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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재일민단 ‘우리말 사용운동’ 반갑다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그제 열린 전국회의에서 ‘우리말 사용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 한국어 배우고 쓰기 운동에 나섰다. 민단은 결의문을 통해 “최근 재일동포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어 민족교육과 차세대 육성이 시급하다.”면서 우리말 사용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민단 간부들부터 먼저 우리말을 사용하고 전화응대도 우리말로 하도록 하는 등 세부적인 실천방안도 마련했다. 민단 차원에서 우리말 사용을 결의한 것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만시지탄의 느낌마저 든다.1세대를 제외하고는 재일동포의 상당수가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른다. 민단의 공식 행사마저 일본어로 진행할 정도다. ‘모국어의 외국어화’ 현상은 이제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어를 상용(常用)하면서 민족정체성은 날로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를 바로 살리기 위해서도 민단의 우리말 쓰기 운동은 확고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민단이 한국어의 가치에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한국의 국력 신장과 일본 사회를 휩쓴 한류의 영향이 크다. 이제 점차 잦아들고 있는 한류의 불씨를 ‘한글 한류’로 되살려 낼 순 없을까. 한글이 이미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브랜드이자 문화상품임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민단이 우리말 사용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임에 따라 재일동포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이 크게 확산될 전망이다. 이에 맞춰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의 한글교육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건국 60주년] 민단 ‘참정권 찾기’ 몸부림

    [건국 60주년] 민단 ‘참정권 찾기’ 몸부림

    |도쿄 박홍기특파원|건국 60주년은 곧 재일 교포들의 역사다. 교포들의 삶 자체가 질곡의 세월이다. 일본의 차별과 냉대를 몸으로 이겨내며 지금에 서 있다. 남북 분단이란 현실에서 이념의 대리전도 치러야 했다. 재일 교포사회를 단순하게 도식화하기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징병 등 강제로 끌려온 세대들이 있는가 하면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스스로 일본 땅을 밟은 세대도 뒤섞였다. 때문에 세대간의 틈뿐만 아니라 정착 과정에서의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도 없지 않다. 교민 1세대인 김모(77)씨는 “망국의 설움을 안은 채 사는 1세대와 이후 세대의 삶을 한데 묶어 조명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두들 구구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특별영주자엔 북한 국적도 포함 일본 법무성의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재일 교포는 59만 8219명에 달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일본 땅을 밟아야 했던 한국인들 가운데 지난 1965년 한·일 협정에 의거, 특별 영주권을 받은 교포는 43만 8974명, 일반 영주권자 및 일본인의 배우자 등은 7만 2760명, 장기 체류자는 8만 6485명이다. 특별영주자에는 북한 국적의 교포도 포함됐다. 일본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탓에 별도로 집계를 내지 않는다. 대체로 재일본대한민국단(민단) 소속은 33만∼34만명,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은 9만∼10만명가량으로 추산될 뿐이다. 일본의 ‘귀화 권장정책’에 따라 국적을 바꾸는 교포도 많다.2006년 귀화한 교포는 8541명이다. 교포 1세들의 직업군은 일본 기업의 취직문이 닫혀 있었던 탓에 자영업이 주류를 이뤘다. 파친코, 식당, 운송업, 건축업이 비교적 많다. 교포 사회에서 민단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색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분명 맥을 같이하는 까닭에서다. 민단은 1946년 10월 재일본조선거류민단으로 출범했다.1966∼71년 한·일 협정에 의한 영주권신청운동을 전개했다.83년 일본의 외국인등록법 지문날인제를 폐지시키는 등 차별을 막는 데 앞장섰다. 배철은 민단 선전국장은 “최대 현안은 94년부터 추진한 지방참정권의 획득이다. 영주권을 가진 교포들을 외국인이 아닌 주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정당한 주장이다.”고 밝혔다. ●교포 권익보호 힘쓰는 민단 교포 사회의 한 축은 조총련이다. 현재 북한과의 뒤틀린 관계 때문에 일본의 조총련 활동에 대한 제재는 만만찮다. 조총련은 일본 사회에서 ‘민족교육’에 치중했다. 교육기관만 조선대학교를 비롯, 전국에 초·중·고 120개교를 갖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한다. 조총련 간부는 “남과 북은 겨레요 동포다. 일본의 강경 대북정책은 전체 교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한·일 협정 이전에 정착한 교포들과 구별되는 ‘뉴 커머(New comer)´들이 있다.2001년 5월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를 결성했다. 새 터전을 찾아온 만큼 무역·정보통신·경영투자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조옥제 한인회장은 “동포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자발적 조직”이라면서 “자녀들의 정체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재일 한인 4~5세 민족 자긍심 갖길…”

