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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철학자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분석 1995년 11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행동파 좌익인사들이 상당수인 프랑스 지성계에서 들뢰즈는 비교적 철학에만 몰두한 ‘예외적인’ 인물이었다.그는 동시대 프랑스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와 함께 ‘차이’의 철학을 주창했으며 실존주의를 비판했고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에 도전했다.‘철학자 중의 철학자’ 들뢰즈의 초기 저작에 속하는 ‘프루스트와 기호들’(서동욱·이충민 옮김)이 최근 민음사에서 나와 관심을 모은다. ‘프루스트와 기호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과 사물들을 하나의 기호체계로 분석한 연구서.들뢰즈는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이 이 소설에 접근한다.바로 이 지점에서 들뢰즈만의 새로운 프루스트 읽기가 시작된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르셀이라는 문학청년을 주인공으로,시간의 파괴력 앞에 무력한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린 1인칭시점의 소설이다.이 작품은 종종 과거에 대한 소설로 간주되어 왔다.그러나 들뢰즈는 소설의 통일성을 화자 마르셀의 기억이나 추억에서 찾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본질은 마들렌 과자나 포석들 안에 있지 않다.들뢰즈에 의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순한 회상의 노력이나 기억의 되찾기가 아니다.기억은 일종의 견습의 수단이며,탐구의 도구일 뿐이다.요컨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과거를 지향하는 소설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한편의 도제소설인 것이다. 들뢰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네개의 기호체계를 찾아낸다.사교계의 기호들,사랑의 기호들,감각 경험의 기호들,그리고 예술의 기호들이 그것이다.들뢰즈는 이 네가지 형태의 기호체계들을 이집트학 학자처럼 해독,기호와 의미를 종합하는 진정한 영원성으로서의 시간,즉 절대적 원초의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예술기호라는 결론에 도달한다.이 책은 무엇보다 들뢰즈 사상의 발전과 관심의 이동경로를 그 싹에서 열매에 이르기까지 발생학적으로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장 그르니에 철학에세이 3권/객관적 거리에서 짚어본‘삶과 죽음’

    ◎긴장·까다로운 감수성 지닌 ‘불 산문의 정화’/제자 알베르 카뮈와의 인간적인 교유 회고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그보다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1898∼1971)의 에세이 선집이 도서출판 민음사에서 나왔다.모두 4권으로 기획된 이 선집 가운데 이번에 선보인 것은 ‘섬’‘카뮈를 추억하며’‘어느 개의 죽음’ 등 3권.나머지 한권인 ‘일상적인 삶’은 11월 말 출간될 예정이다.특히 이번 판본은 그르니에 특유의 간결하고 깊이있는 어투를 우리말의 맛을 살려 번역,철학에세이의 지루함을 걷어낸 점이 돋보인다. 그르니에의 대표작인 ‘섬’(김화영 옮김)은 삶에 대한 작가의 강렬하면서도 그윽한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공의 매혹’‘고양이 물루’‘케르겔렌 군도’‘행운의 섬들’‘부활의 섬’‘상상의 인도’‘사라져버린 날들’‘보로메의 섬들’ 등 8편의 글을 통해 그르니에는 감각적인 현실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성찰한다.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식으로 구성돼 있는 상징의섬들이 준 충격을 카뮈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에 견줬다. ‘카뮈를 추억하며’(이규현 옮김)의 스토리는 그르니에가 알제 고등학교에서 철학강의를 할때 제자로 찾아온 카뮈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삶의 좌절과 고통을 냉담함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한 고등학생과의 인간적인 교유가 인상적이다.그르니에는 스승과 제자의 차이,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사회적 성장배경의 차이 등 자신과 카뮈 사이에 놓인 실존적 간극을 날카롭게 인식한다.그런만큼 그의 글은 더욱 치밀해질수 밖에 없다.그르니에는 증언한다.“‘부당하게 상처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카뮈의 모든 작품에서 들려온다”“카뮈는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었고 쫓기면서 인생을 살았다”“카뮈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그의 증언들은 카뮈와의 동일시 환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사실적이다. ‘어느 개의 죽음’(지현 옮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의 글쓰기는 사랑하던 한 존재의 소멸에서 비롯된다.한 장이 한 페이지로이루어진 90개의 장과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짧은 글’로 구성된 이 책은 개의 죽음을 다루면서 신의 구원에 대한 불만과 기원을 이야기한다.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개의 모습에서 작가는 삶의 기쁨을 주는 손과 앗아가는 손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분노를 느낀다.그러나 작가는 이내 마지막 고통 때문에 일생의 기쁨을 송두리째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추스린다.그리고 객관적 거리에서 죽음을 관조한다.한줄기의 잠언처럼 다가오는 이 글을 통해 그르니에는 신과 인간,삶과 죽음,밝음과 어둠의 이분법적 세계를 넘나들며 그 소통가능성을 모색한다.나아가 부정과 초극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그르니에의 작품에 대해 “그의 작품은 긴장과 까다로운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평온함을 띠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무중력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고 평했다.그르니에는 이 작품들을 통해 거창한 철학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다만 자기를 잃고 사는오늘의 현대인에게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이라는 화두를 시적 명상에 실어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 “일본 현대문학을 읽자”/문학비평지 ‘포에티카’가을호 특집 실어

    ◎무라카미 류 등장 등 시대흐름 조명 도서출판 민음사가 펴내는 계간 문학비평 전문지 ‘포에티카’ 가을호가 나왔다.이번 호에는 한양대 윤상인 교수의 ‘탈식민주의 시대의 일본문학 읽기’를 비롯 ‘탈근대라는 이름의 허구’‘일본의 현대 작가들’‘한국문학 속의 일본문학,그 영향과 수용을 넘어’ 등 4편의 일본문학론을 특집으로 꾸몄다. 한국문학도 이제 ‘민족문학’이라는 닫힌 이념에 매몰되어 있기 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세계문학의 다양한 조류와 교감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번 특집은 일본이라는 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 위에서만 한국 문학의 정체성에 관한 추구도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윤상인 교수는 “일본 문학이야말로 탈식민주의적 글읽기를 권유하는 흥미진진한 텍스트”라고 말한다.지난 100여년간 일본문학의 변천과정에서 볼 수 있는 순혈과 혼혈,중심과 변경,수렴과 방사라는 이항대립 구도는 드라마틱하기조차 하다는 것이 윤교수의 주장.나아가 최근 무라카미 류나 하루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부분에서 전체로,변경에서 중심으로,해체에서 구축으로의 중심이동은 일본문학이 1980년 이후 15년 이상 지속해온 유목민적 유랑끝에 다시 정주의 울타리안으로 회귀하는 것을 예고하는 조짐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호에서는 일본 현대문학의 흐름과 족보도 소상히 살핀다.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문학은 소설의 흐름과 정치의 흐름이 괴리현상을 빚고 앙가주망 문학은 소멸의 길을 걷는다.평론가 오다기리 히데오는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작가군,곧 후루이 유기치·구로이 센지·고토 아키오 등을 ‘내향의 세대’라고 불렀다.이들은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상황 보다는 자아와 개인적인 상황속에서 작품의 진실을 추구하려고 한 ‘탈이데올로기’ 문학세대다.그러나 1979년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출현은 무라카미 류의 등장과 더불어 ‘내향의 세대’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사건이었다.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일본의 문학아카데미즘은 기호론과 오컬티즘을 수용하게 된다.1990년대 일본 문학계의 가장 큰 충격중의 하나는 92년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이다.일본문학의 등줄기를 이뤄온 그의 죽음은 이른바 ‘하루키현상’‘바나나현상’에 묻혀있던 시마다 마사히코나 신예 오쿠미스 히카루,다와다 요코 등에게 길을 터주는 계기가 됐다.이번 호에는 일본 문학계의 진보적 입장을 이끌어온 가라타니 고진(병곡항인)과 냉철한 이성주의자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고려대 김우창 교수의 대담을 싣고 있어 관심을 끈다.
  • 민음사,탄생 120주년맞아 헤르만 헤세선집 12권 발간

