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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단군과 기독교

    기독교도들의 단군상 파괴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그러나일제하에서는 기독교와 단군은 결코 긴장관계가 아니었고,서로 어울렸다.그 구체적 증거를 일제하 경기도 강화 기독교인들이 수행한 마리산부흥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마리산부흥회는 일제하 강화 기독교인들이 형성한 독특한 신앙형태로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 해방과 독립,단군신앙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강화는 한말 기독교 민족운동가인 성재 이동휘에 의하여 보창학교,합일학교 등 교육운동이 크게 일어난 곳이며,기독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강화의 기독교인들은 3·1운동을 주도하여 열정적인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당시 교회들은 부흥회와 사경회를 자주 개최하였는데,새벽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하여,오전에는 성경공부하는 사경회를 열고,오후에는 교인들이 흩어져 개인 전도와 낙심자들을 심방하고 저녁에는 부흥회로 모였다고 한다. 이들의 마지막 부흥사경회의 모임은 마리산 참성단에서 가졌는데 이때 강화의 여러 교회는 연합집회로서기독교인 수백인이 모여 노천기도를 올렸다.이들은 횃불을 들고 참성단을 보수할 돌들을 지고 찬송을 부르면서 민족의 성산 마리산 산정에 올랐다. 참성단을 향해 가면서 중간 중간에 멈추어 기도하고,민족의 해방과독립을 하나님께 빌었다. 이들 기독교인은 당시 일제가 의도적으로 훼손했던 참성단을 보수하면서 국조 단군의 민족신앙과 기독교 복음을 동앗줄처럼 하나로 연결시켰다.참성단에 올라 집회를 가진데서 훗날 ‘마리산부흥회’란 명칭이 붙여졌고 강화 기독교인들만의 특이한 신앙집회로 자리잡게 되었다.부흥회는 강화 근처의 장봉도라는 섬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섬에서 섬으로 집회가 연결되다가 마지막 모임을 마리산 참성단에서 갖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그들은 바다를 건너는 과정을 출애굽여정으로,또 산에 오르는 과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으로 해석함으로써,성서의 해방과 구원의 역사를 강화에서 재현하였다.일제시대였기 때문에 독립과 민족을 말할 수는 없었으나,민족의 국조신앙 근원지인 참성단에 올라 기도하는 교인들의 의식 속에크게 자리하고있었던 것은 민족이었다.강화 사방에서 모여든 교인들은 돌을 이고지고 정성을 다하여 참성단을 향하였고 허물어진 제단을 보수하였다. 오늘날까지 참성단의 옛 모습이 유지된 것은 바로 강화 기독교인들의 민족신앙 덕분이었다. 마리산기도회가 민족신앙과 연결되는 결정적인 증거는 이 부흥회를이끌었던 지도자들이 3·1운동때,강화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민족운동가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마리산 신앙집회는 일제시대는 물론이고 1950년대까지 해마다 열렸다. 기독교와 단군은 결코 배타적인 것만이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개신교는 이땅에 전파된 지 100년을 넘어섰고,천주교는 200년을 넘었다.더이상 서양종교가 아니다.기독교는 조선후기와 한말,일제하를거치면서 한민족의 고난과 민중의 어려운 현실에 동참하였다.기독교는 한민족의 종교 지형속에서 민족종교,민중종교로 자리하고 있다.따라서 기독교는 한민족 문화의 중심이요,민족정체성을 대변하는 단군을 박대해선 안된다. 일제하 노령 및 서·북간도에서는 단군을 민족독립운동의 한방편으로 삼았다.당시 단군신앙의 대종교와 기독교는 연합하여 교육·사회결사·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다.기독교가 짧은 기간동안 한민족에게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민족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데 있다.그간 기독교는 인권운동,빈민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에 헌신해왔다.이제 민족문화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새 민족공동체운동을 일으켰으면 한다. 서굉일 한신대교수·국사학
  • 종교계 “남북 교류 활성화”기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 7개 종단 대표의 북한방문을 초청함에 따라 그동안 각 종단별로 행해지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에선 이번 초청을 낙관만 할 수 없다며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 위원장이 초청한 7개 종단은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따라서 신흥종단을 비롯해 국내에서 활동중인 종교중문화관광부에 등록된 모든 종교가 사실상 초청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한다. 각 종단이 포함된 만큼 대북 교류의 내용도 폭넓게 추진될 수 있을것으로 종교계는 일단 기대하고 있다.현재로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평양신학원 재개원,나진·선봉지구 교회설립,금강산 신계사등 북한사찰 복원,남북 합동영산재,개성 성균관 석전대제(釋奠大祭)개최,북한 단군릉 개천절 행사 공동개최 등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 한켠에선 신중론이 적지않다.이번 초청에 대해‘대외적 홍보’나 ‘경제지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관측이 그것이다. 사실 김 위원장의 이번 7개 종단 대표 초청은 북한의 종교계 사정을 볼때 극히 이례적인 처사랄 수 있다.북한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허용하는 것처럼 돼있지만 실상은 극히 폐쇄적인 종교환경을 갖고 있다.문화관광부에 따르면 북한 종교단체는 조선종교인협의회를 비롯해 조선불교도연맹과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카톨릭교협회 조선천도교회가 고작이다. 불교계의 경우 300여명의 승려와 1만여명의 신도가 전부이며 개신교계는 목사 20여명,전도사 130여명에 신도 1만명 수준이다.교회는 평양시내의 봉수·칠골교회 등 2개와 가정교회 500여개가 있을 뿐.천주교는 장충성당이 유일한 교회로 신자가 3,000여명이 있으나 사제는단 한명도 없다.북한 종교계의 움직임도 당국 정책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그동안 국내 종교계는 북한 종교계 접촉에 있어서 조심스럽게대응해왔다. 외부에서 북한 종교계를 보는 눈도 곱지않다.지난달만 해도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 정부의 종교활동 억압을 보고하면서 북한을 98년 제정된 국제종교자유법위반국 명단에 포함시킬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신중론에 비해 국내 종교계에선 낙관론이 우세한 편. 그동안 종교계가 앞장서 추진해온 남북교류 노력이 7개 종단 대표 초청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게된 만큼 종교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목소리가 높다. 특히 최근 접촉결과 북한 종교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이같은 주장을 펴는 측의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에 다녀온 한국불교 진각종 관계자들은 “몇 년 전에 비해 북한의 승려와 신도들의 모습이 개방적이며 좀더 종교적으로 충실한 모습을 갖춘 사실에 놀랐다”며 “이같은 흐름이 최근 개방논의와 맞물려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북, 7대종단 대표 방북 초청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은 14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불교와 개신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유교·민족종교등 7대 종단 대표의 방북을 초청했다”고 밝혔다.