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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애국심 고취 産室로

    ‘여름방학동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사진)에서 애국심을….’ 지난 98년 11월 문을 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어린 학생들에게 일제의 잔학상과 애국심을 일깨워 주는 산실로 자리를 굳혔다. 13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평일에는 2000∼3000명,광복절과 3·1절 등에는 1만명 이상 몰리는 등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서대문구는 광복절을 맞아 이날일 이 곳에서 ‘순국선열 합동추도식’을 거행했다.일제와 싸우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4만여 애국지사와 이 곳에서 순국한 400여 애국선열의 영령을 위로하고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거행된 합동추도식에는 기독교,천주교,불교,천도교 등 4개 종교단체가 참여했다. 현재까지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방문객은 160만명.이 가운데 152만명은 내국인이고 8만명은 외국인이다.외국인 중에는 일본인도 3만명이나 끼어 있다.나머지 5만명 가운데 90%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이다. 구 관계자는 “중국인들에게 서대문형무소가 중국의 여순감옥처럼 일제에게 핍박을 받던 곳으로 인식돼 여행코스의 하나로 꼽힌다.”고 말했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일제에 의해 지어져 80여년간 우리 근·현대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대표적인 탄압장소였다. 처음에는 경성 감옥으로 이름지어졌으나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광복이후 1945년 11월에는 이 곳이 다시 서울형무소,61년에는 서울교도소,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변경됐다.87년 11월15일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갈 때까지 그 이름의 변화만큼이나 민족의 많은 수난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대문구는 서울구치소가 이전한 뒤 지난 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새로이 단장,일반에 개방했다.지난해 10월에는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이 곳을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일반인은 1100원,학생 550원. 조덕현기자 hyoun@
  • 제4회 만해축전, 새달 2~5일 설악산 백담사

    만해 한용운 선생의 민족정신과 예술혼을 기리는 제4회 만해축전이 새달 2일부터 5일까지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 주최로 열린다. 올해 행사는 문학인 행사를 비롯해 미술전 백일장,공연,심포지엄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첫날인 2일에는 전국 고교생 백일장과 축전 시인학교,민족미술인 협회 초대전,만해상 수상시인(4회) 오세영 시비 제막,현대 과학문명과 문학 심포지엄 등의 행사가 마련된다. 서울대 이애주 교수의 ‘시심작불’(是心作佛) 공연,사물놀이 한마당으로 시작되는 3일에는 만해상 시상식과 불교문학 심포지엄,시낭송회 등이 열릴예정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만해상 수상자로는 평화부문 강원용 평화포럼 이사장,학술부문 강만길 상지대 총장,시문학부문 신경림 시인,예술부문 박찬수 목아박물관장 등이 선정돼 이날 상을 받는다. 행사는 셋째날인 4일 만해학 심포지엄과 시조문학 심포지엄 등이 열리는데 이어 5일 전통문화 심포지엄을 마지막으로 회향식을 갖고 막을 내린다. 만해학 심포지엄에서는 ‘만해문학에 나타난 생명사상’(이선이 경희대 교수),‘만해 한시(漢詩) 연구’(이병석 시인),‘만해 불교의 이념과 현대적의미’(고명수 시인),‘조선 불교유신론에 나타난 만해의 계율관’(종명 스님) 등의 논문이 발표된다. 김성호기자 kimus@
  • 이재달 보훈처장 “”참전군인 건강한 노후보장 의료복지 혜택 늘리기 최선””

