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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심판 카운트다운] 재판관 보수5·진보2·중도1… “사실관계·법리원칙 따라 결론”

    [탄핵심판 카운트다운] 재판관 보수5·진보2·중도1… “사실관계·법리원칙 따라 결론”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최종 선고만 남겨 두게 되면서 헌재 재판관들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탄핵 심판은 박한철(64) 전 헌법재판소장의 퇴임으로 8명이 결정한다. 8인 재판관 중 6명이 인용 결정을 내리면 탄핵이 이뤄진다. 반면 3명 이상 기각 의견을 내면 박 대통령은 현직에 복귀하게 된다. 헌재 재판관들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3명은 대통령이, 3명은 국회가, 3명은 대법원장이 추천권을 가진다. 헌재 판결은 각 재판관의 결정과 의견 등이 실명으로 공개된다. 서울신문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을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지난해 국회선진화법 등 2013년 이후 이들이 내린 10건의 주요 판결을 통해 분석했다. 이번 탄핵 심판의 경우 각 재판관이 철저하게 사실관계와 법리에 따라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이정미 소장 권한대행(55·연수원 16기) 울산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해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이 권한대행은 2011년 3월 이용훈 전 대법원장에 의해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49세로 역대 최연소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었다. 이 권한대행은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2014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헌 심판에서 한정위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결과는 합헌이었으나 이 권한대행은 김이수·이진성·강일원 재판관과 함께 옥외집회를 48시간 전에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집시법이 일부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 권한대행은 같은 해 합헌으로 결론이 난 ‘교원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에서도 김이수 재판관과 함께 “교원노조법 규정은 일률적·전면적으로 정치 활동을 금지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고, 정치활동 제한을 받지 않는 대학 교원과 비교해도 불합리한 차별”이라면서 “국가공무원법 규정의 불명확성과 광범성은 전체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는 해산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 권한대행은 당시 심판의 주심 재판관이었다. 이 권한대행의 결정에 법조계 일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김이수 재판관(64·9기) 전북 고창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고법 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남부지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2012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의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 김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 심판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내 주목을 받았다. 김 재판관은 당시 판결문에서 “통진당이 주장하는 ‘민생 중심의 자주자립 경제체제’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회복지·정의 실현을 위한 국가적 규제와 조정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한 경제적 토대가 되는 사유재산권이나 경제 활동의 자유를 박탈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정치적으로 주목받았던 2014년 집시법 위헌소원 심판에서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고, 2015년 교원노조 정치 활동 금지 위헌 심판에서도 교원노조의 정치 활동이 가능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김 재판관은 2015년 이적행위와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등을 금지한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 의견을 냈다. ●이진성 재판관(61·10기)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로스쿨 등을 졸업했다. 서울지법 판사와 법원행정처 차장, 서울시선거관리위원장 등도 지냈다. 이 재판관은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 인사로 분류되지만 진보적 의견도 적지 않게 냈다. 이 재판관은 2015년 간통죄 위헌 법률 심판에서 “혼인의 순결이나 정조 의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고 양성 평등도 이뤄졌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 재판관과 함께 간통죄 위헌 결정을 내린 이들은 지난달 퇴임한 박 전 헌재소장과 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었다. 이 재판관은 6인 이상의 동의가 이뤄져야 하는 헌재 판결에서 소수 의견을 많이 내는 재판관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각하 결정이 내려졌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회선진화법 관련 위헌 법률 심판에서 “심사 기간 지정(직권상정) 거부 행위는 위헌으로 볼 수 없다”면서 기각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 비하를 상관모욕죄로 처벌하는 군 규정과 2015년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에서는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김창종 재판관(60·12기) 이진성 재판관과 함께 2012년 양승태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헌재 재판관 중에서 김 재판관을 가장 보수적 색채가 강한 인물로 꼽기도 한다. 김 재판관은 상관모욕죄와 교원노조법에 대해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좀처럼 소수의견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김 재판관은 지난해 합헌으로 결론 났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에 대해서만은 조용호 재판관과 함께 위헌 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민간 영역인 사립학교 관계자나 언론인의 사회윤리규범 위반 행위까지 청탁금지법을 통해 형벌과 과태료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과도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라고 규정했다. 경북 구미 출신인 김 재판관은 경북대 법대를 나와 대구지법에서 판사, 부장판사 등을 거친 뒤 대구지법원장을 지냈다.●안창호 재판관(60·14기) 헌재 5기 재판관 중 소수 의견을 가장 적게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9월 새누리당의 추천으로 재판관이 된 만큼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는 평가다. 헌재 입성 전에도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맡는 등 ‘공안통’으로 불렸다. 안 재판관은 2014년 재판관 8(인용) 대 1(기각) 의견으로 통진당이 해산될 당시에 다수 의견에 더해 보충 의견까지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안 재판관은 “(통진당) 주도 세력에게 우리 사회를 변혁하여 새로운 대안 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려는 숨겨진 목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해산 논리를 공고히 했다. 이어 “통진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을 꾀하는 행동은 우리의 생존 기반을 파괴하는 대역 행위”라고 규정했다. 안 재판관은 2015년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간통죄’에 대해서도 합헌 의견을 냈다. 그는 “간통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훼손하고, 가족공동체의 유지·보호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며 간통죄 존치를 주장했다. 이 외에도 안 재판관은 교원노조법, 지난해 자발적 성매매 처벌을 담은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도 모두 합헌 의견을 냈다. ●강일원 재판관(58·14기)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심을 맡았다.여야 합의로 추천돼 비교적 중도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통진당 해산 심판 당시 기각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됐으나 해산에 표를 보태 눈길을 끌었다. 보수와 진보 의견을 오가는 만큼 강 재판관은 재판부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강 재판관은 지난해 성매매특별법 위헌 심판에서 “생존 문제로 성을 판매하는 사람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국가의 지나치게 과도한 형벌권 행사로서 헌법에 위반된다”며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당시 헌재는 “성도덕이라는 공적 가치는 성적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 제한의 정도에 비해 작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강 재판관도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합헌이라며 다수 의견을 따랐다. 지난해 헌재가 인터넷 등에 사실을 적시해 명예훼손한 경우 처벌하는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강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냈다. 김이수 재판관과 함께 반대 의견을 낸 강 재판관은 “지나치게 진실한 사실에 대한 표현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용호 재판관(62·10기) 박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재판관 중 한 명으로 통진당 해산·교원노조법 위헌 심판·상관모욕죄 등 중요 사건에서 다수 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조 재판관은 지난해 자발적 성매매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도 헌법에 어긋난다며 유일하게 ‘전부 위헌’ 의견을 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조 재판관은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특정한 도덕관을 확인하고 강제하는 것”이라면서 “지체장애인, 독거남 등 성적 소외자는 심판 대상 조항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에 대한 합헌 결정 때도 “로스쿨 제도를 통해 양성되는 법조인이 사시를 통해 선발된 법조인보다 경쟁력 있고 우수하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출신 계층이나 가치관의 다양성도 로스쿨이 사시 제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며 소수 의견을 냈다. 2013년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기간제법’에 대해서도 조 재판관은 이정미 재판관과 함께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서기석 재판관(64·11기) 박 대통령이 임명했으며 대부분의 사건에서 보수적 결정을 내렸다. 통진당 해산, 상관모욕죄, 성매매특별법, 청탁금지법 위헌 심판에서 모두 다수 의견과 같은 결정을 했다. 다만 2014년 경찰의 물대포 직사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서 재판관은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한 행위에 대해 집회 참가자들이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당시 서 재판관은 “물대포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장비인 만큼 구체적인 사용 근거와 기준 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법률 자체에 규정되어야 한다”며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헌법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진 10여분 만에 물대포를 발사한 것은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안철수 “北 향해 ‘정은아, 핵 버려라’ 하고 싶지만…”

