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민주화운동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스트리트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상가 전환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고등법원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재생 에너지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351
  • 고함·욕설 난무…여­야 치열한 공방/비자금 정국…국회본회의 중계

    ◎DJ 6공서 거액 수수설 해명 요구­민자/“이젠 92년 대선자금 밝힐 차례” 공세/3야 1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은 「4분 자유발언」을 통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92년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특히 민자당과 국민회의는 각각 5명과 6명의 소속의원들을 단상에 내세워 상대측을 맹렬히 공격,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선공은 민자당이 폈다.황명수 의원은 『야당지도자가 입만 열면 노태우씨를 광주학살의 원흉이라고 하는데 그에게 돈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공격했다.황의원은 『지난 87년 대선때 김대중씨는 국민들의 후보단일화 여망을 저버리고 평민당을 창당,노씨가 정권을 잡게 함으로써 오늘날 전직대통령이 구속되는 비극적 사태를 잉태했다』고 비난했다.황의원은 이어 『김총재는 당시 평민당을 창당하면서 여권으로부터 3백억원을 받았으며 6공 때인 90년3월에는 중간평가를 유보하는 조건으로 노씨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박주천 의원은 『국민회의가 검은 돈을 받았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민족의 사표인 김구 선생을 팔고 있다』고 비난했다.박의원은 『김총재가 받았다는 20억원은 중소기업인들도 쉽게 만질 수 없는 거금』이라면서 『노씨 사건을 정치권 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국민회의를 압박했다.박의원은 이어 『김총재는 고해성사를 했다면서 마치 모든 것을 사면받은 듯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어느 국민이 이를 믿겠느냐』고 힐난하고 『국민회의측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것은 비자금정국을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명환 의원은 국민회의 한화갑 의원을 겨냥,『민족의 사표인 김구선생을 욕되게 한 데 대해 즉각 사죄하라』고 촉구했다.이어 『노씨의 전재산을 몰수,이른바 「민주화운동재단」을 만들어 5·18희생자 위로사업과 복지사업에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자당이 김대중 총재에게 직격탄을 쏘아대자 국민회의측은 김영삼 대통령을 집중공격하고 나섰다.황명수의원의 뒤를 이어 등단한 김영진 의원은 『노씨의 부정축재는 3당야합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반박했다.이어 『김총재가 20억원을 받은 사실을 밝힌 것은 자신의 명예보다 역사와 국민이 소중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힐 차례』라고 주장했다. 장영달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김대통령은 노씨와 공범관계에 있으면서 야당동지 살해공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맹비난 했다. 이윤수 의원은 『한 푼도 안받았다는 김대통령의 말은 소와 개가 웃을 일』이라고 비꼬았다.이의원은 『이번 수사를 노씨 개인의 부정축재로 몰기 위해 재벌들을 줄줄이 소환,짜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중단한 것이나 서석재전장관의 발언파문을 막은 것은 모두 청와대의 지시』라며 『김대통령은 지금이라도 3당야합 자금과 대선자금,정권인수자금을 공개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정상용 의원은 여권의 김대중 총재 퇴진요구에 대해 『김대통령이 비자금 정국을 악용,정치술수를 부리려 하고 있다』면서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자당과 국민회의의 원색적인 비난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 양측을 싸잡아 비난하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격도 거세게 터져나왔다.민주당의 박석무 의원은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검은 돈을 받은 것은 제쳐두고 많이 받고 덜 받고의 문제로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어 가치관의 혼란과 국가기강의 붕괴위기가 초래되고 있다』고 질타했다.박의원은 이어 『이제라도 검찰은 김옥숙씨와 이원조·박철언씨등 노씨의 친인척들에 대해 수사해 진실을 밝혀야 하며 김대통령은 즉각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정기호 의원도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전부 남의 탓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노씨 비자금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의원은 또 『노씨가 파렴치범인 것이 드러났으니 전직대통령으로서의 공헌을 참작했다는 검찰의 12·12사건 불기소처분 논리는 이유가 없게 됐다』면서 즉각 12·12사건 관련자 기소문제를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의 김진영 의원은 일본 각료의 잇따른 망언이 현정권의 도덕성 실추로 국가기강이 추락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의원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일본 각료의 망언이 6차례나 거듭됐으며 강택민 중국주석도 방한동안 우리나라를 반도로 표현했다』면서 『이처럼 주변국들이 최근 우리나라를 얕잡아보는 언동이 계속되는 것은 현정권의 도덕성이 실추된 때문』이라고 말했다.
  •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광주시,제정안 입법예고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관한 조례안」을 15일 입법예고했다.시는 80년 5월18일을 전후해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그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5월18일을 국가 기념일 제정에 앞서 시 기념일로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례안은 기념식 및 추모제와 민주화운동 관련 문화행사,민주시민상 시상,기타 민주화운동을 기념할 수 있는 행사 등의 경비를 시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다.
  • 5·18 민주화운동 시 기념일로 제정/광주시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시는 24일 연내에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5월18일을 시 기념일로 제정하고 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제정할 것을 건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이달중에 5·18 기념일 제정에 따른 의견을 수렴,조례 입법예고를 하고 11월중 시정 조정의원회심의·시의회 조례안 승인신청을 거쳐 조례를 제정한 뒤 16주년 기념행사부터 시 주관으로 치를 계획이다. 시는 5·18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해 5·18묘역 성역화사업이 끝나는대로 국립묘지승격을 추진키로 했다.
  • 19일 본회의 정치분야(의정중계)

    ◎국민 자발참여속 상식따라 개혁­이총리/펀중인사 시정할 「천문회」 도입 용의는/동화은행 비리 철저수사뒤 엄정처리 ▷질문◁ ◇최형우 의원(민자)=1인 중심의 보스정치,가부장적인 낡은 정치문화속에서 정치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각 지역의 행정권과 의회를 특정정파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특정정파의 압력으로부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밝혀라.이제 개혁의 대상은 국민의 삶의 현장으로 옮겨져야 한다.행정부가 계획하는 개혁의 구체적 방향은 무엇인가. ◇김상현 의원(국민회의)=국민을 위한 생산적 정치로 변화를 가져다 주는 유일한 해결책은 영수회담을 정례화하는 것이다.증거인멸과 도피우려가 없는 최락도·박은태 의원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한다.지역갈등 해소와 인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위직·군장성·공영방송 사장등에 대해 「인사청문회」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이부영 의원(민주)=이 나라를 주도하는 세사람의 정치지도자는 국민이 마치 대통령만을 뽑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시민정치시대 개막을 위해 3김정치시대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양순직 의원(자민련)=정실인사를 막기 위해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잇단 대북정책 실패로 국가위신이 여지 없이 추락됐는데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 것인가.분권화 다원화돼 가는 사회질서를 올바로 담아내는 민주제도인 내각제 개헌문제를 공론에 부칠 것을 주장한다. ◇이상재 의원(민자)=개혁을 제대로 실천할 자세가 안된 구태의연한 내각이라면 한시 바삐 물러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국민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기이한 현상을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김길홍 의원(민자)=정부안에 관계장관등으로 구성된 정부대책회의를 신설하거나 운영할 용의는.개혁이 표적사정과 정치보복이었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한 총리의 견해는. ◇정상용 의원(국민회의)=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면 학살자들의 훈·포장은 박탈·회수돼야 한다.폭도로,용공으로,내란혐의로 규정돼 있는 광주시민을재심을 통해 무죄선고를 해서 명예회복을 시켜주어야 한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박계동 의원(민주)=12·12와 5·18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용의는.현정부 집권 2년반동안 구속된 양심수 1천1백명과 수배자 1백49명을 전원 석방 또는 수배해제할 의사는. ◇박희부 의원(민자)=군사정부의 민족자존 부재정책이 일본총리 망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한일협정체결에 참여했던 책임자의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하며 협정과 관련한 미공개자료를 공개할 용의는. ▷답변◁ ◇이홍구 국무총리=여야 지도자들이 대화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그러나 총리가 영수회담을 건의하는 것 보다는 국회에서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부는 앞으로도 개혁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다만 개혁추진과정에서 일부 계층의 불만이 곧바로 표출되는 데 반해 개혁작업의 성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나게 마련이다.향후 개혁방안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상식과 순리에 따라 추진하게 될 것이다. 세대교체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원론적인 얘기이며 특정인사를 배제하는 인위적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다만 어느 시대에나 시간이 가면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급격한 전환기에는 그에 맞는 논리에 맞춰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안우만 법무부장관=검찰은 동화은행 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한뒤 혐의 유무를 밝혔고,혐의가 인정되는 사례는 엄정하게 처리했다.5·18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재심제도를 통해 명예회복을 시키는 문제와 관련해 재심제도는 극히 제한적인 비상구제제도이고 법원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김용태 내무부장관=국가경찰제와 자치경찰제는 장단점이 있다.우리나라처럼 범죄가 지능화,기동·광역화하고 남북이 대치한 안보상황,지방자치체의 재정형편등을 감안할 때 국가경찰제의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 민자­국민회의 양당대표 국회연설 비교

    ◎국정진단·처방 확연한 시각차/화합정치·민생개혁·세대교체 다짐­민자당/“세대교체 아닌 세력교체 필요” 주장­국민회의/대북정책·경제현안 해결방법은 대동소이 국회 본회의 정당대표연설 첫날인 17일 민자당 김윤환 대표위원과 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는 국정 현안에 관한 진단과 처방을 놓고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내 앞으로 여야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여야관계 파란 예고 ○…김대표는 집권당으로서 추구할 방향으로 「통합정치」를 제시한 반면 정부총재는 집권당의 정치를 「부실정치」로 규정했다.문민정부의 개혁에 대해서도 김대표는 『일부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비리척결등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으나 정부총재는 『표적사정등으로 완전 실패작』이라고 깎아내렸다.이처럼 상반된 인식에서 나온 대표연설은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방향을 달리했다. 우선 현 정국의 진단과 처방에서 김대표는 『정권획득에만 집착하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며 야당이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그 책임을 돌렸다.치유책으로는「화합과 통합의 정치」「국민이 동참하는 개혁」「3김시대 청산의 세대교체」등을 제시했다.물론 『민자당부터 달라지겠다』고 전제를 달았다. 정부총재는 『김영삼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현정권의 국가경영 능력 부족이 위기를 자초했다』고 주장했다.정부총재는 『국민은 6·27지방선거에서 현정권의 오만과 독선,PK(부산·경남)세력의 권력독점을 준엄하게 심판했다』면서 『지역할거주의 역시 민자당의 분열로 더 악화됐다』고 비판했다.따라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력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맞섰다. ○민자당부터 변할 것 5·18 문제는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항목.김대표는 『광주문제 진상조사특위의 청문회에서 진상을 밝혀냈고,당시 야당지도자들은 모든 시비를 매듭짓겠다고 약속했다』고 상기시킨 뒤 소급입법인 특별법의 제정요구는 부당하다고 지적했다.정부총재는 『죄지은 사람은 용서하되 죄는 용서하지 말자』면서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당시 야당과 합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서로가 인식을 공유한 가운데 김대표는 『국민의 공감이 확보된 상황에서 자존심 있는 정책을 펴라』고 강조했고 정부총재는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정부로 일원화하되 논의와 접촉의 창구는 민간에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로가 보수 자처 서로가 「보수」라고 자처한 대목도 볼만했다.