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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세대 문제와 한국의 초불평등체제/한신대 교수

    [이해영의 쿠이 보노] 세대 문제와 한국의 초불평등체제/한신대 교수

    여기저기 세대 담론이 소환되고,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로 일컬어지는 2030세대에 대한 구애가 한창이다. 대개 이 시즌만 끝나면 그냥 잊혀질 온갖 ‘공약’에다 심지어 그럴듯해 보이는 인물을 캐스팅해 앉혀 놓기도 한다. 내 기억에 이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세대 문제에 관한 한 정경(正經)처럼 읽히는 독일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에 따르자면 세대는 우선 생물학적인 연령에 기초하는 사회 내 ‘위치’다. 둘째로 특정한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관계’다. 셋째로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세대들은 특별히 강한 결속력을 가진 그리고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통일체 혹은 ‘세대단위’를 구성한다. 그래서 예컨대 ‘386’에서 출발해 이제는 차수를 변경, ‘586’으로 자리잡은 세대를 보자. 이들은 1960년대생이라는 생물학적 연령이라는 위치를 공유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이 강한 결속력을 가지게 만든 실질적인 사회적, 역사적 동인을 고려해야 세대로서 의미가 있다. 즉 광주항쟁과 뒤를 이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집단 경험과 기억 말이다. 이 긴 과정 속에서 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형성했고, 이로부터 공통의 방향성을 획득했으며, 나아가 세대 구심을 만들어 냈다. 민주화란 방향성은 그러나 1989년 현존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 세대는 잡다한 방향으로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입신과 생계가 문제였다. 각종 ‘고시’가 가장 쉬웠던 자들은 이후 정치 엘리트로, 대기업을 선택한 자들은 경제 엘리트로 신속히 순차적응해 나간다. 절차적 민주화는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보였기에 이제 출세가 사회적 내용이 됐다. 외환위기, 2007년 금융위기, DJ 정부, 노무현 정부 등 두 번의 좌파정부와 지금의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명실공히 정치계급 혹은 지배계급으로 변신해 있다. 물론 이 세대 역시 예컨대 성공한 586과 그렇지 못한 586 사이 양극화는 엄연하다. 하지만 민주화라는 공통 기억은 여전히 강고하다. 이들은 이렇게 달리는 동안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DJ 정부 때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를 한국 사회에 착근시켰다. 시장만능, 시장독재 시대를 연 것이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초격차, 초불평등체제다. 2016년 기준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집중도를 보면 한국이 46.6%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는 미국의 45.4%를 추월했다. 지금은 50%를 가뿐히 넘어섰다. 단지 미국보다 우리가 아직(?) 부족한 것이 당시 기준으로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이 18.6%인 미국과 비교해 14.9%라는 정도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땅값 배율이 2020년 500%를 넘어서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독한 세계 정상이다. 2019년 기준 이 수치는 영국의 1.8배, 독일의 3배, 멕시코의 15.3배인데, 아마 2021년을 기준으로 하면 더 벌어졌을 것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란 책에서 불평등 연구를 위한 계량적 척도로 베타값(β=자본/소득)을 제시했다. 한 나라의 국부 총액, 즉 국민총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으로 측정된다. 자본주의 선진국의 경우 베타값은 5~6 정도다. 피케티에 따르면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기와 19세기 영국, 프랑스의 베타값이 1900~1910년대 6~7보다 좀 낮은 수준이다. 이 값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U자 곡선을 그리며 하강하다가 1970년대 이후 불평등 심화와 더불어 재상승, 지금 수준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베타값은 어떨까? 경제학자 정태인의 추계에 의하면 2014년 7에서 지금은 9에 달한다고 한다. 피케티에 의하면 이 값이 21세기 말쯤 세계적으로 6.6 정도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하니 한국의 그것은 세계적으로 그리고 세계사적으로 충격적인 수준이다. 586세대가 물려줄 레거시, 그들이 이룩한 정치적 민주화의 사회경제적 내용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불평등체제다. MZ세대의 저출산은 그래서 이 체제에 대한 선택 가능한 전략적 옵션이자 생물학적 사보타주다. 세계 최고 불평등과 세계 최저 출산율은 이렇게 동전의 양면이다. 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혁신, 교정하지 못할 그 어떤 대선 공약도 미봉이자 허구다. 21세기 말 우리 인구의 반토막이 예정돼 있다. 지금 우리의 사회적 존재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멸할지도 모른다.
  • 역사 기반 ‘문화도시 도봉’의 새 역사

