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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방위 퇴임압력 밀로셰비치 끝장인가

    정치생명 위기를 통치기반 강화에 역이용하는 솜씨를 자랑하며 권력을 오로지해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코소보 패전으로 그가 10년 권좌에서 끌려내려올 최대 고비를 맞았다. 밀로셰비치는 나토군 진주 직후인 이번 주초부터 공식석상에 나와 재건 약속 등을 내걸며 민심수습을 시도하고 있다.하지만 반응은 냉랭하기 이를데없다.우군 내부에서조차 이탈선언이 줄지었다.14일 집권연정 3대세력인 세르비아 급진당(SRS)의 연정탈퇴에 이어 이튿날 세르비아 정교회가 밀로셰비치사임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정교회는 보스니아-크로아티아 내전때도 밀로셰비치를 편들었던 민족주의세력이며 SRS 역시 국수주의 극우집단.이들이 성지를 빼앗기고 세르비아계의 대량탈출을 불러온 코소보 참패에 대해 책임추궁에 나선 셈이다.세르비아민족감정에 편승,권력을 유지해온 밀로셰비치에게 이는 직격탄이나 다를바없다.권력분열 조짐을 틈타 야당은 16일부터 전국적 하야 촉구 서명에 돌입하는 등 전방위에서 퇴임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SRS 탈퇴로 밀로셰비치 정권은 의회 과반수 지위를 상실했다.극우정당들이의회내 소수 민주 야당들과 손잡고 불신임 투표를 할 경우 원칙적으론 그대로 쫓겨날 수도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밀로 듀카노비치 몬테네그로공화국 대통령,부크 드라스코비치전 연방 부총리 등 후임설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특히 나토 공습때부터 밀로셰비치에 비판적이었던 듀카노비치는 종전이후 독자적으로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는가 하면 민주화 없는 유고연방 탈퇴 입장을 거듭 흘리면서밀로셰비치를 자극하고 있다.실제로 몬테네그로의 연방탈퇴가 가시화할 경우 발칸반도는 또 한번 피의 대전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경제 재건도 밀로세비치의 호언과는 달리 난제가 아닐 수 없다.미국과 유럽연합(EU)은 밀로셰비치가 물러나지 않는 한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못박아 왔다.최악의 경제난이 이어질 경우 민심 이반이 대규모 민중폭동으로 분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이렇게 되면 사면초가의 밀로셰비치가 군부를 동원할 가능성은 아주 커진다.그러나 타임 최신호는 밀로셰비치가 지난 89년 민중의 손에 실각,처형당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코소보 대표 누가 될까

    유고군의 철수가 이뤄지면서 코소보의 대표는 누가 될것인가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유력한 인물로는 매파를 대표하는 하심 타치(29)가 떠오르고 있다.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의 봉기 거점인 드레니차지역 출신인 그는 지난 2월 랑부예 협상을 앞두고 코소보해방군(KLA) 대표로 임명됨으로써 온건노선의 이브라힘 루고바를 제치고 알바니아계의 사실상의 지도자로 부상,KLA와 코소보 주민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다.유고연방이 코소보 자치를 폐지했던 지난89∼91년 동안 학생운동가로서 코소보 독립을 위해 뛰었던 타치는 93년 KLA가 결성되자 지하로 잠입,KLA에 가입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90년대 중반이후 그는 급진 알바니아계 망명자의 근거지였던 스위스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세르비아 보안군에 의해 괴멸직전에 있던 KLA재건에힘써왔다.KLA 지도자로서 그의 지위는 람베르토 디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10일 로마에서 그를 ‘코소보 임시정부 총리’로 소개함으로써 확고해졌다는평가다.한편 지난해 창설된 연합민주운동(UDM) 당수로서 랑부예 협상에 참여했던 강경파 레세프 코스야(62)도 부상했다.알바니아와 세르비아 및 마케도니아 일부를 편입,‘대알바니아’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주의자인 그는루고바와 오랜기간 갈등을 빚어왔다. 유고연방에서 정치범으로 27년간 옥살이를 한 아뎀 데마치(62)나 독일내 코소보 망명정부 수반 부야르 부코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온건 루고바의 입지를 좁힐 전망이다.한편 나토공습중 밀로세비치 대통령과 면담사진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소르본느 대학출신 작가 루고바(55)는 알바니아계내의 대표적인 비둘기파.유고연방이 코소보 자치를 폐지하자 코소보민주연맹(LDK)을 창설하고 독립운동을 해왔으나 95년 보스니아 전쟁 종전협상에서 코소보 사태가 제외됨으로써 지지기반을 상실했다. 박희준기자 pnb@
  • 발칸 ‘78일 전쟁’이 남긴 숙제

    나토와 유고연방이 철군협상에 완전 합의함으로써 코소보 사태는 종식을 앞두고 있지만 사태의 완전종식까지 나토와 유고연방 및 코소보주민이 풀어야할 정치·경제·군사적인 숙제는 한둘이 아니다. 코소보에 들어가는 5만명의 국제평화유지군(KFOR)은 우선 지뢰 등 각종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유고군은 지난 3월24일 나토의 공습이전부터 나토군의코소보 진입에 대비, 다량의 대인(對人)·대전차 지뢰와 부비트랩을 주요 진입로에 매설했다. 나토는 유고측에 지뢰매설위치를 알려줄 것을 요구해 수락을 받았지만 수많은 지뢰와 부비트랩을 제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지뢰의 경우 제조단가가 싼 것은 몇달러에 불과하지만 제거비용은 최소 1,000달러 이상 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군에 반발한 유고 정규군,경찰특수부대 및 민병대의 KFOR 저격 등 조지적저항을 분쇄하는 일도 남아 있다.그리고 코소보해방군(KLA)의 무장해제를 달성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완전 독립을 요구해온 KLA가 무장해제을 거부할 경우 역(逆)인종청소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15만명의 세르비아계 코소보 주민이 이를 피해 코소보 탈출을 서두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제재건은 가장 큰 문제다.78일간의 나토 공습으로 유고 전역의 기간시설은 쑥대밭이 됐다.유고측은 1,00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코소보지역의 경우 나토의 공습 이전부터 자행된 유고군의 초토화작전으로 완전 황폐화돼 난민귀환뒤가 더 걱정 스럽다는 지적이다.알바니아,루마니아,보스니아,마케도니아 등 유럽 최빈국들인 주변 6개국도 수출감소 등으로 연간 24억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은추산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전제로 향후 5년간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재건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그러나 그에 대한 유고연방 골수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는 아직도 상당히 높다.이들은 밀로셰비치 퇴진시 이웃나라 세르비아계와 연대해 몬테네그로 등지에서 제2의 민족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적지않다. 박희준기자 pnb@
  • [김삼웅 칼럼] 민주열사들을 잊지말자

