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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성북동 편이 5월의 첫 주말인 지난 4일 성북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작곡가 채동선이 살던 집~시인 김광섭 집터~시인 조지훈 집터를 차례로 돌고 돌아 석가탄신일을 일주일 앞두고 화려한 연등의 숲을 이루는 길상사에서 시인 백석과 자야의 연가를 떠올렸다. 이어 소설가 이태준의 수연산방~시인 한용운의 심우장~소설가 박태원 집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2시간여 동안 더듬었다. 송재민 해설사가 서울미래유산 투어에 첫선을 보였다.성북동은 근현대 문학과 예술의 고향 같은 동네다. 수많은 문인, 예술가가 이곳에 깃들였다. 시인 한용운·김일엽·김기진·김광섭·조지훈·백석의 집터와 사랑이 남았고 소설가 염상섭·이태준·박태원·조정래가 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했다. 작곡가 채동선·윤이상과 화가 김용준·김기창·김환기·박래현·변종하·김향안의 예향이 진동한다. 오세창, 이홍근, 전형필, 최순우, 임종국의 생애가 남았다. 어쩌다 이다지 지독한 문예의 혼이 성북동에 깃들었을까.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북쪽 큰 문 숙정문과 동쪽 작은 문 혜화문 구간 밖 첫 동네 성북동은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는 선잠단이 있는 엄숙한 공간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선잠단은 종묘와 사직, 선농단과 더불어 왕실의 주요 제례공간이다. 태종 때 단을 쌓았고, 왕비들이 찾아와서 선잠제향을 지내던 곳이다. 선잠단 옛 터는 복원 중이고, 선잠박물관이 이를 기리고 있다.성북동은 영조 때 도성을 지키는 어영청 소속 군사들에게 논과 밭을 나눠준 북둔(북쪽 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어서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주민들에게 생포목을 삶아 표백하는 일과 메주를 쑤는 일을 줘 생계를 도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이라는 책자에 포백(베나 비단)과 훈조(메주)를 관아에 바치던 계(조직)의 운영방식과 노동조건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오늘날 마전터와 ‘메주소리가 북적북적 한다’고 해 붙여진 북정마을 지명의 기원이다. 성안 사람들에게 내다 팔 목적으로 복숭아와 자두를 심었는데 18세기 후반 ‘북둔도화’(北屯桃花)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도화가 만발, 시인문객과 상춘객의 발걸음이 들끓었다. 이때부터 조선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성락원(城樂園) 같은 별서가 들어섰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도성의 풍광을 즐기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대개의 별서가 성 안에서 성 밖을 내다보지만 성락원은 거꾸로 성 밖에서 성 안을 들여다보는 특이한 지역성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절정을 이룬 1930년대 성북동에 근대 문예의 새벽이 활짝 열렸다. 작곡가 채동선이 1931년 가장 먼저 성북동에 자리잡았고, 만해 한용운이 1933년 심우장에 거주했으며, 상허 이태준이 수연산방을 신축하면서 문단의 기린아들로 결성된 구인회의 회동이 잦았다. 성북동에 살던 오성 장승업의 맥을 이은 문인화가 김용준이 노시산방(옛 수향산방, 현 수월암)으로 이사 온 건 1934년의 일이다. 음악가-시인-소설가-화가의 순으로 성북동 예술가마을에 입주한 셈이다. 성북동을 찾은 문인, 예술가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민족주의와 저항성이 유독 강한 게 특징이다. 도성을 등진 성북동의 지형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예술가들이 도성을 떠나 도성 밖으로 피신한 격이다. 만해의 심우장은 아예 도성을 등지고 집을 지었는데, 왜놈의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마치 빼앗긴 나라의 수도 밖으로 망명한 사람들 같았다.성북동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3·1만세 당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썼고, 오세창은 독립선언서 인쇄·배포의 총책임자였다. 성락원을 별궁으로 쓴 의친왕 이강도 끝까지 항일의지를 버리지 않은 왕조의 자존심이었다. 임시정부가 이강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할 정도였다. 일본 게이오대학 유학생 염상섭은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오사카 독립선언대회의 독립선언서 작성자였다. 1924년 5월 4일자 시대일보에는 ‘성북동에 둔 의열단 근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로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집결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도 한용운, 전형필, 이태준과 교류한 뼛속까지 성북사람이었다. 만해가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조선 유일의 조선 땅’이라고 일컬어졌다. 성북동은 저항의 아지트였다. 이 중 오세창-전형필-최순우는 문화보국의 기치 아래 성북동에 모인 삼총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보화각, 북단장)을 선잠단이 있던 북단에 세워 일본과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우리 문화재 5000여점을 지켰다. 국립박물관에 버금가는 소장목록을 자랑한다. 간송미술관 길 건너 간송의 스승 오세창 집터와 간송의 평생 동지였던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옛집이 지척이었다. 오세창의 소장품을 보관했고 사후 부인이 살았던 성북동 128번지 옛집은 허물어 사라졌지만, 바로 옆 최순우 옛집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보존되고 있다. 민족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구인회’와 문예지 ‘문장’ 그리고 청록파가 성북동에서 탄생했다. 저항의식을 품은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성북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성북동이 식민지문학을 벗어나 한국적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대안 문화공간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33년 결성된 구인회는 이태준을 좌장으로 정지용, 이효석, 김기림, 김유정, 이상, 박태원 등 이름 그대로 아홉 명의 예술가가 이태준의 집 수연산방을 근거지로 활동한 순수문학 단체였다. 구인회 주도로 발간된 문장을 통해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등단했는데 해방 후 조지훈의 성북동 집 방우산장에 모여 발간한 시집 ‘청록집’에서 딴 이름이다. 조지훈은 수필 ‘방우산장기’에서 자신이 기거했던 모든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지칭하면서 “마음속으로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조정래는 덕수교회 옆에 살면서 장편 대하소설 ‘한강’을 썼다. 우리나라의 선구적 작곡가 중 한 명인 채동선은 성북동에서 살면서 모두 12편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8편이 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가곡 ‘고향’은 당대 지식인들의 최고 인기곡이었다. 월북한 정지용의 고향이 금지곡이 되면서 채동선의 곡은 이은상의 ‘그리워’, 박화목의 ‘망향’이라는 다른 가사가 붙여져 불렸다.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윤이상도 1953년부터 4년여 조지훈의 집 개울 건너편에 살았다. 조지훈의 시 ‘고풍의상’과 박목월의 ‘나그네’에 곡을 붙였다. 김기창과 김환기, 국내 동양화와 서양화의 양대 거두 모두 성북동 사람이었다. 1913년 동년배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운보 김기창은 동반자 우향 박래현과 함께 살던 집 이름을 운보의 ‘운’과 우향의 ‘우’를 각각 따서 지었다. 운우미술관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화 김환기가 이상의 전 부인 변동림(김향안으로 개명)과 살림을 차린 곳이 수향산방이다. 수화의 ‘수’와 향안의 ‘향’을 따 수향산방이라고 불렀다. 본래 문인화가 김용준의 집이었는데 늙은 감나무가 있다고 해 이태준이 노시산방이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곳이다. 집터는 흔적도 없고 수월암으로 변했다. 또 한 명의 서양화단의 거목 변종하도 말년을 성북동에서 보냈다. 그의 작업실은 석은 변종하기념미술관이 됐다. 김환기는 친구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을 인용한 동명의 그림을 남겼다.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한 시인 김광섭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라고 터전을 잃은 성북동 비둘기의 상실을 노래했다. 이 작품으로 성북동을 대표하게 된 시인이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살았던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집은 빌라로 변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남긴 시인 백석은 연인 자야(김영한)와의 사랑을 맺지 못했고 성북동과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자야가 ‘무소유’의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길상사를 통해 영겁의 인연과 불멸의 사랑을 이어 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다음 일정: 제3회 창신동 ■ 일시 및 집결장소: 5월 11일(토) 오전 10시 동대문역 7번 출구 앞 ■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하)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하)

