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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글서 ‘광주시청’ 검색하니 홍어가…

    구글서 ‘광주시청’ 검색하니 홍어가…

    인터넷 사이트 구글에서 ‘광주시청’을 검색하면 홍어 이미지가 등장, 광주시가 경찰에 고발하는 등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23일 광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구글 검색창에 ‘광주시청’을 검색하면 화면 우측에 홍어 이미지가 등장했다. 홍어는 ‘일베’ 회원 등 일부 누리꾼이 호남지역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상징적인 용어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관을 ‘홍어 택배’에 비유한 대학생이 사법처리되기도 했지만, 비하 행태는 인터넷상에서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또 ‘사진 보기’를 클릭하면 광주광역시청의 약도, 주소와 함께 같은 모양의 이미지가 다시 표출됐다. 홍어 이미지는 나치기(旗)를 연상하게 하는 붉은색 기 형태 가운데 삽입, 마치 광주시를 상징하는 깃발인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광주시는 해당 그림을 구글에 삭제를 요청해 오후 7시 현재 검색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를 비하하려는 특정인이 불순한 의도로 이미지를 올린 것 같다”면서 “인권평화 협력담당관실을 통해 즉각 수사의뢰와 고발을 동시에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열린세상] 기업 스스로 윤리적 책임 강화해야 한다/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기업 스스로 윤리적 책임 강화해야 한다/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기업의 ‘갑질’ 행태 뉴스가 자주 거론되더니 급기야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다. 경제주체 간의 계약에서 편의상 사용되는 갑과 을이라는 구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도, 왜 대기업의 행태에 대해 ‘갑질’이라는 비아냥이 꾸준히 나오는 것일까. 이는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많이 변했는데 우리 대기업들은 이에 대한 절박함을 잘 모르기 때문인 거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역할이란 일자리를 만들고 이익을 내서 정부에 세금을 많이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졌으며,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이익극대화 외에 경영투명성 및 윤리경영 등의 이행 여부가 중요한 관건으로 자리 잡게 됐다. 즉 주주, 노동자, 소비자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의 전통적 존재 목적인 경제적 책임 이외에 노동·환경·소비자·지역사회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기를 요구하게 됐다. 미국 조지아대 캐럴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 등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경제적 책임이란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으로서 생산 활동을 통해 고용과 유효 수요를 창출하고 투자자에게는 보상이 가능한 이윤을 창출하는 등의 사회적 기여를 의미한다. 법적 책임이란 기업 경영이 공정한 규칙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법의 테두리에서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기업이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라 할 수 있다. 윤리적 책임은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기대, 기준 및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자선적 책임은 자발적인 책임의 수행, 그리고 경영활동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문화활동, 기부, 자원봉사 등을 의미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한국 경제의 발전사에 비추어 설명해 보면 1960~7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 우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로 경제적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즉 성장우선 시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제품의 생산·판매를 통해 국가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함께 노동·환경 문제 등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됐고 이로 인해 기업의 법적 책임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도 기업에 윤리적 책임과 자선적 책임을 추가로 요구하게 됐다. 특히 시민단체의 활동과 정보화의 발전은 기업에 윤리경영을 강하게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슈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기업 가치의 제고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와 연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유사한 기업시민정신이 인정되고 있다. 이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부문의 자발성에 기초해 발전돼 왔다.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을 권리와 도덕적 의무를 동시에 지니는 사회적 제도라고 인식하고 시장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등 자본의 구조적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를 제도화하고 있다. 또한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범화하려 하고 있으며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발적 표준으로 ISO 26000을 제정했다. 앞으로 우리 대기업들에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분야는 윤리적 책임 부문이다. 대기업들이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윤리적 책임을 규범화하자는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업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지만, 대기업 스스로 땅콩 회항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면 그 다음에는 정부가 윤리경영 정립을 위해 법률 제정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규제 범위가 늘어나게 될 것이므로 정부에 기업 활동에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상식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 이부영 정계 은퇴 선언 “능력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겠다”

    이부영 정계 은퇴 선언 “능력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겠다”

    이부영 정계 은퇴 선언 이부영 정계 은퇴 선언 “능력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겠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73) 전 의원이 11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정치인의 멍에를 내려놓고 떠난다”며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련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당대회를 성공리에 끝내고 단결과 도약을 위해 새롭게 전진하는 당의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원 동지들에게 행운과 승리가 함께 해주기를 온 정성을 다해 빌겠다”며 “정치를 떠나더라도 이 나라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살겠다”고 밝혔다. 서울 출신으로 용산고와 서울대를 나온 이 전 의원은 언론인 출신으로 19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으며, 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장기표씨와 함께 재야 3인방으로 불린 그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진영에 남아 정치활동을 하다 199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 원내총무와 부총재를 지냈다. 2003년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 당시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 합류해 의장을 역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부영 정계은퇴 선언 “내 능력이 모자라…” 왜?

    이부영 정계은퇴 선언 “내 능력이 모자라…” 왜?

    이부영 정계은퇴 선언 이부영 정계은퇴 선언 “내 능력이 모자라…” 왜?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73) 전 의원이 11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정치인의 멍에를 내려놓고 떠난다”며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련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당대회를 성공리에 끝내고 단결과 도약을 위해 새롭게 전진하는 당의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원 동지들에게 행운과 승리가 함께 해주기를 온 정성을 다해 빌겠다”며 “정치를 떠나더라도 이 나라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살겠다”고 밝혔다. 서울 출신으로 용산고와 서울대를 나온 이 전 의원은 언론인 출신으로 19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으며, 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장기표씨와 함께 재야 3인방으로 불린 그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진영에 남아 정치활동을 하다 199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 원내총무와 부총재를 지냈다. 2003년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 당시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 합류해 의장을 역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생각나눔] 총여학생회 꼭 필요합니까… “성차별 여전” vs “男 역차별”

    [생각나눔] 총여학생회 꼭 필요합니까… “성차별 여전” vs “男 역차별”

    대학 총여학생회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서울 주요 대학 중 총여학생회가 남아 있는 곳은 연세대, 경희대, 한양대, 동국대뿐이다. 3일 한양대와 동국대에 따르면 이 대학들은 지난해 총여학생회장 입후보자가 없어 다음달 재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후보자가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대학가에서는 총여학생회가 존재의 이유를 잃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을 뿐 총여학생회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총여학생회는 1980년대 중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여학생 자치기구로서 출발했다. 초창기에는 여성단체와 민주화운동을 함께했지만, 1990년대 들어 학내 성폭력과 등록금 문제 등을 논의하는 학생기구로 바뀌었다. 1980~1990년대에 비해 여학생 비율이 증가하면서 총여학생회 활동이 학내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남학생도 함께 낸 총학생회비를 운영비로 쓰면서도 남학생 참여를 원천 봉쇄한 것은 수혜자 부담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수원)는 지난해 11월 재학생 총투표에서 53%가 찬성해 총여학생회를 폐지했다. 한양대생 강우석(28)씨는 “회장 선출부터 운영까지 남학생의 참여를 원천 봉쇄한 현재의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총여학생회가 매진하고 있는 여성인권운동 또한 학교 내 양성평등센터에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수 등에 의한 학내 성폭력 사건과 학교 측의 ‘제 식구 감싸기’ 식 대응이 되풀이되는 현실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은 여전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성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가 끝날 때까지 가해자가 자퇴·휴학·사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학칙 개정을 학교 측에 건의해 관철시켰다. 금혜영 경희대 총여학생회장은 “학내 권력 관계에 의한 성추행은 물론 보이지 않는 성차별이 여전하기 때문에 여학생 자치기구는 존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전 한양대 총여학생회장은 “양성평등센터는 학교 기관이라 성폭력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고 학생 입장에서 나서야 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며 “한양대 여학생 비율은 33%인데 학생회비 지원은 6%에 불과한 만큼 남학생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힘/존 델러리·오빌 셸 지음/이은주 옮김/문학동네/624쪽/2만 8000원 중국 난징 서북쪽의 징하이사(靜海寺) 안내판에는 영어·중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러한 불평등조약은 치욕의 족쇄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사 속의 중국이 가난하고 약한 국가가 된 주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이곳에서 난징조약에 굴욕적으로 서명해야 했던 나약하고 무기력한 근대사를 되새기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청나라 왕실의 아름다운 여름궁전이었던 베이징 서북쪽 원명전은 제2차 아편전쟁 중 영·불 연합군에 불탄 폐허로 남아 있다. 공산당 정부가 잔해 그대로 보존한 왕궁터는 서구열강의 만행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역사박물관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거침없이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외세의 침략과 강점, 내란 등 굴곡 많은 근현대사 속에 어떻게 지금의 강국이 됐는지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민심과 나라의 힘을 한 군데로 모아간 걸출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핵심 철학은 부강(富强)으로 결집된다. ‘돈과 힘’은 바로 이 부강을 국가적 목표로 추구한 중국 역사의 대표 유명인 11명의 이야기이다. 풍계분(馮桂芬)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상가부터 서태후, 량치차오(梁啓超)를 거쳐 쑨원(孫文)과 장제스(莊介石), 마오쩌둥, 덩샤오핑 같은 세계적 정치가가 들어 있다. 저자는 컬럼비아대와 베이징대를 거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 재직 중인 존 델러리 교수와 오빌 셸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 두 사람은 강성했던 옛 국력의 회복을 지상명제로 삼은 이들의 의지와 동력을 지금의 중국을 있게 한 으뜸 요소이자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로 보고 있다. 원래 ‘부강’은 2000년 전쯤인 전국시대에 탄생한 고대격언 ‘부국강병’을 줄여 부른 말이다. ‘현명한 군주가 있어 부국과 강병을 이뤄낼 수 있다면 이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갈파한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말이 시초다. 부강을 역사의 갈피 속에서 다시 꺼내 개혁의 기치로 세운 최초의 위인은 바로 청나라대에 민정·재정 담당 지방장관 포정사를 지낸 사상가 위원(魏源)이다. 위원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는 참담한 현실을 자각,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치국적 정치개혁’이라는 전통 부활을 국력 회복의 길로 보고 전략적 차원에서 서구열강의 문물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외친 그는 ‘황조경세문편’을 통해 사대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태평천국의 반란군을 피해 도피했던 상하이 외국인 거류지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수치심을 느껴야 강해진다’며 자강(自强)을 치국의 핵으로 세운 19세기 후반 정치사상가 풍계분이나 ‘근본적 변화 없이 성공할 수 없다’면서 강(强)은 자유의 필요조건이라고 외쳤던 20세기 벽두의 량치차오의 신민(新民)사상도 눈에 띈다. 국력을 회복하려면 발전을 방해하는 문화적 전통을 폐기하고 새 국가개념을 세워야 한다는 량치차오의 이 사상은 후대 지도자들에게 계승된다. 그 사상은 신문화운동 당시 사회비판 소설을 쓴 루쉰(迅), 신생활운동을 추진한 장제스, 혁명적 신중국의 청사진을 내놓은 마오쩌둥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파괴 없이 건설 없다’는 ‘선 파괴 후 건설’을 모토로 문화혁명을 강요한 마오쩌둥은 ‘진정한 혁명가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의 덩샤오핑은 ‘혁명보다는 생산, 이념보다는 실리’를 앞세워 경제적 수단에 온 관심을 쏟아 비교된다. 책은 11명의 짧은 전기를 엮은 구성이지만 각 인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저작물과 연설문 등에 연결해 중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마지막에 톈안먼 사건 이후 인권·민주화운동에 헌신해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저자들은 류샤오보를 소개하면서 의미심장한 말로 마무리한다. “부강을 추구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두 가지 사조가 미래의 어느 순간 하나로 수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날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단독] [MB회고록 파장] 역대 대통령 솔직한 고백보다 자기 합리화

