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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통계해석 오류/곽태헌 논설위원

    10여년 전 ‘세쌍 중 한쌍 이혼’이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나왔다. 어느 매체에서 처음 보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도 ‘세쌍 중 한쌍 이혼’을 철석같이 믿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부지불식중(不知不識中) 이러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언론 보도를 근거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기고할 때도 그렇고, TV에 출연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세쌍 중 한쌍이 이혼하는 시대를 맞아…”라고 말해 왔다. 세쌍 중 한쌍이 이혼하는 시대라면, 내가 사는 아파트의 양쪽 가정을 포함해 한 가정은 이혼했다는 얘기가 된다. 주위에 잘 살고 있는 가정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터무니없는 내용이 사실인 양 둔갑했을까. 가령 2000년에 30만쌍이 결혼하고 10만쌍이 이혼했다고 하자. 이 수치만을 놓고 보면 세쌍 중 한쌍이 이혼했다는 엉터리로 포장된다. 2000년 이혼한 부부 중에는 2000년 전에 결혼한 부부가 대부분일 텐데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분모(分母)는 전체 부부, 분자(分子)는 그해 이혼한 부부로 해야 하는 통계의 기본상식을 찾을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건수는 32만 9100건, 이혼건수는 11만 4300건이었다. 전체 부부 1000쌍당 9.4쌍이 이혼했다. 전체 부부 중 약 1%가 이혼한 것을 마치 3분의1이나 이혼한 것처럼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 해악을 끼친 대표적인 엉터리 보도 사례다. 이러한 보도로, 이혼을 쉽게 생각해 파탄이 난 가정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설문조사를 근거로 ‘폭력학교’로 낙인 찍은 것도 통계 해석이 잘못된 경우였다. 대표적인 최우수 고교 중 하나로 꼽히는 민족사관고 학생들의 일진 인식비율이 100%로 발표됐다. 전교생 468명 중 단 2명만이 설문에 참여, ‘일진이 있다’고 답변한 것이 폭력학교의 근거가 됐다. 서울아산병원 교수팀은 지난 2010년 8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전국의 15개 병원 가정의학과를 방문한 40대 이상 남성 1313명을 조사한 결과 ‘40대 이상 남성 3명 중 2명은 성기능장애’라는 보도자료를 그제 내놓았다. 가정의학과를 찾을 정도면, 대부분 문제가 있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그런데도 이를 마치 보통의, 평균적인 남성들이 그런 것인 양 발표한 것은 통계 해석의 대표적인 오류다. 그래도 이 경우는 물론 ‘부풀려진 이혼율’과는 달리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다행스럽기는 하다. 장애가 없는 남성들은 자신감이 더 생길 것이고, 장애가 있는 남성들도 위안을 삼을 수는 있으니….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학교폭력 실태조사] 응답률 천차만별… 신뢰도 바닥… 실효성 논란만

    [학교폭력 실태조사] 응답률 천차만별… 신뢰도 바닥… 실효성 논란만

    교육과학기술부가 19일 공개한 ‘2012학년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편조사에서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학생수가 100명 이상인 학교는 전국 93곳에 달했다. 응답률이 학교마다 천차만별이고, 조사오류가 많아 신뢰도 있는 순위를 매길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피해학생들의 응답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해당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1차적인 징후라는 점에서 후속조치가 절실하다. 전국 초·중·고교 및 특수학교 1만 1404개교 가운데 피해 경험 응답수가 가장 많은 곳은 충남 천안중으로 288명이다. 천안중은 재학생 1328명 가운데 1136명이 답변, 85.5%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응답자의 25.4%가 피해경험을 털어놓았다. 학교내에 일진이 있다고 밝힌 학생도 462명이나 됐다. 이어 서울 면동초교는 251명, 강원 남춘천중은 225명, 서울 구룡중은 209명으로 피해 응답이 200명을 넘었다. 경기 의정부 금오중·제주 노형초교·서울 개웅중·충남 대건중·서울 성자초교·천안 신부초교·서울 면동초교·전주 삼천남초교·포항 대도중 등도 피해 학생수가 1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학교폭력 심각 1차적 징후” 정부가 학교폭력예방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학교내 일진인식’에 대한 조사에서는 전남 순천 금당중이 응답생 1254명 가운데 48.0%인 565명이 일진이 있다고 말해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대전 법동중의 46.8%, 강원 남춘천중의 54.9%도 학교 일진의 존재를 인정했다. 일진이 있다고 밝힌 학교에서는 대부분 피해 응답수가 높아 일진과 학교폭력과의 연관성이 일부 입증된 상태다. 응답자 전체로 보면 139만명 중 24.5%가 ‘학교내 일진이 있거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학교폭력이 일부 학교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문제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응답자가 많으면서 피해응답이 없는 학교 대부분은 학생수 1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였다. 학생수가 100명 이상인 학교 가운데 응답률이 높고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없는 학교는 인천하늘고·부산 대광발명과학고 등 극히 일부였다. 서울과학고·민족사관고· 이화여자외국어고·울산외국어고 등 대부분의 특목고에서도 학교폭력이 있다는 응답이 나오는 등 학교급별이나 학교형태와 상관없이 학교폭력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별 맞춤형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일선학교에 ‘학교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스쿨 리포트)를 발송, 사안별로 조치토록 했다. 항목별 답변 건수, 전국 평균과 해당학교의 응답결과 비교 등 내용이 담긴 스쿨 리포트는 다음 달부터 운영되는 학교폭력대책 지역협의회에도 보고돼 학교폭력 문제를 지역사회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교과부는 또 학교폭력 빈도가 높아지는 학기초에 맞춰 해마다 두차례씩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회수율이 낮은 우편조사 방식은 교육정보시스템(NEIS)을 활용한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교과부 1회성 행사 치중” 지적도 그러나 학교폭력 근절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실태조사의 성과인 ‘학교폭력 가해자 및 피해자 적발’의 경우, 전체 신고 3138건 중 경찰조사 등을 통해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진 사례는 100건가량이다. 상당수는 내사단계에서 종결됐다. 교과부는 일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의 ‘필통 톡’ 프로그램을 마련, 지난 2월부터 홍보에 나섰지만 전시성 행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 특목고·자사고·자율고 서울대 입시 강세 여전

    특목고·자사고·자율고 서울대 입시 강세 여전

    올해 서울대에 20명 이상 합격한 21개 고교 가운데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자율고가 주류를 이뤘다. 순수 일반고는 대구대륜고와 숙명여고 두 곳뿐이었다. 12일 대입전문입시기관인 이투스청솔이 2012학년도 서울대 고교별 합격자 수(재수생 포함)를 학교 홈페이지 및 설명회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20명 이상 합격자를 낸 고교는 외국어고가 7개교, 과학고(과학영재고 포함) 4곳, 자립형 사립고 4곳, 자율고 4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와 합격생 수만 다를 뿐 학교 유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서울과학고 93명 합격 ‘최다’ 과학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는 지난해보다 56명이 늘어난 93명의 합격생을 내 전체 1위에 올랐다. 2009학년도에 과학영재학교로 전환, 조기졸업이 없어짐에 따라 지난해의 경우 37명에 그쳤지만 올해는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 확대와 맞물려 크게 늘었다. 대원외고는 75명, 용인외고 57명, 한성과학고 50명으로 2~4위를 특목고가 차지했다. 자사고의 경우 상산고·민족사관고·포항제철고·현대청운고 등 4곳 모두 15위권에 들었다. 일반고이지만 전국 단위로 학생을 뽑는 자율학교인 공주한일고는 39명으로 6위를 차지했다. 또 경기도 비평준화지역인 안산 동산고를 비롯해 휘문고·중동고 등 자율고도 강세를 보였다. 20명 이상 합격한 순수 일반고는 대구대륜고 22명, 숙명여고 20명에 그쳤다. 다만 10~19명이 합격한 순수 일반고에는 경기여고 19명, 서라벌고 18명, 공주대부설고 15명 등 11곳이 포함됐다. ●대륜고·숙명여고 ‘일반고 1·2위’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수시 일반전형 인원이 대폭 늘면서 비교과 활동, 서류, 심층면접 등에서 일반고에 비해 비교 우위에 있는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 유리했다.”면서 “올해 수시선발 인원이 늘어나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손기정 월계관’ 문화재 된다