    본인 스스로가 국립학술원의 기계분과 위원이기도 했던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이 갖는 학술적 성격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술 조사를 위한 준비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립인쇄소에 인쇄인력과 인쇄기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당시에는 로마에 파견을 나가 있었고, 이후 원정대의 학술팀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는 수학자 가스파르 몽주에게 라틴어, 아랍어, 그리스어, 시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의 활자를 이집트 현지에서 인쇄할 수 있도록 바티칸에서 출판사와 인쇄소를 섭외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이집트 원정이 군사 원정인지 아니면 학술 탐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사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이집트 원정을 후자라고 평가하는 쪽이 오히려 나폴레옹의 면을 세워 주는 것이다. 그만큼 이집트 원정의 군사적·정치적 성과는 별 볼 일 없었다. 프랑스군은 계속되는 영국군과 터키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별 성과 없이 1801년 이집트에 도착한 지 38개월 만에 3분의1로 줄어든 병력으로 이집트에서 철수한다. 그러나 이 원정은 학술적으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로 돌아간 원정대의 민간인 전문가들은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이집트에서 조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바로 ‘이집트지’(Description de l’Egypte)다. 풍부한 내용과 아름다운 삽화로 가득 찬 이 백과사전 스타일의 문헌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이집트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때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기는 이집트학을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잡게 하는 배경이 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군이 원정 과정 중 발견한 로제타 스톤은 비록 발견 직후 영국군에 빼앗기기는 했으나, 1822년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최초로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한 중요한 단초가 됐다. 이집트 원정 과정 중에 이루어진 프랑스의 학술 활동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렇게 평한다. “동양을 자신들의 편의에 끼워 맞추고 공포심을 조장하여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려고 했던 서구의 이데올로기적 시도.” 사이드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서구에 대한 적의를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후 19세기와 20세기 동안에 서구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을 다루던 방식을 염두에 둔다면 사이드의 평은 분명히 타당한 면이 있다. 특히 피식민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사이드의 이 평은 쉽게 공감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원정을 긍정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현대 이집트인에 의한 긍정적인 평가다. 대표적 예가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며 1962년에 발표한 ‘통일 아랍공화국 헌장’ 내용이다. 헌장은 프랑스 원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은 당시 이집트 국민의 혁명적 에너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정은 이집트와 아랍문명으로부터 빌려가 유럽 문명이 완성시킨 현대 과학의 다양한 면을 다시금 이집트에 가져다주었다. 또한 이집트의 현재에 대해 연구하고, 고대 역사의 비밀을 발견해 낸 대가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헌장답게 여기에는 이집트와 아랍문명에 대한 예찬도 들어가 있지만, 프랑스의 원정이 사실은 이집트 침략 전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면 나폴레옹이 주도한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이집트학’이라 불리는 ‘현대인들의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정’의 시발점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었다.
  • 체르노빌을 안다는 생각 뒤집게 만든 드라마, 곰퍼츠 평점 ★★★★★

    체르노빌을 안다는 생각 뒤집게 만든 드라마, 곰퍼츠 평점 ★★★★★

    윌 곰퍼츠는 영국 BBC의 예술 편집인이며 예술 리뷰를 맛깔나게 쓰는 작가로 이름 높다. 국내에도 그의 책 ‘발칙한 현대미술사’가 번역 소개됐다. 에밀리 왓슨과 자레드 해리스가 연기 호흡을 맞추고 영국 스카이 어틀랜틱과 미국 HBO가 합작해 영국에서 3회까지 방영된 미니 시리즈 ‘체르노빌’ 리뷰를 별 다섯의 만점 평점과 함께 4일(현지시간) 실었다. 약간만 변형해 전문을 옮긴다.이 드라마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사인 볼트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달림이라고 묘사하는 것이나 북극해 얼음 밑의 물이 아주 차갑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될 것이다. 그저 생각에 잠기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잠이 싹 달아나게 만든다.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15분 옛소련 우크라이나의 원자력발전소에서의 폭발 사고로 시작하는 이 핵재앙이 한 시간 분량의 드라마로 다섯 편에 걸쳐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진다. 3편이 끝날 때까지 난 조금 더 가벼운 것, 예를 들어 아마도 영화 ‘타워링’을 다시 보는 일이나 드라마 ‘루터’의 복사판 같은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어느 쪽이든 현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핵경쟁 시대에 움크리고 있던 위험들의 실체를 이곳에서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처럼 부검하듯 소름끼치게 돌아보고 있어서다. 당시 전세계 정부들이 자신들의 핵발전 계획을 보장받기 위해 (지금은 버려진) 신도시 프립얏에서 그날 밤 벌어진 일들의 끔찍한 참상을 축소하려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 시리즈는 여러분이 왜 그래야 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1편의 첫 장면은 참사 2년 뒤 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해리스 분)의 작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새벽 1시 10분이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이끄는 이 남자는 부엌 식탁에 앉아 카세트 녹음기를 돌려 들으며 체르노빌 4번 원자로가 안전 검사를 마친 뒤 폭발하기 전과 과정,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자신이 알았던 모든 구체적인 사항들이 맞는지 확인한다. 음울하며 음산하다. 길 건너 자동차 안에서는 KGB 간부들이 침묵 속에 지켜보고 있어 시청자들은 사악한 위협을 감지할 수 있다. 당시는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은 미소 짓는 법을 잊었다. 암담하다. 그 뒤로도 나빠지기만 했다.24개월 전의 한 시간 전으로 되감으면 프립얏의 또다른 아파트다. 새 신부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제시 버클리 분)가 잠든 신랑 바실리 이그나텐코(애덤 나가이티스)를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창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 건물을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났고 남편은 잠에서 깨어난다. 소방관인 남편은 걱정할 일 없다며 유니폼을 챙겨 입고 뛰쳐나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그 뒤 관료주의가 참상을 은폐했으며 살갗이 녹아내릴 정도로 방사능 오염이 심각했으며, 재앙의 규모를 그나마 적게 만들려고 현명하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이 엄청난 비극은 훨씬 큰 재앙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이어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안다는 것은 때때로 (드라마를) 시청하기 어렵게 만든다. 파자마 차림의 어린이 등 온마을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방사능 재가 머리 위에 떨어지는데도 불구경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무시무시했다. 식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압력솥 속처럼 연출해냈고 장면 전환의 페이스를 잘 조절했고 연기도 완벽(러시아 엑센트의 가짜 냄새가 전혀 없었다)해 드라마로 만들어진 넌픽션 가운데 독보적이고 중요한 작품이란 평가를 들을 만했다. 스텔란 스카스가르드가 연기한 소비에트의회 부의장인 보리스 슈체르비나는 처음에는 무지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당 노선만 좇는 고집불통의 베테랑 정치인이었으나 현장을 찾아 레가소프의 냉정한 평가를 듣고 끔찍하지만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왓슨이 연기한 벨라루스 핵물리학자 울랴나 코미육은 민스크 연구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초대받지 않았는데도) 현장을 방문하고 레가소프에게 (검열을 거치지 않은) 조언을 청하고 사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이런 비극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첩경이란 생각으로 진실에 접근한다. 세 배우들(스카스가르드, 해리스, 왓슨)은 기억에 남을 연기를 펼쳤고 1980년대 소련 시절의 감정을 제대로 살려냈다. 요한 렝크의 뛰어난 연출은 무채색의 세계를 제대로 그려냈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크레이그 마진의 각본은 팽팽하거나 적확하지는 않다. 대신 그는 시청자들을 그곳으로 데려가 잡아당기고 달아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즐겁게 만들거나 흥분시키지 않지만 여러분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어떤 민족주의 정부 가운데 하나가 비용을 줄이고 지름길을 택하려고 원자로를 운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커다란 시리즈 속에 하나의 작은 아이러니가 자리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를 이 시리즈에서처럼 화려하게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들어간 시간과 어려움, 돈과 맞먹는 정도로는 그걸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월드 Zoom in] 유럽 최대 음악제 ‘유로비전’ 이스라엘 개최…유대주의·범죄 행위 미화에 참가 여부 논쟁

