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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르비 보수화땐 희생 가능성”/모스크바변혁… 미·일 전문가 분석

    ◎사임보다 사임방법에 더 충격/억눌려온 급진파 과격화 걱정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갑작스런 사임발표는 소련 국내에는 물론 전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의 신사고외교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임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 파장은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미국과 일본 전문가의 견해를 모아본다. ▲마이클 돕(미 워싱턴포스트지 모스크바특파원)=셰바르드나제의 사임은 고르바초프에게는 서방의 신임을 받고 있는 외무장관 한명을 잃는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의 사임은 고르바초프가 1985년 소련을 현대사회로 이끌기 위해 구성했던 팀이 해체됐음을 의미한다. 이번 인민대회 분위기를 89년과 비교하면 좋은 대조를 이룬다. 89년에는 개혁파들이 「지역간 그룹」을 결성하고 고르바초프에게 개혁을 가속화시키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개력파가 풀이 죽고 분열된 반면 보수파들은 부지런히 연설을 하고 결의안들을 내놓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과거 좌우의 균형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많은 개혁파들은 고르바초프가 보수주의로 너무 깊숙히 들어가 보수파의 인질이 되거나 아니면 다음번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킴 흘름스(헤리티지 재단연구원)=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사임은 모든 것을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셰바르드나제 장관에 걸고 미국의 외교파트너로 양인을 적극 지지해온 미 행정부에는 커다란 손실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소련에서 일대 권력재편이 일어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은 완전히 파멸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백악관과 국무부에 충격파를 던져준 것은 셰바르드나제 사임 사실자체가 아니라 사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사임소식이 전해지자 미 관리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열을 올렸으며 몇시간 동안의 내부 논의를 거친 후 공식 반응을 나타냈다. ▲마샬 골드먼(하버드대 소련연구소 연구원)=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사임발표는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미 국민들에게 보라,부시 대통령이 파시스트가 돼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까지 베이커 장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스스로의 개혁프로그램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며 소연방내 각 공화국들의 민족주의운동을 무력진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우려를 일축해왔다.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임을 입증하면서 동구의 공산주의체제 붕괴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소련 국내생활의 민주화를 허용하고 자유시장경제로의 전환의 길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베이커 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올해만도 20번이나 만나 중요한 군축문제를 논의하고 평화적인 독일통일의 길을 열어줬으며 페르시아만 위기와 관련한 양국의 정책조정작업을 벌이는등 상호신뢰 아래서 친분을 다져왔다. 그러나 이제 내년 2월로 예정된 모스크바 정상회담이 제대로 열릴지 혹은 START 협정이 예정대로 체결될 수 있을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입장이다. 페르시아만 위기와 관련,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대 이라크 노선에서 셰바르드나제 장관보다 훨씬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예프게니프리마코프 특사를 두번이나 바그다드로 파견했었다. 분석가들은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사임연설에서 자신의 페르시아만 정책이 내부에서 잘려졌으며 자신의 내부 중상운동의 희생자라고 불평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시오카와교수(염천신명·도쿄대)=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셰바르드나제 장관,야코블레프 대통령위원회 위원을 「3인조」라고 칭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개혁노선을 대담하게 진척시키려는 두사람과 보수파간의 균형을 유지시켜 왔다. 그러나 이제 대통령이 보수파와 군부의 압력에 흔들려 셰바르드나제 장관과는 더이상 짝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 9월에 급진적인 시장경제 이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샤탈린안에 동의를 표명,급진파에 기우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10월이 되어 여기에 제동이 걸렸다. 보수파와 군부의 굉장한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수파 가운데서도 군부는 특히 자신들이야말로 연방을 뭉치게하는 핵심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연방해체 위기감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보수파를 배려하면서 개혁을 추진해나간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수법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우파로부터 압력이 강했기 때문에 셰바르드나제 장관쪽의 손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 역시 보수파의 공격이 격해져 앞으로 야코블레프씨의 동향이 주목된다. 그러나 급진파도 잠자코 보수파의 반격을 지켜 보지 않을 것이다. 소련 정쟁이 한층 격화의 길을 걷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무라교수(목촌·홋카이도대)=셰바르드나제씨는 소련정치가로서는 드물게 기골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위기를 넘기려고 하는 권위주의적인 처사이며 페레스트로이카의 본질과 모순되고 있다. 그의 사의표명은 더이상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항의의 의미와 경고로서 돌멩이를 던지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정세는 한층 혼미를 거듭할 것이다. 억눌려 있는 급진파가 보다 과격해지는 한편 보수파도 「서방측에 대한 지나친 협조외교」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 “한반도평화 다지는 대 북한정책 펴라”