    대통령의 기록은 역사적 사료다. 대통령이 퇴임 후 남긴 기록, 회고록은 재임 기간 밝힐 수 없었던 비사(秘史)이며, 후세에게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 특히 대통령 기록물의 보존·관리가 2007년까지 법제화되지 않았던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회고록은 국가적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판단 기준, 숱한 정상회담 등 외교 관계의 팽팽한 힘겨루기 등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 다음달 2일 출간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은 보안 문제를 의식한 탓인지 일반적인 출판 관행과는 조금 어긋났다. 회고록 원고는 출판사 몇 군데를 떠돌았고, 편집부가 최소 서너 차례 이상 교정을 보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이영인 알에이치코리아 홍보팀장은 “출판사에서 초고를 교정한 뒤 (MB 측에)돌려보냈고, 이후 사실상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편집장 역할을 도맡았고, 최종 원고본 역시 출판사가 아닌 MB 측에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10명의 역대 대통령 중 윤보선·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못다 쓴 회고록’(학고재·2009년)을 비롯해 ‘김대중 자서전 1,2’(삼인·2010년), ‘김영삼 회고록 1,2,3’(백산·2000년), ‘노태우 회고록 상,하’(조선뉴스프레스·2011년), 그리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외로운 선택의 나날’(1991년)이다. 회고록 판매부수가 가장 많았던 이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성공과 좌절’은 2009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16만부 가까이 팔렸고, ‘김대중 자서전’ 역시 양장본 8만세트와 페이퍼백 형태 보급판까지 더하면 10만세트 가까이 판매됐다. 대통령 사후에 발간됐다는 점도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뒤 3~4년 만에 회고록을 낸 뒤 평균 2권 안팎을 남겨왔다. 조지 W 부시의 ‘결정의 순간’(YBM시사·2011년),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물푸레·2004년)는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는 지금까지 5만부 남짓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회고록의 ‘배신’이다. 역사적 평가자료로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퇴임 대통령이 회고록을 자화자찬과 자기합리화, 또는 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논란과 비판의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출판계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에 대한 성찰은 없이 자신의 치적과 전임 대통령과 정적 헐뜯기에 치중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내용을 외면했다”고 지적한다. 김영준 학고재 편집국장은 “대통령 회고록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미덕은 거짓 없이 솔직하게 기술하는 것”이라면서 “독자인 국민이 회고록을 읽는 이유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입장에서 가졌던 고뇌와 판단 근거, 당시 안팎의 상황 등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대법 “민주화 보상금 외 국가배상 불필요”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이미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를 상대로 일체의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가운데 대법원이 먼저 법 적용 기준을 제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바 있어 최고 사법기관들이 또다시 기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과거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문인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한 원심을 깨고 8대5의 의견으로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1974년 1월 유신헌법 반대, 개헌 지지 성명 발표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불법 연행된 김우종(85) 전 경희대 국문과 교수와 소설가 이호철(83)씨 등은 고문 끝에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했고 같은 해 10월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다. 2003~2008년 민주화운동보상법상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지정돼 보상금의 일종인 생활지원금을 받은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2012년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신청인이 동의해 보상금을 받으면 민주화운동으로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다’는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을 근거로 배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1,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며 6억 9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고가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한 이상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생기며 이에 따라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상훈·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소영 대법관은 “억울한 복역 등으로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는 재심 판결로 새로 밝혀진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사 규정을 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을 비롯한 과거사 피해보상 법률의 관련 규정 해석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쟁점인 ‘18조 2항’에 대해 법원이 위헌성 여부를 가려 달라고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상태에서 대법원이 미리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비판도 나온다. 또 지난 12일 국회를 통과한 ‘세월호 배·보상 특별법’에도 18조 2항과 같은 취지의 규정이 담겨 비슷한 법적 공방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법률 지원을 하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앞으로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려도 손해배상과 같은 민사소송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며 “결국 대법원이 헌재 결정에 앞서 국가 부담을 줄여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20세기 아리랑(이태영 지음, 한울 펴냄) 흔히 역사는 굵직굵직한 사건과 일들의 기록쯤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작은 일들과 소시민의 일상을 빼놓고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책은 바로 그 거대 기록이 아닌 일상의 궤적에 방점을 찍고 역사를 따졌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아리랑 고개로 여겨 그 고난의 고개를 넘었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촘촘하게 들여다봤다. 개항기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과 6·25전쟁, 남북 분단, 군부독재 시절을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정작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념과 진영논리보다 상식과 통념에 충실해 역사를 보자는 측면의 글쓰기가 신선하다. “인간 삶의 본질은 큰 사건보다 자잘한 일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하는 것보다 결코 쉽지만은 않다.” 보수·진보라는 이념과 사상의 이분법적 가르기를 벗어나 양보와 소통의 역사 보기를 강조한 점이 도드라지는 책이다. 320쪽. 2만 9000원. 의사, 인간다운 죽음을 말하다(브렌던 라일리 지음, 이선혜 옮김, 시공사 펴냄) ‘현대의학은 만인에게 혜택과 구원을 주는 공공의 은자인가.’ 의학이 인간생명 유지, 연장에 도움이 됨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의료계 언저리에선 좋지 않고 옳지 않은 일들이 다반사이다. 책은 현대의학과 환자의 인권에 천착해 ‘무엇이 올바른 치료인가’를 묻는다. 저자는 미국 최고의 종합병원이라는 뉴욕-프레즈버티어리언 병원 내과 의사. 직접 치료하고 만난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다큐멘터리처럼 풀어갔다. 완치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병원을 떠도는 말기암환자, 의료진을 속인 정신질환 환자, 갑자기 자살한 환자…. 치매로 고생하는 노모를 포함해 죽음 직전의 환자들을 통해 말기 혹은 고령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무의미한 치료가 필요한지를 따져 묻는다.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의료자원과 불공평한 분배, 그로 인한 불필요한 치료와 비극적인 상황 고백을 통해 현대의학의 불편한 속사정이 낱낱이 드러난다. 504쪽. 1만 7000원. 나는 시민인가(송호근 지음, 문학동네 펴냄) ‘국민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 사회 현안의 날카로운 진단으로 유명한 저자가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여전히 ‘국민’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에게 필요한 건 ‘시민의식’임을 짜릿한 필치로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사회적 공공성의 부재가 사회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술회한다. 저자는 우선 구한말의 혼란과 국권 상실,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로 이어진 소용돌이 속에서 정상적인 근대 시민사회 구축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윤리가 실종되고 계층상승을 향한 무한경쟁이 판치면서 개인주의와 권리의식만이 머릿속을 채운 게 한국의 현주소라고 말한다. 긴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에 헌신하는 시민윤리를 지닌 한국인으로 거듭나자는 반성문이자 염원기로 읽힌다. 그리고 그 핵심의 메시지는 ‘위기와 갈등이 생겼을 때 즉각 발동되는 행동규범과 윤리의식’을 갖자는 것이다. 400쪽. 1만 5000원. 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토마스 휠란 에릭센 지음, 손화수 옮김, 책읽는 수요일 펴냄) ‘머지않아 현재의 물질 풍요 사회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가 남긴 가장 기분 좋은 막다른 길로 받아들일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대표 인문학자라는 오슬로 국립대 교수가 제시한 행복의 길. 여러 나라들이 복지국가 모델로 삼은 노르웨이에서 ‘세계는 고장 났고, 우리들의 행복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일갈한 성찰과 경고가 눈길을 끈다. 연간 개인 평균소득이 1만2000달러 선을 넘어서면 소득 증가와 삶의 만족도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그처럼 인스턴트 만족감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허무와 불안을 이기는 방법을 찾아낸다. 영화, 고전문학, 심리학, 종교를 넘나들며 건져 올린 처방들이 흥미롭다. 더 큰 차원의 다원주의는 많은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급진적인 추락을 줄이기 위해 삶을 모자이크처럼 꾸며 가라고 권하기도 한다. 384쪽. 1만5000원.
  • [이석기 내란선동 유죄 확정] “내란 선동했지만 합의 안해 음모 아니다”… 헌재와 엇갈린 판단

