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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하듯 다듬은 치열한 자기 성찰

    노래하듯 다듬은 치열한 자기 성찰

    오정국 시집 ‘눈먼 자의 동쪽’ 내설악의 청렴결백한 강골부터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의 적빈까지 오정국(60) 시인이 간절히 다듬은 언어의 풍광이 새 시집 ‘눈먼 자의 동쪽’(민음사)에 펼쳐진다.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편을 두고 “그의 독백이 주는 울림이 큰 것은 불과 얼음, 그리고 맹목과 적빈의 편력을 거쳐 온 이의 고해이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특히 시집의 끝자락에 실린 ‘철문을 닫아 걸 이유가 없다’는 시 쓰는 자로서의 치열한 자기 성찰이 밴 시편으로 꼽힌다. ‘절름발이 흉내를 내면서 방죽의 꽃을 손바닥으로 훑고 가는/이 발걸음을/내 시의 리듬이라고 말해 두자//철문을 닫아 걸 이유가 없다/눈 앞의 풍경은 저렇듯 완성됐고 여기서 내 한 마음이 살고 있으니//(중략) 진흙을 밟아서 진물이 흐를 때까지/내 목청 불태우듯 흩날리는/ 노래 몇 줄’(철문을 닫아 걸 이유가 없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동욱의 파피루스] 출판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서동욱의 파피루스] 출판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지난 일요일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타계했다. 박맹호 회장은 한국 출판의 거인이었다. 한 분야의 거인이란 그 분야의 본성을 그대로 구현하는 자다. 따라서 이 출판인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란 출판의 본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일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그리고 나처럼 책을 읽고 쓰는 일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이들에겐 그런 생각이 필연적인 것 같다. 저자들은 독자를 향해 글을 쓰고 독자들은 저자의 책을 읽는다. 읽고 쓰는 이 일에는 한 단어가 생략돼 있어서 사람들은 저자의 글이 별다른 매개 없이 독자에게로 날아가는 줄 생각할 때도 있다. 쓰기와 읽기 사이에 생략된 그 중요한 단어는 바로 ‘출판’이다. 이 출판이라는 말을 우리는 책이 만들어지는 작업 현장에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편집’이나 ‘기획’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세상의 모습이 어떤 그림으로 그려져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자, 즉 어떤 책이 세상의 모습을 그려 낼 수 있는지 가늠하고, 그런 책이 쓰일 수 있도록 쓰는 이의 정신을 일깨우는 자, 그리고 쓰인 것을 절실히 습득해야 하는 것으로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자―그것이 편집자 또는 기획자로서 출판인이 하는 일이다. 편집자의 이런 개념과 더불어 막스 브로트, 맥스 파킨스 등 전설적인 이름들이 역사 속에 등장했다. 어떤 책이 세상에 필요한지를 가늠하는 일은 인간의 매우 심오한 행위이다. 그 행위가 세상의 모습을 누구보다 앞서 파악하고 또 바꾸어 나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기가 가진 개념을 통해 세상의 상(像)을 그리고, 그다음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자기가 그린 그림에 맞추어 다듬어 나가는 행위는 바로 인간이 ‘주체’로서 하는 일이 아닌가. 오늘날 서양어에서 ‘서브젝트’(subject)라고 쓰는 ‘주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말 ‘휘포케이메논’의 번역어다. 이 말은 ‘밑에서 떠받쳐 주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체란 흘러가는 운명에 자신을 수동적으로 내맡기고 있는 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상의 터전을 닦고 만물이 서 있도록 떠받치는 자인 것이다. 즉 만물을 짊어지는 자이다. 그러니 주체의 비밀이란 사실 만물을 짊어짐, 바로 만물을 ‘책임지는 일’에 있다. 만물을 떠받치는 이 주체의 행위, 책임지는 일은 인간의 역사가 알려 주듯 책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이런 주체의 행위는 과거 낡은 유럽에 혁명을 불러와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 개입한 ‘백과전서’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이 백과전서만큼 집필의 힘 이상으로 기획과 편집의 노고가 책의 근본에 자리 잡은 경우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주체로서 자각한 시기인 ‘근대’와 인간이 세상의 그림을 설계하고 그 설계에 맞추어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작업의 표현인 ‘백과전서’가 서로 맞물려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체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곧 ‘책을 기획하는 주체’인 것이다. 출판이라는 주체의 이 작업이 위대한 까닭은 이 일이 독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만인의 참여 속에서, 즉 ‘공동체’를 이루며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출판이라는 말의 서양어 표현 ‘퍼블리케이션’(publication) 자체가 출판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임을 알려 준다. 저 단어의 뜻은 ‘공중(public·公衆)의 것으로 하기’다. 쓰는 일과 읽는 일은 반드시 서로 필요로 한다. 읽지 않는 글이란 생각할 수 없고, 글 없는 독서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누가 쓰는 자와 읽는 자를 서로 뗄 수 없이 묶어서 쓰기와 읽기의 공동체를 창출하는가? 바로 출판인이다. 출판인이 준비한 쓰기와 읽기 속에서 화합과 투쟁, 동의와 논쟁, 숭배와 비판이라는 공동체적 삶의 그림들이 펼쳐진다. 이런 공동체의 장을 탁월하게 마련해 주었던 이가 박맹호 회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상실을 깊이 애도한다. 그를 통해 목격한 모범적인 출판인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책을 통한 세상 그림의 능동적 설계자’라는 타이틀과 어떤 점에선 반대된다.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람들이 말하기 위해 설 수 있는 빈터를 마련해 주길 즐겼던 것이 그의 일상이다. 말하고 듣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이것보다 더 탁월하게 공동체의 터전을 닦고 보호할 수 있는 방식이 있는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책을 사랑하고 만들고 사라진 영원한 출판인

