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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계석] “재산권-경영권 상속 동일시 안된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는 기업 경영권이 시장경쟁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경영권의 상속과 증여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20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최고경영자대학’에서 ‘기업가 정신과 기업지배 구조’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개인 재산 상속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나 기업경영권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대주주가 절대지분을 갖지 않고 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배구조를 갖춰야 하는 상장기업은 경영권이 사유물이 될 수 없다.”면서 “사유재산의 이전은 당연하나 경영권 세습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이런 지적은 최근 삼성,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들이 경영권을 세습하려다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대주주들의 재산 상속과 경영권 상속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장 교수는 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기업발전과 시장경제의 동력인 경영권은 경쟁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창업자나 우리나라 사람만 경영권을 가져야 하고 외국인 투자자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받아야 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장 교수는 국내 재벌그룹의 ‘오너’ 경영 체제와 관련,“중소기업이나 초기 창업기업은 오너가 많으나 대기업은 지분구조상 오너라고 불릴 만한 재벌총수가 없다.”면서 “그런데도 총수들이 오너처럼 행동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이 그룹들이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이 기업들의 오너들이 자신에 대한 도전이나 경영권 경쟁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경영권에 대해서는 시장경제원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외국자본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것은 국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사고”라면서 “기업 경영권도 시장 경쟁의 대상이 돼야 하기 때문에 이런 폐쇄적이고 아전인수격 시장경제 인식으로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 자본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지분을 가져야 하는데 기관투자가들을 포함해 정작 우리는 우리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아울러 “외국인의 직접 투자는 선이고 주식 투자는 악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제한된 수요를 갖는 국내 시장에 외국기업이 들어오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고 기업들에 돈만 주고 경영을 맡기는 주식투자가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소버린의 SK㈜ 주식 투자를 예로 들며 “소버린이 SK 주식을 2년 4개월 보유했다.”면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주식 보유기간이 평균 6개월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소버린의 투자를 투기라고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경제 관료조차 기득권화돼 있는 등 기득권 세력의 개혁 저항이 만만치 않다.”면서 “경쟁을 제한하고 폐쇄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기득권 보호로는 선진 시장 경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 마주보지 않는 한·일 교과서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한·일 양국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결과다.‘외면’에는 다양한 기법이 있다. 일본이 ‘무시’라면, 한국은 ‘편향’에 가깝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가 2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여는 ‘교과서 세미나’에서는 양국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이 직접 참가해 이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눈다. 일본 발표자들은 일본 역사교과서에서의 한국은 ‘백제 이후 잊혀졌다.’고 본다. 신라 통일 이전에는 ‘조선반도의 영향력’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다, 통일 이후에는 이런 서술이 뚝 끊긴다.(이토 아사시) 그 이후 임진왜란과 근대식민시기에 대한 서술을 분석해도 조선은 ‘그냥 그런 국가’다. 중국이나 서양과의 관계에서 끼어드는 하나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 역사교과서에 대한 한국측 발표자들의 비판이다. 송병권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일본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숨겨버렸다.”는 점이 제일 문제라면서 그 원인이 “일제 식민지 잔재 일소라는 과제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자 했던 무의식적인 발로”라는 점을 꼽았다. 고영진 광주대 교수 역시 일본을 ‘수혜자·침략자·약탈자’로만 바라보도록 하는 현행 교과서는 “현재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가운데 박중현 양재고 교사의 지적은 가슴을 묵직하게 만든다. 박 교사는 “7차교육과정에서 국사의 목표는 개방적 민족주의지만, 정작 교과서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극히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관계사’ 위주의 서술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다.‘외세가 우리 역사를 건드리지 않으면 역사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보다 더 고질적인 병’이라는 비판은 어떻게 할 것인지 되묻는 질문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나는 왜 그리고’ 펴낸 철학인생 50년 박이문 교수

    ‘나는 왜 그리고’ 펴낸 철학인생 50년 박이문 교수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대뜸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노학자는 아직도 계속 책을 내고 있다.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공부하는 분야가 속된 말로 ‘잘 안 팔린다.’는 철학인데도. 일흔여섯이 적지 않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대학강단에 선 지 50여년 만에 써낸 책이 대략 헤아려도 50여권이다. 한해에 1권꼴이다. 여기다 한권을 더 얹었다.‘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철학을 했나.’(삼인 펴냄)이다. 그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도, 마치 “아∼ 이제야 뭔가 알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바로 원로 철학자 박이문 선생이다. 이제 연세대에 출강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이 없다. 호젓하니 책만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단다. 안 움직이고 책만 보니 편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노안 때문에 안경도 모자라 돋보기까지 동원해야 할 판이니 독서는 중노동일 터이다. 그럼에도 책을 보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겁단다. 요즘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자 ‘통섭’이나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처럼 인문학적 주제에 대해 생물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쓴 책들 제목이 줄줄줄 이어진다. 이런 책을 고른 이유는 내후년쯤 책 한권 더 낼 생각이어서다.“‘지(知)’란 무엇인지,‘존재’란 무엇인지,‘선악’은 무엇인지, 이런 개념들에 대해 제 나름대로 생각했었던 것을 정리해볼 참입니다.” 50여년에 걸친 지적 여정의 총결산인 셈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과외 안하고 학교수업에만 충실했다는 수석합격생의 모범답안 같다. 그러나 박이문 선생은 차원이 다르다. 그가 걸어온 ‘삶’ 자체가 증거다. 그리 궁핍하지 않던 선비 집안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일본 유학생이던 큰형 덕에 일찍 문학과 철학에 눈떴다. 중학생 때 목표가 이미 사상가였다. 그 뒤 단 한번도 다른 길을 쳐다본 적 없다. 불문과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장도 버리고 철학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미국으로 떠돈 생활도 그렇게 시작됐다. 철학하는 데 짐이 될까봐 결혼도 안하다 쉰셋에야 가정을 꾸렸다. 운전에도 취미가 없어 일산에서 인터뷰가 있던 서울까지 버스 타고 왔다. 취미는 오직 공부였다. 오죽했으면 2000년에 낸 책 제목이 ‘나의 출가’였겠나.“지금 생각하면 얼른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게 최고인데, 그 땐 왜 그렇게 결연했는지 몰라. 허허허….” 그런 만큼 그의 책은 특징이 뚜렷하다.‘나는,’이라는 주어를 절대 생략하지 않는다. 똑 부러지게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어렵거나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금세 무너뜨린다. 자기 생각을 적다보니 개념이나 문헌자료가 줄줄 나열되는 다른 책과 다르다. 그래서 초판만 나가도 다행이라는 인문서 가운데 반응이 제법 좋다.“제 생각을 얘기하니까 읽으시는 분들도 편안하다, 진실되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의 이름을 널리 떨쳤던 1980년작 ‘노장사상’도 마찬가지다.“서양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학교에서 강의하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들여다봤는데, 한 10여년 강의하니까 요게 재미가 있더란 말씀이죠. 그래서 10여년 동안 강의 준비했던 자료를 참고 삼아 두세달 만에 쓴 책이에요.” 이 책은 14쇄를 넘기다 최근 재개정판까지 냈다. 지난해에 낸 ‘논어의 논리’도 그렇게 나온 책이다. 후학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자, 손을 계속 내젓더니 한마디를 남긴다.“자주적으로 학문하세요.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외국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더라도 내가 이해한 만큼, 또 소화한 만큼만 얘기를 하세요.‘유행’이나 ‘거품’에 휩쓸리면 절대 안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Book Review] 너무나 우쭐한 영국인 자화상

