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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경제마찰땐 정치적 긴장 초래”

    ◎제3차 한·일포럼 주요 논의내용/“왜곡된 민족주의 대두 공동대처/「월드컵 축구」 공동개최 검토할만” 제3차 한·일포럼은 ▲한·일 양국 국내정치·경제·사회 ▲아·태지역에서의 양국 안보 ▲아·태지역에서의 양국 경제 ▲범지구적 문제에 관한 협력 ▲학술·문화교류 등 모두 5개 섹션으로 분과를 나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논의는 비공개가 대원칙이다.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발언은 무기명으로(한국·일본 등 국명만 표기) 빠짐없이 기록돼 추후 회의록으로 작성된다.특히 양측 회장은 토론된 안건 가운데 참석자들이 공감한 내용을 정부에 정책건의 형식으로 전달하게 된다. 각 섹션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양국의 정치·경제·사회◁ 한·일 양국은 똑 같이 커다란 정치적 변혁기를 맞고 있다.한국에는 96년 총선거와 97년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가속화 되고 있다.일본도 중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에 따라 야당이 통합되고,혁신세력이 뭉치는 등 신당 창당 움직임이 활발하다.이런 상황은 불가피하게 양국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이 과정에서 주의할 것은 양국민이 정치인들에 의해 오도된 민족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일본의 과거 반성을 외면하는 일부세력은 왜곡된 민족주의를 표출하는 것이다.양 국민간·사회간 이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역시 민간의 교류가 늘어야 한다.물론 지난 30년간 민간 교류는 양적으로 크게 늘었다.그러나 이제 이를 질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이런 취지에서 청소년간의 교류를 위한 특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지난 30년간 한·일 관계 증진을 반영한 한·일 우호협력조약의 체결도 검토할만 하다. ▷안보관계◁ 냉전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된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일이다.북한이 동북아 질서에 편입하도록 일본을 비롯한 관계국은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일간의 협조관계는 평가할만 하다.한·일 양국은 또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최근 긴장상태에 있는중국과 대만·미국과 중국 관계가 조속히 정상화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관계◁ 무역을 중심으로 양국 경제관계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그러나 수평적인 산업협력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특히 최근들어 한국의 대 일본 무역적자가 확산되고 있다.불균형적인 경제관계는 정치적 장애로 발전할 위험이 크다. ▷범지구적 문제 협력◁ 한국은 국제적인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전환한지 오래다.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국가다.한·일 양국은 이미 개발원조나 마약퇴치·환경분야에서는 상당한 협력 실적을 쌓고 있다.이제 인구·식량문제·테러·에너지 등에 대해서도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학술·문화교류◁ 편견과 오해가 남아있는 한·일관계에서 굴절된 민족주의는 상당한 긴장요인을 제공한다.따라서 객관적인 역사교육을 통해 전후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한·일간 역사연구위원회를 설치,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작업을 해볼만 하다.또 양국이 유치경쟁을 벌이는 2002년 월드컵을 동시에 개최하는 것도 검토할만 하다.
  • 한국민족주의 연구/김성동 지음(화제의 책)

    ◎서구민족주의이론 한국 상황에 맞게 응용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 옛 유고·르완다 등 세계 곳곳에서 민족분쟁이 줄지어 발생함에 따라 민족주의는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이 책은 이같은 세계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한국민족주의의 성격과 형태·역할 등을 두루 분석했다. 지은이는 먼저 문헌과 설문조사를 통해 민족주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을 읽어냈다.그 결과 한국인들은 민족주의를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인식하기 보다는,한민족의 실존근거로 여기는 성향이 다소 강하다고 보았다.곧 민족주의를 도구로서가 아니라,이데올로기로서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국제관계에서 한국민족주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검토하고,통일된 민족국가를 위해 민족주의가 지향할 바를 제시했다.지은이는 세계화와 통일을 시대적 과업으로 안고 있는 현실에서 세계화와 민족주의를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이해함으로써 민족주의를 발전과 통합의 이념적 지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서구의 민족주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우리에게 알맞는 분석모형을 개발한 점,통일된 민족국가를 아직 완성하지 못한 시대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점들이 돋보인다. 오름 1만원.
  • 한·일 포럼 개회연설 요지

    ◎배재식 한국측 회장/우호조약 체결… 새관계 모색할때 한·일 양국은 정치적 변혁이 계속되고 있다.한국은 지자제 실시에 이어 각종 선거가 예정돼 있고 일본에는 정계재편이 진행중이다.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민족주의의 대두다.편견과 오해가 남아있는 한·일관계에 있어 굴절된 민족주의는 늘 긴장의 요인을 제공한다. 종전 50년이 지났지만 일본에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따라서 민족주의의 에너지가 왜곡된 방향으로 발산될 위험이 있으므로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두나라는 지난 30년간 인적,물적으로 비약적인 신장을 했다.그러나 앞으로는 양적인 팽창을 질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이를 위해 새로운 한·일관계의 틀을 제공할 「한·일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공동선」을 창출하는 동반자적 관계임을 알리고 「협조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이를 위해 2002년 월드컵 공동 걔최 방안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북한은 멀지 않은 장래에 현행 폐쇄·고립 체제에서 벗어나 일정한 변화를 꾀할 것이다.이같은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동북아 질서의 일원으로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동시에 도쿄나 워싱턴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도 일깨워 줘야 한다. 향후 동북아의 탈냉전을 위해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제제로 전환하고 최근 긴장상태에 있는 중·미관계도 하루빨리 정상화되도록 한·일 두나라가 힘을 모아야 한다.또 아태지역내에 경제적인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정치적·군사적 불확실성을 없애려면 열린 지역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발족한 아세안지역포럼(ARF)이 역내 안보대화체로 자리잡도록 긴밀히 협조하고 한국이 제안한 동북아지역 안보대화(NEASED)도 조기 실현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환경등 다양한 문제에 공동대처해야 한다. ◎오와다 히사시 일측 회장/과거 반성… 아태 큰틀서 협력을 올해는 2차대전 종전 50주년이면서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이러한 시점은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고,그 교훈을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1945년 이후 한·일관계는 그 직전 36년간의 역사가 결정지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36년간의 발자취를 우리들이 스스로의 책임아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과거사를 명심하는 것은 바로 과거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과거에만 얽매여서도 안될 것이다.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부의 유산을 극복하고,새차원의 관계를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지난 30년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교훈은 바로 이점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는 세번째 맞는 양국간 포럼의 목적과 성격,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먼저 포럼의 목적은 냉전후 형성된 새로운 국제환경 안에서 양국이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양국 관계가 「제로 섬」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양국관계를 경쟁적인 관계로 보면 「마이너스 섬」관계이지만,반대로 양국국민이 경쟁적인 태도를 극복하면 「플러스 섬」의 관계가 될 것으로 믿는다.이제 양국관계는 아시아 태평양이라는,국제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큰 지역의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또 포럼의 성격은 한·일 양국민,그리고 사회의 폭을 넓히고 이해를 심화하는 것이 돼야 한다.시한을 두고 보고서를 내는 것이 아니고,구체적인 사고의 교환을 그때그때 정리해나가는 것이 우리 포럼의 성격이 돼야 한다. 한·일포럼의 바람직한 모습을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참석자 각자가 양국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그리고 비판은 건설적인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양국은 관계를 넓혀가면서,한편으로는 심화해야 한다.확장과 심화라는 모순된 일을 조화해나가는 것이 바로 이번 포럼의 과제다.
  • 「해리 우 석방」의 외교적 활용(해외사설)

    북경정부의 해리 우 석방은 그 자체로 최근 몇달동안의 양국간 문제들을 지워버릴 수 없다.그러나 이는 다음달 힐러리여사의 북경 유엔여성대회 참석에 대한 의회내 저항을 어느정도 가라앉힐 것이다.힐러리여사의 이 중요한 국제모임에의 참석문제는 현재의 미·중 관계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해리 우의 석방은 클린턴 대통령과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의 회담에 있어 주요 장애물을 제거했다는 점이다.워싱턴정부는 이 외교적 첫수를 활용해야 한다.정부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 구실로 강주석을 워싱턴에 국빈방문 초청하기 보다는 그의 10월 유엔방문에 때맞춰 뉴욕실무회담의 성사에 노력해야 한다.이 회담은 대만에 대한 미사일위협에서부터 인권문제에까지 허심탄회하고 건설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불행히도 중국은 최근 경제·정치적 손실을 경험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이웃국가들에 호전적 행위를 하고,외교약속을 위반하며,국제여론을 무시하는가 하면 자국민에 대한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그러한 자만적 태도는해리 우 사건를 이용한데서 잘 나타나 있다.가짜비자를 갖고 국경을 넘었다고 체포한 뒤에는 중요범죄혐의로 중부 중국으로 이동시켰으며 미 영사관 직원들을 냉담하게 대했고 심문모습과 자백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했다.동시에 중국은 남지나해와 대만해안에서 도발적 군사훈련을 강행했다.중국의 다양한 정치적 파벌이 등소평이후의 권력승계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강주석도 민족주의자들과 대결상태를 촉구하는 군부 강경세력으로부터의 압력을 견디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이상의 미·중 관계 손상을 막기 위해 클린턴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지금부터 워싱턴정부는 북경정부의 국제적 행동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클린턴대통령이 이 세계강국을 훈계하는 것이 역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은 심각한 분쟁을 야기시키는 다른 행동을 할 유혹에 빠질지 모른다.
  • 유럽국가/“약탈 미술품 돌려달라” 한 목소리