    ‘손기정 월계관’ 문화재 된다

    손기정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이 일제강점기인 1936년 제11회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받은 금메달과 우승 상장, 시상대에서 쓴 독일산 참나무로 만든 월계관 등 3점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손기정기념재단이 소장한 이들 유품이 세계신기록(2시간 29분 19초)으로 우승하며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의 것으로, 체육사·민족사적 가치가 크다며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9일 말했다. 아울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올림픽 역사상 한국이 처음 출전해 ‘코리아’(KOREA)와 태극기를 알린 제14회 런던올림픽 관련 유물과 1956년 홍콩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우승컵도 문화재로 등록된다. 런던올림픽 관련 유물로 등록될 예정인 ‘제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가乙 NO.000001호)은 한국 대표단의 경비를 충당하고자 올림픽후원회가 1947년 12월 1일에 복권 형식으로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이다. 또 다른 등록 대상인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가늘고 긴 삼각기)’는 한국 대표 선수단이 가져간 것으로, 길이가 약 150㎝다. 1947년 6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40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런던올림픽 한국 대표팀 고문 자격으로 참가한 이원순(1890~1993)의 ‘여행증명서’와 ‘대표단 단복’ 등 2점도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조사된 올림픽 관련 단복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사]

    ■헌법재판소 ◇신규임용 △헌법연구관 정유진△헌법연구관보 승이도 정치언◇승진△헌법연구관 오훤 남상규 박세영 ■국무총리실 △문화체육관광부 정원상 윤종호 최현승◇과장△법무행정 서영석△보건복지정책 공병도△여성가족정책 이정기△정책분석2 강동기◇팀장△고용정책 양지연△성과관리2 노혜원◇행정관△시민사회 이교영△정당협력 이영근△언론지원 성수영△민정민원1 김창훈◇파견△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김화영△국토해양부 이동훈△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 전태환△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정은영△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김민형△통일교육원 김영선△세종연구소 손방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정책관 박원주 ■법제처 △경제법제국 법제관 박영욱△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파견 서용우 ■통계청 ◇승진 △기획조정관 이상율△운영지원과장 백만기◇전보△통계정책국장 김회정 ■소방방재청 △기획조정관실 정책관리팀장 황선업△예방안전국 민방위과장 이정술△예방안전국 특수재난대비과장 김장국△소방정책국 방호조사과장 한상대△경기도 제2소방재난본부장 이강일△중앙민방위방재교육원 교육운영과장 송호열△소방방재청 권순경(파견복귀)◇교육 파견△국방대 조송래△세종연구소 윤순중△외교안보연구원 유재욱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임상종△농촌현장지원단장 안진곤<연구정책국>△국장 허건양△연구운영과 이규성<국립농업과학원>△농촌환경자원과장 안옥선△곤충산업〃 강필돈△수확후품질처리〃 이강진△생물안전성〃 조현석<국립식량과학원>△벼맥류부장 박기훈△벼육종재배과장 김보경△기능성잡곡〃 오인석△고령지농업연구센터소장 정진철△답작과장 김정곤△작물환경〃 강항원△신소재개발〃 남민희<국립원예특작과학원>△화훼과장 신학기△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소장 최인명△감귤시험장장 최영훈△기술지원과장 곽창길<국립축산과학원>△축산물이용과장 박범영△영양생리팀장 김재환△가금과장 최희철△초지사료〃 최기준<농촌지원국>△농촌자원과장 이금옥<국립농업과학원>△유해화학과장 김두호△전통한식〃 한귀정△발효이용〃 김재현△기능성식품〃 김행란△농업유전자원센터소장 김연규<교육파견>△중앙공무원교육원 전혜경△국방대 박정승△통일교육원 강희설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장 임병숙△기상레이더〃 양진관△총괄예보관 김남욱 신동현△전주기상대장 최경철<교육파견>△외교안보연구원 이종호△세종연구소 전준모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녹색도시환경과장 권상대<파견>△세종연구소 심재홍△통일교육원 박광호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조정관 장덕진 ■대전시 △서구 임묵△기업지원과장 신상열<의회사무처>△총무담당관 이중환△의사〃 김성철 ■충북도 △행정국장 김경용△경제통상〃 이우종△문화관광환경〃 김우종△총무과장 허경재△자치연수원 행정지원과장 나재연△보건정책과장 이주원△축산위생연구소장 신유호△오송바이오진흥재단 파견 김태왕 ■한국조폐공사 △홍보협력실장 송문홍 ■한국환경공단 △기획조정처장 김준호◇지사장△전북 이진수△제주 김정근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사무국 총무부장 박상욱 ■경기대 ◇대학장 △인문 한윤옥△법과(법학연구소장 겸임) 박종권△사회과학 박경숙△관광 엄서호△국제 남정휴△공과 유춘번△예술(산업디자인연구소장 겸임) 이해묵△체육 강민완◇원장△전산정보 김광훈△사회교육 곽한병◇연구소장△사회과학 정성호△민족사상 최경구 ■숭실대 ◇특임부총장 △해외교육사업·사이버담당 김광용△정주영창업캠퍼스담당 정대용 ■이화여대 △입학처장 김정선<대학원장>△교육 김영수△외국어교육특수 양혜순<센터소장>△이화교수학습(교수학습개발원장 겸임) 조일현△국제회의 백지연<원장>△이화학술 한영우△한국여성연구 김은실<센터장>△사회체육교육 원형중<연구소장>△사회복지 정익중△법학 오종근△중국문화 정재서△커뮤니케이션·미디어 유의선△공학융합 이병욱△특수교육 박지연△간호과학 강윤희 ■한국방송통신대 △부산지역대학장 윤태범 ■머니투데이 △편집국 부국장(증권부장 겸임) 정희경△산업1부장 김준형△산업2〃 강호병△편집국 선임기자 박창욱△미래연구소M 연구소장 강상규 ■서울경제신문 ◇승진 △경영기획실장 채수종△편집국 문화레저부장 오현환△〃 성장기업부장 이규진◇전보△편집국 문화레저부 선임기자 우현석△〃 생활산업부장 이효영△총무국 인사부장 김홍기 ■동부증권 △재경2지역본부장 김희동(상무)△충청호남지역〃 박원태△재경1지역〃 이병성△준법감시인 전태웅△영업부장 이병진 ■현대증권 △퇴직연금운영부장 정용주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부사장 서재환 ■금호리조트 △부사장 박상배 ■아시아나 IDT ◇승진 △전무 류성택 ■금호고속 ◇승진 △상무보 이송호 ■CU미디어 △광고영업2본부장 김태용
  • ‘아는 것’ 집착 말고 ‘독참’ 하십시오

