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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의 사회면] 재활용의 첨병, 넝마주이

    [그때의 사회면] 재활용의 첨병, 넝마주이

    ‘비닐 대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던 시절 쓸 만한 쓰레기를 대신 수거해 주는 일꾼이 넝마주이였다. 넝마는 낡고 해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 이불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넝마주이는 등에 싸리나무나 대나무로 짠 커다란 망태기를 메고 쇠집게로 폐지나 빈병 등 고물을 주워 담아 팔며 살았다. 지금은 처치 곤란인 비닐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커다란 망태기를 ‘치룽’이라고 한다. 쓰레기 재활용에 큰 역할을 해온 넝마주이가 나쁜 인상을 남긴 것은 범죄에 쉽게 휩쓸린 밑바닥 인생이라는 관념 때문이었다. 실제로 넝마주이들은 여염집에 널린 빨래나 생선 등을 훔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 넝마주이들은 이른바 ‘왕초’ 휘하에서 갈취를 당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넝마주이를 ‘양아치’라 부르며 비하했다. 울던 아이도 ‘넝마주이가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그런 넝마주이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고 등록제를 시행한 것은 5·16 쿠데타 직후였다. 겉으로는 넝마주이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취업을 보장한다는 명분이었다. 사회적 문제 집단인 이들을 선도하고 갱생시키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군사정권은 시ㆍ도별로 넝마주이 등록제를 실시, 지정된 복장과 명찰을 달고 지정 구역 안에서만 일을 하도록 했다(동아일보 1961년 6월 17일자). 1961년 6월 등록 기간에 등록한 넝마주이가 서울에서는 882명이었다. 다음달 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넝마주이 882명의 취업식이 열렸다. 검은색 제복에 푸른색 모자, 명찰을 단 넝마주이들은 이름도 폐품 수집인으로 바꾸고 ‘산업경제에 이바지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경향신문 1961년 7월 1일자). 부산에서는 국립대 영문과를 나와 통역장교를 지낸 30대 남자도 등록된 넝마주이에 포함돼 있었고, 정부의 유도로 상당한 돈을 저축해 자활의 길을 걸었다(동아일보 1961년 12월 4일자). 이듬해 ‘근로재건대’란 이름의 조직 체계도 갖추었고 1972년 5월 창립 10주년 행사를 열기도 했다. 넝마주이 자활정책은 그 뒤에도 이어졌지만, 범죄 연루는 끊이지 않았다. 넝마주이는 1980년 국보위가 사회악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상당수 넝마주이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로 사실상 사라졌다. 광주 민주화항쟁 때는 연고 없는 넝마주이가 다수 희생됐고 사망자 통계에도 빠졌다는 주장도 있다. 넝마주이가 엿장수와 함께 완전히 직업을 잃은 것은 1990년대 중반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시행되면서다. 사라졌다지만 따지고 보면 넝마주이는 사라진 게 아니다. 생활고로 폐지를 모으는 노년 세대가 사실상 그 자리를 이어받은 현실은 더 씁쓸하다. 사진은 1961년 열린 넝마주이 결단식 모습(출처: 국가기록원).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하룻밤 3억!…만델라 복역 교도소 독방 경매 나와 논란

    하룻밤 3억!…만델라 복역 교도소 독방 경매 나와 논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의 민주화를 이끈 고(故) 넬슨 만델라(1918~2018) 전 남아공 대통령이 과거 투옥 기간 27년 중 18년을 보냈던 로벤섬 교도소 독방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숙박권이 최근 경매에 나왔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남아공 언론 타임스라이브 등에 따르면, 최근 자선 행사 ‘더 CEO 슬립아웃’ 측이 경매에 로벤섬 교도소 독방 숙박권을 내놨다. 이 행사 주최 측은 지난 몇 년간 돈 많은 사업가를 대상으로 야외 노숙이나 교도소 체험 등의 기회를 경매로 내놓은 바 있다. 이번 계획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인 오는 7월 18일을 맞아 로벤섬 교도소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자’는 의도 아래 시작됐다. 참가 비용은 인당 10만 달러(약 1억 원)로, 만델라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기간이 67년이었다는 점에서 지원자 67명을 모집했다. 참가 비용의 대부분이 자선단체에 기부될 예정인 데다가 행사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린 사업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리고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교도소 중에서도 만델라가 직접 잠을 잤던 조그만 독방 안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경매로, 참가자 67명에게만 기회가 제공됐다. 지난달 4일 340만 남아공 랜드(약 2억8000만 원)에 시작된 경매 금액은 마지막 날인 지난달 17일 410만 남아공 랜드(약 3억3800만 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낙찰 금액 일부는 수용자들에게 대학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 복역 후 인생 설계를 돕는 자선단체 ‘프리슨 투 컬리지 파이프라인’(P2CP·Prison-To-College Pipeline)에 기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 소식이 전해진 뒤 로벤섬 전체를 관리하는 로벤섬 박물관 측이 이번 경매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넬슨 만델라 재단 역시 이번 행사를 두고 공식적으로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행사 주최 측은 홈페이지에서 경매 관련 소식을 삭제했을 뿐 프로젝트 중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어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32년 만에… ‘박종철 고문치사’ 기록물 세상으로

    32년 만에… ‘박종철 고문치사’ 기록물 세상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마중물 역할을 한 인천 5·3 시위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관련 경찰 수사 기록이 일반에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기록물공개심의회와 국가기록관리위원회를 열어 이런 비공개 기록물 1만 6182권을 공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에 관심을 끄는 것은 인천 5·3 시위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관련 기록물이다.  인천 5·3 시위 사건은 1986년 5월 3일 인천 주안역 앞 시민회관 사거리에서 일어난 민주화 요구 집회로, 1985년 말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되던 개헌 요구가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분출된 시위였다. 시민단체와 대학생, 노동자, 시민 등 수천여명이 모여 직선제 개헌 요구를 분출시켰다. 6·13 지방선거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문수(67) 당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 등이 시위를 주도했다. 인천지방경찰청이 만든 이 기록물에는 시위사건의 종합 수사상황, 수사보고, 피의자에 대한 수사경위 보고, 현장 참가자의 증언 등이 담겨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3 민주항쟁은 폭력적 측면이 부각돼 언론이나 여론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었지만, 인천 이외의 다른 도시로 직선제 개헌 대회가 확산되고 결국 1987년 6월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가 퍼져 6·29 선언으로 이행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이 작성한 ‘박종철 사건 처리 개요’ 기록물은 1987년 1월 14일 박군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을 당시의 사고 발생 현황, 응급 처리, 사건 발생 보고, 사체 처리, 부검 소견, 장례 등이 개략적으로 설명돼 있다. 경찰 재판 과정에서 구형·선고 내용, 해당자의 문책 내용, 국회의원 답변 자료, 범인 축소 기도 경위 등도 포함돼 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국가기록원은 2007년 이래 비공개 기록물 7900여만건을 재분류해 적극적으로 공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 있는 기록물을 중심으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 편에서… 마포구민 하늘처럼 섬길 것”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 편에서… 마포구민 하늘처럼 섬길 것”