    ◎노대통령 맞는 고르바초프에게/분단에 책임… 「결자해지의 묘책」 기대/미군철수 전제 비핵지대 구상은 비현실적 한국의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향한다고 할 때에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한반도의 냉전을 시발시킨 모스크바 3상회의다.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를 결정하였을 때에 한국의 대내정치,특히 좌익이 3일만에 「반탁」에서 「찬탁」으로 돌아선 것이 전후 세계질서인 냉전을 우리의 대내정치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시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를 실질상 분단시킨 곳이 모스크바였다. 한반도에 얄타협정을 적용하기로 한 곳이 모스크바였다. 오늘날 한국민이 감회깊게 노대통령을 모스크바로 보내면서 깊은 숙고에 빠지는 것은 독일통일을 허용한 소련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무엇을 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초점이라고 본다. 오늘날도 독일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게 한 한반도문제의 핵심인 한국전쟁의 책임이 역시 김일성체제와 소련에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북방정책의 시동은 조지 케넌이1946년에 봉쇄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했을 때 명제였던 세계혁명적인 성격을 띤 소비에트권력을 꾸준히 봉쇄하면 끝내는 사회주의의 대내체제가 「변질」할 것이라는 데서 보듯이 우리가 소련에 접근하는 것은 소련이 「변질」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변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소련의 정치변동을 기대하나 소련의 대내정치,경제의 난관 때문에 초조한 마음으로 소련의 정치변동을 바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끝내는 우리 국민이 깊이 보려는 것은 과연 소련의 한반도정책이 얼마나 변했는가 하는 점이다. 소련이 편견없이 한반도의 근대사적인 민족주의의 성격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민은 민족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생존양식으로의 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시장」을 향하여 지금까지 노력해온 민족이다. 위에서 편견이라 하는 것은 최근 소련정부일각(정보)에서 서울올림픽 이래 한국의 사회를 결론지었다는 항목들이 알려져 있다. 그들은 ①한국사회에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다. ②한국민은 반일적이다. ③한국민은 군을 반대한다. ④공무원이 부패했다. ⑤한국은 재벌정치다. ⑥국민의 과반수가 한국전쟁을 모른다. ⑦젊은층이 반미적이다라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이같은 평가에서 첫째 한국국민에게 사회주의성향이 있다는 것은 도시 거리가 먼 얘기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치르고 견뎌낸 국민이다. 가난하고 약한자에 동정하는 민족적 성격을 갖고 있다. 둘째 반일적이다라는 평가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독립후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양국간의 사회교류·경제교류 더욱 나아가서 안전보장상의 깊은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반하는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것이며 한국전쟁 이래 국민과 국군과의 관계는 어느나라에도 없는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넷째 공무원이 부패했다는 말에는 한국경제의 경이적인 근대화에서는 공무원의 기본적인 윤리수준이 엄존하였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확언할 수 있다. 다섯째 한국국민의 새로운 세대가 한국전쟁을 모른다고 하였으나 적어도 한국전쟁을 다시 원하는가 라고 물었을때는 철저하게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아직도 모든 국민이 한국전쟁은 소련의 명령에서 시발됐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여섯째 젊은 세대에게 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것이 반사적으로 친소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스크바를 여행한 우리 학생들은 다시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라는 것은 이것들이 소련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노대통령의 소련 방문으로 고르바초프와의 본격적인 「균형된 이익」을 거래하는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의 실질상의 민족을 옹위하고 있는 남한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으로서는 한국경제의 활력이 매력일 것이며 또한 상호간에 경제협력이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라는 안전보장문제에 소련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하는 의아심과 기대다. 가령 고르바초프가 거듭 제의한 집단안전보장 구상은 지금에 와서는 한반도의 안전보장체계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특사로 왔던 메드베데프가 서울에서 운을 뗀 미군의 철수를 전제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에서 보듯이 거리가 너무 먼 일이기 때문에 의아심을 갖게 한다. 당분간은 한 미 동맹관계는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발되는 한 소 관계에서 소련은 한 미 동맹관계를 건드려서는 결코 안된다. 현재 한반도의 유일하고 믿을 수 있는 안전의 발판은 한 미 군사동맹관계 뿐이라는 점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도리어 한반도의 문제점은 소련이 스탈린적인 소비에트파워 때문에 오늘의 파탄이 있다면,소련은 북한에 대한 정책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고 가능케한 고르바초프라면 한반도에서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를 본질적으로 기반화할 수 있는 대 북한정책에 대담하게 나서야 한다고 본다. 소련이 중국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이해하나 대 북한 정책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본다. 동시에 이번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일괄타결할 각종 협정은 거의가 경제적인 성격을 띤 협정이다. 소련의 새로운 대 한반도 정책에 대한 대가가 솔직히 한국의 대소 경제협력인 것이다. 이미 소련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보좌관(페트라코프)의 솔직한 말을 빌리면 서방측에 1천억달러에 이르는 경제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지금 독일 다음으로 한국의 경제협력이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도 소련정부가 서방의 경제협력을 대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가 되어 있는지가 의아스럽다. 자본주의국가는 「시장」의 조성없이는 그 경제적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노대통령의 모스크바행은 북한을 포함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은 감회와 동시에 현실적인 성숙된 감각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국과 소련 국민간의 관계가 조직적으로 형성되려는 새로운 역사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본에서부터 어김없는 이해를 갖고 솔직하고 대담한 한 소 관계의 역사적첫발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 유고 2개공 선거/공산당 압승 예상

    【베오그라드 AP UPI 연합】 유고슬라비아의 연방체제 유지여부 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연방내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공화국 자유총선에서 10일 현재 나온 잠정집계 결과 공산주의자들이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고관영 베오그라드 방송은 45년만에 처음 9일 실시된 자유총선의 잠정집계 결과 유고 최대의 세르비아공화국에서는 집권 사회당(구공산당)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약 66%의 득표율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31명의 야당후보들을 따돌리고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의회선거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선전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방송은 또 몬테네그로공화국에서도 집권 공산당 당수인 모미르 불라토비치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는 등 공산당의 낙승이 결정적이라고 전했다.
  • 방글라데시 대통령 사임 배경과 정국 전망

    ◎9년 독재속 경제난… 민심 급속 이탈/공무원도 가세… 무정부상태 연출/“경원제공” 미·일·영의 퇴진압력도 작용한 듯/야반목·군개입소지 등 불안 여전 피플스 파워(민중의 힘)는 방글라데시에서도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수많은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4일 에르샤드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하자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쏟아져나와 춤을 추고 폭죽을 터트리며 독재정권의 종말을 환희로 맞이했다. 방글라데시를 9년째 통치해오고 있는 에르샤드 대통령은 범국민적 반정부시위와 파업에 파침내 굴복,야당에 자신의 후임으로 선거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끌 부통령을 지명해주도록 요청했다. 에르샤드 대통령의 사임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독재정권의 비극적 종말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독재정권은 방글라데시에서도 국민의 피를 보고서야 물러나는 정치적 악순환을 재연했다. 방글라데시의 유혈사태는 지난 10월10일 에르샤드 대통령이 내년 6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촉발됐었다.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에르샤드 대통령이 장기집권 야욕을 공식화하자 「군정종식」을 요구하며 반정부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에르샤드는 지난 82년 군참모총장일때 무혈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86년에는 비상사태하에서 주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선거를 치러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카대학을 진원지로 한 반정부시위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으며 날로 격렬해졌다. 특히 반목과 대립관계를 유지해 오던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이 이끄는 7개 정당연합과 8개 정당이 연합한 아와미연맹(AL) 등 주요 야당이 정권타도에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에르샤드정부는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반정부시위가 격화되자 지난 11월27일 집권이후 두번째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부 보안군과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는등 강경대응을 보였다. 야당은 군과 경찰의 발포로 1백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사망자는 6명이라고 발표했다. 정부의 강경대응에도 불구하고 반정부시위는 계속됐다. 국민들은 에르샤드 대통령의 퇴진때까지 총파업을 하자는 야당의 호소에 적극 호응,대부분의 은행등 금융기관과 상가는 문을 닫고 교통은 마비됐다. 대학교수 의사 등 지식인들도 반정부시위에 합류했다. 집권 자티야당 소속 19명의 의원이 사임하는가 하면 공무원들까지 총파업에 합류,국가전역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공무원 조정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에르샤드의 퇴진을 요구했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집권이후 관료들과 군부가 균형을 유지하도록 조정하고 잦은 군인사를 통해 잠재적인 반대세력을 제거하며 정권을 유지해왔다. 야당의 분열도 그의 장기집권을 도왔다. 에르샤드정권은 어느정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해 왔으나 장기집권에 따른 강압통치에 의한 불법과 부정부패가 자행되고 고질적인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며 집권 후반기부터 민심을 잃기 시작했다. 정치분석가들은 국민들로부터 민심을 잃은 것이 에르샤드정권 퇴진의 직접적인 동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또 반정부시위가 범국민적 지지를 얻자 에르샤드 대통령에 대한 군부의 지지가 약화된 것도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에르샤드의 퇴진에는 방글라데시에 많은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영국 일본 미국 등의 사임압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은 반정부시위가 계속될 경우 원조계획을 수정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미국과 일본 등은 방글라데시의 인권유린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93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내년 6월 대통령선거 이전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방글라데시는 내년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일정이 예정대로 지켜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군부다. 군은 시민들이 다카시내 중심가에 있는 집권 자티야당사를 습격하는등 과격한 시위를 벌였으나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야당 지도자들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정부상태로 확대될 경우 군의 개입가능성이 있다며 국민들에게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20여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는 야당에게도 있다. 최대 야당인 BNP와 AL은 에르샤드정권 퇴진을 위해 공동투쟁을 벌였지만 이들은 뿌리깊은 반목으로 언제라도 분열될 소지를 안고 있다.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심각한 경제난과 지난 71년 독립 이래 한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도 없이 9차례의 암살과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정치풍토는 앞으로의 정국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최대 야당인 아와미연맹을 이끄는 하시나여사는 『우리는 마지막 게임이 끝날때까지 정국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정치게임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피플스 파워의 신화를 창조했던 파키스탄의 부토는 실각했고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여전히 심각한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화에의 노정은 그만큼 험난한 것이다.
  • 아르헨에 쿠데타/반군,1개 연대 장악… 정부군과 교전