    ◎‘추억의 책장’에서 다시 만난 헤세/독 주어캄프사와 한국어판 독점출판 계약/‘데미안’ 등 윤문 피하고 원문에 최대한 충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알은 세계이다.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왠지 모를 공허와 고립감,쓸쓸함속에 홀로 침잠하던 젊은 시절,우리는 한번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으며 청춘의 통과의례를 치룬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동양의 신비주의와도 맞닿아 있는 그의 정신세계에서 어떤 마음의 위안이라도 찾기 위해서 였을까.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헤르만 헤세(1877∼1962).올해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세가 태어난지 120년이 되는 해다. 도서출판 민음사는 이에 맞춰 모두 12권의 헤르만 헤세 선집을 발간한다.독일 주어캄프사와 저작권 계약을 체결,헤세 작품의 한국어판을 독점 출판하는 것.현재 유통되고 있는 헤세 작품의 번역본들은 대부분 십수년전에 번역된 것이거나 심지어 역자가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판본을 그대로 옮겨 출간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이에 비해 민음사의 헤세 선집은 지나친 윤문을 피했으며 좀 건조하더라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헤세 문학의 새로운 번역 정본으로 평가할 만하다.이번에 1차분으로 선보인 작품은 ‘데미안’‘페터 카멘친트’‘수레바퀴 아래서’‘크눌프’ 등 4권이다. 헤세는 젊음의 언어로 말한다.헤세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과거의 유산이나 권위 따위는 무덤으로 보낸다.대신 스스로의 한계를 부수고 성숙해간다.“젊은 세대가 있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헤세의 작품이 읽힌다”는 명제는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데미안’은 순진무구한 한 젊은이의 성장기다.어느날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던져진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징적인 수법과 신화적인 모티프로 그린다.작품의 화자인 싱클레어의 친구 데미안은 당대의 문화와 문명비판적인 사고가 구현된 인물.헤세는 이 데미안을 통해 삶의 근원과 고유한 자아로 돌아갈 것을 역설한다.다시 말해 고정된 세계의 통념과 낡은 권위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헤세 자신의 마울브론 신학교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서전 같은 작품.한스 기벤라트라는 투명한 영혼의 주인공이 학교와 사회가 빚어내는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질식되어 가는 이야기다.이 작품 역시 인간집단의 불합리한 권위와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을 다룬다.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어두운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리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첫 장편소설.처녀작답게 ‘페터 카멘친트’에는 신선함이 배어 있다.알프스 고지대에 사는 주인공 카멘친트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 나머지 고향을 등지고 ‘세상’으로 나간다.작가가 되어 얼마간의 세속적 명예를 얻고 예술가들과 교류도 갖지만 그는 체질화된 고독을 버리지 못한다.그러던 중 곱추 보피와 친구가 되고,그는 마침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이 소설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자연·신·인간의 관계,나아가 그 조화와 합일을주제로 삼는다.‘크눌프’는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배반당한 한 방랑자의 자유로운 영혼을 다룬다.헤세가 ‘크눌프’를 통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 불확실성과 자아상실이 극점에 이른 이 시대,인간에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한층 감동적인 울림을 주는 헤세.그의 문학에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로우면서도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개체의 창조’가 아닐까.이번에 소개되는 헤세 선집을 통해 독자들은 헤세의 이같은 도저한 문학정신이 얼마나 굵은 물줄기로 흐르고 있는가를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한편 민음사는 2차분으로 ‘황야의 이리’‘나르치스와 골드문트’‘싯다르타’를 10월 중순경 내놓는데 이어 ‘유리알 유희’‘시집’‘동방순례’‘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동화’를 내년초까지 펴내 헤세 선집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 가로지르기/이정우 지음(화제의 책)

    ◎우리사회의 문화적 모순 꼬집어 담론의 파편화와 그에 따른 의사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유방식을 제시한 연구서.지은이는 90년대 들어 문화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 풍요로움은 오히려 각 영역간 소통의 단절과 냉소적 상대주의를 초래했으며 대중의 감성적 언어는 소비문화와 결합해 즉물적이고 유치한 언어로 전락,문화적 천박성을 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또 인간과 인간이 평등한 존재로 관계맺지 못하는 전통사회의 모순,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근대사회의 모순에 이어 현대에는 정보의 왜곡과 언어 인플레이션,인스턴트문화의 난무 등 문화적 모순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아래 문화적 모순의 장을 가로지르면서 담론적 실천을 수행하는 반담론으로서의 철학을 주창한다.‘가로지르기(transversality)’란 기존의 사유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미 나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들을 횡단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행위계열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지은이는 “우리 지식사회는 현실과 유리된 채 자신의 신념체계만을 고집하는 훈고학적 전통주의자와 전통적 사유의 소양없이 대중에 영합해 지식인 노릇을 하는 글쟁이와 지식 장사꾼들로 가득차 있다”고 꼬집는다.민음사 1만원.
  • 대학사/이광주 지음(화제의 책)

