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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타리카 공항에 살림 차린 쿠바 남자

    코스타리카 공항에 살림 차린 쿠바 남자

    공항이 만만해서일까. 갈 데 없으면 공항신세를 지는 게 유행처럼 번지는 것일까. 최근 일본 남자가 멕시코 공항에서 장기간 숙식해 화제가 된 가운데 이번엔 코스타리카 국제공항에 ‘살림’을 차린 남자가 등장했다. 코스타리카 이민당국은 강제송환도 못하고 입국도 허용할 수 없는 처지라며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40세의 쿠바 출신 전기공 호세 앙헬 로케 페레스(사진). 자칭 쿠바 난민이라는 그는 지난해 12월 4일 코스타리카 국제공항에 내려 40여 일째 공항에서 숙식하고 있다. 구석에 의자 6개를 모아 침대 대용으로 쓰면서 하루 3끼를 공항·항공회사 직원들이 갖다주는 기내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공항 하숙생활’을 시작한 지 1개월이 넘은 그는 지난 8일에야 비행기에서 내린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을 정도로 지저분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젠 공항에 친구도 여럿이다. 사진 속 그가 들어 보이는 건 친구들이 준 선물이다. 공항생활을 하게 된 사연은 꽤나 복잡하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한 혐의로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정치적 탄압을 받다가 탈출을 결심, 엘살바도르 위조여권을 구해 에콰도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경유지 코스타리카에서 경유입국 심사를 받다가 독특한 스페인어 억양 때문에 ‘가짜’인 게 들통났다. 코스타리카 당국은 바로 그를 쿠바로 송환하려 했지만 재빨리 난민신청을 했다. 이후 신청이 접수되면서 판결이 나기까지 그를 강제송환해선 안 된다는 코스타리카 대법원의 명령이 떨어졌다. 속이 타게 된 건 코스타리카 이민당국. 위조여권을 가진 사람을 바로 강제 송환시키도록 한 출입국 관리법도 따를 수 없지만 사증(비자)이 없는 사람에게 입국을 허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항에 눌러 앉은 그를 쳐다만 보게됐다. 관계자는 “엄밀히 말하면 입국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가 있을 수 있는 곳은 공항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민당국 관계자는 “그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떠나면 되겠지만 공항에 눌러 앉아 있겠다면 쫓아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루종일 대기실은 물론 공항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막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나시온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보에 길을 묻다] (1)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진보에 길을 묻다] (1)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 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 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대환 대표와는 세밑,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좌파 진영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회주의자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라고 주장한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주 대표는 “우리 세대는 5·16의 밥을 먹고 4·19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다.”며 “이 둘을 모두 취한 현명하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한 이 땅의 민중들 마음을 깊이 살펴 자본주의를 넘어서네 마네 하는 허언을 일삼는 좌파가 아니라 당장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몰두하는 좌파의 정치철학을 사회민주주의로 정립했다.”고 갈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책을 쓴 동기를 설명한다면. -이제 나이도 많고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 가운데 먼저 가신 분도 있고 제 인생을 정리하면서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 잘못됐는가를 성찰해 새롭게 나갈 방향이라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좌파를 대표하는 이론가로서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다. 대중들은 얄밉도록 이기적이다. 그런 대중이 봤을 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건국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다. 당시 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라도 나눠 가졌다는 건 실로 엄청난 것이다. 국민들 몸 속의 ‘평등 유전자’가 지닌 가치와 힘을 발견해야 한다. →정치적인 토대는 어떠했나. -선진 민주주의 제도들, 법률체계를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 처음부터 뿌리내린 건 아니지만 반파쇼 투쟁이 승리한 세계사적 기류를 타고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하는,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는 거다. →80년대 이후 사회운동은 건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런 얘기하면 ‘아직도 대한민국 부정하는 사람 있어?’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정직하게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몸은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잘 살고 있는데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더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부정이 좌파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가장 큰 결함으로 여겨왔고 콤플렉스가 됐다. 순수한 좌파라면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는 민주주의, 하나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일당독재를 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보다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대한민국이 우월하고, 토지개혁을 먼저 했지만 바로 몰수해 집단농장화했던 조선보다 전 국민에게 토지를 나눠준 대한민국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 두 가치로 보면 대한민국은 결코 엄청난 결격사유를 가진 것이 아니다. 진정한 좌파의 길을 가려면 민족주의에 포획된, 민족주의의 포승줄을 끊어야 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는데 사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나눠 가진 정당이란 지적에 대해선. -진보진영으로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넘어서는 한편,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노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표가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NL과 PD는 민족주의에 포획된 좌파란 공통점이 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사회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극복해 만나는 지점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닐까. →민주노동당 분당에 대해 평가한다면. -NL이든 PD든 양쪽에선 희망이 없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다시 합치라고 얘기하지만 더 발전적으로 통합돼야 한다. 질도 높고 방향도 넓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 제3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믿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5년이든 10년이든 간다. 정권이 바뀌기 위해선 새로운 야당, 대안 야당이 나와야 한다. →좌파 진영에 현실적인 파워가 있는 건지. -15년 전부터 노동당을 만들면서 노동운동의 힘을 종잣돈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려 했다. 이제 민주노동당의 분당으로 그런 프로젝트는 더 이상 힘들어졌다. 해서 지식인 사회에 다시 호소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대안 야당에 힘을 보태자고. →이명박 정부의 실책에 대해서 지적한다면. -감세는 정말 잘못한 거다. 거의 도둑질 수준이다. 정권 잡았다고 종부세 폐지하고 약탈해 거저 나눠 가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처럼 우리나라가 연 10%씩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데 그것도 착각이다. 우리 경제는 성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률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기술 고도화로 실업자가 늘 수밖에 없는 단계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지나면 7% 성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인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박정희 향수가 있고 박근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아닌가. →본인이 주창하는 ‘뉴 레프트’의 요체를 정리한다면. -첫째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과 확실히 다른, 어중간하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라 중도좌파,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둘째 대중을 계몽하고 이끄는 게 아니라 대중의 뜻에 따르는 좌파, 셋째 국가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그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는 좌파가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리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5일자에 게재되는 2회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단과 전망, 다음달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진 정부 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등에 대해 들어본다.