    ‘아는 것’ 집착 말고 ‘독참’ 하십시오

    한국 선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간화선. 화두, 즉 공안을 들고 참구해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에는 꼭 있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지도자와 수행자의 일대일 선문답식 교육인 독참(獨參)이다. 수행자가 정기적으로 스승과 일대일로 만나 점검받는 제도. 선의 본고장 중국 선종에서 비롯됐지만 지금 중국은 물론 우리 간화선에서도 그 독참의 맥은 또렷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순전히 체험적인 독참을 통해 간화선의 텍스트이자 지침서인 공안집 ‘무문관’을 풀어낸 책 ‘무문관 참구’(민족사펴냄)가 간행돼 불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책의 공동저자는 10년 전 잘나가던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직을 내던지고 수행자의 길을 나란히 택해 불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장휘옥, 김사업씨. 3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저자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공안 따로 나 따로인 수행자 입장에서 어느 순간 모순을 느꼈습니다. 불교 수행이론에 밝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식까지 알고 있었지만 정작 공안과 나 자신이 일치되지 못해 괴롭고 어려운 실상에 눈떴다고 할까요.” 장씨는 부산대 사범대학 화학과를 나왔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 동국대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해 석사과정을 졸업한 인물. 이후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화엄사상으로 석사학위를 받아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그런가 하면 김씨는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피할 수 없어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아 일본 교토대학원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를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공안은 결국 깨달음에 이르는 직접적인 길인 셈이지요. 한 개의 화두를 완벽히 깬다면 다른 화두를 들 이유가 없지만 수행이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수행 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두 사람은 경남 통영 외딴 섬인 오곡도의 작은 폐교를 참선 도량으로 일궈 수행하면서 수행 지도도 하고 있다. 우연히 일본 임제종 사찰에서 미야모토 다이호오(宮本大峰) 방장 스님을 만난 뒤 스승으로 삼아 독참 수행을 10여년간 계속해 오고 있다. 책 ‘무문관 참구’는 바로 그 스승을 900여 차례나 만나 독참한 끝에 풀어낸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다. 무문관속 49개의 본칙과 평어, 송 각각에 대해 선종 전통 방식으로 제창한 공안집으로 한국불교사에서도 시도해 보지 못한 역작으로 꼽힌다. “공안 참구를 통한 깨달음의 과정에서 지도자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간화선이 자유롭고 무애한 경지의 선 수행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스승과의 독참이 빠져 있습니다.”(김사업) 사실상 스승들이 수행자에게 화두만 던져주고 방임하는 지금의 한국 간화선은 ‘방목선’이나 다름없고 그래서 ‘간화선의 위기’가 자주 거론된다는 설명이다. “간화선을 하고 있는 일본 임제종은 지구상에서 독참 수행의 전통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유일한 종단입니다. 규율과 지침이 아주 엄격하고 스승과의 독참이 혹독하지만 넘어야 할 단계를 거치고 나면 비로소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지요.”(장휘옥) 번뇌가 곧 보리이고 지옥이 그대로 천국이라고 했던가. 맘 한번 돌리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는 불교의 가르침이지만 머리만 굴리다 보면 퍼즐을 못 풀듯이 망상에만 빠지게 된다는 장씨. 그래서 쓸데없는 망상을 버려 화두와 하나가 되는 게 바로 참수행이고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이란다. “가장 못되고 위험한 집착은 바로 아는 것에 대한 집착입니다. 공안 화두도 집착을 버려야 뚫리는 법이지요. 집착을 버린다면 매 순간을 싫다 좋다는 분별 없이 100%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오곡도 명상 수련원은 방학철을 빼곤 평소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수행처. 기초를 충분히 다진 수행자만 들어가 수행을 하고 있고 그 수행에는 두 사람이 지도하는 독참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우리 선 수행의 의지와 열망은 가히 세계 최고입니다. 문제는 깨달음에 대한 사무침을 제대로 불태울 길잡이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김사업)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광주시민단체 10곳 갈곳 없어 발동동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한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 광주지역 1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새 둥지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30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에 따르면 서구 화정동 종합터미널 인근 모 신문사 3층 건물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새 주인으로부터 “오는 15일까지 사무실을 비워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재 건물 1층에는 신문사와 민예총, 광주여성의전화, 장애인권익보호단체 등 일부 시민단체가 나눠 쓰고 있다. 나머지 2~3층에도 시민단체협의회, 광주전남우리민족사무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등 10여개의 시민단체가 사용하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는 지금까지 전 소유주인 K사가 임대료를 받지 않고 무상으로 이용토록 배려해 그동안 수도세·전기료 등 관리비만 물고 사용해 왔다. 단체들은 이런 이유로 유상 임대 전환을 새 건물주에게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정형편이 열악한 단체들은 본격적인 겨울을 앞두고 당장 이사할 곳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정론직필 언론인 ‘송건호 평전’ 파란과 곡절의 이야기 오롯이

    ‘글 쓰는 사람은 절대로 기분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횡설수설을 해서는 안 된다. 그 글에는 논리가 일관되어 있어야 하고 전에 쓴 글과 다음에 쓴 글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런 소리를 하고 어떤 때는 또 저런 소리를 하는 식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은 사람의 인격 표현이라고 했다.’ 평생 정론직필을 추구하면서 참 언론인으로 살다 간 청암 송건호(1926~2001)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질타하고 진실한 글쓰기를 요구하고 실천했다. 청암이 언론인으로 활동한 30여년은 이승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독재정권 시대와 온전히 겹쳐 있어 평생을 독재와 싸우느라 많은 수난을 당해야 했다. 30대 초반부터 논설위원으로서 역사와 정세의 맥을 관통하는 사설과 칼럼을 집필하면서 필명을 떨치고 신망을 쌓았다. 그래서 늘 독재정권의 포섭대상 1순위였고 그럴수록 청암은 “나는 분단조국에서는 관리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로 유혹을 물리쳤다. 충북 옥천 태생인 청암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을 거쳐 1975년 언론현장을 떠나 본격적인 현대사 탐구와 왕성한 필력으로 ‘민족지성의 탐구’ 등 주요 저서를 잇따라 저작했다. 그러던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고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에 선임돼 언론자유수호 투쟁의 선봉에 섰다.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언론독립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1993년 야인으로 돌아간 청암은 애장도서 1만 5000여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 ‘청암문고’를 개설했다. 이러한 파란과 곡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담은 ‘송건호 평전’(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이 따끈따끈하게 최근 나왔다. 청암 작고 10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정론정신을 기리는 헌사이자 현직 언론인들에게 울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저자는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과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번 책은 저자의 한국근현대인물평전 14번째에 이른다. 2만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연평도발에 유학 중 조국방패 자원했어요”

    “연평도발에 유학 중 조국방패 자원했어요”