    ◎대학의 역사 이념과 제도측면서 조명 대학의 역사를 이념과 제도,구조의 측면에서 고찰한 연구서.대학 성립 이전의 고대 그리스·로마의 교육이 순수한 인문주의적 교양에 기반한 ‘파이데이아(paideia)’의 구현에 있었다면 중세에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이루기 전까지 오랜 교육의 공백기를 겪어야 했다.그러나 장차 대학교육의 밑거름이 될 3학(문법 수사학 논리학) 4과(기하 산술 천문학 음악)의 7자유학예를 정립시킨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카를 대제의 죽음으로 또다시 지적 정체에 빠지고 만다.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지성사에 한 획을 긋는 대학을 성립하게 한 돌파구는 바로 도시의 번영과 이에 따른 시민계층의 강한 자의식이었다. 유럽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대학(1158년)을 비롯해 파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살레르노 몽펠리 등 중세 대학의 성립은 대학의 자치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학문하는 이들을 위한 신체적·정치적·법적·경제적인 제특권과 속권이 충돌할 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강의정지’와 ‘이주’의 권한은 대학의 자치권 보호를 위한 중세대학의 한 특징이었다.지은이는 베를린대학을 학문의 자유를 모토로 근대 대학의 전형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교로 꼽는다. 민음사 2만원.
  • 김동리 2주기/평론·에세이집 나란히 출간

    ◎문학과 인간­문학사 전환의 징후 예리한 포착/나를 찾아서­담백한 문체에 유년시절 등 담아 한국문학사의 큰 봉우리인 소설가 김동리의 2주기를 기려 그의 평론집 「문학과 인간」,자전적 에세이집 「나를 찾아서」가 민음사에서 나왔다.이 책들은 「무녀도」에서 「을화」에 이르기까지 장·단편소설을 모은 1차분 6권에 이어 「김동리 전집」 2차분으로 출간된 것.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김윤식 서울대 교수,소설가 이문구씨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김동리 문학은 우리 근대 소설사에서 시금석의 의미를 지닌다.일제 강점기의 순수문학을 거쳐 해방이후 이른바 「구경적 생의 형식」 또는 「문협정통파」로 이어지는 우리 소설의 가장 유력한 흐름을 대표하는 존재가 바로 김동리이기 때문이다.그는 지난 9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5년에 걸친 투병끝에 95년 83세로 작고했다. 김동리는 우리 문단내의 대표적인 논쟁인 「신세대 논쟁」「순수문학 논쟁」「본격문학 논쟁」 등에서 날카롭고 치밀한 논리로 상대를 제압했던 논객이었다.「문학과 인간」은김동리의 유일한 평론집으로 문학사의 고비마다 시대적 전환의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적 비평」의 진면목을 엿볼수 있다.김동리는 이 책 후기에서 『나는 지금까지 「인간」을 떠나 문학을 생각하고,인간을 떠나 문학을 논의한 적이 없다.나에게 있어서는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일체의 문학이란 다만 인간을 인식하고 인간을 정화하고 인간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신의 문학관을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작가의 개성적인 감각과 취향을 드러내는 「나를 찾아서」는 김동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전,그동안 발표했던 470여편의 에세이중 자전적 성격이 강한 70여편을 손수 고른 책.「김동리 자서전」이라고도 할만한 이 책에서 김동리는 유년시절 이야기에서부터 집안이야기,미당 서정주와의 만남·등단시절 이야기 등 문단이면사,만해 선생과 「등신불」,화개장터와 「등신불」 등 창작의 은밀한 기원과 관련된 단서 등을 털어놓고 있다.
  • 밀란 쿤데라의 문학/크베토슬라프 흐바틱(화제의 책)

    ◎「구조주의」 시각서 본 작품속 인물들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문학세계를 폭넓게 살핀 연구서.독일의 슬라브 문학자인 지은이는 쿤데라가 창조한 인물들과 그 사회·문학적 전제들을 구조주의자의 시각에서 치밀하게 분석한다. 「농담」「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불멸」 등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와 우연에 내맡겨진 주인공들,곧 루드빅 마르케타 야로밀 토마스 테레사 등을 다시 불러내 그들만의 내밀한 독백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특징. 쿤데라의 소설들을 중심 모티프로 각 장이 이뤄져 있는 이 책은 다른 유럽 소설들과의 연관을 통해 쿤데라의 문학관과 세계관을 읽게 한다.유럽 소설사에서 사랑은 시대와 풍속의 변화를 비춰주는 거울 구실을 해왔다.상상속의 여인 둘치네아를 향한 돈키호테의 사랑은 기사계급이 품고 있던 이상적인 사랑의 반영이며,플로베르 소설의 주인공 마담 보봐리가 맛본 환멸은 낭만적인 사랑의 이상이 어떻게 천박스럽게 변해버렸는가를 보여준다.쿤데라는 바로 이 두 세계의 경계에 살고 있는 두 쌍의 연인들­토마스와 테레사,사비나와 프란츠­을 통해 인간실존의 위협을 성찰한다.민음사,박진곤 옮김,1만원.
  • 향가 설화문학/홍기삼 지음(화제의 책)

    ◎전설적 성격으로 본 「삼국유사」속 향가설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설화에 대한 본격 연구서.지은이는 특히 향가 설화가 지니고 있는 전설적 성격에 주목,그 특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춘다.향가 설화를 전설로 파악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삼국유사」가 정사가 아니라 잡사·잡기·만록 등에 적합한 「유사」라는 데서 찾을수 있다.이 책에서는 향가 관련 설화를 지배하는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문법적으로 꼼꼼히 살핀다.전설의 사실적 부분과 허구적 부분은 문장에서의 주술관계처럼 서로 긴밀하게 조응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여기서 전설은 허구적 설화이지만 「믿지 못할 허구」로서의 민담과는 달리 「믿을 만한 허구」의 성격을 지닌다. 「삼국유사」는 전통적 무속신앙에서 유·불·선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어우러진 「외불내무」 혹은 「사교융합」의 통합적 세계관을 반영한다.이러한 흐름은 향가 설화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한 예로 「안민가」는 불교계 향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은 유교적 가르침이 반영된 교훈가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효소대왕 죽지랑」「수로부인」「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월명사 도솔가」 등 모두 12편의 향가 설화가 실렸다.민음사, 2만5천원.
  • 「일제 토지조사」평가 양론/「식민지 수탈론」부정하는 연구서 출간