  •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 왜 진보에 길을 묻나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15일자에 게재되는 2회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단과 전망,다음달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진 정부 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등에 대해 들어본다.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문일답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말이 없는 사람,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는데 선거에 몇번 나가는 바람에 많이 극복이 되신 건가요.  “아마도 지하조직 생활을 많이 해서,지하조직 생활이라는 게 항시 미행이라든지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조직원들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질 못하고 특히 저는 조직에서 중요한 핵심부에서 활동하니까 거의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생활을 오래 했지요.그래서 습관이 그렇다는 거고.선거를 세 번이나 출마하면서 대중화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산이 집이니까 마산에서 살고 제 아내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저는 말하자면 주부지요.남성주부.글쎄 오래된 것 같은데 전 전업주부라고 주장은 하는데 제 식구들이 전업주부로 인정 안해주고 반업주부로 인정하지요.”(웃음)  -책 같은 것도 사모님 버시는 걸로 사시는 건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처하고 저는 결혼생활 28년 됐는데 돈 만원도 서로 빌리면 반드시 갚습니다.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활동비는 한 푼도 제 아내한테서 받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들 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그때부터도 제 자신의 마음 속에 여성적인 면도 있지 않나,저 자신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그게 상당히 싫고 그렇더라구요.”  -책을 보신 분 가운데 안 좋은 반응이 있다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서.제가 조금 실망스러운 반응 같은 거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든지,너무 쉽다,피상적이다 하는,조금 더 깊은 연구를 바란다 이런 것이었습니다.저로선 결코 쉬운 얘기들이 아니다.저로선 굉장히 많은 용기를 내서 오래 생각을 해서 한 얘기인데 예를 들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오랫동안 생각하고 평생을 탐구하니깐,한 후에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결국 상식으로 돌아온다.이제 상식으로 돌아와서 하는 얘기를 그저 흘려 들으면 듣는 사람 몫이겠지요.”  -책을 쓴 동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저와 같이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도 먼저 가신 분들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뭔가 새롭다기 보다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또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잘못됐는가 이런 것들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갈 어떤 방향이라도 제가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유일한 관심사고 희망이지요.제가 말하자면 먼 훗날의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든지 한계라든지 반성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겠지요.”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이로선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얘기는 굉장히 길 수도,복잡할 수도 있는데요.우선은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국민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등을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국민 대중들은 어떻게 보면 얄밉도록 이기적인,대중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보는 거든요.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건국할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아니 뭐 어쩌면 절대적인 게 없다고 전제한다면 상대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만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 대중의 정서고 관점이고 느낌일 것 같습니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또 대중이 왜 그렇게 보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되겠지요.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부터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습니다.이 토지개혁이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는 한계가 있다,동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건 대단하지 않다.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자 이거지요.이런 일들은 수백년에 한번 일어날 만한,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세계사적으로도 볼 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필리핀 같은 데서는 토지개혁이 항시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제시됐지만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지요.기득권 저항도 거세고 하기 때문에.전 농민이,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나눠 가졌다는 엄청난 거지요.”  정리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주대환 누구인가  ‘네 차례 투옥에 세 차례 낙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에 따라다니는 이율배반이면서 서로 맥이 통하는 꼬리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지적 설계자’,그리고 정당운동 이론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했다.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네 차례 복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획했고 2004년 6월 정책위 의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분당때 당적을 정리하고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좌파 진보의 새 활로 모색에 열심이다.  지하조직 경력과 달리 그는 부드럽다. 말할 때도 한참 생각한 뒤에 어렵게 한땀 한땀 내뱉는다. 지난해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가 참 오래 생각하는 좌파란 것을 감지할 것이다. 2시간 인터뷰 며칠 뒤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내 말하지 못했던 바를 부연했다. 그런 사람이다.  1982년 이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인이 생계비를 댔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활동했단다. 처남이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아들 둘은 모두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댔고 대학 교육은 ‘대한민국 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 주대환의 못다한 얘기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며칠 뒤 주대환 대표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하고싶은 얘기를 다 못했다는 취지였다.해서 그의 못다한 얘기를 정리했다.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쓰면서 돌아보니 저희들 세대는 5.16의 밥을 먹고 4.19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습니다.5.16과 4.19를 다 취한 것이 현명한, 아니면 똑똑한,아니면 탐욕스런, 아니면 교활한 이 땅의 민중이었습니다.이 민중의, 백성의, 국민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지만 이 말에는 정치하는 사람이 받들어 모시고 따라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바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하여 알기 어렵다는 뜻도 있다는 것이 저의 독창적(?)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반성과 사색 끝에 “”상식“”으로 돌아가서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장석준(진보신당 정책실장)은 전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직”“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삼고 싶습니다.  저는 다만 정직하게 제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정치적 고려나 누구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혀를 꾸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마치 제가 좌파의 내부고발자라고 되는 듯이 비치고 오늘도 조선일보 논설위원 어느 분이 칼럼에 저를 거명했다던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유럽형 복지국가를 만들지 않고서는,선진국으로 갈 수 없는 현재의 한국에 꼭 필요한 이념입니다.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니 마니 하는 따위의 ”“공론(空論)”“이나 ”“허언(虛言)”“을 일삼는 좌파가 아니고 당장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몰두하는 좌파의 정치철학입니다.  그리고 오랜 역사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풍부한 정책을 가진,국민 대중 모두에게 공신력있는 정치 이념이고,더욱이 해석의 폭이 넓어서 다양한 좌파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철학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해오던 노동당을 포기한 저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나이도 이미 많은 제가 일체의 정치적 사심을 버리고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에게 이제 자기의 정체성으로 고백하자, 정체성으로 돌아가자,아무런 세속적이거나 정치적 고려없이 자기의 정체성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모여 보자 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안야당이 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바로 그런 힘이 형성되어야 좌파의 재구성도 이루어지고 대안야당의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어 일이 제대로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즉 뉴라이트의 <선진화재단>이나 <시대정신>이 보수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전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현실의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온갖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그런데 새삼 보니 “”평등“”이라는 유전자가 너무나 뚜렷하더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평등“‘이란 유전자는 한강의 기적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이니 우파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좌파는, 만약 민족주의에 포획된 엉터리 좌파가 아니라면 ”“평등”“”이라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대한민국 속에서 발견하고 또 그것이 가진 힘을 발견하니 매우 반가운 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현명하고 똑똑한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대한민국을 긍정하니,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긍정하는 대한민국을 좌파도 긍정하자는 것이고,그들이 긍정하는 이유로, 긍정하는 만큼만 긍정하자는 것입니다.“”인민과, 국민과 함께하는 좌파“”가 되자는 말이지요.
