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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핵무장은 최후의 수단” 이대한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 전문

    “독자 핵무장은 최후의 수단” 이대한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 전문

    “독자 핵무장은 최후의 수단이며 한국이 직면한 외교안보 및 통일 분야에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되지 못하더라도 불가피하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을 앞장서 주장해 온 이대한 디펜스 뉴스와 네이벌 뉴스 한반도 담당 특파원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게재한 ‘독자 핵무장 불가론에 대한 반론’ 전문을 소개한다. 이 특파원은 주한 미국대사관과 주한 벨기에대사관에서 일했으며 해군 통역병 출신이다. 이 특파원의 글을 27일 소개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 7월 한달에만 ‘포린 폴리시’에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고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최승환 일리노이대 교수와 이 특파원의 기고가 실린 데 이어 이번에 이 특파원의 기고가 다시 실리는 등 한국의 독자 핵무장 또는 한국과 일본의 동시 핵무장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특파원은 11월 초에 공식 출범할 예정인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자강전략포럼’ 간사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서울신문 7월 28일자 서울광장 ‘커지는 핵무장 목소리’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729027028&wlog_tag3=daum 이대한 특파원 기고문 원문 : https://nationalinterest.org/blog/korea-watch/case-south-korean-nuclear-bomb-204995핵무장은 한국 정부 내에서 오랜 금기로 여겨져 왔다.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에 반대하는 주장들을 분석해보면, 한국이 핵무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안보적 이익을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무형의 손실들을 과장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하다. 미국과 서방 진영이 막지 못한 중국의 군사 굴기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발전을 보면 한국이 핵무기에 대한 목소리를 아직도 감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만하다. 한국이 ‘제한적 핵확산’과 ‘조건 핵무장’의 프레임 하에서 핵개발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하는 주요한 논거들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NPT와 핵도미노 이론 핵무장에 대한 가장 흔한 우려는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는 유엔 안보리로부터 혹독한 제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해당 조약에서 탈퇴하였지만 유엔이 북한을 제재한 이유는 조약 탈퇴가 아니었다. 또한 NPT는 가맹국들로 하여금 핵심 이익이 위협받을 경우 탈퇴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점증하는 핵위협이 한국의 핵심 안보이익을 침해한다는 명분에 기반해 탈퇴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보다 핵기술이 이미 더 발전하였기에 별도의 대대적인 핵실험이 필요치 않을 것이므로 제재마저 피할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한국이 NPT 탈퇴를 말한다면 모든 사용가능한 옵션에 열려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중국과 북한에 보내어 김정은의 핵무기에 대한 한-미 양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북한과 중국을 모두 억제하기 위해 결국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대국 중 하나인 한국이 핵개발을 한다는 이유로 제재가 가해지더라도 한국의 핵무기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 노력을 뒷받침할 경우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인도가 1998년에 5차 핵실험을 하였을 때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는 불과 3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후 2005년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해 양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협정을 체결했다. 인도의 사례가 보여주듯 민주주의 국가가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세이프가드 조치와 핵비확산 의무를 받아들인다면 NPT와 워싱턴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은 이러한 기준을 충족할 수 있으며, 한국의 핵무장은 결국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널리 퍼진 우려에도 불구하고 NPT 체제는 한국이 핵개발을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의 안보협의체로서 호주에 핵잠수함을 제공하는 AUKUS(오커스)와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용인하고 있는 NPT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NPT 레짐은 건재하므로 추가적인 핵도미노 현상 또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핵보유국이 나타날 때마다 항상 핵확산과 불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핵확산이 물밀 듯 밀려오지도 않았고 국제 질서 또한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김정은의 핵위협에 비례적인 대응을 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핵국가인 한국이 핵보유국들의 기득권을 걱정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해서 핵도미노 현상은 동아시아에 이미 발생했다. 이 현상의 두 가지 요인은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과 함께 개발된 북한의 핵무기, 그리고 동아시아 내 미국 동맹국들의 대등한 전략적 무기의 부족에서 오는 핵불균형이다. 그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국을 지켜야하는 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들에게 핵경쟁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 한국이 핵무장을 할 경우 다른 나라들로 핵확산이 진행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과장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경제력, 발전된 핵기술, 농축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 핵 투발수단 등이 부족하므로 핵무장을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또한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므로 이 국가들은 핵무장을 위해 경제 개발을 포기하기 보다 선진 개발도상국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것에 더 끌릴 수 밖에 없다. 대만의 핵무장도 중국과 맞닿은 특성 상 비현실적이다. ‘하나의 중국’ 정책을 무너뜨려 중국이 대만을 병합하는 트리거가 될 수 있는 레드 라인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방사능 피폭 경험들로 인해 누적되어 형성된 일본 대중의 매우 강한 반핵 감정을 고려하면 한국의 핵무장이 반드시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기도 전부터 일본은 군사용 ICBM으로 전환가능한 우주 로켓과 언제든 사용이 가능한 플루토늄을 확보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핵무기가 이미 완성된 일본의 핵역량에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다. 낮은 확률로 일본이 먼저 핵무장을 할 수도 있으나, 미국과 한국은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일관계가 역사적, 민족주의적 반감에 영향을 받아왔으나 양국은 공통된 민주적 가치와 중국, 북한을 억제해야 하는 안보 이익을 공유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지지한다. 일본이 북한과 중국을 역내에서 포위하기 위한 핵 안보분담을 지원하고자 결심한다면, 한-미는 ‘인도태평양 핵동맹’을 형성하기 위해 일본 또는 호주까지 환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핵무장한 한국이 여전히 중국의 군사경제적 힘에 맞서려면 이들 국가와 협력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설득 유럽이 북한과 매우 멀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럽연합은 한국의 핵무장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단순히 외교적 우려만 표명할 것이다. 따라서 서방 국가들이 한국의 핵무장이 북의 핵위협과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음을 납득하는 한 EU의 묵인을 받아낼 수 있다. 그러면 곧 한국이 설득해야 할 핵심 파트너인 미국만 남는다. 북의 증가하는 핵무력, 중국의 군사굴기 및 불법적인 북한 핵개발에 대한 침묵, 한국과 일본의 우려들이 워싱턴의 선택지를 좁힐 것이고, 머지않아 미국이 은밀히 핵심 동맹국의 핵무장을 환영하게 만들 수도 있다. IAEA와 미국을 통한 제3자의 핵사찰에 동의함으로써 한국은 핵무장 후에도 백악관의 비확산 원칙과 핵통제 정책을 존중할 수 있으며 원자력 및 안보 협력 측면에서 한미동맹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널리 퍼진 인식과는 달리, 중국의 한국 핵무장 묵인을 이끌어 내는 것은 꽤 간단하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비핵국가인 한국과 핵 레버리지를 가지고 더 융통성있게 행동할 수 있는 핵보유국인 한국 중에서 중국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미국에 반하는 헤징을 한국이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기반해 후자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한미동맹과 역내 미국의 영향력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누리고 있는 핵 카르텔 또한 해치지 않을 것이다. 10명 중 9명의 한국인들이 미국에 호의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점이 보여주듯 한국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적성국가들로 인해 미국과 핵무장한 한국 간의 친밀한 관계는 필수적이며, 이는 워싱턴이 역내 반미국가들을 견제하는 데에 있어 한국의 핵자산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뜻한다. 확장억제와 비용효율 일각에서는 여전히 나토식 핵공유나 미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향상된 확장억제를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전술핵 사용을 위해 미국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이 그러한 방안을 상징성만 갖는 해결책으로 만들 것이고 핵균형을 가져오지도 못할 것이다. 또한 역내 미국의 핵무기는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고 미국의 영향력 강화에 대해 반발만 불러올 뿐이며 한국을 핵보유 국가로서 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대공 방어무기인 사드를 한국에 배치했을 때 경제보복을 가한 반면 한국이 신형 탄도미사일을 선보였을 때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 따라서 핵우산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초기 단계에 있었을 때나 유용했을 철 지난 미봉책이다. 핵우산은 일시적인 억지만 제공할 뿐이며 한반도에서의 핵 교착상태에 대한 영구적인 안보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자국과 동맹국들의 핵심 이익을 수호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최근의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마저도 적의 핵공격에 대한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핵보복이 언제 어떻게 즉각적으로 이루어질지 정의하는 명확하고 문서화된 기준 또한 지금까지 없었다. 예산에 대한 우려를 고려하였을 때, 핵개발 및 그에 따른 유지보수 비용은 천문학적이지 않다. 이미 한국이 지상 및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과 폭격기로 사용가능한 핵 3축 체계를 모두 확보하였기에 핵무기가 제공하는 정치적 메시지와 억지력을 생각해보면 핵무장이 재래식 전력보다 훨씬 값싼 전략자산이다. 또한 잘 정립된 핵시설 안전관리 시스템은 한국에 풍부한 기술적 경험도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한국의 핵개발 목적이 인접한 구공산권 국가들을 억제하기 위함이므로 비싼 전략폭격기나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북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2022년 국방예산으로 460억 달러(약 65조원)를 투입한 반면 북한은 자신들의 핵개발을 위해 6억 4천만 달러(약 9천억원)만을 사용하였던 점을 미루어 보면, 산업화된 한국은 그간 재래식 무기에 사용해온 금액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을 핵개발에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국방기술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핵무기는 재정적으로 확실하고 효율적인 국방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비확산 옹호론자들이 제기하는 다른 우려는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큰면적을 차지하고 압도적인 수의 핵무기를 보유한 역내 동구권 국가들로부터 역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핵 대치 상황이 당사국들을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 놓이게 하므로, 수십 년간 핵전쟁을 억제해온 고전적인 상호확증파괴 법칙이 한국의 경우에도 유효하다. 이상주의자들이 주장하듯 핵무기가 그 어떠한 전략전술적 의미도 갖지 않는다면 미국은 왜 나토 동맹국들에게 핵억지력을 제공하였으며 이게 어떻게 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는가? 모두가 이해하다시피 핵을 보유한 한국은 중국이나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공격적인 메세지를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인접한 적성국가들에게 조차 정제되고 관리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 국가의 표준 행동 절차이다. 한국은 김정은의 잦은 핵협박과 호전적인 언사가 반감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의 핵무기는 방어적 태세를 통한 레버리지 확보가 목적일 것임을 알고 있다. 북한이 자초한 고립이 한국에도 찾아오는 것은 핵 대전략이 없을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지 정당화된 핵무기 보유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핵무장이 북의 핵무기를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비판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적국의 선제 타격이나 임박한 위협에 대한 비례적인 대응을 취한다고 해서 적국 행위자의 잘못된 선제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며, 대응을 하는 것은 정당방위의 범주에 속한다. 한국은 비핵화에 대한 굳건한 입장을 견지했고, 김정은이 이를 존중했다면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북이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 선제사용 독트린을 채택하고 비핵화를 거부함으로써 핵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일방적으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독자적인 핵무기를 획득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고, 외교안보 및 통일 분야에서 한국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또한 미국이 당장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의 핵개발을 용인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와 그러지 못한 국가 간에는 핵불균형이 항상 존재하며, 가장 강력한 재래식 전력조차도 핵무기에 비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은 북과 중국으로부터의 현존하는 위협에 있어 한미동맹을 위한 최고의 억제력이자 안보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핵개발을 하겠다는 한국의 결심은 이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뒷받침할 것이다. 힘이 없는 평화는 절름발이이다. 독자 핵무장을 하겠다는 한국의 생존 본능을 죄악시하는 자들은 한국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안보 무임승차 비핵국가로 남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보를 영구히 보장할 수 있다는 순진하고 나약한 논리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다. 이는 한국을 더욱 위험한 곳으로 몰고 갈 뿐이다.
  • [2030 세대] 여왕이 없는 나라/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여왕이 없는 나라/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영국 1파운드 동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전이다. 작고 두툼해서 손으로 쥐어 보면 누구나 그 매력을 알 수 있다. 흔히 ‘금화’라고 불리는 그 묵직한 느낌이다. 2017년부터 매력의 1파운드는 보통의 1파운드로 바뀌었다. 영국 동전의 또 다른 재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변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도 끝이 났다. 영국은 잘 알다시피 몇 남지 않은 입헌군주국가이다. 마키아벨리는 늘 그렇듯이, 칼끝처럼 꿰뚫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변화를 위한 홈을 남긴다.’ 무언가를 애써 고치면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혜를 바탕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이들이 있다. 작가 C S 루이스는 ‘헐뜯기보단 진단하고, 찬미하기보단 분별하라’고 했다. 그는 군주제를 옹호했다. 군주제를 부정하긴 쉽다. 하지만 인간이 왕을 섬기지 못한다면 백만장자, 운동선수, 영화배우를 섬길 것으로 보았다. 영국의 보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도 ‘섬김’의 대상을 고민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평화를 위협한다. 하지만 이를 억눌러선 안 된다. 충성을 바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왕이라 보았다. 좀 극단적인가? 하지만 입헌군주제를 보수주의자들만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스크루턴의 논리는 그보다 50년 전 좌성향 작가 조지 오웰이 먼저 꺼냈다. 오웰은 국왕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위험한 감정을 배출시킬 배기 밸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동을 왕실이 해소한 것이, 영국이 히틀러나 스탈린을 면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루이스도 윗글을 1943년에 썼다. 절대군주를 열망하며 쓴 글은 아니란 것이다. 영국 총리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국왕을 찾아가 국정에 대해 보고하고 자문을 구한다. 기자도 보좌관도 없는 자리에서 총리와 국왕은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운이 좋게 태어났다 해서 혜택을 누리는 건 불공정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를 믿고 섬겨야 할까? 우리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정치적’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이제 경멸을 담은 욕이 되었다. 반대로 좋아하는 영어단어 중 하나는 ‘dignity’(품위, 격)이다. 영국 여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이다. 처칠, 클린턴, 만델라도 여왕을 만났다. 그녀는 역사였다. 영국 동전엔 단아한 젊은 여성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목은 짧아지고 턱밑에 조금씩 살이 붙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머리 스타일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균형을 잡아 주고 그 균형은 아름다운 비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 세대에 더이상 영국 여왕을 만날 일은 이제 없어졌다.
  • 종로에 ‘노무현시민센터’ 개관…문 전 대통령 “큰 이정표”