    안철수 “北 향해 ‘정은아, 핵 버려라’ 하고 싶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북한에 보낼 첫 메시지로 ‘정은아, 핵 버려라’라고 말하고 싶다고 15일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이날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출연해 “가장 솔직히 표현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면서도 “그러나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겠다”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방송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새 정부 첫 번째 인사로 “이번 대통령은 무엇보다 인수위 기간이 없다”며 “사실 안보 공백이 가장 염려된다. 그래서 내각에 우선해 안보실장부터 뽑겠다”고 밝혔다. 그는 안보관과 관련해 “종합안보 개념에서 접근한다.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다. 그런데 외교나 경제도 있다”며 “우리가 부족한 군사력을 외교역량을 발휘해 나라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경제교류를 활발히 하며 안보 불안을 낮출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북한에서 난민이 대량으로 휴전선을 넘어올 경우를 가정한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한민족 아니냐”면서 “인도적 차원에서도 난민들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안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통 큰 양보를 한 것인지 자진사퇴를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에 “흔쾌히 도와주지 않아서 졌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 인류역사상 그런 일은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싶다”며 “그 정도 되면 사실 후보자격 없는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일 미국으로 출국한 게 잘못된 메시지가 아니냐는 지적에 “당시 마지막 광화문 유세에서 (문 후보에게) 노란 목도리를 걸어드릴 때 이제는 다들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아있으면 오히려 정권에 부담을 주리라고 봤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는 “여러 직업을 거쳐왔지만 한 번도 과거 일에 대해 제가 설명하지 않았다. 구차한 일 아니냐. 그런데 유독 정치에서만은 그렇지 않다”며 “제대로 진실을 알리지 않으면 오히려 적극 왜곡하는 사람의 말이 진실이 되는 동네가 정치”라고 꼬집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분석] 박지원 黨지지율 회복·킹메이커 역할 주목

    [뉴스 분석] 박지원 黨지지율 회복·킹메이커 역할 주목

    국민의당 새 대표에 4선의 박지원(75·전남 목포) 의원이 15일 선출됐다. 박 신임 대표는 1992년 14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만 각각 3번을 맡았지만 ‘당의 1인자’인 당 대표로 뽑힌 건 25년 만에 처음이다. 박 대표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데 이어 20년 만에 당 대표로서 정권 탈환을 위해 ‘킹메이커’ 역할을 맡게 됐다. 특히 조기 대선을 앞두고 21년 만의 4당 체제로 인한 후보 난립으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하락한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대선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박 대표는 1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1인 2표제로 당원투표(80%)와 국민여론조사(20%)를 합산한 결과 전체 200% 중 61.5%의 득표로 1위를 차지했다. 박 대표는 당선 수락연설에서 “당을 대선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해 대선 승리에 모든 초점을 맞추겠다. 당내외 인사가 총망라된 수권비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의당이 빅텐트이고, 플랫폼”이라며 “국가 대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대선 후보에게 활짝 문이 열려 있는 당이 되겠다”고 밝혔다. 문병호 전 의원이 50.9%로 2위를 기록했고 뒤이어 김영환 전 의원(39.4%), 황주홍 의원(26.9%), 손금주 의원(21.1%)이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문·김 전 의원과 손 의원은 친안철수계 인사로 분류된다. 여성위원장에는 신용현 의원, 청년위원장은 김지환 경기도의원이 선정됐다. 박 대표는 2012년 민주통합당,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데 이어 이번에 세 번째 도전 만에 ‘꿈’을 이뤘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 대표는 노련한 정치력과 경륜을 갖춘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4·13 총선 이후 터진 당 홍보비 파동 이후 원내사령탑과 비상사령탑을 역임하며 경륜으로 당을 안정시키고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독단적으로 당을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전대 과정에서는 다른 후보들로부터 박 대표가 탄핵안 국회 본회의 가결을 12월 2일에서 9일로 미루면서 당 지지율 급락을 초래했다는 공격을 받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 대표는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당 대표 선임으로 지도부 체제가 완성되면서 국민의당은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진입하게 됐다.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등 야권의 잇따른 호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의 지지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는 먼저 추락한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며 내부 추스르기에 나설 전망이다. 그동안 국민의당은 대선 전략을 놓고 ‘연대론’을 주장하는 호남 중진 의원들과 ‘자강론’을 주장하는 안 전 대표 간 갈등을 빚어 왔으나 일단은 자강론으로 뜻을 모은 상태다. 박 대표는 호남과 충청의 정치적 연합인 ‘뉴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띄우기에 나서다가 전대 과정에서 후보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자강론으로 기울었다. 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인정해야 하고, 반 전 총장의 경우 혹독한 검증을 받아 우리 당에서 경선하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 당은 항상 열려 있다”면서 “그러나 어떤 조건을 붙여서 경선을 하겠다고 한다면 (연대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박 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후(後)연대론’으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반 전 총장과의 연대 등 제3지대 밑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임무를 갖는다. 일단은 설 전후로 안 전 대표의 지지율 반등 가능성과 반 전 총장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보고 향후 전략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 선출로 당 대표와 당 원내대표가 모두 호남 출신이 되면서 ‘호남당’ 이미지를 벗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2전 3기’ 박지원, 국민의당 새 대표 선출(종합)