    역사 기반 ‘문화도시 도봉’의 새 역사

    “우리 지역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게 살고 간 분들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김근태기념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난달 24일 어스름한 저녁. 서울 도봉구 도봉산 입구 자락(도봉동 279) 김근태기념도서관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현장을 찾은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도서관 입구에서 공공도서관에 사람 이름을 붙인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구청장은 “공공도서관으로서는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해외에서는 의미 있게 살다 간 분들의 이름을 딴 공간이 상당히 많다”며 “도서관의 역할을 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공간, 교육의 공간, 기념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고 김근태 선생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고난의 청년기를 보냈다. 이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재판 도중 고문의 진상을 폭로하면서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민낯을 세상에 알렸다.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고 1988년 독일의 함부르크 재단으로부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도봉 갑 지역구에서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해당 지역구의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의 부인이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따뜻한 공동체 문화를 실현하는 민주주의·인권 특화 도서관’이라는 비전 아래 운영될 예정이다. 또한 민주주의와 관련된 기록물을 보존·전시하는 기록관, 박물관의 기능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 라키비움형 도서관’의 특징을 가진다. 전체 면적 1662㎡(약 502평),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인 도서관 곳곳에는 김근태 선생과 관련된 영상, 설치, 조각, 회화 등이 전시돼 있었다. 2층 열람실은 김월식 작가가 김근태 선생이 생전 사용했던 나무의자를 재활용해 만든 작품인 ‘민주주의를 밝히는 성냥’이 전시돼 있었다. 이순임 김근태기념도서관장은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자 했던 김근태 선생의 정신을 담아 어느 방향에서든 접근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건축됐다”며 “민주주의·인권 특화도서관에 걸맞게 사회과학 장서에 비중을 뒀다”고 소개했다. ‘대화할 수 있는 용기’(총류), ‘민주주의 꿈’(사회과학), ‘평화가 밥이다’(언어), ‘희망은 힘이 세다’(문학) 등 김근태 선생의 어록을 도서분류명으로 활용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도서관은 지난 4일 개관식을 진행하고 주민과 만났다. 도서관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은 휴관한다. 이 구청장은 “김근태기념도서관, 친환경 음악공연 시설인 평화울림터 등 도봉구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의미 있는 문화시설들이 연내 순차적으로 완공되면서 ‘문화도시 도봉’으로서의 역량이 한층 더 두터워졌다”며 “도봉구가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찾고, 교류하는 거점으로 발돋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사죄 없이 사망하면서 국가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다시 조명받게 됐다. 역사의 법정엔 공소시효가 없다지만, 1948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한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고통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한(恨)으로 남길 수밖에 없을까.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이성아 작가의 장편 소설 ‘밤이여 오라’는 이처럼 국가 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려는 인물들의 분투를 그렸다. 2015년 독일어 번역가 변이숙은 자신이 번역한 작품의 저자 마르코의 초대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던 도중 잊고 싶은 20여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독일에서 짧은 유학생활을 했던 이숙은 대학 선배 현기표와 동거하게 됐고, 연락이 끊긴 기표를 찾으러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갔다. 이숙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북한 공작원으로 분류된 기표의 애인으로 낙인찍힌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이숙뿐 아니라 마르코의 입을 통해 1990년대 내전과 인종청소를 겪은 발칸반도와 한국의 상황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특히 제주 4·3 피해자의 후손이기도 한 이숙의 시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 시기까지도 이어진 간첩단 조작 사건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펼쳐보인다. “용서니 화해니 하는 것들이 정치적인 제스처일 뿐이라는 걸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해? (중략)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 가해자들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감수성이 없으니까”(188쪽)라는 마르코의 말은 확실한 단죄와 진상 규명 없이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분노와 탄식만 내보이지 않는다. 치유와 화해의 시각으로, 참극의 슬픔을 이해하는 연대가 필요할 때 우리는 그 폭력을 온전히 멈추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등한시한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인정해야 좀더 큰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목놓아 호소한다. 한 여인의 우수와 고독을 전하는 감수성 깊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 전두환 5·18 재판서 ‘위증’ 혐의 군 지휘관에 징역 10월 구형