    “한국 선수들 참 잘하데요.애국심이 절로 일어 나더군요.” 이재달(李在達) 국가보훈처장은 5일 전날 밤 열린 한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경기를 빗대 “축구를 응원할 때뿐만 아니라 참전 용사들에게 국가가 보답하는 행위도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해 정의가 살아있는 건전한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제47주년 현충일을 하루 앞둔 이날 여러가지 보훈사업 가운데 “나이 드신 참전 군인들이 여생을 질병없이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의료복지 혜택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6·25전쟁 참전자의 평균 연령은 72세,월남전은 56세로 고령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확보가 문제.이 처장은 “미국과 독일의 보훈예산은 전체 국가예산의 3∼5%인데 반해 우리는 1.5%에 불과하다.”면서 “국가 규모도 큰 나라가 더 높은 비중의 예산을 투입하는 실정이니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에게 부끄럽다.”고 말했다.미국은 보훈당국의 부처별 예산순위가 6번째나 우리는 11번째다. 이 처장은 “미국 정부는 참전용사들에게 ‘우리는 당신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라는 구호 아래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돌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행히 지난 4일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무총리 주재로 10여개 부처 장관이 참석한 호국보훈 관계장관회의가 열려 총리실 산하에 호국보훈정책추진기획단을신설했다.▲교육부는 민족정기교육 강화 ▲외교부는 해외독립운동 사료수집 지원▲국방부는 참전·제대 군인의 복지증진 ▲행정자치부는 보훈가족의 공무원 우선채용 ▲보건복지부는 국가유공자의 진료편의 제공 ▲문화관광부는 민족정신 함양활동 등이 협조사항이라고 예시했다. 또 이날 교수들이 참가하는 보훈학회가 창립됐다.보훈시책의 전망은 밝다는 것이다. 이 처장은 “광주·대구·부산 보훈병원의 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위탁가료병원을 104개에서 120개로 늘리겠다.”면서 “참전용사를 괄시하면 누가 목숨까지 내던져야 하는 군대에 가겠느냐.”면서 “어찌보면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병역기피를 막을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훈정책은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 ‘장기 능률’ 사업이고 천년대계”라고 강조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다시 생각하는 민족주의/ ‘민족주의’ 과연 폐기대상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서 ‘민족’‘민족주의’는 낡은담론으로 치부된다.나아가 단순히 낡았다는 것을 넘어 그폐해를 운위하는 논의들이 강력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한국 근·현대사에서 사상적 중심축을 이뤘던 민족주의가분명 중대한 곤경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보편적 세계시민주의라는 큰 틀 아래 민족주의는 과연 폐기 또는 해체의대상인가,아니면 새로운 개념의 민족공동체주의로 재구성돼야 하는 것인가.계간 황해문화 여름호가 ‘다시 생각하는 민족주의의 빛과 그림자’란 주제로 국제적인 지상토론을 마련했다.토론자는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 윤건차 일본가나가와대 교수,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토종’인 홍교수가 재일교포 2세인 윤교수,귀화 한국인인 박교수에게 ‘이산과 집산의 민족 정체성:윤건차,박노자에게 묻는다’란 주제로 몇가지 쟁점에 대한 도전적 발제문을내고,두 교수가 이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지상토론이 이루어졌다. ■계간 '황해문화'지상토론 ◆ 쟁점 하나:한국적 민족 담론이 갖는 부정성에 대하여▲윤:인류 역사를 볼 때 민족주의는 진보와 보수의 두 얼굴을 한 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는 해방후 오랜 기간 독재정권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돼왔으며,사람들의 일상 의식 차원에서도 타자를 억압하는 작용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확산되는 민족주의 반대 분위기는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국가’‘민족’‘공동체’라는 범형(範型)을 낡은 것으로몰아붙이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민족주의폐기,해체가 아니라 그동안 폐쇄적·독선적·배타적 경향을 띠어온 민족주의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이다. ▲박:진보적 민족주의가 연대감 재확인 등의 순기능을 해온 것은 인정한다.그러나 보편적 이웃사랑이란 관점에서 볼때 민족주의는 순기능보다 그 부작용이 강하다.아프간 침략을 지지한 미국인 90%의 태도,4000만명이 살상된 1차세계대전에서 보듯 세계역사는 수없이 많은 민족주의의 부작용으로 점철돼 왔다.‘민족’이라는 프로그램은 한번 설치된 이상 대체는커녕 업그레이드도 안된다.‘신성 불가침한 경계선’이란 ‘신(神=민족)’이 또다시 전세계 규모의대량 인신 제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보이지않는다. ◆ 쟁점 둘:한국 민족주의의 현재적 요구-‘민족 정체성’요구와 ‘민족성’ 중심으로 ▲윤:재일동포인 내게 민족과 민족주의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정체성 탐구와 불가분의 것으로 다가온다.나의아이덴티티는 물론 중층적·복합적이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사회적 위치를 가장 크게 규정하는 것은 역시 민족이며 국적(국가)이다.전세계엔 560만명의 한국동포가 살고 있고,이들은 1세는 물론 2·3세까지 생활문화 면에서 압도적으로 조국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소수자’(minority) 또는 ‘경계인’(marginal man)으로서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민족정체성은 분명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박:민족 또는 민족주의란 일종의 상징기제로서 그와 결부된 일체의 것,즉 국가·언어·문화·역사 등 그 모든 것이 ‘민족 만들기’의 인위적 산물이다.민족성이 결코 천부적이지 않은 것처럼 ‘우리’라는 각 분야의 테두리도 결코 자생적이지 않다.따라서 민족과 결부된 일체의 공동체의식은 그 자체가 허위의식이고 자작된 이데올로기란 결론이 나오며,특히 한국 민족주의는 실체적으로 국가주의,계급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 쟁점 셋:민족 담론의 향방-민족해체? 민족공동체? 세계시민? ▲윤:민족주의를 국가주의 및 파시즘과 동일시하고 민족주의가 지닌 긍정적·창조적 측면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전후보상획득운동,김대중 구출운동,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분명 건강하고 진보적인 의미의 민족주의의발로였다고 본다.세계화와 정보화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민족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이념으로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민족,민족주의론은 결코 ‘병’이 아니며,매일매일 새롭게 다듬어 나가야 할 존재인 것이다. ▲박:민족 담론의 향방은 민족 담론을 생산·보급하는 근대적 민족국가의 향방에 달려있다.그러나 미국·유럽연합과 같은 초대형 국가에 기대는 핵심부 자본에 의한 지구적·국제적 생존권 박탈과 환경파괴는 결국 역으로 반세계화시위들이 시사하듯 전(全)지구적,초(超)민족적 저항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물론 민족적 패러다임의 전체적 해체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러나 최소한 ‘민족의 찬란한 과거’와 민족정신’‘민족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19세기말 식의 전형적인 민족주의는 수명이 길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서중석교수 단재상 학술부문 수상

    서중석(徐仲錫·54) 성균관대 교수가 제16회 단재상 학술부분 수상자로 선정됐다.수상작은 ‘조봉암과 1950년대’(1999,역사비평사)와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2001,〃).단재상은 도서출판 한길사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민족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 86년 제정,매년학술과 문학 두 부문에서 상을 주고 있다.올해는 문학부분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시상식은 5월16일 오후 7시 강남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린다.(02)515-4836.
  • 인터뷰/ 최명재 민족사관고 교장

    강원도 횡성군 민족사관고 현관에는 ‘공부하려고 하는학생에게는 천국,공부 싫어하는 학생에게는 지옥’이라는격문이 붙어있다.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한 것을 계기로 교장에 취임한 최명재(75)파스퇴르유업 회장의 ‘작품’이다.2년전 사우나 열탕에서 입은 화상 탓에 거동이 좀 불편하지만 교무실에서기자를 맞는 그의 얼굴은 활기가 넘쳤다. “사람을 키우는 데 돈을 쓰는 것이 가장 보람이 있어요. 회사 한 개,공장 한 채 더 세우는 것보다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최 교장은 평생을 사업가로 살다가 왜 교육에 애착을 갖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면서 “자립형 사립고로 바뀌었으나 등록금을 올릴 계획은 없다. ”고 덧붙였다. 그는 “화의중인 회사가 2004년쯤이면 채무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를 키울수 있도록 유학반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밝혔다.회사가 경영난을 겪은 원인중 하나가 700억대에 달하는 민족사관고 건립비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가 학교를 세워야겠다고 처음 결심한 것은 80년대 중반 일본에 들렀다가 영국 지도층의 8할을 키운다는 ‘이튼스쿨’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부터.‘이튼’이 영국사람을키운다면 우리나라에도 ‘진짜 한국인’을 만드는 학교가있어야겠다고 결심하고 해외의 명문고를 순례하며 학교를구상했다. 최 교장은 “학교가 지식을 넣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은 틀렸다.지식 주입은 학원이면 족하다.”면서 “민족사관고에서 한복을 입고 아침 저녁으로 학생들이 선생님께 혼정신성(昏定晨省)을 올리게 하는 것도 민족정신을 키워주려는뜻”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시련은 개교 첫해인 96년 찾아왔다.신입생 30명중 19명이 1년도 되기 전에 ‘입시에 도움이 안된다.’며떠났을 때 그는 ‘꿈이 너무 컸음’을 후회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사정이 바뀌어 학생들이 “그렇게 하려면 전학 가.”라는 말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웃었다. “유학반을 만든 지 4년만에 하버드,MIT 등 미국 유수의명문대에 수십명이 들어갔어요.그 녀석들중 틀림없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겁니다.”라고 말할 때는 어느새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개교때 이미 이들의 흉상을 세울 좌대도 교정 한쪽에 15개나 만들어뒀다. “대학이 전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교수는 짤릴 위험이 없고 학생은 낙제할 걱정이 없습니다.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우수한 학생들이 왜 국내대학을 마다하고 미국행을 택하는지 반성해야 돼요.” 교육에 애정이 깊은 만큼 국내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아 보였다.고교 평준화 논란에 대해서도 ‘경쟁이없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한 이유를 생각해보라.’며 꼬집었다. 엘리트 위주 교육으로 특권의식만 기르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걱정을 아느냐고 묻자 “선택된 사람들이기 때문에책임도 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늘 들려준다.”면서 “인간을 만들지 않고 해외에 보내면 외국 사람이 되어 버리지만 민족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심어주면 영원히 한국인으로남는다.”고 말했다. 허윤주기자
  • 문화광장 포커스/홍사용의 꿋꿋한 민족정신 그려

