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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성 없는 폭력성… 뒤틀린 쾌감

    반성 없는 폭력성… 뒤틀린 쾌감

    펀치/이재찬 지음/믿음사/256쪽/1만 3000원 “나는 5등급이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어도 철저하게 위계화된 한국 사회에서 ‘5등급’이 갖는 의미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펀치’가 내포하는 전제이자 비극성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 ‘나’는 자본주의 계급 사회의 논리를 폐부 깊숙이 체득하고 있다. “5등급은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머리에서 외모까지 5등급은 영원히 날 따라다닐 꼬리표”다. ‘나’는 한국 사회를 매우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비꼬며, 거기에서 이 소설의 뒤틀린 쾌감과 유머가 발생한다. “내 수학 성적은 내 바스트 사이즈만큼이나 제자리”이고, “한국 여자의 몸매는 전통적으로 ‘상체 빈약, 하체 튼튼’”이지만 “걸 그룹들은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른 ‘가슴 육덕, 하체 부실’”이다. 기독교인들은 “교회만 열심히 다니지 이웃을 돌보지 않는”다. 외모 지상주의의 한국은 “내면이 없는 땅”이다. 가족은 ‘나’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결정체다. ‘나’는 “심장은 죽고 입만 살아 있는” 아버지를 ‘방 변호사’라 지칭한다. 전 국회의장의 폭행 사주 사건을 맡아 승소한 방 변호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엘리트”다. 열성 개신교 신자인 엄마는 딸의 ‘인 서울’ 입학에만 관심을 갖는다. “모녀는 50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5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독자는 ‘나’의 냉소가 가족과 사회에 대한 가벼운 조롱이나 풍자보다 증오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웃음은 조금씩 서늘함으로 변해간다. ‘나’는 남 몰래 고양이를 목 졸라 죽이던 남자에게 부모의 살해를 사주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공무원이 되었으나 상사에게 “노예처럼” 당한 그는 ‘나’만큼 분노와 혐오로 뭉쳐 있다. 몇 차례의 공모 끝에 그는 ‘나’의 부모를 살해하지만 그가 자수를 생각하면서 ‘나’는 난처해진다. ‘펀치’로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진한 반성이나 후회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고 무참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현실에서 벌어진다. 작가는 끔찍한 현실을 소설로 봉합하는 대신 “엄마를 죽인 범인은, 엄마 자신”인 사회의 살풍경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문제적인 것은 이 10대 소녀의 폭력성, 세상에 대한 반감 자체가 매우 매혹적이면서도 논쟁적이라는 사실”(문학평론가 강유정)이라는 평을 받았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24시간 책을 누리는 공간·문화콘텐츠 본부가 될 겁니다”

    “24시간 책을 누리는 공간·문화콘텐츠 본부가 될 겁니다”

    잠 못 드는 깊은 밤 혹은 일찍 눈 떠진 새벽녘에 맘 편히 들를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면 어떨까.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방을 둘러싼 책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책향기를 느긋하게 맡는 상상만으로도 뿌듯하지 않은가. 내년 5월, 그런 꿈의 도서관이 파주출판도시에 문을 열 전망이다. 파주출판도시 내 복합문화공간인 아시아출판문화센터와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의 공용 공간 1만 6500㎡(약 5000평)에 100만권의 기증 장서를 갖춘 24시간 열린 도서관 ‘지혜의 숲’을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언호(한길사 대표)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과 건축가 김병윤 대전대 교수를 만났다. 김언호 이사장은 올여름부터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장서 기증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예산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아시아출판문화센터의 설계자인 김병윤 교수는 기존 도서관과는 차별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책 읽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왜 도서관이 필요한지부터 물었다. 김 이사장은 “파주출판도시에 입주한 지 올해로 11년이 됐다. 그동안 출판도시는 책을 만드는 공간이었다. 이제는 독자들이 책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지혜의 숲’은 책 읽는 장소뿐 아니라 음악회, 낭독회 같은 문화콘텐츠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이책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도서관 건립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학자들이 평생 모은 귀중한 장서를 도서관에 기증하려 해도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 맞기 일쑤고, 출판사들의 반품도서는 대부분 파쇄기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김 이사장은 “버려지고, 푸대접받는 종이책의 생명을 다시 살리는 지식의 리사이클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개인, 단체, 출판사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도서는 벌써 30만권에 이른다. 한경구 서울대 교수, 박원호 고려대 명예교수, 이계익 전 교통부 장관 등이 소장 도서를 기꺼이 내놨고, 교보문고와 한길사, 민음사, 사계절, 박영사, 안그라픽스 등 출판사들도 수천권씩의 책을 기증했다. 이런 추세라면 목표치인 100만권 장서 확보는 무난할 전망이다. 이는 웬만한 서울의 대학 도서관보다 많은 규모다. 최근 열린 ‘파주북소리 2013’에 참여한 해외 출판사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책들도 두루 갖추게 될 예정이다. 100% 기증 도서로 조성될 이 도서관의 또 다른 특징은 서가 구성과 책의 분류다. 특정 장소에만 책을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복도와 계단, 모퉁이 등 공용 공간의 빈 틈마다 다양한 형태의 서가를 마련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책이 보이도록 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센터를 설계할 때부터 공공 영역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서가 공간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기존의 도서관이 주는 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지혜의 숲’이라는 이름에 맞게 숲의 이미지와 빛을 모티브로 해서 시각적으로도 즐거운 공간이 되도록 다른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리모델링 작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이 하나의 설치미술로서도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개념의 책박물관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책을 분류하지 않고 기증자별로 서가를 마련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기증자의 학문 궤적과 정서의 흔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희귀본이나 중요한 장서는 따로 보관해 불가피한 손실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24시간 열려 있는 도서관을 지향한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학문을 위한 도서관보다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김 이사장은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찾겠지만 익숙해지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잠 안 자고 책 읽기 경연 대회’ 같은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넘친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만 하는데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 합니다. 책을 살리고, 지식을 공유하는 도서관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문화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문화단신]

