. 이런 내용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적시돼 있다.  대부분은 정보 수집으로 끝났지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의 업무방해 사건은 청와대를 통해 압박을 시도했다.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조 간부 강모씨 등 4명이 2012년 업무방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이다. 이들은 2010년 3월 비정규직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 특근을 거부했고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미 특근 거부 등 합법 파업에 대해 유죄라고 판결한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헌법재판관 평의에서 한정위헌이 다수였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정위헌 결정이 나올 경우 대법원의 판결과 배치되고,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임종헌 차장은 2015년 11월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업무방해죄 관련 한정위헌 판단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으로 인해 불법파업에 대한 형사처벌 공백이 발생해 결국 국가 경제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는 핵심 내용이 담겼다.  이 보고서에는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게 된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률해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최초의 사례로 사법기관 갈등을 부추겨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정면충돌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결국 국가 안정의 저해요소로 작용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또한 업무방해죄에 대한 한정위헌 논리는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숙원 사업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고, 불법 파업이 폭증해 산업계와 재계의 부담이 급증한다는 내용도 세세히 담겨 있었다. 임종헌 차장은 당시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뒤 청와대 관계자에게 문건을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실제로 2016년 헌재가 업무방해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예측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당시 헌재는 이례적으로 행정처 의견서까지 받았다. 2015년 11월 행정처는 ‘헌재가 한정위헌을 결정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헌재는 2012년 2월 접수된 업무방해 헌법소원 사건을 2015년 12월 이후 별다른 심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현재 헌재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가 헌재에 업무방해 사건 관련 지시를 내렸다는 점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은빛자서전 프로젝트<4>] “가난한 교사의 아내로, 운동권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와”

    [은빛자서전 프로젝트<4>] “가난한 교사의 아내로, 운동권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와”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은 충북 옥천신문과 손잡고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주민의 구술(口述)을 풀어내 자서전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다(서울신문 3월 16일자 ‘인터뷰 플러스’ 참조). 이번에는 옥천군 문정리에 사는 신중남 씨(87)를 만났다.●공부 많이 못 한 아쉬움 나는 1932년 대전시 용두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신명재)는 7대 종손으로 주변에서 ‘대종손(大宗孫)’으로 불렀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33세까지 독선생(獨先生)을 두고서 한학 공부를 했을 정도로 종손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많이 배운 아버지는 자녀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7남매 중 다섯째였던 나도 아버지가 들려주는 덕담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많이 배운 아버지가 정작 딸들에게는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선화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였는데, 상급 학교에 진학해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너무 아쉽다. 아버지는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학생 출신 교사에게 시집오다 나는 21세가 되던 해인 1952년 은진 송씨 가문으로 시집왔다. 신랑은 초등학교 교사인 송용섭이었다. 신랑이 1933년생으로 나보다 한 살 적었다. 회덕읍 와동리 은진 송씨 종손인 남편은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숙부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용섭이는 반드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선생님의 강권으로 간신히 대전에 있는 야간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학생(苦學生)이 되었고, 신문 배달 등을 하면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남편이 18세가 되던 해인 1950년 전쟁이 터졌다. 남편은 철도국에서 일하던 숙부의 가족과 함께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 당시 우리 동네 어른 한 분이 남편의 숙부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분도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거기서 우연히 직장 동료를 만났고, 그와 함께 있던 건실한 고학생 청년을 발견한 모양이다. “젊은 친구가 아주 건실하고 잘 생겼어요. 거기에 약빠르기까지 하더군요.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동네 어른이 중매를 서면서 아버지에게 해주었던 추천사였다. 얼마 후 나는 남편이 숙부와 살고 있던 회덕읍 와동리로 시집갔다. 하지만 교사 자격증을 딴 남편이 이원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으면서 한 달 만에 옥천군 이원면으로 이사했다. 이원초등학교 옆 초가집에 셋방을 얻어 살림을 차렸다. 숙부댁에서 나올 때 받은 것은 사발 2개, 대접 2개, 접시 2개가 전부였다. 당시 교사의 처우는 열악했다. 월급 200원은 나무 한 짐과 쌀 두 말 사면 그만이었다. 발령을 받고 먹을 쌀이 없어 동료 교사에게 쌀 한 말을 빌려야 했다.●서울대·고려대 운동권 아들 남편의 교사 생활은 20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원초에서 시작된 교사 생활은 안내초를 거쳐서 삼양초에서 끝났다. 남편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 페인트 사업에 잠시 손을 댔다. 군수와 부군수 등 공무원 약속만 믿고 옥천을 비롯한 충북 일대 마을의 지붕에 칠할 페인트를 공급할 때만 해도 전도가 양양했다. 하지만 대금만 떼이면서 인생의 쓴맛을 보고 말았다. 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4남매를 얻었다. 결혼 초기 10년 가까이 아기를 낳지 못하다가 초산을 했다. 장남 치우가 탄생했을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쁘고 행복했다. 이후 차남 치용, 삼남 치양, 장녀 현이 차례로 태어났다. 살아오면서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살 만했던 것은 4남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식들은 우리 부부에게 희락(喜樂)만이 아니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선물했다.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차남 치용과 삼남 치양이 대학에 다닐 무렵이 하필이면 대학가에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옥천중, 천안북일고를 다녔던 치용은 서울대에 들어갔다. 옥천중, 옥천고를 졸업한 치양은 고려대에 합격했다. 특히 치양은 옥천고를 다닐 때 총학생회장을 맡는 등 리더십도 발휘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치용과 치양은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아마도 농촌에서 성장하며 착한 심성을 지녔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시대의 요청을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두 아들을 둔 덕분에 우리 부부는 최루탄 연기가 날리는 대학가에도 가봤고, 죄수복을 입은 아들이 오히려 그 무서운 판사와 검사를 준엄하게 꾸짖는 법정에도 가봤다. 농촌 생활이 궁핍해 아들을 찾아갈 때마다 여비를 마련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알기에 남에게 함부로 돈을 꾸어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치양이 데모를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 왔다는 연락을 받고 동생에게 20만원을 빌려서 서울로 갔을 때의 일이다. “고맙습니다.” 나는 형사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형사가 능글능글 웃으며 물었다. “내가 치양이를 잡아 왔고 때렸는데 왜 고맙다고 하십니까?” “형사님이 내 아들을 잡아 온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많은 대학생이 의문사를 당하던 무서운 시절이었다. 그제야 형사의 표정과 태도가 진지하게 바뀌었다. ●“금강경 읽으며 모든 업보 풀고파” 지금도 두 아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세상을 보는 나의 안목이 바뀌었다. 1980년대 이후 나는 TV 뉴스를 빼놓지 않고 본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뉴스 뒤의 정치적 의도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외교, 국제 문제도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날 때는 하루 종일 TV를 봤다. 금강산도, 백두산도 빨리 가보고 싶다. 나는 요즘 틈날 때마다 불경을 읽고 있다. <금강경>에 이어 <천수경>을 읽기 시작할 무렵 평택에서 수의사로 일하며 지역 운동에 헌신하던 차남 치용이 정의당 소속의 경기도의원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도 <금강경>과 <천수경>을 읽으며 가난한 교사의 아내, 운동권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오며 맺혔던 모든 업보를 풀어나가고 싶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남영동 대공분실 첫 체포자는 中 실상 소개한 故리영희 교수

