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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학적 위기 극복방법 제시/진교훈 교수 著 ‘환경윤리’

    ◎동·서양 자연관 비교/서구 인간중심적 가치관 비판/도가·유가 자연존중사상 소개/환경윤리학 연구과제도 제시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생태계의 자연스런 순환은 단절되고 생태권(生態圈)의 재생능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이러한 생태학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환경윤리학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생명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오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즉 생태학적 위기의 근원이 과학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도덕적 가치판단에 있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볼 때 서울대 진교훈 교수(국민윤리교육과)가 펴낸 ‘환경윤리’(민음사)는 우리의 절실한 관심사를 다룬 책으로 주목할 만하다. 환경윤리학은 전지구적으로 점점 더 뚜렷해지는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1970년대초 탄생했다.그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탐구하는 학문이다.초기에는 환경윤리학으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생태학적 윤리학 또는 생태윤리학이라고 불린다. ‘동서양의 자연보전과 생명존중’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이 책에서 진교수는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을 폭넓게 비교 분석한다.아울러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을 현대적인 의미에서 재음미,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다. 이 책은 우선 환경윤리학의 성립배경과 연구과제를 다룬다.이어 생태학적 위기의 의미와 실상,원인규명에 대한 다양한 논거를 제시한다.특히 서양의 전통적 자연관의 문제점들 예컨대 자연의 탈신화화와 인간중심주의,유물론,과학의 탈가치화,도구적 가치관 등을 비판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유대 그리스도교는 자연물에도 혼이나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物活論)과 만유령유론(萬有靈有論)을 거부한다.대신 자연을 비(非)신격화하고 그것을 단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간주한다.게다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경 창세기의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곳에서는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이 형성되고 자연을 더욱 무참히 약탈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또한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를 도가와 유가의 관점에서 살핀다.도가의 대표적 인물인 노자에 따르면 만물은 천지(天地)의 소산이며 도는 천지를,천지는 만물을 낳는다.노자는 이러한 천지를 대장간의 풀무에 비유했다.풀무의 속은 텅 비어 있지만 그것은 움직일수록 더 많은 기운을 낸다.천지 또한 비어 있는 듯하나 실은 무궁한 가능성이 잠재한다.도교의 가르침 속에는 구체적인 자연존중사상과 사회윤리적 성격이 담겨 있는 셈이다. 김교수는 환경윤리는 결국 자연보전과 생명존중에 대한 인간교육을 통해 구현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결론은 유보한다.환경윤리의 문제는 매우 포괄적이고 종합적이며 계속 새롭게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 박일문씨 신작 장편소설 ‘적멸’

    ◎화엄… 열반… 그 험난한 구도의 길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작가 박일문씨(40)가 신작 장편소설 ‘적멸’(민음사)을 내놓았다.이전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색깔의 구도소설이란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영주 부석사와 무량수전을 소설의 1차공간으로 삼는다.작가는 도입부에서 16세기 중국 명대의 시인 이탁오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다.이탁오의 주장처럼 동심의 세계 혹은 무애(無涯)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주인공 운수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마저 죽자 출가를 결심하고 부석사로 들어간다.그는 무애,적묵,학능 등 구도의 동반자들과 함께 조실 스님의 출가사문이 된다.무애는 괴기행각을 벌이는 인물.화두선이든 참선이든 모든 수행방법을 거부하거나 조롱한다.적묵 역시 기이한 수행방식을 보인다.면벽수도나 소신(燒身)이 그가 의지하는 구도정진 방법이다.학능은 선(禪)보다는 교(敎)쪽에 가까운 인물이다. 소설은 이런 인물들 사이에 기이한 인연을 지닌 선묘라는 여인이 ‘춤추듯 여기저기 색정적으로’ 나타나면서 본궤도에 오른다.그러나 이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세간의 인연은 이내 적묵의 소신공양과 선묘의 죽음을 부른다.이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화엄의 경지,적멸미(寂滅美),장엄미 등과 같은 것이다. 한편 작가가 첫 장면에서 이탁오를 내세워 동심의 세계를 그려 보인 점은 그 자신의 남다른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박일문과 이탁오의 생애는 적잖이 닮았다.반승반속(半僧半俗)의 생활을 한 점이나 동심의 사상을 지닌 점,좌파적 사고,끝없는 운수행각을 벌인 점 등은 그들 사이의 친연성을 엿보게한다.작가는 열일곱살 때 출가한 뒤 15년 동안 출가와 환속을 되풀이했다.작가의 이러한 승력(僧歷)이 이 소설의 바탕이 됐다.
  • 희생양/르네 지라르 지음(화제의 책)

    ◎인간사회 질서체계에 내재한 폭력성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프랑스 인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 르네지라르(1923∼)가 제시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인류학’.이 책은 ‘폭력의 성스러움’과 함께 지라르의 문화인류학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지라르의 사유는 인간사회의 문화적 질서체계는 희생제의적인 폭력구조,즉 희생양 메커니즘에 의해 운용돼 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어느사회에서나 항상 개인과 개인 사이 혹은 계층과 계층간의 단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조작’하는 장치가 있어 왔다는 것이다.이같은 희생제의에 담겨 있는 폭력성을 발견한 지라르의 관점은 다수집단의 논리뿐만 아니라 소수인 희생자의 입장도 아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 점에서 신화나 설화는 가치중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곧 박해자의 시각을 담고 있는 기록이다.지라르는 이러한 기록들을 ‘박해의 텍스트’라고 부른다.한편 지라르는 성서에도 희생양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어 주목된다.신약의공관복음서 해석에 몰두하는 그는 특히 예수 수난에 대한 해석에서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드러낸다.요컨대 예수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인간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당시 유태인 사회 안에 내연하고 있던 갈등과 반목,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지라르의 연구의 출발점은 원래 문학이었다.그는 첫 저서인 ‘낭만적 허위와 소설적 진실’(1961)에서 인간 본연의 욕망의 구조를 분석,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다리를 놓았다.그러나 그후 그의 학문적 관심영역은 모든 인간적 현실로 확대됐다.이는 최근들어 애초의 과녁을 잃은 채 갈피를 못잡고 있는 인문학의 지향점을 분명히 해주는 대목이다.민음사 1만5천원.