    한양대·민음사 ‘독서 아카데미’ 한양대학교와 민음사 출판그룹이 오는 23일부터 ‘융합 독서 아카데미’ 2학기 수업을 연다. 밀란 쿤데라의 문학이 다루는 삶과 인간 내면의 성찰을 들여다보고, 이타심에 기초한 협력 시스템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범죄를 줄이는 방법 등을 모색해본다. 이권우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교수가 사회를 맡고 김병욱 성균관대 불문학과 교수, 조형근 한림대 연구 교수, 신동헌 ‘레옹’ 편집장 등이 강연자로 참가한다. 무료. (02)2220-2874. SF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 완간 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작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완간됐다. 1942년 첫 작품 ‘파운데이션’을 내놓은 뒤 1992년 사망할 때까지 50년간 집필을 계속한 역작이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영감을 얻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심리역사학’을 창조해 현실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상의 국가 ‘파운데이션’이 은하계를 지배하는 제국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국내에 처음 출간됐다. 각 권 1만 3000~1만 8000원.
  • 72개어 달인 伊 추기경·65개어 구사 獨 외교관…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언어의 천재들/마이클 에라드 지음/박중서 옮김/민음사/503쪽/2만원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언어 습득의 비법부터 말해야겠다.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도파민을 관리하고 몰입해야 한다.” 6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중언어 구사자를 연구해 ‘언어의 천재들’(원제 Babel, no more)을 펴낸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도파민은 즐거운 일을 하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서 즐거운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줘 사람들이 계속 즐거운 일을 하게 한다. 여러 가지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좋아서,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언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산만하고 충동적인 상태는 언어 습득의 장애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몰입 상태에 빠져야 한다. 평범해 보이지만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전 세계 다중언어 구사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언어를 배우려는 절박한 동기를 가져라, 언어 감각을 발달시켜라 등의 조언도 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는 공자의 ‘지지자(知之者), 호지자(好之者), 낙지자(之者)’론처럼 ‘즐기고 몰입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자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전·현직 다중언어 구사자를 찾아나서고 언어 습득과 관련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다중언어 지역을 순례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언어 천재’는 이탈리아의 추기경 주세페 메조판티(1774~1849)로 72개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외국인 전용 고해신부 시절에는 사형수 2명의 모국어를 밤새워 공부해 다음 날 아침 처형되기 전 이들의 죄를 사해줄 정도로 뛰어난 언어 습득 능력을 지녔다. 메조판티는 30개 언어에는 통달했지만 11개는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며 14개는 공부는 했지만 사용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60~65개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전해진 독일의 외교관 에밀 크렙스는 사후 뇌를 해부한 결과 언어 발달과 관련이 깊은 좌뇌의 브로카 영역이 과도하게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영역의 발달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크렙스가 본격적으로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 12세 전후에 형성된 것인지 규명되지 않았다며 언어와 브로카 영역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올해는 마키아벨리(14 69~1527)의 대표작 ‘군주’가 완성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단테의 ‘신곡’을 제치고 가장 많이 번역된 이탈리아어 고전인 ‘군주’는 1513년에 탈고됐지만 정식 출간은 마키아벨리 사후인 1532년에 이뤄졌다. 지난 500년 동안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시대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사꾼이란 비난에서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애국자로,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선 근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선구자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군주’ 탄생 5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마키아벨리 관련 전시와 강연 등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서적 출간과 학술 대회 등 마키아벨리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마키아벨리 연구로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은 이탈리아어 원문을 직접 번역해 텍스트 중심으로 ‘군주’를 재조명한 ‘지배와 비지배’(민음사)를 최근 출간했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의 텍스트는 모순어법과 수사적 장치, 의도적 왜곡, 사실과 허구의 혼재 등으로 오독의 여지가 가장 많은 고전이며, 이로 인한 오역과 오해로 지금까지 이 책에 대한 해석은 늘 반쪽짜리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은 ‘지배’가 아니라 ‘자유’가 정치의 목적이 되는 길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주의 교본’을 넘어 ‘시민의 교본’으로 ‘군주’를 읽을 것을 제안한다. 학술대회도 잇따라 열린다. 마키아벨리 군주 500주년 기념위원회와 플라톤아카데미, 한국밀레니엄연구원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3년 한국 정치, 왜 마키아벨리인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마키아벨리와 한국 민주주의’), 곽준혁 소장(‘민주적 리더십: 군주의 가려진 진실’), 김상근 연세대 교수(‘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가 주제 발표자로 나선다. 기념위원회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정치’에 대한 통찰력이 다시금 검토되고, 그의 정치철학이 2013년 한국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폭넓은 토론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정치사상학회, 한국정치학회, 아산정책연구원은 오는 19일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마키아벨리 군주론 저술 5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연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훈민정음’ 펴낸 서울대 김주원 교수