    |도쿄 박홍기특파원|“작은 힘이지만 재일 한국인 4∼5세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민족교육에 힘쓰고 싶다.” 재일 한인들의 인권을 다룬 영화 ‘홈타운 박영미의 마을’의 극본을 쓴 재일 한인 2세 이경애씨는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홈타운.…’은 주인공인 재일 한인 3세 신임 간호사가 한국인 이름으로 살아가며 겪는 편견과 무시를 이웃들의 도움으로 이겨 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일본 오사카부 교육위원회가 만들었으며 지난달말 간사이 TV를 통해 방영돼 일본 시청자와 교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 냈다.이씨는 “장녀가 학창시절부터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극본을 썼다.”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조센징 일본어 잘하네.’라는 말이 듣기 싫어 스스로 일본인 아이들과 담을 쌓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이들을 주위에서 가끔 보게 된다.”고 털어 놨다. 초·중학교 민족학급 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공급하는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오사카 동포보호자연락회와 오사카부 교육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장녀가 초등학교 발표회에서 민족무용을 추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며 “이때부터 시마다 게이아이라는 일본이름을 버리고 한국이름을 사용했고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그녀는 “이번 영화의 반응이 좋아 다음 작품도 한국인 1∼2세들의 삶을 그린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hkpark@seoul.co.kr
  • 일본 교육계 현실 통해 한국 교육 되돌아보기

    일본 교육계 현실 통해 한국 교육 되돌아보기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끊이지 않는 논란 가운데 하나가 고입 평준화 제도다.31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 속에 평준화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 제도, 사교육비 절감 대책 등과 맞물려 만신창이가 됐다.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등은 입시 비리와 귀족학교 논란 등 또 다른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평준화 정책과 유사한 ‘유도리(여유) 교육’ 정책이 학력 저하를 초래했다며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9월 취임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교육 현장에 경쟁 원리를 도입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교육 재생회의’를 어떻게 이어 갈지도 주목되고 있다. 고형일 한국교육개발원장이 김태영 도요(東洋)대 교수에게 변화하는 일본 교육계의 현주소와 교육정책 등을 자세히 물어봤다. ▶아베 전 총리의 ‘교육 재생회의’는 일본 교육 전반에 수용됐나. -후쿠다 총리는 당선된 이후 “교육재생 방침은 계속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생회의 결론을 존중해 가면서 정책을 펴겠다는 뜻이다. 다만 아베 총리 시절 일본인의 윤리나 도덕관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미인 ‘아름다운 일본을 만드는 회의’는 후쿠다 총리 이후 없어졌다. 경제 ‘제일주의’를 수정하겠다는 의지다. 교육 재생회의는 후쿠다의 이념이 반영돼 이어질 것이다. ▶어떻게 바뀔 것으로 전망하나. -아베가 일본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강하게 표출했다면 후쿠다는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을 고려하는 편이다. 아베는 젊고 경륜이 짧은게 컴플렉스였다. 이 때문에 무리하게 논리나 근거도 부족한 채 여러 정책을 밀어부친 측면이 있다. 후쿠다는 주변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정책을 정한다. 교육 측면에서 후쿠다 총리의 캐치프레이즈가 ‘자립과 공생’이다. 젊은이들이 국가에만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하고 공부하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교육이 도와줘야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력이나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적 학력관을 갖췄다. 아베는 고생을 해본 적이 없어 보통 사람들의 어려움과 기분을 몰랐다. 보통 사람들이 필요한 보다 현실적인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후쿠다 총리의 세계화 교육관은. -아베 총리는 일본인으로서의 프라이드,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관을 가졌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학력이 저하되고 자살이 늘고 있고,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린이가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어린이를 살해하는 일이 매일 발생하고 있다. 아베는 세계적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민족주의를 부추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눈 앞의 과제를 빨리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후쿠다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유도리(여유) 교육은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문부과학성에서 유도리 교육으로 수업을 너무 줄였다고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반성한다고 인정했다. 국가가 유도리 교육이 잘못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학부모나 시민들도 유도리 교육이 학력의 저하를 가져와 교육의 효과가 없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 생각이다. 유도리 교육에는 ‘종합 학습시간’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선생님들이 이를 의미 있게 사용하지 않았고 또 스스로도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취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실현시키기 위한 능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유도리 교육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세계 학력대회에서 일본이 상위권인데 왜 학력 저하라고 보나. -일반 시민들이 학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예전보다 상식도 없고 사고력도 부족하고 경박하게 실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보며 시민들은 전체적으로 학생들 질이 떨어지고 학력도 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됐다.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나. -시대를 총괄해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70년대 일본 전국 학력 테스트가 있었는데 과당 경쟁이라며 유도리 교육으로 중지됐다. 올해 그 시험이 재개됐다. 긴 기간을 두고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지만, 대학 교원으로서 유도리 교육 시작점인 현재의 대학 2년생이 이전 학생보다 질이 분명히 떨어졌다고 느낀다. 사고력이나 생각을 종합하는 힘,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힘 등이 떨어졌다. 이게 유도리 교육의 마이너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에서 학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관계를 좋게 하거나 사회에서 잘 생존해 갈 수 있는 능력이 학력인데, 의미가 자꾸 좁혀지고 있다. 학력은 입장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어 안정적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부나 세계에 통할 수 있는 두뇌를 양성하고 기술을 창출하기 위한 능력을 학력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경쟁 시대를 감안하면 세계적 인재를 키우는 쪽으로 학력의 의미가 변해야 하지 않나. -한국처럼 일본도 옛날부터 관료주의적 교육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일본 밖의 세계를 보고 일본 교육계로 들어온 사람이 많지 않다. 새 생각을 가진 새 사람이 교육계로 들어와 실천하는 게 부족하다. 활동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나 행정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국제화가 슬로건으로 그치고 국내용으로 고착화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도 학교 폭력 문제가 많아서 고민을 많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적응 문제를 가정에서 근원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 일본의 학교가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폭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가정에서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일본 가정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TV에서 부모가 학교나 선생님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많이 나온다. 상식적으로 아주 이상할 정도다. 부모에게 상식이 없는데 어린이가 부모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최근 일본에서는 가정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청소년 대책은 부모 교육 중심으로 가게 되나. -기본적으로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고 일본 교육계는 생각한다. 학교 교육이 잘 되기 위해서는 가정 교육이 잘 되어야 한다. 후쿠오카 교육위원회에서 어린이 양육, 가정교육을 위한 핸드북을 만든 적이 있다. 옛날에는 부모들이 어린이 교육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을 갖췄는데 요즘은 부모 교육위원회가 양육시키는 역할을 한다.‘어린이 교육은 부모 교육으로부터’라는 슬로건까지 나오고 있다. ▶재일 조선인의 민족교육 어떻게 하고 있나. -재일 한국인이 1년에 1만명 정도씩 일본 국적으로 바꾸고 있어. 과거처럼 민족성을 전달하는 교육은 지금부터는 어려워지는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유학으로 캐나다를 갔는데 한국 젊은이가 재일 한국인을 전혀 몰라서 충격을 받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이란 것을 생각하게 됐고 민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젊은이들이 민족문화를 알 수 있도록 소개하고 접할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시 효과를 거둔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이들이 문화를 접하면서 앞으로 살 인생 중 민족을 원할 때 그들을 위해 지식이나 정보,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제공할지가 민족 교육의 과제다. 정리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2) 봉선사 큰법당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2) 봉선사 큰법당

