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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오늘 대선

    【빌니우스 UPI 연합】 리투아니아는 14일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최초로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구공산당 세력 지도자인 집권 민주노동당의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후보와 민족운동연합인 사유디스의 스타시스 로조라이티스가 경쟁하고 있는데 최근 여론조사결과 브라자우스카스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리투아니아공 보수회귀/구소서 최초/구공산당,총선서 승리 재집권

    【빌뉴스(리투아니아) AFP 이타르 타스 연합】 리투아니아 독립이후 15일(이하 현지시간) 처음으로 실시한 자유총선 2차투표에서 구공산당이 1차투표에 이어 압도적인 지지를 획득,원내 과반수의석을 확보하면서 재집권할 수 있게 됐다. 리투아니아 선거위원회는 이날 중간집계결과를 발표,총 61명의 의원을 뽑는 2차투표에서 50개 의석의 결과가 판명돼 이중 민주노동당으로 개칭한 구공산당이 36개 의석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5일 실시된 1차투표에서는 구공산당이 총 80석중 44석을 확보한 바 있어 이번 2차 투표로 확보한 의석을 합치면 총 1백41개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1차투표에서는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가 이끄는 최대의 반공 집권당 사주디스가 20%에도 못미치는 득표율을 기록,45%에 달하는 표를 얻은 구공산당과 대조를 보였다.
  • 리투아니아 총선/구공산세력 압승

    【빌니우스 AP AFP 연합】 구소련에서 1년전 처음으로 독립했던 리투아니아에 공산주의 몰락후 처음으로 구공산주의자들이 총선에서 대승했다. 이로써 발틱연안의 리투아니아는 공산주의 몰락후 구공산주의자들이 의회선거에서 승리한 첫 나라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리투아니아 의회 공보실이 26일 발표한 25일 총선투표 집계결과에 따르면 2백50만명의 유권자중 70%에 대한 집계가 끝난 현재 전 공산당 제1서기였던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가 당수인 구공산주의자들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44.7%를 득표해 단독선두를 달리고 있다.
  • 독립국가 공동체란