    ‘2전 3기’ 박지원, 국민의당 새 대표 선출(종합)

    국민의당 새 대표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제1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두 차례에 걸쳐 당권 도전에 실패했던 아픔을 딛고 마침내 제2야당에서 당권을 거머쥐는 ‘2전 3기’를 이뤄냈다. 박 신임 대표는 1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전당원투표(80%)와 여론조사(20%) 등을 합산한 결과 61.5%의 득표율로 1위에 올라 당권을 거머쥐었다. 전대 과정에서 ‘대세론’을 형성한 박 대표는 자동응답시스템(ARS) 개표에서 63.1%, 대표 당원 현장투표에서 58.9%, 여론조사에서 57.2%의 득표율을 각각 올렸다. 박 대표는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지지율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당을 이끌어 대선을 지휘할 중책을 맡게 됐다. 그는 수락 연설에서 “국민의당이 빅텐트이고 플랫폼이다. 제3지대는 녹색지대 국민의당이다”라며 “당을 대선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해 대선승리에 당의 모든 초점을 맞춰 당내외 인사가 총망라된 수권비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호남의 대표적 정치인 중 하나이자 김대중 정부의 실세로 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원내대표는 무려 3차례나 역임하면서 ‘원내대표 전문가’란 말까지 들었던 그가 결국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의 막판에 한 정당을 온전히 이끄는 수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5명이 출마한 이번 전대는 당 대표 1명과 최고위원 4명 등 5명을 득표순으로 선출해 출마자가 모두 지도부에 진입하는 사실상 순위결정전으로 치러졌다. 문병호 전 의원 50.9%로 2위에 올랐고 김영환 전 의원이 39.4%로 3위를 차지했다. 호남 재선 황주홍 의원이 26.9%, 호남 초선 손금주 의원이 21.1%로 각각 4, 5위를 기록했다. 여성위원장에는 신용현 의원이 당선됐고 청년위원장에는 김지환 경기도의회 의원이 선출됐다. 전체 당원 18만 1000여명의 55%가 호남지역이어서 호남 민심이 사실상 경선의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근태 5주기 추모 野 잠룡들 ‘미묘한 신경전’

    김근태 5주기 추모 野 잠룡들 ‘미묘한 신경전’

    문재인 “외연 키워 협력적 경쟁” 안희정 “국민·시대가 후보 결정” 손학규 “틀 바꾸는 게 광장 민심” ‘민주화의 대부’로 불렸던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5주기 추모 행사에 야권 대선 주자들이 총집결해 정권 교체를 다짐했다. 특히 야권 대선 주자들은 야권 지지층을 겨냥해 서로에 대한 미묘한 신경전을 보였다. 29일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김 전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이 대거 참석했다. 추모미사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구태 기득권 세력들의 연합과 야합은 국민이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당 원내대표 경선 때문에 불참하고 부인인 김미경 여사가 대신 참석했다. 이어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거행된 추모식에 참석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경쟁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전날 ‘(문 전 대표가)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못 내놓는다’고 비판한 데 대해 “외연을 확장한 뒤 경쟁이 끝났을 때 다시 하나가 되는 협력적 경쟁을 해낼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문 전 대표를 먼저 찾아 인사를 나눈 안 지사는 “(기자들이) 문 전 대표와 관련해 하도 물어보니 제가 더 열심히 잘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이라면서 “(대선이) 후보들 싸움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지만 국민과 시대가 결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추모식에 참석한 뒤 “지금은 ‘이게 나라냐’는 것으로, 나라의 틀을 바꾸자는 게 광장의 민심”이라며 거듭 개헌을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커버스토리] 똘똘 뭉쳐온 보수…이혼·재결합 진보