    극단 城이 24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일 연극 ‘나는 王이로소이다’(김성열 작·연출)는 노작홍사용(1900∼1947)의 삶과 예술을 새롭게 부각시킨 작품이다.암울한 시기인 1920년대 문예지 ‘백조’를 창간한 노작홍사용은 치열한 창작열 뿐만 아니라 방랑생활까지 하면서민족애를 간직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시인으로 국한되고 있는 형편. 따라서 연극은 ‘조선사람은 조선을 알아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긴 홍사용의 꼿꼿한 지조와 꺾이지 않는 민족정신을되살려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많은 예술인들이 창씨개명 등으로 굴복했을 때끝까지 굴복하지 않은채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극을 택한 홍사용과,같은 시기 뜻을 함께 했던 역사 속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재해석된다.(02)764-8760. 김성호기자 kimus@
  • [김삼웅 칼럼] 월드컵과 평양 아리랑 축전 연계하면

    북한이 4월 29일~6월 29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아리랑'축전과 금강산관광을 연계시키기 위해 이 기간동안 남측관광객에게 금강산~원산~평양의 육로를 개방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이와 함께 남한에서 열리는 월드컵행사와 북한의 아리랑축제를 연계하자는 움직임도 보인다. 두 행사가 겹치는 관계로 이를 연계하면 침체된 화해협력 분위기를 돋울 수 있고,중국 관람객이 육로로 평양을 거쳐 서울로 오도록 경의선을 연결하면 남북 양측의 외화벌이는 물론 한반도를 종단하는 대륙철도 시대를 열게 된다. 남한 주민의 평양공연 관람과 월드컵 개막행사에 '아리랑’을 포함시키는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올해 한반도는 분단이후 최대의 축전을 맞게 될 것이다. 북한이 설혹 아리랑축전을 남한 월드컵행사의 ‘맞불’의도에서 준비하는 것이라 해도 서울 올림픽때 개최한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주체사상과 같은 이념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민족정서 아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은 평가할만하다.그것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체제찬양의정치색채가 아닌 한민족의 역사 형상화에 더 치중할 것이라하니 우리도 이에 합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단시대에 남북한 사람이 만나면 스스럼없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고 각종 회의나 행사에서 적대감을 보이다가도 끝자락에 이 노래를 합창하면 얼싸안고 하나되는노래가 ‘아리랑’이다.망국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벌판과 시베리아 빙원에서 국가나 군가처럼 부르며 왜적과싸운 노래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1929년 ‘아리랑’노래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한국에 민요가 하나 있다.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한국이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이 애끊는 노래가 한국의 모든 감옥에 메아리치고,만주벌판 어디서나 모두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이 노래를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징역살이를 한 사람도 상당수 된다. 일본인들은 ‘위험한 노래’를 ‘위험한 사상’만큼이나두려워한다.” 1930년대 중국 옌안에서 미국 작가 님 웨일스는 한국 독립운동가 김산과 만난 대담의 기록 ‘아리랑’에서 그의말을 이렇게 전했다.김산뿐이었을까.독립운동가나 해외 이주자들은 슬플 때나 즐거울 때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한민족의 뿌리를 확인하고 동족의 정체성을 함께 나누었다.러시아 동포사회의 ‘키르추크 아리랑’,미국 동포사회의 ‘민들레 아리랑’,일본 동포사회의 ‘아리랑 야곡’ 등 한민족이 사는 전세계 어디에도 아리랑이 있다. 통일의 날이 오면 온 겨레가 함께 부를 첫 노래도 아리랑이 아닐까.통일국가의 국가로 선정한대도 반대는 많지 않을 것이다.현재 아리랑은 127개국 70여종에 가사는 5000여수나 된다.하나의 노래가 이처럼 다양하게 불리는 것은 보기드문 현상이다.유네스코는 2000년 11월 소멸 위기에 있는 세계 각국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포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보존하는 데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상금3만달러를 주기로 하고 상의 이름을 ‘아리랑 상(ARIRANG PRIZE)’으로 정했다.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노래이고 민족 전체를 하나로 묶는 생명의 소리”로서 “민족의 수난을 노래로 극복”한 점을 인정해 아리랑이 비록 한 나라의 노래이지만 국제적인 상 이름으로 제정했다는 설명이다. 올해는 일제 암흑기에 영화 ‘아리랑’을 만들어 민족정신을 되살린 나운규 선생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한국‘2002년 아리랑축전 추진위원회’는 4월 말 판문점에서아리랑 축전을 연다고 한다.남북에서 준비하는 아리랑 축전을 부분적으로나마 공동개최하고 남북 교환공연하는 길은 없을까. 분단 직후에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삼팔선 고개에가마귀 운다/삼팔선 고개는 못넘는 고개/삼천만 원한이사무치고나”란 ‘아리랑 삼팔선’이 불리고, 6·25전란시에는 “사발그릇이 깨지면 세 조각이 나는데/삼팔선이 깨지면 한덩어리된다”는 ‘정선 아리랑’이 유행했다.역사의 흐름에 따라 애국가·혁명가·군가·유행가·통일의 노래로 겨레의 구심점이 돼 온 ‘아리랑’의 축전과 월드컵이 한데 어우러지는 민족의 대축전을 기대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사설] 독립정론으로 거듭나며

