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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관련 피해자 국가유공자 지정 추진

    정부와 신한국당은 「5·18 민주화운동」관련 사망자와 부상자·구속자·실종자 등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당의 한 고위정책관계자는 11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일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됨에 따라 5·18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유공자예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확정했으며 오는 6월 임시국회에 상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여야 대선주자 광주로 몰린다

    ◎「5·18」 기념일제정 행사 참석·여론청취 정부가 5월 18일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한 것을 계기로 여야 대표를 비롯한 차기 대선주자들의 광주행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은 오는 17일과 18일 이틀간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망월동 묘역에서 열리는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묘역참배를 전후해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과 당직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광주현지의 민심과 애로사항도 수렴한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5월19일 전당대회 일정때문에 22일부터 사흘동안 광주를 찾기로 했다.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아직 방문 계획이 없다. 여권내 차기주자들도 잇따라 망월동을 찾을 계획이다. 지난달 30일 이수성 상임고문에 이어 오는 16일에는 이홍구 고문이 1박2일 일정으로 광주에 내려가 5·18묘역 참배와 함께 「광주포럼」특강을 실시한다.박찬종 고문과 이인제 경기지사도 묘역참배를 원칙으로 구체적인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 작가 문순태씨,장편 「느티나무 사랑」내

    ◎고향을 통해 깨닫는 「역사의 소중함」/「6·25」·「5·18」 현장체험 인물 설정 눈길 중견작가 문순태씨(56)가 장편소설 「느티나무 사랑」을 펴냈다. 「타오르는 강」이후 10년만에 발표하는 이 작품은 저자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고향을 화두로 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6·25와 5·18 광주민주화 항쟁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두개의 큰 사건. 주인공 박지수 목사는 유년시절 참혹한 6·25를 겪은뒤 장년시절의 5·18 후유증으로 인해 방황을 거듭하다가 농군이 되고자 고향 거북재 마을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그는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나온 삶의 궤적(궤적)을 더듬는다.결국 고향을 통해 역사의 잃어버린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동시에 고향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심화시키고 미래로의 새 출발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 작품속에서 작가의 고향에 대한 지향은 곧 4백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로 형상화한다. 이 늙은 느티나무는 「역사의 격동기마다 마을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때로는 작은 기쁨까지도 온몸으로 부둥켜안은채 도인같은 모습으로 의연하고 넉넉하게 서있는」 상징물이다. 작품속 주인공의 고향인 전북 담양의 거북재 마을은 실제 작가의 고향이다.이 마을에서 작가 스스로가 12살에 겪은 6·25의 기억이 주인공 박지수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빛고을 동지회」를 주축으로 하는 5·18 관련 인물들도 5·18 민주화운동을 현장에서 목도한 작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흥미롭다.
  • 5월18 5·18기념 10월2일 노인의날 등/3개 기념일 제정

    ◎11월17일 선열의날 정부는 29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5월18일을 「5.18 민주화운동기념일」,10월2일을 「노인의 날」,11월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각각 제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개정안을 의결했다.〈관련기사 6면〉 이에 따라 올해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정부주관으로 치러지게 된다.
  • 법정기념일 3일 늘어 모두 39일

    ◎5·18 신규 제정 정부차원 행사 가능 정부가 29일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을 기념일로 새로 제정한 것은 5·18이 우리 민주발전사에 교훈적인 의미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또 「순국선열의 날」의 제정은 민족정기의 함양차원으로 이해된다. 「노인의 날」을 제정한 것은 관련단체의 요청과 유엔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유엔은 10월1일을 「세계 노인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나,우리는 이날이 「국군의 날」이어서 하루뒤인 10월2일로 정했다. 이로써 법정기념일은 모두 39일이 됐다.지금까지 법정기념일은 3월3일 「조세의 날」부터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까지 36일이었다. 법정기념일이 되면 정부차원에서 각종 기념일 의식과 뒤따르는 행사를 전국적인 범위로 치를수 있다.또 「주간」이나 「월간」을 설정하여 관련행사를 벌일 수도 있게 된다.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서 다루는 법정기념일은 그러나 공휴일은 아니다.법정공휴일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따로 다루고 있다.이 규정에 따르면 현재 법정공휴일은 국경일 4일을 포함,신정과 설날 연휴,어린이날,석가탄신일,한글날,성탄절 등 모두 14일이다.
  • “나를 구속하면 국민 저항”/박경식씨 “현철씨 증언 다 거짓말”