    남영동 대공분실 첫 체포자는 中 실상 소개한 故리영희 교수

    ‘남영동 대공분실’에 최초로 체포된 이는 고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로 확인됐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976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됐던 고문 피해자 384명에 관한 실태조사를 담은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실태 조사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보고서는 수사 피해자 384명의 명단과 고문 피해자 54명의 육성 증언, 고문 피해자 8인에 관한 심층 인터뷰를 수록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체포 또는 구속 수사한 정확한 인원과 명단은 지금껏 알려진 바 없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공식명칭은 물론 소속, 조직체계, 종사자 현황 등을 숨긴 채 비밀리에 운영됐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최초로 체포한 이는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다. 중국 사회의 실상을 소개한 책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 비평사)가 문제가 돼 1977년 1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후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0년 신군부 집권에 맞춰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 언론인, 재야운동가를 마구잡이로 체포해 잔혹한 고문을 자행했다. 경기도 경찰국에 근무하며 출장수사를 다녔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도 1980년 3월에 남영동 대공분실로 왔다. 이근안은 1985년 당시 고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의장을 비롯해 김태홍, 노향기 등 기자협회 간부 등을 고문했다. 이곳에서 발생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기념사업회 측은 “앞으로 제보와 더 많은 문헌과 기록, 증언을 수집해 실체를 더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아웅산 수치, 국제앰네스티 최고 권위상 박탈…광주인권상은 어떻게?

    아웅산 수치, 국제앰네스티 최고 권위상 박탈…광주인권상은 어떻게?