    [월드 Zoom in] 유럽 최대 음악제 ‘유로비전’ 이스라엘 개최…유대주의·범죄 행위 미화에 참가 여부 논쟁

    오는 15일부터 사흘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리는 ‘2019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유로비전 음악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시청자가 2억명에 달하는 영향력 있는 행사를 통해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범죄 행위를 미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바·셀린 디옹 등 배출… 작년 이스라엘 우승 유로비전은 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 유럽방송연맹(EBU) 주도로 서유럽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작됐으며, 아바(1974년)와 셀린 디옹(1988년) 등 세계적인 가수를 배출하면서 권위 있는 행사로 발돋움했다. 이스라엘은 1973년 처음 유로비전에 참가했으며 1978년과 1979년, 1998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네 차례 우승했다. 이스라엘은 1979년과 1999년에 예루살렘에서 유로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해 유로비전에서 이스라엘 가수 네타 바르질리아가 우승하면서 이스라엘이 올해 개최국으로 선정됐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유대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동예루살렘과 시리아 골란고원까지 이스라엘의 주권을 확대하는 등 강경책을 펼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유로비전에 대한 거부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반(反)이스라엘 문화시민운동 단체인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BDS)는 “이스라엘은 유로비전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과 범죄 행위를 가리려 한다. 2018년 유로비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직후에도 가자 지구에서 6명의 아이를 포함해 62명의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유로비전 개최 거부를 촉구했다. 지난 1월에는 영국 사회운동가인 로저 워터스 등이 “유로비전은 가벼운 엔터테인먼트지만 인권에 대한 고려를 배제할 수는 없다. 영국 BBC는 올해 유로비전 방송 송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워터스는 팝스타 마돈나에게도 유로비전 출연을 제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유로비전 거부 땐 유럽 연대 정신 공격받아” 그러나 유로비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30일(현지시간) 영국 코미디언 겸 배우인 스티븐 프라이와 방송인 샤론 오즈번, 세르비아의 공연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은 “개최국이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로비전이 거부당하면 유럽 대륙을 아우르는 연대 정신이 공격받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폴린폴리시는 “반유대주의 범죄와 인종차별 정서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이번 유로비전 참가를 거부하면 안팎으로 격렬한 비판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분열’된 스페인, 4년 새 세 번째 총선…5개 정당 지지율 10%넘어 정부 구성 ‘안갯속’

    ‘분열’된 스페인, 4년 새 세 번째 총선…5개 정당 지지율 10%넘어 정부 구성 ‘안갯속’

    28일(현지시간) 조기 총선을 앞둔 스페인의 분열된 정국이 총선 후에도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5년 12월 이후 세 번째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선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극우 정당 ‘복스’를 포함한 5개 정당이 모두 11%이상의 지지율을 고르게 얻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 구성을 둘러싼 혼란이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 좌파와 우파로 양극화된 스페인은 총선 후에도 연정 구성을 위해 수개월간 정파간 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과반을 확보할 정당이 없을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엘 파이스 등 현지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페드로 산체스 현 총리가 소속된 여당인 사회노동당(PSOE)은 29.6%의 지지율을 얻어 1당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FT는 전했다. 그러나 하원 350석의 과반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다. 사회당이 함께 연정을 구성하길 원하는 급진좌파 포데모스당(PODEMOS)은 12.9%, 중도우파 국민당(PP)은 20%, 국민당과 연정 구성 의지를 비친 중도·리버럴 성향의 시우다다노스(C‘s)는 14.6%, 극우·초국가주의 정당인 복스(VOX)는 11%를 기록했다. 프랑코 독재 거친 스페인에서 1975년 민주화 이후 44년 만에 극우정당의 원내 입성이 확실시된다. 정파를 아우른 정부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사회노동당은 포데모스와 카탈루냐 민족주의 소수 정파를 규합하거나 시우다다노스와 연합하는 방안 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총리 취임 후 카탈루냐 민족주의 진영에 유화 제스처를 보였던 산체스 총리가 최근 다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기류 등을 감안하면 총선 후 사회노동당이 카탈루냐 소수정파와 연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발렌시아대 정치학과 아스트리드 바리오 교수는 “민주화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라면서 “정부 구성은 제도적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응집력 유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주의 자체의 안정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페인 정치의 분열상은 카탈루냐 지방독립 문제, 세제 개편, 불법이민 등을 주요 쟁점을 둘러싼 여론이 그만큼 분산됐음을 보여준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2년 전 독립 찬반 시민투표를 실시한 후 독립 선언과 동시에 카탈루냐공화국 탄생을 선포했다. 당시 스페인 중앙정부는 즉각 진압에 나서 이 지역의 자치권을 빼앗고 이듬해 6월 지방선거까지 직접통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지방선거 결과 다시 분리독립 세력이 주정부를 장악해 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특히 지난 2월 당시 분리독립을 주도했던 인사들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하원 카탈루냐 지역당 의원들이 산체스 총리에게 이들의 사면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후 잠잠하던 문제가 다시 터져나왔다. 세제 개편에 대해서도 이견이 갈린다.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당은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인상과 최저임금 상승을 주장하지만 국민당과 시우다다노스당, 복스당은 개인 및 기업소득세의 최고세율을 현행보다 낮추자는 입장이다. 우파 정당들은 또 현 정부의 포용적 이민정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이다. 이번 총선은 지난 2월 의회가 올해 예산안을 부결시키자 산체스 총리가 의회 해산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스페인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세 번이나 총선을 치를 정도로 불안정한 정국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혼란이 경제 회복 조짐에 치명타를 안긴다는 것도 문제다. 2010년부터 닥친 경제위기로 25%가 넘는 실업률에 신음했던 스페인은 라호이 정부의 노동개혁 및 긴축정책, 관광 호황이 겹쳐 지난해 실업률이 10년 최저인 14.4%를 기록한 바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동영상] “스물아홉살 여성을 잃고서야 뭉치나요” 신부님 일갈에 기립박수

