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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대를 넘어 지역을 넘어] ④ 지역감정 해소

    지역감정에 대한 영남과 호남의 시각은 꽤 다르다.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에따른 앙금도 상당히 남아 있다. 해법에 대한 접근에도 어느 정도 차이는 있으나,고른 인재 등용과 지역균형개발 등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데는 영호남이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20일 당선 회견에서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주의의 장벽을 허물지 못한 데는 큰 아쉬움이 남지만,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은 발견했다.열심히 노력해 국민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밝혔지만 해묵은 불신의 벽을 헐어내기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양 지역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영남의 마음 “호남지역의 개표상황을 보면서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호남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시나였다.”(김성진·39·경남 진주시 동성동) 16대 대선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영남지역 주민들은 착잡한 가운데 패배에 따른 실망감과 아쉬움을 안으로 삭이는 듯한 표정들이다.이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 동서간 지역주의,특히 노 당선자에 대한 호남 몰표에 대해 ‘해도 너무한다.’는 식의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경남에서조차 이 지역 출신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기쁨보다 호남지역에서 나타난 몰표현상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상인 우모(55·대구시 중구 동인동)씨는 “대구·경북에서 노 당선자에게 20% 안팎의 지지를 보냈는데 호남이 노 당선자에게 90% 이상의 몰표를 몰아준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며 “앞으로 동서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택시기사 황모(53·경북 안동시 용상동)씨는“손님들이 애써 선거 이야기를 외면한다.”면서 “호남에 또 졌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주부 정종숙(47·경남 창원시)씨는 “이제는 전라도 사람들이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정치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노 당선자를 적극 지지한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번 선거가 지역주의를 희석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영남 출신으로 동서화합에 제격인 노 당선자로 인해 지역감정이 수그러들고 진정한 화합이 이뤄질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대학생 이모(21·대구시 동구 신천동)씨는 “대구·경북에서 노 당선자가 20%안팎의 지지를 받은 것은 지역주의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호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간다는 자세가 중요하며,노 당선자가 흩어진 민심을 추스르고 지역갈등 봉합에 앞장서는 등 정치를 잘할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보험회사 직원 이모(33·여·부산 사하구 괴정동)씨는 “동서간 표쏠림 현상이 이번에도 나타나 아쉽지만 이제 모두 힘을 합해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인들은 동서화합을 위해 고른 인재 등용과 지역균형개발,영호남 공동사업 등을 새 정부에 주문했다. 김태일(47·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DJ 정부가 동서화합에 실패한가장 큰 요인은 호남 편중의 인사와 영·호남 토호 수구 세력간의 연대를 통한 지역주의 해결 모색”이라며 “새 정부는 지역과 계파,계층을 초월한 유능한 인재의 고른 등용과 함께 개혁세력을 동서화합의 파트너로 삼아야 할것”이라고 주문했다.이동철(46·의학박사) 포항지역사회연구소장은 “인재등용과 지역개발 측면에서 영·호남인들 서로가 피해의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부산 김정한·대구 황경근기자 jeong@ ◆호남의 마음 호남지역 유권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이유는 여당으로 누렸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호남을 텃밭으로한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영남 출신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써 오랫동안 피해의식으로 자리잡았던 지역감정을 떨쳐버리고 동서화합과 개혁을 이뤄보겠다는간절한 소망에서다. 호남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영남 출신 후보에 몰표를 준 투표결과에 스스로 놀라며 이번 대선으로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란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계기가 됐다고 자평하는 한편 이같은 모습이 다른 지역에 어떻게 비쳐질지걱정하는 모습이다. 회사원 조동균(40·광주시)씨는 “개표 방송을 지켜 보면서 다른 지역에 미안한 마음도 느꼈다.”며 “그러나 현 정권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던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회사원 이모(36·광주시)씨는 “정몽준 대표의 투표 전날 ‘지지 철회’ 발언에 위기의식을느껴 투표 당일 아침 친구와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꼭 투표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나 진보적 지식인들도 “노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이곳 주민들의 변화와개혁에 대한 열망”이라고 진단했다.전남대 정근식(사회학과) 교수는 “영남 사람인 노 당선자를 열렬히 지지한 것은 그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외길을 걸어온 경력과 무관치 않다.”며 “이를 해묵은 지역주의 잣대로 가늠해 또 다른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호남주민들은 노 당선자가 이번 대선 결과 동·서로 양분된 민심을 추스르고 이를 제2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 김모(23·전북 전주시)씨는 “노 당선자는 정치개혁을 통해 구시대인물을 퇴출시키고 참신한 인물을 골고루 발탁해 민주당을 전국정당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광주에서 사업을 하는 김영환(41)씨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는 연고주의를 배제한 능력 위주의 인사와 지역 균형개발이 최우선 과제”라며 “정치인들 역시 지역주의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엄격한 감시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이정천(47) 위원장도 “지역감정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적인 편중인사를 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하고 “노 당선자가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중앙정부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지방정부에이양해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도 지역감정을 뿌리뽑는 기반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전북지역 기업인들은 새 정부가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고 지역균형발전정책을 함께 추진할 경우 그동안 발전에서 소외됐던 전북,충북,호남·충남 서해안,경북 북부지역이 자연스럽게 발전하면서 지역감정의 벽도 허물어질것으로기대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전문가 해법 “지역갈등을 없애고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하는 좋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위해 TV에 출연,화제가 됐던 부산 자갈치시장 아지매 이일순(58)씨가 노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한 말이다. 무엇이 이 평범한 서민 아지매로 하여금 첫마디에서 ‘지역 갈등’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 나오도록 한 것일까. 지난 40여년간 한국정치의 최대 화두는 ‘지역감정’이었고,역대 선거에서도 이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무기가 없었다.