    책을 사랑하고 만들고 사라진 영원한 출판인

    한국 출판계의 거목인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2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4세. 1933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 한 칸에서 ‘올곧은 백성의 소리를 담는다’는 뜻을 담은 민음사를 연 ‘출판 1세대’다. 그가 1973년 처음 펴낸 ‘세계시인선’은 원문 번역을 시도하고 최초의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고인이 개발한 ‘국판 30절’ 판형은 국내 시집의 표준형으로 자리잡았다. 1974년에는 ‘오늘의 시인 총서’를 펴내 김수영, 김춘수, 고은, 박재삼, 황동규를 소개하며 시의 대중화에 기여했고, 1981년에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했다. 1976년 계간 문학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한 데 이어 이듬해 소설가 한수산을 제1회로 수상자로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수상작을 단행본으로 펴내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 상은 신인 작가들의 산실로 통하며 이문열, 한수산, 조성기, 최승호 등 우리 문학의 굵직한 인물들을 키워낸 자양분이 됐다. 고인은 문학뿐 아니라 문예이론 사상과 학술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여 기초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197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발간했던 ‘이데아 총서’를 통해 발터 베냐민의 문예이론 등을 국내에 소개했다. 1983년부터 16년 동안 발간된 ‘대우학술총서’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부터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까지 424권에 달한다. 1994년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딴 비룡소를 만들고 1996년 황금가지, 1997년 사이언스북스 등 자회사를 차례로 설립하며 민음사를 8개의 브랜드를 가진 대형 출판그룹으로 키웠다. 고인은 2005년 1월 아들 근섭씨에게 민음사 대표 자리를 물려주고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인은 한국단행본출판협의회 대표를 역임했고 2005년 45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으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 등을 치러냈다. 출판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국무총리 표창, 1985년 대통령 표창, 1995년 화관문화훈장, 2006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 서울대에 민음 인문학 기금 3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08년에도 서울대에 인문학 강좌 기금으로 2억원을 기부했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고인은 한평생 오직 한길, ‘책을 사랑하고 만들고 사라져 간’ 영원한 출판인이었다”며 “평생을 책이 사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출판문화의 개척자였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위은숙씨와 상희(비룡소 대표이사), 근섭(민음사 대표이사), 상준(사이언스북스 대표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24일 오전 6시. (02)2072-2020.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안태운 시인 35회 김수영 문학상

    안태운 시인 35회 김수영 문학상

    제3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안태운(30) 시인이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민음사가 4일 밝혔다. 수상작은 ‘탕으로’ 등 50편이다. 시상식은 다음달 2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강남역 카페 빈브라더스에서 낭독회로 열린다. 상금은 1000만원.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일상에 자리한 그림자 노동, ‘중산층 노예’ 낳다

    일상에 자리한 그림자 노동, ‘중산층 노예’ 낳다

    그림자 노동의 역습/크레이그 램버트 지음/이현주 옮김/민음사/336쪽/1만 6000원 “하는 일도 없는데 삶이 더 바빠졌다”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다. 하루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24시간인데 어쩐 일인지 시간이 줄어든 것 같다고들 한다. 정보혁명과 자동화가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번영은 우리에게 한가로운 시간을 안겨 줘야 마땅한데 어처구니없게도 항상 시간에 쫓기는 것은 왜일까. 저널리스트인 크레이그 램버트는 저서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 바쁜 현대인의 삶을 더욱 분주하게 만드는 주범은 바로 ‘그림자 노동’이라고 지적한다. 그림자 노동에는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고 회사나 조직, 가족이나 자신을 위해 행하는 모든 일이 포함된다. 스팸메일을 지우고, 비밀번호를 기억하느라 애쓰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장을 본 물건들을 쇼핑백에 넣고, 주식을 사고팔고, 재활용할 것을 분리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응답 시스템의 안내 메시지에 따라가거나 가구를 조립하는 것 등이 모두 알고 보면 그림자 노동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하느라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일찍이 오스트리아의 사회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임금에 기초한 상품 경제하에서 보수 없이 행하는 비생산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 일렀다. 집안일이 대표적이다. ‘하버드 매거진’에서 20년 넘게 필진과 편집자로 활동해 온 램버트는 그 개념에 착안해 오늘날 현대인이 보수도 없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들 때문에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의 책은 일상 전반에 폭넓게 파고든 그림자 노동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수많은 그림자 노동이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해 습관으로 자리잡았다”면서 “고대 그리스의 노예나 중세 유럽의 농노가 아닌데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자 노동은 현대의 생활방식에 ‘중산층 노예’라는 새로운 요소를 안겨 주었다”고 지적한다. 그림자 노동이 증가하는 것은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는 틈새에서 많은 일들이 교묘하게 개인과 소비자에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자동화 기기를 설치하고 직원들이 하던 일들을 ‘셀프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에게 떠맡기고 있다. 그림자 노동은 대체하기 쉽다고 여겨지는 초보적인 일자리, 저임금 미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구직 시장을 위축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대중화, 정보 생산과 공유의 용이함도 그림자 노동의 증가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한때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지식을 이제는 누구나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그림자 노동을 선택한다. 그림자 노동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을 직접 거래하면서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 여행사가 제시한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케줄에 따라 일정을 짜서 여행을 할 수 있다. 재활용은 원료와 매립지에 대한 수요를 줄일 뿐 아니라 에너지를 절약하고 공기 오염과 수질 오염, 플라스틱 공장의 온실가스 배출까지도 줄일 수 있다. 사회가 얻는 이런 이득은 막대한 그림자 노동 덕분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림자 노동은 해야 할 일로 하루가 이미 꽉 차 있는 사람들의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며 “그 결과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리는 동시에 자기 인생에 대한 통제권을 점점 더 포기하게 되는 자기 모순적인 21세기가 시작됐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그림자 노동이 야기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문제도 지적한다. 소비자는 계산원이나 점원, 영업사원 등과 대면 접촉하는 대신 기계를 상대하게 된다. 그림자 노동은 사람들을 고립된 자급자족 상태로 만듦으로써 인간의 조직을 해체시키고 만다. 저자는 경고한다. “그림자 노동을 하는 고객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는 자율적인 사고방식을 훈련받는다. 각자의 안전한 장소에 격리된 그림자 노동자들은 실제 사람들과 잡담을 주고받는 일도 피한다. 스스로 자동기계장치가 되기 쉽다. 이지적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디지털 정보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유명 웹툰작가 이자혜씨, ‘청소년 성폭행 방조’ 시인