    전두환 5·18 재판서 ‘위증’ 혐의 군 지휘관에 징역 10월 구형

    최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사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를 받는 송진원(90) 전 육군 제1항공여단장(준장)에게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2일 광주지법 형사9단독 김두희 판사 심리로 열린 송씨의 결심공판에서 송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의 중요성이 크지만 피고인이 만 90세의 고령이고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10개월을 구형한다”고 말했다. 위증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대법원 양형기준에는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징역 1년 6개월,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10개월 이하로 돼 있다. 송씨는 2019년 11월 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은 광주사태 당시 광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가”라는 전씨 측 변호인의 질문에 “없다”고 위증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송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헬기부대를 파견한 육군 제1항공여단의 총책임자로,1978년 육군 항공여단 창설 후 초대 여단장을 지냈고 5·18 당시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육군항공병과사에 따르면 송씨는 1980년 5월 26일 오후 광주에 와서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이 완료된 5월 27일 오후 부대로 복귀했다. 검찰은 송씨가 1989년 다른 항공대장들과 함께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고 조비오 신부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한 점,1995년 5·18 광주 무장헬기 파견 관련 참고인 조사를 여러 차례 받은 점 등을 들어 광주를 방문한 기억이 안 났다는 송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책임 회피를 위해 고의로 위증한 것으로 판단했다. 송씨는 첫 재판과 이날 피고인신문에서 모두 법정에 섰을 당시에는 광주에 갔던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질문의 취지도 현지에서 작전 지휘를 한 것인지로 오해했다며 의도적으로 위증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과거 검찰 조사 등에서 자신의 광주 방문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고 기소가 된 후에야 군 기록을 문의하고 뒤늦게 상황 종료 무렵 위문차 광주에 갔던 사실을 떠올렸다고 주장했다. 송씨에 따르면 그는 전투교육사령부에 작전 배속된 부대원들이 힘들어한다는 전화를 받고 조종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1980년 5월 26일 헬기를 타고 참모 등과 광주로 이동했다. 당시 상무비행장은 통제돼 오후 2시 45분쯤 광주비행장에 착륙했고,현지에서 전화 사용도 안 되고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격납고에 머물렀다. 다음날 뒤늦게 작전이 종료됐다고 들었고 광주로 파견됐던 61항공단장을 만나 격려한 뒤 오후 5시 47분쯤헬기로 광주를 떠났다고 진술했다. 항공여단장 신분으로 광주에 직접 내려왔지만 1980년 5월 27일 새벽 ‘상무충정작전’ 개시를 앞두고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고 부대원들을 만나지도 않는 등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광주에 근무한 적이 있고 헬기 이동도 자주 했던 자신에게는 광주 방문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아니어서 잊고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검찰은 작전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하기 위해 위증하는 것이 아니냐고 재차 질문했고 송씨는 작전 배속된 소준열 전투교육사령관에게 권한이 있었고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송씨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23일 오후 1시 40분에 열린다.
  • [길섶에서] 장사(壯士), 이광영/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장사(壯士), 이광영/박록삼 논설위원

    그는 건장한 상체에 굵은 팔뚝을 가졌다. 다듬어지지 않은 턱수염이 너풀거렸다. 몸이 불편해 늘 휠체어를 탔다. 그럼에도 자동차를 개조해 스스로 운전하며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5·18부상자회 총무, 부회장을 지내며 5·18이 ‘사태’가 아닌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되도록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수십 년 전 집에서 그와 아버지가 나누던 얘기를 귀동냥하던 중 “짜장면 여섯 그릇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더라”며 씩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심각한 얘기들이 많았을 텐데 유독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고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했던 그였지만, 어린 눈에는 기운 센 장사(壯士) 같았다. 진각 스님이자 광주의 시민군이고,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계엄군 헬기 기총소사의 증인인 고 이광영(1953년생)씨다. 그는 지난 23일 ‘5·18에 원한도, 서운함도 다 묻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공교롭게 같은 날 세상을 떠난 학살자의 소식을 들었는지 알 수 없다. 80년 광주를 가두방송으로 알렸던 전옥주씨도 지난 2월 세상을 떠났다. 고통과 트라우마로 점철된 신산한 삶을 산 영웅들이 하나둘씩 스러져 간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 5·18아카이브 컨퍼런스 30일 열려

    5·18아카이브 컨퍼런스 30일 열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를 연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은 30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정보문화원 ‘극장3’에서 ‘세계인이 바라본 5·18 아카이브 컨퍼런스’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세계인이 바라본 5·18 아카이브 컨퍼런스는 매년 진행되는 시민잡담형 학술대회지만 올해는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해 ‘세계와 나누는 5·“8 연대 정신’이란 주제로 진행된다. 1부에서는 ‘세계에서 바라본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주제로 주한독일대사관, 아르헨티나, 미얀마 순서로 발제하고, 2부에서는 ‘각 나라별 등재물 관리 및 사례발표와 5·18기록물의 방향성’이라는 주제로 최재희 국가기록원장과 김귀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아태지역위원회 의장, 서경호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이 발제한다. 3부에서는 5·18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임을 위한 행진곡’과 ‘고향의 봄’을 선보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참가자 수는 코로나19로 인해 99명으로 제한된다. 5·18민주화운동 및 민주·인권·평화에 관해 관심 있는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행사는 5·18기록관 유튜브와 홈페이지에 해당 영상이 게재된다. 홍인화 5·18연구실장은 “이번 컨퍼런스는 전두환 사망 끝에 놓쳐버린 진실 규명으로 비통해하는 시민들에게 힘이 되고, 스스로 진실의 힘을 드러내는 5·18 기록물을 통해 세계와 함께 연대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4·19·동학혁명, 유네스코 기록유산 재추진

    ‘4·19 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작업이 4년 만에 재개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8일 “세계기록유산 접수 기한이 이달 30일이라 마감 전에 4·19 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신청서를 제출할 방침”이라며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2023년에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4·19 혁명 기록물은 1960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 과정을 보여 주는 기록유산으로 국회 자료와 언론 기사, 개인 기록, 수습 조사서, 사진과 영상 등으로 구성된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 정부와 동학농민군 등이 생산한 기록을 아우른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1992년 시작한 사업이다.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큰 영향을 준 자료, 역사적 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가 등재 대상이다. 유네스코는 2017년 12월 세계기록유산 제도 개선을 이유로 등재 일정을 중단했고, 지난 4월 집행이사회가 개선안을 승인하면서 등재를 재개하기로 했다. 과거에는 등재 신청 주체가 국가·민간단체·개인 등 다양했으나, 이제는 국가로 일원화됐다. 등재 절차는 사무국과 등재소위원회가 적격성을 판단하고 나서 각국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당사국 간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세계기록유산 제도 개선은 중국이 2015년 ‘난징대학살 기록물’을 등재하자 일본이 발의하면서 이뤄졌다. 한국이 보유한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조선통신사 기록물’ 등 16건이다.
  • 공분만 더 키운 이순자씨 ‘15초 대리사과’