    대한매일이 마침내 독립정론지로 국민과 독자 여러분 앞에 우뚝 섰다.15일을 기해 우리사주 조합이 제1대 주주가됨으로써 한국 언론사에 독립언론으로서 새 이정표를 세웠다.그동안 대한매일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곡절과 영욕을돌이켜 볼 때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1세기전 우리 선배들은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사력을 다했다.일제의 폭압에 맞서 민족자주와 자유언론의 전위로서 힘차게 싸웠다.지사적순결주의, 도덕적 실천운동을 통해 국권수호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그러나 선배들의 꿈과 도전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일제침략 세력과 매국도배들에 밀려 좌초되고 말았다.광복과함께 새로운 희망과 비전으로 해방공간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미군정과 독재권력에 굴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것은 곧 불행했던 한국 근현대사가 남긴 상처이기도 하다. 대한매일은 이같은 시련과 고통을 딛고 1998년 11월11일서울신문의 이름을 떼고 본명(本名)의 회복을 계기로 민영화를 거사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대한매일은 새천년의 초두에 21세기의 지평을 열면서 공익정론의 역사적 사명을 다짐한다.지금 한국 언론계는 일부 언론족벌이 경영권을 사유화하면서 편집권에 간여,여론을 왜곡하고 공익보다는 경영주의 사익에 치우치는 오도된길을 걷고 있다. 우리 언론은 정치권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졌지만 아직 제왕적 경영지배로부터는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도와 논평에 공정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국민적 질책을 받는다.한국 언론이 처한 새로운 시련이고 도전이다. 우리는 활자매체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의 신뢰 회복과 공익정론의 시대적 역할을 다짐한다.지난날 언론의 정도를 걷지 못한 과오를 자성하면서 국가와민족,정의와 진실,역사와 하늘을 우러르며 정직한 신문을만들 것임을 다짐한다. 우리는 한국언론을 대표하는 공익 위주 비상업주의 신문으로서 특화된 고급지·권위지를 지향한다.보도 가치가 있는 모든 사상(事象)을 객관성과 공정성에 입각해서 충실히보도하고, 정치·경제·사회적 비리와 불의를 고발·광정(匡正)하며 각종제도와 시책 및 사회현상의 문제점에 대한심층보도와 비판을 정직하고 용기있게 수행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체의 정파주의와 지역주의를 배척하고, 황색저널리즘과 포퓰리즘(대중주의)을 비판할 것이다.시대착오적인 안보 상업주의를 경계하면서 민족 화해와 화합을 앞당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다. 정부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과 감시자로서 매서운 필봉을 들 것이다.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지양하고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있는 언론의 정도를걸을 것이다. 세계문명 변화의 흐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전달하며 민족사의 진운을 열린 지성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공공 분야와 교육의 특화를 중심으로 고급 정론종합지의 품위를 지키며 지면으로 승부하고자 한다.추상적인 거대 담론이 아닌 생활과 밀접한 정보 제공과 미래 지향의 비전 제시로 독자와 대화하는 쌍방향의 광장이 될 것이다.우리의 지면은 사내외 옴부즈맨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특히 잘못된 보도와 논평에 대해서는 언제나 정정 보도나 반론권을 통해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할 것이다. 우리는 상업지와 분명한 선을 긋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고,시장경제의 원칙 아래기업을 감시하고,공직사회의 사랑받는 그러나 채찍을 든정론지가 될 것이다. 최초로 공익정론지의 길을 걷게 되는 대한매일은 우리의실험이 오로지 국민과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편달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서,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고독한 행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변화에는 항상 고통이 따른다.그러나 고통이 두려워변화를 거부한다면 번데기는 영원히 나비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사 600여 임직원 모두는 1세기전 애국지사들의 숨결이 밴 대한매일을 새로운 민족정신의 선양자이고국민통합의 매체이며 통일운동의 견인차로 가꿔 가고자 한다.국민여러분과 독자 제현의 아낌없는 성원과 편달을 기대하면서 모든 영광과 고난을 겨레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 4·19∼6월항쟁 민주화운동 생생

    4·19혁명에서 6월항쟁까지의 민주화운동 장면을 담은 대형 그림이 부산민주공원에 설치,일반에 공개됐다. 부산민주공원은 “박종철 기념사업회와 부산아트갤러리가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중국 옌볜예술대학 교수인 이철호(李哲浩·40)화백이 6개월에 걸쳐 그린 ‘민주항쟁도’를설치했다”고 10일 밝혔다. 1,500호 크기(가로 9m,세로 3m)인 이 그림에는 4·19혁명과 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 등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장면과 이한열과 박종철 열사 등 민주화 과정에서 안타깝게 스러져간 인물들을 담았다. 또 시계탑이 보이는 부산대 정문 시위장면과 가톨릭센터농성장면 등 민주화의 선봉에서 이끌었던 부산시민들의 노력과 희생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멀리 티없이 웃으며 달려오는 남북의 아이들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도 표현했다. 민주공원 관계자는 “중국동포 2세인 이철호 화백은 중국동포들의 강한 민족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민족작가이며1년동안 부산에서 머물면서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민주공원은 박종철열사 서거 15주기인 12일 박종철추모사업회 김승훈 신부와 송기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부산지역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항쟁도’ 제막식을 갖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현대에 비친 전통 채색의 美

    고려 불화,조선 민화 등 색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한 채색화의 전통을 잇고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혁신해온 작가의 작품 50여점이 14일부터 내년 1월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채색의 숨결-그 아름다움과 힘’이라는 주제의 전시회에는 천경자,박생광,박래현 등 미술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 3인과 정종미,김선두,이화자 등 현재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 3인등 6명의 작가 그림들이 출품된다. 가나아트센터는 “선정기준은 옛 전통의 껍데기가 아니라당대의 정신을 지배하는 인간의 감성과 미학을 잘 드러냈느냐의 여부”라고 밝혔다. 물론 작품성과 조형 양식의 독창성,안주하지 않는 실험과탐구정신,치열한 작가정신 등도 고려됐다. ‘장미와 나비’ 등을 내놓는 천경자는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의 여인,꽃,동물 등을 소재로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색채와 사실주의 기법을 혼합했다.그는 10여권의 수필집을 낼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도 지녔으며 자신의 희노애락을 실은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을 그려왔다.1954년부터 20년간홍익대 교수를 지냈고 78년 이후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2년전 자신의 대표작 57점과 드로잉 36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기증했다.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고양이’ ‘작품16’ 등이 출품되는 박래현은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구상을 넘어 추상의 세계에 몰입했다. 박생광은 ‘혜초스님’,‘무속도’ 시리즈 등 민족정신을현대화한 그림을 제작했다.이들 작품은 70세가 넘어 제작한것들이다. ‘몽유도원도’의 정종미는 지난 93년부터 2년간 미국 뉴욕 유학때 그곳에 모인 각국의 미술품에 자극받아 귀국후 우리 전통 회화에 관한 연구에 몰두해왔다.최근 전통채색기법에대한 연구를 모은 ‘우리 그림의 색과 칠’을 출간했다. ‘행(行)’ 시리즈의 김선두는 한국적 자연을 배경으로 한채색화를 많이 그렸다.‘초혼’ 등을 출품하는 이화자는 채색화의 현대적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작가이다. 이 센터는 제1전시장에 50년대부터 독창적 작품 세계를 펼쳐온 천경자와 박래현의 대표작 15점,제2전시장에 채색의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적 감성을 통해 재창조를 시도한 정종미,김선두,이화자의 작품 15점을 선보인다.제3전시장은 박생광의 특별코너로 마련돼 20여점이 전시된다.(02)720-1020. 유상덕기자 youni@
  • 前 전태일사상 연구소장 故 오경환선생 9일 영결식

