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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의 新 일본] (상) 정권출범 과제와 전망

    [아베의 新 일본] (상) 정권출범 과제와 전망

    강한 일본을 위해 ‘주장하는 외교’를 펴겠다고 공언해온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 등 서구에서도 ‘노골적인 민족주의자’로 지목되는 아베는 보수세력을 결집, 가장 먼저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한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아베는 또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역사문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 아시아 외교의 복원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래서 “총론은 있지만 각론과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아베 총재 시대의 개막에 따른 ‘신(新)) 일본’의 과제와 동북아질서 전망을 3회에 걸쳐 살펴 본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새 자민당 총재가 그리는 일본의 모습은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름다운 일본’‘강한 일본’을 외친다. 아베는 아름다운 일본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로 일본의 진정한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등 국가와 교육의 기본틀은 일본이 패전한 뒤 승전국 미국 주도의 연합군총사령부(GHQ)가 강요한 체제라며 여기서 벗어나려 한다.1954년생인 그는 전후세대로 전쟁에 책임이 없다는 인식에 근거, 지금까지 일본사회에서 금기시해 온 전후체제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이른바 ‘금기 깨기’를 시도하려 들고 있다. ●군사재무장 통해 국제사회 발언강화 추진할듯 구체적으로 전쟁포기와 전투력 보유 금지가 핵심인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 일본의 ‘자주적 헌법’을 갖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부드럽게 표현하면 보통 국가화를 추진하는 것이고, 강하게 표현하면 군사 재무장을 통한 국제사회의 발언력 및 영향력 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개혁 추진도 헌법개정과 맥을 같이 한다.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학교 교육을 통해 ‘애국심’을 가르쳐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GHQ가 우려한 군국주의 교육 부활의 우려를 낳고 있다. 전반적인 개혁 정책과 관련, 아베 신정권은 고이즈미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총리관저 주도로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행정개혁과 공무원개혁을 실행하겠다고 강조한다. 보좌진 공모, 보좌관 증원, 내각홍보관의 정치인 임명 등은 개혁 의지의 표시다. 경제성장 전략이나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촉진 등 기본적인 개혁도 고이즈미 시대와 맥을 같이 한다. ●고이즈미때 심화된 빈부 양극화 시정 의지 하지만 고이즈미 개혁이 온전하게 계승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베가 ‘재도전 사회 실현’을 외치는 것은 고이즈미 시대에 심화된 양극화를 시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고이즈미는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그의 측근 중 개혁에 소극적인 수구보수세력이 잔뜩 모여든 것도 대비된다. 아베는 미·일동맹 강화를 축으로 하는 외교를 펼치겠다며 총리관저에 외교·안보상황을 총지휘하는 국가안전보장회(NSC)의 신설 방침을 밝히고, 한국·중국과도 정상외교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으로 일관, 난관이 예상된다. 아베 정권이 풀어가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고이즈미가 남겨 놓은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즉 고이즈미 시대에 붕괴되다시피한 아시아 각국과의 외교를 시급히 복원시켜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높이는 유엔 등 국제무대 외교도 시급히 재건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무엇보다 아베 정권은 ‘균형(밸런스) 감각´의 유지 여부가 관건으로 꼽힌다. 현재 아베 주변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세력이 총집결해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따라서 진보적 인사를 보강해야 하는 것이 과제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등 ‘애매함´ 난관 예상 재정재건도 매우 힘겨운 과제이다. 현재 일본은 국가채무가 800조엔(약 6500조원)에 이를 정도로 재정상태가 심각하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6배에 이른다. 다른 선진국에 견줘볼 때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를 건전화하려 할 경우 경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아베는 자신만의 정책을 보여줘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소비세 인상 등에 대한 각론을 피하는 ‘애매함’은 앞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내는 물론 외교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알맹이 있는’ 정책을 보여줘야 할 책임을 떠안고 있다. taein@seoul.co.kr
  • 역사왜곡 후엔 팽창전쟁 일본도 독일도… 중국도?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상황이 변하면 과거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는 원칙이 당연히 관철된다. 문제는 정도와 수준이다. 일정 선을 넘으면 재해석이라기보다 왜곡이 된다. 동북공정이 왜곡이라는 것도 선을 넘어서다. 자국의 안정과 통합을 넘어선, 중국이 진짜 노리는 바는 무엇이냐는 질문도 그래서 나온다.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다. 돌이켜보면 역사왜곡이 팽창주의로 옮아간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게 일본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일본서기’를 재정비해 펴냈는데, 이 과정에서 조작됐다는 의혹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막부에 밀렸던 일왕을 일본 근대화의 중심으로 떠받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정말 조작했는 지와는 별도로 어쨌든 일본서기가 극우세력의 광적인 민족주의를 자극하는데 기여했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독일의 나치즘도 마찬가지. 나치즘은 그들의 팽창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예 ‘종교적 숙명론’을 만들어냈다. 인종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독일은 지배하는 나라가, 게르만족은 지배하는 민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개발해냈다. 물론 이는 2차대전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편승한 냉전적인 동북아전략에 가담하는 꼴이 될까봐서다. 다만 이게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역사문제가 지나치게 정치화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연구자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릴 뿐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모르는 척 하는 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동북공정’에 대해 중국 정부는 “민간 학술기관의 연구 활동일 뿐이며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2년전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같은 태도다. 집권 중국공산당의 대변인격인 류윈산(劉云山) 선전부장은 “학자들 개인의 문제이지 정부 입장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아시아정당회의(ICAPP) 총회 참석을 위해 최근 서울을 찾아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중국측은 “동북공정을 정치문제화하려 들지 말아야 하며, 이 문제가 한·중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측의 격렬한 반응에 가능하면 대응하지 않고 ‘바람’이 지나갈 때만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동북공정 시비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자세는 일관된다. 중국 국가서열 4위이며 중국의 학술·이념·민간활동 문제를 총괄하는 자칭린(賈慶林) 정치협상회의 주석도 “역사는 현실화할 수 없다. 학술문제를 정치문제화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또 이 문제가 “한·중 관계발전의 장애가 돼선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지도자급 최고위층의 구체적 발언으로 최근 베이징에서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 등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였다. 그러나 한반도 전문가나 한국 문제에 관심 있는 네티즌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중국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한국측 반응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동북공정의 확대 등을 주문하고 있다.jj@seoul.co.kr
  • 무슬림들 ‘反교황’ 폭력사태 우려