    [커버스토리] 똘똘 뭉쳐온 보수…이혼·재결합 진보

    [보수 정당史] 1990년 ‘노태우·JP·YS’ 3당 합당 민주자유당이 뿌리 JP 자유민주연합 등 일부 홀로서기 도전하다 가시밭길 보수 정당사는 분열보다 통합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유력한 보스와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온 게 보수 정당의 특징이다. 새누리당 비주류의 분당 사태가 첫 번째 사례로 꼽힐 정도로 당이 두 동강 나는 일은 없었다. 일부가 홀로 서기에 도전한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이 가시밭길을 걸었다.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보수 정당의 큰 뿌리는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김종필(JP) 전 총리의 신민주공화당,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의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식은 통합이었지만 실제로는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파 간 권력 투쟁이 치열했다. 결국 1995년 YS 측근들에 의해 입지가 좁아진 JP가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당시 함께 탈당한 의원은 9명이었다. 다음해인 15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35석을 얻으며 그나마 ‘성공한 분열’로 평가된다. JP가 빠져나간 민자당은 영남권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민자당은 이후 정국 주도권을 상실했고 노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과 5·18특별법 제정으로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악재가 계속되자 1996년 2월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신한국당은 수도권과 영남권의 두터운 지지를 확보했다. 비운의 분열로 꼽히는 사례는 1997년 대선 경선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패한 이인제 전 의원이 탈당해 만든 국민신당이 거론된다. 이 전 의원은 김대중·이회창·이인제의 3파전에서 결국 낙선했고, 국민신당은 10개월 만에 자진 해산했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 전 총재는 아들들의 병역 의혹에다 이 전 의원의 탈당 등으로 곤경에 처하자 1997년 11월 민주당 조순 총재와 힘을 합쳐 한나라당을 창당했다.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24일부터 2012년 2월 14일까지 보수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래 유지됐다. 지금의 새누리당도 당명만 바꿨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02년 이회창 총재에 반기를 들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당선자도 냈지만 6개월 만에 다시 한나라당과 합쳐졌다. 범보수 세력은 2008년 18대 총선을 전후로 또 갈라졌다. 친이명박계의 친박근혜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자행되자 친박 인사들이 당을 떠났다. 서청원 전 대표를 중심으로 친박연대가 꾸려졌고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무소속연대를 결성했다. 친박무소속연대는 총선 직후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비례대표 8석을 챙긴 친박연대는 2012년 2월 초까지 외형상 정당의 모습을 갖추긴 했으나 사실상 의석수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 조직과 같았다. 한편 JP의 자민련은 1995년 5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유지된 뒤 한나라당과 통합했다. 자민련 탈당파인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2006년 1월 창당한 국민중심당이 충청권을 이끌었고, 이는 총선 국면마다 자유선진당(2008년), 선진통일당(2012년)으로 이어지다 대선을 앞둔 2012년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진보 정당史] 1987년 단일화 실패한 DJ-YS 결별… 평화민주당 창당 계파간 갈등 심화… 당명 수시로 바뀌며 이합집산 반복 야권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해 왔다. 야당의 뿌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1987년 DJ의 동교동계는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고, DJ는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졌다. 1991년 3당 합당의 반대파인 꼬마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후신인 신민주연합당이 합당해 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DJ가 다시 패배하면서 민주당은 분열했다. 이후 DJ가 1995년 정계에 복귀한 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됐다. 새정치국민회의의 대선 후보가 된 DJ는 드디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DJ계와 재야, 운동권 세력이 합쳐져 새천년민주당이 만들어졌고 여기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0년대 들어 야권의 분당은 계파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와 DJ의 동교동계, 호남 인사의 갈등이 분당의 원인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호남 실용파·구민주계로 대표되는 이른바 ‘난닝구’와 친노(친노무현)계, 영남 개혁 세력인 ‘빽바지’가 부딪쳤다. 결정적인 사건은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정권 시절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를 받아들이면서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동교동계, 호남 인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돼 노 전 대통령에게 반발했다.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친노계 의원들은 그해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를 계기로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있던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2004년 한나라당과 함께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게 됐다. 이후 야당은 열린우리당에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2008년 민주당, 2011년 민주통합당으로 계보를 이었다. 이어 2014년 3월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대표의 새정치연합과 합당해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친노 주류와 비주류계 사이 갈등이 남아 있었다. 특히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시 친노 주류의 중심인 문재인 후보가 비주류계인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새 대표로 선출되면서 갈등은 격화됐다. 친노는 문재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친문으로 세분화하며 주류로 자리잡았고 호남 인사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계는 당권을 친노 세력이 쥐는 데 반발했다. 결국 2015년 12월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에게 반기를 들고 탈당했다. 안 전 대표의 탈당 이후 당내 비주류와 호남 인사들이 연쇄 탈당하면서 제1야당은 쪼개졌다. 안 전 대표는 호남과 중도를 키워드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해 들어온 호남 인사들의 영향으로 지난 총선에서 호남 28개 선거구 중 23개 의석을 싹쓸이하며 호남 대표 당으로 거듭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몰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수도권,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선전해 123석을 얻고 제1야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이재명 ‘주춤’… 문재인·반기문 오차범위 각축

