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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정부, 권력기관 개혁 총력전…“차질없이 이행”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에 더욱 강하게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특권없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추진계획’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 총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은 권력기관의 민주화를 통해 특권 없는 공정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며 “공정하고, 특권이 없고, 인권이 보호되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국민 요구를 차질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이제는 정부가 검찰 개혁 ‘속도전’을 펴 권력기관 개혁을 완성해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도 이날 정 총리로부터 이같은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방안을 보고 받은 자리에서 “과거의 검찰은 잘못을 스스로 고쳐내지 못했기 때문에 특히 공수처는 매우 의미가 있다”면서 “국가 사정기관을 바로 세워야 하며 특히 검찰 개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검찰 개혁을 주문하며 힘을 실어줬다. 정 총리는 이날 검찰개혁 뿐 아니라 경찰개혁과 국정원 개혁 필요성까지 두루 언급했다. 모든 권력기관을 공정히 개혁하겠다는 점을 부각해 권력기관 개혁에 있어서도 ‘공정’ 키워드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선 가운데 임기 초반 공언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을 완전히 실현시킴으로써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포석도 함께 깔려있다. 정 총리는 고위공직자와 관련된 범죄 수사 전담 독립 기구인 공수처를 7월 중 차질없이 설치하는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총리 소속으로 공수처 설립준비단을 설치하고 범정부적으로 공수처 출범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검경 수사권 조정 후속추진단을 설치해 수사준칙과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 등에 대한 하위법령을 정비하고 검경 조직·인력 개편 등도 조정하기로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에게 모든 사건에 대한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정 총리 “6·25 참전용사 헌신 잊지 않고 보답해야”

    정세균 국무총리는 31일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6·25전쟁과 관련해 “참전 용사의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발발 70년이 된 6·25전쟁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우리에게 또 다른 시련을 겪게 한 아픈 역사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모든 것이 파괴된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민주화를 일궈냈다”며 “지금의 위대한 대한민국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 냈던 참전용사님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지역·세대·계층을 아우르는 포용과 화합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며 “22개 유엔 참전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번영의 비전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이날 자신이 공동 위원장을 맡은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 심의·의결 기구인 위원회가 출범한 것과 관련해 “이런 역사적인 과제 실현을 위해서는 위원회가 중심이 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핵심 사업 추진에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며 “위원들이 경험과 지혜를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검찰 ‘5·18 비방·왜곡’ 지만원 징역 4년 구형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 등을 비방한 보수 논객 지만원씨에 대해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태호 판사 심리로 열린 지씨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사건의 속행 공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5·18 당시 사진에 등장한 시민을 ‘광주에서 활동한 북한특수군’이라는 의미의 ‘광수’라고 지칭하며 비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광주 시민으로 확인됐다. 지씨는 또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존인물인 운전사 고 김사복씨를 ‘빨갱이’라고 허위사실을 적시, 김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씨는 ‘광주시민이 광주교도소를 공격한 적이 없다’고 한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발언이 결국 북한군의 개입을 증언한 것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은 윤 전 시장이 고소를 취하함에 따라 이날 공소기각 선고를 요청했다. 또 지씨의 글을 인터넷신문에 올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손모씨에 대해선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지씨에 대한 선고 기일은 2월 13일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시, 서울시와 5·18 40주년 기념사업 추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시와 서울시가 손잡고 5월 정신 전국화를 위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광주시는 오는 2월 7일 서울시와 광주시청 비즈니스룸에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협력사업 추진 협약식을 갖는다고 30일 밝혔다. 협약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용섭 광주시장,5·18 3단체와 기념행사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협약에는 기념행사 외에 민주 인권 평화 우수 정책,광주비엔날레 특별전,문화·예술 공연 등 교류를 추진하는 내용이 담긴다. 광주시와 서울시는 또 다음달 20일 서울시청에서 제40주년 5·18행사위원회 출범식을 열기로 했다. 광주비엔날레와 서울시립미술관의 5·18 특별전,서울 시민 518명 광주 역사 탐방,두 지역 시립예술단체 간 공연 등 예술행사도 추진한다. 서울시는 5·18 기념주간인 5월 14∼21일에 서울광장 등에서 국내외 인사 초청 강연과 토론회,민주 인권 평화 도시 선언 전국대회,‘서울의 봄,광주의 빛 서울 문화축제’ 등을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 관계자는 “두 도시 간 협력사업을 통해 40주년을 맞은 5·18 정신의 전국화,세계화를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김두관, 양산을 출마선언 “지역주의 극복 불쏘시개 되겠다”

    김두관, 양산을 출마선언 “지역주의 극복 불쏘시개 되겠다”