    [동영상] “스물아홉살 여성을 잃고서야 뭉치나요” 신부님 일갈에 기립박수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질문 하나 있습니다. 왜 신의 이름으로 스물아홉 살 여성이 죽음에 이르게 됐고, 그녀의 삶을 통째로 빼앗고서야 이렇게 뭉치나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발생한 ‘신(新) 아일랜드공화군(IRA)이 경찰의 총기 단속에 항의해 봉기하던 현장을 취재하다 총에 맞아 숨진 프리랜서 여기자 리라 맥키(29)의 장례식이 24일 벨파스트의 세인트 앤 성당에서 치러졌다. 마틴 매길 신부가 이렇게 말하던 중간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비롯한 참배객들이 모두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마주쳤다. BBC는 런던과 더블린, 벨파스트에서 온 정치 지도자들이 이렇듯 한 지붕 아래 함께 한 것은 어느 다른 장례식도 연출해내지 못한 장면으로 지도자들에게 차이점을 내려놓고 단합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메이 영국 총리를 비롯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 레오 바라드카르 ‘타오이시치(Taoiseach·아일랜드 총리)’ 등 이름난 정치인들은 물론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의 매리 루 맥도널드·미셸 오닐 의원,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의 아를렌 포스터 당수 등이 나란히 앉아 맥키의 영면을 빌었다.신·구교도의 유혈 분쟁을 종식한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 이후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잔류를 원하는 연방주의 정당과 아일랜드공화국과의 통일을 원하는 공화주의자 정당이 공동 정권을 꾸리고 있다. 다만 지난 2017년 3월 의회 선거에서 DUP가 1위,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이 2위를 차지했지만 각종 이견으로 2년이 넘도록 공동 정권을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어 매길 신부는 이를 꼬집은 것이다. 영국에서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20년 만의 일이라고 AP통신은 전했는데 ‘신 IRA’는 책임을 시인하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신 IRA는 성명을 내고 “중무장한 영국군이 급습하자 IRA 자원병이 투입됐다. 그들에게 교전 시 최대한 주의하도록 지시했다”면서 “그 과정에 ‘적군’ 곁에 있던 리라 맥키가 비극적으로 숨졌다. 맥키의 파트너와 가족,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적군이란 북아일랜드 경찰을 가리킨다. 신 IRA는 과거 북아일랜드 무장조직이었던 IRA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단체다. 지난 2012년 여러 반체제 공화주의 단체들이 통합했다. 굿프라이데이 협정에 반대해 영국으로부터 북아일랜드를 독립시켜 아일랜드와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급진 무장조직이다. 북아일랜드 경찰은 10대 청소년 2명과 57세 여성을 체포했다가 모두 기소하지 않고 석방했다. 한편 친구 스티븐 러스티는 유난히 해리포터와 마블 영화를 좋아했던 고인이 목숨을 잃기 몇 시간 전에 약혼 반지를 보여주며 동성 파트너 새라 캐닝과 2022년에 결혼하자고 다음달 프러포즈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고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유족들은 이 분열된 도시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상징적 장소로 이 성당을 택했다고 밝혔다. 언론 관계자들과 성적 소수자(LGBT) 단체 회원들은 평소 그녀가 열광했던 해리포터 아이템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거나 액세서리 등을 달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2000자 인터뷰 5] 김성경 “신한반도 체제 선언을 보는 나의 고민”

    [2000자 인터뷰 5] 김성경 “신한반도 체제 선언을 보는 나의 고민”

    지난 22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주최한 2019 통일정책포럼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제시한 신한반도 체제를 주제로 다뤘다. 김동엽·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발제를 듣고 4명의 전문가들이 패널 토론을 벌였다. 패널 가운데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 교수의 발언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일단 김 교수의 발언 요지를 그대로 옮기고 25일은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다.정리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문 대통령은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선언적 말씀을 내놓았다. 과연 이게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신한반도 체제라는 것이 기존 논의를 반복하는 데다 현실적인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볼 것들이 많은데 큰 담론부터 던지고 전문가나 국책기관들이 그 내용을 채워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더욱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이후 구축된 미국의 동북아 안보 체제 아래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신한반도 체제라는 선언의 청자가 누구인지도 불명확하다. 그 화두를 듣고 마음에 담아두어 실천에 나서는 주체가 과연 한국사회에 존재하는가? 평화를 갈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요원한 상태에서 관(官) 주도의 정책 어젠다만이 난무하고 있다. 단지 ‘분단 때문에 평화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삶, 소통방식과는 유리된 방식의 평화 담론을 형성하려는 것은 아닐까?  둘째로 신한반도 체제에서 북한의 위치는 어디인가? 한반도의 북녘에 실제로 존재하는 북한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고려는 있는가? 한반도의 트릴레마(세 가지 모순)라고 하는 비핵화와 한미동맹, 평화체제 구축을 모두 이뤄낼 수 없는 상황에 앞으로의 백년 구상이라는 신한반도 체제에서 우리는 북한에게 어떤 자리를 내줄 수 있는가?  셋째로 대만의 예를 보면 국가가 위기에 몰릴 때 국가가 주도하는 남진정책이 시도된 바 있다. 미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자율성을 구축한다는 명목 아래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만큼 국가주의, 민족주의란 낡은 틀이 재생산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이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중국의 일대일로를 우리가 들었을 때 협력을 제안하는 것으로 들리던가?  마지막으로 촛불 이후 상황도 돌아봤으면 한다. 현 정권은 선한 의도를 갖고 강한 나라를 복원하는 것이 촛불의 의미였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시대는 변하고 국가 자체가 용도 폐기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국가 주도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 어쩌면 촛불 이후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
  • [서울광장]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한반도 평화체제/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한반도 평화체제/이두걸 논설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이틀 전인 지난 9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한 중국 하얼빈 역사를 찾았다. 2년 전 역 확장 공사에 따라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지난달 30일 다시 문을 열었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안중근을 만나다’ 연수 일정 중 하나였다.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자 안 의사의 전신 동상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일생 및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의거와 관련한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관 한쪽 끝 유리벽 너머로는 안 의사가 저격한 지점의 바닥 표지석 및 팻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록물들 사이로 ‘동양평화론’을 새긴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서전 격인 ‘안응칠 역사’(응칠은 안 의사의 아호)와 더불어 안 의사가 의거 직후 뤼순 감옥에 투옥됐을 당시에 저술했다. 동양평화론은 전체 5단계 중 서문 등 2단계만 쓰여진 미완성 논문이다. 히라이시 요시토 뤼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 기록을 통해 주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동양평화론의 개요는 △일본은 뤼순을 중국에 돌려주고 중립화한 뒤 한ㆍ중ㆍ일이 공동 관리하는 군항 건설 △3국 동양평화회의 조직하고 재정 확보를 위해 회비 모금 △3국 공동 은행 설립 및 공용 화폐 발행 △3국 공동 군단 설립 △한중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의 발전 도모 등이다. 동양평화론에는 우리가 알던 안 의사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일본과 일본 천황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다.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의 서론 등에서 안 의사는 동양평화회의나 공동 은행, 공동 군단 등을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회비 모금 등은 당시 청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재정난을 겪던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논문 ‘안중근의 정치사상’에서 “안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는 초점을 이토 히로부미 개인에게 맞추고 정작 침략 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일본 천황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안 의사의 사상적 한계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 중심주의 역시 동양평화론의 맹점으로 지적된다. 최봉룡 중국 다롄대 교수는 “동양평화론의 일본 중심 인식은 서구에 대한 대항 논리지만, 동북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타자로 돌리는 또 다른 인종주의가 반영돼 있다. 동양평화론을 인류 평화와 연결할 때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대항 민족주의’는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극복과 배척을 내포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부인하기 어렵다. 20세기 초반까지 유대 민족의 대항 민족주의였던 시오니즘이 지금은 팔레스타인 등 중동 약소 민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까닭이다. 민중들이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민족 내부의 모순에 눈멀게 하는 것도 민족주의의 냉혹한 현주소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안 의사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이 아닌 21세기의 시선이라는 한계 역시 명확하다. 서양이 아시아를 침략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 안 의사를 포함한 당대 동북아의 개화사상가들은 서양을 몰아내는 데 주력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반겼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을 배제하고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현실적인 요건들도 작용했다. 안 의사 인식의 한계는 인정하되 동양평화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동양평화론은 최근 남북 화해구도 형성 등 한반도 평화체제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3국 평화회의는 동북아 국제기구, 공동 은행과 공용 화폐는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논의하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남북 화해 구도 정착의 열쇠이기도 하다.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안 의사의 황해도 생가 복원 등의 사업은 교착 상태인 남북 관계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우리에게 평화는 생명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지정학적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분단을 ‘강요’받았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고뇌를 성찰하고, 한중일 3국의 공동 번영을 꿈꾼 그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douzirl@seoul.co.kr
  • 이번주 예상 뉴스-퓰리처, 아텐보로, 인도네시아 총선, 부활절, 왕좌의 게임