    김현철씨가 한보 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선 25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 G클리닉 원장 박경식씨(44)는 상오 9시30분쯤 병원에 정상 출근,TV를 보지 않은채 2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박씨는 『김씨가 뭐라 말할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 거짓말인데 TV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내 할 일은 다 마쳤다』며 예수가 최후의 순간 했던 말과 비슷하게 말했다.청문회를 통해 현철씨와 관련된 의혹에 대한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설명이다.박씨는 또 자신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통해 이른바 「의사·열사론」을 주장했다.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예로 들며 이때 결정적인 증언을 해 진실을 밝힌 사람들이야말로 의사이며,이들이 민주화를 앞당기고 지켜온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자신도 마찬가지라며 좌충우돌했다. 박씨는 또 『자신을 구속하면 엄청난 국민의 저항을 겪을 것이며 국회는 해산될 것』이라면서 『나 하나 희생해 부패하고 썩은 세력을 씻어내고 국민을 위한 세력이 등장한다면 어떤 고난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이날 청문회에서 현철씨가 신라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없다고 하자 박씨는 『내가 허깨비를 봤단 말이냐.그러면 허깨비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셈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나보고 「왕자병 환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분야에서 1인자가 되면 그가 바로 대통령이며,내 분야에서 1인자인 내가 대통령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소신을 피력했다.
  • 5·18 법정기념일 지정/관계장관회의서 결정… 올부터 기념행사

    ◎전·노 대통령 포함 실형선고자 상훈 박탈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됐던 5월18일을 법정기념일로 공식지정,올해부터 정부주관으로 기념 행사를 갖기로 했다. 정부는 22일 상오 열린 국무회의 직후 고건총리 주재로 강운태 내무 김동진 국방 김한규 총무처장관과 송종의 법제처장 박상범 보훈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별도의 관계장관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화의 역사적 발전에 기여한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그 정신을 길이 기리면서 계승하자는 뜻에서 5·18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기로 했다고 강운태내무부장관을 통해 공식발표했다. 이에따라 정부는 금명간 내무부로부터 5·18 법정기념일 제정에 관한 안건을 접수받는 대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마련한 뒤 올해 첫행사의 방법과 규모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12·12 및 5·18사건 등의 상고심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의 실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이들 두전직대통령을 포함,확정판결을 받은 관련자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훈·포장 등 상훈을 박탈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밖에 5·18묘역을 국립묘지로 승격하는 문제도 5·18희생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 전·노씨 모든예우 중지/5·18관련 상훈도 치탈

    정부는 17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12·12와 5·18사건 상고심에서 실형이 확정됨에 따라 「전직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류」에 따른 모든 예우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이들이 5·18진압과 관련되어 받은 상훈을 모두 치탈한다고 말했다.
  • 12·12 상고심 선고­81년1월24일 내란종료 판결 의미