    전 전태일사상 연구소장 오경환(吳慶煥)선생의 영결식이별세 여섯 달만에 치러진다. 유가족과 친지들이 9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 민주묘역에 유해를 안장한다.지난 6월 지병으로 작고한 고 오 선생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상지대학교 부속병원에서 해부실습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사업으로 모은 재산을 민주화운동가들의 옥바라지에 사용하는 등 30여 년간 민주화와 민족통일운동에 앞장섰던 오선생은 86년 ‘전태일사상 연구소’를 설립한 뒤 문익환목사와 조영래 변호사 등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표적 인물 100명의 고뇌와 시대정신을 담은 ‘100인의 민족정신’과 ‘전태일 사상’ 등의 저서를 남겼다.서울대병원 5호 영안실(02) 760-2010최병규기자 cbk91065@
  • 파인아들 김영식씨 공개 작고문인 서한의 의미

    *학국문학사 빈공간 메워줄 귀중한 자료””. 한국문학사는 흔히 ‘겨울언덕에 홀로 서 있는 나목(裸木)’으로 비유된다.작가들에 대한 작품론은 풍성한 편이지만,작가들이 활동한 시대와 작가들의 개인적 여건 등을 알 수있는 연구는 미흡하기 때문이다.이는 서류 등 자료를 소홀히 하는 경향에다,사생활에 관한 자료를 노출하기 꺼려 하는 풍토 탓이다. 최근 김영식씨가 공개한 문인 48명의 사신(私信) 214통은 한국문학사의 이같은 ‘빈 공간’을 메워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학계와 문단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그동안 더러 문인들의 육필서한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수량이 적었다.아울러 특정문인에 한정된 것이어서 한국문단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반면 김영식씨가 내놓은 서한들은 수량도 방대하거니와 일제하 민족진영과 친일성향의 작가는 물론 해방후 월북작가 등 각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편지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오고간 것이 대부분이다. 김영식씨는 이달말 파인(巴人) 김동환 시인의탄생 100주년에 맞춰 기념행사를 갖기 위해 8년여전부터 각종 자료를모아왔다.이 편지는 자신이 소장해오던 것과 최정희 여사에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이 갖고 있던 것들이다. 김영식씨는 “문인들의 편지 속에서 선친과 관련된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함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면서 “가치있는 자료는 수요자,특히 연구자에게 자유롭게활용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편지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편지들은 첫 공개되는 것이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단교류기의 편린들로 당대의 문예사조,동호인관계,특정 문인의 개성,송수신자간의 내밀한 사연까지 고루 다루고 있다”면서 “이번에 밝힌 편지 말고도 60여통이더 있으나,관련자들 가운데 여럿이 생존해 있어 추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문인들의 사신은파인 김동환 시인이 부인 신원혜에게 보낸 32통을 제외하면,나머지 182통은 모두 문학사적 가치가 큰 ‘사료’들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주로 소설가 최정희 여사인데,이는 그가 당시 파인 김동환 시인이 운영하던 삼천리사의 기자로근무하면서 문인들에게 원고청탁 등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파인 김동환 시인의 편지가 적은 것은 1946년 12월 당시 파인 가족이 서울 종로구 적선동 183번지(현 정부세종로청사자리)에 살고 있을 때 집에 불이 나 각종 자료 등이 모두없어졌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에 대해 “우리 근대문학사 한 세기를 담아낸 기록”이라면서 “문인 몇 사람의 사신 차원을 넘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사료”라고 평가했다.임헌영씨는 또 “외국의 경우 문인들의 개인 전집에 작품은 물론 그가 주고받은 사신도 전부 수록하고 있다”면서“문인 인물연구는 물론 그동안 숨겨진 우리 문단사의 상당부분을 되살릴 수 있을 만한 자료”라고 말했다.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은 ▲일제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비(非)카프계열 문인들의 교류 파악 ▲남북한의 주요 문인 망라 ▲파인에서부터 학생시인 박봉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 포함 ▲최정희-모윤숙-노천명 등 당시 여류문인의 인간적 관계와 사생활 이해 ▲김남천의 문학비평 소개 ▲김사량의 편지를 통한 재일조선인 문단의 활동상 파악 ▲문단과 거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육사의 문단 교류 등의 사실을 처음 또는 재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임헌영씨는 대한매일에 이 편지를 토대로 한 시리즈를 연재하기 위해 지난 한달여동안 기존 문단사와 비사 등을 확인하고 김영식씨로부터 가족사 등에 대해 청취했다. 정운현기자 jwh59@. ■파인 김동환·최정희는. 파인 김동환(1901∼1950년 납북후 사망 추정).그는 ‘국경의 밤’으로 우리 문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작가이다.장편서사시와 민요시 창작을 주도했다.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하는 등 한때 계급문학에 관심을보였으나 주된 정조는 민족정신이었다.고전에 몰두해 가사문학 등 전통문학과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민요시를 왕성하게 발표했으며,1929년에는 종합 대중잡지 ‘삼천리’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열한 현실 의식의 부족으로 30년대 말부터 친일문학의 늪에 빠져들었고,1941년8월 친일단체를 망라한 ‘임전대책협의회’의 발족에 앞장서기도 했다.1931년쯤 ‘삼천리’에 입사한 최정희와의 ‘관계’가 1942년에 알려져화제가 된 뒤 43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소설가 최정희는 1931년 ‘정당한 스파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주로 일제하 지식인 여성의 고통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인간문제’로 유명한 당대의 여류소설가 강경애가 민족의 수난과 정면대결을 시도한 작가였다면 최정희는 여성의 문제에 일찍 눈을 뜬 작가였다.‘지맥’‘인맥’‘천맥’ 등의 대표작에서 신여성의 진보적 의식이 당대의경제적 사회적 관습에 어떻게 짓눌리는가를 주로 다뤘다. 이종수기자 vielee@. ■편지 주인공들. 파인 김동환 시인과 최정희 여사가 보관해오던 편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리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거목’들이다. 이들 중에는 국권상실기에 문학을 통해 일제에 대해 저항의식을 표출하던 사람도,친일성향을 띠었던 사람들도 있다. 또한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이는 우리 역사의굴곡을 여실히 보여준다.이들은 편지에서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거나,문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모습을 보여주는 등 문인의 각종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선 편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에 비교적 자료가 적은 월북시인 및 작가들의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이들에대한 문학적 연구는 지난 90년대초 월북문인 해금조치로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나 사료가 적은 탓에,학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지를 남긴 월북 시인 및 작가는 박태원·한설야·이태준·김남천·이현욱·안회남·박찬모·이용악·김사량 등이다.박태원은 말년에 중풍으로 전신불수,실명상태에서 ‘갑오농민전쟁’을 탈고해 ‘한국의 밀턴’으로 불린다.한설야는 북한에서 교육문화상·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을,김남천·이태준은 각각 문학가 단체에서 요직을 지냈다.또 이현욱은 임화의 두번째 부인으로,지하련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편지를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친일성향의 작품이나 글을 남겼거나,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인사들도 적지 않다.김동환을 비롯해 백철·이헌구·정인택·박종화·유진오·정비석·노천명·모윤숙 등이 그들이다.박종화는 학병권유 글을 썼고,노천명은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시를 썼다. 다른 여러 인사들도 친일성향의 글을 몇 편씩 남겼다.그러나 ‘민족시인’ 이육사의 엽서 1통도 보여 눈길을 끈다. 최근까지 활동했던 소설가 김동리(95년 작고)와 황순원(2000년 작고)의 편지도 포함돼 있다.또 말년까지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설창수 시인의 편지도 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의 항일운동 공로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특히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최정희인지라 같은 여성인 모윤숙(22통),노천명(21통)등과 나눈 편지가 많다.이들 3명은 당시 문단에서 ‘쌈바가라스’(‘삼총사’의 일본식 표현)로 불릴 만큼 정이 도타웠다.편지에는 이들의 사생활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숨김없이 드러나 자못 흥미를 끈다. 정운현기자
  • 대한매일 첫 발굴 항일독립운동사 2題