    이번주 예상 뉴스-퓰리처, 아텐보로, 인도네시아 총선, 부활절, 왕좌의 게임

    이번 주에는 퓰리처상 시상식,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기후변화 다큐멘터리, 인도네시아 총선, 부활절 등이 주목할 뉴스로 꼽힌다. 매주 월요일에 한 주 동안 일어날 중요한 일들을 짚어보는 영국 BBC 기사를 옮겨본다. 저널리즘과 픽션, 음악 세 분야에 걸쳐 2019 퓰리처상 시상식이 15일(이하 현지시간) 열린다. 지난해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슈를 상기시키는 상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미투 운동이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남성들의 성적 유린, 백인 민족주의자들의 폭력, 미얀마 난민사태와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등이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만약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추적 기사를 쓴 이가 수상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고 방송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앞장서 온 데이비드 아텐보로 경이 제작한 기후변화 다큐멘터리가 18일 영국 안방에 방영된다. BBC 원 채널을 통해 한 시간 정도 방영되는데 우리가 이미 느끼고 있던 기후변화의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도 과감히 들여다본다. 아텐보로 경이 지난 수십년 동안 목격했던 것들에 비춰 더 이상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개인과 기업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조언도 들려준다. 한 리뷰는 “아텐보로 경이 공포 영화를 나레이션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고 밝혔다.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의원들, 지방의원들을 뽑는 선거는 17일 치러진다. 2024년까지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를 이끌 대통령을 선출하는 등 하루에 아주 많은 일들을 결정하게 된다. 전국의 입후보자들은 거의 24만 5000명이 되며, 투표소만 80만 곳이 동원된다. 등록 유권자 수는 1억 9200만명이다. 투표하는 데 6시간쯤 걸린다. 밀레니얼 세대(17~35세) 유권자만 8000만명이 되는데 독일 인구와 맞먹는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여성 후보 30% 할당 의무화에 따라 시장의 커피 행상 여인이 출마했다.마지막으로 전 세계 22억 이상의 기독교 교도들은 부활절 주말을 맞이한다. 신도들이 가장 중요한 축제로 여기는 부활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 기념으로 시작한다. 올해는 오는 21일이다. 2011년에는 4월 24일이 부활절이어서 춘분 이후 첫 보름 날과 겹쳐 가장 늦었다. 방송은 넷을 꼽았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완결 편인 시즌 8이 시작된다는 것을 더하고 싶다. 미국 시간으로 14일 밤, 영국에서는 15일 새벽 2시, 국내에서는 19일 스크린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불법촬영·유포’ 정준영 카톡방, 위안부 피해자 비하까지

    ‘불법촬영·유포’ 정준영 카톡방, 위안부 피해자 비하까지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30)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카톡방 또는 단톡방)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3일 BBC 코리아는 “그간 공개되지 않은 정준영 카톡방 대화 내용을 확인했다”면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정준영 카톡방 내용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특정 인종을 비하하는 발언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6년 1월 27일 정준영이 속한 카톡방 일부 남성 멤버들은 한 여성이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는 사람이라며 ‘위안부급’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렸다. 서울대 추지현 사회학과 교수는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가 민족주의나 반일주의 정서를 불러일으킬 때는 순수한 존재로 표상되지만, 한국 내에서는 정준영 카톡방에서 언급된 존재 같이 여겨져 왔다”며 “낄낄거리지 않았다 뿐이지 (기존에도) 여성의 몸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혐오 사이트에서도 ‘위안부’를 비슷한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인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 카톡방에서는 또 한 남성 멤버가 독일 방문 일정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신체를 비하하는가하면, 중국 방문 일정을 언급하면서 마카오 여성들을 비하하는 발언도 등장했다. BBC 코리아는 정준영 카톡방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단톡방 멤버들은 성관계 영상물을 공유하거나 잠자리를 자랑할 때마다 여성을 음식으로 비유했다”고 폭로했다. 정준영 카톡방 속 남성 멤버들은 한 여성을 두고 온갖 욕설을 쏟아낸 다음에 약물 사용이나 강간 모의를 하자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카톡방 안에서 이런 채팅을 말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BBC 코리아는 전했다. 추지현 교수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 소비하면서 서로 간 연대감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금기시 될수록 대단한 행위가 되고, 말리는 사람은 ‘샌님’이나 ‘쫄보’로 조롱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국가의 주인, 왕 아닌 나”… 5000년 역사 첫 개인 주권시대 열어

    “국가의 주인, 왕 아닌 나”… 5000년 역사 첫 개인 주권시대 열어

    세계 최초로 헌법에 ‘민주공화정’ 명기 세계 대공황 후 진보 색채… 파업권 도입 상하이 활동가 중심 파벌주의 반면교사로 민족·세계시민 사이 정체성 공존도 과제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표출된 민족국가와 국민주권국가 수립 욕구를 처음으로 구체화했고 국내외 여러 정부를 하나로 묶어 독립운동 대표체로 거듭났다. 이것만으로도 임정은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11일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에 준 영향과 과제, 의미를 들여다봤다. 임정은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한 동시에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닌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 움직임을 완전히 단절시켰다.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국가에서 살게 된 것은 임정의 수립이 결정적이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1일 “임정 설립과 이후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는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소개했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정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공화제 국가로 태어난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왔다. 이에 여운형(1886~1947)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답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국호가 정해졌다. 다음날인 11일 이들은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뒤 임시헌장(1차 헌법)을 반포했다. 새 헌법은 내용이 너무 간략해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임정은 민주공화제와 대의제를 채택하고 평등권과 자유권, 참정권을 인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했다. ‘소유의 자유’를 명시해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생명형(사형)과 신체형(태형)을 폐지해 인도주의 원칙도 명시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헌법에 ‘민주공화정’을 명기한 것은 임정이 세계 최초였다”고 설명했다. 세계 대공황(1929~1933)을 통해 제어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험하고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1898~1958) 등이 임정에 가담하면서 임정은 민주공화정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진보적 색채를 대거 가미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파업권 등이 이때 도입됐다. 학계에서는 3·1운동으로 임정이 수립된 것을 두고 ‘5000년 역사의 최대 사건’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한반도에 민주공화정을 세우는 토대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임정은 우리에게 숙제도 남겼다. 1919년 9월 11일 임정은 여러 정치세력을 한데 모아 통합정부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이 주도권을 쥐고자 다른 세력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갈등을 빚었다. 만약 이때 모든 세력을 끌어안아 완전체가 됐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과 달라졌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TV에서 흔히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아직 1919년 4월에 입주한 첫 번째 청사를 찾지 못했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에 김구의 혈통적 민족 개념에 대한 발전적 계승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족주의에 내재된 권위주의와 인종주의까지 인정해서는 안 된다. ‘민족과 세계 시민 사이의 상반된 정체성을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또 법원이 제동 트럼프 “아동 격리 부활 안한다. 그 정책 좋긴 했다”