    종로에 ‘노무현시민센터’ 개관…문 전 대통령 “큰 이정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뜻을 기린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가 23일 서울 종로에 문을 열었다. 종로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곳이기도 하다. 이날 개관식에는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과 노무현재단 임직원 등 120여명이 참석했다. 일부 참석자는 노란색 손수건을 목에 둘러 노 전 대통령을 기억했다. 건물 외부는 노란색 바람개비와 풍선으로 장식됐고 외벽에는 노 전 대통령이 뒷자리에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진과 함께 ‘노무현입니다. 종로로 돌아왔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개관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문 전 대통령은 “보다 많은 깨어있는 시민을 만나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바람에 맞게 오늘 서울에서 근사한 모습으로 개관하게 됐다”며 “이로써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큰 이정표를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도 복지도 남북평화도 국민적 자긍심도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더욱 커져야만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대독했다.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노무현시민센터는 시민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하는 통로이자 시민교육 강의와 학습, 토론이 이뤄지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양성하고 길러내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역사의 마중물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축사에서 “서민적이고 대중에게 늘 격의 없이 다가가시던 노무현 대통령님처럼 언제나 시민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센터가 되길 기원한다”며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꿈꾸시던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저희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하 3층·지상 3층의 센터는 강의실, 다목적홀, 서재, 미디어센터 등이 마련됐다. 센터는 이날부터 25일까지 콘서트, 특별대담, 다큐멘터리 상영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 지각 출범, 적은 예산, ‘극우’ 위원장까지…‘27일 출범’ 국교위 벌써 논란

    지각 출범, 적은 예산, ‘극우’ 위원장까지…‘27일 출범’ 국교위 벌써 논란

    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대입제도 개편 논의 등 주요 교육정책을 정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이제서야 출범한다. 법적 출범 기한을 한참이나 넘긴 데다가 예산마저 적어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비판까지 얽히면서 출범도 전 논란을 예고했다. ●이배용 위원장, 박근혜 역사 국정교과서 주도 논란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준비단은 위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27일 출범한다고 22일 밝혔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원래대로라면 7월 21일 출범해야 했지만, 인선이 지연돼 출범도 두 달여 늦어졌다. 국교위는 위원장 1명(장관급)과 상임위원 2명(차관급)을 포함해 모두 21명으로 구성된다. 이날까지 교원관련단체 추천 몫인 2명을 제외한 19명의 인선을 완료했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5명 가운데 위원장에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지명됐다. 이밖에 대통령 지명 위원으로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 천세영 충남대 명예교수, 김정호 전 자유기업원장이 합류했다. 특히 이 전 총장은 위원장 하마평이 나돌 때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역임하며 한국사 국정교과서 편찬 작업에 깊이 개입한 전력 탓에 비판이 제기됐다.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주도한 이로, 자신의 저서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침략전쟁 징병제’를 독려했던 김활란을 옹호해 논란을 불렀다. 이 전 총장 외에 김정호 전 원장은 개인방송과 저서를 통해 학교를 시장화하는 방식으로 ‘공교육을 뒤엎자’는 주장을 견지해온 우파 경제학자로 꼽힌다. 교육부는 이 위원장을 비롯한 대통령 추천 명단을 전날인 21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에 대해 “대학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 위원장을 잘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대통령실도 이를 고려해 추천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이 위원장을 비롯한 대통령 추천 위원들의 과거 행적과 논란과 관련한 지적에는 “위원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판단하지 않는다. 교육부는 설립준비단으로서 법적 절차에 따라 설립을 진행할 뿐”이라고 답을 피했다.●교원단체 추천 불발, 타 위원회 대비 적은 예산도 이밖에 국회 추천 상임위원은 김태준 전 동덕여대 부총장, 정대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올렸다. 상임위원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교원관련단체 추천 위원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3개 단체가 2명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복 조합원 처리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불발됐다. 동일 조합원 중복 가입을 인정하지 않는 단일노조인 전교조와 달리 교사노조연맹은 지역노조와 전국노조 복수 가입이 가능해 회원 수 집계 방식이 서로 다르다. 전교조는 이와 관련 “교육부가 교원단체 추천자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 교원단체 추천 절차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위원들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다른 위원회에 비해 지나치게 규모가 작고 예산도 적어 출범 이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교위는 3과 31명으로 내년도 예산 88억 9100만원이 책정됐다. 다른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교위는 우선 올해 말까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심의·의결한다. 최근 교육부가 추진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 확정과 관련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교육과정 시안 공개 직후 ‘6·25전쟁’에서 ‘남침’이 빠지고 ‘민주주의’ 서술에서 ‘자유’가 빠졌다고 일부 언론이 지적하자, 의견수렴을 미처 다 받기도 전부터 이를 수정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의견수렴 과정이 요식 절차에 그치고, 연구진 압박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교위가 이를 받아 연말까지 확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예상된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논란처럼 교육과정을 두고 논쟁을 우려한다. 국교위는 이밖에 2028학년도 대입개편, 학제·교원정책·학급당 적정 학생 수 등 중장기 교육제도 개선에 대한 사항도 다룬다.
  • [특파원 칼럼] 혐오범죄를 끝낼 수 있을까/김진아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혐오범죄를 끝낼 수 있을까/김진아 도쿄 특파원