    유명 여성 웹툰작가 이자혜(25)씨가 청소년 성폭행을 방조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이씨가 의혹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 여파로 이 작가의 단행본 출간이 중단됐다. 이번 사태는 이모씨가 지난 18일 인터넷에 웬툰작가와 얽힌 과거를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이씨는 “19살 때 당시 취미로 음악을 하고 디자인업계에 종사하던 36살 남성에게 성추행과 강간을 당했다”며 웹툰작가 L씨로부터 남성을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L씨가 두 사람에게 ‘성관계를 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데 이어 자신이 남성과 만나는 상황을 만화로 그렸다며 구체적인 작품명을 제시했다. 작가가 성폭행을 유발하도록 한 뒤 작품 소재로 썼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자신이 ‘웹툰작가 L씨’로 지목되자 19일 트위터에 “타인에 의해 성폭력을 모의하도록 한 점에 대해서 사과드리며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고 써 이씨의 주장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 작가는 2014년 데뷔했다. 이 작가의 만화 ‘미지의 세계’ 시리즈를 발행하는 출판사 유어마인드는 이날 “이 만화가 읽히는 것이 피해자에게 반복적이고 추가적인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사과했다. 이미 발행한 1∼2권은 재고를 회수하고 예약 판매 중인 3권은 예약을 중단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음사도 이씨가 표지를 그린 문학잡지 ‘릿터’ 2호를 회수하기로 했다. 릿터는 2호에서 ‘페미니즘’을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른 공간이 빚은 다른 언어들] 북촌에서… 삶의 소소한 만족을 보다

    [다른 공간이 빚은 다른 언어들] 북촌에서… 삶의 소소한 만족을 보다

    특정한 공간은 시인과 시인의 언어에 어떤 자취를 남길까. 그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시집이 최근 나란히 나왔다. 신달자(73) 시인은 두 해 전 이사한 서울 북촌의 한옥집에서 ‘생의 출발점과 종착지’를 실감했다고 시집 ‘북촌’(민음사)에서 토로한다. 재독 시인 허수경(52)은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로 이국의 땅에서 모국어로 새긴 시간의 지층을 쓰다듬는다. ‘봉숭아 씨’만 하고 ‘구절초 한 잎’만 한 방에 몸을 누인다. 시인은 그제서야 ‘나직한 귀향’을 실감한다. 두 해 전, 열 평짜리 한옥으로 터전을 옮기며 북촌의 풍경을 이룬 신달자 시인의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8길 26. 시인의 한옥 대문에는 명함 한 장만 한 당호가 붙어 있다. 공일당(空日堂). 원로 시인 김남조는 “혼자 사는 여자 집에 공(空) 자는 좀…”이라며 저어했지만 신달자 시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비우면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 비우면 새롭게 쌓이는 법/공이 만(滿)이 되는 것이라/혼자건 둘이건 비우건 쌓이건/다 같은 것이라/그 순간 시간이 출렁 섰다가 가네’(공일당) 북촌에서 보낸 시간은 그 믿음을 촘촘히 채워 준다. 곳곳을 걸을 때마다 “사랑의 또 다른 무늬”가 새겨지고 “열 평만 내 것인 줄 알았는데/북촌이 다 내 것”(내 동네 북촌)이라는 자족이 흐른다. 이번 시집의 출발선은 시인이 북촌으로 이사한 첫날 밤 그어졌다. 새 노트에 ‘북촌’이라는 글자를 새긴 게 시작이었다. 시인은 “익숙함이 내 마음을 가리기 전에, 감동이 있고 놀라움이 있을 때 쓰자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 조급함과 부지런함이 밀고 나간 70편의 시들이 이번 시집을 이뤘다. ‘주소 하나 다는 데 큰 벽이 필요 없다/지팡이 하나 세우는 데 큰 뜰이 필요 없다/마음 하나 세우는 데야 큰 방이 왜 필요한가/언 밥 한 그릇 녹이는 사이/쌀 한 톨만 한 하루가 지나간다’(서늘함) 옹색한 방이 불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외려 그곳에서 삶의 소소한 잔무늬가 주는 위안과 가치를 깨닫는다. ‘여기가 내 생의 중심인 것 같은/이곳이 내 혼의 종착지인 것 같은/아니/내 생의 출발 지점같이’(가회동 성당 1) 느껴지는 이유다. 노년의 시인 안에 열세 살 속마음이 고향집 툇마루를 밟던 발바닥처럼 꼼지락거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애걔걔/강아지 혓바닥만 한 툇마루를 봤나/내 귀만 한 툇마루에 햇살 비치면/발바닥이 저릿하네/강을 천 개나 건넜는데/내 몸에/어린 발바닥 꼼지락거림이 아직 남았는가’(툇마루) 늘 ‘기쁨의 계단을 오른’ 것은 아니다. 시인은 “북촌에 사는 동안 내내 아팠다”고 토로한다. “지병의 통증이 내 의욕을 뿌리째 흔들었지만 북촌에 대한 의욕으로 통증을 견디어 내기도 했다”는 그는 “북촌 사랑에 대한 작은 미소 하나쯤으로 생각하고 이 시집을 내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다른 공간이 빚은 다른 언어들] 타국에서… 모어를 새로 만나다

    [다른 공간이 빚은 다른 언어들] 타국에서… 모어를 새로 만나다

    특정한 공간은 시인과 시인의 언어에 어떤 자취를 남길까. 그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시집이 최근 나란히 나왔다. 신달자(73) 시인은 두 해 전 이사한 서울 북촌의 한옥집에서 ‘생의 출발점과 종착지’를 실감했다고 시집 ‘북촌’(민음사)에서 토로한다. 재독 시인 허수경(52)은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로 이국의 땅에서 모국어로 새긴 시간의 지층을 쓰다듬는다. “망각의 그늘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기억, 그 기억을 어떻게 보듬는가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질을 정해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기억의 일은 ‘어떻게 가장 오래 지속되는 장례식을 지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6일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허수경 시인이 독일에서 보내온 수상 소감이다. 상은 지난해 펴낸 산문집 ‘너 없이 걸었다’를 향한 것이지만, 그의 소감은 이번 시집을 품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중략)빙하기의 역에서/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헤어졌다 헤어지기 전/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내 속의 태아는 답했다, 잘 가’(빙하기의 역)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노래하는”(이광호 문학평론가) 시인의 언어가 영그는 곳은 이국의 땅이다. 1992년 독일로 떠난 그는 뮌스터에 움을 트고 고고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시의 자리로 돌아왔다. 내년이면 등단 30년을 맞는 시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모어(母語)와 이별하고 재회한다”고 했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후 5년 만에 낸 이번 시집은 이렇듯 독일어로 살면서 모국어로 사유하는 ‘긴장’ 속에서 새로 발견되고 잉태된 시어들로 수놓였다. 폭력적인 세계를 서늘하게 응시하고 약자들을 위무하는 그의 성정은 여전하다. ‘그들은 천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을/내가 어제 폭파했다고 했다/그 수도원에는 이 시장에 더 존재하지 않는/방언들을 모은 자료실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니까 내가/그 말들을 함께 폭파한 거라고 했다//나는 어제 집에만 있었는데!/천년을 살아도 낯선 내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는데!//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잠 속에서 깨어나면/투명한 벌레 한 마리가 될 날씨다’(카프카 날씨 1)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나는 역을 떠났다/다음 역을 향하여’라는 시인의 말은 다시 고대하게 한다. 그의 새 언어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봄의 첫 번째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 출간

