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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주자 인터뷰] (1) 새누리당 이재오·추영례 부부

    [대선주자 인터뷰] (1) 새누리당 이재오·추영례 부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왜 당신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고. 부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남편의 직업은 정치인이라고 했던가. 손님 대접을 준비하던 부인 추영례(63)씨를 서둘러 앉히니, 이내 그 이유가 쏟아진다. 민망해서일까.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멍하니 종종 천장을 응시하곤 했다.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단독주택의 작은 정원에는 벌써 여름이 가득 찼다. 은행에 담보로 잡힌 채. 이 부부는 기탁금 등 대선 경선 자금을 마련하느라 30년 거처를 맡겨 놓은 터였다. →언젠가 “우리 남편은 대통령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한 게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추영례)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었다. 살아온 길 때문이었다. 자신보다는 대의, 가족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한 게 한결같았다. 내 남편은 대통령을 할 정도의 양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차기 대통령의 덕목 중 가장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청렴, 그리고 국민들과의 소통이 아닐까. →이 의원이 소통을 잘한다는 근거가 있나. -(이재오) 소통을 잘하니까 서울에서 5선(選) 하지 않았을까. 은평은 강북인 데다 야성이 강한 곳이다. 소통만큼은 잘하니까 당선됐을 거다. 아니면 주민들이 바꾸지 않았을까. →그럼, 한번 낙선한 것은 소통이 안 돼서인가. -(이) 내적 요인보다 외적 요인이 많았다고 본다. 대통령 취임하고 두 달도 안 된 시기라 야당 공세도 있었고 4대강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 몰려왔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지역에 소홀했기 때문일 거다. 대통령 당선됐으니 나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제 권력이 있으니까 주민들도 힘을 실어 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정치하는 동안 남편은 뭐가 변했나. -(추) 많이 편안해졌다. 지난 보궐 선거부터 바뀌기 시작했고 이번 선거에 많이 바뀌었다. 인상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요즘은 남의 말도 잘 듣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편안하게 답한다. 안사람이 제일 빨리 느끼지 않겠나. →남편이 정말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가 됐다고 보나. -(추) 내가 아는 한 남편은 정말 투철한 자기 무장 속에 살아왔다. 매순간 나라 생각이었다. 은평에서 43년 살았다. 흐트러질 수도, 바뀔 수도 있는데 남편은 그런 적이 없었다. 가족을 잘 먹여살리고 좋은 집으로 이사가겠다는 등 일신을 생각하는 것을 못 봤다. 눈만 뜨면 하는 생각들은 국가, 정의와 연결돼 있다. 얼마나 살다 죽는다고 저런 것만 생각하나, 여자로서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관됐다. 국가를 운영하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남편이 공부는 많이 하던가. -(추) 뭐든 열심히 쓰고 본다. 유난히 역사책이나 고전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이) 특히 논어 같은 고전 서적을 많이 본다. 감옥에 있을 때 많이 봤는데 언제나 정치의 고전으로 삼는다. →요즘엔 성경도 많이 인용하던데. -(이) 처음에는 표가 된다고 해서 교회에 나갔다(웃음). 그래도 18대 총선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져도 나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나갔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생기더라. 7·28 재·보선 때 정말, 정말 어려웠다. 한번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나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인간 의지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신앙의 힘 아니었나 생각한다. →‘의지의 화신’으로 불리는데, 신앙의 힘을 언급할 만큼 힘들었나. -(이) 그저 힘든 정도가 아니었다. 떨어지면 정치 접고 시골로 내려가려고 했었다. 사실 이번에도 5선이 안 됐으면 낙향하려고 했다. 주민들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역할은 없다고 생각했다. 당선되고, 내가 더 할 일이 무얼까를 생각했다. →남편이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나. -(추) 평소에는 정치 얘기 잘 안 하니까 잘 모른다. 내 느낌이지만 한 번 낙선을 하고 본인을 성찰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워싱턴에 있을 때 ‘대통령을 만드는 것으로는 안되고, 정권을 잡아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할 때 막연히 느꼈다. 2010년 재·보선(18대)에 이어 이번에 또 당선되면서 주변에서 출마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는 립서비스로 받아들였는데…. →생각이 있었으면 진작 출마하지 왜 이렇게 늦어졌나. 저울질이나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나. -(이) 지난봄 지방 16개 시·도를 돌고 와서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바닥 민심도 살펴보고 사람들이 이재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견도 듣고 싶었다. 전국 40여개 시·군·구를 돌고 대학생 토론도 하고 1000여명의 지역구 지지자들 얘기도 듣다 보니 출마가 늦어졌다. →(부인에게)반대 안 했나. -(추) 남편 일에 반대한 적이 없다. -(이) 아, 생활 가운데는 많이 있지. 왜 없어. →어떤 게 불만인가. -(추) 정치가 스케일이 커 보이지만 집안에서는 다르다. (공기청정기를 가리키며) 언젠가 저걸 끄더라. 전기 아깝다고. 뭘 버리는 일이 없다. 집안 일에 의외로 세세하다. →대통령 후보로 무엇이 강점이라고 보나. -(이)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추진력 얘기를 많이 한다. ‘이재오라면 할 수 있을 거다’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권력 잡고 나면 부패 척결이 쉽지 않아도 이재오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는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당내 강력한 후보가 있지 않나. 