김대표는 『민자당은 자유민주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모든 안정희구세력을 보호하는 국민적 정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총재는 『국민회의가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도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현안 등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지원,각종 규제완화,농어촌 지원확대,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대동소이한 해법을 제시했다. ◎민자당 김윤환 대표 국회연설 요지 지금 우리 정치는 위기다.국민통합이라는 최고목표는 실종되고 정권획득에만 집착해 있다. 우리 현대사의 진전에 3김 시대가 나름대로 많은 기여를 했다.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언제까지 30년 가까이 똑 같은 구도로 가야 하느냐에 대해 큰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세대교체에 대한 국민의 여망은 무르익었다. 민자당은 국민통합의 구심체로서 화합의 큰 정치를 추구해 나갈 것이다.민자당은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아니라 대다수 중산층과 안정희구세력의 결집체다.경제발전세력과 민주화추진세력이 함께 모인 정당이다.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 지역감정 치유,지역간 균형개발,인재의 고른 등용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계층간 갈등해소를 위해 비리와 부조리를 척결,사회정의를 실현시키는 게 급선무다.개혁정책의 참된 목표도 그것이었다.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과 건전한 기업활동은 보호할 것이다. 국민대화합을 위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과거와의 화해다.과거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다.그간 개혁과정에서 소외됐던 많은 사람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봉사할 자세와 경륜을 갖추었다면 포용해야 한다.그런 사람들이 자유민주세력의 결집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기회를 줄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은 나라의 내일을 위해 중요하다.진상은 이미7년전 13대 국회에서 이루어졌고 희생자 명예회복과 보상,기념사업도 실시됐다.하지만 헌법상 소급입법은 불가능하다.민주사회의 근간을 해치고 심각한 정치적·법률적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에서 관련자들이 제기한 위헌소송을 심리하고 있다.헌재 결정을 기다려 이 문제를 매듭지을 일이다. 앞으로의 개혁은 실제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민생개혁이 될 것이다.이를 위해 당내에 민생개혁추진특위를 설치하겠다.급격한 제도변경이나 새로운 제도 도입은 국민의 동의를 거치겠다. 기업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기업과 중산층의 세금부담을 경감시키겠다.농어촌구조조정 작업이 98년 완료된 뒤에도 농업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2단계 구조조정사업을 추진하겠다.추곡은 WTO로 물량증가가 어렵지만 농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사실상 작년수준 이상을 수매하도록 하겠다. 대북정책은 북의 대남전략이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그간의 일부 대북정책 혼선을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북한을 돕는 문제도 북한의 공개적 지원요청과 국민의 공감대가 확보돼야만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른바 보수논쟁이 일고 있다.진정한 보수는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안정속에 꾸준히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개혁없는 보수는 수구일 뿐이며 과거를 일방적으로 부정만 하던 세력도 진정한 보수가 될 수 없다.민자당만이 자유민주체제를 발전시키고 시장경제에 바탕하여 중산층과 안정희구세력을 보호하는 국민정당이다.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 국회연설 요지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개막을 앞두고 세계일류국가로 도약하느냐 못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김영삼정부는 이같은 시대적 과제를 갖고 출발,초반에 국민들로부터 9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지금은 국민의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좌절로 변했다.대통령의 국가경영능력 정책우선순위에 대한 판단력마저 의심받고 있다. 이 정부는 민족의 비극인 5·18의 진실을 은폐시키고 있다.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은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직무유기다.국민회의는 5·18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를 제안했다.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상이 밝혀지고 광주시민의 명예가 회복되면 가해자는 용서될 수 있다.김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 6대 권력기관인 안기부·기무사·법무부·검찰청·경찰청·국세청의 책임자들이 한 지역 출신이다.육참총장·공참총장·해병대 사령관도 마찬가지다.때문에 세간에서는 이 정권을 「동창회 정권」이라고 한다. 현 정권은 지금 제1야당과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소속의원과 자치단체장·지방의원에 대한 사정은 표적수사이자 국민회의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다.야당탄압을 즉각 중지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김대통령은 표적수사에 앞서 자기사정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기 손으로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것은 특정인을 겨냥한 「표적 세대교체」다.교체대상은 「세대」가 아닌 「세력」이다.35년간 지속돼 온 권위주의와 기득권 세력을 참다운 민주세력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대북정책의 경우 ▲북한이 흡수통일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서두르지 말고 ▲미·일등 우방이 북한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없도록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또 국내정치에 악용하거나 정부가 독점해서도 안된다.외교의 중심은 통상외교에 있음을 명심하고 대표적 불평등 조약인 한미행정협정의 개정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경제 5개년계획은 「신한국 건설」처럼 구호로만 남아 용두사미로 끝났다.5년후로 다가온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해 「선진재정 세출구조」를 도입하고 노인복지·장애인·청소년·여성·중소기업문제등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WTO체제에 대응한 농정제체도 확립,농촌을 살려야 한다. 재정권과 인사권이 없는 지방정부는 창의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중앙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최대과제는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다.모든 개혁은 정치개혁에서 시작되며 정치개혁은 정권교체에서 시작된다.국민회의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중도정당으로서 국민과 함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양당 대표연설 반응·이모저모/민자당­개혁 재천명… 책임정치 모습 보였다/연설직후 김 대표에 축하전하 쇄도/국민회의­민자당대표 연설엔 일체 언급안해/건전야당 입장 국민에 잘 전달했다 ○…민자당은 김윤환 대표의 연설에 대해 『국정전반을 폭넓게 언급,책임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였다』면서 만족스러워 했다.국민회의나 자민련과 차별되는 「진정한 보수」임을 자임하면서 안정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개혁작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재삼 확인시켜주었다는 평가다.반면 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의 연설에 대해서는 『구태의연하다』고 혹평. 지난 85년 대정부질문을 한뒤 처음 본회의 단상에 선 김대표는 10년만의 국회연설에 감회가 새로운 듯 연설이 끝난 뒤에도 다소 상기된 표정.김대표측은 『TV로 연설장면을 지켜본 많은 인사의 축하전화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한편 손학규 대변인은 국민회의 정부총재의 연설에 대해 『정권장악에만 눈이 어두워 화해와 화합을 거부하고대결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손대변인은 『김대중 총재를 대신한 연설이라는 점은 인정되지만 정부총재가 세대교체의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는 것은 특히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맞서 국민회의측은 정부총재의 연설만 긍정평가했을 뿐 김대표의 연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않는 것으로 비난을 대신했다.김대중총재는 이날 동교동자택에서 TV로 정부총재의 연설을 지켜본 뒤 『아주 훌륭하게 잘했다』고 만족해 했다고 박지원대변인이 전했다.김총재는 『정부총재가 당의 입장을 잘 설명해 선명하고 건전한 야당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였다』고 평가. 한편 정부총재는 이날 연설에서 원고에 없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총재의 회동을 전격 제의해 주목됐다.이와 관련,정부총재의 한 측근은 『연설초안에는 회동제의가 있었으나 2주전 당내 연설준비소위 회의에서 제외됐었다』면서 『오늘 아침 부랴부랴 삽입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해 김총재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 “월드컵 유치” 국민적 성원을/배성국 체육부 차장(서울논단)

    『세계 스포츠계를 상대로 한 한국의 조용한 혁명이 일고 있다』­. 지난달 29일 구평회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한국대표단이 「2002년 월드컵 개최 신청서」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공식 제출한 뒤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지에 실린 특집기사 내용이다.텔레그라프지의 마이클 캘빈 특파원은 서울발 기사를 통해 『한국의 월드컵 개최 신청은 일본을 밀고 있는 아벨란제 FIFA회장뿐 아니라 국제스포츠의 재정및 정치구조에 대한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며 『21명의 FIFA 집행위원 가운데 개최지 투표때 한국에 찬성표를 던지는 위원은 국제스포츠의 민주화운동 지지자로 간주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지난달 28일 일본에 이어 다음날 한국이 유치신청서를 냄으로써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유치전 성격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개최지가 결정되는 내년 6월1일 FIFA 집행위원회때까지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건 총력전이 이어질 유치전은 한국의 「명분」과 일본의 「경제실리」가 맞부딪치게될 전망. 유치전에서 기선을 잡은 쪽은 일본이었다.일본은 지난 89년 유치의사를 표명하고 2년뒤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93년엔 15개 유치도시를 확정하고 프로축구(J리그)를 출범시켰다.또 몇해 전부터는 미쓰비시 캐논 후지쓰 등 재벌기업을 스폰서로 내세워 FIFA 재정의 상당부문을 담당하고 있으며 FIFA의 마케팅사인 ISL 지분을 49%나 차지하는등 FIFA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오고 있다.뿐만 아니라 월드컵을 개최할 경우 1백94개국의 FIFA회원국을 한데 묶는 인테넷 통신망을 제공하고 각 경기장에 3차원의 영상시설을 도입해 컴퓨터에 의한 TV중계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한다.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제대국」의 이점을 적극 활용해 월드컵 개최권을 따겠다는 전략이다.이같은 일본의 구상은 아벨란제등 「FIFA 마피아」로 불리는 인사들에게 어느정도 먹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명분」과 「논리」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는 태세다. 90년 유치의사를 밝혔던 한국은 93년 11월 정부가 적극적인 유치를 결정하고 국회도 여야 만장일치로 이를 지원키로 결의,대회 유치를 국민적 사업으로 확산시켰다.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FIFA부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일본추월에 가속이 붙은 상태다. 한국은 일본이 앞선다고 주장하는 시설·조직에 대해 지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이미 세계로부터 제반시설 및 운영능력을 검증받았음을 들어 일축하고 있다. 또 한국은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LA올림픽이 냉전 후유증으로 반쪽대회로 전락한데 반해 88서울올림픽은 1백60개국이 참가,「탈냉전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힘을 싣고 있다.앞으로의 유치활동에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게 되면 남북화해의 전기와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어 축구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FIFA의 설립 취지와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강조할 방침이다. 이제 한국은 명문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와 축구협회,그리고 국민이 하나가 되어 축구사랑의 분위기를 창출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지난달 30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마라도나 공식복귀전에 앞서 아르헨티나의메넴대통령을 초청,월드컵유치의 외교를 벌였던 것과 같이 국가차원의 노력을 꾸준히 견지해 나가는 동시에 국내 정치의 활성화로 안정된 면모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간의 대화무드를 이끌어 부분적으로나마 남북 협조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큰 보탬이 될 듯 싶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의 바탕위에 축구협회와 축구인들은 내년에 열리는 프로리그가 활성화되도록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잦은 TV중계등 국민의 축구열기를 고취시킬 수 있도록 우선은 알찬 내용의 단기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것만이 81년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한 바덴바덴의 대역전 드라마를 재연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 스포츠계의 「조용한 혁명」에 성공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또 아직도 재론의 불씨를 안고 있는 한일공동개최의 협상테이블에서 유리한 입장에 앉을 수 있는 길이다.