    공분만 더 키운 이순자씨 ‘15초 대리사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마무리된 가운데 부인 이순자씨가 ‘15초 대리사과’를 했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한 발언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여론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일부 대선후보들은 이씨의 사과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5·18 관련 공약을 내세웠다. 이씨는 지난 2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사과했다. 이씨의 3분 20초 전체 발언 중 단 15초에 불과한 이 발언은 과오에 대한 전씨 측의 첫 사죄 발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같은 날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서울추모공원에서 기자들에게 “(이씨가) 5·18에 관해 말씀하신 게 아니다. 분명히 (대통령) ‘재임 중’이라고 말하지 않았나”라고 해명하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전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뒤 1980년 계엄령 전국확대와 광주에서의 유혈진압으로 정국을 장악하고 1980년 9월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일각에선 이씨가 국회에서 본인 사망 후에도 추징금 환수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에 나선 움직임을 의식해 억지로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씨는 956억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채 사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8일 광주에서 이씨의 대리사과에 대해 “또 한번 5·18을 폄훼하고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있다. 학살자는 천수를 누렸지만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실 왜곡과 망언에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역사왜곡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이날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정부는 임기 시작 즉시 개헌 논의를 시작하고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기리고 계승한다는 내용을 넣자”고 다른 대선후보들에게 제안했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전날 기자들이 이씨 대리사과 관련 입장을 묻자 “제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답했다.
  • 공분만 더 키운 이순자의 ‘15초 대리사과’

    공분만 더 키운 이순자의 ‘15초 대리사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마무리된 가운데 부인 이순자씨가 ‘15초 대리사과’를 했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한 발언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여론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일부 대선후보들은 이씨의 사과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5·18 관련 공약을 내세웠다.이씨는 지난 2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사과했다. 이씨의 3분 20초 전체 발언 중 단 15초에 불과한 이 발언은 과오에 대한 전씨 측의 첫 사죄 발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같은 날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서울추모공원에서 기자들에게 “(이씨가) 5·18에 관해 말씀하신 게 아니다. 분명히 (대통령) ‘재임 중’이라고 말하지 않았나”라고 해명하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전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뒤 1980년 계엄령 전국확대와 광주에서의 유혈진압으로 정국을 장악하고 1980년 9월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일각에선 이씨가 국회에서 본인 사망 후에도 추징금 환수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에 나선 움직임을 의식해 억지로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씨는 956억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채 사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8일 광주에서 이씨의 대리사과에 대해 “또 한번 5·18을 폄훼하고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있다. 학살자는 천수를 누렸지만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실 왜곡과 망언에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역사왜곡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이날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정부는 임기 시작 즉시 개헌 논의를 시작하고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기리고 계승한다는 내용을 넣자”고 다른 대선후보들에게 제안했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전날 기자들이 이씨 대리사과 관련 입장을 묻자 “제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답했다.
  • 이재명 “5·18 끝나지 않아...역사왜곡 단죄법 반드시 만들어야”

    이재명 “5·18 끝나지 않아...역사왜곡 단죄법 반드시 만들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국권 회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독립운동 등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왜곡·조작·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역사왜곡 단죄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28일 이 후보는 광주 양림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역행위, 학살행위에 대해 힘이 있으면 처벌을 면하고 오히려 추앙받는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나치를 대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나치 범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범 관련자들을 추적해서 처벌하고 있다”며 “나치 범죄행위에 대해 찬양하거나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전날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가 남편의 재임 중 과오를 사과한 것을 언급하며 “여전히 광주 5·18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순자 씨가 재임 중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 얘기는 재임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가책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그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역사적으로 분명히 확인된 반인륜 범죄들에 대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옹호하는 행위들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 범죄나 반인륜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민사상 소멸시효를 배제해 영원히 진상규명하고 책임을 묻고 배상한다는 대원칙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두환 측 “부인 이순자 사과, 5·18 해당 안 돼”(종합)

