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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완의 혁명」 4·19(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7)

    ◎「3·15마산시위」로 촉발… 한국현대사의 분기점/「혁명」·「의거」·「민중항쟁」 등 시각따라 평가 달라 1960년 4월19일 국민은 자유당 독재정권에 저항해 분연히 일어서 일주일만에 이승만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냈다.비록 1년여 뒤에 일어난 「5·16」군사쿠데타로 그 꿈은 좌절되지만 「4·19」가 민주주의를 추구해 온 한국 현대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4·19」는 「3·15」부정선거와 이에 따른 「3·15 마산시위」로 직접 촉발됐다.그러나 이와 관련된 학생시위는 2월28일 대구에서 처음 발생했다.학생들이 반정부시위를 벌인 것은 광복이후 처음이었다.28일은 민주당 장면 부통령후보가 대구유세를 가진 날로 일요일이다.집권세력은 학생들의 유세장 참석을 막으려고 일요일인데도 고교생들을 모두 등교시키기로 했다.명목은 학교에 따라 달랐다.경북고교는 학기말시험 일정을 이날로 앞당겼고 대구고교는 전교생이 토끼사냥을 한다고 했다. ○대구서 첫 반정부 시위 학생들은 반발했다.28일 등교한 경북고생 8백여명은 하오 1시5분쯤 교문을 나서 시내 중심가를 돌며 1시간50분동안 시위를 벌였고 대구고·경북여고 학생들도 뒤를 이었다.이날 학생 2백50여명이 연행되지만 정부는 시위학생 처벌이 민심에 어긋날까 염려해 그날로 모두 석방했다. 학생시위는 3월5일 서울에서 다시 불붙었다.장면후보가 서울운동장에서 정견발표를 마친 뒤 종로4가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자 학생이 대부분인 군중 1천여명이 뒤따랐다.퍼레이드를 끝낸 하오 5시10분쯤 시위가 시작됐다.경찰은 경찰봉을 휘두르는 한편 기마경찰을 동원,곧바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어 8일에는 대전에서,10일에는 수원과 충주,12일에는 부산·청주,13일 서울,14일에는 서울·부산·인천·포항에서 학생시위가 벌어지는등 자유당정권에 대한 저항은 전국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됐다. 제4대 정·부통령선거가 실시된 3월15일 무장경찰이 거리거리를 지키는 가운데 동이 텄다.당시 인구 15만 정도인 남녘의 항구도시 마산은 어느곳보다 시끄러운 아침을 맞았다.상오 7시 투표가 시작됐지만 민주당참관인은 대부분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자유당원,경찰,반공청년단등 친정부세력이 야당 참관인의 출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불만은 시민들 속에서도 터져나왔다.많은 마산시민들이 투표용지조차 받지 못해 선거를 할 수 없었다. 시민들은 자연스레 오동동 민주당사무실로 모여들었다.상오 10시30분 민주당 마산시당은 스스로 「선거포기」를 선언했다.그날 저녁 민주당사 앞에 시민들이 몰려 있을 때 반공청년단원 10여명이 차를 타고 몰려와 마구 몽둥이질을 하고는 달아났다.분노한 시민·학생들은 시위대로 돌변했다.시위대가 남성동파출소 앞에 이르자 소방차에서 물벼락이 날아왔고 시위대는 돌을 던졌다.이윽고 총성이 터지면서 앞선 학생이 쓰러졌다.하오 8시쯤이었다.시위대는 일단 흩어졌지만 『경찰이 학생을 쏘아 죽였다』는 소식이 시내에 퍼지면서 격분한 시위대와 총을 쏘는 경찰간에 유혈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다음날 마산시내에서는 일대 검거선풍이 불었다.경찰은 시위를 민주당 마산시당이 사전계획한 「폭동」으로 몰아붙이는 한편공산간첩이 개입됐다는 쪽으로 몰고갔다.이기붕 부통령당선자가 『총을 줄 때는 쏘라고 준 것』이라고 말해 문제가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마산시위서 10명 희생 하지만 마산사건은 곧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민주당은 물론 국회와 대한변호사협회,심지어 자유당까지 자체 조사단을 파견해 진상을 조사했으며 검찰도 수사팀을 현지에 보냈다.경찰이 주머니에 불온삐라를 만들어 숨진 학생 주머니에 집어넣었다든지,북마산파출소 방화범을 조작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 3월26일 발포·고문 경찰관 5명이 구속됐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잦아들던 4월11일 김주열(당시 17세)군의 시신이 마산시청 뒤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됐다.전북 남원 태생인 김군은 마산상고 입학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3월15일 밤 김군은 형과 함께 시위행렬에 가담했다가 행방불명됐다. 그 김군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바다에 떠오르자 다시 전국에 분노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마산에서는 이날 저녁 시위대 3만여명이 시청·파출소·소방서등 공공기관을 습격했다.하오 9시30분쯤 마산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또다시 총을 쏘았다.1·2차 마산시위에서 희생된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다. 전국에서 시위가 잇따른 가운데 4월18일 서울에서 고대생들이 시위에 나섬으로써 「4·19」에 불을 지핀다.18일 낮 교문을 나선 고대생 3천여명은 경찰의 저지를 뚫고 태평로 국회(현 서울시의회)앞까지 진출했다.학생들은 도로에 연좌해 『3·15 부정선거를 철회하라』며 농성을 벌였다.시청·광화문등 주변에는 시민·고교생등 1만여명이 모여 이들을 격려했다.고대생들이 유진오 총장의 설득으로 4시간 반만에 농성을 풀고 학교로 돌아가는 도중 동대문시장 앞에서 정치깡패 이정재 일당이 이들을 습격했다. 고대생들이 깡패들에게 당한 사실이 보도된 4월19일 아침 서울은 분노로 들끓었다.서울대를 비롯한 10여 대학 학생들이 상오중 시위에 들어갔고 고교생들이 뒤를 이었다.시위군중은 순식간에 10만명을 넘어서 하오1시40분쯤 경무대(현 청와대)앞 저지선에 다다랐다.경찰의 일제 사격에 군중은 잠시 흩어졌지만 수는 더욱불어났다.정부는 바로 계엄을 선포했다. ○이승만 하야로 새 국면 이어 정국은 숨가쁘게 돌아갔다.21일 국무위원 일괄 사퇴를 시작으로 23일 임기가 남은 장면부통령이 사임했다.24일에는 이기붕이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25일 하오 3백여 대학교수들이 「이승만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이승만은 26일 드디어 하야성명을 냈다.제1공화국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4·19」전기간에 걸쳐 전국에서 1백86명이 숨지고 6천여명이 부상했다. 「4·19」는 혁명인가,의거인가,아니면 민중항쟁인가.발생 35년이 지났지만 「4·19」에 대한 평가는 아직 분명하게 내려지지 않았다.따라서 「4·19」를 부르는 이름도 「4월혁명」「학생의거」「4월민중항쟁」등 다양하다.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한쪽에선 학생들이 주도해 우연히 일어난데다 실제 이룬 것이 없다고 보아 의거라고 해석한다.또 「4·19」가 반독재투쟁을 거쳐 「반외세 민족통일」을 제기했다고 비중을 두는 쪽은 「민중항쟁」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처럼시각이 엇갈리는 까닭은 「4·19」가 지금도 우리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당대의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결국 「4·19」는 어느 시점까지 미완의 혁명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19」엿새 뒤인 25일 하오 서울시내에서 「이승만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대학교수들.이승만이 다음날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제1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미 CIA 「한국정세 보고서」/미 “장면정권 2년이상 못 버틴다” 예측/군사쿠데타 발생가능성엔 회의적/“서방과의 연대는 지속할 것” 전망 우리의 현대사에서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60년대 초는 격동의 시기였다.독재를 거부한 국민의지가 열매를 맺는가 싶더니 1년여만에 군사쿠데타로 뒤집혔다.미국은 이 무렵 한국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정부문서 가운데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한국 정세에 관한 예상 보고서」를 발굴했다.1960년 11월22일자로 된 이 보고서는 이후 몇년동안 전개될 한국의 정치상황을 내다본 것이다. CIA는 먼저장면정권이 2년이상 버티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국회에서 다소 우위에 있긴 하지만 당면한 숱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리라고 보았다.또 60년 3∼4월에 활동을 개시한 「혁명세력」도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정치적 균형이 새로 정착되기 전에 지도력의 변화와 세력 재배치가 있을 것이며,이러한 변동은 보수정당 우위에서 얼마간 벗어나 사회주의 세력의 신장을 가져오리라고 예측했다. 보고서는 이어 『서울정부가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면 불안한 상태가 유지돼 권위적,또는 혁명적 지도자들에게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그러나 군사쿠데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 내 상황이 두드러지게 악화돼야만 군부가 민간정권을 대체하려 들 것』이라고 분석한 뒤 『현재로선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인들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방어와 경제력 유지를 위해 미국등 서방과 연대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어갈 것으로 자신했다.그러면서도 ▲민족주의 감정 대두 ▲통일에 대한 열망 ▲냉전체제 아래 한국의 허약한 위상에 대한 분개심등이 중립주의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밖에 장면정부가 일본과 적극적으로 새로운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일관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으며,특히 『한국 대중의 새롭고 약간은 과민한 민족적 자존심이 이를 복잡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19」와 「5·16」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간시점에서 작성된 미 CIA 보고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 결정에 활용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난 자료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차장 ▲김성호 〃 기자 ▲김영중 조사부 〃
  • 총선 9일 앞으로… 러시아 전문가 전망