    ◎구텐베르크 성화 등 60만점… 5조원 상당/「붉은 군대」 약탈,러시아선 “전리품” 주장 유럽대륙에서 독일군이 물러나고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50년.당시 약탈한 예술품을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예술품의 반환요구대상은 독일이 아닌 러시아다.붉은 군대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일군으로부터 빼앗은 미술품들을 모스크바 등으로 가져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들은 종전 직후 원품 그대로 봉인된 채 기차로 고리키에 반입됐다가 지난 58년 모스크바 등으로 옮겼다.그 가운데 일부는 수송을 맡은 군인들이 빼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고스란히 운송됐다. 붉은 군대가 가져간 작품은 60만점에 이르는 막대한 양으로 추정되고 있다.독일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20만점.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비롯해 명작들이 포함돼 있으며 시가로는 5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품은 유화 등 그림이 7백점,데생화 3천점이다.헝가리와 벨기에 등의 작품에다 프랑스 화가의 작품들도 상당수포함돼 있다. 프랑스의 미술품은 그림이 6백69점이고 3천점의 데생화에다 7백점의 청동상 등이다.이 가운데는 드가의 「춤추는 여인」,고갱의 「타페라 마하나」,드가의 「두사람과 집안」,반 고흐의 「흰집」,르누아르의 「빗질하는 여인」,마티스의 「무희」 등 명작도 섞여 있다. 이들 프랑스 작품들은 「오소비판(OS)」이라는 별도의 목록으로 보관돼 있다.구소련이 이렇게 많은 서구와 동구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스크바대학의 미술사 교수인 알렉세이 라스토구에프씨가 지난 91년 러시아의 일간신문 이즈베스티야지에 처음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또 최근에는 프랑스의 주간지 렉스프레스지가 자고르스키의 맥주의 탑에 유화와 청동상 등 1만6천5백점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들 미술품들은 스탈린이 대외비를 명령한 이후 외부에 공개가 절대 금지돼 왔다.단지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의장의 허락을 받아야 관람이 가능했으며 KGB를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경우에만 관람이 허용됐다는 것이다. 일부 미술품들은 러시아의 해외주재공관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러시아는 옛소련시대인 지난 74년 브레진스키와 지난 92년 옐친러시아대통령때는 일부 예술품을 헝가리에 되돌려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측은 「예술품을 두번이나 구조했다」고 생색을 내고 있으나 헝가리는 「두번이나 도독맞은 작품들」이라고 맞서고 있다.특히 옛소련및 동구의 붕괴로 상호 연대가 느슨해지자 반환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반응은 다양하다.푸슈킨박물관의 야아다이리나 앙토노바푸슈킨 관장(72)은 『독일에 협력한 헝가리가 독일에 팔아치운 것을 되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또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증거』라고 전리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되돌려주지 않겠다는 얘기다.하지만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전리예술품들은 「전쟁의 마지막 감옥」이라며 반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보관한 예술품들 가운데 일부는 내년부터 전시도 될것으로 전해진다.지하에 보관돼 있다가 50년만에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 탈통일주의­통일의 길/송복 연세대교수·정치사회학(서울 광장)

    이 지구상에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나라.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중국­대만이 있다고 하지만 국토면적으로 보나 인구규모로 보나 그것은 분단국이 아니라 조그마한 지역이 떨어져 나가 있는데 불과하다. 통일 독립국으로 역사상 가장 오래 명맥을 유지해온 나라도 우리나라다.분단을 한번도 경험하지 않고 남의 나라 식민지 지배도 받아 보지 않은 채 적어도 1천년 이상을 통일 독립국으로 존속해온 나라는 동서양 어느 나라 역사를 봐도 우리 외는 없다.우리가 지금 유일의 분단국이 되어있다.그것도 불공대천지 원수가 돼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안은 채 으르렁거리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는 묻지 않아도 된다.문제는 어떻게 통일국가가 돼서 분단국의 수치,그 난관 그 고통을 극복할 것인가이다.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통일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은 통일주의다.통일주의는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하나의 정부를 지향하는 주의이며 궁극적으로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주의이다.이를 위해 통일원도 만들고 남북대화도 지속하고 정상회담도 열어보자고 한다.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오직 통일이라고 교육하고 심지어는 모든 통일은 선이라고 까지 주장하고 요사이는 또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라는 표어까지 내건다. 그러나 그런 레토릭,타성적으로 내뱉는 그런 구호,열병이나 다름 없는 그런 행동,열정으로만 찬 그런 의식들이 얼마나 통일의 적인가를 냉정히 따져 볼 일이다.남쪽 사람들이 말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인가.선거 안해도 되고 시장을 열지 않아도 되는 통일인가.통일후 우리 체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닐것인가.명명백백히 남쪽 사람들의 통일은 「흡수통일」이다. 북쪽 사람들은 어떤가.북쪽의 지도자들,북쪽의 군부가 북쪽 국민들이 뭘 원하든 현재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체제가 아닌 통일을 원할 것인가.그들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택할 것인가.그들이 원하는 통일은 명명백백히 적화통일이다. 어떤 통일론자는 『그러니까 남북의 그런 사람들을 제쳐두고 민중끼리 민족애로 손잡고 통일하자』고 역설한다.그것이 만의 일이라도 실현가능한 이야긴가.그것은 통일낭만주의가 아니라 통일허구주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통일주의는 무엇인가.실은 서로 통일하지 말자는 주의다.통일하지 말자는 정도를 넘어서 서로 자극하고 거로 위협이나 하자는 주의다.남쪽에서 통일 통일하면 북쪽사람들은 내심 흡수통일을 꿈꾼다고 경계하고,북쪽에서 통일통일하면 남쪽사람들은 저들이 적화통일을 노린다고 전율한다. 양쪽에서 통일의 소리가 높은 것만큼 통일의 길은 멀어만 간다.통일하자는 외침만큼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는 없다.우리 통일의 가장 큰 적은 통일 부르짖는 사람들이다.「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는 사람,그 사람을 북쪽 사람도 경계하지만 남쪽 사람도 경계한다.그 사람들의 속마음을 남이든 북이든 꼭 짚어보려고 한다. 진정한 통일의 길은 통일을 외치지 않는 것이다.통일이 선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통일을 위해서 북으로 잠행하지 않는 사람,북쪽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동포애 발휘해서 쌀 대어주자고 하지 않는 사람,북쪽은 개방해야 한다고 떠들지않는 사람,북쪽은 지옥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남쪽의 사는 형편이 북쪽보다 훨씬 낫다고 우쭐대지않는 사람,그런 사람들이 바로 통일의 길을 실현하는 사람들이다.이른바 탈통일주의에 의한 통일실현의 길이다. 탈통일주의는 통일을 주장하지 않으므로써 남과 북을 서로 「편안하게」하는 길이다.서로 편안해야 통일의 길이 열린다.그 편안한 길은 소 닭 보듯 남과 북이 서로 남보듯하는 것이다.일본사람 보듯 중국사람 보듯,북쪽 사람들을 보고 북쪽 지도층을 대하는 것이다.그때 비로소 지금과 같은 위협이 없어지고 경계심이 사라진다.그때 비로소 문이 열리고 물자가 이동하고 상인들이 오갈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의 태반은 앞으로 10년 내지 15년안에 통일이 된다고 믿고있다.그러나 일본 사람들의 태반은 그 기간은 고사하고 그 기간의 두배가 돼도 「절대로 안된다」고 보고있다.탈민족주의가 민족을 살리듯이 탈통일주의만이 통일의 길을 열게 한다.
  • 세대교체·정계개편(문민정부 후반기 과제/전문가 대담:3)