    [이석기 내란선동 유죄 확정] “내란 선동했지만 합의 안해 음모 아니다”… 헌재와 엇갈린 판단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은 결국 선동은 ‘유죄’, 음모는 ‘무죄’로 최종 확정됐다. 결과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과거 군사정권이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던 내란선동·음모죄에 대한 엄격한 판단 기준을 대법원이 제시했다는 점에서 사법사의 한 쪽을 장식하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통합진보당에 이른바 ‘혁명조직’(RO)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고, 이 전 의원 등이 내란을 선동하기는 했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합의하는 ‘음모’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는 RO의 실체와 내란음모 혐의를 사실상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는 엇갈리는 것이어서 이미 해산된 통합진보당 측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법원의 형사재판과 헌재의 해산 심판의 핵심 쟁점은 RO의 실체와 내란음모 인정 여부였다. 애초 검찰이 ‘통합진보당은 이 전 의원을 따르는 RO에 점령됐고, 이 전 의원은 RO를 기반으로 국가 내란을 준비했다’며 이 전 의원 등을 기소했고, 법무부는 이 같은 공소사실을 근거로 헌재에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단은 둘로 갈라졌다. 형사재판 1심과 헌재는 검찰 측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인정했다. RO 회합에서 이 전 의원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국가 기간시설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 건 내란선동은 물론 나아가 내란음모에도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 최종심은 달랐다. 항소심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선동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내란음모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하고 1년 5개월 만에 모든 형사적 판단을 마무리했다. 대법원은 RO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 “검사의 증명이 확신에 이르지 못하면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 석연치 않더라도 이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사건 기록상 강령, 목적, 지휘·통솔체계가 있는 조직이 존재하고 회합에 참석한 130여명이 구성원일 수 있다는 의심은 든다”면서도 “제보자의 진술은 추측과 의견에 해당해 증명 능력이 높지 않고, 이들이 RO 조직에 언제 가입해 어떤 활동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 RO의 존재 또한 증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이 엇갈린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회합 참석자들이 회합 이전에 조직 차원에서 내란을 사전 모의하거나 이를 위한 준비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국가 기간시설 파괴 등 폭력적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추가 논의를 했다거나 준비 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내란선동 혐의는 1심부터 상고심까지 판단이 일치했다. 대법원은 “회합 참석자들에게 특정 정세를 전쟁 상황으로 인식하고 가까운 장래에 구체적인 내란의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충분해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헌재 심판과 대법원 판결은 판단 대상이 다르다”며 “법원은 형사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고 헌재는 유무죄가 아니라 위헌적 행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어서 양쪽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고]

    ●홍정범(신한은행 서대문지점장)씨 부친상 최태홍(보령제약 사장)씨 장인상 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 30분 (02)2227-7580 ●윤승용(밀레 부사장)씨 모친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45분 (02)2258-5940 ●황성옥(제이에스홈데코 대표이사)봉옥(삼성화재)씨 모친상 김홍렬(전 한국자원재생공사 이사)씨 장모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410-6914 ●정형근(대우건설 차장)씨 장인상 8일 순천향대 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792-1420 ●신성재(사업)성도(에쓰오일 상무)씨 부친상 혜선(변호사)씨 조부상 8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2650-2749 ●정성헌(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씨 모친상 이신원(서울 중계초 교장)씨 시모상 7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923-4442 ●박호상(전 구운초 교장)씨 별세 재광(동신건축사무소장)강옥(고아학원 이사장)재수(경상북도 감사자문관)씨 부친상 준형(건축사무소 지아인 대표)건형(조선일보 산업2부 기자)민형(삼성SDI 대리)씨 조부상 8일 구미차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54)456-4040
  • 커지는 獨이슬람 혐오증…깊어가는 메르켈의 고민