    ■단재 신채호선생 화장터 찾아냈다. [베이징·뤼순 김삼웅주필] 대한매일신보 창간 97주년을맞아 대한제국시대 본보의 주필을 역임한 민족주의 사학자단재 신채호선생의 시신을 불태운 화장터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중국 뤼순(旅順)시 용하서(龍河西)삼리교(三里橋)부근의옛 화장터가 그곳이다. 뤼순감옥에서 시내쪽으로 1Km지점 8천여평부지에 자리잡은 건물에 일제가 감옥전용으로 설치한 화장장이다.당시의 건물이 퇴락한 채 남아있다. 잡초가 무성한 한켠에 세워진 화장장 건물 2동은 지금 건축 자재를넣어두는 창고로 변했다. 기자를 이곳에 안내한 반무충(潘武忠)대련뤼순 감옥 연구원(52)은 최근까지 일제 말기에 화장장에서 일해온 사람(중국인)이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제는 뤼순감옥에서 옥사하거나 처형한 항일지사들을 이곳에서 화장하였다고 전했다. 단재에 앞서 안중근의사는 뤼순감옥에 갇혔다가 1910년 3월26일 형이 집행되어 순국했다. 안의사의 유해는 형무소공동묘지에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이다.안의사가 순국하고 8년후인 1928년 단재선생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2월18일 뇌일혈로 의식을 잃고 2월21일 오후 4시20분 의식불명으로 유언을 남기지 못한채 이국땅에서 옥사하였다. 향년 57세. 단재는 다음날 오전 11시 뤼순화장장에서 한줌 재로 변해달려간 부인 박자혜여사와 어린 아들 수범 그리고 동지 서세충(徐世忠)에 의해 고국으로 운구되었다. 박자혜 여사가 1936년 ‘조광’제4호에 쓴 ‘가신 임 단재의 영전에’는 남편을 이국의 화장터에서 불사른 당시의 애틋한 정경이 그대로 전한다.(다음은 글의 뒷 부문) “지난 2월18일 아침이었지요, 아이들을 밥해 먹여서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전보 한장이 왔습니다. 기가막힙니다. 무엇이라 하리까. 어쨌든 당신이 위급한 경우에 있다는 것이라 세상이 캄캄할 뿐이나 그저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어떻게 되든 간에 수범이를 데리고 그날로 당신을 만나려고 떠났습니다. 뤼순형무소에 닿기는 그 이튿날-2월19일 오후 세시 십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벌써 의식을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5년이나 그리던 아내와 자식이 곁에 온 줄도 모르고당신의 몸은 푸르뎅뎅하게 성난 시멘트 방바닥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지요. 나와 수범이는 울지도 못하고 목메인채로 곧 여관에 나와서 하룻밤을 앉아서 새우고, 그 이튿날 아홉시 되기를 기다려 다시 형무소에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면회를 거절하겠지요. 물론 비참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관리들의 고마운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을 아주 떠나려는 당신의 임종을 보지 못하는 모자(母子)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2월21일 그날 오후 4시20분에 영영 가버리셨다고요. 당신의 괴로움과 분함과 설움과 원한을 담은 육체는 2월22일 오전 열 한시, 남의 나라 좁고 깨끗치 못한 화장터에서 작은 성냥 한 개비로 연기와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여! 가신 영혼이나마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kimsu@. ■백암 박은식 서거 호외도 입수.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과 사장에 이어 임정 제2대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선생의 부고를 알리는 독립신문 호외가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백암 선생은 대한매일신보 창간 직후인 1905년 본보의 주필을 역임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강제합병직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과 역사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기자는 허중전(許中田) ‘인민일보’주필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중 베이징에서 지인을 통해 ‘독립신문’의 호회를입수했다. 대한민국 7년(1927)11월2일자로 발행한 이 호외는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과 ‘독립신문’의 주필·사장을지낸 백암선생의 부음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 신문의 호외판형으로 앞면에 “전 임시 대통령 박은식 각하 서거”란 제목으로 “전 임시대통령 박은식각하께서 수월 전부터 노환으로 요양중에 계시다가 마츰내 약석(藥石)의 효(效)를 진(秦)치 못하야 작일 하오7시 상해 ○○의원에서 문득 서거하시니 향수가 67세시라.”란 부음 기사를 싣고 있다. 특히 이 호외에는 백암선생이 임종때에 남긴 ‘위촉(유언)’을 공개했다. 첫째, 독립운동을 하려면 먼져 전족적(全族的)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고 둘째, 독립운동을 최고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방략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고 셋째, 독립운동은 오족(吾族)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동지간에는 애증친소의 별(別)이 없어야 된다는 우국충정의 유훈이 실렸다. 백암 선생의 서거를 맞은 임시정부는 최초로 장의를 국민장으로 할것임을 호외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장례날과 장지는 미처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외를 발행했음이 드러났다. 임정은 11월4일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유해를 상하이 정안길로(靜安吉路)공동묘지 600번지에 안치하였다.(현재 동작동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안장) 백암 선생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독립신문’이 11월11일자 전면에 추모특집을 꾸민 것을 비롯 중국의 ‘중화보(中華報)’, ‘상해화보(上海畵報)’등에서 선생의 죽음을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애도해 마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이상재·권동진·김성수등이 ‘고 박은식씨 추도발기회’를 결성하고 동아일보에서는 ‘곡 백암 박부자(朴夫子)’란 사설을 싣기도 했다. 1946년 대한매일의 전신서울신문사에서 백암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하였으며, 현재 대한매일과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의 공동작업으로 박은식·양기탁전집이 준비되고 있다. kimsu@
  • [발언대] 홍구공원 의거 되새기자