따라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좋은 정책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지역감정이란 편리한 무기를 거머쥐는 데만 관심을 쏟게 됐다. 원래 애향심과 관련된 ‘자기지역 우선주의’와,타 지역 사람과의 감정 및정서상 이질감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을 나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그러나 이런 순수한 지역감정이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의 획득·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지역패권주의로 전락했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끼친 해악은실로 엄청났다.특히 지역갈등이 영·호남간 정치적 대결구도로 고착되면서우리는 심각한 국론분열 현상에 직면하게 됐고,이런 상황에서 지역갈등은 이미 그 어떤 이성적 설득도 통하지 않는 맹목적이고 교조화된 도그마로 정착된 느낌까지 갖게 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우리는 지역갈등 극복의 새로운 희망을발견하게 된다.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스스로 편한 길을 마다하고 험난한 길을 걸어온 노 후보에게 국민들이 뜨거운 지지를 보냄으로써,지역갈등은이미 고질적 병폐에서 치유 가능한 것으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아직도 표의 동서 양분현상이 존재하고,선거 후에도 노 후보에 몰표를 던진 호남지역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타 지역에서 나오는 등 넘어야 할 산과 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표의동서현상은 과거 지역대결 구도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본다. 호남인들이 영남 출신 후보에게 보낸 높은 지지는 동서화합을 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적임자로 노 후보를 선택한결과이기 때문이다.노 후보가 영남지역에서도 나름대로 높은 지지를 얻은 데서 지역갈등 극복을 바라는 전국적국민 여망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이제 지역갈등보다는 누가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인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젊은유권자들의 표심이 크게 작용했다.민심은 이미 과거 지향적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미래 창조적 국민주의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제 남은과제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제 21세기 첫 대통령이 될 노 당선자는 이같은 국민 여망을 절실히 인식하고 지역갈등을 20세기의 유물로 확실히 묻어버리는 과감한 개혁과 화합책을 도모해야 한다.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국민 단합과 지역갈등 극복이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가 지역갈등을 극복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다음 몇가지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첫째,역대 정부의 인사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되 가능하면 지역간 고르게 등용함으로써 지역화합을 도모해야 한다.이 점에 있어서 노 당선자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자유로운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리어려운 일이 아니다. 둘째,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을 지역에 분산시켜 수도권에는 삶의 질을 높이고,지방에는 발전의 기회균등을 도모,건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지역간 균형발전은 교육제도의 근본적 개혁에서 찾아야 한다.대학마다 특성화되지 못하고 백화점식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지역간 인적교류는 기대하기 어렵다. 넷째,지역화합뿐 아니라 장래의 통일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선진민주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국가적차원에서 도모했으면 한다.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자기 이익과 함께 남을배려하는 여유를 배우는 것만이 정치개혁을 이룩하는 첩경이다. 아무쪼록 한반도의 우리 민족은 이제 모두 하나되는 열린 마음속에 21세기첫 대통령과 함께 대동세상을 활짝 꽃피우는 데 앞장서야 하겠다. ◆영.호남.충청 표분석 16대 대선은 세대와 지역의 승부로도 관심을 모았다.세대간 대결 양상이 고질적 병폐인 지역대결 양상을 누를 것인가,2030세대는 과연 지역감정의 벽을 뛰어넘을 것인가 등이 화두(話頭)였다.결론은 가능성을 확인한 ‘미완의 성공’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인 영·호남 대립구도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실히드러났다.특히 호남지역의 몰표는 뿌리깊은 지역구도의 현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영남에서 68.6%를 득표한 반면 호남에서는 고작 4.9% 득표에 그쳤다.노무현(盧武鉉) 당선자는 민주당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무려 92.3%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고 영남에서도 25.5%를 얻었다.노 당선자의 호남 득표율은 15대 대선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얻은 92.9%에 맞먹는 수치다.호남에서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영남에서는 4명 중 1명이 노 당선자를 찍은 셈이다. 영남의 표심은 노 당선자의 득표율만 놓고 보면 지역감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노당선자는 고향(김해)인 경남에서 27.1%,부산에서 29.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울산에서는 35.3%를 얻었다.PK(부산·경남·울산)지역을 합하면 29.1%로,10명중 3명이 그를 지지했다.15대 때 김 대통령이 부산 15.0%,울산 15.2%,경남 10.8% 등 13.4%를 얻은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약진한 셈이다. 그러나 당시 선거가 3자대결구도로 치러진 반면 이번에는 양자대결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이회창 후보의 득표율도 15대 때보다 부산(3.4%포인트)과 경남(12.4%포인트)에서 모두 상승했다. TK(대구·경북)에서도 노 당선자는 대구 18.7%,경북 21.7%로 김 대통령의 12.4%,13.4%보다 4∼7%포인트 더 득표했다.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15대 때보다 대구에서 6.1%포인트,경북에서 12.5%포인트가 올라 상승폭이 더 컸다.3자대결구도가 양자대결구도로 전환한 것이 노 당선자 득표율 상승의 첫째 요인임을 말해준다.다만 15대 때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얻었던 표가 모조리 이 후보에게 가지 않고 절반 정도 노 당선자에게 갔다는 점에서 다소나마 지역감정의 벽이 낮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영호남과 달리 충청권 표심은 의미있는 현상을 담고 있다.DJP연대가사라지고,이 지역에 연고를 둔 이인제 의원이 빠진 상태에서 노 당선자가 이 후보와 득표율 상승분을 양분한 것이다.노 당선자의 득표율은 15대 김 대통령의 것보다 대전에서 11%포인트,충남에서 5%포인트,충북에서 14%포인트 상승했다.반면 이 후보도 대전에서 11%포인트,충남에서 18%포인트,충북에서 12%포인트 더 얻었다. 15대 대선때 김 대통령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와의 연대로 충청권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노 당선자는 김 총재가 중립을지킨 가운데 대전과 충남북 모두에서 승리했다.지역 연고를 갖고 있는 이 후보는 고향인 충남 예산과 홍성,충북 제천 등 3개 지역구에서만 앞섰을 뿐 대전 5곳을 비롯,나머지 28개 지역구에서 패했다. 이는 노 당선자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효과를 거둔 때문으로 풀이된다.정책공약이 지역감정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역감정 극복의 가능성은 2030세대의 투표행태에서도 나타난다.대선 투표당일인 지난 19일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리서치가 4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투표자 조사에서 PK지역 20대의 42%,30대의 40.3%가 노 당선자를 찍었다고답했다.이는 노 당선자의 지역 득표율 29.1%를 11∼13%포인트 정도 웃도는수치다. TK에서도 20대의 31.6%,30대의 28.4%가 노 후보를 지지해 전체 득표율 19.97%를 11%포인트 가량 웃돌았다.물론 전국적으로 20대의 60.6%,30대의 60.5%(19일 한국갤럽 조사)가 노 당선자를 지지한 것과 비교하면 이들 영남권 2030세대가 지역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결국 영남지역 젊은 층의 표심은 지역감정 극복에 있어서 이번 대선이 안겨준 성과이자,과제인 셈이다. 진경호기자 jade@
