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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납 추징금 ‘956억’… 전두환 가족이 낼 수 없나 [김유민의돋보기]

    미납 추징금 ‘956억’… 전두환 가족이 낼 수 없나 [김유민의돋보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12·12 군사 쿠데타, 5·18 광주항쟁 유혈 진압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전씨는 생전 5·18을 ‘폭동’이라고 불렀고, 2205억원의 추징금 납부 명령에 “전 재산 29만원”이라며 납부를 거부했다. 정치적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생전 추징금을 모두 납부하고, 아들 재헌씨와 측근을 통해 5·18 탄압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장례 마지막날인 27일에도 전두환 측은 부인 이순자씨의 15초 사과에 대해 “5·18에 대해 사과한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줬다. 이순자씨는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라고 했고,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5·18 관련한 게 아니라, 포괄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씨의 취임(1980년 9월 1일) 전에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은 사죄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5·18 단체들 “어처구니 없는 처사” 김영훈 5·18 유족회 회장은 “이순자씨의 사과는 5·18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사과도 아닌 명분 쌓기로만 보인다.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5·18 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 역시 “영결식을 앞둔 가족의 의례적인 말로, 사과로 보기 어렵다. 과도한 해석을 말아야 한다. 사과로 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덧붙였다는 것이 어이가 없다. 국민들이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줄 알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씁쓸해했다.  미납한 956억… ‘어떻게’ 환수할까“전두환 재산 환원해야” 빈소시위 전두환씨는 대통령 재임 당시 7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재산을 은닉한 혐의로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됐다. 전씨는 1997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관련 내란죄 유죄 판결로 추징금이 확정되자, 314억원만 납부한 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완납을 미뤘다. 2013년 본격 환수가 시작된 뒤 검찰은 지난해까지 추징금 1235억원을 집행했다. 올해는 가족 명의의 임야 공매 낙찰가 10억여원 등 모두 14억원을 추가 환수했다. 미납 추징금 956억원에 대해 전두환씨 가족이 추징금을 상속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검찰은 법적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5·18 관련 단체들은 지난 25일 전씨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라도 전두환 유족은 5공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불의한 재산을 피해자와 대한민국에 환원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반성 없이 잘못 주어진 사면의 열매만 누리던 전두환은 학살자로서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는 저승으로 떠났다”라며 “이제라도 국민을 탄압해 얻은 불의한 대가는 피해자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5공 인사들에 대해서도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 활동을 통해 허화평, 허삼수, 장세동, 이희성, 정호용 등 신군부의 실세들이 하나같이 대저택에서 수십년간 부와 권력을 누려온 것을 새삼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또 “유족은 지금이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에게 배워 5공 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촉구한다. 역사 앞에 사죄할 마지막 기회를 저버린다면 국회에 당장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칠 것”이라고 밝혔다. 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은 20대 국회 당시 천정배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회기 종결로 자동 폐기됐다.추징금, 세금처럼 상속할 수 없다 민법에 따르면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생전에 진 빚은 물론, 세금까지 상속이 된다. 전두환씨가 사망했더라도 그의 가족들이 상속포기를 하지 않는 한 생전에 체납한 9억 8000여만원의 지방세는 가족들이 내야 한다. 그러나 벌금이나 추징금은 형벌의 성격이기 때문에 상속이 되지 않는다. 민법은 재판을 통해 확정된 형사 처벌도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전속되는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의 “법적 검토를 해보겠다”라는 말은 전씨의 재산 은닉 가능성을 염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범죄를 통해 만들어진 재산임을 알면서도 제3자가 이런 불법 재산 등을 취득했다면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닉재산을 추적하는 자체가 쉽지 않고, 미납금이 거액인 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 약 17조원대 추징금을 내지 않은 채 사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역시 여전히 추징금 대부분이 환수되지 않았다.
  • 이재명 “이순자 사과? 마지막까지 광주 우롱”

    이재명 “이순자 사과? 마지막까지 광주 우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이순자씨가 남편인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중 과오를 대리 사과한 것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광주 시민들과 국민들을 우롱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전남 강진에서 농민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말의 앞뒤를 보면 사과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이씨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에서 유족 대표로 나와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전 전 대통령 측은 이씨가 사죄한 대상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전두환 씨가 제일 문제 되는 부분은 재임 중의 행위보다는 재임 과정에서 벌어진 소위 쿠데타와 학살 문제 아니겠나”라며 제대로 된 사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전두환 씨가 사망하던 날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 광주 시민군 이광영씨 얘기를 여러분도 아실 것”이라며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람을 수백 명씩 학살하고 국가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람은 평생 호의호식하다가 천수까지 누리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이씨가) 정말 사과하는 맘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으면 광주 이광영 시민군에 대해 한마디라도 했을 것”이라며 “여전히 전두환씨가 생전에 취했던 태도처럼 ‘내가 뭘 잘못했냐, 심지어 난 그런 일 없다’ 이런 태도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호남 지역 민심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 후보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호남 일정 동행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 “다음에는 같이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제가 (이 전 대표에게 앞서) ‘전남과 광주 일대에 간다’고 전화는 드렸는데 원래 잡힌 일정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라. (이번) 일정을 최근에 잡아서 미리 조정을 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 [속보] 전두환 측 “이순자, 5·18 사과한 것 아니다”