    절 구경에 이력이 쌓여가면 불상이나 석탑에서 대강의 조성 시기를 읽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양식(樣式)이라고 부르는, 나름대로의 시대정신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상이나 석탑, 탱화가 예배의 대상을 넘어 미술품으로 대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불교미술은 장인의 창작품이라기보다는 그 시대 신앙의 양상이 조형적, 혹은 회화적으로 번안된 것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작품에서 드러난 실마리를 풀어내어 조성 당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요즘도 절은 끊임없이 세워지고, 그만큼의 불상과 석탑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훗날 미술사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원만하게 조성되었다고 칭송받는 불상도 오늘날 신앙생활의 양상을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광릉 숲 속에 있는 봉선사의 한글 이름 ‘큰법당’은 20세기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 했던 드문 노력의 하나로 보고 싶습니다. 조선 세조(1417∼1468)의 무덤 광릉(光陵)의 수호 사찰인 봉선사는 예종 원년(1469)에 세워졌다고 김수온의 ‘봉선사기(1469)’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 89칸의 적지 않은 규모였는데 건축 과정에서 부실공사라는 지적을 받아 허물고 다시 지었을 만큼 정성을 들였다고 하지요. 큰법당은 한국전쟁으로 삼성각(三聖閣)말고는 봉선사의 전각이 모두 부서진 뒤 1970년 운허(1892∼1980)가 초창 당시 대웅전을 복원하면서 새로 붙인 이름입니다. 운허는 평양 대성중학교 출신으로 중국 봉천에 동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힘쓴 데 이어 한족신보 사장으로 독립운동에 몸담았다고 하지요. 그는 산문(山門)에 들어선 뒤 불교경전을 파고들었는데, 광복 이후에는 봉선사에 머물며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힘썼습니다. 봉선사의 중심 전각을 큰법당이라고 이름지은 것도 불경을 우리말로 풀어내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불경 번역은 세조가 1461년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법화경언해(1463년)’ 등 9종의 경전을 한글로 옮긴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봉선사와 불교의 한글화 작업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법당은 편액뿐 아니라 기둥글(柱聯)도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온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큰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부처님 공덕 다 말못하고(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라는 선시(禪詩)이지요. 순수한 한글로 최대한 풀어쓰고, 의미전달을 위해서는 의역(意譯)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는 운허 번역의 특징이 짤막한 기둥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큰법당은 그러나 우리 불교계에 과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이름은 공간의 성격까지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대웅전과 극락전, 대적광전 등은 각각 석가모니부처와 아미타부처, 비로자나부처로 주체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큰법당은 어떤 예배가 이루어지는 공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성격 부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법당을 장엄하는 장인들도 옛것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dcsuh@seoul.co.kr
  • “해외동포 참정권 올해안에 해결을”