  • 선택2002정치인 노무현-청문회 스타서 지역통합 기수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가로서 냉정한 승부사로 비쳐졌다.고비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를 던져 유권자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고,이런승부사기질이 가장 돋보인 순간은 지난 11월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후보단일화 과정 때 불리한 조건들을 차례로 모두 수용,마침내 단일후보로 결정될 때로 꼽힌다. 노무현은 이번 대선승리의 원동력이 된 ‘시대정신’을 집요할 정도로 추구했다는 평도 받는다.1990년 3당 합당행을 거부하는 것을 기폭제로 해 이후정치역정 내내 ‘지역통합’‘3김청산’이란 시대정신을 추구했다고 사석에서 회고하곤 했다.결국 부산에서 네번이나 떨어지며 지역통합을 외친 그를위해 2000년 총선 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란 정치인 사상 첫 팬클럽이 탄생한다.노사모와 함께 지역통합이란 시대정신을 추구,맨몸으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 본선서도 바람으로 거대한 조직을 쓰러뜨렸다. ◆청문회 스타로 등장 노 당선자의 정치인 생활은 15년째이지만 국회의원으로 있던 기간은 5년10개월에 불과하다.88년 13대 총선 이후 줄곧 출마했던 점을 감안해보면 영광의 기간이 너무 짧았다.13,14,15,16대 총선과 한번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부산시장 선거 등 여섯번 출마해 두번만 당선됐다.하지만 기회포착엔 능했다.그는 첫번째로 찾아온 기회인 1988년 청문회를 놀라운 감각으로 활용했다.그해 11월7일부터 9일까지 열린 5공 비리 청문회에서 노무현은 당시 현대그룹정주영(鄭周永) 회장,장세동(張世東)전 안기부장과 안현태(安賢泰)전 청와대경호실장 등의 기를 꺾는 추궁으로 궁지로 모는 데 성공,자서전에서 표현한대로 하루만에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나 89년 3월 노 당선자는 “박해받는 민중들의 이익을 대변해 보겠다고 국회에 들어왔지만 정부·여당은 광주·5공 특위의 증인 출석을 방해하고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키로 하는 등 국회를 모욕했다.”면서의원직 사퇴후 잠적해 버린다.하지만 노무현은 당 총재였던 김영삼(金泳三·YS)이 자신의 부인과 형님을 상도동 자택으로 불러 간곡히 철회를 권유해오자 의원직사퇴 의지를 접는다. 노무현은 그해 12월31일엔 청문회에 출석한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위급한 상황에 처한 현지의 지휘관들이 자위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나….”라고 증언하자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명패를 던졌고 이로 인해 청문회는 무산됐다.노무현은 그러나 후일 “전씨에게 명패를 던진 게 아니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이후 과격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계기가 된다. ◆짧은 영광,긴 가시밭길 90년 1월 노무현은 정치인생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한다.민정당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YS,공화당 김종필(金鍾泌·JP)총재가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을 창당하자 YS를 ‘변절자’라고 비난하면서 합류를 거부했다.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은 노 당선자는 91년 김대중(金大中·DJ)총재가 이끄는 평민당과의 야권 통합에 참여했고,통합민주당의 대변인이 된다.물론 이때도 그는 대의원이 호남일색이라며 10억원 가까이 든 전당대회를 관철시켜동교동계 인사들로부터 “꼬장꼬장하다.”는 평을 들었고,이들과 오랜기간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물론 DJ와 관계도 썩 좋지 않게 된다. 특히 노무현이 YS와 헤어진 대가는 혹독했다.부산에서 92년 14대 총선,95년 부산시장 선거에 거푸 도전했지만 거대한 지역벽만 실감했다. ◆DJ와 애증의 세월 96년 총선 직전 DJ가 통합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노 당선자는“신당창당은 전근대적인 정치행태를 답습하는 것일 뿐”이라고 DJ를 비판하고 지역주의타파와 3김 청산을 외치며 왜소해진 민주당에 남는다. 노무현은 이때부터 지역주의 타파와 3김 청산이란 ‘시대정신’을 추구하겠다면서 대통령의 꿈을 가슴속에 품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97년 3월에는노무현이 김정길(金正吉)·이철(李哲)등과 함께 서울 강남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고깃집을 낸 뒤 대통령 출마 얘기가 거론됐다고 한다. 특히 노무현은 그해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李仁濟)가 국민신당을 창당,출마하자 “이인제가 출마하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야권 통합을명분으로 그해말 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해 흐지부지된다. ◆커가는 대권의꿈 노무현은 97년 연말 대선에서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곧바로 DJ를 연구하기 위해 한 책방에서 DJ 전집을 모조리 구입한 다음 정독했다고 한다.본격적으로 대권의 꿈을 가다듬은 것이다.98년 별세한 어머니의 삼우제를 지내기위해 고향에 갔던 그는 친구들이 “와 호남당에 들어갔노.”라면서 걱정하자 “내가 대통령 후보가 되면 영남당 되는 거 아이가.다 뺏어 오면 된다 아이가.”라고 ‘천기’를 처음으로 누설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승부수가 처음으로 부각됐던 때는 2000년 16대 총선이다.그는 98년 7월 종로보궐선거에서 당선,앞날이 보장된 것처럼 보여졌지만 ‘지역통합’을 기치로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부산 북·강서을구 출마를 결단한다.물론 “어쩔 수 없어 부산으로 갔다.”는 이론도 있다.총선서 그는 ‘차기대권에 대한 꿈’을 제시하면서 선전했지만 역시 지역감정의 벽을 못넘는다. 하지만 이게 계기가 돼 이후에 DJ는 노무현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고,그의지역통합 추구 투혼에 감명받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노사모가 조직돼 대권꿈의 최첨병 역할을 해낸다.폭풍이 휩쓸고 간 거친 땅에 희망의 새싹이 돋아난 형국이었다고나 할까. 부산에서 ‘장렬히’ 떨어진 그에게 DJ는 2000년 8월 해양수산부장관이라는 공직경험을 선물한다.그는 이후 직원들과 격의없고 파격적인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 일화를 양산해내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피눈물로 보낸 한해,환희 속 대미 장식 노무현은 세간의 예상을 비웃으며 지난 4월27일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다.하지만 이후엔 후보낙마 위기를 여러차례 맞으며 피눈물의 가시밭길을걷는다.오죽했으면 노무현이 지난 11월25일 단일후보로 확정된 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노 후보는 여러차례 우리당 후보가 됐지만 이번은 진짜다.”라고 말했을까. 실제로 그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뒤 YS를 찾아간 뒤 여론의 무차별 난타를 당했다.6·13지방선거 참패 뒤엔 당에서 만신창이가 된 후 후보재신임을받는다.이런저런 설화로 인해 많이 두들겨 맞기도 했다.8·8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후보사퇴 압력이란 수모도 겪는다. 급기야 재경선용의를 밝히지만 도전자가 없어 무산되고 이후 반노(反盧)·비노(非盧)세력에 공격당해 상처투성이가 됐다가 후보단일화란 일생일대의승부수로 단일후보를 쟁취,일거에 국면을 반전시켜 환희를 맛보게 됐다. 이춘규기자 taein@ ★노무현 당선자 연표 1946년 9월1일 경남 김해 출생 59년 경남 김해 진영 대창초등학교 졸업(2월) 63년 경남 김해 진영중학교 졸업(2월) 66년 부산상고 졸업(2월) 68년 육군 입대 71년 육군 만기제대(상병-을지부대) 73년 권양숙 여사와 결혼 75년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부임(9월) 78년 변호사 개업(5월) 81년 부림사건변론 계기 인권변호사로 전환 84년 부산 공해문제연구소 이사 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 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 집행위원장(4월) 87년 대우조선 사건으로 구속(9월) 87년 변호사업무 정지처분(11월) 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88년 5공비리 특별위원회 활동(청문회 스타로 급부상),국회 노동위원회 간사90년 3당합당 거부,민주당 창당 참여 90년 7월 민자당의 법률안 날치기 통과에 항의,이해찬.김정길.이철 의원과함께 의원직 사퇴서 제출 91년 신민-민주 야권통합협상 대표,통합민주당 민생위원장,대변인 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민주당 부산 동구),14대 대통령선거 민주당청년특위위원장 93년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최연소),부산시 지부장,당무위원 95년 6월 통합민주당 부총재,민선 부산시장 선거 출마,낙선 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민주당 서울 종로),국민통합추진위원회 상임집행위원 97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대선직전) 98년 제15대 국회의원 종로보궐선거 당선(7월),국회 예결위원,교육위원 99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산 북·강서을 지구당 위원장,경남도지부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을 지구당 위원장,16대 국회의원 낙선 2000년 8월~2001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 2001년 9월 부산후원회에서 당 대통령후보 경선출마선언 2001년 11월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2002년 2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입후보 2002년 4월27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당선 2002년 8월8일 새천년민주당 재·보선 참패,민주당 내분 가열 2002년 9월30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위 출범 2002년 11월25일 새천년민주당·국민통합21 대통령단일후보로 확정 2002년 11월27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등록 2002년 12월13일 정몽준통합21대표와공동유세시작 2002년 12월19일 제16대 대통령 당선 확정