    ◎러 공산당 의석 20∼25% 따내 제1당 될듯/좌익세력 연합해도 정당선 미달/“민주주의·시장경제” 기조 불변 러시아 언론과 정치분석가들은 12월 총선에서 대체로 공산당이 20∼25%정도의 의석을 차지하는등 좌익정당들이 약진할 것으로 본다.공산당이 4백50개 의석 가운데 90∼1백12석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그러나 공산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러시아의 현정치·경제정책의 기조가 크게,그리고 급격하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총선전망◁ 발레리 솔로베이 고르비재단연구원은 공산당이 20∼25%로 제1당이 될 가능성을 점친다.이어 민족주의계열인 러시아공동체당이 10∼12%,여당인 「우리조국­러시아당」(일명 권력당),좌익쪽인 농민당,개혁정당인 야블로코블록이 각각 10% 안팎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솔로베이씨는 따라서 공산당과 농민당등 좌익계정당들이 1백35∼1백56석정도(현재는 1백20석)를 확보할 것으로 분석한다.빅토르 린닉 전프라우다편집장도 40대이후의 유권자가운데 15%가량이 공산당에 투표,공산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이렇게 보는 이유는 공산당 지지유권자들의 두드러진 활동성,공산당 지방조직의 막강함,선거캠프의 풍부한 경험때문이다.하지만 공산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의회를 전적으로 지배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실제로 공산당과 블록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농민당·러시아공동체당등의 소속의원들을 모두 합해도 개헌선인 3분의 2의 의석확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책변화가능성◁ 전문가들은 대체로 공산당이 의회를 지배하더라도 현재 러시아가 취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두 중심축은 그대로 유지해갈 것으로 분석한다.파벨 칸델 과학아카데미 유럽연구소연구원은 사람들이 옐친의 집권이래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회의를 가지고 있긴 하나 여론조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시장경제·언론자유·다당제등에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주가노프 공산당당수는 이를테면 국가의 가부장적인 역할,사회보장제도의 확대,슈퍼파워로의 복귀등을 주장하고 이것이 다분히 먹혀들어가고 있다.솔로베이연구원은 최근 「사유화」를 개정하자는 공산당움직임은 국유화를 얘기하는 것보다는 「소유의 재분배」에 중점을 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한다.물론 공산당강령에는 전통적인 마르크시스트 용어와 반자본주의적인 정강들이 적지않다.문제는 정강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실행능력이다. ▷국내정치◁ 예브게니 바자노프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은 공산당이 득세할 경우 옐친대통령이 공산당의 입각을 권유할 것으로 보았다.하지만 공산당은 내년 대통령선거까지의 과도정부에 들어가기보다는 외곽에서 특유의 선동정치를 일삼을 것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혼돈이 생길 수 있다고 관측한다.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공산당의 총선승리로 국내정정에 일대 혼란이 올것으로는 보지않는다.러시아 공산당은 많이 변했고 또 옐친정부가 난관에 부딪힐때마다 어려움을 덜어주기도 했다.체첸사태에 대한 정부입장을 지지했고 올해 예산안에서도 찬성해줬다.93년 쿠데타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조기에 매듭짓는데 대해서도 찬성,옐친정부의 수고를 덜어주기도 했다. ▷대서방관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공산당이 반드시 서방에 대해 대립구도를 형성하거나 편파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빅토르 린닉 전프라우다편집장과 바자노프부원장은 『러시아는 새 무기경쟁에 뛰어들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새 이데올로기도 부족하다』고 말한다.이제 서방은 러시아원자재의 주 바이어이며 신용보증자라는 것이다.피폐해진 산업을 보완하기 위해 러시아는 돈을 필요로 하며 가스·오일·비철금속등을 서방에 팔아야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말하자면 공산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옐친정부의 정책을 계승해야만 국부를 축적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공산주의 리더들은 또 현재의 세계기구에의 참여를 적극 지지한다. 결론적으로 공산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국내외에서 우려하는 러시아생산수단의 국유화,시장가격통제등 「옛날의 공산당」으로 회귀하는 일은 현 러시아 상황으로 볼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아시아­태평양 문화포럼」 요지

    ◎“아태 문화교류센터 조속 건립해야”/문화다양성 보존위해 회원국 협력을 21세기를 대비한 국가간 문화정책 개발과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아시아·태평양 문화포럼」이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다.이 문화포럼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26개국 문화정책 책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문화산업 측면에서의 교류와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28일 「정보화사회의 문화산업에 대한 유네스코의 접근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발제강연에 나선 밀라그로스 델 코랄씨(유네스코 도서및 저작권국장)는 『현재의 문화적 표준화에 대한 최상의 「해독제」는 초정보고속도로를 포함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다원주의적인 문화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가능한한 많은 다양한 문화상품을 창조하고 생산해 전세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코랄씨는 『문화의 풍부한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유네스코 헌장의 기본원칙들 중의 하나인만큼 이같은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관련 회원국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면서지역 네트워크를 발전시키고 네트워크의 집행사무국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적합한 조직을 아·태지역 안에서 확정,관심있는 정부와 관련 민간부문과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콜린 머서교수(호주 그리피스대학)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험과 아태지역의 문제」라는 발제강연을 통해 『현재 문화산업의 급속한 팽창은 아·태지역에 커다란 기회와 위협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처럼 세계화된 문화의 하부구조와 유통경로가 생산에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못한다면 아·태지역민들은 또다시 단편적인 문화에 정복될 것이 확실시된다』고 주장했다.콜린 머서교수는 특히 『세계성과 토착성의 관계를 문화적 측면에서 절대적 이분법으로 보기보다는 잠재적으로 유익한 상호관계로 보는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강조했다. 29일 발제 강연에 나설 카르멘 파딜라씨(필리핀 문화예술위원회 사무국장)는 미리 발표한 「예술가­정부와 민간 모두와 일하는 문화산업 분야의 중요한 역할자」란 논문에서 『아시아·태평양의 문화는 서로 다른 사회체제·국가여건·전통때문에 다양하지만 문화산업은 기업의 생산품 제조를 통해 이 다양한 문화들을 서로 연결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인종민족주의나 지역의 이해 또는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서 『아시아·태평양의 문화정책은 문화적 영향력의 확대와 그 나라의 문화적 독립과 국가의 정체 보호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세계수준의 문화생산품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개별국가의 잠재력을 강화하는 것과 지역의 강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광억 교수(서울대)도 30일 발표할 발제논문 「문화산업의 사회및 경제적 영향」을 통해 『문화산업은 결국 자본과 기술의 합작으로,시장원리에 의해 생산되고 실천되는 것인만큼 다자간의 공동관심사를 다루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교수는 여러나라들이 연합한 지역문화 교류및 발전을 위한 센터의 건립을 통해 각국의 문화실태,민족문화의 특성,민간예술 생산과정등에 대한 조사연구 활동을 수행할 것을 제안했다.김교수는 또 『문화산업에 필요한 기술과 시설및 지식이 국가마다 달라 그 하부구조를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문화산업의 각 장르에 대한 기술과 시설을 개방해 미발달 국가나 관련업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러시아 공산당 제1당 “유력”/새달 하원선거

    ◎42정당중 지지율 선두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러시아 공산당이 3주 후로 다가온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 선거에서 제1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 밝혀졌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산당은 약 1억 러시아 유권자 중 15%의 지지를 얻어 총선에 참가하고 있는 42개 정당·정치블록 중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의 절반가량은 투표 참가여부,또는 지지대상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공산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소련 붕괴 이후 4년만에 화려하게 재기,적기를 다시 올릴 수 있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반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공산당의 총선 승리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크렘린의 총선예상 분석에서도 공산당은 유효투표의 14%를 얻을 것으로 분석됐다. 공산당은 자체 의석만으로는 하원을 장악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과 극우민족주의자들은 시장개혁에 대한 불만 여론을 틈타 자유주의자들로부터많은 의석을 빼앗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같은 결과는 러시아 경제개혁의 장래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 총선 앞둔 러시아/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 칼럼)