    [속보] 전두환 측 “이순자, 5·18 사과한 것 아니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가 사망 닷새째인 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 임시안치됐다. 유해가 향할 장지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자택에 당분간 머물게 된 것이다. 전씨는 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받았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이순자씨는 영결식장에서 유족 대표로 나와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전 대통령 측은 이순자 씨가 대리 사죄한 대상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나 유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기자들과 만나 “기사를 보니 5·18 단체들이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이씨가) 5·18 관련해서 말씀하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분명히 재임 중이라고 말했다”라며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씨는 전씨가 대통령으로서 ‘재임 중’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사죄한 것이며, 5·18은 전씨의 취임일인 1980년 9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발인…이순자, 41년 만의 ‘대리사과’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발인…이순자, 41년 만의 ‘대리사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27일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소하게 치러졌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가족을 대신해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께 남편을 대신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전씨는 생전 5·18 비극에 대한 한 마디의 사과 없이 떠났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열렸다. 전씨의 장례는 5일간의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유족 50여명과 종교인, 일부 5공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이씨는 유족 대표로 나와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난 후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며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전씨 측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이씨는 “남편이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며 “화장해서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유해를) 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에 앞서 추도사에 나선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은 “임기 마치는 날 청와대에서 걸어 나온 최초의 대통령”라고 추켜세우며 “(전씨가) 지극히 사랑한 대한민국은 (전) 대통령의 업적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겨뤄 나간다”라고 강조했다. 영결식에는 부인 이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 씨, 딸 효선씨, 재용씨 부인인 박상아씨 등 가족 외에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전씨 사자명예훼손 재판 법률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도 함께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전 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를 제외한 현역 정치권 인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있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이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된 것과 대비된다. 당시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철희 정무수석,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도 참석했다. 앞서 정부는 전씨 장례에 관해 정부 지원이나 조문, 조화는 일절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빈소 설치와 운구, 영결식, 장지 등 모든 절차를 가족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국가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전씨의 시신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유해는 이후 연희동 자택으로 옮겨져 장지가 정해질 때까지 자택에 임시 안치된다.
  • “전두환 살인자” 외치다 끌려나가고… 빈소 한쪽선 “용맹 장군” 

    “전두환 살인자” 외치다 끌려나가고… 빈소 한쪽선 “용맹 장군” 

    정장 입은 조문객 식장서 “살인자”진보단체 전씨 사저 찾아가 “학살자”보수단체 “5·18 무관 전두환 국가장해야”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나흘째인 26일 전씨 빈소에서는 한 조문객이 “전두환 살인자”라고 외치는 등 크고 작은 소란이 이어졌다. 진보단체들은 전씨의 사저로 몰려가 대문에 학살자라는 종이 팻말을 붙이며 비난했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5·18과 상관 없는 전두환은 국가장을 해야 한다”고 명복을 기원했다.   정장을 입은 60대 안팎의 남성 조문객은 이날 오후 4시 46분쯤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살인자”라고 외쳤다가 장례식장 관계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갔다. 이후 5분간 유튜버들끼리 고성을 지르는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후 12시 50분쯤에는 전씨 빈소 앞에서 한 노인이 종이를 펼쳐놓고 붓으로 ‘용맹장군’ 등 글씨를 쓰기도 했다. 보안 요원들의 제지에도 멈추지 않아 경찰이 출동했으나 연행되지는 않았다. 오후 1시에는 ‘518역사왜곡진상대책국민연합’ 회원들이 “전두환은 5·18과 관련 없다”, “전두환은 국가장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민주노총·진보당, 사저 앞에서 “전두환 생 마감할 곳은 감옥” 서울 서대문구에서 활동하는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전씨 사저 앞에서 전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전씨 사저 대문 위에 ‘학살자’ 등이 적힌 종이 팻말을 붙였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부지역지부, 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 진보당 서대문구위원회 등은 이날 오후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앞에서 “전두환이 생을 마감해야 할 곳은 감옥이지 이곳 서대문구가 아니었다”면서 “서대문 주민들은 전두환의 죽음에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전두환은 민주화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고, 군부 쿠데타로 정부를 찬탈하고 군홧발로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면서 “전두환은 죽더라도 5·18 광주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두환을 역사의 심판대에서 처벌하고 추징금 환수 역시 재산 몰수로 마지막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학살자 전두환은 전 재산이 고작 29만원이라며 이곳 연희동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경찰 경호까지 받았다”면서 “독립운동의 역사와 1987년 6월 항쟁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곳 서대문구의 치욕”이라고 했다.예비역 장성단체 성우회 회장단 조문“대통령님 머리 숙여 명복 기원” 반면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의 회장단은 전씨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성우회에 따르면 이종옥 회장(예비역 육군대장)을 비롯한 회장단은 전날 오전 전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성우회는 “회원 일동은 고 전두환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머리 숙여 기원한다”고 밝혔다. 육사 11기인 전씨는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함께 정권 찬탈을 위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종옥 회장은 육사 24기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냈고 2019년부터 성우회장을 맡고 있다. 성우회는 지난 10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도 조문했다. 1989년 창립한 군 예비역 장성의 비영리 친목 단체인 성우회는 고(故) 백선엽 장군이 초대 회장을 지냈다. 전씨 장례는 27일 오전 발인과 영결식이 치러지며, 서울추모공원에서 시신을 화장한 뒤 유해는 연희동 자택으로 옮겨져 임시 안치된다. 장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 이재명 “전두환 후예 국힘, 다시 권력 갖겠다고 발악”