    “우리 형제가 서로 힘을 합쳐 서부전선을 책임지는 조국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미국 명문대에 다니다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소식을 듣고 귀국해 해병대에 입대한 쌍둥이 형제가 있어 화제다. 형제는 20일 입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조국의 방패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병대 청룡부대에 근무하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 정도현·재현(21) 이병이 주인공들이다. ●美TV뉴스 보고 “솔선수범” 의기투합 각각 미국 코넬대 기계공학과,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다니다가 지금은 서부전선 끝, 북한과 6㎞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인천 강화군 말도(唜島)의 열상감시장비(TOD) 운용병으로서 매일 칠흑 같은 밤 바다를 지키고 있다. 초·중학교를 같이 다닌 쌍둥이 형제는 강원 민족사관고에 진학해서도 유학반에서 함께 공부했다. 졸업 후 엔 유학도 함께 떠났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화염에 휩싸인 연평도의 참혹한 모습을 미국에서 TV 뉴스로 지켜보며 조국을 지키는 게 더 급하다는 결심을 세웠다고 한다. 동생 재현 이병이 먼저 형에게 동반입대를 제의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 이스라엘-이집트 전쟁 당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고 학업을 중단하며 귀국했던 이스라엘 유학생의 이야기로 형을 설득했다. 형 도현 이병도 동생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로봇 공학 연구원 생활을 계획했던 그는 “어차피 가는 군대, 조국이 어려울 때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자.”며 동생의 뜻에 동참했다. ●“서울 서쪽 요충지 방어에 자부심” 쌍둥이의 부모도 “육해공군보다는 힘들겠지만, 너희들의 선택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형제는 대학 1학년을 마친 뒤 지난 6월 귀국해 8월 해병대 1147기로 입대했다. 서북도서 근무를 지원한 형제는 지난 10월 21일 서부전선 최전방 말도에 함께 배치됐다. 동생 재현 이병은 “지금까지 편하게 생활해왔지만 이제는 국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지도상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섬이지만 수도 서울의 서측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곳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종서러움…조국을 되찾자” 1세기만에…조국서 해방가

     95년만에 발굴된 신흥무관학교 ‘학우단가’(學友團歌)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가사에는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선열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외 항일문화 국내 영향”  1절 ‘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충용한 무리아 그 은혜 끄까지 이즈랴’라는 부분에서는 나라를 잃은 설움과 함께 조국을 기억하려는 독립투사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2절의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이천만 생령의 인생길 인도할이 뉘뇨’라는 노랫말에서는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던 동포들의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사명감이 느껴진다. 3절 ‘우리의 마음을 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억만년 새기초 공고케 세우세’는 해방 조국에의 희망과 의지가 담겼다.  노동은 교수는 “가사를 음미해보면 당시 어려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선각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특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뜻이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당시 항일운동이 국외에서는 항일무장투쟁, 국내에서는 계몽운동으로 구분돼 있었다는 기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 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핍박받던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키우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당시 만주에서 불리던 많은 항일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민족사학을 중심으로 교육됐다.”면서 “해외 독립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국내에 영향을 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우단가의 발굴이 항일음악은 물론 우리 음악사 연구에도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노래는 단순한 유흥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문맹률이 높아 주로 교육·선전의 도구로 사용됐었다. 실제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라는 미명하에 민족문화 말살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가요를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해 황국신민화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국민들 사이에서 불려지게 됐다. ●항일음악·친일음악 연구 전환점  그러나 자료가 대부분 망실돼 항일음악과 친일음악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학우단가의 곡이 실린 ‘광성중학교 최신창가집(1914년)’도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항일운동 중에서도 무장투쟁과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다. 특히 신흥무관학교는 국군의 뿌리인 만큼 육·해·공군사관학교부터 이런 정신들을 발굴·계승하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신흥학우단가 가사와 해설  1절  祖上(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忠勇(충용)한 무리아 그 恩惠(은혜) 끄까지 이즈랴  四千春光(사천춘광) 빗나소든 배달 내나라  自由(자유)의 樂園(낙원)을 지을자 우리가 안인가    조상이 세우신 옛 나라는 어디냐  충성스럽고 용감한 무리야 그 은혜를 끝까지 잊으랴  4000년 역사의 빛나는 배달 내 나라  자유의 낙원을 만들 자 우리가 아닌가    2절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二千萬(이천만) 生靈(생령)의 人生(인생)길 引導(인도)할이 뉘뇨  굳은 마음 참된 精誠(정성) 힘을 다하야  썩어진 民族(민족)의 새 榮光(영광) 나타내이여라    종의 서러움을 받으며 이 목숨을 이어가는  이천만 생명의 인생길을 인도할 사람이 누군가  굳은 마음 참된 정성 힘을 다해  썩어진 민족의 새 영광이 나타나게 해라    3절  우리의 마음을 鍊鍛(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億萬年(억만년) 새基礎(기초) 鞏固(공고)케 세우세  大千世界(대천세계) 덥고 남은 긔운 다하라  普天下優勝(보천하우승)의 冕旒冠(면류관) 길히 빗나도다    우리의 마음을 단련해 큰 힘을 길러  옛 나라 억만년의 새 기초를 공고하게 세우자  큰 세상을 다 덮고 남은 기운을 다해라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면류관 길이길이 빛나라
  • 고위공무원단 ‘특목고 시대’ 온다