    ◎국가연합형태 바탕,영 연방 특성 가미/“구성국에 독립국 자격”… 중앙정부 안둬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스등 3개공화국이 8일 결성키로 조인한 「독립국가공동체」(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는 외교정책과 핵문제를 포함한 군사전략에 있어 「합동행정기구」를 설립,공동 관장하게 된다. 또한 관세및 이민정책과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협력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기존의 소련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이나 고르바초프가 구상하던 「주권국가연방」(Union of Soverign States)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가장 큰 차이점은 공동체내에 선거로 선출된 국가원수와 의회를 갖춘 중앙정부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법상 연방(union)은 연합국가(federation)와 대동소이한 개념으로,다수의 국가가 대등한 관계에서 통합,형성된 단일국가이며 구성국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오직 연방만이 국가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으며 국민 또한 연방의 공통된 국적을 갖는다.또 구성국들은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나외교권은 연방이 독점하게 된다. 반면에 독립국가공동체는 원칙적으로 구성국이 독립국가로서의 자격을 갖고 공동체 자체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법상 연방보다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여기서 공동체라 함은 과거 영국식민지 국가들로 구성,「독립국가의 자발적 결합」으로 규정되고 있는 영연방(commonwealth)과 유사한 성격으로 볼 수 있다.즉 유·무형의 공통적인 이해관계,역사적 연결성을 바탕으로,서로 협력함이 유리하기 때문에 독립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결합된 개념인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로루스등이 이같이 국가연합형태에 영연방형태를 혼합시킨 형태인 독립국가공동체 형성에 합의한 것도 슬라브족이라는 민족적·역사적 토대위에 그동안 소련방내에서 취해온 각종 협력관계의 유지가 각각의 독립국가 유지에 더욱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소련 해체 일지 ▲1917년 레닌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11월7일의 혁명에서 정권장악 ▲1922년12월 인민대표대회서소련사회주의공화국연방 창설 ▲1940년8월 몰다비아 발트3국 합병 ▲1985년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피선(페레스트로이카정책 실시) ▲1989년5월 대통령제 신설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피선 ▲1990년3월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등 발트3공화국 독립선언 ▲5월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피선 ▲1991년7월 옐친,러시아공 직선대통령 취임 ▲8월19∼21일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 ▲8월24일 고르비,공산당서기장 사임과 동시에 공산당 해체선언 ▲9월 소인민대표대회,발트3국 독립승인 ▲10월 8개공화국 「경제동맹」조인 ▲11월14일 7개공화국 「신연방조약」에 가조인 ▲11월25일 고르비,7개공화국과 「신연방조약」조인에 실패 ▲12월1일 우크라이나공 독립여부투표서 가결 ▲12월8일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스공등 3개공화국 대통령,「독립국가공동체」선언 ◎3개공 경제정책/요지 우리 공화국가들 사이의 기존의 긴밀한 경제관계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국가 경제상황을 안정시키고경제회생의 토대를 창설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각국이 합의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시장경제 창설및 소유제도 전환,자유로운 기업가정신 보장을 목표로 한 급진경제개혁을 협력,실행한다. ▲상대에게 경제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삼간다. ▲기존 통화의 토대 위에 경제관계를 발전시키고 상호 거래방법을 정착시킨다. 루블화는 각 집단의 경제적 이익의 존중을 보장하는 특별 협정의 토대 위에 전국통화로 기능한다. ▲자금유출을 줄이고 효율적인 통화수급관리및 상호 거래제도마련을 위한 은행간 협정에 서명한다. ▲공화국의 예산 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협의를 추진한다. ▲가격 자유화와 시민의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정책협의를 추진한다. ▲단일 경제 공간의 통합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 ▲각 집단의 대외경제활동및 관세정책,통행자유의 보장을 협의한다. ▲구연방 소유 기업들의 부채 문제를 조절하기 위한 특별 협정에 서명한다.
  • 외언내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추구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이상은 북구식 복지사회주의의 건설에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소련 쿠데타 저지후 사회주의 완전포기의 대세에 밀리면서도 『스웨덴에서 배우고 싶다』며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던 그가 인상적이기도 했다.북구식 복지사회주의는 그가 아니더라도 많은 세계사람들의 오랜 선망의 대상이었다.◆가난한 사람이 없고 소득수준의 격차가 적은 사회.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이상사회가 북구사회주의의 목표다.북구는 그목표에 가장 가까이 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한데 정작 그 스웨덴사람들은 실망하고 변화를 바라기 시작했다는 소식.◆15일 총선에서 집권사회민주노동당의 패배가 확실하다는 것.스웨덴의 사민당은 36년의 한때를 제외하곤 32년부터 60여년을 장기집권하면서 세계제일의 복지국가를 건설한 민주사회주의 정당으로 유명하다.최근의 여론조사에선 사민당과 좌익당(옛공산당)의 지지율이 35.9%.감세와 철저한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는우익의 부르주아4개 당 지지율은 49.5%.◆연이은 제로내지 마이너스 성장과 실업률의 배증등 경제부진이 직접적인 이유.하지만 최대의 원인은 고복지·고부담사회민주주의정책의 한계노출.근로소득의 60%를 세금으로내도 부족한 복지부담의 한없는 증가.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해외투자 도피사태.일하는 자보다 놀고 먹는자가 많아진 사회분위기.국민들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분배에는 강하나 생산에는 약한것이 사회주의의 최대 약점.소련공산당의 붕괴나 스웨덴사민당 퇴조도 바로 그 약점때문 아닌가.스웨덴의 복지사회주의도 60년만의 한계인데 소공산당의 붕괴가 70년만의 일이고 보면 그 세월이 사회주의실험의 한계인가.북구도 한계라면 고르비도 서구자본주의 말고는 갈길이 막연하다.고르비같은 이상도 없이 끝나버린 공산주의의 고수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앞날이 걱정이다.
  • 소 공산당 영욕의 74년사