    이재명 ‘주춤’… 문재인·반기문 오차범위 각축

    李 ‘반문’발언 논란 확산후 하락 文 23.7%·潘 20.5% 소폭 상승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이 하락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12~16일 전국 성인 25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9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1.9% 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이 시장은 전주보다 1.3% 포인트 하락한 14.9%를 기록하며 최근 급등세를 4주 만에 마감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3위 자리를 지켰다. 리얼미터는 “이 시장은 ‘이름도 모르는 대학’ 발언을 둘러싸고 비판여론이 고조됐던 지난 주말을 지나 ‘반문연대’ 발언 논란이 확산된 지난 12일 지난주 주간집계 대비 0.5% 포인트 떨어진 15.7%로 출발했다”면서 “‘야권통합·연대론’을 역설했던 15일엔 12.7%로 뚝 떨어졌다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을 주장했던 16일엔 14.0%로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와 반 총장은 각각 한 주 전보다 상승했다. 반 총장은 1.7% 포인트 오르며 20.5%를 기록, 7주 만에 20%대를 회복했다. 문 전 대표는 0.6% 포인트 오른 23.7%로 7주 연속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반 총장은 특히 지난 16일 일간집계에서는 22.9%의 지지율을 기록, 문 전 대표(22.7%)를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다. 반 총장 지지율은 ‘유엔 총회 고별연설’ 보도가 나온 지난 13일 19.9%로 상승했고 ‘뉴욕 지하철 탑승’ 관련 보도가 있었던 14일엔 19.5%로 주춤했으나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0.3% 포인트 오른 8.3%로 4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4.3%, 박원순 서울시장 4.2%,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3.4%, 오세훈 전 서울시장 2.9%, 유승민 의원 2.2% 등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정당지지도에서는 민주당이 1.8% 포인트 오른 37.7%로 2주 연속 상승하면서 지난 18대 대선 직후인 2012년 12월 3주째에 민주통합당이 기록한 지지율(41.0%)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0.1% 포인트 내린 17.2%, 12.2%로 순위를 유지했고 정의당은 0.2% 포인트 오른 5.5%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는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민주당 지지율 40% 껑충…DJ 취임 첫해 이후 최고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16일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지난 13~15일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40%로 전주보다 5% 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올 초 당명 교체 이후 최고치이며 민주통합당 시절인 2012년 대선 직전의 37%를 넘어선 것이다.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도가 40%에 도달한 것은 김대중(DJ)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98년 12월(당시는 분기별 조사) 이후 처음이라고 갤럽은 설명했다. 민주당은 모든 지역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여권 텃밭’ 대구·경북(TK)에서도 32%로 새누리당(25%)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호남(광주·전라)에서도 민주당은 53%로 국민의당(22%)을 압도했다. 호남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도는 10월 36%대24%, 11월 29%대31%로 엎치락뒤치락했지만, 12월 들어 49%대20%로 재역전됐다. 연령별로도 민주당은 10대(57%)와 20대(56%)에서 50%를 넘는 등 60대 이상(16%·새누리당 30%)을 제외하고는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전주보다 2% 포인트 오른 15%를 기록했다. 1997년 창당한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이 1998년 3월 15%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국민의당이 1% 포인트 하락한 12%로 그 뒤를 이었다. 갤럽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가결에 따라 직무수행을 평가하지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nesdc.go.kr) 참조.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한국갤럽] 민주당 지지율 40% 역대 최고…TK조차 민주당 32%>새누리 25%

    [한국갤럽] 민주당 지지율 40% 역대 최고…TK조차 민주당 32%>새누리 25%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지율이 40%로 나오면서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 지지율이 40%대를 기록한 일은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16일 한국갤럽의 12월 3주(13~15일) 주간집계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율이 민주당은 40%, 새누리당은 15%, 국민의당 12%, 정의당 3%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였으며 응답률은 23%(총 통화 4393명 중 1004명 응답 완료)였다.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0%로 지난주에 비해 5% 포인트나 상승했다.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각각 1% 포인트, 4% 포인트 하락했다. 민주당은 지지율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해 민주통합당 시절인 2012년 대선 직전 최고 기록(37%)을 넘어섰다.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도가 40%를 상회한 것은 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은 모든 지역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에서도 32%에 달해 새누리당(25%)을 앞섰다. 연령별로는 10대(57%)와 20대(56%)에서 50%를 넘는 등 60대 이상(16%,새누리당 30%)을 제외하고는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최근 한 달간 새누리당은 창당 이래 지지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1997년 창당한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은 1998년 3월 지지도 15%를 기록한 바 있다. 2000년대 초반 지지도 30% 내외를 유지하다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무렵 18%까지 하락했었다. 2006~2007년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에는 50%를 넘나든 적도 있었지만 ‘고승덕 돈봉투 폭로’ 직후인 2012년 1월 초 22%로 하락한 끝에 새누리당으로 개칭했다. 이번 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도현 시인 절필 3년 5개월만에 시작 재개

    안도현 시인 절필 3년 5개월만에 시작 재개

     절필을 선언했던 안도현(55) 시인이 3년 5개월만에 시 쓰기를 재개한다. 안 시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랑스러운 국민이 박근혜를 이겼다.”며 “이제 나는 시를 쓰고 또 쓸 것이다.”라고 밝혔다.  안 시인은 지난 2013년 7월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 맹세한다.”며 절필을 선언했었다. 박 대통령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같은 해 6월 기소된 데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안 시인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소장하거나 유묵 도난에 관여했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 1심에서 일부 유죄,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8:1로 보수 짙은 헌재… 탄핵은 다르다?

    8:1로 보수 짙은 헌재… 탄핵은 다르다?

    야 3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탄핵 정국의 막이 올랐다. 관심은 이제 두 가지다. 야 3당이 새누리당 비박계와 연대해 탄핵안을 국회에서 여하히 처리하느냐, 그리고 국회를 거쳐 넘어온 탄핵심판안을 헌법재판소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는 보수 색채가 강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면면을 들어 내심 헌재가 박 대통령 지키기의 최후 보루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내년 1월과 3월에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이 임기가 끝나는 만큼 남은 7명 중 2명이라도 반대하면 탄핵안을 저지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실제로 9명의 헌재 재판관 구성을 보면 보수색이 강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재 수장이 된 박한철 소장과 조용호·서기석 재판관 등 6명이 보수적 인사로 분류되고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과 여야 합의로 선출된 강일원 재판관 등 3명이 중도·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22일 서울신문이 최근 2년간 헌재가 내린 주요 판결 10건의 결정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런 성향이 확인됐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 당시 헌재는 재판관 8명의 ‘인용’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당 활동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6명 이상의 동의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 예상이 많았으나 8명의 재판관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통진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첫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김이수 재판관만이 “일부 내란 관련 활동을 모두 당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해 5월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조항에 대해 8대1의 합헌 결정이 나온 것도 현 재판관들의 성향을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대다수의 재판관들은 “해고된 교원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면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재판관은 “해직자가 포함된다고 해서 교원노조가 정치화될 위험이 없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생계형 성매매’ 처벌에 대한 논란 속에서 올해 3월 진행된 ‘성매매특별법’ 위헌심판에서도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성도덕이라는 공적 가치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 제한의 정도에 비해 작다고 볼 수 없다”며 자발적 성매매도 처벌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부 및 전부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김이수·강일원·조용호 재판관 등 세 사람에 불과했다. 다만 재판관들은 이념 성향이 드러나기 어려운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못하게 한 현행법 ▲대통령 상관모욕죄 처벌 ▲국회선진화법 위헌 여부 등 판결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성향과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러나 헌재 구성원들의 개별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 대통령 혐의의 무게를 감안하면 탄핵 결정에 이의를 다는 재판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12년 전 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한 사안과 검찰이 특별수사본부까지 꾸려 수사한 박 대통령 사건은 중대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며 “보수적인 재판관이라고 해서 기각을 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도 이를 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한 청구인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사전심사 중이라고 밝혔다. 헌재가 본안 심사에 들어갈 경우 대통령의 혐의가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 살펴야 하는 만큼, 사실상 탄핵심판이 시작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피의자 대통령 시대] 정부 오늘 특검법 의결… ‘중립’ 해석 신경전