언론사 사장단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박 장관은 이날 문화·체육·관광분야의 교류추진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장관은 “북한은 천주교 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정진석(鄭鎭奭) 서울대교구장의 방북도 교황의 북한 방문 이전 이루어질 수 있도록노력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또 “김정일 위원장은 이미자와 김연자 등 가수들이 오는 크리스마스에 꼭 와달라고 4차례나 얘기했다”면서 “목란관에서 먼저 자신이 품평을 한 뒤 큰 극장에서 인민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체육교류 문제에는 “북한은 시드니 올림픽이 급한 만큼 그 이후에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면서 “그러나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같은 선수복을 입고,한반도 깃발 아래 함께 입장하자는 제의에는 ‘주의깊게 논의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박 장관은 북한이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한 데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강력한 뜻을 전달했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은 오는 29·30일 열리는 장관급 회담부터 (조선일보의 취재를) 허용해야 한다는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 美 중동평화 ‘마지막 도박’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22년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역사적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던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중동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양쪽 모두 11일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거듭된 협상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들을 둘러싼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고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또 레임덕에 빠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절반의 성공 가능성만 보고 마련된 이번회담은 클린턴 대통령의 ‘도박’에 비유될 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배경] 중동평화협상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기 때문이다.지난달말 중동지역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3국 정상회담 개최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그러나 1주일 사이에 사태가 급박하게돌아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2일 평화협상 타결 여부와 관계없이 최종협상 타결시한인 9월13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발표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독립선언을 강행할 경우 요르단강 서안을 합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사로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임기를 일곱달밖에 남겨놓지 않은 클린턴 대통령은 중동평화를 자신의 외교치적으로 남기고 싶어한다.그러나 최근까지 계속됐던 바라크,아라파트와의개별회담을 통해 양쪽의 팽팽한 이견만 재확인하고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그는 “회동을 미루거나 교착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대안이 될수 없다”며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전망]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평화협정이 타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클린턴이 아무리 압력을 가하더라도 자치정부의 연장과 국경문제에 관한 클린턴 대통령의 절충안에 합의하는 정도로 그칠 것으로 본다.동예루살렘 문제와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등은 장기과제로 남겨놓을 가능성이 높다.바라크와 아라파트 모두 내부 반발로 더 이상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않은 것도 협상에 암운을 드리운다.3국 중동정상회담 발표직후 이스라엘의연정 파트너들이 연정탈퇴를 선언했고 러시아 이민 출신의 나탄 샤란스키 이민자정당 당수는 내무장관직을 사퇴했다.이민자정당과 민족종교당의 연정탈퇴로 바라크 정부는 의회에서 과반에 미달,연정와해 위기에 몰렸다.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 관계자들도 성공하지 못할 회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평화협상에 합의해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바라크 총리나 아라파트 수반 모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하지만 회담이 실패하면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정만 악화돼 중동평화는 요원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온다.이번 회담에서 합의점 도출에실패,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1월 미 대선과 2월 취임 사이에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을 취하며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 어그러진 중동문제를 다시 수습하는 짐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민족종교 지도자대회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양원)는 20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민족종교 대표와 관계자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민족종교 지도자대회를 갖고종교지도자들이 우리사회의 난국극복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민족종교 대표들은 이날 ‘국난수습을 위한 결의문’을 통해 ▲평화적 남북통일과 통일한국의 새역사·문화 창조에 앞장설 것 ▲국토사랑운동을 적극전개할 것 ▲민족정신을 선양할 것을 결의했다. 협의회는 또 국내외 동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남북간 정상회담으로 통일한국을 향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성숙돼가고 있다”며 “민족화합에 지장을 주는 상극의 분열을 피하고 상생의 대화합을 위해 온 동포가 대동단결해 매진하자”고 다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종교계도 “정상회담 성공기원” 행사 줄이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계에서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민족 분단의 비극을 마무리짓고 통일의 새 시대를 여는 첫 관문으로서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를 잇따라 열고 있다. 