    교황의 이슬람 관련 발언이 무슬림들을 자극해 지구촌 폭력사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올해 초 덴마크의 ‘만평 파문’처럼 중동과 서아시아를 휩쓴 폭력사태가 재현되고 교황과 가톨릭을 겨냥한 이슬람 전체의 ‘보복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15일 AP 등에 따르면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이날 “교황이 지하드 및 지하드에 관한 이슬람인들의 생각을 파헤치려 한 것이 아니며 이슬람 신자들의 감정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교황은 이슬람을 포함한 다른 종교·문화에 대한 존경과 대화의 자세를 갖기를 바라며 종교적 동기를 이유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밝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교를 구실로 폭력을 행사하고 테러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온 교황이 9·11 테러 5주년을 맞아 우익·민족주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고향 독일에서 종교의 이름을 빌린 폭력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마호메트 관련 비판이 무슬림들을 격분시켰다. 무슬림의 성역을 건드린 때문이다. 이슬람권은 교황의 사죄를 요구하며 강력히 비난하는 등 강경한 자세다. 단순 해명 정도로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파키스탄처럼 외교부가 유감 성명을 내고 의회가 발언 철회 성명을 낸 것은 개별 국가까지 종교 싸움의 주체로 가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슬림들에게 마호메트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종교와 생활이 하나로 결합된 삶을 살아가는 이슬람 교도들은 마호메트의 생전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종교의 신성한 영역이 침해됐다고 생각됐을 경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보복을 시도한다. 또 이런 행동을 신성한 의무며 영광으로 여긴다. 이슬람회의기구(OIC)는 이날 유감을 표시하면서 “이 발언이 바티칸의 새 흐름을 반영하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며 “바티칸측은 이슬람을 정말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본부를 둔 OIC는 57개국으로 구성된 이슬람 대표기구다. 인도 종교간 화합을 도모하는 기구인 ‘국립소수위원회’의 하미드 안사리 위원장도 “교황의 언사는 마치 십자군 원정을 명령한 12세기 교황의 말처럼 들린다.”고 가세했다. ●지하드란‘무슬림들의 이교도에 대한 싸움’을 일컫는다. 흔히 성전(聖戰)으로 번역된다. 이슬람 경전 코란은 “이슬람을 전파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과 이에 필요한 금전적 기부행위”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지하드는 역사적으로 중세 유럽 기독교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중요성이 강조됐다. 근세 들어 서구 열강의 이슬람권 침략으로 이에 맞서기 위해 폭력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과 이슬람 국가 아프간에 대한 옛 소련의 침공(1979년)을 거치면서 극단적인 양상을 띠게 됐다.9·11 테러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지하드의 하나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월드이슈] 총성없는 영유권전쟁… 中·日등 외교전

    [월드이슈] 총성없는 영유권전쟁… 中·日등 외교전

    민족주의 열기 고조속에 자원확보 경쟁까지 겹쳐 아시아 국가들의 영토 분쟁 움직임이 수면 아래서 꿈틀대고 있다. 민족주의 색채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두 거인 중국과 일본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재깍거리고 있는 아시아 영토분쟁의 현황과 파장을 살펴보았다. 지난 7월13일 중국은 베트남, 타이완, 일본 등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의 남사(스플래틀리)군도와 서사(파라셀)군도 등에 대해 “잘못된 표기가 많다.”면서 일방적으로 중국의 영토임을 표시한 지도 418개를 만들어 각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에 대해 베트남 등 주변국들은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중국을 비난하면서 관련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중국과 베트남, 타이완, 필리핀 등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남·동중국해의 해양 영토 분쟁은 잠재적인 ‘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린다. 그만큼 강한 폭발력을 갖는다. 중국은 이 지역을 둘러싸고 1970,80년대 베트남, 필리핀 등과 무력충돌을 벌였고 그 후에도 항의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한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해 오고 있다. 중국, 베트남 등은 모두 경제건설을 위해 일단 소모적인 무력 충돌은 피하자는 태도다. 대신 지도와 자국 공식 웹사이트 등에 영토표기 등을 통한 외교전에 치중하고 있다. 외교무대에서의 힘겨루기와 명분쌓기가 쉬지 않고 진행되는 상황이다. ●육지에서 해양 분쟁으로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경제 초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정책 채택 이후 경제성장을 위한 ‘우호적인 주변환경’ 조성에 외교력을 집중해 왔다. 그 결과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 베트남·인도 등과 국경 획정에서 한 단계 진전을 거뒀다. 일단 ‘갈등과 이견은 덮어두고 협력가능한 부분을 확대해나가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적인 외교를 실천해 온 덕분이다. 인도와의 국경분쟁 해결에서도 중국은 적극적인 자세다.1962년 국경분쟁으로 전쟁까지 치르며 40여년동안의 앙숙으로서 국경분쟁을 겪었던 인도에 중국은 서부 국경선에 대한 영토 양보 및 영토 교환을 제시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육지에서의 갈등요소는 줄여온 반면 경제적·정치적 성장은 중국의 ‘해양으로의 팽창’을 불러오고 있다. 경제적 동력으로 중국의 석유 수입이 소비량의 절반을 넘어서고 수출 의존도가 늘면서 해양 수송로 확보의 중요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방백서가 근년 들어 항공모함 건조의 필요성 등 연안 지역을 벗어나는 대양(大洋) 해군력의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설정, 대륙붕 기점 논란, 각종 열도의 영유권 주장 등이 얽혀있는 해양영토와 관련해선 갈등 요소가 더 커지고 있다. 해양 영토 획정을 둘러싼 국제법적인 정의가 모호한데다 관례조차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아 논란과 갈등소지가 높다. 특히 남중국해 지역은 석유 및 천연가스가 가득 묻혀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 풍부한 어류 및 지하광물 등 해양 지하자원에 대한 이해관계가 크다. 중국 국토자원부가 지난 7월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인 1000억㎥ 이상의 해저 천연가스전을 발견했다고 밝힌 지역도 남중국해 북부 지역이다. 게다가 전략적 수송로란 점에서 국가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로 보고 있다. 또 남중국해는 말라카해협과 연결돼 있어 이같은 전략적 민감성을 더한다. 말라카해협은 전세계 교역량의 40%, 일본·중국으로 가는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자원의 8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지난 7월 중국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양 조사를 실시하고 시사군도 최남단에 해양구조기지를 신설한 것도 분쟁지역 장악에 대한 사전 포석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방위동맹을 공고화하면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것도 이 지역을 둘러싼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는 의도가 크다.”고 안인해 고려대 교수는 지적했다.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힘의 균형을 부상하는 중국이 흔들어대고 있는 상황이다. ●공동개발의 함정 중국은 일부 분쟁지역에선 자원공동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남사군도에선 베트남, 필리핀 등 분쟁국가들과 함께 석유·가스의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일본에 일방적으로 한국 주권이 미치는 ‘한·일 공동 대륙붕’의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중국은 한·일간 기존 협정의 효력을 부정하고 공동개발명분을 내세워 나름대로 해양 영토의 획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도 중국과 해양 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日 센카쿠·쿠릴열도 등 ‘눈독’ 민족주의 자극 정치이용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중국, 타이완, 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싸움닭’으로 불린다. 자원·영토 확보라는 측면이 강하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민족주의를 자극해 내정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일본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개인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이 나라를 지키는 결의’라는 문구를 계속 게재, 공격적인 외교를 펼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자원·영토외교와 함께 민족·애국주의를 지지로 연결시키려 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일본의 영토분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다. 8개 무인도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 섬들은 일본 오키나와 서남쪽 약 400㎞, 중국대륙 동쪽 약 350㎞에 위치해 있다. 일본이 현재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으나 중국과 타이완은 역사적 근거를 대며 영유권을 주장한다. 아울러 1970년 이후 센카쿠 인근 해저에 막대한 양의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영유권 분쟁은 중국과 일본이 자원쟁탈을 하는 형태로 고착되기 시작됐다. 최근 중국이 인근 지역서 천연가스 개발을 서두르면서 일본이 공동조사를 제안하고, 중국이 거절하는 외교적 마찰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중국과 타이완 민간인의 상륙시도, 일본 우익단체의 등대 설치 시도로 시끄럽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은 또 태평양 공해상의 산호초인 오키노도리를 놓고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넓게 설정하기 위해 1988년 면적이 10㎡도 채 안 되는 이곳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고, 최근엔 산호를 양식해 섬으로 만들겠다는 집요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곳이 바위일 뿐이라며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법상 ‘섬’은 EEZ 설정의 근거가 되지만 ‘바위’는 그렇지 않아 양국 간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현재 중국과 일본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펼치고 있는 동북아지역 패권 쟁탈전은 양국의 이런 해양영토 분쟁을 당분간 지속시킬 요인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러시아와도 북방 4개섬(러시아명 쿠릴열도)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분쟁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를 잇는 20개 도서 가운데 최남단의 에토로후, 구나시리 2개 섬과 홋카이도 북쪽 하보마이, 시코탄 2개 섬을 둘러싼 양국의 영유권 분쟁이다. 북방 4개섬은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며 분쟁 지역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곳을 차지했지만 2차대전 패전으로 40년 만에 러시아에 되넘겨줬다. 북방 4개섬 역시 주변에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산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에 일본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략적으로 군사적 요충지란 점도 분쟁유발의 요인이다. 일본은 수시로 러시아를 자극, 영유권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교과서에 4개 섬을 자국 영토라고 표기, 러시아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곤 한다. 일·러분쟁은 소강상태지만 일본 어선에 대한 러시아의 총격 사건이 발생하며 새삼 주목받았다. 지난 4일엔 일본무역진흥기구의 와타나베 오사무 이사장이 러시아 기자들과의 기자회견 때 “일·러간의 영토문제가 양국의 경제발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을 러시아 언론이 ‘일본이 영유권을 양보’하겠다는 취지로 보도했다며 산케이신문이 13일 문제를 제기, 부각되기도 했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등 의도적으로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일으켜 동북아지역 국제질서를 어지럽혀 왔다.19세기 말 일본이 국제법 지식을 상대적으로 빨리 습득, 해양영토를 확장해가던 때의 팽창주의 정책과 거의 유사하다는 지적까지 나와 주목된다. 특히 지난해 초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젊은 보수의원들이 센카쿠열도와 북방 4개섬, 독도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의원연맹’을 꾸려 센카쿠열도 등에 시찰단을 파견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은 일본의 영토 야심이 일본사회에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taein@seoul.co.kr
  • [이 한권의 책] ‘혼세의 삼국’ 균형을 잡다