    “지난 6년 지지해준 김포시민께 죄송”“민주, PK에서 선전해야 국정 뒷받침”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4·15 총선 경남 양산을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다시 한번 지역주의의 십자가를 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민생과 개혁을 위한 국회, 지역주의 극복과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제 일신의 편안함을 버리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김 의원은 “‘개혁과 민생의 승리냐, 꼼수와 권력욕의 승리냐’는 경남·부산·울산 선거에 달려있고 그 분수령은 낙동강 전투”라며 “낙동강 전투의 승리만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싸워 온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님과 수많은 분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고 50년 민주화의 역사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일당 독점을 부활시키려는 자유한국당의 꼼수에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며 “불쏘시개가 돼 우리 정치를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저를 태우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 6년 따뜻하게 저를 지지해주신 김포시민께 너무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10년 전 저에게 도지사를 맡겨주신 양산시민, 경남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지지와 성원을 부탁한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경남의 요청이 있어 이해찬 대표에게 ‘당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전략적 지역으로 가서 출마하겠다’고 했는데 이 대표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라고 했다”며 “당이 양산을로 출마하도록 해줬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그는 부산·울산·경남 전체 의석 40석 중 10석을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한 뒤 “이번 총선에서는 의석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경남 16개 지역구 중에는 7~8곳, 절반 정도는 해볼 만한 정도의 지표가 나오니 좋은 성과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경남·부산·울산을 통틀어 일컫는 ‘PK 지역’은 수도권과 유일하게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며 “김경수 경남지사의 ‘메가시티’ 구상 성공으로 동남권의 새로운 발전전략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국정을 책임지는 민주당이 PK에서 선전해야만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2년 경남지사 중도 사퇴로 도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지적에는 “조금이라도 속죄하려는 마음으로 경남 주요 현안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심부름을 했다”며 “다시 돌아가는 것은 도민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작품으로 존재 이유 말하는 남산예술센터

    작품으로 존재 이유 말하는 남산예술센터

    부동산 계약 문제로 운영 위기 놓여 예년보다 3~5편 줄여 9월까지 편성 5·18 민주화운동·성소수자 등 소재 작품성·사회성 짙은 연극 무대 올려“제가 연극이라는 것을 접한 이후로 가장 많이 드나든 극장이 이곳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곳도 이곳이죠. 이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젊은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내줬다는 것도, 또 여기서 많은 창작자가 나왔다는 것 또한 이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를 만든 임성현 연출은 굳은 표정으로 남산예술센터를 반추했다. 해마다 1월이면 공연계는 그해 1년간 공연할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행사로 분주하다. ‘시즌 프로그램 발표회’로 불리는 이 행사는 단순히 어떤 단체가 어떤 공연을 한다는 성격을 넘어, 해당 예술단체가 추구하는 예술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열린 남산예술센터의 2020시즌 프로그램 발표회는 웃음기 없이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한국 창작 연극의 산실이면서도 부동산 임대차 계약 문제로 당장 올 연말 극장 존폐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남산예술센터는 한국전쟁 후 냉전시대 한미 양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현 서울예술대학교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소유로 1964년 4월 개관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극장을 동랑예술원으로부터 임대해 공공극장으로 활용해왔는데, 동랑예술원 측은 올해 12월을 끝으로 서울시에 임대차 계약 종료를 통보한 상태다. 이런 탓에 당장 올해 시즌 프로그램은 8~10편이던 예년보다 준 5편으로 구성됐다. 4월 창작 신작 ‘왕서개 이야기’(4월 15~26일)를 시작으로 한강 소설가의 ‘소년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 ‘휴먼 푸가’(5월 13~24일)와 폴란드 극단의 ‘더 보이 이즈 커밍’(5월 29~31일),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6월 24일~7월 5일),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9월 2~13일)를 올린다.우연 극장장은 다섯 작품을 소개하면서 “올해 12월 모든 부동산 계약이 종료됨에도 현재까지 연장과 관련한 어떠한 답신도 받지 못했다”면서 “창작자에게 불안정한 환경에서 작품 올리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우선 공연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9월까지 5편만 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장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올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큰 테마를 ‘1980년 5월 광주,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들’로 잡았다.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극장 존폐가 자본 논리에 내몰린 가운데 작품성과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극장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배요섭 연출의 ‘휴먼 푸가’와 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의 ‘더 보이 이즈 커밍’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작품으로 나란히 5월 남산 무대에 오른다. 김도영 작가와 이준우 연출은 1950년대 일본에서 사는 중국인 왕서개의 삶을 담은 ‘왕서개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진실을 묻는 여정을 보여준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기독교와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도발적으로 다룬다. 임 연출은 작품에서 교회 예배라는 형식을 빌려 주류 기독교가 배척해온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그릴 예정이다. 스스로를 ‘독실한 현직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한 그는 “타락한 기독교의 부활을 위해 이 연극을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남산예술센터는 젊은 창작자에게 많은 기회를 준 곳입니다. 제 작품이 이 극장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극장의 대부흥을 다시 이뤘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담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계속 부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5·18 행불자 찾아라… 옛 광주교도소 발굴 조사