    이재명 “전두환 후예 국힘, 다시 권력 갖겠다고 발악”

    “민주당 3기 정부, 촛불혁명 기대치 충족 못해”“거짓말로 음해하면 비공감 눌러달라”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내세운 국민의힘에 대해 “전두환 민정당의 후예, 후신들이 다시 권력을 가져보겠다고 저렇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면서 “발악한다”고 비판했다. “전두환, 미안하단 말 안 하고 잘 먹고 잘 살다 가버려” 이 후보는 이날 ‘매타버스’(매주타는 민생버스)를 타고 목포 동부시장을 방문하는 길에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제가 좋은 말을 써야 해서 ‘노력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옛날식으로 하면 ‘발악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은 안 한 것으로 하겠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당일 생을 마감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광영씨를 전날 조문한 것과 관련, “평생 호사를 누렸던 그 사람은 천수를 다하고 저세상으로 갔는데 42년전 허리에 총을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평생 고통 속에 살다가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분은 가시면서 오히려 본인이 ‘죄송하다, 사과한다,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가셨다”면서 “그런데 전두환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말 안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버렸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댓글을 많이 써주고 커뮤니티에 글도 써달라”면서 “내가 무슨 부정 저질렀느니 하고 거짓말로 음해를 하면 아니라고 비공감을 한번 눌러달라. 작은 실천이 모여서 큰 강물이 된다”고 당부했다.“집값 문제, 결과에 무한책임 져야” 그는 또 “촛불혁명을 통해 새 정부를 만들었는데 국민이 기대하는 기대치는 정말 높았고 우리 민주당 3기 정부는 그것을 다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의도가 좋고 열심히 했더라도 결과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는 게 정치다. 집값 문제도, 서민 삶이 팍팍해진 것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타버스로 광주·전남을 순회하는 것과 관련, “여러분이 하는 말씀을 많이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면서 “우리가 부족했던 것을 많이 반성하고 잘못한 것은 사죄드리며 새롭게 출발해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난 8월 발표한 경인선 지하화 공약과 관련,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에 대한 질문에는 “도시를 양분하는 경인선을 지하화하고 택지를 개발하면 도시 전체도 좋아지고 집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택지 개발해서 집을 짓되 분양받을 사람은 건물만 싸게 분양받고 임대료만 내고 살겠다고 하면 30평형대 4인 가족까지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규모로 해서 다양한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안방 호남서 ‘이재명 민주당’ 공식화출발은 목포, 28일엔 심장 광주로 이 후보는 이날부터 나흘간 민주당 심장부인 호남 곳곳을 돌며 텃밭 표심 갈이에 나섰다. 매 주말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타고 지역 구석구석을 도는 전국 민심 투어의 일환이다. 선대위의 전면적 쇄신을 선언한 만큼 안방인 호남에서 ‘이재명의 민주당’ 출범을 공식화하고 흩어진 지지층을 결속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선대위에 따르면 이 후보가 나흘간 호남에서 총 이동하는 거리는 1300㎞다. 광주와 전남에 있는 모든 지역구를 1곳도 빠짐없이 들르는 동선이다. 출발지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다. 이어 전남 신안과 해남, 장흥, 강진, 여수 등을 훑고 28일 호남의 심장부 광주로 향한다. 이날 광주에서는 첫 지역 선대위 출범식이 열린다. 2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방식의 ‘전국민 선대위 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당초 선대위는 공식 일정을 3박 4일로 계획했지만, 이 후보가 전날 밤 5·18 당시 헬기사격 증인인 고(故) 이광영씨를 조문하기 위해 급히 광주로 내려가면서 사실상 4박 5일 일정이 됐다.
  • 김제동, 이준석에 대놓고 “저 싫어하죠?”

