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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6월’ 그날의 함성 다시…/ 7일 서울 시청앞 광장 콘서트등 평화의 축제

    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 ‘넥타이 부대’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서울 시청앞 광장이,16년전의 현장을 되돌아보면서 평화를 기원하는 ‘난장’으로 탈바꿈한다. 7일 오후 2시 이곳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민주화행진기념제-6월 평화의 광장’.대형 콘서트를 중심으로 퍼포먼스,영상·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 가운데 ‘6월,평화와 미래 콘서트’는 80년대 저항음악의 상징이었던 전인권,안치환,윤선애,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87년 뜨거웠던 민주화 열기를 평화의 메시지로 담아낸다.또 당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진혼춤을 췄던 무용가 이애주가 오랜만에 대중앞에서 화합의 몸짓을 보여준다. 공연중 대형모니터를 통해 고 문익환목사의 육성과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반전 메시지가 울려퍼지고,‘그날이 오면’의 작곡가 문승현이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작곡한 노래 ‘백년 후에는’을 참가자들이 열창하는 가운데 막을 내린다. 도로에 세운 대형 나무 조형물에 시민들이 손수 풍경(風磬)을 달아 평화의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는 미술가 임옥상의 퍼포먼스와,최병수의 얼음조각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또 87년 6월 당시와,월드컵 열풍으로 뜨거웠던 지난해 6월의 사진을 대형 벽화로 제작 전시한다. 평화사진 콘테스트와 인라인스케이팅 대회,민주단체 회원들이 운영하는 먹을거리 장터,벼룩시장 등이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02)3709-7693. 이순녀기자
  • 예비역 육군 소장 정웅씨 / 20년전 ‘장군님’ 이제는 ‘장로님’

    ‘정 장로님’ 지난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현지 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중 시위대에 대한 ‘신군부’의 강제 진압 방침을 거부해 강제 전역한 예비역 육군 소장 정웅(75·호국군사관학교 4기)씨.그는 요즘 ‘장군’보다 ‘장로’로 더 잘 알려져 있다.정씨는 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기도 했다.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의 한 교회에서 그를 만났다.먼저 전화를 걸었을 때는 ‘기자 만날 일이 없다.’며 한사코 만남을 거절했지만 ‘요즘 근황을 듣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찾아가자 ‘의외로’ 따뜻하게 대해줬다. ●교회 일이 너무 좋아 군문을 나선 지 20년이 지난 데다 그동안 교회 일에만 매진해 온 탓인지 말투나 분위기에서 ‘군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대신 인상 좋은 ‘목회자’로 바뀌어 있었다.그는 교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인 ‘늘푸른 대학’의 ‘학장’이다.기자가 교회를 찾았을 때도 대부분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구성된 노인대학생 50∼60여명에게 ‘믿음과 건강’에 대해 열심히 강의를 하는 중이었다.기독교와의 인연은 굉장히 오래됐다.장로가 된 게 현역 대령시절이던 1974년이니까 벌써 30년이 됐다.그는 “현역 시절에도 교회 일에 적극적이었지만 80년 광주의 ‘아픔’을 겪고 나서는 교회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몇 년 전 아내 전성원(66)씨와 함께 만든 ‘5·18 선교장학회’를 법인으로 만들어 러시아 등 해외에 있는 열악한 여건의 한인교회를 돕는 게 소박한 꿈이다. ●띠체조로 건강관리 이가 좀 좋지 않은 것만 빼면 75세 된 노인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골프도 자주 했으나 3∼4년 전 허리를 다쳐 중단한 상태다.대신 동네 헬스클럽에서 수영을 즐긴다.주로 낮 시간대에 30분 정도 하면 몸에서 땀이 쫙 난다고 한다.시간이 남을 땐 각종 헬스기구도 이용한다.또 군에서 하던 도수(맨손)체조에 1.25m가량 되는 띠를 활용하는 띠체조는 그가 고안한 독특한 건강비법이다.띠를 양 손으로 팽팽히 당겨 머리 위로 올린 뒤 등 뒤로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것을 반복한다.별다른 장비가 필요없고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이라는 것.165㎝의 단구이지만 근육질에 군살이 거의 없다.모두 체조덕분이라고 강조한다. ●군 시절이 가장 보람 군 장성,공기업 임원(근로복지공사 부사장),국회의원(13대) 모두 해봤지만 가장 보람있는 시절은 역시 군에 있을 때라고 말했다.하지만 전역한 뒤 군과는 별다는 접촉을 갖지 않고 있다.전역 직후엔 예비역 장성출신 모임인 성우회와 재향군인회 모임에도 나가봤으나 당시 신군부의 위세 때문인지 대부분 자신과의 만남을 꺼리는 눈치여서 예비역 장성 모임에는 아예 나가지 않고 있다.입을 닫고 살아온 삶이 오래 지속된 때문인지 지금도 ‘5월 광주’의 당시 상황이나 심경에 대해서는 가급적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군을 떠났지만 폭도로 매도됐던 5월 광주시민들의 명예도 이제 회복됐고 신군부도 사법적으로 처단이 된 만큼 특별한 미련은 없다.”고 말했다.그래도 후배 장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군인뿐 아니라 공직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전제한 뒤 “공직자가 인기에연연해서는 안 되며 특정인이나 상관보다는 반드시 국민의 편에 서서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조승진기자 redtrain@ 사진 한준규기자 hihi@
  • [넷피니언 리더] 인터넷으로 만나는 6월항쟁 황인성 제작단장