    [저자와 차 한잔] ‘훈민정음’ 펴낸 서울대 김주원 교수

    ‘당신은 한 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수하고 독창적인 표음문자’ 대개 이 정도 수준을 넘지 못하는 답변을 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훈민정음’(민음사)은 한글을 정확하게 알고 바로 쓰자는 차원에서 한글의 역사를 기록으로 촘촘히 정리한 책이다. 책 출간에 맞춰 저자인 김주원 교수(56·서울대 언어학과)를 지난 3일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우리는 한글을 말할 때 들뜨지요. 세계 최고의 문자라는 장점만 강조합니다. 냉철히 따져보면 한글도 문자의 일종입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실체를 잘 알아야 제대로 자랑하고 내세울 수 있습니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 독창성이야 세계가 널리 인정하는 추세. 해외 학자들의 연구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김 교수는 귀띔한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뒤 우리 학자들이 아무리 한글의 과학성과 독자성을 주장해도 외국 학계에선 거들떠보지 않았지요. 이미 있는 문자의 변형일 뿐, 새로운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1960년대 들어서야 외국 학계가 한글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문자 자체의 독창성과 과학성의 인정을 넘어 사회·인문학적 측면까지 들추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국민은 한글을 잘 모르고 오해하기 일쑤란다. 가장 흔한 오해의 단적인 예는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발명했다’는 것과 ‘한글이 세계기록유산’이며 ‘한글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도 우리 말은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혼동합니다. 세종대왕은 우리 말이 아닌 우리 글을 만든 것입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한글이 아니라 한글의 창제·운용 원리를 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인데 역시 말과 글의 혼동이 부른 잘못이지요.” 특히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다는 인식은 큰 오류라고 강조한다. “아직까지 인류는 세계의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표기체계를 개발하지 못했어요. 한글이 소리글자 중에서도 음소문자라는 점에서 낱낱의 소리를 모두 표기할 수 있는 문자체계임을 확대부각시킨 탓으로 봅니다.” 김 교수는 한글의 정확한 이해와 활용에 천착해온 훈민정음 전문가다. 2007년 창립한 훈민정음학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국알타이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15년 전부터 시베리아, 몽골을 비롯한 동아시아 구석구석을 누벼 사라져가는 알타이언어를 기록하는 데 힘을 쏟고있다. “아직도 훈민정음을 둘러싼 학계의 논란은 뜨겁게 진행 중입니다. 한글 자모음이 27자인지 28자인지, 그리고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는지 집현전 학자들의 협찬이 있었는지, 언문의 정확한 의미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지요.” 어찌보면 가장 기본적인 사안들인데 왜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할까. “훈민정음 창제는 극비 프로제트로 진행된 만큼 창제과정을 적은 기록이 전혀 없어요.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한 학자들의 상소문이 간접적으로 편린을 볼 수 있는 전부인데 그것도 맥락이 맞지 않아 학설이 나뉘는 것입니다.” 학계의 논란이야 어찌됐건 또렷한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와 장점을 부각시켜 키우고 단점은 보완 개선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지론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군주가 표기문자를 만들어 제공한다는 게 예사로운 일일까요. 훈민정음의 창제정신과 원리를 똑바로 알고 쓸 때 우리가 늘상 자랑하는 우수한 한글 문자의 진정한 나눔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문화단신] 민음사, 쿤데라 전집 15권 완간

    체코 출신 프랑스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전집(민음사·15권)이 완간됐다. 전집은 그의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등 소설 10권과 에세이 4권, 국내 처음 소개되는 ‘자크와 그의 주인’ 등 희곡 1권이 포함됐다. 목록은 출판사와 쿤데라가 직접 상의해 구성한 것이다. 완간 기념으로 해설집 ‘밀란 쿤데라 읽기’도 한정판으로 출간됐다. 박성창 서울대 교수, 김병욱 성균관대 겸임 교수, 문학평론가 정여울, 철학자 강신주 등의 글과 출간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가 함께 수록됐다.
  • 한손으로도 가벼운 ‘페이퍼백’ 왜 한국에서만 외면받을까요