    김제동, 이준석에 대놓고 “저 싫어하죠?”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의 대타 진행자로 나선 방송인 김제동씨가 26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만났다. 이날 인터뷰 분위기는 김씨가 연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측과 묘한 신경전을 벌인 것과 달리 화기애애했다. 김씨는 당내 청년 인사 사이에서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의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는 보도를 언급했다. 이준석·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김한길 새시대위원장 등으로 꾸려진 인사가 ‘신선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충분히 평가할 만한 시각이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김제동씨를 놓고 비유하자면, 김제동씨가 방송을 진행해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김제동 씨는 이런 평가에 익숙하시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씨는 “저 싫어하죠?”라며 웃었다. 이 대표는 “나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맨날 댓글 보면 욕하는 사람 있다. 그런데 그게 국민의 사랑을 받고 사는 방송인과 정치인의 숙명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에 김씨는 “또 이렇게 위로를 받는다”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김씨는 “어떤 프로그램에 나가서 ‘다음에 또 보자’고 그랬더니 ‘싫어요. 안 나올 거에요’ 그랬다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어떠신가?”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김제동씨가 다시 이거 진행할 건가?”라고 되물었고, 김씨는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제가 말할 수 있다. 싫어요. 안 볼 거예요”라며 웃었다. 김 씨는 이어 “사실 보고 싶은데 못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고 이 대표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김제동씨는 지난 24일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김경진 전 의원과도 윤 후보의 전두환 씨 조문 관련 발언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김 전 의원은 윤석열 대선 경선 캠프 대외협력특보를 지냈다. 당시 김씨는 김 전 의원에게 “(윤 후보가) ‘조문 가야 되지 않겠나?’ 하다가 안 가는 걸로 바뀌었다고 해서 지금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말이 조금 애매모호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은 “윤 후보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라면서 “아마 순간 명확한 의사표시를 못 하고 준비 일정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보고 검토하겠다,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런 뉘앙스로 얘기를 하셨던 것 같다. 이후 다른 의원들과 의논한 후 안 가는 것이 맞겠다고 해서, 그렇게 분명히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씨는 “김 전 의원은 분명한 입장이라고 하셨는데, 조문 관련 문제도 그렇고 사과 문제도,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한다든지 사람들에게 분명한 입장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재차 문제삼았다. 이에 김 전 의원은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윤 후보는 전두환 씨 조문 안 가겠다는 것이 지금 분명한 입장”이라며 “또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 이런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과는 다른 반응을 자꾸 보이게 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거듭 윤 후보의 태도를 지적했다.
  • 대구지역 5·18 유공자, 전두환씨 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1명당 2억여원

    대구지역 5·18 유공자, 전두환씨 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1명당 2억여원

    대구에 사는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2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을 낸 원고는 5·18 당시 지역 대학에서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고문 등을 당한 계명대생 16명과 그 가족 등 109명이다. 원고들은 “영장 없이 체포·감금돼 고문을 당하고, 출소한 뒤에서 불법 사찰 등을 당했다”며 국가가 직접 피해자(16명) 1명당 2억 100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애초 국가뿐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도 소송을 낼 방침이었다. 그러나 그가 최근 사망하면서 피고에서 제외했다. 맑은뜻 김무락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5·18 당시 대구에서도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한 치열한 저항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신군부의 범죄행위가 5·18 유공자와 그 가족의 삶에 초래한 불행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가해자는 천수 누리고” 이재명, 5·18피해자 조문…매타버스 호남행

    “가해자는 천수 누리고” 이재명, 5·18피해자 조문…매타버스 호남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5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당일 스스로 세상을 떠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광영씨의 빈소를 찾아 넋을 기렸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시효가 없다”면서 “철저하게 진상 규명을 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상자 후송 중 총상 입어 하반신 마비고인은 5·18 당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전씨가 사망한 지난 23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총상 후유증으로 고통에 시달리다 떠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조계종 승려였던 이씨는 1980년 5월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광주 곳곳에서 벌어지는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했다. 적십자봉사단에 입단한 그는 부상자를 실어나르고, 의약품과 혈액을 모으는 활동을 하다 5월 21일 구시청 사거리에서 잠복 중이던 군인이 연발로 쏜 총에 허리를 맞았다. 인근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총탄 파편이 몸속에 그대로 남아 평생을 하반신 불구로 살아야 했다. 1996년 파편 제거 수술을 받긴 했으나 진통제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광주 헬기사격 부상자 이송” 증언 그런 상황에서도 이씨는 신군부가 왜곡한 5·18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5·18 부상자들의 모임을 처음으로 조직할 때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고 조비오 신부와 함께 계엄군의 헬기 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타고 있던 적십자 봉사단 차량을 향해 헬기가 따라오며 집중적으로 사격했다”며 “일행 중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젊은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욕창에 걸리는 건 다반사였고,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해 늘 어려운 형편이었다. 어떻게든 후유증을 치료해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생활해보기도 했지만, 그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지난 22일 “나의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재명, 4박 5일간 ‘매타버스’ 호남행이 후보는 고인을 기리며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이 지켜지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시는 이런 일들을 꿈꿀 수도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전씨의 죽음을 두고는 “가해자는 평생을 처벌받지도 않고 호사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하고 갔다”며 “오히려 피해자가 ‘죄송하다’, ‘사과한다’ 말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고 언급했다. 조문을 마친 이 후보는 오는 29일까지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타고 광주와 전남 방문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선대위에 따르면 이 후보가 나흘간 호남에서 총 이동하는 거리는 1300㎞다. 광주와 전남에 있는 모든 지역구를 1곳도 빠짐없이 들르는 동선이다. 출발지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다. 이어 전남 신안과 해남, 장흥, 강진, 여수 등을 훑고 28일 호남의 심장부 광주로 향한다. 이날 광주에서는 첫 지역 선대위 출범식이 열린다. 2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방식의 ‘전국민 선대위 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재산 환원하라”…5·18 단체 빈소 시위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재산 환원하라”…5·18 단체 빈소 시위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서울지부 등 5·18 관련 단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병원 인근에서 사죄 없이 떠난 전씨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서울지회, 5·18 구속부상자회 서울지부, 5·18 서울기념사업회, 삼청교육대 피해자 전국연합 등 11개 단체는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장례식장까지 10여분 동안 행진했다. 참가자 20여 명은 ‘광주는 폭도, 삼청은 깡패. 억울해서 못 살겠다’, ‘사기정치 80년 쿠데타범 추모관 철거하라’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한 여성과 언쟁 잠시 있었지만,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장례식장 앞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라도 전두환 유족은 5공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불의한 재산을 피해자와 대한민국에 환원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반성 없이 잘못 주어진 사면의 열매만 누리던 전두환은 학살자로서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는 저승으로 떠났다”며 “이제라도 국민을 탄압해 얻은 불의한 대가는 피해자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1997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관련 내란죄 유죄 판결로 추징금이 확정되자, 314억원만 납부한 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완납을 미뤘다. 2013년 본격 환수가 시작된 뒤 검찰은 지난해까지 추징금 1235억원을 집행했다. 올해는 가족 명의의 임야 공매 낙찰가 10억여원 등 모두 14억원을 추가 환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23일 기준 전체 추징금 2205억원 중 1249억원(57%)을 집행했고 미납 추징금은 956억원(43%) 남아 있다”고 밝혔다.이들은 5공 인사들에 대해서도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 활동을 통해 허화평, 허삼수, 장세동, 이희성, 정호용 등 신군부의 실세들이 하나같이 대저택에서 수십년간 부와 권력을 누려온 것을 새삼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또 “유족은 지금이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에게 배워 5공 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촉구한다“며 ”역사 앞에 사죄할 마지막 기회를 저버린다면 국회에 당장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법은 20대 국회 당시 천정배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회기 종결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5·18 단체들은 오는 27일 전씨 발인 때까지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 LA 거주 중국계 72세 변호사 “나 중국식당 7812곳 요리 먹어본 사람”