    고위공무원단 ‘특목고 시대’ 온다

    ‘특수목적고(특목고) 출신이 고위 공무원단을 접수한다?’ 우리나라 주요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고위 공무원단(고공단)의 출신 고교 권력 지도가 경기고, 경북고 등 기존 명문고에서 20년 뒤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자율고)로 전환될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고공단의 출신 대학 중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SKY대 출신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나 올해 서울대 합격자 상위 20개 고교는 모두 특목고와 자율고가 차지한 반면, 기존 명문고는 한 곳도 없었다. 특히 전국 특목고, 자율고의 70%가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 있어 미래 고위 공직자 분포에서도 수도권과 영남 출신이 많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민주당 이용섭 의원이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9년 기준 상위 20개 고교 가운데 올해 고위 공무원 인원이 늘어난 고교는 청주고, 중앙고 등 두 곳에 불과했다. 2009년 대비 경기고는 21명, 경복고 13명, 서울고 10명, 광주제일고 9명, 경북고 7명, 전주고·부산고·경동고가 각각 6명이 줄었다. 경기고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 정운찬 전 국무총리, 손학규 민주당 대표, 안상수 전 인천시장,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나온 ‘정치인 사관고교’라 불릴 정도로 유명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학교다. 군사정권 시절 명성을 떨친 대구 경북고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철언 전 정무 1장관, 서동권 전 안기부장 등이 나왔다. 서울고는 원세훈 국정원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모교다. 출신 대학별로는 SKY대 출신 고위 공무원이 전체의 46%를 차지해 여전히 공고한 입지를 지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20명 이상 배출한 상위 20개 고교 자리는 특목고(15개), 자율고(5개)가 싹쓸이했다. 특목고에서는 서울예술고 89명, 대원외고 70명, 세종과학고 49명, 한성과학고 46명, 용인외고 44명, 과학영재학교 41명, 서울과학고 37명, 대일외고 36명, 명덕외고 34명, 경기과학고 30명 등이었으며 자율고는 민족사관고 34명, 안산동산고 33명, 상산고 31명, 포항제철고 30명 순이다. 이 의원은 “20년 뒤에는 고위 공무원 출신 고교 비중이 과거 명문고에서 서울·경기·영남 등 특정 지역에 편중된 특목고·자율고 출신으로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4)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4)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고향 떠난 지 60년, 윤기상 노인이 한줌 재로 돌아갔다. 뱃길 십리면 닿을 수 있는 바다 건너 고향엔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넋이 되어 고향 땅이 빤히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며 이승에서의 한 많은 삶을 내려놓았다. 개성에서 태어난 윤 노인은 스무 살 때 옛 개성상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룻배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왔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소란과 어지러움을 잠시, 그야말로 잠시 피할 생각이었다. 며칠 뒤면 돌아가리라 했다. 하지만 눈앞의 고향 땅은 갈수록 멀어져만 갔다. 하릴없이 강화도에 터 잡아야 했던 그는 인삼 농사를 지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끝내 한 줌 재 되어 이승에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인조때 육지서 들여와 성벽 곳곳에 심어 나라를 연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곳도, 몽골의 침략을 피한 고려 때의 임금이 임시로 궁을 짓고 머물던 곳도, 오랑캐가 전쟁을 일으킨 400년 전 조선의 인조 임금이 피신한 곳도 강화도다. 뿐만 아니라, 강화도는 6·25 때에 삼팔선 이북의 개성에서 배를 타고 피난 온 실향민의 한 많은 삶이 터 잡은 곳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개국 이래 우리가 겪어온 모든 질곡의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그만큼 강화도의 사람살이에는 이 민족 고유의 한이 서리서리 배어있다. 윤 노인처럼 강화도에는 고향도 천성도 모두 버린 나무가 있다.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가 그 나무다. 162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평복 차림으로 강화도로 피신해, 해안가에 흙으로 성을 쌓고 머물렀다. 성의 외벽은 외적이 넘지 못하도록 강한 울타리를 쳐야 했다. 성벽을 둘러싸기에 알맞춤한 건 탱자나무였다. 탱자나무의 억센 가시로 무장한 성벽이라면 제아무리 날랜 도적도 함부로 넘을 수 없다.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탱자나무는 강화도 지역에서 살기 어려운 나무였다. 하지만 다른 축조물보다 탱자나무는 빠르게 설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방어수단으로서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긴급히 가져온 탱자나무들은 성벽 곳곳에 줄지어 심어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나무가 매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남는 건 쉽지 않았다. 나라의 파수꾼이 된 탱자나무들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와 임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모든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두 그루만 살아남아… 천연기념물 지정 잔혹의 시간은 흐르고, 나무가 지켜준 임금은 섬을 떠났지만, 나무는 남았다. 임금이 떠나자 탱자나무들도 하나 둘 스러졌다. 매운 바닷바람을 견뎌내기가 힘겨웠던 탓이다. 그 중에 단 두 그루만 살아 남았다. 사기리 탱자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갑곶리 탱자나무가 그들이다. “다 죽었던 나무인데, 신기하게도 그 뿌리에서 새 줄기가 나와서 저리 예쁘게 자랐지 뭐예요. 저 나무 살리려고 수술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사기리 탱자나무 곁의 밭에서 김장용 파를 심던 마을 노파가 나무를 바라보며 한 마디 던진다. 마치 죽음을 준비하듯 시들어 가던 사기리 탱자나무는 불과 몇 해만에 언제 아팠느냐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죽어간 굵은 줄기를 대신해 새로 난 줄기가 오래 전의 영화를 되찾아가는 중이다. 국가 방위의 역할을 해낸 나무라는 뜻과 함께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라는 두 가지 이유로 사기리 탱자나무는 오래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최근의 기후 변화에 따라 탱자나무는 이곳보다 북쪽인 지역에서도 발견되었기에 북한지로의 특징은 잃었다. 그러나 나라를 지켜낸 나무라는 역사적인 뜻만큼은 오래 기억돼야 한다. 사기리 탱자나무는 높이가 어른 키의 두 배쯤 된다. 물론 노파가 이야기한 새로 난 줄기와 가지가 가장 기운차게 솟아올랐다. 여러 차례의 수술 자국과 함께 말라붙은 굵은 줄기는 옆으로 길게 누운 상태다. 무성하게 뻗은 새 가지에는 가을 햇살 따라 익어가는 풋 탱자가 무성하게 달렸다. “탱자가 노랗게 익으면 보기 좋죠. 헌데 사람들이 그걸 그냥 두고 못 봐요.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내려와서 죄다 따 가요.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지요. 탱자 가져다가 뭐 하려는지 몰라요.” 천연기념물인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건 문화재보호법에도 저촉된다. 법 이전에 이건 교양에 해당하는 일이다. 별다른 쓰임새도 없는 탱자를 재미 삼아 떨어낸다니. 더구나 이 탱자나무는 자신의 천성을 버리고 오늘의 우리를 지켜준 나무다. ●죽을 고비 넘기며 한 많은 민족사 증언 사기리 탱자나무는 3m밖에 안 되는 크기이지만, 탱자나무로서는 가장 큰 나무에 속한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나무다. 늙은 줄기가 죽으면 새 줄기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더 싱그럽게 솟아오르면서 한 많은 민족사를 증거하고 있다. 평생 그리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윤 노인도 나무처럼 강화도 땅에 2대에 걸친 자손을 남겼다. 자손들은 바다 건너 개성의 야트막한 산이 내다보이는 납골당의 정갈한 창가에 노인의 넋을 모셨다. 그의 한 많은 넋 앞에 떨군 자손들의 흐느낌은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흐느낌이다. 탱자나무가 지켜낸 땅에서 살다가 떠난 실향민 윤기상 노인의 삶이 서글프다. 살아서 몸으로 건너지 못한 십리 뱃길을 그가 넋이 되어 지금 천천히 건너는 중이다. 글 사진 강화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제1회 벽사학술상’ 조동일씨 수상