    한손으로도 가벼운 ‘페이퍼백’ 왜 한국에서만 외면받을까요

    값싸고 가벼워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페이퍼백(문고본). 1935년 펭귄북스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세계 출판가를 정복(?)했다지만, 유독 한국에서만은 외면받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서점가에서 문고본은 전성기를 누렸다. 200종 이상의 책을 냈던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후 단행본의 고급화, 컬러화가 이뤄지면서 문고본은 속수무책으로 자취를 감췄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고본 시리즈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인문·사회분야에서는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 책세상의 책세상문고·우리시대, 시공사의 디스커버리총서 등이다.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민음사의 펄프,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 등이 있다. 페이퍼백이 국내 출판시장에서는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책의 가치를 ‘소비용’보다 ‘소장용’으로 더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첫 손에 꼽힌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국민성에 출판시장을 주도하는 여성 독자층의 책 디자인 중시 성향 등이 맞물려 문고본보다는 양장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이진희 주간은 “출판시장을 주도하는 20~30대 여성 독자들은 겉표지, 책 디자인 등 예쁜 책을 찾기 때문에 양장본을 더 선호한다. 때문에 출판사들도 표지 디자인에 주력하다보니 뛰어난 디자인이 많아 번역서의 경우 일본 출판사에서 우리 표지를 가져다 마케팅에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책을 휴대용으로 지니며 간편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독서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양은경 민음사 외국문학팀 과장은 “우리는 인문·교양 분야 등의 독서 습관이 주로 교육과 연관해 형성되다 보니 이야기를 쉽게 소비하는 문화가 없다”고 파악했다. 시장 규모가 작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페이퍼백의 번성을 막는 이유로 꼽힌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인구가 1억명 이상은 되어야 초판에서 기본 5000부는 팔릴 수 있는데 기껏해야 1000~2000부 팔리는 국내 시장에서는 이윤이 남지 않으니 출판사들도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휴대의 편리함, 작은 판형 등 페이퍼백과 비슷한 장점을 지닌 전자책이 페이퍼백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는 현상을 가속화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는 전체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콘텐츠가 좋아지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독자들은 굳이 문고판 책을 사기보다 전자책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판계 안팎에서는 페이퍼백의 추락은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독자는 출판사들이 책을 내지 않으니 못 본다고 하고, 출판사들은 팔리지 않으니 안 낸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장르소설 문고본 시리즈를 내온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문고본은 최소한의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책을 사는 사람은 사실 한정돼 있다. 독자 수요에 대해서는 사실상 회의적”이라고 했다. 결국 출판사로서는 양장본 책을 만들어 가격을 높이는 쪽이 가격저항력도 없어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페이퍼백에 대한 독자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는 현재 466호까지 나왔다. 한 달에 평균 3권씩 낼 정도로 활발하게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최진 살림출판사 지식총서팀장은 “매월 재인쇄에 들어가는 책이 20종에 이르고 전체 466권 가운데 100권은 3쇄 이상 찍을 정도로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다”며 “이는 좋은 콘텐츠가 독자들을 이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페이퍼백 시장에 눈을 돌리는 게 미래의 독서 인구를 늘리는 방편이 될 수가 있다고 조언한다. 백원근 연구원은 “인터넷서점 중고책방이 인기를 끄는 데서 알 수 있듯 콘텐츠가 좋은 염가의 책에 대한 수요층은 분명히 있다. 독서 생태계를 넓힌다는 측면에서도 문고판 시장에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출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당신의 책]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미즈키 아키코 지음, 윤은혜 옮김, 중앙북스 펴냄) 국내 한 항공기 1등석에서 승무원에게 추태를 부려 물의를 빚은 일명 ‘라면 상무’ 사건은 세간의 분노와 더불어 1등석 승객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일본과 외국 항공사에서 근무한 전직 일본인 스튜어디스가 전체 좌석의 3%에 해당하는 국제선 1등석 승객들을 16년간 밀착 서비스하면서 파악한 공통적인 성공 습관을 소개한다. 그중 하나가 입국 서류 작성 때 승무원에게 절대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기록하는 습관 때문에 항상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닌다는 설명이다. 기내에서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뉴스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집이나 공항 라운지에서 읽고 나오기 때문이다. 1등석 승객들이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사실도 재밌다. 228쪽. 1만 3000원. 베케트에 대하여(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임수현 옮김, 민음사 펴냄)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성공 이후 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부조리 연극의 대표 작가로 부각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베케트 문학의 진면모를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적인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이 책에서 베케트를 절망의 작가로만 바라보는 일반적 편견에서 벗어나 베케트 작품 안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의 흔적을 탐색한다. 바디우는 베케트의 사유가 “긍정의 지점들을 따로 떼어 내 고양하는 사유”라고 평가하며 “베케트의 모든 재능은 거의 과격할 정도로 긍정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선언한다. 바디우의 사유 속에서 베케트는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면서도 진리의 희망과 사랑의 행복을 노래하는 작가가 된다. 바디우 전공자인 서용순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와 베케트 전공자인 임수현 서울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번역했다. 280쪽. 1만 6000원. 코난 도일을 읽는 밤(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셜록 홈스를 창조한 뛰어난 스토리텔러 아서 코난 도일의 글쓰기에 대한 탐구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일생 동안 셜록 홈스 모험담에 열정을 바쳐 온 오랜 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셜록 팬들의 모임인 ‘베이커가 특공대’의 회원이기도 하다. 책은 홈스의 미스터리 소설뿐 아니라 덜 유명하지만 매혹적인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한다. 다작 작가였던 코난 도일은 과학 및 역사소설을 비롯해 에세이와 회고록도 다수 남겼다. 저자는 모든 종류의 스토리텔링을 아우르는 이야기꾼 코난 도일의 면모를 조명하며 ‘좋은 이야기는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처음 맞닥뜨린 기억에서 출발해 홈스 탐정 소설의 특징과 코난 도일의 글쓰기 방법을 해설한다. 부제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은 코난 도일의 걸작 ‘추적의 모든 기술’에서 따왔다. 276쪽. 1만 3000원.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만프레트 볼퍼스도르프 외 지음, 유영미 옮김, 시공사 펴냄) 여성 우울증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졌지만 상대적으로 남성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다. 남성은 여성 이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쉽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병을 키우게 된다. 남자니까 울면 안 되고 많은 돈을 벌어야 하며 늙어서도 약해져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책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남성 우울증의 실체를 파헤친다. 독일 남성우울증 전문 정신의학자인 만프레트 볼퍼스도르프 박사는 “남성 우울증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정보가 부족하며, 여성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성 우울증은 결코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으며, 가족과 이웃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288쪽. 1만 3000원.
  • 이문열의 ‘삼국지’ 전자책으로