    “그들 마음속엔 편견과 냉담, 증오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이 주도하는 집회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신년사는 매주 월요일 드레스덴에서 벌어지는 반(反)이슬람 시위에 참가하지 말라는 일종의 대국민 호소문이었다. 집권 10년 동안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메르켈 총리가 일개 집회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는 뭘까? 뉴욕타임스(NYT)가 1일 답을 제시했다. NYT는 “패전 후 독일의 역사는 극우, 나치 극복의 역사였는데, 최근의 반이슬람 시위에 편승한 극우가 이 역사를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독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드레스덴에서 무슬림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가 표출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서방의 이슬람화에 맞서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단체가 주도하는 드레스덴 ‘월요시위’는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후 참가자들이 계속 늘어나 12월 말에는 2만여명으로 불었다. 유럽연합(EU) 탈퇴와 이민자 추방을 외치는 신생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도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시위대는 동독 민주화운동 당시 사용된 ‘우리가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너희(무슬림)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구호로 바꿔 외치고 있다. NYT는 “새해 첫 월요시위에서 시위대 규모가 더 커지면 메르켈은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취업률이 하락하고,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가 증가함에 따라 반이민·반이슬람 정서가 ‘이민자들의 국가’ 독일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간지 슈테른이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13%는 반이슬람 시위가 인근에서 열리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자 계층에서는 동참 의사가 45%에 달했다. 치솟는 극우정당의 지지율에 위기감을 느낀 집권 기민당(보수당) 내부에서도 메르켈 총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농업부 장관을 지낸 한스 피터 프리드리히 의원은 “이민자 이중국적 허용과 같은 좌파적 정책으로 전통적 지지층이 극우당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면서 “이민자 우호정책은 총리의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이슬람 시위를 지켜본 드레스덴 과기대의 베르너 파젤트 교수는 “극우주의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기민당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면서 “시민의식에 호소하는 차원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Ⅰ <첫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세 문제를 만들었다. 월급에 대비해 그만큼이면 적당한 노동량인 것 같았다. 책을 만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읽은 것에 관해 말할 줄 아는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한 개의 독해 지문에 세 개의 문제를 만들어 달면 업무가 끝났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오래오래 회사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회사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읽거나 읽은 것에 관해 생각하는 일을 귀찮아했다. 한 달에 세 문제를 만들까 말까 하는 정도였으며 문제의 수준도 형편없었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하는 척으로 일과를 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해 큰 목소리로 토의하며 바쁜 척했다. 읽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만, 적혀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는 능력 자체에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때 그녀는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다. 지도교수가 갑자기 죽은 뒤에 이상하게도 그녀의 꿈이 사라졌다. 그녀는 학업에 품었던 자신의 꿈이 로스쿨 입시용 문항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는 세 시간 만에 세 문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고의 노력을 쥐어짜야 할 때에는 아홉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쉽게 만들어지든 오래 걸려 만들어지든 간에 개개의 문제가 전부 걸작이었다. 어떤 때에는 혼자 풀기 아까운 문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동료들 모두에게 그 문제를 자랑하고 당장 풀어보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들은 마지못해 그녀가 낸 문제를 풀어보았으나 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녀는 동료들이 지닌 지적 능력의 총합을 초월하는 자신의 창의력을 확인한 양 우월감을 느꼈고, 콧대가 우뚝해져서는 도파민의 폭풍에 정신 잃은 채 기뻐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생성된 회전은하와 스케이터의 연속 회전 간의 원리적 유사성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을 때에는 그만 김연아 선수에게 그 문제를 선물할 뻔했다. 김연아 선수와 접촉할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당장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금메달리스트의 스케이트 날처럼 날렵한 독해문제를 출제했으니, 한시바삐 문제를 풀어보고, 각운동량보존법칙에 관한 이해를 동원하여 더욱 멋진 연기를 보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울러 김연아가 그녀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문제에 실어 전하고 싶었다. 김연아가 팔을 길게 뻗어 회전할 때에 보여주는 느긋한 우아함과, 몸을 움츠렸을 때 운동량이 보존됨에 따라 속도가 높아지면서 생겨나는 간절함은 청년이 생에 대하여 품어야 하는 희망이 어떠한 양상이어야 하는지 물리학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의 대학시절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교수님의 소설로 문학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헌정 출제의 성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교수님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보충하는 <보기>를 달아 심화된 감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타인들의 머리에 더듬이가 생겨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혼란을 다룬 작품에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을 리 없다’라는 독백에 밑줄을 치고 ㉠을 단 뒤, 그 ㉠에 관해 아주 많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란 얼마나 허망하고도 희망적인 것인지에 대해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교수님의 소설과, 자신이 낸 문제를 바라보며 그 희망적인 허망함에 관해 성찰했고, 청년으로서 자신의 무거운 사명을 통감하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업무량과 비교하여 동료들의 게으름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하루에 세 문제씩 꼬박꼬박 생산해내는 그녀가 미친 기차 같다고 자기들끼리 욕했으며, 방해하기 위해 시끄럽게 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촘스키가 글을 참 못 쓴다고 욕을 하거나, 과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과학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위험천만하지 않은가에 관해 토론하거나, 푸코의 저서는 번역이 엉망이어서 출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하거나, 문학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에 세 문제씩을 즐겁게 생산하고 있는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녀의 동료 중 한 인물, 항상 고려청자색 눈빛을 지니고 있는 우애경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약간의 실수 때문에 서울대에 못 갔어요.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잘되지 않았어요. 이런 회사에서 문제 내는 일이나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서울대에 가기만 했어도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그녀는 우애경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젊은 시절을 비탄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개인에 주어진 잠재력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의 잠재력을 직시하고 올바른 전제에서 추론을 시작해야 나의 모습을 검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녀는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우애경으로부터 등을 돌린 뒤 다시 문제를 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우애경이 시뻘건 얼굴로 식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출제에 골몰했다. 출제를 하며 우애경에 관해 생각했다. 우애경은 왜 화가 났을까?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으로 분류하여 한 줄로 세워볼 수 있다. 그녀는 우애경의 화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들을 물리화학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구분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생리 중일 수도 있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물리적 상태가 저혈당증을 일으키고, 저혈당증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뉴런 간 화학·전기신호 작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화를 내는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일 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러한 이유가 작동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먼 원인일 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애경의 분노를 초래한 심리적 원인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해보라는 말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 이유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①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하기 싫어서, ②가능성과 잠재력에 차이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③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분 나빠서, ④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이 싫어서, ⑤아니면 모종의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묵살당해서?(이 지점은 상상의 영역이므로 과학적 추론 불가) 위 내용 중 무엇에 해당하든 그것은 화가 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기분이 찜찜해졌다. 알 수 없는 뭔가가 엄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습하던 무언가의 실체는 다음날 점심시간부터 분명해졌다. 유난히 칼국수가 늦게 나오는 그 식당에 둘러앉아, 그녀의 동료들은 하염없는 잡담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깍두기를 먹고 있었다. 잡담은 점점 석연찮은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미팅하던 때처럼 남녀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데에서 시작한 잡담이 각자들의 출신대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애경이 유부장에게 말하기를, 유부장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것이 학창시절 가장 언짢은 일이었다고 했다. 유부장도 자신의 학창시절에 우애경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적이 있지만 유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으나 마주보는 눈빛들은 사실 뭔가를 만끽하는 중인 듯 행복해 보였다. 화제는 갑자기 신촌의 추억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때껏 잠자코 있던 다른 인물이 배꽃처럼 웃으며 동참하더니 신촌의 추억을 떠들어댔고, 그들의 대화를 끊을 수도 낄 수도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칼국수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끊을 수도 낄 수도 없는 인물로는 그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서교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시 서대문구 전체에 관한 추억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지 못할 터였다. 서교동의 추억을 지닌 인물이 왠지 모를 경멸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몹시 조심했지만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그녀가 지닌 신촌의 추억이란 극장 앞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린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혹시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이라도 주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미도나 맥아더장군에 관한 화제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가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관한 화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때마침 양푼에 가득 담긴 칼국수가 등장해주었고, 대화는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친 채 모두 얌전히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마치 먹는 데에 열중한 것인 양 아무도 그녀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회사에 혼자 남아 쓸쓸히 책을 뒤지고 출제를 했다. 김소진의 ‘개흘레꾼’을 다시 읽었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힌 주인공이, 허름한 차림으로 빵을 사들고 온 아버지를 냉대하는 대목을 발췌하여 문제를 냈다. 개흘레꾼의 주인공은 말했다. ‘아버지는 ㉠테제도, 그렇다고 ㉡안티테제도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다.’ ㉠과 ㉡의 의미에 대한 출제를 하다 말고 그녀는 자신의 사원증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포토샵으로 다듬은 사진 아래에는 ‘이우리’라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녀는 ㉠ 혹은 ㉡에 머물러 자기 자신의 의미가 규정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일단 맹렬히 출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결심을 실현하기로 했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주인공은 인천을 싫어한다. ②주인공은 우애경에 대한 반격을 결심했다. ③주인공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④주인공은 ´개흘레꾼´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여 생각하고 있다. ⑤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이 남들의 인생에 포함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Ⅱ <두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아홉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세 개의 지문을 뽑아 각각 세 개씩의 문제를 다는 데에 온종일이 걸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면 혼자서 한 벌의 모의고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출제 기계라고 했다. 그녀의 유능함에 견주어 우애경은 점점 더 무능해 보였고, 아무나 붙든 채 자기가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서울대에 갔을 것이며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우애경을 보며 그녀는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유능한지, 모니터를 향한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자세로 하루에 아홉 문제씩을 생산한 그녀가 얼마나 탁월한 출제자인지를,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문제를 풀어본 수많은 학생들이 직접 증언할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애경이 사고를 쳤다. 오전 열시의 고요한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를 모두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그 소리가 점점 커졌고, 일본어이긴 했지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우애경의 컴퓨터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가 우애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우애경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로 숨었다. 우애경 주변의 남자 사원들이 대단히 당황하더니 화면 가득한 살색 움직임들을 어떻게든 없애려 하다가 끝내는 컴퓨터를 두들겨 패듯 꺼버렸다. 우애경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창에 지나가던 배너를 건드렸을 뿐인데 민망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더라고 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그들은 우애경의 컴퓨터를 복구하느라 오전 업무시간을 다 써야만 했다. “지나가는 배너를 건들기만 했는데도 저 정도로 감염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못 들은 척 했다. “지나가는 배너는 왜 건드리죠?” 그녀는 우애경을 향해 물었다. “포르노 사이트 광고였나요, 아니면 일반 광고였는데도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우애경은 달팽이관이나 청소골 같은 것이 없기라도 한 양 그녀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배실배실 웃고 있었고, 속으로는 민망해 죽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갈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애경과 담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원래들 업무시간에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시기도 하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인데, 우애경과 동료들은 아주 불쾌한 듯, 마치 포르노 사이트 접속으로 오전 업무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그녀이기라도 한 듯 아래위로 노려보더니 탕비실을 향해 우르르 가 버렸다. 그녀는 모두가 떠나 버린 사무실에 앉아 홀로 출제를 했다. 그녀는 정말로 왕따였다. 그녀는 우애경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적어도 질타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운 회사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애경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우애경의 성격이 갑자기 능글맞고 넉살 좋게 바뀌었다는 것인데, 우애경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수치스러운 그 사건을 덮어버렸다. 유부장에게 말하길 “어머, 부장님. 계속 그렇게 야근시키시면 전 또 그 배너 건드려 버릴 거예요” 라고 하거나, 다른 팀 직원에게 말하길 “다들 너무 일만 하면서 침체되어 있기에 내가 야동 바이러스 감염으로 활력소가 되어준 거잖아” 라고도 했다. 우애경은 매일 스스로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일본어 공부에 좋은 게 일제 동영상이더군요” 라는 말을 해서 일부 남자 직원들이 즐거워하도록 만들었으며 절묘한 순간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내 감염된 컴퓨터를 쓰도록 해” 라는 말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우애경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고, 살색 가득하던 컴퓨터 화면에 대한 기억과, 우애경이 업무시간에 포르노를 보는 여자라는 인상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종래엔 유부장이 “앞으로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우애경 씨 컴퓨터를 쓰게 할 거야”라고 농담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에 모두 웃게 되기까지는 사건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애경은 변죽 좋아 보이도록 성격이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능함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애경은 아무 문제도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이우리를 향해서 발톱을 세운 채 이우리가 하루에 아홉 개씩 낸 문제를 꼼꼼히 살피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았다. 각운동량보존법칙과 회전하는 나선 은하에 관한 문제에서는 은하의 나선 팔에 관한 설명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험에 비해 한 단락 분량이 더 추가된 것이므로 모의고사에 수록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지적 때문에 그녀는 우애경과 한 시간을 싸워야 했다. 나선 은하의 나선 팔 부분과 중심부는 각각 산개성단과 구상성단으로서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 은하의 형성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따라서 줄일 수도 뺄 수도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참을 다퉜으나 그녀가 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흥분하면 이마에 핏발이 서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뭐라도 잘못해서 당황한 사람처럼 보였고, 동료들은 그녀가 곤란해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녀가 중력섭동이라든가 산개성단을 구성하는 중원소에 관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다들 하품을 하고 듣기 싫어했다. 이마에 핏발이 선 이우리가 언성을 높여가며 하는 말들이 알 수 없는 소리라고들 했다. 반면 그에 응수하는 우애경의 논리는 아주 간명한 것이었다. “어찌 됐든 길잖아요. 지문이 너무 길잖아요. 안보여요?” 그녀가 낸 모든 문제에 관해 우애경은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냈다. 가장 억지를 부렸던 것은 ‘개흘레꾼’이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개흘레꾼’이 한 대학생의 자기 탐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한 작품일 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199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현 시대상황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애경은 그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말했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해요. 경쟁사에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 안 돼요.” 민주화운동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과 테제, 안티테제 등의 용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관해 출제된 문학 문제가 좌파 이념 전파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사건을 이우리 씨가 잊은 것은 아니겠죠. 이우리 씨가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도 나서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개흘레꾼’ 문제는 폐기하는 걸로 하죠.” 그녀는 말이 안 나왔다. 혀의 근육 어딘가가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우애경은 마치 그녀의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그녀는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를 못 받고 그냥 죽을 텐데 돈도 없고 땅도 없으니 화장해서 4대강에 뿌려다오’ 라는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문법적 오류가 존재하지 않는 정답의 선택지로 삼아 어법 문제를 출제한 바 있었다. 모의고사 시행 직후 게시판에 이의제기가 올라왔다. 출제자 중 누군가가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지닌 것 같은데 이는 모의고사의 공정성과 적합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시험을 본 학생이 올린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회원가입일이 게시일 당일인데다가 모의고사에 응시한 기록도 없는 회원의 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라고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그 글이 우애경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과학 연구에 있어 최초의 가설 설정이란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우애경이 자작 이의제기를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라는 가설을 수립한 뒤 그것을 검증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유부장은 게시판 사건 때문에 노발대발하였으나 진짜 응시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곧 잊어버렸다. 