    요즘 TV사극들의 턱없는 민족주의와 사실왜곡에 황당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김춘추-외교의 승부사’(박순교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영웅을 그리되, 어깨에서 힘을 뺀 담백한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문장이 밋밋하고 재미없다는 뜻이 아니다. 저자는 김춘추의 집권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그만큼 사실(Fact)과 상상(Fiction)을 구분해 보이고 있다. 과장과 오류로 독자를 오도하는 흔한 팩션(Faction)이 아니라,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돌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책은 얼핏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외교 활동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비친다. 김춘추는 약소국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제압하고 통일대업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됐던 당(唐)과의 연합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고구려와 왜(倭)를 방문해 외교담판을 시도하고 당 태종을 찾아 나당동맹을 완성해 내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오직 생존만이 지상과제였던 당시 상황에서 실리주의 외교는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외교관으로서 김춘추 조명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진골에 속해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던 한맺힌 가족사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마침내 왕위에 오르고 통일의 초석을 놓는 인간 김춘추의 모습에 더 많은 애정을 보인다. 책은 김춘추의 인간적 고뇌와 열정을 사랑하는 딸의 죽음 장면에서부터 풀어나간다. 문희와의 숙명적 인연의 결과 출생한 딸 고타소는 백제 의자왕이 일으킨 침략군에 의해 일가가 몰살한다. 수급(首級)이 잘려나간 처참한 주검 앞에 격분한 김춘추는 고구려행을 결심하며 통일의 의지를 불태운다. 조부 진지왕의 폐위와 가문의 몰락, 아버지 비형의 아들을 위한 희생 또한 김춘추가 절치부심하는 배경이 됐다. 비형은 아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고 신라와 왜의 당 유학생을 집안에 초치하여 국제감각을 키워주는 데 전력하는 ‘선진적’ 인물이었다. 진지왕과 유부녀 미도부인의 사랑, 집권 후 소원해진 김유신을 회유하기 위해 예순이 넘은 그와 어린딸을 혼인시키는 장면 등은 제도와 권력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비견되기도 하지만, 개별 국가의 내부사정 또한 물고 물리는 권력다툼의 연속이었다. 동생과 아비를 죽이고 집권하는 당태종,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옹립한 연개소문, 친백제 정부를 제거하고 개혁을 추구하던 중대형 등이 모두 김춘추의 협상 상대자였다. 이들과의 조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국 이야기도 대중에겐 새롭다. 전반을 통하여 적절히 삽입되는 당시의 생활상은 배경에 불과한 듯싶지만 현대 역사학이 추구하는 중요한 탐구 목표이기도 하다. 대략의 둘레만 1023보에 이르렀다는 왕궁 월성의 풍경과 신라군단의 직능·계급별 군장 묘사, 온돌과 바둑·공차기가 등장하는 고구려 풍속 묘사 등은 당시 사람들이 눈앞에 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삼국사기’‘삼국유사’‘송서’‘양서’‘구당서’‘일본서기’‘동경잡기’ 등 사료를 인용한 각주 때문에 무조건적 몰입보다는 거리두기가 유지된다. 까다로운 문장과 어려운 단어들이 눈에 띄지만 이는 지식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또한 고대 분위기 재현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춘추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그의 죽음과 함께 삼국통일의 여정이 끝나버리는 것은 조금 아쉽다. 에필로그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1만 5000원.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Book Review] 건국 공간속의 외세 다시보기