    ◎「5공 통치행위 무효」 대혼란 배제/자위권 보유 천명 발포명령 아니다/황영시·정호용씨 내란목적 살인죄/의사당 점거·국보위 국헌문란 규정 12·12사건은 「군사 쿠데타」,5·18사건은 「내란」으로 청사에 기록되게 됐다.대법원은 17일 이같은 확정판결과 함께 그동안 검찰과 변호인,1·2심 재판부 사이에 엇갈렸던 몇가지 쟁점에 관한 법리 논쟁을 마무리지었다. 먼저 내란죄의 종료시점에 관련,재판부는 유일하게 항소심 판결내용을 깼다.항소심은 국민적 저항에 밀려 87년 「6·29선언」으로 「항복」하기까지 폭동행위가 계속됐다고 보았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행위가 끝난 것은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고 규정했다.내란죄가 「계속범」이 아닌 「상태범」이라는 판단에서다.이 점에서 변호인측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지만 폭동행위의 종료시점이 80년 9월1일 전두환 피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날이라는 변호인측 주장은 기각했다. 대법원이 항소심대로 87년 6월29일로 규정할 경우 5공 정권자체가 불법정권으로 당시 이뤄졌던 모든 법률적·행정적 행위가 무효화돼 파문을 불러 올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다음은 황영시·유학성 피고인에게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한 부분이다.1심 무죄,항소심 유죄로 엇갈렸지만 항소심의 손을 들었다.이들 피고인이 육본과 국방부 회의 등에 참석,광주 재진입 작전지침을 작성해 계엄군으로 하여금 특정집단에 대해 「살인」 의도를 갖고 유혈·강경 진압케 했으므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위권 보유천명을 실질적인 발포명령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도 항소심의 판단을 따랐다.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담화문이나 계엄훈령 등에 『계엄군이 무장시위대가 아닌 사람에게 발포해도 좋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국회의사당 점거 및 폐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은 모두 국헌문란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12·12사건의 정승화 총장 연행과 관련,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변호인측의 주장에 대해 『묵시적으로라도 이를 승낙했다고 볼 자료가 없고,오히려 이를 거절했다』며 일축했다. 한편 박만호 대법관은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대해 『대통령과 국회 등 통치권의 담당자가 교체되는 등 국가 헌정질서의 변혁을 가져 온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사법적 심사대상이 아니다』며 유·무죄를 판단하지 말고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박만호·신성택 대법관은 내란목적 살인죄의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이 죄의 범죄행위가 80년 5월27일에 종료돼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12·12」 「5·18」 재판일지 ▲95년 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폭로. ▲10월20일=대검 중수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 발표. ▲12월3일=전두환 전 대통령 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등 관련자 본격소환. ▲12월15일=헌재,5·18헌법소원에 대해 사건종료 결정.▲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첫공판. ▲12월21일=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특별법 제정,공포.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등 구속영장청구. ▲1월23일=전·노 전 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피고인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 피고인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헌재,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 피고인 구속영장 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2월28일=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안현태 피고인 등 4명 구형.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총장 등 증인 신문시작.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 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구속집행 정지.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집단사퇴.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당시 1공수1대대장의 증언을 끝으로 사실심리종료.검찰전·노피고인 비자금 사건과 병행해 구형. ▲8월26일(28차공판)=12·12 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10월7일=12·12및 5·18사건 항소심 첫공판.최규하 전 대통령 등 증인 33명채택. ▲10월10일=전·노씨 비자금 사건 항소심 첫공판. ▲11월7일=노씨 비자금사건 2차공판. ▲11월14일=최 전 대통령 강제구인.항소심 결심 및 검찰구형. ▲12월16일=항소심 선고. ▲97년4월17일=대법원 선고.
  • 시인 고은,새 시집 「어느 기념비」 펴내