    16년 전 서울에서는 최루탄 냄새와 ‘호헌철폐’의 외침이 도심을 뒤덮었다.민주주의를 원하는 뜨거운 열망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 ‘인터넷으로 만나는 6월항쟁’(www.610.or.kr)으로 이어져 살아 숨쉬고 있다. 황인성(사진·50) 한겨레신문 통일문화재단 사무총장은 6월항쟁 사이트의 제작단장.사이트 개설의 ‘사령탑’ 역할을 했다. 70년대 이후 그의 이력에는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흔적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지난 71년에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한 뒤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20대를 내내 감옥에서 보냈다.이후 6월 항쟁을 이끈 국민운동본부 정책실 차장,전국연합 집행위원장,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투신해 왔다. 6월항쟁 사이트에서는 문서,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6월항쟁을 접할 수 있다.‘명동성당,26일의 기록’ 등 각종 다큐멘터리도 동영상 코너에서 제공된다.박종철,이한열 등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열사의 기록도 볼 수 있다. 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는 많은 사람의 ‘손품’이 들어갔다.지난해 2월말 논의를 시작,6월말 문을 열기까지 신세대 대학생과 6월항쟁 당시 시청앞 광장에 섰던 직장인 등 20여명이 자원 봉사에 나섰다.매일 밤 종로구 구기동 작업실에서 자료 수집과 분류,웹 디자인,워드 작업 등에 매달렸다.황 총장은 “사이트 오픈을 앞두고는 모두 다 밤늦게까지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민주 투사’로서 최근 참여정부의 보수화 경향에도 한마디 했다.황 총장은 “선거 전과 달라진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당혹스러움을 느낀다.”면서 “어려울 때일수록 민주적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 총장이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방문자수가 하루 200여명에 그치고 있다는 것.그는 “사이트 운영이 당시 많은 시민이 외쳤던 ‘민주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두걸 기자
  • 동교동계 신·구파 다시 뭉쳤다

    민주당내 신당 논란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동교동계 의원들이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이들은 지난 25일 김옥두 의원 아들의 결혼식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이같은 동교동계의 ‘새로운 단합’은 신주류측 김원기 고문과 동교동계 한화갑 전 대표의 설전 파문 때 실체를 드러냈다.지난 26일 김 고문이 한 전 대표를 가리켜 “이 사람에게 붙었다가 저 사람에게 붙었다 했다.”며 ‘전력’을 비난하자,27일 동교동계 김옥두 의원이 나서 한 전 대표를 적극 ‘엄호’했다. 그동안 신당 국면에서 자극적 발언을 자제했던 김 의원은 “김 고문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마치 본인의 일처럼 발끈했다.그는 “김 고문은 전두환 정권 당시 민정당의 2중대였던 민한당의 11대 의원이자 전남·북의 총책임자였다.”면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우리가 고문받을 때 김 고문은 파출소 한번 가본 적 있느냐.”고 비난했다. 한 관계자는 “김 고문이 한 전 대표를 인신공격한 26일 저녁 동교동계 의원들이 ‘파발(연락망)’을 돌려김 고문의 민한당 전력을 공격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실제 김옥두 의원의 발언이 나오기 전 권노갑 전 고문 측근도 기자에게 “민정당의 2중대 활동을 했던 김 고문이 한 전 대표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며 입을 맞춘 듯한 얘기를 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권 전 고문이 이끄는 구파와 한 전 대표의 신파로 갈려 갈등을 빚었던 동교동계는 새 정부 들어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신주류가 자신들을 구주류로 몰며 압박을 가하자,위기의식을 느끼고 결속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수사 대상에 오른 것도 위기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동교동계 A의원은 “신당 국면에서 우리는 한몸처럼 움직이기로 했다.”고 말했다.B의원도 “동교동계에 더이상 신파와 구파는 없다.”면서 “우리는 공동운명체”라고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편집자에게/ 공무원 법·질서 지키는데 모범 보여야

    -‘5·18시위 가담 공무원 전원 사법처리’기사(대한매일 5월21일자 12면)를 읽고 문명사회에서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야만의 정글’이 된다.지난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정문을 봉쇄,대통령이 후문으로 입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더욱 놀라운 일은 시위대에 다수의 공무원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그들이 왜 시위대에 동참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다만 공무원노조와 관련한 그들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그러나 꼭 그 장소에서,그런 식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했는지 안타깝다.민주사회에선 누구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보장된다.그러나 의사표현의 자유가 ‘불법적 방법’까지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공무원은 국정의 최일선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公僕)이다.공직기강이 엄한 것도,공무원 윤리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공무원이 국민의 사표(師表)이기 때문이다.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는 일반 백성이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제거해주는 직책을가진 자’라고 했다.비록 시대는 바뀌었지만 공직자의 자세만은 유지해야 한다. 공무원이 법과 질서를 짓밟고 사사건건 집단행동을 일삼는다면 이 사회가 온전하게 굴러가겠는가.사기업 노조처럼 공무원이 ‘내’몫을 찾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면 그 폐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공직사회도 변화하고,성숙해져야 한다. 장수근 한국자유총연맹 홍보매체본부장
  • 환경부 정책보좌관 양상현씨