    피와 땀과 눈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투쟁의 나무를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가신 임들이 흘리고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곁에 없는 김남주시인이 암울한 시대에 쓴 ‘전사2’의 중간 부분이다. 이 시에는 다음의 내용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은/투쟁의 초기단계에서 죽어갔다/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어떤 사람은/승리의 막바지 단계에서 죽어갔다/이름도 없이 얼굴도없이/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쥐도 모르게 새도모르게 죽어갔다/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모레(10일)는 6·10민주항쟁의 날이다. 녹음방초의 어간에 다시 6월항쟁의 날을 맞는다. 우리는 흔히 해방후 친일파 척결을 하지 못하고 독립지사들을 홀대해온 것을 두고 애국심이 부족한 이승만정권과 친일세력의 발호로 치부한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와 그 시대 사람들을 원망한다.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그러면서 막상 우리는 지금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와 대접을 소흘히 한다. 후세로부터 비판받고 원망들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세 리잘(Jose Ri Zal)을 기억할 것이다.스페인 관리들에 의해 최초의 아시아 민족주의자로서 기록된 인물, 젊은 의사이자 작가·시인이면서 필리핀 독립운동가,1861년 35세로 스페인 정부군에 의해 총살된 사람, 지금 필리핀에서는 그가 사망한 12월 30일을 법정공휴일로 기념한다. 필리핀 독립운동은 리잘의 처형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리잘은 형장에서유언을 남겼다.“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을 보지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밝은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을 잊지 말아달라.” 적당한 강우량과 이상고온 현상으로 올 6월의 신록은 여느해보다 짙고 싱그럽다. 이좋은 계절을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밤사이에 스러져간’이들이다. 그들의죽음을 잊은채 우리는 찬란한 녹음과 햇볕을 즐긴다. 지금 국회에는‘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된 이래 동면상태이고 바로‘민의의 전당’건너편에서는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자식과 형제 남편을 잃은 유가협과 추모연대 회원들이 200일도 넘는,기약없는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또 의문사 관련 회원들이‘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제정’을 요구하며 국민회의당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새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세력이고,국민회의에는 수많은‘민주인사’들이 포진한 상태이고, 자민련은 그런 인식을 공유하는 ‘공동여당’이며, 한나라당에도 상당수의‘민주인사’들이 참여해 있다.그런데도 이 법안이 긴 잠에서 깨어날줄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민주화 참여의원들 각성을 최근 국민회의 관계자는 이 법률안을 철회하거나 심의를 보류하는 대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하기로 했다한다.‘유공자’를‘관련자’로 바꾸고 5·18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했던 것처럼 특별법 형식으로 일시 보상금을 주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겠다는것이다. 그 이유는 일부 보훈단체와 자민련, 한나라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라 한다. 보훈단체의 경우 형평성의 이유등을 들어 반대한다 치고,자민련과 한나라당의 반대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 국민회의의 소극적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국시’인 민주주의를 지키다가 희생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예우를 하자는데 반대할 명분이 무엇이란 말인가.‘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대로 ‘민주화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국회의원 특히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의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주필 kimsu@]
  • 印尼 오늘 44년만에 자유총선/차기 대통령 후보 메가외티

    인도네시아가 7일 44년만에 처음으로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고 이어 11월에는 새 대통령을 뽑는다.여기에 동 티모르 독립선거가 8월 실시된다.향후 인도네시아 앞에 놓여진 선거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느냐 여부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21세기가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유세 마지막 날인 4일까지 인도네시아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투표 직전인 5,6일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서도 인도네시아에는 희망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전언이다.32년간 압제와 족벌 경영으로 인도네시아를 병들게 한 수하르토의 집권 골카르당을 국민의 힘으로 내몰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만들수 있다는 기대감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들떠 있다. 유권자는 모두 1억2,700만명.전국에서 462명의 의회의원과 각 지방 시 군의원들을 뽑는다.여기서 뽑힌 의원들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군부인사 38명,직능대표 65명,135명의 지방대표와 함께 국민대표회의(700명)를 구성,임기 5년의 대통령을 선출한다. 총선 참가 당은 모두 48개.국부인 고(故)수카르노 대통령의 딸로 인도네시아 민주화 상징으로 떠오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의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PDI-P)이 단연 앞서고 있다.유세 마지막날인 4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24.9%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현 하비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나선 집권 골카르 당은 10.3%에 그쳤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이끄는 정치단체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아미엔 라이스가 이끄는 국민 수권당(PAN)이 19.5%,역시 이슬람 세력인 국민 계몽당(PKB)은 9%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있다. 메가와티측과 이들 유력 이슬람당은 향후 연정구성에 이미 합의한 상태다. 문제는 총선 이후.이변이 없는 한 야당세력이 골카르당을 누를 가능성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최근 이슬람권 지도부에서 코란의 교리상 여자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주장들을 제기하고 있다.연정 구성은 하겠으나 지도권은 자신들이 쥐겠다는 입장이다. 메가와티가 30%이상의 대승을 거뒀을 경우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의 입김이줄어들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이들이 주도권을 주창할 가능성도 높다. 정통 이슬람과 메가와티를 지지하는 세속 이슬람세력간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골카르당 역시 수십년간 축적된 조직력이 있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민대표회의 구성원 200여명은 골카르 편이어서 여전히 정국의 큰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25만의 인도네시아 군부도 변수다.독립전쟁을 수행한 역사를 가진데다 전통적으로 내정개입 관행을 국민들로부터 용인받아온 군은 인도네시아 향후 정권이 어떻게든 손을 잡아야만하는 세력.따라서 군 사령관이자 현 국방장관인 위란토 장군을 비롯한 군 지도부의 지지확보가 차기 정권의 필수적인 과제다. 김수정기자 crystal@- 차기 대통령후보 '메가와티' 인도네시아에 정권교체를 안겨줄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2).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 전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는 민족주의 진영의 구심점이다.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민주투쟁당(PDI-P)의 당수겸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줄곧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강력한 두야당인 국민수권당,국민계몽당과 이번 총선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1947년 자카르타에서 태어난 그녀는 파자자란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뒤 인도네시아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정치수업을 받았고 대학시절 ‘인도네시아 민족학생운동’에 가입해 활동했다. 1987년 PDI-P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93년 당수로 추대됐으나 96년여당인 골카르당의 정치공작으로 당수직을 박탈당했다.97년 총선에서는 ‘정부가 인정한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헌법에 따라 출마조차 할수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메가와티는 수하르토에게 정치적 탄압을 받음으로써 전국적 지명도를 갖는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또한 1년 넘게 극심한 생활고에시달리는 국민들의 불만이 메가와티에 대한 지지로 표출되면서 정권교체의꿈은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대권가도는 아직 멀다.집권 골카르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더라도 11월 대선까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인도네시아 최대 실세인 군부역시 그녀에게는 벅찬 상대다.동티모르 문제를 비롯한 끊임없는유혈충돌도계속되고 있다.세계최대의 이슬람국가에서 여성대통령을 묵인할지도 의문이다.그러나 가장 큰 과제는 다 쓰러진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그녀가 살려낼 수있느냐이다. 이창구기자
  • 도스토예프스키 유럽 여행기 번역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서유럽을 여행하고 쓴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인상기’가 노문학자 이길주씨의번역으로 나왔다.도서출판 푸른숲. 도스토예프스키는 1849년 벨린스키,페트라셰프스키 등 혁명지식인 그룹과의교류 혐의로 체포돼 10여년간 시베리아 유형과 강제노역을 마친 뒤 60∼70년대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등지를 두루 여행했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성스러운 기적의 나라’를 꿈꾸며 유럽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비쳐진 유럽은 부르주아의 탐욕과 중산층의 타락으로찌들린 비극 그 자체였다. 유럽사회에 유포된 자본주의의 속물근성과 부르주아의 비속함을 목도한 그는 러시아 지식사회의 유럽숭배 풍조를 신랄히 비난하는 한편 지나친 합리주의와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한 유럽의 비극적 종말도예견했다. 이같은 그의 예견은 1,2차대전으로 현실화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고대유적이나 문물보다 민중의 생활상에 주목했다.그리고 그 비참한 모습에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이는 상처받은 그의 애국심을 민족적 자존심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유럽기행은 이후 그의 작품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죄와 벌’‘백치’‘악령’‘도박자’ 등은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그가 서구주의자에대항하는 러시아 슬라브 민족주의를 주창하게 된 것도 이때의 여행이 계기가 됐다.그러나 그의 유럽여행은 순수하지만은 않았다.빚쟁이들의 성화를 피하고 연인과의 밀월을 즐기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 도스토예프스키는 독일에서룰렛 도박을 해 내내 빚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그의 유럽인상기에대해 7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솔 벨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상기는 난폭하고 공정치 못하며 경솔하기까지 하다.그의 관점은 불쾌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4)국제적 눈높이