  • 김욱동 교수 펴낸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

    ◎문학적 관점서 본 환경오염/베어지는 숲들… 오염되는 바다… 아름다운 녹색 자연 문학으로 지킬 수는 없을까… 1980년대가 ‘탈이념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환경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사회생태학·녹색정치학·생태철학·생태윤리 등 사회·인문과학 각 분야에서 불고 있는 ‘녹색 바람’은 이러한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문학쪽에서 만큼은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서양문학가들은 자연을 정복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 세계관에 길들여져 있고,동양문학가들은 주로 경제개발의 피해나 정치 이데올로기 문제에 주목해 왔기 때문이다.서강대 영문과 김욱동 교수가 최근 펴낸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민음사)는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문제를 문학적 측면에서 다룬 책으로 관심을 모은다. ‘문학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의 문학이론가 조셉 W.미커다.그는 이 분야의 고전이 되다시피한 책 ‘생존의 희극’에서 문학이 생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그 중에서도 시는 특히 생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가장 걸맞는 장르라는 것이다.그동안 생태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시인들로는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문예부흥’을 주도한 비트 시인 게리 스나이더를 비롯,애드리엔 리치,시어도어 로스케,W.S.머윈 등 미국 시인들이 꼽힌다.특히 스나이더의 작품집 ‘신화와 텍스트’에 실린 시들은 생태시의 전형으로 흔히 인용된다. “숲들이 베어진다/잘려나간다/아합의 숲이,큐벨레의 숲이/…제아미의 소나무도,하이다의 히말라야 삼목(杉木)도/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잘려나간다/…루터와 웨이어하우저에 의하여 밀려나간다”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스나이더 시의 한 대목이다.이 시는 무엇보다 낯선 고유명사가 많이 등장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요부 이제벨의 남편이고,큐벨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곡물의 결실과 다산(多産)을 관장하는 신이다.하이다는 캐나다와 미국 알래스카 지방에 살아온 인디언 종족의 이름.또 웨이어하우저는 미국의 유명한 목재 가공업자 이름이고, 제아미는 15세기 일본의 전통극 노(能)의 배우 겸 극작가 그리고 비평가로 활약한 인물이다.스나이더가 이렇게 낯선 이름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데는 그 나름의 까닭이 있다.자연파괴나 환경오염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스나이더는 “숲을 지키는 것이 곧시인의 임무”라고 단언했다. 이 책의 일관된 주제는 ‘문학의 녹색화’다.왜 녹색인가.녹색의 프리즘을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영역에 속한다.이를테면 풀 한 포기의 아픔을 걱정하는 마음,대지를 어머니의 가슴으로 여기는 마음,물고기의 물길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우주적 연민의 정조로 모든 존재를 성찰하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이런 문맥에서 볼 때 정현종의 “구름은 실로 우리 살의 씨앗/우리 피의 씨앗”(‘구름의 씨앗’)이라는 시 구절은 한층 귀하게 읽힌다. 이 책에서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생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생태 페미니즘은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의 테두리를 넘어 생태 문제에 눈길을 돌린다.생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발전 단계에서 볼 때 가장 뒤늦게 태어난 이론이다.물론 테오도르 아도르노나 막스 호르크하이머,허버트 마르쿠제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가들이나 페미니즘의 대모로 불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서도 생태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생태 페미니즘은 1970년대 초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생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도본이다.‘페미니즘이냐 죽음이냐’라는 제목의 책에서 도본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여성의 잠재력이 매우 유용함을 역설했다.이 생태 페미니즘이 비평담론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들어서다. 문학 생태학이라는 말은 한편으론 모순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순종교배보다 잡종교배를 통해 종종 우량한 후손을 얻을 수 있듯이 문학도 자연과학과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인 새 이론을 낳을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생태위기 시대에 문학 생태학은 더욱 조명받아 마땅하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다.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의 녹색뿐이다”라는 독일 시인 괴테의 말은 무척이나 시사적이다.
  • 지친 삶 어루만진 따뜻한 시선/이혜경씨 첫 소설집 ‘그 집 앞’

    지난 95년 장편소설 ‘길 위의 집’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혜경씨(39)가 첫 창작집 ‘그 집 앞’(민음사)을 내놓았다.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씨의 작품은 세상살이에 치인 사람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 모두 9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에서도 작가는 오래 묵은술과 같이 깊은 맛이 느껴지는 문체와 세상읽기를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도 화려한 주인공도 없다.소설의 화자는 하나같이 주변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시장에서 닭을 팔며 오빠에게 돈을 대는 노처녀(그늘바람꽃),소실의 딸로 역시 소실 딸인 시어머니의 냉대에 시달리는 가정주부(그 집 앞),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이혼녀(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의류회사 상무에서 명예퇴직한 뒤 미8군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중년 남자(젖은 골짜기),혼자된 딸 집에서 치매 사돈을 돌보며 사는 여성(어스름녘)….이들의 신산하고 남루한 삶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는작가는 그래도 삶은 살아볼만한 것이라는 암시를 던진다.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작가 이혜경을 “마음의 무늬를 말로 어루더듬어 충분히 전할 줄 아는 드문 작가”라고 평한다.