    “환경현안을 정확하게 진단,장관이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보좌하겠습니다.” 21일 환경부 장관정책보좌관에 임명된 양상현(梁祥顯·39·3급)씨는 이렇게 각오를 다졌다. 양 보좌관은 한명숙 장관과 10년 넘게 같은 길을 걸었다.한 장관이 재야운동을 하던 시절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상임연구원과 이곳에서 발간하는 월간 ‘정세연구’ 편집부장,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정책연구위원을 지내면서 인연을 지속해 왔다.또 97년 발족된 녹색환경운동모임 이사로도 활동했다. 한 장관이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2000년 의원 보좌관직을 맡았고,2001년 여성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자 장관 비서관으로서 지근거리 보좌를 했다. 양 보좌관은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환경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면서도 “장관과의 오랜 인연 탓에 코드를 맞추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보좌관 인사를 두고 환경부 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A과장은 “이런 인사관행이 묵묵히 일하며 승진을 바라는 대다수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있다.”고 꼬집었다. 유진상기자 jsr@
  • 盧 “전교조 투쟁 단호대처”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전교조 연가투쟁과 국가기간산업의 파업사태 등에 대해 단호한 대처를 지시하면서 참여정부가 노동·사회단체들의 집단행동에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3면 그동안 참여정부의 주요 지지기반인 노동자와 학생·전교조 교사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오히려 국정혼선을 초래하고 공권력이 무기력해졌다는 비판적 여론과 ‘정부가 더 이상 밀려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배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관련한 전교조의 연가투쟁에 대해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보고를 받고 “전교조가 정부에 대화가 아닌 굴복을 요구할 경우 들어줄 수 없으며,국가 의사결정 절차 등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의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강도높게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NEIS 폐기를 권고한 국가인권위에 대해서도 “과하지 않느냐.”라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그 단체(전교조)가 민주화운동에 기여했지만,정부에도 민주화운동에 그만큼 노력한 분이 있다.”면서 전교조 주장을 ‘독선적이고 극단적’이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노동부와 건교부·행자부 등으로부터 ‘화물연대 집단행동의 원인과 향후과제’ 보고를 듣고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사전에 대응하지 못한 공직자들은 반성해야 한다.”면서 “국가안보와 재난·재해 상황에 대해서는 법적인 대응체계가 마련돼 있지만 사회·경제적 갈등은 국가적 메뉴얼이 없는 만큼 이번에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가 중요기관이 문제가 있을 때는 군 투입이 가능해야 하고,평시에 훈련을 해서 유사시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따라 국가 주요 기간산업에서 파업이 발생할 경우 업무복귀명령권을 강제 발동하는 내용의 ‘국가위기대응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도 이날 오후 긴급 시·도 부지사회의를 주재하면서 공무원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와 관련,“공무원 불법 집단행위에 대해서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참가를 자제시키고,참가자들은 엄중 문책할 것”이라고 강경방침을 전달했다. 문소영 조현석기자 hyun68@
  • 이강철은 누구 / 신주류와 코드맞는 盧최측근

    지난 19일 기자들 앞에서 민주당 구주류 핵심 5명(정균환·박상천·최명헌·유용태·김옥두 의원)에 대한 인적청산을 주장한 이강철 대구시지부장 내정자는 20일 서울에 없었다.그는 매주 화·수요일 대구에 가 지역민심을 개척한다고 한다. 이날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내정자는 “그 사람들(구주류 5명)은 신당 못할 사람 아니냐.”고 말해 전날 입장을 재확인했다.서울에 있는 이 내정자의 측근들도 “어쨌든 어중이떠중이 다 데려가는 리모델링식으로는 안된다는 입장은 분명하다.”고 말해 사실상 인적청산론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인했다. 이 내정자는 평소에도 기자들 앞에서 구주류 인사들을 겨냥,“차라리 당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그때마다 노심(盧心·노무현 대통령의 의중) 논란이 인 것은 물론이다. 그는 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코드가 맞는 최측근에 속한다. 실제 청와대 관계자는 “이 내정자가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난 적은 없지만,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자주 들른다.”고 말해 청와대와일정부분 교감하고 있음을 내비쳤다.이 내정자는 또 김원기 고문 등 신주류 의원들과도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 이 내정자는 자신이 거명한 5명 가운데 김옥두 의원과는 비교적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인연으로 평소 사적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실제 이 내정자는 19일 처음에는 김 의원을 거명하지 않다가 기자들이 “김옥두 의원도 포함되나.”라고 묻자 “그렇지.”고 대답했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한총련사태 파장 / ‘허수아비 경호’

