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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철「안보둔감증」을 경계한다/송복 연세대교수·정치사회학(시론)

    북쪽에서 전쟁불가피론을 선언하고,비무장지대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고,심지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 중무장한 병력을 계속 진입시키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남쪽 사람들은 긴장하는 바가 없다.경계는 차치하고 마음하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공갈을 많이 당하고 큰 일을 많이 치러서 웬만한 일이면 그저 그래 넘기는 정신적 훈련이 돼서일까,아니면 심리적으로 완전히 둔감해져서일까.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서 후보들이 멀티비전이다,가두 배망대를 설치해서 갖은 방법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끌려하고,당지도부 또한 이제 바로 「주적」을 만났다는 식으로 상대당을 공격하는데도 정작 표를 던질 유권자들은 덤덤히 보고만 있다.하도 선거를 많이 치르고,하도 그런 꼴을 많이 봐서일까.아니면 누가 돼도 그사람이 그사람이라는 오랜 경험에서일까.그래서 국회의원이고 민주주의고 다 오불관언이라는 심리상태가 돼서일까.혹은 그도 저도 다 싫다는 정신적 거부감에서일까. 북의 끊임없는 위협과 도전을 받아온지도 어언 반세기에달한다.독재정권이니 권위주의체제니 하면서도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격이 다르게 전쟁중에도 선거를 치를 만큼 민주주의에 열정을 쏟아온지도 역시 반세기에 긍한다.이 모든 것을 세대를 거치면서 해온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내에 다 해왔다.그러면서도 일면 국방,일면 건설하면서 안보도 튼튼히 하고 경제발전도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해냈다. 그런데 지금 북의 위협은 「늑대와 목동」의 이솝우화 꼴이 됐고,선거는 원색적으로 지역감정이나 이용하는 완전 후진정치가 됐다.더구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북의 붕괴가 목첩에 다달았다는 설이 나돌면서 남쪽의 북쪽 경계심은 이슬 사라지듯 사라졌고,지역표가 곧 고정표라는 등식이 만들어지면서 「선거과정」에는 의미가 없고 「선거결과」만 예의 촉각하는 상태가 됐다. 안보도 옛 안보가 아니고,선거도 옛 선거가 아니다.이도 무너지고 저도 후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지금 우리 안은 완전히 분열돼 있고 우리의 긴장상태는 완전히 해이해져 있다.민주화만 되면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안보태세가 기필코 강화된다고 떠들던 사람들조차도 지금은 간곳이 없다.권위주의만 없어지만 「국민적 합의」에 의거한 사회통합이 저절로 이뤄진다고 외쳐대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지금은 어디서도 들을 길이 없다.모두가 권력싸움에 혈안이 됐다가 자리차지하면서 국가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됐다. 사회는 긴장감으로 통합되고 위기의식으로 발전해 간다.그것이 설혹 정권안보에 기여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긴장도 높은 관리체제를 무너뜨릴 수 없고,위기의식 없는 나사풀린 정부를 만들 수는 없다.지금 우리 안은 위기대응체제도 못되고 더구나 위기관리체제는 더더욱 못된다.국가관리 국가통합 국가발전과는 거리가 아주 먼 체계가 돼 있다.정부도 그러하고 국민 개개인도 지금 그러하다.정부는 개혁을 내세우면서 일을 피하고,국민은 물가를 규탄하면서 휴일놀이에 광분해 있다.정부도 비전이 없고 국민도 미래지향성을 상실했다. 다산 정약용전집의 백제론·고구려론에 이런 따짐이 있다.왜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했는가.백제는 삼국중 최강인데도 제일 먼저 망했다(백제어삼국최강이기망최선).고구려는 삼국중 가장 웅걸차고 용맹했는데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기인개웅경용한부능지장구야).그 이유는 무엇인가.고구려는 평양으로 남하해 청천 대동 두 강물 남쪽에 위치하여 국가보위의 두려움을 잊었다.마치 진나라 송나라가 남쪽으로 양자강을 건넜다가 천하를 잃듯이 「두려움」을 잊으면서 나라도 잃었다.백제 또한 남쪽으로 내려와 경계할줄 모르고 방종하다 적의 침공을 받아도 사람들이 관망만 하고 구원하려 안했고,각 고을의 군사들 또한 머뭇거리만 하고 진군하지 않았다(사방관망이부구열군두유이부진).그러다 마침내 나라를 빼앗겼다. 고구려 백제에 비해 신라는 3국중 가장 후진이고 약소국이다.서쪽으로는 부국 백제가 있고,북쪽으로는 강국 고구려가 있다.두나라의 위협은 지속적으로 상존했다.신라 또한 하루도 긴장을 푸는 날이 없고 경계를 늦추는 날이 없었다.그 긴장과 경계가 결국 삼국을 통일했다. 예나 이제나 국가는 그냥 유지되지 않고 절로 발전하지 않는다.경계하는 마음을 늦추고 위기의식을 버리는 날 안보도무너지고 발전도 정체한다.그리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 요시카와 히로유키 도쿄대 총장 졸업식사

    ◎21세기 사회질서 이성이 지배한다/중앙집권적 권력행사 한계… 개인양식이 우선/개별소망 충족하며 집단 적응할 사고 키워야 일본 도쿄대학교의 요시카와 히로유키(길천홍지)총장은 지난 28일의 졸업식사에서 『21세기는 이성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대량 이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요시카와 총장의 졸업식사를 요약한다. 도쿄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식을 맞은 여러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축하드립니다.세상에서는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여러가지 꿈과 예측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종전50년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50년이 지나 전쟁에 대해 객관적인 고찰이 가능해진 가운데 새로운 세기에 들어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앞으로 올 시대,21세기는 이성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시대,즉 「대량 이성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여러분이 커다란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전후 50년은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냉전구조 속에서 늘 3차대전에 대한 위협을 받아왔습니다.그 사이 많은 위기가 있었고 희생자도 나왔습니다.하지만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3차대전을 회피할수 있었습니다.그러한 결과는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위험 이성으로 극복 이 50년을 대표하는 시대의 이성이란 무엇이었던가를 말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다만 실감하는 것은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그중에는 공적인 장소에서 행동하고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일반적인 생활인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영역이란 아주 좁은 하루하루 생활중 접하는 사람과 사물정도이지만 그 가운데 평화를 원하는 개인의 희망들이 모여 전쟁회피라는 「전체」를 낳은 것입니다.위인의 힘이나 거창한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작은 영역에서 일하는 개인의 평화희구가 모여 전쟁을 피하도록 하는 커다란 사회적 장치를 만든 것입니다.그러한 사회적 장치를 연구해 지속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예로부터 시작합시다.흔히 말하는 것처럼 중앙집권의 시대에는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 훌륭한 건물이 세워지고 또 쭉 뻗은 거리도 아름답지만 그것이 민주주의가 되면 빈약해집니다.아마도 중앙집권의 시대에는 권력자의 사상의 일관성이 조화를 낳을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감성을 억제하는 대가가 따랐읍니다. 권력자의 건축물이 그 외관에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민주주의에 있어 우리들의 집은 외관보다는 집의 내부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 논리적 귀결입니다. 그런데 한사람 한사람의 집이 내부적으로 (거주자의)소망을 만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그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양식과 외관을 가지는 일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중앙집권적 시대의 위인과 영웅 같이 외부의 조정자를 상정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외부에서 개개인간의 조절과 조화를 도모하는 존재는 무엇일까.그것을 구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경영하는 것」이라고 불러 둡시다. ○민주시대엔 개성이 중요 「경영하는 것」은 경영을 주관하는 존재가 자신의 사상과 방법을 고집하는 게아니라 경영대상인 모든 개인의 내적 사정을 이해해 그 개인을 가능한한 파괴하지 않으면서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이 방법은 모든 인간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론이 아니라 한정된 범위의 인간부류를 대상으로 하는 소위 「전용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정된 부류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용이론」을 만들어 그에 따라 개체간의 조화를 도모해야 합니다.가까운 예로 대학의 경우 경영대상이 되는 것은 반,학과,학부,연구과,대학전체일 것입니다.각 집단에는 한정된 사람들이 삽니다.이 사람들은 결코 보편적 추상적 사람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 다른 개성과 바람을 갖고 있는 현실적 사람들입니다. ○개체간 상호충돌 피해야 만일 개체간의 상호충돌을 피하기 위해 외부에서 개체의 개성을 강제로 변경시키려한다면 그것은 경영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됩니다.경영을 주관하는 존재가 스스로의 야심을 버리는 것만이 진정으로 경영하는 것이라고 할수있습니다.전후 5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새로운 세기로 들어가고자 하는 우리들로서는 올바른 개성을 지닌 개인과 야심을 버린채 경영하는 자가 힘을 합쳐 새로운 전체의 조화를 추구해야할 위치에 서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이성입니다.깊은 통찰력을 가진 이성이 세계에 많이 존재할때 비로소 여기서 말한 개인과 전체의 조화를 과거같이 외부의 강압적인 조정자에 의하지 않고 개개인간의 조화를 통해 하나하나 쌓아올려갈수있습니다.여러분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앞으로 무한하게 비약할 한사람 한사람의 이성에 커다란 기대를 걸면서 축하의 말을 마칩니다.〈정리=강석진 도쿄 특파원〉
  • 중국 “「하나의 중국」 원칙 불변”/「대만 선거」 각국 반응

    ○…중국은 23일 대만 최초의 총통선거결과와 관련,『대만지도자를 선출하는 방법과 결과가 어떻든간에 대만은 중국영토의 일부이며 「하나의 중국정책」을 원칙으로 한 양안관계 발전입장은 변할 수 없다』고 논평.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국무원 대만판공실 신문국 명의로 이날밤 발표된 논평에서 중국정부는 『대만문제는 내정이며 이에 대한 외국의 간섭과 두개 중국을 만들려는 행위에 결단코 반대한다』고 강조. 이같은 국무원의 논평은 인민일보 등 주요신문과 TV 등을 통해 주요뉴스로 보도됐다.언론들은 또 대만을 상대로한 중국의 반분열·반독립투쟁은 대만독립세력에 심한 타격을 주었다는 요지의 신화사 논평도 함께 실었다. ◎“양안 상호대화 중요” ○…일본은 중국과 대만이 대만해협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대화를 재개하기를 바란다고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항언)외상이 23일 말했다. 이케다외상은 『이총통의 당선은 의미있는 것』이라며 『대만해협에서 실질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상호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말했다. ◎미국 “민주화 큰진전… 양안긴장 해소 기대 ○…미국은 23일 대만 총통선거결과를 환영하고 대만과 중국이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메리 엘린 글린 백악관대변인은 『대만인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며 『우리는 대만해협의 긴장이 수일내로 크게 완화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태국 외무부는 23일 대만 총통선거결과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대만국민들의 반감을 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북경·워싱턴 외신 종합 연합〉
  • 이등휘 체제의 앞날(총통선거 이후의 양안:1)