    ◎도덕·전문성 갖춘 「신진」 충원 시급/세대교체 이뤄져야 지역할거구도 타파/정계개현은 「건전 보수」·「합리 진보」 경쟁체제로/국정손실 막게 「신진」­「경륜」 조화 필요/50대가 전면에,60대는 지원… 역할분담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정치권의 최대이슈는 아무래도 세대교체와 정계개편이 될 것이라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이 두가지는 21세기를 불과 5년 앞둔 우리나라의 장래를 좌우할 결정적인 변수이자 정치개혁의 지렛대인 까닭이다.특히 김대중씨의 정계복귀로 세대교체문제는 이미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이 돼버렸다.임현진 교수(서울대 정치사회학)와 최한수 교수(건국대 정치학)의 대담을 통해 우리 정치에 있어서의 세대교체와 정계개편의 의미 및 전망등을 짚어본다. ▲최한수 교수=세대교체는 두가지 뜻을 내포합니다.첫째는 노에서 장·청으로 내려오는 연령상의 교체를 의미하고,둘째는 정치인의 사고와 행태,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합니다.당연히 두번째 의미가 중요합니다.급속한 시대변화에 대처할 만한 능력과 인식을 갖춘 사람들을 그 시대의 주인공 자리에 가져다 놓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의미죠. ▲임현진 교수=우리사회는 지역·계급·세대간 갈등이 누적돼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의 정착과 통일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지난 30년동안 지속돼온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는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가 힘듭니다.결국 새로운 시대를 이끌 새 세대의 출현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죠.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고를 지닌 세력의 출현을 의미합니다.이를 통해 국내외 변화와 도전에 맞서는 정치·사회의 새로운 틀짜기가 이뤄져야 합니다.그런데 김영삼대통령이 주창하는 세대교체론에는 인위적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자신을 3김시대의 마지막으로 본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실은 김대통령이 집권초기에 정·관계의 대폭적 물갈이를 했었다면 지방선거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고 김대중씨가 재등장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최교수=세대교체의 필연성은 지역할거주의 타파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지역주의가 팽배하는 한 우리는 한발짝도 나아갈수 없습니다.지역분할구도의 원인은 바로 3김이 지역맹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데 있습니다.물론 이분들은 정치적 경륜과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지만 긍정적 측면보다는 지역분할의 고착화등 역기능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더구나 남북분단 상황에서 남쪽마저 사분오열된 셈이니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세대교체의 최우선적인 가치판단을 바로 지역감정 극복에 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현실적으로도 국회의원들은 지역맹주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을뿐 넓은 의미에서의 국민의 의사는 안중에 없습니다.그리고 6·27지방선거는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바로 그점에서 지역맹주 성격이 강한 3김의 시대가 김영삼대통령 임기와 함께 종료되는 것이 세대교체의 큰 계기가 될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그렇지만 세대교체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무조건 젊고 유능한 신진기예들만 기용하다가는 거대해진 국가체제가 엄청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큽니다.모험주의와 열정주의못지않게 경륜을 가진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세대교체가 독립변수고 국가운영이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임교수=세대교체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 대목입니다.그동안 우리 정치권은 사람을 키우는 풍토가 아니었습니다.자연스런 세대교체에 실패한 거죠.김대통령과 김대중씨가 30년전 40대 기수론을 제창할 때 처럼 50대의 차세대 주자들이 왜 전면에 못 나서는지 안타깝습니다.비전을 갖춘 50대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용한 세대교체 혁명이 필요합니다.세대교체를 위해 저는 「세대역할분담론」을 제안하고 싶습니다.50대가 전면에 나서고 60대는 이를 지원하고 40대는 50대와 20∼30대의 교량역을 맡는 것입니다. ○내년 총선이 잣대 ▲최교수=그러나 지역정당 예속화경향이 짙은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세대교체의 실현은 난제일수 밖에 없습니다.실제로 각 정당의 공천과정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단기적으로는 내년 총선때 공천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느냐가 세대교체의 잣대가 될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국민여망에 부응하는 새 인물들이 충원될수 있도록 언론등 각계 각층의 비판과 감시가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세대교체의 첫째 기준은 도덕성입니다.기회주의적이고 비민주적 행태를 보인 인사들은 배제되어야 합니다.인물교체인 것이죠.둘째는 전문성입니다.지금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아니라 전문가 대 비전문가로 구분되고 있습니다.이제는 자유가 절대가치가 아닌 만큼 복지와 문화를 제공할 능력이 있는 전문가집단의 충원이 필요한 때입니다.21세기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상품전」이라고들 하는데 여기서 민족주의는 도덕성으로 무장되어야 하고 상품은 전문성을 말합니다.세대교체를 여야에 대입해 보면 여당은 비민주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사들을 정리하는 것이고 야당은 정권대체 세력으로서의 인적 구성이 절실한 때입니다.「패거리정치」,「가신그룹」등의 용어가 없어져야 하고 테크노크라트의 대대적 참여가 요구됩니다.이를 위해서는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간에 두터운 장벽을 허물어 서로 영역을 넘나들며 정치개혁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이른바 자유로운 인적 수혈이 가능한 「피의 O형화」현상이죠. ▲임교수=바람직한 세대교체는 「건전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힘을 합치는 쪽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봅니다.이를 위해 우선 신진 엘리트집단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벽이 낮아져야 합니다.선거비용은 더욱 줄어야 하고 줄서기식 정치문화는 지양돼야 합니다.이와 함께 교사와 교수의 정당가입도 허용돼야 합니다.아울러 국민들의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최교수=정계개편 문제를 얘기해보죠.내년 총선은 민자당·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과 민주당등 최소한 4당구도아래서 치러질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어느 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집권당의 국정운영에 차질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국회의 총리인준이 대표적인 사례죠.이런 것이 정계개편의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특히 김대중씨는 정계개편의 주요 변수입니다.96석의 제1야당인 민주당을 깼으므로 총선에서 이 정도의 의석을 건지지 못하면 대선출마는 어려워질 것으로 봅니다.그렇게 되면 국민회의와 다른 정당간의 연합을 예상해 볼수 있고 DJ가 배제된 상태에서 나머지 여야가 합치는 「여야통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사실 민자당의 민주계와 국민회의측 인사들은 과거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 아닙니까.반면에 DJ가 총선에서 제1당을 만든뒤 대권주자로 나서면 여야간에는 극한 대결양상이 빚어질 공산이 크고 이 또한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넓혀 주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여하튼 총선이 끝나면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급격히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과거처럼 국회의원들을 통제하기도 힘들어 당적이탈 현상도 곳곳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견됩니다. ○신사고 세력 기대 ▲임교수=저는 민자당과 국민회의측 일부가 연합할 가능성은 회의적으로 봅니다.오히려 민자당 민주계와 민주당 구당파가 합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내년 총선과 97년 대선은 향후 정국의 최대변수입니다.그런데 이 두가지 이벤트가 바람직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거 결과가 특정인의 권력향배를 가늠하는 척도에 그쳐서는 안되고 정치체제 전반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지닌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새로운 정치틀을 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또 총선은 필연적으로 정치구도를 여소야대의 다당제로 이끌 전망입니다.입법부와 행정부의 마찰이 증폭될 것이고 97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정운영이 더욱 어려워져 거국연립정부의 구성이 불가피해질 가능성까지 내다볼 수 있습니다. ▲최교수=김대통령은 대화합정치를 내세우고 세대교체를 기치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국정방향을 모아가고 있습니다.특히 범여권 결집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김대중씨도 중도보수를 내세우며 보수세력 끌어안기에 신경을 쓰고 있으나 아무래도 김대통령이 우위를 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런 점에서 민자당내 민정계의 이탈도 거의 없을 것으로 봅니다. ○비전·논리 갖춰야 ▲임교수=총선후에는 내각제,이원집정제,부통령제 개헌등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제 김대중씨의 국민회의가 출범함에 따라 정계개편의 공은 김대통령에게 넘어갔습니다.중요한 것은 정계개편이 선거결과에 따른 이합집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비전과 논리를 갖춘 개편이 될 수 있도록 몰아가야 한다는 것이죠.민자당은 밖으로는 범보수세력을 결집하고 안으로는 참신한 인사들의 수혈을 통한 변화와 개혁으로 정권재창출을 시도할 것입니다.김대중씨에 필적할 인물을 우선 내부에서 찾겠지만 여의치 않을 때엔 외부영입도 생각해 보겠죠.다만 외부인사영입이라면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 통일 외교안보 정책/전문가 대담(문민정부 후반기 과제:2)

    ◎장기적 관점서 교류확대 꾸준히/교차승인 대비 4강외교 강화를/대북정책 국민적 지지기반 넓혀야/정당 지도자간 비공개 협의 제도화를 성급한 낙관주의는 북 개방에 역효과/「북·미 평화협정 주장」 주변국의 변용 수용 경계해야 문민정부는 출범직후의 북핵문제와 김일성사망등 돌출변수들로 해서 능동적 대북정책을 활기 있게 펴나가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대북 쌀지원등 우리측의 끈질긴 평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북은 당국간 대화를 회피,한반도 상황은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바람직한 통일외교 안보정책 추진방향을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과 정용길 교수(동국대 행정대학 원장)의 대담을 통해 검색해 본다. ▲김학준 이사장=광복과 분단 50주년을 맞는 벅찬 기대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아직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문민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의욕적인 대북정책을 펼쳤으나 김대통령이 집권 전반기를 마감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인상입니다.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선의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북이 문제라 하더라도 남북관계 전개 과정에서 우리측이 너무 유화적이었다거나 저자세 협상을 했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형편입니다. ▲정용길교수=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대북정책이 혼선을 빚은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특히 성향이 다른 통일부총리가 지난 2년반 동안 5명이나 교체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만큼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아울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도 부족했습니다.결과적으로 지난 2년반 동안의 대북정책은 정부의 관계개선의지에도 불구하고 실행과정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이사장=북한에 대한 안이한 낙관주의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을 약화시킨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북한에 동포로서 무엇인가를 베풀어주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면 쉽게 호응해오리라고 보는게 문민정부 통일정책의 기본 발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취할 것은 다 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지않는 녹록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이는 경수로협상 과정과 인공기 강제게양사건,삼선 비너스호 억류사건등을 빚은 쌀 지원 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 내실화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어야 할것 같습니다.키신저는 교수시절에 쓴 「대외정책의 국내구조」에서 『대내적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않으면 대외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갈파했는데 이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국민과 함께 가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물론 대북정책 추진시 기밀성과 보안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때문에 최소한 국회에서의 비공개 토론이나 정당지도자간의 협의를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교수=동감입니다.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정치의 안정과 남북관계개선,주변국의 지원등 3박자가 제대로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북한의 내부사정을 볼 때 당장 통일이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국내적으로도 통일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결국 대북정책은 당장의 통일보다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북한당국은 현재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기 보다 내심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봅니다.지난 8월초 남북학자 통일학술회의 석상에서 한 북한대표의 발표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그는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도,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반대할 뿐 아니라 돈으로 상대를 녹여내는 방식도 반대 한다』고 말했습니다.이는 남북경협을 통해 남쪽의 막강한 자본주의가 북한을 변화시켜 체제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겁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진행시킬 것으로 관측 됩니다.따라서 북한을 개혁·개방의 무대로 이끌어내려는 우리측의 노력이 얼마 만큼 빛을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교수=평양은 통일을 두려워하고 서울은 전쟁을 두려워 한다고들 합니다.특히 북한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과정을 보면서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성급한 통일작업 보다는 꾸준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통일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습니다.즉 인적·물적교류를 꾸준히 확대하는 「작은 걸음 정책」이 필요 합니다.통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차근차근 접근해나가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김대통령이 광복50주년 기념사를 통해 『통일에 대해 환상적인 기대도 성급한 포기도 금물이며 꾸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남북한 모두 당장 통일을 맞이할 조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이사장=현정부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대정부,심지어 야당지도자들까지도 한건주의식으로 대북 문제에 접근해 과오를 범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습니다.이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지도자나 국민 모두가 흥분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서서히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정교수=그동안 정부의 통일외교정책 기본틀은 한·미공조관계 속에서 남북관계를 풀자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최근 북한과 미국·일본간 수교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가 다소 소외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이는 앞으로 한반도 주변 6개국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남북한간에 외교적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지금의 한반도 주변상황은 구한말 때 보다 외교적으로 더욱 어려운 실정입니다.한반도 주변국들은 당시보다 더욱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한반도에 행사하고 있습니다.남북한의 자주적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합니다. ▲김이사장=최근 들어 한반도문제가 다시 국제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결권이 약화되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게 됩니다.물론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4강의 동시수교가 이뤄지면 평화가 제도적으로 이뤄진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니겠죠.그러나 남북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해 한반도문제를 「한민족화」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정교수=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간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평화체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스스로가 남북기본합의서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등 기존의 남북한 합의사항을 존중하는 자주적 노력이 긴요합니다.그런데도 북한은 핵문제나 쌀선박 인공기게양사건,쌀선박 억류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도적 차원의 협조에 대해서 조차 그 의미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어 유감입니다.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한반도의 새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기본합의서등 이미 합의한 남북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문제는 북한이 현정전협정이 남북당사자간이 아닌 북·미간에 의한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현재로선 미국·중국등 국제사회가 모두 이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20여년 동안 지속된 이같은 북한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의해 변용 수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정교수=현정부 전반기의 통일외교정책을 정리해 본다면 선진한국을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외교다변화와 경제실리외교를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대북정책에서는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진보와 보수,강·온전략을 병행하는 정책을 구사해 왔습니다.그러나 대북정책이 당장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이는 우리 정책의 혼선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급작스런 변화를 원치 않는 북한 자체에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까닭에 당장 남북관계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선 통일에 대한 환상을 깨고 국내정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이사장=통일을 중장기적 과제로 본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우리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 복지국가로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길일 것입니다.아울러 주변 4강외교,특히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과의 외교을 강화하는 것도 통일의 터전을 닦는 첩경이라고 봅니다.
  • 군사력 압도적 우세… 점령은 “무리”/중국,대만공격 능력 있나