    김봄의 첫 번째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 출간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김봄의 첫 번째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가 출간되었다. 김봄의 등단작 ‘내 이름은 나나’는 십대 폭주족을 소재로 미성년 ‘루저’들의 좌절을 다룬 단편이다. 작가는 줄곧 어린 청춘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청춘’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것이 아닌 풋사과를 씹었을 때의 떫고 아린 맛에 가깝다. 나이 어린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을 통해 작가는 애정 없는 어른과 팽개쳐진 아이들이 주고받는 폭력의 현장을 보여 준다. ‘아오리를 먹는 오후’에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 궤도를 이탈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른의 입장에서 ‘문제아’, ‘비행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골치 아파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치워 두고 싶어 한다. 눈앞에 띄지만 않으면 좋을 존재들. 김봄의 소설은 그들을 눈앞으로 불러낸다. 오토바이 폭주족부터(내 이름은 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강간하는 히키코모리 소년(문틈), 조건 만남으로 돈을 벌고 파트너를 돌려 가며 섹스하는 가출 청소년 집단(절대온도)까지, 작가는 영리하고 예쁜 아이들만 보고 싶어 하는 세상에 소년 범죄자들의 만행을 핍진하게 기록한다. 이때 자신들의 범죄와 일탈을 털어놓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없다. 독자들은 그들이 들려주는 폭력의 장면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목소리 뒤에 숨은 비정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모습까지 보게 될 것이다. 김봄 지음 | 민음사 | 288쪽 | 1만2000원 |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금, 이 영화] ‘바다의 뚜껑’

    [지금, 이 영화] ‘바다의 뚜껑’

    이상한 영화 제목이다. ‘바다의 뚜껑’이라니. 알고 보니 같은 이름의 원작이 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2004년 발표한 소설이다. 찾아보니 이 책도 같은 이름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에도 잠깐 등장하는 이 노래의 가사가 소설 맨 앞에 실려 있다. 하라 마스미가 부른 곡이다. “여름의 마지막 해수욕 누가 제일 늦게 바다에서 나왔나/ 그 사람이 바다의 뚜껑 닫지 않고 돌아가/ 그때부터 바다의 뚜껑 열린 채 그대로 있네/ 벚꽃, 달리아, 맨드라미/ 해바라기, 데이지, 개양귀비/ 꽃들은 왜 또 피고 지는가/ 그대 없는 이 세상에”(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옮김, ‘바다의 뚜껑’, 민음사, 2016) 그대 없는 이 세상에 열매가 열리고, 별이 돋는다면서 노래는 길게 이어진다. 쉽게 말하면 이 음악은 상실의 슬픔을 전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노래는 물론이고, 노래의 정서를 표현하려고 한 소설과 그것을 바탕에 둔 영화의 의미까지 단순하게 뭉뚱그려진다. 하라 마스미가 상실의 슬픔이 지속되는 까닭을 닫아야 할 것을 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읊는다면,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것을 어떻게 닫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를 얻기보다 뭔가를 잃으며 사는 일이 인생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잃음 자체가 아니라 잃고 난 뒤의 어떤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되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실은 죽음과 같다. 그러니까 상실한 다음에 우리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애도의 과정이다. 애도는 사라진 대상을 위한 진혼이자, 남은 자들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도요시마 게이스케 감독의 연출 포인트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도쿄에서 생활하다 귀향한 마리(기쿠치 아키코)는 빙수 가게를 연다. 일손을 돕는 사람은 마리의 집에 잠시 의탁 중인 하지메(미네 아즈사)다. 두 여자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태다. 도쿄에서의 삶은 마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집안 내 재산 분쟁 탓에 이곳으로 피신한 하지메도 불행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빙수 가게에서 같이 일하면서,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면서, 한집에서 먹고 자면서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회복해 간다. 극적인 위로나 치유의 순간은 없다. 각자의 애도는 담담하게 이루어진다. 이런 장면들은 당밀맛·귤맛만 파는 마리 가게의 빙수 메뉴처럼 심심하다. 단출하지만 정성 들여 만든 깊은 맛이 난다는 뜻이다. 애도를 잘한다고 흉터가 안 남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충실한 애도를 하고 나면, 흉터를 감추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어느 누구도 상처 없이 살기는 불가능하다. 상처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가 아문 흔적을 간직한 채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슬픔이 솟구치는 바다의 뚜껑이 닫힌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책꽂이]

    [책꽂이]

    수면혁명(아리아나 허핑턴 지음, 정준희 옮김, 민음사 펴냄) 수면 박탈의 시대, 일에 매몰돼 소진되어 가는 현대인에게 ‘잠’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통찰을 담았다. 444쪽. 1만 6800원. 좋은 치과의사를 만나는 10가지 똑똑한 방법(사이토 마사토 지음, 조은아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좋은 치과의사와 나쁜 치과의사를 구별하는 법, 나이가 들어도 치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 등에 대해 일본의 치과의사가 쓴 보고서. 224쪽. 1만 3000원. 프레너미(박한진·이우탁 지음, 틔움 펴냄) 사드, 남중국해 분쟁으로 드러난 미국과 중국의 욕망을 이해하며 우리의 대미·대중 전략을 풀어 썼다. 310쪽. 1만 7000원. 그 아이만의 단한사람(권영애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펴냄)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308쪽. 1만 5000원. 치병적곡(배형순 지음, 섬앤섬 펴냄) 문화관광해설사인 저자가 고구려인의 정신과 철학, 전쟁 이야기, 풍족한 생활상과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224쪽. 1만 2500원. 조랑말과 나(홍그림 지음, 이야기꽃 펴냄) 함께 자라온 조랑말과 아이의 파란만장 여행기. 시련을 거쳐 더 단단해진 아이와 조랑말의 관계를 따뜻한 그림체로 표현했다. 44쪽. 1만 2000원.
  • “농담은 내 삶의 방편… 소설 속에서 살 수 있어 즐거워”

    “농담은 내 삶의 방편… 소설 속에서 살 수 있어 즐거워”