    ◎겉으론 평온 속으론 혼돈/정치세력 4개로 분열… 의회 무기력·정국 불투명 가속화 오는 12월 총선을 앞둔 러시아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인다.무역수지가 점차 개선되고 현대식 빌딩건설이 러시를 이룬다.유명한 테니스 토너먼트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상점들에 가보면 이전에 보지못한 최고급의 의상,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다.고속도로나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는 사치스러울 정도의 광고판들이 범람한다.정부 공식통계를 보면 모두가 낙관적이다.최근 월평균 인플레이션이 과거의 20%에서 4%로 떨어지고 식료품 가격이 전혀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산업생산은 회복세로 접어들었고 루블화도 미국의 달러화에 비해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거리의 폭력도 줄어들고 있고 반정부 데모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관적인 것들은 실제의 러시아와 관계가 멀다.정치권은 사분오열돼 정쟁을 일삼느라 민생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집권세력은 그나름대로 분열됐고 야당은 야당대로 분열돼있다.경제수치와 관계없이 일반국민들의 가계는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범죄와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지만 치안은 여전히 마비상태에 가까워 어두워지면 외출하기가 여전히 겁난다. 총선을 앞둔 현재 정치세력은 크게 4대 세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바로 91년 공산주의 몰락 직후 세력을 장악한 소위 민주세력과 급진적인 개혁에 반대해 중도적인 개혁을 표방하는 온건중도세력,그리고 반민주세력으로 공산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들이다.앞의 2세력은 러시아의 혁명적인 동요상태에는 반대한다.그들은 점진적인 방법으로 안정을 유지시키려 한다.그럼에도 이들 진영 사이에는 통합하려는 움직임은 전혀없다.바로 2년전 민주진영은 정권을 잡았다.예고르 가이다르전총리가 러시아 정부를 이끌었고 옐친대통령의 지원을 받았다.사실 옐친대통령은 당시 자신을 민주진영이라고 밝혔다.93년 총선에 졌을 때 옐친은 생각을 바꿨다.자신을 선거에서 패배한(민주진영) 사람들과 격리시켜야한다는 것을 알았다.가이다르를 따라 다른 민주진영사람들이 정부에서 물러났다.개혁실패에 대한 좌절감,분노,사상적 괴리,개인적인 야망들 때문에 민주진영은 또 그들대로 분열됐다.정부에 몸담았던 관리들은 모두 정당을 만들어 나갔다.그러나 대다수의 정당들은 지지자가 작고 약하고 절망적이다.총선에 나가기는 역부족이다. 중도세력들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다.그들은 원래 확신에 찬 민주세력이기보다는 정권을 즐기면서 현재상태를 지속시키려는 사람들이다.옐친대통령은 현재의 중도적인 관리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옐친은 유권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몇개월전 두 중도정당의 형성을 승인했다.하지만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체르노미딘 총리가 이끄는 「우리조국­러시아」당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상당한 의석을 잃었다.두번째 정당은 현재 의회(두마)의 의장인 립킨이 이끌었으나 초기에 무너져버렸다. 반개혁진영은 바로 공산당과 민족주의 계열이다.이들은 다시 수십개의 정당으로 분열돼 있다.최대그룹은 겐나디 주가노프의 공산당이다.주가노프는 구소련 부활을 원하고 있고 서방과 다시 경쟁관계에 있길 원하고 있다.그는 나토의 확장계획,반세르비아계 정책들을 원위치시키겠다고 위협한다.민족진영은 많은 장성들과 구소련 때의 군산복합체의 관리들로 이뤄져있다.그들은 소연방 복원,초강대국 러시아 재탄생,서방체제에 대한 반감 등을 갖고 있다.가장 강력한 민족진영세력은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이끄는 자민당이다.현재 그는 15%의 의석을 갖고 있다.여기에 두 강적이 도사린다.전부통령 루츠코이와 레베드 장군이 각각 이끄는 정당들이 그것이다. 이들 4세력들­민주·중도·공산·민족진영­은 다가오는 새 의회에서 각기 동등한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옐친대통령으로서는 최고로 바라는 양상이다.하지만 93년 채택된 헌법하의 이 의회는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힘을 갖지 못한다.의회세력들은 더욱 분열돼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의회는 자의적인 대통령의 포고령을 막지도 못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각 그룹 세력을 적당히 내각에 이끌어들이거나 희생시키면서 의회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옐친이 대통령이 다시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옐친의 인기도는 바닥권이다.옐친이 다음선거에서 이기려면 주요 개혁정당과의 연합전선이 불가피하다.하지만 이것 역시 어렵다.각 진영마다 서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심지어 중도진영에서조차 현 체르노미딘 총리와 리슈코프모스크바시장 등 두 강력한 후보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있다.이러한 정치의 불투명성 때문에 정치분석가들은 옐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를 취소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펴고있다.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다시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 「법조인 사표」 초대 대법원장 가인선생 흉상 제막

    ◎“혼탁한 세상… 당신의 강직한 삶을 기립니다”/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 법원 백년사 전시실도 열어 대법원은 24일 상오 11시 서울 서초동 신청사에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1887∼1964)선생의 흉상제막식과 법원사 전시실 개관식을 동시에 가졌다. 근대 사법 1백주년을 기념하고 사법 2세기를 시작하는 의미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최종영 법원행정처장 등 대법원 관계자와 가인선생의 장손 김완규씨를 비롯한 유족 등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가인선생의 손자로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수사와 관련,검찰에 소환됐던 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일제시대때 항일 독립투사였던 가인선생은 건국 이후 48년8월부터 57년12월까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사법부의 기틀을 다진 민족주의자였으며 청렴강직한 원칙론자로서 모든 법조인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또 흉상의 맞은편 1층에 문을 연 42평 규모의 전시실에는 법원 1백년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진과 유물·유품 등 1백여점이 「사법의 역사」「법과 정신문화」「법과 시민생활」 등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전시됐다.
  • 해외동포 어디에 얼마나(서울신문 50돌 특집)

