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 어깨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 대단결 만세’라는 엄청난 구호를 짊어진 채 그는 여전히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톈안먼 사태 20년, 지금의 톈안먼에는 20년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청년학생들의 민주화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중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 2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지난 31일 오후,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향했던 톈안먼 광장행은 ‘역시나’로 막을 내렸다.
20년전인 1989년 5월의 마지막날 중국의 청년학생들은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고위관리 집무 지역)를 향해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뜨거운 목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5월의 마지막날 톈안먼 광장에는 함성은커녕 조용한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톈안먼에 내걸린 마오쩌둥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오절 연휴를 맞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올라왔다는 왕청(王誠·24)은 톈안먼 사태를 지칭하는 ‘6·4’에 대해 물어보자 “들어보긴 했지만 아주 어릴적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중국에서 ‘톈안먼’은 철저히 봉쇄돼 있다. 광장 전체를 쇠울타리로 둘러치고, 출입자에 대한 삼엄한 소지품 검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곳곳에는 공안(경찰)과 무장경찰이 배치돼 눈을 번득이며 수상한 거동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톈안먼 사건은 이미 금기어로 지정돼 있다. 인터넷 검색어로 ‘톈안먼 사건’과 ‘6·4’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 법규와 정책에 맞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뜬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은 오래갈 수 없고, 원천봉쇄 역시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6521공정’(건국 60주년, 티베트 봉기 50주년, 톈안먼 사태 20주년, 파룬궁 금지 10주년을 지칭) ‘20주년’ 등의 검색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고, 진실을 알리려는 배달부들은 그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서는 톈안먼 사태 재평가와 관련된 학술토론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6·4 민주운동 토론회’로 명명된 이날 토론회에는 베이징대와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작가, 유가족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마침 당일은 중국의 ‘어머니날’이기도 해 참석자들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모두 일어나 20년전 소중한 아들딸을 잃은 어머니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아 3분간 묵념했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베이징대 첸리췬(錢理群) 교수는 “20년전 많은 학생들이 중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 교수로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큰 한으로 남아 있다.”며 “정치가들은 ‘6·4’를 재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학자들이 나서서 ‘6·4’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쉬유위(徐友漁) 연구원은 ‘1989년부터 2009년까지’라는 제목의 발표 논문에서 “당대 중국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의 분수령이었다.”고 톈안먼 사태를 평가한 뒤 “비록 중국의 정치제도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정치제도 변화를 준비하는 사상적 조건에 대해 말한다면 ‘6·4’는 정치제도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은 블로그를 통해 비밀스럽게 인터넷상에서 유통되고 있다. 강요된 침묵을 비집고 솟아나오는 이런 ‘반발력’을 중국 정부가 과연 끝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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