    ◎일부학자 “근대적 토지소유 확립 계기” 주장/수탈론측선 “식민사관의 또다른 변형” 일축 「1912∼1918년 일제가 벌인 토지조사사업은 전국적인 토지약탈이었다.일제에게 불법탈취당한 토지가 전국 농토의 40%에 이른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고교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일제하 토지조사사업의 성격에 대한 규정이다. 이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학계의 주류 이론이기도 하며 해방이후 식민사관의 극복이 학계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각고의 노력끝에 정립한 것이다.「식민지 수탈론」으로도 통용되며 서울대 신용하 교수를 대표적 학자로 들 수 있다. 「이미 조선말에 근대적 소유관계가 형성되어 자생적인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걷고 있었다.일제가 강침하면서 자생적 발전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주류이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틀로 「내재적 발전론」으로도 불리는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경제사분야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과도 연관되어 있다. 최근 김홍식(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이영훈(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조석곤(상지대 경제학과 전임강사)·박석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김재호(성균관대 경제학 강사)·미야지마 히로시(궁도박사·동경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등은 공동연구인 「조선 토지조사사업의 연구」(대우학술총서·민음사 간)을 펴내 이같은 주류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서 학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주류학계에서는 이들이 대표적인 식민사관의 아류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맥에 서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구한말 마지막 시기 토지소유관계인 광무양전(1898∼1904)과 일제하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6년여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다.애초부터 주류이론을 깨기위한 공동연구였고 주류이론과는 정반대되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광무양전을 분석한 결과 시주는 임시적 지주로서 국전제의 이념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근대적 토지소유형태라 할 수 없기에 내재적 발전론은 타당성이 부족하다.오히려 일제하에서의 토지조사사업이 근대적 토지소유를 확립한 최초의 계기이며 토지조사사업에서 강제적인 토지수탈이행해졌다는 것은 근거없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주류학계에 대해 곧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하자고 공식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주류학계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수선한 시대에 나온 식민사관의 또 다른 변형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무시해왔다. 하지만 최근 진보적 논지로 학계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고있는 계간지 「창작과비평」 여름호가 조석곤 교수의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넘어서」라는 논문을 게재,주류측은 논쟁을 피할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있다. 조교수는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고 수탈론의 문제의식이 정당함을 인정하지만 사료해석이 독단적』이라면서 『토지조사사업으로 자본주의적 착취관계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해방이후 공업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새로운 역사인식의 틀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주류측도 어떠한 식으로든 대응을 위한 연구를 시작해야할 상황에 놓이고 있다.하지만 젊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없어 최근 2∼3년동안 별다른 연구성과가 없다는 것이 주류측의 고민이다.
  • 청소년의 달 5월/초중고 대학생을 위한 읽을만한 책 69종

    ◎간행물윤리위·서울YMCA 선정/초중고생­백범일지·삼국유사·미래과학총서 등/대학생·일반­선택·위험사회·벤처기업… 할수있다 청소년의 달 5월을 앞두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와 서울YWCA가 청소년·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좋은 책을 선정,최근 발표했다.간행물윤리위 선정도서는 35종으로 독자층을 초·중·고·대학 등으로 구분했으며,서울YWCA가 추천한 책 일반도서 24종,만화 10종은 모두 어린이용이다(괄호안은 출판사 이름). ▷간행물윤리위 추천◁ ◇초등학생 ▲가위 바위 보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 ▲나니아 나라 이야기(전7권) ▲백범일지(예림당) ▲부엉이와 보름달 ◇초·중·고생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중·고생 ▲미래과학총서(전12권) ▲중고생을 위한 한형조선생의 고사성어 강의 ◇중·고·대생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 ▲청소년을 위한 택리지(서해문집) ▲삼국유사(솔출판사) ▲이야기 그리스철학사(전2권) ▲서양보다 앞선 동양문화 91가지 ◇고·대학생 ▲람세스(3권) ▲파우스트(민음사)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명문명답으로 읽는 조선 과거실록 ▲서양문명의 역사(4권)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2권) ▲19세기 일본의 근대화 ▲31가지 테마가 있는 경제여행 ▲부자나라,가난한 국민 일본 ▲조선미의 탐구자들 ▲20인의 한국 현대 미술가(3권) ▲우리 영화의 미학 ▲한국의 자연과 인간 ▲숲속의 문화 문화 속의 숲 ▲다시 찾은 빠리 수첩 ◇대학생 ▲선택 ▲이아고와 카산드라 ▲벤처기업,나도 할 수 있다 ▲위험사회 ▲직업윤리와 한국인의 가치관 ▲윤리질서의 융합 ▷YECA 추천◁ ◇일반도서 ▲쉿,실험중이에요 ▲죠토,벽화 속에서 살아 있는 화가 ▲그곳에 다녀오면 공부할 맛이 난다 ▲어린이를 살리는 글쓰기 ▲동화로 엮어가는 쉬운 글쓰기 ▲최열아저씨의 우리환경 이야기 ▲지구별은 환경실험실 ▲개구장이 산복이▲365일 동화(전8권) ▲녹색꼬리 도마뱀 ▲작은 책방 ▲휠체어를 타는 친구 ▲표범무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빛을 가진 아이들 ▲말하는 남생이 ▲모래밭 학교 빵호돌 ▲성난 수염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검둥이를찾아서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 ▲못난이 악마 야코 ▲기역이와 니은이의 일기 ▲다섯 아빠 이야기 ▲은빛날개를 단 자전거 ◇만화 ▲내동생 꺼실이랑 우리오빠 꺼벙이 ▲달래하고 나하고 ▲돌아온 머털도사 ▲뛰어야 벼룩이지 ▲말썽학년 골치반 맹딴죽 ▲엄마는 요술쟁이 2부 ▲오추매의 사춘기 일기 ▲요정 핑크 ▲우리식구 일곱 ▲아버지 떡 드이소
  • 시인 고은,새 시집 「어느 기념비」 펴내

    ◎시 69편에 어린 한시대의 그늘… 회의… 전방위 문필가,마르지 않는 글샘을 자처해온 고은씨가 1백여권이 넘는 자신의 저서목록에 새 시집 「어느 기념비」(민음사)를 보탰다. 새롭게 모아본 시 69편에도 시인특유의 기세는 거침없이 흐른다.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산맥처럼 호방하게,저자거리의 소소한 인연을 비정할만큼 뿌리치면서 시인은 파천황의 새 세계를 열어제끼려 뚜벅뚜벅 걸어왔다.하지만 지난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우뚝한 기호로 누구보다 확신에 찼던 목소리는 좀 달라졌다.뜨거웠던 열망이 한풀 가라앉은 이 시대에 우렁우렁하던 목청엔 한가닥 그늘이 드리웠고 신천지를 향한 모색엔 회의가 따른다. 〈간밤 꿈에/나는 아라비아 바다의 한 제독으로부터/새빨간 보자기로 싼 지도를 받았다/남예맨 어디에서였다//이 지도를 펼쳐 보아라/그 다음에 네가 할 일은/당장 이 지도의 세계로 떠나라//라는 말을 남기고/그 제독은 등짝에 맞은 독화살의 독이 퍼져 죽었다//떠나라/떠나라//이 지도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지구의 고지도나/근대 지도가 아니었다/나는 죽은 제독의 눈을 감겨주고 당장 떠나야 했다//율리시스 20년뒤/내가 도달한 세계야말로/20년전/내가 살던 그곳이었다/그곳 동해 낙산사/그렇다면 나는 결국 가엾은 저 조신이었단 말인가〉(「새로운 지도」중). 자꾸 눈이 흐려져 초발심의 평정한 세계로 이끌리는 시인을 붙드는 것은 국토와 조국에 대한 맹목적 열정이다.늙은 숫사자처럼 시뻘건 햇덩이마저 심드렁할때도 「쓰레기 꽃처럼 피어」있고 「증오가 덕지덕지 똥처럼 말라붙은」(「귀향」중) 구차한 속세에 대한 그리움으로 「새로운 시절의 북소리」(「참여시」중)에 귀 기울인다.
  • 「용병이반」 등 시나리오 써온 김대우씨