    오래된 풍경 하나. 남한은 북한을, 북한은 남한을 소련과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긴다. 남북은 미국과 소련의 후원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정부였다는 식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기만 했을까. 가르마를 타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는 단정함은 머리카락의 자연스러운 숨결을 반드시 죽게 한다. 풀이과정 없이 답안만 앙상하게 남는 격이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창비 펴냄·이하 ‘신화’)와 ‘북조선 탄생’(서해문집 펴냄·이하 ‘탄생’)은 역사의 머릿결을 자연스럽고 입체적으로 되살려 놓은 책이다.‘신화’는 국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한·미 관계를 분석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노작이다. 찰스 암스트롱 미 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센터소장이 쓴 ‘탄생’은 흔히 90년대 초반 소련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부정·극복됐다는 브루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선 ‘신화’를 관통하는 저자의 생각은 미국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와 동북아 전략이라는 ‘이해관계’ 사이에서 줄타기한 국가라는 것이다. 지금 부시 정부야 주먹질이 전부인 줄 알지만, 냉전기 미국 정부는 공산진영에 대한 ‘봉쇄(Containment)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군사력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를 굉장히 꼼꼼히 따졌다는 것. 흔히 말하는 ‘세계여론’에 민감했던 이유다. 그러니 자연스레 미국의 대외정책은 시기와 국면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이 유동성이 바로 한국의 자율공간이다. 한국은 과연 이 빈 공간을 잘 이용했을까. 저자는 부정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을 무조건 퍼주는 ‘우방’이나 언젠가는 다 먹어치울 ‘제국’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봤기 때문. 그러니 미국의 대한 정책에 잘 대응하지도 못하고, 지나온 대미 관계에서 교훈도 얻지 못한다. 세세하게는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발전이론가 로스토를 재조명한 4부와 박정희 정권 때 미국의 집요한 김종필 제거전략과 역풍을 다룬 5부가 흥미롭게 읽힌다. 역사의 숨결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탄생’은 더 많은 눈길이 간다. 저자는 북한 건국의 키워드로 ‘민족주의’와 ‘혁명’을 제시한다. 원제가 ‘북조선 혁명(The North Korean Revolution 1945-1950)’이다. 국가 성립기 북한은 가장 급격한 사회변화를, 그것도 동유럽과 비교했을 때 아주 토착적인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것.‘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아니라 ‘소비에트의 북한화’였고, 그 중심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이 지금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것도 소련에 의해 세워진, 소련을 아주 가져다 베낀 나라가 아니라 이런 북조선혁명의 특성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다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를 포갠다. 지금 북한 형편이야 어처구니없지만,1950년에는 지금의 상황을 예측이나 했겠느냐는 게 저자의 반문이다. 어쨌든 남한은 성공했으니 훌륭했고, 북한은 실패했으니 절대악이라는 희한한 논리가 학문의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불온’할 수 있겠다. 번역자 김연철(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이정우(‘통일한국’ 편집장)가 여기저기 ‘이 책의 논의는 전적으로 학술적인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대목은 씁쓸하기도 하다. 이미 승패가 확연히 갈린 상황에서 이런 북한연구 성과 소개마저 조심스럽게 만드는 남한의 상황은, 트라우마일까 콤플렉스일까. 각각 1만 7000원,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 블로그 주인 잡아라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이상한 블로그의 주인공을 잡아낼 수 있을까?’ 중국 네티즌이 ‘섹스와 상하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한 외국인을 찾아 나섰다.‘깡패 외국인 교사 찾아내기 대행동(大行動)’이라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블로그의 주인공은 상하이에 거주하는 영국인 교사로만 알려졌다. 이 남자는 블로그에서 중국 여자친구들과 가졌던 성적 경험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남성과 여성 모두를 깔보는, 정복자로서의 인상을 남겼다. 글의 내용은 날조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에서는 이 남자를 추적할 만한 신원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아울러 “놈을 찾아내 처벌하고 외국인들에게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거나 “중국에서 백인 쓰레기를 깨끗이 쓸어내야 한다.”며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글들도 적지 않다. 분위기가 험악해진 때문인지 문제의 인사는 며칠전 블로그를 폐쇄한 뒤 인터넷에서 사라졌다.jj@seoul.co.kr
  • [BooK Review] 일제에 근대화도 박탈당했다