  • “5·18청산작업 이렇게 했다”/민화위­국회 광주특위 관계자증언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문제와 피해보상 등은 6공이 출범한 80년대 말 범국민기구로 구성된 「민주화합추진위」(민화위)와 국회 「5공특위」등을 통해 공식으로 처리됐다.이들 기구에 참여했던 인사들로부터 당시의 상황과 「5·18」이 다시 쟁점이 되고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소회를 들어본다. ◎임홍빈 민화위 사회개혁분과 간사·문학사상 발행인/유족회 등 달사자도 화답안 수용 민화위의 가장 큰 업적은 「5·18」의 성격을 「폭동」에서 「민주화투쟁」으로 바로 잡았다는 점이다.가해자,즉 진압군에 대한 평가는 치열한 논란끝에 유보했다.보복의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었다.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압력이 거셌지만 민화위는 한달간의 작업끝에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대국민화합조치를 골자로 한 건의안을 마련해 냈다.이는 시대적으로 최선의 결론이었다.만일 민화위의 결론이 잘못된 것이라면 학생시위등 엄청난 사회혼란이 뒤따랐을 것이다.하지만 5·18유족회등 당사자와 국민들은 모두 민화위의 건의안을 수용했다. 책임있는 정치지도자가 15년이 지난 이 사건을 다시 문제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검찰의 불기소처분도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만일 전전대통령 등 관련자들을 기소해 유죄판결을 내린다면 5공 정권 통치행위 전반에 대한 법적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이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다. ◎김천주 민화위 사회분과 위원·여성단체 협의회장 대행/매듭지든 일 재론… 정치이용 안된다 민화위의 가장 큰 고민은 가해자 처리 문제였다.가해자를 처벌하면 또다른 문제가 뒤따를 것이라는 주장과 이번에 청산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가해자 문제가 나올 것이라는 시각이 논란을 빚었다.나를 포함해 민화위원들은 당시 밤잠을 자지 않으면서 고민했다.민화위의 국민화합을 위한 건의안은 그런 진통끝에 나온 결론이다. 민화위의 결론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그때 문제삼았어야 한다.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5·18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5·18의 아픔은 일부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다.민화위의 결론도 5·18을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깊이 새기자는 것이었다.지금 5·18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이를 부추기는 지 모르겠다.몇몇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5·18을 이용해서는 안된다.이는 깨끗한 정치가 아니다.책임있는 언론이라면 여기에 부화뇌동해서는 안된다.5·18의 주동자가 누구라는 것은 기소를 안해도 국민들이 다 아는 것 아닌가. ◎이민섭 광주특위 민정당 간사·민자당 국회의원/청문회 거쳐 종결… 왜 합의 무시하나 야당측은 민간인들로 구성된 민화위 차원의 규명으로는 광주문제 처리가 미흡하다며 여야가 참여하는 국회차원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이에따라 12차례의 국회 청문회를 통해 최선을 다해 조사했으며 5·18문제는 거를 만큼 걸러졌다.당시 의사진행도 여소야대인 터라 야당소속의 위원장아래 모두가 야당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졌다.평민당·민주당·공화당등 당시 야3당이 한덩어리가 되어 다수를 형성,조사가 끝날 때까지 야당이 주도했다.당시 국민적인 시선이 온통 집중됐던만큼특위는 밤을 새가며 진지하게 진상 규명노력을 했으며 이는 국민 모두가 TV를 통해 직접 목격했던 사실이기도 하다.이제와서 이 모든 노력을 백지화하고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는 얘기밖에 안된다.그렇다면 그 당시의 합의는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김영진 광주특위 현장검증 소위 원장·국민회의 국회의원/진상규명은 법의 심판으로만 가능 광주특위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중단된 상태다.광주특위가 구성될 때만 해도 여소야대의 상황이었다.그러나 90년 3월 3당합당으로 여대야소의 상황으로 바뀌면서 특위활동이 유야무야 돼갔다.과반수인 민자당 의원들이 특위활동에 불참,성원미달로 회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보고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당시 평민당은 4백쪽짜리 5·18백서를 마련했으나 민자당이 다수인 특위에서 채택되지 못했다.따라서 『이미 매듭지은 사건을 다시 들추고 있다』는 민자당의 논리는 이치에 어긋난다. 더구나 5·18에 대한 진상규명은 법의 심판으로서만 가능하다.새정치국민회의 역시 5·18관련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광주특위와 검찰수사를 통해 드러난 실상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한 뒤 국민화합차원에서 사면조치하는 게 순리다.
  • 5·18 특별법 공방/쟁점과 배경

    ◎여­청산합의 잊었나/야­진상규명 덜끝나/“용서” 동의한 DJ 해명 요구­민자/총선호재 판단… 몰아붙이기­국민회의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다소 처진 분위기속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이 주장하는 5·18 관련 특별법 제정 문제가 시시각각 정기국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여야의 시각차가 워낙 큰 데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해까지 개입하는 듯한 징후도 나타나고 있어 정치권의 공방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자당은 「용서」에 동의했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발언번복을 들어 야당측의 요구를 「정치목적의 선전공세」로 치부하며 학생·교수 등과의 연계가능성 차단에 나섰다. 손학규 대변인은 3일 『김총재는 정부를 공격하기에 앞서 5·18관련자 처벌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변경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특별법제정 및 관련자 처벌 요구의 논리적 모순을 거론했다. 한마디로 지난 89년 여야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청문회 증언과 정호용 의원의 의원직사퇴,보상법제정등으로 종결짓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총재도 당시 평민당총재로서 합의에 참여해 놓고 이제와서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정치도의에 어긋나고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처사라는 얘기다. 특히 김총재가 14대 대선 직전인 92년 12월2일 관훈클럽토론회에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과거를 과감히 용서하고 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대목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국민회의가 『정부는 진상규명이나 관련자 처벌,피해자들의 명예회복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한데 대해 민자당은 『진상규명은 검찰의 5·18수사로,명예회복은 광주관련자 전과말소와 보상법제정 등으로 이루어진 상태』라고 반박했다.전직대통령 등의 처벌여부와 직결된 검찰의 불기소처분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출돼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최종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법적 영역이지 정치적인 타협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야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기소를 얘기하지만 진상규명은 국회와 검찰수사에서 이루어진 상태』라면서 『사법부는 재판을 하는 곳이지 진상규명에 동원되는 기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삼재 사무총장도 『우리는 냉정한 판단으로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해 정기국회에서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 등 야권은 「5·18」의 진정한 진상규명은 법의 심판이 내려질 때만이 완결된다는 주장이다.관련자들을 우선 재판에 회부,유죄여부를 가린 뒤 처벌여부를 따지자는 것이다. 이미 5공청문회와 검찰수사등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5공특위가 공식 종결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또 김대중총재가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김영삼대통령도 과거 야당 총재 때 5·18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일단 국회에 제출한 5·18관련 특별법을 회기안에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회의적이다.다만 학생시위 등으로 5·18문제가 사회이슈화하고 있는 만큼강도 높은 투쟁 자체가 그만큼 내년 총선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공청산」 89년 1노3김 합의로 매듭/6공때 피해보상… 문민정부서 「민주의거」 규정 5·18의 아픈 상처를 달래려는 노력은 87년 7월1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의 광주사태 치유책 마련 지시로부터 시작됐다.노대표의 이같은 지시는 그가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후 88년 1월11일 민주화합 추진위원회(민화위·위원장 이관구)발족으로 이어졌다. 민주발전·민주화합·사회개혁등 3개 분과위로 구성된 민화위는 2월13일 ▲광주 위령탑 건립및 망월동 묘지 공원화 ▲사상자 재신고 접수 ▲유가족 및 부상자에 대한 조속하고 충분한 보상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 및 취업 알선 ▲광주어린이공원 관리권의 유가족단체 이관등 4개 항을 노대표에게 건의하고 해산했다. 노대통령 정권이 출범한 뒤 4월1일 정부는 광주사태 치유방안을 발표하면서 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했다.4월15일 광주를 방문한 노대통령은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노대통령은 11월26일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특별법 제정을 발표했다. 88년 7월25일 첫 전체회의를 갖고 활동을 개시한 국회 광주특위(위원장 문동환)는 11월18일 청문회를 시작했다.광주특위는 11월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백담사에 머무르고 있던 전전대통령을 89년 12월31일 광주특위·5공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세우기도 했다. 광주특위는 89년 2월24일까지 모두 6차례 청문회를 열어 65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89년 2월27일 정부는 중앙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지원협의회」,광주에 광주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회」를 각각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본격적 보상작업에 착수했다.3월10일 노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양자 회동에서 상무대의 시민공원화 등 치유책에 일부 합의했다. 드디어 89년 12월15일노대통령과 당시 김대중 평민당·김영삼민주당·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네 정치지도자들은 5·18을 비롯,과거청산에 대한 대타협의 내용을 담은 11개항의 합의문을 도출해 냈다.이 합의문에 따라 그해말까지 전전대통령의 국회 증언과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가 이루어졌다.정치적으로 5·18문제가 매듭된 것이다.그 바탕위에 90년 1월 전격적인 여야 3당 합당이 단행되기도 했다. 90년 4월20일에는 5·18 사상자들에 대한 생활안정금 지급이 시작됐다.사망자 유족과 중상자 2백78명에게는 3천만원씩,일반 상이자 5백85명에게는 1천만원씩,일반 경상자 4백39명에게는 5백만원씩이 지급됐다.7월30일에는 광주보상법이 국회를 통과해 8월17일부터 보상신청 접수가 시작됐다.8월29일 광주보상지원위원회가 구성돼 광주사태 피해자들에 대해 모두 1천5백87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차원을 넘어 광주의거로 규정됨으로써 4·19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게 됐다.정부는 5월2일 5·18을 민주의거로 규정하기로 했다.5월4일에는 광주사태와 관련해 형을 선고받은 6백16명에 대한 전과를 말소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김대통령은 5월13일 5·18과 관련한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사태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와 전남도청 이전등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5·18」처리관련 일지 ▲87·7·1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 광주사태 치유책 마련 지시. ▲88·1·11 민화위발족. ▲〃2·23 민화위 4개항 건의문 노대통령 당선자에게 제시하고 해산. ▲〃4·1 정부,광주사태 치유방안 발표.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 ▲〃4·15노대통령 광주방문,「광주시민 명예회복 최선」다짐. ▲〃11·18 광주특위 광주청문회 시작. ▲〃11·26 노대통령 특별담화 통해 광주특별법 제정 발표. ▲89·2·24 광주청문회 마감. ▲〃2·27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 마련. ▲〃3·10 노대통령·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 회담에서 치유책 합의. ▲〃12·15 민정·평민·민주·공화 4당 총재 11개항 합의. ▲〃12·31 전두환 전대통령 광주특위·5공특위 연석회의 증언. ▲90·7·30 광주보상법 통과. ▲〃 5·13 김영삼 대통령 5·18관련 특별담화 발표.전남도청 이전하고 그 자리에 기념공원 조성,광주사태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 등.