    유동균 신임 서울 마포구청장은 5일 “행정이란 돈 없고, 힘없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가 필요한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것”이라면서 “따뜻한 가슴으로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오른팔이 되겠다는 각오로 구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구정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당선 소감은. -선거는 구도 싸움인 만큼 이번 6·13 지방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지지도에 힘입어 당선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에 보조를 잘 맞추면서도 동시에 마포구민이 만족하는 구정을 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포와의 인연은. -14세 때 마포로 이사 온 뒤 40년 넘게 마포에 살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구의원(재선), 시의원으로 봉사하며 지내 왔다. 그러는 동안 전임자인 박홍섭(3선) 전 구청장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그분과 같은 철학을 공유하며 일했다. 구민이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이 풍부해지도록 교육과 문화에 힘 쏟아야 한다고 보고 중앙도서관 및 청소년교육센터 건립에 함께했다. 경의선 걷고 싶은 거리와 석유비축기지 문화공원 조성도 시의원 재직 당시 용도변경, 예산투입 등에서 힘을 썼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포, 교육과 문화가 풍부한 마포,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도시로 마포를 가꿔 나가겠다. →주요 정책 방향은. -우선 마포구가 저출산 극복 해결의 선봉에 서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장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때부터 지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후 조리비(50만원) 지원은 물론 구립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주차장 특별회계로 500억원 정도의 예산이 있는데 주차장을 건립할 때 주차장은 지하로 넣고 지상에는 산후조리원을 만드는 구상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 예산도 끌어오겠다. 이 외에도 지역 경제 발전과 함께 대두되는 젠트리피케이션(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 내몰림 현상)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남북 화해 중심도시로 마포구를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상암동 장례식장 민원 해결은. -현재 건립 계획 단계인 상암동 장례식장은 상암동과의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고양시와의 사이에는 큰 도로가 나 있어 실제 생활 영향은 상암동으로 미치게 돼 있다. 행정 관할이 경기 고양시여서 허가권은 고양시에 있는 게 문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마포구 주민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만큼 주민들과 호흡을 맞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상암동 롯데몰 개발 해법은.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와야 지역 경제가 발전하는 만큼 성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업시설이 이뤄지는 행위가 마포구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상암동 롯데몰에서 발생하는 수입에 대한 세금이 마포구로 귀속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마포 지역 일자리 창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주차 위반 딱지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는데 -주차 단속을 두고 항상 민원이 있다. 해도, 안 해도 문제다. 다만 과도한 단속보다는 계도가 중요하다. 요식 업계에서는 점심 시간만큼은 융통성 있게 대처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저녁 식사 시간인 오후 5시에서 8시까지는 퇴근 시간과도 겹치기 때문에 원활한 교통 흐름을 고려할 때 단속이 불가피하다. →새 구청장이 온 만큼 인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데. -인사가 만사다. 인사를 빨리 해야 일도 손에 잡힐 것이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개발하고 구민의 요구를 행정에 접목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본 전제 중 하나가 구청 인사다. 오는 20일 전후로 실시할 계획이다. →구청 직원들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신임 구청장이지만 구의원, 시의원 때부터 구청 직원들을 지켜봐 왔다. 이번 사무관 승진 대상자 인사를 앞두고서는 서기관급 간부들과 함께 심사도 해 봤는데 보는 눈은 결국 다 비슷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인사와 관련해 이뤄져야 할 제도 개선이 있다면. -우선 서울시와 구청 간, 그리고 구청과 구청 간 인사 교류가 너무 적다. 공무원은 전문가이지만 한 구청에서만 일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고, 부부 공무원이 한 구청에서 일하면 남편이 부인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도 발생한다. 바람직하지 않다. 구청 공무원에 대한 활발한 인사 교류가 이뤄지도록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제안하겠다. →계획이 있다면. -30대 당시 마포구의원으로 일하면서 구청장이 돼 더 큰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오늘까지 달려왔다. 지금은 신임 구청장이지만 재선을 목표로 삼고 일하겠다. 최선을 다해 구민들을 섬기고 마포를 발전시킬 것이다. 행정이란 결국 ‘주민에게 아부하는 것’, ‘주민 마음에 들 때까지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가슴으로 약자를 돌보고 구민을 편하게 만드는 행정을 펴겠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부모, 형제,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데 저는 정청래 전 국회의원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고, 그게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의 성원에 항상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포구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저는 물론이고 구청 직원들도 항상 국내외 정세는 물론 세상이 변하는 데 대해 배우는 자세로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만족스러운 대민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열심히 하겠다. →요구가 많으면 직원들이 힘들지 않겠나.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편하게 일했다는 것이다. 마포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주길 바란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유동균 구청장은소년 노동자 출신… 구·시의원 지내며 구민과 소통 탁월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은 소년 노동자 출신의 ‘흙수저’ 인생이었다. 전북 고창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4세 때 가족들과 함께 마포구 성산동으로 이사 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등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등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대신 뒤늦게 20~30대에 걸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이어 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어려움이 닥쳐도 노력한다면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다는 소신으로 살아왔다.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1987년 27세 때 평화민주당에 가입해 당원 활동을 시작했다. 주민 속을 파고들며 마포구의회 제2대(최연소), 6대 구의원도 지냈다. 지역에서 바닥부터 다지고 올라오면서 대민 봉사의 기본은 소통이라는 소신을 갖게 됐고, 이에 따라 이번 임기 공약 1호로 마포구민 소통 플랫폼인 ‘마포1번가’ 운영을 계획했으며, 실행을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민선 6기 제9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는 전임자인 박홍섭 전 구청장과 한 팀으로 보조를 맞추며 마포중앙도서관 건립, 경의선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 굵직한 사업들을 함께 완성했다. 구청장 취임 뒤 첫 행보로 지역 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마포인재육성장학재단 기탁식에 참석했다. 이미 2015년부터 현재까지 장학금을 기탁해 왔는데 기부금을 매월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높인 것이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1000만원 넘게 기부하면서 재단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마포드림즈 멤버가 되기도 했다. 정치적인 멘토로는 정청래 전 국회의원을 꼽는다. 정 전 의원의 지역구 사무국장으로 8년간 일하면서 정치에 본격 입문했다. 어려운 사람들의 오른팔이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마른 잎 다시 살아나 - 신촌 이한열 기념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마른 잎 다시 살아나 - 신촌 이한열 기념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영화 ‘1987’에서 87학번 신입생 역의 연희(김태리 분)의 대사다. 1987년은 대한민국 현대사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한 해였으리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과 더불어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냉혹한 좌절이 공존하였던 1987년. 바로 이 해에 일어난 6월 항쟁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6·29 선언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대학생,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공간인 이한열 기념관으로 가 보자. 1979년 10·26사건으로 기존의 유신체제는 붕괴의 압박을 받게 된다. 같은 해 12.12 사태를 일으키며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의 전두환은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결국 대통령 자리마저 차지한다. 이후 5.18 광주민주화항쟁마저 거쳐 결국 1980년에 개정된 제8차 헌법개정은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 놓는다. 간접 선거로 선출된 7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의 위치를 동시에 가질 뿐만 아니라 국회 해산권마저 쥐게 한 것이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같은 무소불위 대통령제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1987년이 되었다. 6월 10일에 전두환 정권은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간접 선거로 치르게 될 다음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친구 노태우를 지명하고자 하였다. 이에 맞서 수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이 날에 맞추어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한다. 바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1966년생으로 당시 만 20세였던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전경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27일 후인 7월 5일 숨을 거둔다. 이에 전국의 대학생들 및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고, 급기야 6월 10일 전국적인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난다. 넥타이부대라고 불리는 직장인들은 물론 생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일반인들마저 어린 대학생의 죽음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87년 7월 9일 '민주국민장'(民主國民葬) 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는 서울 100만, 광주 50만 등 전국적으로 총 160만 명의 추모 인파가 운집한다. 장례식 이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뜨겁게 이어지자 결국 6월 29일, 대통령 후보 지명자 노태우는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다고 발표하였다. 이한열 열사로 인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는 또 한 번 눈부신 비약을 하게 된다. 서울 마포구 신촌에 위치한 이한열 기념관은 한국 민주주의 근간이 되었던 1987년 뜨거웠던 항쟁의 기록을 보존, 연구하며, 전시를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교육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처음에는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과 시민 성금으로 2004년에 세워졌으며, 이후 2014년 사립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현재 기념관에는 최루탄을 맞았을 때 입고 있었던 연세대 경영학과 셔츠와 바지, 신발, 안경테, 필통, 원고지 등이 보존 처리를 거쳐 전시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하여 수많은 민주 인사들의 추모글도 벽면에 타일로 만날 수 있다. 이한열 기념관을 둘러본 관람객들이라면 영화 ‘1987’의 연희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래서 세상은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라고. <이한열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공간이야? - 20대 청춘이라면,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2. 누구와 함께? - 혼자든, 가족이든 3. 가는 방법은?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8번 출구, 동교동 방향으로 70m 정도 직진, 신촌 한의원에서 좌회전, 70m 정도 직진, 신촌갈비굼터에서 우회전, 70m 정도 직진, 왼쪽 하얀 건물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로 12나길 26 4. 감명받는 점은? -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생각보다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유품은? - 최루탄을 맞았을 당시 입고 있었던 티셔츠. 친필 원고지.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글. 7. 기념관을 가기 전 준비할 것은? - 1980년대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가면 기념관 방문이 뜻 깊다. 특히 1987년의 역사를.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leememorial.or.kr/ 9. 주변에 가 볼만한 곳은? - 근현대 디자인 박물관, 홍대 거리, 신촌 거리.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한국의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한열 열사다. 열사의 고귀한 희생으로 인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더 발전을 하게 되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민주화 운동 옥죈 ‘위수령’ 68년만에 역사 속으로