  • 소설가 金周榮(이세기의 인물탐구:168)

    ◎날로 확대­심화해온 소설세계/봇짐장수 삶 그린 ‘객주’ 5년간 본지에 연재 호평/대작 ‘임꺽쩡’ 등에 비견되는 역사소설 주로 집필 180센티의 큰키에 언제나 말이 없고 진실한 이미지가 작가 金周榮의 모습이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이문구에 의하면 그는 ‘어진 사람’‘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며 ‘교통순경과 방범대원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분야는 깜깜하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를 끊임없이 이룩해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소설의 지평을 개척하는가하면 성장소설의 아름다움과 민중적 역사소설의 높은 봉우리를 역력(歷歷)하게 정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소리가 메아리져 돌아오는 생의(生意)의 소설’을 쓰고 있다. ○분단소설 지평 개척 그의 초기소설은 주로 ‘상경한 촌놈이 겪는 도시의 세상물정’이 주류를 이룬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타관의 물을 먹고나면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타산과 세파에 시달려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지켰다. 이러한 풍자는 단편소설에서는 ‘경쾌한 속도감, 재치의 반전으로 소설적 재미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구성의 묘(妙)로써 문학적 향기’를 뿜어내고 장편소설에서는 ‘걸쭉한 입담과 해박한 풍물묘사에 의존한 특유의 지구력으로 수준높은 세태풍속’을 그려나간다.그중에서도 그가 유년의 시골장터에서 목격한 봇짐장수들의 고달프고 강인한 삶을 그린 ‘객주(客主)’는 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근현대 역사소설의 빛나는 업적들인 ‘임꺽정’과 ‘장길산’ 등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갖춘 취재가방을 둘러메고 장이 서는곳마다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집한 언어들로 문학적 생동감을 소설속에 되살려내고 있다. 그와 한평생을 어울려 지낸 소설가 이문구는 김주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깨알같이 메모해둔 노트를 보고 ‘이것은 피다.이것은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쓴적이 있다.그의 문학생활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89년의 ‘절필선언’을 들수 있다. 정상을 달리던 한 중견작가가 갑자기 ‘절필’을 선언하고 일간신문연재를 중단해버리자 문단은 온통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평론가 정현기와의 한 대담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소설을 돌아볼때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너무 심하다는 것’, 근 10년동안 줄기차게 신문연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업적 측면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과 신문소설이 요구하는 반문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문학적 성채(城砦)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마침내 절박감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상업성 우려 89년 절필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자신에게 가하는 나의 검증’이며 ‘비평가들의 비판이나 상찬이나 독자의 갈채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으로 독자를 교묘하게 속일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고료와 인세가 나의 생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야한다. 그럴수는 없다’는 절규가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하는 이들의 양심에 칼날이 되어 타성적인 문학행위에 충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껑충한 허우대와 맑고 박(撲)한 성정, 씩씩한 소년티를 벗지못한 소탈한 모습’에서 ‘눈크고 키큰 용량만큼이나 외로운 자기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천부적 질박함이 그의 문학적 원형질’임을 실감할수 있게 했다. 그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배고프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청에 다니던 金海允씨의 2남1녀중 장남. 가난과 더불어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왔고 ‘이틀돌이’로 품앗이를 다니는 어머니를 동구밖에서 기다리는 핍색(逼塞)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기는 ‘길가의 잡초’였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간직한채 16살때 대구로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일삼으며 대구 농림고를 졸업, 다시 서울에 올라와 친구집에 기식한채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자 서정주 박목월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문학의 앞길에 서조(瑞兆)가 비치는 듯했다.그러나 박목월씨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쓸것을 권유받았고 이후10년간은 연고지가 아닌 안동에 내려가 엽연초생산조합에 취직하고 있었다.가족은 고향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부인 金震得씨와의 사이에 3남2녀. ○단편 ‘휴면기’로 등단 조직이란 사회에 일단 자신을 내던지게 되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중뿔나게 아는체도 고독한체도 하지 않았고 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르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술자리로 데리고 갈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자기학대는 결국 ‘문학에 대한 끊이지않는 욕구’때문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71년, 단편 ‘휴면기(休眠期)’로 문단에 등단하자 ‘숨결이 야무지게 살아있는 언어’‘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문장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취미는 낚시에다 절륜의 술실력.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노래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그는 전9권에서 5권의 역사소설전집만을 주로 내다가 최근 한 10년만에 한권짜리 장편소설인 ‘홍어’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중견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으로 눈이 시릴 정도의 박꽃같은 순백한 사랑을 순정미학(純正美學)의 진수(眞髓)로 그려낸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긴 도정을 지나 그는 그의 삶의 결핍된 부분들을 인간적 정서와 무르익은 인간미로 채우는 시기다. 결국 그의 문학은 우여곡절을 지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문학에 대한 심한 갈등과 의혹과 고뇌를 되풀이하는 어쩔수없는 작가의 자세를 지킨다. 그는 처음에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더니 오늘도 여일하게 진실한, 이 시대 ‘대기거영(大器巨影)’의 얼굴이다. □연보 ▲1972년 소설 ‘휴면기(休眠期)’(월간문학)로 등단 ▲1976년 경향신문에 첫장편소설 ‘목마위의 여자’ 연재 ▲1979년부터 서울신문에 ‘객주(客主)’연재 ▲1983년부터 중앙일보에 ‘활빈도(活貧盜)’ 연재 ▲1988년 한국일보에 ‘화척(禾尺) 7년 계약, ‘중국기행’연재 ▲1991년 동아일보에 ‘야정(野丁)’ 연재 ▲1995년 서울신문에 아프리카기행 연재 장편소설 ‘객주’ 전9권 (81년 창작과 비평사) ‘아들의 겨울’(82년 전예원) ‘천둥소리’(86년 민음사) ‘활빈도’ 전3권(87년 중앙일보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88년 민음사) ‘외설 춘향전’(94년민음사) ‘화척’ 전5권 (95년 문이당) ‘야정’ 전5권(96년 문학과 지성사) ‘홍어’(98년 문이당)출간, 단편집 ‘겨울새’(83년 민음사) ‘새를 찾아서’(87년 도서출판 나남)등 소설문학상(82년) 유주현문학상(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3년) 이산문학상(96년)