  • 노무현 당선의 막후 주역들-김원기·정대철, 고비마다 버팀목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4월 국민경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주변에 현역 의원은 거의 한명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측근과 가신없는 정치’라는 그의 원칙과소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당 안팎에서 그를 조용히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당선자 자신도 부인하지 않는다. ◆노(盧)의 손을 잡아준 정치인 노무현 당선자 일등 공신은 당초 시나리오대로라면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였을 것이다.우여곡절을 거쳐 성사된 후보단일화가 투표 하루 전날파기되는 불상사가 없었다면 그랬을 것이라는 얘기다.그가 끝까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단일화 시너지를 극대화시켰으리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정몽준 대표의 막판 지지철회 선언으로,끝까지 노 후보와 함께한 인사들의헌신은 더욱 빛을 발했다.김원기(金元基) 정치고문은 노 당선자가 어려울 때마다 의지하곤 했다.그는 노 후보가 항상 원칙과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준 노 후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은 민주당에 뿌리가 약한 노 후보의 뿌리역할을 했다는 평이다.신계륜(申溪輪) 후보비서실장은 통합21과의 후보단일화 협상에서 단일후보의 산파역할을 수행했다.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조순형(趙舜衡) 천정배(千正培)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당 안팎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노 후보의 개혁드라이브를 끝까지 충실히 대변했다.국민참여운동본부 정동영(鄭東泳) 추미애(秋美愛) 임종석(任鍾晳) 의원은 ‘희망돼지저금통’ 캠페인으로 이번 선거를 국민축제로 승화시킨 주역들이다.허운나(許雲那) 인터넷선거특별본부장은 온라인 후원금 등 ‘노풍(盧風)’을 일으킨 노무현 홈페이지와 TV로닷컴을 총지휘했다. 대선 초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김한길 미디어선거특별본부장과 김경재(金景梓) 홍보본부장의 ‘투톱 시스템’이 이끈 홍보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여기에 정동채(鄭東采) 미디어특보의 조언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이상수 총무본부장, 이재정 유세본부장, 이호웅 조직본부장은 열세인 민주당 조직으로 노 후보의 승리를 이끌어냈다.이낙연·이미경·문석호 대변인과 이평수 김현미 민영삼 부대변인 등 대변인단은 열악한 당내사정 속에서도 당선자의 ‘입’ 역할을 흠결없이 수행했다. 문희상(文喜相)·김상현(金相賢) 의원은 당내에서 흔들리던 노 후보에게 바람막이가 됐다.특히 문 의원은 대선기획단장을 맡은 뒤 후보단일화와 TV토론 등 굵직한 아이디어로 고비 때마다 막후에서 노 후보를 도왔다. 김희선 여성위원장과 박주선·김성순·김효석 정조위원장,천용택 국방안보위원장,김영진 농어민위원장,함승희 공명선거대책위원장 등도 지근거리에서노 당선자에게 힘이 되어주었다.이밖에 유재건 특보단장,원혜영 부천시장,이강래 특보,유인태 위원장 등도 그의 당선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노무현의 버팀목,386 노무현의 인맥은 과거 동교동이나 상도동처럼 화려하거나 조직적이지 않다.그러나 그의 저력은 민주화운동 경력을 공유하며 동료의식으로 똘똘 뭉친 386세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갑원 의전팀장과 안희정 정무보좌역,이광재 기획팀장,천호선 인터넷선거본부 기획행정실장 등은 노 당선자가 어려웠던 시절 헌신적으로 도운 ‘핵심 4인방’으로 꼽힌다. 김관수 정무팀장과 윤석규 정개추위 사무처장,이강철 조직특보,유종필 언론특보,김만수 부대변인,정만호·배기찬 정책전문위원,윤태영 연설문팀장,황이수 인터넷기획국 부국장,이화영 업무조정국장,백원우 국참본부 팀장,정윤재부산 사상을 위원장 등도 그에게 힘이 됐던 젊은 동료들이다. ◆노무현 브레인(Brain) 노무현 당선자의 정책공약은 임채정(林采正) 정책선거특별본부장과 정세균(丁世均) 정책기획위원장의 손에서 다듬어졌다고 할 수 있다.행정수도 이전공약을 비롯한 지방화 정책과 동북아 정책,서민정책의 골자는 ‘임-정’체제의 산물이었다.김재성 서동구 남영진씨 등 언론인 출신 특보는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징검다리’였다. 국민대 김병준 교수를 비롯,조재희 임혁백 정해구 서동만 이종태 장하성 성경륭 문정인 윤원배 교수 등 70여명으로 이뤄진 실무 자문단과 백낙청 이문영 리영희 강만길 최장집 백경남 등 원로자문단은 노 당선자의 정책 브레인역할을 톡톡히 했다. ◆외곽 지원세력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적지않은 지인(知人)들은 노 당선자와 동고동락했던 사람들로 외곽 지원세력이었다.부산의 조성래 문재인 변호사는 정치적 조언자였다.송기인 신부는 그의 ‘정치 대부’라 할 만하다.그의 부산상고 선배인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은 노 후보의 재벌정책에 균형을 잡아주었다.이 외에도 김재규 전 부산민주관장,송정재 전 부산일보 사장,국민개혁정당 유시민씨,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기명 후원회장,전국 7만여명의노사모 회원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
  • 민주화운동 산증인 강희남 목사“40년만의 투표… 손이 떨려”

    “40여년 만에 투표를 하려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뜻으로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고 40여년간 각종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강희남(姜希南·81·전북 전주시 인후동 인후아파트) 목사.19일 이른 아침 부인 주정수(54)씨와 함께 투표소로 가기 위해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챙기는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느껴오는 전율로 가볍게떨렸다. 지난 92년 고(故) 문익환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남측본부 의장을 맡아 재야의 통일운동을 주도했던 강 목사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다.6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고 민주화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총칼로 국권을 탈취한 박 정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고,이런 나라의국민 노릇을 한다는 게 창피하고 분해서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렸지요.” 강 목사는 “청와대 주인공은 ‘청바지 대통령’이어야 민중과 가까워질 수 있다.”며 박 정권은 물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까지를 군사정권의연장으로 간주해 이들 정권을부정하는 상징적 의미로 35년 동안 주민등록증을 갖지 않았다.“내 앞에 권력이란 없고,권력을 가진 자란 내 안중에 없다.”며 전북 김제시 백구면 난산교회에서 민중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자신의 삶을 불태워 왔다. 신분증이라고는 주민등록증뿐이었던 그는 이 기간 단 한 번도 투표를 하지못했을 뿐 아니라 혼자서는 배나 비행기를 타지도 못했다.불심검문에 걸려곤욕을 치렀는가 하면 77년부터 10여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5번이나 투옥되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통일 지향적인 정권’으로 받아들여 지난 98년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았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현 정부의 미국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해 99년 또다시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렸다. 중국에서 역사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올 4월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든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주권행사가 될지도 모르는 이번 선거에서 꼭 한 표를 던지겠다.”며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세계에 과시할 수있는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최근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미국의 패권주의로 약소국이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민족의 대동단결로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98년 사면조치로 교도소를 나올 때 신도들이 마련해준 13평짜리 아파트에서부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지난해 12월 ‘민중주의’라는 책을 펴냈다.최근에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공무원채용 남성비율도 보장.국무회의 의결