회담이 하루 연기된 데 대해 만에 하나라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일말의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산고 끝에 더욱 좋은 결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 7개 종단은 정상회담을 앞둔 마지막 주말인 10일 저녁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 시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화해와 평화를 향한 겨레대합창’행사를 갖고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했다. 천태종 관문사(주지 전운덕스님)는 10일 밤 관문사 옥불전에서 5,000여명의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대법회를열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천주교도 11일 각각 전국 교회와 성당에서 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예배를 가졌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정상회담에 맞춰 비료 1,000t과 양수 설비 50세트를 북한조선가톨릭교협회에 전달하기로 하고 이날 오후4시 여수신항에서 축성식을 갖기도 했다. 이같은 성공 기원행사는 이번주에도 이어져 조계종은 12일 오전 10시 전국 2,000여 사찰에서 사시예불을 통해 회담의 성공을 축원하고 민족통일을 기원하며 종을 108번 치는 명종의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종교계…6·25 50주년 통일기원 행사

    오는 6월25일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종교계의 염원을 강하게 담은 대규모 행사들이 펼쳐진다. 천주교는 25일 자정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역 광장에서 전국 14개 교구와 해외동포,탈북동포 등 6,000여명이 참가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날’ 행사를 갖는다. 같은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동안 서울 동숭로 대학로 특설무대에선 불교 천주교 민족종교 등 7개 종단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로 북한어린이와 전쟁피해아동돕기를 위한 모금운동인 ‘온겨레평화대행진’이 열리며 이에앞서 11일 오후 2시 경복궁 중앙박물관 광장 특설무대와 세종로 일대에선 ‘겨레와 평화를 향한 겨레대합창’이 펼쳐진다. 이가운데 천주교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날’ 행사는 춘천교구를 중심으로 가톨릭 전체가 참여하는 이례적인 행사.단순한 통일에의 외침이 아니라 통일에 대비한 가톨릭계의 실천적인 의지를 강하게 담은 행사로관심을 모은다. 같은날 7대종단과 민화협의 ‘온겨레평화대행진’은 종교와 시민단체가 연대해 북한동포돕기와 세계평화 정착운동에 지속적으로 나선다는 신호탄격 행사랄 수 있다. 우선 가톨릭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날’은 ‘하나되게 하소서’를 주제로 ‘평화의종’ 타종을 비롯해 현장공연,평화의 제단쌓기,침묵기도,미사,과거회상과 화합의 잔치로 짜여지는 총체적 종교행사.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주교단 주교 13명 등 고위 성직자들이 대거 참여해 행사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전쟁전 서울∼원산을 잇던 경원선 노선이 끊어진 곳,월정리역의 철마를 빛과 소리로 부각시킨 공연에 이어 각 교구 대표 250명이 가져온 흙으로 평화의 제단을 쌓게되며 철과 탄피를 녹여 만든 높이 1.7m,직경 99㎝,무게 1톤짜리 평화의 종을 50번 타종한다.이날 행사장에선 신자들이 과거를 회상하며화합을 기원하는 뜻에서 낙태반대 서명과 장기기증·헌혈 증서를 봉헌하며통일후를 가정해 국내 14개 교구가 북녘의 3개시 9개 도와 교류를 위한 결연식도 갖는다. 가톨릭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는 “정치 군사적 성격을벗어나 분단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장소로 월정리역을 택해 행사를 갖게됐다”며 “이번 행사가아픔을 되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통일의 소원을 적극적으로 이루자는 실행의의미를 담고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온겨레평화대행진은 북한어린이와 전쟁피해 아동을 돕기위한 기금모금운동.7대종단과 민화협이 본격적인 북한돕기에 앞서 벌이는 첫 행사인 셈인데 이후 범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상설기구를 발족,남북한 기아아동과 전세계 전쟁피해아동 구호,소년병 파견반대 활동을 위한 모금과 지원을 벌일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외언내언] 북한의 釋誕節

    불기 2544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남한의 전국사찰에서는 각종 불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특히 올해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법회를비롯해 남북한 불교인 교류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어 어느때보다 석가탄신일의 의미를 더해주는 듯싶다.북한에서도 해마다 불교의 4대명절 가운데 하나인 석가모니 탄신일 석탄절(음력 4월8일)에 법회가 열리고 있다.북한의 석탄절 행사는 지난 88년 묘향산 보현사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광법사 등 북한각지에 있는 60여개 사찰에서 열린다. 묘향산에 위치한 보현사는 북한에서 가장 큰 사찰이며 이 사찰에 설치돼 있는 장경고에는 팔만대장경 목판본이 보존돼 있다.평양에 있는 광림사는 조선불교도연맹 본부가 있는 곳으로 북한 불교의 본산이다.북한은 올 석탄절을앞두고 각지 사찰에 연등을 달고 봉축행사를 준비했다.연등에는 ‘김일성주석 영생기원’을 비롯해 ‘영생’,‘강성대국’,‘결사옹위’등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을 새긴 것이 많다.북한 불교는 승려 2,000여명,신도는 10여만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승려는 대처승으로 머리를 기르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이 펴낸 철학사전에 의하면 ‘종교는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의 수중에 장악되어 인민을 기만하고 착취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은 정부수립 이후 종교를 사회주의 사상을 마비시키는 아편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탄압하고 말살하는 종교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진정한 종교의 자유와 종교행위는 보장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그러나1980년대 들어와서 북한은 전향적 종교정책을 펴게 된다. 1989년 평양에 봉수교회,칠곡교회,장충동성당이 건축됐고 광법사와 보현사가 재건되면서 제한적이고 관제적이지만 공식적으로 종교의식을 허용했다.구약·신약성서와 한글 팔만대장경,반야심경등이 출판되기도 하였다.그리고 북한은 1992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제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종교인들의 해외활동및 남북종교인들의 접촉과교류가 이루어지게 됐다. 북한이 종교의식을 40여년만에 재개하고전향적인 종교정책을 추진하게 된배경은 무엇보다 ‘종교가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석가탄신일을 맞아 우리가 기원하는 것은 불교의 자비를 통해 남북 불교신도들이 하나되고 화합하여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기 바란다.2,000년 동안 민족종교로 자리잡아온불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의 기틀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張淸洙논설위원 csj@
  • [김삼웅 칼럼] 부처님 오신날 ‘큰 수레’의 사명