    또 법원이 제동 트럼프 “아동 격리 부활 안한다. 그 정책 좋긴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각계의 비난 여론 등으로 인해 결국 폐기했던 ‘불법 이민자 부모-아동 격리’ 정책을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전임 정부 시절의 ‘산물’이라고 ‘오바마 탓’으로 돌리면서도 이 정책이 폐기되자 이민자 유입이 다시 늘어나 우회적으로 이 정책이 좋은 효과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망명 신청자들이 이민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멕시코 국경도시에서 대기하도록 한 정책이 불법이라고 샌프란시스코 법원이 판결한 직후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백악관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아동 격리 정책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그 정책을 다시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관용 가족격리 정책’에 따라 지난해 5∼6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2700명 이상의 미성년자를 불법 이민자 부모와 격리했지만, 각계의 비판과 법원의 제동이 잇따르자 이 정책을 폐기했다. 그는 문제가 됐던 아동 격리 시설에 대해 “매우 부적절했다. 그것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 시절 설치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동들을 격리했다”며 “난 그걸 중단시키고 바꾼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 때 그 법이 있었고 우리는 그 법을 바꾼 사실을 언론도 알고 모두가 안다. 언론이 정확히 보도해야 하는데, 물론 정확히 보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아동 격리 정책이 없어지니 더 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어) 들어오기는 한다. 그들이 디즈니랜드에 가보자는 식으로 소풍 가듯 그렇게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BBC는 지난달 기준으로 미국 이민당국 관리들은 10만명까지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 및 랜돌프 앨리스 비밀경호국(SS) 국장 경질 등과 관련해 ‘국토안보부에 대한 물갈이를 진행 중인 것 같다. 인적 교체를 통해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 “난 물갈이를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누가 그런 표현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그다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우리는 나쁜 (이민 관련) 법 그리고 의회에서 벌어지는 나쁜 행태들과 싸우는 것“이라며 이민법 개정에 대한 민주당의 협조를 거듭 촉구했다. 망명 신청자들을 멕시코 국경도시에 머무르도록 한 것이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과 관련해 트위터에 “제9 순회 판사가 멕시코는 이민자에게 너무 위험한 곳이라고 판결했다. 그래서 미국에게 불공평한 판결이다. 어쩔 도리가 없다!”고 적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수치스럽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망명 신청자들을 멕시코 국경도시에 머무르도록 한 조치는 12일까지 유지된다고 방송은 전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양자택일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이민자 부모가 자녀 격리에 동의하면 그렇게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함께 법원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머무르게 하는 방안이다. 1997년 미국 법원은 이민자의 자녀는 20일까지만 수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플로레스 합의’를 판결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액시오스 뉴스사이트가 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경한 이민 대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한 오마르 민주당 하원의원이 8일 트위터에 “흰둥이 민족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도 트위터에 유대인인 밀러를 공격하는 것이 반유대적이란 제프 발라본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을 인용해 맞불을 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네타냐후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병합하겠다” 어떤 폭발력?

    네타냐후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병합하겠다” 어떤 폭발력?

    유대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는 9일 총선에서 승리하면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병합하겠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측은 정착촌이 “불법이고 제거될 것”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정착촌은 국제법으로도 위법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6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 채널 12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처럼 서안에서 이스라엘 주권을 확대할지 묻는 질문에 “우리는 진행 중이며 그것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과 영국 BBC 등이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느냐고 묻는데, 대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난 이스라엘의 주권을 확장할 것이고, 정착촌 단지들(settlement blocks)과 외딴 정착촌(isolated settlements)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총선을 사흘 앞두고 접전 양상을 벌이는 극우 정당과의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땅을 내주는 데 반대하는 강경파 유권자들을 붙들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BBC는 잠재적인 폭탄 하나를 건드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5일 저녁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극우 정당들의 연합인 블루와 화이트가 28석씩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의 전체 120석 가운데 두 정당이 모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엇비슷한 득표를 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달 말까지는 블루와 화이트가 근소하게 앞서다가 이달 들어 네타냐후 총리가 보수층 결집에 총력을 쏟으면서 리쿠드당 지지율이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채널 13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파 및 종교 정당들이 총선에서 확보할 의석은 모두 66석으로 중도좌파와 아랍계 정당들(54석)보다 많을 것으로 조사됐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대변인인 나빌 아부 루데이네는 “어떤 조처와 발표도 사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착촌은 불법이고 제거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가자 지구에 국가를 건설하기 원한다. 이곳들은 1967년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후 점령한 곳으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합병했고 가자 지구에서는 2005년 철수했다. 서안은 팔레스타인 250만명이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지만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며 그 보호 아래 40만명의 유대인이 정착촌을 꾸려왔다. 정착촌은 2014년 이후 결렬 상태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재개하는 데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다. 팔레스타인과 다른 많은 국가는 전쟁으로 점령한 땅에 정착하는 것을 금지한 제네바 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안보 필요성 및 성경적·역사적·정치적 연관성을 이유로 들며 정착촌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이고 있는 미국 대사관은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했으며, 2017년 12월에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자국 대사관을 옮기겠다고 발표해 팔레스타인과 아랍권 지도자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 대부분의 동맹국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 총선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평화 계획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지만, 협상 재개 전망은 밝지 않다고 통신은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스라엘 총선 D-3 ‘트럼프 지지’ 통할까…관전포인트는

    이스라엘 총선 D-3 ‘트럼프 지지’ 통할까…관전포인트는

    ‘트럼프는 네타냐후를 지지하지만 이스라엘 유권자들도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 총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강경 보수파 베냐민 네타냐후(70) 이스라엘 총리가 5선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총력 지원을 받고 있지만 최근 비리 의혹이 불거진데다 이번 총선에서 ‘청렴 통치’ 를 내건 정치 신인인 중도연합 정당 ‘블루와화이트’의 베니 간츠(60) 전 군 참모총장이 네타냐후 총리의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과거 어느 선거 보다 험로가 예상된다고 CNN 등은 5일(현지시간) 평가했다.아비차이 만델블리트 이스라엘 법무장관은 지난달 네타냐후 총리를 뇌물수수·사기·배임 등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간츠 전 참모총장에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2015년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말 정계에 입문한 그는 상대적으로 정치에 찌들지 않은 ‘새 얼굴’이면서 2012년과 2014년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을 지휘해 대중에겐 친숙하다. CNN은 “유권자들에게 그는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반( 反)네타냐후’ 이미지를 가진 대안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간츠 전 참모총장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과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 네타냐후 총리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방관하거나 확대를 주장하지만 간츠 전 참모총장은 정착촌의 무분별한 확대에 반대한다.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키고 이란을 견제하는 전략을 쓰는 반면 간츠 전 참모총장은 초강경파들의 주장에 반대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취임 후 일관된 친(親)이스라엘 행보로 이스라엘에서 인기가 높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사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데 이어 최근에는 네타냐후 총리와 만나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해 국제사회의 반발을 샀다. 골란고원은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이고 유엔은 이를 불법 점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지원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양당은 접전을 벌이고 있다. 두 정당 모두 120석의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석 가운데 각각 30석 내외를 얻을 것으로 에상되면서 모두 단독 과반이 힘든 만큼 결국 군소정당과의 연정구성으로 집권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총선에는 13개 정당이 뛰어든 상태다. 이스라엘은 유권자들이 개별 후보가 아닌 정당 명부에 투표해 그 결과로 크네세트의 전체 120석을 당 지지율에 따라 배분한다. 이스라엘에서는 1948년 건국 이래 단독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전례가 없고 여러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쿠르로부터 갈라져 나온 극우민족주의자 모셰 페이글린이 이끄는 ‘제후트’에 대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페이글린이 리쿠드나 중도정당연합이 연정을 구성하는 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페이글린은 요르단강 서안의 병합, 비(非)유대인 이스라엘 시민의 투표권 박탈, 팔레스타인과의 모든 협정 파기 등을 포함해 대마초 합법화를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노련한 암로vs노골적 보우소나루… 트럼프를 대하는 중남미 외교 화법