    경찰이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기습시위를 막지 못한 것은 정보 부재에 경비의 허술함이 겹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총련 시위는 이미 예고됐었다.경찰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기념식 당일 5·18묘지 앞에서 피켓시위 등으로 의사표시만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돌발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 경비’를 소홀히 했다는 얘기다. 지난 93년 김영삼 대통령이 5·18묘지를 참배하려다 당일 새벽부터 남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행사장(구묘역) 일대를 ‘선점’하는 바람에 무산됐었다.경찰은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묘역 일대 경비에 대한 ‘과거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용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날 학생들의 집결시간보다 늦은 오전 8시쯤에야 5개 중대 600여명만 묘지 주변에 배치했다.전날 전야제에 참석한 한총련 소속 학생 1000여명은 이미 오전 7시쯤부터 묘지에 모여 구묘역을 참배하고 있었다.학생들은 이어 ‘굴욕외교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신묘역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은 오전 10시20분쯤 신묘역 정문을 경비하던 병력을 구묘역쪽으로 이동시켜 1차 저지선을 구축했다.그러나 구묘역쪽 3,4주차장에 주차한 뒤 신묘역 정문쪽으로 밀려드는 참배객과 학생들이 뒤섞였다.저지선은 무너지고 10시30분쯤 정문 앞 도로가 학생들에 의해 점거됐다. 경찰은 당시 시내에서 5·18묘지로 출발한 대통령 경호팀에 무선으로 연락하고 노 대통령 일행은 10시45분쯤 묘지로부터 6㎞쯤 떨어진 북구 각화동 도동고개에서 10여분간 정차했다. 경찰은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학생들이 점거한 정문 앞 도로를 차단하고 노 대통령이 탄 차량을 구묘역쪽에서 신묘지 왼쪽 ‘역사의 문’으로 유도했다.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행사 예정시간인 오전 11시보다 20분쯤 늦게 행사장에 입장했다. 학생들이 신묘역 정문을 점거한 시점은 경호상 ‘공차’로 불리는 ‘VIP 위장차량’이 정문을 통과한 시간이다.이를 보면 학생들이 대통령을 행사장에 아예 ‘가둬놓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경찰은 5개 중대의 병력만을 배치해 진입로 공간 확보에 실패했다.또 경비병력도 인근 전남대 등 학생경비를 오랫동안 맡아온 광주 북부경찰서 대신 서부경찰서와 여수·순천 등 외지 병력을 동원한 점도 안일한 대처라는 지적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돌발사태였기 때문에 경호상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경비라인의 책임은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5·18기념행사 차질 안팎 / 盧대통령 가로막은 기습시위

    노무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18일 광주를 찾았다.그러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로 대통령이 행사장에 늦게 참석하는가 하면 대통령의 나머지 일정도 어그러졌다. ●당혹한 청와대 청와대는 이날 기념식에 앞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기습시위를 통해 노 대통령의 행사장 진입을 저지하자 크게 당혹스러워 했다.이로 인해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행사에 대처능력이 이 정도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 사회 보수층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한총련 (합법화)문제를 좋게 해결해 주려고 하는데,학생들의 이런 행동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서 “국가행사에 차질을 빚음으로써 무슨 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유감을 표시했다. 또 “한총련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있었으나,당초 피켓시위 정도를 예상했다.”면서 “현장 경찰의 대응 미숙으로 학생들이 과격하게 나온 것인지,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는지 등을 경찰청 자체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학생들의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전날 모인 학생들이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예우해 드리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같이 행동해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대통령 진입 왜 저지했나 한총련은 당초 노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 저지 여부를 둘러싸고 전날 오후까지 상당한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 노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이 한총련 합법화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합법화 문제에 대해 여론이 불리해지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노 대통령이 방미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이 ‘대미 자주외교’를 주장해 온 평소 발언과 배치된다고 판단해 이같은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광주·전남지역대학 총학생회연합(남총련)은 이날 “노 대통령은 친미 외교를 5월 영령앞에 사과하고 한·미 공동성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대통령,전남대 특강 노 대통령은 묘역을 참배한 뒤 전남대에서 특별강연을 갖고,“광주·전남의 시민들이 저를 이해하고 신뢰했기 때문에지난해 3월 16일 광주(경선)에서 1위를 한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고,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강한 애정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중학교때의 한 선생님이 ‘브루노라는 사람은 지동설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다가 화형당했고 갈릴레이는 역시 지동설을 신봉했지만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해 살았다.’는 말을 했는데,그 당시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이어 “어떻든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브루노를 좋아하는 쪽이었다.”고 덧붙였다.대통령이 되고 보니 갈릴레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원칙론도 중요하지만,현실과 실리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미관계가 순조롭지 않고 갈등과 대립이 생기면 북핵문제를 푸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한반도에 전쟁이 날 듯한 대단히 불안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이번 방미(訪美)행보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對美외교·北核 ‘코드’ 盧대통령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광주를 방문해 대미(對美) 시각과 북한핵 문제 등과 관련,입장이 바뀌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그러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로 노 대통령이 참석한 5·18기념식 진행일정이 차질을 빚는 등 친미(親美)-반미(反美)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종전과 달라졌다.” 노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18일 오후 전남대에서 특별강연을 갖고,“노무현이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하는데,실제 그렇다.”면서 “대통령은 시시각각 선택해야 하는 자리라,내 스스로도 종전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때에는 한·미 관계,한·미주둔군협정(SOFA) 개정 등에 관해 얘기했는데,(대통령이 된 뒤 보니까)대등한 한·미관계와 SOFA 개정도 중요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게 핵문제였다.”고 바뀔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관련기사 3·9면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와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해소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경제불안과 불신을 빨리 해소하는 게 급했다.”면서 “한·미 관계는 앞으로도 매끄럽게,좋게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위로 얼룩진 5·18행사 이와관련, 광주 운정동 국립5·18묘지에서 오전 11시 열릴 예정이던 제23회 5·18기념식에 앞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노 대통령의 방미기간 저자세 외교’를 비판하고 ‘한총련 합법화’ 등을 요구하면서 기습시위를 벌였다.노 대통령은 11시18분께야 정문이 아닌 옆문 ‘역사의 문’을 통해서 행사장에 입장할 수 있었으며 그만큼 행사시작이 지연됐다. 이로 인해 대통령 경호·의전일정 등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으며,특히 지역인사들과의 오찬간담회는 시위 여파로 인해 시작시간이 1시간 뒤로 늦춰진데다 참석 예정인원 70명의 절반 가량인 40여명만이 참석하는 등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새 접근법 北에 공식 설명키로 정부는 19일부터 시작되는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함께 7월로 예정된 장관급회담과 국제회의 등 남북간의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른 정부의 새로운 대북입장을 전달할 방침이다.경협추진위 남측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회담 기간 중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겠지만,위협이 계속될 경우 ‘추가적 조치’가 뒤따를 수 있으며,남북간의 경제협력도 핵 문제 진행상황을 봐가며 진행하겠다는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전달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다음달 18일부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경우 정부의 핵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전달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북한과의 비공식 라인을 통해서도 정부 입장이 북측에 전달될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앞서 북한은 17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남북 경협위 대표단 명단과 일정 등을 통보했다. 곽태헌 이도운기자 tiger@
  • [사설] ‘진정한 국민통합’ 이루려면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2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참여정부의 역사적 소명은 국민통합과 개혁에 있다고 강조했다.현직 대통령의 5·18 묘역 참배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이다.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5·18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노 대통령은 이날 참여정부의 국정원리를 새삼 강조하면서 “원칙과 신뢰,공정과 투명,대화와 타협,자율과 분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바로 국민통합”이라고 설명했다.이어 “내부 분열로 시간과 국력을 낭비해서는 희망이 없다.”고 역설했다.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튿날에 행한 노 대통령의 연설은 당면 국가운영의 큰 목표와 과제를 다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기념식이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로 차질을 빚은 데서도 읽혀지듯이 국민통합의 길은 멀고 험하다.개혁에 대한 시각이 저마다 다르고,사회 곳곳마다 집단이기주의에 휘둘리고 있다.더구나 한·미 정상회담 후 ‘국익 우선’‘굴욕 외교’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물류대란 이후의 노사관계 재정립도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해답을 스스로 ‘정의의 역사’로 평가한 5·18 정신에서 찾은 것은 고무적이다.국민통합은 결국 상식과 정의가 승리하는 풍토를 만드는 데 달려있기 때문이다.정치적 편의에 따라 정부의 정책방향이 흔들리거나,반대파가 됐건,지지자들이 됐건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인기영합주의로 흐르게 되면 결국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이제 참여정부는 국민의 지지 속에 개혁을 추진하고, 노선 간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통합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 한총련시위 지켜본 광주시민 “착잡했고 아쉬웠다”