    “조선인 6000명 학살 증거가 어딨나. 증거가 있으면 가지고 와 봐라.”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학살된 수많은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제99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만난 우익단체 회원이 이같이 말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역사 문제 현장을 취재하러 갈 때면 항상 이런 우익단체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터무니없는 주장이 반복되는 만큼 웬만하면 그들을 직접 취재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그날 르포 기사 작성을 위해 우익단체의 집회 모습을 담아야 했는데, 그 우익단체가 어딨는지 공원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그 사람이 우익단체 회원이었다. 처음에는 차분한 목소리로 학살 증거가 없다고 하더니 돌연 흥분해서 학살 증거가 어딨느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한국인과 역사에 대한 혐오를 마주쳤던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다. 지난 4월 30일 교토에 있는 우토로평화기념관 개관식을 취재하러 갔을 때였다. 1940년대 일본 정부가 교토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재일 조선인 1300여명을 동원했는데, 과거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진 우토로마을은 이들이 모여 살던 지역을 말한다. 아픔의 역사가 있는 우토로마을에는 여전히 재일 조선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우토로평화기념관에서 100m도 안 되는 곳에 한국인에 대한 혐오로 방화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라현 사쿠라이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아리모토 쇼고(23)가 지난해 8월 30일 우토로마을의 빈집에 불을 질렀는데, 당시 화재로 빈집과 창고 등 건물 7채가 불탔다. 빈집이라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창고 등에 보관돼 있던 우토로평화기념관에 전시할 자료들이 대부분 소실됐다. 개관식 취재를 마치고 사진 자료 확보차 화재 현장을 찾았을 때 느낀 감정은 ‘기괴하다’였다. 불타 버린 집과 창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늦봄의 맑은 하늘, 초록색 풀이 가득한 곳과 새카맣게 타 버린 집의 모습이 이질적이라 소름이 끼쳤다. 여기에 누군가 거주했다면 정말 큰일이었을 정도로 아주 새카맣게 탄 집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리모토는 “한국인이나 재일 한국인이나 반일이 적지 않다. 그들은 옛날에 밀입국했던 일이 있어 문제”라는 등의 허무맹랑한 주장만을 일삼았고, 한국인에 대한 혐오로 범행을 저질렀다. 99년 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를까.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교토지방재판소(법원)는 지난달 30일 아리모토에게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항소 기한이었던 지난 13일까지 변호인측과 검찰측이 모두 항소를 하지 않으면서 아리모토는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일본에서도 이를 단순 방화 범죄가 아닌 ‘혐오범죄’로 보고 엄벌을 가한 것은 다행이다. 일본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인정한 것은 드문 일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특정인에 대한 혐오범죄는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다 게이스케 판사의 판결을 곱씹게 된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특정 출신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감에 의한 이기적이고 독선적 동기를 가지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불안을 부추긴 범행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허용할 수 없다.”
  • ‘8·15’ ‘남침’ ‘자유 민주주의’ 명시 등 쏟아져

    ‘8·15’ ‘남침’ ‘자유 민주주의’ 명시 등 쏟아져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총론과 각 교과목 시안에 대한 의견을 받은 결과 7860건이 쏟아졌다. 학부모를 포함한 일반 국민이 4751건의 의견을 냈고, 사회 과목에서 가장 많은 1361건이 모였다. 19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보름 동안 교원 2648건, 학생 461건 등을 포함해 7860건의 의견을 접수했다. 총론에 가장 많은 1523건이 접수됐고, 교과별로는 사회 과목 1361건, 도덕 1078건, 국어 886건 순이었다. 논란이 된 역사 교과는 모두 715건의 의견이 들어왔는데, 총론과 사회 과목에 제시된 의견 중에서도 역사 교과 관련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교육부는 초등 사회과에 포함된 역사 영역과 고교 한국사에서 ‘광복에 8·15 명시’, ‘6·25 남침 명시’,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한 것에 대한 수정’ 등의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반대로 정책연구진의 시안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 역사 교육의 이념화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우리 아이들의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을 위해 꼭 배워야 할 내용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도록 보다 면밀히 수정·보완해 줄 것을 역사과 정책연구진에게 각별히 요청했다”고 말했다. 도덕과 보건 교과에서는 성 관련 표현인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수정해야 한다거나 ‘사회적 변화 및 다양성을 고려해 성평등, 젠더, 섹슈얼리티, 사회적 소수자 등의 용어 사용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접수됐다. 국어 교과에서는 현행 교육과정의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유지해 달라는 의견, 수학과 과학 교과는 기초를 더 충실히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학습 부담 증가, 수포자 감소 대책 등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다만 국악 소외로 논란을 빚은 음악 교과는 시안 자체가 공개되지 않았고 의견도 받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진 사이에서 국악 명시 방식에 이견이 있었다”며 교육부가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가 전달한 국민 의견을 연구진이 자체 판단해 시안을 수정·보완하고,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이를 토대로 총론과 교과목별로 공청회를 진행한다. 공청회 결과 등을 반영한 수정안은 교육과정심의회와 행정예고 등을 거쳐 오는 12월 말까지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 후 교육부 장관이 고시할 계획이다. 확정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초교 1∼2학년에, 2025년부터 중고교에 연차 적용된다.
  • 남침, 양성평등, 수포자...교육과정 시안에 한국사회 현안 쏟아져

    남침, 양성평등, 수포자...교육과정 시안에 한국사회 현안 쏟아져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총론과 각 교과목 시안에 대한 의견수렴 결과를 공개하고, 역사 교과에 ‘남침’과 ‘자유 민주주의’ 등을 기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교육부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달 30일부터 홈페이지를 개설해 보름 동안 모두 7860건의 의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학부모를 포함한 일반 국민이 4751건, 학생이 461건, 교원 2648건의 의견을 냈다. 총론에 가장 많은 1523건이 접수됐고, 교과별로는 사회 과목이 가장 많은 1361건, 도덕이 1078건, 국어 886건 순이었다. 논란이 된 역사 교과는 모두 715건의 의견이 들어왔는데, 총론과 사회과목에 제시된 의견 중에서도 역사 교과 관련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교육부는 초등 사회과에 포함된 역사 영역에서 ‘광복에 8·15 명시’ 등의 현대사 관련 용어 수정과 6·25 전쟁의 원인과 과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의 내용을 포함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고교 한국사에도 ‘역사적 사실인 6·25남침 명시’, ‘자유를 삭제한 것에 대한 수정’ 등을 예시로 들었다. 앞서 30일 교육과정 시안 공개 직후 ‘6·25전쟁’에서 ‘남침’이 빠지고 ‘민주주의’ 서술에서 ‘자유’가 빠졌다고 일부 언론이 지적하자 교육부는 의견수렴을 다 받기도 전부터 이를 수정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의견수렴 과정이 요식 절차에 그치고, 연구진 압박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는 정책연구진의 시안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 역사 교육의 이념화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다만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미래세대의 균형 있는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국민들께서 공감할 수 있으며, 헌법정신에 입각한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저희 교육부가 이미 밝혀 드린 바 있다”면서 “우리 아이들의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을 위해 꼭 배워야 할 내용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도록 보다 면밀히 수정·보완해 줄 것을 역사과 정책연구진에게 각별히 요청했다”고 말했다. 도덕과 보건 교과에서는 성(性) 관련 표현으로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수정해야 한다거나, 반대로 ‘사회적 변화 및 다양성을 고려해 성평등, 젠더, 섹슈얼리티, 사회적 소수자 등의 용어 사용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접수됐다. 국어 교과에서는 현행 교육과정에 들어 있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유지해달라는 의견, 수학과 과학 교과는 기초를 더 충실히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학습 부담 증가, ‘수포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다만 국악 소외로 논란을 빚은 음악 교과는 시안 자체가 공개되지 않았고, 의견도 받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진 사이에서 교육과정에 국악을 명시하는 방식에 대해 이견이 있다”며 “교육부가 중재 역할을 하고 있고 곧 어떤 형태로든 안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전달한 국민 의견을 연구진이 자체 판단해 시안을 수정·보완하고,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이를 토대로 총론과 교과목별로 공청회를 진행한다. 공청회 결과 등을 반영한 수정안은 교육과정심의회와 행정 예고 등을 거쳐 오는 12월 말까지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 후 교육부 장관이 고시할 계획이다. 확정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17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24년부터 초교 1∼2학년,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25년부터 중·고교에 연차 적용된다.
  • [포토] ‘이희호 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사진전