    위수령이 제정된 지 6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방부는 4일 군부 독재 잔재인 위수령 폐지령안을 이날부터 오는 8월 13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위수령은 폐지된다. 위수령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별도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위수령은 경찰을 대신해 군부대가 특정 지역에 주둔하면서 치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군 병력을 동원해 치안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계엄령과 유사하지만, 계엄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반면 위수령은 임의로 발동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군 병력을 동원,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법령은 위수령이 유일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치안질서 유지는 경찰력으로 가능하기에 더이상 대통령령으로 존치 사유가 없어 이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수령은 1950년 3월 제정됐고 1965년 4월 한·일협정 체결로 촉발된 학생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동됐다. 이후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부정 규탄시위와 1979년 부마항쟁을 진압하는 데 활용됐다. 이렇듯 위수령은 시민들의 민주적 집회와 시위를 탄압하는 데 이용돼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도 2016년 겨울 촛불집회 당시 국방부가 위수령을 발동해 무력진압을 계획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국방부는 50여명의 관련자를 조사한 결과 군병력 투입 또는 무력 진압을 논의한 자료나 진술이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수도방위사령부 컴퓨터 파일 조사 과정에서 촛불집회와 관련된 시위·집회 대비계획 문건(2016년 11월 9일 생산)을 발견했다며 “동 문건에는 대비 개념으로 예비대 증원 및 총기사용 수칙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군이 촛불집회 참가 시민을 작전의 대상으로 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논란 끝에 국방부는 지난 3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등의 용역을 거쳐 “위수령은 위헌·위법적이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다”며 위수령을 폐지하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위수령이 지금까지 존치될 수 있었던 건 그간 국방부가 위수령 폐지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직후인 2016년 12월과 이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위수령 폐지 의견을 질의했으나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존치 의견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탄핵이 인용된 뒤에는 지난해 3월 이 의원실에 ‘위수령 존치 여부에 대해 심층 연구가 필요해 용역을 맡기겠다’고 회신을 보냈다고 한다. 국방부가 정권의 눈치를 봐 왔던 것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창동 신경제중심지사업 구체화… 연속성 있는 행정 펼칠 것”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창동 신경제중심지사업 구체화… 연속성 있는 행정 펼칠 것”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은 3일 구청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앞으로 4년 구상에 대해 밝혔다. 그는 “연속성, 지속성을 가지고 앞으로 4년은 핵심사업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세 번씩이나 뽑아 줬는데, 뭐 했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더욱 잘하겠다”고 강조했다.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 서울아레나 완성, 창동역 복합환승센터 건립 등 굵직한 과제들이 이 구청장 앞에 놓인 숙제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선거 소회가 있다면. -스스로 잘해서 승리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만이다. 지난 8년간 구정 운영한 것에 대한 평가와 촛불 민심이 합쳐진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선째이기 때문에 책임감이랄까 더 어깨가 무거워진 느낌이다. 선거 기간 내내 상대 후보가 도봉구의 내부청렴도가 낮은 것을 비판했는데, 그 내용이 부담이긴 했다. 직원들의 피로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원은 한정돼 있는데 팀을 늘리다 보니 업무가 늘었고 직원들의 피로가 너무 많이 쌓였다. 효율을 높이고 직원 피로를 줄이는 방향으로 구정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선거를 치르면서 현장에서 느낀 점은. -선거라는 것은 4년마다 낮은 위치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된다.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이름의 끝자를 따 ‘지니캠프’라는 이름으로 선거 활동 사진 등을 올렸는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현장에서 아이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 경우가 많아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아동친화도시로서 도봉구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많은 행사와 프로그램을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잦았던 스킨십이 그런 현상을 만들어낸 것 같다. →향후 4년간 도봉구 발전 구상은. -기본적인 구정 운영 방향은 연속성, 지속성이다. 예를 들면 여성친화도시, 아동친화도시, 평생교육도시 등은 기존에 도봉구가 만들어 온 것들이다. 조금 더 풍부하게 내실을 다질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창동 신경제중심지사업, 서울아레나 등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것을 구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 활력을 불어넣고 이를 바탕으로 골목 상권을 활성화하겠다. 또 서울아레나를 중심으로 ‘음악도시 도봉’을 완성해 도봉구를 우리나라의 공연문화 중심지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SRT와 GTX-C 노선의 창동역 정차와 창동역 복합환승센터 조기 건립 등을 통해 창동을 동북권 교통의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2022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는 45층 높이의 창업·문화산업단지 조성도 있다. 전체면적 15만 6263㎡ 규모로 사업비 3616억원이 투입된다.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의 선도사업으로 서울아레나 건립과 더불어 생겨날 300개 정도의 문화예술 관련 기업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서울시소방학교 이전부지를 활용한 청년플라자 및 시민안전체험관 건립, 동북권 창업센터 건립 등도 추진한다. →추가된 내용이 있다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도봉구가 서울의 관문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할 것이다. 시는 지난 3월 22일 도봉동을 포함한 경기 인접지역 12곳을 관문도시로 규정하고 지역특성에 맞게 도시재생하는 ‘서울 관문도시 조성사업 종합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경기 의정부와 인접한 도봉동은 서울창포원, 평화문화진지, 다락원체육공원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11만㎡ 규모의 동북권 최대 생태·문화·체육 복합 단지로 거듭날 것이다. →현안 중 시급한 문제와 개선책은. -창동역 노점상과 주민 간 갈등 문제다. 창동역 주변 주민의 보행환경개선을 위해서 시작한 것인데, 주민과 노점 간의 갈등으로 비화가 됐고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무리도 생겼다. 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정치적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보고 조만간 그런 해결방안을 주민과 협의를 통해서 모색해 나가려고 한다. 노점을 100% 다 없앤다고 하는 것은 사회상식에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갑부 노점’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노점을 없애야 한다고 하는데 재산 기준 등에 걸맞게 정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점 중에는 생계가 막막한 어려운 사람들도 꽤 있다. 주민과 노점 사이의 합의점 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한다.→지방분권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추진해 나갈 생각인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나누는 자치와 분권이 이뤄져야 한다. 지방정부 역시 주민들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행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개헌을 통해 자치분권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당분간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 따라서 법률 개정, 제도개선 등을 통한 추진이 필요하다. 다른 당선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어떤 구청장이 되려 하는가. -단순히 구청장 3선이 목표였다면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나태해질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표지향점이 다르고 분명하기 때문에 나태해질 시간이 없을 거 같다. 지난 8년 동안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그것들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상황이다. 주민이 저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일들을 잘 마무리하라는 뜻이기 때문에 업무에 충실해야 하는 게 예의다. 민선 5·6기가 도봉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싹을 가꿔 온 기간이라면 민선 7기는 열매를 맺는 시기가 될 것이다. 도봉구의 변화와 발전에 단절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주민에게 ‘도봉구를 변화시킨 구청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고 그럴 수 있으리라고 본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이동진 구청장은 민주화운동·시의원 경력… ‘문화도시 도봉’ 이끈 3선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은 2010년 민선 5기에 당선된 이후 6기 재선에 이어 지난달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도봉구민의 선택을 받아 3선 구청장이 됐다. 1960년 전북 정읍에서 6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평생 농사짓는 일 한 가지로만 힘겹게 산 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의 남다른 교육열에 집에서 기르던 소를 팔아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일방직 똥물사건’ 사진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사회구성원 중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이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됐고 대학시절에는 10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열어 활동했다. 학교를 떠나서는 인천 주안공단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1986년 나라 전체가 민주항쟁으로 들끓던 시기 야학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했다. 1990년 초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 고 김근태 의원을 만나게 됐고 이후 김 의원의 보좌관을 하면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제5대 서울시의원, 민주당 부대변인을 역임했다. 과거 도봉구는 서울의 변방, 낙후된 지역으로 불렸다. 이 구청장은 민선 5·6기를 통해 도봉구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봉구의 ‘문화’와 ‘역사’에 노력을 기울였다. 2012년 유희경·이매창 시비를 건립했고 2013년에는 김수영문학관의 문을 열었다. 2015년에는 둘리뮤지엄과 함석헌기념관을 개관했다. 민선 7기에서는 창동 신경제중심지조성사업, 서울아레나 건립, 창동의 동북권 교통 중심지 조성 등 도봉구의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에 힘쓴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두 달 남았는데… 5·18 진상 조사위는 제자리걸음