    광주시민들은 5·18민주화운동 2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환영했으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학생들의 기습시위로 행사가 차질을 빚자 못내 아쉬워했다. 시민 김우열(41·광주시 광산구 비아동)씨는 “5월 영령들의 희생정신을 받들어 개혁과 국민통합을 다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TV중계를 통해 보면서 광주시민임이 자랑스러웠다.”며 “그러나 그후 대학생들의 기습시위로 대통령의 기념식장 도착이 늦어지고 행사장도 황망히 빠져 나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모(54)씨는 “기념식을 계기로 광주를 방문한 노 대통령의 경호가 엉망이 돼버려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며 “왜 한총련이 그같은 일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없고 이를 방치한 경찰은 책임져야 한다.”고 흥분했다. 전남대 총학생회 간부 김성진(23·법학계열 3)씨는 “대통령의 5·18묘지 방문과 전남대 강의에 대해 환영플래카드를 내걸 정도로 반겼으나 한·미정상회담 때 보여준 노 대통령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며 “한총련 학생들의 기습 시위는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전격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통령의 외교적 발언에 대해 학생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며 “그렇다고 해도 엄숙히 치러져야 할 5·18기념행사를 방해한 것은 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쪽은 5·18묘지 일대 경비를 담당한 경찰.전남경찰청 관계자는 “한총련 순례단이 전격적으로 묘지 정문을 가로막을 줄은 몰랐다.”며 “어떠한 문책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한총련 학생들의 불법 폭력시위를 묵과할 수 없는 사태로 간주,채증자료를 바탕으로 주동자를 가려내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盧대통령 옆문 출입… 의원들 담장 넘고…/‘시위 얼룩’ 5·18