    ◎메넴 대통령 비상사태 선포 【부에노스아이레스 AP 로이터 연합】 아르헨티나의 민족주의 장교들이 3일 새벽 반란을 일으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에 위치한 군사령부와 1개 보병연대를 장악했으며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즉각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훔베르토 톨레도 대통령대변인이 밝혔다. 아르헨티나 라디오방송들은 반란군이 장악한 수도 동쪽 팔레르모의 보병연대 정문에서 이를 탈환하려는 정부군과의 교전이 발생했다고 보도하고 군사령부 주변에서는 구급차들이 부상한 병사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반란은 남미 순방길에 오른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방문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것이다. 톨레도 대변인은 이번 반란이 지난 88년 12월 쿠데타를 기도하다 투옥된 모하메드 알리 세이넬딘 대령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메넴 대통령이 50여 명의 장교들에 의해 장악된 군사령부에서 두 구역 떨어진 정부청사에 있다고 말했다.
  • “동아시아,무역경쟁시대로/냉전이후 새 질서 전망/WP지

    ◎소 영향력 줄고 중·일이 대체세력 부상/북은 핵개발과 미군 철수연계 말아야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를 보는 미국과 소련의 시각이 현저하게 접근해가고 있으며 소련당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는 한편 북한의 핵개발계획을 주한미군 주둔과 연계시키지 않고 중지할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6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냉전시대후의 동아시아 질서재편을 조망하는 장문의 기사에서 냉전시대가 끝남에 따라 동아시아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연대가 변모하고 있으며 소련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가운데 중국의 지배와 일본의 팽창을 두려워해온 아시아 각국지도자들은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역할을 중국 및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인도네시아·싱가포르·중국·베트남과 북한에서 노령의 지도자세대가 무대를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국가이익과 안보를 목표로 경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의 정치적 관계의 전환은 앞으로 몇년동안 계속되거나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이같은 정치적 변화의 예로 한국정부의 소련수교 및 중국과의 무역사무소 개설,중국의 인도네시아 및 싱가포르와의 외교관계 설립,그리고 베트남의 대미,대일 관계개선 제스처를 들면서 이같은 변화는 경제적 당면과제가 이념을 대신하고 안보문제가 군사적인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관계에서 파악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자고리아교수(헌터대)는 미국의 대 아시아 교역량이 지난해 3천억달러로 유럽에 비해 50%나 더 많은 사실에 언급,『우리는 태평양지역에서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경제적 영향력을 아시아의 영토분쟁이나 냉전의 잔재를 해결하는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이 신문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미국·소련·일본·중국 관리들이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이 지역에서 당장은 안보위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하고 지난달 리처드 솔로몬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핵확산이 동아시아 제1의 안정위협』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켰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이홍구 청와대 특별보좌관이 최근 워싱턴에서 『그들(북한)은 시간을 벌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다리겠다,천천히 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연설하고 이어 『우리는 통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정치적 해결이 자연스럽게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북한 지도자들이 예전보다 합리화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중국은 지난해 천안문사태 이후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소련 베트남 일본 대만 등 이지역 국가들과의 관계개선 및 무역확대를 추구하고 있고 소련 또한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아태경제협력위(APEC) 등 이 지역의 정치·경제적 기구에 가입하는데 놓여있는 장애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주장했다. 베트남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인도차이나반도를 석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베트남의 경제적 몰락과 함께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아시아 및 서방측 분석가들이 아시아지역에서 지속적인 정치·경제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낙관하면서 공산주의 경제가 동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체될 것이나 중국 베트남 북한 등의 공산지도자들이 민족주의자로서 나름대로의 대중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구국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몰락속도는 비교적 완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냉전종식과 함께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그라지는 대신 지역간 경쟁의식과 뿌리깊은 적대감이 부활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고 이 신문은 말하고 그 단적인 예로 지난달 발생한 조어대사건을 들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영토문제가 과거처럼 전략적 중요성을 갖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고리아교수의 견해도 소개했다. 내부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소련이나 중국에 비하면 미국에 있어서 아시아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가능성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문제는 아시아가 미국을 아시아권으로 인정해 주느냐가 아니라 미국이 자신을 아시아권으로 인정하느냐에 달렸다고 이 신문은 주장했다.
  • 외언내언

    요즘 모스크바에서 전해지는 뉴스는 고르비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다 못해 측은한 생각마저 들게한다. 찌들어 버린 나라살림을 일으켜 국민을 배불리 먹이려는 경제개혁 노력은 국내의 어려운 여건으로 초장부터 삐걱거리고 분리주의다,민족주의다 해서 연방에서 뛰쳐 나오려는 공화국 문제는 정치적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려 마치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다. ◆여기에서 헤어나기 위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시대적이고 쓸모없는 조직을 제거하고 새 연방조직 개편으로 일대 쇄신을 기하겠다고 나섰으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최대 정적인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현 위기관리를 위한 연정을 제의,연방과 공화국간의 권력분담을 요구하고 있고 그루지야·아르메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은 새 연방 조약을 거부,고르비를 벼랑으로 몰아 세우는 느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식량 연료 의약품 신발류 등의 부족. 본격적인 겨울시즌이 여러 도시에서 생필품의 심각한 부족현상이라는 차가운 바람을 몰고 온다. 외국에서 원조를 받지 않으면 시민들이 이에 항의,거리로 뛰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다. 국민의 62%가 특히 식량난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은 소련의 식량난이 심각해 질 경우 비상식량과 의료품을 원조하는 계획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 옐친은 이제 자존심을 버리고 서방 선진국에 식량협조를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 이에 고르비는 전국에 걸친 「수준격차」로 공포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나 소련이 춥고 배고픈 겨울을 맞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한낱 악성루머라고 대국민 설득. 최근 소련을 다녀온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곳이 「못사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이구동성. ◆미국의 한 유력지는 소련의 생필품을 돕는데 서방세계가 동참할 것을 호소할 정도. 마침 노태우 대통령이 그곳에 간다니 소련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살펴 우리가 도울 일은 돕고 협력받을 일은 받는 방안을 한보따리 싸가지고 왔으면 한다. 모처럼 열린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꽃피우기 위해서라도.
  • 소 4개공,연방조약 체결 거부