    ◎창작이 불가능해진 요즘 실상 그려/소설가 데뷔작 장편 「비만의 도서관」내 『문명이 잔뜩 포화돼 독창성이나 창작따위가 아예 불가능해진 요즘의 진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랑하고 싶은 여자,결혼하고 싶은 여자」「용병 이반」 등의 시나리오 작가 김대우씨(35)가 소설가 데뷔작인 장편 「비만의 도서관」을 민음사에서 내놨다.영상세대 작가 가운데 감각파도 많지만 원고지 1천500매 분량을 숨도 돌리지 않고 돌파하는 경쾌한 감각만은 김씨가 어느 누구보다 한수 위인 것 같다.인기드라마 대사같이 미끈미끈한 김씨의 문장들은 얽히고 설킨 에피소드들을 매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쏜살같이 달려간다. 주인공인 시나리오 작가 부준화는 어느날 동업하던 아내가 말한마디없이 가출하고 나자 일은 뒷전인채 영화판에서,카페에서 이런저런 여자들과의 숱한 정사에 휩싸인다.준화가 세들어사는 주인집 딸 연희는 공모전에서 스페인 어느 현대작가를 베꼈다 해서 대상이 취소된 화가.표절화가 딱지를 떼려는 그녀는 준화를 발가벗겨 전기고문,가장 고통스런표정을 그려내 또 대상을 타지만 이번엔 한 카페 바텐더가 우연히 찍어둔 준화의 사진과 똑같다고 표절판정을 받는다.그 사진은 놀랍게도 가장 유쾌할때 준화의 표정을 포착한 것이었다. 『소설에서 아내가 집을 나간후 만나는 모든 여성들은 모두 아내를 일부분씩 담은 분신들이었어요.다음 작품에선 실체라고 믿는 세상 모든게 장자의 나비꿈같은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보려 해요』
  • 어음선수식 유통…전국 서점 ‘일파만파’/고려원 부도 출판계 파장

    ◎거래한 서점 자금난 가중… 중소출판소도 타격/“과다 광고비·무리한 영엽전략… 예고된 화” 시각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고려원이 지난 22일 최종 부도처리됨에 따라 출판계 전반에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고려원은 연간 단행본 출판규모가 270여종에 매출액이 200억원대로 국내 단행본시장을 좌지우지해온 중견출판사.그 다음 규모로 꼽히는 김영사나 민음사의 경우 매출액이 연간 60여억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가히 「출판계의 거대공룡」이라 할만하다.고려원은 그러나 지난 수년간 외국어 어학교재에 거액을 투자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공세적인 영업전략에 따른 과중한 광고비 부담이 경영난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고려원측은 이번 주중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한편 제3자 인수도 신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고려원의 부도는 국내 출판계에서 차지하는 고려원의 위상으로 볼때 출판계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우선 타격을 받을 곳은 전국 각지의 대형서점을 비롯한 서점업계와 군소출판사들이다. 고려원은 출판사가 서점에 단행본을 출고하고 서점에서 팔린 물량만큼 월말에 대금을 거둬들이는 위탁판매방식 대신,도매업체와 서점에 내보내는 단행본 물량에 해당하는 금액을 먼저 어음으로 받는 어음선수방식으로 단행본을 유통시켜 왔기 때문에 업계의 타격은 한층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관행을 보면 출판사에 부도가 나면 출판사가 서점으로부터 받을 돈이 생기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이번 고려원의 부도는 거꾸로 출판사가 서점에 줄 돈만 남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이런 상황을 고려할때 고려원의 부도로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될 대형서점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 대금지급을 미루거나 기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군소출판사들의 연쇄부도사태까지 우려한다. 고려원 부도의 예에서 보듯 출판사 경영의 가장 큰 압박요인중 하나는 광고비 지출이다.이와 관련,출판관계자들은 단행본의 경우 광고비 지출은 매출액 대비 10%∼15%에 이르며,전체 광고물량 가운데 출판관련 광고는 세번째로 많은 실정이라고 밝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대표는 『「미투」「친구」「삶과 함께」 등 90년이후 매출액의 상당부분을 지출하면서 베스트셀러를 낸 「단판승부」 출판사들이 잇따라 도산했다』며 『착실한 「정도출판」만이 만성불황에 따른 판매부진과 광고과잉에 의한 「거품출판」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신규등록이 자유화된 87년 이후 신생 출판사가 급증,현재 출판사 수는 1만 2천여개에 이른다.그러나 이 가운데 대다수는 일년에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하는 「유령출판사」들이다.이것은 바로 국내 출판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우리 출판계의 현주소다.고려원의 부도사태는 지금이야말로 「빅뱅(대폭발)식」 출판개혁이 절실한 시점임을 웅변해준다.
  • 김성곤 서울대 교수,두번째 영화산문집 내

    ◎대부분의 영화는 ‘문학의 자손’/“데미 무어 주연 「주홍글씨」의 메시지는 애정의 해피엔딩 아닌 미의 탈청교주의” 영문학자 김성곤씨가 두번째 영화산문집 「문학과 영화」를 민음사에서 내놨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김씨의 책은 여러가지로 이채롭다.영화마니아들이 앞다퉈 평을 거드는 고급예술영화에 연연하지 않고 김씨의 관심은 아파트촌에서 비디오 대여순위 몇위권에 드는 미국 대중영화쪽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한국의 학자들중에 김씨만큼 「헐리우드 영화」 많이 봤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이도 없을 것이다. 문학을 각색한 영화만 다루면서 영화에 대한 코멘터리에다 원작과의 비교고찰까지 덧붙인 점도 재미있다.문학이 현대 영상문화의 가장 풍부한 수원이라는 점은 거듭 확인돼 왔지만 잘 알려진 거의 모든 영화들이 문학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아내는 시각도 독특하다.영상언어속의 뭔가 미묘한 것을 독해하거나 예술적 의미를 캐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평들 와중에서 그는 자신만의 상식적 잣대로 일사천리 영화를 읽어내려 간다.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전공한 문학자답게 그 잣대란 현대 미국사회의 징후,현대 서구문명을 통해 삶을 바라보기이다. 미국의 유령코미디 영화 「아담스 페밀리」는 미국 및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기괴한 인물들을 오히려 귀엽게 그려내 나와 다른 이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몰아세우는 차별의식을 비판한 포스트모던 영화라는 것.데미 무어 주연의 「주홍글씨」에 대해서는 롤랑 조페 감독이 미국문학에 무지해 원작을 훼손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꼬집는다.작품의 메시지는 유럽적 청교주의를 극복한 미국의 「홀로서기」이지 감상적 애정의 해피엔딩일수 없다는 것.「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오발탄」「무진기행」「바보들의 행진」 등 현대문학을 각색한 한국영화평도 실었다.
  • 소설가 윤흥길(이세기의 인물탐구:122)