    ◎대만 첨단장비 무장… 충돌땐 중도 큰 타격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이와 때를 맞춰 인민해방군의 대만침공준비설도 그럴듯하게 퍼져가고 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은 가능한가.군사적인 측면에서 볼때 중국군사력은 대만의 7.4배인 3백11만명.42만여명의 대만군에 비해 무려 2백69만명이 많다.대만은 북경까지 닿는 장거리 미사일이 없지만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대만의 모든 도시는 중국 미사일의 사정거리안에 있다.대만은 핵도 없다.지난달에 이어 15일부터 재개된 대만해협부근 공해상에서의 미사일발사 훈련은 이점에서 대만인들의 안보불안을 부채질한다. 전투기도 4천2백여대 대 3백90여대,함정도 9백24척 대 96척,잠수함 1백20척 대 4척등 수치상 전력면에서 대만은 중국의 적수는 아니다.그러나 대만장비들이 최첨단의 현대무기이고 중국의 장비 노후화를 고려할 때 단순비교엔 무리가 따른다.북경의 외국군사연락관사이에도 항공모함 한척없는 중국의 대만점령은 용이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무력공격 전단계로 실시가능한 해상통로봉쇄도 약간의 경제적 타격을 제외하고는 군사·전략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 지적이다. 국내외적 정세를 고려할 때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은 당분간 실현성이 적다.이념이 퇴색하고 대신 경제발전성과가 정권의 정통성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최소한 몇년간은 중국경제의 뒷걸음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냉전붕괴이후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군사적인 충돌을 야기,고립의 길을 자초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중국국내정치가 혼란,군부가 득세하고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일 경우 침공시나리오도 전혀 배제할순 없다. 대만에 대한 실제적인 침공여부완 관계없이 당분간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시위와 대만 침공설은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중국정부는 대만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는 북경외교가의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잇따른무력시위와 침공가능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 대만내부의 민심을 흔들어 흡수통일을 위한 정치적,심리적 발판을 닦아보자는 것이 중국의 의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올해말 총선및 내년초 총통 직접선거를 앞두고 대만내부에서 일고 있는 독립열기와 국제연합(UN)발족 50주년을 앞두고 대만당국이 벌이고있는 UN재가입등 국제무대복귀외교를 좌시할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확고한 자세이다. 뿐만아니라 중국의 무력시위는 대만뿐 아니라 대만 뒤의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다.이등휘총통의 미국초청과 같이 대만을 인정하는듯한 태도를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자는 것이다.
  • 러시아입장 고려 NATO확대 신중히/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칼럼)

    ◎동구국가입 서두르면 96년 러 대선서 민주개혁파 곤경에 러시아와 서방과의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쟁점중 하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문제다.문제의 발단은 소련의 옛군사동맹국들인 동구권이 자신들의 적이었던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나선 데서 시작됐다. 그렇게 나선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동구국들은 우선 나토가입을 통해 서방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물론 경제적인 이득도 기대한다.이와 함께 나토 가입이 안보보장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동구,경제적 이익 기대 이들은 홀로 떨어져 있으면 반드시 강대국의 먹이가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갖고 있다.체코는 2차대전 전 나치독일의 먹이가 됐고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다.지금 체코,폴란드,기타 동구국들의 우려 대상은 나치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란 점이 다를 뿐이다.이들은 2차대전 뒤 모두 러시아에 의해 점령돼 비인간적이고,비효율적인 공산주의에 의해 속박됐다.몇몇 나라들은 이 속박을 벗어나려고 하다 소련군의 침공을 받아 저지됐다.동구국들은 이런 아픈 역사의 기억이 있다. 러시아가 민주화됨으로써 동구국들은 큰 혜택을 받았다.이들은 자유를 되찾았고 서구식 사회 건설의 기회를 얻었다.이웃 대국 러시아에 대해 품었던 공포감도 사라지는듯 했다.그러나 러시아의 개혁이 비틀거리고 외교정책 기조가 흔들리면서 이 공포감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1993년 12월 총선에서 극우민족주의자 지리노프스키의 압승은 동구국들을 아연 긴장케했다.지리노프스키는 수시로 동구권을 포함,주변국들을 러시아영토로 귀속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외에도 러시아 정치인들중에는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인물이 많다.정치적 불안정,경제·사회적 제불안요인은 동구국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앞날에 대해 짙은 우려를 갖게 했다.이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독립,자유,안보를 지키기 위해 동구국들은 나토로 몰려든 것이다. ○러시아­서구 관계 냉각 애초에 러시아 민주지도자들은 나토확대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91년,92년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승리감에 도취돼 있을 때는 모든 서방국들이 하나같이 동맹국처럼 느껴졌다.처음 폴란드의 나토가입문제가 나왔을 때 옐친대통령은 주권국가가 어떤 국제기구에 가입하든간에 그것은 그나라의 고유권한이라고 말했다.한때는 러시아 자신도 나토가입을 고려했을 정도였다.이같은 입장은 그러나 보수민족주의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러시아와 서방과의 관계도 긴장관계로 바뀌었고 러시아내 서방에 대한 기대,신뢰분위기도 급속히 냉각됐다.러시아에서 반서방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동구국들은 더 결사적으로 나토가입을 희망했다.그러면서 러시아 역시 나토확대에 강경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지금 나토문제는 러시아정부의 최대현안이다.러정부의 입장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서방은 처음부터 러시아를 기만했다.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했는데도 서방은 그 대응기구인 나토가 동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존속시키고 있다.둘째,나토를 동구권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서방이 여전히 러시아를 적으로 본다는 증거이다.셋째,나토확대는 유럽을 분열시켜 대결분위기를 조장한다.넷째,나토확대는 러시아를 유럽대륙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 위 4가지 논지는 러시아정부내 대부분의 인사들이 동감한다.극우민족,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 몇가지 주장을 더 추가한다.우선 나토확대는 러시아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온다는 것이다.러시아는 서방의 군사,정치적 위협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또한 이런 세력불균형은 종국에는 전면대결로 발전케 된다고 말한다. 나토확대에 관한 러시아정부의 공식입장은 매우 강경하다.옐친대통령은 이 움직임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그러면서도 미국등 서방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시키고 싶어한다.그래서 타협의 여지는 있다.러외무부가 나토국들에게 제시한 몇가지 방안을 보자. 첫째,나토를 해체하고 전유럽을 포괄하는 안보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물론 서방은 이에 반대한다.그 다음으로 내놓은 안이 바로 동구권을 받아들이되 정회원이 아닌 동반자관계 자격으로 받으라는 것이다.러시아정부의 지도자들은 서방지도자들에게 최소한 나토확대를 서두르지는 말아달라고 주문한다.나토확대를 서둘러러시아내 보수여론을 자극할 경우 96년 대통령선거에서 보수파들이 승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반대로 민주개혁파가 승리하면 나토확대에 크게 반대하지도 않을 뿐더러 동구국 역시 굳이 나토에 가입할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논리이다. ○회원국들 입장 엇갈려 나토국 내부에서도 확고한 컨센서스는 아직 없다.예를 들어 스페인,이탈리아는 나토확대에 반대입장이다.기구가 너무 커져 자신들의 입지가 더 좁아지는 걸 우려해서이다.미국 역시 러시아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신중히 추진하자는 자세이다.반면 독일은 이를 빨리 추진하고 싶어한다.독일국경에 맞닿은 나토방위선을 동쪽으로 밀어내보내고 싶기 때문이다.그 경우 독일은 실로 50년만에 최전방국가의 짐을 벗는 것이다.군사전문가들은 대체로 나토확대에 신중한 견해를 밝힌다.무엇보다 그렇게 비대한 기구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우선 동구국들은 가입하더라도 군사장비,인력을 재무장하고 재훈련시켜야 한다. 이 모든 사항들을 고려할 때 나토확대는 최소한 수년은 걸려야 해결될사안이다.그리고 미·러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양국 모두가 그런 사태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신세대 시각(21세기 한­일 새 지평:5·끝)