    ◎시 69편에 어린 한시대의 그늘… 회의… 전방위 문필가,마르지 않는 글샘을 자처해온 고은씨가 1백여권이 넘는 자신의 저서목록에 새 시집 「어느 기념비」(민음사)를 보탰다. 새롭게 모아본 시 69편에도 시인특유의 기세는 거침없이 흐른다.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산맥처럼 호방하게,저자거리의 소소한 인연을 비정할만큼 뿌리치면서 시인은 파천황의 새 세계를 열어제끼려 뚜벅뚜벅 걸어왔다.하지만 지난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우뚝한 기호로 누구보다 확신에 찼던 목소리는 좀 달라졌다.뜨거웠던 열망이 한풀 가라앉은 이 시대에 우렁우렁하던 목청엔 한가닥 그늘이 드리웠고 신천지를 향한 모색엔 회의가 따른다. 〈간밤 꿈에/나는 아라비아 바다의 한 제독으로부터/새빨간 보자기로 싼 지도를 받았다/남예맨 어디에서였다//이 지도를 펼쳐 보아라/그 다음에 네가 할 일은/당장 이 지도의 세계로 떠나라//라는 말을 남기고/그 제독은 등짝에 맞은 독화살의 독이 퍼져 죽었다//떠나라/떠나라//이 지도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지구의 고지도나/근대 지도가 아니었다/나는 죽은 제독의 눈을 감겨주고 당장 떠나야 했다//율리시스 20년뒤/내가 도달한 세계야말로/20년전/내가 살던 그곳이었다/그곳 동해 낙산사/그렇다면 나는 결국 가엾은 저 조신이었단 말인가〉(「새로운 지도」중). 자꾸 눈이 흐려져 초발심의 평정한 세계로 이끌리는 시인을 붙드는 것은 국토와 조국에 대한 맹목적 열정이다.늙은 숫사자처럼 시뻘건 햇덩이마저 심드렁할때도 「쓰레기 꽃처럼 피어」있고 「증오가 덕지덕지 똥처럼 말라붙은」(「귀향」중) 구차한 속세에 대한 그리움으로 「새로운 시절의 북소리」(「참여시」중)에 귀 기울인다.
  • 80년대 젊은예술가의 「상」/오페라 「서울 라보엠」 오늘부터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 젊은이들의 가난한 삶과 사랑,낭만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80년대 우리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서울오페라 앙상블이 11일 개막,14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선보이는 「서울 라보엠」.「신촌지엔느의 사랑의 노래」란 부제가 붙은 이 오페라는 80년대 서울 신촌을 배경으로 「시대의 아픔」에 부대끼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을 그렸다. 「소극장 오페라운동」에 열심인 장수동씨가 번안·연출한 작품.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시리즈」 첫번째 무대이다. 무대 구성도 이채롭다. 2막 카페장면과 3막 한솔의 아리아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영상을 슬라이드로 처리,생생한 효과를 낸다. 라보엠의 주인공 「미미」와 「로돌포」는 「미미」와 「한솔」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음악은 가사만 한국말로 바꾸고,곡은 푸치니의 원작 그대로다. 출연진은 미미역의 박연희,최인애,로돌포역의 이현,장보철 등 한창 주목받는 신인 성악가들. 체임버오케스트라와 합창단,전자악기가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대신해 7천5백여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도 음악계의 관심을 끈다. 서울 공연에 이어 5월 부산,9월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574­8798.
  • 5·18 국가기념일 제정/당정,적극 검토키로

    정부와 신한국당은 10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5월18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망월동묘역을 국립묘지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김중위 신한국당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이날 이기호 총리행정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면서 『5월18일 이전까지 이 문제가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미얀마 불­회교분쟁 확산/1급경계령/경찰,시위 불교도에 발포

    【양곤 AP 연합】 미얀마 북부 만달레이시에서 발생한 불교와 이슬람교간 종교분쟁은 당국의 1급경계경보발령에 이어 이슬람사원 및 재산을 노린 불교도에 대한 경찰의 발포가 이어지는 등 불안감이 한층 심화되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번 소요가 아웅산 수지여사의 민주화운동세력과 연관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경찰은 지난 18일 이슬람사원 등을 파괴하고 있던 승려 등 불교도를 해산시키기 위해 이들의 머리위를 겨냥,실탄사격을 했다고 현지주민이 19일 전화를 통해 전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 승려 2명이 부상,병원에 실려갔다고 주민이 말하고 있으나 사망자나 부상자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미얀마당국은 이달초 불교도 소녀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겁탈사건에 의해 촉발된 이번 사태와 관련,만달레이를 포함한 인근 5개 도시에 보안상 1급경계경보를 내렸다고 소식통들이 19일 전했다.
  • 북에 보혁갈등 존재할까/옥태환 민족통일연구원 연구위원(서울광장)