    ◎그루지야ㆍ에스토니아ㆍ아르메니아ㆍ라트비아/탈소 독립 공식 천명 【모스크바 AFP 연합】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 에스토니아 및 라트비아 등 거센 민족주의운동이 일고 있는 소련의 4개 공화국은 17일 새로운 연방조약 체결을 거부함으로써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탈퇴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카키 아사티아니 그루지야공화국 최고회의 부의장은 이날 연방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연방최고회의 긴급회의에서 『소련 영토내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은 그들의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전제,『그루지야는 동맹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연방 최고회의에 「옵서버」로 참가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루지야는 다른 공화국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므로 이같은 선언이 『대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아르메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공화국 대표들도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까지는 연방조약에 조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 연방제 위협 받을땐 군 동원”

    ◎“사회주의 수호차원서 대응”/고르비 군사고문/공화국 독립 움직임에 경고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소련군 원수는 14일 소련의 영토보전과 사회주의 체제가 반합헌세력에 의해 위협을 받을 경우 이를 수호하는데 소련군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소련군 참모총장을 지낸후 지금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군사고문으로 있는 아흐로메예프 원수는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지에 실린 글에서 『헌법이 유린당하고 일부 세력이 무력이나 또는 그밖의 다른 비합헌적 방법으로 이 나라를 분할하거나 이 나라의 사회체제를 바꾸려고 시도할 경우 우리 조국의 결속을 보장하고 헌법에 따른 사회체제를 보전하기 위해 연방최고회의 혹은 대통령의 결정으로 군을 동원해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연방최고회의 대의원이기도한 아흐로메예프는 『공산당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공산당을 소련사회의 제2선으로 전락시키려는 분리주의 운동자들과 그밖의 반사회주의세력의 시도가 지금 진행중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금년 여름에 파괴세력들이 협력하여 연방 국가구조와 공공체제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면서 『우리의 연방 사회주의국가,우리의 생활,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우리 헌법의 틀안에서 강력히 수호할때가 왔다』고 말했다. 아흐로메예프 원수는 선거에서 비공산당이 승리하면 군은 이를 인정할 것이지만 합헌적 방법을 통해 승리했을 경우에만 이를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이 정치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늘 행동해왔으며 합법적인 반공산당 단체를 탄압할 이유가 없으나 소련군은 사회주의를 구출하고 국토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련군은 몇몇 공화국의 과격한 정치인과 분리운동 단체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데 아흐로메예프 원수의 경고는 민족주의 단체들이 소련군을 점령군으로 간주하고 있는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과 그밖의 지역의 분리운동 단체들을 겨냥한 것이다.
  • “냉전의 상징” 베를린장벽 붕괴 한돌

    ◎동국권 민주화 확산에 도화선 역할/통일독일 탄생… 유럽엔 새질서 태동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져 내린지 9일로 꼭 1년을 맞는다. 장벽붕괴 당시만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들이 이 짧은 기간동안에 현실로 나타났다. 장벽이 무너진 작후만해도 20세기내에 성사되면 다행이라던 독일통일이 이미 실현돼 「동독」이란 국가가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동구권국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공산정권을 몰락시키고 민주화가도를 달리고 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동서화해를 넘어 동서협력이란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를 확인시켜준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동구권국가들이 실업ㆍ인플레 및 범죄의 급증과 민족주의의 고조 등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지난 40여년간 계속됐던 철저한 계획경제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언젠가 치러야 할 홍역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들의 앞날이 장미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율경쟁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 자신이 그동안 몸에 밴 타율성에서 탈피,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에 따라서는 장래가 잿빛만은 아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베를린에서는 9일 장벽을 넘다 사망한 1백91명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비와 기념동판이 제막된다. 그러나 통일 독일은 이미 통일작업을 끝낸 상황이어서 전국적인 기념행사는 계획돼있지 않다.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독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사진)이 열리던 그 벅찬 감격도 벌써 희미한 역사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 1만명 반정부 시위/옐친ㆍ수도시장 가담

    【모스크바 AFP 연합】 7일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린 볼셰비키혁명 73주년 기념식에서 약 1만명의 반정부 시위군중이 공식행사(행진) 열린 지 두 시간 뒤에 30분 동안 「러시아인민의 대량학살 개시」에 반대하는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날 반대 시위의 선봉에는 죄수복을 입은 노인이 섰으며 따르는 군중들은 민족주의 깃발과 『붉은광장에서 레닌을 추방하라』 『소련공산당은 물러가라』 『오늘은 애도의 날』 『KGB는 물러가라』 『차르없이 73년을 살아온 우리는 이제 공산당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과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 시장도 이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다.
  • 스포츠강국 “사양길”/소련(세계의 사회면)

    ◎국가통제서 벗어나자 국민들 무관심/생필품 구하기에 급급… 경기관람 뒷전 한때 국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소련의 스포츠가 국가의 오랜통제에서 벗어난후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크렘린은 사회주의 이념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로 스포츠를 이용했었으나 지난 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추진한 이후 이러한 현상은 사라졌다. 지금은 소련사회가 급격한 정치변혁과 심각한 경제난으로 크게 동요되고 있어 소련 스포츠의 전도가 매우 흐린 상태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인 아이스하키와 축구의 굵직한 경기도 예전처럼 많은 관중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많은 특혜와 영예를 누리며 국가로부터 총애를 받던 스타 선수들도 이제는 필요한 경화를 벌기 위해 서방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소련의 스포츠맨들과 관계자들은 소련이 체조의 올가코르부트와 축구의 레프야신,장대높이뛰기의 세르게이 부브카와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다시 배출할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있다. 한때 막강했던 국가스포츠위원회(고스콤스포르트)의 제1부위원장을 지낸 레오니트드라체프스키는 한 인터뷰에서 『소련이 스포츠 강국이던 시대는 이제 지났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소련의 스포츠는 각 공화국들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민족주의에 의해 더욱더 타격을 받고 있다. 정치적 분열로 소련을 위협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긴장이 축구와 농구장에도 미쳐 리투아니아와 그루지야의 팀들이 전국 선수권대회에 불참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소련의 스포츠를 소생시키는데 있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무관심인 듯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텔레비전의 침입에 돌리고 있으며 또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 수가 얼마 안되지만 비디오 레코더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와 또 디스코테크에 대한 유혹에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문제에 접근한 해석은 구하기 힘든 생활필수품을 찾아 매일매일 숨가쁘게 뛰어 다녀야 하는 고달픈 일상생활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일 듯하다. 『시간이 남으면 먹을 것,마실 것,입을 것을 찾아 뛰어다녀야 하는 판에 운동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갈 마음이 언제 나겠어요』 그 좋아하던 축구경기를 오래전에 포기한 한 시민의 푸념이다.
  • 몰다비아공 민족세력/유엔군 대체파견 요구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몰다비아공화국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1일 중앙정부가 분쟁지역에 보안군을 파견한데 항의하면서 이들 대신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할 것을 요구했다. 몰다비아인민전선은 이날 공화국 당국에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탈소 독립선언과 공화국내에 배치된 모든 소련군의 철수요구 및 국가보안위원회(KGB) 기구들의 활동 중지』를 요구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또 최고회의에 대해 『공화국 지도부가 정한 기간동안 몰다비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주도록 유엔에 요청』할 것도 촉구했다.
  • 몰다비아공 민족세력/소군 철수 촉구