    소설가 이문열이 평역한 ‘삼국지’가 출간 25주년을 맞아 전자책으로 출간됐다. ‘삼국지’는 출간 이후 1800만부가 팔리며 한국 출판 사상 최대 베스트셀러가 됐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쉬운 우리 말로 옮기고 주요 장면에 대한 평문을 달아 큰 인기를 누렸다. 전자책 가격은 각권 6300원, 10권 세트 6만 3000원이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에서 다운로드 받아 이용할 수 있다. 민음사는 작가가 평역한 ‘수호지’와 ‘초한지’를 비롯, ‘사람의 아들’과 ‘황제를 위하여’ 등 작가의 전작을 전자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 외로움이 무서울 때 친절이 구독을 구하리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현대로 올 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또 고독해지고 있다. 인간은 왜 공동체와 분리돼 점점 비사회적 동물이 되고 있을까. 저자들은 그 원인을 진화심리학, 사회신경과학 등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외로움 극복의 방법을 제시했다. 대단한 게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착한 사람’이 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류가 아직 침팬지 등과 섞여 살던 시절에는 무리를 짓고 있을 때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느끼고 외톨이가 될 때 불안감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전해지면서 인간은 유대감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니게 됐다. 유대감이 총족될 때 안전함을 느끼는 유전자도 전수됐다. 죄를 지은 사람을 사회에서 추방하는 그리스의 오스트라시즘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외로움, 고독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은 친구가 많은 사람보다 9년 안에 사망할 확률이 2~3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는가 하면,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고혈압 발병률은 37%, 스트레스 수치는 50% 더 높다는 조사도 있다. 사회적 고립에 따른 스트레스가 고혈압, 비만, 운동 부족, 흡연에 못지않게 사망원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 중 한 명인 카치오포는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접목한 사회신경과학의 권위자다. 그는 인간은 신체 내부의 평형을 유지하는 호메오스타시스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이것으로 여의치 않으면 고차원적인 알로스타시스를 동원한다고 말한다. 알로스타시스는 내분비계, 심혈관계, 면역체계 등 신체 전반의 기능을 조절하는 것으로, 이런 기능이 자주 동원되면 몸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필요한 생리적 비용은 커진다. 왜 외로운 사람이 건강에 취약한지를 말해준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뭘까. 친절이나 봉사, 용서와 화해 등의 작은 선행이 공동체를 살맛나게 한다. 이러한 것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상호주의 문화가 법과 제도 등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의나 호의가 배반이나 기만으로 되돌아오면 호혜적 관계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미국인들은 1985년만 해도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몇 명 있느냐는 질문에 3명이라는 답을 가장 많이 내놓았다. 그러나 2004년에는 한 명도 없다는 응답자가 25%에 이를 정도로 고독한 사회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인의 10%가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시달리고 유엔 아동기금(UNICEF)이 실시한 아동복지조사에서는 21개국 중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저자들은 공동체를 회복하면 사회적 비용이 훨씬 적게 들 텐데 미국은 아직 이런 것에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다고 꼬집는다. 우리에게도 먼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대형교회가 등장하는 현상 등이 책의 흥미를 더해준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아이들이 직접 뽑은 스토리 좋은 동화책

    프라모델을 사주지 않는 엄마에게 심통이 난 문양이. 소심쟁이인 그가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2반 마술사의 카드 마술 내기에 홀려 3만원을 걸었다가 몽땅 다 잃은 것이다. “이제 망했다”며 발버둥치는 문양이에게 친구 명규가 묘안을 낸다. “스무고개 탐정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 거야.” 스무 개의 질문만으로 어떤 사건이라도 해결한다는 탐정이 전학을 왔다는 것이다. ‘멋쟁이 어른처럼 주름 하나 없는 바지 밑으로 뾰족구두까지 갖춰 신은 저 아이가 나랑 동갑내기라니! 게다가 탐정이라니!’ 외모만으로 또래를 압도하는 탐정은 질문을 하나씩 던지며 마술사의 비밀을 캐낸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마술사가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마술사가 사건 현장에 떨어뜨린 조커 카드가 실마리가 되는데…. 어린이 심사위원 100명의 마음을 사로잡아 제1회 스토리킹(민음사 주최) 수상작이 된 ‘스무고개 탐정과 마법사’ 얘기다. 작가는 “탐정을 어른이 아닌 초등학생으로 설정해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탐정이 된 듯한 흥미진진함을 안겨준 것이 점수를 딴 것 같다”고 했다. 작가의 짐작대로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가며 사건을 풀어내는 어린이 주인공들의 흡인력이 강하다. 각 장마다 굵은 글씨로 새겨진 질문들이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과정은 호기심을 잔뜩 부풀어 오르게 한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연필 스케치는 이야기를 부드럽게 감싼다. 때론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처럼 신비롭고 기괴한 분위기마저 뿜어낸다. 초등 3학년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하루키 vs 정유정 소설 이어 음반전쟁

    올여름 소설대전을 벌이는 두 강자가 음반으로 장외경쟁에까지 나섰다. 지난 1일 출간 이후 이미 30만부를 팔아치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와 지난달 16일 발간 이후 10만부를 판매한 정유정 작가의 ‘28’(은행나무) 얘기다. 유니버설뮤직은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의 음반 ‘리스트-순례의 해’(사진 위)를 책이 나오기 1주일 전인 지난달 25일 일찌감치 내놨다. 1997년 수입됐다가 절판됐던 것을 ‘하루키 특수’를 노려 라이선스 음반으로 발매한 것. 이 앨범은 15일 현재 1500장이 팔렸다. 양미정 유니버설뮤직 대리는 “홍보를 하지 않는 클래식 음반이 한 달에 수십장 팔리기도 힘든 현실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관심을 모은 것”이라며 “지난 4월 일본에서 하루키 신작이 발간된 직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국내 음악애호가들도 클래식팀에 음반 발매 계획이 없느냐는 문의를 많이 해왔다”고 밝혔다. 클래식, 재즈 애호가로 유명한 하루키는 전작들에서도 음악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설정해 관련 음반 판매에 한몫했다. ‘28’의 출판사인 은행나무는 자체적으로 북 사운드트랙(아래)까지 내놓으며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은행나무는 책을 내놓기 한 달 전인 지난 5월부터 인디밴드 등에 소설 내용을 극비리에 부쳐줄 것을 요구하며 작품 속 등장인물에 맞는 곡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재작년 ‘7년의 밤’을 냈을 때 국내 소설로는 처음으로 북트레일러를 만들어 홍보했더니 이후 다른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북트레일러를 만드는 유행이 일었다. 이번에도 새로운 마케팅 아이템을 개발한 것인데, 우연히 하루키 책과 ‘소설+음악’의 대결 구도가 됐다”고 했다. 두 출판사는 각각 다음 달 초와 말 독자들을 대상으로 북콘서트도 마련할 예정이다. 김수진 민음사 홍보기획팀장은 “책에 조예가 깊은 음악평론가를 초대해 음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책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도 ‘28’ 작가 정유정과 북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한 인디밴드들이 소설과 음악으로 독자들과 교감하는 북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씁쓸한 하루키 열풍/문소영 논설위원