    ◎한일 공존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우월의식·불신 제거로 과거치유를/상호신뢰 넓혀 「갈등 역사」 청산/청년층 격의없이 자주 만나야/김홍진 ▲75년생 ▲서울대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2년 1995년 8월15일.우리는 「광복」이라 하고,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패망」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지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과거책임은 분명 우선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식민지배가 낳은 분단이라는 고통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민족의 불행과 주권상실의 아픔을 하나의 유전형질로까지 간직하게 된 우리는 까닭도 모르는 채 분단이라는 비극도 떠맡아왔다. 그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남과 북은 이제 민족의 동질성 회복마저 운운해야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36년간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힘겹게 떨치고 난 후에도 아득한 절망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참된 광복은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과거청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한민족의 지난 50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청산의 역사인 반면 우리에게 빚을 진 일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져만 갔다.해방 이후 한·일 역사는 마뜩한 뒷풀이가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풀어나갈 주체와 방향은 어떤 것일까. 기나긴 역사에 비해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만큼 식민지배의 고통을 직접 당한 기성세대가 일본의 죄값을 추궁하는 역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이제는 청년학생이 주축이 되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청년은 「신세대」로 불린다.일본도 이미 80년대에 기존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을 고한 「신인류」의 출현을 맞이했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가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앞으로의 역사도 알력과 대립으로만 점철돼서는 안될 일이다.다가올 세기는 하나된 한반도의 젊은이와 국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섬나라 젊은이의 공존의 시대이어야 한다. ○젊은이 역할 중요 이를 위해서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과 그릇된 우월의식,상호신뢰를 허무는 어줍잖은 영웅의식,이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공동이익을 저버리는 일방적인 국가행위 등을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정황은 아직도 이같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반도는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일본도 이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제국주의자의 망언은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최근에는 자위대증강,핵물질보유 등 군사력 신장과 극우파의 창궐로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감정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일본에서는 얼마전 염한론이 한창 회자됐다.『얼마나 더 사과해야 되나』『이제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수 일본국민의 반한감정이 드러난 형태였다. 우리 국민도 대일감정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싫다고 말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으나 일본이 보여주는 반성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민족우월의식은 거부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영웅의식 극복을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정부는 좀더 대범하고 적극적인 대일외교를 수행,한국과 일본 양국이 헌법에서 밝힌 바대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역사적 대의에서 주도권을 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지역패권을 추구,공존해야 할 이웃국가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한·일 양국이 다가올 세기의 공존과 번영을 이끌어갈 청년학생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양국의 청년이 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양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꾸준한 만남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참 공영의 미래향한 선결과제/상대 바로알기가 선린우호 첫 걸음/무지·몰이해서 오해·마찰 비롯/교육·문화 등 교류확대 급선무/나카가와 도시히코 ▲71년생 ▲일 무사시대 사회학과 4년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치,치마저고리,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T셔츠 등으로 밖에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식의 모자름.나 자신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왜 그런가.그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봄 한달 반동안 한국에 단기 유학했다. ○부정적 생각 깊어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그저 누님 내외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관계밖에 없었다.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알지 못한다」.이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고대 불교와 유교의 전래,고려청자와 이조백자가 일본의 도예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의 교류 등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고 있는 전쟁책임에 따른 부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아무래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종군위안부문제 등 전후처리에 관련된 일도 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갖지 못한 채 「전후책임」이라는 네글자가 눈 앞을 그냥 지나쳐 「부채」라는 프레셔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막연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유학에 임해서 처음 알았다. 또 이러한 문제이전에 한국인을 잘 알지 못했고,한국인들이 속마음으로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도 몰랐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의 강연에 찾아가 볼 기회가 있었다.예상이상으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할 때,입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은 대단히 사납게 주최자측에 따지고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강연장에 들어가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문을 향해서 밀려 들고 밀려나오면 또 나아갔다. ○서로의 고민토로 혼잡을 빚는 사람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국인의 과격함에 압도당해 강연의 건은 아무렇게 돼도 좋게 됐다. 또 한국에 가기 전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혐오감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불안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특히 같은 세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해외의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서양문화를 모방하는데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고 서로 닮은 고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남자가 일본어로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그 남자가 너무 유창한 일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거듭 전쟁책임을 져야한다」등등 가볍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 서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세대다.서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전후 50년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문화가 다르면 이런저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교육 문화교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깊은 이해심 필요 다른 나라와의 오해와 마찰은 상대국에 대한 지식부족,무이해로부터 생긴다.일본인도 노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국민들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아주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민은 감정적으로 의미도 없이 서로 혐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잘 안 뒤에 양자가 이르지 못한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우호관계를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선 한일관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 일 총리/침략 공식 인정­사죄/종전 50주년 담화

    ◎“식민지배­침략 아주국에 통절한 반성” 【도쿄=강석진 특파원】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15일 종전 50주년에 즈음한 담화를 발표,『국책을 그르쳐 과거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국가의 많은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침략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의 의결을 거쳐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이웃국가들에 고통을 주었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통절한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일본이 평화이념과 민주주의를 견지해 나가면서 유일한 피폭국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궁극적으로 폐기하는 방안을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어 『패전 50주년을 맞은 오늘 깊은 반성 위에 독선적인 민족주의를 배척한다』고 말하고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했다. 일본 총리가각의의 의결까지 거친 담화를 통해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안부 피해자에 사과 【도쿄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15일 도쿄에서 개최된 시민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국의 위안부피해자 등 전쟁피해자들과 대면,사과의 뜻을 전달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 “식민지 지배·침략 통절히 반성”/일 총리 종전50주년 담화/전문

    ◎전후문제 성실히 처리… 아태국에 신뢰 쌓을터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분 한분의 영지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미국,나아가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배양해 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현대화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연구를 지원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 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처리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는 것 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제국의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또 역사가 초래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만지한 오늘,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서서 독선적인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나가야 합니다.동시에 우리 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며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긴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할 곳은 신의만한 것이 없노라」고 합니다.이 기념할 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정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 광복 50년의 반성과 과제/이만열 숙대교수·한국사(특별기고)

    ◎일제탓 그만하고 통일 힘쓰자/「식민콤플렉스」 벗어야 참된 극일/힘 커진만큼 「세계봉사」 눈돌려야 며칠전 지난 50년간의 우리 나라의 성장과정을 비교하여 작성한 「통계로 본 광복50년」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이 괄목할 만한 성장발전의 터전이 우리 세대의 피땀어린 노력 못지 않게 조국광복을 위해 바친 선조들의 희생에 있음을 알고 먼저 감사드린다.어떤 열매에는 반드시 이를 위해 씨뿌린 선각자들과 그것을 가꾸는 데 땀과 눈물로 헌신한 봉사자들이 있게 마련이다.해방 당시 우리가 식민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은 내적으로는 빈곤·좌절·무지·무비였고 외적으로는 외세와 거기에 얽힌 분단·갈등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성장·발전한 것은 조국이 광복을 맞아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우리 민족이 노예민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발전요인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광복을 위해 투쟁하신 선조들이었다.여기서 우리는 조국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민족의 생존·발전과 관련하여 다시 되새기게 된다. 광복 당시 우리는 신생 조국을 향한 이상을 갖고 있었다.그것은 분명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통일된 조국이었다.정직과 근면,신의와 절제의 정신이 빠져버린 자본주의체제도,빈곤의 평등을 전제로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시켜 버린 사회주의체제도 아니었다.치열한 경쟁이 인간성을 마비시키고 개인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러한 사회를 꿈꾸지도 않았다.우리의 이상은 넉넉하지 않더라도 서로 나누고 여유가 없더라도 서로 도우며 고통과 슬픔 중에서도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두레정신의 실현과 그러한 공동체의 건설이었다.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갈갈이 찢어지고 무너진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두레공동체정신의 회복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한편 해방 당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통일독립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던 선조들은 멀리는 문화국가의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부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를 원했고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우리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였다.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하였다.오직 한없이 갖고 싶어한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었다.광복 당시의 이같은 이상으로 지난 50년간의 우리 사회를 돌이켜 볼 때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그러나 그 이상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우리의 목표가 되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며칠전 일본의 신임 문부상 시마무라(도촌의신)의 「망언」이 또 우리를 분노케 했다.일본 지도자들이 「치고 달아나고」「뱉고 사과하는」수법은 오랫동안 보아온 터이지만 그것을 일본인들의 탓으로만 돌리고 우리는 분통이나 터뜨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자세인지 적어도 광복 50주년의 이 시점에서는 좀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묻는다.우리 안에는 일본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자세를 보여준 소위 지도자들이 없으며 지금도 식민주의사관에 젖어 있는 지식인들이 없는가.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만 침략 사실을 인정·사죄·배상하라고 강박해 왔다.이 요구의 정당성은 「공소시효」를 무시하도록 만들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우리 안에 있는 친일·반민족자들에게 얼마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었으며,일제의 잔재를 스스로 청산하려고 애썼는가.우리 안의 이같은 문제를 두고 일본에 대한 요구가 관철될 수 있을까.또 분단을 식민지의 유산이라 하면서 일제를 원망해 왔지만,36년보다 긴 50년동안 그것도 같은 동족끼리 분단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왔는가.냉전시대에는 강대국 때문에 우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자.그러나 얄타체제는 무너졌고 남북이 주체를 외쳐온지가 벌써 수십년이 되었는데도 분단문제는 민족 전체의 염원과는 달리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이 부끄러움을 우리 세대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런 점들을 알고 있는 일본이기에 그들은 자주 계산된 발언을 한다.그들은 우리가 잊을 만하면 망언으로 「경고」하면서,역설적으로 우리의 「역사의식」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지난 50년은 분단과 민주화의 시련이 겹친 시기였지만 그 연륜만큼의 성숙을 위해 애쓴 시기이기도 했다.정치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확고해졌고 경제성장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라고 한다.교육·문화와 과학·기술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그럼에도 이러한 성장에 알맞은 성숙을 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우선 대일관계에서 식민지 잔재청산의 요구 못지 않게 식민지 피해의식의 심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 측에서만 보면 그런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일본이라는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식민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이제는 경제·문화의 성장만큼이라도 이웃과 세계를 섬기는 봉사자로서의 책임에 눈뜨고 앞장서는 성숙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언제까지 제국주의 세력에 비판만 가하면서 세계를 향한 자신의 봉사적 책임을 외면해야 할 것인가.과거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민족을 차별·학대했던 역사를 상기하면서 이런 정도의 성장에 도취된 듯 벌써 그런 못된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매우 안타깝다.쉬운 예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처우는 분노에 가깝다.나눔과 섬김이 없는 부와 명예는 자신을 부패하게 만들고 이웃을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광복 50년은 또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50년간의 성장·발전에 가려져 있는 그늘진 부분들이 우리 공동체의 고민이요 과제다.21세기를 몇년 앞둔 우리는 대내적으로 정의와 인권에 바탕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대외적으로는 열린 민족주의에 근거하여 자주국가를 공고히 하면서 민족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수행해야 하는 민족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이 시대적인 소명에 제대로 부응할 때 우리는 민족사에 부끄럽지 않은 세대로 남게 될 것이다.
  • 크로아,세계 공격 재개/「보」국경 세계탈출로 집중포격