    【모스크바 AFP 연합】 3천명 이상의 몰다비아공화국 민족주의자들이 30일 밤 소련ㆍ루마니아 국경에 있는 2개 초소를 점령,소련 내무부 소속 병력이 몰다비아 남부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국경 수비대원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 위기의 고르비 12가지 과제/불지가 분석한 「흔들리는 소련」

    ◎민족분규 확산ㆍ군부 동요… 두뇌 유출도 늘어/빈부격차 심화속 범죄 급증… 사회불안 가중 「고르바초프는 과연 제2의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인가」. 최근 유럽에는 소련에 대한 비관론이 점증하고 있는 가운데 고르바초프가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지원하려는 EC등 서방측조차 소련내부의 구조적 취약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구체적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허다한 문제에 직면한 고르바초프의 숙제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일요지 「디망시 주르날」이 그의 서구방문에 즈음해 정리한 「12과제」는 다음과 같다. ▲경제ㆍ사회적 불평등=기업의 자유,외환도입 등 시장경제화정책과 고질적인 물자부족 등이 어울려 소련내에 새로운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웬만한 가게의 경우 루블화와 외화사용 고객을 구분해 「차별대우」가 행해지고 있으며 신흥 부유층과 다수 빈곤층간의 간격이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시장경제화의 혜택을 입은 신흥부유층은 세금 한푼 물지않고 축재하는 반면 시장경제화의 여파로 오히려 3천여만명의 빈곤층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족주의=1백10개 민족으로 구성된 소련은 현재 인종위기의 「폭발」상태에 있다. 이미 선포된 각 공화국의 독립선언외에 공화국 내부에서도 각 인종 지역간에 자결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레닌그라드 부근 치에르톨로보 지역의 경우 2만3천여 주민이 인접 주민과의 마찰을 이유로 독립을 선포하고 국가와 국기를 만들었을 정도이다. ▲경제질서 혼란=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소련내 공장의 30%가 가동중단상태에 있거나 가동된다 해도 별 쓸모가 없는 물자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경제화 추진에 따라 우선 수백만명에 달하는 공장ㆍ기업간부들이 새 교육을 받아야할 형편인데 이들 대부분은 현재 생산품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군=동구로부터 복귀하는 군인들의 처우문제,91년중 현 병력의 4분의 1을 감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군인들의 장래불안이 대단하다. 일부 귀향병력은 숙소조차 없어 애를 먹고 있다. 군의 감축대상은 사병 뿐만 아니라 장성을 포함한 장교들에까지 미친다. 최근 나돈 쿠데타설은 군의 이같은 장래불안과도 관계가 있다. ▲당=아직 공산당이 제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소련인들은 관심이 없다. 매달 20∼30만명의 당원이 줄고 있는 공산당은 각 공화국의 자립선언으로 존재기반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소련언론들도 고르바초프 뒤에 「대통령」칭호만 붙이지 「당서기장」 용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또 정치국회의가 열렸는지도 전혀 일반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미묘하기는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당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재기불능의 상태에 처한 공산당 서기장직을 포기해야할 것이다. ▲야당=모순적이기는 하지만 고르바초프로서는 하나 또는 몇개의 지속적인 야당이 결성되는게 바람직하다. 강력하고 구조가 건전하며 또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야당이 필요하다. 최근 민주러시아운동이란 단체가 결성됐으나 그 구조나 동기면에서 이같은 건전 야당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환경오염=소련의오염은 이미 위험수준을 넘어서 있다. 우랄산맥 공업지대를 비롯한 주요 산업지대에서 매년 수천명이 오염으로 사망하고 또 기형아 출산을 비롯한 허다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공업지대 뿐아니라 모스크바ㆍ레닌그라드 등 대도시의 「대기」도 이미 국제관련기구가 책정한 위험수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범죄=모스크바ㆍ키에프ㆍ레닌그라드 등지에서는 호신용 소형폭탄이 1백50루블의 거금에 팔리고 있다. 지난 1년간 소련의 청소년 범죄는 40%나 증가했으며 각종 강도ㆍ약탈ㆍ절도행위도 증가일로에 있다. 이와 함께 마약ㆍ공갈ㆍ매춘과 관련된 조직범죄도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이들 범죄망이 「무장」화하고 있어 주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동기부여=소련인들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회의와 소심ㆍ불안,그리고 쿠데타와 내란 등을 우려하는 소련인들은 각자 개인의 생존밖에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소련인들은 행정기관을 기피하며 고르바초프가 수만명의 전문가와 함께 경제를 재건한다면 이는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두뇌유출=사업상 또는 학업상 해외에 나간 소련인들은 대부분 현지정착을 희망,시도한다. 잠재적인 경제적 망명가능자는 1천3백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교회=교회문 앞에서는 소련인들의 「비관」에 편승,내년 봄에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그리스도가 재현할 것이라는 노스트 라다무스의 예언서가 팔리고 있다. 교회에서는 고해와 복종에 의해 소련을 구원하고 또 옛날의 참종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설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후계문제=아직 현실적으로 거론되고 있지는 않지만 만약 국내정책 실패로 권좌에서 고르바초프가 물러날 경우 마땅한 후임자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르바초프의 경우 아직 「젊고」 건강이 양호하기 때문에 지도층은 물론 일반인들도 후계자를 거론하는 것은 찾아보기 드물다.
  • 몰다비아공에 소,군 배치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터키계 소수민족에 의해 소련 몰다비아공화국으로부터 분리된 독립 의회를 구성키 위한 선거가 추진되고 있는 소련 몰다비아공화국 남부의 콤라트지방에 27일 소련군이 배치됐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소련 TV방송은 터키계 소수민족인 가가우즈족들이 몰다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이 지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고 거리를 순찰하는 등 아직도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가가우즈족과 몰다비아인 대표들은 양측 접경 도시인 치미실라에서 회담을 가졌으나 평화적인 해결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실정이다.
  • 북한의 「대남제스처」는 신데탕트에 기인/김경원 전주미대사 특별강연