    ◎평화속 「안정 개혁」 최대 과제/국민 85% 대만출신… 현상유지 원해/민주화욕구·교통­주택난 해결 시급 대만은 중국의 무력위협속에서도 무사히 총통선거를 치렀다.그러나 이번 선거는 앞으로 양안간 정치·경제적 통합과 대만의 민주화등 국내외적으로 적지않은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아울러 대만해협은 국제 역학관계의 소용돌이속에서 「아시아의 화약고」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보여주었다.대만총통선거 이후 양안관계를 시리즈로 엮어본다.〈편집자주〉 이번 대만 총통선거결과는 한마디로 이등휘총통과 45년간 대만을 통치해온 집권 국민당의 압승으로 요약된다.이총통은 중국의 무력위협속에 진행된 선거운동기간중 줄곧 중국으로부터 대만의 주권을 지킬 수 있도록 50%이상의 지지를 모아달라고 호소했다.유권자는 이 주문을 훨씬 웃도는 54%의 지지를 보낸 것이다. 2위를 차지한 야당인 민진당은 지난 89년에야 비로소 활동이 합법화됐다.조직·자금·인물 모든 면에서 어차피 국민당과 대적하기 힘든 위치에 서 있었다. 대만언론은 일제히 이번 선거결과의 첫째 의미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내세우고 있다.이 말은 지난 10여년간 진행돼온 민주화작업이 맺은 결실이라는 자부심을 담고 있다. 이등휘총통은 오는 5월20일 제9대 대만총통으로 취임하게 된다.하지만 앞으로 그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이번 선거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만큼이나 중대하고 어려운 일이다. 지금 대만사회는 처음 맛보는 민주화의 길목에서 복잡미묘한 변화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이런 미묘함은 선거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됐다.지금 대만사회를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은 「대만독립이냐,본토와의 통일이냐」와 「민주화」 2가지로 요약된다.그런데 유권자는 「대만독립」과 「민주화」를 당론으로 내세운 민진당 대신 「본토와의 통일」「안정된 개혁」을 주장한 국민당을 택한 것이다. 지난 49년 모택동군대에 패배해 대만으로 넘어온 국민당정부는 그 뿌리를 대륙에 두고 있고 본토와의 통일(본토수복)을 공식당론으로 내세우고 있다.거기에다 대만출신이 이미 총인구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총통이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은 대만인의 머리속이 그만큼 미묘하고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즉시 독립을 내세운 민진당의 팽명민후보가 21%의 지지만을 끌어내는 데 그친 게 한가지 반증이다. 중국이 무력시위를 한 목적이 지난해 6월 이총통의 미국방문이래 강화돼온 대만내의 독립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면 중국은 이번에 큰 실책을 한 셈이다.무력위협은 대만주민 사이에 안정희구심리를 높여 이총통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를 낳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대만인의 의식속에는 중국의 무력위협이 아니라도 중화민족은 떨어져 살아도 한 형제라는 중화심리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한 대만정치인은 이 심리의 현실적인 해결책을 『대륙과는 현상태를 유지하되 국제사회에서 지금보다 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를 반영한 것이 바로 이총통의 실용외교노선이다.통일을 내세우면서도 미국도 방문하고 유엔가입도 추진해 주권국가로서의 행세를 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노선의 부작용은 중국의 무력위협으로 나타났다.주민의 이 소화하기 힘든 주문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이총통의 선결과제다. 아울러 지식인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사회전반의 본격적인 민주화개혁,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있는 공해문제,교통란,주택란등 국내문제도 산적해 있다.양안긴장이 진정되면 이 국내문제가 금방 전면으로 부상할 것이다.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만큼이나 지난한 과제가 이총통의 어깨에 얹혀져 있다.〈대북=이기동 특파원〉
  • 이등휘 직선총통 당선/대만선거/「국민대표」국민당 1백83석 차지

    【대북=이기동 특파원】 대만 집권 국민당의 이등휘후보가 지난 2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압승,총통 연임에 성공했다. 대만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최종 개표결과 이후보가 53.99%로 1위,20.9%를 기록한 민주진보당의 팽명민후보가 2위,무소속의 임양항후보와 진리안후보는 각각 14.7%와 9.87%의 득표에 그쳤다. 국민당은 또 이날 총통직선과 함께 실시된 3백34석의 국민대회 대표선거에서 과반수를 훨씬 넘는 1백83석을 차지했다. 이번 국민대회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은 99석,친중국계인 신당은 46석을 각각 차지했다. 이로써 이총통은 보다 안정되고 강력한 입장에서 총통선거를 앞두고 일련의 군사훈련으로 대만에 무력위협을 계속해온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에 있는 국민당 중앙당사에서는 이후보가 이날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러닝메이트인 연전 행정원장과 함께 장내에 들어서자 당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두 사람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 총통 당선자는 이날 당사에서 지지자와 보도진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민주주의의 문이 활짝 열렸다』면서 『우리 2천1백만의 대만국민은 대만의 40년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기록하게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번 총통선거는 대만정권 수립후 40년만에 처음으로 직접선거로 치러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줄기찬 경고와 무력시위에도 불구,전체유권자가운데 4분의 3 이상이 투표에 참가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 미 핵잠수함 3척 대만해협 이동/양안긴장 이모저모

    ◎중 장성 “미 개입땐 대만 무차별 파괴” 경고/이 총통,중 군사훈련 인접 팽호열도 방문 ○…미국은 중국의 군사훈련을 감시하기 위해 3척의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을 대만해협에 배치하고 있는 중이라고 미해군 태평양함대가 14일 발표.이 가운데 2척은 항모 인디펜던스호 주변에 다른 한 척은 항모 니미츠호 주변에 배치될 예정. ○“미,대만에 대한 의무다할것” ○…월터 먼데일 주일 미대사는 14일 미국은 대만에 대한 의무를 다할것이라며,중국에 대해 긴장을 완화시키고 대만과 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먼데일 대사는 이날 대만해협에 파견된 한 미항공모함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대만관계법에 따라 그리고 의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리의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몸을 동원하는 목적은 우리의 관심을 강조하고 오판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신시켜주기 위한것』이라고 설명. ○…이등휘 대만 총통은 14일 중국의 군사훈련 지역에 인접한 팽호열도를 방문. 중국의 군사위협에 대한 가장 극적인 저항의지를 표명한 것으로평가되는 이번 방문에서 이총통은 『아무도 북경의 위협을 두려워 하고 있지 않다』면서 『모두가 강한 투쟁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불러넣었다. 이통총은 이어 『자유와 민주주의는 세계적인 조류』라면서 『독재적인 공산국가는 인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싫어한다』고 중국을 비난했다. 그는 이번 중국의 군사훈련기간 동안 보여준 대만 국민들의 의연함을 찬양함과 동시에 『교역량 2백15억달러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그동안 대만이 이룩한 경제적 발전상을 부각시켰다. 이총통은 이날 팽호열도내 군사령부를 방문한데 이어 교량개통식에도 참가해 병사들과 주민들을 격려. ○…장 추안미아오 인민해방군 장군은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인민대표자 대회(전인대)에 참석,미국이 양안위기에 개입한다면 중국은 대만을 무차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홍콩언론들이 13일 보도.또 신화통신도 중국공군이 대만해협 군사훈련기간중 지역전 적응에 초점을 맞춰 훈련계획을 한단계 격상시켰다고 보도. ○“중국인 스스로 위기 풀어야” ○…대만은 13일 자신들을 위해 미국 등 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발표.냉약수외교부 대변인은 국영TV를 통해 『미국의 어떠한 움직임도 자국의 국익을 위한 것으로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외국인들이 우리를 위한 전쟁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 대만의 유력지 중국시보도 대만에 대한 서방의 관심에 사의를 표명하면서도 이번 문제는 중국인 스스로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공산중국으로 하여금 우리가 외국 그리고 국제적인 반중국 세력과 손잡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격』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독립선언을 주장하고있는 야당 민진당 의원들은 이날중국의 군사훈련 영향을 받는 해역에서 두번째 반중시위를 전개.
  • 「전­노씨 재판」과 국가위상 바로 세우기/김석준(시론)

    세계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두 전직대통령을 위시,10명의 4성장군 출신을 포함하여 50여개의 별과 현직국회의원 등 16명에 대한 군사반란과 내란사건에 대한 재판이 11일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시작되었다.이미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각각의 비자금비리사건재판이 진행중이고 이들이 재판정에 따로 서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모습은 국민의 눈에 처음에는 충격으로 비쳤으나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긴 했다.그러나 이제 노·전씨 외에 최규하전대통령까지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세 전직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세계역사를 통틀어서도 최초로 기록될 일이다. 이번 재판을 보면서 우리는 「세기적인 재판」을 통해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차분히 점검하고 특히 세계화시대에 더욱 중요하게 대두된 국가위상문제를 바로 다루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이번 재판은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재판으로서 사법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뿌리내리게 하는 중요한 국가적인 재판이다.과거 정치권력은 국민의 자유의사에따른 민주주의원리 위에 창출된 게 아니라 군사쿠데타를 통해 총구에서 나왔다.쿠데타권력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재체제가 필연적으로 등장하며 기승을 부리면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이제 무력과 폭력에 의한 정치가 다시는 이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법의 심판을 통해 엄중히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재판이다. 나아가 이번 재판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열기 위한 역사적 작업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군사반란」이나 「내란」세력의 처벌만이 아니라 그동안 제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던 검찰·경찰 등 국가기관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국내외에서 국가위상을 바로세우는 일이다.국내적으로는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기소유예처분을 내린 일이 야당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으면서 국가위상에 상처를 입혔다.국제적으로는 비리척결작업이 외국기업의 국내 영업시에도 뇌물과 비자금을 바쳐야 한다는 일부 외국인의 잘못된 주장을 역으로 입증하는 모습으로 흘러가면서국가위상이 크게 위협당하는 경우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세계화시대를 맞아 국가위상의 회복과 긍정적인 국가이미지의 창출은 국제정치나 외교차원만이 아니라 국내기업과 상품의 외국시장진출이라는 통상을 통한 국가이익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국내기업이 수십억달러 들여 벌이는 기업홍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국가이미지를 통한 제품홍보임을 고려할 때 국가위상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경제적인 이익뿐만이 아니다.전세계가 하나로 되는 지구촌의 정보사회를 맞아 국가의 품격과 위상은 국민의 삶의 질과 가치를 높이고 국제적으로 대우를 받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킬링 필드」와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어떤 나라가 세계인에게 인식되었을 때 그나마 국민의 가치나 상품의 신뢰성및 국가의 위상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국가이미지는 지난 30여년의 군부통치로 인해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측면이 컸다.「동방예의지국」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 「88올림픽」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독창적인 한글을 이용하는 문화국가」 「현대와 삼성」 조선국가,철강국가,신흥공업국가 등 긍정적인 국가이미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그대신 「한국전쟁」,「코리아게이트」,5·16,12·12,5·17,5·17등의 군사쿠데타,독재체제,부정부패,광주학살,인권문제.남북분단국가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배했었다.다행히 문민정부 출범이후 UN안보리 진출,APEC과 ASEM 주도,국내기업의 외국진출 확대,자동차·조선·반도체·전자제품·철강 등의 세계시장 주도 등과 같은 정치경제적 노력과 개혁및 과거청산작업이 알려지면서 국가이미지와 국가위상도 크게 나아지고 있다. 이번 세기적인 재판을 통해 한국이 인류의 보편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정의를 실현하는 선진민주국가임을 전세계에 적극 알리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진실에 바탕한 재판절차,최규하씨의 진술,5·18의 철저한 진상규명 등 직접적인 재판절차가 지켜져야 한다.또한 일부 피고인의 4·11총선 옥중출마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행동에대한 유권자의 이성적인 심판과 함께 월드컵유치를 통한 국가위상 높이기 노력이 범국민적으로 추진될 때 「세기적인 재판」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이번 재판이 「아시아의 용」이나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가 법의 정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진정한 문민민주국가임을 전세계인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다.
  • 소규모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카네스로드 미 아델피대교수(해외논단)