    두 달 남았는데… 5·18 진상 조사위는 제자리걸음

    국회 원 구성 난항·정당 무관심 재단 측 “조속히 위원 구성하라” 최초 발포명령자·암매장 등 풀지 못한 핵심 의문들 과제‘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진상규명법) 시행일(9월 14일)이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으나 위원회 구성 등 준비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5·18기념재단과 유족회 등은 3일 “최근 국회와 여야 정당에 위원 추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문에서 “국회가 추천하는 9명의 위원이 확정되지 않아 조사위 활동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여야 정당은 5·18 진상규명의 마지막 기회인 시대적 여망에 즉각 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위원회는 국회의장 추천 1명과 여야 추천 4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가해자·참고인·제보자 등을 강제 소환할 수 있는 동행명령장 발부 등 준사법권을 갖는다. 50~100명의 조사관과 사무처 직원을 둔다. 그러나 현재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난항과 국회의장 공석 장기화, 각 정당의 무관심 등으로 위원 위촉이 난항을 겪고 있다. 송선태 국방부 진상규명특별법시행 전담팀(TF) 자문위원은 “위원 인사 검증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만 따져도 1개월이 넘는다”고 했다. 이 법안은 5·18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폭력·학살·암매장 사건 등을 조사해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는 게 목적이다. 일부 극우단체가 주도하는 왜곡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광주시는 조사위 출범을 앞두고 각종 제보를 접수하고 총괄하는 5·18진상규명통합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 준비에 나섰다. 이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5·18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반복되는 것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탓이다. 1988년 국회 5·18청문회(광주특위)와 1995년 검찰수사,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 지난해 국방부의 헬기사격 관련 조사특위 등 4차례 이상 진행됐지만 최초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법은 당시 신군부 실권자였던 전두환씨 등 주요 책임자를 소추할 길을 열어 놨다. 전씨는 1997년 대법원의 ‘5·18 내란사건’ 판결로 내란수괴·뇌란목적살인죄 등으로 형사처벌됐다. 전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국한됐다. 이 때문에 5월 21~26일 사이 광주시민에 대한 집단 발포에 전씨가 개입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형사처벌해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행불자의 암매장 논란도 숙제로 꼽힌다. 현재 공식 5·18 행불자 82명 가운데 6명만 확인됐다. 양민학살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1980년 5월 23일 11공수여단은 광주 동구 지원동 녹동마을 앞길에서 시민군이 탑승한 미니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박모(당시 18세)양 등 10여명이 사망했다. 부상당한 남자 2명은 인근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즉결 총살됐다. 그러나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 밖에 광주 진압작전 시 특전사 위주로 운영된 군 지휘계통의 이원화, 무고한 시민에 대한 고문, 여성 성폭행, 북한군 개입설, 헬기사격 명령자, 시민군 무장 시점 조작 여부 등도 조사한다. 1985년 안기부 주도의 ‘80위원회’, 1988년 국방부의 ‘511연구위원회’ 등이 저지른 5·18에 대한 왜곡과 증거물 훼손·조작 관련자 등도 찾아 책임을 묻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정부, 지자체에 ‘지방 공휴일’ 지정 권한 준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법정 기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할 수 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에 추가 보상액을 지급하는 절차도 마련한다. 정부는 3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방 공휴일에 관한 규정’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안’ 등 17건의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법정 기념일인 ‘4·3 희생자 추념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일각에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대했지만 지방 공휴일이 지역 주민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정부의 지방분권 기조와 맞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번 제정안은 지자체가 주민 의견을 반영해 제주도처럼 조례로 지방 공휴일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아무 날이나 지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정한 법정 기념일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지자체장은 지방 공휴일을 지정할 때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현재 법정 기념일은 2·28 민주운동 기념일(대구), 3·15 의거 기념일(마산),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광주)을 포함해 48개다. 이들도 공휴일로 지정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지방 공휴일은 해당 지자체 공무원에만 적용된다. 교육공무원이나 파견된 국가직 공무원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해당 지역 민간기업에선 노사 합의로 결정한다. 따라서 해당 공휴일이 ‘지방 공무원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편 정부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에게 추가 보상액을 지급하는 절차를 정한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도 의결했다. 앞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에게 군인연금법상 전사 보상 기준에 상응하는 보상금 지급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오는 17일 시행된다. 전사자 유족에게 당시 지급된 보상금과 현행 ‘군인연금법’상 전사자 보상금액과의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전사자 1인당 추가 보상액은 1억 4000만~1억 8000만원이다. 아울러 가축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산란계 한 마리당 사육 면적을 상향 조정하고, 다중이용업소 화재 대비 피난 유도선 등을 설치하는 안건도 의결됐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고 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 여사 별세···92세

    고 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 여사 별세···92세

    평생 독립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2일 별세했다. 92세. 유족 측은 지난 2일 오전 11시24분에 김희숙 여사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준하 선생님 아들 장호준 목사님이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여권을 돌려주세요”라는 청원이 등장하면서 위독한 상태임이 알려지기도 했다. 장호준 목사는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여권이 무효화되면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고인은 192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정주 신안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사제지간으로 만나서 1943년에 결혼했다. 이후 장준하 선생이 학도병으로 끌려가자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고인은 해방 후인 1946년 1월에 월남해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던 장준하 선생을 다시 만났다.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발행한 종합월간지인 ‘사상계’ 발행을 도우며 3남 2녀를 키웠다. 1967년 6월 제7대 총선 때는 옥중 출마한 장준하 선생을 대신해 유세에 나서며 장준하 선생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다.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등산하던 도중 사망했다. 유신독재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투쟁한 장준하 선생이 단순 실족 추락사로 처리되면서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고인은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안장된 경기 파주시 장준하 공원묘지에 합장된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4일 오전 8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6·13 지방선거, JP, 그리고 보수/안철현 경성대 정외과 교수