그 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텐데. -(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맞다. 그러나 남편이 내놓은 공약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다는 게 인식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명박(MB) 정권 때에는 시대 정신이 경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비리가 너무 많아 청렴이 화두라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남편은 지금의 시대 정신에 맞는 사람이다. 다만 시대 정신은 계속 바뀌는데, 이번에 만일 안 된다고 다음 대선 때 또 나가는 대통령병에는 안 걸렸으면 좋겠다. →지지율이 낮다. MB 정권의 과오가 투영된 건가. -(이) 정치적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MB 정권을 만든 사람이니 결별할 수는 없다. 공과를 안고 가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MB 권력의 실세 중 비리 사건에 오르내리지 않은 사람은 이재오밖에 없다고들 한다. →정권의 잘못에 경종을 못 울린 것 아닌가. -(이) 중요한 고비마다 민심의 향방은 직접적으로 다 전달했다. 인사 문제도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은 다 전했다. 그러나 인사권에 개입하거나 대통령 권한을 넘어서는 얘기는 못 한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훈수두기가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 않다. 특임장관, 국민권익위원장 등 맡은 일에서는 권한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책임진 자리를 간섭하기는 어렵다. 논어에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謨其政),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정사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나. →소극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이) 권력형 비리나 부패는 초기에 생기고 말기에 터진다. 집권 2년 차까지 나는 (미국에 쫓겨나) 권력과 상관없는 자리에 있었다. → 완전국민경선제 관련해 중대 사태 시 결단하겠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와전됐다. 완전국민경선제가 안 되면 중도 표가 포섭되지 않고 표의 확장성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본선에서 이길 수 없는, 중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청렴과 추진력을 강점으로 내세웠는데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겹치는 면이 있지 않나. -(이) 내면의 스토리가 다르지 않나. 서로 다른 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겹친다고 해서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박 전 위원장은 어려서부터 18년간 권력을 누리고 행사하며 살았다. 이재오를 두고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박 전 위원장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이치 아닌가. →경쟁자가 미울 때도 있지 않나. -(추) 우리 남편이 저랬으면 좋겠다는 것은 있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이 어떤 사람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를 미워한다면 정치인의 안사람으로서의 덕목이 아닐 것이다. -(이) 상대 후보들에게 인간적으로 밉다거나 서운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그러나 저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한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을 거론할 수는 없고…,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마음 속에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절대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다.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언성을 높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지도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은 ‘난 저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인사하는데도 앉아서 고개만 돌리거나 못 본 척하는 사람이 있다. 또 친한 사이인데도 자리가 바뀌면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가장 부러운 덕목은. -(이) 자기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속이 드러나서 좋을 것이 없더라. 노력은 많이 하는데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 한정된 시간에 내 전부를 걸어볼 것이다. 이지운·최지숙기자 jj@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2) 단종과 세조

    [선택! 역사를 갈랐다] (12) 단종과 세조

    단종 원년(1453) 10월, 수양대군은 야음을 틈타 세종 이래의 명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날 밤의 일을 ‘세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김종서 부자(父子)·황보인·이양·조극관·민신·윤처공·조번·이명민·원구 등을 모두 저자에 효수(梟首)하니, 길 가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그 죄를 헤아려서 기왓돌로 때리는 자까지 있었고, 여러 사(司)의 비복(婢僕)들이 또한 김종서의 머리를 향해 욕하고, 환시(宦寺)들은 김연(金衍)을 발로 차고 그 머리를 짓이겼다.” ●정난(靖難)? 김종서(宗瑞), 세종이 문종과 단종을 부탁했을 정도로 신임했고, 조선의 원칙과 상식을 구현하여 호(號)조차 절재(節齋)였던 인물이다. 나머지 모두 아까운 인물들. 과연 민심이 ‘세조실록’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했을까? 수양대군과 그 세력들은 이 일을 정난, 즉 나라의 혼란을 바로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소중한 인재들을 죽인 재난, 즉 사화라고 불렀다. 조선후기 역사서인 ‘아아록’(我我錄)이 대표적이다. 당시는 왕조시대였다.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면서, 세조의 후손이 왕위를 이었으니 세조가 찬탈했다고 할 수 없었다. 세조가 찬탈한 것이면 후대 임금의 정통성도 무너지고 왕조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까. ●승자의 역사? 이래서 첫 번째 역사왜곡이 생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런 왜곡의 내면화이다. 한데 이러한 역사사실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게 마련이고, 따라서 승자의 관점에서 왜곡되게 마련이라고. 