  • 「5·18 특별법」 여·야 의원 지상공방

    ◎민자당 김형오 의원의 반대론/형사소송법 기본원리 철저 배제/“소급입법 금지” 헌법정신에 위배 5·18 당시 우리 모두는 처참한 심정으로 역사의 비극을 함께 목격했다. 그 당시 가려지지 않은 사법적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인 15년만에 불기소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사건 자체가 사법적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 정치적·역사적 사안임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그리고 검찰의 불기소처분은 적어도 법적 효력에 있어서는 종국적인 것이며 오직 항고나 헌법소원등의 불복절차에 의해서만 재검토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검찰의 불기소 결론이 그 내용에 있어 역사적·정치적으로 절대의,그리고 최후의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훗날 역사가들은 5·18을 검찰의 법적 판단과 다른 각도에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야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5·18특별법 등 3개 법률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힘을 통해 검찰의 사법적 판단을 뒤집고 사건의 역사적 성격도 달리 규정하겠다는 정치적 행위다.특히 이 법은 쿠데타 등 헌정중단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라는 사법처리의 기본전제를 배제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기소독점주의라는 형사소송법 기본원리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률은 우선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헌법에 합치하느냐의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공소시효를 폐기하고 특별검찰부를 설치한 전례는 3차례 있었다.친일파처벌을 위한 48년의 「반민특위특별법」,4·19직후 「반민주인사 처벌을 위한 특별법」,5·16직후 반정부인사를 처벌하기 위한 「국가재건비상조치법」등이다.그러나 이 3차례의 특별입법은 모두 그 당시 헌법에 형식적이나마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13조 1항에서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행 헌법상 소급처벌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은 근거가 없는 처벌장치를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드는 탈법치주의적 전례를 남길 위험성이 있다. 또한 이미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여서 검찰의 불기소결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는지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돼 있다.따라서 5·18에 대한 나름의 역사적·정치적 평가를 사법체계에 강요하면서 권력분립과 사법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한다면 감정이나 정략이 끼어들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따라서 사법처리 여부와 무관하게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이 사건의 역사적 교훈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회의 박상천 의원의 입법론/헌법파괴 용인땐 민주정착 저해/진상규명 없인 국가기강 무너져 정부·여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탄압과 군부일부의 권력찬탈 범죄행위에 대하여 이를 소추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이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다음 3개 법안을 22일 국회에 제출하였다. 미리 밝힐 것은 3개 법안이 모두 헌법의 테두리안에서 실현가능한 대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우리가 내놓은 법안에 위헌적 요소가 있을 때에는 위헌시비에 휘말려 아무런 결실없이 정국경색만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특별검사 9명을 임명하여 광주민주화운동탄압과 권력찬탈 범죄행위에 관한 진상규명과 소추를 담당케하고 ▲민간인 15명으로 광주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희생자중 누락자를 구제하고 국가유공자에 해당하는 자를 선별하여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지정추천을 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권력찬탈범죄행위자 등에 대한 「공소시효문제」와 관련하여,소급입법으로 공소시효를 배제하지 아니하고,이들에 대한 수사와 소추가 실제로 불가능하였던 가해세력의 집권기간(5·6공)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것을 입법화하였다. 원래 공소시효는 국가가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기간에는 그 진행이 정지된다고 할 것이고,이러한 해석은 지난 1·20 헌법재판소결정에서 판시한 당연한 해석이다.이 법은 이러한 당연한 해석을 입법에 의하여 확인한 것임을 밝힌다. 왜 이러한 특별법이 필요한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비폭력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고 국가의 무력을 악용하여 국권을찬탈한 범죄행위를 그대로 묵인한다면,우선 국가기강을 바로 세울 수가 없다.옳든 그르든 힘이 제일이고 돈많은 것이 제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자리잡을 것이다.그리고,헌법파괴행위를 용인하는 것이 되어 나라의 민주정착을 저해하며,불의에 항거하는 민족정신은 손상되어 민족정기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다음,「특별검사법안」은 대통령이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후보중에서 특별검사를 임명하여,5·18 수사는 물론 앞으로 국회가 국정감사,국정조사를 통하여 고발하는 정치적 사건,권력형 부정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도록 하는 법안이다.미국의 특별검사제도를 참고하여 만든 법안임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헌법파괴범죄 등의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안」은,군사반란·내란과 같은 헌법파괴범죄와 유엔의 「집단학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규정된 집단살해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적용을 배제하여 항구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소급입법이 아니고,이 법 통과 이후에 이루어진 범죄에만 적용된다.이러한 법은 프랑스·독일에도 있으며,유엔도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배제 협약」에서 가입국에 대해 특정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적용배제 입법을 의무화하고 있다.
  • 「5·18 특별 법안」 국회 제출/국민회의

    ◎특별검사·공시시효법안 포함 새정치국민회의가 22일 5·18 관련자 기소 등을 위한 3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데 이어 민주당도 23일 「12·12 군사반란및 5·18내란사건 처리특례법」을 제출할 예정이어서 이 문제가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검찰의 사건 관련자 불기소 처분에 대한 위헌신청이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인데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을 문제삼아 소급입법을 하는 자체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야당의 정치공세적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국민회의가 이날 제출한 법안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특별검사임명법」「헌법파괴범죄 등의 공소시효법」등이다. 「5·18특별법」은 지난 80년 5월18일부터 5공화국이 종료된 88년2월24일까지의 8년을 5·18관련자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기간으로 규정토록 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 광주 비엔날레 개막에 부쳐/문병란 시인·조선대 교수

    ◎예향긍지 드높인 세계축제 베니스·상파울루등 지구상에서는 몇군데밖에 없는 격년제 국제미술대회가 마침내 민주의 성지로 알려진 빛고을 광주에서 막을 올리게 되었다. 필자를 위시하여 비전문적인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이 큰 행사가 광주에서 치러지기 전까지는 비엔날레의 명칭이나 의미에 대해 무척 생소하게 여겼다.또한 그 가능성 여부나 투자가치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행사가 별다른 논의 과정이나 치밀한 계획없이 관주도적으로 계획된데 대하여 반대의견이나 비판의 소리도 높아,그 성과가 미지수인 채 설왕설래하는 갈등이 많았다.그러나 이제 그 비판의 시간마저 허락되지않는 개막의 순간과 더불어 주사위가 던져지고 말았다. 소요예산이 1백80억원이니 2백억원이니 하는 것도 무척 할일 많은 이 고장에선 그 국제행사의 큰 의의에 앞서 더 마음쓰이는 일로 심심찮게 부정론이 펼쳐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막의 이 순간,그 부정론이나 안티 비엔날레 성격의 행사까지도 복잡한 사정이 있는 이 도시의 고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면서,지방자치시대 최초의 민선시장의 첫행사로써 고고성을 울린 것이다.우선 박수로써 빛고을의 축제,세계의 경계를 넘어 이 고장에서 행해지는 장장 2개월간의 빛의 축제 문화행사에 환영의 뜻을 보낸다. 예향(예향)광주,그러나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의향(의향)으로서 저항의도시,민주화운동의 괴로운 역사가 숨쉬는 도시 광주,그 현실적 아픔과 고뇌까지도 빛과 선·한마디의 장단과 가락속에서 승화시키고자 한 다목적 성과를 향한 고뇌의 소산이 광주비엔날레이다. 아직도 이 고장 사람들은 민주화운동 과정에 표출된 부정적 요인이 법적으로 청산되지 못한데 대해 서운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있다.최근에는 이를 재론코자하는 대응 차원의 시민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그래서 예기치못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지혜로운 사고가 요청된다. 5·18을 야기시킨 책임자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문제는 광주만의 문제는 아니다.아무쪼록 이 두 큰 사안이 민주적으로 치러져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어내야 하겠다.이는 민·관의 유대와 협력에서 가능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그 고통을 치르면서도 은행하나 파괴하지않고 온전했던 광주시민의 긍지를 살려서 비엔날레가 치러지는 동안 예술행사와 정치적 노력을 병행시키는 슬기를 발휘해야 할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격언이 있듯이 이번 행사의 짧은 준비기간과 경험부족에서 오는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만,이 행사가 일회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예향 광주의 상징적 행사로 정착시킬 장기적 안목의 투자라는 점을 인식하여 행사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것이다. 광주는 이번 행사를 이미지 선양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그렇게 하면 5·18에 대한 새로운 계기도 마련될 수 있다.일등시민의 친절·봉사·질서의식으로 세계속의 광주,광주속의 세계,경계를 넘어 마주잡는 예술올림픽을 정성들여 치르자.