    ◎불행한 시대를 증언하는 서민의 양심/날카로운 현실비판·화해의 정서 공유/능란한 사투리 구사로 해학의 멋 더해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다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면서」 소설 「장마」의 무대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서서히 스며든다.「악의에 찬 빗줄기」는 「손가락으로 그저 꾹 찌르기만」해도 「선명한 물기가 배어」나오고 후렴처럼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처연한 슬픔이 치렁치렁 이어진다.윤흥길 소설은 토속적인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면서도 문장마다 판소리의 사설조가 절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단순히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질퍽한 당대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치밀하게 직조되어 평론가 천이두는 이를 「문학의 백미」로 평하고 있다. ○등장인물 심리묘사 치밀 76년 그의 첫번째 창작집 「황혼의 집」이 나왔을때 그 속에 실린 「장마」를 읽으면서 소설가 이문구는 「언젠가 반드시 나오리라고 기대한 제대로 쓴 소설」에 감동하여 「혼자 웃다 울다 하느라고 담배 한갑을 다 태우고는」 자신도 모르게 「왔구나!」하는 탄성을 질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빗소리처럼 구슬프게 가슴에 파고드는 이 한편의 소설은 발표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명문의 명문」「명편중의 명편」으로 꼽힌다. 평론가 김치수는 「도중에서 그만둘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방금 읽은 소설의 여운이 한동안 가시지 않는 것이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윤흥길만의 매력이자 독창성」이라고 했다. 윤흥길이라고 하면 우선 「장마」와 「황혼의 집」「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장편 「에미」「완장」「밟아도 아리랑」 등 문체가 일렁이는 눈부신 주옥편을 얼마든지 들 수 있다.그리고 어느 소설을 읽던 「음험한 세력의 위협 아래 놓인 소시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비극으로 치닫는 중에도 「인간적인 면」과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다.사회저변에 산재된 모순과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소설인 이상 그는 「글만의 묘미」를 완벽하게 살리는 미점을 지킨다. ○「반신마비」로 집필 주춤 79년 일본의 젊은 세대의 문학적 기수이던 나카가미 겐지(중상건차)와의 교분이 계기가 되어 「장마」가 「나가자메(장우)」라는 타이틀로 일본문단에 소개됐을때 요미우리·아사히신문 등은 「지적소설」로 이를 일제히 호평하고 특히 평론가 아키야마 도시(추산준)은 「인간을 응시하는 철저한 작가정신」과 「곳곳에 번뜩이는 세태풍자와 야유의 직재성」을 특필한 바 있다.두번째 창작집인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그해 연말과 연시 2개월동안 3판매진,이후 일본어로 동시출간된 장편 「에미」와 「완장」이 현대문학상·한국창작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던 83년 무렵에는 문단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되어 「윤흥길 전성시대」를 맞기도 했다.그러나 베를린에서 열린 제3세계 문학축제 참가후 예상치못한 「반신마비」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는 왕성하던 집필을 잠시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윤흥길은전북 정주에서 식산은행에 다니던 윤상오씨의 2남4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풍요로운 환경에서 「도련님」으로 불리던 어린시절이 있었고 「사세에 따라 적당히 굴신하면서 영달을 도모하는 직장생활에 적응치 못한」 부친의 무능탓에 「가난이 점철된 어두운 사춘기」를 보냈다.전주사범 졸업후 익산군 소재 국민학교 교사시절에 「소설을 통해서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뒤늦게 문학에 입문했다. ○한때 초등교 교사지내 그와 절친한 이문구에 의하면 「아무날 아무데서 보더라도 본디 생긴대로 그냥 남아 있는 별종이 곧 윤흥길」이며 「서너마디는 건네야 한마디 넘어올지말지한 더디고 무딘 입」「아무리 말쑥한 옷을 걸쳐도 반찬 없이 밥먹고 나온 사람처럼 멋적은 표정」이 그의 겉모습이다.그러나 어눌하되 호불호가 선명하고 경거부박을 경계하여 자신이 하기 싫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에 타협이 없다. 최근의 새 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역시 찬란한 어휘구사와 풍자의 범람으로 한번 소설을 손에 들면 끝까지 놓지 못한다.또 이미사어가 돼버린 「자닝하게」「툽상스럽게」「옴나위없이」「왜장치는 소리」며 「방짜」와 「행짜」,「우두망찰」「족탈불급」 등 우리의 고유어를 소설문맥속에 되살려 익살과 해학의 맛을 톡톡히 실감시킨다. 그의 절제력은 주목할 만한 사상적 메시지를 전개하는 자리에서도 「관념을 극구 피하고 구체적인 스토리와 주변묘사」로 작가의 의도를 투영한다.「인간심리의 섬세한 기미를 포착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그의 뛰어난 능력」일 것이다.가족은 오늘날까지 끝없는 기도로 감쌀 뿐만 아니라 진솔한 호남사투리의 출처인 어머니 조옥성 여사(74)를 모시고 있고 부인 유경순씨와의 사이엔 남매,과기대를 졸업한 아들 아람은 현재 예일대 재학중이고 딸 예니는 이대에 다니고 있다. 그의 최근의 소설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며 작가적 문제의식을 강렬히 환기시키기 위해 「사실주의 작가가 드러내게 마련인 안이한 평판성」 대신 「사실주의적 세계를 비사실주의적 시각으로 전화」하려는 의지가강하다.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 윤흥길은 이제 「한국문학사라는 넓은 체계속에 편입되어」 작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이룩한 위치다.그래서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불행한 시대를 증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며 「밝음 저쪽에 가려진 어둠 가운데서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이 작가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역할」임을 실천하는 시기다. 「아무날 아무데서 보더라도 본디 생긴 그대로」「더디고 무딘 입」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정통적인 소설관과 그 기법을 견고히 지키고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만의 명철한 창락의 글을 쓰고 있다. 현실에 도사린 환부를 날카롭게 도려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중에도 「따스한 해조」와 「화해」의 정서를 함축하는 그의 소설은 독자의 언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주면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시대 우리만의 작가」로 언제라도 풋풋하게 이곳에 서 있다. □연보 ▲1942년 전북 정주출생 ▲61년 전주사범학교 졸업 ▲6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소설 「회색면류관의 계절」 당선 ▲73년 원광대 국문과 졸업 ▲76년 첫창작집 「황혼의 집」(문학과 지성사) 출간 ▲78년 첫장편 「묵시의 바다」(문학과 지성사) 출간 ▲79년 중편 「장우(장마)」(동경신문출판국),「황혼의 집」일어판 출간 ▲81년 나카가미 겐지(중상건차)와의 문학대담집 「동양에 위치하다」 출간 ▲82년 장편「에미」(한국방송사업단),일어판 「모」(일본 신조사) 출간 ▲84년 베를린 제3세계문학축제 참가 ▲89년 전작장편소설 「낫」(일본 각천서점) 출간 ▲95∼현재 한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표작품집〉 창작집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77년 문학과 지성사)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79년 창작과 비평사),장편 「순은의 넋」(80년 도서출판 은애),중단편집 「장마」(민음사),창작집 「완장」(83년 현대문학사),문학수상록 「문학동네 그 옆동네」(83년 전예원), 장편 「백치의 달」(85년 삼성출판사),중편집 「꿈꾸는 자의 라성」(문학과 지성사),장편 「묵시의 바다」(87년 문학사상사) 「밟아도 아리랑」1·2권(91년 문학과 지성사) 「산에는 눈 들에는 비」(93년 세계사),에세이집 「텁석부리 하나님」(95년 문학동네」,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1·2권(97년 현대문학사)등 다수 〈수상〉 한국문학작가상(77년) 한국창작문학상·현대문학상(83) 요산문학상(95년)
  • 작가 성석제씨 「재미나는 인생」 펴내