역사에 대한 가장 소박한 형태의 냉소(笑). 이런 견해는 일부에 대한 진실로 전체를 덮어버리는 지적(知的) 게으름의 온상이 된다. 역사나 인생이 승패로 점철되는 경우는 일부이고, 승패가 있더라도 그 상황을 보고 듣는 이는 승자만이 아니다. 패자도 보고, 승패와 관련 없는 사람도 본다.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이비(似而非) 역사인식은 내려놓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그런 거 없다! 수양대군은 정적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뒤 영의정부사(영의정), 판이병조사(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겸임했다. 백관(百官)에 대한 통솔권을 비롯하여 문관, 무관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한 것이었다. 이런 권력 집중은 왕실의 종친이 조정의 관직을 갖지 못하게 했던 법례를 깨뜨린 일이기도 했다. 대체로 태종대를 지나면서 국왕의 사적 네트워크가 공적 정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법규로 정착되었다. 종친은 종친부(宗親府)에 속하게 하여 녹봉과 명목상의 관직을 주어 넉넉한 생활은 보장하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수양대군에 의해 깨졌던 이 규정은 ‘경국대전’에서 다시 살아나, 국왕의 적실은 4대, 서실은 3대가 지나야만 관직 진출을 허용하였다. ●나이가 어려서? 학계의 평가는 수양대군,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로 나중에 세조가 되는 그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듯하다. 그러나 세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면이 보인다. 일부는 세조대의 업적, 예를 들면 북방 개척, ‘경국대전’의 완성과 같은 문화 발전을 들어 세조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갖기도 한다. 세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찬탈 정권(쿠데타 정권)이며 세조시대의 정치 운영이 반(反)유가적이었고, 동시에 공신(功臣) 중심의 권력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본다. 세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국왕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것이 정권이양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점과 세조가 당시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유가적 정치 질서에 어긋나는 공신 중심의 정치를 펼쳤다고 평가한다. 문화적 성과라는 것도 이미 세종조에 심어진 열매를 거두었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왕조란 어떤 집안이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제도이다. 출생에 의해 왕위에 오를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왕위를 내놓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단종은 12살에 왕위에 올랐고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13살에 왕위에 올랐다. 다시 말하면 왕조에서 왕위에 오르는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왕의 나이가 정통성에 흠이 될 수 없는 것은 보통선거제로 뽑히는 대통령의 득표율이 정통성에 흠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어린 나이를 선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자 했다면 문종이 승하한 후에 바로 문제로 삼았어야 했다. 세조 때 편찬한 ‘단종실록’에는, 국왕이 어린 탓에 의정부의 권한이 강해져서, 관리를 임명하는 데도 의정부에서 김종서 등이 해당 인물에 노란 표를 하여 건의하면 단종이 낙점했다고 하여 당시에도 ‘황표정사’(黃標政事)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선양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정치운영을 바로잡아야 할 일이지, 정통성에 흠이 되는 사안은 아니다. 선위의 이유로 내세웠던 나라에 변고가 많다는 것도 국왕이 적극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그 때문에 왕위를 내놓아야 할 일은 아니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준 일을 ‘세조실록’에서는 ‘선위’라고 적었지만, 세조가 빼앗았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산군일기와 단종실록 세조 2년 상왕(上王) 복위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민심의 반영이었다. 성삼문을 비롯해서 상왕, 즉 왕위에서 밀려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 일은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었고,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었고, 이듬해인 세조 3년 영월 귀양지에서 살해되었다. 영월 청령포는 평창강이 굽어 돌아나가며 삼면이 물길이고 뒤는 산으로 막혀 있는 지형이다. 어떻게 여기 이런 땅이 있는 줄 알고 단종을 유배 보냈을까. 건국 이후 조선 정부는 전국적 통치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각도의 지리지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지리서는 지형, 특산, 인물 등 정보를 수록한 인문지리서에 해당된다. 세종대에는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세종실록’에 수록되어 있어서 ‘세종실록지리지’라고도 부른다-가 편찬되었고, 성종대에는 ‘팔도지리지’가 부족하였던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단종이 유배되던 때가 세조 2년이니까 각도 지리지의 편찬을 통하여 전국의 지역적 특성과 지형을 중앙 조정에서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척박한 외지를 단종의 귀양지로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은 아들인 수양대군이 손자인 단종을 유배 보내는 데 그 지리지가 이용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사람이 하는 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잠깐 상식 하나 추가한다. 조선시대 왕대별로 역사를 편찬하고 이를 실록이라고 불렀는데, 단종시대의 실록은 오래도록 실록이 아닌 일기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실록은 정통성을 확보한 왕의 시대를 기록한 역사서라는 상징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폐위된 세 임금 시대의 실록에 해당하는 기록은 각각, ‘노산군일기’,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도 ‘연산군일기’와 ‘광해군일기’는 여전히 그대로 부르고 있다. 