    모레(11일)는 ‘부처님 오신날’이다.서기 372년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와공인된 지 1,60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이미 토착화된 민족종교가 된 것이다. 불교가 그동안 우리 민족에 끼친 정신적 문화적 영향은 지대하다.지금도 가장 많은 신도를 포용한다.불교는 세계인구 4분의 1의 신도를 얻어 신앙의 기초는 물론 철학 사상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그리스도교,이슬람교와 더불어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 인류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새천년의 첫 석탄일을 맞아 남북불교지도자가 상대방 신도들에게 각각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경하할 일이다.대한불교 조계종서정대 총무원장과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박태화 위원장이 각각 팩스를 통해 상대측 신도에게 인사말을 보낸 것은 분단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부처의 법이 하나이듯 겨레도 하나이다”(서정대),“풍성번영하는 통일된 강성대국을 그려보자”(박태화)는 양측의 석탄절 메시지는 민족통일을 향한 남북불교도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석탄절 관련 ‘삽화’ 몇 토막. 心田에 씨앗뿌려 석가모니가 어느날 탁발하고 있을 때 한 농부가 “우리는이렇게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서 양식을 얻고 있고,당신도 스스로 씨를 뿌려서 식량을 얻는 것이 좋지 않겠소?”하며 힐문했다.석가는 “당연한 말이오. 나도 역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그 수확으로 식량을 얻고 있소”라고 대답했다.농부가 다시 “하지만 당신이 씨뿌리고 밭가는 것을 본 적이 없소.당신의 괭이와 소는 어디 있으며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소?” 이에 석가는 “지혜는 내가 일구는 괭이요,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앗이다.몸(身)·입(口)·정신(意)에서 악업을 뽑는 것은 내가 밭에서 잡초를 뽑는 일이오.정진은 내가끄는 소(牛)로서, 그것은 쉼없이 활동하여 물러남이 없고 슬퍼함이 없으며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경지에 이르게 함이다.이것이 내가 일구는 밭이니,그 수확물은 감로(甘露)의 과실이오.사람들은 이렇게 밭을 갊으로써 일체의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는 것이오.”(‘잡아함경:雜阿含經’) 달속의 토끼 ‘달과 토끼’란 부처님 전생설화가 있다.어느날 여우와 원숭이,토끼가 놀고 있는 곳에 배고픈 나그네가 지나갔다.세 마리의 짐승들은 너무가엾게 생각하여 길손에게 줄 음식물을 찾아나섰다.여우와 원숭이는 음식물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토끼는 빈손이었다.하는 수 없이 토끼는 자신의 몸을모닥불 속에 던져 나그네에게 그 몸을 바쳤다.부처의 모습으로 바뀐 나그네는 토끼의 그 갸륵한 마음씨를 칭찬하고 달세계에 보내어 이로부터 달에는토끼가 살게 되었다 한다. 雪山童子 어느날 설산동자가 수행을 하기 위해 산길을 걷고 있는데 사람을잡아먹는 귀신(羅刹)이 나타나서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是生滅法)’이라고 읊었다.동자는 세상의 이치를 노래한 이 말에 감심하여 다음 구(句)를 기다렸으나 끝내 말하지 않으므로 나찰에게 “내 몸을 당신께 바치겠으니다음 구절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그러자 나찰은 ‘생멸멸기 적멸위락(生滅滅己寂滅爲樂)’이라 읊었으며,동자는 이것을 후세인들에게 수행의 길잡이로 삼도록 나무에 새긴후 약속대로 절벽에서 나찰을 향해 뛰어내렸다.그런데 순식간에 오색구름이 몰려와동자의 몸을 받치고 귀신은 부처의 모습으로바뀌었다.(‘열반경:涅槃經’) 불교계의 참회운동 기독교에서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있듯이 불교에는 석가를 배신한 사촌 아우 데바닷타(提婆達多)가 있다.유다와 데바는 둘다 죄를뉘우치고 결국 자살하였다. 한국불교는 토착종교로서 국가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호국불교의 전통도 지켜왔다.그러나 민족과 중생을 배반한 ‘데바’도 적지않았다.특히 일제시대 친일불교도들의 매국적 행위나 해방후 독재정권에 기생하면서 민주화를외면해온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지금도 조계종은 31본사(本寺)제도와 같은일제 잔재가 유지되고 있으며 염불보다 잿밥,사판승(事判僧)과 이판승(理判僧)의 대립,지나친 물신(物神)주의와 기복(祈福)주의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가톨릭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고해성사’를 마다하지 않듯이 한국불교도 지난날의 ‘과오’를 회개하면서 통일운동의 선구자로 거듭나야 한다. 다행히 달라이라마의 9월 방한도 성사된다하니 참회를 통해 한국불교가 국민화합과 민족통일의 ‘큰 수레(大乘)’의 사명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김삼웅 주필
  • “무종교 젊은층 불교에 호감”

    *불교신문 종교의식 설문. 종교를 갖지 않은 한국의 무종교 젊은이들은 앞으로 신앙을 가질 경우 불교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사실은 불교신문이 창간 40주년을맞아 지난 달 전국의 15∼34세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종교의식 조사결과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무종교자에 대한 질문에서 앞으로 종교를 갖는다면 어느 종교를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불교가 48.2%로 가장 많았고 다음 기독교 22.4%,천주교 22%,민족종교 6.4%,유교 1.2% 순으로 답했다.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데 대해선 과반수가 넘는 52.4%가 ‘아니다’라고 답한 반면 ‘그렇다’는 25.1%,‘모르겠다’는 22.5%에 그쳐 절반 이상이 종말론을 믿지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찰이나 교회에 가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찰엔 91.2%,교회에는 87. 9%가 가본 적이 있다고 답해 응답자 대부분이 사찰과 교회에 한번쯤은 가본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그러나 앞으로 절에 가거나 불교에 관해 알고싶은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와,‘아니다’,‘호기심은 있지만망설여질 것 같다’가 각각 37.3%,30.7%,32%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밖에 스님이나 목사와 대화에서 스님은 45.9%,목사와는 52%가 대화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해 교직자들과 대화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또 이 세상은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창조했다에 대해선 ‘아니다’가 48.5%,‘그렇다’가 30%,그리고 ‘모르겠다’가 21.4%로 ‘창조설’을 믿지 않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호기자
  • 한국종교지도자협 공동대표의장 이·취임식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공동대표의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이취임식에는 김영진(金泳鎭) 국가조찬기도회장,김순규(金順珪)문화관광부차관과 각 종단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해 지덕(池德)전 의장에게 공로패를 증정하고 이만신(李萬信·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신임 의장의 취임을 축하했다. 한편 협의회는 이날 이의장과 정대(正大)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박정일(朴正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조정근(趙正勤) 원불교 교정원장,최창규(崔昌圭) 성균관장,김광욱(金光旭) 천도교 교령,한양원(韓陽元)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7대종교 수장 명의로 ‘바르고 깨끗한 선거실현을 위한 우리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 종교인들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바르고 깨끗하게 치러지도록 각자의 역할과 임무수행에 적극 앞장선다”고 선언하고 ▲지역감정 유발과 금품ㆍ향응 제공,비방ㆍ흑색선전 배격 ▲정당 및 후보자들의 정견ㆍ정책중심의 선거운동 ▲유권자들의 참정권 행사 ▲정부의 선거 개입 자제를 촉구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선거에 종교 이용말라” 7대종단원로 기자회견