    전세계 700만 동포를 대표하는 한인회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2007 세계한인회장대회’가 19일 오후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개막했다.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이구홍)이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는 56개국에서 모두 376명의 한인회장이 참석,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22일까지 서울에 이어 충남 예산에서 진행된다. 대회 개회식에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민족교육을 적극 지원하고, 방문취업제 등을 통해 경제발전 혜택을 동포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도 힘써 나갈 것”이라며 “동포 여러분이 고국을 왕래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법과 제도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세계 한인의 날’(10월5일)이 우리 동포들의 큰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개회식에 앞서 대회 의장단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숙원사업인 해외동포 참정권 요구 및 ‘세계 한인의 날’ 제정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 밝혔다. 김다현 유럽한인회총연합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멕시코, 터키, 한국만이 동포들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고 있다.”며 “올해 참정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네덜란드 국제사법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하겠다.”고 주장했다. 김희철 재중국한인회장은 “미국 한인회측과 함께 참정권 회복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간에 재중 한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서명을 국회에 전달할 것”이라며 “한인회장들이 단합해 참정권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해외동포들 생생한 목소리 정부에 알려야죠”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인 해외동포들은 모국의 정을 항상 그리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부측에 제대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19∼22일 서울 및 충남 예산에서 열리는 ‘2007 세계한인회장대회’를 주최하는 재외동포재단 이구홍(65) 이사장은 18일 대회 개막에 앞서 기자와 만나 이번 대회의 의미와 역할 등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40여년간 해외동포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답게 그는 지난해 11월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갖는 세계한인회장대회에 대한 비전이 남달랐다.“대회 역사가 8년이나 됐지만 회장들이 매년 200여명만 참석하는 등 ‘한인 네트워크의 허브’가 돼야 할 대회가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예년의 2배 가까운 인원이 참석할 예정이고, 노무현 대통령 등 정부측의 관심도 커서 보다 내실 있는 대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본국의 입장을 해외동포들에게 전달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그들의 입장에서 현안들을 파악해 정부측에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한인회의 역할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역설했다.“한인회가 잘 되면 민족교육이나 한국학교 운영 등 2세·3세들의 활동도 잘 이뤄집니다. 한인회를 통해 모국에 대한 기여심과 애착심도 커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이번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모국어 교육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정부측에 개선책을 요청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재외국민 참정권 여부와 관련, 이 이사장은 “교포사회에서도 찬반 양론이 있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대회에서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나 재단측에서 입장을 정하거나 논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재단 창립 10주년이기도 한 올해 이 이사장은 할 일이 참 많다. 지난 4월 ‘세계 한인의 날’(10월5일)이 제정되면서 오는 10월 첫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이 날을 전후로 일주일간을 ‘세계 한인주간’으로 정해 ‘내외 동포는 하나다.’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행사를 계획 중이다. 이 이사장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제정된 ‘세계 한인의 날’행사를 통해 국민 모두가 해외동포의 역사적 의미를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동포 육성방안에 대해 그는 ‘언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동포들을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으로 육성하려면 언어와 문화를 상실하지 않도록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동포사회에서 언어를 되살리기 위해 국어교육, 역사교육 운동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日사시에 故김경득변호사 아들 합격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교포 첫 변호사로 교포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고(故) 김경득(金敬得) 변호사의 아들 창호(昌浩·22)씨가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17일 민단신문에 따르면 도쿄대 법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창호씨는 최근 사법시험 2차시험에 합격했다. 올 합격자는 총 549명으로, 창호씨와 같이 대학 재학 중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87명에 불과했다. 창호씨는 어릴 적부터 부친의 활발한 인권변호 활동을 동경했으며 법조인의 꿈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지병으로 56세의 나이에 타계한 고 김 변호사는 창호씨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일본어 회화를 못할 정도로 한국어만 쓰게 할 정도로 자녀의 민족교육에 힘썼다. 명문 사학인 게이오(慶應)대학 3학년이던 차녀 미사(美沙·20)씨는 올해 게이오 법과대학원에 월반으로 합격, 오빠에 이어 사시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고 김 변호사는 1949년 와카야마(和歌山)시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외국인은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수 없는 차별에 맞서 국적 조항 철폐운동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평생을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결국 일본 사법부의 국적 요건 완화를 이끌어내 변호사가 된 그는 재일교포 국민연금 소송, 지문날인 거부 운동, 일본군 위안부 전후보상 소송 등을 이끌었다.taein@seoul.co.kr
  • 가을 ‘시네마 천국’… 푹 빠져보세요

    12일 시작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온·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가을의 오곡백과만큼이나 풍성하다. 제7회 서울유럽영화제가 25∼29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펼쳐진다. 개막작은 ‘이터널 선샤인’으로 유명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오른쪽 사진)’.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12시8분, 부카레스트’(코넬리우 포롬부), 다이애나비의 죽음과 관련된 총리와 여왕의 이야기인 ‘더퀸’(스티븐 프리어즈) 등 27편의 상영작 속에서 유럽영화의 현재를 볼 수 있다. ‘재외동포영화제(포스터)’가 ‘조선·고려·꼬레아·코리아 소통하다’를 주제로 서울아트시네마(20∼23일)와 국회의원회관(23일)에서 열린다. 재외동포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700만의 발자국’, 월드코리안의 목소리, 인사이드 코리안 등 5개 섹션을 통해 일본, 필리핀 등 9개국의 23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인디다큐페스티벌2006’은 27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다. 조총련 계열의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은 고3 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장편 ‘우리 학교’(김명준)를 시작으로, 국내 신작 다큐멘터리 14편을 상영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내외 작품들을 모은 ‘한미FTA 특별섹션’이 눈에 띈다. `서울독립영화제2006´(12월7∼15일)에 앞서 지난해 이 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온라인에서 만난다. 대상작 ‘안녕, 사요나라’(김태일, 가토 구미코), 최우수상작 ‘낙원’(김종관) 등 12편을 11월26일까지 상영한다. 한국영상자료원(www.koreafilm.or.kr), 서울독립영화제(www.siff.or.kr)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대종상영화제, 대한민국영화대상, 청룡영화상과 함께 국내 4대 영화제로 꼽히는 ‘춘사대상영화제’는 오는 26일까지 경기도 이천설봉공원 야외대공연장에서 진행된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천자문으로 조선 엿보기