    오는 29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이른바 일본인들의 천장절 겸 중국과의 전쟁승리 축하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한 장거가 있은 지 69주년이 되는날이다.일본군 현지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다 일본거류민단장 등이 현장에서 폭사하고 일본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제9사단장 우에다,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을 비롯한 많은 일제의 주구들에게 중상을 입힌 쾌거였다.윤 의사는 우리 민족의 혼백을 지키고자 약관의 나이로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과 농촌부흥운동에 뛰어들었으며,일경의 감시로 더이상 국내에서 항일투쟁이 불가능하자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이라는 글을 남긴 채단신으로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국무령 김구 선생이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국제사회에 이같이 독립의지를 알렸던 것이다.윤 의사의 의열투쟁은 당시 국제도시상하이를 점령한 일본의 침략을 주시하고 있던 전 세계에한민족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알리고,국내외 항일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윤 의사의장거에대해 당시 중국군 총사령관 장제스(蔣介石)는 “중국의 백만대병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단행했다”고 평가했고,이에 따라 중국에서 한국 민족이 독립운동을 활발히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윤 의사의 의거가 있은 지 70년가까이 흘렀지만 윤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민족정신의 귀감으로 남아 있다. 일본은 최근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는 행동을 자행하고 있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우리 국민들은 이런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감정폭발에 그치지 말고, 범국민적인 민족정기 선양 운동에 나서야 한다.이를 위해 2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가르치는 역사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또 민족의 수난과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고 선열의 애국혼을 느낄 수 있는 학습 프로그램의 개발도 시급하다. 주영원 [부산지방보훈청]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나라 사랑-시대를 초월한 민족정신

    우리의 근현대사 100여년은 격변의 시기였으며,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다.개화기자주적 근대화의 좌절로 인한 국권상실기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한 선구자적 민족정신이 시대적 과업이었고,이 때 나타난 것이 의병정신과 독립정신이었다.그리고 6·25전쟁의 시기에는 공산주의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는 자유수호정신이 표출되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와 국가재건을 추진하던 근대화시기에는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성과 진취적 개척정신이 중시되었으며 기술·기능중심의 산업화 마인드가강조되었다.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주와 인권정신이 살아 있었으며,90년대 이후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경제시대로 접어들면서 무한경쟁의 지식정보화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과거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모두 국난극복 정신이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발현된 이러한 시대정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성장과 풍요를 가능케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현재우리의 시대적 소명은 민족공동체의 삶을 복원하고,이를 통해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국가간 무한경쟁의 상황에서 남북한간의 화해·협력과 민족역량의 결집은 시대적 대세이다.분열과 갈등에서 사회통합과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절실한 과제이다. 앨빈 토플러(A.Toffler)는 농업사회,산업사회에 이은 지식정보화사회의 도래로 급격한 사회변화가 수반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후기산업사회는 자원기반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로,물질위주경제에서 정신위주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새로운 패러다임은 단기적이고 물질적인 개발전략이아니라 지속가능하고 내실있는 발전전략의 모색이어야 하며,그것은 바로 건전한 국민정신을 형성하는 올바른 시대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의 바탕은 바로 민족사에 면면히 이어 온 국난극복정신과 공동체의식의 회복이라고 생각된다.민족발전의 동인(動因)으로서 독립정신과 자유수호정신 등 국난극복정신을 현재에 되살려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세계주의는 민족주체성의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수난과 이를 극복했던 노력의 역사,즉 도전과 응전의 역동성을 국가적 어려움에서 다시 발현시키기 위한 열린 이념이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끊임없는 대화이며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민족사에 흐르는 공동체의식이나 애국정신이 이 시대의 국민정신으로 자리잡을 때 부강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유배 국가보훈처장
  • [발언대] 3·1정신으로 위기 극복하자

    오늘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82주년이 되는 날이다.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야욕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자 분연히 일어나 세계만방에 우리민족의자주정신과 독립의지를 천명하였으며,잠시 잃어버린 민족정신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 식민지지배에 항거하여 한반도뿐만 아니라 국외에 거주하는 한민족 전체가 거족적으로 전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이 투쟁을 계기로 민족의 주체적인 자각이 크게 고양되었으며 세계 각지에 흩어진 우리 민족을 다시 뭉치게 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동하는 밑거름이 되었고,일제 35년의 암울한 터널을 벗어나 조국광복의 감격을 안겨준 원동력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오늘 우리가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결코지난 역사의 사실을 단순히 회고하자는 데만 그 뜻이 있는것은 아니다.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고 국민 의지를결집하여 21세기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참뜻이 있다.지금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냉혹한 국제환경을 슬기롭게 개척해야 하며,민족분단 55년의 벽을 넘어 모처럼 찾아든 남북 화해·협력의 새로운 물줄기를 착실히 이어나가한민족 통일의 기반을 굳건히 세워 나가야 할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일찍이 백암 박은식(朴殷植)선생은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정신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우리는 올바른 국민정신의형성이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것을 세계사를 통하여 흔히 보아왔다.다행히 우리에게는 선열들이 물려주신 훌륭한 정신문화유산이 있다.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조국을 지켜오신 수많은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야말로 어떤 첨단기술로도 복제할 수 없는 귀한 유산이 아닐까? 3·1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정신이며,온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국민정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당면한 국제사회의 거센 파고를 지혜롭게 헤쳐나가 선진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일류국가를 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세기에 기필코 한민족 통일국가를 완성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자.이것이야말로 선열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자 도리일 것이다. 김 건 신 서울지방보훈청장
  • [발언대] 2·8독립선언이 남긴 애국정신 되살리자