    재단법인 실시학사(이사장 이종훈)가 제정한 ‘제1회 벽사학술상’ 수상자로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이 상은 실학 및 한국학 연구자의 업적과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조 명예교수는 민족사관을 계승해 서구의 문예이론과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시상식은 26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회 실학연구 공동발표회’와 함께 열린다.
  •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만화 ‘라이파이’를 아시나요.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에 ‘ㄹ’자가 새겨진 반달 모양의 두건을 썼다. 날씬한 몸매에 멋진 옷을 입었다.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윤박사가 설계한 멋진 비행선 제비호를 타고 아름다운 제비양과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닌다. 그러면서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우고, 광선총과 긴 밧줄로 모험을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특히 ‘한국산 전사’였기에 대리만족의 통쾌함까지 느껴져 그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3세와 라이파이’ ‘녹의 여왕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32권이나 발간됐으니 말이다. 이 만화는 한국 최초의 SF 만화라는 데 큰 의의를 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대작으로 꼽힌다. 얼마 전에는 한 TV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잠시 소개돼 그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72) 화백. 지난달 20~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제15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의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번 추억의 팬들과 반갑게 만났다. 수상 소식을 듣고 김 화백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면서 “그동안 벌였던 사업은 모두 접었으며 우리 한민족사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여 경기 용인에 위치한 작업실로 찾아갔다. ‘아파트 몇동 몇호’라는 말을 듣고 작업실 앞에 서자 한옥의 대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파트를 이렇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파트 한층을 개조해 마치 한옥같이 꾸며놓았던 것. 역시 상상력이 풍부한 만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의 아파트에서도 속세를 잊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특이해 자꾸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작업실 겸 자택이었다. 안에는 ‘민족사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과 그림들이 진열돼 있었다. 인사를 하면서 김 화백의 명함을 슬쩍 봤더니 ‘만몽 김산호 주신대학교 총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만몽(卍夢)은 만가지 꿈을 꾼다는 뜻의 아호. 그렇다면 ‘주신대학교’는 은 무엇일까. 그는 이미 ‘대주신제국사’를 펴낸 바 있다. ‘주신’은 ‘고조선’에서 ‘조선’(朝鮮)의 이두음으로 풀이한다. 그는 ‘대주신제국사’에서 “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자긍심을 높이고,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이다. 우리 역사는 그간 너무 많이 왜곡돼 왔다.”면서 “이제 올바른 역사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조국과 민족,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느껴보자.”고 말하고 있다. 주신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예전부터 ‘한민족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포 사회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요.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학원 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냈습니다. 현재 여러 학자와 임원들이 참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로스엔젤레스(LA) 에서 정식 출범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에 있든 같은 민족이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껴안아야 한다. 이제 그 역사를 가르칠 때가 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그다. 이런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국내외에서 ‘한민족사 대학교’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끈다. 내년 봄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이제 남은 것은 한민족사관을 가르칠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교과서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여러 차례 살폈으나 대부분 국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데다 민족사학도 제각각으로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김 화백이 앞장서서 ‘민족사 편찬위원회’를 만들고 현재 교과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범한민족사’(PAN KOREAN)란 제목으로 분량이 1500페이지에 달한다. 김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는 도서관이 4만 6000여 곳에 달하지만 한국에 관한 역사책이 없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각 주마다 한 권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고가 완성되면 영문판을 먼저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 그는 “30년 이상 우리 한민족에 관심을 두고 작품활동과 그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역량을 이번 교과서 만드는 데 쏟아붓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를 가르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사의 내용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란 글에서 ‘한’이 진정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한’은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 하느님’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은 곧 ‘천손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신시(神市),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모든 종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즉, 부여, 고구려, 예맥, 옥저, 동예, 말갈, 여진, 만주족은 물론 훈족, 몽골, 거란족 등 우랄·알타이어계 모든 종족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북만주와 몽골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역사가 보인다.”면서 “우리는 신의 자손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만큼 강력한 자긍심을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을 올려다볼 것이 아니라 내려다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한국에 다시 나올 때의 주목적은 우리 역사가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1978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역사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자금성에 걸려 있던 간판들을 보게 됐습니다. 왼쪽에는 한문표기로, 오른쪽에는 만주 글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정복자 만주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주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국으로 흡수하려는 것이지요. 동북공정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민족사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런 까닭을 다시 물었더니 “우리 한민족사가 잊혀지고 있다. 누군가가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알고도 못하면 죄악이 아니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사독재시절 창작의 자유 찾아 미국행 화제를 바꿨다. ‘라이파이’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으며 미국에는 왜 갔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6·25전쟁 때 부산 피란시절 대신동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에 빠졌다. 당시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도 즐겨 보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다닐 적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극장에서 그림을 그려 학비를 벌었다. 이후 만화잡지 ‘만화세계’에 투고했고 게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1957년 독립군 이야기를 그린 ‘황혼에 빛난 별’로 정식 데뷔를 했다. 이듬해에는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로 그렸다. 무엇이든 소재가 되면 작품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파이를 상상해냈다. 미국에는 슈퍼맨, 일본에는 아톰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들과 비견되는 것이 왜 없을까 하는 점에서 출발했다. 또한 1950년대의 우울하고 처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수호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라이파이는 전쟁의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희망과 꿈의 상징처럼 다가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는 날이면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당시 정확한 판매부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성경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966년 김 화백은 일본에서 출판제의를 받게 되면서 해외진출을 생각했고 기왕이면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미국행을 택했다. 때마침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퍼런 ‘검열’ 또한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터였다. 이후 ‘산호’라는 필명을 김산호로 바꿨다. 만화작가 전문 출판사인 찰튼 코믹스의 전속작가로도 활동한 그는 미국에서 700여편의 작품을 그렸으며 특히 초기 서부활극을 그린 ‘샤이언 키드’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유령이야기’ ‘용녀’ 등 한국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해외에 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지자 1988년부터 만주를 비롯한 고대사의 무대들을 직접 답사하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 민족의 중심에서 세계를 보는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사에 대해 만화와 회화를 넘나들었다. 그의 화실에 이런 소재의 그림이 많은 까닭이다. 2003년 ‘라이파이 동호회’와 팬카페가 생겨나면서 ‘라이파이’도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산호 화백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1957년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했다. 이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작품으로 내놓았으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최초의 장편 SF만화 ‘라이파이’ 전 4부작 32권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핀 꽃’ ‘모비딕’ ‘유리천사’ ‘검은 박쥐’ ‘해뜨는 나라’ ‘청동마왕’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만화계에 동양풍의 만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뉴욕 ‘찰스 코믹스’ 만화출판사에서 전속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는 ‘샤이안 키드’ 등 700여편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1974년 산호그룹 CEO에 취임해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 한민족 역사 다큐만화인 ‘대주신제국사’ 1~3권을 발간한 뒤 2년후 완결편(4~5권)을 펴냈다. 이후 회화극본 ‘두만강’(1996), ‘한국 105대 천왕존영집’(2002), ‘백제, 일본, 그리고 왜’(2003), ‘단군조선’(2005), ‘부여사’(2007) 등 수십 권을 발간했다. 현재 주신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으며 이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범한민족사’(PAN KOREAN)를 집필하고 있다.
  •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1930년대 어느 날 서울 거리를 쏘다니던 ‘구보씨’의 발걸음은 문득 경성역 3등 대합실까지 미친다. 그곳에서 지게꾼, 유랑민, 노파 등 고독하고 쓸쓸한 이들을 조우한다. 예쁜 여자와 함께 있는 중학 시절 열등생 친구를 만나 강렬한 질투심도 느낀다.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눈에 비친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역(서울역의 옛 이름)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함께 물질로부터 소외된 비루함이 북적거리며 공존하는 곳이었다. 서울역은 ‘구보씨의 일일’에 묘사됐듯, 식민지 자본주의의 중심 공간으로 민족사의 아픔을 묵묵히 떠안았다. 1925년 9월 처음 세워질 때 한껏 차려입은 모던뽀이와 모던걸들이 전차를 타고 지나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 서울역이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驛舍) 기능은 2004년 새로 지어진 신역사에 물려주고 2009년 7월부터 복원공사에 돌입,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공사비만 200억원이 들었다. ‘문화역서울 284’(사적 284호)로 이름 붙여진 복원 역사는 다음 달 9일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회복함은 물론 전시·음악회·패션쇼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앞으로 기차역사 본연의 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개관에 앞서 14일 언론에 공개된 막바지 공사현장은 어수선했다. 중앙홀에는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및 지붕 돔 공사를 하느라 비계가 설치돼 있고 1, 2등 대합실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등지고 밤봇짐으로 상경한 이들이 중앙홀에 발을 내디디며 느꼈을 막막함과,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금의환향하는 이들이 3등 대합실에 앉아 들떴을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복원 공사를 담당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벽돌, 철근·콘크리트, 석조, 목조 네 가지 구조를 한꺼번에 사용한 르네상스풍 원형 건축물 복원에 주력했다.”면서 “한국전쟁 때 파괴된 돔 아래쪽 스테인드글라스도 재설치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반도 평화 체제가 정착되면 이곳은 대륙 철도와 연결되는 시발점이자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인천가톨릭대 교수의 작품으로 시민들의 협력과 연대, 평화시대를 상징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평행선 친일논쟁/김종면 논설위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오늘 목놓아 통곡하노라). 역사에 갓 입문한 어린 학생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1905년 언론인 위암(韋庵) 장지연이 을사늑약 사실을 폭로하면서 황성신문에 쓴 논설 제목이다. 위암은 그렇게 고고하기 이를 데 없는 항일지사로 우리에게 각인돼 왔다. 그러나 일제 식민정책을 미화한 글이 알려지면서 한순간에 ‘거짓 영웅’이란 멍에를 짊어졌다. 마침내 ‘친일’ 전력을 이유로 독립운동 서훈마저 취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친일문제보다 더한 민족사의 동통(疼痛)이 있을까. 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서글픈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위암 서훈 취소 논란에 이어 이번엔 인촌(仁村) 김성수 호를 딴 도로명이 도마에 올랐다. 1989년 고려대 본관 앞 인촌 동상 철거시위가 오버랩된다. 다시 친일논쟁이라도 벌어질 기세다. 고려대 인접 도로인 ‘인촌로’의 명칭에 대해 항일단체들은 인촌의 친일행적이 명백한 이상 그런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려대는 인촌의 친일행위 여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인촌기념사업회 측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행위자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인촌로는 1991년 서울시가 지정한 이래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사용돼 왔다. 그런 길이 새삼 문제가 된 것은 새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최근 고려대 인근 개운사 앞길인 ‘개운사길 51’이 ‘인촌로 23길’로 바뀌면서부터다. 그동안은 인촌로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해법은 없을까. 누군가 설득력 있는 ‘유권해석’을 내려줄 수는 없을까. 항일독립투쟁에 참여한 마지막 광복군 고(故)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썩은 사과론’을 떠올려 본다. “일제 35년간 직간접적으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했던 점을 감안해 처벌은 악질분자에 한해야 합니다. 물론 역사적 심판은 받아야겠지만 일일이 따지면 사람이 없어져요. 그 사람의 공과를 잘 따져서 총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썩은 사과가 있다고 합시다. 절반 이하가 썩었으면 도려내고 활용해야지요. 이건 남북통일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북에서는 거의 다가 공산당이었는데 이들을 공산당에 부역했다고 일률적으로 거부할 수 있습니까?” 그는 물론 평소에 “해방 후 가장 잘못한 일 중 하나는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한 일”이라는 강한 소신을 피력했다. 역사와의 화해를 강조한 것일까. 전사불망(前事不忘). 지난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경허, 30살 아래 한암과 知音이 된 까닭은