    ‘하늘천 따지’ 서당에서 읊던 천자문이 새로운 우리 고전 작품으로 태어난다. 6세기 중국 주흥사가 만든 천자문이 고려말 조선초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단순히 중국문화의 산물로 여겼던 천자문. 또 조선시대의 학습 교재서로만 평가 절하됐던 천자문. 이 천자문이 조선 500년의 역사·문화·철학을 살필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자 ‘보고’로 변신했다. 조선중기의 서예가로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의 작고 400주년 기념으로 오는 16일부터 다음달 19일까시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하늘천 따지-천자문과 조선인의 생각·공부·예술전’이 열린다. ●조선왕실 제왕교육의 출발은 천자문 왕실은 물론 문인사대부, 민간에 이르기까지 천자문은 교육의 첫 걸음마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박팽년, 이황, 정약용 등 유학자 및 실학자의 천자문을 비롯, 중국 당·송·원·명대의 천자문, 석봉 천자문의 여러 판본 등이 전시된다. 우리나라 천자문의 경우 조선 500년과 개화기, 일제시대 만들어진 100여종의 서로 다른 천자문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들 천자문을 통해 내용은 물론 천자문과 결부된 인쇄문화, 글씨 예술, 한자 구성원리, 한글변천과정, 전통교육제도, 일제시대 민족교육 등이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예를 들어 천자문에는 한글로 토를 단 것이 있어 한글연구에 도움이 되고, 일본어로 토를 단 것도 있어 슬픈 우리의 식민역사가 느껴지기도 한다. 알기쉽게 한자를 그림으로 설명한 도상천자문도 있다. 특히 선조의 어명을 받아 석봉이 쓴 ‘석봉천자문’은 국가에서 찍어내고 보급해 가장 널리 쓰였던 천자문이기에 따로 전시장이 꾸며진다. ●이항복 천자문 등은 처음 선보여 봉선사 간인의 천자문(사찰본,1471년, 성종2))은 현존하는 천자문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한글 토가 없는 이 천자문은 해서체로 판본의 상태가 좋지 않지만 처음 공개된다. 교서관 간인 중보본(1650년, 효종1)은 한석봉의 천자문으로 ▲한자서체 ▲한글표기 ▲책판본 등에 있어 3가지 표준을 제시하고 있어 중요한 문헌이다. 일본을 비롯해 현재 3권밖에 없어 더욱 귀중하다. 성주 간인의 백사 이항복 천자문(1734년, 영조 10)은 유학자 이항복이 손자의 교육용으로 쓴 것으로, 처음 공개된다. 한석봉이 직접 쓴 ‘대자 해서 천자문’은 사찰·궁궐 현판이나 비석문에 쓰이는 글씨‘원조’격이다. 천자문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며 천자에 천자를 더해 이천자문을 쓴 정약용의 ‘아학편’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천자문. 너무 학문적이다 싶으면 한자 컴퓨터 놀이를 할 수 있는 이상호의 ‘게임을 이용한 한자여행’과 ‘천자문 탁본찍기’등 다양한 놀이공간에서 쉬었다 가도 좋다. 예술의전당 전시팀 이동국 차장은 “천자문의 1000자 250구 125절의 방대한 서사시 안에는 인간의 도리와 기강, 역사등이 담겨 있어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종합교재”라고 평가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6월의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

    국가보훈처는 구한말 민족교육에 힘을 쏟고 상하이(上海)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활동한 김동삼(1878∼1937)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했다고 31일 발표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07년 유인식 선생과 협동학교를 설립·운영했으며,1911년 서간도로 망명한 뒤 신민회 동지들과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3·1운동 직후엔 부민단을 한족회로 개편하고 서로군정서를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1922년 통군부를 대한통의부로 확대·개편해 만주지역의 독립군단체로 재건했다. 1931년 9월 북만주로 이동해 항일무장투쟁을 계획하다가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4월 순국했다.
  • 靑교육문화비서관 김진경씨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교육문화비서관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52)씨를 내정했다고 김만수 대변인이 밝혔다. 관료출신이 맡아오던 교육문화비서관에 전교조 출신이 처음 임명돼 관심을 모은다. 김 신임 비서관은 최근에 고교 국어교사를 그만뒀으며,1974년 한국문학에 시 부문에서 당선된 시인이기도 하다.‘갈문리의 아이들’‘광화문을 지나며’등 시집을 냈고 현재는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 김만수 대변인은 발탁 배경에 대해 “균형 감각을 지녔다.”면서 “전환시대의 민족교육을 발간하는 등 교육 혁신에 대한 열정, 혁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1월의 독립운동가 최용신