    최근 북한의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망명을 접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중의 하나는 과연 북한내부에 보혁갈등이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하나는 북한에도 개혁파가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정책결정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주장이고,다른 하나는 북한관료들이 모두 김부자 유일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는 개혁파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히 김부자 유일체제 확립과정에서의 숙청사,상호 감시기능을 갖는 물리적 억압기구와 엘리트계층에 대한 사상적 통제 등으로 미루어 볼때 설령 소규모의 개혁지향세력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개혁의지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후자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개혁지향인사 다수 잠복 그러나 황비서의 망명사건을 유추해 볼 때 북한에는 상당수의 개혁지향적인 지식인들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즉 중국식 개혁개방 주장에 대한 김정일의외면,그 과정에서 지식인계층의 소외등이 주요한 망명동기가 되었다는 황비서의 진술이 사실이라면,북한 권력엘리트들중 김정일 통치행태에 대한 불만과 지속적인 경제난·식량난의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체제의 변화까지 고려하는 개혁지향인사들이 의외로 많을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혁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이며,현재 북한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까? 우선 개혁적 사고를 갖고 있는 첫번째 그룹으로서 기득권 계층중 1950,60년대에 체코 프라하공대 등 동유럽 및 구소련에서 엔지니어나 경제학을 전공한 유학파들을 꼽을수 있다.이들중 일부는 노동당 정치위원,당중앙재정담당이나 정무원 부장급에 포진되어 있으며,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대표를 맡았던 연형묵 전 총리 등 상당수의 고위층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두번째 개혁지향세력으로는 해외파견이나 근무 경험이 있는 외교관이나 무역일꾼 및 기술자 등의 중간관리층을 생각할 수 있다.지난해 잠비아 북한대사관에서 근무중 귀순한 현승일씨나 영국에서 근무중 망명한 최세웅씨 등이 이런 그룹의 대표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세번째로는 동구 유학파로서 1980년대말 동구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한 그룹을 들 수 있다.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김정일의 세습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네번째로는 모스크바 군사학교에 유학한 청년엘리트 장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이들중에는 모스크바에 3년이상 장기 체류한 자들도 많으며,이들은 유학기간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과 국제정세 흐름을 지켜보았다.따라서 이들중 일부는 세계 사조에 역행하여 김부자에게 맹종하는 군부지도층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을수 있다.이같이 북한에는 위로는 당비서,정무원 부장으로부터 중간관리와 청년장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개혁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정일 도전 받을때 부상 미국 버클리대학의 북한문제전문가인 스칼라피노 교수는 북한에는 국제사조를 이해하고 있는 이러한 개혁지향적인 인사가 약30만명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그는 이들이 현재 공안당국의 거미줄 같은 감시망 때문에 종적·횡적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으나 김정일의 리더십이 도전을 받을때 정치전면에 부상할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만약 스칼라피노 교수가 예견하듯이 이들 개혁세력이 정치권 전면에 부상할 수 있다면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며 평화통일도 앞당길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의 장기적인 대북정책도 이들의 입지를 강화해 주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황비서의 망명으로 야기된 남북간의 첨예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제7차 경수로 부지조사단을 파견하고 미국과 함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서 6백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 조자양 등 장례 참석금지/강택민,요청 거부/보수파 등력군도 제외

    【홍콩 DPA AFP 연합】 조자양(76) 전당총서기와 보수파의 거물인 등력군 등 2명이 등소평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북경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23일 보도했다. 이들 소식통은 당과 국무원이 등의 장례행사에 참석하고 싶다는 조 전총서기의 거듭된 요청을 아무런 설명없이 거부했다면서 대신 그에게 신년연휴이래 머물고 있는 동부 연안도시 항주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성도일보는 또 등소평의 유족들이 당의 선전책임자를 지냈으며 보수파의 리더인등력군을 장의위원에서 제외해줄 것을 아울러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조 전 총서기는 한때 등소평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등 실세로 각광을 받았으나 지난 89년6월 천안문 학살사태당시 민주화운동세력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실각했으며 그의 자리는 강택민 현주석에게로 넘어갔었다. 소식통들은 강주석의 이같은 거부가 최고 지도자 등의 사후에 전개될 권력승계과정에서 조를 잠재적 위협인물로 간주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등」이후 중국… 나카지마 미네오 기고(해외논단)