    불교 가톨릭 원불교 등 국내 7대 종단 원로들은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4·13총선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각계에 공명선거와 정치개혁을촉구하는 제언을 발표했다. 이날 회견에는 송월주(宋月珠) 전 조계종 총무원장,김광욱(金光旭) 천도교교령,김몽은(金蒙恩) 신부,김성수(金成洙) 성공회 주교,조정근(趙正勤) 원불교 교정원장,최근덕(崔根德) 전 성균관장,한양원(韓陽元)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원로들은 ‘4·13 국회의원선거에 즈음한 제언’을 통해 “종교 지도자들은과거 잘못된 선거문화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뜻을 모아 정부 정치인 국민 종교인들에 제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제언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종교집회에서 공개적으로 특정 정파나 후보를 연고에 의해 지지·반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유권자인 국민에 대해서는 어떤 비리에도 응하지 말 것과 특히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빠짐없이 참여해 선거명예혁명을 이루어내자고 말했다. 또 정치권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정치개혁열망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으며 특히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후보자와 선거에 관계된 정보·자료 공개와 준법 공명선거운동을 당부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3·1절 남북연결 적극 추진

    새 천년 첫 3·1절에 열리는 ‘화해와 평화를 향한 온겨레 손잡기 운동’에북한 동포를 참여시키는 방안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상임 공동본부장 正大 조계종 총무원장)는 2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7개 종단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실무 공동본부장 김동완(金東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손잡기 운동에 북한 동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에 실무회의를열 것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북한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지난달 변진흥(卞鎭興) 사무총장등 대표 4명을 북한에 파견,조선종교인협의회 장재언 회장을 만났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특별대사로 임명했으며,김수환(金壽煥) 추기경과 강원용(姜元龍)목사를 고문으로 추대했다. 운동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아직까지는 국가보안법 등을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무는 “겨레 손잡기 운동은 북한의 통일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면서“겨레 손잡기가 신의주까지는 못미치더라도 평양이나 판문점까지는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운동본부은 오는 3월1일 판문점에서 서울·대전을 거쳐 대전∼부산,대전∼목포로 갈리는 850km 구간에서 100만∼150만명이 참여하는 겨레 손잡기 운동을 펼 계획이다.전국 44개 지역본부를 통해 신청한 참가자들은 3·1절 오후3시 일제히 손을 잡으며 평화의 노래를 합창하게 된다.겨레 손잡기 운동 참가 신청과 접수 등의 업무는 인터넷(www.peaceline.org)으로 이뤄진다. 운동본부는 새 천년 첫 3·1절을 화해와 평화의 날로 정하고 종교지도자 333인이 공동으로 마련한 평화 선언문을 채택해 낭독할 예정이다. 이날 회견에는 정대 총무원장,김광욱(金光旭) 천도교 교령,김종수(金宗秀)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조정근(趙正勤) 원불교 교정원장,최창규(崔昌圭) 성균관장,한양원(韓陽元)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종단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개신교목사 기독신문 기고문 파문

    최근 서울 신림동 W교회 최종근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기관지인 주간 기독신문에 기독교 신앙인들은 다른 종교에서 설립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발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최 목사는 ‘대학진학 앞둔 수험생에게’란 제목의 글에서 “기독청년들이반드시 명문대학에만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학할 대학을 결정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으며 그것은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의 정체(건학이념)를 점검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목사는 “전국의 186개 4년제 대학 중에는 여러 종교단체들이 각자의 종교교리를 토대로 설립해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학교들이 많다”며 “이들 대학은 특정종교의 포교와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따라서 이런 대학에 진학하면 본의 아니게 특정종교의 이념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며 영적 갈등이나 신앙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이들 대학에 진학을삼가는 것이 좋다”는 것. 최 목사는 이 글에서 타종교 단체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학교로 대진대 동국대 삼육대 선문대 원광대 위덕대 등을 꼽았다.특히 통일교가 설립한 선문대에 대해서는 “결코 진학해서는 안될 대학”이라고 했으며 출가한 승려나 예비교무만이 입학할 수 있는 불교 중앙승가대와 원불교 영산원불교대도 기피대상 학교 명단에 올려놓았다. 최 목사는 “지난해 한 기독교 신자가 민족종교가 운영하는 대학에 진학해신앙 차이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교회내 학부형 대상의 진학지도용 자료로쓴 글로 진학전 충분히 대학의 성격과 특성을 파악하도록 조언하는 차원”이라며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성원 원불교 서울교구 교무는 “권위있는 교단의 목사가 종교신문을 통해 종교갈등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펼친 것은 종교간 화합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동국대 직원 변재덕씨(31)도 “엄연히 개인의 종교자유가 보장되는 현실에서 타 종교의 종립대 지망을 막는 것 자체가 또하나의 인권침해일 수 있다”며 “실제로 각 종립대학에서 학사과정에 특정 종교관련 과목을 강요하는 곳은 없는데도 이같은 주장을 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불교신자는 “동국대나 원광대에도 기독학생회가 아무런 제약없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고 “만일 불교계 신문에 특정 개신교 교단이 운영하는 총신대나 한신대 등은 물론 개신교 이념으로 세워진 연세대나 이화여대 등을 ‘진학을 삼가야할 대학’으로 지목했다면 개신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성호기자 kimus@