  • 주대환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 왜 진보에 길을 묻나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문일답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말이 없는 사람,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는데 선거에 몇번 나가는 바람에 많이 극복이 되신 건가요.  “아마도 지하조직 생활을 많이 해서,지하조직 생활이라는 게 항시 미행이라든지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조직원들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질 못하고 특히 저는 조직에서 중요한 핵심부에서 활동하니까 거의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생활을 오래 했지요.그래서 습관이 그렇다는 거고.선거를 세 번이나 출마하면서 대중화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산이 집이니까 마산에서 살고 제 아내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저는 말하자면 주부지요.남성주부.글쎄 오래된 것 같은데 전 전업주부라고 주장은 하는데 제 식구들이 전업주부로 인정 안해주고 반업주부로 인정하지요.”(웃음)  -책 같은 것도 사모님 버시는 걸로 사시는 건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처하고 저는 결혼생활 28년 됐는데 돈 만원도 서로 빌리면 반드시 갚습니다.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활동비는 한 푼도 제 아내한테서 받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들 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그때부터도 제 자신의 마음 속에 여성적인 면도 있지 않나,저 자신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그게 상당히 싫고 그렇더라구요.”  -책을 보신 분 가운데 안 좋은 반응이 있다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서.제가 조금 실망스러운 반응 같은 거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든지,너무 쉽다,피상적이다 하는,조금 더 깊은 연구를 바란다 이런 것이었습니다.저로선 결코 쉬운 얘기들이 아니다.저로선 굉장히 많은 용기를 내서 오래 생각을 해서 한 얘기인데 예를 들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오랫동안 생각하고 평생을 탐구하니깐,한 후에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결국 상식으로 돌아온다.이제 상식으로 돌아와서 하는 얘기를 그저 흘려 들으면 듣는 사람 몫이겠지요.”  -책을 쓴 동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저와 같이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도 먼저 가신 분들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뭔가 새롭다기 보다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또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잘못됐는가 이런 것들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갈 어떤 방향이라도 제가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유일한 관심사고 희망이지요.제가 말하자면 먼 훗날의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든지 한계라든지 반성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겠지요.”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이로선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얘기는 굉장히 길 수도,복잡할 수도 있는데요.우선은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국민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등을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국민 대중들은 어떻게 보면 얄밉도록 이기적인,대중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보는 거든요.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건국할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아니 뭐 어쩌면 절대적인 게 없다고 전제한다면 상대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만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 대중의 정서고 관점이고 느낌일 것 같습니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또 대중이 왜 그렇게 보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되겠지요.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부터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습니다.이 토지개혁이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는 한계가 있다,동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건 대단하지 않다.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자 이거지요.이런 일들은 수백년에 한번 일어날 만한,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세계사적으로도 볼 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필리핀 같은 데서는 토지개혁이 항시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제시됐지만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지요.기득권 저항도 거세고 하기 때문에.전 농민이,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나눠 가졌다는 엄청난 거지요.” 글 /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대환 ② “엄청난 평등의 나라”

     -엄청난 평등의 나라란 얘기시지요.  “정치적으로도 선진 민주주의 제도들,법률체계를 거의 그대로 도입했지요.처음부터 뿌리내린 건 아니지만,아닙니다만.당시 세계사적 분위기라는 게 반파쇼 투쟁이 승리한 직후라 굉장히 진보적인 민주주의 시기였지요.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거지요.처음부터 글자 그대로 실행된 건 아니지만 어쨋거나 방향을 잡았다는 건 중요하지요.대한민국이 60년동안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사회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조건을 만들었다, 전 그렇게 보고 있지요.”  -80년대 이후 사회운동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시각이 있었다고 지적하시는 것 같은데.  “이럴 겁니다.지금 제가 이런 얘기하면 아직도 대한민국 부정하는 사람 있어 이렇게 다를 말합니다.그런데 정직하게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몸은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잘 살고 있습니다.그러면서도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거죠.그래서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이런 것이 좌파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런데 더더욱 큰 문제는 왜 그런가를 깊이 반성을 해보면 좌파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나온 거거든요.친일파가 주도를 하고 어떤 말하자면 반민족행위가 충분히 정리되지 못했다,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가장 큰 결함으로 생각해온 거지요.거기 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있는 정부로 볼 수 있다.이것이 우리의 콤플렉스가 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좌파라면,순수한 좌파의 입장이라면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좌파의 관점은 하나는 민주주의 하나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민주주의 관점에서 일당독재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대한민국이 우월하고요,또 토지개혁을 먼저 하긴 했지만 바로 몰수해 집단농장화를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토지개혁을 해서 전국민에게 토지를 나눠준 대한민국이 더욱 우월하다고 볼 수 있는,경제학적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요.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점,자유와 평등의 두 개의 가치로 보면 대한민국은 결코 엄청난 결격사유를 가진 것이 아니었지요.민족주의,민족주의에 포획된 포승줄에 묶여 있던 좌파라고 생각합니다.진정한 좌파의 길을 가려면 민족주의의 포승줄을 끊어야 된다,벗어나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마음 속에 그런 게 있나 생각하는 건데요.  “세대에 따라 그 느낌과 감은 다를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제 어떻게 보면 저희 세대에 해당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70년대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많이 해당될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여의도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견지해온 이들끼리 의견 차이로 충돌하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그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것 같은데 이를 타개할 방법은.  “그러니까 DJ와 MH를 넘어서야 한다고 누군가 했더군요.10년의 문제,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워낙 신자유주의에 치우친 정책을 했다고 보는 거지요.여기에 제가 깊이 생각했던 NL과 PD를 넘어서야 한다는,둘다 다르면서도 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NL과 PD는 민족주의에 포획된 좌파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고요.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같은 경우는 민주주의를 추구할지는 모르지만 사회경제 정책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문제가 있었지요.그런 문제를 극복하는,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그러니까 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을 본다면 그분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 결함이 될 것 같고요.노동운동이나 근본적 좌파 운동 세력에선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현실적으로 진보적인 생각과 비전,믿음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충격이었다.주 대표께선 분당 뒤 차라리 갈라서서 종북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이들이 민노당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오히려 통합을 위해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저를 보는 선입견과 달리 전 분당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분당을 주도하신 분들과 저하고 차이가 어떻게 나느냐 하면 일심회 사건때 저는 발언을 했고요,그분들은 침묵했습니다.그 다음에 분당할 때는 그분들이 앞장을 섰고요 전 반대했습니다.묘하지 않습니까.저는 말하자면 노동당을 만들려고 하면 당내에서 그런 문제를 극복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분들은 노동당 노선에 대한 인식이 얕았다고 생각하는데요.주사파 문제를 갖고 내내 일심회 사건처럼 명명백백하고 국민들에게 문제를 폭로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에도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친구들이 당을 깨고 나가고 말았어요.둘다 대중적이지 못하다.국민 대중과 노동자 대중은 당내 숫자만 가지고는 NL이 다수니까 RNR국민들이 다 보고 있는 거거든요.국민을 믿고 노동자 대중을 믿고 드러내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반드시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거든요.그런데 그런 노력을 전혀 안하다가 매맞는 아내가 동네 사람들에게 밝히고 법정에서 따지고 하지를 않고 그냥 참고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가출해버린 거지요.그들의 정치적 판단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문제 해결이 썩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어쨌거나 두 개 다 지리멸렬하고 방향을 잃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양쪽에선 희망은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노동자들을 만나보면 분당할 때 예를 들면 부산에서 1000명의 노동자 당원 1000명이 탈당했는데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들은 100명밖에 안 됩니다.900명은 뭐냐.양 쪽 다 꼴 보기 싫다.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다시 합치라고 얘기합니다.민주노총이 다시 합치라고 권고안도 내고 있고 그렇지요.그런데 그냥 합쳐지질 않거든요.기왕에 이렇게 됐으니 더 발전적으로 통합이 돼야 한다.질도 높고 방향도 넓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제3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기존의 민주노동당 바깥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거거든요.지식인이라든지 민주당에 실망한 분들이라든지 제가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그런 거지요.그런 세력에 의해 더 넓은,보다 현실적인 현실주의적인 좌파가 형성되어 그런 세력에 의해 어떻게 보면 더 넓은 통합,민주당 내에도 좌파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분명히 좀 있고요.현실 정치적인 이유로 불가피하게 몸담고 있는 분들이 있거든요..창조한국당 참여했던 분들까지 그런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으로 가는 과정,불가피한 것 아닌가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건가.  “일전에 토지정의시민연대를 이태경 사무처장이 제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써놓았던데.저런 목소리 한두번 나와 될 얘기는 아니지요.엄청난 얘기니까요.왜 불가피하냐.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는 겁니다.필요하고 불가피 보수정권이 그대로 간다는 겁니다.한나라당이 민주당이 대안이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한나라당이 아무리 뭘 잘못해도 다음에 민주당이 집권하냐,그럴 수 없다는 거지요.5년이든 10년이든 간다는 겁니다.정권이 바뀌기 위해선 새로운 야당 대안 야당이 나와야 한다.그런 얘기들이 나온다.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이제는 최소한 지역주의는 벗어난,사회민주주의 루스벨트 오바마가 새로운 뉴딜 정책 그런 정도라도,사민당적인 내용을 가진,그런 정치철학에 기초한,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이름은 어떻든간에 사민당 현대적 정책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한나라당 집권이 영원히 간다는 거지요.야권의 분열은 오래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그런 양상 자체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 일을 해낼 만한 현실적인 파워가 있다고 보는 건지.  “15년전부터 노동당을 만들면서 노동운동의 힘을 종잣돈으로 밑천으로 해가지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보려는 거였는데 민주노동당의 분당으로서 그런 프로젝트는 이상 힘들어진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전 지식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지식인 사회로 돌아온 거지요.노동운동의 힘만으로는 힘들다.지식인들이 힘을 보태야겠다.노동당을 강조하던 제가 사민당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런 데 있는 것이다.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이 앞장을 서야 하는 것 아닌가.사회민주주의연대 단체의 역할도 그런 거고요.그런 힘이 있느냐.여건이 만들어지고 조건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글쎄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입니다.소선거구제에서 제일 큰 유혹은 지역주의 정당에 기대는 거거든요.진보적인 인사란 분들도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에 들어가서 국회의원이 되고 그래야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그러다보니 결국 그 쪽에 몸을 의탁하다 보니까 그 속에서 활동을 추구하게 되고,본래의 자기 진보성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왔는데 여전히 어려운 문제지요.다들 그런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거거든요.그래서 저처럼 현실 정치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는 분들이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던 분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제 나이들 50대,60대 넘어섰으니까.오바마가 훨신 후배거든요.81학번,61년생이라고 했거든요.저보다 일곱살 젊은데 한국의 정치도 60년대 출생한 사람들이 주도할 때가 됐거든요.”  -조금 다른 얘기인데 책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지.  “80년대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그 노래를 좋아했었는데 다 비슷한 정조의 노래들이었죠.자기희생이라든지 사명감을 고취하는 운율의 노래들이었다.제 노래는 특별히 군대생활 할 때도 군가인데 ‘보병의 노래’일 겁니다.’그 누가 싸움을 좋아하려만 이름없이 죽어갈지라도 정의를 위해 어쩌구저쩌구’ 하는 기조의 노래였는데 우리 세대가 그런 정조를 많이 가지고 있었지요.시대가 바뀌었으니 조금 바뀌어야죠.”  -소위 “빵잡이”인데 시위 후 바로 징집돼 군에 가셨는군요.엄청나게 힘들지 않으셨는지.  “그렇지 않았어요..전두환 70년대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군대에 지침 같은 게 없었고요.사찰 대상이긴 했겠지만 군대생활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혹시 그런 생각 하는 분이 있으면 로맨틱하게 받아들이라고 해주세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국가의 소외된 부문을 부축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기조에 비춰봐도 잘못된 거라 보이는데요.한국에서의 조세부문 개혁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가 다른 일은 모르겠지만 감세 이거는 정말 잘못한 겁니다.거의 도둑질 수준입니다.정권 잡았다고 종부세 정책은 약탈하고 거저 나눠가지는 종부세가지고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크게 심판받을 겁니다.노무현 정부가 잘하네 못하네 하지만 종부세는 제대로 한거거든요.미국을 기준으로 봐도 부동산 보유세가 현저히 낮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는 건데 그걸 환급까지 해주는 건 도둑질 수준이고.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몇년 가면 복지재원 엄청나게 소요되는데 세금은 감세해버리고 세수는 줄어들거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세 개혁의 여지는 여전히 많이 있지요.다 아는 얘기지만 간이과세제 폐지해 투명성을 높이면 지하경제로 돼있는 자영업자들의 세금 신고 안하고 누락하는 것을 잡으면 거둬들일 여지가 많고요,세원은 새로 상당히 많이 있다고 보고 부동산보유세의 내용을 현실적으로 높이고 그러면 세금을 앞으로도 많이 확보할 수가 있고 그걸 해가지고 단박에 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늘려 OECD 평균 수준 가려면 한참 멀었지만요.그렇게 가는 것이 기업에게도 좋습니다.공공부문에 의해 지탱이 돼줘야 사람을 필요에 으해 경기부침에 의해 함부로 새로 짜를 수도 있고 고용의유연성이 확보될 수 있는 건데 이런 식으로 가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처럼 우리나라가 한참 막 연 10%씩 성장하는 단계가 아니거든요.중고등학교때 1년에 10㎝씩 자라던 학생이 성인 되서도 그만큼 자랄 수 없는 거거든요.상당한 성숙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률이 10%씩 될 수가 없거든요.기술이 고도화되고 해서 실업자가 늘 수밖에 없는 단계인데 유럽이나 선진국 사회적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국가예산이 많이 소요되고 그런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경제위기가 지나면 7% 성장이 될 것이라고 믿는지,그것이 인식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그 인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박정희 향수가 있고 박근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거 아닌가.좋았던 과거,연 10%씩 성장하던 과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열린세상]1997년과 현재의 경제위기 차이/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1997년과 현재의 경제위기 차이/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2009년 상반기에는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나왔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후반,1990년대 후반에 이어 또다시 경제위기다. 거의 10년마다 찾아오는 경제위기에는 유사성과 함께 차이도 있다. 앞의 두번의 경제위기는 대통령 피살,민주화운동 폭발 등 정치적인 영향이 컸던 반면,뒤의 두번은 주로 경제 내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후자의 경제적 원인 내에서도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의 원인에 따라 극복 방안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1997년 위기는 당시 한국 자본축적시스템의 특징이었던 정경유착,과잉·중복투자,이와 관련된 금융부실,단기채무 위주의 외채구조 등 구조적 문제가 환율상승으로 인한 외환 가수요의 급증으로 단기 외환 유동성 문제를 야기하면서 폭발한 것이다. 이후 한국은 IMF 권고를 처방전으로 삼아 빅딜 중심의 과잉투자 해소,대규모 고용조정과 채용패턴 변화를 통한 과잉고용 해소,통폐합 등 금융산업의 빅뱅,외채구조의 건전성 회복 등을 시도했다. 한국경제가 1997년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의 하나는 양호한 국제경제 여건이다. 당시 한국의 주요 교역대상국들이 호황기를 맞고 있어,효율성을 강화한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시장의 수요가 충분했다. 이와는 달리 최근에는 미국,유럽,중국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요 창출을 위한 뉴-뉴딜정책이 회자될 정도로 전 세계가 동시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초유의 수요 부족을 겪고 있다는 게 2008년 경제위기의 특징이며 1997년 위기와 핵심적인 차이다. 해외시장의 수요 부족은 국내시장에서 수요로 만회할 수 있다. 그런데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급속히 대규모의 자본축적을 이루어냈고,축적된 총자본이 스스로 재생산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이윤을 창출하기에는 국내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다. 이는 1997년과는 달리 자본의 효율성이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해외는 물론 국내시장에서도 수요가 부족한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국내시장에서 대규모 수요 창출의 필요성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금번 경제위기를 수요창출로 돌파해야 한다면,총노동비용의 감축 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노동비용의 핵심인 임금이 개별기업에는 줄여야 할 비용이지만 거시경제에는 내수확대의 근거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1997년 위기 이후 노동비용 상승률이 생산성 상승률에 미치지 못해 경제계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던 생산성 임금제가 최근에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요컨대,과다고용 해소책인 군살빼기가 필요했던 1997년 위기와는 달리,금번에는 과소고용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자리를 가진 저소득층의 소득향상도 내수 확대의 주요 기반이다. 내수확대는 수요창출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하고,중장기적으로는 대외부문 불안정성에 대한 완충역할도 수행할 것이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투자가 수요를 창출하고 대량실업을 방지할 경우,사회 및 경제전반에 대한 개혁을 위한 긍정적인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개혁의 핵심은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고,오랫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유보되었던 가치들(환경,사회통합,삶의 질 등)의 사회경제적인 위상을 되찾는 일이다. 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등 경제성장 관련 지표는 세계정상급으로,삶의 질 관련 지표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한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라,경제성장 및 고용창출의 동력으로 승화시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터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
  • 정년 지난 민주화운동 관련자 복직 안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은 사람이 복직을 희망해도 해당 직장의 취업규칙상 정년이 지난 경우에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사용자에게 복직을 권고할 수 없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왔다. 또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일률적으로 55세를 복직기준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다.