    ◎익살… 과장… 유머… 엽편소설의 묘미/적대국 깃대 경쟁­거짓말협 회장 연설문 등/예리한 관찰력+날카로운 풍자… 재미더해 작가 성석제씨(37)는 올 한해의 문을 가장 분주하게 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엽편소설집 「재미나는 인생」을 강출판사에서 갓 출간한 그는 내주 민음사에서 시집 「검은 암소의 천국」을,내달 같은 출판사에서 신작 작품집을 잇달아 펴낸다.불과 한달여 사이에 자기가 쓸 수 있는 글쓰기의 모든 형태를 책 한권씩에다 담아내는 것이다. 수많은 소설들이 쏟아지지만 매끄럽고 덜하고의 차이일뿐 그게 그거같은 노회한 요즘 문단에서 성씨의 독특한 개성에 쏠리는 시선은 날로 커왔다.다채롭고도 익살맞은 엽편소설의 묘미를 선보인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마사오라는 주먹계의 인물을 통해 사나이들의 신화세계를 보여준 장편 「왕을 찾아서」,웅혼하고도 서정적인 글맛이 색달랐던 작품집 「새가 되었네」 등 책 한권을 보탤 때마다 성씨 소설왕국의 영토는 표나게 넓어졌다. 성씨의 상상세계는 문단의 어떤 전통에도 기대지 않기에 그만큼 자유롭고 독특하다.재기발랄함과 정감이 묘하게 결합된 문체로 그는 남들이 흘려보는 일상의 구질구질한 구석으로 파고들어 이를 신화 근처에까지 끌어올린다.추악한 삶도 하나의 신화라고 폭로하는 그의 목소리는 익살과 과장과 검은 유머로 가득차있다.눈꼴시린 현실을 무거워하거나 절망하기는 커녕 바람처럼 희롱하면서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것이 성씨 작품의 매력이다. 단편보다 짧은 엽편소설의 다채로운 묘미를 흠뻑 보여주는 「재미나는 인생」은 이런 익살로 가득하다.아이들 책상다툼하듯 국경선을 경계로 완전히 적대한 두나라의 어처구니없는 깃대높이기 경쟁(「휴가」)이나 더 좋은 음질을 찾아 축음기 교체를 거듭하다 나중에는 축음기가 음악자체를 삼켜버리는 오디오마니아 이야기(「경지」) 등은 허세어린 사회와 인간들을 꼬집는다.전세계거짓말장이협회 서기장이 신입회원들에 보내는 연설문 형식인 「재미나는 인생1­거짓말에 대하여」의 한문장 〈자연도 우리의 친구인 거짓말쟁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평평한 것처럼 표현하지 않는가.지구가 태양을 돈다면서 언제나 태양이 우리를 도는 것처럼 보여주지 않는가〉는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이 특유의 유머감각과 결합된 예다. 이처럼 더 날카워진 현실풍자는 그의 시집에도 일관된다.떼밀려 버스타듯 구질구질하게 반복되는 현실을 그린 「반복」,〈자나깨나 도리도리하는〉반항시민을 내세워 순치된 의식을 때리는 「무정부주의자」,〈무슨 무슨 평화상을 돌아가며 갈라 먹던〉「권력자」 등이 그 풍자무대에 오른다. 〈이 커다란 시계를 지키는 노련한 톱니바퀴들/낡은 축복 때문에 해도 쉽게 넘어가잖네〉(「오래된 동네」중).일상의 톱니가 되어 오래된 습관으로 시계를 돌리는 사람들을 향해 그의 시는 장난치듯 야유를 던지고 있다.
  • 사이버세대의 세계인식은?/작가 송경아씨의 장편 「아기찾기」

    ◎무너진 부모·자녀관계의 「보물찾기」 작가 송경아씨(26)의 장편 「아기찾기」가 내주 민음사에서 나온다. 그간 작품집 두권을 통해 사이버세대라는 말에 손색없는 첨단 소설세계를 보여주어 왔지만 「독자와의 본격 승부」인 호흡긴 장편소설은 처음 내놓는다.그런 만큼 작가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새로운 비전을 이 한권에 쏟으려 사력을 다했을게 분명하다. 「아기…」는 신세대가 바라본 새로운 문명사라 할만하다.원고지 1천2백매의 스케일에 만만찮은 철학적 사유,참신한 역사감각,사회제도에 대한 기발한 풍자 등이 녹아있다.무엇보다 「아기…」에는 기성세대의 시선을 완전히 가로질러 그 너머를 가리키는 사이버세대의 세계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소설 무대인 부영시의 설정부터 이채롭다.이 가상공간에는 기존의 혈연 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되고 없다.아빠 또는 엄마는 보살핌을 줄 「아들」과 「딸」을 자유롭게 선택,육체관계를 맺는다.그 「아들」과 「딸」들이 서로 연인이 돼 복잡한 사각관계가 펼쳐지기도 한다.그중 한「딸」인 진희가 이 사회의 〈관습보다도 오래고,전설만큼이나 희미한〉 금기인 「아기찾기」에 나서면서 소설은 시공을 넘나드는 환상모험으로 빠져든다. 『아기는 일상적인 가치밖에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어떤 것이예요.무언가를 찾고 못찾고의 문제보다 그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의 굴곡과 깨달음 등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 박상연·이석범/여성편향 문단에 두 신인 남성작가