    경허, 30살 아래 한암과 知音이 된 까닭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한암이 아니면 내 누구와 더불어 지음자(知音者)가 되리오.” 한국 근대 선(禪)의 중흥조인 경허(1849~1912) 스님이 해인사를 떠나면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제자 한암(1876~1951) 스님에게 건넨 전별시의 한 구절이다.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라는 지음. 경허 스님이 30살 아래인 한암 스님에게 그토록 지극한 마음을 숨김 없이 내비친 이유는 무엇일까. 불가에서 유명한 ‘선문촬요’를 편찬한 경허 스님은 범어사에서 영남 최초의 선원을 개설하고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정혜(定慧)를 함께 닦으며 도솔천에 함께 생(生)하며, 어느 때 함께 길이, 도반이 되어 정각(正覺)을 이루자.” ‘무계무율’의 독특한 조사선을 고수했던 경허 스님은 만공, 한암, 혜월, 수월, 성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선승을 숱하게 배출했다. 불교계에선 이 제자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선 불교가 지금처럼 부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걸출한 제자들 중에서도 법제자 한암 스님에 대해 유독 ‘지음자’라는 표현을 쓰며 극찬했던 경허 스님은 과연 한암 스님에게 어떤 뜻을 품었던 것일까. 경허 스님과 한암 스님, 또 한암 스님과 같은 법제자인 만공 스님과의 관계를 통해 한국 선 불교를 짚는 흥미로운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암사상연구원이 오는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서 여는 ‘한암사상연구 학술회의’가 그것이다. 지금껏 알려진 경허 스님의 제자들에 얽힌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풀어 한국 선 불교의 현주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한암 스님은 선승이었지만 경학에 밝고 계율을 지키는 선승이었다.”며 “경허 스님이 한암 스님을 지음으로 여긴 것은 그가 당시 제자들을 포함해 조선 선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승가사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 대표는 특히 “경허 스님이 주색에 구애되지 않은 자유로운 선승이라면 한암 스님은 계정혜와 인격을 겸비한 전형적인 선승이었다.”며 “경허 스님은 자신의 무애행에 대한 문제점을 알고도 자신의 법과 안목을 높이 산 한암 스님을 특별하게 봤을 것”이라고 정리했다.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는 “오대산 불교문화의 근간인 한암과, 덕숭산의 뿌리인 만공은 근대 선의 비조, 경허의 법제자로 각각 일가를 이룬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면서도 “한암이 전통 계승적인 고풍 재현과 전 승려들의 승가상 재정립에 힘썼다면 만공은 정신 혁명적인 선 유일주의로의 개혁과 엘리트 중심의 선 순결주의에 의한 불교 정화를 추구하는 차별성을 분명히 보인다.”고 두 법제자를 비교했다. 김 교수는 “지금 불가에는 자기 문중, 자기 큰스님 중심의 역사 해석과 편견이 심하다.”며 “경허 스님의 두 법제자가 지닌 차별성을 통해 역사성을 드러내면서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술회의에서 시도될 ‘경허집’ 분석도 큰 관심을 모은다. 몇 년 전 발견돼 오대산 월정사에 기증된 한암 스님의 경허집(1941년판)과 만해 스님이 정리한 경허집(1943년 선학원판)을 처음으로 비교 분석해 경허·한암 두 스님의 선 사상과 사제 관계를 집중 조명하게 된다. 한편 학술회의가 끝난 뒤 있을 토론회는 발제자와 논평자, 청중이 모두 자유롭게 참여하는 열린 토론으로 진행된다. 경허·한암 스님 시절의 선풍과 지금 한국 불교의 차이점을 놓고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들고 다니기 편한 불교사전 보셨나요