그녀 자신도 잊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애경은 잊지 않고 있었고,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그것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녀가 우애경에게 닦달당하고 있을 때이면 어디선가 유부장도 홀연히 나타났고, ‘그러니까 지문이 길어요, 안 길어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든가, ‘데모하다 잡혀가는 학생 이야기가 나와요, 안 나와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는 말만을 귀에 담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 시선을 피해 유부장이 우애경의 등허리를 툭툭 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우애경은 청자색 눈빛으로 유부장을 응대했다. 두 사람은 왠지 서로를 치켜 주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학창 시절에 서로의 동문들과 미팅한 추억 말고는 별 공통점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는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유부장은 ‘이우리 성질을 컨트롤할 사람은 우애경 씨 밖에 없어. 우애경 씨만 믿어’ 라고 했다던데,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칼 퇴근을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테제에 의해서나 ㉡안티테제에 의해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자기 자신은 이 회사의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길게 빠졌다. 우애경과 싸우느라 흥분해서 문제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홉 문제를 꼬박꼬박 출제하리라 결심했지만 그걸 못 채우는 날이 늘어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모의고사 회차가 거듭되면 훌륭한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칭송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응시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바로 탁월한 출제 덕분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유부장은 그것이 자기 공이라고 했다. 모의고사의 성공은 곧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판으로 문제를 만들어 놓는다 해도 나는 전국 최다 응시생을 끌어모을 수 있어.” 그녀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위한 선택을 함부로 할 리가 없으니, 응시생이 늘어간다는 것은 결국 훌륭한 교육물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말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유부장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야.” 그녀는 그렇다면 무얼 하는 회사인 거냐고 반문했다. 유부장은 좌중을 둘러본 뒤 선언했다. “교육 콘텐츠를 파는 곳이야.” 진정 훌륭한 모의고사, 참된 독해력과 사고력 증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의고사 등등을 운운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이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녀를, 유부장은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마케팅 비용이 문항제작비의 이십 배는 돼. 마케팅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거라고. 이우리 씨의 생사 또한 마케팅에 걸려 있는 거야.” 유부장은 벽에 붙은 포스터광고를 가리켰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만든 모의고사!’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신을 법조인으로 탄생시켜줄, 업계 최고의 역작’이라는 글씨가 시뻘겋게 붙어 있었다. “응시생들은 절박한 상황이지. 어떻게든 기득권층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해. 욕심으로 눈 먼 애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먹고살 거야.” 그녀는 유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한 수많은 청년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부장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애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있다 할지라도 그놈들은 알아서 혼자 공부해. 나한테 속아 넘어갈 놈들이 아니란 말이다. 사설업체 모의고사 같은 건 안 본다고.” 동료들은 매일 놀고만 있었고, 자신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도 이우리가 꼬박꼬박 만들어놓은 문제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우리는 대체 이 회사에서 무엇인 걸까?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가 진짜 출제기계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기계처럼 문제만 뽑아내면 이우리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빈 사무실에 앉아 밤늦도록 출제를 하고 있을 때, 대표이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아있는 사람은 이우리 씨밖에 없군.” 대표이사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내가 퇴근하는 척 나가고 나면 모두가 집에 가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대표이사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누가 남아 있나 체크하러 나는 돌아왔지. 역시 이우리 씨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어.” 대표이사는 무릎이 날깃날깃 닳은 트레이닝복을 그녀에게 자랑했다. “이건 내가 젊었을 적에 입던 옷이야. 나는 긴장을 늦출까 봐, 내가 가장 어렵던 시절의 옷을 버리지 않았어. 오늘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이 옷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우리 씨밖에 못 보게 되었군.” 대표이사는 반짝이는 대머리를 기울여 그녀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양자역학에 관해 출제를 하고 있었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브라운 운동과 러더퍼드의 금박막 실험이라. 흥미로운데. 풀어봐야겠어. 나는 자네가 낸 문제의 팬이야. 힘내라구.” 대표이사는 격려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도 아니고 옆구리도 아니고 겨드랑이도 아니고 오른쪽 가슴도 아닌 애매한 어딘가를 톡톡 치고는 떠났다. 팬이라는 말에 기뻐하다 말고 그녀는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확히 어디인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함부로 만져지면 안 되는 것 같은 부위에 대표이사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찜찜한 그 부위를 괜히 긁적이며, 그녀는 대표이사가 청년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입는다는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자신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그녀는 절박한 마음으로 취업을 모색하던 백수시절을 떠올렸다. 어디든 취직만 된다면 일단은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시절이 생각난 것 때문에 그녀는 공지영의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 출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활 무렵’에서, 병아리는 알을 뚫고 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사투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병아리가 살아갈 힘을 얻으려면 스스로 뚫고 나오게끔 놓아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들 엄마는 알 껍질을 조금 뜯어내어 준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든. 한 번만 살게 해주면 앞으로 어떻게든 사는 거야.” 대표이사의 칭찬에 힘입어 그 소설의 구절이 생각났고, 겨드랑이가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멋진 출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 뻔한 미래란 없다. 청년이란 미시세계의 전자처럼 입자이자 파동인 존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존재하니 말이다. 위 상황에 대해 추론한 내용으로 옳은 것은? ①이우리는 대표이사와 자신의 계급 차를 망각하는 우를 범했다. ②부하직원들은 그들의 상사인 유부장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와 같다. ③이우리는 자신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④대표이사가 이우리의 몸 어딘가를 만진 것은 곧 다른 데도 만질 것이라는 예고이다. ⑤회사의 인물들이 품은 동상이몽은 결국 매한가지로 거대하고도 알 수 없는 것을 지탱하고 있다. Ⅲ <세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파악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그녀는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대표이사가 그녀를 알아봐 주는 한 유부장이나 우애경이 그녀를 어떻게 괴롭힌들 상관없었다. 하루에 열두 문제라면 한 주 동안 모의고사 2회분이 생산될 양이었고, 우애경이 검토하고 흠을 잡기에도 벅찰 분량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일하다 보면 모두가 자신을 인정할 거라는 생각은 버렸고, 본인이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것들인지에 관해 누가 듣든 말든 마구 이야기해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느라 점심시간이면 밥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석부석 말라갔고, 밥을 씹어 삼킬 힘조차 아껴서, 문제를 내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고 때로는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 가지 않은 채 밤을 새우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낸 아름다운 문제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우애경의 표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열두 문제를 내고 나면 뉴런 다발들이 걸레처럼 비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우애경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우애경의 눈 속에서 청자색이 옅어진 것을 본 그녀는 우애경을 때려눕히고, 옥수수처럼 흩어진 이빨을 주워 모아 목걸이를 해 걸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했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그녀는 유부장에게 조언했다. “계란을 많이 드세요.” 유부장은 반찬투정을 했다. “흰자는 괜찮은데 노른자가 메스꺼워서 나는 계란을 안 먹어.” 그녀는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사십년 생애 내내 계란을 멀리 하셨나요?” 유부장은 무심히 말했다 “그랬지. 내가 싫어하는 것 몇 가지가 있지. 계란, 콩. 두부.” 그녀는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주된 콜린 공급원인 계란과 콩을 멀리하시니, 체내에선 아세틸콜린 합성이 원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사십년째이니 결핍이 심각하리라고 예상되어요. 밤에 잠은 잘 주무시나요.” 유부장은 그녀에게 의학 상담이라도 하는 듯 진지해졌다. “잠은 쉽게 드는데 새벽에 곧 깨서는 전혀 못 자곤 해.”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아세틸콜린 부족증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부장에게 자신이 출제한 문제를 꼭 풀어보라고 권했다. 치매의 발생과 뇌 내 아세틸콜린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아 유부장님의 뇌 내 아세틸콜린 감소폭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디 콩을 드세요.” 그녀는 유부장을 보며 말했다. 유부장은 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난 콩이 싫어.” 그녀는 유부장의 전두엽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 원칙이 대단히 흐려진 상태인 걸로 보아서 전전두엽에 기능이상의 뉴런들이 많이 분포하고, 거기에 아밀로이드 침전물이 생겨나고, 그것 때문에 아세틸콜린 수치가 상당히 낮아지고, 낮아진 아세틸콜린 수치는 다시 전전두엽의 기능이상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인 것 같았다. 유부장은 어느 날, 그녀가 낸 문제들을 일괄 검토하고 싶으니 원본파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수백 개의 문제를 유부장에게 주었다. 얼마 후, 이영준이라는 강사가 그 문제들을 묶어 저서를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영준이 말하길, 잠을 줄여 만들어낸 토끼 같고 알토란 같은 문제들을 수험생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왜, 그녀가 출제한 수많은 문제들이 강사가 출제한 문제로 둔갑하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부장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훈계했다. “이우리 씨는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문제를 낸 사람이고, 그 문제를 어디다 어떻게 쓸지는 몰라도 돼. 그건 회사가 결정하는 거야.” 그녀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사건 경위를 알아냈다. 이영준 강사는 계약을 해제한 뒤 경쟁사로 옮겨갈 계획을 품고 있었다. 유부장은 인터넷 스타강사인 이영준을 붙들어야 했고, 저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가수가 사랑받는 것처럼, 직접 출제한 문제로 강의하는 엘리트 미남 강사라면 더욱 사랑받을 터였다. “그건 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거예요.” 그녀는 바쁜 척, 그녀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척 사무실을 누비는 유부장을 따라다니며 말했다. “저작권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하나는 저작재산권, 다른 하나는 저작인격권. 저는 이 회사의 직원이므로 제 생산물의 재산권이 이 회사에 귀속되는 것만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작인격권마저 유부장님이 침해하실 수는 없어요.” 사과받고 싶은 나머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인격권을 침해하신 점, 사과 바랍니다.” 하지만 유부장은 들은 척도 않았고, 거래처에 간다며 나가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부장은 기억력이 심히 나빠진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 몫으로 매달 나오는 사원복지비를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왕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청구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관리팀 김미영 대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꼬박꼬박 사원복지비 십 만원씩 쓰셨던데 무슨 소리예요? 유부장님이 이우리 씨 복지비 신청을 대신 해주시던데요? 제가 영수증 다 갖고 있어요.” 관리팀 김미영 대리와 함께 그녀는 그간 자신이 제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수십 장의 영수증을 살펴보았다. 밤 열한시 삼십분에 강남역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든가, 백화점에서 초밥을 먹었다든가, 동반인 1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어린이용 문구세트를 샀다든가, 향수를 사고, 햄버거세트를 먹었다든가, 디저트카페에서 타르트를 먹은 일 따위가 영수증에 씌어 있었다. 김미영 대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부장님이 매번 자기 계좌로 금액을 청구하시기에 좀 의아하긴 했어요.” 그녀는 왜 자기 명목의 금액을 유부장이 사용한 것인지 따져 물었다. 유부장은 청각장애가 있기라도 한 양 빤히 보기만 했는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도 보여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천천히 쉽게 또박또박 말해보기까지 했다. 한참 후에나 유부장은 씩 하고 웃으며 겨우 말했다. “미안, 나는 기억이 나질 않네. 이우리 씨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그런 뒤 유부장은 거래처에 간다며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는 허탈했고, 그리고 진짜로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기까지 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유부장은 며칠 지방 출장을 가 있었고, 유부장이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가 모의고사 마감을 해야 해서 미처 싸울 틈이 없었다. 열흘쯤 지난 뒤에 사원복지비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마침 유부장이 활짝 웃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차마 그 치사한 일에 대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저작인격권 침해라는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부디 콩을 많이 드시고 착하게 사세요.” 그녀는 밥을 먹는 유부장을 바라보았다. 유부장은 들은 건지 만 건지 콩나물은 건져둔 채 국물만 마셨다. 저작인격권 침해에 관해 유부장은 끝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짜증 나게 하네. 이우리 씨, 잘 들어. 월급 매달 제날짜에 받았어, 못 받았어?” 그녀는 월급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까지의 대가가 네 월급이야. 알았어?” 유부장은 내친김에 더 뻔뻔해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영준 강사한테 교재를 넘긴 건 널 위한 일이기도 했어. 이영준이 고객을 끌어모아서 돈 벌어올 거고, 그러면 그 고객들이 네 모의고사에 응시할 거야. 결국 그 이익은 너에게로 돌아갈 거고 말이야. 난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사과를 받지 못한 그녀는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대표이사는 자기 방을 찾아온 그녀를 아주 반가워했고, 대학 시절 미처 말 걸어보지 못했던 추억의 여인을 바라보듯 아련하게 미소 짓고 손수 음료도 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격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눈물지을 때에는 티슈를 내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대표이사가 맞장구까지 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마음이 좀 풀렸고, 울고 난 뒤에는 정신과 상담을 한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표이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이우리 씨가 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네. 그동안 몰라주어서 그게 참 미안하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선량하고 무력한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에는 위계질서가 있는 거야. 사원인 너의 불만을 대표인 내가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내가 임명한 중간 관리자인 유부장의 권한을 무시한 게 돼.” 대표이사는 콧물을 닦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해 볼 테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내겐 곧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녀는 다 털어놓고 난 뒤의 후련함과,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으므로 여전히 석연치 않은 기분을 안은 채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는 생각했다. 대표이사가 말한 ‘나중에’는 오늘의 나중인지, 아니면 미래의 다른 어떤 날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어느 날이라면 가까운 미래인지 설마 먼 미래를 의미하는 말인지? 그 ‘나중에’가 오늘 저녁을 의미하는 것일까 봐 그녀는 밤 열시가 되도록 앉아 있어 보았다. 그때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허망한 희망을 품고 아주 천천히 출제를 했다.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표이사였다. “이우리 씨.” 돌아보니 대표이사는 멋쩍은 듯 웃음을 띤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등 뒤로 감춘 채였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대표이사는 씩, 하고 웃었다. 무릎이 허연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였다. “일단 집에 가긴 갔는데, 이우리 씨가 생각나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대표이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웃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어렵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젊을 때 타던 찌그러진 소형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따 한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표정이 좀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대표이사에게도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대표이사도 사십팔년째 콩이나 계란을 배제한 식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의아해하며 대표이사를 바라보는 가운데, 대표이사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녀의 턱 앞에 손을 불쑥 내밀었다. 따뜻한 김이 끼쳤다. 손바닥에 커다란 감자 두 알이 놓여 있었다. “야근하느라 배고프지? 이거 먹어.” 대표이사는 그녀의 책상에 감자 두 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감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그녀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7번 경추부터 꼬리뼈까지를 훑어 내려갔다. 그녀는 그 손바닥에서 몸을 떼어냈다. 반사적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감자 안 먹습니다. 사장님이나 드세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아보았더니 대머리까지 전부 빨개진 대표이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감자 준 직원이 이 회사에 있는 줄 알아? 나 아무한테나 이러는 사람 아니야.” 대표이사는 잠시 입을 앙다물더니 다시 말했다. “감자 싫으면 그럼, 초밥 사다줄까? 초밥 먹을래?” 그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등 뒤에서 식식거리더니, 쿵쿵대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때가 왔다. 흐와스코의 소설에는 격리되어 철교 건설에 투입된 일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설기간 동안 그들의 모든 일상은 오로지 노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꿈은 단 한 가지, 건설현장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하던 그 마지막 날, 그들이 만든 다리를 떠나며 일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 다리가 이미 추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그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다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모를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흘린 눈물과 알 수 없이 아파오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마지막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의 의미와 위 글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그들의 청춘 전부가 바쳐진 다리를 자신의 창작물처럼 여기고 있다. ②가장 본질적인 것까지 쥐어짜 노동했던 일에 관해 슬픔을 느끼고 있다. ③자신들의 청춘과 자신이 만든 다리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④박탈당한 청춘에 대한 애착이 말 못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 ⑤드디어 노역에서 놓여났다는 기쁨보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한 청춘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선택지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⑥피 같고 살 같고 자식처럼 여겼던 대상이 고작 철교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제야 흐르는 눈물이다. ⑦그들의 미래란 두고 온 날들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다. ⑧그들의 청춘이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부품이고 도구였다는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⑨가장 중요한 것을 침해당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으므로 흐르는 눈물이다. ⑩정작 울어야 할 자들이 울지 않기 때문에, 대신하여 흘려주는 눈물이다……. 그녀는 알 수 없이 굴러 떨어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끝>
  • 대법 “동아투위 해직기자에 국가 배상해야”