    전두환 측 “부인 이순자 사과, 5·18 해당 안 돼”(종합)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27일 전씨 부인 이순자 씨가 이날 대리 사죄한 대상에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씨가 이날 오전 발인식에서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언급한 것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오후 화장장인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사를 보니까 5·18 단체들이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이씨가) 5·18 관련해서 말씀하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분명히 재임 중이라고 말했다”며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전씨가 대통령으로서 ‘재임 중’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사죄한 것이며, 5·18은 전씨가 취임한 1980년 9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민 전 비서관은 ‘재임 중 벌어진 일은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시위하던 학생들이 그런 경우도 있고, 경찰 고문으로 죽은 학생들도 있었다”고 답했다. 민 전 비서관은 전씨의 ‘5·18 사죄’가 불가능한 해명도 내놨다. 그는 “5·18에 대해 사과하게 되면 발포 명령 같은 것을 시인하고 사죄하는 것이 된다”며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개인의 불명예뿐 아니라 역사왜곡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5·18이) 국군이 양민을 학살한 것이라는 식으로, (군에)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히는 그런 게 된다”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 전 비서관은 또 “막연하게 사죄한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러면 5·18 단체들이 받아들이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원님이 사람 붙잡아두고 ‘네 죄를 네가 알 터이니 이실직고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적당히 사죄하고 노후를 편안하게 사실 수도 있었지만, 그건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전씨 사죄 처음 아냐…청문회 등 몇 차례 사과” 민 전 비서관은 전씨 측 사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재임 중일 때 여러 가지 과오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한테 사과한다는 말은 회고록에도 있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담사에 들어갈 때도 했고, 국회 청문회 때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며 “지금까지 안 하다가 처음 하는 것 같이 얘기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전씨의 영결식이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열렸다. 전씨의 장례는 5일간의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유족 50여명과 종교인, 일부 5공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 5·18 뺀 이순자 대리사과…이재명 ‘분노’ 윤석열 ‘침묵’

    5·18 뺀 이순자 대리사과…이재명 ‘분노’ 윤석열 ‘침묵’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27일 전씨 부인 이순자 씨가 이날 대리 사죄한 대상에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씨가 이날 오전 발인식에서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한 데 대한 부연 설명이었다.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기사를 보니까 5·18 단체들이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5·18 관련해서 말씀하신 게 아니다. 분명히 재임 중이라고 말했다.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전씨가 대통령으로서 ‘재임 중’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사죄한 것이며, 5·18은 전씨가 취임한 1980년 9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이재명 “마지막까지 광주 우롱”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이에 대해 “마지막 순간에서도 광주 시민들, 국민들을 우롱하는 발언”이라며 분노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전남 강진에서 농민 간담회를 가진 후 “앞뒤를 보면 사과하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후보는 “전두환 씨가 제일 문제 되는 부분은 재임 중의 행위보다는 재임 과정에서 벌어진 소위 쿠데타와 학살 문제 아니겠느냐”라고 반박했다. 그는 “전두환 씨가 사망하던 날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 광주 시민군 이광영 씨 얘기를 여러분도 아실 것”이라며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람을 수백 명씩 학살하고 국가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람은 평생 호의호식하다가 천수까지 누리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정말 사과하는 맘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으면 광주 이광영 시민군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했을 것”이라며 “그 점으로 보면 역시 여전히 전두환 씨가 생전에 취했던 태도처럼 ‘내가 뭘 잘못했냐, 심지어 난 그런 일 없다, 나 아무 잘못 없다’ 이런 태도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윤석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이순자씨의 ‘대리 사과’에 대해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씨가 5·18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 재임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대리 사과한 것을 어떻게 보셨나’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에 휩싸인 윤 후보로서는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 미납 추징금 ‘956억’… 전두환 가족이 낼 수 없나 [김유민의돋보기]

    미납 추징금 ‘956억’… 전두환 가족이 낼 수 없나 [김유민의돋보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12·12 군사 쿠데타, 5·18 광주항쟁 유혈 진압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전씨는 생전 5·18을 ‘폭동’이라고 불렀고, 2205억원의 추징금 납부 명령에 “전 재산 29만원”이라며 납부를 거부했다. 정치적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생전 추징금을 모두 납부하고, 아들 재헌씨와 측근을 통해 5·18 탄압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장례 마지막날인 27일에도 전두환 측은 부인 이순자씨의 15초 사과에 대해 “5·18에 대해 사과한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줬다. 이순자씨는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라고 했고,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5·18 관련한 게 아니라, 포괄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씨의 취임(1980년 9월 1일) 전에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은 사죄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5·18 단체들 “어처구니 없는 처사” 김영훈 5·18 유족회 회장은 “이순자씨의 사과는 5·18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사과도 아닌 명분 쌓기로만 보인다.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5·18 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 역시 “영결식을 앞둔 가족의 의례적인 말로, 사과로 보기 어렵다. 과도한 해석을 말아야 한다. 사과로 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덧붙였다는 것이 어이가 없다. 국민들이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줄 알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씁쓸해했다.  미납한 956억… ‘어떻게’ 환수할까“전두환 재산 환원해야” 빈소시위 전두환씨는 대통령 재임 당시 7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재산을 은닉한 혐의로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됐다. 전씨는 1997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관련 내란죄 유죄 판결로 추징금이 확정되자, 314억원만 납부한 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완납을 미뤘다. 2013년 본격 환수가 시작된 뒤 검찰은 지난해까지 추징금 1235억원을 집행했다. 올해는 가족 명의의 임야 공매 낙찰가 10억여원 등 모두 14억원을 추가 환수했다. 미납 추징금 956억원에 대해 전두환씨 가족이 추징금을 상속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검찰은 법적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5·18 관련 단체들은 지난 25일 전씨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라도 전두환 유족은 5공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불의한 재산을 피해자와 대한민국에 환원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반성 없이 잘못 주어진 사면의 열매만 누리던 전두환은 학살자로서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는 저승으로 떠났다”라며 “이제라도 국민을 탄압해 얻은 불의한 대가는 피해자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5공 인사들에 대해서도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 활동을 통해 허화평, 허삼수, 장세동, 이희성, 정호용 등 신군부의 실세들이 하나같이 대저택에서 수십년간 부와 권력을 누려온 것을 새삼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또 “유족은 지금이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에게 배워 5공 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촉구한다. 역사 앞에 사죄할 마지막 기회를 저버린다면 국회에 당장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칠 것”이라고 밝혔다. 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은 20대 국회 당시 천정배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회기 종결로 자동 폐기됐다.추징금, 세금처럼 상속할 수 없다 민법에 따르면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생전에 진 빚은 물론, 세금까지 상속이 된다. 전두환씨가 사망했더라도 그의 가족들이 상속포기를 하지 않는 한 생전에 체납한 9억 8000여만원의 지방세는 가족들이 내야 한다. 그러나 벌금이나 추징금은 형벌의 성격이기 때문에 상속이 되지 않는다. 민법은 재판을 통해 확정된 형사 처벌도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전속되는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의 “법적 검토를 해보겠다”라는 말은 전씨의 재산 은닉 가능성을 염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범죄를 통해 만들어진 재산임을 알면서도 제3자가 이런 불법 재산 등을 취득했다면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닉재산을 추적하는 자체가 쉽지 않고, 미납금이 거액인 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 약 17조원대 추징금을 내지 않은 채 사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역시 여전히 추징금 대부분이 환수되지 않았다.
  • 이재명 “이순자 사과? 마지막까지 광주 우롱”