    노련한 암로vs노골적 보우소나루… 트럼프를 대하는 중남미 외교 화법

    美 국경폐쇄 압박에 멕시코 “평온하게” 경제적 타격 등 보복 우려 맞대응 자제 브라질, 예루살렘 무역사무소 설치 발표 백악관에 잘 보이려 ‘親이스라엘 행보’“트럼프가 (공공장소에서 투정을 부리는) ‘버릇없는 아기’처럼 행동하고 있다면 암로는 그(트럼프)가 또 다른 짜증을 내지 않도록 달래는 노련한 부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이은 국경 폐쇄 압박에 일명 ‘좌파 트럼프’로 불리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멕시코 대통령이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일간 가디언은 1일(현지시간) 미국에 맞대응을 자제한 암로 대통령의 노련한 외교를 이같이 평가했다. 좌파 민족주의자로만 알려졌던 암로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면모는 멕시코와 함께 중남미의 양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맹목적 미국 추종 외교와 대비되면서 누가 더 국익에 적합한 인물인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암로 대통령은 이날 “나는 사랑과 평화를 선호한다. 명백하게 우리는 중미 이민자들이 우리나라를 통과하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 다만 소란 없이 신중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차분하고 평온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암로 대통령은 대선 기간 미국과 우호 관계를 모색하겠지만, 인종주의적이며 패권주의적인 오만한 태도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대해서도 암로 대통령은 “미국이 불법 이민자 유입을 억제하려면 중미 국가에 대한 원조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의 대외 수출의 약 80%는 미국으로 향하고 양국의 교역 규모가 하루 170억 달러(약 19조 30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현실을 받아들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반면 브라질의 ‘우파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에 적극 동조하는 등 노골적인 친미 일변도 외교를 추구해 국제 관계에서 브라질의 대미 종속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 후 예루살렘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1일에는 2022년까지 브라질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언해 팔레스타인과 이슬람권의 강한 반발을 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 ‘스트롱맨’들의 성지가 됐다”면서 “보우소나루는 백악관에 잘보이기 위해 이스라엘을 끌어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 시절부터 줄곧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두 명의 대통령 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을 돕기 위해 자국 영토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슬로바키아 첫 여성 대통령 된 정치 신인

    슬로바키아 첫 여성 대통령 된 정치 신인

    불법폐기물과의 투쟁…환경분야 노벨상 정경유착 질린 국민들, 두자녀 엄마 선택환경운동가 출신의 정치 신인이 동유럽 슬로바키아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31일(현지시간) CNN 등은 슬로바키아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발표를 인용해 전날 열린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진보적 슬로바키아’의 주사나 카푸토바(45)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선관위는 전국 투표소 개표율 96.8% 기준으로 카푸토바 후보가 58.3%를 득표해 41.7%에 그친 연립정부 여당 사회민주당의 마로스 세프쇼비치 후보를 이겼다고 밝혔다. 이로써 카푸토바는 슬로바키아 제5대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됐다. 그는 지난 14년간 수도 브라티슬라바 인근의 고향 마을 페지노크에서 불법 폐기물 매립 문제와 싸운 환경운동가다. 긴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매립 불허 판결을 받아내 2016년 환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진보적 슬로바키아 당 부대표를 지낸 것 외에는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카푸토바는 두 자녀를 둔 이혼녀이며 동성애를 옹호하고 낙태 금지에도 반대한다. 슬로바키아가 카푸토바를 선택한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노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2월 슬로바키아 정치인들과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의 유착 관계를 파헤치던 잔 쿠치악 기자가 피살당한 이후 정경유착 척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계속됐다. BBC는 “카푸토바 당선자는 이번 선거를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갔다”고 승리 이유를 분석했다.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자리라 실권은 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내각 구성 승인권, 헌법재판관 임명권 등을 가진다. 블룸버그통신은 카푸토바 당선자의 승리를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폴란드, 헝가리, 독일, 이탈리아 등의 포퓰리즘과 다르고 우익, 민족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분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독주 체제 심판대 오른 중동 ‘투톱 스트롱맨’

    독주 체제 심판대 오른 중동 ‘투톱 스트롱맨’