    ◎노동자에 의해 무너진 「노동자천국」/억압과 부패의 철권통치… 인민불만 누적/고르비의 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몰락의 길 지난 1917년부터 74년동안 소련 그 자체로 모든 것 위에 군림했던 소련공산당이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없어질 신세로 전락했다. 소련공산당은 공포와 억압 정치로 소련을 이끌어왔다.소련공산당이 소련이란 국가를 창출해 낸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 1917년의 역사적 사실이다.마찬가지로 이후 70여년간 계속된 「소련공산당이 곧 소련이다」는 정치체제와 통치방식이 오늘날의 소련 위기와 소련공산당의 궤멸을 초래했다고 역사는 증명한다. 소련공산당은 이 명칭 그대로의 이름(CPSU)을 1952년에야 갖게 됐지만 그 연원은 93년전인 1898년에 발족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LDP)이다.1903년 제2차 당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볼세비키(다수파)가 멘셰비키(소수파)를 누르고 당 주도권을 잡았다. 1905년 1월 20만여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차르의 동궁앞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으나 1천여명이 학살되는 데그쳤다.그러나 1917년 10월26일 레닌이 주도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페테르스부르크궁에 입성하면서 세계사 최초로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탄생했다.혁명의 성공과 함께 볼셰비키조직은 러시아사회민주당을 「전러시아공산당」으로 바꿨는데 이때 레닌은 이를 「이 시대의 지혜,명예,그리고 양심」이라고 불렀다. 19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일부 사기업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 공산당은 산업과 문화,그리고 사고까지 통제·지배하는 중앙집권의 틀을 잡았고 이를 위해 「적색테러」를 일삼았다. 이같은 철권통치는 24년 레닌사망을 전후해서 당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막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심화된 뒤 스탈린의 집권기간동안 최고에 달했다.스탈린은 집권후 당의 권한을 무한정 강화하면서 당의 이름으로 정적 뿐만 아니라 일반 「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2천만명이나 사형·유형·감금 당하는 암흑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흐루시초프 당제1서기가 발렌코프 총리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지만 당에 힘의 바탕을 둔 흐루시초프가 4년만에 전권을 장악,소련정치무대에서의 공산당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흐루시초프는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를 다소 완화하려고 했으나 64년 궁정쿠데타를 통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뒤를 이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서기장은 코시긴 총리,포드고르니 최고회의의장과 3두체제를 형성했으나 곧 당의 브레즈네프가 독주,통치권을 휘둘렀다. 소련공산당의 공인 당사는 『소련공산당의 역사는 영웅적 투쟁의 도정이며 노동계급과 사회주의,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시작되지만 소련의 실상은 공산당 고위 특권계급에게만 무한한 혜택을 주는 「당주의」의 병폐가 만연했다.이를 위해 공산당은 전국의 어느 기관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당세포를 무조건 배치시켜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82년 브레즈네프의 사망으로 KGB의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됐고 개혁의지를 드러내긴 했으나 84년에 사망했다.후임자 체르넨코도 별다른 실적없이 병사했는데 85년3월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서기장에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듬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노선을 선언한 다음 개혁이념과 정책을 실천해갔다.소련식 사회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몰린 탓이었다. 강압적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와 사유재산의 부정은 생산성의 저하만 가져왔다는 점이 확실해지면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꾀했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이 갖고 있는 해악에서 벗어나고자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90년2월 고르바초프는 1당독재의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공산당을 주축으로 개혁을 진행시키고자 했고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한다고 되풀이 천명하다가 강경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란 역습을 당한 것이다.이 역습으로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노선은 지금까지의 「공산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도록 강요당했다. 역사는 진정한 소련의 개혁을 위해 탈공산당 및 초공산주의를 지시하고 있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발족 ▲1903년=레닌볼셰비키당 창당 ▲1917=10월혁명,레닌 소비에트정부수립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 수립 ▲1924년=레닌 사망,스탈린 당권장악 ▲1953년=스탈린 사망 ▲1956년=흐루시초프 당제1서기,스탈린격하연설 ▲1964년=흐루시초프 실각,브레즈네프·코시긴·포드고르니집단지도체제 시작 ▲1968년=「브레즈네프독트린」발표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 ▲1985년=체르넨코 사망,고르바초프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개혁 선언 ▲1990년=공산당일당독재 포기 ▲1991년=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 사임 및 공산당해체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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