    이재명 “이순자 사과? 마지막까지 광주 우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이순자씨가 남편인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중 과오를 대리 사과한 것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광주 시민들과 국민들을 우롱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전남 강진에서 농민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말의 앞뒤를 보면 사과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이씨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에서 유족 대표로 나와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전 전 대통령 측은 이씨가 사죄한 대상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전두환 씨가 제일 문제 되는 부분은 재임 중의 행위보다는 재임 과정에서 벌어진 소위 쿠데타와 학살 문제 아니겠나”라며 제대로 된 사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전두환 씨가 사망하던 날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 광주 시민군 이광영씨 얘기를 여러분도 아실 것”이라며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람을 수백 명씩 학살하고 국가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람은 평생 호의호식하다가 천수까지 누리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이씨가) 정말 사과하는 맘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으면 광주 이광영 시민군에 대해 한마디라도 했을 것”이라며 “여전히 전두환씨가 생전에 취했던 태도처럼 ‘내가 뭘 잘못했냐, 심지어 난 그런 일 없다’ 이런 태도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호남 지역 민심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 후보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호남 일정 동행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 “다음에는 같이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제가 (이 전 대표에게 앞서) ‘전남과 광주 일대에 간다’고 전화는 드렸는데 원래 잡힌 일정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라. (이번) 일정을 최근에 잡아서 미리 조정을 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 [속보] 전두환 측 “이순자, 5·18 사과한 것 아니다”

    [속보] 전두환 측 “이순자, 5·18 사과한 것 아니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가 사망 닷새째인 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 임시안치됐다. 유해가 향할 장지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자택에 당분간 머물게 된 것이다. 전씨는 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받았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이순자씨는 영결식장에서 유족 대표로 나와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전 대통령 측은 이순자 씨가 대리 사죄한 대상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나 유족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기자들과 만나 “기사를 보니 5·18 단체들이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이씨가) 5·18 관련해서 말씀하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분명히 재임 중이라고 말했다”라며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씨는 전씨가 대통령으로서 ‘재임 중’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사죄한 것이며, 5·18은 전씨의 취임일인 1980년 9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발인…이순자, 41년 만의 ‘대리사과’

    사죄 없이 떠난 전두환 발인…이순자, 41년 만의 ‘대리사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27일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소하게 치러졌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가족을 대신해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께 남편을 대신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전씨는 생전 5·18 비극에 대한 한 마디의 사과 없이 떠났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층에서 열렸다. 전씨의 장례는 5일간의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유족 50여명과 종교인, 일부 5공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이씨는 유족 대표로 나와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난 후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며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전씨 측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이씨는 “남편이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며 “화장해서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유해를) 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에 앞서 추도사에 나선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은 “임기 마치는 날 청와대에서 걸어 나온 최초의 대통령”라고 추켜세우며 “(전씨가) 지극히 사랑한 대한민국은 (전) 대통령의 업적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겨뤄 나간다”라고 강조했다. 영결식에는 부인 이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 씨, 딸 효선씨, 재용씨 부인인 박상아씨 등 가족 외에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전씨 사자명예훼손 재판 법률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도 함께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전 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를 제외한 현역 정치권 인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있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이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된 것과 대비된다. 당시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철희 정무수석,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도 참석했다. 앞서 정부는 전씨 장례에 관해 정부 지원이나 조문, 조화는 일절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빈소 설치와 운구, 영결식, 장지 등 모든 절차를 가족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국가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전씨의 시신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유해는 이후 연희동 자택으로 옮겨져 장지가 정해질 때까지 자택에 임시 안치된다.
  • 이재명 “전두환 후예 국힘, 다시 권력 갖겠다고 발악”