    [시론] 6·13 지방선거, JP, 그리고 보수/안철현 경성대 정외과 교수

    6·13 지방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열흘 후 김종필 전 총리가 타계했다. 지방선거 결과 보수정치 세력은 몰락했다. JP의 죽음은 그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JP를 보수의 원조라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보수의 핵심 가치를 반공과 경제성장으로 본다면 산업화를 시작했던 5·16의 중심에 JP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JP는 보수의 주류가 돼 보지는 못했다. 3공화국 초기를 제외하고 JP는 반JP파에 의해 항상 권력의 주변을 맴돌아야 했다. 박정희 사후에는 5공화국 신군부가 그를 강제 은퇴시켰고 민주화 이후 다시 돌아왔으나 충청권 대표로 소수파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그는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정부를, DJP 연합으로 김대중 정부를 만든 양면성의 킹메이커 역할로 만족해야 했다.그럼에도 JP를 보수의 원조라고 부를 이유가 또 있긴 하다. 한국 보수가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즉 정치하는 방식이 공명정대하지 못하게 된 상당 부분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 그는 쿠데타라는 불법적 방식으로 권력을 잡았고,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공작정치를 가능케 했으며, 공화당 창당 자금을 위한 정경유착의 배후였고 지역주의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도 그의 죽음을 보수의 몰락과 연결시키는 것은 크게 어색하지 않다. 3당 합당 이후 한국 보수정치의 주류는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만들었다. 지금 그들은 두 정부의 불법비리와 실정, 무능과 국정농단 등으로 인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성난 촛불민심은 행정권력 교체를 넘어서 지방권력까지 교체해 버렸다. TK 외 대부분 지역에서 의회와 단체장 모두를 민주당이 석권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상식까지 뛰어넘어 구집권 세력을 철저히 응징했고 대안 세력에게 전권을 준 셈이다. 만약 지금 총선이 치러진다면 입법권력까지 압도적으로 민주당에 주어질지 모른다.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국회 절반 가까이 차지한 자유한국당이라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까지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치 세력에 출구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다소 암울하다. 과거의 보수정당도 정치적 위기를 맞곤 했고, 비대위를 앞세워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궤멸적 타격을 입은 데다 새로운 깃발도 구심점도 없다. 받쳐 줄 사람도, 세력도 없는 비대위가 기본 정책을 바꾸고 현역 의원을 대폭 교체해야 한다고 나선다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신뢰받을 깃발이나 대체할 세력이 당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정당은 이제 사라질 것인가. 사실 보수의 위기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이미 제시되고 있었다. 우선 보수의 가치가 변해야 한다. 냉전적 반공과 양극화 심화의 성장정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평화를 지향하는 진정한 자유민주, 승자 독식을 견제하고 소외계층을 돌보는 따뜻한 보수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에서 쫓겨난 유승민이 공화주의를 강조하고 다닌 것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보수의 가치 실현을 위한 정치의 방식도 변해야 한다. 권력기관과 언론의 장악과 악용, 색깔론과 지역주의, 계파이익 정치와 정경유착 등의 부정적 방식이 아니라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식의 정치가 돼야 한다. 안철수가 처음에 주장했던 새 정치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이 결합한 바른미래당은 어쩌면 한국 보수의 새로운 대안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왜 지지율이 부진한 걸까. 유승민 혼자 알고 있는 것 같은 공화주의 깃발은 같은 당 의원들 마음조차 데우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본인의 정치 행보로 인해 이미 색깔이 바래 버렸다. 자유한국당이 따뜻하고 정정당당한 보수를 지향하며 자신의 기득권과 오랜 관행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바른미래당이 새로운 깃발과 세력들을 규합해 총선에 나설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둘 다 어려워 보인다. 만약 그들이 끝내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 국민들이 새로운 보수세력들을 정해 줄지도 모른다.
  • 탁현민 붙잡은 靑

    탁현민 붙잡은 靑

    청와대는 1일 탁현민(45)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사의를 반려했다. 탁 행정관이 지난달 30일 일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제 정말 나가도 될 때가 된 것 같다”며 공식화한 사의를 만류한 것이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임종석 비서실장이 탁 행정관에게 ‘가을에 남북 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가 많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일을 해 달라.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사의를 간곡하게 만류한 것”이라며 “(탁 행정관이) 동의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탁 행정관은 문자메시지에서 “애초 6개월만 약속하고 들어왔던 터라 예정보다 더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직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평양공연(4월 1·3일) 이후”라며 “(지난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부터 평양공연까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임종석) 비서실장이 사표를 반려하고 남북 정상회담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공연기획자로 ‘자유롭게’ 살아온 그는 평소 ‘공직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그는 사석에서 “2012년과 2017년 대통령을 위해 일했고, 그 책임감으로 시작했지만, 양복 입고 꼬박꼬박 출근하는 일이 내겐 맞지 않는 옷”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과거 저서의 여성 비하 발언에서 비롯된 ‘왜곡된 성의식’ 논란으로 야권 및 여성단체에서 사퇴 압박이 끊이지 않았고, ‘왕 행정관’으로 불리는 등 과도한 주목에 대한 부담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은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지 않은 불만 탓이라고 주장했지만, 탁 행정관은 “그(김종천 신임 비서관)는 청와대 안에서 유일하게 형이라고 부르는 사이이며 가장 적임자”라고 일축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탁현민 “이제 정말 나가도 될 때…예정보다 더 오래 있었다”

    탁현민 “이제 정말 나가도 될 때…예정보다 더 오래 있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30일 “이제 정말로 나가도 될 때가 된 것 같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탁 행정관은 이날 일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애초에 6개월만 약속하고 (청와대에) 들어왔던 터라 예정보다 더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사직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지난 평양 공연 이후”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부터 평양 공연까지로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임종석) 비서실장님이 사표를 반려하고 남북정상회담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저에 대한 인간적인 정리에 (청와대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굳이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선거법 위반 재판의 1심 결과도 사직을 결심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며 “100만원 이하의 벌금은 직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겠지만, 제게는 오히려 떠밀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라고 밝혔다. 앞서 탁 행정관은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지난 18일 1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또 “1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며 수많은 행사를 치러낸 의전비서관실의 동료들도 이제는 굳이 제가 없어도 충분히 대통령 행사의 기획과 연출을 잘 해내리라는 믿음도 있고, 무엇보다 새 의전비서관으로 임명된 김종천 비서관이 있어 더욱 그러한 믿음이 단단해졌다”고 밝혔다. 탁 행정관은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에 사의를 결심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그(김종천 의전비서관)는 제가 청와대 안에서 유일하게 형이라고 부르는 사이이며 가장 적임자”라며 “(해당 보도의) ‘신박’한 해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축했다. 탁 행정관은 전날 청와대 관계자가 ‘탁 행정관의 사표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데 대해 “저의 사직 의사가 아직 수리되지 않았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떠나고 싶었는데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인해 지난 1년 내내 화제가 되었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이렇게 시끄럽네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러 소회는 언젠가 밝힐 시간이 오리라 생각한다. 굳이 이말 저말 안 하고 조용히 지내려 한다”며 “허리디스크와 이명, 갑상선 치료가 먼저라…지나치게 많은 관심에 감사했다”고 밝혔다. 공연기획 전문가인 탁 행정관은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토크 콘서트 등 행사를 기획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서 근무하며 기념식과 회의 등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를 기획했다. 탁 행정관은 과거 저서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되면서 ‘왜곡된 성의식’ 논란에 휩싸였고, 야권 및 여성단체는 그동안 탁 행정관의 사퇴를 요구해 왔다. 앞서 탁 행정관은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맞지도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었고, 편치 않은 길을 너무 많이 걸었다”며 “‘잊혀질 영광’과 ‘사라질 자유’”라고 쓰며 사의를 시사했다. 이날 사의를 표명한 탁 행정관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탁현민 靑 행정관 사퇴하나