    [포토] ‘이희호 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사진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9일 “지금 이 어려운 상황이 닥치니 김대중(DJ) 전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의 과거 투쟁과 인내의 역사, 국민에 대한 믿음이 다시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희호 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 및 사진전’에 참석해 “이 여사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운동가로 (남편인) 김 전 대통령님과 함께 민주와 평화, 인권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오신 역사에 남을 훌륭한 분으로 기억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김 전 대통령님과 이 여사님이 걸으셨던 길을 잘 따라서 평화와 인권의 시대로, 민주와 민생의 시대로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연일 민생을 강조하는 이 대표는 이날도 ‘DJ 정신’을 언급하며 김 전 대통령의 ‘실용적 민생 개혁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자신을 향한 검경의 수사를 ‘정적 제거용’이라 언급하며 불편함을 드러낸 이 대표가 ‘어려운 상황’, ‘투쟁’ 등을 얘기한 것은 현 정부의 ‘야당 탄압’ 프레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일각에선 나왔다. 이날 이 대표와 함께 사진전에 참석한 민주당 지도부는 여성운동가로서 이희호 여사의 삶을 강조하며 ‘성평등·페미니즘’ 문제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께서 생전 ‘아내 덕에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두 분의 여성·인권·페미니즘 (가치관) 등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페미니스트 김대중은 이희호 여사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당 여성위원장인 정춘숙 의원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등을 언급하며 “성평등은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 모두 반드시 함께 이뤄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는 여성부를 신설했는데 더 강화돼야 할 여성가족부는 폐지될 위험에 처했다”며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 여사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홍걸 의원은 “여성 인권, 민주주의, 한반도 평화를 위해 사셨던 고인의 삶을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국회 본청 당 대표 회의실 앞에 마련된 ‘민주당 창당 67주년 사진전’도 관람했다. 사진전에는 1955년 민주당 창당발기인 대회,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 후보 당시 보라매공원 연설 현장,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식 등 민주당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 전시됐다. 이 대표가 민주당의 ‘뿌리’이자 독립운동가인 해공 신익희 선생 사진을 보며 “신익희 선생이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에도 참석하셨다”고 하자 지도부에서는 ‘와’하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 펠로시 “아제르바이잔이 끔찍한 공격” 아르메니아 편들어 물의

    펠로시 “아제르바이잔이 끔찍한 공격” 아르메니아 편들어 물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최근 아르메니아와 충돌한 아제르바이잔을 향해 ‘끔찍한 공격’을 했다고 규탄해 물의를 빚고 있다. 당장 아제르바이잔은 상대의 말만 믿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고 반발했다. 오랜 영유권 분쟁을 일으킨 곳을 찾아 양쪽을 화해시키고 진정시키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분쟁을 부추겼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AFP·스푸트니크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의회 대표단과 함께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발생한 교전을 언급하며 교전지인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르메니아 영토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아제르바이잔이 불법적이고 끔찍한 공격을 저질렀다. 미국은 그런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또 펠로시 의장은 교전이 아제르바이잔 측에 의해 촉발됐다면서 공격의 순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14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교전이 발생해 양측에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15일 양국이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무력 충돌은 현재 멈춘 상태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교전을 두고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면서 아르메니아에 대한 지지를 촉구했다. 이어 미국은 민주주의 발전과 주권, 영토 보전에 관심이 있으며 아르메니아를 돕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은 펠로시 의장의 발언에 즉각 반발했다. 아제르바이잔 외무부는 성명을 발표해 “펠로시 의장은 친아르메니아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면서 “우리는 그의 근거없고 공정하지 못한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그의 발언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편파적인 선전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1991년 옛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다. 그의 아르메니아 방문을 두고 지난달 대만 방문에 이어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행보로 보인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 등은 풀이했다. 각각 옛소련에 속했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2020년 9월 오랜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교전으로 약 6600명이 사망한 끝에 러시아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나, 사실상 아제르바이잔의 완승으로 전쟁이 마무리됐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주요 지역을 장악했으며, 러시아는 양측의 충돌 방지를 위해 5년 동안 나고르노-카라바흐에 2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했다. 트랜스코카시아(코카서스 산맥 남쪽) 지역에 자리한 아르메니아는 튀르키예(터키)와 오랜 역사적 분쟁을 겪고 있지만 기독교 문화라 서방 진영에서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는 나라로 여겨지는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여전히 러시아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서 미래의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한편 지난 14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에서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적어도 9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BBC가 이날 전했다. 몇년 사이에 가장 큰 유혈 충돌이었는데 다행히 16일 양측은 교전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 역시 옛소련에 속해 있다가 독립한 뒤 규칙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영토 분쟁을 지속해 왔다. 두 나라 국경은 1000㎞에 이르는데 3분의 1을 놓고 분쟁이 계속됐다. 지난해 4월에도 국경 지대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져 5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번에 희생자가 곱절이 됐다. 이날 늦게 키르기스스탄은 13명이 더 숨졌다며 희생자 수가 59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100명이 넘는다고 했다. 타지키스탄은 민간인 35명이 숨졌으며 적어도 20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모말리 라크몬 타지키스탄 대통령과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사태 진정을 촉구하는 한편 의견 차이를 평화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고 크렘린궁이 전했다.
  • 열강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동유럽 ‘끼인 국가’ 험난한 줄다리기 [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열강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동유럽 ‘끼인 국가’ 험난한 줄다리기 [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 격변기 동유럽…두 지도자의 다른 길 “혼혈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2022년 여름 열린 한 정치 집회에서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외 언론과 정치인들은 그를 거세게 비난했다. 오르반 총리가 이런 말을 한 의도는 2015년부터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 몰려들어 유럽인이 비유럽인과 뒤섞여 살게 됐다면서 단일 민족인 헝가리인은 혼혈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1998년 서른다섯 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리 자리에 오른 오르반은 2010년 재집권한 뒤 올해 4월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면서 모두 5회에 걸쳐 헝가리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그는 20대부터 정치 일선에서 활동했다. 1963년생인 그는 동유럽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난 1989년 20만 군중 앞에서 소련군 철수와 자유 선거를 요구하는 연설로 유명해진 ‘민주 투사’였다. 그러던 그가 2010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파 민족주의자로 180도 변신했다.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렬한 신봉자로 헝가리를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시키려고 노력했던 그가 극단적 민족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친서방 일변도의 기존 노선에서 벗어나 러시아, 중국 등과 손을 잡는 이른바 ‘동방 정책’(Eastern Opening)을 추진했다. EU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의 중요성을 알기에 ‘휴식트’(Huxit, 헝가리의 EU 탈퇴)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동양과 서양의 선착장을 오가는 왕복선(ferry)과 같은 외교 정책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스 80%와 석유 6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며 중국의 자본 투자를 절실히 기대하는 상황에서 오르반 총리는 당분간 서방과 거리를 두며 친중·친러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이는 강대국 세력들이 맞부딪치는 헝가리의 지정학적 위험 요인과 기회 요인을 ‘중간국 외교 전략’으로 관리하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 노선으로 풀이할 수 있다.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사뭇 달라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선사시대부터 동서 교통로의 중심이었다. 게르만족, 훈족, 아바르족 모두 이곳을 거점으로 유라시아의 초원 지대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축’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 정착한 어떤 정치 세력도 오랫동안 통일된 국가를 유지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Ukraine)는 동슬라브어의 u(인근)와 kraina(변경)의 합성어로 ‘변경·접경 지대’라는 의미다. 12세기에 등장한 이 명칭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세워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국명으로 채택됐다. ‘변경’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였던 ‘우크라이나’가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지도상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다. 국명에서부터 지정학적 특징이 드러나듯이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독립된 국가 형태를 길게 유지한 적이 별로 없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주변의 강력한 세력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 국제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귀속됐다. 19세기에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동부와 서부를 각각 분할 점령했다. 그나마 신생 독립국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도 불과 몇 년 만에 소멸했고, 결국 1922년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련 영토가 됐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동부와 서유럽의 영향권에 있는 서부로 나뉜 채 전개됐다. 이렇듯 수백년 동안 계속된 종족적·문화적·종교적 이질감은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동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1991년 소련 해체와 더불어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최대 문제점이자 과제는 여전히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동과 서가 번갈아 권력을 잡으면서 정치권에서 동과 서의 힘의 균형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헝가리 건국 이야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그리스정교회의 성인인 올가(Olga)의 하얀색 대리석 동상이 서 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일대에는 북쪽의 발트해에서 도래한 바이킹들이 현지 슬라브족들과 함께 882년 키예프 루스 공국을 건립했다. 945년 공국의 제2대 통치자 이고리 1세가 죽자 그의 부인 올가 대공비가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섭정했다. 남편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국정을 총괄하게 된 올가는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신흥 국가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외세에 의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대 최고 강대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토착 신앙을 포기하고 직접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그리스정교회 세례를 받기로 한 것이다. 올가의 개종은 키이우에 그리스정교회가 전파되는 계기가 됐고, 그의 손자인 블라디미르 1세는 정교회를 국교로 선언했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올가와 결혼해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적극적인 구애 전략을 펼치자 올가에게는 이에 대항할 방안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올가는 비잔티움 제국에 편향된 의존도를 낮추고자 좀더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을 모색했다. 올가는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서유럽의 신흥 강국 독일 왕국에 사절단을 파견했고(959년), 이들을 접견한 독일의 왕 오토 1세는 키이우에 심복인 아달베르트를 보낸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견제와 키예프 루스 공국 내부의 반발로 아달베르트는 도망치듯 키이우를 떠나야 했다. 그 이후 1000년이 지난 지금 이와 유사한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서방의 나토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했으나 오히려 러시아의 공세적 정책을 불러오는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인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 우크라이나는 자국 문제를 해결하려고 외세(EU와 나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또 다른 외세(러시아)가 개입하는 빌미를 준 것이다.이슈트반 1세(975~1038)는 헝가리 왕국을 세운 초대 국왕으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는 그를 기리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있고 그의 동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가 지금의 독일 지역을 통치하던 신성 로마 제국 출신 기젤라와 결혼함으로써 헝가리 왕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경계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이 결혼으로 헝가리와 서유럽 사이의 이주와 교류가 본격화했다. 이슈트반 1세가 1015년경 자기 아들을 위해 작성한 보감(寶鑑)인 ‘십훈’(十訓)은 왕이 지켜야 할 열 가지 덕목을 정리한 것인데, 이 중 하나가 ‘이주자들의 환대와 대우’다. 여러 지역 출신인 이주자들은 다양한 언어, 습성, 학식, 군사 기술 등을 가져옴으로써 왕국과 왕실을 이롭게 하지만 단일 언어와 풍습은 오히려 왕국을 나약하고 쉬이 쇠락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주자들을 현지인과 동등하게 보살피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책을 부여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즉 외국인 차별 금지는 헝가리 왕국의 건국 이념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주자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사회·정치적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그때까지 낙후했던 헝가리 사회는 점차 발전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후에도 중세의 헝가리 왕들은 종교나 종족에 개의치 않고 모든 이주민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오늘날 ‘외지에서 온 이주민을 환대하라’는 왕국 건설자의 유훈은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역사의 가르침을 외면한 지도자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는 서방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대신 러시아나 중국 같은 국가를 모델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면서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구, 러시아, 중국이 유라시아 중부 지역에서 벌이는 ‘뉴 그레이트 게임’(New Great Game) 속에서 오르반 총리가 보여 준 이러한 균형 정책에 헝가리 유권자들은 기꺼이 표를 던졌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오르반 총리는 ‘이주민 환대’라는 건국 아버지의 유언을 망각한 나머지 주변 국가로부터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모 올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특정 강대국에 치우치는 선택을 하지 말고 동서로 분단된 자국이 협력적으로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고민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 같지 않다. 민족 명절인 추석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자 북한에 회담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나마 다행이다. 중앙대 교수·작가
  • ‘5·18 기념일 지정’ 세계로 뻗어간다