    5·18 행불자 찾아라… 옛 광주교도소 발굴 조사

    28일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 인근 텃밭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발굴조사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5·18기념재단 등은 옛 교도소 무연고자 묘지 내 신원 미상 유골 발굴을 계기로 이날 개토제를 열고 다음달 1일까지 조사를 이어 간다. 발굴은 2017년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발굴조사(1~4차)를 한 대한문화재연구원이 문화재 출토 방식으로 진행한다. 굴착기로 표토층을 걷어 낸 뒤 암매장 흔적을 살펴보고 정황이 발견되면 검찰과 경찰 등 관계기관에 알려 후속 조처를 하기로 했다. 광주 연합뉴스
  • 5·18 행불자 찾아라… 옛 광주교도소 발굴 조사

    5·18 행불자 찾아라… 옛 광주교도소 발굴 조사

    28일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 인근 텃밭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발굴조사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5·18기념재단 등은 옛 교도소 무연고자 묘지 내 신원 미상 유골 발굴을 계기로 이날 개토제를 열고 다음달 1일까지 조사를 이어 간다. 발굴은 2017년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발굴조사(1~4차)를 한 대한문화재연구원이 문화재 출토 방식으로 진행한다. 굴착기로 표토층을 걷어 낸 뒤 암매장 흔적을 살펴보고 정황이 발견되면 검찰과 경찰 등 관계기관에 알려 후속 조처를 하기로 했다. 광주 연합뉴스
  •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 서거 15주기…‘재평가’ 이뤄질까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 서거 15주기…‘재평가’ 이뤄질까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 당시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온정적 태도를 보였다가 실각한 자오쯔양(1919∼2005)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됐다. 가족과 지지자들은 지금도 그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27일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자오 전 총서기 서거 15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톈안먼 사태 관련단체 회원들이 베이징 창핑구의 민간 묘지 톈서우위안에서 추모 행사를 가졌다. 공안당국은 묘역 주변 경비를 대폭 강화하고 얼굴 인식 카메라를 설치했다. 자오 총서기의 차남 자오얼쥔은 “지난해 10월 이곳에 부친의 묘지를 처음 조성했을 때와 비교해 (위치나 배열 등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묘지는 나무와 울타리 등으로 시야가 가려져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찾지 못하게 돼 있다. 2016년 폐간된 진보성향 월간지 ‘옌황춘추’의 부편집장 왕옌쥔은 “아직도 (중국에는) 자오쯔양을 제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다”면서 “그의 묘지는 외부에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오쯔양과 친분이 두터웠던 톈지윈 전 국무원 부총리가 그를 추모하고자 묘지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다가 불발됐다고 홍콩 매체들이 전했다. 톈 전 부총리는 자오 총서기 서거 2년 뒤인 2007년 옌황춘추에 “자오쯔양은 절약을 몸소 실천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톈안먼 사태 뒤 중국 언론이 자오 총서기의 공적을 기술한 첫 기사였다. 1989년 초까지만 해도 자오쯔양은 덩샤오핑(1904~1997)이 아끼던 후계자였다. 하지만 5월 톈안먼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자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군의 무력진압을 반대하고 시위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 보려다가 덩샤오핑의 눈 밖에 난 것이다. 그는 당 요직에서 축출됐다. 중국 당국은 다음달 4일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자오쯔양은 가택연금돼 자연인으로 지내다가 2005년 1월 17일 별세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사망 뒤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묘 지도자 구역에 안치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베이징 당국은 그의 묘지가 민주화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이를 막아왔다. 유족은 자오쯔양의 유골을 베이징 자택에 보관해 오다가 자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로 민간 묘역에 안장할 수 있었다. 당시 시 주석의 부친 시중신(1913~2002)과 자오쯔양이 절친한 관계였다는 점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베이징의 옛집에는 지금도 지지자와 추모객이 종종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 방송은 자오쯔양이 쓰던 옛집의 서재에 사진과 기록물, 소장품을 보관한 소규모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고 전했다. 2005년 1월 신화통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당과 인민 사업에 유익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1989년 정치적 풍파 속에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에 대한 긴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15년 환구시보는 “중국 당국은 자오쯔양 10주기에 어떤 평가도 내놓지 않았다. 침묵 역시 일종의 태도 표명”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자오쯔양의 딸 왕옌난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부친에 대한 정치적 복권이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은 다른 문제”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설날 아침에/김남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설날 아침에/김남주

    설날 아침에/김남주 눈이 내린다 싸락눈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뿌리뽑혀 이제는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허물어진 장독대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그릇에도 내리고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울고 날이 새고설날 아침이다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뭐하러 왔냐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이제 우리 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돈이며 명예 같은 것은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죄다 주고나이 마흔에 시집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우리 아우 덕종이한테는행여 주눅이 들지 않도록사랑의 노래나 하나 남겨두고 가렴 남주형, 경자년 새해 아침이에요. 그곳은 좀 살 만하신가요? 이곳은 여전해요.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은 내 몫 챙길 방법 찾느라 정신없어요. 민주화가 꿈이었던 80년대보다 더 황폐해요. 아니에요, 여기 너무 좋아요. 살 만해요. 덕종이도 장가갔구 말구요. 미안해요. 당신이 이루고 싶었던 세상, 아직은 아니지만 꼭 올 거예요. 세배 드려요. 곽재구 시인
  • ‘국회 1%’ 청년 의원 3명이 말하는 청년 정치