    2004년 ‘광주인권상’도 수상…박탈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국제앰네스티는 미얀마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 학살을 방관하거나 두둔한다는 이유로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미얀마 실력자 아웅산 수치(73) 국가자문역에게 수여했던 ‘양심대사상’를 철회했다고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양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수치 자문역이 1991년 받았던 노벨평화상도 박탈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성명에서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인권을 향한 불굴의 저항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우리는 깊이 실망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그가 로힝야족을 향한 잔혹 행위의 중대성과 규모를 부인하는 것은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에 있는 로힝야족 수십만 명의 상황이 나아질 전망이 적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앰네스티는 수치 자문역이 가택연금을 받을 당시인 2009년 이 단체의 최고 영예인 ‘양심대사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앞서 캐나다 상원도 지난달 2일 수치 자문역의 명예시민권을 박탈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수치 자문역을 수상자로 선정했던 명예 타이틀을 철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수치 자문역은 캐나다 명예시민 박탈 1호의 수치스러운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수치의 모교인 영국 옥스퍼드대는 ‘자랑스러운 동문인’ 명단에서 그를 지웠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의회도 수치 자문역의 명예시민권 자격을 거둬들였다. 미얀마군과 정부는 로힝야족 반군단체인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소탕 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 수천 명이 죽고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반군 토벌을 빌미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성폭행, 방화, 고문 등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만행에 대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수치 자문역은 별다른 언급없이 침묵을 지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샀다.이에 유엔 진상조사단은 지난 8월 최종보고서에서 미얀마 군부가 인종청소 의도를 품고 대량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며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 등 미얀마 정부군 장성 6명을 국제법에 따라 중범죄 혐의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수치 자문역이 1991년 받은 노벨평화상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노벨위원회는 이를 거부한 있다. 노벨위원회 측은 “노벨상은 물리학상이든지, 문학상이든지, 평화상이든지 과거에 상을 받을 만한 노력과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웅산 수치는 상을 받은 1991년까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워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벨상 규정에 따르면 수상 철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노벨위 측은 덧붙였다. 수치 자문역은 2004년 광주 5·18기념재단으로부터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고, 2013년 광주를 방문해 이 상과 함께 광주명예시민증도 받았지만 ‘수상 박탈론’이 나온다고 한겨레가 전했다.
  • 수업 중 학부모에게 뺨 맞고… 학생들에게 몰카 찍히고

    수업 중 학부모에게 뺨 맞고… 학생들에게 몰카 찍히고

    중학생 딸 ‘왕따’ 앙심…초교 담임 찾아 학생 20여명 앞에서 폭행한 42세 엄마 치마 속 상습 촬영 SNS 올린 남고생들 퇴학 징계받자 불복해 재심 신청하기도‘학부모는 교실 난입해 교사 뺨 때리고, 학생들은 여교사 치마 속 찍고….’ 최근 교권 침해 수준이 점점 험악해지면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학교폭력 처리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밤낮 없이 전화·문자로 민원하는 일부 학부모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교원단체는 “교사를 보호할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8일에는 전북 고창군의 한 초교에서 여성 A(42)씨가 교실에 난입해 여교사 B(45)씨의 뺨을 2~3차례 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교실에는 학생 20여명이 있었다. B씨는 3년 전 전주의 한 초교에서 A씨 딸의 담임교사였다. 당시 A씨 딸이 집단 따돌림 피해를 봤는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권고해 ‘화해’로 마무리됐다. A씨는 중학교에 진학한 딸이 최근 비슷한 사건에 휘말리자 격분해 초교 시절 담임을 찾아와 해코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를 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교원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은 11일 성명을 내고 “민주화 과정 속에서 정당한 공적 권위까지 흔들리고 있다”면서 “정당한 공무집행 방해 사안을 엄벌하고, 교육청에 교권 전담변호사를 고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지난 8월 경남의 한 고교에서는 ‘몰카 사건’이 발생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2학년 남학생 4명이 수업 중 여교사 3명의 치마 속을 스마트폰으로 5차례 촬영하고 인적관계망서비스(SNS) 비밀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다가 발각됐다. 학교 측은 촬영을 주도한 4명과 동영상을 유포한 2명 등 6명을 퇴학시켰는데 학생들이 징계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다. ●한 명이 민원·소송 100번… 일상적 침해 심각 일상적 교권 침해도 교사를 괴롭게 한다. 학교폭력 처리를 둘러싼 악성 민원이 대표적이다. 제주에서는 최근 한 학부모가 아이가 다니는 초교를 상대로 100건가량의 민원과 소송을 제기해 교원 사회의 반발을 샀다. 학교 측은 청소 시간에 학생끼리 사소하게 다툰 정도로 판단해 가해 학생에 ‘서면사과’ 조치했는데 학부모 측이 추가 보호 조치를 요구하며 민원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대전의 한 초교에서는 학교폭력 탓에 서면사과 조치를 받은 가해 학생의 학부모가 “따를 수 없다”며 수차례 민원을 내고 공개 게시판에 글을 올려 교사가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병가휴직하기도 했다. 교총 관계자는 “학교폭력에 대해 교사가 자율 판단해 해결할 권한을 전혀 주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말했다. ●“밤낮없는 전화·문자… 보호 제도 정비 절실”  퇴근 뒤 날아드는 학부모들의 전화와 문자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교총이 지난 6월 유·초·중·고교 교원 18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9.6%가 스마트폰을 통한 교권 침해가 매우 심각하거나 심각한 편이라고 답했다. 술에 취한 학부모가 전화해 처지를 하소연하거나 욕설하는 등의 사례가 많았다. 교원 사회의 피로감이 커지자 교총은 최근 “교권 3법 개정안을 국회가 통과해 달라”며 단체 행동에 돌입했다. ▲교권침해 행위자를 교육감이 반드시 고발하도록 의무화하는 교원지원법 ▲각 학교에 설치된 학폭위를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으로 옮기는 내용의 학교폭력 예방법 ▲벌금 5만원 수준의 가벼운 처벌만 받아도 10년간 학교나 체육시설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일률 규제한 아동복지법 등의 개정을 요구한다. 교총 관계자는 “교육부가 학교폭력 제도 개선 방안을 숙려제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학폭위 이관 등의 안은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교사들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30일만에 경질된 전원책의 폭로…“김병준이 특정인물 넣어달라고”