    국가보훈처 주도로 처음 열린 18일 5·18민주화운동 제 23주년 기념식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로 만신창이가 됐다. 한총련의 시위로 노무현 대통령이 18분 늦게 옆문으로 입장한 데 이어 옆문으로 퇴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은 이날 행사에 대비,5·18묘역에 15개중대 1800여명을 투입하고도 1000여명의 학생들이 기습적으로 펼친 시위에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한총련 1000여명 묘역 정문 점거농성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전날 조선대에서 시위를 준비한 뒤 이날 오전 8시부터 행사장에 몰려들었다.하지만 경찰은 ‘학생들은 인도에서 피켓시위를 벌일 계획일 뿐’이라는 첩보만 믿고 이들을 적극 제지하지 않았다.막상 시위로 인해 노 대통령 내외가 탄 차량이 행사장에 진입하지 못하자 그제서야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12분쯤 승용차편으로 망월동 묘역으로 진입할 계획이었으나 5·18 신묘역 정문 앞에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중이었다.기념식장 안으로 들어가려는시위대와 이들을 막는 경찰의 몸싸움이 이어지면서 정문은 자연스럽게 봉쇄됐다.일부 시위대는 정문 도로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이로 인해 10여분을 지체하던 노 대통령은 옆문인 ‘역사의 문’으로 돌아가 식장으로 들어섰다.노 대통령은 기념식을 마친 뒤 5·18당시 옥사한 박관현 전남대 학생회장의 묘비를 만지며 추모의 뜻을 표한 뒤 들어올 때처럼 옆문을 이용해 퇴장했다. 행사가 시작됐는데도 노 대통령이 보이지 않자 행사 관계자들도 한동안 영문을 몰라 허둥댔고 참석자들도 “대통령에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며 술렁거렸다. 학생들은 ‘방미 굴욕외교’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한총련 합법화 등을 촉구한 뒤 낮 12시40분쯤 해산했다. 전남대 개교 이래 51년만에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특별강연에 나섰으나 총학생회와 한총련측이 방미 굴욕외교를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자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도 착잡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강연은 물리적 충돌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오후 2시15분쯤 강연이 시작됐고 당초 우려와 달리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전남대생 100여명은 강연이 진행되는 대강당 옆 도로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으나 강연자체를 막지는 않았다.노 대통령의 강연은 대형 멀티비전으로 중계됐다. ●학생·경찰 발에 짓밟힌 오월동산 이날 기념식에 참석했던 여야 정치인들도 묘역 담장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오느라 곤욕을 치렀다.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은 시위 학생들이 “한나라당 서대표다.”라고 고함치며 덤벼들어 몸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양복 단추가 떨어졌다. 이재오 의원과 한나라당 광주시지부 당직자들이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최병렬 의원 등 상당수 의원들은 식이 끝난 후 담장을 넘어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정동영,신기남,천정배,김영환,김성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기념식 후 담장을 넘었다. 5·18묘역 입구 주변에 꽃으로 조성된 오월동산은 이날 학생들과 경찰의 발에 짓밟혀 엉망으로 변해 버렸다. 묘지안으로 진입하려는 학생들이 출입문을 막는 경찰을 피해 오월동산으로 몰려들면서 3억여원을 들여 한국 야생화 등으로 조성한 꽃동산은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 ●국가보훈처 행사진행 미숙 구설수 ‘광주민주유공자법’이 발효된 뒤 처음으로 이번 행사를 치른 국가보훈처의 행사진행 미숙도 구설수에 올랐다. 대통령 의전에만 신경쓴 나머지 아침 일찍 묘지를 찾은 일반 참배객들의 출입을 막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잇따랐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5·18, 희망의 씨앗돼야 한풀이식 행사 의미없어”/ 5·18 동지회 상임의장 김준태 시인