    ‘근대 서구문명의 어머니’. 사람들은 흔히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인식한다. 일찌감치 근대국가를 이룩한 영국은 많은 분야에서 서구문명을 선도하고 가꾸어왔다. 정치적으론 의회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탄생시켰고, 경제적으론 산업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 사회를 열었으며, 사회적으론 복지국가의 실험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문화적으론 ‘셰익스피어의 나라’라는 한 마디로 충분할 만큼 찬란한 문학과 예술의 금자탑을 쌓았다.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에 붙어 있는 섬나라. 우리는 이 작지만 큰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국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우리 주위엔 여전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같은 나라인데 왜 축구경기를 할 때는 각각 나오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잉글랜드 바로 옆에 있는 아일랜드가 아직도 영국의 식민지인 ‘슬픈 아일랜드’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가 쓴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기파랑 펴냄)은 영국인들의 국민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논의되고 재구성됐는가를 살핀 책이다. 저자의 전작 ‘영국사:보수와 개혁의 드라마’(1997)가 영국의 정치·사회·경제에 치중한 정통 역사서라면, 이번 책은 영국인의 문화에 초점을 맞춘 문화교양서다. 책은 환경, 몸, 신화, 정신 등 네 개의 범주로 나눠 영국적인 것(Britishness)의 본질을 밝힌다. “신은 영국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인의 자부심과 자기 확신은 하늘을 찌른다. 그것은 때로 ‘너무나 영국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영국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단면이다.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며 내성적 성향과 겸양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영국인. 그들의 심성은 종종 기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미국 사람들이 돈을 벌 때 영국인들은 날씨와 씨름한다는 말도 있듯, 날씨는 무엇보다 영국인의 국민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저자는 “차갑지만 아주 춥지는 않은 기후, 따뜻하지만 너무 덥지는 않은 날씨, 비가 자주 오지만 넘쳐흐를 정도는 아닌 강수량 등 영국의 날씨가 영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중용’을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후보다 더욱 확실하게 잉글랜드적인 이미지를 지닌 상징은 풍경이다. 영국인들에게 풍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국가적 가치관의 표징이다. 영국 사람들만큼 풍경을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는 민족도 드물다.‘전원적인 잉글랜드’라는 이상은 영국인들에겐 영원히 변치 않는 향수로 작용한다.20세기 전반 두 차례나 총리를 지낸 스탠리 볼드윈은 “잉글랜드는 시골이고 시골이야말로 잉글랜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영국은 근대 스포츠를 탄생시킨 나라다. 축구, 럭비, 크리켓, 골프, 테니스, 경마 등 인기 스포츠들은 거의 다 영국인들에 의해 발명되거나 체계를 갖췄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영국의 경우 ‘스포츠가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사회통합의 역할을 한다.’는 명제가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스포츠는 상위개념인 영국(Britain)과 하위개념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문화가 때론 부딪치고 때론 화합하면서 빚어내는 복잡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場)이다. 스포츠는 연합왕국 내 하위집단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한편,‘켈트 변두리’ 지역에선 문화적 민족주의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저자는 영국에서 축구가 노동계급의 스포츠이고 럭비가 중간 계급의 스포츠라면, 크리켓은 보편적인 스포츠이자 ‘국민적 게임’으로서 잉글랜드와 동일시되고 있음을 밝힌다. 제국주의 시대를 주도한 영국은 영광의 역사 못지 않게 추악한 이면의 역사를 지닌 ‘야누스 국가’다. 미개한 인종을 문명화하는 것은 ‘백인의 책임’이란 미명 아래 제국주의적 침탈을 일삼은 야만의 역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자랑스러운 얼굴만 보인다. 일그러진 자화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쉬운 대목이다.2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유학, 고인 물 아니다”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세상 인심에 유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력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유학은 일소돼야 할 ‘걸림돌’ 혹은 ‘적폐’였다. 완전히 실패한 역사였다고 말하기는 싫으니 다른 쪽은 과대평가된다. 대표적인 게 ‘실학’이다. 그러다 동아시아 성장과 함께 ‘아시아적 가치’가 부상하면서 유학은 또다시 각광받는다.‘물질문명에 지친 서양이 동양에서 탈출구를 찾는다.’는 식의 논리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한동안 ‘지나친 폄훼와 과잉해석’이 있더니, 그 다음에는 ‘근거가 미심쩍은 부흥’이 일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유학을 연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13∼14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유교경전과 17세기 동아시아의 유교사상’ 국제학술대회에서 신정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일단의 고민을 드러낸다. 신 교수는 기존 유학 연구의 가장 큰 폐혜로 ‘훈고’와 ‘고유성’에 대한 집착을 지적한다. 주석이나 열심히 다는 ‘훈고’는 “고대의 동양철학을 현대의 삶에 무매개적으로 이식할 수 있다는 근본주의에 호소”하고 있어서다.‘고유성’은 과도한 민족주의와 결합, 유학을 ‘국학’으로 부각시킨다. 그런데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에 대응해 생겨난 개념이자, 서양철학의 방법론을 빌려왔다는 점에서 고유할 수가 없다. 그런 차원에서 신 교수는 동양철학사의 흐름이라는 이름 아래 ‘제자백가-훈고학-사장학-성리학-고증학’ 식으로 순서를 만드는 것도 탐탁지 않다. 그런 사고방식은 “종합과 변화라는 도식으로, 철학사를 면면이 이어지는 민족정신의 전개”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대신 신 교수는 동양의 철학사를 ‘자기변신의 역사’로 보자고 제안한다.‘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 아니라 ‘국면과 필요성에 따른 현실투쟁’이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공자는 ‘고대국가’가 대두하던 시기에, 이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서 씨족사회의 공동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했던 사상가다.‘인의예지’ 개념은 그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동중서 역시 ‘중화주의 제국’으로 발돋움한 한나라라는 배경 아래 제국을 철학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던 학자다. 근대 초입, 압도적인 서양 과학기술 때문에 ‘명가’나 ‘묵가’가 환영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로 ‘자기부정과 변신의 역사’로서 유학을 볼 때만 앞으로의 유학 연구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제껏 그러지 못했을까. 신 교수는 의미심장한 지적을 하나 남긴다.“연구자가 국학대사(國學大師)가 되고자 했던 것 아닌가.”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시각] 북한 돌출 둘러싼 미·중 흥정/이석우 국제부 차장