    ◎휴정협정 서명 수시간뒤 깨져/보스니아 세계,크로아 5개지역 공습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장병과 난민 약 8만명을 인근 보스니아로 소개하는 내용의 유엔 휴전협정이 체결,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크로아티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간의 전투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고 유엔 관계자들이 7일 밝혔다. 유엔의 한 관계자는 이날 『크로아티아당국이 이날 상오11시30분(한국시간 하오4시30분)쯤 세르비아계의 속임수를 이유로 들어 휴전협정을 폐기한다고 통보한 뒤 즉각공세를 재개했다』고 말했다. 휴전협정이 깨지고 난 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가 유엔군에게 무기를 인도하고 보스니아로 넘어가는 지역의 하나인 토푸스코는 크로아티아군의 격렬한 포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전투기들은 전날 쿠티나의 석유화학공장을 공습한데 이어 이날 다시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영토에 있는 반야 루카를 이륙한 뒤 노브스카·쿠티나·주판야·포제가·비로비티카 등 5개 지역을 공습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앞서 유엔의 한 관계자는 이날 크로아티아군이 크라이나지역에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와 함께 유엔이 주선한 휴전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날 상오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자치공화국인 크라이나공화국 및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계의 철수를 내용으로 하는 휴전안에 서명했다』고 밝히고 세르비아계는 이 협정에 근거하여 크로아티아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에게 중화기를 양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의 프란요 투지만대통령을 비롯한 크로아티정부 관리들은 이날 『「크라이나」라는 세르비아계 지역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크닌의 탈환은 향후 수세기동안 크로아티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유고 개입­내전 확대 “갈림길”/크로아의 크라이나 장악이후/세계,대 비세계 대결 구도면 전면전 크로아티아 영토의 3분의1에 달했던 세르비아반군 거점지역의 대부분이 불과 며칠 사이에 크로아티아 정부군에 의해 함락됨에 따라 실지회복을 위한 신유고연방의 개입과 전면전으로의 확산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급해진 신유고연방은 크로아티아내의 유일한 세르비아계 거점으로 남아 있는 동부 슬라보니아로 일단 미사일 발사대와 병력을 실은 트럭 수십대를 보낸 것으로 전해져 이미 개입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일단 크로아티아의 공격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적극개입 의사는 밝히지 않고 있다.보스니아내전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라는 서방측의 요구에 대해 내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극 중재를 회피해왔기 때문에 크로아티아내전에도 대대적으로 직접 개입하기에는 국제사회의 비난 등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처지다.따라서 무기지원 등 소극적인 간접지원에 그칠 공산이 적지 않다.그럴 경우 뚜렷한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는 지루한 내전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정치지도자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라트코 믈라디치 군사령관을 전격 해임함으로써 빚어진 양자간의 권력투쟁은 세르비아계의 일사불란한 행동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유고연방측으로서도 크로아티아내에서 세르비아계가 설 땅을 잃어버린 현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강경파들의 적극개입 요구도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어서 구유고내 세르비아계와 비세르비아계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은 보스니아 회교정부군과 합동작전으로 전개된 크로아티아의 이번 공세가 보스니아 평화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반응을 보인다.승승장구하던 세르비아계의 위세를 누그러뜨림으로써 세력균형을 이뤄 평화협상의 길을 열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섞인 시각이다.그러나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 기록으로 본 광복 50년전

    ◎총독부 작성 서울전도 등 희귀자료 “눈길”/명성황후 시해·고종 독살기도사건 판결문 선보여/4·19혁명 당시 계엄선포­공민권 제한기록 첫 공개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소장 이수기)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오는 10일부터 12월10일까지 3개월간 계속되는 「기록으로 본 광복 50년」전에서 공개하는 각종 자료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권회복운동 판결문 영인집◁ 1895년 8월20일 일어난 명성황후시해사건,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1898년 일어난 고종 독살기도사건,갑오개혁정부 붕괴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유길준이 주도한 혁명정부 기도사건,한용운의 임제종 창립을 통한 일본 조동종 반대운동,양기탁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이동령 안명근 김구등이 주도한 서간도 독립군기지 건설운동등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다.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판결문은 19 06년 통감부 설치 이후 의병판결문과 일제시기의 판결문등이 대부분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련자 판결문=18 95년 11월13일 고등재판소에서 작성된 것으로 주모자는 군부협판(지금의 차관급에해당)인 이주회이며 직접 시해한 인물은 일본인에게 고용되어 있었던 박선으로 되어 있다. ▲서간도 독립군기지 건설사건 판결문=19 07년 이후 양기탁 이동령 김구등이 신민회를 결성,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이주할 대상자를 모집하기 위해 도 단위 책임자를 전국적으로 임명하는등 비밀리에 전개된 운동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추진되었음이 새로 밝혀졌다. ▷조선총독부 작성 서울 전도◁ 이 지도는 1915년에 측도해 6년 뒤인 1921년 다시 수정 측도하고 이듬해인 1922년 7월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축척 1만분의 1로 제작한 지도다.뒷면에는 붉은 글씨로 「용산군용지일반도」라고 부기되어 있다. 조선조 당시 도성의 성저 10리까지의 지경을 제작한 듯 오늘날의 서울시 일대를 지도 한장으로 축소해 치밀하게 작성했다. 부착물로 여의도도가 인쇄물이 아닌 채색도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지도가 여기에 부착된 것은 당시 여의도가 군용지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밤섬의 위치와 도로를 나타내고 이 지역이 일본인의 개인 소유지로 되어 있음도알 수 있다. ▷일제의 조선군사령부 배치도◁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고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 내지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전국 요소요소에 군사시설을 갖추어 나가면서 작성한 것이다.당시 용산 일대는 일본군 주둔지 내지 병참기지화한 데 따른 각종 시설이 있었기 때문에 기밀문서로 분류되었던 지도다. 이에따라 총독부에서 「육군성 관리 국유재산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를 생산했는데 이 문서 가운데는 1931년 4월10일 조선총독부 관리대상 재산을 군부측이 사용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소관 토지건물차입조서」가 들어 있다.이 조서에 따르면 당시 조선주둔 일본군 헌병대사령부및 각 지방별 수비대와 부속 숙영지,연병장,수도급수시설지등과 도별 군부대의 작전범위는 다음과 같다. ○군부대 작전범위 기록 ▲제52연대=경기 일원 ▲제1연대=경북 일원 ▲제29연대=황해도 일원 ▲제3여단=황해도 일원 ▲제14연대=경기·경북 ▲제60연대=충남 일원 ▲제50연대=서울·강원·충북·경북·경기·함남 ▲제51연대=서울·충북 ▲제47연대=강원·경기·경북▷미곡·면화공출문서·징용자명부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에서 발견된 1930년대말 전시상황에서 조선총독부의 군단위 일선기관이 작성한 문서들이다. 경기도 부천군이 1936년 작성한 「소사농업창고 관련서류」 「부천군관내도」등에는 부천군의 산업별 인구,경작면적,품목별 수확량 등이 거의 완벽하게 파악되어 있다. 「징용자명부」에는 태평양전쟁때 일본으로 징용당한 전국의 약 40만명의 명단과 인적 사항이 적혀 있다. ▷수양동우회 판결문◁ 일제의 집요한 강요로 민족운동가로서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이광수를 비롯한 41명의 항일활동이 수록되어 있다.이 판결문에는 이광수 주요한등이 안창호의 권유로 흥사단에 가입한 이래 흥사단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양동우회사건이 일어난 1938년까지 「통속교육보급회」를 조직하는등 각종 민족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했음이 기록되어 있다.수양동우회는 안창호의 지시로 이광수가 서울 서대문에 있는 자택에서 1922년 결성했는데 1926년 김성수 최린등 민족운동지도자들을 대거 영입해 발전시킨 민족주의계열의 대표적인 운동단체다.그동안 학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활동만을 가지고 개량주의 단체로 평가해 왔지만 이 판결문은 수양동우회의 활동방식을 당국을 속이기 위한 교묘한 술책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수립 직후 국무회의록◁ 1949년 2월4일 금요일 하오 2시 개최된 제16회 국무회의는 중앙청의 부통령실에서 16명의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의 사회로 개회되었다.이 회의의 의사록 가운데 「반민족특별위원회법 제5조 해당자 조사보고에 관한 건」에는 이승만대통령이 「반민법 제5조 해당자를 비밀히 조사해 선처하라」고 내무부장관에게 친전으로 직접 지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반민법 제5조는 총독부 고위관료및 경찰관을 지낸 자는 공직에 임명될 수 없다는 규정이다.이 때문에 이 기록은 공식 문서를 통해 이승만대통령이 총독부 관료를 조사는 하되 선처해 그대로 임용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4·19혁명시 비상계엄 및 공민권제한 심사기록◁ 이번에 4·19관련 정부문서가 처음 공개되었다.첫째는 1960년 4월 19일 1시를 기해 내려진 「비상계엄의 건」 원본문서이다.이 문서는 대통령과 국무위원인 내무부장관 홍진기,국방부장관 김정렬등 10명이 함께 서명한 것으로 계엄선포의 목적을 「교란된 질서를 회복하고 공공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4월 19일 하오 1시부터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실시하며 계엄사령관은 육군중장 송요찬으로 임명하였다. 둘째는 1960년 4월 25일 상오 5시부터 사태의 호전에 따라 비상계엄을 경비계엄으로 바꾼다는 「계엄종류 변경의 건」이다.그런데 대상지역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지역에 한하며 서울은 제외되어 있다. 셋째는 4·19혁명 후 각 시도별로 구성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대상자 심사위원회가 작성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 심사기록」을 공개했다.이 문서는 4·19혁명 후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을 발표하여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이다.이 문서에는 3·15부정선거를 모의하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유당 정권 말기의 부패한 정치인 관료 재계인사 종교인사 학계인사들이 총망라되어 있다.이 문서들의 공개로 이승만정권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작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관계철및 포항제철 관련문서◁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안은 19 59년 3월 당시 부흥부 산하에 있던 산업개발위원회에서 작성된 경제개발3개년계획안(1961∼1963)이 정부가 마련한 최초의 것이다.그러다가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직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을 수립하고 사회·경제적 악순환을 시정하고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19 62년 1월 6일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재경제 10호로 공표되었다.여기에는 5개년 계획수립의 의의,목표와 기본방침,전반적 내용,부문별 내용,수행에 따른 제정책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역사적인 육필원고 담화문이 내각수반 송요찬의 명의로 수록되어 있다. 아울러 육군대장 박정희의 명의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 승인하고 이를 집행하는데 따른 제반조치사항을 지시한 일자 역시 공표일과 동일함으로써 추진의 신속성을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는 3급 비밀로 분류되어 오다가 1963년 2월2일 「경제 402호」에 의거해 일반문서로 재분류되었다.
  • 8월의 문화인물/김구 선생