    1970년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해직기자 14명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권모(73)씨 등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권씨 등은 1975년 언론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중지하라며 저항하다 해직됐다. 이후 2008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광고 탄압 등 정부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동아일보가 기자들을 해임했다는 취지의 진상 규명 결정을 내리자 해직 기자와 유족 등 134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신적 고통은 인정하지만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에서다. ‘해방 이후 언론탄압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된 2004년 11월부터 5년이나 경과한 2009년 12월 소송을 제기한 게 문제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거사위에 진상 규명을 신청해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14명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했다. 결정 시점 전에 시효가 끝났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부는 과거사위 결정을 통해 소멸 시효의 이익을 주장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취했다”며 “따라서 원고들이 특정 시점까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은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102명의 청구는 각하하고 나머지는 원심처럼 패소 판결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與 “종북 놀이터 종지부”… 野 “헌재 존중” 거리두기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여야의 입장은 이념 노선 등에 따라 갈렸다.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은 “사필귀정”이라며 열렬한 환영의 뜻을 표했고 중도 성향의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통합진보당에서 분리, 창당한 정의당은 “독재 정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헌재 결정은 대한민국 부정 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며 “헌법의 승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이 종북세력의 놀이터로, 국회가 종북세력의 해방구로 전락하는 것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통합진보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놨다. 이날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함께 ‘종북 세력’으로 묶일 것을 염려하며 눈치 보기를 하는 듯했다. 박수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새정치연합은 통합진보당에 결코 찬동하지 않는다”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판단은 국민의 선택에 맡겼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지만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당의 자유가 훼손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 구성원들은 개별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진보 정당의 반발은 거셌다. 김종민 정의당 대변인은 “정부가 제시한 정당해산 심판의 이유와 증거에 대해 납득되는 것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면서 “정부의 논리는 민주화운동을 색깔론과 반국가활동으로 몰아 탄압했던 독재정부 시절 억지 주장과 다르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光州, 예술의 빛을 따르리