    ‘5·18 기념일 지정’ 세계로 뻗어간다

    미주 한인단체 광주 방문…세계 주요도시서 기념일 확대지정 논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 ‘5·18기념일 제정 결의안’ 원본 전달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결의안 기증협약 체결 및 전시 추진 해외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5·18민주화운동을 기념일로 지정한 가운데 세계 주요도시에서 5·18 기념일 지정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15일 미주 민간단체인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제정 결의안 준비위원회’는 광주시를 방문, ‘캘리포니아 주의회 5·18기념일 제정 결의안’ 원본을 광주시에 전달했다. 이와 함께 5·18 주요단체와 미국·유럽 등의 세계 주요도시에서 5·18기념일 지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회 결의안 채택을 주도했던 미주 민간단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제정 결의안 준비위원회’는 김형률 위원장, 서정일 상임대표, 국승구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 최석호 캘리포니아주 의회 하원의원 등 한인동포 10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회 결의안은 ‘5·18정신이 미국의 건국이념과 일치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5·18정신의 세계화 가능성을 열어 젖힌 첫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관련,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제정 결의안 준비위원회 미국 현지 대표단으로부터 액자로 제작된 기념일 제정결의안을 기증받고, 기증협약식을 체결했다. 이번 기증협약식은 캘리포니아주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제정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은숙, 배석준 부대표가 내한하면서 이뤄졌다. 5·18기록관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이번 기증물을 많은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향후 전시공간에 배치할 예정이다. 한편 오는 10월7일에는 미국 현지에서 5·18기념일 제정에 협력하고 있는 한인회장단 인사들이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18사적지를 탐방하는 등 5·18민주화운동과 5·18정신의 세계화를 위한 결의를 다질 예정이다.
  • 조응천 “尹 탄핵, 말도 안 되는 얘기”

    조응천 “尹 탄핵, 말도 안 되는 얘기”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당내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거론하는 것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조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탄핵이라는 게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무지·무능은 탄핵의 법적 요건이 아니다.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점이 있어야 탄핵이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무지·무능을 강조하고 싶어서 당내 일부 인사들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국정 아젠다 등 큰 비전은 없이 드라이브만 걸면서 야당 때려잡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황을 강조하면서, 국민들이 실망해 탄핵 생각도 하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걸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이 뭘 모르는 것 같다. 이러다가 임기는 다 채우겠냐. 이런 얘기들을 주로 많이 하셨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는 지난 8일 이재명 당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이후부터 윤 대통령의 탄핵 관련한 발언이 나왔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이날 “국민을 무시하고 신공안 시대로 돌이키려는 것은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다. 임기는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박정희·전두환으로 대표되는 독재의 망령이 윤 대통령을 통해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한 지도자의 말로는 항상 비참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 한국 정치에 국민은 큰 불신·불만, 87년 체제엔 한계… 도약 위해 개혁해야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한국 정치에 국민은 큰 불신·불만, 87년 체제엔 한계… 도약 위해 개혁해야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한국 정치는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독재와 장기집권 그리고 이를 위한 선거 부정과 헌정 왜곡으로 점철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경쟁이 확립됐고 정당 간 권력 교체도 일반적인 것이 됐다. 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대단히 높다. 지금 우리 정치는 어디에 서 있을까?전두환 군사 정권에 대한 국민 저항이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지만 사실 그 당시 민주화는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전 세계 수십 개 국가가 민주화를 이뤘다. 1970년대 중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흐름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이어졌고 다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한국 등 아시아로 넘어왔다. 그 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구동구권이 민주화됐고, 만델라의 남아공을 필두로 아프리카 지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1970년대 중반 이후 약 30여년간 세계 곳곳에서 민주화가 실현됐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이를 두고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라고 불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전 세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귀결되는 ‘역사의 종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각국의 정치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민주화가 모든 나라에서 반드시 안정된 민주주의로 나아간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푸틴의 일인 지배 체제가 구축된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헝가리, 폴란드, 튀르키예 등 한때 민주화를 이뤘던 국가에서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가 나타나고 있다. 한번 민주화를 이뤘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영국의 시사저널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매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조사한다.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시민 자유, 정부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 등 다섯 가지 기준에 의한 평가를 통해, 각국의 민주주의를 ‘완전한 민주주의’, ‘결점 있는 민주주의’, ‘혼합 체제’, ‘권위주의 체제’로 구분하고 나라별 순위도 매긴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167개국 중 16위로, 21개 국가만이 포함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다. 참고로 북한은 165위였다. 또한 스웨덴 예테보리대 정치학과에서 조사하는 민주주의 다양성(V-Dem) 조사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180개 국가 중 상위 10%만이 속하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다. 이처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작동이라는 점에서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포럼’이나 ‘G7(주요 7개국) 플러스’ 회합에 초청받는 등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나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보다 큰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시민적 자유와 인권, 언론의 자유, 법의 지배 등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을 준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드라마, 음악 등 K컬처의 확산 역시 민주주의 진전과 함께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이 허용된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의 높은 평가는 사실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수 국민은 이런 평가가 오히려 뜻밖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눈앞의 한국 정치는 불만과 불신의 대상일 뿐 긍정과 희망의 모습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와 내부의 상반된 평가는 우리 정치가 다시 기로(岐路)에 서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외부 기관의 관점은 민주주의의 작동에 대한 것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법과 제도에 따른 통치, 정치적 반대의 허용과 다원주의, 시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 등이 측정 지표이다. 그런데 민주화 당시의 구호였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요약되는 ‘87년 체제’가 추구했던 목표가 바로 이것이었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평가받게 된 것은 지난 30여년간의 노력을 통해 1987년 당시 우리가 소망했던 바를 어느 정도 실현했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높다는 것은 이제 ‘87년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적으로 볼 때 ‘87년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와 지역주의에 기반한 양당 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대통령제에 대한 당시의 관심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는 데 집중돼 있었을 뿐,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강화돼 온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큰 문제의식이 없었다. 즉 87년 체제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을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하겠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87년 체제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던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두 정치 지도자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제가 도입되고 유지돼 온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강력한 대통령, 그들 때문이었다. 이런 우리의 특성은 기존에 존재하던 13개의 국가를 하나로 묶어 내기 위한 제도적 필요에서 만들어진 미국 대통령제와 다른 점이다. 제헌국회 때 헌법기초위원회가 합의한 내각제 정부 형태가 하루아침에 대통령제로 바뀐 건 이승만 때문이었다. 내각제였던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강력한 대통령제를 도입한 건 박정희였다. 그리고 민주화의 열기를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묶어 낸 것은 김영삼, 김대중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치적 풍파를 겪으면서 형성된 강한 카리스마와 권위를 갖춘 이러한 정치 리더의 존재를 전제로 유지됐다. 여러 가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걸출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 일거에 해결해 줄 것이라는 유권자의 기대 심리는 이런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을 통한 ‘영웅적 서사’를 갖춘 리더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정당정치가 새로운 리더를 제대로 키워 내지 못하면서 정치 경험이 일천하거나 아예 없는 정치적 외부자가 대중매체와 여론조사를 통해 갑작스럽게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리더십에 대한 올바른 검증이 이뤄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당선된 이로서는 ‘대통령직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고, 국민으로서는 정치 지도자의 권위와 리더십에 대한 존경심을 갖기 어렵게 됐다. 더욱이 민간 영역의 발전과 함께 강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의 역할도 과거만큼 효과적이지 않게 됐다. 지난 10년간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87년 체제의 또 다른 축인 정당정치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 지역주의 양당 정치는, 분열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정치적 안정과 권력 교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거대 양당은 정치적 기득권을 상징하게 됐다. 정당은 국회의원, 정치 엘리트만의 집단으로 전락했고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다양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대표할 수 없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조직이 됐다. 지역주의와 당파적 양극화라는 양당의 정략 속에 유권자는 선택을 강요받는 수동적 존재가 돼 버렸다. 동시에 정당은 불신의 대상이 됐고 시민은 정당 대신 직접 거리로 나서게 됐다. 이제 정치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87년 체제하에서 지난 30여년간 우리 정치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과거 패러다임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영국 런던정경대(LSE) 정치학 박사.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 역임. 저서로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정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등 다수가 있다.
  • “中공산당이 대만 국민당 제대로 한방 먹였다”,,,뭔 소리 했길래