    탁현민 靑 행정관 사퇴하나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29일 사의 표명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글을 올렸다.탁 행정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망망대해 사진과 함께 “맞지도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었고 편치 않은 길을 너무 많이 걸었다, ‘잊혀질 영광’과 ‘사라질 자유’”라는 글을 올렸다. 직접적인 사의 표명은 없었지만 ‘잊혀질’, ‘사라질’이란 표현 때문에 그가 청와대를 떠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탁 행정관은 사표를 내지 않았다”면서 “전·현직 의전비서관에게도 어제오늘 사표 얘기를 꺼낸 적은 없다고 한다”고 밝혔다. 탁 행정관은 지난 18일 불법선거운동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당일에도 러시아 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무지개’라는 그림을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 조각배 한 척이 당장이라도 침몰할 듯 위태롭게 항해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일부에선 그가 급작스러운 심경변화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탁 행정관은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과거 저서로 문재인 정부 출범 초부터 구설에 올랐다. 외부에서 사퇴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탁 행정관을 내치지 않았다. 과거 행적을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며 탁 행정관을 대체할 만한 능력 있는 행사기획자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극찬이 쏟아진 축하 공연을 준비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비롯해 이전 정부와 달라진 감동 있는 행사를 기획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만으론 한계… 보완책 있어야”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만으론 한계… 보완책 있어야”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갇혀서는 안 되며 재정지출 확대, 사회안전망 강화, 민간 투자 등 다양한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오히려 과부하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평가와 과제’란 주제로 연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정책 제언들이 잇따랐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는 효과 반감시킬 것 참석자들은 대체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방향성에는 공감대를 이뤘다. 로버트 블레커 아메리카대 교수는 “최근 더욱 평등한 소득분배가 장기적으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이론과 경험적 증거로 입증됐다”면서 “하지만 기업이 임금상승 과정에서 노동절약형 기술혁신을 추진하면 고용에 타격을 줄 수 있으므로 재정정책과 공공투자 등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보완책을 같이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최저임금의 균형적 효과는 노동소득, 비용, 가격, 생산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도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없으면 의도한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은 소득분배 개선을 통해 추가 경제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라면서 “1차 분배(시장소득)와 2차 분배(가처분소득) 양쪽에서 정책개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 참석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이 수정될 것이란 말이 있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소득주도성장은 여전히 정부의 핵심정책 중 하나”라고 밝혔다. 지난 1년간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이후 보완정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부작용이 생겼고, 경기가 하락하면서 고용 부진으로 이어졌다”면서 “결국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이어졌는데, 이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입법,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자제, 연대임금 정책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3년 동안 55%를 올려서 1만원을 만든다는 것은 좀 가파르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낙수 효과는 여전히 중요하고 포기해선 안 된다”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실업보험, 근로장려세제를 지금보다 더 관대하게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업보험·근로장려세제 등 더 관대하게 운용을 이어진 토론에서 최경수 KDI 지식경제연구부장은 “임금주도 성장의 대표적 사례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한국과 일본 사례를 들 수 있다”면서 “한국은 제조업 임금이 낮아 임금 상승이 전반적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이었지만, 일본은 소비를 촉진하고 임금 불평등은 오히려 높이는 방향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은 고용증가 둔화와 소득감소에서 모두 아직 미미하다”면서 “제조업 구조조정 외에는 가계지출 증가세 둔화가 고용증가폭 축소의 주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외즐렘 오나란 영국 그리니치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고용 정책, 공공투자를 잘 활용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동시에 혁신, 성장,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썰전’ 마지막 방송에서 유시민 “문 대통령 좀 무서운 분”

    ‘썰전’ 마지막 방송에서 유시민 “문 대통령 좀 무서운 분”

    ‘썰전’의 유시민 작가가 고 김종필 전 총리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빈소에 조문하지 않기로 결정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좀 무서운 분 같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는 28일 방송을 끝으로 JTBC의 썰전에서 하차했다. 유 작가는 이날 “정부가 김종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결정을 내렸고,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며 “재밌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형준 교수는 “문 대통령은 유 작가와 비슷하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합하는데 양 측면에 기여를 한 분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평가해주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온당한 역할이다”고 말했다.이에 유시민은 갑자기 “문 대통령이 좀 무서운 분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 쪽에서는 선호하고 진보 쪽에서는 안 좋아한 정치인이 고인이 됐는데, 대통령으로서는 모든 국민들의 의견과 감정을 껴안으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기 지지층에 대해서는 말은 안 하지만 양해해달라고 한 것인데 약간 무섭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무서운 게 아니라 온당한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라며 “대통령이 어떻게 자기 지지층만 바라보고 국정을 운영하느냐”라고 반박했다. 유시민 작가의 썰전 하차와 관련해 박형준 교수는 “유시민이 없는 ‘썰전’이 상상이 안 된다. 나만 계속 나오는 것이 단팥 없는 찐빵이 될까봐 걱정이 된다. 유시민이 그동안 국민 교양을 넓히는 것에 많은 기여를 한 것 같다”면서도 “본인은 정치로부터 멀어진다고 하는데 난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이에 유시민 작가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달라”며 “내가 늘 맞는 비평을 할 수는 없었다. 세상과 정치를 보는 저의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비평을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비평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야박한 비평을 한 적도 있었고 후회한 일도 적지 않았다.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2~3주만 지나면 절 잊어버리실 것이다. 잊혀지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기 바란다”며 양해를 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맛·역사·문화 향기 만끽… ‘정도 천년’ 빛고을 관광객 몰린다

    맛·역사·문화 향기 만끽… ‘정도 천년’ 빛고을 관광객 몰린다

    2018년은 ‘전라도’로 명명한 지 천년이 되는 해다.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부터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광주, 전남북도 등 호남권 3개 시·도는 ‘정도 천년’을 기념해 올해를 ‘전라도 방문의 해’로 지정했다. 광주시는 도심 관광의 원년을 열겠다며 지역의 명소 투어를 비롯,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살린 테마관광개발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28일 광주시에 따르면 맛과 멋, 5·18 민주화운동과 역사문화 자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호남선 고속철(KTX)·수서발 고속철(SRT)의 개통 이후 꾸준히 늘고 있는 외지 방문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젊음의 광장으로 변신한 전통시장과 세계문화 플랫폼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권,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등 도심 곳곳이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전통과 젊음이 어우러진 시장 호남고속철(KTX)의 종착역인 광주송정역에 내리면 길 건너편에 ‘1913송정역시장’이란 입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이 되면 상가마다 노란 불빛이 켜지면서 정겨운 골목시장으로 변신한다. 1913년 매일시장으로 개장, 한때 광주권 물류 유통의 중심지였다. 산업화 이후 성쇠를 거듭하다가 최근엔 대형마트 등의 진출로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했다. 그러나 2016년 지자체와 상인들이 힘을 모아 시장에 문화예술과 ‘스토리’를 입히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2년 남짓 지난 요즘은 젊음과 전통이 어우러진 ‘명물 장터’로 거듭났다. 허름하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걷는 재미도 있지만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장 안에 들어서면 구수하게 스며드는 빵 굽는 냄새가 허기진 여행객의 침샘을 자극한다. 즉석에서 식빵을 구워내는 ‘또아’ 빵집엔 밤낮없이 손님들로 장사진이다. 초코식빵, 치즈식빵, 옥수수식빵 등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밀을 발효해 구워낸 빵은 구수한 맛과 쫄깃한 식감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골목 곳곳의 상점에서는 순대국밥, 인절미, 고로케, 호떡, 양갱, 김부각, 수제 식혜와 맥주 등 자연의 식재료에 정성을 더한 여러 가지 간식을 즐길 수 있다. 옛 도심권인 동구 대인시장 ‘별장 프로젝트’도 올해로 11년째 진행 중이다. 매년 3~12월 토요일 오후 7~11시 야시장이 열린다. 광주시는 시장 내 허름한 상가를 임대,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평갤러리와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서 거주하는 예술가와 상인이 협업을 통해 각종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올해는 다문화 가족으로 구성된 ‘드리머스’의 노래와 아프리카 타악그룹의 음악·댄스 등도 선보인다. 먹거리 가판대, 수공예 작가들의 공동 판매대, 창작 갤러리 등에 방문객이 넘쳐나면서 불야성을 이룬다. 같은 날, 대인시장과 이웃한 궁동 예술의 거리에서도 아트마켓과 길거리 공연이 이어진다. 이곳과 3㎞쯤 떨어진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펼쳐지는 ‘밤기차 야시장’이 연인들의 새로운 데이트코스로 각광받고 있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권 올해로 3년째인 ‘프린지 페스티벌’은 국내의 대표적인 도심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금남로·충장로와 이웃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주변 곳곳에서 매년 4~11월 주말마다 펼쳐진다. 지난 22~23일 전당 앞 5·18민주광장 일대에서는 일본·중국·태국·홍콩 등 6개국 예술가들이 참여한 ‘아시아 마임캠프’가 열려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광장에 설치된 12개 텐트에서는 국내외 마임 아티스트 22개 팀 34명이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관광앱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외지 관람객도 크게 늘고 있다. 축제는 인형극, 매직 서커스, 어쿠스틱 음악, 힙합, 퓨전국악, 난타공연, 마술쇼, 색소폰 연주 등 모든 장르를 망라한다. 행사가 시작되면 평균 1만 5000여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등 올해만 지난달 현재 13만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D-1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다음달 7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인근 대인·남광주야시장 등 도심 곳곳에서는 프린지 페스티벌과 동아시아 문화도시공연, 하늘마당 평화버스킹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이어진다. 이와 별도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찾아오는 ‘ACC 브런치 콘서트’도 인기다. 지난 27일 오전 11시 ‘트리오 오원과 함께하는 클래식 오딧세이 스토리’가 열려 실내악의 진수를 보여 줬다. ACC 문화창조원에서는 ‘파킹찬스 2010-2018’(PARKing CHANce)과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를 만날 수 있다. 다음달 8일까지 진행되는 ‘파킹찬스’는 영화감독 박찬욱과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형제가 협업한 프로젝트로 신작 단편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사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는 전 세계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주요 이슈들에 대해 반응하고 기록한 150여점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이 전시는 퐁피두센터,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인도 키란나다르 미술관 등 모두 15개국 35개 기관의 협조로 이뤄졌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아시아컬처마켓’은 30일까지 하늘마당과 플라자브릿지에서 매주 금·토요일 오후 5시 진행된다.●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천을 건너 1㎞ 남짓 거리의 남구 양림동엔 근대역사문화마을이 있다. 1900년대 초부터 기독교를 통해 서양 문물이 전해진 흔적과 건물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미국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와 선교 활동을 했던 곳이다. 수피아여중고, 기독간호대학, 오웬기념각, 호남신학대학, 윌슨 선교사 사택, 이장우 가옥 등이다. 다형 김현승의 시비와 연안송·팔로군행진곡 등을 작곡해 현대 중국의 악성으로 불리는 광주 출신 정율성의 생가도 만날 수 있다. 양림동커뮤니티센터 인근 펭귄마을도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오래된 주택가인 이 마을에서 빈집이 불탄 뒤 쓰레기장이 되자 한 주민이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가꾼 게 시작이었다. 이주하는 이들이 두고 떠난 옛 물건들을 골목에 하나둘 전시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펭귄이라는 이름도 다리가 불편한 연로한 주민들이 걷는 모습이 펭귄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골목길 곳곳에는 멈춰버린 시계, 신발 등 각종 생활용품, 잡동사니로 꾸며져 있다. 주말이면 골목길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과 친구, 연인들로 북적거린다.●무등산 시가문화권과 5·18묘지 무등산은 201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5년 만에 2000여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최근 집계를 발표했다. 정상부의 서석대·입석대 등 무등산권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산자락인 북구 충효동과 전남 담양 남면 일대엔 조선조 시가문학을 탄생시킨 누정이 즐비하다. 조선조 대표적 정원으로 꼽히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풍암정 등 과거 시인과 묵객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이들 가사문화유적지에서 서남쪽으로 차량으로 20여분 거리에는 국립5·18민주묘지가 있다. 매년 5·18 때 기념식이 TV 등으로 생중계되는 묘지엔 5·18 당시 희생자의 무덤과 유영봉안소 등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각종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광주시는 ‘전라도 방문의 해’와 휴가철을 맞아 다음달 광주송정역~터미널~아시아문화전당~광주호생태공원(무등산시가문화권)~국립5·18민주묘지 등을 둘러보는 순환형 투어버스를 운행한다. 도심권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대인야시장~남광주밤기차시장~동명동 카페거리를 오가는 테마형 순환버스도 운영한다. 호남권 3개 시·도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모두 4600억원을 들여 ▲전라도 이미지 개선 ▲전라도 천년 문화관광 활성화 ▲문화유산 복원 ▲랜드마크 조성 등 전라도 정도 천년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미얀마로 가는 길/이석우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미얀마로 가는 길/이석우 국제부 선임기자