  • 신흥 민족종교 청우일신회 교세 확장

    경남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 국도(國島).지난 70년대만 해도 80가구 200여주민이 거주할 정도로 번창했던 곳이다.지금은 여객선조차 닿지 않는 남해바다 맨 끝섬이지만 이곳이 바로 한주에 수백명의 신도가 수련에 참가하는 신흥 민족종교 청우일신회(靑羽一新會)의 요람임을 아는 이는 흔치않다. 지난 88년 종전인 연동흠(延東欽·72)씨가 ‘새 시대에 맡는 새 도를 창명(彰明)’키 위해 창도한 청우일신회는 새로운 시대,즉 봄으로 가는 하나의 모임이라는 뜻.서울 부산 수원 광주 등 전국 13개 지부 4만여명의 신도들이 보내오는 회비로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이곳을 찾는 신도만도 1만여명에 달한다. 연 종전은 증산도 강증산 상제의 사상에 접한 뒤 태극도에 입도해 조정산도주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전국을 주유하며 기도터를 찾던 어느날 꿈속에서 남쪽으로 떠나라는 소리를 듣는다.남해로 내려가 섬을 순회하기 시작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국도’다.여기에서 정신개벽의 무자기(無自欺)와 인간개조인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세계개벽인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을 큰 뜻으로 삼아 청우일신회를 창도한 것.당시 주민들이 연 종전을 수상한 인물로 신고해 경찰이 몇번씩 섬에 출두했으나 기도처가 너무 험난해 접근을 못하고 돌아가곤 했다고 한다. 연 종전은 섬 개발에 나서 89년말 40평규모의 영대와 회관(건평 200평),숙소 식당을 갖춰 지금은 500여명이 동시에 숙식할 수 있는 ‘살아있는 섬’으로 바꿔놓았다.해안 동북쪽 2곳에 접안시설도 갖췄고 산 비탈을 깎아 대지 1,000여평,건평 500여평에 이르는 각종 건물도 만들었는데 당시 공사는 순전히 도인들의 손으로 이뤄졌다고 한다.동북쪽의 아치형 다리 능파교는 자태가빼어나다. 청우일신회는 신도들 대부분이 주로 수도생활에만 전력해 잘 알려지지 않다가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외부행사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음양합덕’과 ‘해원상생’을 통해 인류의 묵은 원을 없애고 도통진경의새 세기를 건설한다”는 교리가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신도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국도에는 20여명의 종사자들이 상주하며 청우일신회가 신도를 실어나르는 선박이 통영 삼덕항에서 토·일요일 두차례 운항한다. 이들은 인류 마지막 구원의 징표인 ‘해인(海印)’은 자신들의 도맥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리고 국도가 바로 그 발원지임을 굳게 믿고있다. [국도 김성호기자]
  • 종교계 최대 예술제 열린다

    종교간 예술교류를 통해 종교예술진흥과 화합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는 ‘대한민국 종교예술제’ 3번째 행사가 오는 26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과 영상자료원,프레스센터에서 다양하게 진행된다. 사단법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주최하는 이번 종교예술제는 불교 개신교천주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민족종교 등 국내 모든 종교계가 참여해 음악제미술제 영화제 학술세미나로 꾸민다. 26일 오후 9시부터 예술의전당 음악당 1층로비에서 열리는 개막 축하연에는 각 종단 대표와 종교방송사장 등 400여명이 참석해 국내 종교계 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종교예술제 행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음악제(26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메조 소프라노 김청자 ‘아베마리아’‘야훼는 나의 목자’,소프라노 이경애 ‘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주는 왕이시다’,소프라노 김보경 ‘그리운금강산’‘나 없으매’,가야금 병창 ‘연꽃향기 누리 가득히’‘진도아리랑’,장승호·이경선 ‘기타와 바이올린 2중주’,천주교 기독교원불교 불교각 75명씩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 300명의 앙상블,단국대 오케스트라 ‘가고파’‘내마음’‘청산에 살리라’. ■미술제(26일∼11월2일 예술의전당 미술관 3층 제4·5전시실)기독교 불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민족종교계에서 출품된 동양화 25점,서양화 30점,조각 11점,서예 20점,사진·공예 26점 등 모두 112점 전시. ■영화제(27∼30일 한국영상자료원 시사실)불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참가.27일 오세암(박철수감독)28일 개벽(임권택감독)29일 켄로치(영국영화)30일 이집트왕자(미국 애니메이션)■학술세미나(11월2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기조강연 김지하(한민족 전통사상의 현대적 의의와 전망) 주제발표 유병덕(원광대교수·전통사상과 한국종교)김성건(서원대교수·새천년 새문화 창조와종교인의 역할)
  • [義烈 독립투쟁] (1-1) 역사적 의의와 성과 전문가 좌담

    대한매일은 광복 54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에 의열투쟁에 몸바친 의사·열사들의 독립투쟁 활약상과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의열 독립투쟁’을 주간 특집기획물로 연재한다.의열투쟁은 주로 개인차원에서 전개됐으나 중국의 장개석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두고 ‘중국 군인 30만이 못하는 일을 고려청년한 사람이 해냈다’고 할 정도로 그 성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의·열사가운데 상징적인 몇 분을 제외하고는 낯선 이름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연재에 앞서 전문가 좌담을 통해 의열투쟁의 의의,성과 등을 짚어보기로 한다. 김삼웅 주필 지난해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꾼 이래 민족사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본지는 친일파들의 반민족행위를 고발한 ‘친일의 군상’에 이어이번에 새로 일제강점기 의열투쟁에 몸바치신 의사·열사들의 일대기와 항일정신을 되새기는 연재물을 기획하였습니다.그동안 이 분야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는 더러 있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언론매체에서 이를 집중 조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이번 좌담모임은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열투쟁사 연재에 앞서 의열투쟁의 성과나 역사적 의의 등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하였습니다.먼저 역사학계에서 내리고 있는 의사·열사의 용어 정의부터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동양의 고전에서는 열사는도덕적 행위,의사는 사회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조동걸 교수 우선 ‘의열투쟁’이라는 용어나 개념은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의열투쟁사’를 편찬해낸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의·열사를 정의한 것을 보면,의사는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져 행동으로 실천한 분’으로 대표적으로 안중근,윤봉길 의사같은 분을 들 수 있겠지요.반면 열사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로 저항한 분’으로 이준 열사가 대표적인 분이라고 할수 있죠. 