    ◎세계질서 확립차원 미군 개입전략 마련을/소 붕괴후 지역패권경쟁 등 새 안보환경 형성/「인도주의」 명분보다 「민주수호」 정치적 접근 필요 소연방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은 미국의 외교정책사에 큰 획을 그었다.공산세계 이후의 새로운 시대가 형성되면서 안보환경에 극심한 변화가 일고 있다.이에 따라 미국안보정책에 관해 몇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미국은 종전처럼 무적의 막강한 군사력을 전세계에 배치해 가상적을 압도해야 하는 것일까.미국은 적이 없는 현실 속에서도 이익 유지를 위해 군사력의 해외사용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가다듬고 있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미국은 직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전세계의 소규모 분쟁에 계속 개입하는 것이 옳은 정책방향일 것으로 생각된다. 소규모분쟁이란 흔히 제한전이나 내전·게릴라전등 저강도분쟁을 뜻한다.미국 안보정책은 소규모분쟁 개입을 대형전쟁에 대한 것 못지않게 일관된 특징으로 하고 있다. 소규모분쟁은 대부분 내전이나 혁명과 연계돼있어 정치적 의미가 심대하다.또 강대국들의간섭으로 대내외적인 복잡성을 띠게 마련이다.유고슬라비아문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소규모분쟁에 미국이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안보환경 때문이다. 소련위협의 소멸은 미국의 안보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동시에 세계안보지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모스크바의 영향력이 상실되면서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민족간 대립이나 야망도 함께 해소됐지만 소련힘의 공백을 틈타 90년 이라크 후세인 처럼 지역패권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등 새로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특히 세계안보환경 변화양상은 국가주권 행사의 경계선 불투명성과 경제우선주의등으로 표출된다. 앞으로 미국이 직면할 안보 도전은 3가지로 요약된다.첫째는 미국 국토 자체 또는 미국인과 해외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동맹국이나 친구들에 대한 위협,세계질서에 대한 위협등이다.이는 테러리즘,국제마약거래,불법이민,핵탈취나 제한핵공격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두번째는 재래전이나 내전,미국과 긴밀한 안보 연계를 맺고 있거나 중요한 이해가 걸려있는 나라에서의 쿠데타등이다.세번째는 미국의 이해가 걸려있는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이다.이 행위는 간접적으로 장기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미국이 보는 세계질서 이해의 위협 여부는 해당지역이나 세계에서의 민주정부의 존재 여부로 평가될 것이다. 미국은 이같은 여러가지 유형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무력의 제한된 사용에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없지 않다.따라서 어떤 조건에서 무력 사용에 나설 것인지,미국민의 여론악화등으로 발생되는 제약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교리나 접근방법을 어떻게 전환해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우선 유엔에 의존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그러나 유엔은 기본적으로 군사작전 수행 능력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그렇다고 유엔이 협력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유엔평화유지활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유엔은 또 걸프전 처럼 다국간 협력에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해준다. 그러나 유엔 없이 미국이 혼자 세계질서를 위한 군사작전을 준비해야 할 경우는 없을까.여기서는 다만 소말리아처럼 인도주의를 내건군사개입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목의 군사개입보다 합법성 획득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민주주의 체제 구축은 단기적으로 불안정성과 장래의 분쟁을 해결하는 처방이 될 수 있다.반면 인도주의적 접근은 국제적 품위는 지켜주되 지역적 정치분쟁을 가열화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작전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작전 측면이 아니라 개념 측면에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미국은 소규모분쟁을 정치적으로 크게 보아야 한다.군사측면보다 정치분야에 전략적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또 적에 대한 것 못지 않게 미국 우방의 장단점도 잘 평가해야 한다.미국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를 소규모전에서 중심고리로 삼아야 한다. 한편 미국관리들은 정치영역은 상대방에게 자유선거를 치르도록 압박하는데 기여돼야한다고 왕왕 가정한다.그러나 선거개혁이나 정치구조 변화는 파괴적인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결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미국은 따라서 주민 생활에 즉각적이고 극적인 차별을 가져오는 개혁을 무시해야 한다.예를 들면 행정 및 사법제도개선,부패관리 제거,법구조나 세제개혁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소규모전의 경제적 차원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강대국의 개입은 의도와는 달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소규모전쟁 수행능력은 두가지에 좌우된다.개념적 명료성과 작전효과성이다.미국은 더이상 논쟁을 피하려 하지 말고 군사·정치·경제·정보등 모든 차원에서 소규모전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전략과 행정적 틀을 마련하는데 나서야 한다.또 미국은 군사측면보다 전략적·정치적 지혜를 잘 짜내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젭 부시 미 헤리티지재단이사 헤리티지 계간지 기고(해외논단)

    ◎「윤리 위기」의 미국… 덕성교육 시급하다/개인적 가치관 중시 풍조가 사회병리 불러/공동체 의식 함양에 가족·학교가 앞장서야 「덕있는 시민이 되자,예절바른 시민사회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다름아닌 미국에서 보수계를 중심으로 일고있다.이와 관련,부시 전대통령의 아들로 플로리다주지사 공화당후보였던 젭 부시 헤리티지재단 이사는 헤리티지 계간지에 「현대의 성격도야」라는 글을 발표했다.덕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글을 소개한다. 미합중국의 헌법제정자들은 국민들의 좋은 성격과 덕성 여부에 따라 갓 태어난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조지 워싱턴 초대대통령은 퇴임사에서 『국민들이 정부를 선출하는 체제에서 덕성과 도덕심은 필수적 샘과 같다』고 했다. 지금 미국의 정치체제는 역사상 전례없는 문화적 퇴락으로 위협받고 있다.범죄의 증가,가족제도 붕괴,실패한 교육,미래에 대한 희망 상실 등은 이같은 윤리적 위기의 증후들이다.그런데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다스리고,돕는 책임을 내버린 채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거니 하고 바라고만 있다.그러나 사회의 개선은 덕을 갖춘 개인,가족,공동사회를 통한 아래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결코 층층의 정부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정부는 본연의 목적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개인 스스로서는 갖출 수 없는 것을 제공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끔 망각한다.이는 정부의 합법적 목적이 「공동사회가 해야만 하지만 불가능하거나 잘 할 수 없는 것을 공동사회에 베풀어 주는데 있다」는 링컨의 말에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개인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것에는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이면서 링컨은 도로,교량의 보수,사망자의 유산처리,가난한 미성년자들의 보호 등을 합법적인 정부가 할 일의 예로 들고 있다.가족과 공동사회를 돌보는 덕성스런 시민정신까지 정부가 넘보거나 맡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링컨은 깨달았던 것이다. 덕성 함양에 관한 학문의 대가인 제임스 윌슨은 좋은 성격의 기본으로 감정이입과 자제력을 들고 있다.감정이입은 타인의 권리,요망,감정 등을 헤아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제력은 욕망충족을 지연시키는 습관,혹은 「지금 당장」보다는 행동의 장기적 파장을 염두에 두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성격의 중요함이 드러나는데 바로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어떤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오로지 우리들만의 개인적 이득을 헤아리는가,아니면 공동의 이익이나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복지에 끼칠 영향을 마음에 떠올려 보는가.우리가 안고 있는 문화적 병리현상의 많은 부분은 성격의 단순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어떻게 하면 공동이익,공동의 선이란 의식을 명확히 갖춘 시민들이 우리 주위를 계속 둘러싸도록 할 것인가.어떻게 다음 세대까지에 이어지도록 덕성과 강한 성격의 개인들을 길러낼 것인가.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의 도덕교육은 부모,대가족,동네,학교,종교단체 그리고 몇몇 시민단체에 맡겨져 왔다.그러나 지금 이들 사회적 기관의 처지와 실상은 어떤가.어린이들은 병들어 있는 사회기관,가족,공동사회의 반영이다.이 성격도야 기관들은 자체의 분해과정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에 앞서 오래전부터 「덕」이란 언어를 잃어버렸다. 현대의 복잡·다양한 사회는 보편적인 일련의 윤리규범보다는 개인및 그룹별로 서로 경쟁하는 가치관 아래 움직이고 있다.개인의 신념·견해·선호가 구체화한 「가치」란 것이 윤리적 등불로서 덕을 대체했으며 따라서 현대 문화에는 수없이 상이한 가치체제가 병존하고 있다.성격도야 기관들은 이 가치체제를 하나씩 모두 인정해야 된다는 주의로서 우리에게 지침 대신 여러 일탈되고 상궤에서 벗어난 행동을 정당화하는 도구를 제공한다.한마디로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것과 나쁜 것을 구별시키는 교육 대신 어떻게 하면 사정에 정통한 가운데 선택을 하느냐를 가르치는 것이다.그러나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방향인 것이다. 선택과 방향,덕과 가치의 구별은 아주 중요하다.덕은 절대적,보편적 윤리에 자리잡은 가운데 어느 문명사회에서나 단단히 뿌리박은 행태의 기준을 말한다.불굴의 인내,신중,정의로움,절제,규율,책임감,정직,명예심 그리고 동정심이 좋지 않은것이라고 누가 반박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비해 가치는 개별화한 신념·선호의 체계를 일컫는다.모든 사람,심지어 나치나 갱들까지도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개인적 가치관에 대한 과도평가는 우리 사이의 서로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래서 자기표현,개인주의의 「가치」가 욕망충족의 지연,책임감,가족에 대한 의무 등의 「덕」을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미국신문들은 어떤 사람의 선행을 보도하면서 「덕성스런,덕있는」이란 표현을 쓰지 않은지 오래다.이런 말은 극평·서평,부음란에서나 발견되는 죽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현 사회병리 현상을 치유·교정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이 일에는 덕과 성격의 부활,덕과 성격을 가르치는 기관의 중흥이 요청된다.즉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개인적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거니 하고 모른 체하는 대신 도덕적 판정을 내리는데,「덕」이란 말을 쓰는데,우리의 아이들에게 덕을 가르치는데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 페리 미 국방의 「탈냉전시대 아태방위구상」