  • 신3김시대 청산 촉구/「71 동지회」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71년 위수령발동때 대학에서 제적·강제징집된 40대 운동권 대학생 출신의 모임인 「71동지회」 회원 10여명은 4일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현 정국에 대한 40대의 역사적 책무를 선언한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5·18 책임자 처벌 및 특별법 제정과 「신3김시대」 청산을 촉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원혜영민주당 의원,장기표21세기 사회발전 연구회장,최열 환경운동 연합 사무총장,손예철 한양대 교수,임춘식 한남대 교수,이광택 산업사회 연구소장,김건만 칠원무역 대표,김영철 고려물산 대표,이대용 공인회계사 등이 참석했다.
  • 김영삼 정부 30개월/김 대통령 어록

    ◎“개혁중단 주장은 손으로 강물 막으려는 것”­93년 4월 15일/“세계화는 구각 탈피,새로 태어나려는 결단”­95년 1월 26일/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것­93년 8월 12일/국제사회엔 적도 친구도 없고 경쟁자만 있다­94년 11월 10일 문민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개혁과 변화」에 대한 대통령의 열의가 높았다.그래서인지 시선을 끈 대통령의 「말」도 유달리 많았다.김영삼 대통령의 「말」을 살피면 문민정부의 통치이념과 철학을 엿볼 수 있으며 국정의 전반적인 기류도 읽을 수 있다.집권 전반기 김대통령의 어록을 간추려본다. ▷93년◁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한다.신한국 창조에는 눈물과 땀이 필요하고 고통이 따른다』­2월25일 대통령 취임사. ▲『부처간 이기주의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2월27일 첫 국무회의.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도 받지 않겠다』『정치자금을 포함해 어떠한 이유로도 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3월5일 기자간담회. ▲『혁명은 누구를 제척하거나 떼어낼 수 있지만 개혁은 모든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4월1일 동아일보 회견. ▲『공직사회에서 돈많은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가 오고 있다』­4월13일 재외공관장을 위한 연설회.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손으로 강물을 막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4월15일 대전의 주요인사 접견. ▲『토지·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4월16일 신경제계획민간위원 조찬.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훗날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는다』­5월13일 5·18관련 담화문.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는 뿌리가 깊어 단시일안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개혁은 결코 일과성,또는 한시적인 것일 수가 없다』『5·18 문제는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7월16일 전남일보 회견. ▲『금융실명제 없이는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이 단절될 수 없으며 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피울 수 없다.이제 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 것이다』­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담화문. ▲『정당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자금은 투명해야 하고 정치지도자들도 자기희생이 필요하다』­9월21일 정기국회 연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갖가지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가 분출하고 있다.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집단행동은 한국병 중의 한국병이다』­10월5일 신경제추진회의. ▷94년◁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공허한 논쟁에 매달릴게 아니라 실질적인 일에서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1월1일 신년 하례서. ▲『세계화와 국제경쟁은 이제 더 이상 사치스런 말이 아니라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이다』­1월6일 연두기자회견문. ▲『정치권이 거듭나지 않고는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더 이상 허송세월할 여유가 없다』­2월15일 민자당 창당 기념연설. ▲『가야할 길은 멀고 달라져야 할 것은 너무도 많은데 지난 날의 체질과 관행이 우리의 발목을잡고 있다』­2월25일 취임1주년 기자회견문. ▲『야망을 가진 사람에게 무한경쟁은 절호의 기회다.그러나 야망은 잠자지 않고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이다』­2월26일 서울대졸업식 치사.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에게는 멸망의 길밖에 없다』­4월17일 신한국인과의 오찬. ▲『나는 필사즉생,필생즉사의 각오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4월28일 현충사 다례행제. ▲『교육개혁은 국민학교 교실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5월2일 전국교육장 연수. ▲『경제외적인 이유로 기업이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정치적 배려로 특혜를 받는 예는 더욱 없을 것이다.그러나 국가와 국민에 누를 끼치는 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6월22일 건설진흥촉진대회. ▲『정부는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8월9일 신경제 추진회의. ▲『세무조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되며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엄정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8월17일 국세행정 실무자 오찬.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되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이 나라의 부정부패는 너무도 뿌리가 깊게 박혔다.로마제국이 망한 것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9월17일 세계한인 상공인 접견.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10월14일 전국여성대회 치사.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이제 「빨리빨리」와 「적당히 그냥」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10월24일 특별담화문. ▲『오늘의 국제사회에서는 적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오직 경쟁자만이 있다』­11월10일 APEC정상회담 출국인사. ▲『모든 나라들이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또 차세대의 번영을 위해 뛰고 있다.이 대열에서 한발짝이라도 뒤지면 우리는 후손들에 의해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11월19일 APEC정상회담 귀국인사. ▲『위대한 국민일수록 역사를 창조하고 불행한 국민은 역사에 끌려다닌다』­12월24일 청와대 국무회의. ▷95년◁ ▲『내가 야당을 하던 시절에는민주주의가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었다.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너무 많고 아무거나 쓴다』­1월6일 연두기자회견. ▲『세계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옛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나고자」하는 결단이며 차세대를 위한 개혁이다』­1월26일 세계화구상 관련 연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후회하는 사람이다.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지난 2년동안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2월25일 취임2주년 기자간담회. ▲『지방선거는 정치인이 아니라 살림꾼을 뽑는 것이다.지방자치제가 결코 정치투쟁의 무대가 돼서는 안된다』­4월17일 서울시순방. ▲『가장 개혁이 안된 곳이 정치와 언론이다.언론은 오보하고도 사과하지 않는다』­4월25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오찬. ▲『임기동안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4월26일 기자간담회. ▲『신문사들은 20∼50%를 무가지로 찍어 전부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신문사가 쓰레기를 줄이자고 한 말은 거짓이다』­6월9일 확대경제장관회의. ▲『차기 대통령은 세대교체된 새인물 중에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또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적절하다』­6월19일 미국 타임지 인터뷰. ▲『지방선거의 결과는 내 부덕의 소치다.변화와 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국민과 함께 하겠다』­7월5일 민자당 의원과의 청와대 조찬.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지도층의 세대교체를 갈망하고 있다.국민적 열망에 비춰 이를 실현하는 것이 나의 책무다』­7월21일 미국 비즈니스위크 인터뷰. ▲『개혁으로 소수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7월27일 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과의 간담회. ▲『두려움없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대도와 정도를 걸어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없다』­8월1일 민자당 상근당직자 및 당무위원 초청 조찬회.