    이스라엘 9일 총선 접전 속, 네타냐후 5선 최장수 총리 유력 터키, 대통령제 이후 첫 지방선거… 에르도안의 찬반투표격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이스라엘 총리가 최장수 총리가 될 것인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오른쪽) 터키 대통령이 앞으로도 이슬람 제정일치 군주 ‘술탄’에 비견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인지, 중동 일대의 두 강력한 리더십의 향배가 약 열흘 안에 결정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오는 9일(현지시간) 총선을 치른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 5선에 성공해 13년 3개월 집권한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를 제치고 역대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가 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그리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집권해 총리 재임 기간이 모두 합쳐 만 13년에 이른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의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달 검찰은 네탸나후를 부패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그 후폭풍으로 집권 리쿠드당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 베니 간츠 전 참모총장이 이끄는 중도정당연합 ‘청백’과 의회 3석 이내의 접전을 벌이는 중이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5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리쿠드당이 최다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도 다른 보수정당과의 연합으로 의회의 과반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등 노골적인 ‘네타냐후 편들기’ 행보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터키는 31일 지방선거를 치렀다. 지난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한 후 첫 지방선거라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찬반 투표의 성격을 띠게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과 극우 성향 민족주의행동당(MHP)이 손잡은 여권 선거연대, 제1 야당 ‘공화인민당’(CHP)과 우파 ‘좋은당’(IYI)의 야권 선거연대, 쿠르드계 등 소수집단을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이 3파전을 벌일 전망이다. 여권 연대가 과반을 득표하고 이스탄불·앙카라 등 격전지에서 이기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악력이 유지되겠지만,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세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실업률, 물가상승률, 소비자 심리 등 경제지표가 최악”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식 선거 결과는 투표 열흘 뒤 발표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서울광장] 토착왜구가 애국자로 둔갑한 현대사의 비극/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토착왜구가 애국자로 둔갑한 현대사의 비극/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역사란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 주는 뿌리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가 모여 미래의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이치다. 단채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왜곡된 역사는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친일파’들이 자행한 근현대사의 역사 왜곡이다. 변신에 능하고 대세의 움직임에 민감한 이들 친일파는 해방 후 반공투사로 둔갑해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탄압했다. 당시 해방 공간에서 숨죽이던 친일파들은 남한 사회에 몰아친 ‘빨갱이 타도’ 분위기에 편승해 출세 가도를 달렸다. 대표적인 예가 의열단을 이끌었던 약산 김원봉과 일제 악질 고등계 형사 노덕술의 사례다. 일제시대 친일파들의 민족 반역 행위를 조사·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강제 해산된 이후 친일파들의 행동은 더욱 노골화됐다. 독립투사들이 치를 떨었던 노덕술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3개의 무공훈장을 받으며 완벽한 애국자로 둔갑했다. 이 즈음 해방 공간에서 몽양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 운동에 앞장섰던 김원봉이 거꾸로 친일파들에게 조사를 받는 어쩌구니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임시정부에서 활약했던 정정화 여사의 ‘정강일기’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평생 조국 광복에 헌신했고 의열단의 의백이었던 그가 악질 왜경 출신자에게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했다. 약산은 사흘을 꼬박 울면서 ‘해방된 조국에서 왜놈 등살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한탄을 했다.” 독립운동가 시절 단 한번도 잡히지 않았던 항일운동의 거두가 해방 후 악질 친일 경찰 출신에게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비극이다. 17세 여학생 유관순을 고문해 죽였던 정춘양(총독부 하급관리)이 해방 이후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악질 친일파들을 모아 반공투사·애국자로 세탁해 준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역사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동군 헌병교습소 출신인 김창룡을 보자. 만주국 헌병보조원 시절 만주 항일 조직 체포에 혁혁한 공을 세워 헌병 오장으로 특진했다. 해방 후 고향(함경남도 영흥)에서 일제에 협력한 전범(戰犯)으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이송 도중 탈출해 남한으로 온다. 공산주의 척결에 공을 세운 그는 이승만의 ‘양자’로 권력을 전횡하다가 1956년 군 반대파의 손에 처단되지만 장례식은 최초의 국군장으로 치러질 정도로 애국지사 대접을 받았다. 이승만이 직접 묘주명(墓主名)이 됐고, 묘비명은 친일 역사학자의 거두였던 이병도가 썼다. 이병도는 당시 묘비에 “아! 이런 변이 있을까. 나라의 큰 손실이구나. … 그 혼은 기리(길이) 호국의 신이 될 것”이라고 기술했다. 대표적인 식민사관론자인 이병도가 반공투사로 변신한 친일파 김창룡의 묘비명을 썼다는 것은 반공을 호신술로 삼은 친일파들의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탐사보도 전문지인 뉴스타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훈장과 포장을 받은 친일 인사는 총 222명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친일에 앞장섰던 인물들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을 내세워 훈장도 받고 애국자로 둔갑한 것이다. 친일파라는 말은 원래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일본이 만든 용어이고, 당시 조선에서는 토왜(土倭·토착왜구)라는 말이 널리 통용됐다. ‘친일파’는 사리사욕을 위해 일제 침략에 협조했거나 일제를 등에 업고 동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국권 탈환을 위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 친일파 청산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상황을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단견에 가깝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과 아직도 그 후손들이 여전히 주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매국과 편법으로 쌓아 올린 부와 권력이 2대, 3대로 이어진 상황에서 사회 정의를 확립하고 민족 통합을 이룩하는 가치관 확립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공동체 존립의 대원칙인 ‘공정과 정의’가 무력화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일본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를 지지하면서 한반도 냉전 해체를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의 뿌리가 21세기 극우보수 세력의 온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oilman@seoul.co.kr
  • 뉴질랜드 참사 2주만에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 차단 나선 페이스북

    뉴질랜드 참사 2주만에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 차단 나선 페이스북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이 지난 15일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이슬람사원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약 2주 만인 27일(현지시간)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 콘텐츠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고 미 CNN방송 등이 전했다. 호주 출신 백인으로 극단주의 성향의 총격범이 당시 상황을 생중계하는 플랫폼으로 이용된 페이스북은 이를 사전에 인지해 차단하는 데 실패했으며 해당 영상이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확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페이스북은 이미 백인 우월주의 관련 콘텐츠를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 콘텐츠는 예외였다. 페이스북은 “우리는 민족주의와 분리주의의 더 넓은 개념, 즉 미국인의 자부심과 사람들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인 바스크 분리주의와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근거를 백인 민족주의에 적용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전 세계의 인종 관련 전문가와 시민사회 구성원, 학자들과 논의한 결과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는 조직화된 증오 집단에서 백인 우월주의와 의미있게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앞으로 ‘아메리칸 프라이드’, ‘바스크 분리주의’ 등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 관련 콘텐츠도 검색되지 않도록 조처할 계획이다. 일례로 사용자가 백인 우월주의 또는 민족주의 관련 콘텐츠를 검색하면 페이지가 자동으로 증오 반대 비영리기구 ‘라이프 애프터 헤이트’ 사이트로 넘어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사이트는 사용자들이 증오를 부추기는 단체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2011년 개설됐다. 페이스북은 지난 3개월간 미국, 유럽,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 인권 단체와 전문가 등과 함께 20차례 인종 관련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는 워싱턴DC 소재 진보성향 변호사들의 모임인 ‘법적 시민권을 위한 변호사 위원회’(LCCRUL)도 포함됐다. 크리스틴 클라크 LCCRUL 사무국장은 “백인 우월주의 및 민족주의 증오·폭력에 대한 대처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면서 “백인 민족주의와 우월주의가 다르다는 생각은 잘못된 구분”이라고 지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최장집 교수 ‘한국민족주의의 여러 울림에 관하여’ 전문

    최장집 교수 ‘한국민족주의의 여러 울림에 관하여’ 전문

    한국국제정치학회(KAIS)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5일 개최한 특별학술대회의 라운드테이블에 초대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발표문 ‘한국 민족주의의 다성적(polyphonic/多聲的) 성격에 관하여’ 전문을 소개한다. A4 용지에 적은 활자체로 10쪽 분량이라 PDF 파일을 링크한다. ☞ 최장집 교수 발표문 PDF 파일 다운로드 최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최근 년에 이르러 민족주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 언술로서 큰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현상을 소재로 몇가지 핵심만을 비판적으로 말하려 한다”면서 “네 가지 테제로 나누어 토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 역사는 청산될 수 없고, ‘역사 해석의 정치화’는 민주주의 발전을 낳지 못한다. 2. 민족주의를 통한 일제식민지배 역사청산은 사실적이지도, 가능한 일도 아니다. 3. 남북한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민족주의 그 이상이 필요하다. 4. ‘민족주의의 상대화’를 통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중요하다. 네 가지 테제다. 보수 매체들이 최 교수의 발표문에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문대통령 3·1절 기념사는 이념 대립 부추긴 관제 민족주의”라고 입맛에 맞게 소개한 신문도 있었고, 토론 패널이었던 문정인 청와대 안보특보가 최 교수와 ‘부딪혔다’고 보도한 신문도 있었다. 그런데 발표문 전문을 보면 신문들이 너무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들여다 보고 입맛에 맞게 인용해 최 교수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실 최 교수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본을 평화공존과 동아시아 집단안전 보장 체제를 중첩되게 만드는 데 활용하자는 제안에는 주목조차 하지 못했다. 최 교수가 이론과 현실을 함께 고민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깊이 성찰했으면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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