    ◎냉전종식따라 외교ㆍ경제고립 탈피 겨냥/미ㆍ일 등과 관계개선에 「지렛대 활용」전략 김경원 전 주미 대사는 23일 서울 YMCA 강당에서 「냉전종식과 남북한 관계의 전망」이란 주제로 「자유지성 3백인회」초청강연을 가졌다. 강연내용을 요약한다. 최근 들어 남북한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원인은 불행히도 북한 내부의 근본적인 변화나 한국의 태도변화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냉전종식이라는 국제정세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북한의 근본변화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태도변화로 인해 북한의 변화가 수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냉전종식은 고르바초프 개인의 역할이나 미소협상에 의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근본원인은 한마디로 소련의 경제 및 체제위기인 것이다. 7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80년대들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소련의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군비경쟁 지속능력에 한계를 드러냈고 군사비 축소가 불가피해진 만큼 군비축소를일방적으로 강행하기 보다는 서방측과 협조 아래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의 역할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상황은 고르바초프가 아니더라도 다른 고르바초프를 만들어내기라도 했을 것이다. 냉전종식은 전후 줄곧 소련의 위협을 전제로 군사ㆍ외교정책을 추진해왔던 미국에도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줬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는 확인했으나 경제적우위는 점차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군사적 우위와 경제적 힘간의 역방향적 모순은 앞으로 군사비용 분담요구와 그에 따른 정치적 결정권 분할 등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반도와 관련한 주변강대국들의 입장을 보면 소련은 경제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내문제에 치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은 다소 제한될 것이다. 중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경제 우선정책을 취하고 있다. 일본도 북한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등 한반도문제에 적극개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아직까지 대 북한 교섭의 선행조건을 제시하는 등 원칙을 지키는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타 강대국의 입장변화 속에서 미국만이 큰 변화없이 과거 체제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같은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북한은 외교적고립과 경제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모종의 정책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된 독일통일의 충격으로 개방에 대한 공포가 매우 크고 대외정책변화를 추구할 경우 국내체제 안정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은 지극히 「통제된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하는 남방정책을 추구하면서 대남 정책은 남방정책 수행에 필요한 남북한 관계개선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수단적목표로 이용하며 북한인민의 사상을 무장시키는 동시에 한국사회 내부에 민족주의적 공감대 확산을 노리는 통일지상주의 등의 대응방향이 예상된다. 그러나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변화의 자체논리가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변화의 통제가 얼마나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항간에는 소련이나 중국이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많은데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소련의 입장에서 북한카드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이끌어 내는데 매우 편리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냉전종식으로 획기적인 북방외교 기회를 제공받았고 때맞춰 민주화과정을 걷고 있다. 대 북한정책 수행에 있어서 가치관의 문제인 기본목표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제도적 통일을 최고목표로 삼는 절대적 통일정책이냐 아니면 인간의 자유가 민족의 단일국가형성을 위해 희생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남북한 사회가 민주화될 때까지 자유영역을 확대시키는 민주적통일 정책이냐 하는 문제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에 자유(Freiheitvor Einheit)라는 개념이 확립돼 있었으며 서독이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민주적가치를 놓고 동독과 타협이나 양보를 한 적은 없다. 우리는 이러한 기본목표를 설정한 뒤에 평화유지 및 교류확대 등의 정책을 취해야 할 것이다. (김 전대사는 강연이 끝난 뒤 한국의 유엔 단독가입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우리가 유엔에 가입할 충분한 자격이 있고 또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정부가 알아서 잘 할 것이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서 직접적인 대답은 피하겠다』고 전제한 뒤 『개인적으로는 유엔에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이 돌아온다거나 가입하지 않는다고 손해를 입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5)