  • 김영삼 정부 30개월/개혁정책 평가­2

    ◎금융·부동산 실명제/경제정의 실현위한 혁명적 조치/비실명 금융거래·부동산투기 쐐기/기업비자금 줄어 공명선거 큰 기여/검은 돈 은신처 「차명계좌」 줄이는게 과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후세의 사가들은 문민정부의 양대 실명제를 「김영삼의 경제개혁」으로 정의할 지 모른다.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우리사회의 오랜 관행인 비실명 금융거래와 명의신탁을 이용한 부동산투기에 쐐기를 박고,경제정의를 한걸음 앞당긴 「혁명적 조치」로 평가된다. 경제개혁 1호,금융실명제는 문민정부 이전부터 첨예한 논쟁이 일었던 사안이다.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과 반대논리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자금이탈로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란 게 우려섞인 반대논리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그같은 반론의 허상을 여지 없이 깨부셨다.금융실명제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연착륙 했다. 93년 8월 12일 대통령의 긴급 경제명령으로 전격 단행된 금융실명제로 30여년의 비실명 금융관행이 종지부를찍고,모든 돈에 꼬리표가 달리게 됐다.금융자산의 이동과 소득발생의 투명성이 한껏 높아지면서 금융소득 종합과세로 이어지는 「금융개혁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정부는 그 해 10월 12일까지 3개월간의 실명전환 유예기간을 주고 이후에 전환하는 계좌에 대해서는 예금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물렸다.1년 뒤마다 과징금을 10%씩 올려 98년 이후에는 증여세 최고세율인 60%까지 확대하고 실명전환 계좌 중 소득이 불분명한 거액계좌에 대해서는 자금출처 조사를 병행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그해 10월 12일까지 가명예금의 97%인 2조7천6백4억원과 3조4천7백억원의 차명예금이 실명으로 전환됐다.지난 6월말 현재로는 가명예금의 98.5%(2조7천9백12억원)와 차명예금 3조5천49억원이 실명으로 전환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금융실명제는 무엇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등 공평과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정치판,공무원 사회,기업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음성적인 정치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깨끗한 선거의 틀이 마련됐고 기업의 비자금이나사채 거래,무자료 거래도 한층 줄었다.공직자윤리법의 실효성을 보장,맑은 공직풍토를 만들고 신용카드 이용확대 등 신용거래도 활성화됐다.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가 안착조짐을 보이자 개혁2호,부동산실명제를 단행했다. 95년 1월 6일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실명제 실시방침을 밝혔고,이어 실명법안 마련과 공청회 등을 거쳐 3월 30일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의 개혁법안이 확정·공표됐다.시행일은 7월 1일. 신탁법에 의한 신탁등기,가등기와 같은 채무변제 목적의 양도 담보,종중 재산 등을 제외하고 일체의 명의신탁이 금지됐다.위반자에 대해선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과 과징금(부동산가액의 30%)을 물리고 기존의 명의신탁은 내년 6월 30일까지 명의를 변경토록 했다.물론 이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등 과거의 법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케 했다. 부동산실명제는 사실 금융실명제의 후속개혁이다.금융실명제의 완결판이라 할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96년부터 실시될 상황에서 부동산의 차명소유를 계속놔둘 경우 금융시장을 빠져 나온 비실명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흘러들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이 도입배경이 됐다. 이 전에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등 부동산의 명의신탁을 규제하는 법률은 있었다.그러나 이들 법률은 명의신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경우 등에 대한 처벌위주였으며,명의신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부동산 명의신탁은 1912년에 제정된 「조선부동산등기령」에 종중명의로 등기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부득이 종중원 이름으로 등기하게 된 것이 시초다.이후 판례로도 그 유효성이 인정돼 투기수단으로 활용돼 왔다.외지인이 살 수 없는 농지를 현지인 이름으로 사둔 것들이 그것이다. 부동산실명제는 명의신탁의 법적효력을 무효화함으로써 부동산 투기 등 탈법과 탈세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줄게 했다.금융실명제와 함께 경제의 흐름을 「합법적이고 아주 맑게」 만들었다. 그러나 양대 실명제의 성과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아직도 검은 돈들이 차명계좌를 은신처로 삼아 실명화를 거부하고 있다.최근 4천억원 비자금설 파문도 차명계좌 때문에 증폭된 것에 다름아니다.9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차명예금 중 실명으로 전환된 돈은 2백74억원에 불과하다.가명예금의 미전환액은 4백30억원으로 드러나지만 차명예금은 그 규모가 얼마인지 추정조차 안된다. 물론 모든 계좌의 차명여부를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그러나 차명계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연간 이자소득 4천만원 이상)을 확대,차명계좌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부동산실명제와 토지종합전산망의 가동으로 부동산 투기가 현저히 줄게 된만큼 투기시대에 만든 토지거래허가제도 등의 규제완화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사회·교육분야 개혁/성역없는 사정… 「권력형 비리」 척결/입시 자율권 폭 넓혀 열린교육 제시/쓰레기 종량제 실시… 환경의식 고취/「4·19」·「5·16」등 왜곡된 역사도 바로잡아 김영삼 대통령의 사회분야 개혁은 제도개혁에서 생활개혁에 이르기까지 집권 30개월동안 숨가쁘게 진행돼왔다.교육·법조개혁은 기존의 교육제도와 사법체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혁명적인 「제도개혁」으로 평가됐고 부실공사 근절·교통난 해결·민생치안 확립 등 「생활개혁」은 국민의 의식개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직후 개혁의 첫 단추는 공직남용 및 부정 부패자를 척결하는데 끼워졌다. 김대통령의 「성역 없는 사정」은 군인사 및 율곡사업비리,슬롯머신사건,상무대비리사건,국회노동위돈봉투사건,수서택지개발사건 등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관련자의 숙정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유력 외지인들이 김대통령에게 「미스터 개혁」이라는 애칭을 붙일 정도였다. 김대통령은 또 취임과 동시에 『집권기간동안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정치자금의 투명화와 돈안드는 정치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한국병」의 전형으로 지적되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호히 끊은 것이다. 「민생개혁」도 동시에 진행됐다.부동산투기,대학특혜입학,세무비리,교육계촌지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곰팡이처럼 번져 있던 온갖 비리 유형이 여지 없이 들추어지고 처벌됐다. 누구나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열린교육을 내세운 5·31교육개혁조치는 시행에 들어가봐야 성패를 가늠할 수 있겠지만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공립대의 본고사를 폐지하고 사립대에 입시자율권을 준 것은 학생들의 입시고통을 덜어주고 인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지나친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왜곡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바로 잡는 획기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암기·주입식 교육으로 치달아 왔던 초·중·고 교육의 뒤틀린 모습은 잘못된 입시제도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같은 입시제도의 개혁을 포함한 교육개혁은 문민정부의 최대의 과제로 떠올랐고 정부출범이후 발족한 교육개혁위원회의 오랜 연구끝에 교육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만한 교육개혁 조치들이 지난 5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정보화·세계화사회로 격변해 가고 있는 새로운 역사적 도전에 대응하는 교육체제인 「신교육」을 이념으로 하는 5·31 교육개혁안은 입시개혁말고도 중학교와 고교의 선택권 부여를 내용으로 하는 평준화 제도의 보완,대학의 다양화·특성화·정원 자율화 등 교육제도의 근본을 혁신할 수 있는 개선책들이 여럿 들어있다. 또한 열린 교육사회,평생 학습사회를 목표로 학점은행제와 시간제 등록제를 실시하고 학교의 전편입학을 확대해 교육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학교 운영에 학부모 등이 참석할 수 있게 해 학교운영을 자율화했다. 5·31 교육개혁의 성공여부는 개혁안의 취지에 따라서 얼마나 충실하게 시행에 옮기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제도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교육개혁추진기획단을 발족시켜 개혁안의 추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개혁안의 내용을 48개로 구분해 시행 목표시기와 세부 계획을 마련,여론 수렴작업에 나서고 있다. 여론 수렴은 시행에 옮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여론과 배치된 제도는 반발만 살 것은 뻔하다.벌써 중·고교의 학교선택권 부여문제 등 학부모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사안들이나타나고 있다. GNP 5% 수준을 1차 목표로 하는 교육재정의 확보문제도 선결과제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며 신교육의 참된 뜻을 실현하는 것이 문민정부의 남은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국민의 피부에 와닿은 「체감개혁」의 성공 사례로는 교통난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실시된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시민의 환경의식을 고취시킨 쓰레기종량제 등이 꼽힌다.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등산로의 개방,궁정동 안가해체와 같이 권위주의통치의 상징을 국민에게 되돌려 준 일은 「작지만 계산할 수 없는 변화」로 평가받았다. 민족사의 복원을 위해 왜곡됐던 역사를 바로 잡은 것도 김대통령의 치적.「4·19의거」를 「4·19혁명」으로 새로 자리매김시켰고 「5·16혁명」을 「5·16군사쿠데타」로 정리했다.또 「5·18광주사태」는 「5·18광주민주화운동」등으로 역사속의 사건이 국민의 역사 감정과 시대적 인식에 맞게 재정립시켰다. 교육개혁과 함께 김대통령의 사회개혁분야의 양축을 이루는 법조개혁 또한 오는 97년 실시를 목표로 세계화추진위원회와 대법원에 의해 최대공약수 도출작업이 한창이다. 법조개혁은 법조인 증원,법학교육제도 개선,그릇된 법조관행 철폐 등 3가지로 개혁방향이 요약된다. 특히 이른바 「전관예우」「정실재판」과 같은 법조관행은 법률서비스의 최대 수요자인 국민으로부터 오랫동안 원성을 사왔다는 점에서 김대통령이 임기중에 반드시 마무리지어야 할 숙제다.