    소설가 김중혁(45)과 ‘농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생의 비밀은 쓸데없는 것과 농담에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농담이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자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에세이나 소설은 농담처럼 쉽게 던지는 듯하지만, 삶에 관한 사유가 슬며시 깃들어 있다. 이런 그가 시답잖은 농담 속에 진한 슬픔을 배태한 네 번째 장편 ‘나는 농담이다’(민음사)를 펴냈다.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된 우주 비행사 이일영, 어머니를 잃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송우영은 닮은 듯 닮지 않은 이부(異父)형제다. 소설은 일영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지구로 보내는 메시지와 우영이 주변 사람들을 소재로 한 농담이 교차하며 결말로 나아간다. 우주 미아가 된 일영과 고아가 된 우영은 ‘슬픔’이란 교집합이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슬픔과 만날 수 없는 슬픔이다. 다른 점이라면 ‘간절함’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간절하고 간절하게’ 살길 바랐다. 하지만 어머니가 버린 아들 일영은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반면 어머니가 지킨 아들 우영은 헛발질 같은 농담으로 현실과 막을 친다. 작가는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어찌 보면 한 사람일지 모른다”며 “가족이지만 가족이라 할 수도, 핏줄을 나누고 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형제의 극단과 양면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형제를 이어 주는 끈은 죽은 어머니가 남긴 열두 통의 편지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편지를 발견한 우영은 일영을 향한 어머니의 그리움과 그의 사고 뒤 받은 충격을 알게 된다. 일영이 ‘실종’ 상태지만 ‘고인’이 될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였다.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계속 말을 해야 하는 운명인 우영은 어머니, 형, 의붓아버지 등 주변인이나 성적인 소재로 농담 속을 유영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일영 역시 지구, 더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설픈 농담을 전하며 절망을 애써 지운다. 작가는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게 살아갈 때 받게 되는 상처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위해 던지게 되는 농담과 같은 것”이라며 “이런 농담은 스스로 웃고 싶지만 웃을 수 없어 던지는 슬픈 농담인 동시에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우영의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소설 속 우영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말 속에 살 겁니다. 말 중에서도 농담 속에서 살 겁니다. 형체는 없는데 계속 농담 속에서 부활하는 겁니다.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죠. 아니지, 참, 죽지 않는 거죠?” 이는 작가의 고백과도 겹친다. “문자와 문장과 문단 사이에서 죽치고 있을 작정이고,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그는 “소설 속에서 살 수 있어 즐겁다”고 말한다. 결국 전해지지 못한 어머니의 편지, 연인에게 가닿지 못한 일영의 메시지는 어떤 운명을 맞을까. ‘쓰인 편지는 반드시 전달되어야 하며, 이야기는 반드시 들어야 할 사람에게 가야 한다’는 힌트 정도면 상상의 여지는 충분할 것이다. 남은 것은 하나다. 우주를 유영하듯 농담 속을 거닐며 서서히 배어드는 슬픔을 음미하는 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장강명 댓글부대 ‘오늘의 작가상’

    장강명 댓글부대 ‘오늘의 작가상’

    출판사 민음사가 주관하는 ‘2016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에 장강명(41)의 장편소설 ‘댓글부대’가 선정됐다. 민음사는 1일 수상작을 발표하며 “속도감 있는 서사, 뛰어난 가독성, 사회의 문제적 징후를 포착하고 거침 없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에너지에 심사위원들이 박수를 보냈다”고 밝혔다.
  • 집념의 동양고전연구회 24년 만에 ‘사서’ 완역

    집념의 동양고전연구회 24년 만에 ‘사서’ 완역

    국내 동양철학자들이 참여한 ‘동양고전연구회’가 24년 동안 주석을 달고 번역한 중국 고전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가 민음사에서 완역 출간됐다. 논어는 1992년 시작해 꼭 10년 만인 2002년 역주본으로 출간됐다. 이번 책은 개정본판이다. 중용과 대학은 8년이 걸렸고 맹자는 3년 만에 종료됐다. 논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첫 역주본들이다. 고전인 사서의 우리말 번역은 400여년 전 언해본 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논어의 경우 번역서만 최소 100여종, 해설서까지 포함하면 700여종에 이르지만 주석에 따라 의미가 다르거나 생소한 고어들이 적지 않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동양고전연구회는 1992년 6월 이강수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중국 철학 전공자들로 구성돼 동양 사상의 근본 문헌이자 유학의 경전인 ‘사서’를 첫 번역 작업 대상으로 정했다. 동양철학자 12명이 24년간 매달린 완역 작업은 방대한 주석을 종합하고 경전의 원 뜻을 최대한 살리는 데 노력을 다했다. 번역문은 격렬했던 토론을 거쳐 합당한 뜻과 용어를 찾아 오역을 예방했고 사서 모두 현대적 언어로 풀어 썼다. 편집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논어와 맹자는 원문과 주석을 왼쪽 면에, 번역문과 해설은 오른쪽 면에 배치했다. 대학과 중용은 번역 전문을 실었다. 2002년 동양고전연구회가 펴낸 논어는 당시 ‘교수신문’이 선정한 ‘최고의 고전 번역서’로 꼽힌 바 있다. 20여년의 완역 작업 중 연구자들이 바뀌면서 최종 12명이 참여하게 됐고 김병채 한양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고인이 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노벨상 작가의 색다른 ‘세상 바라보기’

    노벨상 작가의 색다른 ‘세상 바라보기’