    ‘개방과 투명성’.한국사회는 금융위기를 겪으며 이 두 목표를 향해 채찍질을 당해왔다.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고 초거대 기업들이 국적을뛰어넘으며 인수·합병의 무한 경쟁을 거듭하는 21세기의 물결속에 ‘폐쇄와 불투명성’은 한국의 발목을 잡아온 주범으로 지목됐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무역규범을 모색하는 뉴라운드의 진전은 개방과투명성에 대한 압력을 높이고 있다.2000년 1월부터는 서비스와 농업 자유화가 다뤄진다.외국인도 국내에서 변호사업무를 할 수 있는 ‘전면 개방시대’에 ‘국내만의 일등’은 의미가 없다. 과거처럼 국가도 울타리가 되어 기업활동과 국내경제를 보호할 수 없다.국제수준에 미달하면 도태다.외국의 정책과 입장 등 국제동향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다자간 국제회의의 결정과 국제적 의견이 바로 국내법처럼 우리의 행동과 생활에 영향을 준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올 투자·교역환경보고서에서 한국기업의계열사내 자가 제품사용 제한,퇴직금제도 폐지마저 거론하는 상황이다.“국경은 남아있지만 과거와 같은 경제주권은 사라지고 있다”고 대한상공회의소 具星鎭실장은 지적한다.“보편화된 기준과 규범을 갖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일원으로 남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자라나는 우리아이들의 경쟁 상대는 옆집 아이가 아닌 외국청소년들이다.그게 뉴라운드 시대다.국내 일류에서 국제적 경쟁력으로 눈 높이를 올려야 한다.직원 1만5,500여명이나 되는 유엔의 한국인 직원은 193명.우리 국제화의수준이다. 지난달초 캐나다서 열린 APEC관련 회의에 참석했던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의 이야기는 ‘우물안 개구리’에 머문 우리의 관료사회를 보여준다.정부대표로 참가한 공무원들이 부실한 준비에 영어로 의사소통마저 제대로 못하더란다.게다가 “회의가 재미없다”며 불참하겠다고 우겨 곤욕을 치뤘다는 것이다. 외국의 공무원사회는 기업과 학계의 전문가 영입이 자유롭게 열려있는데 한국에선 ‘외부인’은 뿌리내리지 못한다.엘리트 조직일수록 배타성은 더 심하다.특권과 안일이란 벽을 쌓으며 경쟁 무풍지대를 만든다. 한국서 10여년동안 무역업을해온 인도인 쿠마 라메쉬씨는 “‘우리’라는작은 울타리가 폐쇄적으로 작용,경쟁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을 말한다’란 저서에서 마이클 브린은 “경제기적을 이루는데 기여한 민족주의가 국제화시대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국사회의 배타성을 경고했다.영국 ‘더 타임스’서울특파원을 지낸 그는 올초출간된 이 책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감정적이며 폐쇄적”으로 평가했다.보다 공개적인 논의와 절차의 확대가 절실하고 그를 위한 분위기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경쟁력의 원천이란 대학.서울대 교수 95%가 서울대를 나왔다.연대와 고대교수의 80%,60%도 모교 출신이다.외국에선 특정대학에서 박사를 받으면 그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 교수직을 얻게 한다.동종(同種)번식,‘학문적 근친상간’을 막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한국에선 다른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면 출신 대학에서는 교수될 길이 막힌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선 국내 회계법인이 단독으로 작성한 회계감사보고서를 믿지 않는다는 현실은 극복해야할 또하나의 과제다.고대 경영대의 金益洙교수는 “외국기업인들의 한국 기업풍토에 관한 공통 불만은 원칙과 규칙이 지키지지 않고 투명성이 낮은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적 수준의 규칙과 질서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사회를 이루는 각 주체들의 이익추구가 국가 전체 이익과 합치되도록 조정하고 제도화시키는 선진국들의 노우하우 습득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저임금의 중국,기술력의 일본사이에서 마치 넛크래커(호두까기 기구)에 끼인 상태여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부서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란 세계 경제계의 경고를 그냥 흘릴 수 만은 없다.국경붕괴의 시대,무한경쟁의 시대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이석우기자 swlee@- 밀레니엄 탐방-워킹홀리데이협회 4명의 상담원 “귀국 직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단점만 보였습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지난 96년 캐나다에서 아르바이트와 어학연수를 경험했던 김은영(金銀榮·27)씨는 우리나라의 무미건조하고 각박한 생활에 불만이 많았다.그러나지금은 캐나다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마냥 부러워하지만은 않는다.캐나다의 장점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우리의 장점을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이것을 실제로 적용시키며 생활한다고 자부한다. 김씨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손대용(孫大鎔·27)씨,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일을 했던 한소희(韓昭嬉·25)씨,일본에서 아르바이트와 어학 공부를 한 공경숙(孔京淑 ·25)씨와 함께 워킹홀리데이 협회에서 해외로 나가려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현지 경험과 준비 방법을 상담해 준다. 이들은 “젊은 날에 한번쯤은 해외에 나가 일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이들이 말하는 일은 물론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농장,세탁소,식료품점 등에서 보통의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육체노동이다.세계를 주도할 사고능력을 펼치러 해외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우러 나간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손대용씨는 “농장에서 파티를 할 때 한국학생들만 취하도록 술을 마신다”며 우리의 잘못된 술문화를 꼬집었다.서구의 생활방식만이 세계적 기준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비교해 우리의 생활이 잘못됐다면 그것을 고치는 것이 바로 글로벌 스텐더드를 확립하는 길이라고 손씨는 설명한다. 한소희씨가 키부츠로 떠나기 전에 주위 사람들은 만류했다.키부츠에서는 외국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여자가 생활하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이유였다.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이스라엘의 밤거리는 한국보다 훨씬 안전했고 계약시간을 초과해 단 1분의 노동시간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씨는말한다.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는 우리의 노동문화가 훨씬 저급한 것이다. 일본에 갔다온 공경숙씨는 일본사람들의 질서의식을 말했다.“일본도 한국처럼 출퇴근 시간에 승용차가 쏟아져 나오지만 좀처럼 정체되지 않습니다.이유는 차선과 신호를 지키기 때문이죠” 우리는 내가 먼저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반면 일본사람들은 내차례가 되면 간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한씨는 말한다. 이들은 외국의 문을 두드리려면 진취적이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남들 다 가니까 한번 시도한다는 생각보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언어소통 능력은 미리 갖춰야 한다.경험자를 만나 충분한 설명을 듣고가장 저렴한 방법도 찾아야 한다.많이 준비할수록 많이 배운다. “맹목적으로 우리의 생활문화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열린 마음으로 한국을 바라보며 새천년의 희망을 찾았으면 합니다” 한달에 100여명의 젊은이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이들의 바람이다. 이창구기자 - 이케하라씨의‘한국인 글로벌화 3계명’ “한국이 21세기 세계 여러 나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과 경쟁하고 인정받고 존경받기 위해선 한국인의 국제화가 최우선 과제입니다” 27년간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64)씨의 진단이다.지난해 연말 출간된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새 천년의 키워드인 ‘글로벌한 사고’를 위해 한국인이 명심해야 할 3가지 계명을 제언했다. 이케하라씨는 거창한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생활 속의 작은 것부터 국제통용의 눈높이에 맞추는 자세를 몸에 익히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볼 때 가장 중요한게 객관성.세계 어느 민족보다 뛰어난 자질을 갖고있는 한국인이지만 자신에게는 후한 점수를 매기는 반면 상대방은 깎아내리는 ‘주관성의 오류’를 자주 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객관성 결여는 현재의 자신을 비뚤어지게 인식하게 만들어 ‘내가 최고’라는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이는 한 개인의 이기주의에서 회사나 지방자치단체의 집단 이기주의,국가의 이기주의로 발전하게 되고 진정한 국제화로의 이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둘째,겸손할 것.이케하라씨는 “30의 실력 밖에 없으면 30밖에 없다고 말할 것,그러나 100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뽐내지 말 것”이라고 충고했다. 글로벌화가 국제사회에서 여러 나라들과 겨뤄 인정을 받고 뻗어나가는 것이라면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즈니스 제1의 덕목이기도 한 겸손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고남에게 감사를 느끼는 마음과도 통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신용과신의는 글로벌한 사고의 출발점이다. 시간약속을 어기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변명하고 이런 변명이 통하는 사회라면 어떠한 국제화의 기준도 철저하게 들어맞을 수 없다.개인간 약속에서부터 교통법규,계약된 물건의 납기(納期),국가와 국가간 신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규칙과 법률,약속을 소중히 하는 것이야말로 글로벌한 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게 그의 소박한 생각이다. 황성기기자
  • [대한광장] 불타는 발칸, 무기와 시간의 전쟁