    ◎“한­미­일 동맹 강화가 아태안보의 핵”/군사적위기 해소위해 국가간 신뢰증진 긴요/중국과 건설적 유대·북­미 핵합의 이행도 관건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13일 워싱턴 포트 맥네어에 위치한 미국방대학원에서 개최된 미국과 일본·중국 등 아시아국가들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석,탈냉전 이후 아·태지역의 평화를 위한 자신의 방위구상을 밝혔다.다음은 페리 장관 발표문의 요약이다. 냉전기간 동안 우리는 전쟁억지,막강한 핵무장 유지,대규모 지상군의 유럽 주둔,막강한 해군력의 태평양 배치 등을 통해 평화를 지켜왔다.이제 냉전은 끝났고 우리는 더이상 소련이나 바르샤바 조약국들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고 있다.그리고 우리의 핵무기와 유럽 주둔 병력을 감축하고 있으며 강력한 예방방위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태지역에서의 예방방위는 ▲한국·일본등 동맹국 ▲지역적 신뢰구축 ▲중국과의 건설적 유대 ▲미·북핵합의를 4대축으로 하고 있다. 첫번째 축은 한국·일본등 동맹국들이다.이들은 우리의 지역안보전략의 핵심으로 남아 있으며 아·태지역 안정의 핵심이 되고 있다.미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와 최대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우리는 전 지구의 번영과 자유 확산을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두나라가 함께 일함으로써 이들 목표에 진정으로 접근할수 있다.우리의 공동노력으로 지역분쟁을 막고,해양의 자유통행을 보장하며,대량파괴무기의 확산위험을 감소시키며,민주주의 신장과 인권존중·시장경제를 지켜나갈수 있다. 또한 한국·일본과 관련된 안보 이외에 우리는 아·태지역 전체국가들과 안보이익을 공유하고 있다.그것은 우리 예방방위전략의 두번째 축이 되는 것으로 다자간 주도적 참여 확대를 말하며 이로써 역내 긴장을 감소시키고 평화를 증진시킬수 있다.나는 항상 공식적 개인적 채널의 안보대화망을 구축하여 신뢰와 이해와 협력을 이룩해나갈 것을 희망하고 있다. 나토는 유럽에 평화주도의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이같은 망을 형성,동·중부 유럽국가들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새로운 민주주의가 도달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지금은 아·태지역의 안보협력망을 구축하기 위해 아시아의 국방책임자들이 모여야 할때라고 생각한다.따라서 나는 아·태국방장관들의 정기적 만남을 통해 상호이해증진과 군사적 위기의 평화적 해소등을 위한 아·태국방포럼의 개최를 제안한다. 세번째 축은 중국과의 건설적인 유대관계를 말한다.중국이 지역안보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해가는 것은 세계 최대의 인구와 세계4위의 경제규모,거대한 군대,의욕적인 군현대화 계획 등을 볼때 예측이 어렵지 않다.핵도 갖고 있으며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기도 하다.이같은 점들이 중국으로 하여금 단순한 지역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범세계적 중요성을 갖게 한다. 미·중의 유대강화는 중국이 한반도와 같이 미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걸린 불안정지역에서 안정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영향을 끼칠수 있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위협은 중국이 책임있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이제 중국은 미사일 실험이나 대만 위협,핵기술 이전,인권침해 등 부정의 메시지가 아닌 긍정의 메시지를 세계에 보낼때다. 네번째 축은 미·북핵합의로 아·태지역에서의 핵확산 방지를 가리키고 있다.94년봄 북한이 1년에 5­6개의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핵프로그램을 건설하는 것은 세계적 위협이 되었고 그해말 미국의 주도하에 한국 일본등이 나서 핵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그후 미국의 북한과의 관계는 확고하며 북한은 핵합의를 이행해오고 있다. 이같은 아·태지역에 있어서의 예방방위전략은 전쟁위협 최소화의 상황을 창출했다.그러나 이 전략 자체가 우리의 안보를 확약해줄 수는 없다.우리는 아직도 많은 잠재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전쟁억지에 설득력있는 충분한 군사력 유지가 요청되고 있다.만약 억지에 실패한다면 싸워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억지전략에 절대적인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은 아·태지역에 전진배치돼 있는 10만명 미군의 존재다.이들은 전지역을 커버하는 안보 우산을 제공하고 있다.역내 군비경쟁을 막고 핵확산도 막고 있다.그리고 아·태지역이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고있는 것도 바로 미국의 존재인 것이다.
  • 크리스토퍼 국무 하버드대 초청연설

    ◎중요지역 평화정착·새 안보위협 대처·시장개방 촉진/미 올 외교정책 3대 목표/아세안포럼 통해 아·태 새정치협력 모색/한국 안보 위해 북한핵 지속적 동결 중요 미국의 올해 외교정책은 ▲미 국익에 중요한 지역의 평화정착 ▲새로운 범세계적 안보위협에의 대처 ▲시장개방 촉진 등 3대 목표 아래 수행될 것으로 밝혀졌다. 워렌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18일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원장 조셉 나이 전국방차관보) 초청연설에서 96년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을 이같이 설명하고 미국은 이 목표의 추진을 위해 일본·중국·러시아·유럽 등 기존 강대국들과의 협력강화를 우선적으로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또 범세계적 평화와 번영을 위해 유엔,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한편 민주주의와 인권옹호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임을 밝혔다.동시에 국제테러와 범죄·마약의 척결과 환경보호노력 강화 등 모든 국제문제에 있어서의 「미국의 지도력」 유지를 강조하고 이를 위한 비용지출의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특히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수준의 정치협력 필요성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지난해 마이애미 미주 정상회담에서 성취한 것과 같은 새로운 수준의 정치협력 관계를 아·태지역에서도 모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또 『역내 맹방들과 안보협력을 긴밀히 하는 한편 우리가 새롭게 참여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 포럼을 통해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보 기반도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크리스토퍼 장관은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크리스토퍼 장관은 『우리의 지역적인 핵확산 방지 정책과 관련해 북한핵의 계속 동결이 중요하다』면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크리스토퍼 장관은 각국별 현안을 점검하면서 러시아의 경우 『국제적 규범을 준수하고 개혁정책을 지속해 가지 않을 경우 서방의 경제 및 정치기구와의 통합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의 사태들은 러시아의 개혁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공산주의 붕괴 4년째를맞아 러시아가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하게 한다』고 우려를 표명한 크리스토퍼 장관은 다음달 제네바에서 예정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신임 러시아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공동의 난제에 대해 협력해 나갈 용의가 있음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중국과 관련,『인권이나 핵확산,무역과 같은 문제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중요한 의견 차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중국이 미국의 관심사를 배려하지 않거나 국제적으로 인정된 원칙을 존중하지 않을 때 양국간의 적극적인 관계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김영삼대통령 새해 국정연설/전문