    光州, 예술의 빛을 따르리

    하얗게 어둠이 내리던 날, 광주를 찾았다. 오월의 잔영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을 듯한 곳. 폭설은 세상의 허물을 덮고 별세계 하나를 남겼다. 음악에 흐느적대고, 커피 향에도 취해 보고, 술에 비틀거리기도 하는 그 ‘모던한’ 세계는 어두워지고서야 비로소 또렷해졌다. 덮어뒀던 예향(藝鄕), 우리는 여전히 광주를 잘 모르는 듯하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생들의 초대에 이끌려 광주를 찾았다. 그들은 외지인들이 알지 못하는 사뭇 다른 광주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예술을 걷는 도시여행’이라는 번듯한 이름도 지었다. 자신들이 만든 여행업체 ‘예술 더하기 여행’의 마수걸이 상품으로,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공모한 창조관광사업에도 선정됐다. 여정은 ‘예향’ 광주의 문화와 예술을 엿보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첫걸음은 옛 전남도청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 옛 도청 건물은 음울했다. 희디흰 벽은 잔뜩 찌푸린 하늘과 겹쳐져 도드라지게 창백해 보였다. 한데 뜻밖의 반전이 건물 뒤에 있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업으로 세워지고 있는 여러 건물이 도청 아래 납작 엎드려 있다. 보통의 건물처럼 평지에서 위를 향해 솟은 게 아니라 땅 아래로 넓게 펼쳐져 있다. 뒤쪽에서 보면 최신 건축물들이 한껏 몸을 낮춰 도청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이 같은 건물 형태가 말하려는 게 뭔지, 건축에 문외한이더라도 단박에 알 수 있다. 도청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독특한 모양새의 조형물들이 눈에 띈다. 버스정류장 형태의 ‘광주사랑방’(프란시스코 산인 작)이 그 예다. 이른바 ‘어번 폴리’(Urban Folly)로, 세계 여러 작가가 다양한 의미를 담아 광주 곳곳에 조성한 설치미술 작품들이다.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시작돼 현재 3차 조성작업이 진행 중이다. 옛 도청에서 광주천을 향해 두 블록쯤 지나면 양림동이다. 이번 광주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동네다. 양림동은 과거와 현재가 단단하게 맞물린 곳이다. 골목마다 수백년 너머의 세계가 꿈틀대고 있다. 동네를 이루는 큰 축은 종교와 예술이다. 양림동은 광주에서 가장 먼저 개신교 선교사들이 발을 디딘 곳이다. 평지부터 높은 언덕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역사가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언덕 여기저기엔 예술가들이 산다. 이들은 저마다의 예술적 색깔로 주변을 덧칠한다. 그렇게 둘은 따로, 또 같이 서로를 보완하며 마을 풍경을 이끌어간다. 양림동은 한자로 버드나무 양(楊)에 수풀 림(林)자를 쓴다. 예전에 버드나무가 많았대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데 주민들은 버드나무보다 볕 양(陽)자를 선호한다. 광주가 빛고을이니, 양림동 또한 볕이 잘 드는 동네라고 해야 운율이 맞을 법도 하다. 한데 요즘 양림동에서 버드나무는 찾기 어렵고 호랑가시나무가 훨씬 더 잘 눈에 띈다. 양림동 일대를 ‘호랑가시나무 언덕’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 호랑가시나무가 양림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호랑가시나무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던 날 썼던 면류관의 재료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때도 이 나무의 붉은 열매가 빠지지 않는다. 요즘엔 이웃돕기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을 곳곳엔 수령 400년이 넘는 호랑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들이 싹을 틔웠을 400년 전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다. 그렇다면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나무가 기독교 선교사의 첫 방문을 이끈 건 아닐까. 주민들은 이처럼 두 요소가 운명적으로 얽혀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 선연하다. 양림교회 뜨락의 오웬 기념각, 호랑가시나무 언덕의 우일선(Wilson) 선교사 사택, 연세대 창립자 언더우드 박사의 손자가 살았던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선교사 묘역 등 볼거리가 많다. 언덕 너머 수피아여중·고 쪽에도 커티스 메모리얼 홀, 윈스브로우 홀 등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남아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건축미가 빼어나다. 빠짐없이 돌아보길 권한다. 양림동을 ‘광주의 서촌’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작가 이상, 시인 노천명 등을 배출한 서울의 ‘서촌’에 빗댄 표현이다. 시인 김현승과 영화감독 임권택, 극작가 조소혜, 화가 한희원 등 문화예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이 양림동에서 볕을 받고 자랐으니 그 비유가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골목 한쪽에 터를 잡은 다형다방은 시인 김현승을 기리는 공간이다. 다형(茶兄)은 커피를 몹시 즐겼던 김현승의 호다. 실제 커피를 파는 다방은 아니고,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일회용 커피와 차도 준비돼 있다. 오랜 한옥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장우 가옥은 소문난 갑부였던 정병호가 1899년 지은 저택이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랑채에선 윤회매(輪廻梅)의 계보를 이어 가고 있는 김창덕 작가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윤회매는 밀랍으로 그린 매화 작품을 일컫는다. 벌이 꽃에 있는 꿀로 벌집을 만들고, 벌집이 다시 꽃으로 되살아난다 해서 윤회매다. 최승효 가옥은 최근 개방된 고택이다. 집 뒤 언덕에 서면 무등산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선다. 방문에 앞서 예약을 해야 한다. 양림동에서 산 하나 넘으면 사직동 포크음악거리다. 현지인들은 ‘사직골’이라 부른다. 가벼운 술과 음료를 파는 카페들이 늘어선 곳이다. 사직골은 밤에 찾아야 제격이다. 사람에 부대끼고 경쟁에 지친 이들이 낡은 불빛 찾아 하나둘 모여든다. 카페 문틈으로 통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고, 노래는 어둠 사이를 떠돈다. 모르는 이와 가벼운 눈인사로 친구가 되고, 울대 쉬도록 함께 노래도 부른다. 디지털이 완전하게 득세한 세상에서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만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문화예술기행은 무등산 입구의 의재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남종화로 일가를 이룬 허백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된 작품 수가 많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 증심사 등 무등산의 명소들과 묶어 돌아볼 만하다. 글 사진 광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2) →가는 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을 찾아가는 게 관건이다. 양림동은 옛 전남도청에서 십여분 거리, 사직동 포크음악거리는 양림동에서 또 십여분 거리다. 어반 폴리 작품은 광주 곳곳에 분산돼 있다. 이들만 둘러봐도 좋은 테마여행이 된다. 예술더하기여행(story.kakao.com/ch/artsumtrip, blog.naver.com/artsumtrip)에서 광주 지역 예술문화의 핵심을 돌아보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꿈이 자라는 예술여행’ 사진동호인을 위한 ‘뷰파인더에 담은 나의 도시’ 등 다양한 상품도 준비했다. (070)8715-1462. →맛집 충장로의 장독대(223-5630)는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백반으로 이름났다. 2인 기준 1만 6000원.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은 옛 시청 쪽 백수간재미(232-7993)는 간재미 요리 하나만 내는 집이다. 매콤달콤한 간재미 무침을 안주 삼아 ‘딱 한 잔’하려는 단골들이 자주 찾는다. ‘싱건지’(물김치의 사투리)도 맛있다. 동명동 황톳길(226-1550)은 정갈한 한정식을 내는 집이다. 허름한 기와집 안에서 도토리묵 잡채, 매생이떡굴 등 참살이 음식을 먹는 재미가 각별하다. →잘 곳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언덕(070-4240-0976)은 100여 년 전 세워진 선교사 사택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민 곳이다. 건물 안 일부를 현대적인 시설로 바꿨지만 오래된 집에서 우러나오는 기품은 여전하다. 집은 2층 양옥이다. 1층 거실엔 따뜻한 벽난로가 있고, 지하에 간단한 회의나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됐다. 일반 가정집처럼 부엌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방 하나만 쓰거나 1, 2층을 통째 이용할 수도 있다.
  • 예산만 법정시한 처리… 사자방 등 폭탄급 유보