    “中공산당이 대만 국민당 제대로 한방 먹였다”,,,뭔 소리 했길래

    오는 10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중국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한 입장을 한층 더 명확히 표명해 대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중국 관영매체 인민정협보는 양안간의 합의인 92공식을 정리해야 한다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 합의인 92공식과 관련해 "하나의 중국은 있지만 각자 표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92공식은 올해로 30년이 됐다.  중국전국정협의 기관지인 인민정협보는 기사에서 “대만은 장기간 92공식을 '일중각표'(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표기 원칙에 따른다)로 이해해왔다”며 “중국이 이해하기에는 대만은 이를 중화민국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했다.  신문은 최근 몇 년동안 국민당 고위 인사들은 이러한 개념을 이용해 92공식을 말할 때 "일중각표의 92공식을 언급해왔다“며 “92공식이든 일중각표든 일중각표의 92공식이든 양안은 출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또한 국민당 일부 사람들이 누가 중국을 대표하느냐를 두고 본토와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이 문제는 신중국이 수립되고 신정협이 소집된 뒤 해결되었다고 밝혔다. 신문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의 창립 선포와 함께 중화민국 정부를 대체를 선언하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법의 주체인 중국이 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의 정권교체로 중국의 주권과 고유한 영토는 변하지 않았다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당연히 중국의 주권을 충분히 향유하고 행사하며 여기에는 대만에 대한 주권도 포함된다고 신문은 밝혔다.  신문은 92공식에 대해 30년전 양안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는 데 구두로 합의했다며 그 핵심은 양측은 하나의 중국에 속해 있으며 조국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신문은 또 해협양안관계협회 부비서장으로 92합의에 참가한 쑨야푸의 말을 인용해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민족적 단결을 추구하는 태도를 표명하며 하나의 중국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일시적으로 유보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러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8월 사상 세 번째로 대만백서를 발표한 데에 이어 나온 것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에 따른 대만 정책의 기조를 설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만백서가 대만독립세력에 대한 경고였다면 이번 보도는 일중각표의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국민당에 대한 경고로 해석된다. 중국은 그간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 중화민국이라 부를 수 있었던 92공식의 모호한 부분을 줄여버렸다. 이러한 중국의 일방적인 결정은 양안 관계에 더욱 불투명한 변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3일 국민당 주리룬 주석은 "92공식이 명확히 명시된 당헌과 정치 강령에 따라 양안관계를 신중하게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는 "해협의 양측이 안정되고 평화롭고 대화가 잘 통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당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주 주석은 양안관계는 안정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며 92공식은 중국의 방식대로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양안은 본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는 것으로 서로 평화롭게 교류를 지속하고 믿는 것이 인민의 기대”라고 강조했다. 앞서 주 주석은 양안관계 및 대외 정책은 매우 명확하다며 중화민국 및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양안의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 국민당의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만 여당인 민진당은 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제대로 한방 먹였다"고 지적했다. 전 대만의 방역수장 출신인 천스중 민진당 타이베이시장 후보는 중국의 이러한 발표를 두고 "이것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일부는 자신만의 환상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렇듯 국민당과 민진당의 92공식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2016년 5월 20일 차이잉원 총통 취임 이후 대만의 중국 담당부처 대륙위원회는 92공식에 대해 "대만은 이미 92공식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며 "92공식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 대등, 민주, 대화"라는 8글자를 양안관계의 모토로 삼았다.  아울러, 지난 8월 16일 대만민의기금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만인의 81.6%가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8.8%만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 열정적 소수자의 ‘좌표 찍기’… 시민 보듬는 정치가 실종됐다[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열정적 소수자의 ‘좌표 찍기’… 시민 보듬는 정치가 실종됐다[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2016년 촛불집회는 진보와 온건보수 전반을 아우르는 ‘시민 대연정’을 구현했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네 개 정당의 ‘정치동맹’이 주도하고 전체 의원의 3분의2 이상이 참여한 ‘정치 대연정’이었다. 뒤이은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는 탄핵 정치동맹에 참여한 정당에 압도적인 표(민주당 41.1%, 새누리당 30.8%, 국민의당 21.4% 정의당 6.2%)를 주는 대신, 어느 한 정당에도 과반 득표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 일련의 과정은 ‘온건 다당제에서 합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라는 시민의 기대를 반영했다. 안타깝게도 이후 상황은 기대와 달랐다. 촛불 ‘합의’는 촛불 ‘혁명’이 되었다. 다당제는 극단적인 양당제로 퇴행했다. 시민 대연정은 ‘문빠·태극기부대·광화문집회·서초동집회·이대남·개딸·극렬유투버’들로 난장판이 됐다. 팬덤 정치는 그 귀결이었다. 이로써 한국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1. 보통의 정당 정치에서는 정당 간 차이로부터 갈등의 조정과 합의를 위한 창의적 노력이 발원한다. 팬덤 정치는 다르다. 모든 차이는 감정적 적대에 활용된다. 적대의 동원은 대중적 혐오로 이어진다. 정당 간 협력의 공간을 지극히 협소하게 만드는 게 팬덤 정치다. 팬덤 정치는 의회 정치와 정당 정치의 규범을 허물어뜨린다. 더 나은 합의를 위해 싸우는 정치가 정당 정치라면, 팬덤 정치는 상대의 몰락을 위해 싸운다. 의회 정치는 의원들이 법을 어기는 것보다 선례나 규범을 어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전통 위에 서 있지만, 팬덤 정치는 어떤 선례나 규범이든 상대에게 유리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거나 폐기한다.  팬덤 정치는 ‘극단적 당파성’이 지배하는 정치다. 누가 더 공익 증진에 이바지하고, 누가 더 사회적 요구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정치가 아니다. 누가 더 상대 당을 더 잘 모욕하고 더 아프게 만들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정치다. 팬덤 정치에서 여야는 자기 정당의 이익만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무책임한 집단이 된다.   팬덤 정치는 양당제를 극단적으로 양극화시킨다. 학자들이 분류해 놓은 정당 체계 유형에 ‘양극화된 다당제’는 있어도 ‘양극화된 양당제’는 없다. 양당제는 오로지 정당들의 합리적 선택이 중도 지향적일 때만 존립할 수 있으며, 양당제에서 양극화의 심화는 내전을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양당 간의 양극화를 극단으로 심화시키는 팬덤 정치는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를 분열시키고, 결국 민주 정치를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팬덤 정치는 여야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당내에서도 적대를 재생산한다. 일반적으로 정당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 정당 내부에서는 응집성이 강화된다. 하지만 팬덤 정치는 정당 내부의 파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정당 간 적대 못지않게 당내 주도권을 두고 당내 세력들 사이의 적대를 극단적으로 키운다. 팬덤 정치는 정당마저도 파괴로 이끈다. 2. 민주주의는 ‘평등한 참여’를 원리로 작동한다. 누구의 의사도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1인 1표의 원칙’을 따른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대표되지 않았던 목소리, 새로운 가치나 정견을 가진 집단도 기회를 가져야 민주주의다. 하지만 팬덤 정치는 참여의 강도에 의존한다. 높은 지지 강도를 가진 소수의 지지자 집단이 과다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른 목소리나 이견이 대표될 기회를 억압한다. 팬덤 정치란 대표의 범위를 좁히고 참여의 강도만 강화시키는 정치다.  팬덤 정치는 당 밖의 ‘열정적 소수자 집단’이 당을 지배하는 정치다. 오래된 당원이나 대의원은 영향력을 강제로 축소당한다. 참여는 불평등해지고 대표는 왜곡된다. 이들 열정적 지지자 집단은 대개 비(非)가시적이다. 참여는 하되 누군지 특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대대적인 압력이 동원될 때만 그 실체와 위력을 볼 수 있다. 권력은 있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신종 권력 집단의 출현은 팬덤 정치의 또 다른 부작용이다. 민주주의도 책임 있는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팬덤 정치가 일깨워 준다. 3. 팬덤 정치는 ‘정치의 유사종교화’를 부추긴다. 팬덤 지도자는 박해받는 구원자 이미지로 포장된다. 시민에게는 자유를, 정치가에게는 책임을 부과하는 체제가 민주주의인데, 팬덤 정치는 시민이 헌신하고 정치가가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낳는다. ‘지못미(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요) 현상’에서 보듯, 정치가의 실패를 지지자가 대신 미안해하는 ‘전도된 윤리’를 낳는다. 팬덤 정치는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고 권력자에게 의존적인 대중 심리를 키운다.  팬덤 정치는 절차적 합리성에 따른 안정된 변화가 아닌, 파격과 의외를 반복하는 정치다. 모두의 마음 상태를 불신과 증오로 몰아 간다. 음모론이 힘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신뢰의 정치 문화를 키워 갈 수 없게 만든다. 남는 것은 적나라한 승패뿐이다. 당직과 공직을 둘러싼 경쟁은 사활적이다. 정책 의제를 둘러싼 경쟁은 나타날 수 없다. 권력 투쟁과 그것을 위한 ‘규정 싸움’이 당을 압도한다. ‘승리가 곧 정의’가 된다. 팬덤 지도자는 있으나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팬덤 정치는 저질스런 언어를 쏟아 낸다. 말은 흉기가 된다. 거부감을 주는 시위 형태가 양산되고, 유튜브 정치꾼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자신들에게는 무한 관용적이고 상대에게는 과도하게 적대적일 뿐, 공정한 언어는 없다. 도덕적 감각의 상실을 뜻하는 ‘내로남불’ 정치를 동반하는 팬덤 현상은 보편적 정의 규범을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4. 팬덤 정치는 시민·당원 직접 정치를 추구한다. 팬덤 리더와 이를 지지하는 시민·당원이 수직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정치를 원한다. 지도자와 대중이 수직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정치는 고대 직접 민주주의가 직면했던 최대의 어려움이었다. 고대 직접 민주주의는 여야의 정당이나 이익결사체들 사이는 물론 입법·행정·사법의 기능 사이의 수평적 상호작용이 없는, 일종의 ‘수직적 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10일 정도에 한 번 열렸던 시민총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었고, 공직에는 ‘짧은 임기’와 ‘연임 불가’라는 제한 조치가 있었기에 시민들이 번갈아 정부를 직접 운영할 수 있었다.   이 체제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시민 대중이 독단적인 주장에 휘둘리기 쉽다는 데 있었다. 당시의 용어로 말하면 데마고그와 참주, 즉 대중 선동에 능한 지도자가 출현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고대 직접 민주주의는 주기적으로 참주나 데마고그를 몰아내야 유지할 수 있는 민주주의였다. 오스트라시즘(도편추방제)으로 불리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인기 있는 정치가를 일정 기간 도시국가 밖으로 추방했다 불러들이는 일을 반복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현대 민주 공화정은 데마고그와 참주,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포퓰리스트의 출현을 막으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공화정은 세습과 혈통 대신 선출과 동의의 원리로 작동하는 정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선출직 시민 대표들에게 공권력 집행을 맡기되, 그들이 가진 권력은 수평적으로 쪼개고 분립시켜서 상호 견제하게 했다. 시민 개개인에게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을 갖게 했다. 그들이 달리 가진 이익과 열정은 결사와 집단, 정당의 형태로 실현할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것을 헌법상의 확고한 권리로 공식화했다.   현대의 민주 공화정도 실패를 반복했다. 그 어떤 제도나 규범으로도 포퓰리스트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마니 풀리테는 ‘깨끗한 손’이라는 이탈리아어이자, 1992년부터 시작된 검찰의 정치 부패 조사 작업을 뜻한다. 2년에 걸친 수사 기간 동안 담당 검사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그의 손에 이탈리아 정당정치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공한 팬덤 정치가가 베를루스코니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도 크게 보아 유사한 현상이다. 대중적 열광을 동반했고 그와 함께 소수 인종에 대한 공격과 반이민 정서의 동원 등 어느 모로 보나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일 수 없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5.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은 광범한 대중 참여를 동반했던 전체주의였다. 권위주의가 대중의 참여를 억제하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 체제였다면, 전체주의는 사회구성원을 대중운동의 형태로 동원하고 정치화했던 대형 프로젝트였다. 전체주의의 억압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면 그 체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체주의자들은 갈등도 분열도 없는 완전한 국가, 같은 민족만의 이상적인 복지체제를 꿈꿨다. 그런 미래에 대한 대중적 열광이 있었기에, 이 길에 방해가 된다고 여긴 이질적 구성원들에게 대규모 폭력이 쉽게 가해졌다. 과거 독일의 나치 정권에서처럼 누군가 유대인 상점에 ‘좌표’를 찍으면 밤사이 법의 보호에서 벗어난 곳이 되어 약탈과 방화의 표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유대인이었지만 점차 동성애자·집시·프리메이슨·공산주의자로 확대되었다. 그때와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정견이 다른 것 때문에 누군가가 너무나 미워지면 팬덤을 넘어 전체주의적 심성을 갖게 될 수 있다. 누군가를 향해 빨갱이·종북·적폐·토착왜구·친일파로 낙인찍고 싶어지면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자극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 더 많은 공격이 가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 수 있음을 걱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언제든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존재다. 그런 자각 위에서 이견으로부터 배우고 이견과 협력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이견을 가진 시민은 배제할 악이나 적이 아니다. 생각이 다른 동료 구성원이다. 차이와 다름 속에서 서로 공통의 관점을 넓혀 가려 노력해야 우리 서로는 같은 미래를 공동으로 일궈 가는 협업자가 될 수 있다. 6. 팬덤 정치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무례한 언어 사용자들이 위세를 떨칠수록 정치는 품격을 잃는다. 사람들을 공격자나 파괴자로 만드는 정치가 팬덤 정치다. 팬덤 정치는 여야가 서로를 등지고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상대를 일러바치는 ‘아첨 정치’를 낳는다. 이제나 저제나 서로 트집 잡고 시비할 거리를 찾게 만든다.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다원주의를 위협한다. 의견의 다원적 표출을 어렵게 한다. 팬덤 정치는 권력에 아첨하는 정치를 낳고, 이는 공익에 기여하려는 정치인의 신념을 약화시키며, 결국 당내 민주주의를 권력 투쟁의 도구로 전락시킨다.   팬덤 정치는 억지 정치다. 시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켜 놓고, 인간관계를 증오와 혐오로 갈라 놓은 뒤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는 정치다. 팬덤 정치는 서로가 다르게 옳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들만 옳기 위한 정치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독단이다. 독단은 정치의 적이다. 여러 의견이 공존하면서 토론하는 다원주의가 없는 정당은 죽은 정당이다. 책임감도 다정함도 핏기도 온기도 없는 정당을 팬덤 정치가 만든다.  우리에게 정치가 필요한 것은, 시민 삶의 여러 조건을 보살피고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생산과 돌봄,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는 권력자를 위한 것도 국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협동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때 정치의 가치는 빛난다. 시민을 웃게 할 수 없는 정치, 사회를 밝게 만들 수 없는 정치는 더이상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이 세상을 밝고 다정한 곳으로 만들어야 할 소명을 버리면 우리 삶이 위험해진다. 우리에게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지 않다.  정치발전소 학교장 
  • 英 여왕 장례식서 한미일 정상 조우할 듯