    국가보훈처는 30일 일제시대 당시 농촌 계몽활동을 통해 민족교육에 앞장선 최용신(1909∼1935) 선생을 2005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함남 덕원군 태생인 선생은 협성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한국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신념을 갖고 농촌 계몽운동에 투신했다.1931년에는 YWCA 농촌지도원으로서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천곡(샘골)에 파견돼 아동과 청년,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산술, 재봉, 수예 등을 가르치는 한편 생활 개선사업과 농가부업을 장려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조만식 선생 54주기 추모식

    겨레의 큰스승인 고당 조만식(1883∼1950) 선생 54주기 추모식이 오는 18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고당 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방우영) 주관으로 열린다. 추모식에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 안응모 전 내무부장관, 김우전 광복회장 등 각계 인사와 평남도민회 회원 등 400여명이 참석한다.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선생은 1913년 오산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민족교육에 헌신했고,1919년 평양 제2차 독립만세운동 조직책임자로 활동하다 1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해 겨레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으며,1945년 11월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반공노선에 입각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고이즈미, 조총련대회에 축전

    |도쿄 이춘규특파원|2002년 9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차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일본 내에서 반북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활동이 크게 위협받았던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 지난 22일 2차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조총련은 28일 도쿄도내 조선문화회관에서 최고의결기구인 제20회 전체회의를 개막했다.대회에서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축전을 통해 “북·일 관계개선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고,고이즈미 총리도 자민당 총재로서는 처음으로 조총련 전체대회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 대독하도록 하는 등 양자간에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기류였다. 3년마다 열리는 행사에서 서만술 의장은 개막사를 통해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관계정상화 의지를 표명,재일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우호적으로 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북·일 정상회담의 내용을 중점 보고했다. 조총련은 이날 새 시대를 이끌기 위한 동포 3,4세대의 전진 배치 방침을 밝히며 민족교육과 동포생활 봉사활동 등을 통해 재일 한국인 등과의 연대 강화도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수석 부간사장이 대독한 ‘자민당 총재 고이즈미 준이치로’ 명의의 메시지를 통해 “자민당을 대표해 축하의 뜻과 인사를 드린다.”면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2차 북·일정상회담 내용을 4개 항목으로 나눠 소개했다.특히 조총련계 동포에 대한 차별 중지와 우호적 대응 방침을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반도의 안정과 일본과 한반도의 우호적 관계는 일본 자신의 안전보장과 동북아시아지역 평화·안정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일 국교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이에 대해 조총련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겠다는 표현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taein@˝
  • 해외독립운동가 유해5위 국내봉환

    해외에서 조국 광복 운동을 전개한 부부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독립운동 선열 유해 5위가 국내로 봉환된다.국가보훈처는 쿠바지역 임천택(1903∼1985) 선생과 하와이지역 권도인(1888∼1962)·이희경(본명 이금례 1894∼1947) 선생,중국지역 정재만(1900∼1935)·이계엽(1887∼1947) 선생 등 독립운동 선열 유해 5위가 2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봉환된다고 23일 밝혔다. 특히 권도인·이희경 선생은 부부 사이로,광복 이듬 해인 1946년부터 해외 독립운동 선열 유해 봉환이 시작된 이래 부부 선열의 유해가 동시에 들어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처는 26일 오후 5시30분 인천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서 안주섭 국가보훈처장,유족,친지,광복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봉영식을 갖고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영현봉안관에 유해 5위를 임시 안치할 계획이다. 이들 유해는 27일 국립 대전현충원 현충관으로 옮겨져 안장식을 거쳐 애국지사 제 3묘역에 안장된다. 보훈처는 지금까지 파악한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240위 중 95위를 봉환했고 미봉환된 145위중 소재가 확인된 59위는 현지에서 묘소를 단장했으며,23위는 국내로 봉환할 방침이다.한국과 미수교국인 쿠바에서 처음으로 유해가 봉환될 임 선생은 한인이민 1세로,민성국어학교와 진성국어학교 교장으로서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청산도에 살으리랏다