    대한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에 반짝 얼굴을 내비친 불운한 존재였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남다르다. 대한제국의 국새를 소재로 한 영화 ‘한반도’에서 우리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의 기미를 어렵잖게 느낄 수 있다. 명성황후 시해 장면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나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한제국에 관한 한 우리는 너무나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계에서도 대한제국은 감정 섞인 논쟁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란이 벌어지면 으레 친일파니 국수주의자니 하는 비난의 언사가 동원된다.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긍정하는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이견은 여전하다.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푸른역사 펴냄)는 이같은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보다 생산적인 관점에서 대한제국의 근대성을 규명해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책이다. 저자는 한영우(한림대)·서영희(한국산업기술대)·이윤상(창원대)·전봉희(서울대) 교수 등 7명. 지난해 한림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주최한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라는 제목의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완해 단행본으로 묶었다. 일부 경제사가들은 대한제국과 고종의 전진적인 개혁에 대한 평가를 철저히 부정하며 대한제국을 ‘부패타락한 봉건적 가산국가’ 혹은 ‘봉건적 구체제’로 깎아내린다. 대한제국은 그 부패성과 전근대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한국사에서의 ‘근대개혁’은 을사늑약 이후의 일제시대에 들어서이고, 해방 후의 ‘산업화’도 일제시대에 이뤄진 ‘식민지 근대화’의 성과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한 대한제국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탈민족주의로 포장하려는 움직임을 한껏 경계하는 한영우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해방 후 학계의 주류를 형성해온 실증사학의 성과”라며 “일제시대는 근대화 시기가 아니라 ‘근대를 박탈당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서영희 교수는 국가론적 측면에서 대한제국의 성격을 살핀다. 서 교수는 대한제국은 신분제 사회를 뛰어넘은 정권이란 점에서 조선왕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개항 이후 분열된 위정척사파나 급진개혁파도 대한제국기에는 정권에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대한제국은 보수적 유교정권도 급진개화파적 정권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제국은 전통과 근대를 절충한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중도적 정권으로 우리식 근대화를 추진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대한제국의 근대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이 대한제국이 부국강병과 산업진흥을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성과가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윤상 교수에 따르면 대한제국은 황실 직속의 궁내부 내장원 산하에 여러 산업기구들을 둬 식산흥업과 징세사업에 힘을 쏟았다. 특히 국가 세입의 근간이 되는 지세(地稅)를 늘리기 위해 1899년 이후엔 양전지계(量田地契) 사업도 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사업은 러일전쟁으로 중단돼 원래 계획된 사업의 3분의2를 수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 교수는 대한제국의 산업정책이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실패한 본질적인 이유를 일본의 침략과 방해에서 찾는다. 대한제국은 아직 학술적으로 성격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대중의 기억 속엔 우울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연구가 미진한 만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대한제국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 해석만큼은 극복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적어도 대한제국에 ‘중세적 가산국가’니 ‘무너져야 할 앙시앙 레짐’이니 ‘부패무능한 정권’이니 하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다.1만 65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붉은 수수밭(시네마TV 밤1시) 베를린영화제를 시작으로 줄줄이 이런저런 국제영화제에서 상받으면서 중국영화계 5세대의 등장을 국제적으로 알린 수작. 동양적인, 이국적 취향에 기댔다는 반론도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초기작으로 1920∼30년대 중국의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장이머우 감독만의 관능적인 색감도 넘친다. 가난이 죄라서 쉰살 먹은데다 문둥병까지 걸린 이웃 동네 영감에게 팔려가듯 시집가는 주얼. 웃통벗은 일꾼들이 멘 붉은 가마에 올라탄 주얼은, 그러나 일꾼들의 탱탱한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주얼은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되돌아가던 중에 서로를 눈여겨 봐왔던 일꾼과 정을 통한다. 정작 합방날 신랑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주얼은 자신을 범한 일꾼을 끌어들여 신랑이 운영하던 양조장에서 고량주를 만들어 판다. 그러나 곧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그들은 군대 이동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량주의 원료가 되던 수수밭을 없애려 든다. 이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고 마침내 주얼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비장하게 죽고 만다. 어떻게 보면 항일민족주의 영화 같지만 그보다 더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주얼이 웃통벗은 가마꾼에게 욕정을 느끼고 결국 그와 가정을 꾸리는 것이나 산간벽지에서 살다와 멋모를 것 같던 소녀가 어엿한 양조장 사장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다. 맥락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릴 법한 캐릭터다. 술로 상징되는 질펀함도 영화 내내 여과없이 소개된다. 봉건폐습과 외세침략이라는 두겹의 문제가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세상에서 고량주는 일종의 해방구다. 이제는 세계적 스타가 된 궁리가 주얼역을 맡았다.1988년작,90분. ●스케어 크로우(MGM 오후11시20분) 연방정부의 돈을 훔쳐 달아난 다섯명의 탈영병. 화물비행기까지 빼앗아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그런데 원래 목적지와 달리 조금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 그다지 잘 가꾼 것 같지 않은 옥수수밭인데 발에 걸리는 건 모두 허수아비들. 알고보니 이 허수아비들은 좀비처럼 쫓아와 죽이려 든다. 희생자까지 허수아비로 다시 태어나 동료들을 죽이려 든다. 살해 묘사가,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찬’이라 불릴 정도로 잔혹한 편이다. 그러나 진정한 압권은 이 흉칙한 장면들이 지루해질 무렵, 그 때 마지막 20여분이다.1988년작,88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테러역풍 무슬림도 등돌려”

    “테러역풍 무슬림도 등돌려”

    9·11 테러 5주년을 앞두고 미국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온 테러 위협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를 재공격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미국의 적이 존재한다는 ‘공포 신화’에서 나온 ‘억압 기제’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쟁·테러 전문가인 존 뮬러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9·10월호에 게재한 9·11테러 5주년 기고문에서 “알카에다는 왜 미국을 다시 공격하지 않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2000년 이후 알카에다는 스스로 저지른 테러의 역효과로 입지가 좁아졌으며, 테러 능력도 실제보다 부풀려져 왔다.”고 진단했다. 뮬러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일상적인 공포로 작용하고 있는 테러 위협에 대한 허구성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인이 평생 테러로 사망할 확률은 8만분의 1로 유성에 맞아 숨지는 확률과 같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5년 동안 3개월에 한번씩 9·11과 같은 규모의 테러가 발생해도 그 확률은 5000분의 1이라는 것이다. 9·11테러가 알카에다의 국제적인 입지 축소와 이슬람권에서의 고립을 심화시켰다는 진단이다. 전 세계가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오히려 공유하게 됨으로써 국제적 협력이 더욱 공고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류 무슬림 세력의 입장 변화도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9·11 테러 이후 성전(지하드)주의자와 이슬람 민족주의자 조차도 알카에다의 전략과 테러 방식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슬림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자신들이 저지른 테러 역풍을 예상치 못한 알카에다의 좁은 식견을 비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범아랍권에서 빈 라덴에 대한 지지율은 테러 이전 25%에서 1%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뮬러 교수는 9·11 테러야말로 이슬람권에서 고립되고 있는 알카에다의 절망과 분열의 전조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카에다 테러 능력과 위협이 상당 부분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테러를 시도한다는 것과 실제 실행 능력을 동일시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알카에다의 미국내 조직과 동조 세력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2002년 정보기관은 미국내 알카에다 조직원과 동조자가 5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지만 그 실체는 현재까지도 분명치 않다. 천문학적인 예산과 인력으로 3년 동안 미국내 알카에다 조직원을 추적해 온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작성한 비밀보고서에서 “국내 알카에다 조직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로버트 뮬러 FBI국장조차도 “가장 큰 위협은 미국 알카에다 조직의 존재가 파악되지 않는 것”이라고 답변할 정도였다. 수사 결과에서도 9·11 테러 당시 범인들은 미국내 어떤 조직에서도 도움을 받은 사실이 없다. 9·11 이후 미국 정부는 본토에 대한 알카에다의 후속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거듭 천명해 왔다. 이는 미국 사회의 공포를 조장하는 억압기제로 작용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워 영장없는 조사와 도청, 구금 등이 성행했다. 미국에 사는 8만명의 무슬림이 지문 날인을 했으며 8000명이 FBI의 조사를 받았다. 테러 방지를 이유로 5000명이 넘는 외국인이 구금됐다. 조지타운대학 데이비드 콜 교수는 “테러리스트로 기소된 사람 중 단 한건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서울광장] ‘태백산맥’에서 ‘서울1945’까지/황진선 논설위원