    ‘이제 5·18은 무덤이 아닙니다.둥근 씨앗입니다.배달겨레 씨종자입니다.’ 시인 김준태(55)씨가 올해로 23돌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바친 헌시의 일부이다.이 시에서처럼 그는 5·18을 항상 ‘희망’으로 노래한다. ‘아아,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중략)…(‘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중에서) 그가 5·18을 주제로 쓴 시는 500여편에 달한다.‘5월 시인’이란 별명이 항상 그를 따른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통일을 꿈꾸는 색주가’ ‘아아 광주여,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등이 그것들이다. 지금도 난립한 5·18단체의 통합을 위해 ‘5·18민주유공자항쟁동지회’ 상임의장직을 떠맡고 있다.5·18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시인인지도 모른다. ●‘건준' 참여로 총살당한 아버지 그의 시 정신과 이력은 우리나라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잉태된 듯싶다.일제 때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의 탄광노무자로 징용됐다. 아버지는 남태평양 남양군도에 끌려갔다.천신만고 끝에 전장을 탈출한 아버지가 6·25전쟁 와중에 여운형이 이끌던 ‘건국준비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향의 한 산골짜기에서 총살형을 당했다.당시 시인의 나이는 3살.6·25를 거쳐 군복무 시절 직접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80년대는 5월 항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그의 시와 삶의 여정에는 전쟁과 대립에 대한 증오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그는 대학시절인 스무살 때 고(故) 조태일 시인이 주관하던 시전문지 ‘시인’을 통해 김지하 등과 나란히 등단했다. 20대 당시 그의 시를 관통하던 주제는 ‘고향’ ‘대지’(흙)였다.시집 ‘참깨를 털면서’는 70년 개발독재시대 이농현상과 땅,고향에 대한 사랑과 감정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낸 초기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80년 초 광주의 전남고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 중 5·18을 맞는다.그의 운명은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 ‘참여시인’으로 바뀐다. ●평범한 교사에서 저항시인으로 살벌한 군부독재 시절 그는 ‘아아 광주여,우리나라의 십자가여’란 107행짜리 장편 시를 발표한다.이 시가 80년 5·18 항쟁기간 중 ‘전남매일’ 1면에 실리면서 ‘필화’를 겪게 된다.이 시는 원문이 외신을 탔고 ‘민중 선동혐의’로 계엄당국의 수배조치가 내려졌다.해당 신문사는 폐간되고 만다.그 역시 사랑하는 제자들을 뒤로한 채 한달여 동안 잠적했다.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는 그는 잠시 집을 방문했다가 주변에 잠복 중이던 보안사 요원에게 붙잡혔다.한달여 동안 각종 고문과 협박 등으로 교육청이 아닌 보안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교단을 떠난다. ‘현실을 외면하는 문학은 살아 있는 문학이 아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시내 학원 강사로 전전하는 동안에도 역사와 민주와 통일을 노래한 시들을 쏟아냈다.지금까지 시집 12권과 산문,평론,5·18항쟁 창작 오페라,콩트 등 모두 23권을 펴냈다. ‘역사는 소금 뿌린 생선이 아니라 펄펄 살아 뛰는 생선’이란 그의 지론처럼 역사와 통일,민족문제 등에 천착한 시기였다.시대정신을 외면하고는 시를 쓸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3년여 학원강사 생활을 마친그는 전남 영암의 한 중학교를 거쳐 광주과학고로 전입했으나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는 교사’ 생활이 이어졌다. 교단을 영원히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88년 신생 지방지였던 전남일보 문화부장으로 입사한다.그는 언론인으로서 5·18의 원인과 경과·결과 등을 총괄하는 ‘광주·전남 현대사’를 기획,일부 왜곡된 5월정신을 바로 잡는다.1944∼1961년의 이 지역 항쟁사 등을 담아냈다. ●“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 ‘오늘날의 사초(史草)는 사관이 아닌 기자가 기록한다.’는 그는 광주매일로 자리를 옮겨 ‘정사 5·18팀’을 만든다.프랑스,미국,베트남 등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혁명현장 등을 돌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뒤 5·18 특집 시리즈를 내고 그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IMF위기 때 잘려나가는 동료 기자들을 보고 스스로 언론 현장을 떠난 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지금은 조선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쓰는 것과 가르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그는 5·18을 통해 ‘출세’를노리는 일부 인사들과 다르게 살아왔다.그래서 금기시되곤 했던 5월단체 등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5·18기념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그는 “언제까지 한을 붙들고 살풀이하는 식의 행사가 되풀이돼야 하느냐.”고 반문한다.추모제도 없애고 시민 누구나가 하나되는 공동체 축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를 만든 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그는 ‘5월정신이 남남(극우-진보) 및 남북화해와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앞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강연과 집필활동에 열중할 것이라고 다짐한다.‘우리 후세에게 좋은 세상,전쟁과 갈등이 없는 나라를 물려주는 게 꿈’이란다. 글·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첫 소설집 ‘깃발’ 낸 홍희담 / “아물지 않은 광주의 상처 여성성으로 치유해야죠”

    문학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깨어 있게 환기시키는 것이라면 홍희담(58)이 낸 첫 소설집 ‘깃발’(창작과비평사)은 그에 썩 잘 어울리는 수작이다. 작가는 88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중편 ‘깃발’로 등단하면서 “광주 민중항쟁을 처음으로 노동자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평을 받았다.이를 입증하듯 그는 줄기차게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에 천착했고,그 결실을 모아 작품집을 냈다. ●노동자의 눈으로 본 ‘오월 광주’ ‘깃발’에 실린 5편의 중단편 모두를 꿰뚫는 작가의 화두는 역시 ‘광주’다.45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친 그이지만 “광주가 없었으면 소설을 못썼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광주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78년 정착한 이후 22년 동안 광주의 모든 것을 몸으로 겪은 그가 광주를 과거형으로 박제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그는 “한때의 민주 항쟁으로 치부하고 넘어갈게 아니라 폭력에 대항한 보편적 가치로 보면 아직 유효하다.”고 말한다. 홍희담 이전 작가들은 대개지식인이나 대학생 중심으로 광주 항쟁을 이야기했다.하지만 그는 표제작에서 도청을 사수했던 주요 인물이 대개 무산계급임을 강조하고 있다.작중 인물인 순분이 들려주는 주인공인,여자 노동자 형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작가의 시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어떤 사람들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가를…그것은 곧 너희들의 힘이 될거야.”(63쪽). 홍희담은 이 항쟁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이후 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자 ‘광한’과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농민운동에 나서는 어머니(‘이제금 저 달이’)라는 역사적 주체로 확장시킨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형상화 작가의 시선은 항쟁 이후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더 넓어진다.그 과정에서 작가는 주로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밀도있게 형상화한다.‘그대에게 보내는 편지’는 도청 사수파로 남았다가 체포,고문 도중 왼쪽 뇌수가 함몰돼 기억이 80년에 정지한 형철과 그 주변인물의 상처를그리고 있다.이밖에 ‘문밖에서’는 임산부 영신이 민주화운동 당시 살해된 또래의 임산부에 대해 죄의식에 가까운 연민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다수 작품의 등장인물이 여성이란 점도 인상적이다.작가는 “손주를 키우면서 모성애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며 “폭력과 투쟁,힘을 특징으로 하는 남성 우위의 사고로는 ‘광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당연히 작가는 상생과 사랑의 힘을 작중 인물에 투영했다.단편 ‘문밖에서’의 인물 수환이 태아로 바뀌어 살해된 임산부의 모태에 안착,그 원혼을 달래는 상징성은 압권이다. 해설을 맡은 임규찬 성공회대교수는 “항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며,아이를 키워 역사를 지속시키는 일상적인 어미의 삶에 그 의미를 새로이 부여한다.”며,작품집에 골고루 스며있는 여성성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5·18 특집다큐 ‘윤도현의 5월 이야기’