    다른 색들/오르한 파무크 지음/이난아 옮김/민음사/660쪽/2만 3000원 참 얄팍하다. 책이 지녔을 여러 함의의 무게들을 가늠하기보다 저자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새 책 ‘다른 색들’을 가벼이 표현하자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다양한 키워드로 풀어내는 인생의 이야기’쯤이 되겠다. 하지만 책은 그리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저자의 삶에 좀더 무게를 두면 ‘노벨상 수상 작가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졌던 한 노작가의 삶이 응축된 책’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책을 열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언어들이 먼저 눈에 박힌다. 이를 저자가 다른 이의 글에 대해 표현한 문장을 다시 인용해 표현하면 “정확한 단어의 완벽한 선택과 산문에서 드러나는 단호함이 어찌나 아찔한지 글은 순식간에 마법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누구나 그렇듯, 저자에게도 아버지는 각별한 의미였던 듯하다. 아버지 이야기에서 시작해 아버지 이야기로 끝을 맺으니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 소감문에서 밝힌 아버지 이야기는 참 감동적이다. 저자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가방 하나를 받는다. 당신께서 생전 들고 다니던 가방이다. 필경 문학도를 꿈꿨던 아버지가 틈틈이 메모해둔 습작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을 텐데, 저자는 선뜻 가방을 열지 못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버지의 메모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서다. 정작 중요한 건 두 번째다. 아버지의 가방에서 진정 위대한 문학이 나왔을 때다. 이는 저자가 발견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또 다른 내면이었다. 작가가 아닌 오로지 아버지로서만 남길 바랐을 저자의 인간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읽힌다. 반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두 번째 장 ‘나의 아버지’ 말미에 나온다. 저자는 “모든 남자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대체 왜 새로운 삶이 아닌 죽음이 시작된다는 것일까. 기억하시라. 책 제목이 ‘다른 색들’이란 것을 말이다. 책엔 아버지뿐 아니라 여러 스펙트럼의 글들이 담겨 있다. 형식이 에세이일 뿐 담긴 내용은 바람에 날릴 만큼 가벼운 것부터, 돌덩이처럼 무거운 것까지 다양하다. 가족이 함께한 소소한 일상, 어린 시절의 낡고 소중한 추억들, 작가의 삶을 지배하는 문학과 집필 등 내밀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터키 인권의 현실, 정부 비판으로 인해 겪은 소송, 대지진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사회적 문제점, 유럽 내 터키의 현주소 등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도 함께 담겼다. 저자는 2006년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을 들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열대야도 오싹~ ‘납량 스릴러 소설’ 북캉스족 책임진다

    열대야도 오싹~ ‘납량 스릴러 소설’ 북캉스족 책임진다

    수은주가 30도를 넘나드는 슈퍼 열대야로 밤을 잊은 이들, 혹은 꽉 막힌 고속도로 체증이 끔찍하고 바가지요금에 진저리 치는 ‘북캉스’(책+바캉스)족의 더위를 식혀 줄 ‘스릴러 소설’이 쏟아지고 있다. 올여름에는 일본 추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하다. 3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가장 많이 팔린 스릴러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30주년 기념작인 ‘라플라스의 마녀’다. 교보문고 상반기 판매 순위 50위 가운데 그의 작품 17권이 순위에 들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는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추리·스릴러 작가다. 한국 작가로는 정유정이 유일하게 ‘종의 기원’(2위), ‘7년의 밤’(5위)으로 추리·스릴러 소설의 여왕으로 자리잡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더불어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음의 방정식’, ‘사라진 왕국의 성’, ‘모방범’ 등이 스테디셀러를 기록 중인 가운데 신작으로는 ‘고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비채), 사진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미카미 엔의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아르테), 청춘 학원물 추리소설로 인기 있는 아오사키 유고의 ‘도서관의 살인’(한스미디어) 등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미셸 뷔시의 작품 ‘내 손 놓지 마’(달콤한책)도 여름 시장을 겨냥해 출간됐다. 미셸 뷔시는 ‘그림자 소녀’로 프랑스 문학계에 돌풍을 일으킨 후 최고 반열에 오른 작가다. 신작은 해외령인 레위니옹 섬을 배경으로 대자연의 풍광과 역사, 사회, 문화를 관통하며 서스펜스를 버무려냈다. 평화롭고 나른한 열대의 시간을 만끽하던 어느 날, 호텔 방에서 핏자국만 낭자한 채 아내가 사라진 뒤 용의자로 떠오른 남편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딸을 데리고 섬 반대편으로 도망치면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펼쳐진다. 스릴러 소설 팬이라면 최근 출간된 스웨덴 소설 ‘크로우 걸’(민음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3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도덕적 한계와 긴박감이 넘치는 범죄 수사, 스릴러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페미니즘적 시선이 섞인 등장인물과 함께 정신 분석학적 내용으로 극찬을 받았다. 저자 이름인 에리크 악슬 순드는 스웨덴 작가 예르케르 에릭손과 호칸 악슬란데르 순드퀴스트가 함께 쓰는 필명이다. 끔찍한 소년 연쇄 살해사건을 둘러싼 아동 인신매매와 아동학대·폭력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로 제작 중이거나 판권이 팔려 곧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 시나리오 작가인 사샤 아랑고의 소설 데뷔작 ‘미스터 하이든’(북폴리오)은 전 세계 20여개국에 저작권을 수출하며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심리 묘사가 탁월한 걸작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았다.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부남 헨리 하이든이 내연녀 베티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고교 교사인 메리 쿠비카를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만든 데뷔작 ‘굿걸’(레디셋고)은 출간 4개월 만에 미국 인기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의 제작사인 어나니머스 콘텐츠가 스크린 판권을 사들였다. 미국 시카고 명문가의 막내딸 미아가 납치됐다가 몇 달 만에 귀환하지만 기억을 모두 잃은 채 스스로를 정체불명의 클로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작가 루스 웨어의 데뷔작인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예담)는 배우 리즈 위더스푼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루스 웨어는 이 소설로 ‘현대판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노르웨이 작가 사무엘 비외르크의 첫 스릴러 소설인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황소자리)는 베테랑 수사관이 숲속에서 인형 옷을 입은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겪는 이야기로, 전 세계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작가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영화화가 기다려지는 작품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학의 또 다른 진화, 문예지 ‘색다른 초대’

    문학의 또 다른 진화, 문예지 ‘색다른 초대’