    북한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세계 이목은 중국으로 쏠렸다.6자회담이 난관에 봉착한 지난 몇 년간의 고비마다 그랬고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 시험발사때나 1993년과 2002년 1·2차 핵위기 때도 그랬다. 그때마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영향력 발휘를 주문했고 역할을 기대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도 최근들어 커지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 북한은 대외무역의 39%, 원유 수입의 86.8%, 곡물 수입의 20.6%를 중국에 기댔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출범후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제네바합의’ 등 북한문제에 대한 양자 해결 방식을 ‘실패한 정책’으로 폄하하면서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한편 책임도 지우는 다자적 해결방식을 채택했고 6자회담으로 이를 구체화했다. 북한 핵문제의 해법으로 6자회담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설득해 산파 역할을 한 중국은 주최국으로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였다.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은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칼날을 숨기고 힘을 길러 때를 기다린다.’는 개혁·개방 이후 일관된 ‘도광양회(韜光養晦)’정책의 변화로 주목받았다. 조심스러운 태도로 막후 활동에 치중했던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나선 중국의 이같은 행동은 ‘적극적인 개입과 영향력 발휘’에 중점을 둔 유소작위(有所作爲)전략이 한반도 외교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이같은 역할 모색의 배경에는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북한의 ‘돌출 행동’이 자칫 자국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고 안보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조바심이 깔려 있다. 냉전종식 후 강화돼 온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이 ‘위험한 불량국가’ 북한을 구실로 더 견고해지면서 “타이완과의 통일노력을 가로막고 내정간섭의 방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는 재무장 등 일본의 ‘보통국가화’ 일정을 앞당기면서 타이완의 본토 복귀에 쐐기를 박고 있다는 게 중국측 판단이다. 중국에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서의 타이완의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고 아우성이다. 일련의 움직임 모두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우려다. 실제 미·일은 근년들어 “타이완이 미·일 방위동맹의 범위안에 있다.”고 국방당국자 회담에서 확인하는가 하면 미사일방어(MD)체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그 ‘우산’안에 타이완을 포함시켜 중국을 격분케 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 ‘타이완 수복’은 타협·양보할 수 없이 사수해야 할 ‘사활적 국가이익’이지만 미·일이 타이완해협의 분리정책을 강화하고 ‘중국 에워싸기’를 본격화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후 더 뜨거워진 타이완의 정체성 찾기와 독립 움직임이 달아오른 중국 민족주의 정서와 부딪치면서 동북아의 시한폭탄이 됐다. 이런 상황속에서 북한의 돌출행동 처리는 중·미간의 치열한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고 한반도문제는 주변 강대국들의 ‘게임의 장’이 됐다. 북한의 체제교체(regime change), 봉쇄와 압박, 현상유지 등 각종 시나리오들이 난무하는 밀고 당기기의 힘겨루기와 흥정의 장이 됐다는 것이다. 타이완의 후견인으로서 중국 통일의 길을 막고 있는 미국에 한반도에서 중국의 협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돌출행동을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재무장의 빗장을 여는 구실로 이용하는 미·일의 태도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가 군사적 충돌의 성격보다 정치적 흥정의 성격이 짙고 이를 둘러싼 열강들의 파워 게임이 불붙고 있다는 점은 한국정부와 국민이 흥분속의 격한 반응보다는 냉정함속에서 주변국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할 이유다. 이석우 국제부 차장
  • 靑, 한·미FTA 반대론 반박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10일 한·미FTA 2차 본협상에 들어간 시점에 맞춰 ‘한·미 FTA 태극전사들에게 성원합시다!’란 제목의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올려 한·미FTA 반대론을 정면 반박했다. 이 수석은 “구한말 개항은 철저히 ‘타의’에 의해,‘제2의 개항’이라던 UR(우루과이라운드)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한·미 FTA는 쌍방의 ‘자의’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협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에 굴종하는 FTA 협상은 없고, 한국이 미국에 굴종하면서까지 FTA를 체결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수석은 ‘한·미FTA=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주장에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낡은 종속이론은 개혁과 개방의 적”이라면서 “현실 안주에는 적합한 명분일지 모르지만 폐쇄적인 국가 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며 반론을 폈다. 졸속 추진설과 관련,“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적 업적으로 남기려는 조바심 때문에 졸속 추진하고 있다고 우기는데, 한·미 FTA가 국민경제를 망칠 나쁜 정책이라면 그게 어떻게 국가 지도자의 업적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졸속으로 협상을 했다가 ‘진짜 매국노’가 되려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20여년 동안의 과거 통상협상이 모두 FTA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느닷없이 불거진 현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언어논리영역(독해)

    (문제)다음 글로부터 알 수 있는 진술을 모두 고르면? 조선의 소중화사상도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성장한 것이다. 소중화사상은 원래 두 가지 모순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는 중화에 대한 사대적·모화적 발상이고, 다른 하나는 유교문화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중화와 질적으로 동등하다는 긍지에서이다. 화이사상은 원래 한족 중심의 세계관이었으며, 명·청 시대에는 동아시아의 폐쇄적 국제관계가 전개됨에 따라,‘외이(外夷)’는 각기 독자적으로 화(華)를 추구하고 다른 국가에는 이(夷)로 멸시하였다. 조선의 소중화의식도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성장한 국가의식 내지 민족의식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화인 명과 이인 청의 교체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과 함께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은 두 차례의 호란과 명·청 교체를 경험하면서, 그 소중화 의식에도 반청존명의 모화감정이 치열해졌다. 송시열(宋時烈)을 위시한 북벌론자들의 경우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으며, 그러한 북벌론적 소화의식이 당시 사상계의 저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러한 치열한 반청감정은 일시적 현상이었으며, 뒤이어 나온 실학자들에 이르러서는 화이일야적(華夷一也的) 소중화 의식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조선의 소중화의식이 원래 갖고 있던 두 가지 모순되는 성질, 즉 사대적 모화와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 가운데서 후자에 속하는 우월의식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여 실학자들에 이르러 합리적으로 해석된 것이다. 일본은 명·청 교체를 화이변태(華夷變態)로서 환영하는 뜻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과 명의 경우와는 판이한 태도다. 임진왜란으로 무력을 한껏 과시한 그들은 덕천막부 체제에서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였으나, 지방의 영주(領主)들로 하여금 서양과의 일정한 교섭관계를 맺게 하면서 그들 나름의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그들의 무력을 바탕으로 하는 우월의식에서 천황을 중국의 황제와 동일시하고, 그 밖의 외국은 한 단계 낮춰 보는 이른바 일본형 화이관을 형성하였다. ㄱ. 조선의 소중화 의식을 실학자들은 전면부인하고 조선의 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합리적으로 주장하였다. ㄴ. 국가별 세계관은 상대주의적 성향을 띤다. ㄷ. 중화가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ㄹ. 국가들의 세계관 변화는 국제질서의 재편을 초래한다. ㅁ. 통상적으로 과거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페쇄성으로 일관하였다. (1)ㄱ,ㄴ,ㅁ (2)ㄱ,ㄷ (3)ㄴ,ㄷ (4)ㄴ,ㄹ (5)ㄹ,ㅁ (해설) ㄱ. 사대적 모화와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 가운데서 후자에 속하는 우월의식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여 실학자들에 이르러 합리적으로 해석된 것이다. ㄴ.‘外夷는 각기 독자적으로 華를 추구하고 다른 국가에는 夷로서 멸시하였다’,‘일본은 명·청 교체를 華夷變態로서 환영하는 뜻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과 명의 경우와는 판이한 태도다’ ㄷ.‘外夷’는 각기 독자적으로 華를 추구하고 다른 국가에는 夷로서 멸시하였고 조선의 소중화의식도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성장한 국가의식 내지 민족의식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ㄹ.‘화인 명과 이인 청의 교체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과 함께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다’라는 진술로부터 국제질서의 재편과 세계관 변화 간의 인과관계는 확실하게 도출할 수 없다. ㅁ.‘명·청 시대에는 동아시아의 폐쇄적 국제관계가 전개’,‘덕천막부 체제에서 쇄국정책으로 일관’으로부터 전체적 차원에서 폐쇄적 국제관계의 일관성은 잘못되었거나 알 수 없다. 정답은 (3)