  • 중국신화전설 Ⅱ/원가 지음(화제의 책)

    ◎공자·노자 등 역사적 인물에 얽힌 전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새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읽어야 하는 고전 목록에 가장 먼저 오르는 책이 그리스·로마 신화다.우리는 먼나라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가까운’ 중국에는 신화가 존재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이 책은 흔히 중국에는 신화가 없다거나 있어도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어 볼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등의 편견에 일침을 가한다.이 책에서는 주로 동주(東周) 이후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설을 다룬다.권모술수가로 묘사된 장홍과 지모가 뛰어난 외교관 숙향, 충직하고 지혜로운 악관 사광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공자와 노자·묵자 등 사상가들에 관한전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특히 괴력난신(怪力亂神)에 관해 언급조차 하지않았다고 하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들은 일종의 아이러니마저 느끼게 한다.신화는 문화의 한 부분이다.그런 만큼 보편성과 개별성의 문제는 신화에도 적용된다.미국의 비교신 화학자인 조셉캠벨 같은 이는 융의 심리학을 전 세계의 신화에 적용,인간심리의 보편적 유사성을 찾아내는 데 역점을 뒀다.미르치아 엘리아데 역시 융의 원형관념과는 좀 다르지만 전 세계 신화 속에 등장하는 보편적인 성(聖)의 현현(顯現)을 찾는 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인간정신의 보편적 현상을 찾으려 노력했다면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구조주의 신화학자들은 주체나 역사를 배격하고 다만 신화의 구조를찾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반면 원가는 역사시대의 전설까지도 넓은 의미의신화에 포함,중국신화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이 책에서는 이른바 중국의사대(四大)전설중 백사전(白蛇傳)과 양산박 축영대 전설이 다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전인초·김선자 옮김 민음사 2만1천원.
  • 현대 기호학 강의/김성도 지음(화제의 책)

    ◎현대기호학의 역사적·철학적 토대 현대 기호학의 역사적·철학적 토대를 인식론적으로 해명한 연구서.기호학은 일시적인 사조로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그러나 동시에 그 이론들이 갖는 인식론적 이질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현대 기호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 있다.기호학이라는 지식의 틀을 하나의 담론체계로 보는 지은이(고려대 언어과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기호학의 발생과 구조에 대해 고고학적 탐색을 시도한다. 현대 기호학의 계보는 크게 양대 진영으로 나뉜다.퍼스의 기호사상에서 내려오는 화용론적 기호학과 소쉬르에게서 영감을 받아 발전한 구조주의 기호학이 그것이다.이 두진영은 인간학적·인식론적·방법론적 차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전자는 삼원적 모델에 근거한 현상학적 범주론에 기초해 기호의 화용성과 역동성을 포착하려 했지만 언어기호의 특성을 놓치고 있다. 이에 맞서 소쉬르의 기호학은 기호의 양면 모두를 심리적 실재로 파악하는 연상주의적 심리학에 기초한 이원적 모델을지향한다.이들은 각각 자신의 기호이론이 정통이라고 주장한다.이는 곧 현대기호학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다.즉 소쉬르로부터 영감을 받아 소쉬르­옐름슬레브의 인식론과 개념적·분석적 도구들을 옹호하고 있는 유럽의 기호학자들과,퍼스에게 그 철학적 모태를 두고 있는 영미 기호학자들간에는 상호 불신과 무시가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은이는 양진영의 화해를 통한 보다 폭넓고 신축성 있는 제3의 기호학의 출현을 주장한다.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다.1부에서는 현대기호학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시금석으로서 서구의 기호 개념사를 살핀다.2부는 소쉬르·퍼스·에코·그레마스에 관한 장.또 3부에서는 데리다의 해체철학과 글쓰기를 기호학적 입장에서 고찰한다.민음사 1만3천원.
  • ‘발밤발밤’을 아십니까/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사라져가는 우리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1966년에 쓴 산문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에서 시인 김수영은 ‘수많은 말들이 죽어갔고 수많은 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다.시인이 지하에서 올라온다면 과연 오늘의 우리말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한때 국정지표가 되었던 ‘세계화’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외국어가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이다.이런 세태를 반영해서인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극성도 이젠 흔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취직이나 시험에서의 영어 비중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가까이 있는 것은 소홀히 대하기 쉬운 법이라 그런지 우리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국어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이런 사정이고 보니 흔히 마주치는 안내문은 비문,오문 투성이기가 일쑤이다.제품설명서만을 믿고 따라하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누구나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를 주로 상대하는 출판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절감하는 것은 우리말을 제대로 정확하게 쓰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결국 말맛을살려가며 우리 문장을 구사하려면 국어사전을 가까이하는 방법밖엔 없다.나자신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영어사전을 펼친 적은 숱하게 많지만 국어사전을 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영어사전을 펼친다면 아는 것을 제대로 쓰기 위해 국어사전도 가까이 두어야 한다.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어사전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우리말이 하나 있다.발밤발밤.부질없이 발길이 닿는대로 한걸음 한걸음 걷는 모양이란 뜻이다.입안에 넣고 발음해 보면 우리시대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이 단체로 내 혀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온다.