    ◎그들의 위상은 어떠한가/6대주 142국에 520만명 근면·성실로 기반 확고히/2년새 5.7% 증가… 중국에 최고 194만 거주/미 180만·일 69만·중앙아시아 46만명 생활/최근 취업·유학·투자이민 급증/망국·가난의 한 딛고 현지 빠른 적응/정·관·재·교육계서 활약 숱한 인재 배출/한민족 동질성 유지가 최대의 과제로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민사가 90여년에 이르면서 해외교민수가 5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그리 길지않은 역사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어느 나라에 얼마나 살고 있으며 그들의 현재 위상은 어떤가를 알아본다. ▷교민현황◁ 94년12월31일을 기준으로 외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해외교포는 모두 5백22만8천36명이다. 지역별로는 아시아에 2백72만,미주에 1백96만,유럽에 52만,중동에 9천2백,아프리카에 3천2백명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별로 볼 때는 중국에 1백93만명으로 가장 많다.이어 미국에 1백53만,일본에 71만,러시아를포함한 독립국가연합에 46만명이 거주중이다. 전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우리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려 1백42개국이나 된다.중국이나 미국·일본등처럼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민족이 옮겨간 경우도 있다.그러나 우리동포의 분포가 이처럼 넓어진 것은 최근 늘어난 선교이민과 태권도교관의 파견 때문이라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2년마다 해외교포의 현황을 파악하는 외무부가 92년12월31일자로 파악한 해외교포는 4백94만3천5백90명이다.해외교포는 지난 2년동안 5.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교포가 증가한 것은 교포의 2세·3세·4세가 태어났고,해외경제활동의 증가로 우리 기업등의 파견원이 많이 진출하기 때문이다. 해외교포 가운데 95%인 4백70만명은 거주국의 국적을 갖고 있거나 거주국에서의 영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5%는 상거래나 취업·유학등으로 체류중이다. ▷중국 교민◁ 중국에 한국인이 건너간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다.이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전쟁포로나 인질·공녀등의 형태로 한국인의 이주가 시작됐다.그러나 중국에 2백만의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외무부에 따르면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민의 중국이주가 급격히 증가,1907년에 7만1천명,1910년에 10만9천명,1916년에 20만명,1921년에 30만7천명이 조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방이후 80만명 귀국 1945년 이전까지 약 2백16만명의 한국인이 만주지역에 거주했으며,해방과 더불어 80만명이 귀국하고 나머지가 잔류했다. 현재 우리교민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2번째 규모다.전체의 약 97%인 1백87만명이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등 동북 3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특히 길림성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82만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중국 교민들은 해방후부터 냉전시대까지 남한과는 별다른 접촉을 가질 수가 없었다.따라서 정부도 이들에 대해 특별한 정책을 세울 수 없었다. 지난 88년부터 우리정부가 사회주의권 교민의 자유로운 모국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중국동포와의 교류가 본격화됐다. ○동북 3성에 집단촌 그러나중국교민들의 모국 방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교민들이 경제수준이 월등한 모국에서 돈벌이를 하고자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밀입국,불법취업,취업사기,절도·강도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국교민들에 대한 사증발급 심사를 강화하고,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내에서 교민들은 한인이나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경제·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또 중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한국인 혹은 북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선족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미국 교민◁ 한미우호통상조약에 따라 1903년 한국인 1백2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면서 미국 이민사가 시작됐다. 이후 1961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62만6천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이 기간 동안의 총 해외이주자 79만2천명 가운데 미국이민 비율이 79%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교민의 상당수는 한국내의 중산층,식자층 출신이며 자녀의 교육문제,경제적 이해관계,혹은 한국사회에서의 불만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다. ○구한말 하와이로 나가 이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물론 언어장벽과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직 미국사회의 주류에 진출하는데는 한계를 보이지만,최근들어 의사·변호사등 전문직 진출자가 늘어나고 있다.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씨가 대표적인 한국교민의 성공사례이다. 교민 1.5세와 2세 이후세대는 현지에서 교육,성장해 비교적 빠르게 현지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또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민 사회에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과거 음성적으로 활동해오던 친북인사의 활동도 표면화하고 있다고 외무부 당국자는 밝혔다. ▷일본 교민◁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다른 지역의 교민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태평양전쟁 발발후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강제적으로 징용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강제 징용자의 숫자는 19 45년 당시 2백10만명에 달했으나,해방후인 46년 이후 65만명이 잔류하고 있다. 재일교민들은 오사카를 필두로 나고야·고베등지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으며,주로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교민들은 본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그대로 답습,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그러나 최근에는 남북간의 국력차이가 워낙 커져서,민단과 조총련이 특별히 경쟁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교민1세들은 우리국적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일본에 귀화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민 2세이후부터는 모국과의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으며,이에 따라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이 늘고있다.지난 50년 이래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은 모두 20만명 정도다.특히 교민 2,3세들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선호해 91년 결혼한 사람 가운데 82.5%가 일본인 배우자를 맞이했다. ▷독립국가연합지역 교민◁ 현재 옛 소련 지역내에는 러시아에 11만명,우즈베키스탄에 22만명,카자흐스탄에 10만명,우크라이나에 9만명등 모두 46만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우리 교민의 2,3세들이다. 각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이들은 자연적으로 그곳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따라서 우리말과 문화적 전통을 많이 잃은 상태고,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 말고는 우리말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적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고려인단체연합회등 31개의 교민단체를 조직,모범적으로 혈연의식을 이어가고 있다.또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단체 활동,출판물 발간활동과 함께 대학교수,영농지도자를 다수 배출했다.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은 우리교민의 근면성,높은 교육수준과 사회기여도를 평가하고 있다. ○사회기여도 평가 받아 이 지역에 대해서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우리업체와 현지 교민들간의 고용과 취업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내각 안에 「민족문제 및 지역정책부」가 설치돼 소수민족과의 화합 및 육성지원 정책을 마련한다고 표방하고있으나 체첸 공화국 사태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범위를 이탈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교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민족의식과 민족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해 한글교육,전통문화 재생,학술·체육 교류를 중심으로 지원책을 마련해가고 있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4만명의 교민들 가운데 1세들을 본국으로 귀환하는 문제는 한·러·일간의 현안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추이◁ 우리나라의 최근 해외이주자 추이를 보면,80년 3만3천3백명에서 83년에 2만3천3백명으로 하강세를 보이다,86년 3만7천80명으로 다시 늘었다.이후 다시 감소해 93년에는 1만4천4백명으로 매우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사업과 취업이주는 지난 10여년동안 꾸준히 증가했다.이는 그동안의 연고초청 이주,즉 막연한 동기의 해외이주보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주형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민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도 늘어나고 있다.80년 역이주자수는 1천49명으로 그해 이민자의 2.8%였다.86년에는 역이민자의 비율이 7%를 차지했다가 89년 25%로 급증했으며,91년 40%,92년 50%를 기록한 뒤 93년에는 60.65%를 차지,이민자의 반이상이 되돌아오는 현상을 보였다. 역이주자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돼 국내에서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무부는 설명하고 있다.같은 이유로 해외이주자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최근 국내외에서 해외교민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해외동포에 대한 이중국적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교민에게 이중국적을 부여, 국내 왕래를 자유롭게 하고 각종 할동 및 재산권 행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교민의 권익을 크게 신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을 수반한다. 우선 교민들이 국적을 가진 두나라로부터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게 되고, 범죄가 발생할 경우 자국민 불인도 원칙을 고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납세·병역 등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과 비교할 때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의 형평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국민들과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
  • 서울신문 50년(외언내언)

    해방직후 광복의 환희와 함께 이 땅은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였다.36년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백가쟁명의 의견분출은 정당·사회단체의 난립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신문창간이 줄을 이었다.45년 11월까지 불과 3개월 남짓한 기간에 창간된 신문이 13종.언론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러나 이들 신문들은 거의 정당·사회단체의 대변지였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 1945년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되었다.3·1독립운동 33인의 한 분인 민족주의자 오세창을 사장으로,꼿꼿한 기개의 항일 논객 이관구를 주간으로 서울신문은 민족정론지로 출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 않고 언론보도에 공정하고 적확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한걸음 나아가 민족총력의 집결,통일과 독립완성의 시급한 요청에 맞추어 단호히 매진하는 동시에…』창간사의 한 구절이다.언론의 중립성·공명성·정확성을 천명한 이 사설은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대로 통하는 명제들이다. 창간이후 서울신문이 걸어온 반세기는 현대사의 격동기다.50년 연륜에서 서울신문은 우리언론발전에 신기원을 쌓아 올렸다. 우리나라 신문으로 최초의 조·석간제를 시행했고(49년 8·15)최초의 한글판 신문을 발행,한글문화의 선봉 역할을 다했다.(56년10·18∼60년4·19)6·25전쟁중에는 서울수복이후 포성울리는 서울에서 19일간 진중신문을 발행하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51년4·6∼4·24)신문제작의 혁명이라 할 CTS(컴퓨터제작방식)를 처음 도입,가장 먼저 납활자를 버린 것도(85년1·1)서울신문이다. 창간당시의 지향대로 서울신문은 민족 정론지로,민족역량을 집결하여 통일을 대비하는 신문으로 성장해 왔다.오늘 창간을 계기로 서울신문과 자매지 스포츠서울의 모든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공급된다.21세기 세계 일류지로서의 서울신문,그 새로운 신화창조를 50주년의 이 아침에 새로이 다짐한다.
  • 동구 공산세력 부활하는가/고실업률·빈부격차로 민심이반 심각

    ◎「러」도 집권 유력… 신좌파행진 지속될듯 공산당 출신 대통령의 탄생으로 폴란드에서는 정부와 의회 모두를 옛공산세력이 차지하게 됐다.10년 싸움 끝에 지난 89년에 얻어낸 탈공산화를 자기들 손으로 스스로 거두어들인 셈이다.하지만 이런 현상은 폴란드가 처음은 아니다.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지 6년여만에 옛동구국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산세력은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권력전면으로 되돌아오고있다.지난 92년 옛소연방 국가인 리투아니아 총선에서 사회주의 연합이 압승을 거둔 이래 헝가리,체코,슬로베니아,불가리아,우크라이나,그리고 옛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까지 사회주의 열기는 점차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92년 11월 총선에서 좌파세력연합이 의회전체의석의 35%를 차지했고 그해말을 전후해 슬로베니아,불가리아,리투아니아에서 모두 좌파들이 의회를 장악했다.93년 12월 소비예트 강제해산 직후 치러진 러시아총선에서도 러국민들은 공산당,농민당등 좌파세력과 우익민족주의 세력에 몰표를 주어 의회 다수의석을 차지하게 했다.94년 4월과 5월 우크라이나,헝가리 총선에서도 사회당이 압승을 거두었다.오는 12월 총선과 내년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러시아에서도 공산세력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어 신좌파행진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추세 뒤에는 각국 모두 공통적인 배경요인들을 갖고 있다.첫째는 공산당 몰락 뒤 집권한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실정이다.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서구자본주의를 모델로 한 급진적인 시장경제화를 무리하게 추진해 고실업률,생산하락,빈부격차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이에 대한 반발이 민심이반의 첫째 요인이었다.둘째로는 공산당 세력들이 스스로 과거의 이념적인 경직성에서 벗어나 경제실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등 실용적인 면모를 갖추었다는 점이다.이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사회주의적)자본주의의 실현」이라는 기치아래 사회보장제의 확충등을 내걸고 노약자,연금생활자등 개혁와중에 파생된 소외계층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냈다.민주세력들의 부정부패,권력다툼,무능,권위주의적인 통치방식등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도 공산세력의득세에 좋은 토양이 됐다.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몸바쳤던 발트해 3국의 민주세력들 역시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하나같이 버림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물론 이런 추세가 전통적인 공산주의의 부활로 연결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분석한다.국민들이 오랜 공산압정 끝에 얻은 자유의 귀중함을 이미 맛보았고 좌파세력 스스로가 현실적인 대안제시 등으로 체질개선을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외교에서 그동안 고수해온 친서방 일변도 노선의 수정이나 국가기업에 대한 민영화정책의 속도조절등 정책면에서는 적지않은 노선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공산당 몰락 이후 또 한번 미지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일 APEC서 드러난 신국제역학/후나바시 요이치(해외논단)