    SBS 러브FM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윤도현의 5월 이야기’를 17·18일 오전 8시에 마련한다.30분짜리 4부작으로 가수 윤도현이 주인공 ‘나’와 내레이션을 동시에 맡는다. 실제상황을 설명하는 다큐멘터리와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드라마적 요소를 결합하는 형식으로 5ㆍ18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본다. 1980년 초등학교 4학년인 주인공이 외할머니 생신을 맞아 광주에 내려갔다가 5ㆍ18을 만난 대목에서 시작해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직ㆍ간접으로 접하는 5ㆍ18을 그린다.
  • 리영희·백낙청씨등 19명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30일 제65차 회의를 열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 등 1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백 명예교수는 74년 서울대 영문과 교수 재직 중 유신헌법 개정 및 구속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는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해 파면되고 76년 ‘8억인과의 대화’를 펴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72년 민주회복국민회의 이사로 활동해 한양대에서 강제 해직됐고 77년 ‘전환시대의 논리’ 등의 출판물을 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또 89년 한겨레신문기자단 입북 계획 등과 관련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71년 박정희 정권 반대시위 등으로 서울대에서 제명,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75년에는 이부영 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대통령 긴급조치를 비판하는 표현물을 받아 보관해 징역 8월,자격정지 8월을 선고받았다. 또 배다지씨는 88∼89년 부산민주운동연합 부의장 및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전두환·이순자씨 구속 촉구 투쟁을 주도하고 91년 범민족대회 추진과 노동영화 ‘파업 전야’ 상영 관련으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제65차 민주화운동 인정 대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곽규현 박석룡 강성휘 정창렬 배다지 임성윤 한기인 최상영 이신범 강기정 노경진 허영구 박제현 백낙청 리영희 차재덕 김병석 이현세 한상근 장세훈기자 shjang@
  • [씨줄날줄] ‘29만1천원’

    ‘예금 15만원,14만원,1000원’ 3개의 통장에 달랑 29만 1000원이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이름의 공식적인 재산의 전부란다.무일푼인 셈이다.대통령 재직시 대기업으로부터 거둔 돈에 대해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추징한 2204억원 가운데 28일 법원이 남은 1890억원을 갚으라고 강도 높게 추궁하자 내놓은 명세서다.그러고는 담당판사와 법정에서 은닉재산 공방을 벌여 새삼 도마위에 올랐다. “현금이 이게 전부냐?-그렇다.” “어떻게 골프치고 해외여행 다니나?-주위에서 도와준다.” “1600억원 어디에 있나?-정치자금으로 다 썼다.” “명의신탁 재산은?-없다.” “추징금은 빌려서라도 내야 한다.-….” 담당판사와 전 전 대통령 간에 오간 설전의 요지다.세간의 평가도 “배 째라-역시”로 극명하게 엇갈린다.사회정의에 반하는 뻔뻔스러움과 통 큰 개성이 교차된다. 전 전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행보를 감안할 때 이성적 평가는 부정적이지만 감성적으로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야누스적 이미지를 지녔다.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책임자이자 12·12 군사반란의 수괴,민주정치를 짓밟은 독재자,비자금 수수를 통한 정경유착 등의 ‘주홍글씨’가 따라다닌다.반면 긍정적 이미지는 지난 정권들의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이긴 하지만 개인적 카리스마에서 상당부분 연유한다.의리를 중시하는 성격에서 나오는 당당함이라고나 할까.골프 핸디 18의 그는 캐디들에게 인기가 높단다.일행들과 라운딩하기 전 미리 10만원권 수표 여러 장을 캐디피로 돌리기 때문이다.퇴임후 신년인사를 온 지인들에게 천만원대의 세뱃돈을 줬다거나,지난해 숨진 코미디언 이주일씨를 문병 가서 몇천만원의 금일봉을 전달했다는 ‘손 큰’ 얘기도 있다. 전 전 대통령측은 법원이 재산명시신청을 내자 지난 11일 자발적으로 재산목록을 제출하고 전산조회에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그것도 국가의 위신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그러나 성실히 납부하리란 기대와 달리 무일푼이라고 잡아떼고 있다.법원과 검찰,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그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은 것이 국민의 뜻을 거스른 때문이란 걸 아직 모르는 것 같다.국민을 우롱하는 전직 대통령의 행태는 언제 그칠까. 박선화 논설위원 pshnoq@
  • 유가협, 법인으로 재탄생

    지난 86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의 부모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가 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단법인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현판식이 열린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유가협 사무실 ‘한울삶’앞마당에는 유가족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 등 관계자 50여명이 모여 새 출발에 대한 감회를 나눴다.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74)씨는 기념사를 통해 “자식을 먼저 보낸 지난 17년 동안의 한이 이제서야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게 됐다.”며 소감을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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