    내년부터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남성과 여성의 채용목표비율을 정한 뒤 목표에 미달한 성(性)의 응시생을 추가로 합격시키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도입된다. 대한매일 10월25일자 26면 참조 정부는 17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공무원임용시험령’ 개정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5명 이상 채용하는 모든 공무원시험의 특정 직렬에서 남녀 구분없이 한쪽 성이 70% 이상 몰리면 초과 비율만큼 다른쪽 성을 정원 외에 추가로 합격시키게 된다.가령 10명의 합격자 가운데 여성이 9명,남성이 1명이면남성 2명을 추가로 합격시켜 모두 12명을 뽑게 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5·7급 시험에서는 여성이,9급 시험에서는 남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또 ‘사무관리규정령’을 개정,정부의 전자문서 서명에 ‘이미지서명’ 외에 ‘전자문서서명’과 ‘행정전자서명’을 추가했다. 또 전자문서의 보안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전자문서 사용권한이 있는 사람만이 문서 접근을 하도록 하고,기안자나 검토자·결재권자의 신원과 전자문서의 변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 장관이 행정전자서명에 대한 인증업무를 실시토록 했다. 아울러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을 고쳐 총포는 물론,총포 부품도 경찰관서의 제조·판매·소지 허가를 받도록 하고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금고 이상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뒤 유예기간으로부터 2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총포 등 소지허가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사회복지사법 시행령을 개정,내년부터 시행하는 사회복지사 1급시험 위탁관리기관 자격을 강화하되,사회복지사의 등급별 자격기준을 확대해 2년제 원격대학 졸업자,학점은행제 학위취득자 등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을주기로 했다. 사회복지사 3급의 자격기준 가운데 사회복지시업 및 실무경험 7년을 3년으로 단축된다. 국무회의는 이밖에 ▲국제평화유지군과 대테러 지원군 등의 수당을 위험도등을 고려,차등 지급하는 ‘군인·군무원 해외파견 근무수당 지급규정’ 개정령 ▲과도한 상해를 초래하는 재래식무기의 사용 규제를 비국제적 무력분쟁에까지 확대하는 국제협약 개정안 ▲광주민주화운동 부상자의 텔레비전 수상기 수신료를 면제하는 등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령을 처리했다. 또 ▲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시·군에서 50만㎡ 이상의 녹지지역을주거·상업·공업 지역으로 변경할 경우 건교장관의 협의·승인·결정을 얻도록 함으로써 난개발을 막는 ‘국토계획·이용법’ 시행령 ▲평생학습과정이수자에게도 사회복지사 자격을 주는 ‘사회복지사업법’ 시행령 개정령도의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노숙자.외국인노동자 보살펴온 인천 인권선교 개신교 2곳 합병

    인천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챙겨온 현장목회와 인권선교에 앞장서온교회가 교단사상 최초로 하나가 되었다.기독교장로회(기장)소속 사랑방교회(전 담임 박종렬 목사)와 아름다운교회(전 담임 박경서 목사)는 지난 10월 교단에서 합병 승인을 받은 뒤 인천 동구 화수동에 새로운 교회,아름다운사랑방교회를 짓고 지난 8일 창립예배를 가졌다.화수동은 ‘괭이부리말’로 널리 알려진 만석동 바로 옆동네로,현재 재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지역이다. 교회의 대형화와 물량주의가 일반화한 현실에서 두 교회가 합친 것은,비록규모는 작지만 외국인노동자와 노숙자 등을 위한 인권선교의 전문화에 뜻을두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랑방교회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박형규 목사(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아들인 박종렬(55)목사가 공장밀집 지대인 동구 송림동에 세운 교회.98년 교회안에 노숙자 쉼터인 ‘동구 내일을 여는 집’을개설해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등 노숙자 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 한신대 출신의 박경서(39)목사가 세운 아름다운교회도 화수동 빈민지역에서 주로 목회활동을 폈으며 2000년엔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를 열어 인권선교교회로 널리 알려졌다. 두 교회의 합병은 박종렬 목사와 박경서 목사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80년대 민중교회 운동을 각각 벌이던 두 사람은 90년대 중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총무와 인하대기독학생회 지도목사로 만나 신뢰를 쌓아왔다. 박경서 목사가 올해 초 합병을 제의한 뒤 두 목사는 각각 교인들에게 동의를 구해 지난 5월부터 사실상 합동예배를 드려왔다. 두 목사와 교인들의 뜻을 받아들인 기장 인천노회도 결국 합병 건을 어렵게 승인했다.처음 합병에 반대한 두 교회 교인들은 지금은 스스럼없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두 목사는 “오래전부터 같은 개신교끼리 분열되어 있는 한국교회 모습을부끄럽게 생각했고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지역을 선교하는 교회끼리 마음을 합쳐 공동체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작은 교회라도 사람들의 삶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하지만 소규모 교회 혼자서는 목회와 인권선교를 함께 감당하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은 두사람은 “목회경험이 풍부한 박종렬 목사가 목회에 전념하는 한편 박경서 목사는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업무를 맡아 현장에서 인권선교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선택2002/군소후보 TV합동토론 - 정책공약·쟁점싸고 열띤 공방

    하나로 국민연합 이한동(李漢東),사회당 김영규(金榮圭),국태민안 호국당김길수(金吉洙),무소속 장세동(張世東) 후보는 12일 밤 TV합동토론회에서 주요 정책공약과 쟁점을 놓고 저마다 독특한 논리와 공약을 내세우며 스스로가 국정 책임자로서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이한동 후보는 기조연설에서 “타 후보와 공평하게 토론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TV합동토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뒤 “지난 3일과 10일 제가 주요 후보 합동토론에 출연하지 않자 후보직을 사퇴했느냐는 전화가 빗발쳤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화려한 경력에 비해 지지율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 “2년2개월간 국무총리로 봉직하면서 생긴 정치적 공백으로 인기도가 낮아진 것 같다.”면서“그러나 이미 총리로 봉직하면서 국민들에게 충분한 검증을 받았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김영규 후보는 기조연설에서 “사회당은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를 넘어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정통 사회주의 정당”이라며 정당 홍보에 주력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진영 후보단일화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사회주의 이념을 뿌리내리기 위한 정치세력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수정하려는민노당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고 잘라 말했다. 김길수 후보는 기조연설에서 “서민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싶어 출마했다.”면서 “정신문화가 깨지고 도덕성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종교인의 출마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는 “불교계에서 추대된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왔을 뿐”이라고 답했다. 무소속 장세동 후보는 “정치폐해를 타파하고 국가기강을 회복시키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그는 현 정치의 문제점에 대해 “집안에서 이방 저방 다닐 수 있는 것은 걸레밖에 없다.”며 ‘철새 정치인’을 맹비난했다. 특히 그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로 눈길을 끌었다.장후보는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라면서 “역사에는 올바른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운 김재천기자 jj@