    이정현 “후보자 나오면 알 것” 민주 “조사 수용 여부 밝혀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조사를 전면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립적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히면서 21일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특히 야당은 특검 수사까지 거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지난 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검법은 다음날 곧바로 정부로 이송됐다. 정부는 22일 국무회의를 열고 특검법 공포안을 상정해 심의, 의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의결마저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일단 청와대는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특검법이 발효되어도 신경전이 벌어질 여지가 많다. 특검법안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특검 후보자 2명을 추천하고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따라서 야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자들을 두고 청와대에서 ‘중립성’을 이유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을 향해 “특검이 중립적이라고 판단이 안 되면 그 수사도 거부할 것인지 명백하게 입장을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은 “청와대가 야당의 분열을 꾀해서 후보 중 한 명을 청와대가 바라는 사람으로 추천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법안에 따르면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특검 후보자 추천서를 받은 뒤 3일 이내 후보자 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해야 한다. 다만 ‘반드시 임명을 해야 한다’거나 3일이 지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등의 규정은 전혀 없다. 대통령이 특검 임명 자체를 늦춰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강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구체적으로 (후보자가) 나와 봐야 치우쳤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야당의 후보자 추천 이후에도 ‘중립적 특검’ 관련 논란이 있을 수 있음을 예고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내곡동 사저만 제외하고 역대 열 차례 특검은 대한변호사협회 등 중립적인 단체에서 후보를 추천해 대통령이 거부한 예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특검을 안 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의 경우 당시 민주통합당이 10월 2일 김형태, 이광범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고 이 전 대통령은 사흘 뒤 이광범 특검을 임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헌재 재판관 임기가 주요 변수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헌재 재판관 임기가 주요 변수

    9명 중 2명 내년 초 임기 만료 임명 않으면 7명이 심판 진행 6명 이상의 찬성 쉽지 않을 듯 최순실(60·구속)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에 선을 그으면서 향후 국회 차원의 탄핵 움직임과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여부에 정국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다수 야당과 새누리당 비주류 측의 반발을 감안하면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는 있겠으나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인용’이 필요한 헌법재판소의 관문은 향배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박한철 헌재소장 등의 임기가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17일 정치권·법조계 등에 따르면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의결하더라도 헌재가 특별검사의 수사결과 발표 이전에 탄핵소추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대통령 탄핵 사유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헌법 65조)라고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대 120일간의 특검 수사가 종료되는 시점이면 9명의 재판관 가운데 2명이 임기를 마치고 헌재를 떠난 상황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박한철 소장은 내년 1월, 이정미 재판관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다음달 초 특검수사가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3월 초·중순에나 수사가 끝날 예정이다. 또한 헌재 재판관 지명은 3명은 국회, 3명은 대법원장 몫이다. 하지만 임명은 모두 대통령이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탄핵소추 대상일 경우 스스로의 진퇴를 결정할 후임 재판관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결국 7명의 재판관만으로 심판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이 경우 역시 9명 전원이 심판할 때와 마찬가지로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여부가 결정된다. 헌법재판소법(23조)은 심판정족수를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학선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 재판관이 9명이든 7명이든 6명이 찬성해야 가결되는 구조라 재판관 임명이 늦어지면 사실상 반대표가 늘어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관들 상당수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추천된 인사들이라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점도 탄핵 가결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다.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안창호 재판관은 새누리당이 지명했다.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했지만 보수 성향이 짙다는 지적이 많다. 김이수 재판관은 2012년 9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강일원 재판관은 여야 합의에 따라 지명됐다. 탄핵소추는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 결과 대통령의 불법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탄핵될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느냐를 따지는 ‘비례성 심사’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씨줄날줄] 십상시의 몰락/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십상시의 몰락/박홍환 논설위원