  • 5월정신 학교교육으로 ‘전국화’

    5월정신 학교교육으로 ‘전국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지역적 문제로 폄하되기 일쑤였다.5월 정신의 전국화가 그만큼 멀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광주시교육청이 인정한 5·18 교과서가 3월 새학기부터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학교 교육에 활용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5·18 교과서가 점차 전국 청소년들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확대될 때 5월 정신의 보편적 가치 전파는 빨라질 수 있다. 새 학기부터 학생들이 배우고 익힐 5·18 교과서는 초등학생용과 중·고등학생용 2권이다. 초등학생용은 5·18 민주화운동 전개과정,5·18 민주화운동 속에 담긴 정신,함께하는 5·18 등 3개 단원으로 이뤄졌다.내용은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졌다. 단원 아래 2~3개의 소주제와 5~7개의 세부 내용이 만화와 사진 등과 함께 소개돼 있다.소주제는 공부할 내용과 관련된 ‘도입글’ 등 ‘생각열기’와 학습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탐구하는 ‘살펴보기’, 단원별 학습내용을 정리하는 ‘활동하기’ ‘정리하기’ 등으로 꾸며져 있다. ‘함께하는 5·18´에서는 5·18 사적지,국립묘지 찾아가기,연극,노래 해보기 등 주변에서 5·18 정신을 되새기고 체험할 수 있는 손쉽고 다양한 방법 등을 제시했다. 책 표지는 5·18민중항쟁추모탑을 향해 달려가는 해맑은 어린이 모습에서 광주시민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꿈을 나타냈다고 집필진은 설명했다. 중·고등학생용 교과서는 ‘나와 5·18’, 5·18 민주화운동,5·18과 문화,5·18 정신 이어받기,아시아의 광주,세계 속의 5·18 등 5개 단원으로 이뤄져 있다. 사건 자체의 단순 기술보다는 사건이 가진 의미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이 그에 맞는 탐구활동 등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5·18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과 서울의 봄,5·18 전개과정,민주화운동으로 되기까지 등을 기술했으며 5월 관련 문학·음악·미술 등 5·18이 문화·예술활동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봤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민주·인권·평화·공동체의 5·18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른길을 찾는 것이 이 책을 낸 궁극적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18 다룬 책 교과서 첫 인정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책 2권이 처음으로 교육청 인정 교과서로 등록됐다.이 교과서들은 올해 3월 새학기부터 광주지역 일선 학교에 보급된다. 광주시교육청은 1일 “최근 5·18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을 다룬 도서 2권에 대해 세 차례의 심의 등을 거쳐 인정등록을 마치고 인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980년 5월 상황을 전면적으로 다룬 책이 학교에 보급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각 학교에서는 체계화된 5·18 교육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제작되는 교과서는 제목이 ‘5·18민주화운동’인 초등과 중·고등학교용 2권이며 5·18기념재단이 제작 실무를 맡았다.광주 금호초교와 광주자연과학고 등 4개 학교가 오는 3월 새학기부터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시범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개헌 다시 보자] 바람직한 개헌 절차

    [개헌 다시 보자] 바람직한 개헌 절차

    ‘사회적 의제로 헌법논의 시작’→‘사회적 의제를 헌법적 의제로 수렴’→‘단일 헌법안 작성’→‘최종안 제정 뒤 국민투표로 확정’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987년 이후 사회 변화에 대처할 헌법 개정 절차를 이같이 제안했다.시민·사회단체,학계,정당이 참여해 논의를 시작하고,이들이 구성한 민주헌법연구회의 의견수렴을 거쳐 시민대표와 국회가 함께 마련한 단일헌법안을 국민투표로 확정짓는 3단계 시나리오다.박 교수는 “헌법문제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헌법 틀 안에서‘절차적 해결’에 실패해 허약한 정부를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의 주체는 단연 일반 국민이다.하지만 지난 9차례의 개헌에서 우리 국민은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87년 개헌에서도 당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65명은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근시안적 시각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담긴 헌법은 정략성과 불완전성을 드러냈고,오늘날 필연적으로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충돌,경제민주주의의 악화,이주노동자 등 비국민 거주자에 대한 고려 결핍 등의 문제로 귀결됐다.이를 타파하기 위해 개헌 논의 단계부터 국회의 제정 직전까지 시민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최근 개헌론자들의 주장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박노해·백태웅씨 민주화운동 인정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관련 활동으로 복역했던 박노해(50·본명 박기평),백태웅(45)씨가 민주화 운동 인사로 인정받았다.28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위원회는 박씨와 백씨 등 4명을 최근 열린 제257차 본회의에서 민주화운동 인사로 인정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서울광장] 1달러1표 對 1인1표/황진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1달러1표 對 1인1표/황진선 논설위원

    출범 10개월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바닥권에서 좀처럼 오를 줄 모른다.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파로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 탓이 크다.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에 집착해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가벼이 여긴 탓도 작지 않은 것 같다. 돌이켜 보자.지난 5∼7월의 촛불집회는 한·미 쇠고기협상 졸속 타결이 도화선이었다.미국 의회가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하자,30개월 이상된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독소조항을 덜컥 받아들인 때문이었다.국민의 불안은 생각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 비준이 우리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매몰된 탓이다.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근·현대사교과서 수정 파동,우편향 인사 현대사 특강,‘4·19 데모’ DVD 배포로 이어지며 논란에 논란을 불렀다.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발전의 역사,기적의 역사였다.”며 ‘광복절 대 건국절’논란에 불을 지폈다.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광복절의 의미는 축소하고,1948년 이승만 정부수립과 그 이후의 경제발전에만 더 의미를 부여해,대한민국을 뿌리부터 우익국가로 규정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군의 ‘불온도서’ 목록 지정,교육과학기술부의 ‘좌편향’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지시,서울시교육청의 고교생들을 상대로 한 우익인사들의 현대사 특강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교육부가 1만여 초·중·고교에 현대사 교육 보조교재로 배포한 ‘기적의 역사’ DVD는 이념과잉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기적의 역사’는 1960년대 영상에서 ‘4·19 데모’라는 제목으로 4·19 혁명의 폭력성을 부각시켰다.4·19는 박정희 시대조차도 ‘의거’로 치켜세운 민주화의 이정표가 아니던가.1950∼1970년대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치적으로만 채웠다.또한 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항쟁,남북화해 노력 등은 빼놓고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집어넣었다.한마디로 경제발전과 법치에만 집착해 민주화 및 통일 노력은 넣지 않은 것이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선진화로 나아가기 위한 두 축이다.하지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전론자들의 전가의 보도인 자유시장과 민주주의가 상호보완적이 아니라고 설명한다.“민주주의는 1인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당연히 전자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동일한 비중을 둔다.후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큰 비중을 둔다.따라서 민주적인 결정은 대개 시장의 논리를 뒤엎는다.” 장 교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하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고,88만원 세대가 등장했으며,청년실업이 줄지 않아 2003년부터 20대의 자살이 교통사고를 제치고 사망원인 1위에 올랐다.통계청에선 얼마전 전국 상하위 가구의 소득격차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고 발표했다.신자유주의를 맹신하면 양극화가 가속될 수 있다.이명박 정부는 장 교수의 지적대로 경제발전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학술플러스]

    ■ ‘한국민주화 운동 총정리’ 책으로 나와 ●대한민국 건국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사를 총정리한 ‘한국민주화운동사’(돌베개 펴냄)가 출간됐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를 비롯해 정해구(성공회대)·오유석(성공회대)·임대식(서울대) 교수 등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연구자들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다.민주화운동사 정리 작업이 이처럼 공동연구 성격으로 총정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2010년까지 총 3권으로 완간된다. ■ 이해조 문학기념 특별강연회 ●동농 이해조 선생 기념사업회(상임대표 홍을표)는 15일 오후 4시 포천중문의과대 세미나실에서 홍정선 문학과지성사 공동대표를 초청해 이해조 문학기념 특별강연회를 연다.이해조(1869~1927)는 일제 침략기 신소설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소설가이자 항일민족지 제국신문에서 활동한 언론인이다. ■ 22일부터 일반인 등 대상 한문특강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은 겨울방학기간에 대학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특강을 한다.22일부터 내년 2월12일까지 김낙철 연구원이 ‘논어’(화·목·토)를, 공근식 연구원이 ‘맹자’(월·수·금)를 주 3일씩 강의한다.수강료는 과목당 12만원이며,17일까지 7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02)391-5251 ■ ‘…로컬 민속의 글로벌화’ 학술대회 ●한국민속학회(회장 임돈희)는 12·13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글로벌 문화의 로컬화,로컬 민속의 글로벌화’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독일 훔볼트대학 볼프강 카슈바 교수가 ‘글로벌 과정 속의 유럽’이란 제목으로 유럽민족학의 새로운 연구 동향을 발표한다.