  • 가장 오래 살아남을 자/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 하나가 있다.도통 말이 없고 눈과 머리통만 유난히 큰 녀석이었다.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뭔가 다르다고 했는데,생년월일과 함께 지문같은 기이한 무늬가 옆구리에 찍혀 있는 그도 예삿놈이 아니었다 한다. 얼마나 일을 좋아하는지 나보다 먼저 퇴근하는 모습을 본 일도 없고 아무리 일찍 출근하여도 그는 항상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머리가 크다고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닐진대 이 녀석은 좀 예외다.내가 저를 기껏 알았다 싶으면 어느새 녀석은 나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그 녀석을 죽어라 쫓아가다 보면 내 머리칼만 흰색으로 도배되고 말 것 같다. 그렇게 유능한 덕분인지 정년을 모르고 그는 살아간다.요즘 같은 실업대란에도 끄떡없다.그 비결을 알고 싶어서인지 그 녀석과 사귀려고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늘어났다. 얼마전 가까운 선배 하나가 공부를 더 하겠다며 유학을 떠났다.그가 떠난자리에 가 보니 사람은 없는데 그 큰 녀석이 눈을 껌뻑거리며 앉아 있었다.처음 우리 사무실로 들어왔을때가 생각난다.녀석은 겸손하게 구석 자리를 차지했었다.그는 처세술에도 능했던 것이다. 점심시간에도 항상 그는 혼자다.나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주식으로 하는지를 모른다.오후에 출출하여 간식으로 비스켓을 먹을라치면 녀석도 배가 고픈지 디스켓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점점 지각이 잦아지고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회의실을 나설 때면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그의 눈치가 보인다.그는 언젠가 내 자리도 뺏을 게 틀림없다.그는아마 우리 사무실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 어떤 신문/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아무리 뜻깊은 순간도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다.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반지를 만들어 끼는 것도 언젠가는 희미해질 기억력만으로는 그 순간을 다 붙잡아 둘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시간의 굴레를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첫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새벽,산모의 건강을 확인한 뒤 곧장 내가 달려간 곳은 신문 가판대였다.그곳에서 나는 잉크냄새 가득한 그날치 신문을 모조리 샀다.일간지는 물론 경제지·스포츠지까지 사니 아이의 몸집만큼은 족히 될 만큼 불룩한 부피였다. 아늑한 공간에 있다가 탯줄을 끊고 이제 막 세상에 편입된 아이가 무사히 자라 말을 배우고 글을 깨치게 되어 나름대로 제 위치를 가늠하게 될 때 저 태어난 날의 신문은 뜻깊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하루를 뒹굴다간 숱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신문을 보면서 아이는 일생의 한고비였던 그날의 순간을 새롭게 인식할 것이라는 내심의 기대도 작용했다. 그때 산모가 친구들로부터 받은 꽃다발은 흔적조차 없다.축하한다는 말,고생했다는 위로의 말도 사라진 지 이미 아득한 기억.포대기에 싸여 눈을 말똥말똥 거리는 아이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고 대신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말썽꾸러기가 내 앞에 있다. 하지만 지금도 내 방 한 귀퉁이에는 그때 산 신문꾸러미가 간직돼 언젠가는 상자를 열어주기만을 기다린다.좀더 시간이 흘러 무릎을 맞대고 식구들과 함께 펼쳐 볼 그날이 문득 기다려지기도 한다. 오늘도 신문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우울한 기사들이 전 지면에 넘쳐난다.더구나 요즈음은 시절이 하도 뒤숭숭하니 신문보기가 겁난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혹 나와 같은 심정으로 내일 새벽 신문 가판대로 달려가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제발 그의 손에 쥐어질 신문에는 좀 훈훈한 기사들로 그득하기를.