    ◎내용은 「육중」… 이야기 전개는 「아기자기」/박상연 「D.M.Z」­「절반의 한국인」이 겪는 분단현실/이석범 「윈터스쿨」­입시학원 선생의 교육풍토 고발 내면으로 침잠하는 여성적 글쓰기가 만연해온 문단에 모처럼 신인 남성작가들이 사회문제를 다룬 선굵은 장편 두편을 선보였다.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전재돼 곧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올 박상연씨의 「D.M.Z」와 제3회 상상문학상 수상작인 이석범씨의 「윈터스쿨」(상·하,살림간)이 그것. 나란히 분단문제와 교육현실 등 소재부터 요즘 등단하는 신인들이 기피하다시피 해온 묵중한 것을 택한 두 작품은 이를 요리하는 솜씨 또한 남달리 날렵하다.무거운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 개성있고 흥미로운 상황설정과 사실성으로 이야기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함께 돋우고 있는 것이다. 「D.M.Z」는 중립국 감독위 장교자격으로 한국에 파견나온 독특한 주인공을 설정한 소설.국적상 스위스인이지만 아버지한테 받은 한국피가 흐르고 있어 분단현실에 무관할수 만은 없는 그는 정작 절반 조국의모든 것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분단전쟁 당시 남로당 당원으로 싸우다 브라질로 망명한 아버지가 어린 그를 폭행해가면서까지 한국말쓰기를 강요한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비무장지대 북측 구역에서 북한군을 사살하고 돌아온 김수혁이라는 판문점 경비대 소속 상병의 수사책임을 맡게 된다.사건을 두고 남과 북은 각각 납치공작이라느니 정보원 남파 기도라며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펴지만 진상은 전혀 다른데 있었다.우연히 북측 병사와 친구가 된 김수혁이 김일성 사망 이후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에 짓눌려 그만 조건반사적으로 그 북한군에게 총을 쏴버린 것.이와 함께 주인공의 아버지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광적인 살육 현장에서 정신없이 동생을 찔러죽였던 사실도 밝혀진다.소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동족을 학살하도록 조건지어진 비인간적 분단의 심리학을 반쪽 한국인의 각성과정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한편 「윈터스쿨」은 강남의 한 입시학원에 취직한 지방출신 정민수 선생의 눈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한국교육을 고발한다.시인이면서 시라곤 2년동안 「수녀의 거기」 한편만을 쓸 만큼 순되고 어수룩한 정선생은 갖은 권모술수로 패권을 노리는 학원교사떼들,선생을 정답기계 쯤으로 대접하는 머리굵은 재수생들,입시사관학교에 밀어넣고 과외시키는 몇백만원 쯤은 푼돈으로 아는 학부형 등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서울대병으로 앓고 있는 교육현실을 지탄하며 입시와 관련된 행사장마다 폭탄테러를 일으키는 「하니바머」라는 정체모를 인물도 가세,추리소설의 흥미진진함도 맛보게 한다.
  • 영미문학비평 「한국식」 재조명/연대 이상섭 교수 「영미비평사」

    ◎16C∼현재 대표적 논저 해부… 30년 연구 집대성/당대 비평가·문인들의 육성 되살리는데 초점 영문학자 이상섭 교수(59·연세대)가 30여년에 걸친 영미문학비평사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영미비평사」(민음사)를 펴냈다.「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비평」「낭만주의에서 심미주의까지」「뉴 크리티시즘:복합성의 시학」 등 모두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식」 영미문학 비평사를 목표로 하고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인츠베리·애킨스·웰렉·윔서트·브룩스 등 서구의 비평사 권위자들이 옛 문인들의 글의 흔적을 없애버리고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자신들의 말로 비평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반면 이교수는 당대 비평가나 문인의 생생한 「육성」을 되살려 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비평은 특정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동시대 사람들끼리 벌이는 토론』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때문에 이 책에서는 뛰어난 소수 비평가의 역사적 의의나 사상을 요약하는 대신 시의 효용과 보편적 본성,창작기술 등 주요 토픽을 중심으로 당시의 「토론」에 기여한 모든 문학가들을 논의대상으로 삼는다. 첫째권 「르네상스와…」는 2부로 나눠 1부「르네상스 비평」에서는 영국의 문학비평사가 시작되는 1530년대부터 르네상스 전성기(1550∼1600년)를 거쳐 비평적 토론이 비교적 저조했던 르네상스 후기(1600∼1650년)의 비평을 다루며,2부「신고전주의 비평」에서는 프랑스 신고전주의비평의 도입기(1650∼1700년)부터 영국적 발전기(1700∼1750년)를 거쳐 1750년 이후 신고전주의가 변모·와해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이같은 서술방식은 『대략 50년을 주기로 영문학 토론의 주역과 내용이 바뀌었다』는 이교수 특유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둘째권 「낭만주의에서…」는 크게 낭만주의 비평,빅토리아시대 비평,심미주의 비평 등 3부문으로 이뤄졌다.영국 낭만주의는 19세기초 블레이크·워즈워드·콜리지·셸리 등 진보적인 시인들이 합리주의 전통에 맞서 일으킨 문학사조.중엽에는 칼라일·러스킨·밀·아놀드 등 사회사상가들이 공리주의에 대항하는 정신으로 다분히 보수적인 문학관을 내세웠다.하지만 문학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이 두 세대가 일치한다.또 세기말에 이르러서는 포우·페이터·스윈번·와일드 등 문인들이 등장,문학과 도덕의 완전분리를 주장하는 심미주의가 모습을 드러낸다.이 책은 낭만주의에서부터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 전성기를 지나 그 시대의 마지막 중요 사조인 심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영미비평사를 후대 유명학자의 비평사적 해설에 기대지 않고 당대 비평문헌을 직접 인용해 정리하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마지막권 「뉴 크리티시즘…」은 1930∼1950년대 미국에서 성행한,작품자체의 객관적 분석에 무게를 둔 문학비평방법인 뉴 크리티시즘에 대한 해설서다.엘리엇·리처즈 등 선구자에서부터 랜섬,테이트·워렌·브룩스·윈섬 등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뉴 크리틱에 이르는 비평가들의 논저를 면밀히 검토한다.특히 뉴 크리티시즘이 중시하는 패러독스나 아이러니를 비롯,뜻겹침(Ambiguity)·의도론 및 영향론의 오류문제 등을 쟁점별로 상세히 다뤄 뉴 크리티시즘에 관한 구체적인 윤곽을잡을 수 있게 한다. 이 교수는 『비평문장의 아름다움과 즐거움,힘과 지혜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평사 기술방법』이라고 결론짓는다.이런 맥락에서 그는 『처녀는 잃은 사랑을 노래할 수 있으나 수전노는 잃은 돈을 노래할 수 없다』라는 러스킨의 말을 비평사에서 금과옥조로 여길만한 훌륭한 문장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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