    전남 완도에 다녀왔다.몸살날 정도로 봄빛이 예쁜 청산도,숭어가 펄떡펄떡 뛰노는 소안도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청산도의 봄빛은 이미 곰삭아 있었다.섬을 파랗게 덮은 보리는 벌써 솜털같은 이삭을 하나씩 피우고 있었고,돌담 너머로는 샛노란 유채꽃 물결이 출렁거렸다.푸른 빛이 한층 짙어진 바다로부터 밀려드는 훈풍은 밀밭을 손질하는 아낙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고 있었다.완도의 섬속의 섬,청산도와 소안도를 다녀왔다. 글 청산도·소안도(완도) 임창용기자 sdragon@ ●청산도(완도군 청산면) 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50분 거리인 청산도(靑山島).푸른 숲이 우거진 산이 많아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하지만,이맘때 청산도의 푸른 빛은 실상 보리빛이다.섬 어느 곳을 가도 해안에서 바라보면 산 아래 계단처럼 펼쳐진 다랑논에 어김없이 보리가 자란다. 선착장이 있는 도청항에서 차로 3∼4분쯤 가면 영화 ‘서편제’가 촬영된 당리마을이다. 영화에서 소리꾼인 유봉(김명곤 분)과 그의 딸 송화(오정해 분),동호(김규철 분)가 신명나게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돌담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 촬영후 시멘트로 포장됐다가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걷어냈다고 한다.지금은 길 입구를 중심으로 심어놓은 유채꽃이 만발해 돌담길 주변 색깔이 더 예뻐졌다.오히려 영화속 배경보다 한층 더 화사한 분위기가 난다. 당리마을 한가운데엔 유봉이 툇마루에 앉아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집이 있다.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집들 가운데 끼어 있는 유일한 초가집이다.사람은 살지 않고 당시 주인공들의 복장을 한 인형을 설치해 영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청산도에서 빠질 수 없는 볼거리는 돌담이다.밭둑,논둑,축대,집 둘레엔 어김 없이 돌담이 쌓여 있다. 완도군청 직원 안봉일씨는 “청산도는 아무데나 파헤쳐도 주먹만한 것부터 집채만한 것까지 온통 돌뿐”이라며 “그래서 예전부터 밭 하나 일구려면 몇 달이 걸렸다.”고 했다. 돌담뿐만 아니라 벽돌 대신 돌을 쌓아서 지은 집도 있다.진흙을 이겨 틈을 메우면서 벽을 쌓은 뒤 지붕을 덮은 집들이다.높다랗게 쌓은 돌담과 돌벽들은 수백년,수십년이 지났음직 하지만,거의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다.돌담 쌓기는 지금도 청산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중요한 건축공법이다. 돌이 많다보니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청산도엔 쌀이 항상 부족했다.오죽하면 ‘청산도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만 먹으면 부잣집’이란 말이 있을까. 그래서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얻기 위해 무진 애를 썼는데,그중 가장 특이한 방법이 ‘구들장 논’과 ‘구들장 수로’다.비탈진 산자락에 돌을 쌓은뒤 흙을 덮어 만든 논과,여기에 물을 대기 위한 물길이다. 그 방법이 기발하다.구들장 모양의 넓적한 돌을 기와를 겹쳐 쌓듯이 가운데 방향으로 경사지게 쌓아 맨 아래 중앙에 사람이 기어들어갈 정도의 네모진 구멍을 만들었다.돌을 겹쳐 쌓은 위엔 흙을 두껍게 깔아 보리나 벼를 심었다. 이렇게 하면 비가 내렸을 때 스며든 물이 경사진 돌을 따라 가운데로 모여 구멍을 따라 나오게 되고,구멍아래 있던 논에선 이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돌이 많은 특이한 지질과 한 방울의 물도 버리지 않으려는 주민들의 의지가 빚어낸 첨단 농법이 아닐 수 없다. 섬의 북동쪽 진산리엔 갯돌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아이 손톱만한 것부터 어른 머리 크기까지 갖가지 색깔의 동그란 돌이 해안을 덮고 있다.파도가 밀려왔다가 내려갈 때마다 ‘차르르 차르르’ 돌구르는 소리가 때묻지 않은 어린애 웃음소리처럼 정겹다 ●소안도(완도군 소안면) 소안도는 해안 풍광과 상록수로 이루어진 방풍림이 아름다운 섬이다.특히 일몰 무렵 해안에 가면 숭어떼가 붉은 햇살에 반사돼 반짝이며 펄떡펄떡 뛰노는 모습은 너무 눈부셔 가슴마저 덩달아 뛰게 한다. 숭어가 워낙 많아 이곳에선 ‘개매기’란 특이한 방법으로 어로작업을 한다.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해안 지형이 오목하게 생긴 곳에서 주로 하는데,소안도에선 섬 북쪽 월항리 앞 바다가 적지다. 개매기란 바다(갯)를 막아(매기) 고기를 잡는다는 뜻.밀물 때 해안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수백m 길이에 말뚝을 박아 그물을 매 썰물로 물이 줄어들면 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한 주민은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개매기 체험행사를 했는데,워낙 숭어가 많아 커다란 마대자루에 고기를 담아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월항리 주민들은 올해도 7월부터 8월까지 10여회 정도 체험행사를 열 예정.물이 무릎 아래까지 빠지면 일제히 면장갑을 끼고 들어가 물반 고기반인 바다에서 숭어를 잡는 행사다.참가비는 1인당 5000원 정도. 여의도 3배 크기의 소안도는 항일운동의 거점이기도 하다.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한 1905년 이후 주민들은 당사도 등대 습격사건 등 가열찬 항일운동을 펼쳤다.항일,민족교육의 중심에 서 있었던 비자리의 사립 소안학교 터에 최근 건립한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엔 당시 항일운동을 이끈 인물들의 사진과 업적을 담은 자료가 전시돼 있다.또 항일운동 모습을 인형이나 홀로그램 등으로 재현한 세트 등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들러볼 만하다. 이것도 맛보세요 소안도는 톳과 전복양식으로 유명하다.이곳 주민들은 톳 양식 만으로도 한 해에 가구당 평균 3000만원의 소득을 올릴 정도.시설비가 많이 드는 전복 양식을 하는 사람들은 상당한 부자에 속한다. 