    ◎한국·인도네시아 등 신흥파워 대두 두드러져/클린턴 불참은 미국의 균형자 역할 변질 우려/한반도 둘러싼 중­일 라이벌의식 첨예화 일본 오사카(대판)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는 이지역에 새로운 권력정치 역학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후나바시 요이치(선교양일)아사히신문 미국총국장이 아사히신문 20일자에 실린 칼럼에서 주장했다.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APEC 오사카(대판)회의 무대 뒤에서 폭넓게 전개되는 APEC외교,특히 국제정치의 소용돌이는 이 지역에 새로운 권력정치의 역학이 생겨나고 있음을 예감케 한다.중·일 양국간의 라이벌관계의 격화,한국 및 인도네시아를 필두로 한 신흥파워의 대두,균형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의 변질이 자리잡고 있다.미·중·일 3개국의 국내정치 권력기반과 지도력의 취약함도 문제다.여하튼 각국간의 다각적인 상호 신뢰관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이 지역의 안정을 허물어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 동행한 미국무성 고위관료는 『이번 나의 방일 목적의 하나는 향후 중·일관계를 가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일관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양국의 관계는 일본이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서 무상원조의 공여를 중단하고 이에 대해 중국이 역사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악순환에 빠져있다.이제 일본이 중국위협론에 빠져들 것인가 아닌가.이를 미·일안보 재정립 요소의 하나로 규정지울 것인가 아닌가­를 미국은 주시하고 있다. 중국의 주변 국제환경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중국은 주변 여러나라의 「과격한 민족주의」,영토문제,핵확산을 중국에 있어 「3개의 잠재적 위협」으로 보고 있다.중국은 대만·일본·러시아·베트남의 과격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있다.일본은 그 어떤 것에도 관계돼 왔다. 「중국은 일본과 이 지역에서의 세력 싸움을 할 작정인 것은 아닌가」라고 일본정부의 한 고위관료는 말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라이벌 의식이 첨예화할 위험도 어렴풋이 보였다.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한·중 양국 정상의 공동 비판은 일반적으로 「김영삼대통령 주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중국카드」와 「역사카드」를 섞어 일본의 북한접근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듯하다. 다만 한일정상회담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김영삼대통령의 표정이 「전반은 딱딱했고 후반은 부드러웠다」고 전한다.한국외교당국으로부터는 「(일본 두들기기에) 중국에 이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남북통일에 대해서는 최후까지 반대할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인지도 모른다」라는 대중 경계감도 들린다. 중·일 쌍방은 아시아의 지역주의의 장래의 비전에 대해서도 입장을 달리한다.특히 동남아시아연합(ASEAN)이 앞장서온 동아시아와 유럽연합(EU)과의 정상대화 구상에 대해서 일본이 호주 뉴질랜드등의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중국은 인도의 가입을 요구하고 있다.인도 국내에 대두되기 시작한 「중국위협론」「인도­일본제휴론」에 손을 보는 한편 동시에 ASEAN에 대해서도 위엄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 인도네시아등 장래의 「신흥파워」후보국은 자신과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한국은 지난해 보고르회의 때 김영삼대통령이 자유화 목표 연도의 분류와 관련해서 「신흥공업경제지역(NIES)」으로 취급되는데 항의해 선진공업국의 일원으로 이름을 내세웠다.이번에는 한·미·일 외무장관회담의 정례화를 제안했다.한국이 이니셔티브를 발휘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방일 중단을 사전에 전화로 알려 사과한 또 한 사람은 수하르토 대통령이었다.「고어부통령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나에게 직접 전화해 주길 바란다」고 조크해 수하르토대통령을 웃게 만들었다.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의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APEC관련 외에 보스니아사태,남중국해문제등 다양한 국제문제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 미국측은 고어부통령,크리스토퍼국무장관이하 많은 각료가 동석했다.수하르토대통령은 비행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마치 각의를 연 듯했다」고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회담에서는 클린턴대통령이 일본의 자유화노력에 자극을 주기 위해 연명으로 무라야마총리에게 서신을 보내자고 제안했다.수하르토대통령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지만이 에피소드는 미국이 아시아의 신흥파워와의 연계플레이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의 종래의 대미관계면에서의 특권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시대의 흐름에 좇아서 아시아정책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실했다. 냉전시대의 안전보장의 틀로 미제품의 수출시장으로서의 아시아를 접목한 정책,즉 군사와 시장만으로는 아시아는 미국을 태평양파워로서는 인정하지만 아시아파워로서는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을 우려가 있다.클린턴대통령의 APEC불참은 미국의 이 지역과의 정치관계가 실밥이 터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계속해서 이 지역의 안전보장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것은 틀림없다.다만 지역의 일원으로서 관여하는 「내부의 균형자」보다는 「외부로부터의 균형자」에로 변질할 위험을 안고 있다.이 지역으로부터 추출되는 데에는 과도하게 반발하면서 국내정치적으로 득점이 될 때만 깊이 관여한다는 미국관이 번지면 그것은 이 지역과 미국의 관계가 멀어지도록 촉진시킬 우려가 있다.
  • 라빈총리 암살의 충격(사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비극적인 암살사건을 대하면서 우리는 평화를 이룩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통감하게 된다. 지난 9월24일 라빈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간에 2단계 팔레스타인 자치확대협정 합의문이 가조인됐을 때 양측 극우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었다.『대이스라엘 건설의 꿈을 파괴하는 반역을 저질렀다』고 보는 이스라엘 극우단체들은 공공연히 라빈암살을 촉구해왔다. 우리는 또 30년 전쟁끝에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을 이끌어냈던 고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이 조약체결 2년만인 81년 이집트 극우세력들에 의해 피살된 사건과 너무나 유사하다는데 경악치 않을 수 없다.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공격적이고 비합리적인 파괴세력이 존재하게 마련이지만,문제는 이런 소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다수의 지지를 받는 합리주의자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소 라빈 총리를 알고있는 사람들은 라빈총리 자신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든기회를 활용해 중동에 평화를 달성하려 했다고 전하고 있다.세계는 자기희생의 위험앞에서도 꿋꿋이 평화를 추구했던 한 위대한 인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라빈이 구축해놓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평화기반이 금방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중동평화 노력의 방향과 추진력이 일정궤도에 올라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라빈총리를 승계한 시몬 페레스 총리대행도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과의 평화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른 중동국가들도 이번 사태를 자체내의 극단세력을 단속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이번 사건이 비록 비극적이긴 하지만 중동의 평화노력은 계속돼야 하고 세계는 중동의 평화세력을 지지해야 한다.
  • 민단­조총련 해방 50돌 합동 심포지엄/도쿄서