    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가 다시 불타고 있다.미국언론들은 밀로셰비치의 낡은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인의 인종청소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며,이 전쟁은 인권을 주권보다 중요시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전쟁’이라고 평가한다.우리 언론들도 대체로 이에 추종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세르비아인들을 청소한 마케도니아에서는 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쿠르드족을 청소하고 있는 터키는 전쟁의 징벌은 커녕 쿠르드족 지도자 오잘란의 체포를 선물받았는가? 게다가 터키는 이 전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인권 전쟁론’으로는 도대체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사가의 대가 클라우제비츠가 일찍이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명명한 바와 같이,세기말의 유고전쟁도 표면의 구호와는 다른 보다 중요한 이유가 이면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구 동구지역을 서방질서에 편입하는 것,발칸지역의 지정학적 주도권을 차지하는 것 등 정치·경제·지정학적 이해관계이다.이것은 단지 코소보문제가 아니라 유고연방,나아가 발칸반도 전반과 관련된다.전쟁의 이유가 된 ‘랑부예 협정’을 보면 나토군이 유고 전지역을 사실상자유롭게 이동·감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유고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협정이다.미국은 브레진스키가 주창하던 바 세계최대 대륙인 유라시아대륙의 쟁패에 나서고,독일은 서방의 동구 포섭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의 절대적인 헤게모니는 반대하여 평화협상에 나서고,터키는 발칸의 패권을 노리고,러시아는 동구와 발칸의 일방적인 서구화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가 유고전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이해관계와 더불어 전쟁의 추이이다.인류의 발전사는 무기의 발전사라고 할 정도로,전쟁에서 무기는 중요한 수단이다.더욱이 걸프전에 대한 요란한 TV중계와 토플러의 ‘제3의 물결전쟁론’에서 보듯,선진 언론은 첨단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하이테크무기가 전쟁을 결정짓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전쟁에서 결정적 조건은 여전히 무기가 아니라 인간이다.일찍이 마오쩌뚱은 일본제국주의의 최신무력에 시간으로 맞서는 지구전(持久戰)전략을 개념화하였다.전쟁은 무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지상군의 투입으로정리되는데,이 지상군은 인간의 삶과 결합되고,대중의 삶은 다시 시간과 역사의 바다에 존재한다.이에 따라 강대국은 전쟁에서 흔히 무기의 우세를 선전하고,대중과 시간의 바다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냉전시기 미·소 양 강대국은 이런 시간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미국은 베트남전에서 각종 신종무기를 선보였지만,정글과 시간의 바다에 빠져 결국에는 패배하였다.소련 역시 부족적 수준의 발전단계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지만 패배했다.냉전 해체 이후 벌어진 걸프전에 대한 독해(讀解)도 서로 상반되었다.미국은 최신무기로 전쟁에 완승하였다고 선전하고,부시대통령과 파웰사령관은 걸프전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시야확보가 좋은 넓은 사막에서 최신예 무기의 명중률도 전쟁 당시의 보도와는 달리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고,그 잘난(?) 무기도 그렇게 우스운(?) 후세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지 못했다.아무튼 걸프전은최신무기의 새로운 위력보다는 전쟁에서 지상군,더 나아가 대중과 시간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이제 유고에 대한 나토의 공습도 석달째 접어들어,유고는 중세시기로 퇴보하였다고 한다.서방의 최신무기가 승리한 것도,그렇다고 밀로셰비치가 정당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이 전쟁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장담하기가 힘들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쟁은 무기로 결판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점차 전쟁의 이면 동기들이 부상할 것이고,그리고 그것은 다시 시간과 역사의 평가를받게 될 것이다. [都珍淳 창원대 교수]
  • [특별기고] 白凡정신으로 위기 극복을

    올해는 백범선생 서거 50주년이다.백범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내 소원은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썼다. 백범은 대한민국이 어떠한 완전 자주독립국가로 되기를 소원했을까? 통일된 창조적 선진 문화국가가 되어 약소국·후진국들을 돕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모범적 국가로 되기를 소원했다. 그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그래서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에서,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썼다.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조국독립과 통일을 위해 싸운 백범의 민족주의는 이와같이 ‘열린 민족주의’였다.‘열린 민족주의’가 백범정신의 핵심인것이다. 일찌기 인도의 자와하랄 네루는 세계사에서 민족주의에는 반드시 구분해야할 두개 유형이 있음을 강조했다.그 하나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약소민족을 침략하고 수탈한 민족주의이다.과거 서양열강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이 유형이라고 했다.이 유형의 민족주의는 인류의 절대다수인 약소민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인류발전과 세계평화에 큰 해악을 끼쳤다. 다른 하나의 민족주의는 열강의 제국주의침략에 대항하여 자기민족의 자유·해방·독립·통일을 추구한 약소민족들의 민족주의,제3세계의 민족주의이다.이 유형의 민족주의는 희생당해 죽어가는 약소민족들을 구원하여 자유와해방과 독립을 준 민족주의이다.이 유형의 민족주의는 인류의 행복과 발전,세계평화와 세계사의 진전에 크게 기여하는 참으로 위대한 이념이라고 했다.백범의 민족주의,한국의 민족주의는 후자 유형의 민족주의이다.백범의 민족주의,한국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압박으로부터 한국민족의 자유·해방·독립·통일만을 추구했지,단 한번도 다른 나라나 민족들을 침략하거나 지배할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민족주의이다.그것은 언제나 ‘열린 민족주의’였으며,세계평화를 추구하고 약소민족들을 도우려는 민족주의였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의 두개 유형을 구분하지 못하고,서양열강과 일본이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세계화·세계주의를 주창하니까,덩달아 한국인들이 한국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세계화’를 주창하는 것은 실사구시적인 것이 아니며,옳은 것이 아니다. 열강은 부강국들이므로,약소민족·후진국·중진국들이 민족주의를 버리고‘세계화’만 주창해야 약소민족들의 저항을 받지 않고 열강의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화를 권고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아직 인류사에는 ‘세계정부’도 없고 ‘보편적 세계화’도 없다.내용을들여다보면 그것은 열강의 ‘국가이익 극대화’를 분장하기 위한 열강의 ‘세계화’의 측면이 강하다. 아직도 인류사의 현단계는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자주독립을 강화하고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면서 국제협력과 세계평화를 강화해 나가는 ‘민족독립국가들의 국제적 협력강화’의 단계이다.그러므로 우리 한국과 같이 겨우 중진국 단계이고 분단국가로서 ‘통일’을 성취해야 할 나라의 국민들은 ‘열린민족주의’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한국은 민족주의를 버리면 열강에게 종속당하고 희생당하며,선진국도,통일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의 ‘열린 민족주의’는 선진국과 통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애국심과 민족문화를 고취하고,국민경제를 발전시키며,국가이익을 철저히 수호하면서,다른 약소민족들과 후진국들을 돕고 세계평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민족·국가와 세계를 균형·조화시켜야 하지,민족국가를 경시하거나 버리고 ‘세계화’만 강조하면,한국민족은 또 열강에게 희생당하기 십상이다. ‘열린 민족주의’의 모범이 백범의 민족주의이다.우리는 백범의 ‘열린민족주의’를 배우고 계승 발전시켜 당장의 IMF 사태,WTO 세계체제의 도전을극복하고,궁극적으로는 민족통일을 달성하며,창조적 선진 문화국가를 건설하여 진정한 세계평화와 국제협력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 反美시위 中지도부 타격…공산보수파·軍입지 강화