    ‘국회 1%’ 청년 의원 3명이 말하는 청년 정치

    #30대 #청년 #여성 #1%. 더불어민주당 정은혜(37), 자유한국당 신보라(37), 바른미래당 김수민(34) 의원의 공통점이다. 20대 국회의원 중 30대는 이들 셋뿐으로, 전체 300명 의원 중 1%다. 전체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20~30대 목소리를 대변하기에 턱없이 적은 숫자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청년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제2의 산나 마린(지난해 34세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된 핀란드 여성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을까. 세 의원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세대교체 아닌 공존 필요… 黨 육성한 청년 인재 많아야” ●청소년기부터 정치 참여하는 법 배워야 “대통령 언급이 없었더라면 민식이법이 과연 통과했을까요. 의원들은 이슈가 돼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국회에 저와 같은 아기 엄마가 10명만 있었더라면 함께 ‘으으’ 힘을 모을 수 있었을 거예요. 제가 발의한 스토킹 방지법 역시 다들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잘 안 된 이유는 필요성을 직접 느끼는 20~30대가 국회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17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 의원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청년 정치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 공존 차원에서 국회에는 70대도, 20대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18세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핀란드에서 34세 총리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2006년 청소년들이 지역사회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한 청소년기본법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우리는 중고교에서 근현대사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데,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형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청년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려면 “영입도 중요하지만 당에서 성장한 육성 인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21살에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가 입당한 뒤 유세 지원 율동팀부터 비상근·상근 부대변인, 대선캠프 지원, 비례대표 후보를 차례로 거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정당도 연예기획사 같은 양성 시스템 만들자 그는 “정당도 연예기획사처럼 청소년 때부터 정당 활동이나 교육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당직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청소년들이 훌륭한 정치인, 훈련받은 정치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좋은 정치인을 고르는 유권자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례대표 16번으로 출마했던 정 의원은 이수혁 전 의원이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지난해 10월 의원직을 승계했다. 17개월 된 딸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그는 100일 남짓한 의정 활동 중 남성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라떼파파법’ 등 12가지 생활법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이번 총선에) 다시 한번 도전해 이 법안들을 꼭 이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청년기본법 통과까지 4년… 또래 동료 없어 한계 느껴” ●당내 청년정치학교 운영… 인재 풀 늘고 있어 “국회의원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면서 통과되는 걸 지켜보고 싶었죠. 하지만 ‘반쪽 국회’에서 찬성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4년이란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신보라 의원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반발한 한국당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자신이 대표 발의한 청년기본법에 대해 ‘나 홀로’ 찬성 토론을 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충돌’ 등으로 얼룩진 20대 국회 막바지 본회의를 통과한 청년기본법은 2016년 5월 30일 20대 개원 첫날 한국당 1호 법안으로 발의됐다. 청년을 독립된 세대로 규정하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국가 책무를 정의한 법안이다. 초선 의원이 꺼내 든 법안을 ‘1호’로 확정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막상 발의된 이후 통과까지 4년이 걸렸다. 신 의원은 “국회에 30대 국회의원이 3명에 불과하고 힘을 합할 또래 동료 의원이 없어 겪은 한계가 많았다”면서 “청년기본법에 4년이 걸린 것은 국회에 청년 의제에 대한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을 못 미더워하는 시선에 대해 “우리 사회에 30대 스타트업 리더들도 많지 않으냐”며 “신선식품 배송 ‘마켓컬리’, 요가 브랜드 ‘젝시믹스’ 등을 이끈 것도 30대”라고 했다. ●일회성 영입 그치지 않고 양성 시스템 체계화를 신 의원은 향후 한국 정치에 청년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란 희망적 전망을 했다. 그는 “청년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저도 당의 청년정치학교를 3기수째 운영하고 있는데 역량 있는 인재 풀이 늘고 있다”면서 “일회성 영입에 그치지 않고 양성 시스템이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은 지난해 임신·출산을 경험했다. 정기적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영아 자녀에 한해 함께 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불허한 일이 화제가 됐다. 신 의원은 “청년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나라, 출산과 육아가 기쁨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서 국회 세대교체와 구성원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신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인천 미추홀갑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특정 직업군 국회 민의와 멀어… 시민 참여 정치 하고파”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환경 만들어 줘야 “국회의원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정치 자체가 목적인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소수 권력자의 정치가 아닌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어요.” 김수민 의원은 “‘직업 정치인’이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화 투사, 법조인, 교수, 보좌관 등 특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동질성 강한 국회를 유지해 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여성이나 2030세대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민의와도 동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청년 정치’라는 표현에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김 의원은 “지금까지 청년의 존재를 상수가 아닌 변수로 소모품 취급했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며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린 정치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안으로 ‘내일티켓’이라는 참여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어 정치 실험을 했다. 일상에서 문제점을 발견한 시민들이 법안과 정책을 고민하고 직접 발의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도였다. 그는 “저희 의원실에서 만들어진 법안 90%는 시민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저는 하나의 그릇이 됐을 뿐”이라고 했다. 일정 규모 이상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한 법안, 온라인 게임 내 지나친 성적 발언을 성희롱으로 포함하는 법안 등이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조국 사태’ 겪으며 21대는 청년이 주역 될 것 정치권에서 높아지는 ‘세대교체’ 바람이 21대 국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란 전망도 내놓았다. 김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여러 가지를 남기고 떠났지만, 그중 하나는 각 당의 청년 공천경쟁”이라며 “역설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기득권 불공정에 박탈감을 느낀 청년세대가 변화의 주역이 될 거란 기대다. 피선거권을 낮출 필요성도 언급했다. 11세에 입당해 19세에 국회의원이 된 구스타프 프리돌린 스웨덴 녹생당 대표 사례도 들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자 “각자가 원하는 내일의 모습은 다 다르기 때문에 제 말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면서 “많은 청년들이 국회에 입성해 새로운 길을 함께 개척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전직 대통령 가족들 총선 출사표…후광효과 볼까, 세습 비판 받을까