    ◎“정경유착 단절·공명선거 제도적 보장”/국민불편 최소화… 「민족도」 높은 나라로/북 군사력 증강하며 지원 바라는건 민족 배신/중기·영세업자 적극지원… 물가 4.5%서 억제/“대통령되기까지 후원자 도음 받았지만 치부 안했다” ▷국정 운영전반◁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1996년 새해를 맞아 국민 여러분 모두 소원성취하시고 큰 기쁨과 보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올해의 국정운영과 관련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동참을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지금 「세계화」라는 새로운 변화와 도전의 물결속에 있습니다.이는 인류역사의 새로운 틀을 마련했던 산업혁명에 비교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물결입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세계 여러나라는 지혜와 자원을 총동원하여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고 있습니다.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헤치고 21세기초까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소명입니다. 21세기는 우리 민족의세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무한경쟁시대에 우리 민족이 세계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낙후된 제도와 의식,그리고 관행을 쇄신해야 합니다. 문민정부의 「변화와 개혁」「세계화」 그리고 「역사 바로 세우기」는 새로운 문명사적 변혁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자기혁신과정인 것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 국민 여러분.최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할 전직대통령 두분이 구속되는 헌정사상 처음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검찰 조사과정에서 나타난 엄청난 탈법과 비리의 실상은 우리 모두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저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먼저 12·12와 5·18에 관련하여 말못할 고초를 겪은 많은 분들에게 심심한 위안의 말씀을 드립니다.아울러 지금까지 조국의 번영을 위해 묵묵히 땀흘려 오신 국민 여러분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위로 드립니다. 전직대통령을 구속하고 재판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불행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 역사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우리는 이를 통해 군사쿠데타라는 불행하고 후진적인 유산을 영원히 추방함으로써 군의 진정한 명예와 국민적 자존심을 되찾을 것입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 미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입니다.그것이 바로 「나라 바로 세우기」인 것입니다.이는 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일관되게 추진해 온 일입니다. 우리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인 옛 조선총독부건물을 철거하기 시작한 것도 역사를 바로 잡아 민족정기를 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저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참뜻을 이해하고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일시적 고통을 감내하고 진실로 불의와 부도덕을 청산해야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정의와 진실이 살아숨쉬고 신뢰와 협력이 충만한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저는 「역사 바로 세우기」는 바로 「제2건국」이라는 믿음으로 국민과 더불어 이 시대적과업을 완수하고자 합니다.바로 이것은 우리 국민의 명예혁명이기도 합니다. ▷정경유착 추방◁ 국민 여러분.저는 지난 대통령선거때 「한국병」을 치유하겠다는 약속을 국민 여러분에게 드린 바 있습니다.「한국병」 중에서도 대통령이 돈을 받는 것은 가장 큰 병입니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저도 과거 야당시절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활동을 위해 저의 후원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그러나 깨끗하지 못한 검은 돈,어떠한 이권과 관련된 돈이나 조건이 붙은 돈은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저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말못할 고초를 겪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들의 도움으로 조국의 민주화 투쟁도 하고 당을 운영했으며 어려운 동지들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저를 포함한 그 어떤 정치인도 이러한 잘못된 관행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인 축재를 위해서는 단 한푼도 받거나 쓰지 않았습니다.저는 상도동에 있는 저의 집 이외에 단 한평의 땅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정치자금 관행과 선거문화 속에서 정치를 해야만 했던 제가 스스로 만들고 엄격히 지켜온 원칙이었습니다.오랜 세월 정치를 해오면서 저는 늘 우리정치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정치가 돈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저의 재산을 공개했고 앞으로 정치자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아울러 정경유착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금융실명제를 단행했습니다.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전직 대통령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밝혀내는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 입법도 추진했습니다.부정부패의 척결,군과 정보기관의 개혁,공직자 재산등록,부동산 실명제는 우리 사회를 깨끗하고 경쟁력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위대한 우리국민의 민주 역량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이처럼 우리는 「변화와 개혁」없이는 나라의 밝은 장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지난 3년간 「국가의 큰 틀」을바꾸어 왔습니다.새롭고 건강한 나라를 건설하자는 열망속에서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신 자기희생정신과 지속적인 성원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제도·관행 선진화◁ 지난해에도 우리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과감한 「세계화」를 통해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세계중심국가」가 되기 위한 경제적 기반도 구축하고 있습니다.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통해 마련된 경제정의의 기반위에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수출 1천억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세계화 시대를 이끌어나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개혁과 사법개혁도 추진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갈망해 온 지방자치제의 완전한 실시로 참여와 자율이 존중되는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었습니다.아울러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단행한 특별사면과 일반사면은 모든 국민이 이러한 역사적 과업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1995년은 우리나라와 민족의 위상과 자존심을 한껏 높여준 한 해 였습니다.유엔안보리이사국 진출,APEC에서의 주도적 역할과 함께 정상외교도 활발히 펼쳤습니다. 이와 함께 동포애적 차원에서 북한에 쌀을 제공하고 경수로 협정을 타결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이러한 성과는 국민적 단합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21세기가 불과 5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우리 앞에 놓인 5년은 2000년대의 우리의 위상과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나라의 제도와 관행을 선진화 일류화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제적으로 존경받고 매력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국민 만족도」가 높은 나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도 「물질적으로 잘 사는」 차원에서 「인간답게 사는」 차원으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과업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저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다섯가지를 금년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6대 국정과제◁ 첫째,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기반을 조성하겠습니다. 북한은 현재 심각한 식량부족과 경제난을 겪으면서 국제사회에 구호를 호소하고 있습니다.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입니다. 경제난의 근본원인은 2천만의 인구에 1백만이 넘는 세계 5위의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따른 과다한 군사비와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비능률에 있습니다. 북한이 동족을 위협하는 군사력 유지에 모든 국력을 쏟아넣으면서 국제사회의 구호를 바라고 있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죄악입니다. 저는 북한이 화해와 협력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직시하고 대남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북한이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하면서 호혜적인 입장에서 경제난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남과 북은 이제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그러나 우리는 환상적인 통일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국민을 불안케 하고 북의 오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무분별한 통일논의는 통일은 물론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우리 경제의 체질강화를 통해 선진경제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겠습니다. 금년에는 경제여건이 지난해보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경제가 지속적으로 안정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물가안정이 이루어지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금년에는 4·5% 내외의 물가안정을 이룩하고 내년 이후에는 선진국형 저물가 구조가 정착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와 함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하여 경기양극화 현상을 완화하도록 하겠습니다.중소기업 문제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중소기업청도 곧 설치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 3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농정개혁을 통해 우리 농업과 어업의 장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자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년에는 농정개혁의 성과가 농어촌 현장에서 더욱 확산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현장중심의 농정개혁을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소득 1만불 시대에 알맞는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농수산식품의 품질향상에도 더 한층 노력할 것입니다. 셋째,국가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혁해 나가겠습니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깨끗한 정치」「돈 안드는 선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지역분열의 구시대적 정치를 청산하고 21세기 선진한국을 주도해 나갈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도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또한 금년 4월에 실시될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헌정사상 가장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저는 여야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번 선거가 진정으로 돈안드는 깨끗한 선거가 되도록 다시한번위대한 민주 역량을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사회 부문에서도 규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완화하여 자유롭고 편안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아울러 세제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조세정의를 구현해 나갈 것입니다. 넷째,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생활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국정운영의 중심을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둘 것입니다.재난과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한 나라」,교통난과 환경오염,물가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편안한 나라」,사는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문화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특히 국민이 각종 사고에 대한 불안을 갖지 않도록 안전문화확립을 중요 정책과제로 추진하겠습니다.또한 민생치안을 강화하여 국민을 범죄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 아울러 세계화 시대의 선진복지국가로 나갈 수 있도록 중·장기 국민복지의 청사진을 펼쳐나갈 것입니다.노인 장애인 영세민을 비롯한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복지증진방안도 마련하겠습니다. 입시고통과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교육개혁이 학교마다 교실마다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국민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문화와 국토개발입니다.개발과 환경보존이 서로 잘 조화되도록 국토개발을 추진해나가고 온 국민이 문화적인 삶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문화체육시설을 대폭 확충하겠습니다. 다섯째,21세기 「세계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하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일류의 정보화와 물류유통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중요합니다.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중심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이를 위해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공공부문의 정보화를 서두를 것입니다.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국제적 물류유통에 대처하여 물류기반시설도 더욱확충하고 체계화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항만 개발,영종도 신공항 건설,고속철도망 구축은 21세기 동북아의 물류중심지가 되기 위한 사업입니다. 끝으로 「세계 중심국가」를 지향하면서 신뢰와 협력의 세계질서 창출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국제평화의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미국 일본 등 주요 우방과 관계를 긴밀히 하고 제3세계와 실질적 협력관계를 넓혀 나가겠습니다. 올해안에 OECD가입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그에 상응하는 국내제도의 정비도 차질없이 추진할 것입니다.출범 2년째를 맞는 WTO체제의 새로운 국제무역 질서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변화하는 세계경제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개헌논의 불필요◁ 국민 여러분. 최근 정계 일각에서 내각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개헌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저는 오늘 이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차례 강조해 온 바와 같이 긴박한 남북대치상황속에 있는 우리나라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통령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속에 탄생한 내각책임제의 제2공화국이 거듭되는 정국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5·16 군사쿠데타로 쓰러졌던 쓰라린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내각제를 실시할 경우 정경유착으로 부패가 되살아나고 파벌정치로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헌법이 대통령임기를 5년 단임제로 정한 것은 우리 헌정사의 오랜 고질인 장기집권과 독재,그리고 부정부패를 막기위한 것입니다. 저는 국민적 합의로 만든 현행 헌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제가 대통령직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것은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힘껏 봉사한다면 5년 임기가 결코 짧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은 우리가 단합된 힘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할 이 중요한 시점에서 개헌논의로 국력이 낭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러한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임기중에는 어떠한 개헌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바입니다. ▷개혁 내실확충◁ 국민 여러분. 제가 말씀드린 이 모든 과제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그러나 우리가 단합하여 지혜를 모은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각종 부조리를 척결하고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하는데 온 힘을 모았습니다.이제는 개혁의 내실을 다져 우리나라가 21세기 일류국가가 되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내느냐 못해내느냐에 따라 21세기 우리의 삶이 달라지고 나라의 모습이 크게 바뀔 것입니다. 이 시대적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지난 한햇동안 우리는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금년 한해도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한 꿈과 믿음,그리고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준비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갑시다.저는 사랑하는 국민과 함께 조국의 영광을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겠습니다.「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정의와 진실 그리고 법이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역사를 바로 세움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북한 식량난 무기화 가능성(박화진 칼럼)

    연말연시를 전후해 한미양국의 대북한 공조체제에 동요가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게하는 조짐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해 국제사회가 지원에 나서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대량난민사태 또는 군사도발의 가능성등도 있다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북간 접촉이 여러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다.미국정부는 북한군 장성을 하와이로 초청,미군유해송환 회담을 갖기로 했는가 하면 북한의 스커드미사일 수출문제와 관련 독자회담도 가질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정부에 대해 대북군사접촉 재량권도 요청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우선 북한의 식량난에 관한 엇갈린 보도다.북한식량사정이 좋지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붕괴직전의 극심한 상태에 빠져있는 것인가.미국중심의 많은 보도들은 그런 것으로 전하고 있다.북한탈출자,여행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국제기구대표들 까지도 그렇게 전하고 있다.그러나 우리정부의 평가는 다르다.북한식량난이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뿐만아니라 북한을 아는 중국과 러시아의 자체 실태조사결과도 그런 방향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공산체제특유의 배급체계를 감안할때 북한나름의 생존방식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만성적 식량난을 핵개발의 경우처럼 무기화하고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된다.북한에서 정부가 독점하고있는 식량은 강력한 주민통제의 수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식량의 부족은 대내적으로 더욱 효과적인 공포의 통제 수단이 될수있을 것이다.대외적인 식량난선전은 국제적인 동정심을 유발하고 식량무상획득의 수단이 될수있으며 한미관계를 이간시킬수 있는등 다목적효과의 수단이 되고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않는가.신뢰도 제로의 북한은 이미 작년수재를 과장발표하고 선전한 전력도 갖고있다. 북한은 월남전때의 월맹처럼 미국의 민주주의와 인도주의등을 역이용 하고 있는지 모른다.미국뿐만아니라 세계와 우리 언론까지를 상대로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함을 간접 선전함으로써 체제붕괴의 위기를 가장,대량난민사태와 군사도발 가능성도 있음을 선전함으로써 현재 처하고있는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이미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우리와 일본이 이미 50만t의 쌀을 제공했으며 북의 기대에는 미치지는 못하는 양이었으나 국제적십자등의 구호도 받고있다.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등 미국언론들도 북한과 이룩한 핵협정을 무산시킬 수는 없다며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을 내세우는등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비교적 동정적인 보도를 하고있다.그리고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클린턴대통령의 미국정부도 북한과의 단독거래 가능성을 비침으로써 우리의 대북추가식량지원을 간접적으로 종용하고 있다.월맹은 미국의 여론과 선거를 협상의 무기 또는 기회로 활용한 기록이 많으며 북한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정부는 물론 미국도 북한의 의도와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특히 북한속성을 잘 모르는 미국은 월남협상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북정책에 관한 우리정부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할것이며 한·미·일 공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세계언론도 확인되지않은 북한식량난극심 보도가 북한전략에 역이용당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한 「사실조사와 제공된 식량의 군사전용방지」가 보장된다면 식량추가제공도 검토 가능하다는 우리 정부태도는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것이다.
  • 로버트 듀자리치 미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해외논단)