  • [발언대] 해외자원개발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박양수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중국이 전세계 에너지자원을 쓸어 담겠다는 기세로 전방위 자원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80억달러를 들여 베트남, 브라질, 호주 등 전세계 10개 국가에서 알루미늄, 구리, 아연 등 비철금속 광산 10개를 확보했다. 일본도 지난해부터 비철금속 확보에만 21억 6000만달러 이상의 거액을 투입하고 있다. 또 베네수엘라가 원유와 천연광물에 대한 국유화를 선언하는 등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각국에서 자원민족주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가 총성없는 자원전쟁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와 광물자원의 98%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원확보가 곧 국가적 생존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출비중이 높은 경제구조상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손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크게 다가온다. 구리는 2004년 말에 비해 155%가 급등했고, 아연과 알루미늄 역시 각각 143%와 44%나 급등했다. 기름값 상승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산업원료로 사용되는 광물가격 상승에는 다소 무감각한 경향이 있다. 이는 석유에 비해 광물이 국민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조선, 반도체, 전자제품의 필수소재로 사용되는 광물자원의 안정적 확보는 국민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광물자원은 앞으로도 산업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산업은 산업원료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광물가격이 급등할 경우 국내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기업은 원자재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바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채산성 악화로 연결돼 경영난에 직면하게 된다.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광물을 우리 기업이 자주개발할 경우, 자원의 수급 위기 시에도 안정적 확보가 가능할 뿐 아니라, 가격이 상승할 경우 상승분만큼 생산자 이익이 창출되므로 국내산업의 안정적 경영이 보장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금까지 17개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자원외교를 펼친 것도 우리 경제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광업진흥공사는 대통령의 자원외교 성과로 14개국과 자원공동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9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7개가 후속작업 단계를 밟고 있는 진행형 사업이다. 우즈베키스탄과는 자파드노 금 프로젝트 등 3개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남미의 대표적인 자원보유국인 아르헨티나와도 성공적인 자원외교에 힘입어 LS니꼬사와 2개 사업에 공동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대통령이 방문한 몽골은 300억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구리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캐나다 아이반호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자원개발사업은 투기성 사업이 아니라, 과학적 탐사 및 정확한 평가와 함께 리스크관리가 요구되는 사업이며 실제 생산까지는 수년간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자원 정상외교와 자원부국과의 자원협력을 바탕으로 좀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 기업들의 해외투자 진출이 확대돼야 된다. 박양수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반도’ 강우석감독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반도’ 강우석감독

    강우석 감독의 팩션 블록버스터 ‘한반도’(제작 KnJ엔터테인먼트)가 새달 13일 개봉한다. 그런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가 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지난 26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이후 연일 영화가 안팎을 시끌시끌하게 달군다.“상투적 애국주의”“허구적 역사로 돈벌이하려는 상업주의” 등의 거센 비판에서부터 “강우석 감독이라서 만들 수 있는 영화” 식의 변론까지…. 일찍부터 “이번 영화 잘못되면 다시는 영화 못 만들지 모른다.”며 자신감을 우회적으로 피력해온 감독이다. 뚜껑을 열기 전에 ‘비호감’쪽의 언론평가가 와르르 쏟아진 지금, 그의 심정은 그래서 더욱 복잡하다.‘실미도’로 1000만 관객을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이란 수식어는 납덩이 같은 짐일 수밖에. 흥행귀재의 이름값을 이어갈지, 대중의 산술적 호기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도 그에겐 족쇄이다.28일 “(영화를 만들면서)마음 고생 너무 많았다.”며 상기된 그를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논란이 많다. 예상했던 반응일 것 같다.<잃어버린 조선의 국새를 찾아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넘어간 경의선 등의 권리를 되찾는다는 게 영화의 얼개> -물론 예상했다. 국가관을 정면으로 따져보자는 상업영화인데 관객이 쉽게 적응할 수 있겠나. 감독의 주관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많다. 인정한다. 일본에 대한 개인적 국가관을 한번쯤 들이밀고 싶었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에겐 불편할 것이다. ▶감상적 애국주의를 부추긴 시대착오적 작품이란 혹평도 있다.<명성황후 시해, 고종 독살, 한·일 전쟁 위기 등 역사적 사실과 근미래의 한·일 가상 관계를 나열하는 등 이분법적 극일 메시지가 강렬한 영화이다. 남북통일이 임박한 근미래, 경의선 철도 개통에 일본이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본격화한다.> -사실 ‘한반도’란 선언적 제목부터가 엄청 건방진 것이다. 제목부터 정해놓고 그 기대치에 맞춰 만드느라 진땀을 뺐으니까. 영화가 마치 현실을 빗댄 것처럼 돼 버렸는데, 실은 처음엔 이렇게 직설적으로 만들 의도는 아니었다. 근데 올해 초 고이즈미 총리가 급격한 남북통일은 원치 않는다고 발언하지 않았나. 영화는 독해지고 세질 수밖에 없었다. 뭇매를 맞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결심이 더 단단해진 거다. 그러나 가상미래일 뿐인데 현 정권과 연계해 바라보는 시각들은 아쉽다. 나를 편협한 민족주의자로 내모는 것도 억울하고. ▶한·일 가상역사로 박박 긁어줘서 시원하다는 관객반응도 많을 것이다. 반면 영화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피할 수 없겠다. -너무 무거워질까봐 찍는 내내 걱정했던 부분이다. 처음 시나리오 대사량의 반을 잘라냈는데도 말이 많아 관객에게 역사수업을 시키는 것 같다는 지적이 들린다. ▶장황한 대화,“끝까지 맞서 주권을 찾자.”는 식의 단순선동적 대사 등이 드라마의 은유에 치명타가 됐다. -(웃음)영화기자들을 썩 즐겁게 해주지 못했는진 모르지만 관객서비스는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 영화의 일본수출길이 막힐지도 모르는데 의미나 각오 없이 만들었겠나. ▶출연배우 조합이 묵직하다. -명성황후 역의 강수연은 삼고초려했다. 감정선을 살리는 결정적 역할이지만 시나리오 원본엔 한 신뿐이었으니까. 안성기·문성근 선배, 조재현, 차인표 모두 흥행배우 만들어 주겠다고 장담하며 모셨다.(웃음) ▶CG에 20억, 미술에 20억원. 순제작비 96억원 중에 절반 가까이가 볼거리에 들어갔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폭파, 한·일 군함 출동장면 등에 공을 많이 들였다. 청사폭파 때의 군중신 등이 박진감 있다는 호평을 듣는다. ▶영화만 만들겠다는 선언과 함께 새 제작사(KnJ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첫 작품이다. -솔직히 그래서 부담이 더 크다. 영화만 만들겠다더니 사업할 때보다 더 못한다는 소릴 들으면 안 되니까. ▶계속 블록버스터를 만들 건가. -내 주특기는 코미디이다. 코미디 하고 싶은데 이거다 싶은 시나리오가 없다. 코믹 첩보물 한편을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이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이태진 교사가 본 영화 한반도영화 ‘한반도’의 키워드는 ‘감춰둔 진짜 국새’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고, 설사 그렇다 해도 일본이 지금와서 경의선을 요구한다든가, 진짜 국새 하나로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적 설정인데, 이런 설정이 가능하려면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고종황제의 영민함’이다. 실제 영화는 독살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기개 넘치는 군주로서 고종을 그려낸다. 최근 ‘고종시대의 재인식’을 주도했던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에게 감흥을 물었다. 그는 “무능하고 유약한 왕이 아니었다는 자료들이 최근 많이 발굴됐으며 영화를 통해 그런 편견이 고쳐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종이 무력했다기보다 조선침략을 위해 일제가 그만큼 전력투구했다는 얘기다. 러·일전쟁이 단적인 예다.“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아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학계 연구동향을 종합한 기사를 보면, 정보장교 아카시 모토지로를 통해 러시아를 교란하는 데 들인 돈만 73만엔입니다. 쌀가치 기준으로 환산하면 지금 돈으로 72억엔입니다. 이렇게 전력투구했는데, 막 걸음마단계였던 대한제국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이 교수는 그래서 고종 독살설은 신빙성 있다고 본다.“1918년 1월8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내놓아요. 일제는 당황합니다. 고종에게는 빌미가 될 수 있거든요.” 일제는 곧 선전에 들어간다. 일본에 잡아뒀던 영친왕을 귀국시키고 ‘황실전범’을 고쳐 일왕가의 이방자 여사와 결혼시킨다. 신혼여행도 이듬해 1월 파리로 보내는데, 이는 1차대전 뒤 강화조약이 열린 프랑스에서 ‘일본과 조선은 화목하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송병준 등을 보내 고종에게 일본의 지배에 만족한다는 친서를 받아내려 든다. 고종이 죽은 것은 묘하게도 이를 거부한 직후다. 이게 일종의 ‘정황’이라면 ‘문헌’도 있다. 윤치호가 영문일기에 고종의 독살을 암시하는 내용을 1919년 2월11일,1920년 10월13일 두 차례 남겨두는데, 특히 뒤의 것은 고종의 시신을 염했던 ‘민영달’이란 인물의 증언을 자세히 기록해뒀다.‘친일파’ 윤치호의 기록이니 신빙성은 더 높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고종의 영민함 때문에 일제가 골치 아파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1896∼1900년 타이완 식민화를 끝내고 조선으로 눈을 돌렸을 때, 일제는 고종의 근대화 플랜 ‘광무개혁’에 경악했다. 근대화플랜에 국내자본육성까지 시도한 고종이었기에, 일제로서는 어떻게든 그를 쓰러뜨려야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배타적 민족주의 양산하는 월드컵보도/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4년에 한번 찾아오는 세계인의 축제에 한국이 그 주인공으로 참여하였으니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도 당연하다. 