    이재명 “전두환 후예 국힘, 다시 권력 갖겠다고 발악”

    “민주당 3기 정부, 촛불혁명 기대치 충족 못해”“거짓말로 음해하면 비공감 눌러달라”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내세운 국민의힘에 대해 “전두환 민정당의 후예, 후신들이 다시 권력을 가져보겠다고 저렇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면서 “발악한다”고 비판했다. “전두환, 미안하단 말 안 하고 잘 먹고 잘 살다 가버려” 이 후보는 이날 ‘매타버스’(매주타는 민생버스)를 타고 목포 동부시장을 방문하는 길에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제가 좋은 말을 써야 해서 ‘노력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옛날식으로 하면 ‘발악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은 안 한 것으로 하겠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당일 생을 마감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광영씨를 전날 조문한 것과 관련, “평생 호사를 누렸던 그 사람은 천수를 다하고 저세상으로 갔는데 42년전 허리에 총을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평생 고통 속에 살다가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분은 가시면서 오히려 본인이 ‘죄송하다, 사과한다,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가셨다”면서 “그런데 전두환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말 안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버렸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댓글을 많이 써주고 커뮤니티에 글도 써달라”면서 “내가 무슨 부정 저질렀느니 하고 거짓말로 음해를 하면 아니라고 비공감을 한번 눌러달라. 작은 실천이 모여서 큰 강물이 된다”고 당부했다.“집값 문제, 결과에 무한책임 져야” 그는 또 “촛불혁명을 통해 새 정부를 만들었는데 국민이 기대하는 기대치는 정말 높았고 우리 민주당 3기 정부는 그것을 다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의도가 좋고 열심히 했더라도 결과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는 게 정치다. 집값 문제도, 서민 삶이 팍팍해진 것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타버스로 광주·전남을 순회하는 것과 관련, “여러분이 하는 말씀을 많이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면서 “우리가 부족했던 것을 많이 반성하고 잘못한 것은 사죄드리며 새롭게 출발해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난 8월 발표한 경인선 지하화 공약과 관련,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에 대한 질문에는 “도시를 양분하는 경인선을 지하화하고 택지를 개발하면 도시 전체도 좋아지고 집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택지 개발해서 집을 짓되 분양받을 사람은 건물만 싸게 분양받고 임대료만 내고 살겠다고 하면 30평형대 4인 가족까지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규모로 해서 다양한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안방 호남서 ‘이재명 민주당’ 공식화출발은 목포, 28일엔 심장 광주로 이 후보는 이날부터 나흘간 민주당 심장부인 호남 곳곳을 돌며 텃밭 표심 갈이에 나섰다. 매 주말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타고 지역 구석구석을 도는 전국 민심 투어의 일환이다. 선대위의 전면적 쇄신을 선언한 만큼 안방인 호남에서 ‘이재명의 민주당’ 출범을 공식화하고 흩어진 지지층을 결속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선대위에 따르면 이 후보가 나흘간 호남에서 총 이동하는 거리는 1300㎞다. 광주와 전남에 있는 모든 지역구를 1곳도 빠짐없이 들르는 동선이다. 출발지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다. 이어 전남 신안과 해남, 장흥, 강진, 여수 등을 훑고 28일 호남의 심장부 광주로 향한다. 이날 광주에서는 첫 지역 선대위 출범식이 열린다. 2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방식의 ‘전국민 선대위 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당초 선대위는 공식 일정을 3박 4일로 계획했지만, 이 후보가 전날 밤 5·18 당시 헬기사격 증인인 고(故) 이광영씨를 조문하기 위해 급히 광주로 내려가면서 사실상 4박 5일 일정이 됐다.
  • 김제동, 이준석에 대놓고 “저 싫어하죠?”