    무라카미 하루키(64)의 신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출판계가 몇 달째 북새통이다. 이 책의 국내 판권과 관련, 22억원의 선인세를 적어 낸 출판사가 탈락하자 선인세가 25억원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하루키 열풍’에 한몫했다. 선인세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250만권은 팔아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국내 출판을 맡은 민음사에 따르면 이 책은 판매 보름 만에 30만권이 팔려 나갔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판권을 비교적 싼값에 가져왔으니 그 책의 판매까지 포함하면 얼추 ‘본전’을 맞추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식지 않는 하루키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하루키에게 다소 짠 점수를 주고 있다. 50대의 한 문학평론가는 “너무 난리라서 좀 두었다가 읽으려고요”라고 답했고, 40대의 출판평론가는 “읽다가 중간에 내려놓았다”고 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지 않은 20~30대 독자에게 매력적인 것 같은데, 두 책은 너무 닮았다”고 지적한 출판컨설턴트도 있다. 1990년대 ‘상실의 시대’를 소비한 20~30대 독자들은 386세대였다.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에서 차용한 원제처럼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의 연애와 개인사를 중심으로 한 청춘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1960년대 일본 전공투(全共鬪) 세대와 자신들을 동일시했기 때문일까. ‘운동의 시대’가 저물고 민주화 시대가 펼쳐졌지만, 형편없는 학점과 빈손으로 사회에 진출한 386세대는 그것을 일종의 운동권 후일담 소설로 읽었다. 요즘 386세대는 종종 ‘기득권의 화신’으로 손가락질당하지만 대다수의 386세대에게 1990년대는 문자 그대로 상실의 시대였다는 얘기다. 취업 호황이라던 그때 386세대에게 한두 해 취업 재수는 기본이었다. 한때 혁명을 꿈꿨던 전공투의 흔적을 지닌 1987년 와타나베와 달리 2013년 건축설계사인 다자키는 철저히 개인사에 몰입한다. 20대 초 자살을 꿈꾼 다자키는 ‘자신에게 선명한 색채가 없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그는 마법이 풀린 개구리 왕자 같은 멋들어진 인물로 묘사된다. 하루키는 독자가 어느 나라 사람이 됐든 36살 다자키의 섬세한 내면의 궤적을 보편적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실감 나게 그린다. 한국의 작가들은 여전히 역사에 대한 문학의 사명과 도덕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시대와 함께하는,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하루키 같은 ‘스테디 작가’를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무라카미 하루키 3년만의 신작 ‘색채가’ 평가 엇갈려

    무라카미 하루키 3년만의 신작 ‘색채가’ 평가 엇갈려

    ‘하루키 특수’ ‘하루키 열풍’이라는 수식어를 어김없이 재현하며 ‘그’가 돌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64)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가 지난 1일 베일을 벗었다. 하루키를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이 문화계의 축제냐, 출판시장의 독이냐를 따지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출간된지 하루 만에 출판가는 엇갈린 작품 평으로 분분하다. ‘1Q84’ 이후의 문학적 압박을 딛고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했다는 호평에, 새로운 시도를 찾을 수 없다는 박한 평가까지. 신작 속으로 순례를 떠나본다. 스무살의 다자키 쓰쿠루는 반년간 죽음의 위(胃) 속에 잠겨 있었다. 쓰쿠루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는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다.”(7쪽) 계기는 명백했다. 다섯 손가락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뤘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절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16년의 가혹한 세월이 흘렀다. 서른여섯의 쓰쿠루는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친구 사라는 왜 거부를 당했는지, 스스로 이유를 밝혀보라고 주문한다. “안쪽에서는 아직도 조용히 피가 흐르고 있을지 몰라”라며. 완벽했던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남자는 ‘왜’라는 물음을 품고 순례를 시작한다. 시선을 내내 붙드는 하루키식 서사의 흡인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간결한 문체와 단순한 이야기 전개로 독자를 물음표의 풀장에 빠뜨린다. 일본에서 ‘청춘연애소설로의 귀환’이라는 평이 나왔듯 투명한 청년의 감성도 그대로다. 상실을 돌아보며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세심히 짚어나가는 작가의 성찰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개인의 고독, 소외 등에 대한 불안의 코드도 짙다. 이름 속에 적(赤), 청(靑), 흑(黑), 백(白)의 ‘색채가 있는’ 네 친구들에 반해 ‘색채가 없는’ 쓰쿠루가 따돌림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듯이.‘1Q84’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상실의 시대’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배경으로 깔았던 음악 애호가 하루키는 이번에도 음악을 이야기를 엮는 재료로 내보냈다. 헝가리 출신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소곡집 ‘순례의 해’가 주인공이 기억을 재생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통로가 된다. 순례의 끝에 쓰쿠루는 결국 용서와 회복에 이른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충분하고 견고한 껍질을 만들어낼’(430쪽) 수 없었던, 위기 앞에서 수단을 가릴 처지가 못 됐던 친구의 나약함을 이해한다. 이를 두고 최재철 한국외대 교수는 작품의 주요 키워드로 회복과 소통을 꼽으며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려는 개인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소설은 후회와 상실감, 상처로 가득한 고독한 청년이 순례를 통해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쳐 스스로 회복하고 구제하는 과정을 그렸다”며 “동시에 쓰쿠루의 이름 속 한자 작(作)이나 그가 세상과 연결되는 장소인 철도역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개인이 과거와 상처에 함몰되지 않고 소통을 통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복제’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는 점은 아쉽다.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스푸트니크의 연인’ 등 전작들의 기시감이 짙다는 지적이 많다. 조주희 한양여대 교수는 “인물의 설정이나 변화 과정, 인물 간 구도, 불명확한 의도 등이 전작들과 겹친다.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여러 수수께끼를 남겨놓는다는 점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하루키 평전 ‘하루키 하루키’의 저자인 일본 문학평론가 히라노 요시노부 야마구치대 교수도 조 교수를 통해 본지에 신작의 명암을 전해 왔다. 그는 작품 속 표현인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빗대 이렇게 평했다. “‘1Q84’ 이후 창작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이 정도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그의 작가적 노력과 역량에 감탄했다는 게 좋은 뉴스다. 나쁜 뉴스는 전작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점이 없다는 것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다시 하루키 열풍… 출간 동시에 1위