    ◎“이젠 이념굴레 벗고 재일동포 화합 이루자”/본국 정세 휘말리지 말고 우리위치 찾을때/분파주의 벗고 귀화자와의 알력 극복해야 해방 5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들의 새로운 존재 형태를 모색하는 심포지엄이 3일 도쿄에서 개막됐다.이번 심포지엄은 3일 「재일동포의 화합」을 주제로 주제발표와 토론을 가진데 이어 4일 「재일동포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주제로 계속되며 오는 18,19일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생활과 경제활동」,「재일동포의 민족교육과 문화」를 주제로 열린다. 남북분단과 재일동포사회의 분열속에서 한국적과 조선적을 가진 동포들이 함께 자리를 하면서 재일동포의 공동체를 진지하게 모색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특히 이번 심포지엄과 관련,조총련측이 「반동분자들의 책동」이라고 비난하고 민단이 소극적인 가운데 심포지엄이 열린데 대해 참석자들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이날 참석자들의 주제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경수(45·리쓰메칸(입명관)대 조교수)=재일동포의 분열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초기에는일본 공산당의 영향,그 뒤에는 남북분단에 의해 분열됐다.한국전쟁의 결과 분열이 결정적으로 됐다.당시의 분열은 조직의 분열이었다.그러나 65년 한일협정결과 재일동포 사회까지 분열에 이르렀다.이같은 분열은 재일동포의 운동이 본국직결형이었기 때문이다.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운동 속의 하나로 존재하도록 상대화를 못시킨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신기수(64·텐리(천리)대 강사)=해방당시 재일동포들은 노래와 춤으로 해방을 맞았다.일본인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동포들은 자각속에 해방을 맞았고 그 정열로 노천학교를 지어 후세를 교육하기도 했다.한국은 정치범이 8월16일 풀려났지만 일본은 2달뒤에나 풀려났다.당시 풀려나는 일본인 정치범조차 맞이하러 간 사람의 90%는 재일동포였다.이처럼 세상변화를 기대한 재일동포들이었지만 계급투쟁 우선으로 나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조련(재일본조선연맹,조총련의 전신)은 2회 대회때까지 동반자인 민족주의자를 모두 추방해버렸다. ▲김총령(52·통일일보 편집장)=재일동포 사회의 분열이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운동 지도자들의 첨예주의 과격주의 운동속에서 출세하려는 사람이 결국 동포운동을 미군정과 대립하도록 가져가고 탄압받게 만든 면도 있다.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올해 해방50주년을 화합하지 못한 채 맞이했다.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3세들이 재일동포 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만큼 본국정세에 휘말리는 운동이 아니라 재일동포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인식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또 여러가지 단체와 운동의 존재의의와 권리가 인정되는 민주적 운동이 돼야 한다.상대를 향해 「적색 스파이」,「안기부 앞잡이」등으로 「레테르화」해서는 안된다. ▲김규일(57·재일동포의 생활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재일동포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스스로 문제해결능력을 높여야 한다.민족적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바람직스럽다.지방할거주의,정치적 분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사회적으로는 귀화자가 늘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귀화자와 비귀화자간의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또 일본 각지에서 풀뿌리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재일동포 시민운동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 강력한 저항이 테러 극복의 길/르 몽드(해외사설)

    우리가 가능한 모든 예방조치를 취하고 검문 검색을 강화해도 소용이 없다.경계를 배가해도 마찬가지이다.그런 방법으로는 테러에 위협받는 민주시민의 절대 안전을 결코 보장받을수 없다.광신적 열광에 눈이 멀어 시민들을 무차별 살상하려는 시도를 맞아 경찰과 군인을 거리에 배치하는 정도의 일밖에 할수 없다.그들의 시도를 좌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군경의 배치는 공공자유를 존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무력함을 고백하면서 항복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위험을 줄일수 있는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역사적 경험상 질서유지행동이 재해를 줄여온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지난 17일 파리시내 출근길 테러로 이런 예방조치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어느때보다 확고하게 야만적인 테러행위를 비난하는 길밖에는 없다.이제 테러행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테러에 저항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테러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만장일치로 밝힌 점은 환영하지만 테러와의 투쟁에서 두가지 의문점이 있다.하나는 조사진행에 관한 것이다.자크 시라크대통령은 몇주전 프랑스 당국이 폭탄 테러자들의 메시지를 잘 해독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당국은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장 루이 드브레 내무장관은 칼레드 켈칼이 죽은 다음날 사건은 종결됐다고 밝혔다.하지만 이는 허풍처럼 들렸다. 두번째는 시라크대통령과 리아민 제루알 알제리대통령의 22일 뉴욕 회담에 관한 것이다.사회당 지도자들과 극우민족주의자들은 이 회담을 시기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다음달 알제리 대통령선거 이후에 회담을 갖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아무리 잘해도 프랑스 대통령이 선거전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또 중립적이라고 주장해도 알제리 현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 러시아 총선 군인사 대거 출사표

    ◎전국 225곳중 150곳서 출마 예상/“군 사기진작” 기치로 전 국방차관 등 정당참여/그라초프 현 국방장관도 선거직전 창당할듯 두달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총선에 전·현직 군인사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 정가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른바 총선에서의 「별들의 전쟁」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14일 러시아 중앙선관위관계자들에 따르면 모두 2백25명(전국구 2백25명은 별도)의 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에 군인사들이 적어도 1백50개 지역구에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인사들이 정치권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다.주요 정당이 덕망있는 군인사를 영입하거나 군인들 스스로가 정치적 야심을 갖고 정치권에 뛰어드는 것이다. 례브 라흘린 체첸지역 군사령관이 체르노미르딘총리가 당수로 있는 「우리조국­러시아당」에,에두아르드 보로볘프 전국방차관이 가이다르 전총리가 이끄는 「러시아선택당」에,아프가니스탄지역 러시아군사령관을 지낸 보리스 그라모프장군은 「나의 조국당」에,91년 쿠데타로 한때 복역하고 나온발렌틴 바렌니코프는 공산당에 각각 영입돼 총선채비에 한창이다.정당의 입장에서 저하된 군의 사기를 올리고 군수산업을 부추켜 복지를 향상시키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데르자바당」의 루츠코이 전부통령과 「러시아공동체당」소속인 알렉산드르 례베드 전14지역군사령관 등은 이번 총선을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군인사들로 여겨진다.현 국방장관인 파벨 그라초프도 오는 12월17일 총선전에 다수의 군장성과 군수산업계 고위인사들과 함께 창당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많은 군인사들이 정치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난 2년동안 의회의 각종 법안및 예산심의과정에서 누구도 군예산 확보에 앞장서지 않아 군과 군수산업이 홀대를 받아왔고 결국 군은 「아사」직전에 놓이고 관련산업도 쇠퇴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농민당은 지난해 예산편성과정에서 농민들을 위한 각종 복지예산을 적절히 확보함으로써 상당한 「실적」을 거뒀는데 이 점이 군인사의 출마러시를 자극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들 군인사 출마자들이 믿는 것은 군관련 유권자수.비공식 통계를 보면 현재 러시아에는 2백만명의 군인과 군수산업종사자가 있다.이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5백만명,나아가 퇴역군인과 군사지역주민 등을 합하면 8백만여명 정도가 군관련 유권자들인 셈이다.이들 모두 군인후보를 지지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최근 대표적인 군사지역인 볼고그라드의 지방의회선거에서는 출마한 군인사들이 전패했다.이곳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보로볘프장군등 불과 3∼4명정도가 개혁파에 소속된 반면 대다수 후보는 공산당이나 보수·민족주의진영에 가담하고 있다』면서 『이들 다수가 의회로 진출할 경우 군인들의 정치세력화와 개혁의 퇴조현상이 올지 모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일부 의회소식통들은 이번 총선에서 군인사의 당선율이 10%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 “올 노벨평화상 카터 유력”/노르웨이 통신“나토·위경생도 후보”