    30일만에 경질된 전원책의 폭로…“김병준이 특정인물 넣어달라고”

    표면적 이유는 2월 전당대회…바탕엔 ‘인적쇄신 강도’ 두고 갈등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십고초려’해 조직강화특별위원(조강특위)으로 영입한 전원책 변호사를 경질했다. 종편 등에서 스타 보수논객으로 활약하던 전원책 변호사는 지난달 11일 비대위에 의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지 30일 만에 짐을 싸는 수모를 겪게 됐다. 김병준 위원장은 자신이 러브콜한 전원책 변호사를 스스로 내친 꼴이 되면서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가 났다. 두 사람은 전날까지 “언행조심하라(김병준)”, “뒤통수 치고 있다(전원책)”며 격하게 대립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평생을 옆에 있는 분 같이 일하던 분을 내친적이 제 기억에는 없었다”며 “제 팔을 하나 잘라내는 기분”이라며 착잡한 심경을 피력했다. 또 “전 변호사의 말씀을 최대한 존중하려 했지만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 조강특위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 주장을 수용하기 어려웠다”며 “당 혁신 작업에 동참해줬는데 미안하다”고 말했다.반면 상대인 전원책 변호사는 같은날 기자들과 만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조강특위에 특정인물을 넣어달라고 한 게 갈등의 시작이었다”며 폭로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2월말 전대는 인적쇄신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전원책 변호사가 경질된 표면적인 이유는 전당대회 일정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병준 위원장이 이끄는 비대위는 “예정대로 내년 2월 말에 전당대회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전원책 변호사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맞서 왔다. 그 밑바탕에는 인적쇄신의 강도를 둘러싼 이견이 깔렸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과 전 변호사 모두 인적쇄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김 위원장은 “무조건 사람을 자르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에, 전 변호사는 “인적쇄신 완료 기한은 정해놓을 수 없다”에 각각 방점을 찍어왔다. 결국 두 사람, 나아가 비대위와 조강특위의 갈등은 전당대회 일정을 촉매제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원책 변호사가 해촉된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비대위는 ‘오후 3시 조강특위 회의 결과를 보고 해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전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잃을 게 없다. 자르려면 자르라”고 맞아치면서 갈등 수위가 고조됐다.이미 당내에서는 전 변호사의 돌출적인 언행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전 변호사는 ‘전대 출마 불가 12인’ 명단을 언급하고, “고인 물은 썩는다”, “경제민주화 강령을 받아들이고 빨간색으로 당색을 바꿔 당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관련 끝장토론 요구” 등 튀는 발언을 쏟아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전 변호사가 월권을 하고 있다”, “평론가인가, 조강특위 위원인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전원책 변호사의 해촉 결정에 당내 ‘당연한 결과’라는 여론이 적지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병준 위원장이 전원책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한 방식을 놓고 외부 인사로서 정치력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2월 말까지 남은 4개월 동안 김 위원장의 혁신작업이 상당 부분 힘을 잃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MS, 모든 사람이 AI 활용하는 ‘기술 민주화’ 이룰 것”

    “MS, 모든 사람이 AI 활용하는 ‘기술 민주화’ 이룰 것”