    英 여왕 장례식서 한미일 정상 조우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윤 대통령은 당초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곧바로 참석하는 일정을 오래전에 잡아 놨는데, 갑작스럽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함에 따라 런던에 들른 뒤 뉴욕으로 향하는 일정으로 급하게 바꾼 것이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12일 언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70년간 영국을 이끈 역사적 지도자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도하고 영국 국민과 왕실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영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병력을 보냈고 4000명 규모의 전사자와 부상자를 낸 참전국이며 우리나라와 핵심 가치를 공유하면서 긴밀히 협력해 온 우방국”이라며 “윤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 결정은 한영 관계의 역사적 인연과 중요성,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업적과 한국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한국 대통령이 해외 지도자를 직접 조문하는 것은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국장 참석 이후 7년 만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미 참석 계획을 밝혔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참석을 검토 중이어서 한미일 정상이 조우할 전망이다. 김 실장은 “런던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지도자들이 총집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윤 대통령은 이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취임 후 지속적으로 강조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추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尹대통령,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 참석…유엔총회 연설도

    尹대통령,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 참석…유엔총회 연설도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8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영국과 미국, 캐나다 순방을 떠난다. 순방 기간인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미국 뉴욕으로 이동해 20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에 나선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12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순방의 목적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경제 외교의 기반을 확대하는 데 있다”며 순방 일정을 공개했다. 김 실장은 “이번 유엔총회의 주제는 국제사회가 전례 없는 전환점에 놓여있다고 보고, 복합적인 도전에 대한 변혁적인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윤 대통령이 첫 방문지인 런던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해 영국민과 왕실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영 관계의 역사적 중요성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업적, 한국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이번 장례식을 계기로 런던에 총집결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핵심 지도자들과 만남으로써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추구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총회 참석 일정에 대해선 “윤 대통령은 20일 고위급 기조연설 첫날 연설할 예정”이라며 “주요 정상들과의 양자회담, 유엔 사무총장 면담, 동포 사회와의 만남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기조연설 내용과 관련해선 “국제 현안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국제질서 구축에 앞장서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이 중대한 전환기적 시점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비핵화를 다시 한번 촉구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유엔총회 연설 이외 일정은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 확보와 첨단 산업에서의 국제 협력 증진에 초점을 맞춰졌다. 각 회담이 성사될 경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후속 조치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양자회담에서는 경제 안보를 위한 공조 심화 방안이 각각 논의될 전망이다.
  • 정권 바뀌면 반복되는 ‘흑역사’… 진영 간 정치보복 이젠 끊어야[김성수의 뉴스 톺아보기]