    김제동, 이준석에 대놓고 “저 싫어하죠?”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의 대타 진행자로 나선 방송인 김제동씨가 26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만났다. 이날 인터뷰 분위기는 김씨가 연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측과 묘한 신경전을 벌인 것과 달리 화기애애했다. 김씨는 당내 청년 인사 사이에서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의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는 보도를 언급했다. 이준석·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김한길 새시대위원장 등으로 꾸려진 인사가 ‘신선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충분히 평가할 만한 시각이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김제동씨를 놓고 비유하자면, 김제동씨가 방송을 진행해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김제동 씨는 이런 평가에 익숙하시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씨는 “저 싫어하죠?”라며 웃었다. 이 대표는 “나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맨날 댓글 보면 욕하는 사람 있다. 그런데 그게 국민의 사랑을 받고 사는 방송인과 정치인의 숙명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에 김씨는 “또 이렇게 위로를 받는다”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김씨는 “어떤 프로그램에 나가서 ‘다음에 또 보자’고 그랬더니 ‘싫어요. 안 나올 거에요’ 그랬다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어떠신가?”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김제동씨가 다시 이거 진행할 건가?”라고 되물었고, 김씨는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제가 말할 수 있다. 싫어요. 안 볼 거예요”라며 웃었다. 김 씨는 이어 “사실 보고 싶은데 못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고 이 대표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김제동씨는 지난 24일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김경진 전 의원과도 윤 후보의 전두환 씨 조문 관련 발언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김 전 의원은 윤석열 대선 경선 캠프 대외협력특보를 지냈다. 당시 김씨는 김 전 의원에게 “(윤 후보가) ‘조문 가야 되지 않겠나?’ 하다가 안 가는 걸로 바뀌었다고 해서 지금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말이 조금 애매모호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은 “윤 후보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라면서 “아마 순간 명확한 의사표시를 못 하고 준비 일정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보고 검토하겠다,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런 뉘앙스로 얘기를 하셨던 것 같다. 이후 다른 의원들과 의논한 후 안 가는 것이 맞겠다고 해서, 그렇게 분명히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씨는 “김 전 의원은 분명한 입장이라고 하셨는데, 조문 관련 문제도 그렇고 사과 문제도,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한다든지 사람들에게 분명한 입장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재차 문제삼았다. 이에 김 전 의원은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윤 후보는 전두환 씨 조문 안 가겠다는 것이 지금 분명한 입장”이라며 “또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 이런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과는 다른 반응을 자꾸 보이게 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거듭 윤 후보의 태도를 지적했다.
  • 대구지역 5·18 유공자, 전두환씨 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1명당 2억여원

    대구지역 5·18 유공자, 전두환씨 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1명당 2억여원

    대구에 사는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2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을 낸 원고는 5·18 당시 지역 대학에서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고문 등을 당한 계명대생 16명과 그 가족 등 109명이다. 원고들은 “영장 없이 체포·감금돼 고문을 당하고, 출소한 뒤에서 불법 사찰 등을 당했다”며 국가가 직접 피해자(16명) 1명당 2억 100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애초 국가뿐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도 소송을 낼 방침이었다. 그러나 그가 최근 사망하면서 피고에서 제외했다. 맑은뜻 김무락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5·18 당시 대구에서도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한 치열한 저항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신군부의 범죄행위가 5·18 유공자와 그 가족의 삶에 초래한 불행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가해자는 천수 누리고” 이재명, 5·18피해자 조문…매타버스 호남행

    “가해자는 천수 누리고” 이재명, 5·18피해자 조문…매타버스 호남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5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당일 스스로 세상을 떠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광영씨의 빈소를 찾아 넋을 기렸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역사와 진실의 법정에는 시효가 없다”면서 “철저하게 진상 규명을 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상자 후송 중 총상 입어 하반신 마비고인은 5·18 당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전씨가 사망한 지난 23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총상 후유증으로 고통에 시달리다 떠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조계종 승려였던 이씨는 1980년 5월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광주 곳곳에서 벌어지는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했다. 적십자봉사단에 입단한 그는 부상자를 실어나르고, 의약품과 혈액을 모으는 활동을 하다 5월 21일 구시청 사거리에서 잠복 중이던 군인이 연발로 쏜 총에 허리를 맞았다. 인근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총탄 파편이 몸속에 그대로 남아 평생을 하반신 불구로 살아야 했다. 1996년 파편 제거 수술을 받긴 했으나 진통제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광주 헬기사격 부상자 이송” 증언 그런 상황에서도 이씨는 신군부가 왜곡한 5·18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5·18 부상자들의 모임을 처음으로 조직할 때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고 조비오 신부와 함께 계엄군의 헬기 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타고 있던 적십자 봉사단 차량을 향해 헬기가 따라오며 집중적으로 사격했다”며 “일행 중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젊은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욕창에 걸리는 건 다반사였고,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해 늘 어려운 형편이었다. 어떻게든 후유증을 치료해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생활해보기도 했지만, 그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지난 22일 “나의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재명, 4박 5일간 ‘매타버스’ 호남행이 후보는 고인을 기리며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이 지켜지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시는 이런 일들을 꿈꿀 수도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전씨의 죽음을 두고는 “가해자는 평생을 처벌받지도 않고 호사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하고 갔다”며 “오히려 피해자가 ‘죄송하다’, ‘사과한다’ 말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고 언급했다. 조문을 마친 이 후보는 오는 29일까지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타고 광주와 전남 방문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선대위에 따르면 이 후보가 나흘간 호남에서 총 이동하는 거리는 1300㎞다. 광주와 전남에 있는 모든 지역구를 1곳도 빠짐없이 들르는 동선이다. 출발지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다. 이어 전남 신안과 해남, 장흥, 강진, 여수 등을 훑고 28일 호남의 심장부 광주로 향한다. 이날 광주에서는 첫 지역 선대위 출범식이 열린다. 2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방식의 ‘전국민 선대위 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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