소안도 음식점들은 대부분 전복 음식을 낸다.그중 면 소재지가 있는 비자리의 ‘청포도식당’(061-53-7248)은 다양한 전복 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곳.주메뉴는 전복회와 전복 구이,전복 내장 볶음을 세트로 내는 ‘소안정식’이다. 전복회는 두툼하게 썰어 한 번 입안에 넣으면 한참 동안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달큰하면서 풋풋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구이는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사실 서울 등 도심에서 전복을 구워먹는다는 건 지나친 사치다.얇게 저며 회로 먹거나,몇 점씩 넣어 죽을 끓여먹을 정도로 전복은 ‘귀하신 몸’이다.그래서 전복을 통째로 구워 군고구마 먹듯 베어먹다 보면 ‘이래도 되나.’하며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전복 내장은 젓갈(게우젓)을 담그거나 전복죽을 쑬 때 넣는 줄만 알았는데 이곳에 오니 볶음요리가 있다.약간의 양념을 해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접시에 담아준다.쌉싸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참 독특하다. 전복요리 이외의 음식도 다양하고 푸짐하다.몸통만으로도 접시에 가득찰 정도로 큰 삼치 구이·광어회·간재미 찜 등 해산물,톳나물 무침·모자반 무침 등 해초류,성게알젓·게우젓 등 고급 젓갈 등 20여가지가 상을 가득 채운다.음식값은 4인 1상 기준 6만원. 완도읍내에선 항동리 ‘해궁횟집’(554-3729),개포리 공용터미널 뒤의 ‘대도한정식’(554-3537)의 음식이 먹을 만하다.완도읍내는 대체적으로 음식값이 비싼 편.해궁횟집의 경우 참돔회는 1㎏에 9만원,우럭은 6만 5000원. 대도한정식은 4인 1상 기준 12만원으로 지방으로선 상당히 비싸다.참돔,우럭,병어회와 푹 삭힌 홍어가 들어간 삼합,메생이국,날치알,새우찜,키조개 회,톳 냉국,산나물 등 40여가지의 음식이 나온다.이중 회를 뜨고난 뒤 나온 생선뼈를 푹 우려내 끓인 미역국은 진하면서도 시원해 가장 돋보이는 음식이다. ●가는 길 완도까지는 서울에서 열차,항공편으로 광주까지 가서,완도행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광주 버스터미널에서 완도까지 2시간30분 소요.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완도까지 직접 가는 고속버스도 하루 4회 있다.5시간 30분 소요. 청산도는 완도읍에서 19.2㎞ 떨어진 둥근 소라형 모양의 섬.해안선 길이가 98㎞에 달한다.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청산도행 고속페리호가 하루 4회 출발한다.요금은 6050원,승용차는 운전자 1명 포함 2만 3000원.농협에서도 하루 4회 철부선을 띄운다.청산도 내에선 승용차나,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소안도는 완도 화흥포항을 출발해 노화도,소안도를 거쳐 보길도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1시간마다 배가 출발한다.문의 완도 버스터미널(061-552-1500),여객선터미널(552-0116),화흥포항(555-1010). ●숙박 청산도엔 등대모텔(061-552-8558),청산민박(552-8800),제일민박(552-8807),읍리민박(552-8841),압개민박(552-8703) 등이 있다.소안도엔 제일장(553-7550),현대장(553-7547),소안장(555-0050) 등 여관이 있다.대부분 규모가 작고 건물도 낡아 시설은 깔끔하지 못한 편. 섬에서 꼭 숙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완도읍내에서 소규모 호텔이나 깔끔한 장급 여관을 찾아 묵으면 된다.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550-5524),관광안내소(550-5152). 글 완도 임창용기자 sdragon@˝
  • 도산 안창호 66주기 추모식

    독립 운동가로 민족교육에 헌신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순국 66주기 추모식이 10일 서울 도산공원에서 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 주관으로 열린다.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독립운동선열 유해 3위 안장식

    국가보훈처는 26일 오후 2시 대전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독립운동가 이규병(1897∼1942)·조계식(1876∼1945)·우억만(1879∼1953) 선생 등 독립운동 선열의 유해 3위의 안장식을 거행한다. 이규병 선생은 1913년 중국 룽징에서 봉명학교를 설립,민족교육을 실시하고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에서 활동했으며,조계식 선생과 우억만 선생은 경기도 포천과 경북 영덕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이들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이로써 보훈처가 파악한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묘소 227위 중 84위는 국내로 봉환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했으며,미봉환된 143위 중 소재가 확인된 60위는 현지에서 묘소를 단장해 민족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석오 이동녕선생 순국 63주기 추모식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 선생 순국 63주기 추모식이 13일 오후 2시 효창원 임시정부 요인묘역에서 석오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 주관으로 열린다.1869년 충남 목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임시 의정원 초대 의장을 거쳐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고,만주 북간도의 교육기관인 서전서숙과 한국군 사관학교인 신흥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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