    ◎“동아시아에 다자안보기구 생겨야한다”/중국·대만 충돌땐 질서붕괴… 번용 크게 해쳐/이웃 일본등에 충격파… 군비경쟁 가속화 부를듯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로버트 듀자리치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대만의 긴장고조를 집중분석하면서 동아시아의 안정유지를 위한 이 지역 다자간 안보기구 창설필요성을 강력 주장했다.허드슨연구소 월간논문집에 실린 그의 글을 소개한다. 최근의 대만·중국간 긴장고조는 일시적일 수 있으나 이 위기가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동아시아의 질서는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간에 군비 경쟁이 불붙을 것이며 뒤따를 외교·군사적 대립은 동아시아의 경제적 번영을 크게 해치게 된다.중국·대만에 관한 외교정책은 내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큰 이슈의 하나로 부각될 조짐이다. 각국 정부가 이성적 바탕에서 움직인다고 믿을 땐 중국이 대만을 실제 공격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그러나 정부를 이성적 주체로 파악할 때 만큼 장래 중국의 행동이 선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불행스럽게도 이우려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만약 중국이 사회경제적 변화의 무게와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열되기라도 하면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한편 중국의 민주화가 진전되는 방향을 택한다 하더라도 이같은 움직임은 대만과 중국간에 평화를 확고하게 정착시킬 정도는 되지 못할 것이다. 민주화,민주정체의 채택은 그 자체가 평화주의적 성향을 뜻한다고 보는 논자도 있으나 야심있는 국가들의 「젊은」 민주주의에 관한 실제 역사는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혁명기의 프랑스,독일 제2제정,왕정체제의 이탈리아,명치·대정시대의 일본 등 반헌법국가적 경험일천한 민주정체는 필요하다면 다른 민주국가에 대한 공격과 영토확장을 불사하고 능히 이를 실행해 왔다. 대만과 중국이 맞붙게 될 때 그 결과는 선뜻 점칠 수 없다.비록 중국이 대만보다 엄청나게 인구가 많긴 하지만 이 섬 공화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전면공격보다는 장기적 마찰형태의 전쟁이 한층 가능성이 있는데 이때도 중국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좌우간 중국이 대만에 극단적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엔 아시아는 충격파에 휩쓸리게 된다. 먼저 일본이 커다란 위협을 느낀다.일본의 방위비는 아시아 기준으론 상당하긴 하나 병력이 징병제인 이웃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현대적 장비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나 다른 아시아국가도 군장비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국 러시아 북한(한반도 통일후 북한의 핵하드웨어를 보존할 수 있을 땐 통일한국) 파키스탄 인도 등과는 달리 일본은 핵무기가 없다. 중국의 공격에 대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모른체하고 일본은 사업을 계속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으나 이는 아주 위험한 일일 것이다.중국의 공격은 실패하더라도 즉시 이 지역에 치열한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며 승리할 경우 공산정권은 영토「반환」요구를 제기하면서 일본을 다음 타켓으로 할 수 있다.또 한국은 옛 식민지배국인 일본에 반감을 품고 있을 수 있으며 특히 통일을 이루었을 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큰데 만약 중국과 한국이 동맹이라도 맺게 된다면 일본은 중국의 협박을 모른 체하지못할 것이다.일본이 재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에겐 중국·대만 전쟁은 어떤 상황이 되든 좋거나 보다 유리해질 가능성은 없다.동아시아의 보다 작은 나라들도 같은 상황에 빠질 것이다.한국에겐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분쟁은 국가간의 갈등 해결책으로 전쟁을 택하는 시대의 재도래를 의미한다.또 이 분쟁은 한국에겐 중국·일본간의 분쟁가능성으로 연결된다.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은 이 두 아시아 대국간의 분쟁이 있을 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왔다.중·일은 가끔 한반도에서 서로 싸웠던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분석해볼 때 중국을 대결이 아닌 협조,협력체제로 끌어들이는 일이 아시아 그리고 미국에게 떨어진 긴급임무라고 할 수 있다.대만전 가능성은 한 측면에 불과할 뿐이다.외국이 관여할 수 없는 중국 내정문제는 차치하고 아시아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관계를 몇몇 열거해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다.이어 아시아 안보의두번째 요인은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다.미국은 대만국민들이 자유 의사로 본토통합을 결정하지 않은 한 대만의 실질적 독립을 지지한다는 뜻을 중국에게 명백히 해야한다.서유럽의 군사·민간 관리들은 나토를 통해 같이 일하는 걸 배웠는데 현재 동아시아는 이같은 다자간 안보기구가 결여되어 있다.미국은 이 지역에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포함되는 다자안보 기구가 생겨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 기구는 지난 1945년이후 한·일 관계를 훼손시켜온 강한 상호의심을 완전 불식하지는 못하더라도 경감할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가 일본에 등을 돌리도록 한국을 충돌질하고자 시도하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다.
  • 두환­노태우 군사반란죄 공소장 전문

    피고인 전두환은 1955.9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1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제1사단장등을 거쳐 1979.3부터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 10·26 중앙정보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세칭 「10·26사건」(이하 「10·26사건」이라한다)이 발생함에 따라 10·27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소속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한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980.4.14부터 7.17까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5.31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근무하다가 8·6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8·27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9.1,취임하고 다시 1981.2.25 개정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3.3 취임한후 1988.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 같은 노태우는 위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1955·9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9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거쳐 「10·26사건」당시에는 제9사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수도경비사령관,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1981·7 육군대장으로 전역한후 정무제2장관,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등을 역임하고 1985.2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및 총재로 재직하다가 1987·12·16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2·25 취임한후 1993·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자로서 1995·12·5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계속 중에 있는자 등인바, 「10·26 사건」이후 국내정치상황은 유신헌법을 개정하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79·11·8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개정을 통한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11·21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이 모색되는 가운데 12·8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체되어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군 내부에서도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10·26사건」이후 발생한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 국한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피고인 전두환이 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 「10·26사건」과 관련하여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된 이재전 대통령경호실 차장의 석방,청와대에서 발견된 금원의 처리,부정축재자의 처리 및 재산몰수,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허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승화 총장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 오던중,11월 중순경에 단행된 군인사에서 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정규육사 출신의 피고인등이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자신들의 군내 입지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12월 초순경 군 일각에 피고인 전두환이 잦은 월권행위와 군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곧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승화총장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 전두환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피고인등은 위 전두환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입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군의 주도권 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당시 박대통령 시해 현장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군본부(이하「육본」이라한다)로 동행한 사실로 인한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총장이 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이미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정승화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12·7경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한다)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12로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육군중령 이학봉에게 연행장소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8경 육군참모총장 공관(이하 「총장공관」이라 한다)을 연행장소로 결정한후 12·9경 위 이학봉,보안사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화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수도경비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12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고인 노태우 등 소위 「하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한다)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수도군단장육군중장 차규헌,제20사단장 육군소장 박준병,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금진영,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위 이학봉·허삼수,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위 우경윤,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옥,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홍,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령 송응섭,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는 사전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12 18·00경부터 19·00까지 사이에 위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위 허화평·권정달·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 상황을 파악,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위 조홍은 미리 계획한대로 12·초경 계엄업무로 수고하는 수도권 주요지휘관들을 보안사령관이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 장태완·정병주·김진기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12·12 18·30경 약속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상호불상 한정식집에 오게하여 유인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오전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현직 육군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려면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채 총기와 실탄을 준비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위 허삼수등에게 지시하고 이에 따라 허삼수·우경윤·성환옥·최석립·이종민등은 같은날 18·00경 합수부수사관 7명,경복궁 구내 주둔 수경사 제33헌병대 3개 제대 병력 60여명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집결시켜 총장공관 경비병등을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권총과 엠(M)16 소총으로 무장케 한 다음 18·50경 정당한 이유없이 위 부대를 인솔하고 수소를 이탈하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총장공관에 도착,각자 분담한 임무에 따라 무장한 합수부 수사관들을 총장공관 부관실,공관입구 헌병초소,공관현관등을 제압하고 제33헌병대 병력은 퇴로를 확보하고 19:10경 허삼수·우경윤이 총장공관 응접실로 들어가 정승화 총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받아야 하겠으니 녹음준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하였으나 정승화 총장이 이를거부하면서 수행부관 육군소령 이재천에게 국방부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가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동인이 부관실에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합수부 수사관 육군소령 김대균,육군소령 한길성,육군상사 박원철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난사하여 상관인 이재천과 경호장교 육군대위 김인선등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머리와 허리 등에 총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무렵 허삼수·우경윤은 정승화 총장을 끌고 나오던 중 우경윤이 성명불상자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 부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길성이 허삼수를 도와 정승화 총장의 양팔을 붙잡고 박원철은 엠(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응접실 대형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위협하면서 함께 끌고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19·30경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18·20경 위 이학봉,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소재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새로운 혐의 사실이 발견되어 연행.조사하여야 하겠으니 재가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였다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재가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20:20경 위 정동호·고명승에게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고 정동호·고명승 등은 그시경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제55경비대대 부대대장 육군소령 권중원 및 5분대기조 24명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출동하여 20·40경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그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후 그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2개 제대 병력 64명을 추가로 출동시켜 그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1·30경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여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고인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제26사단,수도기계화사단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3·00경 위 박희도에게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오라고 지시하고 위 조홍에게는 수경사 헌병단 병력을 출동시켜 수경사에 있는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위 최세창에게는 특전사령관을 체포한후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으로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24·00경 위 장기오에게는 제5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2·12 24·00경 위 구창회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황영시는 12·13 00·30경 위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01·10경 위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0·05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소재 제1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 1,2,5,6대대 병력 1천5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행주대교·능곡·수색을 거쳐 01·3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한후 제1,2대대 병력은 육본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등을 무력으로 제압한후 무장을 해제시키고 안으로 진입하여 육본 건물을 점령하고 제5,6대대 병력은 국방부정문에 근무중인 헌병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국방부 청사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제5대대 제15지역대 소속 성명불상 장병들이 국방부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 육군병장정선엽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고 02·40경 국방부장관실에 난입하여 합동참모의장육군대장 김종환등 장성 8명의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국방부 청사를 수색한 끝에 03·50경 지하 1층 상황실 입구에서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여 보안사로 연행하고, ○위 최세창은 12·12 23·30경 특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한다)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24·00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육군대위 김흥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과 함께 안으로진입하여 위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이 이들에게 엠(M)16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쇄골절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최세창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2·00경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 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03·00경 경복궁으로 진주하고, ○위 장기오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5공수여단 제23대대장육군중령 정낙준과 제26대대장 육군중령 장용주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정낙준·장용주 등은 12·13 02·00경 인천 북구 부평동 소재 제5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23대대 및 제26대대 병력 4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경인고속도로,제1한강교를 거쳐 03·2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하였으나 국방부와 육본이 제1공수여단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어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진주하고, ○위 조홍은 12·12 23·30경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에게 당시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수경사에 모여 있던 위 장태완·윤성민,육본 작전 참모부장 육군소장 하소곤,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문홍구 등 육본측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신윤희는 12·13 03·00경 헌병단 소속 육군대위 임대식·윤태이 등으로 하여금 헌병 55명을 지휘하여 사령부 외곽과 1,2층 복도를 포위케 한 후 03·40경 육군대위 한영수,육군대위 이재우,헌병단 정보과장 군무원 최순호,성명불상 헌병 5명과 함께 사령관실로 진입하여 장태완·윤성민·하소곤·문홍구 등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한영수가 엠(M)16 소총 1발을 발사하여 상관인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좌흉부관통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이필섭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구창회의 지시를 받아 12·13 02·20경 경기 고양군 벽제읍 소재 제29연대 연병장에서 제29,30연대 병력 1천3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구파발·홍은동을 거쳐 03·30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이상규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16전차대대 대대장 육군중령 김호영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김호영은 12·13 02·30경 경기 파주군 금촌읍 아동리 소재 제2기갑여단 연병장에서 제16전차대대 전차 35대와 병력 1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통일로·구파발·서대문 등을 거쳐 03·25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위 송응섭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송응섭은 12·13 03·30경 고양시 신도읍 삼송리에 집결한 제90연대 병력 1천1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홍은동·세검정을 거쳐 06·20경 고려대학교 운동장으로 진주함으로써 계엄지역에서 각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각 진퇴시키고 정당한 이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각 수소를 이탈하고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이재천·김인선·정병주·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각 미수에 그치고 초병인 정선엽을 살해함과 동시에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같은 노태우는 중요업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 앞으로 10∼15년 북,미에 위협적/CIA 국장 경고