  • 각계 원로48명 “SOFA 개정”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11일째 계속된10일 각계 원로들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창국(金昌國) 국가인권위원장도 SOFA 개정을 촉구했다. 강만길(姜萬吉) 상지대 총장,송월주(宋月珠) 전 조계종 총무원장,박형규(朴炯圭)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원로 48명은 이날 오전 서울 태평로뉴국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불평등한 SOFA의 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범국민적 시위사태의 근본 원인은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 대한 한국인의 누적된 불만에 있다.”고 밝혔다. 성명서에는 김성수(金成洙) 성공회대 총장,서경석(徐京錫)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김소선(金昭先) 흥사단 이사장,이세중(李世中) 전 대한변협 회장 등이 서명했다. 김창국 인권위원장도 이날 세계인권선언 54주년 기념사를 통해 SOFA 개정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미국민과 동등한 인권을 보장받을 수있도록 SOF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1978~81년 한국격변기 증인 글라이스틴 前주한美대사 별세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국대사가 6일 오후 4시(현지시간) 워싱턴에있는 한 요양원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별세했다.향년 76세. 1978년 7월부터 81년 6월까지 3년 동안 주한 대사를 지낸 고인은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 사건,5·18광주민주화 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단면을 속속들이 지켜보았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 ‘깊숙한 개입,제한된 영향력’을 통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대북정책 변경,헌법체제 옹호등의 카드로 신군부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안보상의 우려 때문에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한 신군부의 잔인한 행동에 미국이 무력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88년 광주 청문회 때 증인 출석을 요청받기도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26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했으며 51년부터국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동아태 담당 정보연구 책임자(69∼71년),국무부 동아태 차관보(74∼76년),국가안보회의 선임 책임자(76년) 등을지냈다. 주한대사로 일하는 중에도 그는 주미 일본협회 회장,미 외교관계위원회 부소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 외교협회(CFR) 산하에 구성된 한반도 태스크포스에 참가해 중립적인 견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조언을 해왔다. 87년에는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함께 내한해 한국 민주화 추진상황을 살펴볼 정도로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또 지난 2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등과 함께 북한 방문을 추진하려 했으나 한·미정상회담으로 이를 취소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CFR가 워싱턴에서 공동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미 동맹관계가 어떤 일로도 훼방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대북관계의 무게중심은 미국보다는 한국에 두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미술사학자 메릴린 윙 여사와 4자녀가 있다.영결식은 13일 낮 12시30분 워싱턴 올소울스 메모리얼 교회에서 거행된다.임병선기자 bsnim@
  • 선택2002/李 호남속으로

    “뛰지 않으면 진다.” 지금 한나라당에 떨어진 특명이다.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6일 대전-전북-광주-제주 등 국토의 서부지역을 돌며 유세 강행군을 펼쳤다.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절대 강세지역으로 떠오른 호남의 표심을 파고들기 위해 이 후보는 지역균형개발의 포부를 강력히 밝혔다. 그는 영하의 날씨 속에 전북 익산역을 가득 메운 5000여 관중에 거듭 감사를 표시하며 말문을 뗐다.“특정 지역 출신 후보가 되면 그 지역이 유리해지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면서 “농도로만 불리는 전북도 보석테마도시,한방과학산업 중심지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전에서도 이 후보는 지방교수들이 추진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위한 협약서’에 서명한 후 ▲지방분권특별법과 지방대육성법 제정 ▲중앙정부,공기업,산하단체 지방이전 ▲전국 순환철도망 건설 ▲주민소환제 도입 등 지역발전 보따리를 다양하게 풀었다.제주에선 국제자유도시특별법 통과에따른 지원과 제주도행 항공기 운임의 잦은 인상을 감시하겠다는 주민밀착형공약도 내놨다. 광주에서 이 후보는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찾아 민주화운동 희생영령의넋을 기렸다.그는 2000년 5월에 직접 심은 뚝향나무 앞에서 “보기엔 쑥쑥자라지 않지만 꽤 건실해진 것이 꼭 민주주의 같다.”면서 “어려운 토양에서 비바람 맞고 커야 뿌리가 깊다.”고 호남 표심을 겨냥했다. 이 후보는 이날 유세마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부시의 직접 사과와 여야총무회담 등 국회차원의 대응책도 촉구했다.7일열리는 광화문 효순·미선양 촛불 추모시위에도 동참할 계획이다. 이 후보는 그러나 대북관계에선 노무현 후보의 급진성을 문제 삼았다.이 후보는 “나더러 전쟁론자라고 퍼뜨리는 모양인데 현금 지원으로 핵개발을 부추기는 사람이 더 전쟁위협적”이라고 맞받았다.또 “4700만 승객을 태운 버스의 운전대를 미숙한 초보,난폭한 운전사에게 맡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구에서는 밤 도심을 누비며 젊은이들과 직접 호흡하는 유세법을 택했다.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젊은이들은 유세장에 오지않고 냉랭하기 마련인데 후보와 손을 한번 잡으면 표정이 바뀐다.아직 노 후보의 지지율에 다소못 미치지만 이는 대구·경북과 충청에서 부동층이 많기 때문”이라며 “역전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날 유세에는 가요 ‘젊은 그대’와 ‘화개장터’가 기호 1번의 엄지손가락 춤과 함께 시종 흥겹게 흘렀다. 광주·제주 박정경기자 olive@
  • 민주화 보상액 결정 74명에 60억 지급

    민주화운동 관련 보상대상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액이 처음으로 결정됐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金詳根)는 28일 보상대상자로 확정된 사망자 46명,상이자 28명 등 74명에 대해 보상금 60억 5000만원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91년 분신사망한 노동자 윤용하씨 유족에게 2억 3000여만원이 지급되는 것을 비롯해 동아일보투위 안종필씨 4000만원,대학생 김상진씨 1980만원,노동운동가 전태일씨 유족에게 930만원이 각각 지급된다. 보상액은 희생시점을 기준으로 한 국가배상법에 근거해 산정되기 때문에 희생 당시의 월급여액에 따라 개인별 금액이 20∼30배(최저 900만원에서 최고2억원 이상)까지 차이가 난다. 이종락기자 jrlee@
  • “선거비용 실사권 선관위에 줘야”/대선유권자연대 토론회