    정치권에서 십상시(十常侍)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던 2012년 11월 말쯤이었다.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대변인은 뜬금없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십상시’부터 정리하라”고 일갈했다. 명단까지 공개했다. 김무성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서병수 사무총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학재 비서실장, 이정현 공보단장, 이상일 대변인, 유정복 직능총괄본부장, 홍문종 조직총괄본부장, 안종범 의원, 변추석 홍보본부장 등 10명이다. 진 대변인은 “이들은 단순한 친박을 넘어 ‘진박’이라 불린다고 한다”며 “중국 후한말 조정을 농락한 십상시가 떠오른다”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은 막바지에 접어든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후보의 경쟁 상대인 박 후보의 불통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십상시’라는 금기어를 끄집어냈지만 언론이나 국민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십상시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7·4 전당대회를 계기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간 힘의 균형은 급속히 친박계 쪽으로 기울었다. 당내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은 이미 현직 이명박 대통령을 능가했다. 누구누구라고 이름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실질적인 힘이 박 전 대표 측근들에게 있다며 십상시라는 말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 내부적으로도 이미 측근 정치의 위험성을 감지했다고 볼 수 있다. 대선 승리 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십상시 논란은 마침내 청와대 비공식 문건을 통해 재점화됐다. 청와대 파견 경찰에 의해 작성된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 문건에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 및 행정관 10명이 2013년 10월부터 정씨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 현안들을 논의한 것으로 돼 있다. 그 10명을 십상시로 지목했다. 검찰 수사는 허구로 결론 냈지만 소통하지 않는 박 대통령 주변에 두터운 인(人)의 장막이 쳐져 있다는 의심을 국민은 떨쳐 내지 못했다. 십상시는 후한 영제 때 황제의 눈과 귀를 막고 국정을 농단했던 장양을 비롯한 10명의 환관을 일컫는다. 후한서 등은 후한의 몰락 배경으로 영제의 무능과 십상시의 전횡을 꼽는다. 영제가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장양을 ‘아버지 다음가는 어른’으로 모셨다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십상시는 결국 모두 척살당했다.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직권남용 혐의로 곧 구속영장이 청구된다. 십상시의 장양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최순실씨는 오늘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차은택씨 등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십상시의 몰락은 역사가 증명한다. 경고음을 무시했던 박 대통령과 그를 에워싼 십상시들이 어리석을 뿐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부고] 서종표 신한대 부총장 별세

    [부고] 서종표 신한대 부총장 별세

    육군 대장 출신이자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서종표 신한대 행정부총장이 25일 별세했다. 71세. 육사 25기인 서 부총장은 1996년 제25사단장, 1999년 제6군단장, 2000년 국방대 총장, 2001년 제3군사령관 등 육군 지휘관을 두루 거쳤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5시쯤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노원구 을지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27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오늘의 눈] 지극히 평범한 바람/허백윤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지극히 평범한 바람/허백윤 정치부 기자

    코끝에 닿는 바람이 점점 차가워진다. 정치부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시계가 점차 빨라질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다. 2007년과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대세론’을 지닌 뚜렷한 유력 주자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 대선은 아직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이다. 그러다 보니 ‘잠룡’이라고 불리는 여야의 차세대 리더들이 너도나도 대선을 염두에 둔 장외 경쟁에 돌입했다. 여야 잠룡들은 내년 대선의 화두를 선점하기 위해 강연이나 토론회, SNS 등을 활용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랄 것도 없이 이미 내년 대선의 시대적 과제는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주자들이 한목소리로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한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정의로운 국가, 공화주의”(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 “기득권 혁파를 통한 대한민국 리빌딩”(남경필 경기지사), “공존과 상생”(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따뜻한 국가, 책임 있는 정부, 사람경제”(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민주국가”(안희정 충남지사),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대한민국과 평화로운 한반도”(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민생’이라는 진부한 말보다 더 고전적인 단어가 난무한다. 잠룡들의 입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정의롭지 못한 곳에 살고 있는지 역설해 주는 듯하다. 우리는 매년 우울한 통계를 접한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만 19세 이상 성인 770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7명은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적인 분배 구조가 불공정하다(72.2%)고 답했다. 사회에 진입하는 취업의 기회부터 불공정하다(64.6%)고 여겼다. 아동·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2개국 중 22위(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를 차지했고,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불평등지수는 OECD 회원국에서 칠레 다음인 2위였다(한국노동연구원). 유엔의 ‘2016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조사 대상 157개국 가운데 58위, OECD 회원국 35개 가운데 최하위권인 29위였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 전 대표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여야의 잠룡들이 이토록 상식적인 가치를 다시 들고나온 것에 울컥할 수밖에 없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말을 여기저기서 쏟아내는데 과연 그것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 끝없이 의심해야만 한다. 나는 둘째치고라도 적어도 내 아이는 공평한 기회를 얻어 정의로운 나라에 살 수 있길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이 아직은 엄청난 기대를 걸어야 할 일이라는 점이 서글프다. baikyoon@seoul.co.kr
  • 더민주 원외 민주당과 통합…野 적통 강조

    더민주 원외 민주당과 통합…野 적통 강조

    더불어민주당이 야권의 원외정당인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한 것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야권 새판짜기 움직임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통합의 대상인 민주당이 갖는 정당조직으로서의 의미는 크지 않다. 현역의원이 단 한 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6개 시도당에 당원이 9000명에 그치는 미니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진정한 가치는 ‘이름값’에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분석이다. 민주당이라는 명칭은 1955년 9월 해공 신익희 선생이 창당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정통 야당의 상징어로 자리매김해왔다. 따라서 더민주의 이번 민주당 흡수는 바로 제1야당으로서의 정통성 확보라는 측면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추미애 대표가 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함께 민주당 창당 61주년을 맞은 18일 신익희 선생의 생가를 찾아 양당의 통합을 발표한 것은 상징성을 극대화하려는 조치다. 특히 더민주로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해 독자적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서고 있는 제2야당 국민의당과의 ‘호남 대전’에서 기선을 제압할 필요성이 있다. 더민주는 8·27 전대를 통해 친(親) 문재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호남 구애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추 대표는 해공 선생 생가에서 “민주개혁세력이 더 큰 통합을 위해 지지층을 더 강력히 통합하고, 돌아오는 한 분 한 분을 분열 없이 품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민주당이라는 명칭이 과거 야권통합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활용되다가 사라지곤 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김대중 정부 시절 집권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는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약칭으로 민주당을 사용했다. 그러나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민주개혁세력이 분화된 뒤 2005년 새천년민주당은 사실상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에 머물면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이후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이 17대 대선에서 패한 뒤 2008년 2월 야권통합을 명분으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통합민주당이 출범했고,약칭으로 민주당을 사용했다.같은 해 8월에는 아예 당명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2011년 말 19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와의 통합을 명분삼아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합당으로 민주통합당이 출범해 약칭으로 민주당을 유지했다가,2013년 5월 다시 민주당으로 당 현판을 바꿔달았다. 이어 민주당은 2014년 3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이끌던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면서 다시 민주당 당명을 잃었다. 약칭으로나마 민주당을 되찾게 된 것은 2년 6개월만인 셈이다. 추 대표는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산실로서 소나무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당명으로,이번 통합은 이를 회복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병제’ 불붙는 정치권