    입춘이 지났건만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가 겨울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다. 1919년 2월8일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일이다.대한의 젊은이들이 현해탄 너머 일본 열도의 한복판에서전개한 항일 학생운동으로 그 의미가 실로 크다 하지 않을수 없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일대 사건이 민족 지도자나 세력가가 아닌 평범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이는 참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옛부터 청년세대를 일컬어 국가의 동량 또는 초석이라는 말들을 해왔지만 2·8독립선언처럼 그 증거가 되어 준 사건이많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애국과 애족의 마음이 없었던들 오늘의 젊은이들처럼 일신의 안위와 영달만을 생각하는이기주의가 팽배했던들 꿈꾸기조차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남의 나라인 미국 대통령이 바뀌는데에도 민감하게 영향받는 현실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국권 침탈의 어려운 시절을 산 당시젊은이들에게 바란 것 이상의 몫을 기대하게 된다. 지·덕·체를 근간으로 탁월한 능력과 원만한 인간관계까지를 겸비해 주기를 바라왔다. 근래에는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도덕적 해이나 민족정신 약화에서 찾는 만큼 이러한 부분까지를 채울 수 있는 대한의젊은이가 되기를 기대했다. 언뜻 큰 부담과 무게를 느낄 수도 있으나 2·8독립선언, 광주학생운동,6·25때의 국내외 참전 학도병,4·19혁명의 주역들을 생각하며 면면히 흘러온 강인한 민족정신을 계승한다면그 다음 목표는 순풍에 돛단 듯 쉽게 쉽게 풀려갈 것이다.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이라 하여 그 가치를 소홀히 말고 다시한번 애국선열의 큰 뜻을 이어 조국의 미래와 민족 번영을생각하는 지혜로운 눈을 떠주길 바란다. 애국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항상심으로자리한다.다만 그것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필요한 것이다.82주년을 맞은 2·8독립선언에 담긴 정신적 의미가 잠들어 있는 애국심을 일으켜 시대 현실에 맞는 새로운 청년 선언으로젊은이 여러분 가슴에 애국의 불을 지펴주길기대한다. 도영미 청주보훈지청 보훈계장
  • 조국 산하에 민족정신 뿌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자화상’ 연작과 가족사의 발자취를 담은 ‘혈류도’ 연작으로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한 김을(46).스스로자신을 시골 촌놈이라 부르는 이 화가의 작가적 미덕은 우직함이다. 작품의 주제는 존재의 본질을 묻고 있으니 늘 무겁고,작업방식은 캔버스라는 규격화된 틀을 거부하는 만큼 고단할 수밖에 없다.하지만그의 구도적인 회화 작업은 85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이래 계속되고 있다. ‘철학이 있는 그림’만을 고집하는 작가 김을이 ‘자화상’전 이후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1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사비나(02-736-4371)에서 열리는 ‘이 산 저 산’전에서 그가 보여줄 작품은 평면회화 10점과 반입체 10점.조국의 산하에서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고,시대정신의 가닥을 푼다는 거창한 뜻이 담겼다.작가의 정체성 탐구의 대상이 자아에서 가족,그리고 산으로 바뀐 것이다.이번에내놓는 작품들은 단순한 지도와 산맥의 모습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한자 산(山)의 형태로 보이도록 한 점이 특이하다. 김을의 작품은 동판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그 작품세계는 동판과 회화의 접목으로 요약된다.그는 원광대에서 금속공예,그중에서도특히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했다.금속공예작업을 하면서 차갑긴 하지만 정감이 가는 동판이 손에 익었다.그의 대표작 ‘자화상’은 동판위에 물감을 칠한 작품이다.그러나 ‘자화상’ 이후 그는 저부조 형식의 동판 페인팅보다는 주로 평면작업을 했다.회화에 대한 체계적인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처음에는 출렁거리는 하얀 캔버스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평면 안에서 이내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김을이 캔버스에 동판을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하는 작업을 다시시작한 데는 딱한 사정이 있다.지난 98년 그는 작업실이 불에 타 그동안 그린 400여점의 작품을 모두 잃었다.그 불길 속에서 유일하게살아 남은 것은 동판 뿐.작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 동판의 잔해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동판은 표현의 제약이 있지만 캔버스와다른 질감효과가 있고 유채로 내기 힘든 재미가 있다는 게 그의 말.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이미 자신의 얼굴 혹은 누군가의모습으로 존재했던 동판을 사용한 것이어서 더욱 불사조 같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김을은 잘 그리진 못했지만 혼이 들어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깎은 밤처럼 깔끔한 그림엔 혼이 깃들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작가에게 ‘못그린 그림’이란 조형적 요소들이 작품 안에서 완벽하게조화를 이루지 못한 그림을 말한다.‘혈류도’를 그릴 때는 못그린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1.5미터의 막대 끝에 붓을 매달아 작업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을 그리려면 사람을 그려서는 안되고 산을 그리려면 산을그려서는 안된다”는 다분히 선적(禪的)인 회화철학을 밝힌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주변,즉 배경을 그리다보면 오히려 대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한 예로 산을 그릴 때도 하늘부터 그린다.그는낙관을 찍는 방식도 남다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종서(縱書)방식을 택한다.김을의 그림은 서양화로 분류되지만 이래저래 동양화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김종면기자 jmkim@
  • [발언대] 현충탑 찾아 올 한해 설계하자

    한껏 희망에 부풀었던 2000년 한해를 보내며 얼마나 많은 성과와 결실을 이루었나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온 새해를 맞이했다. IMF 이후 벗어날 줄 모르는 경제한파는 여전히 우리 마음을 춥게 하고 내일을 설계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고 있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 보면 국채보상운동,사랑의 좀도리 운동,금모으기 운동 등 국가경제 회복을 위한 국민운동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것이다. 중요한 것은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배경과 의지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제 암흑기에 경제회복을 위한 국민 스스로의 노력과 국가나 관이주도한 운동의 성과가 얼마나 다른 것이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현실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권을 회복하고 전쟁으로피폐된 조국을 재건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할 줄아는 강인한 민족정신 내지는 국가정신이었음을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상징물들이 우리 생활주변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도 언제부터인가 기억에서 차츰 잊히면서 굳건한국가기상은 사라지고,비판없이 쉽게 남의 것을 수용하고 본질을 잊은 채 맹목적으로 쫓기만 하는 주객전도의 생활습관을 몸에 익힌 것 같다. 신사년 새해 첫번째 목표는 강인한 민족성과 국민정신을 회복하는것이 돼야 하고,이를 위한 작은 실천의 길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선조의 우국충정이 담긴 현충탑을 찾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저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를 설계하고 위기에 찬 국가경제를 다시 세울 애국의 길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신사년 한해에는 새 천년을 시작하며 기울인 통일과 국가체질 개선을 위한 우리 노력이 결실을 맺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길현 [청주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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