    LA 거주 중국계 72세 변호사 “나 중국식당 7812곳 요리 먹어본 사람”

    40년에 걸쳐 미국과 캐나다, 아시아에 있는 중국식당 7812곳을 돌며 음식 맛을 보고 이를 꼼꼼히 기록한 중국계 미국인이 있다. 로스앤젤레스(LA)를 중심으로 세무 분야 변호사로 일한 데이비드 R 챈(72)을 영국 BBC가 화제의 인물로 24일(현지시간) 소개했다. 그는 다녀온 식당 이름을 일일이 장부에 적고 수천 곳의 식당 명함과 메뉴판 등도 수집해 소장했다. 하루에 한 식당을 들렀다고 치면 20년이 넘게 걸린다. 40년이 걸렸다니 이틀에 한 번 꼴은 중국식당에 들러 끼니를 해결한 셈이다. 최근 들어선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 계정에 요리 하나씩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중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음식 탐방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중국음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점이나 중국문화가 미국에서 어떻게 역동적으로 바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자신이 중국음식 평론가는 아니라면서도 그저 미식가(foodie)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 여전히 젖가락질에 서투르고 카페인을 피하려고 차를 거부하며 설탕과 콜레스테롤이 적은 메뉴를 집착한다고 털어놓았다. 중국식당에 가면 그가 뭘 먹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원래 광둥성 출신으로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 할아버지의 손자로 태어나 어릴적 중국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1950년대 처음 중국음식을 맛봤을 때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면서 “그 음식은 미묘하지도 않았다. 연회에 갔는데 밥에 간장을 비벼 먹었다. 먹을게 없었다”고 했다.중국 음식은 19세기 초 골드러시를 좇아 낯선 땅을 찾아 온 이들이 가져온 것인데 기록에 남은 최초의 중국식당은 1849년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칸톤(광둥)’이었다. 초기 이주자 상당수가 중국 남부 광둥성의 시골마을인 토이산 (台山) 출신이었던 연유다. 이들은 먼바다로 나아가 어업을 하곤 했는데 유혈 종족 분쟁과 경제난 끝에 미국으로 건너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챈이 처음 중국 요리를 맛보던 당시 중국계 미국인은 인구의 0.08% 밖에 안 됐으며 거의 토이산 출신의 후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LA 외곽에서도 160㎞ 떨어진 작은 마을에 모두 모여 살아 자급자족적이었다. 따라서 현지인들이나 다양한 인종의 미국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적응해야 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아시아 이민자 쿼타 규제가 풀리면서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 등지에서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중국 곳곳의 음식문화가 전해진 것이며 굳이 미국인의 입맛에 적응하지 않아도 중국식당들이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즈음 미국 시민권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자 대학생인 챈은 중국계 미국인 역사를 돌아보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중국식당들을 찾았다. 지방마다 너무 다른, 엄청 다양한 중국 요리들이 있음을 알고 고개를 내저었다. 세무 변호사로 일하며 미국의 다양한 주, 캐나다와 아시아로 출장을 가면서도 늘 중국식당을 가서 맛을 봤다. 미국에서 가장 다양하고 정통한 중국음식을 맛보려면 LA의 중국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샌개브리얼 밸리를 가보라고 권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딤섬 요리를 제대로 맛보려면 샌프란시스코가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뜻밖에도 훌륭한 차우멘(해물쟁반짜장)을 맛본 곳으로 미시시피주 클라크스데일을 꼽았는데 중국계 이주민의 역사가 200년 전에 시작된 곳이었다. 가장 실망스러운 중국음식을 먹은 곳은 노스 다코타주 파고였는데 “볶음밥이 죽밥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그 위에다 간장 소스를 들이붓는 것이었다”고 몸서리를 쳤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 본토에서 엄청난 숫자의 대학생들이 몰려오면서 중국음식이 “민주화됐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어떤 대학타운을 가도 훌륭한 중국 음식점이 있기 마련이다.중국음식을 평범한 미국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뭐니뭐니해도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일이다.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함께 연회를 열었는데 닉슨 대통령이 젖가락을 들어 앞접시에 여러 요리를 골라 담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본 이들은 엄청 놀라워했다. 베이징 덕, 내장 튀김 등도 메뉴에 있었는데 시각적으로 충격적이었다. 닉슨의 ‘젖가락 외교’ 다섯 달 뒤에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외교적 해빙 후 중국식당들 만개’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국계 미국인 식당협회의 추계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전역의 중국식당은 4만 5000개가 넘어 맥도날드, 버거킹,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웬디스 매장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렇게 새로운 점포가 늘어나니 챈으로선 노다지(bonanza)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방문하는 중국 식당 수 같은 목표는 없지만 가능한 많이 찾고 싶다고 했다. 은퇴한 뒤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곳을 찾고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팔로워 중 한 명은 이런 지적을 했다. 어차피 부인이 중국 사람인데 그녀가 요리하는 것을 먹어도 중국음식인데 뭘 그리 찾아 헤매는 것이냐는 얘기다. 또 주위 사람들이 중국 음식에 대해 물어보는지 궁금해 하며 그의 전문성에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 중도 확장이냐 보수 결집이냐… 국민의힘 갈팡질팡 ‘조문정치’