    ◎전문가 대담/“행동철학이 제시된 새생활운동 펴라”/“방법론 없는 즉흥 발상”호응 못얻어/도시민의 공동체의식 형성이 과제/고립된 삶이 「범죄온상」구실… 합의정신이 바탕된 질서모델 계발을 범죄와 무질서,과소비 등을 추방하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이 「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을 선언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새질서 새생활운동」이 국민운동으로 확산돼 질서있고 건전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운동의 방향과 방법 등을 두 교수의 대담으로 들어본다. ○통제가 무너진 사회 ▲김대환교수=이번 노태우 대통령이 선포한 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은 새마을운동과 비견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72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만해도 일부의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잘살아보자는 국민적 합의 아래 실천적 운동으로 발전해 큰 반향을 얻었지만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그때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운동이 제기되었는지의 문제부터 풀어가기로 합시다. ▲송복교수=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 농촌인구와도시인구는 반반이었지만 90년대에는 2,3차산업 인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구조에 대한 새로운 진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사회는 지난 10년동안 해마다 9백만명씩 모두 9천만명이 주거를 옮겨 인구의 9.7%만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등 국민의 대부분이 타향살이를 하는 부동사회(Floating society)가 됐습니다.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평균 3년에도 못미치다 보니 이웃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 사회통제 메커니즘이 와해돼 공중에 떠다니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김교수=그동안 정치ㆍ사회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경제적인 축적이 이루어져 개인의 생활이 풍요해 졌으나 양적 팽창에 상응하는 질적 변화가 이어지지 못한데 따른 정신적 빈곤이 사회악의 증가와 사회질서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실성과 정직성이라는 농업사회의 생활방식이 공업사회로 바뀌면서 붕괴,내부적인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송교수=직업구조의 개편속도도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지난 74년에는 1천5백개의 직업이 있었으나 86년에는 1만2천6백개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한 직업에 5년이하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44%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10년 이상 종사하는 사람은 25% 정도로 지역공동체 뿐만 아니라 직업공동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김교수=경제구조의 왜곡도 심각합니다. 제조업의 기반위에 3차산업이 형성돼야 하는데 80년대말까지만 해도 제조업이 성행,직업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지금은 서비스업이 지나치게 팽창했습니다. ▲송교수=그렇습니다. 경제구조면으로 보면 87년을 정점으로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의 제조업 비율이 전성기에 45%,지금도 36∼37%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37%를 고비로 현재는 31∼32%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이 꽃을 피운 바탕위에 서비스업이 발전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하기 쉽고 돈을 벌기가 쉽기 때문에 서비스업이 번창하는 경제구조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고소득 납세자의 3위에서 5위까지가 부동산업자이고 1백위안에 든부동산업자의 수가 지난해 보다 3배나 늘어났습니다. ○경제구조 왜곡도 심화 ▲김교수=미국사회의 경우 제조업체에서 고학력자들이 일하려 들지 않고 컴퓨터ㆍ사무관리 등 고학력인력이 필요한 직종은 수요에 한계가 있어 원하는 일터는 없고 원하지 않는 일터는 많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소득 5천달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의식의 세계는 일본을 앞질러야 한다는 허황된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교수=90년대 우리의 사회인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로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0년대에는 제조업에 고용의 기회조차 없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기피하는 실정입니다. 15∼24세의 젊은이가 제조업에 취업한 숫자는 지난 87년 37만명이었던 것이 88년에는 34만명으로 지난해에는 20만명대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국민소득 5천달러는 세계에서 34∼35위의 수준이나 사고와 요구는 2만달러 이상입니다. 의시기의 허황됨이 큰 문제입니다. 이제 이 운동의 성공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김교수=현재의 상황과 조건,운동의 주체,방법 등을 놓고 볼 때 일단 상당히 전개가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있으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해야만 합니다. 이번의 경우 어찌보면 즉흥주의와 편의주의의 인상이 짙습니다. 정부안에서 문제가 일단 제기되면 진지하게 토론하고 검토해 정보를 모아 운동의 성격과 방향이 도출되어야 하나 이번의 경우 총론만 나오고 각론이 나오지 않은 성급함이 보이고 있습니다. ▲송교수=국민들도 운동전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 「전쟁선언」이라는 표현부터 조금은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과거의 행태로 볼 때 정부 각 부처 행정관료들의 특성상 성과위주ㆍ전시위주로 경쟁 비슷하게 해나가는 가운데 국민들은 『어디 해볼테면 해봐라』하는 방관적 심정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이념이 필요합니다. 새마을운동의 저변에는 토착적인 농민들의 민족주의 이념이라는 철학이 밑바닥에 흘렀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운동을 전개하려 하면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설득력도 호소력도 잃게 됩니다. ○자발적인 지도자 필요 ▲송교수=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90년대의 새질서운동을 비교해 보면 운동의 주체가 되는 사람도 크게 변했지만 운동을 이끄는 사람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새마을운동의 이론을 제공하고새마을운동의 시작과 전개,체계화에 깊이 관계하신 김교수께서 지금과 비교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교수=3공화국시절 새마을운동은 시대적 요청이 있었기에 나 스스로가 일부 지식인의 빈축을 사가며 참여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학자나 지식인이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에서 운동의 시발에서부터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것은 지식인의 이론제공의 결과가 아닌 「운동의 리더」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김준씨 같은 농촌운동의 상징적 리더가 있어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뒷받침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또 자발적인 소단위의 리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새마을지도자들은 「지식인은 할 일이 못된다」「정부에 빌붙는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이었습니다. 결국 운동의 성패는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위에 자발적인 지도자의 유무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송교수=새질서운동의 이념으로 2가지를 내세우고 싶습니다. 첫째는 공동체를 재건해 도시의 이웃공동체와 직장이나 직업공동체를 확립해야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회는 국가의 힘으로 유지되고 가장 현명한 사회는 공동체의 건설로 저절로 유지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이 함께 살면서 심층적,직접적,전체적 인간관계,익명적이 아닌 거명적 인간관계를 형성해 공동체에 낯선사람,이방인이 없는 사회가 돼 서로가 서로를 의식치 못한 가운데 감시,견제하는 사회가 되면 도덕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방인들 끼리 모여 있는 사회가 범죄의 온상이 됩니다. 공동체가 재건되면 질서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김교수=그러나 우리사회는 지금 너무 많이 파괴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송교수=두번째 이념은 우리사회 특유의 질서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좋은 질서모델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을 준거로 해서 행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효를 바탕으로 한 가족주의 모델입니다. 효의 근본은 공경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자신을 수련했고 그 결과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곧 사회의 발전이 되고 주위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이 곧 사회통합을 이루어나갔던 것입니다. 공동체는 협동성과 정의에 기반을 두어 대립보다는 합의에 중점이 두어진 것입니다. 조선이 5백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밖에 합가치성에 기반을 둔 선비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엘리트의 모든 행위가 이 때문에 공익적이었습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관주도가 아닌 자발적인 구국운동이 있었습니다. ▲송교수=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가족주의가 족벌주의,이기주의,기득권주의로 모델이 거꾸로 부서져 버렸습니다. 또 공동체는 개인적인 정에 좌우되는 대립주의로 흘렀습니다. 선비주의는 목적달성에 수단방법을 안가리는,합가치성에서 합목적성으로 타락하는 등 역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교수=중종시대의 정치 사회적 내우외환과 선조때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광조와 율곡,퇴계 등에 의해 시작된 향약운동은 고종 말년까지 지속됐습니다. 이 운동은 향촌중심의 민간운동으로 북한이 천리마운동을 시작할 때 그 이념을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새마을 운동도 향약에 기초를 둔 이념이 있었습니다. ○국민운동으로 승화를 ▲송교수=새질서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이 복원되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사회에 두지 자기가정에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부모상이 깨지고 쩔쩔매는 약한 아버지와 과잉서비스 과보호의 어머니가 있을 뿐입니다. 현재 강력범죄의 50% 이상이 10대가 저지르고 있습니다. ▲김교수=요즈음을 개인주의시대라고 하지만 과거의 규범인 수신제가도 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자기 중심의 도덕ㆍ윤리였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회」가 아닌 「무정부사회」라고까지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의 전통을 복원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송교수=공동체건설을 위해서는 지금 24%에 이르는 지역간 이동성을 10% 선으로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동성이 줄어들면 마을마다 유수한 지식인들에 의해 우리마을의 질서는 우리가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교수=이번 운동은 정권적인 차원을 떠나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운동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부터 다시 점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원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노력이 10년ㆍ20년 이어질 때 조금씩 조금씩 지금보다 좋은,인간적인 사회로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의 목표를 오판해 정치적효과와 행정적업적을 겨냥하면 실패합니다. 국민전체가 참여하지 않는 부분적인 운동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으며 종합적ㆍ전체적인 운동으로 이어져 지도력이 발휘되면 국민들이 적극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둥근 공… 흐르는 핏줄/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한반도의 남북한은 지금 불꽃튀는 설전이나 탁상공론으로서 접촉하기보다 살이 부딪히고 핏줄이 통하는 물리적 접촉으로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듯하다. 평양에서 열렸고 곧 이어 서울에서 열릴 통일축구경기로서 그러하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분단 이후 최대의 남북접촉이라면 서울ㆍ평양간 통일축구는 민족분단 이후 최초 최대의 물리적 육체적 접촉이라 할 수 있다. 축구는 차고 배구는 때린다. 농구는 넣고 탁구는 치고 정구는 서비스한다. 모든 구기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상대와 더불어 말없이 대화하고 공하나에 마음을 실어 상호 교류한다. 그런데 지금 평양과 서울,서울과 평양간에는 불과 5백그램짜리 축구공 하나가 동포간에 끊어졌던 혈맥을 잇고 체온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공은 둥글다.모나지 않아 정지하지 않으며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구기게임이 갖는 묘미와 그 냉엄한 승부성을 얘기할 때 곧잘 그렇게들 표현한다. 구기중에도 특히 축구는 그 특유의 직절성과 의외성으로 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공이 흐르며 정지하지 않음은 직절성이고그것의 둥글ㅁ은 의외성이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한다. 축구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의 국기처럼 여겨져 왔다. 남북 젊은이 대표들의 통일축구 교환경기를 보면서 남북문제 접근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기와 같은 축구교환경기는 잘만 하면 양쪽의 동포들을 텔레비전 앞에 집단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 「통일독일」 이전 동독측이 서방이념이나 사회풍조(문화ㆍ유행)가 들어오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분야가 바로 텔레비전 방송이다. 당시 동독지역의 85%가 서독 텔레비전 방송 가청지역으로서 수백만 동독인들이 서독 제1TV의 분데스리가 축구경기를 시청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하오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독일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남북한 축구,아니 모든 경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의 입씨름으로는 되지 않을 일들이 젊은이들의 「육체적 접촉」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난 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로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도 그랬다. 그 이전 해외경기에서 맞닥뜨리면 민망스러울 정도로 표출됐던 상호 불신감과 적대감이 싱가포르에선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여름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때도 그랬다. 과거 남북한 스포츠선수들이 해외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시선과 대결의식,그리고 그보다 더한 불신감과 적개심은 사실 분단 그 자체의 비극보다 더 안타깝고 처절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천리마」라는 게 있다. 지난 85년 7월호에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선수와 싸워 2대1로 이겨 우승한 주성철이라는 소년선수의 얘기가 실렸다. 그런데 이 선수의 코치는 1회전과 3회전에서 이겼다면 2회전에서도 이겨 3대0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며 2대1의 스코어가 당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선수도 이를 수긍했다. 그들의 대남 불신감 내지 경쟁심의 깊이를 알려주는 얘기다.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때이다. 사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선수에게 우승소감을 물었다. 그 선수는 서슴없이 『수령님의 명을 받들어 남조선과 미제들의 숨통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했다.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남북한간 불신과 경쟁심은 이러했다. 그무렵 어느 사회통계에는 한국이 국제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상대가 북한(44%),일본(31%),소련(14%),미국(8%),중국(3%)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북한팀과 외국팀이 시합할 때 북한이 승리했으면 하는 희망은 51%였다. 통일은 쉽지 않다. 열망과 기대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과 폭력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화적방법 이외 달리 없는 것이다. 지난 3일 베를린시 중심가 의사당앞 광장에서 역사적인 통독이 선언되던 날 세계는 경이와 찬탄의 눈초리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통독제전의 맨 앞줄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동방정책(OST POLITIK)으로 통독의 기틀을 마련했던 전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였다. 브란트에게는 처음부터 패전 독일의 분단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분단된 독일의 부자연스러운 긴장상태는 인류평화를 위해 완화돼야 한다. 독일에 대항하여,또 독일을 제외하고 유럽은 건설될 수 없다』는게 그의 정치적 소신이었다. 그는 또 진보적 민족주의 신념의 평화주의자였다. 베를린 봉쇄 등 지역분쟁으로 삼엄한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53년 서베를린 시의회의장으로서 브란트는 연방의회에 출석하여 이렇게 연설했다. 『평화적 통일의 쟁취가 어떤 다른 외교적 업무나 계획에 우선해야 한다. 천팔백만 동독인들은 우리의 간섭이나 무관심에 상관없이 어떤 위험에서도 구출돼야 한다. 독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문제에 협상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독일 통일을 위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보다 선명한 목표설정을 통한 통일을 요구한다』 분단국 어느 한쪽의 정치지도자로서 이 이상의 통일절규는 달리 있을 수 없다. 브란트는 지금 행복한 노경에서 그 평화적 통일독일의 실체를 맞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솟구쳤고 서울에서 율동할 축구공 하나에 집중되는 7천만 동포들의 눈을 의식하며 우리는 지금 거세게 변하는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가 움직여야 할 차례인 것이다. 둥근 공이 흐르듯 민족도 둥글게 모이고 핏줄도 다시 이어져 흘러야 한다.
  • 「통일의 흥분」사라진 독일/박봉식 서울대교수ㆍ국제정치학(서울시론)