    어느 날,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국방송(KBS)의 주말 드라마 ‘서울 1945’가 화제가 됐다. 그런데 잠자코 얘기를 듣던 한 선배가 “그런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어?”하고 물었다. 정말 그랬다.‘서울 1945’는 막말을 하자면 ‘빨갱이’들이 주인공이다. 안방극장에서 그동안 좌익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었는가. 소설 ‘태백산맥’이 떠올랐다. 태백산맥 1부(3권)의 초쇄 일자는 1986년 10월이다. 그 무렵, 초년 기자였던 필자는 서울시내 한 경찰서의 기자실에서 A신문의 기자에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상상이 안돼”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 태백산맥을 구해 읽었다. 그런데 과연 그랬다. 좌익인 염상진, 하대치, 정하섭 등도 그들 나름의 좋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다가 스러져간 영혼들이었다.‘빨갱이’에 대한 그런 시선은 그 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작가 조정래 선생이 20년 가까이 이적 표현물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2005년 4월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래도 태백산맥에서는 중도민족주의자인 김범우가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좌익 염상진은 김범우에 비해서는 비중이 떨어졌다. 그런데 ‘서울 1945’에서는 처음부터 광산노동자의 아들인 최운혁(류수영 분)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을 돕고 한국전쟁에서는 인민군 장교로 활동한다. 자유주의자인 이동우(김호진 분)는 이승만을 돕고 국군 장교로 활약하지만 극중 비중이 떨어진다. 단순화하면 태백산맥에서는 중도 민족주의자가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서울 1945’에서는 ‘빨갱이’가 남자 주인공인 것이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서울 1945’는 순항하고 있다. 제작진은 “좌든 우든, 자신이 믿는 이상에 따라 그 시대를 헤쳐나간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은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기 종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004년의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2005년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보훈대상자 인정도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봐야 한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가 지난해 펴낸 ‘한국현대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대목이 있다. 선구회라는 단체에서 해방 후 첫 여론조사를 했는데,‘최고의 인기 지도자’ 중 대통령 후보로는 이승만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인 지도자’와 ‘생존 인물 중 최고의 혁명가’에는 각각 여운형이 1위, 이승만이 2위였다. 김일성과 김규식은 김구·박헌영에 이어 각각 5,6위를 차지했다. 그런 조사에 놀라는 것은 그동안 냉전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전혀 그런 사실을 접해보지도,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운형, 김일성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하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동구권의 붕괴로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다. 우리는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 때문에 왜곡됐던 현대사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되돌아보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과 화해, 통합과 통일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韓·中 수교 14돌…양국 교류현황과 명암] 對中관계 악화로 北고립 심화

    |베이징 이지운특파원|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지금까지 동북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북한의 고립’을 꼽을 수 있다. 북한과 중국간의 관계 악화는 북한의 고립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한·중 수교이후 중국과 북한은 전반적으로 소원해졌다. 정부는 “한·중 관계의 지속적 발전에 따른 북한의 대중(對中) 신뢰감이 낮아진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냉전 종식과 함께 군사 동맹 의식이 약화되고, 이념적 결속력이 이완된 것도 큰 이유다. 본격적인 갈등은 북한이 97년 타이완 핵폐기물을 북한이 반입하려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북핵관련 4자회담에서 북한은 중국을 배제하며 실질협의를 회피할 정도로 불협화음을 드러냈다.98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승계이후 양국간 고위인사 교류를 복원하면서 관계를 회복했으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싸고 다시 관계가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 14년간 다른 주변국과 비교해서도 중국과 거의 마찰없이 지내왔다. 전문가들은 마늘파동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 정도를 들고 있다. 일본만해도 95년 일본의 달라이라마 방일 허용, 유엔인권위에서의 ‘중국 인권결의안’ 지지, 중국의 지하 핵실험에 따른 대중국 무상원조 동결, 신사참배 등 문제로 수시로 반목해 왔다. 중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제기한 데 대해 일본은 ‘중국위협론’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은 99년 나토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2001년 미 정찰기와 중국 공군기 충돌사건 등으로 외교관계가 냉각되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90년대 중반부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오며 정치·외교적 특수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실질 교류 측면에서는 빈약하다. 지난해부터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중국에 있어 한국과 미국·일본·러시아는 위상과 전략적 가치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과는 세계 전략 차원에서, 일본과는 아시아 패권을 놓고 경쟁·협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정치·안보적 이해관계는 지대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한·중 관계의 양적 발전은 계속되겠지만 마찰 요소는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 움직임이 빚어낼 일련의 일들과 탈북자 문제 등 ‘북한 요소’로 인한 정치·외교적 갈등 등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jj@seoul.co.kr
  • [문화마당] 우리가 자랑해야 할 금송아지/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소재로 한 사극열풍이 안방극장에 몰아치고 있다.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주몽’(MBC)과 ‘연개소문’(SBS)의 인기를 등에 업고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KBS)과 광개토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태왕사신기’(MBC)가 속속 전파를 탈 예정이란다. 역사적 사실(fact)에 기반을 두고 가공(fiction)의 상상력을 마음대로 펼치는 팩션(faction, 각색실화)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유는 강한 민족과 국가를 열망하는 대중의 심리에 부합하기 때문일 터.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역사 기억 침탈에 상처받은 이 땅의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사극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이면에는 근현대사의 참담한 실패의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가 꿈틀거린다. “우리는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를 메인 카피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강우석 감독의 최신작 ‘한반도’를 떠올려 보라. 자랑스러운 고대사와 부끄러운 근대사는 동전의 양면이다. 고대사의 영광과 민족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우리 마음 속 한편에는 외세의 침략에 농락당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른 근현대사에 대한 열패감이 스멀스멀 배어 나온다. 하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양키, 쪽발이, 되놈, 로스케. 우리 주변의 강자인 미국·일본·중국·러시아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비칭들이다. 베트남 사람, 방글라데시 사람, 몽골 사람, 티베트 사람. 우리에 비해 상대적 약자들의 호칭은 편안하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에 대한 현실적 대접이 역전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를 풍자한 한 개그맨은 블랑카라는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의 입을 빌려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지 않던가. 역사의 시공간이 바뀌면 민족주의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침략당하는 약자가 아니다. 때문에 한 세기 전 열강의 침략에 저항하던 민족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민족주의는 항상 자민족의 우월함을 선전하기 위해 타자의 희생을 요구한다. 더구나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군림하는 패배적 민족주의는 건강하지 못하다. 지금은 우리 민족주의의 편협성을 넘어 시대에 맞는 건강함을 다시 얻기 위해 과연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특히 2006년 NFL 슈퍼볼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하인스 워드의 존재는 우리 시대의 어두움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는 어찌 보면 ‘아비를 아비로 못 부르고 형을 형으로 부르지 못한’ 현대판 홍길동이다.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지녔던 홍길동은 끝내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이상사회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들은 제2, 제3의 하인스 워드가 우리사회 안에서 재능을 펼 수 있도록 해야만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예전에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있었다.”는 금송아지 타령을 그만두어야 한다. 한 때 자기 집에 ‘금송아지’가 있었다고 지나간 시절의 부유함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현실의 물질적 가난에 대한 열등감이 짙게 깔려 있다. 중국에 당당히 맞서 대륙을 호령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일제식민지배라는 아픈 기억에 시달리는 오늘 우리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기억 속의 ‘금송아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재물의 많고 적음이 사람됨을 재는 척도가 아니듯, 영토의 넓고 좁음이 국가의 호오(好惡)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미국·중국·캐나다·러시아·스위스·인도. 만약 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살려 할까? 열에 아홉은 손톱만큼 작은 나라 스위스를 주저 없이 택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여러 조건이 갖추어진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할 ‘금송아지’가 무엇일지 자명하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스위스처럼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美 대외정책의 본질은 안보편집증”