    - 뉴욕타임즈 경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에 대한 항의 시위가확산될 경우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주롱지(朱鎔基)총리등 중국의 개혁지도부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 타임스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반미·반나토 시위를 분석한 베이징발 기사에서 “이번 시위를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입장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시위에서 분출하는 반미감정과 민족주의는 중국의 개혁노선을 위험한 방향으로 몰고 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시위대의 과격한 감정은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장을 비롯한 공산당내 보수 강경파와 군수뇌부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시위자들이 외친 ‘미제국주의 반대’‘마오쩌둥(毛澤東) 만세’와 같은 반외세,민족주의적 구호는 경제개혁 이후 20년 동안 들을 수 없었던 것”이라면서 대미 관계개선 정책의 이면에 잠재했던 중국인들의 또 다른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타임스는 또 “마오(毛)주석 시절에는중국이 미국에 당당히 맞섰지만 지금의 지도자들은 겨우 미국의 사과 한마디에 기뻐할 뿐이다”라고 말한 한 중국인 교사를 인용하며 일과성 반응이기는 하나 시위가 장기화될 경우 장주석과 주총리에게는 큰 압력으로 작용할지모른다고 분석했다.한편 신문은 다음달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10주년을 앞두고 정국불안을 피하기 위해 당국이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며 시위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 중국인의 뿌리깊은 反美감정

    나토의 베오그라드주재 중국대사관 폭격으로 촉발된 중국내 대규모 반미(反美)시위는 그간 쌓여온 중국내 반미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인들은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며 중국내 소수민족문제와 타이완(臺灣)문제 등에 개입하며 큰소리치는 미국에 심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93년 2000년 올림픽유치 경쟁에서 두표차로 베이징(北京)이 시드니에게 진 것도 ‘미국의 조직적인 방해' 때문이란 중국인들의 원망이 아직도 어제 일인양 가시지 않고 있다.미국이 중국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커가는 중국을 견제한다는 게 중국인들의 생각이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중국중심의 ‘중화주의’가 대두하고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반미적인 경향은 두드러진다.최근 핵기술절취 의혹사건 등으로 고조된 미국내 ‘중국위협론’도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더욱 자극했다. 지역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은 초강대국 미국에게 경쟁의식도 갖고 있다.소련붕괴이후 중국이 전략적으로 협력 대상이라기보다는 견제 대상이 되고있다는 생각이 중국의 화를 돋우고 있다. 1840년 아편전쟁이후 국토가 조차지로 분할되는 반식민지를 경험한 중국인들은 미국에도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미국도 지난 1900년 영국,프랑스등 다른 7개국과 함께 베이징을 점령하고 궁궐을 약탈한 나라중의 하나라는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중국의 정치·사회제도를 서양처럼 만들고,중국내 소수민족 지역을 분리독립시키는 것,즉 서화(西化)와 분화(分化)를 위한 끊임없이 내정간섭이 미국의 대중정책의 근간이라고 중국은 비판하고 있다. 커가는 중국의 민족주의 물결이 때마침 터진 오폭사건으로 그 폭발력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석우기자 swlee@
  • 스코틀랜드·웨일스선거 집권 노동당 승리

    에딘버러 AFP AP 연합 6일 3백여 년만에 실시된 스코틀랜드 자치 의회선거에서 영국의 집권 노동당이 승리했으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할것으로 나타났다. BBC 방송의 출구조사(오차율 ± 3%)에 따르면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집권 노동당은 전체 의석 129석중 55∼61석을 얻어 과반수 65석에 몇 석이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독립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41∼47석을,중도성향으로노동당과의 연정 가능성이 점쳐지는 자유민주당은 10∼16석을,보수당은 11∼17석을 각각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웨일스 지역 자치 의회 선거에서는 전체 60석중 노동당이 28∼32석을차지했으나 역시 과반수 확보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웨일스당(CP)은 지난 97년 5월 선거때의 2배인 26%의 득표율로 13∼17석을 확보하는 등 예상외로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 [기고] 2공화국의 민주주의와 통일문제