    ◎중 사회주의 모순 분출… 체제유지 회의적/강택민 군사력 증강·민족주의 강화 가능성 등소평이후의 중국에는 사회적 모순이 분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본의 중국전문가 나카지마 미네오 도쿄외국어대학 학장이 21일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등소평의 죽음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온 등은 모택동 모델의 중국사회를 변혁시킨 지도자다. 등은 3번씩이나 실각하면서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으며 모택동이 죽은후 78년에는 마침내 화국봉을 밀어내고 중국공산당내 주도권을 확보했다.등은 그후 최고 실력자로 황제와 같이 군림해왔다.하지만 그러한 등의 인치를 비판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며 민주화 움직임은 1989년 6월4일 천안문사태로 발전했다.등은 천안문사건을 철저히 진압하지않은 조자양 당시 총서기를 실각시키고 강택민을 총서기에 임명했다. 등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때문에 중국은 등의 사망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사회적 혼란을 피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그러한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큰 불안을 안고 있다.무엇보다도 지금의 개혁·개방정책이 중국민중들에게도 혜택을 주며 등사망이후에도 중국의 경제·사회가 순조롭게 발전해 나가면 그러한 불안은 크게 완화되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현재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많은 사회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압력솥」과 같은 상황이다.천안문사건후에도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끊이질 않았으며 민주화운동의 불씨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이때문에 포스트 등시대에 거대한 역사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동은 민주화운동을 다시 고양시키고 농민반란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으며 옛소련과 같이 등이후에 정치적 실권을 쥔 지도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반혁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그러한 두가지현상이 연계되어 일어나며 큰 혼란없이 공산당독재체제가 조용히 붕괴될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대만과 홍콩으로부터 불어온 「남풍」의 사회적 침투력도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최근의 중국 권력중심부에서는 등이후의 혼란에 대비,견고한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하기위해 등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비등소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94년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택민 총서기의 측근인 황국 당시 상해시장 등 이른바 상해인맥이 당중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도 그러한 흐름의 반영이었다. 강택민 주석은 지금 당(총서기),정(국가주석),군(국가군사위원회주석)의 3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등에 의해 현재의 지위에 올랐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강택민은 등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에 비해 등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그러한 강의 기반강화 움직임에 보수파 원로들과 군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거리다.앞으로 수주에서 수개월사이에 교석 등 최고 지도자들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면 군의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역사적 흐름인 탈사회주의 조류에 의해 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등사망후의 중국은 장기적으로 사회주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21세기에는 「일국다정부」 형태의 중국으로 재편될지도 모른다.오는 7월에 반환되는 홍콩의 운명,대만인들의 정체성 성숙,소수민족의 반란움직임 등이 그러한 전망의 가부를 결정할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그러한 불확실성의 과정에 들어서면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며 대외적으로 대중화 민족주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될경우 미국과 중국,일본과 중국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일 도쿄외국어대 학장/정리=강석진 도쿄특파원〉
  • 정치개혁 가능할까(등 이후 중국대륙:2)