  • 민자 새 당직자 제일성

    ◎강삼재 사무총장/“당 화합에 최선… 총선 승리”/40대총장 임명과 「물갈이 가속화」 연결 말았으면… 『당내 화합에 최우선을 두고 내년 총선에서의 필승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민자당의 강삼재 신임사무총장은 22일 43살의 나이에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전격 발탁된 데 대해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행동을 통해 평가받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이어 『6·27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냉혹한 심판은 우리들이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충격적』이라고 지적하고 『민자당이 새롭게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민자당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오늘 처음 맡게돼 청사진은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며칠 여유를 달라.지방선거 패배로 국민들한테 실망을 준 것은 사실이므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40대 총장 기용은 세대교체에 대한 의지로 여겨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나이로만 보지 말아달라.85년 국회에 들어온 뒤 3선의원이면 중진이다. ­40대 총장기용으로 물갈이에 대한 당내 동요가 확산될 우려는. ▲물갈이의 가속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내가 모셨던 상관들이 당에 많다.학생운동,반독재투쟁에 앞장섰던 강삼재의 이미지나 경력이 각인되다 보니 그런것 같지만 나도 접해보면 부드러운 사람이다. ­언제 통보받았나. ▲어제 총재와 대표께서 당직 인선문제에 대해 숙의한 뒤 청와대에서 통보해 주었다. ­당 기조실장이던 지난 2월 전당대회 때 원내총무 및 시·도지사후보 등의 경선제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는데. ▲정치는 이상과 현실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시행과정에서 심각한 후유증으로 인해 개정이 불가피했다. 강신임총장은 신문기자 출신으로 지난 85년 2·12총선 때 「신민당 돌풍」을 등에 업고 33살의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된 3선의원이다.민자당내 소장파의 선두주자로 탁월한 추진력과 치밀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문민정부 출범 직후 정책조정실장으로 사회분야 개혁정책을 주도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시절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복역하기도 했으며 지난 90년3당통합 때 김영삼 당시 민주당총재의 비서실장으로 연락책을 맡아 깊숙히 관여했다.민추협 때 김상현의원의 소개로 동교동계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상도동계로 돌아섰다. ▲경남 함안(43) ▲마산고,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경남신문기자 ▲통일민주당 대변인 ▲민자당 정세분석위원장,제2정책조정실장,기조실장 ◎김종호 정책의장/“정부 기업규제 과감히 철폐” 유도 『기업인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정부의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시켜 나가겠습니다』 22일 민자당 당직개편에서 정책위의장에 임명된 김종호의원은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정책기조를 어디에 둘 것인가. ▲국민이 편하게 장사하고 경제생활을 영유할 수 있게 하는게 정치다.민의를 과감히 수용하겠다. ­경제와 관련한 소신이 있다면. ▲경제가 잘 되려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모두 의욕적·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전임 정책팀이 개혁보완작업을 추진하다가 결실을 못보고 물러났는데. ▲당에서 추진하던 상황을 파악해 국민이 어려워하는 점을 시정하겠다.실명제 자체보다는 실시 이후의 파급효과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예컨대 노동력이 없어서 영농을 못하는 농지의 매매마저 불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일정범위 안에서 매매를 허용하겠다. ­민자당의 정책팀보강은. ▲중요하다.조만간 방안을 밝히겠다. 김신임정책위의장은 11대 옛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내리 4선을 기록한 정통 내무관료 출신이다.1백62㎝의 작은 체구에 낮은 목소리로 독특한 친화력이 돋보이나 내무부 주사에서 장관까지 올랐을 만큼 집념이 강하고 판단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본인도 좋아하는 별명은 「김소평」. 문민정부 출범 뒤 초대 정책위의장으로 업무장악력을 발휘했다. 부인 한인수씨(55)와 3남2녀. ▲충북 괴산(60)▲서울대 법대 졸업 ▲충북지사 ▲내무부차관,장관 ▲11·12·13·14대 의원 ▲민자당 원내총무·정책위의장 ▲정무1장관 ▲세계스카우트연맹이사장 ◎서정화 원내총무/“야당과 대화·타협 통해 국회운영” 『국회가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국민이 국회에 애정을 보낼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민자당의 서정화 신임원내총무는 22일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이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국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앞으로의 국회운영구상을 펼쳤다. 서총무는 옛 민정당 창당요원으로 12대 때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3선의원.3당 통합 이후 수석부총무로 성실성과 강한 추진력을 인정받았고 6·27 지방선거에서는 인천시지부위원장으로 최기선시장을 당선시키는데 기여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총무 자신도 총무 지명 배경에 대해 『지역적인 면이 고려됐을 것』이라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민들이 우리 당에 애정을 보내줘 좋은 결과를 얻은 것등이 다 포함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서총무의 당면과제는 야권의 집중공세가 예상되는 9월 정기국회.그는 그러나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고 낙관했다.김윤환 대표위원의「양김 퇴진」발언으로 촉발된 냉기류에 대해서도 『야당과 상의하면서 노력하면 그 문제도 대략 방향이 설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대인관계가 원만 하다는 평.민정당 조직국장을 두차례 맡아 85년 총선과 87년 대선을 치러 선거에도 일가견이 있다.부인 정청자씨(53)와 3남. ▲인천(56) ▲육사 19기 ▲12·13·14대의원 ▲민정당 조직국장 ▲수석부총무 ▲국회 건설위원장 ◎손학규 대변인/“신속·진솔하게 당입장 전달할터” 『민자당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어려울 때 나라를 세운다는 차원에서 사랑으로 감싸주고 도와주시기를 기대합니다』 22일 새로운 「민자당의 입」으로 떠오른 손학규 대변인은 『짧은 연륜과 일천한 경험으로 어떻게 어려운 직분을 수행해 나갈지 걱정』이라며 언론에 대한 당부로 취임인사를 대신했다. 손대변인은 정치학교수 출신으로 지난 93년 경기도 광명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초선의원.그의 등용은 강삼재의원의 사무총장 발탁과 함께 세대교체의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손대변인은 이를 의식한듯 『이번 당직개편에서 너무 세대교체를 강조하지 말아달라』면서 『김윤환대표위원 체제에서 한쪽이 안정과 균형이라면,한쪽은 변화와 개혁으로 인사의 균형을 잡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손대변인은 새정치국민회의 박지원대변인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치인의 말은 순화되어야 하고 정치를 필요 이상으로 폄하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충고하고 『그 일에 미력이나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변인은 글자 그대로 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을 신속·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1차적 과제라면 당에서 하는 일을 뒷바침하며 국민들을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것이 2차적 과제』라고 「대변인관」의 일단을 피력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난을 겪은 당내 개혁지지파.교수출신으로는 드물게 현실정치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평.약사인 부인 이윤영씨(49)와 2녀. ▲경남 밀양(49)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서강대교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14대의원 ▲부대변인▲국제기구위원장 ◎박범진 총재비서실장/해직기자 출신… 정치감각 뛰어나 그동안 대변인으로 6·27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집권당의 「입」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해직기자 출신으로 논리가 정연하고 현실정치에 대한 분석력도 뛰어나다.그러나 그르다고 생각하면 비판을 서슴지 않는 「우국지개형」. 13대 때 옛 민정당 후보로 서울 양천구에서 출마,고배를 들었으나 14대 때 재기한 초선의원이다. 부인 이정지씨(52)와 1녀. ▲충북 제천(54) ▲서울대 정치학과 ▲조선일보 기자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민자당 부대변인·대변인
  • 재야 소장파 「3김청산」 요구/20∼30대 1천명 선언문 발표

    ◎“지역할거 기초한 정치지도자 배격”/새정치 세력 등장 「디딤돌 놓기」 분석 지난 70∼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20∼30대 가운데 대표자 20여명은 17일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방 50주년 기념 청년선언문」을 발표하면서 현정치권을 『정파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전근대적 세력』이라고 신랄히 비난했다.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은 5·18공소권을 포기함으로써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줬고 김대중씨는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실천적 노력은 않은채 신당창당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특히 87년 대선때 김대중후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선언했던 「전대협」출신들도 『지역할거에 기반한 정치질서를 단호히 배격한다』며 김대중씨를 공격하는 등 「후3김구도」의 청산에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정치권이 물갈이돼야 한다는 것이다.이같은 주장이 나온 것은 「3김구도」를 계속 방치할 경우,정치적 「공범」으로 몰려 공멸하거나 3김씨의 들러리로 정치생명을 마감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또신당창당 등 야권개편이 맞물린 현시점을 「3김구도」를 타파하고 신진세력으로 정치일선에 데뷔할 절호의 찬스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존 정치권과 전혀 다른 세력임을 강조하고 있다.특히 학생운동권 출신과 시민운동단체·각계 전문가를 내세우면서도 30대를 강조,신진세력임을 부각시키는데 애를 쓰고 있다.그러나 이들의 몸부림과 목소리가 현실정치에서 어느 정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선언문에는 이인영 제1기 전대협 의장·유기홍 한국민주청년 단체협의회 의장·오영식 국민회의 청년위 부위원장·심규철 변호사·이우재 반유신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대표이사·이정우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함운경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허인회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 등 1천여명이 서명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한국어·한겨레에 긍지… 공동체 의식 양호