    ‘모병제’ 불붙는 정치권

    백군기 더민주 국방안보센터장 “모병, 전문 군사기술 숙달에 도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입대하는 ‘모병제’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뜨겁다. 여권 대권 잠룡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유승민 의원이 모병제를 놓고 충돌한 데 이어, 야권에서도 ‘모병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는 양상이다. 남 지사는 8일 페이스북에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추구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유 의원이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히틀러도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모병제 논란은 2012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모병제 도입’을 공약으로 처음 들고 나온 더민주 김두관 의원은 최근 남 지사와 ‘모병제희망모임’에 함께 참여하며 찬성론을 펼치고 있다. 더민주의 국방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국방안보센터 역시 모병제 도입에 긍정적이다. 백군기 국방안보센터장은 통화에서 “인구 감소에 따른 군 복무 공백을 메우고 전문화된 군사 기술을 숙달하려면 최소 5년 이상 근무하는 모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백 센터장은 “다만 한번에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면서 “국민 정서 등을 감안해 통일 전까지 전투병은 모병으로, 행정 분야는 징병으로 혼합하는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김용익 원장도 “현재 징병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원하는 사람들만 군에 입대하면 충성심이나 전력이 좋아질 것”이라면서 “모병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김영호 의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김영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영호(49·서울 서대문을) 의원은 4수 끝에 국회에 입성한 근성의 정치인이다. 야권 원로인 후농 김상현(더민주 상임고문)의 아들로 먼저 알려졌지만, 최근 더민주 초선의원들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중국 방문을 주도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베이징대(한국인 첫 졸업생)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한·중청년지도자포럼 대표위원을 맡는 등 중국 정계에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대표 취임 이후 당내에서 사드 반대 당론 채택 주장이 힘을 얻는 가운데 당 사드대책위 간사인 김 의원은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친 뒤 사드 반대 당론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Q. 사드 반대 당론 결정을 미뤄야 하는 이유는. A. 국민 동의를 얻기 위해서. 사드 배치로 한·미 공조가 강화될 수는 있겠지만 군사적 실효성이나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등 잃는 게 더 많다. 문제는 사드 찬성 혹은 반대에만 함몰돼 있고 사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국회 비준 절차를 밟은 뒤 국민에게 사드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리는 게 중요하고 이후 자연스럽게 반대 당론을 정해도 늦지 않다. Q. 중국과의 관계 개선 방안은. A. 대화로 설득. 초선 의원들과 방중도 하고 지난달 30일 송영길 의원과 중국대사도 만나봤는데 중국이 반발한 이유는 정부가 사전 조율도 없이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대화로 풀어야 한다. Q. 정치적 관심사는. A. 아동 복지. 늦게 낳은 아들이 네 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 조만간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의 전기세를 감면해 주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Q. 20대 국회에서 김 의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A. 좌절하지 않고 집념이 있다는 점. 세 번째 떨어졌을 때 바로 툭 털고 일어나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마다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주민들과 스킨십을 넓힌 결과 당선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격식 없이 어울리는 점은 아버지의 피를 받아서이지만 선거에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아버지는 “(정치 출마 때) 정당 선택은 알아서 해라”, “(국회의원 출마할 때) 돈 있냐”, “(낙선했을 때)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포기하라”고 말씀하신 것뿐이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프로필 ▲1967년 서울 출생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 ▲스포츠투데이 기자 ▲민주통합당 정책위의회 부의장 ▲한·중청년지도자포럼 대표위원
  • [정치뉴스 테이크아웃] 무수저, 추다르크, 경제할배, 안길동… 이니셜보다 ‘별명’

    [정치뉴스 테이크아웃] 무수저, 추다르크, 경제할배, 안길동… 이니셜보다 ‘별명’

    ‘YS·DJ·JP.’ 한국 정치사에서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부터 유력 정치인들은 영문 이니셜(약칭)로 통칭. 이명박(MB) 전 대통령, 정몽준(MJ) 전 의원, 김근태(GT)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이 대표적인 사례. 요즘 들어 정치인들은 이니셜 대신 자신의 외모와 성격, 정치 스타일 등을 표현하는 별명으로 불리기를 선호하는 분위기. 여야 당 대표도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별명을 부각시키며 선거운동 효과를 톡톡히 누려. 새누리당 이정현(왼쪽) 대표는 자신을 ‘무수저’라고 지칭하며 서민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 호남 출신으로 보수 정당의 말단 당직자부터 17계단이나 올라온 상황을 ‘무수저’라고 빗댄 것.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오른쪽) 대표도 스스로를 ‘추다르크’(추미애+잔 다르크)라고 표현.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유세단장을 맡았던 추 대표는 당시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활약하며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어. 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의 별명은 ‘경제민주화’와 77세 고령이라는 점이 합쳐진 ‘경제할배’. 평소 “추호도 없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해서 ‘추호영감’이라고 불리기도.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총선 당시 자신을 ‘강철수’(강한 안철수), ‘안길동’(안철수+홍길동)이라고 띄우며 지지를 호소.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한때 ‘무대’(무성 대장)라는 별명보다 이니셜인 ‘MS’로 자신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통용되진 않아.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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