    중도 확장이냐 보수 결집이냐… 국민의힘 갈팡질팡 ‘조문정치’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소식에 일제히 조문을 거부하고 비판 목소리를 낸 여권과 달리 국민의힘 쪽에선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이준석 대표는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힌 반면 김기현 원내대표는 조문에 나섰고, 윤석열 대선후보와 홍준표 의원은 조문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는 등 혼란이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기존 영남·보수층 지지자와 중도층 사이에 낀 딜레마가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이틀간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조문은 거의 없었고, 빈소를 찾은 이들조차 극도로 말을 아꼈다. 전씨의 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윤상현 의원이 지난 23일 현역 의원 중 처음으로 빈소를 찾은 데 이어 24일에는 주호영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 김진태 전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당 지도부가 아닌 ‘개인 자격’임을 강조하며 빈소를 찾았다. 국민의힘은 전씨가 창당한 민주정의당에 뿌리를 둔 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얽힌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 전씨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특히 자유한국당 시절 당내 인사들이 “5·18은 폭동”이라고 한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호남과 중도 지지층을 대거 떠나보낸 경험도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형국이다. 당내에선 대선 국면에 접어든 만큼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과 동시에 기존 보수 지지자들 또한 저버릴 수 없다는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전날 윤 후보는 조문 여부를 번복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전씨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직후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조문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가 2시간여 만에 기자단 공지를 통해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철회했다. 윤 후보 측에 ‘조문하지 말라’는 항의 연락이 빗발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CBS 라디오에서 “윤 후보가 조문을 가니 마니 오락가락했던 것을 보면 결국 지난번 광주에 와서 사과한다고 했던 건 결국 쇼였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의원도 조문 의사를 밝혔다가 결국 접었다. 전씨의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홍 의원은 자신이 만든 커뮤니티 ‘청년의꿈’에서 ‘조문을 갈 것이냐’는 지지자들의 질문에 “갈 생각이다”라고 밝혔다가 댓글로 거센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그러자 홍 의원은 이날 “절대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며 조문하지 않았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미납 추징금을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송영길 대표는 윤 후보를 겨냥한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신고센터’를 방문한 뒤 “(추징금 관련) 과거에 회기 종료로 폐기된 법령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화당 100명 떼조문… ‘가짜 박근혜 조화’ 해프닝

    공화당 100명 떼조문… ‘가짜 박근혜 조화’ 해프닝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이틀째인 24일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과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등 전씨와 가까운 인사들이 이틀째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지켰다. 과가 많다는 평가 때문인지 전직 대통령의 빈소치고는 현역 정치인의 발걸음은 많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빈소를 찾은 뒤 “군사반란을 통한 권력의 찬탈과 그 이후의 민주화운동 탄압,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은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크고 막중한 책임”이라면서 “(전씨가) 정중하게 진심을 담아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주호영 의원은 “평가는 역사가 할 일이고 돌아가셨으니 명복을 빌 따름”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오전에 빈소를 찾아 10분가량 머문 뒤 “모든 인간에게는 명암이 다 있는데 과가 많은 것은 틀림없다”며 “마지막에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 실세로 꼽혔던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고문은 “전 전두환 정권 때 두 번이나 감옥에 갔고 재야에서 전두환·노태우 구속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이라면서 “생전에 한 일은 역사적인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오전 빈소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쓰인 조화는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가 “우리가 보낸 조화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가짜 조화’로 밝혀졌다. 박 전 대통령이 보낸 진짜 조화는 늦은 오후 도착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와 당원 100여명이 빈소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당원이 “(전씨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자 한 여성이 “조원진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 전두환 사망 다음날… 전씨 고향 방문한 文