    ◎경제제일주의… 탈이데올로기 확산/경제 자율권 확대로 통제여지 줄어/급성장한 중산층 민주화요구 커져/대체할 조직 미비… 당분간은 현체제 지속 등소평이후의 중국지도층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형태의 질서를 떠맡게 됐다.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문에서는 자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중국의 이러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의 경제는 지난78년 개혁개방이후 해마다 9.3%의 고속성장을 거듭했으며 무역총량이 3천억달러에 육박해가고 있다.일반국민들도 이러한 경제성과의 수혜자가 됐으며 개혁개방정책의 지지세력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한편에서는 사회구조 및 의식의 다양화와 공산주의 이념의 퇴색이 촉진됐다.경제부문의 자율권 확대는 정부의 통제와 계획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으며 사회주의 특색인 계획경제의 여지를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다.경제적 성장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외개방이 도리어 공산당의 집권과 안정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사회의 통합을 이뤄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산당 조직이 효율과 경제제일주의,탈이념의 분위기속에서 상당히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상업주의,배금주의의 거대한 물결속에서 이데올로기와 공동체의식은 빛바랜 유산이 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 선망과 출세의 지름길이던 공산당 입당과 당에 대한 헌신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공업발달로 인한 도시화는 1억명이상의 농촌잉여노동인구를 도시로 빨아들였다.도시에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유랑인구층의 확대는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도시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 공산당조직의 해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개혁개방이후 성장한 중산층과 서구 사상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계층의 민주화요구는 정부의 압력속에서도 커가고 있다.기존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에 대한 정통성 약화와 불신이라고 요약되는 이러한 현상은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난78년 개혁개방이래 등소평의 노선에서도 변하지 않는 4가지 전제조건이 있다.그것은 ▲사회주의 노선 ▲무산계급의 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및 모택동사상의 견지였다.경제는 시장경제로 나가지만 정치는 공산당의 1당 지배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지난93년 8차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개정한 헌법에서도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견지해야 한다는 조항은 여전히 살아있다. 공산당 독재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분야에서의 현 정책기조는 등 사후도 변치 않을 전망이다.지난1월25일 중앙기율위원회에서 위건항위원장은 「자산계급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하겠다」며 정치적 다원화와 민주화 요구에 경고를 보냈다. 강택민 주석 역시 공산당의 우위체제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며 다원적인 정치개혁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은 외부적으로도 아직 공산당을 대체할 조직과 역량이 미비하고 시민사회의 형성이 더디어 중국 지도부가안에서 분열하지 않는한 정치적 개혁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적 토대가 바뀌면 그 위에 세워지는 정치·사회·문화적 체제도 바뀌어가기 마련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체의 주장이 맞는다면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토대가 바뀐이상 장기적으로 정치체제도 바뀔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언론의 보도/LA타임스­누군가 강택민에 도전할수도/르몽드­천안문사태 풀어야 할 과제로/알게마이너­일관된 개방정책 추진 미지수 세계언론들은 20일 등소평 사망 뉴스를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사설·해설 등을 통해 군과의 관계,점차 거세질 민주화 욕구 등의 이유로 강택민 체제의 앞날이 순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미국)=「등소평의 유산」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등이 생존 당시 권력을 이양하지 못한 점과 그의 사후 닥쳐올 불안한 후계자문제 등은 그러한 개혁들이 여전히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 ▲워싱턴 포스트(미국)=등의 사망을 계기로 강택민국가주석은 이제 후견인없이 중국을 이끌어가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강주석은 군을 모두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으며,과거 주은래와 호요방의 사망후와 같이 대규모 시위에 시달릴 가능성도 안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미국)=누군가가 강에게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지난 76년 민주화운동에 대해 훗날 공산당이 공식적인 비난을 철회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등이 「반혁명 소요」로 공식 비난한 천안문사태에 관한 재심요구로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도.윈스턴 로드 전 동아시아태평양담당 국무차관보가 『천안문 문제가 등 생전에 재론될 가능성은 없었으나 앞으로 두세달은 지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 신문은 보도. ▲르 몽드(프랑스)=천안문사태가 앞으로 강체제가 풀어야할 최대과제라고 지적.이 문제에 논의는 그동안 금기시돼왔으나 등의 사망으로 피할수없는 난제가 됐다고 보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독일)=등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사라진 지금 그의 후계자들이과연 등처럼 일관되게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나갈수있을지 매우 의문시된다고 지적.반면 게네랄 안차이거지는 『강주석·이붕 총리 등이 등의 개혁노선을 지속시킬 경우 중국이 21세기에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
  • 중 주권회복에 큰 영향 없을듯/등 사후 홍콩의 장래