    결국 ‘미국’이다. 제아무리 ‘수정주의’에서 구린내가 나네,‘종속이론’이 한물갔네 해도 결국 한반도에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각종 계간지 가을호들도 다시 한번 미국을 곱씹고 있다. 과연 미국은 무엇인가. 이 가운데 ‘황해문화’에 실린 권용립 경상대 교수의 글 ‘북·미대결은 끝날 수 있는가?’가 눈길을 끈다. 권 교수는 ‘문명’ 혹은 ‘세계관’의 관점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분석해온 이색적인 학자. 권 교수는 모든 키는 사실상 미국이 쥐고 있다고 본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이니 핵이니 아무리 떠들어봤자, 군사력·경제력·정치력 등에서 미국의 적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 교수는 ‘부시 대통령 때문’이라는 분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강·온파에 따라 대북정책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부시 정권은 미국 대외정책사의 흐름에서 희한하게 튀어나온 큰 바위가 아니라, 미국 대외정책사라는 큰 바위 위에 얹힌 조그만 돌출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면 미국 대외정책사라는 큰 바위는 무엇으로 이뤄져 있나. 권 교수가 보기에는 ▲안보 편집증 ▲(도덕적) 군사주의 ▲반사 민족주의다. 애초 영국인이었으나 영국을 부정하고 연방공화국을 세운 미국인들은 ‘건국이념’과 자신들의 ‘안전’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한다는 것. 그래야 ‘우리는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고립주의’로 알려진 미국이 실제로는 잔혹하게 서부를 ‘개척’하고 중·남미의 반인권적 군부통치를 용인·지원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어찌보면 여기에 ‘딱’ 걸린 게 북한이다. 미국의 건국이념에 반하고, 거기다 감히 미사일까지 쏜다는 것 자체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권 교수는 먼저 이런 미국 대외정책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지도자는 길 안내자일 뿐/현고 스님 조계종 전총무원장 대행

    지난 1일 속초항을 출발해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비록 공해지만 북한 앞바다를 지나 삼국의 역사가 교차한 연해주를 밟은 심정은 미묘했다. 연해주는 한민족의 치열한 삶의 역사가 깃든 땅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서부터 구한말 안중근 의사와 이상설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국으로서도 수천㎞가 접경돼 있고, 전조(청나라)의 국토였던 땅이다. 그럼에도 베이징조약(1860년) 이후 자신들이 써온 역사를 들추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왕래마저 감시받는 억울한 땅이기도 하다. 우리 세계청년봉사단(Copion) 임원진이 연해주를 방문한 것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면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들의 연해주 귀환과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고려인들이 3대에 걸쳐 피와 땀으로 개척하고 정착한 땅을 뒤로 하고 다시 연해주로 되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서구화에 짓눌린 우리의 원형을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고려인들의 귀환 발길은 더뎠고 정착노력도 활발하지 못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표본이라 할 전체주의 공산국가에서 살아온 고려인들이 10여년의 짧은 자본주의 경험을 통해 이미 민족사상보다는 개인, 가치보다는 돈을 중시하며, 개인의 행복을 위해 치열한 선택을 하는 것을 봤다.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게 한 70년의 세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0여년의 짧은 자본주의 경험이 벌써 그렇게 변화시켰다니….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민족이라는 깃발 아래 눈물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는 식민시대의 헌신적인 민족정신을 가진 사람들로 추상하고 미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성직자인 나 자신의 내부에도 민족주의에 대한 동경이 숨쉬고 있어 개인의 안전과 행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연장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도발과 항전을 정당화하는 집단의식이 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분쟁을 장기화시켜 수많은 동족이 살상되는데도 멈추지 못하게 되는 동일한 의식구조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출가 35년을 다하도록 내 안에 아직 씻지 못한 극단과 전제의 무서운 업을 느꼈다. ‘나와 우리는 모든 국민 자신이 잘 조어(調御)되는 자기 확립과 자기 형성의 길을 갈 때 궁극의 자유와 안정이 있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내 안에서 자유와 안정을 찾는 데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가장 불교적인 국가 형태가 모든 사람이 말 그대로 평등해 계급도 없고, 통솔자도 없고, 통솔되는 자도 없고, 대통령과 지도자마저 그 속의 한 일원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고 할 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전체 속의 개인보다 개인을 위한 전체를 이룩해가는 조화로운 노력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민족과 개인의 행복, 전체와 개인의 행복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조정돼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뒤척거리다 텔레비전을 통해 들려온 대통령의 8·15 경축사 “민주주의 원리와 핵심은 상대주의와 관용입니다.”라는 언급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 상대주의의 근원은 불교의 연기관이며, 존재에 대한 연기적 사고만이 대통령이 짧은 경축 연설문에서 12번이나 언급한 ‘평화’를 담보할 근본사상이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나는 오직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정리한다. 이를 본받아 우리 지도자도 구제자(메시아)라고 말하지 말고, 모든 국민의 ‘좋은 벗(善友)’이 되고 대통령이 좋은 길 안내자가 되는 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날개를 접고, 절대주의자의 극단적 선택은 발 붙일 곳을 잃어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 현고 스님 조계종 전총무원장 대행
  • 아베 ‘본색’ 어디까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네오콘(신보수)의 선두주자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벌써부터 전면 개헌 추진 방침을 밝히는 등 보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보수 아베’의 질주가 주목된다. 우선 아베의 보수 행진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보다 세련되면서도 강력하게 추진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혼자 판단했던 고이즈미 총리와 달리 아베 장관은 우파 두뇌집단의 지원을 받아 치밀한 정치행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가계에 흐르는 DNA도 보수 중의 보수라 불리고 있다. 그는 A급 전범 용의자였다가 풀려나 그 후 총리가 됐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DNA를 물려받았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대표적인 일본 우파집안의 분위기가 그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가 철저한 정치행위인데 비해 아베 장관은 지금까지 야스쿠니신사를 신념에 기초, 참배해 온 것도 대비된다. 그는 지난 4월15일 몰래 참배하고 나서 “참배했다. 안했다. 할 것이다.” 등의 입장표명을 하지 않는 등 벌써부터 야스쿠니를 ‘외교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인식에서는 철저하게 우파적 인식을 보이고 있다. 아베는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란 점을 확실히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인정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A급 전범에 대해서도 “국내법상 그들(A급 전범)은 범죄자가 아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아베는 종군위안부의 존재도 부인한다. 그는 위안부는 언론이 만들어낸 용어라고 강변한다. 일본의 침략전쟁을 반성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면서, 이의 타파를 외치며 후소샤판 역사교과서 발행을 지지한 ‘교과서의원연맹’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는 섬뜩한 민족주의 인식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현행 헌법 전문의 ‘우리들(일본)은 평화를 유지하고 전제와 예속, 압박과 편협을 지상에서 영원히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고자 한다.’는 문구에 대해 “패전국이 연합국에 하는 사죄문과 같은 선언”이라고 비판하며 전문 개정을 다짐한다.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이 미약한 전후세대인 그는 일왕제에 대한 인식도 극히 보수적이다.“일왕의 기본적인 성격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면서 교육기본법도 개정,‘애국심’ 교육도 부활시켜야 한다고 강조해 ‘왕국신민사상’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아베 장관 스스로는 최근 출판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자신을 ‘열린 보수주의’라고 평했다. 하지만 아베는 민족주의를 기조로 국민의 일체성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과거 전쟁을 자위를 위한 전쟁으로 정당화·합리화하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우파’ 중의 우파로 분류된다. 아베는 “나는 일본을 위해, 일본 국민을 위해 ‘싸우는 정치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보수 본류 아베가 일본을 위해 싸우는 정치를 할 경우 한국의 향후 대일외교는 고이즈미 시대보다 더 버거워질 것임을 예고해 준다.taein@seoul.co.kr
  • [고이즈미 8·15 도발] 고이즈미 강행 퇴임뒤 정치영향력 유지 ‘계산’