    민주당정부 등장직후부터 통일문제는 국가의 근본 존재를 민감하게 건드리면서 전체 사회를 예리하게 가르기 시작했다.한국사회에서 통일은 가장 기저(基底)에 해당하는 문제라 즉각 드러나지는 않으나 일단 드러나면 폭발성을갖는다.게다가 논쟁에 북한이 개입하자 갈등은 증폭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당시 북한의 대남인식은,남북한 국력차를 반영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4·19직후 북한은 남한정부의 통치능력을 전면 부인,임시정부를 구성하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제기했다.남한경제의 피폐상을 언급하며 남한의 경제정책 수립에 직접 개입하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물론 교류협력,주한미군철수,연방제 역시 강도높게 주장했다. 정치·시민사회의 통일논의,연속적인 북한의 제의 및 그들과 시민사회의 직접적인 의견교환에 대해 정부당국은 공적인 통제기능을 행사하지 못했다.특히 독재타도라는 ‘민주주의 문제’에서 인식이 일치돼 ‘정권형성연합’을이룬 민주당과 사회세력·학생은 ‘통일문제’를 놓고는 정면대립하는 관계로 돌아섰다.정권형성연합의 재빠른 해체는 민주당정부 붕괴의 핵심요인이되었다. 민주당 정부의 수세적 위상은 남한의 국력이 북한보다 열세인 데서 오는 구조적 문제였다.북한의 통일제안은 휴전선 너머에서 그치지 않고 남한내부의논쟁에 깊숙이 들어왔다.급진 통일론은 남한정부의 통일정책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인정,공산세력과의 연립추구,미국 안보우산의 거부,자유민주주의 지양을 담았다는 점 때문에 분단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에게는 북한 주장에 접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5·16군사쿠데타의 첫번째 명분이 ‘반공 국시’라는 점은 민족문제에의 대처가 민주정부를 타도한 논리적 근거가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민사회에서 다양하게 표출된 통일논의가 이념대결 양상을 띠어가며국가의 통제를 벗어나고,정부가 민주적 방식으로는 이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임이 드러난 시점에서 제2공화국은 붕괴된 것이다.냉전의 절정에서 등장한제2공화국은 통일문제가 다른 문제를 압도하자 이니셔티브를 상실한 채 그속에 함몰해 버렸다. 그러나 제2공화국이 통일문제 해결에 실패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세계 냉전구조의 온존,미국의 제3세계 정책과 상당한 관련성을 갖는다.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해소되지 않고는 주변부 국가가 냉전질서를 해체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제2공화국 사례는 보여준다.전방 반공초소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 역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와 평화 진전에 대한 관심을 압도했다.최근 공개된자료에 따를 때 미국은 박정희가 주도하는 쿠데타 움직임을 한달 전에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정부와 박정희 양쪽에게 어떤 적극적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제2공화국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에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북진통일론이 소멸되고 통일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악습이 사라진 것만도 민주화 때문에 가능했다. 국가형성 과정,한국전쟁,그리고 냉전질서에 따른 전초기지로서의 위치 때문에 남한정부는 통일문제에서 선택폭을 제한받을 수 밖에 없었다.분단국가의기본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이 극우적인 것만큼이나 급진파들의 통일논의 역시 냉전과 분단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적인 주장이었다.통일지상주의는 단순히 정부정책을 변경하는 수준이 아니라 분단정부와 질서의 근본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분단국가에서 혁명을 이루어도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전에 체제의 수용 범위를 넘어선 급진적 민족주의를 제기하는 것은 민주화 자체를되돌릴 수 있음을 장면정부 붕괴 과정은 보여준다. [朴明林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실장]
  • 유고 공급 봉쇄 나토-러 충돌 위기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유고공습 한달째인 24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에 전달되는 석유수입을 막기 위한 해상봉쇄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워싱턴 나토정상회담에서 결의된 대(對)유고 유류공급 봉쇄결의에 따라 웨슬리 클라크 나토군 최고사령관은 앞으로 유고로 가는 모든 선박에 군병력을 승선시켜 수색,압류할수 있는 구체적 계획수립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24일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을 통해 “국제적 약속에따라 유고에 계속 유류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혀 나토의 조치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이에 따라 아드리아해상에서 나토군과 러시아선박간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배재할수 없게 됐다. 나토는 수색에 불응하는 선박에 대해 “일차 경고하고 이를 무시할 경우 무력을 사용해 격침 내지 강제나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고에 대한 유류지원은 거의 러시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따라서 해상봉쇄조치의 주요 대상은 아드리아해안의 유고 항구를 통해 유류를 공급하는 러시아 선박들이다. 유고의 해상봉쇄 계획은 공습 한달째인 지금까지 유고내 유류저장 시설 대부분을 파괴했음에도 외부에서 전달되는 유류가 유고군의 기동력을 유지하고 있어 이를 차단하기 위한 작전차원에서 이뤄졌다. 봉쇄조치를 실행에 옮기는데는 러시아의 반발뿐 아니라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지 않다.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24일 “나토의 해상봉쇄가 법적인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우려를 표명했다.국제상거래 혹은 동맹관계 차원에서 이뤄지던 러시아의 유고 유류지원을 군사적으로 막기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러시아는 현재 경제위기에서 헤어나기 위해 미국이나 기타 서방세계의 원조에 의존하는 약자의 처지이긴 하다.그러나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목소리,외교적 필요성등으로 인해 나토와 무력대결의 길을 택할 가능성도 배재할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러시아 선박이 유류지원을 위해 아드리아해로 진입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유고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를 나토가 취함으로써 유고사태는 공습 개시 이래 확전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단계이자 유고에 막바지 조르기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 [화제의 책]“3·1의거 천도교에 의해 계획·실천”주장

    ‘3·1의거’ 80주년을 맞아 성신여대 사학과 이현회(李炫熙)교수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모아 최근 ‘3·1혁명,그 진실을 밝힌다’를 출간했다. 종래 역사학계의 ‘3·1의거’ 관련 연구가 포괄적이고도 주로 성과면에 치중한 반면 이 책은 ‘3·1의거’의 시원(始源)과 주도계층에 초점을 맞추고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3·1의거’는 돌발적으로 발생한 항일의거가 아니라 민족종교인 동학을 이은 천도교에 의해 계획,실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특히천도교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孫秉熙)를 비롯한 천도교 그룹이 중심이돼 ‘경술국치’이후 줄기차게 준비해온 결과라고 설명한다. 천도교의 경우 1894년 ‘동학혁명’ 때부터 민족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보국안민(輔國安民)등 구국적 자립의식,민족주의 이념에서 출발했다는 것.당시 여러 종교집단 가운데서 천도교가중심이 된 것은 200만여명에 달하는 신도와 풍족한 자금,치밀한 전국적 조직 등이 다른 단체보다 유리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3·1의거’직후 국내외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에서 손병희를 대통령에 추대한 것은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신인간사 2만5,000원 정운현기자
  • ‘한길아트‘ 시리즈 1호 ‘한국미술의 자생성’ 발간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미술의 자생성과 정체성을 탐구한 ‘한국미술의 자생성’이 한길아트에서 나왔다.‘한길아트 뮤지엄’ 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이 책은 한국미의 정체성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독창적 미의식의 명작을 만들어낸 근원적 힘이었던 자생력과 한국미술의 원형을 찾아간다. 한길아트 뮤지엄 시리즈는 미술·건축·영화·연극 등 예술분야의 많은 책을 펴내고 있는 한길아트가 보다 깊이 있는 예술분야의 탐구를 위해 기획한것이다.김언호 한길아트 대표는 “기초이론에서 전문적 세계에 이르기까지국내외 예술을 탐구,학문적 체계를 세우고 예술과 문화를 한 차원 높이는데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한국근대미술사 연구’와 ‘한국의풍속화’가 시리즈의 다음 작품으로 올 상반기중에 나온다. ‘한국미술의 자생성’은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등 22명의 전문학자들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술·조각·건축·공예및 미의식과 정체성 등을 통사적으로 다룬 역작이다.이 책은 독창적 미의식의 세계를 창조했던 한국미술 특유의 자생력을 회복하고 서구 모더니즘의 언저리에서 표류했던 우리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탐구여행을 시작하며 ‘자생성’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내고 있다. 현대미술은 아직도 서구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좇아가고 있지만 서구미술 변방에 머물고 있다.현대미술의 이러한 슬픈 자화상을 지우고 새로운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되찾고 자생력을 회복해야 한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에는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을 만들어온 자생력이 있었다.자생력 있는 미술은 모든 외부적 요소를 흡수하여 자기 작품 속에 새롭게 창조해 낸다.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고구려 고분벽화다.“고구려 고분벽화는 외래문화를 수용·소화하여 재창조했다.고구려는 중국 등의 회화양식을 받아들여 고구려 고분벽화 특유의 세계로 재창조했다”고 전호태 울산대사학과 교수는 말한다. “조선 전기의 불화도 중국 송·원대 불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 특유의불화를 창조했으며 그것이 한국불화의 자생성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고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는 밝혔다.조선후기에는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인 화풍이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근대 서양문명의 도입과 식민사관,해방후 근대화과정에서 나타난 변형된 민족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은 혼란에 빠졌다. 지나치게 서구지향적이라는 반성으로부터 90년대 들어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태만 서울산업대 교수는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조선후기 실학이 추구했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에 바탕한 민족주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법고창신은 무조건적으로 과거를 숭배하거나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전통과 문화에 기초하되 바람직한 규범과 실현가능을 담보한 민족주의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도 한국미술계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민족의식이라고강조한다.“민족의식은 정체성 문제와 직결된다.정체성 수립없이는 한국미술의 미래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민족의식과 정체성은 국제적 보편성과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창순기자 cslee@
  • 7차 韓·英 미래포럼