    전직 대통령 가족들 총선 출사표…후광효과 볼까, 세습 비판 받을까

    DJ 3남 김홍걸 전략지역 경기 고양 검토 노태우 장남 노재헌 한때 민주 입당설 전직 대통령 가족들이 하나둘 4·15 총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배운 정치적 소신을 잇는다는 해석이 있지만 단순히 ‘후광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결국 유권자들의 손에 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22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하며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곳은 자유한국당 박덕흠 의원의 지역구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 옥천군이 포함돼 민주당에서는 험지로 분류된다. 그는 입당 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자신의 결정이 “수많은 이들이 따르려는 어르신의 큰 정치와 뜻을 이어 가는 큰 길”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도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밝혔다. 호남 출마를 노렸지만 전략공천지역이자 DJ의 옛 사저가 있던 경기 고양 출마가 검토되고 있다. 김 상임의장은 통화에서 “당에서 (지역을) 정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는 한때 입당설이 나왔지만 민주당에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문을 내면서 이야기가 정리된 상태다. 당 관계자는 “일각에서 영입을 주장했지만 지도부와 공유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가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국내외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들은 선대의 정치적 유산을 보존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들 사이 구심점 역할을 주로 한다. 노 변호사의 경우처럼 아버지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대신 반성하고 화해의 장을 여는 일도 가능하다. 노 변호사는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에게 공개 사과를 하는 등의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가족이 훌륭한 정치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국민의 바람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면 전직 대통령에게 폐를 끼친다”고 말했다. 이 역시 ‘정치 세습’일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홀로서기’를 강조하지만 결국 선대의 대통령이 쌓은 기반에 기대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 부자의 지역구 세습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런 인식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文대통령이 선택한 13편 영화에 담긴 뜻은?