  • 머리띠 졸라매기/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요즘 신문을 보면 부고란이 따로 없는 것같다.정치·경제·문화·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괴로운 신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최근 도매상의 연쇄부도로 야기된 출판계 위기 또한 끝모를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이미 작년 말부터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지만 막상현실로 닥치고 보니 암울하기만 하다.종이·인쇄·필름 등 기초자재비의 폭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웠던 상황에서 서적 도매상의 마비는 출판인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이 때문에 제작을 해도 책을 뿌릴 데가 없어 창고로 직행해야 할 딱한 형편이다. 벌써 신간종수는 반이하로 줄어들었고 개접휴업인 상태의 출판사도 한두군데가 아니다.무언가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식산업의 대표격인 출판업은 절반이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울한 진단이 그대로 실현되고 말 것같다. 책은 단순히 활자만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책은 시대를 편집하고 디자인한다.한 시대를 호흡하는 정신의 총화는 책을 통해 갈무리되어 다음 시대로 전달된다.인간의 육체에 산소가 필요하듯 인간의 영혼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외국에서는 불황기에 오히려 책이 더 잘나간다는 통계가 있다.하지만 우리의 경우 서점에 사람이 많긴 하지만 판매는 이전보다 뚝 떨어졌다는 전언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얼마전 평소 존경하는 소설가 한분과 저녁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졸라매어야 하는 것은 허리띠도 물론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머리띠”라는 말을 듣고서 퍽 공감했었다.턱없는 과소비는 굳이 IMF시대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삼가고 자제해야 마땅한 일이다.하지만 너무 위축된 소비심리는 오히려 경제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 2만권의 책/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이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여러 세간살이 중에서도 책을 옮기는 게 가장 번잡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실감했을 것이다.요즘에는 포장이사가 등장하여 어느정도 이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직접 책을 정리하고 묶는 작업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라면박스 하나 정도도 결코 녹록한 무게는 아니다. 이사후 가급적 책장 정리는 천천히 하는 게 좋다.책을 그냥 출판사별로 책장에 꽂아서는 안된다.목차만이라도 한번씩은 다 떠들어 보아야 한다.이때 보지 못하면 평생을 같이 동거하여도 다시는 못보기가 쉽다. 더구나 묵은 책갈피에서 자신도 깜빡 잊은 비상금을 발견하는 뜻밖의 행운을 놓칠 수도 있다.노곤해진 몸을 잠시 쉬면서 빼어든 한권의 책에서도 일생을 바꿀 문장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또한 늘 내일로 이사가는 존재들이다.손목에서 째깍거리는 시계바늘 소리는 우리 몸을 조금씩 조금씩 내일로 데리고 간다.새롭게 다가오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미래사회는 정보의 힘이 세계를지배한다는 점이다.그리고 그 힘의 요체는 다름아닌 책에서 나온다. 고려말 국가적 위기가 닥쳐오자 팔만대장경을 새김으로써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국난을 물리쳤다 한다.지금의 우리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의 입구에 서 있다.8만자의 대장경을 오자 하나 없이 정성들여 새김으로 써어려움을 이겨나갔듯 한자 한자를 읽어내는 진중한 독서도 오늘의 우리가 이 위기를 이겨내는 방법이다. 청와대로 가는 새 대통령의 이삿짐 속에 들어 있는 2만권의 책을 보면서도 나는 이를 확인했다.그 가진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한없이 가벼울 손때 묻은 책을 생각하자 무거운 내 마음도 잠시 가벼워졌다.
  • 둥근 것을 위하여/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도시에는 직선이 너무 많다.넓게 뚫린 도로,수직으로 세워진 건물.백화점엘 가도 지하철을 타도 눈을 찌르는 것은 온통 직선뿐이다.네모난 서류,각진 계단,상하로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등 효율과 능률만을 강조하다 보니 직선의 미학만이 우리 눈을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직선이 어디 이뿐이겠는가.이 직선의 세계에서는 뱉어내는 말들도 직설적이다.이 모난 말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서로의 가슴에 꽂힌다.상대방을 향한 벌겋게 달아오른 말들이 험악하게 오늘도 신문 지면을 꺼멓게 물들인다. 하지만 눈을 들어 다른 방향을 보면 세상은 둥근 것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막막한 하늘에는 해와 달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고 구름은 천재처럼 곡선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있다.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둥근 물방울.물이 강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도 둥글기 때문이리라.둥근 바퀴때문에 지면을 달리는 자동차처럼,강이 직선을 고집했다면 골짜기마다 마을은 들어설 수 없고 대지는 아무런 전설을 가지지도 못한 채 황폐해졌을 것이다. 둥근물을 먹고 자란 나무의 열매를 보라.둥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열매는 맺힐 수 있겠는가.늦은 밤 둥글게 모여 앉아 어떻게 사과를 깎아먹을 수 있었겠는가.꼬부라진 고갯길을 넘다가 문득 마주치는 파릇한 무덤.저 무덤의 주인은 죽어서도 어머니의 불룩해진 뱃속에서 놀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처럼 둥글고 둥근 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세상은 완성된다.봄,여름,가을,겨울도 둥글게 찾아온다.시간의 바깥으로 뛰어나가 본다면 계절의 순환도 둥글 것이다.누가 말했던가.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지금 우리 곁에 서있는 고통 끝에는 밝은 희망이 둥글게 열려 있을 것이다.손을 곧바로 뻗지 말고 한바퀴 휘돌아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와 어깨동무한다면.
  • 결혼불능증에 걸린 남자/정석 교수의 새소설 ‘카프카의 결혼’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전공한 강원대 독문과 정석 교수가 ‘카프카의 결혼’(민음사)이란 소설을 펴냈다.카프카를 학문적으로 연구해온 그가 카프카로부터 힌트를 얻어 소설창작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카프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 카프카가 되어버린 남자, 카프카에 뼛속 깊이 감염된 한 남자의 순수를 독신의 문제로 풀어냈다. 이 소설은 각각 성격이 다른 29개의 장으로 이뤄졌다.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야기를 진술하는 방식이다.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평이한 서술,자기고백체의 산문,편지형식의 글,강의형식,그리고 전공 논문식의 에세이가 함께 뒤섞여 있다.‘미스터 카프카’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동석은 카프카처럼 이른바 ‘결혼불능증’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마치 거식증 환자가 음식을 거부하듯 그는 결혼제도 자체를 거부한다. 이 소설에서 화자는 카프카가 결혼할 수 없었던 이유를 납득시키려고 한다.나아가 그의 ‘순수를 독식하려는 열정’을 동경한다.이 작품은 언뜻보면 카프카의 삶에 대한 성찰처럼 보인다.그러나 결국 이야기의 초점은 현대의 한 독신주의자에 맞춰져 있다.일종의 결벽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혼불능증이라는 ‘병’은 복잡한 세상과 그 안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제도나체계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로도 읽힌다.