    전두환 사망 다음날… 전씨 고향 방문한 文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국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 10위 부유식 태양광 시설인 경남 합천군 합천댐의 수상태양광 현장에서 탄소중립 실현과 지역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다. 이 일정은 오래전 계획됐지만, 공교롭게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다음날 그의 고향을 찾은 모양새가 됐다. 문 대통령은 “국내 최대이자 세계 10위 부유식 수상태양광 발전이 시작됐다”면서 “합천은 2050 탄소중립 시대,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력 판매로 매년 12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며 투자에 참여한 1400여명의 주민은 20년 동안 최대 10%를 투자 수익으로 받게 된다”면서 “국내 최초의 수상태양광 연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천댐은 2012년 세계 최초로 댐 내 수상태양광을 상용화했으며 이날 발전을 시작했다. 설비용량 41㎿는 연간 6만명이 쓸 수 있는 수준으로, 합천군민 4만여명이 쓰고도 남는 양이다. 인근 마을 주민 1400여명은 약 31억원을 투자해 매년 발전수익을 공유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해인사 말고는 현직 대통령 방문이 40년 만”이라며 “지역 소멸 위기를 말하지 않는, 함께 상생발전하는 시대로 나아가길 바라고 합천이 그 선두에 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전씨 고향은 합천댐에서 불과 30여㎞ 거리인 율곡면 내천마을이다.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해 한 번의 뉘우침도 없었던 전씨에 대해 고향에서조차 공식 추모행사를 열지 않는 등 냉랭한 분위기다. 청와대는 전날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과가 없었던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 현직 대통령으론 40년만에 합천 찾은 文대통령

    현직 대통령으론 40년만에 합천 찾은 文대통령

    주민참여형 모델… “참여 주민들에겐 수상태양광 연금될 것” 현직 대통령 전두환씨 이후 처음… 靑 “오래 전 계획된 일정”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국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 10위 부유식 태양광 시설인 경남 합천군 합천댐의 수상태양광 발전시설의 가동을 알리는 ‘태양광 꽃이 피었습니다’ 현장에서 탄소중립과 지역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최대이자 세계 10위 부유식 수상태양광 발전이 시작됐다”면서 “합천은 2050 탄소중립 시대,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합천댐은 2012년 세계 최초로 댐 내 수상태양광을 상용화했으며 이날 본격 발전을 시작했다. 설비용량 41㎿는 연간 6만명이 쓸 수 있는 수준으로, 합천군민 4만여명이 쓰고도 남는 양이다. 인근 봉산면 20개 마을 주민 1400여명은 약 31억원을 투자해 매년 발전수익 일부를 공유하게 된다. 나아가 석탄화력발전 대체 효과로 연간 미세먼지 30t과 온실가스 2만 6000t을 감축할 수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태양광은 가장 중요한 재생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우리 수상태양광은 9.4GW에 달하는 높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원전 9기에 해당하는 발전량”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력 판매로 매년 12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며 투자에 참여한 1400여명의 주민은 20년 동안 매년 투자금의 최대 10%를 투자 수익으로 받게 된다”면서 “참여 주민들에게는 국내 최초의 수상태양광 연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합천댐 수상태양광 사례를 확대할 것”이라며 “댐 고유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자연경관을 살리고 과감하게 투자하겠다. 계획 수립 단계부터 지역민과 함께하고 발전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설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노력은 205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전체의 70%까지 늘리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전망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합천댐 수상태양광발전소를 수주했으며 1년여 공사 끝에 완공했다. 수상 태양광 전용 모듈인 큐피크 듀오 포세이돈(Q PEAK DUO Poseidon)을 이 시설에 설치했는데 섭씨 85도, 상대습도 85%의 환경에서 3000시간 이상 노출 검사 등 KS 인증 규정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고온, 다습환경에 특화된 제품이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태양광에 중금속이 많이 내포돼 있다든지, 중국산이 많다든지 하는 오해들이 불식됐으면 좋겠다. 식수원 역할을 하는 댐에서도 얼마든지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합천이 전날 사망한 전두환씨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공교롭다는 반응도 나왔지만, 이번 일정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정이란게 청와대의 설명이다.행사 도중 문준희 합천 군수는 “해인사 방문을 제외하고 나면 현직 대통령이 합천군을 방문한 것이 40년쯤 된다”고 말했다. 40년 전 전씨가 고향을 방문한 이후 현직 대통령이 처음 합천을 찾았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도 “40년 만이라는 데 저도 아주 영광”이라고 화답한 뒤 “지역 소멸 위기를 말하지 않는, 함께 상생발전하는 시대로 나아가길 바라고 합천이 그 선두에 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전씨의 고향은 합천댐에서 불과 30여㎞ 거리인 율곡면 내천마을이다.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해 한 번의 뉘우침도 없었던 전씨에 대해 고향에서조차 공식 추모행사를 열지 않는 등 냉랭한 분위기다. 청와대는 전날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과가 없었던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 日 “암흑시대의 상징 전두환, 끝까지 참회 없었다”

    日 “암흑시대의 상징 전두환, 끝까지 참회 없었다”