    ◎엄청난 통일경비ㆍ실업증가로 고심 작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모든 독일인들은 흥분의 절정에 있었던 것 같다. 금년 10월3일로 다시한번 통일국가가 된 독일은 많은 사람들,특히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간여한 나라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뒷마음에는 서로 다른 그림자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독일통일에 대해 외국인들의 태도는 차치하고 독일 사람들 자신­서독은 서독대로 합병당한 동독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심각한 새로운 현실에 어리둥절한 상태에 있다. 서독은 동독의 재건을 위해 향후 근 10년에 걸쳐 수천억달러의 돈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통일독일의 콜 수상은 서독 사람들에게 통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동독으로 부터 철수해야 할 37만명의 소련군을 위해 1백억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외에도 동독 사람들을 맞이하는 서독 사람들은 결코 즐거운 표정들이 아니다. 서독 기업인의 기준에서 본다면 동독 근로자들은 기능이나 노동의 질에서 수준미달로 보이고 있다. 한편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것을 빼앗긴 허탈한 심경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모든 틀이 바뀌어진다. 설혹 실업을 면하는 사람들도 서독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동독인 1천6백만명중에 4백만명이 조만간 실업자가 된다고 한다. 모든 학교의 교원들은 그들이 가르치던 과목이 없어지거나 재조정되는 데에 따르는 재훈련을 받아야 한다. 동독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서독에서는 공산당원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서독이 동독을 합병했기 때문에 동독의 모든 관청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동독 공무원은 채용되더라도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체로 기술직 이외에는 채용이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동독 외무부직원 2천명중 1천8백50명이 해고되었고 나머지 1백50명도 임시계약으로 복무하는 상태다. 65만명에 달하는 동독 공무원이 모두 해임되는 상태다. 이들은 새로운 직장을 위해 재교육을 받는다. 그들의 심경은 어떠할까 짐작이 간다. 나라를 서독에 넘긴 동독 수상은 통일로 인해 동독인의 생활에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통독 국회의원이 된 1백40여명의 시한부의원과 동독 수상을 위시해서 통독정부의 각료가 된 몇사람들은 갑자기 거액의 세비를 받아 새 천지를 만난 것 같을지 모르나 동독에 남은 백성들은 앞날이 캄캄할 지경이다. 특히 전쟁전에 동독지역에 토지를 두고 서독으로 피해온 사람들은 옛 재산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거로 부터 쫓겨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전 동독 수상 한스 모드로는 『우리는 서로를 알 시간이 더 필요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동서독간의 교류가 있어 온지 오래다. 그러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막상 통일을 하고보니 서로를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독에는 정신병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군대 경찰 학교 관청 심지어 교회까지 서독에 합병당하고 말았다. 동독의 법관들은 더욱 쓸모없는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얼마씩 1대 1로 바꿔주는 서독돈을 가지고 일용품을 구입하는 기쁨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벌써 잃어버린 동독 생활에 대한 노스탈자가 일고 있다. 12월에 있을 총선거에서 이들의 표의 방향이 어디로 갈까? 이들이 정치적으로 집단행동으로 흘러갈때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0월3일,독일통일의 날을 동 서독의 적지않은 민족주의자들은 경축하지 않았다. 특히 지금의 통일독일의 영토에서 제외된 옛 독일땅을 고향으로 하는 백여만명으로 구성된 단체의 사람들은 이번 통일로 일차대전후 독일영토의 4분의 1이 잘려 나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잃어버린 땅들이 8백년간 독일 사람들의 고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지금의 역사상황에서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독의 거의 전역에서 아파트 월세가 갑자기 10배로 늘어나는 생활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아우성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통일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유태인이다. 나치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50만명이었던 독일의 유태인은 지금 약 3만∼5만명이라 한다. 이들은 분단과 4대강국의 지배체제가 그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체제였다. 통일에 따라 4대강국의 간섭권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 대한 보장체제가 없어지는 것이 된다. 그들에게는 동독에서 군국주의적 생활과 외국인에 대해 증오로 길들여진 1천6백만 동독인 모두가 두려운 존재이다. 이러한 국내외 복합적인 상황은 물론 통일에서 오는 독일의 새로운 활력으로 용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폴크스바겐 자동차회사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으며 마르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로 동독이 서독의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안정화되어야 하겠지만 그동안 동서독의 모든 사람들은 통일의 흥분을 가라앉치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요구하는 현실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통일이 아직도 요원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동 서독은 그동안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막상 통일을 실현한 현재 그들은 너무도 서로 다른데 대해 당황하고 있다. 그래도 서독은 경제력으로 소련을 꼼짝못하게 묶어 놓고 동독을 합병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 2등 국민임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당대가 아니면 다음세대에는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내면을 보면서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 아득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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