    ◎선정위 만장 일치 내정… 13일 발표 【오슬로 로이터 연합】 노르웨이의 노벨상위원회는 이미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했으나 다음주까지 수상자를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노르웨이의 NTB통신이 5일 보도했다. 통신은 게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 소장의 말을 인용,익명의 5명으로 구성된 수상자 선정위원회가 35개 단체를 포함한 1백20건의 후보명단을 검토한뒤 이미 최종모임을 갖고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노벨평화상 선정위원들간의 불협화음이 일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만장일치로 수상자가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이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이미 적어도 4번 이상 후보자 명단에 올랐던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거명되고 있다면서 카터 전대통령은 아이티와 아프리카,북한 등지에서 중재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냉전기간동안 유럽평화 유지에 공이 크다는 이유로 2명의 노르웨이 정치인이 추천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북아일랜드의 전 총리 앨버트 레이놀즈,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존 흄을 비롯,덴마크 의회와 58명의 미 하원의원이 추천한 중국 반체제인사 위경생도 후보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이밖에 러시아의 인권주의자 세르게이 코발레프와 수감중인 쿠르드족 민족주의자 레이라 자나,멕시코 인권주의자이자 로마 카톨릭 주교인 사무엘 루이스 등과 동티모르인을 위한 투쟁을 전개한 카를로스 필리페 지메네스 벨로 등도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올해 각 부문 노벨상 수상자중 맨 마지막으로 13일 오슬로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 중동구 국가의 발빠른 서구화/르몽드 10월1일(해외사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의 동방 확대문제가 긴박한 순간에 중유럽국가들은 서구진영 참여에 고무적인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6년만에 유고슬라비아 분쟁과 같은 참담한 시나리오가 중유럽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행복감때문에 전례없는 경제체제 전환이 잘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항가리의 4개국은 엄청난 사회변화 비용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적응력을 보여줬다.70년대 스페인과 포르투갈과는 달리 이들 국가들은 참담한 경제상황속에서도 자유화와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6년만에 중동구 국가들과 옛소련국가들은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옛소련국가들이 힘든 변화를 겪으면서 불안한채 남아있는데 비해 이들 국가들은 어려운 유럽통합의 길을 걸으면서도 서구화에 한발한발 내딛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가졌던 유럽국가들 가운데 특히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같은 나라들의 구체제 붕괴는 눈에 띄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동구 국가들과 옛소련 체제의 국가들 사이의 틈은 커지고 있다. 이지역에서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안정된 체코공화국은 이런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체코는 10월1일 화폐 개혁을 하면서 공산주의 유물에 등을 돌렸다.정상화가 어느정도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사례이다. 또 폴란드에서는 두번째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고 라트비아에서는 이번주 두번째 총선을 실시한다.이들 국가들의 선거는 민주주의 생활이 점차 착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12월 러시아의 총선이 혼란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과는 대조적이다. 서구국가들이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을 자극시키지 않은 것은 옳은 것이었다.러시아도 항가리·체코·폴란드처럼 서구화로 전환하도록 해야한다.그러나 중유럽국가들의 찬양할만한 성장하는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러시아의 민주화를 유도해서는 안된다.
  • “러시아 제쳐놓고 「유고 해결」 어렵다”(지구촌 칼럼)

    공산주의 시절 소련국민들은 유고를 지상낙원으로 생각했다.유고도 소련처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였다.하지만 그들은 소련과는 달리 상점에 물건이 가득했고 높은 임금,자유로운 해외여행의 자유를 누렸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했고 서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많은 소련사람들은 유고가 추구하는 길이 본받아야할 유일한 사회주의라고 말했다.제일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바로 유고였고 외교관들은 유고근무를 평생의 꿈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 지상천국 유고가 생지옥으로 변했다.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련사람들은 말못할 충격을 받았다.그곳에서 진행되는 전화의 불똥이 언제 발칸반도를 넘어 옛소련영토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충격은 증폭됐다.연방국가였던 유고의 시나리오처럼 옛소련도 언제 전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많은 러시아인들의 뇌리를 짓눌렀다. 러시아가 이 발칸반도의 화약고에 깊은 관심을 갖는 또다른 이유는 러시아의 강대국 야망 때문이다.러시아정부는 미국,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문제해결에서 러시아를 동등한 논의 파트너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최근에도 나토는 사라예보 인근 세르비아계 거점에 대한 공습을 결정하면서 러시아와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옐친행정부는 서방이 러시아의 입장과 이해를 전혀 고려치 않고 공습을 결정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옐친대통령의 강경한 항의 이유는 야당의 압력 때문이기도 하다.야당 지도자들은 유고사태에 대한 정책실패를 이유로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의 경질을 끈질기게 요구한다.서방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거 러시아영향권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등이 질책 사유이다. 역사적 요인도 무시할수 없다.18­19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차르(황제)들은 오토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절대적인 후원을 보냈다.슬라브족으로 정교회를 섬기는 러시아인들은 인종·종교적으로 형제인 세르비아인들을 회교도 터키족 적들로부터 지켜주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감같은 것을 갖고 있다.같은 슬라브 정교도들을 보호하도록 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던 러시아제국은 19세기 후반 마침내 세르비아인을 비롯,발칸반도에 살던 민족 대부분을 터키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주었다.그곳에서 러시아는 영웅대접을 받았고 발칸반도 전역에는 지금도 당시 세워진 러시아 장군,병사를 기리는 기념비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독일,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인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는 군대를 동원했다.이에 맞서 전러시아사회가 세르비아형제들을 구하자고 일어섰다.이렇게해서 뛰어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1천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결국 그 여파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오랜 역사동안 소비에트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다.세르비아 왕은 볼셰비키들을 경멸했다.그러다가 30년대 들어 스탈린이 가까스로 유고 공산당 창건에 성공했고 히틀러와의 전쟁중 공산당 유격대원들이 적군을 도와 파시스트들을 물리쳤다.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의 새 주인 티토는 크렘린과의 유대를 끊고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스탈린의 지시와 사상을 모두 거부했다.스탈린 사후 소련과 유고의 관계는 다소 개선됐지만 소연방이 와해되기까지 유고는 소련보다는 서방과의 관계유지에 더 비중을 두었다.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양국관계의 시계바늘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같이 됐다.러시아의 야당세력들은 세르비아 지원을 줄기차게 요구한다.이들은 러시아가 형제요,같은 정교도인 세르비아인들을 적의 포위로부터 구해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한다.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의용군을 보내야 한다고 외친다. 처음에 옐친대통령은 세르비아인들에게 특별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92­93년 사이 크렘린은 오히려 서방정책에 동의,친공산계 세르비아 지도자들이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려는 크로아티아,보스니아공화국들을 방해하는 것을 비난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최소한 크로아티아,회교도들도 세르비아계 못지않게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러시아는 지금 세르비아에 대한 국제제재조치가 공평하지 못하며 평화해결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는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무력사용을 즉각 중지하고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크로아티아·회교도들은 러시아를 비우호적인 약소국으로 치부한다.크렘린과 보스니아내 소수 세르비아인들과의 관계도 94년 단절됐다.서방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이해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러시아의 입장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유일한 동맹자는 세르비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한사람뿐이다.사실은 그 사람마저도 미국·서방과 직접 담판하기를 원해왔다.그런데도 러시아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옛유고 땅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옐친대통령은 오는 10월 보스니아 관련 국제회의를 개최하자고 얼마전 제의한바 있다.옐친의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바로 12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앞에 정부의 위신을 조금이라도 세워보자는 것외에 다른 것은 없다.
  • 모스크바 미 대사관 피습 안팎/러 공권력 직·간접 개입 가능성

    ◎범인 시내중심가서 강력 무기 사용에 의혹/옐친 정부 미의 보스니아정책 비난과 연계 13일 하오 일어난 모스크바 중심가 미대사관의 수류탄공격사건은 14일 상오까지 범인의 윤곽이나 사건배후등에 대한 단서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미대사관이 위치한 「사도바야 칼초」일대는 내무성 병력,외교경비대,제15특수경찰대등이 배치돼 삼엄한 사후경계를 펴고있을뿐 사건뒤 속보는 일체 나오지 않고 있다. 일차적인 관심은 역시 사건의 배경.누가,무슨 목적으로 이 일을 저질렀을까하는 것이다.모스크바경찰은 표면적으로는 「국제적인 테러사건」으로 규정짓고 범인검거에 나서고 있다.그러나 이곳 외교가의 관심은 이 사건을 보스니아사태와 관련한 미·러간의 불화와 연계되어 나타나고 있다.물론 미,러 양측 모두 이같은 개연성은 부정하고 있다.그러나 보스니아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스트로브 탈보트 미국무부부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바로 전날 사건이 일어났고 최근 미대사관을 겨냥한 협박사건이 수차례 있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더구나 모스크바가 아무리 치안부재상태라고는 하나 시내 최고중심가이고 수류탄로켓발사기까지 동원된 공격이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관련없이 쉽게 일어나기는 힘들다는데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지난 8월22일 미대사관 문앞에 위치한 노점부근에서 폭발물이 발견됐고 그 수일뒤 상트페테르부르그 미영사관에 『미국인 여행객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물론 미대사관측은 이 두사건과 이번 수류탄사건을 연결지을 근거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공권력과 연계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은 보스니아사태와 관련,최근 옐친정부의 강력한 대서방 비난을 지적한다.지난 12일 옐친정부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을 「인종청소」운운하며 강력히 비난했다.그렇다고 현재 러시아가 유고문제에 직접 뛰어들어 중재에 나설 실질적인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국내의 보수·민족주의자들을 겨냥한 계산된 발언이었다는게 외교가의 중론이다.그런 대안없는 강경발언과 같은 맥락에서 이번 사건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지적되고 있다.그리고 이런 일을 밥먹듯이 해치울 조직은 러시아에 얼마든지 있다. 범인은 수류탄투척기,위장마스크등 결정적인 단서가 될 물품들을 대담하게 현장에 남겨두고 떠났다.그런데도 범인이 쉽게 검거되지 않거나 특히 향후 보스니아사태와 관련한 러시아의 대서방 정책방향을 예의주시하면 이번 사건의 윤곽도 대강 드러날 것같다.
  • “미에 제3당 출현땐 정치 혼란 가중”/그래햄 윌슨(해외논단)