  • 동네 서점앞을 지나며/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아파트단지엔 골목이 없다.옹기종기 모여앉아 꼬마들이 뛰놀아야 할 자리엔 위험한 승용차들만이 즐비하다.하늘 한번 쳐다보고 문득 찾아온 기발한 생각을 낙서하던 담벼락도 사라졌다.사막의 한가운데인가.문패는 없고 아라비아 숫자만이 대문을 대신한다. 아파트엔 마음놓고 혼자 있을 곳이 어디에도 없다.어쩌다 부부싸움을 했어도 마땅히 갈곳이 없다.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낡은 집엔 다락방이나 뒤뜰이 있어,그곳에서 훌쩍거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라도 있었다.한참 그러고 나면 상처난 마음은 좁은 가슴을 지나 먼곳을 여행하고 돌아와 안정되곤 했다. 도시의 아파트는 상상력이 거세된 공간이다.달리 도망갈 곳이 없다.베란다로 나가보지만 아찔한 절벽이다.비도 그냥 헛내린다.빗소리도 들은지 오래다.게으른 주인을 만난 화분의 식물이 더욱 몸을 비튼다.아파트 건물은 한채만이라도 그가 살았던 시골 동네 하나만큼의 가구수와 맞먹고도 남는다.부동산·비디오가게·생고기 전문점·베이커리·약국·24시간 편의점은 그런대로 손님이 들고난다.그휘황한 가게들 사이로 간신히 자리잡은 서점.야윈 얼굴의 주인이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있다. 여기 거대한 아파트 숲을 출판사의 한 편집자가 지나고 있다.윗호주머니에는 교정용 빨간 볼펜이 꽂힌 줄도 모른 채 퇴근하는 길이다.손 어딘가에는 빨간 얼룩도 묻어 있을 것이다.그는 오늘 교양서적 한권을 어렵게 출간했다.저자는 전화통화에서 첫 저서를 낸 감격의 흥분을 감추지 않았었다.출판부수는 고작 2천부.주로 참고서와 월간지만이 팔린다는 저 동네서점에서 어떻게 하면 그가 만든 책이 낯선 독자를 만날 수 있을까.가뜩이나 어려워진 요즘상황에서 그는 더욱 애착이 간다. 그 거대한 아파트단지를 쳐다보면서 그는 생각한다.저 많은 번듯한 현관으로 상상력의 곳간인 책이 들어갈 구멍은 왜 이리 좁은가.
  • 반야심경과 우편엽서/이갑수 시인·민음사 편집국장(굄돌)

    지금은 잊고 살지만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회사에 출근하여 처음 한 행동은 우편엽서에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빼곡이 정서하는 것이었다.그 의미는 제대로 모른 채 260자의 한문을 정서하고 나면 마음의 때가 벗겨지고 한순간이나마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었다.그리고 여시아문을 흉내내어 여시아기라고 박은 뒤 나를 아는 분들께 우편엽서를 그대로 보냈다. 나의 엽서를 받은 분들 중에서는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으면 불교에 아주 조예가 깊은 것으로 물어와 내심 당황하기도 하였다.하지만 그때까지 나의 불교지식이란 입문 수준의 서적 몇권을 읽은 게 고작 전부였을 뿐이다.당시이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독서백편 의자현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일년만 계속 하면 반야심경의 오묘한 맛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리란 얄팍한 기대도 했었다.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고 거대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초라한 심정이 나를 지배할 때,반야심경 쓰기는 내게 큰 위안이었고 그나마 나의 중심을 흐트리지 않는 힘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번잡한 일과와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잘 쓰지도 못하는 한자를 더듬더듬 짚어나갔던 경험은 내 지난 기억의 갈피에서 반지처럼 반짝거린다. 오늘 내 주위에도 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사회에 처음 진출할 때의 개인적 어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각자 고난을 헤쳐가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는 당장 내일부터 반야심경을 다시 쓰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그리하여 불안해진 내 마음의 끈을 다시 조이는 한편,나만큼이나 우울한 심정으로 식구들을 바라볼 벗들에게도 반야심경이 적힌 엽서를 보내 한 자투리의 명상이라도 할 시간을 줄 작정이다.
  • 과학기술이 빚갚을 기회/이은웅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굄돌)

    공기 물 그리고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문화생활이고,문화생활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기기술이다.그래서 우리는 전력을 와트(W),전압은 볼트(V),전류는 암페어(A),주파수는 헤르츠(㎐)로 표시하는 전기의 정량적 단위를 알고 있다.그러나 이와 같은 전기의 단위가 전기기술 향상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단위나 용어 중에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은 하나도 없다.그러니까 개발비와 함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넣어 일구어낸 다른 나라의 전기기술을 우리는 111년동안이나 편리하게 사용하여 오늘의 공업국가로 성장한 것이다.그렇지만 WTO체제가 가동되고부터는 로얄티 없이 선진기술을 받아들일 수 없고 과학기술서적이나 소프트웨어 등의 복사가 불법이 된다.따라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가격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기술이 선진기술이 되도록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반만년 역사를연연히 이어온 우리 민족이,흐트러져 있다가도 뭉칠 수 있었던 민족성은,우뚝 솟을 수 잇는 저력으로 생각된다.게다가 잘 교육받은 현명한 국민이 있으며,지난 30년 경이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해 낸 산업역군과 기반이 있고 그들이 지닌 경험과 지혜가 있다. 이제는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와,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슬기를 내놓아야 하며 모두의 단결이 요구된다.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의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지금까지 선진국에 지은 빚을 갚아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근검절약이 필요하더라도 과학기술을 배양하는 데만은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그래야만 우리나라의 성이나 이름으로 불리는 과학기술의 용어와 단위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2∼3월에는 이갑수·이은웅·정진성·홍철씨가 맡습니다. ▲이갑수(39)=시인·도서출판 민음사 편집국장. 서울대 생물학과 졸.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91년 ‘오늘의 작가상’수상.시집 ‘신은 망했다’ 등. ▲이은웅(54)=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대한전기학회 부회장.한양대 전기공학과 졸,동 대학 박사.캐나다 맥길대 방문교수,전국 국립공과대학장 협의회장 역임. ▲정진성(여·45)=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서울대 사회학과 졸,미 시카고대박사.도쿄대 초청연구원·덕성여대 교수 역임. ▲홍철(53)=국토개발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과 졸,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박사.국방연구원 수석연구원·건설부 기획관리실장·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역임. 지난해 12월과 올 1월에 수고하신 김재홍·김희진·이융조·장석환씨께 감사드립니다.