    민음사 새 문예지 ‘릿터’ 공개 아이돌·드라마 등 장르 다양화창비 새 잡지·문지 혁신호 출간 “스타 작가 의존성 여전” 지적도 문예지가 ‘변혁의 시대’를 맞았다. 지난해 민음사의 ‘세계의 문학’ 종간은 문예지의 쇠락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졌다. 정부의 문예지 지원 삭감으로 ‘폐·휴간’ 사태도 잇따랐다. 하지만 최근 문예지들은 스스로 ‘변신’을 꾀하며 외면하던 독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민음사는 2일 “‘세계의 문학’의 전통을 이으면서 혁신을 가한다”는 기치를 내세운 새 문학잡지 ‘릿터’(Littor)를 공개했다. 영어로 문학(Literature)과 ‘~하는 사람’(tor)이란 뜻의 접미사를 합쳐 ‘문학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릿터’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이 편집위원단을 구성해 이끌어 가던 기존 문예지와 달리 편집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다. 기존의 문학 콘텐츠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의 인터뷰부터 영화, 드라마, 만화, 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품고 있다. 책임편집을 맡은 서효인 민음사 국내문학팀장은 “문학을 평소에 많이 찾아보는 독자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팬들도 문학의 독자로 들어왔으면 했다. 그래서 그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부분을 초대장처럼 넣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건으로 촉발된 문학권력 논란에 휩싸였던 주요 문학 출판사들도 하반기 새로 창간하거나 기존의 것을 재정비한 문예지를 잇따라 내놓을 예정이다. 창비는 30~40대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편집위원을 맡아 이끄는 젊은 감각의 문예지를 이르면 오는 10월 선보인다. 강영규 창비 문학출판부 부장은 “기존 문예지나 문단 질서에 편중된 작가군에서 벗어나 지역, 세대 구분 없이 주목받지 못하던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장르·르포 문학 등도 아울러 문학의 외연을 확장할 것”이라며 “종이잡지뿐 아니라 온라인도 연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간 ‘문학과 사회’(문학과지성사)도 이달 말 출간될 가을호부터 ‘혁신호’로 꾸민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문학 담당 편집장은 “‘문학과사회’ 본권에 별권을 더해 2권으로 펴낼 예정이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논문 등을 적극 소개하는 등 그간 ‘문사’가 견지해 온 인문사회학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이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나란히 창간 1주년호를 낸 ‘악스트’(은행나무)와 ‘미스테리아’(문학동네)는 ‘문예지도 독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소설가들이 꾸려 가는 ‘악스트’는 매호마다 1만부가 소진되고 1, 4, 5호는 품절돼 “중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만큼 호응이 높다. 추리소설 마니아층을 겨냥한 ‘미스테리아’도 창간호 5000부에 이어 매호 4000여부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꾸준하다. 전통적인 문예지의 형태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의 구미에 맞는 감각적인 디자인·편집에, 내용 면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꾀하면서 차별화를 이뤄냈다는 평을 받는다. 새로운 형태의 문예지들이 잇따라 생겨나는 현상에 대해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침체를 벗어나려는 고육책이기도 하지만 창작집단과 독자들의 다양성, 일반인들의 높아진 인문학적 소양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이에 따라 평론가 등 전문가들이 생산한 문학 담론이 중심인 전통적인 문예지에서 벗어나 출판사 편집자가 기획하고 등단, 비등단 작가를 가리지 않는 ‘경계 해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문학의 또 다른 진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형식의 변화가 내용의 변화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새로 선보이는 문예지들이 출판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성, 스타 작가에 대한 의존성 등 기존 문예지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며 “디자인의 혁신, 판매 부수의 증가도 긍정적이고 중요한 현상이지만 얼마나 새로운 글쓰기와 담론, 글쟁이들을 배출하느냐가 진정한 혁신일 것”이라고 짚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21세기 新세계질서’ 美·中에 달렸다

    ‘21세기 新세계질서’ 美·中에 달렸다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헨리 키신저 지음/이현주 옮김/민음사/460쪽/2만 5000원 모든 문명 속에는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완전하게 성공한 세계 질서는 없었다는 게 사가들의 일관된 평가이다. 시민을 목표로 삼은 테러가 연발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세계 질서.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질서는 어떤 것일까. 지난 세기, 세계 정치의 격류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역시 이 책에서 지금의 질서 판을 깨고 새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각각의 질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균형을 맞춰 왔고, 어떤 상태인지, 국가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가고 있는지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현대 ‘최고 외교 전략가’란 별명이 괜한 게 아님을 실감케 한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럽과 이슬람, 중국, 미국에서 4개의 세계 질서 개념이 출현했었다. 하지만 따져 보면 어느 것도 보편적 동의를 얻지 못했다. 한마디로 실패한 것이다. 책의 장점은 그 세계 질서의 실패 과정을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해 국가운영 전략을 제시한 점이다. 특히 갈등 해결을 위해 ‘힘의 균형’과 ‘정당성’이 뒷받침되는 세계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돋보인다. 저자는 세계 질서와 관련해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본다. “국제 체제에 대한 국가들 간 합의 가능한 정의 혹은 추구할 만한 가치의 공통이해가 부족하다.” 문제 해결을 이끌어 가는 원칙이나 한계, 혹은 최종 목적에 대한 주요 행위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이들의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게 의무라고 여기는가 하면 중국인들은 2000년 동안 천하가 중국 황제의 속국이라 여겨 왔다. 미국 역시 스스로 ‘세계적인 등불’로 자신을 치켜세우며 여전히 자신들의 가치가 보편 타당성을 지닌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질서의 전환에 미국과 중국의 역할을 비중 있게 놓는다. “미국과 중국, 문화도 전제도 다른 두 거대한 나라는 모두 대내적으로 근본적 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두 나라가 경쟁관계,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협력관계로 바뀔지에 따라 21세기 세계질서의 중요한 전망이 형성될 것이다.” 외교 경험에 바탕한 중국·미국의 외교 차이점 부각도 흥미롭다. ‘외교문제를 미국은 실용적으로, 중국은 개념적으로 본다’ ‘미국은 한번도 안전을 위협할 주변세력을 가진 적이 없었지만, 중국은 늘 주변세력의 위협을 견디며 살아왔다’. 양국이 모두 스스로 ‘특별한 나라’로 여기는 만큼 적과 동지가 명백하지 않은 외교적 ‘애매모호함’은 이 지역 평화 유지에 긴요하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의 관련성도 들춰진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상 때 평양, 원산까지만 진격했다면 통일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방안을 추진했다면 중국 국경선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서 북한의 전쟁 수행 능력을 대부분 파괴하고 북한인구의 90%를 통일된 한국에 흡수했을 것으로 본다.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공통입장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는 평가가 눈에 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결과를 부를 전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강 끌고 정유정 밀고… ‘소설의 반격’ 시작됐다