    다시 하루키 열풍… 출간 동시에 1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가 1일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하루키가 3년 만에 내놓은 이 소설은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초판 20만부를 찍은 민음사는 5만부를 추가 제작하기로 했다. 이날 하루키의 친필 사인본 증정 이벤트가 열린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200여명의 독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정전 60년을 맞아 한국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한국전쟁’과 권헌익 영국 캠브리지대 석좌교수의 ‘또 하나의 냉전’이다. 전자는 적국의 시선으로 본 한국전쟁이란 점에서, 후자는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한국전쟁과 그 전후의 고통과 폭력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한국전쟁] 왕수쩡 지음/나진희·황선영 옮김/글항아리/1000쪽/4만원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999년 중국에서 초판이 출간됐고,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에선 첫 번역 출간이다. 14년의 시차에 담긴 의미는 꽤 함축적일 터이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적군인 미군을 향한 대항적 성격으로 한국전쟁을 규정하는 하나의 관점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제정치적 맥락이나 이념적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하는 태도에서 벗어난다. 이는 저자가 정치학자나 군사학자가 아니라 팩트를 추적하는 논픽션 작가라는 지점과 맞닿아있다. 치밀한 자료 수집과 수많은 관련자 인터뷰 등 방대한 취재량이 압도적이다. 저자는 한반도에 진입했던 중국국 소속 15개군이 전후에 정리한 전쟁사, 전쟁 종식 뒤 귀국한 참전 장병이 쓴 수많은 회고록, 전쟁 당시 한반도 전장에 있던 중국군 지휘부와 베이징의 지휘자들 간에 교환한 모든 문서와 전보를 열람했다. 또한 미국 역사학자 모리스 이서먼의 ‘한국전쟁’을 비롯한 서구의 다양한 관련서와 더글러스 맥아더의 회고록 등도 참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정전 협정까지의 긴박하고 참혹했던, 때로는 무기력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복원해낸다. 1950년 10월 8일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을 출병하는 대목에서 출발한 책은 전장에 버려진 서적을 통해 적군의 작전 의도를 파악하려는 치열한 정보전과 피말리는 심리전, 각국이 구사하는 전술·전략의 유래와 전개 양상 등에 대한 꼼꼼한 기술을 거쳐 또 다른 전쟁의 양상을 보였던 정전 협상의 체결에서 끝을 맺는다.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대령 계급의 국가 1급 작가라는 저자의 또 다른 타이틀은 중국 중심의 서술이란 한계를 피할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중국 내부의 자료들을 통해 한국전쟁의 한 축이었던 중국의 당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이 책만의 장점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또 하나의 냉전] 권헌익 지음/이한중 옮김/민음사/256쪽/1만 8000 세계사에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간 냉전의 역사선상에 놓인다. 1945년 조지 오웰이 처음 언급한 ‘냉전’은 실제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지만 정치·외교·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냉전이 “오랜 평화이자 상상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해방공간이 분단으로 이어지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에게 이 시기는 과연 냉전일 수 있을까. 2010년 컬럼비아대에서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즉 한반도 해방공간의 역사가 세계 냉전사와 틀을 같이하는가 달리하는가,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 책은 한국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제주 4·3사건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폭력전 내전과 그와 관련된 반공주의 역사라는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냉전을 내전으로 경험한 사회에서 냉전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를 인류학의 핵심 조사방법인 참여관찰법을 이용해 접근한다. 저자는 제주 4·3사건으로 분열된 하귀리 마을 사람들이 최근에서야 학살자들을 기리는 추모제를 자유롭게 열 수 있게 되면서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한다. 또한 베트남전쟁 당시 형은 혁명군에, 동생은 미국편에 가담해 총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가족이 어느 한 명을 추모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고통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말한다. “한반도의 해방공간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 안에도 있고 또 밖에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가 세계사의 영역에서는 생경해지는 상황은 불행한 일이며 이제는 이 잘못된 구도가 고쳐져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냉전의 역사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또 하나의 냉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7쪽) 베트남전 양민학살을 종교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 ‘학살, 그 이후’와 전쟁의 후유증을 기록한 ‘베트남전쟁의 영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자는 최근 한국전쟁의 새로운 연구 틀을 형성하고자 하는 ‘한국전쟁을 넘어서’국제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하루키 판권 민음사에… 선인세 16억 ‘훌쩍’

    하루키 판권 민음사에… 선인세 16억 ‘훌쩍’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제)의 국내 판권이 민음사에 돌아갔다. 민음사는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책의 한국어판을 오는 7월 초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라카미가 3년 만에 내놓은 이 소설은 일본에서 발간 6일 만에 발행 부수 100만 부를 기록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도 민음사를 비롯해 ‘1Q84’를 펴낸 문학동네, 김영사, 웅진씽크빅, 북폴리오, 문학사상사, 21세기북스 등 유수의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민음사는 “구체적인 제안 내용과 판권 금액은 무라카미 측과의 계약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며 판권 액수에 대해 함구했지만 출판계에선 선인세가 16억원을 훨씬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선인세로 1억 5000만엔(약 16억 6300만원) 이상을 제시하고도 떨어진 출판사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일 경우 외국 작품의 국내 판권 금액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민음사는 다음 달 중순부터 예약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문화마당] 시인의 몸은 곧 시(詩)다/백가흠 소설가