    제7차 한·영 미래포럼 정치분야 회의가 20일 오후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열렸다. 한국과 영국을 비롯,아시아와 유럽의 정세를 분석하는 이날 포럼은 한국측회장 한승수(韓昇洙)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앤터니 패러­호클리 영국측 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한국 및 동북아정세’,‘영국 및 유럽정세’ 등 두 분과로 나누어 논의가 진행됐다. 한회장은 “올해 포럼은 환란극복 청신호에 여왕 방문까지 겹쳐 어느때보다 밝은 전망속에 맞이하게 됐다”면서 “황금의 기회를 양국관계 성숙의 디딤돌로 삼는데 포럼이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이에 패러-호클리 영국측 회장은 “한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장 생산적인 나라가 되어 동아시아를 이끌 지도적 위치에 서기 바란다”고 답했다. 발제에 나선 포럼 한국측 의장 김상우(金翔宇) 국민회의 의원은 “현정권의 대북유화책인 햇볕정책이 북한정권의 취약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서 나온것”이라고 설명했고 김병국(金炳局)고려대 교수는 “한국사회가 환란을 겪은 많은 동북아국가들과 달리 민족주의위에서의개방을 지속한 것은 민족주의 정치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김대통령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영국 및 유럽정세 발제자로는 데일 캠벨­세이버 노동당 5선 의원 및 폴 뉴월 전 런던시장 등이 나섰다. 한·영 미래포럼은 양국 이해증진과 친선도모를 위해 93년 발족한 연례 학술모임으로 양국을 오가며 열려왔다.올해는 엘리자베스2세 방한에 맞춰 20·21일 이틀간 계속된다. 이 포럼에는 한국측에서 강영훈(姜英勳)전 국무총리,정덕구(鄭德龜)재정경제부차관,이경숙(李慶淑)숙명여대 총장,정몽규(鄭夢奎)현대산업개발 회장 등이,영국측에서 국회의원 스탠리 바텀리,캐임브리지 루시캐밴디쉬 대학 페리학장 등이 참석했다.
  • 「오늘 ‘4·19’ 39돌」4·19세대-대학생 좌담

    4·19는 민주와 자유를 열망하는 지식인과 민중들의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혁명이었다.하지만 39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4·19는 ‘미완(未完)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정치·사회·문화적 갈등구조와 맞물려4·19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4·19세대인이영일(李榮一) 국민회의 의원과 한영우(韓永愚) 서울대 인문대학장,고려대대학원 이준복(李準馥·신방과 석사 과정)씨와 연세대 손수진(孫秀眞·여·신방과 4년)씨의 좌담을 통해 4·19의 의미를 되새기고 4·19정신의 완성을위한 과제와 방안을 짚어본다. 이영일 4·19가 우리 정치사에 준 교훈은 4·19를 계기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식이 국민의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입니다.또 우리가 미래에 구현해야 할 비전을 민주주의 형태로 완성했다는 것입니다.4·19가 ‘미완의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은 1년 만에 군사정권에 의해 붕괴됐기 때문입니다.4·19 이후 25년 동안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4·19는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국민이 국회의원을 바꿀 힘은 가지게 됐지만 정권을 바꿀 만한 힘은 갖지 못했습니다.그러다가 97년 12월18일 비로소 국민의 손에 의해 정권까지 바꾸게됐습니다.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비로소 4·19의 이념이 구현된 것이지요.그래서 4·19의 지향성이 국민의 정부에서 꽃피웠다고 봅니다. 손수진 ‘4.19세대는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4·19세대는 사회적으로영향력 있는 위치를 점하면서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는 지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4·19세대가 변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영일 4·19때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투사로 살다 죽으라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백이(白夷) 숙제(叔齊)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지요.물론 4.19때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4·19가 민족 대 반민족의 투쟁이라면 불타협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겠지요.4·19세대에 대한 평가는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4.19때의 활약상을 소개하겠습니다.나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에 다니던 김치호라는 친구와함께 남산합창단 단원이었습니다.종로 5가에서 곤봉을 맞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문리대 앞 쌍과부집에서 우동을한 그릇 먹은 뒤 그 친구에게 시위하러 다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그랬더니 그 친구는 도서관에 가방을 가지러 간다고 하면서 경무대로 달려가 죽음을택했습니다.해마다 4·19묘소에 가면 그 친구의 묘에 꼭 들립니다. 한영우 나는 당시 서울대 사학과 4학년으로 후배들을 인솔해 시위를 했습니다.태평로에 있는 옛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할 때 외칠 구호가 없어옆에 있는 조선일보사에서 몇사람이 구수회의를 해 즉석에서 구호를 만든 일이 있습니다. 4·19는 준비된 혁명이 아닙니다.그래서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프랑스혁명은 계몽사상가들이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고 지지세력도 있어 폭발적 힘을 발휘했습니다.하지만 4·19는 혁명 뒤에 이념이 만들어져 왔습니다.당시에는 합의된 이념이 없었습니다.막연한 애국심을 가지고 시작된뒤 나중에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당,야당,재야,혁신에 이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됐습니다.군사정권에 협조한 사람도 있고,군사정권에 대항해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4·19는 작게 보면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도화선이 됐습니다.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선비들이 개혁의 선두에 나섰던 역사의 전통이 반복된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영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4·19때 87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시민·사회단체,정당,이익집단,언론 등많은 집단이 더 이상 학생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학생은 이제 국민의 울분을 대변하는 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21세기는 정보화시대입니다.정보화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후배 대학생들에게 경쟁력을 갖춘 신지식인으로서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영우 4·19때 군이 중립을 지켰던 것은 연구 대상입니다.논문에 따르면부정선거와 발포책임자인 최인규 내무부장관 등이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협력을 요청해 계엄을 선포했는데 국방부 자체가 협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미국이하야를 요구한 것은 이승만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정권은 한반도를 민주주의 진열장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의도에 맞지않았습니다.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미·일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구상에 맞지 않았습니다.이승만은 강력한 반일(反日)주의자였기 때문에일본과 손을 잡기를 꺼렸습니다. 이준복 현재 전체 대학사회에는 다양성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학생운동에 대한 관심과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떨어집니다.이같은 변화는 93년 들어,특히 93학번부터 뚜렷합니다.90·91·92학번은 87년 6월항쟁의 경험이 있는 87·88학번이 군 복무 뒤 복학했을 때학교를 같이 다녀 80년대 학번들의 영향력 속에서 80년대의 정서를 지니고있습니다.그러나 93학번부터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이는 고교생 때부터 약자를 배려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정의감은 정권을 가진 사람에게 억압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입니다.그런데 이른바 ‘왕따’문화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없앴습니다.또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세대들의그릇된 생각과 모 재벌의 광고처럼 1등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약화시켰습니다.지금의 대학사회는 4·19와 70·80년대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손수진 4·19가 ‘미완의 혁명’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혁명은 진보세력이 혁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4·19는 완성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지식인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자기들만의 우리에 갇혀 있었으며,민주화와 자립경제를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인식했으면 민중과 함께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영우 4·19를 완전 성공으로도,완전 실패로도 보지 않습니다.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4·19는 미성숙 상태에서 일어났으며 지금도 풀어가는 과정입니다.4·19에 0점을 주는 것은 너무지나칩니다.역사는 단번에 100점으로 갈 수 없습니다.현재는 100점으로 가고 있는데 60∼70점에 도달한 상태입니다.지나치게 허무주의적으로 보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도그마에 빠지면 현실에 입각한 생존논리를 주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래논리를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준복 해방 뒤 우리는 친일파와 변절자에 대한 청산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좌·우 이념대립이 반공주의로 나타나면서 청산의 문제가 흐지부지됐습니다.4·19 뒤 부정부패와 비리 청산이 다시 문제로 떠올랐지만 장면(張勉) 정부에서 청산이 되지 않았으며,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청산의 문제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손수진 저는 4·19가 부패로 점철된 이승만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사회운동이 조직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한 교수께서는 4·19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건에서 지식인의 노력이 컸는데 지금의 지식인과 학생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영우 4·19를 바탕으로 1년 앞으로 닥친 21세기의 우리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방적 민족주의입니다.우리 정서에 맞는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신자유주의 경쟁원리도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민족주의를 도외시해서는 안됩니다. 이준복 언론은 학생운동의 이념성을 걱정합니다.그러나 그 이념성은 4·19를 촉발한 정의감과 다르지 않습니다.다만 이념이 더 선명해졌을 뿐입니다. 저는 학생운동의 이념이 불순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손수진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폐쇄적인 면을 띠고 있습니다.운동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학생운동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설득력을 잃어가는 이념을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영우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에 동의합니다.21세기에는 사회과학적 이념보다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자애(自愛)의식을 기른 뒤 세계와 협력해야 합니다.그리고 전통문화를 정치·경제·사회 등모든 분야를이끄는 견인차로 승화시켜야 합니다.20세기 우리 전통문화를 무너뜨렸던 서양문명과 전통문화를 용해시켜 새 문명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준복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상적 스펙트럼이 보다 다양화돼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공공연히 언급할 수 있는 분위기가조성돼 있지 못합니다.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포괄하지 못하면 4·19는 영원히 진행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손수진 자라나는 세대들이 통일 후 ‘우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회의가 듭니다.교육을 통해 인도주의와 민족 동질성을 가르치고,통일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미완의 과제라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조현석 김미경기자 hyun68@
  • 밀로셰비치의 對나토 전략