    文대통령이 선택한 13편 영화에 담긴 뜻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카트’ ‘변호인’ ‘국제시장(2014)’ ‘암살’ ‘연평해전(2015)’ ‘판도라(2016)’ ‘재심’ ‘택시운전사’ ‘미씽: 사라진 여자(2017)’ ‘1987(2018)’ ‘기생충(2019)’ ‘천문(2020)….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킬링타임용 영화’란 없다. 누구와 어떤 영화를 볼지,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낼 지까지 정교하게 기획된다. 2012년말 대선캠페인 당시 문재인 후보가 ‘광해(추창민 감독)’를 보고 눈물을 닦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지금도 회자된다. 영화가 끝난 뒤 5분 넘게 일어나지 못했던 문 후보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오늘은 말 못 하겠다. 감명 깊게 봤는데 눈물이 많아져 갖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페이스북에 “목례를 올리며 예를 취하는 허균에게 떠나는 배에서 손 흔들며 웃던 하선. 아마도 그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남들 보는 앞에서 수습 못 할 정도로 이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네요”라고 평을 남겼다. 그렇게 광해는 ‘문재인의 영화’로 각인됐다.●‘문재인=세종, 장영실=조국’? 설연휴 직전 주말인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천문: 하늘에 묻는다(허준호 감독)’를 관람했다. ‘천문’은 표면적으로는 세종대왕(한석규)과 신분사회의 벽을 넘어 관노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종3품까지 오른 천재 과학자 장영실(최민식)을 다뤘다. 청와대는 ‘천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실력 있는 인재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인정·대우받는 사회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알리고, 한국적 소재를 영화화해 새해 첫 100만 관객을 돌파한 우수한 작품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명나라와 명을 추종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대부 세력과 각을 세우며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세종대왕을 문 대통령으로, 개혁에 저항하는 사대부에 의해 끝내 희생되는 것으로 묘사된 장영실을 조국 전 장관에 빗대어 해석한 비평이 영화 개봉 이후 SNS(소셜네트워크) 등에서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천문’ 관람에 대한 다른 해석도 나온다. 장편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촬영을 마치기까지 적어도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국 정국’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 하지만 사대부를 대표하는 영의정(신구)이 세종을 압박하면서 “(사대부에게 위협이 되는)한글 창제를 포기하면 장영실을 살려드리겠다”는 영화 대사에서 조 전 장관의 지지자 등은 그런 컨텍스트를 읽어낸 셈이다. 실제 ‘천문’을 본 문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년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을 토로한 점에서 미뤄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2014년 이후 1년에 두편 꼴… 키워드는 메시지·눈물 과거 대선 유세를 하면서 “매달 한 번씩 영화나 연극 등을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던 문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입문한 뒤 관람이 확인된 영화만 13편에 이른다. 2014년 이후로 국한시키면 1년에 두 편꼴이다. 2014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던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을 관람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같은 해 11월, 참여정부 당시 이랜드 파업 사태를 다룬 ‘카트’(부지영 감독)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는 잊을 수 없는 상처”라며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어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자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사용자들이 사내 하청 등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서민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2016년 12월 원전 재난을 다룬 ‘판도라(박정우 감독)’를 봤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다”면서 “탈핵·탈원전 국가로 만들어나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등은 “영화 하나 보고 탈원전 정책을 폈다”며 두고두고 공격 소재로 삼았다. 사실 관계는 다르다. 문 대통령은 18대 대선 때도 ▲신규원전 백지화 ▲수명종료 원전 가동 중단 등 탈원전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20대 대선을 앞둔 2017년 2월에는 살인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을 다룬 ‘재심(김태윤 감독)’을 봤다. 무대에 올라 간 문 대통령은 “과거 변호사를 할 때도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제대로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졌다”고 했다. 인혁당 유족들이 함께 했다. ●‘국뽕’ ‘보수색채’ 영화도 관람 꼭 진보진영이나 지지자들이 공감할 만한 영화만 본 것은 아니다. ‘국제시장’이나 ‘연평해전’ 같은 의외의 선택도 있었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화 속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을 언급하며 애국심을 강조했던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을 관람한 문 대통령은 “영화가 제 개인사(6·25때 흥남 철수작전으로 월남한 실향민·부산 등)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보수적인 영화라든지 그런 해석은 당치 않은 것 같다.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 같은 장면이 있지만 그건 시대상이었다”고 했다. 이듬해 ‘연평해전(김학순 감독)’을 관람한 뒤에는 “장병들의 숭고한 목숨과 피로 우리 영토가 지켜졌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희생 없이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보수와 중도층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017년 8월 취임 후 첫 영화로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며 “아직까지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으며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강조했다. 같은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미씽: 사라진 여자(이언희 감독)’를 봤다. 문 대통령은 “‘사라진 여자’라는 제목도 이중적인 뜻이 있다고 느꼈는데, 실제적으론 (극중) 한매가 사라진 것인데, 의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아주 소외되고 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의미도 담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8년 1월에는 6월 민주항쟁을 다룬 ‘1987(장준환 감독)’을 보고 또한번 눈물을 흘렸다. 문 대통령은 “가장 마음에 울림이 컸던 대사가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 시기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였다”면서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고 박종철 열사의 형인 박종부 씨 등이 함께했다.●역대 대통령의 영화 역대 대통령이 ‘직관’한 영화와 감상평을 보면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3년 5월 청와대 춘추관으로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명곤·오정해 씨를 초청해 ‘서편제’를 봤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의 극장행은 상상하기 어렵던 시절. YS는 영화를 본 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되겠다. 문화대국으로 가는 것도 신한국건설의 하나”라고 했다.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YS가 서편제를 본 두 달 뒤쯤 임 감독과 오씨, 박지원 당시 대변인 등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DJ는 “서편제가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한은 원한이나 절망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어내려는 몸부림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도 중국화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한 때문이었다”며 차별화된 관점을 드러냈다. 재임 중 일반상영관을 찾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서민적 캐릭터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봤고, 메시지 있는 영화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왕의 남자’, ‘맨발의 기봉이’ ‘길’ ‘밀양’ ‘괴물’ 등을 선택했다. 특히 2007년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가슴이 꽉 막혀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신화를 쓴 ‘워낭 소리’ 등을 봤다. ‘우생순’에 보고서는 “메달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도전 정신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다운 평을 내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뽀로로 극장판’을 비롯해 ‘명량(2014년)’과 ‘국제시장(2015)’ 등을 관람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그때 그 노래, 그 시대를 다시 부르다