    일본 언론은 24일 전날 사망한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의 부고에 대해 신문에서는 1면과 전면으로 보도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일본 언론은 전씨를 가리켜 ‘독재자’라고 지칭하면서도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었던 인물이라고도 평가했다. 도쿄신문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독재자로 다수의 한국인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며 “어두운 시절의 기억은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재 한국 정치에도 큰 영향을 남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끝까지 반성의 말과 참회의 태도를 보이거나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 없이 오명을 벗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전씨가 한일관계에서 경제 협력 등을 중요시했다며 1981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책임을 지고 엄중히 자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을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전씨 때문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그의 입에서 최후까지 사과와 반성의 말이 나오지 않은 것에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며 “전씨에 대한 평가는 내년 3월 대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국에서 전씨의 국가장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에서 전씨에 대해 ‘역사의 단죄를 받은 정치군인’ 등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1979년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군인 출신인 전씨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탄압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강권 정치의 이미지가 강한 전씨의 국가장을 치르게 되면 노 전 대통령을 뛰어넘는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밝혔다.
  • 보신각 앞 전두환 분향소 바로 철거당해…빈소도 발길 뜸해

    보신각 앞 전두환 분향소 바로 철거당해…빈소도 발길 뜸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보수단체의 분향소가 24일 서울 도심에 기습 설치됐다가 바로 철거됐다. 보수 성향 단체인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전 6시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전씨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이 단체는 경찰과 관할 구청의 감시가 없는 심야 시간대를 틈타 천막 3동을 설치했다. 이 분향소는 2시간여 만에 철거됐다. 서울 종로구청은 이날 오전 8시쯤 가로시설정비팀 소속 직원 10여명을 투입해 전씨 추모 분향소를 철거했다. 철거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 단체인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도 전날 광화문광장에 전씨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으나 종로구가 도로법 위반으로 금지 통보해 불발됐다.전씨가 전날 오전 사망한 가운데 정부는 ‘국가장’을 치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해 국가장이 도입된 이후 사망한 전직 대통령 중 국가장을 하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렀다. 다만 비판 여론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분향소를 차리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 조기 게양을 독려하지 않았다. 이번 전씨의 장례는 가족장인 만큼 정부는 그의 장례에 대해 공식 지원을 일절 하지 않을 방침이다. 한편 전씨의 유족들이 이틀째 조문을 받고 있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빈소는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뜸한 상태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도 조문하지 않을 계획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도 조문 계획이 없다.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한 참회와 사죄 없이 세상을 떠난 전씨에 대한 싸늘한 여론이 반영된 것이다. 전씨의 입관식은 오는 25일 오전 10시 불교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군사반란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두 책임자가 사망함으로써 일그러진 역사의 한 페이지는 막을 내렸다. 전씨는 현재 진행 중인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변변한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단언컨대 전씨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과만 있고 공은 찾기 힘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그의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평생에 걸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오히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뻔뻔하게 주장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전 재산 29만원’ 운운으로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건 존재의 소멸을 통해 그 생애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전씨의 죽음을 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어두운 역사의 일단락을 깔끔하게 맺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식들을 통해 밝혔던 것처럼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일 또한 어느 정도 가능했을 터다. 피해자의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죄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화합은 거기에서 비로소 싹틀 수 있었으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를 단죄해야 할 법적 다툼의 실효성은 사라졌다. 오직 남은 자들이 판단하고 역사가 심판해야 할 과제가 됐다. 전씨는 비록 사죄·증언 없이 떠났지만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살아 있는 자들이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규명되지 않은 5·18 진상에 대해서도 끝까지 밝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부여됐다. 더디더라도 계속해서 화합과 치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이기도 하다.
  • [속보] ‘전두환 사망날’ 5·18 유공자 숨진채 발견

    전두환씨가 사망한 날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돼 후유증에 시달리던 유공자도 숨진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24일 전남 강진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 강진군 군동면 한 저수지에 A(68)씨가 숨져있는 것을 수색하던 경찰이 발견했다. 강진이 고향인 A씨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1980년 5·18 당시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던 중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뒤 현장에 남아 부상자 후송 등을 돕던 중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A씨는 지난 22일 사라졌으며 가족이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A씨는 가족 등에게 “몸이 아파 힘들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의 글과 가족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사설] 사죄·증언 없이 떠난 전두환, 역사 심판은 영원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군사반란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두 책임자가 사망함으로써 일그러진 역사의 한 페이지는 막을 내렸다. 전씨는 현재 진행 중인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변변한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단언컨대 전씨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과만 있고 공은 찾기 힘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그의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평생에 걸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오히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뻔뻔하게 주장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전 재산 29만원’ 운운으로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건 존재의 소멸을 통해 그 생애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전씨의 죽음을 대하는 많은 국민들은 어두운 역사의 일단락을 깔끔하게 맺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식들을 통해 밝혔던 것처럼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하는 일 또한 어느 정도 가능했을 터다. 피해자의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죄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화합은 거기에서 비로소 싹틀 수 있었으나 안타깝기만 하다. 그를 단죄해야 할 법적 다툼의 실효성은 사라졌다. 오직 남은 자들이 판단하고 역사가 심판해야 할 과제가 됐다. 전씨는 비록 사죄·증언 없이 떠났지만 역사의 심판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살아 있는 자들이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규명되지 않은 5·18 진상에 대해서도 끝까지 밝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부여됐다. 더디더라도 계속해서 화합과 치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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