신문과 방송은 이번 월드컵에 사활을 건 듯한 인상이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들의 월드컵 올인 편성은 강력한 동원기능을 발휘하여 시민들을 거리로, 그리고 TV브라운관 앞으로 몰고 있다. 물론 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월드컵 몰두 현상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방송이 광고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소식은 과열된 현상의 배경인 산업 메커니즘을 되돌아보게 한다. 미디어나 시청 앞 광장과 같은 거리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상업적 마케팅은 이 축제가 끝나고 나서 반드시 결산서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월드컵으로 쏟아진 관심으로 언론의 사회적 감시기능은 약해졌다. 한국과 프랑스와의 대전을 앞둔 지난 17일 프랑스 일간지는 월드컵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기 위해 대표적인 신문인 르몽드와 르피가로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놀랍게도 첫 화면에 월드컵 기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르몽드의 헤드라인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에서 어린이를 동원하는 문제에 대해 유럽의 시민네트워크가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로 채워져 있다. 나머지 기사들은 국내외적 정치사회적 기사들로 가득 차 있다. 월드컵 기사는 스포츠 섹션에 한두 기사가 담겨 있을 뿐이다. 한국전을 앞둔 프랑스 감독의 인터뷰를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였다. 르피가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PDF로 제공되는 인쇄신문의 1면에는 빌게이츠의 은퇴 기사가 톱기사로 올라와 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사원 몽생미셸과 관련된 기사와 사진이 지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역시 1면에서 월드컵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 세계적인 프로축구 리그를 운영하고 스타급 선수들이 뛰는 축구 선진국이지만, 이들 언론은 일상의 정치와 사회문제를 축구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하는 것 같다. 다시 서울신문을 비롯한 주요 한국 언론사 사이트를 방문하자, 모든 곳이 월드컵을 헤드라인으로 올리는 것은 물론, 각종 특집 사이트로 채워 넣고 있었다. 언론이 비춰주는 세상의 상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실제 세상에 너무나 큰 간극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월드컵 기사가 양적으로만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언론보도들이 축구의 승패를 국력이나 민족적 우월성과 등치시키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배타적 민족주의를 낳게 한다. 호주와 일본의 경기에서 보여준 일본에 대한 배타적 보도, 가난한 나라 토고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국민들에게 축구경기 속에 민족 또는 국가에 대한 편견의 상을 그려 넣는다. 또 우리 언론은 외부 시선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만약 좋은 평가가 있으면 이를 통해 위안을 삼는 자기 위안적 보도 경향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논평 역시 객관적이지 않게 과대 포장된다. 상대편 선수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하는 칭찬도 우리 언론은 헤드라인으로 뽑는다.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자신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기사에는 “한국 무섭다.”로 헤드라인이 뽑힌다. 이런 경향의 보도는 아주 광범하게 퍼져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취재대상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모두 다루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언론은 해외언론보도에서 칭찬한 내용만을 과대 부각시키곤 한다. 우리사회가 외국의 시각이나 평가에 민감한 것 역시 과도한 민족주의의 발로이다. 필자의 생각에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자기 자리를 잘 지키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앞에서 나열한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신문 또는 정론지의 힘은 이 같은 상업적 열풍 속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되새겼으면 한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책꽂이]

    ●쇼펜하우어 세상을 향해 웃다(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 철학가 쇼펜하우어는 대표적인 염세사상사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플라톤과 인도 베다철학의 영향을 받은 염세관을 기조로 하는 그의 철학적 인식 방법은 19세기 후반 세기말 현상에 편승돼 널리 보급됐다. 그러나 이 책은 쇼펜하우어를 유머와 재치, 위트가 넘치는 재기발랄한 낙관주의자로 그린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논문인 ‘웃음론’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 전반에서 유머라는 정신적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1만 4000원.●고이즈미와 일본 광기와 망령의 질주(후지와라 하지메 지음, 황영식 옮김, 시대의창 펴냄) 외조부 마타지로, 아버지 준야 모두 정치인이었던 고이즈미 총리 집안 3대를 축으로 메이지유신 전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치사의 추악한 이면을 다뤘다. 프리랜서 논평가인 저자는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다나카 마키코는 단지 정적인 하시모토파에 대한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이즈미를 총리에 앉혔다고 주장하며 이를 악마의 향연이 시작된 좀비정치의 클라이맥스라고 냉소한다.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고이즈미 정권은 틈만 나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며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야스쿠니 유신’ 정권이며, 우정민영화는 공공선이 무너진 천민자본주의라고 비판.1만 5000원.●예수와 유다의 밀약:유다복음(로돌프 카세르 등 옮김,YBM Si-sa 펴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 가룟 유다. 그는 위대한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인 예수를 배반한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을 매 죽는다고 성서에 묘사돼 있다. 또 다른 성서에는 배가 터져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것으로도 나온다. 그런데 유다의 배신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동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은화 30닢에 눈이 멀어, 혹은 사탄의 꾐에 빠져 동고동락한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얘기는 어쩐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유일한 제자였으며, 그의 배신은 예수의 요청에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담긴 고문서 유다복음 완역본.1만 1000원.●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김상률 등 엮음, 책세상 펴냄)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평생을 두 세계의 망명객으로 살았던 사이드. 그는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서구중심적인 재현의 폭력과 서구 지식체계와 담론의 관계를 파헤친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그 속편격인 ‘문화와 제국주의’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학자로 떠올랐다. 탈식민주의의 선구자 사이드의 삶과 비평, 정치를 다룬 이 책은 구체적인 현실을 기반으로 한 사이드 비평의 진보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비평이 지닌 담론적 한계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푸코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결정론적 성격을 문제삼는다.1만 5000원.●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청전 지음, 지영사 펴냄) ‘지구촌의 공인된 스승’ 달라이 라마를 20년간 모시며 인도 다람살라에서 수행하고 있는 청전 스님 이야기. 라닥에서의 의료봉사 활동이 눈에 띈다. 라닥은 인도의 오지로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척박한 땅. 인도 영토이고 인도 국적이다 보니 라닥 사람들은 티베트 난민기금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인도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라닥 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리언으로 혈통이 똑같다. 그래서인지 우리 약이 잘 듣는다는 것. 저자는 수행하면서 품었던 의문들을 풀기 위해 남방의 여러 근본불교 국가들을 방문한 뒤 다람살라에 정착했다.1만 3500원.●음식의 역사(레이 태너힐 지음, 손경희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 동물로부터 먹을 것을 얻었던 유목민들은 새로운 방목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다. 그 결과 농경정착민과 유목민 사이엔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스텝지대 유목민들은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가기도 했고 중국과 인도에도 진출했다. 유목민들은 채소나 과일을 거의 먹지 않지만 동물 피와 비타민C가 모유의 2배, 우유의 4배나 들어있는 말젖을 먹음으로써 원기와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인류 음식문화의 서사시라 할 만한 책.1만 8000원.