    【워싱턴 로이터 연합】 존 도이치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은 19일 북한이 향후 10∼15년간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이치 국장은 이날 미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향후 10년간 전세계적으로 테러활동이 급증할 것을 증언하면서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이념이나 정권이 계속 존재할 것이며 북한이 이라크와 이란,리비아 등과 더불어 향후 10년에서 15년간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위경생 14년형의 저변(해외사설)

    중국의 정치와 경제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중국사회도 개화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반체제 인사 위경생이 징역 14년형을 받은 사실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그런 기대는 항상 잘못돼 왔다. 위경생은 결코 폭력옹호주의자가 아니다.중국정부의 눈에 비친 그의 범죄는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요구했다는 것으고 그의 요구는 아주 합리적이고 신중한 방법으로 이뤄져 왔다.그에 대한 대우는 해리 우의 경우보다 더 악랄한 인권탄압이다.이제는 미국시민이 된 해리 우는 지난 여름 신중하게 중국에 들어갔지만 추방당하고 말았다. 위경생에게는 그럴 기회도 별로 없다.공산당으로서는 인민통제를 잘 하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다.자유로운 정치토론은 권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따라서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유해한 것이고 나타나기만 하면 무장반란이 일어난 것처럼 무자비하게 진압해야만 한다. 이것은 서구정부나 투자가들이 중국과 사업을 하려면 직면하는 가혹한 현실이다.중국은 재판사실을 공개하면서 국제여론을 바보취급하고 있다.이같은 사실은97년이후 홍콩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다.대만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틀림없이 비난할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그러나 중국이 이런데 신경을 쓰리라는 기대는 환상일 것이다.강택민 국가주석은 지난 가을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어떤 경우에도 중국의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나지 외부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마찰이 있다는데 약간의 위안을 찾을수 있다.공산당이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들이 약하다는 신호이다.권력유지를 하려면 인민들의 지지와 높은 생활수준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종국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인민들은 더많은 정치기구를 요구할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천안문사건같은 전통이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 과도정부와 제2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8)

    ◎과도정부­통치권 한계… 과거청산·개혁에 실패/제2공화국­시위 잇따라 사회 대혼란… 「5·16」 초래 1960년 봄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로 종말을 고한 제1공화국에 이어 과도정부가 탄생 했다.그러나 과도정부는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국민들이 열망한 과거청산과 정치혁신을 실현하는데 실패 했다.그래서 약체 정권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은 군에 정권을 빼앗기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1960년 4월 21일 제1공화국의 운명이 황혼을 맞고 있을 때 이승만대통령은 자신이 평소 신뢰감을 갖고 있던 전 서울시장 허정을 만났다.이승만은 정부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외무부장관직을 수락하도록 부탁 했다.당시 장면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부통령직을 사퇴한 상태였다.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허정이 자연스럽게 대통령직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자유당 세력들도 특별한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허정이 수반을 맡아주기를 사실상 희망하고 있었다. ○허정 내각제 개헌 추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다음날인 4월27일 대통령서리에 취임한 허정 외무부장관은 우선 내각제 개헌을 떠올렸다.이 내각제 개헌은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학생들의 강력한 요구였고 민주당의 오랜 강령이기도 했다.허정은 취임초 첫 기자회견에서도 이 내각책임제 개헌실현의지를 밝혔다.허정은 이 회견에서 내각제 개헌을 다짐하면서 개헌을 이루어낸 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공약 했다.국회는 4월29일 민주·자유 양당 4명씩과 무소속 1명으로 개헌특위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되면서 공법학회는 개헌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보내오기도 하고 개헌특위 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도 들었다.마침내 개헌특위는 5월9일 개헌요강 작성에 대체로 합의한 뒤 6월10일 본회의에 상정했다.전문 103조로 돼 있던 제1공화국의 헌법중 무려 52개 조항을 고친 이 개헌안은 재적 2백11명중 찬성 2백8표,반대 3표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허정 과도정부는 5월2일 첫 국무회의를 열고 혼란상태의 정국 수습과 경제위기 타개책을 내놓았다.부정선거 관련자 엄중처벌및 경제사범 엄단,경제적 민주화 지향,중소기업 육성의 재정적 뒷받침,악질 세무관리 엄단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조직적 권력을 갖고있지 못했던 과도정부의 통치권에는 한계가 뒤따랐다.특히 군부의 부패 척결과 관련해 허정은 미국과 주한미군사령부의 견제 탓에 끝까지 숙군작업에 손을 대지 못했다.미8군 사령관 C B 매그루더는 허정에게 『한국군의 재편은 현존하는 불안정과 혼란이 종식될 때까지 연기돼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숙군에 제동을 걸었다. 4·19가 요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선거부정의 주요 음모자로 9명의 전직 각료와 15명의 자유당 간부를 3·15선거에서의 불법행위로 구속하는 것으로 그쳤다.이어 자유당에 선거자금을 불법 제공한 은행장들도 구속하고 정치·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정치깡패의 두목들도 우선 잡아들이기는 했다.그러나 자유당 정권과 연결돼 있었던 이들의 처리문제는 다음 정권과 군사정권으로 넘어갔다.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에 대한 처벌방침도거듭 밝히고 개인 18명과 기업가 66명의 명단을 공개했지만 제2공화국 출범 때까지 아무것도 매듭지은 것이 없다.결국 당시의 정치구도나 법적 기본구조를 깨뜨릴 의지도,능력도 없었던 과도정부는 다음 정권에도 큰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부정축재 84명 처벌못해 제4대 국회는 내각제 개헌을 끝으로 해산 했다.그리고 나서 새 헌법의 절차에 따라 19 60년 7월29일 실시한 제5대 민의원 선거와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일단 권력을 잡았다.민주당은 민의원 2백33석중 1백75석,참의원 58석중 31석을 차지했다.나머지 의석은 민의원의 경우 무소속 46석,사회대중당 4석,자유당 2석,한국사회당 1석 및 기타 군소정당 5석 순이었다.참의원의 경우는 무소속 20석,자유당 4석,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민족진보연맹이 각각 1석등이었다. 그러나 무소속 당선자 가운데 상당수가 민주당 공천 탈락자이고 이들 중 다수가 국회개원과 동시에 민주당에 재입당 했다.민주당은 명실공히 실세가 됐다.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분당론까지 제기됐던 민주당 계파는 여전히 복잡했다.당선자 1백75명 가운데 장면 중심의 신파 78명,그에 반대하는 구파 83명,중도파 14명등 팽팽한 구도를 보이자 신·구파가 각각 당선자대회를 갖는등 치열한 집권경쟁을 벌였다. ○장면내각 민주신파 일색 우여곡절 끝에 8월19일 민의원에서 장면총리 인준투표가 실시됐다.결국 찬성 1백17표,반대 1백7표,기권 1표로 신파일색의 장면내각이 출범했다.장면총리는 구파측에 대해 5명 정도의 인선을 제의했지만 구파의 거절에 부닥쳐 8월23일 신파측 일색의 불안정한 새 내각이 출범했던 것이다. 장면 내각은 이전의 과도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선 자유당 시절 부정부패의 원흉들을 처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집중적인 지탄을 받고있던 경찰에 먼저 화살을 돌려 81명의 경찰서장을 포함한 2천2백13명의 경찰관을 파면시켰다.그 결과 독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경찰의 기능을 상당기간 약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설상가상으로 61년 1월 한국정부에 대해 환율인상을 요구해왔다.장면 내각은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61년 1월 달러당 6백50환이었던 환율이 1천환으로 평가절하 됐다.이어 2월에 1천3백환으로 다시 평가절하된 판에 미국은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고 나섰다.그 대가로 장면정권은 3천5백만달러의 원조를 받았지만 이 협정은 미국 원조자금이 전체예산의 52%를 차지하던 한국 정부예산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 행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주재 미국인 교육자와 기술자들도 모두 한국정부로부터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미국은 이것 말고도 61년 1월 「외자도입촉진법」 제정을 채근했다.이 법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자본에 대해 연간 20%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이 투자회사들은 한국내의 보유자산에 대해 아무런 세금을 내지않도록 하는 것이었다.이에따라 미국자본의 한국진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장면 정권은 이무렵 「데모규제법」등의 제정을 추진했는데 1960년 7·29총선에서 참패한 사회대중당을 비롯한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반대투쟁을 벌였다.이는 극도의 사회 혼란상을 초래 했다.그리고 국민의 기본적 의무보다 권리를 더 중시하는 각종 시위가 꼬리를 물었다.이와 맞물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학생들은 5월13일 평화통일 구호를 내걸고 「남북학생회담 환영및 통일촉진대회」를 열었다. 1961년 시국위기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가운데 이 학생집회가 열린 것은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5월16일 군사 쿠데타 3일전의 일이었다.물론 제2공화국이 약세의 틈을 보여준 데서 비롯한 쿠데타로 평가되지만 국민들에게도 얼마간은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군사자문단 「국가팀 회의자료」/“미군철수땐 한반도 적화” 예측/북의 혼란책동 선전공세 면밀 분석/팸플릿 제작 등 심리전 대응책 제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장면정권 시절 주한미군의 대북 대응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회의자료를 미국 케네디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입수했다.이 자료는 19 60년 12월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합동군사원조자문단(JMAAGK)의 국가반(Country Team)회의자료로 당시 혼란을 틈타 고조된 북한의 선전에 대처하기 위한 주한미군사령부의 대처방안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회의자료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일상적인 참석자 외에 주한미군 참모장인 에머리 워첼중장과 본드 장군등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회의주제는 「북한의 선전효과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가능한 대처방안 강구」.회의에서 주한미군측은 『북한측의 선전공세가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보고 『대한민국 정부는 경제정책 실패와 자신감 결여,혼란·판단불능 때문에 공산주의선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판단했다.워첼장군은 『군사적인 견지에서는 이승만 정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돼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남한의 군사적·경제적 소유물에 대해 통제를 해야한다』고까지 발언했다. 회의자료에는 미군이 철수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전 한국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한 대목도 들어있다.워첼장군은 『미군이 철수하면 전한반도를 공산주의자들이 석권할 수 있을 것인데 왜 북한인들이 자유선거 실시에 동의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결국 미국공보원(USIS)의 전문가 팀이 대한민국 정부와 공동으로 북한의 선전위협에 대응하는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했다.자료에 따르면 미국공보원은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사령부가 함께 북한선전에 대응하는 팸플릿을 만들고 양국 정부가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특히 주한미군사령부는 공산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원과 기구정비를 준비했는데 이는 한국군의 정치개입을 초래했을 가능성을 함축했다.
  • “핵이 한반도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리처드 아미티지(해외논단)