    ◎다당제 아래선 국가정책 표류 우려/계층·민족갈등 가속화… 사회분열 부추겨/제3당 중립 표방하면 민주·공화당 극단화 최근 96년 미 대통령선거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은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에서 민주·공화 양당정치는 한계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제3의 정당을 만들 시기가 성숙했다고 피력했다.파월의 제3의 정당론이 미국정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USA투데이지는 12일자에 그래햄 윌슨 위스콘신대 비교정치학교수의 제3의 정당론과 관련된 칼럼을 게재했다.다음은 이 칼럼 요약이다.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의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 제안은 많은 미국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샀다.파월의 언급에 대한 관심은 그의 인기도뿐아니라 우리의 양당제는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광범위한 감정을 반영해주고 있다. 미국인들이 정치에 불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여론조사들은 몇년동안 정치인들과 정부관리들은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만큼 믿을만 한가라는 의구심을 추적해왔다.클린턴 대통령의 재임 전반기동안에 대한 환멸과 함께 그의 모든 공화당 경쟁자들이 국민들의 흥분을 자아내기에 실패한 것도 제3당 대통령후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다른 민주국가에서의 경험들은 제3당은 우리의 불만을 종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추가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권력분산정부」가 규범인 오늘날의 시대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제도로는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그러나 정치학자인 데비드 메이휴 예일대교수의 연구결과는 그런 종류의 정부하에서도 미국은 80년대의 사회보장제도의 개혁,1991년의 걸프전 참전등 어려운 결정을 해냈음을 보여준다. 다른 국가의 사례들은 또 정체가 우리 제도에서 사실일지라도 다당제가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다당제는 연합을 생산하며,수많은 정당사이에서의 흥정에 의존하는 연립정부는 본래 어려운 선택을 할 수 없게 돼있다.40년대와 50년대 프랑스 제4공화국의 불안정한 연립정부는 알제리에서의 종전등 어려운 선택을 하지 못했다.프랑스는 알제리를 프랑스령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빠져들었지만 어느 정부도 알제리에서 철수할 결정을 할만큼 강하지 못했다.드골대통령은 권력을 잡자마자 프랑스의 문제는 프랑스의 정치제도를 바꿈으로써만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프랑스의 새 헌법은 싸움질만하는 수많은 정당에 기초한 의회정치대신에 대통령에게 우리보다 더욱 막강한 권력을 주었다. 미국인들은 선거인단의 과반수뿐아니라 국민투표의 과반수를 얻어 이기는 대통령선거제도에 익숙해 있다.우리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지만 제3당에 관한 가장 즉각적 결과의 하나는 3­4명이상의 경쟁적 후보자가 나오면 과반수 투표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1992년 선거가 가장 최근의 예이다. 부수적 정당은 새로운 문제를 보탤 수 있다.역사가들은 가끔 국가를 통합하는데 기여한 19세기의 정당들을 칭송한다.오늘날 미국인들은 우리 사회가 수많은 민족및 인종 소군으로 갈라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다당제는 확실히 이러한 과정을 추가할 것이다.스페인의 바스크분리주의자,영국의 웨일즈및 스코틀랜드민족주의자들의 경우 지지도가 지역적으로 집중돼 선거제도가 불리하게 됐을 때에도 제3당으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 사회도 한 종족이나 지역에 의존하는 제3당이 출현하면 더욱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더많은 정당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렇다고 다른 정당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가.제3당을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당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그들은 새로운 정당이 기존정당의 하나를 대체할 것을 원하든가,기존의 정당에 압력을 가해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것이다.미국 사회에서의 제3당의 주요 역할은 정당중 하나가 자신들의 정책을 채택하도록 추진하는 것이었다.민주당은 진보당의 아이디어를 채택했으며,그렇게 함으로써 한 세대동안 다수당이 됐다.공화당은 19세기 중반에 독립당을 대체했으나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심한 분열상을 겪기도 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을 새로운 당으로 대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두가지를 기억해야 한다.첫째,양당중 하나를 대신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것이며,이는 대통령예비선거제로 인해 전보다 더욱 쉬워졌다는 것이다.둘째,거의 모든 정부차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득표경쟁은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몇세대가 지난후 각 당은 차례로 다음 선거에 하원을 지배할 수 있는 현실적 기회를 가지게 됐다. 두 주요정당간 과열경쟁은 과반수지지를 얻을 것으로 여겨지는 정책남발 결과를 가져올 지 모른다.제3당이 중립주의자들의 표를 끌기 시작하면 민주당과 공화당은 그들의 핵심지지자들을 버리고 더욱 극단적이 돼갈 지 모른다. 우리는 이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핑계삼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우리의 본질적 문제는 유권자들에게 무료점심은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데 있다.
  • 불 핵중독과 국가주의(박화진 칼럼)

    사전을 보면 「∼이즘」(∼ism=∼주의)이란 말은 어떤 일을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이나 주장을 뜻하는것으로 되어있다.동시에 그것은 「∼중독」이란 의미도 있는 것을 알수 있다.알코올리즘이 알코올중독인 경우처럼 한가지를 지나치게 섭취하거나 탐닉하는 경우다.내셔널리즘이나 임페리얼리즘,나치즘,커뮤니즘,밀리타리즘 등에 주의 대신 중독을 붙여보면 재미있다.민족중독 혹은 국가중독,제국중독,나치중독,공산중독 그리고 군사중독등의 단어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이「이즘」이란 이름의 중독현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추구하는 당사자에게는 편리하고 큰힘을 주는 무기이나,당하는 상대에겐 얼마나 가혹하고 무서운 범죄요 죄악인가를 잘 보여준다.무자비하고 잔악한 국가와 민족주의 범죄들이 이 「∼이즘」이란 미명하에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합리화되어 왔는지도 우리는 잘 안다.그중에서도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큰 재앙과 고통을 안겨준 이즘 곧 중독현상은 일본을 포함한 서방열강의 임페리얼리즘과 독일의 나치즘,소련의 커뮤니즘등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열강의 임페리얼리즘이 내셔널리즘에 눈뜬 피압박 약소민족들의 저항으로 저지당했으며 게르만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수십만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독일나치즘은 스스로 일으킨 2차대전의 패전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반도를 유린하고 아시아를 전화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도 비슷한 말로를 겪었다.그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며 무자비한 투옥,숙청과 처형으로 무고한 인명을 수없이 희생시킨 커뮤니즘은 스스로의 구조적 모순으로 자멸했다. 이 모든것은 인간이 몰두하고 미치며 탐익하는 이데올로기나 이즘이란 것이 지나고 깨어보면 얼마나 미친 짓이며 허망하고 무의미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역사의 교훈이요 경험이라 할수있다.그러나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는것 또한 인간의 어쩔수없는 어리석음임을 역사와 현실은 보여준다.중동 회교원리주의추구의 폭력사태라든가 보스니아인종전쟁 그리고 북한의 사회주의고수 및 핵개발시도등이 그것이다. 최근 세계적 비난대상이 되고있는 프랑스와 중국의 핵실험집착도 그런범주에 든다고 할수 있다.특히 프랑스는 온세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기어이 강행했다.「강력한 프랑스」「프랑스의 영광」이라는 허상의 국가주의적 드골리즘에 집착하는 시라크대통령의 시대역행적인 프랑스민족주의의 발로다.핵확산금지조약(NPT)무기한연장으로 핵실험을 할수없게 되기전에 필요한 실험을 다하고 핵강국기득권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계산의 「핵이즘」「핵중독」의 무례다. 핵무기는 인류공멸의 세계대전같은 큰전쟁이 발생치않는한 무용지물이고 프랑스가 서둔다해도 미국과 러시아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며 프랑스정도의 핵무장으론 두려워할 상대도 없을 것이다.엄청난 비용과 온세계적 국가이미지 실추를 감수하면서까지 핵실험을 강행해야할 이유가 어디있는 것인지 시라크대통령은 물론 프랑스국민도 반성해봐야 할것이다.핵실험강행으로 남태평양청정해역과 그주변환경을 오염시키고 인류공동의 소망인 핵감축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야말로 프랑스도 희생자의 하나였던 독일나치즘의 횡포와 다를바없는 세계적 위협의범죄적 핵중독이요 야만적인 국가주의 추구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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