    양곤의 밤은 2014년 6월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와 다름없었다. 전기가 끊긴 듯 희미하고 침침한 밤거리, 물 고인 큰 길 가의 웅덩이와 여기저기 파인 도로 포장들….4년 전 미얀마의 경제 수도 양곤은 기대와 활력이 넘쳤다. 머지않아 베트남을 추월하는 ‘포스트 차이나’의 핵심 경제체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한껏 받고 있었다. ‘미얀마식 사회주의’란 옛 체제를 벗어던지고 40년 전 중국이나, 20년 전 베트남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의 빚장을 열고 질주할 것이란 기대로 전 세계의 뜨거운 구애의 시선을 받을 때였다. 그사이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16년 첫 순수 민간 정권을 출범시키며, 50여년의 군부 통치시대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지난 2년여 동안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성장률을 웃도는 인플레와 정책 혼란 속에 투자 심리는 위축됐고, 무디스 등 투자평가사들은 투자 등급의 부여조차 유보한 채 관망 중이다. 민간정부 출범에도 ‘시간이 멈춘 나라’의 시계는 작동하지 않는 듯 보였다. 국제기구인 한·아세안센터 주관으로 지난 19, 20일 양곤을 방문한 한국투자사절단 가운데 일부 기업인들도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임금 상승, 인력 충원 곤란 등 투자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베트남에서 생산기지 이전을 위해 대체지를 물색하러 왔다는 한 부품 제조업체 대표는 “미래의 땅은 틀림없지만, 투자 여건은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몇몇 봉제업체 경영자들도 “전력 보급률이 30%에 그치고, 인프라는 열악한데 부동산 가격과 물가는 베트남보다 높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한 양곤 상주 법인장은 “베트남도 체제전환의 짧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면서 “미얀마의 과도기는 베트남보다 훨씬 짧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양곤에서 성공한 한국음식점 체인으로 꼽히는 서라벌의 김주환 대표는 “열악한 투자환경을 기회로 봤다”면서 “투자환경이 정비되면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설 자리를 찾기 힘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양곤과 수도 네피도에서 만난 미얀마 정부의 최고위층들도 열악한 투자 환경 개선과 투자 유치 확대에 ‘전과 달리’ 부심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21일 이혁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을 개별 접견했던 상업부·복지부·관광부 등 3개 부처 장관과 투자청 측의 태도에서도 물신 묻어났다. 이들은 “베트남처럼 미얀마 정부도 한국 기업에 특별 우대 정책 등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 사무총장의 권유에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4월 새 투자법에 이어 오는 8월 현지 기업에 대한 외국인 합작 지분을 인정하는 신(新)회사법도 시행되는 등 외국 투자 유치 확대와 경제 활성화를 겨냥한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앞으로 또 4년 뒤 양곤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폐쇄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하다 이제 세계를 향해 빗장을 열고 본격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미얀마는 내일의 북한일 수도 있다.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이 나라의 안간힘과 몸부림은 성장 한계의 벽을 마주한 우리에게 그냥 넘길 수 없는 기회, 함께 넘어야 할 도전들을 던져 놓고 있었다. jun88@seoul.co.kr
  • 영욕의 2인자, 고향 부인 옆에 영면하다

    영욕의 2인자, 고향 부인 옆에 영면하다

    전·현직 정치인 등 250여명 참석 이한동 “자유의 오늘 있게 한 분” 화장 후 부여 가족묘원에 안장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다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7일 그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에 안장됐다. 이곳은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가 2015년 잠든 곳이다. 가족묘원으로 떠나기 전 김 전 총리는 모교인 충남 공주고등학교에서 밴드부의 교가 연주 속에 동문과 주민 등 1000여명으로부터 마지막 인사를 받았다. 가족묘원에서는 김 전 총리를 따랐던 많은 후배 정치인들과 전·현직 부여군수, 종친회원 등 수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식이 열렸다. ‘영원한 2인자’로 불리는 그의 삶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지만 안장식에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총리는 항상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셨던 분”이라며 “그야말로 처음과 끝이 같은 분이었다”며 “생전에 ‘소이부답’을 언급하셨듯 상대방이 기분 나쁜 말과 행동을 해도 항상 웃음으로 대신하던 모습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 전 총리의 유골함은 사각형 돌 정자의 지붕 아래 가로세로 1.5m 안팎의 사각 석조함에 안치됐다. 석조함에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김 전 총리 아내의 유골함이 들어 있다. 김 전 총리는 생전에 부인 곁에 잠들고 싶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은 앞서 아산병원에서 열렸다. 영결식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한국당 정우택·정진석·안상수 의원 등 2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장례위원장인 이 전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김종필 총재는 우리가 자유와 민주를 만끽하고 있는 ‘오늘’을 있게 한 분”이라며 “산업화의 기반 위에 민주화가 싹트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아들인 나카소네 히로부미 참의원이 대독한 조사에서 “전후 혼란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조국이 부흥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책을 맡으시며 한시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실로 대한민국과 행보를 같이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민선 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개발 중심 벗어나 생활구정 초점… 살고 싶은 중구 만들 것”