    정권 바뀌면 반복되는 ‘흑역사’… 진영 간 정치보복 이젠 끊어야[김성수의 뉴스 톺아보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미국의 압력은 내정간섭이 아니다. 국민과 유리(遊離)된 소수의 독재 정권이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이냐, 미국 정부는 둘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1979년 9월 김영삼(YS) 신민당 총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신의 심장을 직격한 발언에 박정희 대통령은 대로한다. 김 총재의 발언은 반민족적 사대주의이며 정치인의 체통을 손상시켰다고 몰아갔다. 박 대통령은 10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제1집권당인 공화당과 제2집권당인 유정회를 총동원해 제1야당 총재를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의원직에서 제명된 뒤 YS는 “영원히 살기 위해 일순간 죽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훗날 더 유명해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도 이때 나온다. 침묵하고 있던 민심도 YS 제명 파동을 계기로 폭발한다. 2주일도 안 돼 부마민주항쟁이 터진다. 이어 심복의 총격을 받은 박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유신정권은 무너진다. 앞서 1973년 8월 8일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중정 요원 40여명이 동원돼 일본 도쿄 한복판 호텔에서 김대중을 납치한다.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이 의외로 선전하며 대권을 위협하자 화들짝 놀란 박정희 정권이 정적을 납치해 살해하려던 명백한 정치테러였다. 신군부로 이어진 독재정권 때도 야당을 대상으로 한 무지막지한 정치탄압과 정치보복은 끊이지 않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 폭력을 앞세운 정치테러는 사라졌지만 이번엔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보복 논란이 반복된다. 물러난 대통령을 향해 검찰의 칼날이 겨눠지면서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청와대를 나온 대통령이 감옥으로 직행하는 게 하나의 코스처럼 여겨지면서 정치보복의 흑역사가 새로운 프레임으로 자리잡았다. 피살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런 수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뿐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도 있지만, 권력의 정점에서 불법행위를 했다면 대통령이라고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선 없는 사실까지 탈탈 털어서 조사한 정치보복이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칼자루를 잡은 쪽에서 아무리 적법한 적폐청산의 산물임을 강조해도 소용없다. 전직 대통령들이 사법처리가 된 이후에도 좀처럼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다. 2017년 10월 국정농단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작심한 듯 정치적 책임은 몰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주장하며 재판을 거부했다. 2018년 1월 이번엔 검찰 소환을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인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의 정치보복을 보며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자신에 대한 수사는)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다. 사법처리가 끝나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정치인은 ‘정치보복’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대법원은 2015년 8월 20일 헌정 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이며 제1야당 대표를 지낸 한명숙 의원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 8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입니다.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으로 시작된 정치보복이 한명숙에서 끝나길 빕니다.” 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보복과 적폐청산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적폐청산에 권력이 부당하게 개입하면 언제든 정치보복으로 둔갑할 수 있다. 진영 간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정치보복금지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위헌 소지 등을 이유로 매번 좌절됐다. 그래도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정치보복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3·9 대선을 앞두고 지난 2월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안철수 후보가 정치보복 문제를 화두로 꺼냈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지 앞으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선언’을 하자고 불쑥 제안했다. 윤석열 후보는 “그게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원칙인데 그걸 뭐 선언까지 해야 되는지…”라며 “뭐 하면 또 나쁠 것이야 없겠습니다만, 하여튼 당연한 말씀”이라고만 답했다. 정치보복은 안 하겠지만 대국민선언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안 후보가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치보복 이슈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검찰이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 게 도화선이 됐다. 공직선거법 공소시효(9일)가 종료되기에 앞선 적법한 절차라고 검찰이 설명을 했지만 민주당은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조사는 야당탄압이고 정치보복이라며 격분했다. 이 대표도 “아주 오랜 시간을 경찰, 검찰을 총동원해 이재명을 잡아 보겠다고 (수사)했는데 결국 말꼬투리 하나 잡은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야의 거친 말싸움도 이어졌다. “죄 없는 김대중을 잡아갔던 전두환과 윤석열 대통령이 뭐가 다르냐”고 민주당은 쏘아붙였다. 여당 쪽에선 “선거는 가장 치열한 정치다. 그래서 허위사실 유포는 가장 엄하게 처벌한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는데 검찰이 이재명을 소환하는 건 당연하다”(이인제 전 의원)는 반박이 나왔다. 이 대표는 지난 6일로 예정됐던 검찰 소환을 거부했다. 민주당은 대신 김건희·이재명 ‘쌍특검’으로 구도를 잡아 가는 한편 윤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하는 초강수를 뒀다.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하고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안을 제출하는 강 대 강 맞대결이 지속되면서 정국은 급속히 경색될 것으로 우려된다. 대한민국이 사상 초유의 복합위기에 빠졌다는데 여야 모두 제1과제로 뽑은 민생과 협치는 뒷전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적중한 안철수의 예언 [김성수의 뉴스 톺아보기]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적중한 안철수의 예언 [김성수의 뉴스 톺아보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미국의 압력은 내정간섭이 아니다. 국민과 유리(遊離)된 소수의 독재 정권이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이냐, 미국 정부는 둘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1979년 9월 김영삼(YS) 신민당 총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신의 심장을 직격한 발언에 박정희 대통령은 대노한다. 김 총재의 발언은 반민족적 사대주의이며 정치인의 체통을 손상시켰다고 몰아갔다. 박 대통령은 10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제1집권당인 공화당과 제2집권당인 유정회를 총동원해 제1야당 총재를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의원직에서 제명된 뒤 YS는 “영원히 살기 위해 일순간 죽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훗날 더 유명해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도 이때 나온다. 침묵하고 있던 민심도 YS 제명파동을 계기로 폭발한다. 2주일도 안돼 부마민주항쟁이 터진다. 이어 심복의 총격을 받은 박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유신정권은 무너진다. 앞서 1973년 8월 8일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중정 요원 40여명이 동원돼 도쿄 한복판 호텔에서 김대중을 납치한다.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이 의외로 선전하며 대권을 위협하자 화들짝 놀란 박정희 정권이 정적을 납치해 살해하려던 명백한 정치테러였다.신군부로 이어진 독재정권 때도 야당을 대상으로 한 무지막지한 정치탄압과 정치보복은 끊이지 않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엔 폭력을 앞세운 정치테러는 사라졌지만 이번엔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보복 논란이 반복된다. 물러난 대통령을 향해 검찰의 칼날이 겨눠지면서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청와대를 나온 대통령이 감옥으로 직행하는 게 하나의 코스처럼 여겨지면서 정치보복의 흑역사가 새로운 프레임으로 자리 잡았다. 피살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런 수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뿐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도 있지만, 권력의 정점에서 불법행위를 했다면 대통령이라고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선 없는 사실까지 탈탈 털어서 조사한 정치보복이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칼자루를 잡은 쪽에서 아무리 적법한 적폐청산의 산물임을 강조해도 소용없다. 전직 대통령들이 사법처리가 된 이후에도 좀처럼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다. 2017년 10월 국정농단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작심한 듯 정치적 책임은 몰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주장하며 재판을 거부했다. 2018년 1월 이번엔 검찰소환을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인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의 정치보복을 보며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자신에 대한 수사는)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다. 사법처리가 끝나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정치인은 ‘정치보복’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대법원은 2015년 8월 20일 헌정 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이며 제1야당 대표를 지낸 한명숙 의원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 8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입니다.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으로 시작된 정치보복이 한명숙에서 끝나길 빕니다.” 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보복과 적폐청산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적폐청산에 권력이 부당하게 개입하면 언제든 정치보복으로 둔갑할 수 있다. 진영간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정치보복금지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위헌 소지 등을 이유로 매번 좌절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정치보복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3·9 대선을 앞두고 2월에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안철수 후보가 정치보복 문제를 화두로 꺼냈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지 앞으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선언’을 하자고 불쑥 제안했다. 윤석열 후보는 “그게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원칙인데 그걸 뭐 선언까지 해야되는지…”라며 “뭐 하면 또 나쁠 것이야 없겠습니다만, 하여튼 당연한 말씀”이라고만 답했다. 정치보복은 안하겠지만 대국민선언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안 후보가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치보복 이슈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검찰이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등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 게 도화선이 됐다. 공직선거법 공소시효(9일)가 종료되기에 앞선 적법한 절차라고 검찰이 설명을 했지만 민주당은 제1야당 총재에 대한 검찰조사는 야당탄압이며 정치보복이라며 격분했다. 이 대표도 “아주 오랜 시간을 경찰, 검찰을 총동원해 이재명을 잡아보겠다고 (수사)했는데 결국 말꼬투리 하나 잡은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야의 거친 말싸움도 이어졌다. “죄없는 김대중을 잡아갔던 전두환과 윤석열 대통령이 뭐가 다르냐”고 민주당은 쏘아붙였다. 여당쪽에선 “선거는 가장 치열한 정치다. 그래서 허위사실 유포는 가장 엄하게 처벌한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으니 검찰이 이재명을 소환하는 건 당연하다”(이인제 전 의원)는 반박이 나왔다. 이 대표는 지난 6일로 예정됐던 검찰소환 출석을 거부했다. 민주당은 대신 김건희-이재명 ‘쌍특검’으로 구도를 잡아가는 한편 윤석열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하는 초강수를 뒀다. 검찰이 이 후보를 기소하고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안을 제출하는 강 대 강 맞대결이 지속되면서 정국은 급속히 경색될 것으로 우려된다. 대한민국이 사상 초유의 복합위기에 빠졌다는데 여야 모두 제1과제로 뽑은 민생과 협치는 뒷전으로 밀려날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 힐러리 대선 재도전 묻자… “노 노! 바이든 지지”

    힐러리 대선 재도전 묻자… “노 노! 바이든 지지”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6일(현지시간) 대권 출마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날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노 노(No, no)”라며 부정했다. 그는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경쟁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4년 재선 도전을 지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라면서 “우리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존중하고, 우리의 제도를 유지하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자신이 말한 미 대통령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만약 그가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면 철저하게 패배해야 한다”며 “이는 공화당 내부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를 ‘이자’(this guy)라고 지칭하며 “이자에게 용감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공식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장관은 국무장관 재직 시절 기밀이 담긴 메일을 국무부 계정이 아닌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받아 ‘이메일 스캔들’에 휘말렸다. 이메일 스캔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 유출 사건과 비교받는 것에 대해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날 트위터 계정에서 “내게는 기밀로 분류된 이메일이 한 개도 없다. 반면 트럼프는 기밀로 분류된 수백 개의 문서를 가지고 있고, 조사는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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