    수주째 거의 무방비상태로 나토의 공습을 당하고 있는 유고측이 마지막 탈출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탈출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하나는 주변 국가들에 군사도발을일으켜 전선을 확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감정을 부추겨 슬라브민족대 서방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전화가 이웃 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지로 번지고 나토가 지상군을 파견하고 여기에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불을 뿜을 경우 이번 사태는 제 3의 발칸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토측의 우려다.바로 나토측이 상정하는최악의 시니리오중 하나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최근 러시아 벨루로시 유고연방으로 구성된 ‘슬라브 3국 연합안’을 내놓았다.친서방적인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알바니아및 나토의 강력한 목죄기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같은 핏줄인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구상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공에 맞서 세르비아가 러시아 등 연합국과 손잡았던 1차 대전때와 비슷한상황을 연출하려는 것으로도볼 수 있다. 경제난으로 서방의 힘을 빌어야 하는 러시아로서는 미국 주도의 나토를 견제할 필요성 때문에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밀로셰비치도 이 점을 노렸을 수 있다. 1차대전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해 쏜 한발의 총탄이 신호탄이 됐다.밀로셰비치도 지금 이 한발의 신호탄을 찾고 있을법하다.유고군은 지난 10일과 11일 알바니아 국경에서 코소보해방군(KLA)과교전한데 이어 13일에는 KLA소탕을 빌미로 알바니아 국경을 침범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코소보 사태가 발칸반도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번 사태가 밀로셰비치가 바라는 대로 발칸전쟁으로 비화될지는 미지수다. 나토의 군사력이 세르비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친유고적인 러시아도 서방으로부터 경제협력을 받아야 하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밀로셰비치가원하는대로 나토에 총구를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19)정공채 長詩’미8군 차’(上)

    1964년 3월 어느날 정공채 시인은 녹번동 자택에서 ‘반공사상 계몽연구소’ 명의로 된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받았다.그 순간 시인의 뇌리에는 지난 겨울 직장이었던 일성신약 상무실로 불려가 만났던 말끔한 한 신사가 떠올랐다.‘중앙정보부’ 소속이라고 밝힌 그 신사는 정시인을 명동의 장미다방으로 임의 동행,보통 이상의 자세한 신상명세서를 작성해 갔었다.정시인은이게 필시 ‘현대문학’ 1963년 12월호에 발표했던 장시 ‘미8군의 차’ 때문이려니 싶어 무척 불안했다.그 뒤 몇 번인가 다른 얼굴의 ‘중정’소속 신사가 다녀가곤 해서 초조감은 증폭되었으나 그게 큰 문제로 번지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던 참에 받은 편지였다.서신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정공채 귀하 귀하는 반공법 피의자로 문의지사가 유하오니 내 30일(금요일) 오전 9시까지 당소에 출두할 사. 추신: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 것.귀하에게 극히 불리함.출두시 인장을 지참할 사. 중앙정보부 수사관 서” 이런 내용에다 약도까지 그려진 이 한 통의 편지가 정공채 시인의 문학적생애는 물론이고 삶의 뿌리까지 뒤흔드리라고는 그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경남 하동 출신의 정시인은 진주 농고를 거쳐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부산일보기자,학원사에 이어 ‘민족일보’기자로 오소백 사회부장 밑에서 시경출입을 하기도 했었다.이어 문화방송 프로듀서로 있다가 일성신약으로 직장을 옮긴,당시 시인으로서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운 좋은 소시민이었다. 정시인의 경력에 등장하는 ‘민족일보’란 어떤 신문이었던가.“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양단된 조국의 비애를 호소하는 신문”이란 기치로 1961년 2월 13일 창간했다가 5·16 쿠데타 3일 후인 5월 19일 종간 당한 분단시대 언론사의가장 비극적인 일간지였다.송지영,이상두,양수정 등 당대의 명논객들을 포함한 13명이 ‘혁명재판’에 회부되어 발행인 조용수는 사형이 집행되고 신문지령은 총 92호밖에 못나온 단명의 바로 그 신문이다.창간호 1면에 김수영의 ‘쌀난리’란 시를 게재했던 이 신문은 이후 ‘다가온 춘궁’(신석정),‘총알은 아직도 날고있다’(김재원),‘4.19시’(김수영),‘핏방울이 고여있던한 컬레의 신발처럼’(신동문) 등 다분히 현실고발적인 작품들을 실었다.이중 주목할만한 두 시인도 있다.‘무섭지 않느냐’는 제목의 시는 오탁번 현고려대교수의 작품인데,당시엔 원주고교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채 실려있다. 이 시로 오시인이 관계당국에 연행,조사받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다른 한편은 바로 폐간 하루 전인 5월 18일자 시인데 계엄군의 검열로 제목과 시인의 이름이 완전히 삭제당해 있는데,그게 바로 권용태시인의 ‘구름은 아직도’란 작품임이 최근 밝혀졌다. “병실같은/그늘진 조국의 하늘 아래서/나는,/서러운 식민지의 밤을 걸을때처럼/어두운 가슴으로 살아간다”고 시작되는 이 햇빛도 못 본 시는 권용태시인으로 하여금 수사당국에 연행 당해 고초만 받도록 만들었다. 정공채 시인은 위의 서신이 지시한대로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 덕수상고 옆소재 ‘반공사상 계몽 연구소’로 출두,지레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로이드테 안경의 수사관에게 신사적인조사를 6일 동안 출퇴근 형식으로 받았다.심문의 초점은 정시인의 사상이 ‘반미주의’에다 ‘교도민주주의자’인가에 모아졌다.6.25 이후 송병수의 ‘쇼리 킴’이나 백인빈의 ‘조용한 강’,오영수의 ‘안나의 유서’같은 몇몇 양공주 등장 소설 말고는 그때까지 미국과 미군에 대하여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미8군의 차’란 제목은 단연불온으로 비칠 수 있었다.그러나 미군만 비판했다고 처벌할 수는 없으니 사상적으로 좌경분자란 낙인이 필요했겠는데,그 논리적 근거를 ‘교도민주주의자’에서 마련할 셈이었다.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제창한 ‘교도민주주의’란 반제·민족·사회주의 노선으로 제3세계 지식인들을 잠시 매료시켰던이념이었다. 정공채 시인은 자신이 ‘민족주의자에 민주주의자’라는 입장으로 대응했지만 끝이 안보이는 수사는 불현듯 “이제 조사는 끝나고 구속 될 것같은 예감”을 갖게 만들었다.4월초 수사 6일째인 토요일 아침 정시인은 그날 구속될것같은 낌새로 아예 두툼한 내의에다 외투까지 갖고 출두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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