    ‘2002 대선유권자연대’는 27일 서울 을지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관에서‘대선자금의 투명화와 감시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갖고 정치자금실명제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강화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했다.주제발표에 나선 손혁재 한국정당정치연구소 부소장은 “각종 권력형 비리의 뿌리는 막대한 정치자금,특히 선거자금의 수요에 있기 때문에 정치활동과 선거과정에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치자금실명제를 도입해 정치자금을 한 통장에 관리토록 하고 정당회계보고서내용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선거공영제 확대와 선거 직후 선거비용 실사를 선관위가 할 수 있도록 하는 선관위 권한 강화안도 제시했다. 황장석기자 surono@
  • ‘법의 날’ 4월25일로 변경

    ‘법의 날’이 5월1일에서 4월25일로 변경되고,‘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의 주관부처가 행정자치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바뀔 전망이다. 행정자치부는 2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다. 행자부는 지난 1964년부터 5월1일에 기념식을 해온 ‘법의 날’은 미국 법의 날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규정함으로써 법제사적인 의의가 없는 데다 ‘근로자의 날’과 중복돼 행사의미가 상대적으로 위축돼 왔다고 밝혔다. 행자부는 대신 우리 고유의 법제사적 의의를 고려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재판소구성법’ 시행일인 4월25일을 법의 날로변경해 국민의 준법정신 앙양과 기념행사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개정취지를 설명했다.또 지난 1월26일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7월27일 시행되면서 유공자에 대한 보상·예우 등 관련 업무가 국가보훈처로 이관됨에 따라,현재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의 주관부처를 행자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반민주적 망령 부활에 참담”사회원로 22명 시국선언 발표

    지명관 한림대 교수,함세웅 신부,이상희 한성대 이사장 등 사회 원로 22명은 21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정국을 우려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했다.이들은 선언문에서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냉전주의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모습에 반민주적 망령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하다.”면서 “민주주의에서 반민주주의로,남북간 화해와 협력에서 갈등의 길목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만큼 반민주·반통일 세력을 상대로 한 제2의 민주화운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 “공무원 징계 즉각 철회를”전공노 서울시지부 성명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지부는 20일 성명서를 통해 행자부와 자치단체의 공무원 징계를 비난했다. 서울시 지부는 성명서에서 “공직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제2의 민주화운동에 나선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며 즉각 철회를 주장했다. 지부는 또 “시가 김병진 서울시본부장을 비롯해 연가파업에 동참한 25명의 공무원에 대한 징계 움직임을 보여 주시하고 있다.”면서 “시가 징계절차에 들어갈 경우 강력한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로 예정된 지부별 총회는 징계에 대한 서울시의 공식입장이 밝혀지지 않아 열리지 않았다. 이동구기자
  • [기고] 북한, 사심없이 도와주자

    우리 나라 통일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념이나 체제 위주로만 접근하는 것은 이제 고리타분해지기 쉽다.남북한의 분단문제는 우선 양측 정치 권력을 장작 빠개듯이 빠개서 보여줄 때만 그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 나라의 통일은 남북 양측 권력이 그 지나친 고압성에서 벗어나 평상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분단은 같은 분단 국가였던 독일의 경우보다 몇배 엄혹하다.남북 권력이 처음부터 너무 엄혹하게 출발했다.그렇게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오로지 강권체제로만 줄달음쳐 가다가 끝내 전쟁까지 치르면서 더더욱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러한 고압 정치 권력의 극한 대치라는 기본 구도에 틈이 난 것은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난 1960년의 4·19혁명이었다.이때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하와이로 망명을 했다.그러나 그 뒤로 군부 권력이 등장,남한 사회는 정치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80년대 말에 들어 비로소 정치 권력은 민간에 이양되나,그 민간 대통령 두 사람도 임기 중에 친 자식을 형무소에 갇히게 했다. 남쪽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초기의 고압 정치 권력이 차츰 평상을 사는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왔다.그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재야 민주화운동이었다.고압 정치 권력이 변화하면서,사회 전반의 사람살이는 날로날로 활기차지고 나라 전체는 놀라울 정도로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 2000년 6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평양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며 그렇게도 강고했던 남북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올해는 월드컵을 치르며 4강 고지까지 올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정도로 국력이 신장됐다. 남한의 국력이 신장되고 남북간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지만 나는 고향인 북한의 원산을 지난 52년간 한번도 못갔다.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서 불과 220㎞로,자동차로 세시간이면 너끈히 가 닿을 거리임에도 갈 수 없었다.1998년과 2000년 이산가족 상봉 때 두번에 걸쳐 실로 50년만에 북한 땅으로 들어가 보긴 했지만,그때도 그리운 고향 산천에는 못 가보았다. 그때 돌아와서 ‘북한 방문기’를 쓰면서 ‘한 살림 통일론’이라는 소박한 통일론을 펴 낸 바도 있다.그 머리말 속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가까운 이웃간이나 절친했던 사람들끼리 틀어질 때 더 길길이 성을 내고 평생 안 볼 듯이 악을 쓰게 마련이다.50년 넘어 단절된 우리 남북 관계도 궁극적으로는 바로 이런 것이었음이 북한 현지에 들어가서야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요컨대 우리 남북 관계란 어렵게 꽤 까다롭게 생각하자고 들면 한량없이 어려워지지만,쉽게쉽게 생각하자고 들면 이것처럼 쉬운 것도 없어 보인다.남북간에 사사롭게들 많이 만나고,그렇게 개개적으로 정분을 쌓아가며,부분부분으로 형편형편만큼 남북간에 한 솥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한 살림’을 차려 가다보면,그 어느 날엔가는 슬그머니 벌써 통일이라는 것이 우리 곁에 와 있게 되지 않을까.아니,곁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통일 한가운데 자연스럽게 들어가 앉아 있게 되지나 않을까.” 올가을 들어 부산 아시안 게임에 700명이 넘는 북한 선수단·응원단이 대거 내려온 점이며,그밖에도 충격적인 신의주 특구 지정 등 매우 고무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긴 눈으로 보면 남북관계는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나라의 통일은 남북 양측 권력이 그 지나친 고압성에서 벗어나 평상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진정한 애정을 섞어 깊이 이해하고 사심 없이 북한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호철 소설가 명예논설위원
  • 의문사委 조사활동 내년 3월부터 재개