    그때 그 노래, 그 시대를 다시 부르다

    송창식·양희은·혜은이·전영록 등 70~80년대 인기가수 10명 소개 신변잡기 아닌 음악 이야기 나눠 양희은 “아침이슬, 그냥 불렀다” 전영록 “스타 부모 넘으려 노력”뉴트로 열풍 속에 재소환되는 옛 가요와 스타들. 그 음악들은 어떤 배경 속에서 태어났으며 스타 가수의 삶은 어땠을까. 지난해 12월 22일부터 방영 중인 EBS 10부작 다큐멘터리 ‘싱어즈’는 전설들의 음악과 시대를 돌아보며 한국 대중음악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싱어즈’는 1970~1980년대 대중과 함께 울고 웃은 가수 10명을 한 명씩 소개한다. 청년문화의 상징 송창식을 시작으로 양희은, 혜은이, 전영록, 한대수에 이어 이은하, 김수철, 송대관, 이장희 편이 방송된다. 대중적 인기가 높고 음악적,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 낸 가수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한상호 CP는 “그동안 대중문화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룬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다”며 “이분들을 진정한 아티스트로 재조명함으로써 일종의 대중문화사를 정리, 기록하는 의미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방송은 시종일관 아티스트에 집중한다. 그러나 사생활이나 신변잡기는 들어갈 곳이 없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한복판에 있었던 자신의 음악과 시대, 인생 이야기를 직접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고정관념이 깨지기도 한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노래 ‘아침이슬’에 대해 양희은은 “위안을 줄 의도는 없었고 그냥 그 노래가 좋아서 불렀다”며 “노래는 가수의 것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로 음악의 의미를 대신한다. 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의 아들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전영록은 스타 부모의 벽을 넘기 위해 재능 이상의 노력을 했다고 고백한다.아티스트들의 생각과 기억에 집중하기 위해 별도의 내레이션 없이 육성 인터뷰로만 구성했고, 국내 최초로 영상용 텔레프롬프터를 제작해 출연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촬영을 진행했다. 시청자와 가수가 마주 보고 대화하는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 진행형 아티스트라는 점이다. 매일같이 노래 연습을 하고, 여전히 꽉 찬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열며, 후배 가수들과 계속 협업한다. 최근 혜은이의 ‘천국은 나의 것’(1982)을 가수 선우정아가 리메이크해 청년층에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방송은 새 가수들을 중심으로 시즌2도 계획하고 있다. 한 CP는 “예전 인물이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조명해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새로운 클래식’을 보여 주고 싶다”며 “지친 사람들에게도 에너지와 기운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GDP 훈풍 분 中… 최대 과제는 빈부격차 해소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했다. 경기 침체 속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격화하는 와중에도 지난해 6%대 경제성장률을 지켜냈다. 지난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9년 1인당 GDP는 7만 892위안(약 1만 314달러·약 1197만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닝지쩌 국가통계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1인당 국내총생산이 사상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한 것은 중국 경제의 발전이 질적으로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2019년 중국의 GDP는 전년보다 6.1% 성장한 99조 865억 위안을 기록했다. 성장률은 2018년보다 0.5% 포인트 낮아졌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 여파로 3.9% 성장에 그쳤던 1990년 이후 29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닝 국장은 “나라 안팎에서 위험과 도전이 커지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금융·무역·투자 등 국가경제 전반에서 안정적 발전을 이루며 주요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지난해 경제성장 목표치를 ‘6.0~6.5%’ 박스권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심각한 빈부 격차 해소가 중국 정부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실제로 2017년 중국의 지니계수는 0.467로 0.5에 가깝다. 불평등의 척도로 쓰이는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의미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심각한 빈부 격차는 공산당 일당 통치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의 2018년 1인당 가처분소득은 4000달러 수준으로 멕시코의 4분의1에 불과하다. 서민들이 버는 돈으로는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 등을 부담할 수 없는 가운데 날로 빈부 격차가 심화돼 사회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일본공산당, 중국공산당에 “패권주의·인권침해”

    일본공산당이 중국공산당의 패권주의와 인권 탄압에 대해 16년 만에 당 강령까지 고쳐 가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의 주요 야당인 일본공산당은 지난 14~18일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에서 열린 제28차 당 대회에서 당 강령을 개정하면서 중국의 일당독재 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을 겨냥, “대국주의·패권주의는 세계의 평화와 진보에 역류하고 있다”는 표현을 삽입했다. 일본공산당의 강령 개정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중국의 동·남중국해 세력 확장 및 홍콩·신장위구르 인권탄압 등과 관련해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패권주의, 대국주의 행동과 인권침해 행동은 공산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공산당은 지난해 11월에도 ‘홍콩에서의 탄압 즉각 중단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홍콩 경찰의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실탄 발포는 야만적인 폭거”라고 중국 정부를 비난한 바 있다. 앞서 2004년 강령에서는 중국에 대해 “사회주의를 목표로 한 새로운 탐구가 시작된 국� 굡箚� 높은 기대감을 보였으나 앞선 2017년 제27차 당 대회에서 시이 위원장이 “새로운 대국주의·패권주의가 엿보인다”고 언급하면서 우려를 표명했고 이번에는 아예 강령 개정으로 대응 수위를 높였다. 일본공산당은 또 “아베 신조 정권은 사상 최악의 정권”이라며 “야당 공동투쟁을 강화해 2022년까지 ‘야당연합정권’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회결의도 채택했다. 1922년 출범한 이후 일본에서 가장 오랜 기간 하나의 당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공산당은 현재 중의원 465석 중 12석, 참의원 245석 중 13석을 보유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문 대통령·김정숙 여사 휴일날 영화 ‘천문’ 관람 왜