채영국 연구원 의·열사 구분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보이는 특이한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중국에 갔을 때 ‘혁명열사기념탑’ 같은 것은 봤습니다만 ‘의사’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치 않는 것으로 압니다.두 용어를 구분하는것은 우리만의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신용하 교수 의암 유인석 선생이 선비의 저항정신으로,첫째 무기를 들고적과 싸우는 유형,둘째 외국으로 망명,몸을 깨끗이 보존하는 유형,셋째 국내에서 자결,자정(自靖)하여 지조를 지키는 유형 등 세 유형을 들고는 그 가운데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첫번째 유형이라고 하였습니다.바로 이 저항정신이 의·열사의 정신으로 계승됐다고 봅니다.그 중에서도 의사는 개인차원이나혹은 집단적으로 특공작전을 한 분으로 개인 차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안중근 의사를,집단적인 차원으로는 의열단,한인애국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김 주필 그러면 이같은 의·열사들의 의열투쟁은 언제,무슨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으며 어떠한 행태를 띠고 있었는지,또 의병과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어떤 책에서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격분을 참지 못해 현지에서 자결한 주영공사 이한응(李漢應)선생의 순국을 의열투쟁의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더군요. 조 교수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된 이후부터 의열투쟁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의열단체로는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에 등장한 ‘오적(五賊)암살단’이 최초라고 봅니다.본격적으로 의열투쟁은 1908년 전명운·장인환 의사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것이며 본 궤도에 오른 것은 아무래도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부터라고 봅니다. 신 교수 의열투쟁의 계보는 1906년 나철(일명 나인영)·오기호(일명 오혁)등이 ‘오적’ 암살을 모의한 것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물론 이들의 오적 처단계획은 도중에 발각돼 좌절됐지만 이를 계기로 1909년 민족종교인 대종교가 탄생하였죠.전명운·장인환 두 의사의 의거는 국내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는 물론 미국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돼 당시 세계적인 반향을불러 일으켰습니다.흔히 일제하 의사들의 의거를 ‘테러’로 규정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는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왜냐하면 제국주의 하에서 약소민족이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행한 의열투쟁은 일종의 ‘특공작전’으로 봐야한다고 봅니다. 조 교수 미국이나영국 같은 나라들이 약소국의 그런 행위를 ‘테러’로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미군의 OSS작전 같은 것도 그렇게 따진다면‘테러’지요.주임무가 주요기관 파괴·요인 처단 아니었습니까? 채 박사 의열단이나 한인애국단의 ‘선언서’나 ‘격문’ 등에 나타난 의열투쟁 정신은 근본적으로 생존권 획득과 인류의 자유·행복추구를 목적으로 했다는 차원에서 피지배민족으로서는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가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고 불렀듯이 우리입장에서 보면 일제는 ‘강도(强盜)’나 다름없었지요. 김 주필 일제하 의열투쟁은 개인차원에서 결행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독립진영에 미친 그 성과는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안중근 의사의 의거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의열투쟁의 전개양상과시기별 특성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신 교수 무기를 사용한 의열투쟁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전쟁적 성격 ▲유격전 성격 ▲특공작전 등 세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의병전을 전면전이라면 유격전은 전쟁중 적을 기습공격한 후 재빨리 빠져나와 계속 작전을 하는 방식입니다.반면 특공작전은 강대한 적의 목표물을 공격,치명타를 입힌 후 특공대원 자신도 자폭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 교수 의열투쟁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특공대원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결행한다는 신 교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반면 일제말기 ‘가미가제(神風)’의 경우 자기의 의사와 무관하게 죽음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이는 학살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신 교수 의열투쟁의 경우 거사의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효과가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여러 의사 가운데는 의거에 성공한분도 있지만 더러는 사전에 정보가 누설돼 거사 전에 좌절됐거나 또 거사는결행했지만 실패한 분들도 있습니다.그러나 ‘살신성인’의 정신은 어느쪽할 것 없이 모두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채 박사 1910년대에 작성된 한 문건에 따르면,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간도지역에서는 조선동포들이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만들어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절을 하면서 신(神)처럼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시기별 의열투쟁의 특징으로는,우선 1910년 경술국치 이전에는 대개 ‘국권수호’를 내걸었습니다.1910년대의 의열투쟁은 의병의 세력이 쇠퇴한 상황에서 만주에서 의열투쟁을 준비한 기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본격적인 의열투쟁은 1920년대 들어 의열단 결성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3·1의거후 고조된민족의식과 의열투쟁의 여건이 성숙됐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독립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있던 1930년대에는 중국을 무대로 활동한 임시정부 산하한인애국단의 활동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겠죠. 김 주필 끝으로 의열투쟁이 독립운동사 측면에서의 의의나 평가 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보면 의열투쟁은 독립운동이 침체기에 빠져있거나 또는 일제의 통치가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주로 터져나왔습니다.