    14일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지난 9월부터 중단됐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이 내년 3월부터 재개된다. 규명위 관계자는 이날 “위원장과 제1상임위원을 제외한 7명의 위원이 결원상태”라면서 “조사활동은 결원된 위원이 충원된 이후에나 가능한 만큼 조사재개 시점은 새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3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상범 위원장과 김준곤 상임위원도 조만간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규명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은 임기가 1년 넘게 남아 있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바뀌는 만큼 새정부 출범에 맞춰 사퇴서를 제출,신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민주화운동 정신계승 국민연대와 의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개정안통과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법개정이 생색내기에 머물렀다.”며 비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특별검사 임명과 압수수색·계좌추적권 신설 등 조사권한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항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의문사법 재개정운동을 재개하는 한편,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와 특검제도입 등을 각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민변 “DJ정부 개혁입법 미완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2년 악법개폐·개혁입법 심포지엄’을 열고 김대중 정부의 개혁입법과 악법개폐 현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미완성’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DJ정권 개혁입법 평가 민변은 현 정부가 출범시킨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해 법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진정한 독립성과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또한 과거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와 구제기능이 없어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법조문체계가 부실하다며 ▲대상자 범위의 합리적인 조정 ▲명예회복의 구체적 방법 명시 등에 대한 개정을 촉구했다. 민변은 ‘반부패 관련법’이 ▲공직자 행동강령이 없으며 ▲특별검사제 배제로 부패 예방과 적발 대책이 전무하고 ▲공익제보자 보호제도가 효과적인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 개정 관련 특히 민변은 피의자 인권보호와 관련, ▲수사과정에서 변호인 참여 허용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 및 등사권 보장▲반인도적 범죄 및 공권력에 의한 사실은폐 등과 관련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규정 신설을 요구했다.민변은 감청과 통화내용 조회 허가 조건을 대폭 강화하고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악법개폐 평가 한국사회의 쟁점 부분의 발제를 맡은 백승헌 변호사는 “김대중 대통령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보법을 고치겠다고 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민변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보호관찰법 제도’를 폐지하고 ‘국가정보원법’에서는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시민단체들 대선 정책제안 활발

    한달 남짓 남은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 진영을 겨냥한 시민단체의 정책제안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 8일 ‘차기정부 핵심개혁과제와 분야별 주요 개혁과제’를 제시했다.이에 앞서 녹색연합은 지난 5일 ‘녹색세상 만들기를 위한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13일에는 3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선유권자연대가 ‘인권·통일·보건의료 등 분야별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지난달 25일 출범한 2002 대선여성연대도 12일 후보별 여성정책을 평가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부문별 10대 세부과제를 제시한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그러나 ‘정책제안’에 대선 유권자 운동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대해 시민단체 진영 내부에서 이론을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시민단체 일각에서 이같은 정책캠페인 위주 방식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운동방식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시민단체의 대선 운동은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성격이 짙다.당시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둔 것은사실이지만 낙선 대상으로 지목한 당사자의 반발이 거셌고 법원에서도 특정인의 낙선운동에 제동을 걸었다.일부 보수층에서는 ‘정권의 2중대’,‘홍위병’ 등으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지난 9월 출범한 대선유권자연대는 출범 당시 특정후보를 겨냥한 낙선·당선운동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경실련도 지난 8일 핵심개혁과제를 발표한 자리에서 “정책과 관련한 후보별 평점을 공개할 수는 있지만 최종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라며 특정 후보의 당락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활동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한 지역환경단체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안해도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대응수단이 없다.”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정책캠페인이라는 활동방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참여연대의 한 실무자도 “정책캠페인만으로는 지난 총선 때와 같은 유권자의 ‘폭발적 호응’을 얻기 힘들다.”면서 “대선연대가 처음부터 활동방식을 정책캠페인으로 한정,유권자 운동의 입지를 스스로 축소시켰다.”고 아쉬워했다. 대선연대와 시민단체들도 유권자의 호응도가 총선연대 활동 당시보다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대선연대의 인터넷 홈페이지(www.ivote.org)에는 지난 7일 ‘토론방’이 개설됐지만 올라오는 글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 사무처장은 “병역비리 공방과 검찰 쇼크사 등 현안들에 가려 좀처럼 ‘바람’이 일지 않고 있다.”면서 “각 후보의 정책과제가 발표되고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대선연대에 참여하지 않은 몇몇 단체가 특정후보의 낙선·지지운동을 공언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최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운동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민주화운동 정신계승 국민연대도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의 개정에 소극적인 후보의 낙선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
  • 민주화 동지서 단일화 동지로? 협상주역 이해찬·이철 질긴 정치적 인연 이채

    30년전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이철(李哲)·이해찬(李海瓚) 두 전·현직 의원이 ‘반 이회창(李會昌) 후보’ 단일화를 놓고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측의 이해찬 기획본부장과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 진영의 이철 조직위원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선후배이자,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몸을 던진 ‘투쟁동지’다. 69학번의 이철 위원장이 72학번인 이해찬 본부장보다 네살 많지만 군에 징집됐다가 72년 복학,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다. 유신이 선포된 뒤 이철 위원장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의장을,후배 이해찬 본부장은 민청학련 서울대 책임자를 맡아 투쟁을 벌이다 이철위원장은 사형을,이해찬 본부장은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질긴 인연은 80년대 정치에 입문한 뒤로도 이어진다.특히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민주화 세력이 양분된 후보단일화 논의에서의 행보는 지금과 흡사해 이채롭다.당시 김영삼(金泳三·YS)·김대중(金大中·DJ) 두 야당 지도자의 대선출마를 놓고 이철 위원장은 ‘후단파(후보단일화파)’의 일원으로서 YS로의 후보단일화를,이해찬 본부장은 DJ의 독자출마를 지지하는 ‘비지파(비판적 지지파)’로 활동했다. 국민경선 잠정합의 시사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온 민주당 협상팀의 이호웅(李浩雄) 의원도 이철 위원장과 동기동창이자 민청학련 사건의 핵심인사다. 진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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