  • 김종길 교수의 시론집 ‘시와 시인들’ 시집 ‘달맞이 꽃’

    ◎‘달맞이꽃’에 실은 시인의 고향/개연성 중시·내용없는 시적 실험 질타/필립 라킨에 대한 애착어린 비평 실어 ‘성탄제’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71)가 시론집 ‘시와 시인들’과 시집 ‘달맞이꽃’을 동시에 펴냈다.도서출판 민음사.특히 지은이의 회갑기념 시론집 ‘시에 대하여’에 이어 10년만에 나온 시론집 ‘시와 시인들’은 시인이자 영문학자로서의 학문적 온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김교수는 이 책에서 본격적인 시론을 다루기에 앞서 자신의 출신과 성장배경부터 살핀다.이를 위해 그는 영국 시인 T.S.엘리어트의 평문 한 대목을 원용한다.엘리어트는 유명한 그의 초기 평론인 ‘전통과 개인적 재능’에서 ‘경험하는 인간’,즉 생활인으로서의 예술가와 ‘창조하는 인간’,즉 예술가로서의 예술가가 완전히 분리됨으로써 완벽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엘리어트의 주장을 지은이는 한편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신봉하지는 않는다.엘리어트와는 문화적 배경이 다를뿐 아니라 개인적 체질도 다르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교문화권인 이른바 ‘안동문화권’ 출신이다.그 자신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지예라는 고향마을은 안동지방에서도 가장 궁벽한 산촌에 속한다.게다가 그곳은 지금은 임하댐 준공으로 수몰지구로 변했다.이번에 펴낸 시집의 표제로 쓰인 ‘달맞이꽃’이란 시는 바로 시인의 고향을 노래한 것이다.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 막연한 물음에 김교수는 시읽기는 무엇보다 개별에 치중해 보편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아울러 텍스트를 떠나 자신의 경험에 매몰되면 편벽된 해석을 낳기 쉬우며 아무리 발랄한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개연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권고한다.이렇듯 개연성을 중시하고 내용없는 시적 실험을 질타하는 그가 내세우는 시의 정도는 바로 시의 ‘위의’를 지키는 것,곧 새로우면서도 시 본래의 모습을 잃지않는 것이다. 이번 시론집에는 필립 라킨,셰이머스 히니,T.S.엘리어트 등 외국시인에 대한 비평도 곁들여져 있다.특히 라킨(1922∼1985)에 대한 애착어린 글이 눈길을 끈다.라킨은 시집 ‘덜 속은 자(The Less Deceived)’로 일약 2차대전 후 영시단의 총아로 떠오른 인물. 라킨이야말로 어떠한 시적인 허세도 부리지않으며,의식적으로 특히 엘리어트나 딜런 토머스와 같은 시인들의 시풍을 배격하는 반모더니스트 시인이라는 게 김교수의 설명이다.이 책에는 ‘그리고 다음’‘혼인날 바람’‘교회를 찾아서’ 등 라킨의 대표적인 시들에 대한 분석적인 글들이 담겼다.
  •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뉴턴 가버·이승종 지음(화제의 책)

    ◎프랑스와 영국의 철학자 2인 비교·고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와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비교·고찰한 연구서.국내 지식사회에서 ‘프랑스 담론’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밀어닥친 거대담론의 해체가 그 출발점이었다.프랑스 담론은 문화비평가들과 문학평론가 그리고 사회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시작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산지인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됐다. 프랑스 담론은 유입과 더불어 우리 학계에서 무조건적인 추종과 엄청난 질시를 받으며 메시아로 기능하기 시작했다.기존의 철학과 궤를 달리하는 프랑스사상의 한 부류가 거대담론의 침몰로 우왕좌왕하던 우리 지식인들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준 것이다.하지만 그 담론들은 독창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필체와 장난기,방대한 지식체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난해함만을 안겨줬다.그러한 난해함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데리다이다. 이 책에서는 데리다 사상의 진수를 살피는 한편 미국 언어분석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둘 사이의 유사점을 추출해낸다.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이전의 철학사상들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기존 철학에는 은유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그것은 단지 시나 소설을 구성하는 문학적 기법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돼 왔다.그러나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은 그러한 입장에 반대한다. 그들은 전통철학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형식적 논증,논리적 분석, 범주적 의미론보다는 비사실적 담론,표현적인 언어,은유에 비중을 둔다.그런가하면 그 둘의 차이점 또한 확연하다. 새로운 철학을 구성하고자 하는 비트겐슈타인과 기존 철학의 해체를 도모하는 반항아 데리다를 비교하는 것은 일종의 긴장감마저 안겨준다. 이승종·조성우 옮김 민음사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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