    한강 끌고 정유정 밀고… ‘소설의 반격’ 시작됐다

    ‘소설의 반격’이 시작됐다. 올 초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던 한국 소설은 지난 5월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정유정의 신작 발표 등 호재를 맞아 출판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19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국 소설 판매는 올 1월 1일부터 지난 17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2.3%(권수 기준) 급성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9.3%로 처참한 성적을 냈던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판매 신장률은 최근 5년간 같은 기간의 수치를 따져 봐도 최고치다. ●맨부커상 호재에 신선한 작품들 한몫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는 50만부,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행나무)은 15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1, 2위(한국출판인회의 기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3년 ‘정글만리’(해냄)로 150만부를 팔아 치운 밀리언셀러 작가 조정래의 신작 ‘풀꽃도 꽃이다’(해냄)도 초반 기세가 무섭다. 지난 12일 출간된 책은 일주일 만에 1·2권 각각 5만부씩 10만부 판매된 데 이어 추가로 10만부를 제작 중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소설 담당 구환회 MD는 “한강, 정유정이라는 대형 이슈 외에도 이기호 소설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등 젊고 신선한 감각의 작품들이 우리 소설 지형을 다채롭게 만들었다”며 “최근에는 조정래 신작이 출간과 동시에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시장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소설이 휴가철인 여름 책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데다 하반기에도 박범신, 성석제, 하성란, 천명관, 정이현, 김중혁, 장강명, 알랭 드 보통 등 주요 국내외 작가들의 신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성석제·장강명 등 하반기 풍성한 신작 다음달 선보일 소설 목록부터 풍성하다. 이야기꾼 성석제의 신작 소설집(제목 미정·문학동네)이 8월 말 출간된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과 두 번째 소설집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단편 10편을 모은 ‘첫사랑’도 동시에 나온다. 괴물로 태어나거나 괴물이 돼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경계 없는 악의 세계를 그린 백민석의 장편 ‘공포의 세기’(문학과지성사), 1990년대 부산 건달들의 짠내 나는 인생을 담은 김언수의 한국형 누아르 ‘뜨거운 피’(문학동네)도 다음달 서점가에 깔린다. 김중혁 작가는 올여름에만 두 편의 소설을 발표한다. 코미디언과 우주비행사인 이복형제를 그린 경장편 ‘나는 농담이다’(민음사)가 8월, 비행 중 돌연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1971년의 기적’(스윙밴드)이 9월 출간 예정이다.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은 소설가 장강명도 하반기 두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장편 스릴러 ‘우리의 소원은 전쟁’(위즈덤하우스)이 10월, SF소설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은행나무)가 12월 독자들과 만난다. ●모바일 연재물·해외 기대작들 출간 대기 9월에는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해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 책으로 잇따라 묶여 나온다. 아비를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떠돌이가 된 남자의 인생 역정을 그린 박범신 작가의 ‘유리’(은행나무), 인천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엮은 천명관의 장편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가제·위즈덤하우스)다. 정이현 작가의 새 소설집(제목 미정·문학과지성사)은 10월, 하성란 작가의 장편 ‘여덟 번째 아이’(창비)는 12월 출간 예정이다. 해외 작가들의 기대작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새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이 다음달 말 선보인다. 국내에서만 소개된 정이현 작가와의 공동 기획 소설 ‘사랑의 기초’를 제외하고 작가가 20년 만에 쓴 소설인 데다 결혼 이후 내놓은 작품이라 과거 연애 3부작과 달리 결혼 생활의 민낯과 관계에 대한 통찰을 드러내 관심을 모은다. 10월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문학동네)을 읽을 수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함께 그의 대표 전쟁 연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살아남은 소년들과 생존자, 희생자 어머니들의 증언으로 써내려 간 통렬한 논픽션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소설의 반격’이 시작됐다

    ‘소설의 반격’이 시작됐다

     ‘소설의 반격’이 시작됐다. 올 초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던 한국 소설은 지난 5월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정유정의 신작 발표 등 호재를 맞아 출판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19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국 소설 판매는 올 1월 1일부터 지난 17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2.3%(권수 기준) 급성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9.3%로 처참한 성적을 냈던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판매 신장률은 최근 5년간 같은 기간의 수치를 따져 봐도 최고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는 50만부,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행나무)은 15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1, 2위(한국출판인회의 기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3년 ‘정글만리’(해냄)로 150만부를 팔아 치운 밀리언셀러 작가 조정래의 신작 ‘풀꽃도 꽃이다’(해냄)도 초반 기세가 무섭다. 지난 12일 출간된 책은 일주일 만에 1·2권 각각 5만부씩 10만부 판매된 데 이어 추가로 10만부를 제작 중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소설 담당 구환회 MD는 “한강, 정유정이라는 대형 이슈 외에도 이기호 소설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등 젊고 신선한 감각의 작품들이 우리 소설 지형을 다채롭게 만들었다”며 “최근에는 조정래 신작이 출간과 동시에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시장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소설이 휴가철인 여름 책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데다 하반기에도 박범신, 성석제, 하성란, 천명관, 정이현, 김중혁, 장강명, 알랭 드 보통 등 주요 국내외 작가들의 신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선보일 소설 목록부터 풍성하다. 이야기꾼 성석제의 신작 소설집(제목 미정·문학동네)이 8월 말 출간된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과 두 번째 소설집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단편 10편을 모은 ‘첫사랑’도 동시에 나온다. 괴물로 태어나거나 괴물이 돼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경계 없는 악의 세계를 그린 백민석의 장편 ‘공포의 세기’(문학과지성사), 1990년대 부산 건달들의 짠내 나는 인생을 담은 김언수의 한국형 누아르 ‘뜨거운 피’(문학동네)도 다음달 서점가에 깔린다.  김중혁 작가는 올여름에만 두 편의 소설을 발표한다. 코미디언과 우주비행사인 이복형제를 그린 경장편 ‘나는 농담이다’(민음사)가 8월, 비행 중 돌연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1971년의 기적’(스윙밴드)이 9월 출간 예정이다.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은 소설가 장강명도 하반기 두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장편 스릴러 ‘우리의 소원은 전쟁’(위즈덤하우스)이 10월, SF소설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은행나무)가 12월 독자들과 만난다.  9월에는 모바일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해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 책으로 잇따라 묶여 나온다. 아비를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떠돌이가 된 남자의 인생 역정을 그린 박범신 작가의 ‘유리’(은행나무), 인천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엮은 천명관의 장편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가제·위즈덤하우스)다.  정이현 작가의 새 소설집(제목 미정·문학과지성사)은 10월, 하성란 작가의 장편 ‘여덟 번째 아이’(창비)는 12월 출간 예정이다.  해외 작가들의 기대작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새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이 다음달 말 선보인다. 국내에서만 소개된 정이현 작가와의 공동 기획 소설 ‘사랑의 기초’를 제외하고 작가가 20년 만에 쓴 소설인 데다 결혼 이후 내놓은 작품이라 과거 연애 3부작과 달리 결혼 생활의 민낯과 관계에 대한 통찰을 드러내 관심을 모은다.  10월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문학동네)을 읽을 수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함께 그의 대표 전쟁 연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살아남은 소년들과 생존자, 희생자 어머니들의 증언으로 써내려 간 통렬한 논픽션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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