    문 대통령·김정숙 여사 휴일날 영화 ‘천문’ 관람 왜

    기상청·영화관계자 격려…취임 후 5번째 영화 문재인 대통령은 휴일인 19일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를 관람했다. ‘천문’이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만큼 국력에 있어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화비서관실에서 추천을 했고, 이번 관람에는 기상청 관계자들과 허진호 감독 출연배우인 김원해, 임원희 등이 함께 했다. 청와대 측은 “오늘 관람은 영화 이야기처럼 실력 있는 인재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인정·대우받는 사회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알리고, 한국적 소재를 영화화해 새해 첫 100만 관객을 돌파한 우수한 작품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관람 후 환담을 통해 기상청·영화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대전 유성구 소재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신년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았다. 첫 업무보고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를 선택했다. 문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취임 후 이번이 다섯 번째로 그동안 △택시운전사(2017년 8월) △미씽:사라진 여자(2017년 10월) △1987(2018년 1월) △기생충(2019년 6월)을 관람했다. 그 중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와 6월 민주항쟁을 다룬 1987를 보고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세월호 비하 논란’ 김기수 불기소…‘세월호 행사 방해’ 한국당도

    ‘세월호 비하 논란’ 김기수 불기소…‘세월호 행사 방해’ 한국당도

    경찰 “동시 집회 상황, 고의 방해 보기 어려워”고소인 “유가족 모욕했는데…‘봐주기’ 수사”세월호 참사와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했다며 고소·고발당한 김기수 전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비상임위원이 혐의없음을 의미하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또 ‘세월호 촛물문화제 방해’ 혐의로 고발 당한 자유한국당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8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등이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김 전 특조위원을 고소·고발한 사건을 수사한 끝에 지난달 17일 불기소 의견(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가족협의회 등 4개 시민단체는 김 전 특조위원이 운영하는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프리덤뉴스’가 세월호 참사 등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서경찰서에서 수사하도록 내려보냈다. 한국당은 지난해 8월 변호사인 김 전 특조위원을 추천했다. 당시 김 전 특조위원은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 ‘프리덤 뉴스’의 대표로 있으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 ‘여전히 세월호 타령, 이제 그만하라’ 등 내용의 영상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됐다.김 전 특조위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발로 지난 13일 사퇴했다. 김 전 특조위원은 사퇴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 추천 특조위원이 공석이 된 지 반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나를 특조위원으로 임명했다”면서 “그러나 대통령이 임명한 합법적인 특조위원의 회의 참석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사태가 3차례나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대통령의 신임 행위까지 송두리째 무시할 수 있는 특조위는 법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냐”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문 대통령의 임명장도 함께 반납했다. 김 전 특조위원은 사퇴 직후 한국당에 입당해 대구 동구갑 예비후보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지난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촛불문화제를 방해했다며 시민단체가 고소한 사건을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등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집회방해금지) 혐의로 한국당을 고소한 사건을 수사한 끝에 최근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4·16연대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민생경제연구소는 등은 지난해 5월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열린 ‘5·25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한국당 측이 방해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당시 한국당은 촛불문화제 장소와 인접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현 정부 규탄집회를 열었는데,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 스피커 출력을 높게 하는 등 집회 진행에 피해를 줬다고 이들 단체는 지적했다. 4·16연대 등은 고소장에서 “한국당은 세월호 촛불집회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집회를 했는데 이 집회에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패륜적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경찰은 당시 가까운 장소에서 양측 집회가 동시에 열린 점을 고려하면 한국당이 고의로 집회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인 측은 당시 한국당의 행위에 따른 피해가 명확했음에도 수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고소인 측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국당 측의 스피커 출력이 너무 크고 지속적이었던 탓에 무대 위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고, 불편을 넘어 고막의 고통까지 호소한 사람이 많았다”면서 “정치권을 의식해 불공정한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광주시, 올해도 5·18행불자 가족 유전자정보 채취

    광주시가 올해에도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 찾기를 지속한다. 16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 행방불명자 가족의 DNA를 확보하기 위해 부모, 형제, 자매, 자녀, 모계 가족 등을 대상으로 혈액 채취 신청을 받는다. 시는 2월 3일~5월 29일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신청을 받는다. 우편, 이메일, 팩스, 직접 방문 접수는 2월 3일부터, 시 홈페이지(www.gwangju.go.kr) 접수는 프로그램 개편을 거쳐 3월 9일부터 시행한다. 확보한 혈액은 앞으로 암매장 발굴 등으로 유골이 발굴될 경우 유전자 정보를 비교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시는 그동안 5·18 구 묘역 무명열사묘, 주남 마을, 부엉산 등에서 발굴된 유골을 비교해 2002년 6명의 가족을 찾은 바 있다. 시는 2001년부터 2018년까지 5차례에 걸쳐 5·18 행방불명자 가족 찾기 사업을 추진해 154가족, 334명 혈액 정보를 확보하고 전남대학교 법의학교실에 보관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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