    집안에 불교사전을 한 권쯤 갖춘 이가 얼마나 될까. 신심이 깊고 신행에 독실한 신자라도 불교사전을 늘상 챙겨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불교 신자들의 그런 경향은 불교 사상과 용어가 어려운 데다 기존 불교사전의 규모가 방대한 탓이 클 것이다. 불교계 대표 출판사로 꼽히는 민족사가 펴낸 ‘콘사이스판 불교사전’은 그래서 불교 신자들이 반길 만한 역작이다. 2001년 ‘인도·불교사상사전’을 펴낸 바 있는 김승동 부산대 인문대 명예교수가 편저를 맡아 4950여개의 단어를 1216쪽 분량에 정리한 국내 최초 콘사이스판 불교사전이다. 무엇보다 가로 11.7㎝, 세로 17.8㎝, 두께 3.2㎝ 작은 크기로 휴대가 간편한 게 특징이다. 불교와 관련된 교리, 사상, 역사, 인물, 문헌 등 엄선한 항목들에 담긴 공력이 만만치 않다. 모든 설명을 한글로 하면서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 것은 물론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표현과 함께 각 단어의 개념을 영어로 요약 표기하고 있다. 부처님 생애와 인도, 중국, 한국, 티베트, 일본 불교의 역사와 초기·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의 교리와 역사, 사상, 철학, 문화를 망라했다. 특히 반야, 공사상, 유식사상, 무아, 열반, 윤회 같은 중요 항목과 관련해선 개념의 성립과 기원,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2012학년도 외국어고 입시 준비 어떻게…

    2012학년도 외국어고 입시 준비 어떻게…

    2012학년도에 모집하는 전국 외국어고는 서울지역 6곳 1984명, 경기지역 8곳 2142명을 비롯해 모두 31개 학교에서 7366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4.6%(358명)가 줄었고, 외고 입시제도 개편 전인 2년 전과 비교하면 18.0%(1620명)가 축소됐다. 학교별로는 대원·대일·명덕·한영외고가 지난해 396명에서 올해 372명으로 모집인원이 24명씩 감소했고, 서울외고는 330→310명, 이화외고는 198→186명으로 소폭 줄어들었다. 선발 인원 감소는 정부의 외고제도 개선 방침에 따라 학급별 모집정원이 ‘10개 학급 25명 수준’으로 조정됨에 따라 공립 외고는 2011학년도부터, 사립은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돼 학급별 인원이 2명씩 줄었기 때문이다. 전형별로는 일반전형인 자기주도학습 전형은 6136명,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에서는 1230명을 선발한다. 사회적배려대상자 선발자가 183명이 늘어 전체 모집인원의 15% 이상을 차지한 반면, 자기주도학습전형 선발 인원은 지난해(6677명)보다 541명 줄어들었다. ●무단결석 하루에 1점 감점 전형 방법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단계는 영어 내신(160점)과 출결 성적으로 모집인원의 1.5~2배수를 선발한 다음, 2단계에서 면접(40점)을 통해 1단계 성적과 합산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1단계 영어 내신 성적 반영은 학기별로 1등급(상위 4% 이내) 40.0점, 2등급(상위 4% 초과 상위 11% 이하) 38.4점, 3등급은 35.6점, 4등급 30.8 점 등으로 급간별 상위 백분율에 따라 환산된다. 전체 영어 내신 점수(160점 만점)는 총 4개 학기(2학년과 3학년 1·2학기) 환산점수로 계산한다. 출결은 감점제를 적용, 무단결석 하루에 1점이 감점되고 최대감점은 10점이다. 2단계 면접은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바탕으로 자기주도 학습계획 20점, 봉사·체험활동 10점, 독서활동 10점 등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서울 지역 외고의 2단계 전형요소별 배점과 비교하면, 자기주도학습 계획 배점이 5점 더 늘어났다. 올해도 외고 모집은 학과별로 선발해 학교별로 영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등에 지원하는 방식이고, 지역 제한에 따라 서울지역 중학생은 서울지역 외고에, 경기지역 중학생은 경기지역 외고에만 지원해야 한다(단, 외국어고가 없는 시도는 타지역 지원 가능). 복수 지원도 금지돼 다른 특목고나 자사고에 중복으로 지원하면 안 된다. ●면접때 5분간 3~4가지 질문 올해 외고 입시도 영어 내신과 자기주도학습 전형 면접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지난해 입시 결과를 참고하면 유리하다. 지난해 합격자의 영어 내신 평균은 서울지역이 1.5등급, 경기지역은 1.6등급 정도로, 1단계 선발 가능선은 서울 및 경기지역 외고는 평균 1.5~2등급 이내, 소신 지원선은 2~3등급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2단계는 면접(40점)에서는 반영 점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자기주도학습 및 계획(20점)이 핵심이다. 지난해에는 1단계 통과자를 대상으로 학생 한 명 당 면접관 3명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5분 동안 보통 3~4가지 질문을 줬다. 서울과 경기지역 외고는 지원자들의 1단계 통과 가능한 영어 내신에 따른 성적 차이가 작을 것으로 보여 면접의 영향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상위권 학생들 특목고 선호 여전 지난해 외고 입시에서는 영어 듣기시험이 폐지되고, 영어 내신이 절대 평가 요소로 바뀌면서 평균 경쟁률 1~2대1 정도로 추락했다. 하지만 특목고의 대안으로 등장한 자율형사립고도 상당수 학교가 정원에 미달했고, 일반고의 면학분위기나 명문대 진학률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수도권 상위권 학생의 특목고 선호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어 내신만으로 1단계 전형 대상자를 선발하는 현행 체제에서는 과거 같은 높은 경쟁률은 기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민족사관고, 상산고, 용인외고와 서울지역의 하나고처럼 모집정원이 적어 수도권 상위권 학생의 수요에 못 미치는 것도 한 원인이다. 굳이 이전과 비교한다면 특목고의 지위가 절대 우위에서 상대적인 우위로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국 단위로 선발하는 자립형사립고와 과학영재학교 등이 외고와 함께 고교 입시에서 한발 앞서가고, 지역 조건과 전통이 좋은 자율형사립고와 지역 여건과 학교 면학 조건이 우세한 일반고가 뒤를 추격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서울지역 외고는 올해 처음으로 대원국제중(160명)과 영훈국제중(160명) 졸업자가 나오게 돼 있어 외고 입시에 상당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제중 졸업자는 비교 내신을 적용받게 된 데다가, 지역 외고 모집 정원이 줄어든 것과 맞물려 중학교 상위권 지원자들의 외고 입시 경쟁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봉하마을 사저 일반에 공개할 것”

    “봉하마을 사저 일반에 공개할 것”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추모객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추도식이 열리기에 앞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 권양숙 여사가 봉하마을 사저 옆에 다른 거처를 마련해 옮기고, 현재 사저는 일반에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추도식에는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를 비롯한 유족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원내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등이 참석했다.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과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 등도 참석했다. 송기인 신부와 김우식·이병완 전 비서실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 참여정부와 친노 인사들도 대거 자리를 함께했다. 정부 측 인사로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특보가, 한나라당에서는 지역구 의원인 김정권·김태호 의원이 참석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문성근씨가 진행한 추도식에서 강만길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은 “참여정부는 남북대결의 20세기 민족사를 청산하고 평화통일의 21세기 역사를 열어가는 시대적 책무를 충실히 다한 정부였다.”면서 “대통령은 가셨지만 그 고귀한 뜻과 업적은 우리 역사 위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시민 조문객 대표로 나선 박애림(부경대 정치외교학과 3년)씨는 “바보 노무현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행복해했던 젊은이들이 아주 많았다”면서 “대통령님이 꿈꾸시던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는 유족을 대표해 “여러분을 보며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들겠구나 하는 확신이 절로 생겼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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