이로써 일제에게는 큰 타격을 준 반면 우리 민족진영에는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조 교수 일제하 독립운동은 처음에는의병이나 계몽운동의 형태로 출발했다가 점차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의열투쟁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그런데 의열투쟁은 개인차원의 독립운동치고는 성과가 컸고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에 활력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독립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후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가리켜 ‘안중근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부른 경우라든지 또 윤봉길 의사의거후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임정을 주목,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수 백명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큰 것이었지요.백범김구 주석이 환국후 그 복잡한 정치상황 하에서도 의·열사들의 유해봉환을중대사업으로 취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 교수 안의사와 윤의사 두 분의 의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안의사가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후 일본과 러시아의 만주분할 계획이 좌절되자 중국의 언론과 지사들은 안의사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였고 이것이 인연이 돼만주와 중국땅이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가 됐습니다.또 ‘만보산사건’으로 생겨난 한·중 간의 적대감은 윤의사의 의거후 곧바로 봄눈 녹듯이사라지고 말았으며 당시 장개석은 ‘30만 중국군대가 못한 일을 고려청년 한 명이 해냈다’며 극찬했습니다.‘김구-장개석회담’이 바로 윤의사 의거 직후에 처음으로 성사됐으며 중국측의 지원도 이 때부터 공식 시작됐지요.제국주의자들의 이론을 극복하고 의열투쟁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이론정립이필요하다고 봅니다. 김 주필 일제하 선열들의 의열투쟁정신은 해방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부 계승된 점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요즘과 같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의열투쟁의 정신이 더욱 값진 교훈으로 다가온다고 하겠습니다.오늘 좌담에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리=정운현기자 jwh59@
  • 金대통령 종교계 지도자들과 대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9일 종교계 지도자들과 정국현안에 대해 대화를나눴다.크게는 내각제 문제부터 작게는 오는 2000년 3월1일 열릴 종교계 행사 지원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종교계 지도자들은 특히 내각제 정쟁중단과 강력한 개혁을 촉구하는 7개항의 건의문을 미리 작성,김대통령에게전달했다. 접견은 종교계 지도자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참석한 지도자는 고산조계종 총무원장과 김종수(金宗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김동완(金東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광욱(金光旭)천도교 교령,조정근(趙正勤)원불교 교정원장,최창규(崔昌圭)성균관장, 한양원(韓陽元)민족종교협의회회장 등 8명이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을 통해 시중의 여론을 가감없이 듣는 귀중한 자리이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종교계 지도자들의 건의에 대해 일일이 답변했다.특히 권력구조를 둘러싼 정쟁 중단 요청에 “국민이 내각책임제가 좋다고 하면 그렇게 할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국가위기,남북관계를 봐서 연기해야 된다는 여론이 높다”고말했다. 종교계 지도자들은 또 부정부패 척결과 광범위한 개혁을 요구했다.김대통령은 인권법·부정부패방지법 등 각종 개혁입법 추진을 소개한뒤 “앞으로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부정부패 척결 문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 ‘방탄국회’가 7차례나 열렸음을 예로 들며 “국민의 대표들이 법을 안지키고 있다”고 질타한 뒤 종교계 지도자와 언론의 적극적역할을 강조했다. 이어 종교계 지도자들은 “국가보안법을 전향적으로 현실화하고 대북정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해달라”고 주문했다.또 8·15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사면조치를 건의하고 IMF 극복과정에서 극대화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해소를 촉구했다.김대통령은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를 가급적 많이 하겠다”며 미복권자 1,500명의 전원 복권을 다짐했다.아울러 일관된 대북정책추진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 분쟁 자제 대화해결 촉구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등 각 종교 지도자들은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남북간 서해 교전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참석자들은 “서해 옹진반도앞에서 불행한 군사적 충돌이 발발한데 대해 충격과 깊은우려를 함께 했다”면서 “우리 종교계 지도자들은 7,000만 민족의 화해와온누리의 행복을 위해 이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겨레 공동체의 분단극복에 더욱 정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고 다짐했다. 이광정 원불교 종법사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 모임에는 고산 조계종 총무원장,김옥균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주교,김동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이윤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박찬기자 parkchan@
  • [화제의 책]“3·1의거 천도교에 의해 계획·실천”주장

    ‘3·1의거’ 80주년을 맞아 성신여대 사학과 이현회(李炫熙)교수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모아 최근 ‘3·1혁명,그 진실을 밝힌다’를 출간했다. 종래 역사학계의 ‘3·1의거’ 관련 연구가 포괄적이고도 주로 성과면에 치중한 반면 이 책은 ‘3·1의거’의 시원(始源)과 주도계층에 초점을 맞추고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3·1의거’는 돌발적으로 발생한 항일의거가 아니라 민족종교인 동학을 이은 천도교에 의해 계획,실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특히천도교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孫秉熙)를 비롯한 천도교 그룹이 중심이돼 ‘경술국치’이후 줄기차게 준비해온 결과라고 설명한다. 천도교의 경우 1894년 ‘동학혁명’ 때부터 민족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보국안민(輔國安民)등 구국적 자립의식,민족주의 이념에서 출발했다는 것.당시 여러 종교집단 가운데서 천도교가중심이 된 것은 200만여명에 달하는 신도와 풍족한 자금,치밀한 전국적 조직 등이 다른 단체보다 유리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3·1의거’직후 국내외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에서 손병희를 대통령에 추대한 것은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신인간사 2만5,000원 정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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