    [고이즈미 8·15 도발] 고이즈미 강행 퇴임뒤 정치영향력 유지 ‘계산’

    |도쿄 이춘규특파원|예상대로 일본 총리가 패전 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8·15를 앞두고 최근 기회있을 때마다 참배 강행 의사를 표명하며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그뒤 매년 정기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2001년 자민당 총재선거 때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때마다 한국·중국 등이 강력 반발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본 국민들의 잠재된 민족주의가 분출, 고이즈미 지지를 강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가 이런 흐름을 적절히 탔다는 지적도 많다. 상당수 일본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절반 이상 응답자가 총리의 참배에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국민성을 감안하면, 국민 다수가 반대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큰 문제 없다. 특히 올해의 경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8월 15일을 택해 참배를 강행한 것은 어느 때보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약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길 기대했다는 해석이다. 이같은 여론의 지지를 토대로 9월 말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 취임 전 15년 가까이 일본에서는 단명총리가 계속 나오는 등 정치혼란이 계속됐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했고, 고이즈미 총리가 이같은 흐름에 부응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의 퇴임 뒤 자민당내 리더십이 약화되면 국민들이 다시 부를 수 있고, 이때를 대비해 이날 참배를 강행했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더욱 경직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국 정부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반성과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반일 감정은 고조되고 경제협력 퇴조 등의 강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지는 태양’이기 때문에 후유증이 그리 크지 않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태도에 따라 파문이 조기 진정될 여지도 있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다음달 20일 예정된 자민당총재 선거에 대한 영향도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대∼한민국 대한민국/진경호 논설위원

    수백만명이 쏟아져 나온 월드컵 거리응원에 놀란 집단이 둘이다. 세계가 그 하나고, 하나는 우리 자신이다.‘이게 우리였나?’하며 놀라고,‘이게 우리다.’라며 어깨를 폈다. 수백만명이 일제히 외친 ‘대∼한민국’에 담긴 자화상, 즉 시대의 코드를 찾아내려는 사회학자와 문화평론가들의 담론도 쏟아졌다. 대략 ▲신(新)애국주의 ▲열린민족주의 ▲광기적 파시즘 ▲단순한 재미 추구 등 넷으로 정리된다.‘카니발 민족주의’‘오렌지 민족주의’라는 융합적 개념도 있기는 하다. ‘신애국주의’로 해석하는 쪽에선 거리응원을 ‘젊은이들의 잠재된 애국심의 폭발’로 본다. 한국민의 잠재력, 공동체 의식, 국가발전, 자랑스러운 조국 등의 키워드가 논거를 형성하는 데 주로 동원된다. 대개 보수진영의 시각이다. 반면 ‘열린민족주의’는 거리응원을 저항의 산물로 본다. 분단과 독재 등 불행한 역사를 털어내는 ‘씻김굿’이고, 자연히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접목된다는 시각이다.‘광기적 파시즘’으로 보는 쪽은 두 해석을 비웃는다. 그저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집단 히스테리(박노자)라는 것이다. 한 인권단체는 “붉은악마 현상은 파시즘을 가능케 하는 병적 현상”이라고까지 비난했다. 마지막 담론은 민족주의나 전체주의의 틀로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부한다. 그저 한바탕 신나게 놀자는 축제일 뿐, 애당초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엊그제 나온 한·중·일 세 나라 청소년 의식조사 결과가 화제다. 일본 청소년의 41%가 ‘전쟁이 나면 앞장서 싸우겠다.’고 한 반면 우리는 10%에 그쳤다고 한다. 태극기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애국가를 록 버전으로 불러제친 청소년의 상당수가 전쟁이 나면 피하고 보겠다고 답한 것이다. 거리응원을 애국심의 발로라고 미화하고 찬양한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격이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거리를 다시금 꼼꼼히 살펴야 한다. 서울시청 앞을 메운 ‘거리의 애국심’에 감격하거나 ‘아이들 애국심이 없어서 큰 일’이라고 개탄하는 자세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국가가 뭘 해 줄 건가’부터 찾는 아이들이 국가를 위한 일을 찾도록 하자면 기성세대의 코드가 더 복잡해져야 할 듯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사설] 광복 61주년에 생각하는 日 우경화

    21세기 들어 여섯해째인 올해로 광복 61주년을 맞는다. 전쟁과 폭력의 세기였던 20세기, 한민족은 일제의 침략을 받고 오랫동안 신음을 토하다가 선열들의 치열한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승리에 따라 나라를 되찾았다. 그로부터 61년 전쟁의 잿더미 위에 경제를 일으켰고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러나 광복절을 기쁜 마음으로만 맞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남북관계라도 희망이 보였지만 올해는 북핵문제와 미사일 발사로 경색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도 하강국면에 진입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전시작통권 논란, 인사를 둘러싼 잡음으로 정치권도 편할 날이 없다. 더욱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 다대한 피해를 입힌 일본이 우경화의 길로 치닫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 등으로부터 강력히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침략 전쟁의 원흉들이 받들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또 참배하려 하고 있다.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도 몰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전세계를 향해 일본이라는 국가가 침략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행동이 되풀이된다면 일본은 21세기 아시아 지역에 평화와 번영의 체제를 만들어나가는 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 이웃나라들과 연대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과도한 항의나 여타 차원의 대일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민족주의 일변도의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지도자들이 우경화의 바람을 이용하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시민사회의 연대와 교류 등을 통해 양국 국민이 선린우호관계의 중요성을 상호 인식하고 확립해 나가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광복절이 미래를 향한 겨레의 지혜를 모으는 경축일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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