    리처드 아미티지 전미국방차관(부시행정부 당시)은 12일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에 기고한 「부랑자(북한)다루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은 핵문제가 한반도문제의 전부인냥 착각하고 북한 및 북한핵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지나치게 소외시켰다면서 한국을 한국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원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글 내용을 소개한다. 최근 북한의 무장침투간첩 체포사건은 휴전협정이 맺어진지 42년이 지났지만 분단된채 중무장한 한반도에는 아직도 냉전적 대치상태가 여전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바로 이같이 모두의 기대를 깨뜨려버리는 불신의 망령이야말로 1주년이 된 미·북한간 핵합의보다 북한정권의 실제 행태를 훨씬 더 정확히 반영해주는 것이다.이번 간첩 체포사건은 북한의 핵 야망을 보다 큰 한국문제의 일환으로 보지 않고 모든 문제의 중심인냥 여기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인가를 극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사건인 셈이다. 94년 10월의 미·북 기본합의는 상당한 흠점에도 불구하고 대치국면에서 한걸음 벗어나 문제해결로 향하는 첫 걸음일 수 있는 「무사착륙」의 단계로 기대해 볼만 했다.그러나 약속을 잘 지킨 적이 별로 없는 북한을 앞으로 4년간 더 엄하게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핵합의의 논리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북한이 최대 보험증서와 같은 자신의 핵프로그램을 미국·한국·일본과의 경제적·정치적 관계수립과 맞바꾸도록 설득당했다는 희망에 기대어 있다.그러나 북한은 과연 약속대로 한길을 걸을 것인가.핵과 관계수립의 양다리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인가.진짜 「무사착륙」이고,점진적 통일과정이 가능한 것인가. 핵문제에 정신을 온통 뺏앗긴 나머지 군사분계선 1백㎞내에 배치되어 있는 최소 50만명의 북한병력과 포들을 감축시킨다는 휼륭한 목표를 망각한 지 오래다.이 감축은 미·북한간의 대화,그리고 이와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남북한 화해의 중심주제가 되어야만 한다.핵합의가 완전하게 실천된다 하더라도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북한의 재래식 무장력·미사일·화학무기 위협 등은 단 한 웅큼도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핵문제를 너무나도 중요시하는 겨를에 어느새 미국의 정책과 전략은 핵만 합의되면 다른 문제에도 해결의 불꽃이 튀겨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휩싸이고 말았다.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심사를 진척시킬 수 있는 보다 스케일 큰 플랜이 없어 북한의 협상력만 키워줄 따름이었다.1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이런저런 요구로 핵프로그램의 거래가를 높이는 한편으로 한국과 진지하게 관계를 재정립할 생각조차 않은채 일방적으로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다. 게다가 핵합의는 한·미관계에 상처를 남겼다.핵 현안을 미·북한 문제로 만들어버리면서 클린턴행정부는 한국의 역할을 주변적인 것으로 약화시켰다.요즘 한국에는 남 눈치 보지 않고 올곧게 한·미 동맹관계를 역설하는 귀중한 친미인사가 드물다.대신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은 미국을 못미더워하고 불신하는 기운을 피부적으로 금방 느낀다. 같이 피를 흘리면서 연마되었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같이 나누면서 한층 두터워진 우리들의 유대는 결코 가벼이 볼 게 아니다.그러나 지금 어떻게 우리들은 한국과 미국이 한마음으로 지지할 수 있는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새롭고 보다 균형된 동반자관계를 세울 것인가.지금 당장 해야될 큰 일은 현재의 군사적 교착상태를 개선하는 것이다.미국과 한국은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여 보다 큰 스케일로 북한을 상대할 구도와 플랜을 짜야 한다.그리고 재래병력과 무기·미사일·화학무기 문제를 북한에 거론해야 한다.한국을 이런 일들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들여야 한다. 북한의 전략은 분명하다.레이저 광선처럼 미국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미국과 관계를 맺는 것을 정통성과 국제적 경제원조의 열쇠이자 안보의 잠재적 보증인,그리고 한국에 대한 억제력 활용대안으로까지 여기고 있다.최근 북한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방문 미국인에게 평화유지 체제가 갖춰지면 한반도에서 미군이 평화정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북한의 이같은 전략을 이해하면 언뜻 일관성없이 왔다갔다하는 행태가 설명될 것이다.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는 철저한 상호성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미국·한국·일본의 관심과 요구사항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미사일과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군사분계선에서 군대를 철수할 때만 우리는 북한의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통일 과업과 미국의 장래 태평양전략을 다같이 고려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한반도의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동의해야 될 사안이지만 지상주둔군을 감안하면 미국도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미국·한국·북한의 삼자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휴전선통행 문제등 상호 신뢰확대 방안을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이에 대해 북한이 진지하다면 핫라인설치나 군사훈련의 통보 등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 전·노씨 구속 해외언론 반응

    ◎미 타임지 특집/“한국은 이제 법치국가가 되었다”/금융실명제·반부패 개혁으로 과거청산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5일 발매된 최근호(12월11일자)에서 한국의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구속과 관련,「더러운 손들­한국의 어두웠던 과거를 파헤쳐」,「피와 탐욕이 남긴 것」등을 제목으로 하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통해 『한국인은 강력한 의지로 과거청산문제를 대하고 있으며 이제 경제기적에 걸맞는 정치변화를 함께 이룩할 수 있다고 한국국민은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타임은 무려 6개면에 걸친 대대적인 이번 특집에서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한 나라 치고 한국처럼 과거를 대대적으로,또 갑작스럽게 심판대에 올린 나라는 드물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이런 자신감은 경이적 경제성장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이어 『이번 위기의 결과는 한국이 법치국가가 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이같은 일은 김영삼대통령이 금융실명제와 같은 반부패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말했다. 타임의 보도요지는 다음과 같다. 역사가 마침내 전씨를 덮쳤다.그는 79년 쿠데타와 90년 광주 유혈탄압에서의 그의 역할로 말미암아 합천에서 구속되었다. 한국에서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79년 쿠데타와 공식집계상으로도 2백명이 사망한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을 사법처리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힌 2주일 전 김영삼 대통령의 발표일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다년간 한국정치의 성가신 문제였으나 누구도 감히 이를 제거하려 들지 못했다.전씨와 노태우씨가 이 두 사건의 핵심인물이었으나 이들은 이들이 누린 절대권력의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이었는지 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것같았다. 광주와 반체제자 사이에서는 이 두 장성을 재판에 회부하라는 촉구가 있었으나 김대통령은 이를 거부하면서 노씨와 전씨에 대한 심판은 역사에 맡기자고 국민에게 호소했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정의에의 동력을 과소평가했다.쿠데타와 광주사건을 조사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지난 2년 사이 오랫동안 억눌려온 이들 사건에대한 새로운 세부내용이 TV 다큐멘터리와 잡지들에 의해 속속 드러나면서 더욱 거세졌다.이러한 국민적 정서에 굴복하고 또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김대통령은 마침내 검찰로 하여금 과거를 캐도록 놓아주었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 주요정치인간의 사생결단의 싸움이다.군사유산에 대한 김대통령의 기습적 공격은 한국을 단합시키지는 않고 오히려 정치위기를 촉발시켰다. 김대통령의 여당은 노씨가 김종필씨와 김대중씨에게 비밀리에 준 자금의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고 김 대통령의 라이벌도 이에는 이로써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과거청산」 장기적으로 경제력 강화”/한국은 지금 구조개편 통해 21C 준비중 김영삼 대통령의 과거청산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스니스 위크(12월11일자 아시아판)지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중인 전두환 전대통령의 광주사태 연관 문제와 노태우 전대통령의 뇌물수수 사건과관련,표지기사를 통해 『대다수의 한국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러다 녹아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섞인 전망보다는 지금의 소용돌이를 오히려 한국 경제력을 강화시켜줄 구조적 개편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이 잡지는 이어 『지금의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고 또 조사 결과가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미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김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위험부담이 큰 도박을 해서라도 곧 21세기로 진입할 한국을 개편할 굳은 결의로 차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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