  • [코드로 읽는책] 외채의 냉혹한 세계지배 실상

    외채는 구원의 손길인가, 아니면 신 식민지배의 수단인가. 불과 몇 년 전 절망적인 외환위기를 맞아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우리에게도 외채 혹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은 적지 않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제3세계 외채 탕감을 위한 위원회(CADTM)에서 활동하는 다미앵 미예와 에릭 뚜생이 함께 지은 ‘신용불량국가’(조홍식 옮김, 창비 펴냄)는 페어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IMF와 외채의 냉혹한 세계지배의 실상을 고발한 책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외채는 그 형성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채권국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70년대 자국 인플레를 우려한 미국이 해외투자를 장려하면서, 그리고 오일쇼크로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인 산유국들의 돈이 서방은행에 몰려들었으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대규모의 외채를 제3국가에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 선진산업국은 남아도는 돈을 개도국에 빌려줌으로써 자국 상품의 판매를 꾀했고(연계 원조), 또한 맥너마러가 이끈 세계은행은 미국의 반공·반민족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외채를 이용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렇게 쌓이기 시작한 외채는 80년에 이르러 6000억달러에 이르는 등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급기야 1983년 멕시코의 부채상환 포기를 시작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러시아, 동남아시아, 한국, 다시 라틴아메리카 지역으로 외채 위기가 반복되었다고 분석한다. 외채 위기가 닥칠 때 이를 처리하는 IMF와 세계은행 등 세계금융기관의 조치는 개도국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더 악화시켰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채무국의 수출을 장려한다며 빌려준 돈으로 몇가지 원자재나 1차산업에 투자하게 한 뒤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 이를 사들여 완제품을 만들어 역수출함으로써 부가가치의 주요부분을 선진국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즉 IMF의 구조조정정책은 서구의 금융기관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이라고 저자들은 단언한다. 이들은 이같은 과중 채무빈곤국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선 외채의 전면적 탕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기존의 경감조치는 단지 상환금을 나누어 갚으라는 조치로,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독재정권에 의해 부도덕하게 체결된 외채를 개도국의 민중들이 모두 갚을 이유가 없으며, 개도국은 이미 외채 원금의 7.5배에 해당하는 돈을 갚았음에도 아직 원금의 4배가 남아있다는 수치상 증거를 탕감의 이유로 내세우기도 한다. 외채 탕감운동을 벌이는 운동가로서 이들의 주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지만, 외채의 속성과 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빈틈없는 분석은 IMF사태를 넘기며 극심한 고통과 부작용을 경험해야 했던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1만 5000원.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 악플 전쟁/이목희 논설위원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당시 북한의 예상밖 선전에 우리 국민들은 의기소침했다. 이때 영웅으로 떠오른 선수가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8강전에서 4골을 성공시켜 북한에 0-3으로 지고 있던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켰다. 대회 직후 박정희 정권은 ‘북한 타도’를 기치로 중앙정보부 밑에 양지팀을 급히 창설했다. 일류선수를 징집해 해외전지훈련 등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었다. 당시에는 남북 축구에서 지면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실력이 북한에 못 미쳐 승산이 없으면 월드컵 예선전을 아예 포기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대범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한 언론사는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활약을 역대 10대 이변으로 꼽았다. 이웃이 잘 나가면 배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지구촌 차원에서는 ‘동북아의 선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제 남북한 사이에는 스포츠 협력이 잘되는 편이다.6·15행사 참석차 광주를 방문한 북측 대표단장은 “남쪽이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북한 대신 미운 오리로 떠오른 상대는 일본이다. 과거에도 한·일 축구전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팀의 다른 경기를 놓고 희비가 극명하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독도 논란으로 반일 감정이 끓어올랐다. 이것이 자연스레 스포츠로 옮아가고 있다. 일본이 호주에 1-3으로 역전패한 뒤 한·일 네티즌간 ‘악플(악의적 댓글)전쟁’이 벌어졌다. 히딩크 호주팀 감독이 한국을 위해 일본을 이기겠다고 언급, 양국민의 민족감정에 불을 질렀다.“일본의 패배가 고소하다.”는 한국 네티즌의 반응에 일본이 발끈했다. 야후 재팬 월드컵게시판에 ‘한국, 놀리지마’라는 별도 코너가 생겼다.“프랑스, 스위스가 한국의 코를 납작하게 해달라.”는 기원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의 고집불통 지도자들이 미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한국인이 속좁지 않음을 보여주자. 남북한 관계처럼 스포츠가 한·일 우호회복에 도움을 줘야 한다. 중국을 포함, 동북아 3국의 민족주의를 축구 경기와 응원을 통해 누그러뜨려야 한다. 월드컵에서 한국, 일본팀이 모두 잘 싸우는 게 좋다. 아시아지역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고, 월드컵 출전권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뉴라이트, 맥락 고려않고 무분별 차용”

    복잡하고 어렵다던 포스트이론을 대중들에게 가장 쉽게 전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뉴라이트의 공이다.90년대를 휩쓸었던 탈현대론·해체주의·탈민족주의·탈식민주의로 정리되는 포스트이론은, 사실 최첨단 패션같았다. 멋지긴 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고 보통 사람이 평소에 저러고 다니긴 어렵겠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민중·민족 중심의 세계관을 깨겠다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백두산 신화 해체’를 내세우는 등 포스트이론을 대거 차용하면서, 마침내 그 면모가 구체적으로 대중들 손에 쥐어졌다. 계간지 ‘실천문학’은 여름호 특집 ‘탈주체론을 넘어서’를 통해 바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한국과 서구는 ‘맥락’이 다르다 송두율 교수는 서구사회에서 생산된 포스트이론을 맥락이 전혀 다른 한국에 무분별하게 가져다 쓸 수 없다고 지적한다. 포스트이론의 강점은 구체적 개인의 생생한 삶을 민족·국가와 같은 거대담론에 희생시키지 말자는 데 있다. 그런데 포스트이론 수입 과정은 거꾸로 한국이라는 구체적 국가의 상황을 서구의 유행 포스트이론 아래 매몰시켜버린다. 송 교수는 특히 한국과 서구를 동등하게 비교한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특수한 유럽은 이미 보편의 힘을 가지는 특수로 한국의 특수와는 다르다.”는 것. 그렇기에 탈식민문학 문제를 건드리는 하정일 원광대 교수는 서구의 탈식민론을 그대로 가져다 오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는 탈식민론을 만드는 것이 외려 탈식민론의 본뜻에 맞다고 지적한다. 포스트이론 자체가 특수성을 옹호하는 이상 “우리의 특수성을 해명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설명이다. 평론가 박수연이 특집 서론에서 직접적으로 되묻는 질문이 가장 뼈아프다.“따지고 보면 우리가 언제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딛고 그것에 준해서, 마오주의도 아니고 스탈린주의도 아니며 다만 우리 자신일 뿐인 현실주의자로 살아있었던 적이 있기나 한 것일까.” 주체가 되어본 적이 없는데, 왠 탈주체냐는 반문이다. ●“이성중심주의 비판 목적은 탈이성아냐” 특집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글은 헤겔을 중심으로 포스트이론을 논하는 김윤상의 ‘헤겔의 차이론과 포스트구조주의’다. 알려졌다시피 푸코·들뢰즈·라캉·데리다 등 주요 포스트이론가들은 한결같이 ‘반헤겔’을 내세운다. 그러나 김윤상은 반헤겔을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라 해석한다. 그 한 예가 헤겔을 로고스중심주의자·동일자의 철학자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해체론자 자크 데리다의 경우다.90년대 초 러시아 철학자들이 해체론을 러시아 전통사상가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논의하자, 그 자리에 초대받은 데리다는 외려 “나는 로고스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형이상학의 부활을 위해 급진적인 비판을 수행했을 뿐이며, 이런 배경을 모르고 해체론만 가져다 쓰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몰이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헤겔을 정점으로 완성됐다고 평가받는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했던 것은, 이성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이성을 흔들어 일깨우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얘기다. 