    ◎반환일정 확정… 지도부 의지 확보/홍콩언론 등 치적 부각… 동요 없어 【북경 연합】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93)의 사망은 오는 7월1일로 예정돼 있는 홍콩의 반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홍콩의 주권을 회복하는데는 큰 장애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홍콩주민들 사이에서 등의 사망이 단기적으론 심리적 동요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중국 및 홍콩당국이 홍콩반환과 관련,그동안 등사망까지도 염두에 둔 다각적이고도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는 점 등이 이같은 분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와관련,홍콩정청의 마지막 총독인 크리스 패튼 총독은 앞으로 홍콩을 「1국가 2체제」방식으로 이끌려는 등의 구상이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양국간의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아니라 97년 이후 홍콩의 안정과 번영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홍콩 주민들도 중국 현대사에 있어 최대의 민주화운동으로 각인된 지난 89년의 6·4 천안문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결정적 오류에도 불구,등이 중국 역사를 바꿔놓고 홍콩의 주권회복을 가능케 한 지도자라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이른바 「제3세대」 지도자들도 등 못지않게 홍콩 주권회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있는 만큼 등이 무대의 뒤안으로 사라졌다고 해서 이미 마련된 홍콩반환계획에 새로운 돌출변수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등의 사망으로 중국 최고지도체제가 안정되기 전까지 당분간 중요한 결정이 유보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같은 경향이 중국의 정치적 불안과 홍콩의 장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최고지도부가 지도층 내부에서 보·혁간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장래 홍콩에 대한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무리없는 조화를 이뤄낼 것이라면서 동시에 홍콩문제 자체가 중국지도체제의 정립과 세력균형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관련,홍콩의 명보는 20일 「위대한 지도자를 기억하자」는 제하의 사설에서 『등소평은 중국 역사와 홍콩주민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고 평가하면서 『그는 역사를 다시 쓰려는 용기와 야망을 갖고 있었다』고 추모,등의 과오보다는 업적쪽에 더 큰 무게를 실었다.
  • 1분기 성장률 4.6% 전망/금융연

    ◎엔저·한보 영향… 당초예상 밑돌듯 노동법개정에 따른 파업과 한보사태에다 일본 엔저까지 겹쳐 올 1·4분기의 GDP(국내총생산)성장률이 4.6%로 급락하는 등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전망됐다.특히 엔저현상이 지속될 경우 올해 실질경제성장률이 당초예상을 크게 밑돌아 자칫 80년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으며 경상수지적자도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분석됐다. 5일 한국금융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 등 각 연구기관에 따르면 파업과 한보부도사태는 물론 미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이 120엔대로 급등하면서 지난해 전망하던 거시경제지표의 수정작업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연구원은 올 GDP성장률을 6.3%로 예측했으나 엔화환율이 달러당 110엔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성장률이 잘해야 6%에 근접할 것으로 보고 있다.금융연구원은 무엇보다 엔저가 심각한 문제라며 파업 등으로 생산차질을 빚고 있는 1·4분기 GDP성장률은 4.6%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또 엔저는 교역조건악화와 수출감소로 이어져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상수지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6.3%로 전망하던 금년 GDP성장률을 5%내외가 될 것으로 수정전망했다.연구소 관계자는 여러 경제여건으로 보아 올 GDP성장률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80년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GDP성장률은 80년 -2.7%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그 다음은 경기가 저점을 향해 하강하던 92년의 5.1%가 가장 낮았다.현대사회경제연구원도 6%를 넘게 내다보던 성장률을 최저 5.7%까지 낮춰잡는 등 수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 세르비아 야,민주화운동 군개입 촉구/경찰 무력진압속 시위 격화

    ◎서방국가들도 강력 비난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정부의 지방선거 결과 무효화조치로 촉발된 세르비아사태는 서방국가들이 민주화 요구시위 강경진압을 강력히 비난하고 야당지도자가 군부의 개입을 촉구하면서 더욱더 위기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민과 학생 등 6만여명은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8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11주째 계속되고 있는 시위중 최악이었던 전날에 이어 3일에도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광장에서 야당연합인 「자예드노(다함께)」 주최로 열린 반정부집회에 참가한 뒤 가두행진을 시도했으나 곤봉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B92 라디오방송은 경찰관 수백명이 집회참가 후 해산하거나 상가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서슴지 않았으며,일부 젊은 시위자들은 돌 등을 던지며 맞서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야당지도자 부크 드라스코비치는 기자회견을 통해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 뒤 『군대가 베오그라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행위에 대해수수방관해선 안된다』며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민주화운동에 직접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군 개입을 촉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연방군은 지금까지 중립을 지킬 것임을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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