  • 한국인 기대수명 10년새 5년 증가

    한국인 기대수명 10년새 5년 증가

    지난해 태어난 아기들이 장차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 수명은 남자 76.1세,여자 82.7세다.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에 출생한 아기들은 예상 수명이 각각 61.8세와 70.0세였다.약 30년 만에 남녀 수명이 13~14년씩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남자는 39세,여자는 42세에 인생의 반환점(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같아지는 시점)을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이 또한 과거보다 크게 늦어진 것이다. 통계청은 9일 기대수명과 기대여명,특정 사인에 의한 사망 확률 등을 담은 ‘2007년 생명표’를 발표했다. 지난해에 출생한 아이의 기대수명은 79.6세로 한해 전보다 0.4년(약 5개월) 늘어났다.외환 위기가 발생한 10여년 전(1997년)에 비해 5.2년이 늘었다.남자 76.1세,여자 82.7세로 여자가 남자보다 6.6년 더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됐다.97년에는 여자의 기대수명이 남자보다 7.6년 더 길었다. 통계청은 “최근 10년간 남녀 기대수명 증가는 남자의 경우 청장년층(30~64세)과 고연령층(65세 이상)의 사망 감소가,여자는 고연령층의 사망 감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가 80세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은 남자의 경우 46.9%로 절반이 안됐지만 여자는 70.1%로 조사됐다.15세 남자의 80세 생존확률은 47.2%,여자는 70.5%였다.65세는 남자 56.6%,여자 7 5.7%가 80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특정한 연령에 있는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나타내는 기대여명은 40세의 경우 남자는 37.6년,여자는 43.8년으로 나타났다.나이와 기대여명을 합하면 남자는 77.6세,여자는 83.8세까지 살 것이라는 얘기다.10년 전인 97년에는 인생의 반환점이 남자 37세,여자 40세였으나 지난해에는 각각 39세와 42세로 각각 두 살이 많아졌다. 지난해 출생한 아이들이 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남아 28.1%,여아 15.9%로 2006년보다 0.5% 포인트씩 높아졌다.뇌혈관(남 11.8%,여 13.9%),심장(남 8.5%,여 10.5%),고혈압(남 1.9%,여 4.0%) 등 순환기계 질환에 따른 사망확률은 여아(28.9%)가 남아(22.9%)보다 높았다.암,뇌혈관 질환,심장질환 등 3대 사인으로 사망할 확률은 남아가 48.4%,여아가 40.2%였다.3대 사인이 제거되면 지난해 태어난 남아는 8.9년,여아는 6.4년을 더 살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사설] 역사는 정권의 전유물도,전리품도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건국 60주년을 맞아 전국 초·중·고에 배포한 현대사 영상물 ‘기적의 역사’가 보수 진영의 일방적 시각을 담은 것으로 드러났다.1950∼70년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독재 등 부정적인 면은 외면하고 경제발전을 비롯한 치적만을 부각했다.또 헌법 전문에 4·19를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으로 규정했는데도 단순히 ‘데모’로 폄하했다.1980년대 이후 역사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과 6·15남북정상회담 등은 다루지 않은 대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이룬 성과를 반영한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은 들어 있다고 한다.한마디로 ‘기적의 역사’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이룩한 민주화의 과정과 남북 화해·공존의 노력은 도외시하고 경제건설 쪽에만 의미를 집중 부여한 것이다.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노골화한 보수 진영의 이념 공세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광복(해방)의 의미를 부정하고 정부 수립에 초점을 맞추는 ‘건국절’ 논쟁,10만원권 지폐 도안 인물을 김구에서 이승만으로 교체하자는 주장 등이 뉴라이트 진영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이 가운데 ‘좌편향’ 교과서는 이미 교과부의 강압에 따라 수정됐고 10만원권 지폐는 발행이 보류된 상태이다.역사는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전리품은 더욱 아니다.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다.그리고 국가 교육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교과부가 선두에 서서 그 일을 추진한다.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 있겠는가.‘기적의 역사’는 즉시 폐기돼야 한다.아울러 역사 해석은 학계에 맡기고 정부는 자라나는 세대가 그 결과물을 균형감 있게 배우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5년 유한(有限)인 정부가 역사에 관해 할 일은 그것뿐이다.