포스트이론가들치고 나중에 ‘나는 (너희들이 해석한) 그런 포스트이론가가 아니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드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동시에 서구에서는 급진적 기획이었던 포스트이론이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노장사상 운운하는 유미주의에 빠져들거나, 과거사청산 반대·남북통일반대 등 보수적 논리로 나타나는 이유도 짐작해볼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6)한국 최고의 목조 성당 강화읍 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6)한국 최고의 목조 성당 강화읍 성당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에 들어선 뒤 고려궁지로 향하다가 오른쪽 좁은 골목길을 끼고 구릉 정상에 오르면 만나게 되는 강화읍성당(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북산과 남산의 가운데 지점에 한옥으로 잘 지어진 이 성당이 바로 개항기 최대의 선교 거점이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전통 목조 중층 한옥의 성당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총 40칸 규모. 팔작지붕을 얹고 목골 벽돌조로 외벽을 두른 한옥이지만 내부공간을 전형적인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 양식으로 연출한 동서양의 정교한 만남이 이채롭다. 지금은 관할 사제 1명에, 불과 100여명의 신자가 적을 두고 있는 작은 교회지만 1900년 세워질 때만 하더라도 강화에선 기독교를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큰 교회였다. 성공회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희준을 배출한 성당이고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철범 주교도 이 성당 출신. 이 성당보다 조금 늦게 강화에 세워진 온수리 성당은 현재 강화에서 교세가 가장 크지만 여전히 강화읍성당은 이 지역 12개 교회와 기관을 대표하는 중심 성당이다. 성당의 모습은 세워질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산을 향해 외삼문, 내삼문, 성당, 사제관이 늘어서 마치 배의 형상을 연상케 한다. 선교사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자.”는 뜻을 세워 배의 모양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선 성당의 바깥 출입문인 외삼문은 뱃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강화읍내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 외삼문에서 3계단을 더 올라 내삼문을 지나도록 돼 있는데 여기에는 종각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 종각에는 1914년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 매달려 있었는데 서울대성당의 것보다 조금 작지만 음색이 아름답고 소리가 4방 30리까지 울려퍼졌다고 한다.1945년 일제에 의해 징발되었으며 지금의 종은 1989년 신자들이 모금해 다시 매단 것이다. 종각 중간에 서서 배의 선복에 해당하는 성당의 팔작지붕을 올려다보면 가장 먼저 ‘천주성전(天主聖殿)’이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이나 예배당에서 일반적인 ‘당(堂)’ 대신 성전으로 쓴 것이 독특하다.‘천주성전’ 현판 밑 4칸 벽면에 주련이 걸렸는데 이 주련 위에 연꽃 무늬를 장식한 것도 인상적이다. 출입구인 전실과 회중석, 통로, 지성소(대제대), 감실(소제대), 예복실로 구성된 성당의 내부는 바깥에서 보기와는 영 딴판. 모두 20개의 큰 나무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전실에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3번째 기둥 중간에 세례할 때 쓰이는 화강암 성천대가 있다.6번째 기둥부터 북쪽으로 지성소와 제대가 들어서 전체적으로 이 곳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꾸몄다. 지성소 안에는 회중석 마루보다 높은 계단 위에 돌판을 깔고 그 위에 화강암 제대를 고정했다. 이 제대는 의식을 거행할 때 신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신성한 곳으로 성당 전체적으로 가장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제대 뒤 가운데 기둥에 하느님 야훼를 뜻하는 ‘만유진원(萬有眞原)’이라 쓴 현판은 당시 선교사들이 선교의 근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성소 북쪽 1칸을 2계단으로 높이고 제대를 놓은 후 정면에 성체를 봉안하는 성막을 안치했는데 이곳이 작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집회공간. 성당의 구조상 미사때 사제가 신자들에게 등을 보인 채 집전하는 형식이 살아 있는 유일한 성당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초기 교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유배지 강화에 이처럼 큰 성당이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을 영국의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성지로 삼으려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서안에 있는 이오나 섬은 6세기쯤 콜롬바(Colomba)가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수도원을 세운 성공회의 뿌리. 유배지 강화도도 당시만 해도 소외와 핍박의 땅으로 교회가 전혀 없었다. 선교사들은 강화외성 출입문인 진해루 밖 나루터에서 한옥 한 채를 마련해 처음 선교를 시작했는데 바로 이곳이 강화 최초의 교회인 셈이다. 당시 조선정부가 해군을 육성하기 위한 해연총제아문을 설치해 그 직속으로 조선수사해방학당을 1893년 이곳에 설립했던 것도 성공회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요인. 당시 영국인 해군장교와 포병교관이 임명되고 통역으로 고용된 성공회 교인이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강화읍성당이 축성된 것은 성공회 3대 주교인 조마가(트롤로프) 신부때.1899년부터 터닦기를 시작,1년간의 공사를 거쳐 1900년 11월15일 축성식이 열렸다. 조마가 신부가 신의주에 직접 가서 백두산 원시림 적송을 뗏목으로 강화까지 운반했으며 도목수는 경복궁을 신축할 때의 도편수였다고 전해진다. 조마가 신부는 지금도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회자될 만큼 강화도 지역에서 그의 치적은 곳곳에 담겨있다. 기와와 석재는 모두 강화산을 썼으며 성당내 석물과 담장 기단은 인천에서 온 중국인 석공들이, 담장 미장은 강화 주민들이 맡았다. 강화읍성당이 축성된 뒤 감리교, 장로교 등 개신교와 천주교가 앞다투어 선교에 나서 교회들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강화는 종교 각축장이 되어갔다. 지금 강화읍성당 주변에 감리교 중앙교회, 장로교 성광교회, 천주교 강화성당 등 강화지역에선 가장 큰 교단의 중심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당시 선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강화읍에선 지금 이 교회들과 주변의 고려궁지, 용흥궁 등을 연결하는 문화벨트 조성공사가 추진중이다. 강화읍성당 관할사제이자 성공회 강화교무국 총사제인 김준배(57) 신부는 “성공회는 구한말 열강의 각축과 맞물려 경쟁적으로 진행됐던 기독교 선교양태와는 사뭇 다르게 한국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했고 강화읍성당은 그 토착화의 전형”이라면서 “기독교계에서 한국 초기 선교의 역사와 토착화된 교회 양식을 담고 있는 이 성당을 원형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kimus@seoul.co.kr ■ 강화도 의병운동과 교회 1907년 강화도에서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번졌던 정미 의병운동은 지금까지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정미 의병운동이란 정미조약 직후 강제해산당한 군대 출신들이 의병을 조직해 무력투정을 전개한 사건. 이동휘 연기우 지흥윤 유명규 등이 주도한 의병들이 일본인 순사와 일진회 강화지부 총무였던 강화 군수 정경수를 살해했는데 이와 관련해 일본군 수비대가 의병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인과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강화 의병운동의 핵심인 이동휘는 강화 진위대장 출신으로 1905년 강화읍에서 감리교로 개종한 인물. 강화읍교회의 권사로서 강화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사들로부터 ‘강화의 바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동휘가 감리교 권사였다는 사실 때문에 감리교회는 민족주의 단체로 인식됐고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에 비해 성공회는 직접적인 무력투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중도적인 입장을 택해 많은 주민들을 구한 공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주민들이 전란을 피해 강화성공회 성당이나 수녀원에 모여들었는데 성공회 단 아덕(터너) 주교가 일본군 대장과 두차례 담판하여 일군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화를 면했던것. 성공회는 “일군의 공격을 사전에 막아 주민들의 희생을 줄였지만 일본군의 무력행동에 대한 비판없이 사태수습에 나선 것은 아쉬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환경운동 살리려면 이론 먼저 정립해야”

    “지금의 환경운동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이론적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환경운동의 미래는 없습니다.” 시인 김지하(65). 생명사상을 내세우고 2003년부터 세계생명문화포럼을 개최하면서 이런저런 비판에 직면했다.‘아시아신문명’을 내세우고 그 신문명의 주체가 바로 우리라고 주장하면서,‘허황된 관념론자’,‘치졸한 국수주의자’,‘어이없는 박정희식 파시즘의 추종자’라는 수군거림이 계속 퍼져나갔다.그런 김지하가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계생명문화포럼-경기2006’ 기자간담회에서 그간의 답답했던 속내를 털어냈다. 그는 우선 지나치게 이론적·관념적·추상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실천이 모든 것이라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면서 “망각·오판·인식부족 등을 저지를 수 있는 범인은 판단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이론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반박했다. 뭐라 해도 착실하게 이론을 쌓은 뒤 덤비자는 얘기다. 김지하는 그 이유로 지금 방식의 환경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꼽았다. 새만금·시화호·천성산 등 최근 환경 관련 이슈들에서 여론전에서는 물론, 재판에서 줄줄이 패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유를 “지금 환경운동은 사회적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에 법·제도·절차 앞에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으로 꼽으면서 “이 법·제도·절차의 철학적 기반을 뒤집을 수 있는 이론이 나올 때만 환경운동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포럼부터 실천적인 면모도 차츰 갖추어 나가겠지만, 화두를 붙잡듯 이론의 문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김지하는 그러나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는 태도를 보였다.“원래 전통의 재창조를 통한 아시아적 르네상스를 이룩하자는 것이 생명학이었다.”면서 “그런데 포럼을 통해 공부하다 보니 그런 소박한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 또 우리 것이 남에게 내세울 만큼 풍요로울까, 남들을 너무 깔보는 것은 아닐까 등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고 말했다.‘박정희식 파쇼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다.“말하자면 민족주의적인 면에서 글로벌한 면으로 바뀌었다.”는 그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해외18개국 26명의 학자들과 국내 60여명의 학자들이 참가하는 올해 포럼은 20∼23일 동안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자세한 행사일정은 인터넷 홈페이지(www.wlc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동아시아 인식의 공동체 만들자”