    [민선 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개발 중심 벗어나 생활구정 초점… 살고 싶은 중구 만들 것”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당선자는 지난 26일 “중구는 마천루가 곳곳에 솟아 있고 재정자립도 2위인 부자 도시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삶의 질이 보잘것없어서 박탈감이 크다”면서 “기존의 개발 중심이 아닌 주거, 교육, 문화, 복지 등에 초점을 맞춘 생활구정으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중구는 사실상 15년 만에 정권교체인데. -선거 때 여당 구청장이 중구 발전의 적임자라는 말씀을 계속 드렸다. 이번에는 여당에 기대를 해 주신 것 같다.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번영 정책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발을 맞춰서 중구 발전을 이뤄 달라는 구민들의 바람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 구정 방향의 일대 변화를 통해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 →구정 변화의 방향은. -다른 구들은 이미 생활구정으로 주민 삶의 질을 챙기는데 중구는 관료 행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주요 사업도 청사 리모델링 등 개발 사업에 치중돼 있다. 실질적으로 구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주거, 교육, 문화, 복지 분야에 대한 지원이 취약하다. 명동, 동대문, 남대문 등 중구 상당수 지역에서 일하는 젊은 경제 인구는 비싼 집값 때문에 중구에서 살지 못하고, 중년층은 자녀 교육에 취약하다며 떠나가거나 떠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중구 인구는 2000년 14만명에서 올해 10여만명으로 서울 감소율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 중구민을 위한 중구, 살기 좋은 중구, 일하기 좋은 중구를 목표 삼아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학생운동 시절이나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에도 삶의 질을 고민했다. 독재 타도뿐 아니라 학생의 생활권, 학습권에 관심을 가졌고 보좌관 때는 남들이 이동통신 관련 기술표준 방식을 놓고 싸울 때 통신요금 인하에 주목했다. 중앙정치가 가치와 이념을 두고 다투는 곳이라면 구는 선택된 가치를 삶의 질로 구체화하는 곳이다. 구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돈을 잘 벌어오고, 적재적소에 지출하는 구정을 펴겠다.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는데. -구의 수입에는 세금 말고도 중앙정부와 서울시로부터 받는 예산이 있다. 중구가 받는 특별교부금, 지역발전특별회계 보조금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확보하고, 재정 구조를 혁파해 사업비를 연간 500억원 추가 확보하겠다. 중구가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정부·서울시에서 확보한 특별교부세(302억원)와 지역발전 특별회계 보조금(315억원)은 서울 25개 구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할 때 당시 비서실장인 문 대통령 및 현 정부 인사들과 쌓은 인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박 시장이 처음 선거를 치를 때 조직특보를 맡은 바 있어 추가 예산 확보에 자신 있다. →예산을 주로 어디에 쓸 것인가. -중구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가 많다. 그만큼 시설이 노후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설이 낡았을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률도 낮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중구의 낮은 대학 진학률 때문에 다른 데로 이사를 고민하는 인구가 많다. 이에 따라 교육지원금을 지금의 두 배 이상인 연간 100억원대를 확보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명문 중·고등학교를 육성하겠다. 진학 문제뿐만 아니라 취업까지 전반적인 진로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중구교육연구원도 설립하겠다. 이 같은 교육 예산뿐만 아니라 중구에는 봉제, 섬유, 인쇄, 조명, 도기, 전통시장 등 지역특화 산업이 많은 만큼 이들을 지원하는 예산도 강화하겠다. 이들 소상공인이 돈을 잘 벌어야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구의 세입도 증가한다. →중점 추진 과제는. -서울 25개 구 중 중구의 가구별 평균 소득이 300만원대로 가장 낮다. 중구 소재 36개의 매출액 1조원 이상 기업인 ‘1조 클럽’과 공생협약을 통해 지역투자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 업종별 맞춤형 지원조례로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영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공영주차장 주차비 할인도 추진하겠다. →현안 중 시급한 문제는. -중구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남산 고도 제한 완화 문제이다. 과거 정부가 일방적이고 일괄적으로 정한 남산 고도 제한 때문에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간 재산권을 침해받은 분들이 있다. 성북, 종로, 용산, 중구, 은평 등 비슷한 문제를 가진 자치구들과 함께 합리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해 박 시장의 결단을 이끌어 내겠다.→권력교체를 이루면서 직원들 사이에 급격한 인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데. -구청 인사는 7월과 12월에 있는데 취임 후에 예정된 인사는 진행한다. 다만 인사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구청장이 취임한 만큼 구청 내 새로운 사기와 분위기 진작을 위한 정도의 인사를 하겠다. →준비위(인수위)를 꾸려 업무 보고를 받아 본 소감은. -대부분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문제는 구정 목표 결과가 실현되도록 힘이 모이느냐에 있다. 관료 행정 대신 주민이 참여하는 중구민을 위한 중구, 주거 교육 복지 등 삶의 질 향상이 있는 살기 좋은 중구, 특화 산업 및 전통시장 육성이 강화된 일하기 좋은 중구 등 구정 비전에 맞게 인력과 예산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재배정하겠다. →선거 때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서울 25개 구 가운데 전통시장이 가장 많은 곳이 중구이다. 이 전통시장들은 물론 중구에 많은 전통 제조업 종사자와 영세 상인 모두 너무 힘들어하신다. 정부는 전통시장 살리기,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관련 정책과 예산을 내놓는데 현장에선 체감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부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도록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찾겠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서양호 당선자는 경선 때부터 盧대통령 도와… 정치평론가로 친숙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당선자는 지난 15년간 사실상 보수당 구청장 시대를 이어 온 중구에서 진보당 시대를 다시 열었다. 중구는 민선 1~3기 민주당 구청장, 민선 4기 한나라당 구청장 선출 이후 2010년 민선 5기 때 다시 민주당 구청장으로 바뀌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2011년 보궐선거가 치러지면서 큰 틀에서 10년 넘게 보수당 구청장 시대를 이어 왔다. 이번에 서 당선자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서 3선 연임에 도전한 최창식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정권교체를 이뤘다. 서 당선자는 정치평론가로 친숙한 정치인 출신이다. 숭실대 철학과(87학번)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몸담았으며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정계 입문한 뒤 일찌감치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쏟는 등 20여년간 현실정치에서 뛰어 왔다. 서 당선자는 “2001년 당시 대선을 1년 앞두고 당 주류는 이인제 의원을, 소장파들은 김근태 의원을 대선 후보로 지지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적임자라고 판단해 김희선 의원의 보좌관 신분을 유지한 채 노 대통령 경선 캠프에서 일을 도왔다”고 회고했다. 이를 계기로 노 대통령 당선 뒤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행정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청와대 정무수석실, 인사수석실 등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이후 국회에서 보좌관 등을 지냈으며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겸 정치평론가로 변신해 3년여간 신문 지면과 방송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구청장 도전을 결심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밀집돼 있는 중구를 구석구석 둘러본 뒤 펴낸 ‘길 위에서 만난 중구’로 지난 2월 출판기념회를 열었으며 이어 4월 전략공천을 받아 6·13 지방선거에서 전체 6만 5183표 가운데 51.3%인 3만 3479표를 얻어 당선됐다. 서울 25개 구청장 당선자 가운데 이창우 동작구청장 당선자, 오승록 노원구청장 당선자와 참여정부 시절 함께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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