    5G·SW 등 미래 성장산업 의견 교환 ‘퓨처나우’ 콘퍼런스 기조연설자 참가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사업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하고, ‘퓨처나우’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나델라 CEO와 이 부회장이 이날 오전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나 사업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나델라 CEO와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 5G(5세대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등 미래 성장산업 핵심 분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협력 필요성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MS의 협력은 클라우드 서비스 협력에 초점이 맞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나델라 CEO는 MS가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 고전하던 2014년 취임한 뒤, 회사를 클라우드와 AI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삼성전자와 MS의 가장 큰 접점이 클라우드서비스임을 추론할 수 있는 이유다. 협력이 확대되면 삼성전자의 MS 클라우드 서버용 반도체 공급이 늘어나거나 삼성전자 제품에 MS 클라우드 서비스가 탑재되는 등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나델라 CEO는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퓨처나우’ 콘퍼런스에 참가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AI는 모든 사람과 기업이 목표를 이루게 만들어 줄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면서 “여러분이 모두 AI 능력을 가진 회사, 개발자가 되도록 하는 게 MS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거의 모든 공식 석상에서 강조하는 ‘테크 인텐시티’(tech intensity)와 관계가 깊다. 테크 인텐시티는 기업이 자신의 조직과 사업에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 능력의 정도를 말한다. 그는 기업들이 조직을 디지털화해 주는 MS 같은 회사의 고객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AI 등 최신 기술을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날도 그는 “MS가 구축한 AI는 각 분야에서 인간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런 연구 성과가 나오는 즉시 여러분(기업·개발자)에게 이용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MS는 이런 ‘기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한국 기업 중 MS의 AI 플랫폼을 잘 활용한 경우를 예로 설명했다. 그는 “한국 게임업체인 펄어비스는 우리에게 클라우드 인프라를 이용해 게이머들의 요구사항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검은사막’은 클라우드 데이터를 이용해 진정한 개인 맞춤형 게임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델라는 삼성전자 역시 습도와 온도 등의 정보를 수집해 소비전력의 25%를 절감할 수 있는 스마트에어컨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에 이은 MS의 세 번째 CEO다. 인도 출신의 전자공학 엔지니어로, 시카고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재학 중이던 1992년 MS에 입사했다. 나델라 CEO의 방한은 2014년 이후 4년 만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한열 열사 학술제 생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바친 이한열 열사의 삶과 그의 영향을 다루는 학술제가 처음 열린다. 이한열기념사업회와 연세대 이한열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오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경영대 강의실에서 ‘이한열과 1987년 6월항쟁’을 주제로 제1회 이한열 학술제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그동안 여러 단체와 학회 등이 1987년 6월항쟁이나 이 열사를 학술적으로 다룬 적은 있었지만, 열사의 이름을 딴 학술제를 개최하고 이를 정례화하는 것은 처음이다. 학술제는 매년 가을 개최될 예정이다. 이경란 이한열기념관장은 “지금까지 이 열사를 기리는 건 전시회 등 문화적 활동이 위주였는데 그런 작업도 학술적 기반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이야 기억에 의지해서 문화제 등을 열 수 있지만, 후대에는 어떤 준거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제에서는 가톨릭대에서 강의하는 김상숙 박사와 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발제를 맡고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조성대 한신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정경두 국방 “5·18계엄군 성폭행 사죄”

    정경두 국방 “5·18계엄군 성폭행 사죄”

    피해 여성 치유·명예회복에 최선 가해자·소속부대 조사 권고 수용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행 사실이 확인된 것과 관련해 “정부와 군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국방부에서 직접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 장관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과하는 것은 지난 2월 당시 송영무 장관이 5·18 때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진 뒤 사과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31일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와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 인권침해 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5·18 성폭력’ 사과문 전문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에 관한 정부 조사에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과 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가 확인됐습니다. 피해자는 10대에서 30대의 어린 학생과 젊은 여성들이었고,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나섰거나 가족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심지어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산부도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바랐던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참혹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38년 동안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은 물론 여성을 향한 성폭력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절망과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무고한 여성분들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드린 점에 대해 정부와 군을 대표하여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계엄군 지휘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무고한 여성시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것을 통렬히 반성합니다. 군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군의 책무이자 도리입니다. 국방부는 앞으로 출범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군사정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통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데에 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피해 여성들의 명예 회복과 치유에도 적극 나서겠습니다. 가해자 또는 소속부대를 조사하고 5·18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상 진상규명의 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할 것을 제언한 진상조사단의 권고를 엄중히 받아들여 군에 의한 성폭력의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계엄군과 국가권력으로부터 고통을 받으신 모든 시민과 여성들께 거듭 사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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