    ◎조국독립에 평생바친 민족의 거인/저서 「백범일지」 「도위실기」 등 남겨 문화체육부는 8월의 문화인물로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1876∼1949년)선생을 선정했다. 황해도 해주 태생인 백범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3·1운동 후에는 상해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투쟁을 지휘했으며 해방후 귀국,통일정부 수립에 앞장섰던 민족주의자. 백범은 1884년 18세에 동학에 입교,이듬해 동학군 선봉장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가 의병단에 가입했다.21세때 국내에 들어와 왜병중위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후 고종황제의 특별사면으로 형집행이 중지됐지만 석방되지 않아 탈옥,공주 마곡사의 승려가 됐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내무총장,국무령을 지냈다.한국독립당을 결성,항일무력 활동을 전개했고 한인애국단을 조직 윤봉길·이봉창의거를 지휘했다.1934년 중칭(중경)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이듬해 임정 주석에 선임돼 일본군에 강제징집된 학도병들을 광복군에 편입시키고 시안(서안)과 안후이성(안휘성)에 광복군특별훈련반을 설치,미육군전략처와 제휴해 한반도 수복 군사훈련을 지휘하던중 광복을 맞았다. 19 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탁운동을 전개했고 48년 남한만의 단독총선을 실시한다는 유엔결의에 반대,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북한에가 정치회담을 가졌으나 실패했다.이후 정부수립에 불참한채 민족통일 원칙을 주장하다 49년 6월 안두희에게 암살당해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됐다.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고 서울 남산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저서로는 백범일지,도왜실기 등이 있다.
  • 탈민족주의­2020비전/송복 연대교수·정치사회학(서울광장)

    「2020비전」이 한창 숙의되고 있다.4반세기 후인 2020년,세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이다.물론 그만이 아니다.보다 주체적으로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 것인가도 포함돼 있다. 지난 7월18일에서 20일,사흘동안 96년 올림픽개최지인 미국 동남부의 애틀랜타시에서 이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토의됐고,지금도 쉬지않고 연구되고 있다.주최는 「세계미래협회」(World Future Society)이고,회원은 세계 각국에서 실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이날 토론에 참석한 인원만도 7백명이 넘었다. 오늘날 세계는 장기비전속에 살고 있다.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는것,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거기서 바라보는 한국사회는 1890년대의 조선조 사회를 연상할만큼 아득히 뒤떨어져 있다.21세기는 차치하고,20세기도 아닌 19세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누가 무슨 당을 만들고 누가 무슨 당을 깨고,누구는 무슨 당 세몰이를 어떻게 하고,누구는 무슨 당 물갈이를어떻게 하려 한다는 것.그것은 변화도 아니고 준비도 아니고 대비도 아니다.다음 시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이웃 일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고,어떻게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악머구리처럼 안에서 싸우다 나라를 고스란히 내주고 만 19세기말 상황이나 하나도 진배가 없다. 밖에서 보는 한국만큼 기가 차는 나라도 드물다.정치인만 그런 것이 아니고,일반인의 의식도 그렇다.그 중에서도 민족주의 의식이 가장 한심한 의식이다.아직도 민족주의를 내세우거나 부르짖는 사람들,아직도 민족통일,통일하고 외치는 사람들,그 사람들만큼 한심한 사람들도 없다.그 사람들이야말로 아직도 공산주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만큼 뒤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천지분간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탈민족주의 시대에 들어와 있다.세계는 「오직 내민족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사장한 지 오래다.세계는 오래전에 그 의식 자체를 무효화했다.쓸모없는 의식으로 만들어 버렸다.그 의식을 바탕으로 해서는 이세상에 살아 남을수 없도록 변화돼 버렸다.세계는 내 민족만이 운명공동체이고,내민족의 통일,내민족의 결속만이 선이라는 의식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 세계는 민족주의를 벗어나야만이 그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탈민족주의가 그 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됐다.「내민족을 위하여」라는 구호나 의식만큼 내민족을 죽이는 것이 없게 됐다.더구나 우리처럼 혈통순도 99%의 민족과 그 민족의식을 계속 고수하고는 어떤 상황에도 버티기 어렵게 됐다.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의 차이는 그 의식의 근저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느냐의 차이다.그 인식의 근거가 무엇이 되어 있느냐의 차이다.보호와 경쟁­ 근대이후 모든 국가들은 이 두 의식의 유형중 어느 하나를 우선적으로 택해야 했다.그 어느 하나의 의식을 바탕으로 정책을 강구해야 했다. 민족주의는 보호의식이며 보호심리다.내 민족의 생명을,그리고 내 민족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지고의 선이라는 사고며 행동이다.반대로 탈민족주의는 경쟁이다.경쟁이 최선의 지향이며가치라는 의식이며 심리다.경쟁에서 어떤 지식·지혜,어떤 수단을 동원하면 이길수 있느냐의 정책이며 조치다. 지금 우리의 의식속에는 보호의식,보호심리가 깊이 도사리고 있다.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기느냐보다 어떻게 하면 「적으로부터」「외부로부터」우리를 보호할수 있느냐가 의식의 근저를 이루고,인식의 근거가 돼 있다.자식을 경쟁의 마당에 냉정히 내던지려 하지 않고,어떻게 하면 그 경쟁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그 경쟁에 뛰어들어 이길 것을 먼저 생각지 않고,지면 죽는다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그야말로 민족주의적 패배의식이다.우리 국민의식도 그러하고 우리 국가정책도 그러하다.오랜 피해의식 속에 살아온 민족주의의 결과다. 그것은 20세기도 아닌 19세기식 민족의식이며 민족주의다.세계는 벌써 21세기에 들어와 있다.시간적으로는 20세기지만 경쟁의 양태는 21세기를 오래전에 넘어서 있다.광복50주년.무엇을 광복할 것인가.「보호」의식을 버리고 「경쟁」의식을,「민족주의」를 버리고 「탈민족주의」를 광복해야 한다.그것이 21세기 민족이 살아남는 길이고 일어나는 것이다.
  • 신생 한국의 정치상황(새로쓰는 한국현대사:27)