    예산만 법정시한 처리… 사자방 등 폭탄급 유보

    지난 9월부터 100일을 달려온 정기국회가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의혹 논란 속에서 9일 막을 내렸다. 이날 여야는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 등을 비롯해 138건의 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등 폭탄급 이슈는 모두 12월 임시국회로 미뤘다. 여야는 12년 만에 법정 시한 내에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지만 결국 올해도 국회에서 ‘뜨거운 연말’을 보내게 된 셈이다. ●경제활성화 법안은 30건 중 8건만 통과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대부분 법안은 여야 이견이 없는 ‘미쟁점 법안’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체계를 맞춤형으로 개편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등 송파 세 모녀법,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기간을 늘리고 사립대·종합병원 등을 취업제한기관에 추가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관피아 방지법) 등이다. 또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과목의 출제 오류로 성적이 바뀐 사람이 정원외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안,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추가 구제할 수 있도록 한 법안도 가결됐다. 세월호 사고의 후속법으로 선박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사고 구조 조치를 하지 않은 선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해운법, 선원법, 선박안전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정부에서 시급한 처리를 촉구했던 경제활성화 법안 30개 중 8개만 처리됐다. 이른바 ‘부동산 3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쟁점 법안은 오는 15일 열리는 임시국회로 미뤄졌다. ●오늘 여야 원내대표 2+2 연석회의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주례회동에서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2+2 연석회의’를 10일 열기로 합의했다. 연석회의에서는 오는 임시국회를 앞두고 공무원연금 개혁과 사자방 국조, 선거구 재획정을 위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역시 논의 테이블로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정개입) 문서 유출 건은 검찰 수사 중이니까 잘 모르겠다. 야당은 주장할 것 같은데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아랍의 봄’ 투사, IS 전사로 죽다

    ‘아랍의 봄’ 투사, IS 전사로 죽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민주투사에서 이슬람국가(IS) 전사로 ‘180도’ 변신한 아흐메드 알다라위(38)의 인생을 조명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조금 더 다차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FT는 “아랍의 봄이 무색해진 뒤 IS는 알다라위 같은 이들을 자신의 궤도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알다라위는 경찰대 졸업 뒤 경찰간부가 됐다.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이 지겨워져 휴대전화회사 마케팅 매니저로 변신했다. 활달하고 솔직한 어법으로 평균 월급이 500달러인 곳에서 7000달러의 수입을 올리던 능력자였다. 그러나 2011년 말 아랍의 봄이 불붙으며 모든 것이 변했다. 세 아이와 괜찮은 직장을 걱정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그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신념으로 온몸을 던졌다. 경찰에서 일한 경험으로 그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동료 시민운동가 무함마드 카사스는 “행정 경험이 있었기에 혁명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는 환상 없이 아주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개혁안을 내놨다”면서 “그럼에도 개혁안이 모두 거부당하자 극심한 절망에 빠졌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떨어졌다. 한술 더 떠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까지 벌어지자 절망감은 극에 달했다. 동생 헤이담은 “그 이후 형은 늘 ‘혁명은 이제 끝났다. 이제 반혁명이 들이닥칠 시간’이란 말을 되뇌었다”고 전했다. 조금 뒤 알다라위는 사라졌다. 지난 5월 29일 다시 전해진 알다라위의 마지막 소식은 놀라웠다. IS 전사로 싸우다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민주화운동 동지인 야세르 알하와리는 “그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IS 전사로 변신했다는 소식은 예전 동료들에게 큰 충격”이라고 말했다. 파라즈 게르게스 런던정치경제대학 중동정치학 교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를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라면서 “뚜렷한 정치적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민주화 운동의 발원지, 아시아인들의 문화예술 발전소로 거듭나다

    [명인·명물을 찾아서] 민주화 운동의 발원지, 아시아인들의 문화예술 발전소로 거듭나다

    광주 동구 광산동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준공을 코앞에 뒀다. 전당은 7000여억원을 들여 13만 4000여㎡ 부지에 전체 면적이 16만 1000여㎡, 지상 4층·지하 4층 규모로 건립됐다. 시설만 놓고 보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13만 7000여㎡)과 예술의전당(12만 8000여㎡)을 뛰어넘는다. 전당 안에 조성된 5개 원 가운데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한 아시아예술극장, 문화창조원, 아시아문화정보원, 어린이문화원 등은 지하에 자리 잡았다. 아시아 문화교류의 핵심 거점 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은 16일 “조만간 건축물에 대한 준공 검사 등 공정 전체를 마무리 짓는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전당을 아시아 문화의 허브이자 ‘문화 발전소’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인 옛 전남도청 자리에 착공한 지 6년여 만에 완공됐다. 추진단은 개관을 앞두고 이미 전당을 채울 콘텐츠 종합계획을 마련했다. 일정상 내년 7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에 ‘프리 오픈’과 시범 운영을 거쳐 9월에 문을 연다. 전당에 들어서면 민주평화교류원으로 사용되는 옛 전남도청 별관 등 6개 건물이 솟아 있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민주인권평화기념관과 아시아문화교류 지원센터로 이뤄졌다. 전당 건물 옥상에 해당하는 지상은 공원으로 조성됐다. 문화전당은 ‘빛의 숲’이란 건축 개념이 적용됐다. 전당 내 70여곳에는 ‘하늘의 창’이라 불리는 가로·세로 3m의 유리구조물이 들어서 햇볕이 전당 안으로 내리쬔다. ‘ㄷ’자형으로 이뤄진 지하 건물 외벽 유리창은 끊임없이 빛을 발산한다. 밤에는 전당 내 각종 조명이 지상으로 빛을 내뿜는다. 지상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대표 공연 무대인 아시아예술극장이 눈에 띈다. 이처럼 주요 건물은 지하 25m 아래에 있지만 드넓게 조성된 야외 광장과 건물들로 문화전당이 지하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추진단은 내년 첫 개관 행사를 위해 원별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가치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인문·예술·첨단 기술 융합콘텐츠인 ‘레빗홀 아시아’와 ‘당나라 승려’, 빛축제 등을 선보인다. 전당은 ‘열린 세계를 향한 아시아문화의 창’을 비전으로 삼았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5개 원을 통합 연계, 운영한다는 복안이다. 이 가운데 민주평화교류원은 국제교류와 협력 사업을 통해 5·18의 가치를 아시아와 공유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이를 위해 교류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국제 공연, 전시, 포럼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아시아 개발도상국들과의 디지털 자료구축 및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화 공적개발원조(ODA)사업도 추진한다. 특히 민주인권평화기념관(가칭)에는 5·18 당시 열흘간의 이야기를 서사구조에 따라 예술적 콘텐츠로 구현한 상징물이 들어선다. 아시아문화정보원은 아시아문화에 대한 연구, 아시아문화자원 수집·활용, 아시아의 창의적인 전문인력 양성 등을 맡는다. 아시아의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과 기초학술자료 축적을 위한 연구 등을 수행한다. 아시아문화연구소·아시아문화자원센터·라이브러리파크 등으로 구성됐다. 문화창조원은 전당 북동쪽에 높이 8~16m의 다양한 층고로 된 전시관이다. 연구 개발의 핵심조직인 연구랩과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역의 연구기관, 문화기관, 산업과 연계해 콘텐츠를 제작, 전시하는 열린 문화 공간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은 지하 3층의 중극장과 지하 4층의 대극장으로 이뤄졌다. 대극장은 외부 무대로 개폐 가능한 2000석 규모의 가변형으로 설계됐다. 중극장은 520석이다. 공연작품을 창작·제작하고, 유통하는 기능을 맡는다. 어린이문화원은 교육보다 ‘놀이와 문화’, ‘창작활동’이 중심이 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국내외에 보급한다. ‘자연과 생활’, ‘지식과 문명’, ‘예술과 상상’을 주제로 체험관이 구성됐다. 문화전당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시작됐다. 광주의 7대 지역 문화권 개발 등을 포함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 2023년까지 20년간 모두 5조 3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김성일 문체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은 “전당 콘텐츠 계획은 전당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며 “국민 요구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통해 전당의 성공적인 개관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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