    요즘 지식인들의 화두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한·중·일 시민사회의 연대’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동북공정 문제 등으로 한·중·일 3국간의 역사전쟁이 불거져서다. 이렇게 가면 대립과 갈등밖에 남지 않으니 국가나 민족의 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민사회공간을 찾아보자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행동’이라기보다 ‘목소리’에 가까웠다. 목소리를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 계간 ‘창작과 비평’(편집인 백낙청)과 ‘세교연구소’(이사장 최원식)가 자리를 마련했다.9∼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중국과 일본·타이완에서 영향력이 큰, 진보성향의 잡지 13개사에서 16명의 편집위원이 참가한다. 중국 ‘두수(讀書)’의 왕후의 편집주간,‘민젠(民間)’의 주젠강 편집위원, 타이완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천쾅싱 편집위원, 그리고 일본 ‘젠야’(前夜)의 서경식·고화정 편집위원,‘세카이’(세계)의 오카모토 아쓰시 편집장,‘겐다이시소오(現代思想)’의 이케가미 요시히코 편집장 등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시민과 세계’ 이병천 편집인,‘황해문화’ 김명인 편집주간,‘창작과 비평’ 백영서 편집주간 등이 나선다. 이들은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동아시아에서의 민족주의 분출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특히 동아시아 경제블록화와 같은 식의 ‘이익’을 좇는 방식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교류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각 국의 잡지사들이 콘텐츠를 교류하는 방안 등을 의논한다.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오늘의 눈]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세영 국제부 기자

    198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 등장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열정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란 수상연설문을 읽어내려갔다. “서구인들만이 독립과 독창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문학의 독창성은 그렇듯 쉽게 인정하면서 우리가 시도하는 사회변혁은 왜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까.” 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를 절망케 한 것은 라틴아메리카를 미개하고 잔인하며, 비합리적 열정에 사로잡힌 땅으로 낙인찍은 서구의 오만이었다. 4일(현지시간) 치러진 페루의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결과를 전하는 서구 언론의 반응에서도 ‘1세계 문명인들’의 무례함은 어김없이 묻어난다. 중도좌파 알란 가르시아를 선출한 페루인을 향해 이들은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했다.”며 냉소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 경제매체들이 최근까지 보여준 보도행태는 특정 후보의 낙선을 노렸다는 혐의를 두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급진민족주의자 오얀타 우말라가 선두로 부상한 3월부터 그의 집권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며 선거구도를 ‘공포와의 대결’로 몰아갔다. 과연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외국인과 부자에 대한 적대감에 정치적 잔혹극을 일삼는 우중(愚衆)일 뿐인가. 자원 국유화와 부의 분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주권행위를 음험한 포퓰리스트와의 야합으로 단죄한다면, 대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경계는 어디인가. 24년 전 마르케스는 ‘다른 세계’를 향한 노력을 용인치 않는 서구의 편협함이 라틴아메리카를 고독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들이 20년 전 페루 경제를 거덜낸 가르시아에게 재차 기회를 준들,16년 전 미국에 의해 ‘축출’된 다니엘 오르테가에게 니카라과의 운명을 다시 맡긴들 또 어떤가. 이미 그들은 피노체트와 콘트라,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서구의 개입으로 충분히 고통받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때도 됐다. 이세영 국제부 기자 sylee@seoul.co.kr
  • [문화마당] 1987, 2002, 2006, 시청 앞마당/심규호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중국어과 교수

    그것은 갈망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모습이었다.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마음보가 물 만난 고기처럼 높이 솟구침이거나, 무언가에 억눌려 기가 막힌 이들이 돌연 가슴을 열고 내지르는 함성, 출렁이는 물결 따라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미치도록 뜨거움이라고 했고, 미묘하여 알 수 없는 그러나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기쁨이라고도 했다. 사실 그러한 경험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2002년 6월의 시청 앞에서 1987년 7월(연세대생 이한열군 장례식), 그 날을 떠올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2006년 6월. 조금 어수선하다. 태평양 건너 한쪽에선 자유무역협정(FTA)을 저지하기 위해 악 쓰느라 목이 다 쉬고, 다른 한쪽에선 행여 협상이 잘못될까 이를 악물고 있는데, 머리에 뿔 달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이나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는 이들의 멍한 얼굴을 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디 그뿐이랴.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소란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눈물 젖은 마을 잔치에 어디 꼭짓점 댄스가 어울리기나 하겠는가? 하여 누군가는 언론·방송매체의 과열 경쟁과 편향적 보도로 인해 국내외 현안이 가려지는 것에 대해 나무라기도 하고, 그 이전의 순수성이 결여된 모습이나 지나친 상업주의를 질타하기도 한다. 게다가 세계인의 축제라고 떠들어 대는데 엄청난 지진으로 수천명이 사상한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여전히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는 여러 나라 백성들에게도 그 말이 통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서울시가 시청 앞마당을 방송사와 신문사가 동참한 무슨 컨소시엄에 팔아넘겼다는 말도 들리고, 치우천황(蚩尤天皇)이 그려진 티셔츠는 독점계약을 맺은 업체만 제작·판매할 수 있다고 하니, 상업주의가 극성하여 급기야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돈 벌기에 급급하다고 타박하는 것도 옳다. 오로지 국가 대항전에만 총력을 기울여 국내 아마추어팀이나 프로팀은 물론이고 다른 종목은 아예 지원조차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말도 분명 사실이다. 한정된 재화가 한쪽으로 몰리면 당연히 다른 한쪽은 텅 비게 되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들은 열광하든 말든 내가 싫다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인데, 다른 나라처럼 별도의 안식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세계배(世界杯)라는 것이 원래 상업주의의 화신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만의 돈 잔치로 끝난다는 것을. 그래서 제안컨대 이렇게 말하면 안 될까? 그래 돈은 그대들이 챙겨라! 누구는 앞마당을 팔아먹고, 누구는 광고를, 또 누구는 제품을 팔아먹겠지. 그래 많이 드시도록 하여라! 그 대신 우리는 우리의 열정을 사겠다. 우리의 뜨거운 가슴에 펄펄 끓어 슬프기까지 한 기쁨을, 평생 몇 번 외쳐보거나 고백해보지 못한 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내 이웃의 심장에서 전해오는 벌떡이는 정열과 시린 아픔을 보듬어 함께 어울리겠다. 그리하여 그대들 또한 우리가 안겠다. 여전히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러나 더 이상 계몽을 요구받거나 강요당하지 않는다. 더디다 못해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 후회할 때도 있지만, 뜨겁게 달아오르다 식을 때도 있고, 아예 모른 척 얼굴을 돌릴 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하게 근기(根機)를 지켜나가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계몽하고 있나니, 정객과 상인이여, 그대들은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시라. 움베르토 에코, 그대의 말은 틀렸다. 혁명은 스포츠의 열기가 식지 않은 일요일에 터지는 법이니. 그대 시청 광장으로 오라! 그대는 저 물결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나는 그것이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망으로 보인다. 혁명은 꿈을 이루는 것 아니던가? 심규호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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