    ◎국내외 동포 「한민족 공동체」 의식 조사­공보처/통일에 대다수 낙관… 「10년내」 가장 많아/재미동포 92% “모국어 구사 불편없다”/가정서 쇠고 있는 명절은 설날이 으뜸/한국은 「중진권」… 경제발전에 크게 만족/삶의 목표로 「하고 싶은 일 하는것」 꼽아 공보처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한민족 공동체 의식 형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6월과 7월 한국갤럽조사 연구소에 의뢰,한민족 공동체 의식 전반에 관한 조사를 실시했다.이 조사는 「인간 가치관」「역사관」「광복 50년간 한국에 대한 평가」「통일·북한관」「한민족 공동체 의식」「해외동포에 대한 인식및 견해」「해외동포들의 생활상」등 7개 부문으로 나뉘어 실시됐다.국내 성인 1천명과 미국·일본·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는 동포 각각 4백명씩 모두 2천2백명이 조사에 참여했으며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현지 사정으로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인간 가치관◁ 삶의 목표에 있어 한국 성인과 가장 비슷한 의견을 보인 집단은 일본동포다.일본동포는한국 성인보다 10.7%가 낮기는 하지만 62.0%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제일의 가치관으로 꼽았다.미국동포도 48.7%가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그러나 독립국가연합동포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42.1%)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전반적으로 해외동포는 삶의 목표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을 꼽는 응답이 한국 성인보다 많았으며 미국동포는 상대적으로 「사회봉사」를 많이 꼽았다. ○7부문 설문조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한국 81.7%,미국 73.0%,일본 83.5%,독립국가연합 85.0%가 「가족」을 들었다.미국동포들은 상대적으로 「종교」(14.5%)를 많이 거론했다. 후손을 위한 희생에 관해서는 한국 87.8%,미국 80.3%,일본 74.5%,독립국가연합 73.8% 등 대부분이 찬성했다.그러나 일본과 독립국가연합 동포들에서는 이같은 견해에 반대하는 응답이 각각 23.1%와 20.4%로 한국과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자녀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한국(72.7%)미국(69.2%)만 한민족이어야 한다고 응답했다.일본과 독립국가연합은 각각 33.8%와 48.9%만이 한민족을 고집했다.특히 일본에서는 한민족이 아니라도 상관없다는 동포가 60.2%로 집계됐다. ○가장 큰 사건 「6·25」 ▷역사관◁ 한국 성인만을 조사대상으로 했다.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대체로 자랑스럽다」 49.2%,「별로 자랑스럽지 못하다」 40.6%,「매우 자랑스럽다」 7.4%,「전혀 자랑스럽지 못하다」 1.7%로 조사됐다.비판적 시각이 43.2%로 한국 성인의 한민족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그렇게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해방 이후 가장 큰 사건을 묻는 질문에는 「6·25 전쟁」(55.3%)「광주 민주화운동」(19.3%)「8·15 해방」(12.4%)「박정희 전대통령 서거」(4.9%)「4·19 혁명」(2.8%)「5·16 쿠데타」(2.7%)「12·12 사건」(1.5%)「6·29 선언」(0.7%)「백범 김구선생 암살」(0·1%)의 순으로 답했다.「6·25 전쟁」이 해방 이후 가장 큰 사건이라는 인식은 50대 이상에서 특히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복 50년간 한국에 대한 평가◁ 역사관과 마찬가지로 한국 성인만을 대상으로 했다.분야별로 조사한 결과 「경제발전」에 대해서는 대다수인 77.4%가 만족을 표시했다.「교육·문화발전」에 대해서도 절반이 넘는 55.5%가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그러나 「정치발전」(38.5%)「국민의식 성숙」(45.5%)「사회질서 안정」에서는 비판적 시각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서는 「중진국」이라는 인식이 56.3%로 가장 많았고 「중상위권」이 21.6%,「중하위권」 16.1%,「선진국」 3.9%,「후진국」 1.0%의 순이었다.북한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인 94.4%가 「중하위권」 또는 「후진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향후 국가발전의 방향으로는 「국민의 삶이 풍요롭고 편안한 나라」(63.9%)「정치적 민주주의가 성숙된 나라」(12.8%)「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11.6%)「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8.4%)「군사적으로 강한 나라」(2.6%)를 지적했다.○북 이미지 부정적 ▷통일·북한관◁ 한민족의 통일염원을 알아본 결과 한국 57.7%,미국 65.6%,일본 48.0%,독립국가연합 31.5% 등 절대 다수가 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미국동포의 통일염원은 한국 성인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독립국가연합동포들의 통일을 원하는 정도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낙관했다.그러나 한국 11.8%,미국 1.2%,일본 20.7%,독립국가연합 7.7%는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10년 이내」라고 응답한 사람이 한국 35.0%,미국 46.0%,일본 28.2%,독립국가연합 27.0%로 가장 많았다. 통일의 장애요인으로는 「북한정부의 태도」 49.1%,「한반도 주변 4강의 태도」 37.4%,「모름 또는 무응답」 9.0%,「남한정부의 태도」 4.6%로 조사됐다.71.8%는 통일이 되더라도 지역감정은 개선되지 않거나 더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성인의 북한 또는 북한주민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많다」 12.3%,「어느 정도 있다」 50.3%로 생각보다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북한실상에 대한 이해도도 「별로 잘 알지 못하고 있다」 50.3%,「전혀 모르고 있다」 10.4%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또 89.4%는 남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크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85.6%가 이런 사고방식의 차이가 통일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동포들을 상대로 한 북한에 관한 이미지 조사에서는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일본 74.7%,독립국가연합 52.1%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미국에서는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27.9%로 가장 많았으나 「긍정적」(15.2%)과 「중립적」(22.8%)을 합친 것보다는 적었다.반면 남한에 대한 이미지에서는 미국 51.2%,일본 62.6%,독립국가연합 77.8%등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한민족 공동체의식◁ 「커다란 긍지를 갖고 있다」 4점,「어느 정도 긍지를 갖고 있다」 3점,「별로 긍지를 갖고 있지 않다」 2점,「전혀 긍지를 갖고 있지 않다」 1점으로 환산했다. ▲심리적 동일성 ▲독자성 ▲지속성 ▲동포애 ▲혈연의식 ▲소속감 ▲언어 등 7개 부문에 대한 조사결과 전체평균이 한국 3.01점,미국 3.05점,일본 2.87점,독립국가연합 2.87점으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한국 성인및 해외동포들의 한민족 공동체 의식은 다소 괜찮은 것으로 밝혀졌다. ▷해외동포에 대한 인식및 견해◁ 한국 성인은 「매우 관심이 많다」 14.4%,「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63.6% 등 5명 가운데 4명이 해외동포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그들은 또 해외동포들도 조국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한국 또는 해외에서 동포를 직접 만난 경험이 있는 한국 성인은 34.0%로 조사됐다.26.0%는 8촌 이내 친척 가운데 해외동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을 가는 것에 관해서는 「좋다」 38.6%,「나쁘다」 32.3%로 비슷한 분포를 보였고 평가를 유보한 응답자도 29.0%나 됐다.반대로 해외동포의 한국 거주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서는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가 59.7%로 가장 많았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33.5%,「무조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5.5%로 조사됐다.58.2%는 남한정부가 해외동포를 지원하지 않는 편이라고 응답했고 북한정부 역시 해외동포에 무관심한 편이라는 응답은 이보다 14.0%가 많은 72.2%로 집계됐다. ○미 동포 친밀감 커 ▷해외동포들의 생활상◁ 미국동포들은 92.1%가 한국어를 「말하고 읽고 쓰는데 전혀 불편이 없다」고 답했다.그러나 일본동포는 13.9%,독립국가연합동포는 10.0%만이 한국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가정에서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동포 역시 미국이 89.1%로 가장 높았고 일본과 독립국가연합은 각각 3.5%와 9.7%에 불과했다. 가정에서 쇠고 있는 고국의 명절로는 설(구정)이 미국 68.0%,일본 61.3%,독립국가연합 84.5%로 단연 으뜸을 차지했다.다음은 추석으로 미국 53.8%,일본 37.6%,독립국가연합 31.2%였다. 한국인들간의 친밀도는 미국이 74.4%,일본 77.2%,독립국가연합 56.3%로 비교적 높았다.그러나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도 미국 22.4%,일본 22.2%,독립국가연합 34.9%로 적지 않았다. 고국에 대한 관심도는 일본이 90.3%로 가장 높았고 미국 84.0%,독립국가연합 81.6%로 조사됐다.그러나 「매우 관심이 있다」는 응답자는 미국(52.0%)이 일본(50.2%)보다 많았다. 고국의 관심 있는 분야로 미국동포들은 「정치」(37.5%)「경제」(26.6%)「남북관계」(10.7%)를 꼽았다.일본동포 역시 「정치」(37.9%)에 가장 높은 관심을 표명했으나 「경제」(17.2%)에 앞서 「남북관계」(36.2%)를 관심사로 꼽았다.독립국가연합동포는 「경제」(26.0%)「남북관계」(23.0%)「문화예술」(17.7%)「역사전통」(16.4%)「정치」(10.4%)의 순으로 답했다.
  • 5·18 수사 14명/직무유기 고소/피해자 3백2명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정동년(52)씨 등 5·18 관련 피해자 3백2명은 11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고소·고발 사건」의 주임검사인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비롯,김도언 검찰총장,송종의 대검차장,안강민 대검공안부장,최영광 서울지검장 등 이 사건 수사 관계자 1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 K­1R/「다규멘터리­음향실록 50년」 방송

    ◎일천황 항복선언에서 무궁화호 발사음까지/현대사 큰획 그은 2백여소리 집대성/8·15당시 경성거리 국민의 「만세함성」 생생/이승만·김구 귀국연설­이승만 하야성명도 광복 50년사에 점철된 수난과 환희의 파노라마가 생생한 음향으로 되살아 난다. KBS­1라디오가 오는 15일 상오 8시35분부터 82분동안 방송하는 광복 5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음향실록 50년」.이 프로그램은 화면이나 내레이터의 상황설명 중심으로 이끌어오던 기존 TV의 역사다큐방식과는 달리,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최대한 살려냄으로써 청취자들에게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19 45년,『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히로히토 일본왕의 떨리는 목소리와 감격에 찬 해방의 함성에서부터 95년 무궁화호 위성발사순간 카운트다운까지 우리 현대사를 관통한 2백여 굵직한 사건의 소리가 집대성된다. 『국내 최초의 음향 다큐멘터리라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귀로듣는 현대사」가 될 것입니다』 「음향실록…」을 준비해온 KBS 라디오2국 김선옥 부주간은 『3년전 이프로를 기획한 이후 일본 NHK와 미국 VOA(미국의 소리 방송),리버티뉴스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다』면서 정치적 이유 등으로 그동안 TV에서 스쳐가는 화면으로만 제공됐거나 아예 방송에 싣지 못했던 민감한 사건들도 이번 실록에 실었다고 밝혔다. 이승만 박사와 김구씨의 귀국연설,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성명,김대중씨 납치사건후 동교동 기자회견,『저는 어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며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74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의 기자회견,79년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후 김성진 문화공보부장관의 발표문 등 우리 역사의 큰 물길을 낸 정치인들의 사건 당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이와함께 이 음향다큐에는 역사와 함께한 민중들의 치열한 소리가 담겨졌다.8·15당시 경성거리 국민들의 『만세』함성을 비롯,4·19 경무대앞 발포순간 흩어지는 시위군중들의 절박한 고함소리와 총소리,쓰러지고 잡아들이는 둔탁한 몸싸움 소리가 원음 그대로 나와 청취자들을 다시 현장으로 끌어 들인다.이는 80년 5월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도 이어진다. 『버러지 같은 놈…』(박정희 저격사건이후 김재규 관련 발표문 가운데 ),『처음엔 달래서 주고 그 다음엔…』(88년 광주청문회서 정주영씨 정치자금 관련 발언),『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79년 국회에서 제명된뒤 김영삼 신민당 대표의 국회연설 가운데)등 정치인들의「어록」도 흥미로운 부분. 86년 아시안게임,88년 서울올림픽과 지방자치시대를 알리는 서울시장후보들의 TV토론현장의 소리,무궁화호위성 발사음이 말미를 장식한다. 현장음으로만 전달되는 음향다큐멘터리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민중의 세태를 반영하는 유행음악도 간간이 넣었고 전두환전대통령의 백담사행을 묘사하는 부분에는 목탁소리를 삽입,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했다.현장소리만으로 역사적인 상황·배경의 이해가 어려운 경우 성우 김도현씨와 국사편찬위원회 이원순위원장의 간단한 설명을 곁들일 계획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