    ◎“동족상잔 막자”… 김구중심 「대북협상」 강격 제기/5·30선거서 「보수」 약화… 이대통령 자유당 추진 분단정권의 수립후 남과 북에서는 각각 정권을 확고히 하기위해 총력을 기울였다.신생 대한민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좌익과 북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 나갔다.또 정치적으로 적과 동지가 생겨나고 정치상황도 변화했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통일독립촉진회를 주축으로 한 남북협상파는 미소 양군의 철수와 민족자주권을 주장하며 북한과의 평화협상 노력을 기울였다.그러나 목적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이런 와중에 북한의 조종을 받는 좌익의 대정부 무장봉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남한에서는 마침내 19 50년 5월 5·30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를 구성하고 반공정책쪽으로 기울었고 얼마후 이 땅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좌익·대북견제 강화 우리는 분단정권 수립후 전쟁발발까지의 기간중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즉 당시 정치세력의 흐름을 적지않게 주도했던 통일독립촉진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주로 남북협상파를 주축으로 결성한 이 통일독립촉진회는 세력을 가진 한독당을 얼마만큼 끌어들이느냐를 놓고 고심했다.남로당의 반정부 무장봉기가 극성을 부리고 좌우의 대립이 거세지는 과정에서 남북협상파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막자는 환상에 기울었다. 이 통일독립촉진회 결성에는 김구 엄항섭 조완구 등이 발기인회를 만들 때까지 참여했다.통일독립촉진회의 주장은 ▲미소 양군의 한반도 동시 철수를 통한 민족자주권 쟁취▲남북 제정당및 사회단체의 정치협상등이었다.김구등 한독당의 일부인사는 초창기 다소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1948년이 지나가고 49년에 접어들면서 38선과 산악지대에서의 남북간 무력대립이 심해져갔다.이때 북한은 남북 제정당지도자협의회를 열어 그 협의회에서 남북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선거지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해왔다.그 내용은 「남북에 현존하는 정권에 남북총선거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고 외국군대를 철거시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의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운동」제의에 대해 김구는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반면 김규식은 소극적이었다.당시 김구의 심경은 그가 1949년 3월21일 「신민일보」사장과의 회견에서 밝힌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김구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우리민족의 생존권과 우리의 주권을 획득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민족자결정신에서 미소 양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고 남북협상에 의해 우리의 통일정부를 우리의 손으로 세우는 것입니다.혁명세력과 반역집단이 합작할 수는 없으나 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김구는 이 회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공격하고 혁명세력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등을 통해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호소했던 것이다.「혁명세력끼리의 남북협상」으로써만 동족상잔의 불행을 막을 수 있으므로 그 운동이 실패하더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다.이에 대해 김규식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김규식은 이미 서로 다른 정권이 성립한만큼 현실적으로북한의 제의가 불가능하며 자칫 북한 공산당의 계략에 빠져들 수 있다는 신중론이었다.한독당내의 반공주의자들은 물론 김규식의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었고 끝내 통일독립촉진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1949년 4월을 넘기면서 북한은 남조선민전과 북조선민전을 합하고 인공수립에 참가했던 남한의 우익 혹은 중도좌파 정당을 참가시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을 서둘렀다.북한은 남한의 한독당,민족자주연맹,통일독립촉진회를 이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성과는 없었다.그러던중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결성대회가 6월25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다. 김구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대회가 이틀째 접어든 19 49년 6월26일 안두희라는 현역장교의 저격으로 그의 거소 경교장에서 생애를 마쳤다.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상을 추구해온 김구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렇게 마감했다.그 나이 73세였다. 해방공간에서 한때 김구는 이승만과 우정을 나누었다.그들은반탁운동에서는 협력했다.그러나 김구는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에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승만과 사실상 정적의 사이가 되었다.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더욱 그러했다.그리고 김구는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남북협상의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승만은 김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이승만은 김구가 남북협상을 주장하면서 지난날 임시정부 지지를 맹세하는 단체를 조직한다고 비난했다.또 김구가 다음해 예정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기 지지자들을 당선시키려는 준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반정부 운동을 선동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협상에 미련” 못마땅 이승만은 김구의 저격범 안두희를 김구의 측근으로 보았다.이승만은 1949년 6월28일 미국의 친지 RT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두희를 한독당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로 단정했던 것이다.이어 이승만은 이 편지에서 안두희가 김구를 방문했을때 비서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둘이서 비밀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하고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고썼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편지내용을 어느 한구절도 인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제헌국회 안에도 이승만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다.그러나 부분적으로나마 반대파들을 통제해나갔다.이승만은 자신이 유엔대사로 임명한 조병옥도 사실상 경계했다.유엔에 남아있기를 희망하는 대통령의 뜻도 능히 거역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쪼들려도 개인자금을 조달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조병옥이라고 평가했다.특히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부장관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민족주의세력 득세 어떻든 이승만은 임시변통으로 사람들을 쓰고 부려먹었다.조병옥도 그러한 케이스였고 뒷날에는 정적이 되었다.초대 주미대사였던 장면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리하여 서서히 정치판도가 변화하는 가운데 1950년이 다가왔다.그해 5월30일 제2대 국회로 가는 5·30선거가 실시되었다.그 결과 대한국민당,민주국민당,국민회등 기성 보수정파의 원내세력이 줄어들었다.반면 민족주의 세력을 포함한 중간파가 약간 두두러졌다.특히 여당입장에있던 대한국민당과 원내 제1당이었던 민주국민당이 무소속에 밀려 소수로 몰락해버렸던 것이다. 19 50년 5·30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기반을 약화시켰다.무소속으로 자기 주장을 국민들에게 호소해왔던 이승만은 정당을 등에 업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이승만은 자기가 만들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중심으로 자유당을 서서히 엮어나갔다. ◎이정권·민국·한불업계 낙선 공작/“김성수·김준연 남감찹과 내통” 몰아/현야 경찰서장 교체… 중진들 대거 탈락 1950년 5월 실시된 5·30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이 카운터파트인 민주국민당과 한국독립당등 경쟁 상대들에 대해 조직적인 선거방해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긴급 입수한 조인트 위카(JOINT WEEKA),즉 주한미국대사관 주재 무관들이 작성한 주간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이 조인트 위카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 정권은 선거전 민국당과 한독당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했으며 대대적인 경찰인사도 단행했다.조인트 위카 13편(50년3월31일자)에 따르면 이승만정권은 대한정치공작대를 통해 민국당 중진들이 군경에 잠입한 남파간첩들과 연계된 것으로 조작했다.이는 남북 분단정권 수립후 남쪽에서 좌익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던 시기에서 주효한 전략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 보고서는 풀이하고 있다 정치공작대는 그해 3월20일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수사를 위해 경찰 1백명으로 구성한 정보조직으로 김성수,조병옥,백관수,김준연등 민국당 중진들이 간첩과 내통한 것으로 조작했다.이 공작에는 윤치영 임영신 이범석등이 가담했고 특히 윤치영이 이끈 여당격의 대한국민당이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조인트 위카는 기록하고 있다(조인트 위카 16,50년4월14일자).대한국민당은 70여명의 입후보자를 내세워 민국당의 이슈를 혼란으로 몰아갔으며 민국당을 패배시키려는 선거전략도 구사했다(조인트 위카 13,50년 3월31일자). 조인트 위카는 이어 정치공작대 사건은 결국 4월중순경 조작극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이승만 지지세력의 가장 큰 적수였던 민국당과 한독당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한편 이 정보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정권은 선거에 앞서 5월초 미군정 시기부터 민국당이 장악했던 지방 경찰서장직을 대폭 바꾸는 바람에 민국당의 중진들이 선거에서 대거 낙선한 사실도 들추어냈다.
  •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미 상원외교위 증언

    ◎가까운 장래의 미 외교정책 목표/미국은 한·일·중과 불필요한 대결말라 헨리 키신저 전미국국무장관은 13일 미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가까운 장래의 미국 외교정책목표」에 관해 증언했다.키신저의 증언을 요약한다. 냉전이후의 외교정책 방향을 어떻게 세워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진정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난제중의 하나이다.냉전 때의 문제보다도 덜 위험하지만 한층 복잡해 거의 모든 기본요소가 동시에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방향감각을 되찾는 것과 흡사하다. 너무도 많은 미국인들이 외교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들이 모두 달성되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세계는 지금 틀을 짜면서부터 미국이 배제된 결정들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이같은 추세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미국은 건설적인 세계질서의 틀을 잡아갈 능력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제한없는 선택의 장으로 외교정책을 여기고 있고 국제적 약속에 대해 참여나 철회의 결정을 언제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이해한다.냉전에서 이긴 미국인들은 외교란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경제와 기술의 중요성은 급속도로 높아져 간다.현재 세계에는 비군사적 결정에서 힘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6,7개의 주요국가들이 있다. 이같은 국제질서에서는 한 국가의 지배적 우세 아니면 힘의 균형 등 두가지 길만이 안정을 보장한다.그런데 국민 여론을 통한 미국의 정치는 곤란하게도 이 두가지 접근 모두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헤게모니는 힘의 소진을,힘의 균형은 끝없는 긴장을 뜻하기 때문이다.새로운 세계질서는 균형개념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이다.과거에는 정복을 통해서만 균형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경제와 기술이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미국 뿐아니라 모든 주요국가들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있다.이럴 때 이론적으로 미국은 지난 19세기 최강국 영국이 취했던 「아주 특별한 경우외에는 특정 편을 들지 않고 모두와 좋게 지내고자 한」「멋있는 고립주의」를 추구할 수 있으나 걸림돌이 너무 많다.또 미국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가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한 국가다.세대간에 역사적 경험의 상이함이 정책결정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데 결국 배타적이지 않는 국익바탕 주의냐 아니면 소위 다자간 국제주의냐의 갈등으로 귀결된다고 할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노선은 다자간주의 쪽에 기울어져 있다.심한 국수적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면 국익과 국제 콘센서스를 양 극단으로 구별하지 않는다.실제 세계에선 뉘앙스의 차이일 따름이다.이런 점들을 명심한 뒤 유럽과 함께 현 미국 외교정책의 「사고지역」이라 할 아시아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은 최근 수년간 때로 불필요하게 중국·일본등 여러 아시아국가들과 동시에 불화에 휩싸임으로써 아시아정세에서 나오는 이득을 얻는데 실패했다.미국은 아시아 주요국가들과 동시에 대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외교정책의 좌우명으로 삼아야한다. 현재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은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는 과도기에 처해 있고 이같은 변형은 내부적으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간의 긴장을 조성한다.기존의 동맹관계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정치제도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꿔지는 중이며 외교정책의 방향도 똑같이 그럴 전망이다.자신을 낮추고 숨기는 정치시대는 끝나 한층 민족적이 되고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 될 것이다. 중국은 등소평으로부터 차세대 지도층으로의 권력이행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짐작된다.그럼에도 등이후가 안정되는 데는 수많은 변수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경제적 성장은 어쩔수 없이 정치체제로 하여금 최소한 산업정보사회에 발맞추는 시늉을 내도록 할 것이다. 한국은 통일에 대한 욕망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아시아에서 경제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국제주의와 정치적 결속에 큰 효과를 발휘하는 민족주의간에 긴장을 야기하고,미국의 정책이 변화의 와중에 있음을 감지한 결과등으로 현존의 동맹및 우방정책에 대한 재고압력을 일으키고 있다. 최후로 남아있는 분단국인 한국은 통일문제에 국가의 온 신경이 집중될 것이다.합법적인 상대로 취급해 주지 않으려는 북한의 전략과 맞서야 하는데 핵문제 때와 같이 북한은 미국과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미국은 북한의 경직성이 세계경제에서 배제된 데서 연유한 만큼 접촉을 통해 그들의 고립감을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나 한국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있어 충돌의 소지마저 안고 있다.나아가 한국은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자신의 통일추구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해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계속 지금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면 한반도의 상황도 나쁜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 미·중 관계가 조속하게 회복되지 않고 대립이 심화되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은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며,한국은 어쩌면 화염통으로 변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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