  • 냉정한 앵글 속 한국 현대사

    40년 남짓 한국을 기록한 일본인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72)의 사진집이 출간됐다.사진전문인 눈빛출판사가 20주년을 맞아 펴낸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구와바라 시세이 한국사진전집’이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수은 중독에 따른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1962년 일본사진비평가협회로부터 신인상을 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입문했다.한국에서의 작업은 1964년 월간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서울에 체류하면서 시작하게 됐는데,이후 수십차례 드나들며 찍은 사진이 10만여컷에 달한다.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방대한 분야를 망라한다.19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베트남 파병,팀스피리트 한미연합군사훈련,미군 기지촌 등이 구와바라 시세이의 렌즈에 포착된 풍경들이다.그는 “나에게 있어서 한국 취재는 ‘격동의 사반세기’였다.”며 “지금도 한국의 대지에 잠들어 있는 무궁무진하고 장렬한 역사 소재를 문자나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이 사진집은 그가 27세 때부터 청춘을 함께한 이웃나라이자 아내의 모국에 바치는 헌정 책과도 같다. 사진비평가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작가론에서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구와바라 시세이의 시선에는 한국의 사진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대상에 대해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가 들어있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예술사진 중심의 한국사진계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 주며,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집 말미에는 한국 취재 생활에 대한 작가의 회고담도 실려 있다.관세법 위반으로 강제 출국된 경험,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등 솔직하고 치열한 자기 반성 등이 낱낱이 적혀 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오는 13일부터 내년 2월21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이 열리는 것.향수를 자극하는 서울 변두리와 농어촌의 모습,북한 사진 등을 감상할 수 있다.5만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기록문학의 부활

    암울했던 시절의 엄혹한 현실 아래선 예술적 상상을 조금 덧대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곤 했다.다소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 나더라도 더욱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기록문학’이라는 이름의 문학 장르로 자리잡았다.자취를 감추는가 싶던 기록문학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시절이 하 수상해지며 다시 등장하고 있다.‘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조영래 씀)에서 30년이 흐른 뒤 나온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오도엽 씀,후마니타스 펴냄)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중심이다.197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진보정치운동을 담은 생생한 기록이다.문익환 목사와의 인연,1987년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만들던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일화 등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나라 바깥의 기록 문학도 나왔다.‘양지를 찾는 사람들’(삠 끗사왕 씀,아시아 펴냄)은 태국에 있는 미얀마인 이주 노동자들의 얘기다.이주 노동자로서 타국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초와 함께 현재 미얀마인들이 처한 정치적 억압과 그 역사 등을 직·간접적으로 증언한다.미얀마 군부정권을 부정하는 국제 NGO와 저항인사들은 이 나라를 여전히,군사 쿠데타 이전의 이름인 ‘버마’라 부른다. 책을 쓴 삠 끗사왕은 태국 출신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서,1년 남짓 ‘버마’를 떠난 이들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책을 펴냈다.지금은 ‘국경없는 친구들’이라는 국제 NGO에서 일하고 있다. 같은 아시아권 국가이면서도 별 관련없는 듯한 미얀마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우리 사회의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인권위 인권상 추천자 행안부 ‘심사 유보’ 논란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상 후보자로 추천한 인물을 행정안전부가 부적격자로 판단, 심사를 유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행안부는 21일 인권위가 올해 인권상 후보자로 선정·추천한 이정이(67)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및 부산인권센터 대표에 대한 심사를 유보했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상훈 수여 대상자는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이씨는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어 심사과정에서 ‘정부포상 업무지침’ 요건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씨에 대한 인권상 추천과 관련, 일부 언론과 단체는 “민주화운동의 전력은 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맥아더동상 철거운동 등을 주도한 친북좌파 활동가”라면서 자격 논란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측은 “지금까지 인권위 추천을 받은 사람을 행안부가 탈락시킨 경우는 없었다. 행안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가 오면 그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소수자 보호하는 법률가 돼야”

    “소수자 보호하는 법률가 돼야”

    “여러분은 성찰하는 법률가가 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돼보는 상상력을 기르십시오.” 2004년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 대법관은 19일 오후 2시 고려대 신법학관 강당에서 ‘법치주의와 법률가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미래의 법률가를 꿈꾸며 모인 150여명의 대학생에게 김 대법관은 “대학 시절 법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법관은 자신의 학창 시절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1975년 엄혹한 유신 시절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김 대법관은 “민주화운동과 법률가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다.”면서 “법률가를 꿈꾼다면 대학 시절 공부도 좋지만 글로벌 시대에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27년간의 판사 생활에 대해 소회를 털어놓으며 김 대법관은 “엄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은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약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등 직업병이 심하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최근 종부세 판결, 하리수씨 성 전환 판결 등을 예로 들며 모든 것을 법으로 귀결시키는 법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로널드 드워킨 뉴욕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법은 도덕원리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법관은 “소수자를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사회의 다원성을 유지시키는 사람이 여러분들이 꿈꿔야 하는 법률가”라고 말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김영란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1981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근무했으며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2004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민주화운동 중국인 첫 난민 인정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국인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그동안 300명이 넘는 중국인이 난민인정 신청을 했으나 ‘위장 난민’ 논란 등과 맞물려 법무부가 받아들인 경우는 없었다. 이제야 법원을 통해서 중국인 난민이 처음 나오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Y(54)씨 등 가족 3명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1998년 중국 민주당 설립에 참여했던 Y씨는 2003년 9월 단체관광 일행에 섞여 한국으로 온 뒤 난민 신청을 했다. 이후 한국에 머물며 중국 관리에 대한 규탄서 등 인권침해 사실을 국제기관 등에 알렸고,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톈안먼 사태 규탄집회 등에서 자국 민주화를 촉구했다. 힘겨운 타향살이를 하던 그는 골수암까지 앓게 됐다. 법무부는 2년이 넘는 심사 끝에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중국을 떠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Y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인도적 체류허가를 내줬다.Y씨는 지난해 난민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원고가 중국에 있을 당시에는 반정부 활동으로 인해 중국 정부로부터 별다른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다 해도 한국에 온 뒤 중국 정부의 인권침해 사례가 세계에 폭로되게 기여했고, 병으로 활발하지는 못했으나 중국 민주당원으로 활동하는 사실이 자국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점을 고려할 때 강제송환될 경우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가족의 보호라는 인도주의적 요청에서 그 가족도 난민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원고가 적어도 거주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등의 결과로 대한민국 현지에서 체재 중에 난민이 됐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못박았다. 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또 중국민주운동해외연석회의 한국 지부장인 W(59)씨 등 2명이 제기한 같은 취지의 소송에 대한 상고심에서도 원고승소를 확정했다. 법무법인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난민제도의 인도적인 취지를 살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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