    [문화마당] 시인의 몸은 곧 시(詩)다/백가흠 소설가

    시인의 ‘몸’은 역사 안에서 시간성과 시대성을 안고 있다. 시인의 개인사는 개인 안에 머물지 않으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역사의 실증이다. 시인의 ‘몸’은 그리하여 시대에 민감하게 사람들의 감성을 시로 기록한다. 시는 시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언어의 비늘(鱗)’이 분명하지만, 시인의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시인의 ‘몸’은 현재라는 시대와 시간을 영유하는 독자, 혹은 동시대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는 시인의 ‘몸’이 우주적 시간 안에서 시대성을 초월함과 동시에 역사 안에서 한 시절을 대변하는 ‘말’(語)을 습득한 유일한 몸, 위대한 소명인 것이다. 시인을 꿈꾼다는 것은 이러한 우주적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나, 시대의 말을 습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의 몸이, 시인의 말이 아무 일이나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 땅에 있었고, 역사에서 사라진 수많은 시인을 기억하면서 이들이 부여받은 시간과 시대의 숙명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시대로부터 만들어지지 못한 시인의 ‘몸’이 실패한 ‘말’을 습득하는 것을 우리는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시대에 거슬러 실패한 말의 역사로 남은 시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실패한 말의 몸을 가진 시인들로 우리 문학사는 채워져 있고, 군부독재의 역사 안에서 시민들의 바람이나 열망과는 반대로 진행되는 말에 우리는 시의 역사를 빼앗겼다. 시인의 말이 현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시인의 현재와 시대는 우주적 시간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대부분의 시인은 이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으나, 일부의 시인들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현재의 시간을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서정주라는 역사가 있다. 그는 유일하게 완성된 시인이다. 모자란 시적 감수성으로 그의 시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소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가 어떻게 변모되고 완성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유일한 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위대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의 비늘이 떨어져 나온 ‘시인의 몸’이 위대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시인의 ‘몸’이 없고 ‘말’만 있는 시인은 시인인가 아닌가. 시인의 몸이 가진 우주적 초월에는 실패한 것이 아닐는지. 최근에 한국시인협회에서 기획한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인물사’(민음사)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시인이 되지 못하고, 부여받지 못한 숙명을 한탄하며 저잣거리 군상의 얘기나 다루는 소설가 나부랭이가 되어버린 필자의 감상이 뭐 대수로울까마는, 가슴 밑바닥까지 내려앉는 침울함이 크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논의의 대부분은 ‘누가, 누구’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논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숙명은 ‘왜’인가 하는 것이다. 참여한 시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이 시집이 ‘왜’ 만들어졌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시집 발간의 이유와 실체로 의심되는 사이의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몇몇은 ‘왜’ 이러한 논쟁이 생길 것임을 예상했음에도 책을 발간해야만 했는지, ‘왜’ 시인이 시대적 소명을 모른 척하면서까지 논쟁의 중심에 서야만 했는지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정반대로 시집 출간이 시대적 소명이라 여긴다면 그것마저 뚜렷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 한국시인협회가 펴낸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인물사’ 논란

    한국시인협회가 펴낸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인물사’ 논란

    한국시인협회(이하 협회)가 창립 56주년을 맞아 펴낸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인물사’(민음사 펴냄)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의 서문에 쓰인 “근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남긴 빛과 그늘을 문학의 눈으로 살펴보자”는 의도와 달리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특정 인사의 공로만을 치켜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인협회는 13일 근대 인물 112명에 대해 시인 112명이 한 편씩 시를 쓴 시집 ‘사람’을 출간하고 간담회를 열었다. 신달자 회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예술, 체육 등의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온 인물들을 뽑아냈다”며 “칭송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역사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 인물의 빛과 그늘을 말하려 했다”고 밝혔다. 근대 인물 112명에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됐다. 중진시인 이태수씨가 쓴 시 ‘박정희’에는 ‘당신은 날이 갈수록 빛나는 전설’,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을 우리의 횃불’, ‘위대한 지도자요, 탁월한 선지자였습니다’, ‘5·16은 쿠데타로 잉태해 혁명으로,/개발 독재는 애국 독재로 승화됐습니다’, ‘5·16쿠데타와 유신 독재가 없었다면/민족중흥과 경제 발전은 과연 어떻게 됐을는지요’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다. ‘유신으로 자유와 인권을 밀어 놓은 채 숭고한 희생자들을 낳기도 했다’는 표현도 들어갔지만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누가 뭐래도 당신은 빛나는 전설, 꺼지지 않는 횃불입니다’라는 결어로 마무리했다. 또 다른 중진시인 이길원씨는 시 ‘이승만’에서 “소란스레 휘두르던 붉은 깃발 몰아내고/ 첫 단추 채우던 우남 이승만/ 평화선 그어 독도를 우리 땅 만들고/ 주린 배 뼛속까지 스미던 가난 속 의무교육은/ 높은 문맹률 단숨에 말리고”라고 공로를 치켜세운 뒤 “진보라는 가면을 쓴 붉은 얼굴들이 마음껏 설치는/ 넘치고 넘친 자유가 오히려 불안한’라며 색깔논쟁을 끌어왔다. 이 시들의 작성과정에 대해 신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태수 시인에게 부탁을 한 것이고, 이승만은 이길원 시인이 직접 쓰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작고한 전직 대통령은 윤보선 전 대통령까지 들어갔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상에서 빠진 것과 관련해 “인물이 너무 정치적으로 쏠려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협회의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배제된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등 재벌회장에 대해서도 산업화 과정에서의 부작용은 거의 거론하지 않고 굶주림 극복의 성공신화를 중심으로 평가했다. 간담회에서 선정기준 및 표현양식에 대해 논란이 되자 사회를 본 곽효환 시인은 “산업화와 민주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것을 통해 균형을 맞춘 것이고, 역사가 아니라 예술적 텍스트를 쓴 것이라고 이해해 달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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