다만 ‘노산군일기’는 242년 뒤인 숙종 때 ‘단종실록’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집현전은 사라지고 집현전은 세종 때 설립되어 쟁쟁한 인재를 길러내고 한글, 의학, 출판, 농업기술 등 조선의 미래를 설계하고 정책을 실천에 옮겼던 기관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고려 말부터 시작한 문치주의 운동의 결산이기도 하다. 집현전이 설립되던 세종 2년은 부왕 태종이 병권을 유지한 채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시기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집현전 자체의 역사에서 태종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세조 2년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의 중심이 바로 집현전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무력에 의한 찬탈은 세종시대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세종시대의 중심에 집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조의 찬탈에 동조했던 신숙주, 정인지, 권람 등과 찬탈을 비판했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으로 집현전 학사들은 선택을 달리하게 된다. 정인지, 신숙주는 이미 고관대작이 되어 있었다. 박팽년이 단종이 양위할 때 자결하려 하자 성삼문이 말렸다. 결국, 수양대군에게 붙었던 일부 집현전 학사를 제외한 인재들 대부분 계유사화와 단종 복위 운동의 와중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조선 문명으로서는 첫 번째 손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원기(元氣)의 손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시에 그 사화를 잊지 않는 조선 사람들의 줄기찬 역사바로세우기도 시작되었다. 공론(公論)의 이름으로!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 [유로존 위기] 獨메르켈 그리스 주권침해 논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 정부에 “유로존 탈퇴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라.”고 제안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주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강요한 ‘가혹한’ 긴축정책 탓에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 민심이 또다시 들끓고 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19일(현지시간) ‘메르켈 총리가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내달 총선 때 유로존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애초 통화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제목을 달았지만 “직접 듣지는 못했으며 다른 취재원을 통해 내용을 확인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디미트리스 치오드라스 그리스 정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메르켈 총리가) 대통령에게 다음 달 총선과 함께 유로존 잔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국민투표는 새로 구성된 그리스 과도정부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가 국민투표를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그리스 정계와 시민 사회는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급진좌파 연합인 시리자의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메르켈이 그리스를 피보호국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독일 정부는 논란이 확산되자 “부정확한 내용”이라며 즉각 진화를 시도했다. 또 그리스 임시정부의 파나기오티스 피크라메노스 총리도 “이미 다 지난 얘기”라며 논란을 차단하려 애썼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새누리 ‘완전국민경선제’ 지상논쟁

    새누리 ‘완전국민경선제’ 지상논쟁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의 완전국민참여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관련 공방이 뜨겁다. 경선 규칙 변경에 반대하는 친박 진영은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도입할 경우 자칫 대선 후보에게 치명적인 도덕성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경선 규칙 변경을 검토하자는 비박 진영은 대선 후보 검증 과정에서 도덕성을 검증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과 비박계를 대변하는 심재철 최고위원이 경선 규칙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 친박 핵심 최경환 “제2의 통진당 사태땐 치명상” 최경환 의원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칫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실시하다가 최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사태나 민주당 경선 논란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당이 선출한 후보에 대해 심각한 도덕성 문제가 초래될 수도 있다.”면서 “그러면 대선판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최 의원은 또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은 정당정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대 논리를 폈다. 그는 “미국의 일부 주를 빼고는 전 세계적으로 오픈프라이머리제도를 실시하는 나라가 없다.”면서 “미국은 평시에는 당이 없다가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해 임시 당원을 모집하는 것으로 우리와는 정치 토양이 다르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어 “새누리당에는 당비를 꼬박꼬박 내는 100만명의 당원이 있는데 그들을 무시하고 임시 대의원을 뽑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당헌 당규에서 당원 50%, 일반국민 50%의 비율로 반영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정당정치를 훼손하지 않고 민심과 유리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러면 선거를 두 번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 아닌가.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 비박 대변 심재철 “국민 과반 찬성… 대선 도움” 심재철 최고위원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 철저하게 장단점을 따져 보자며 최경환 의원의 주장에 대해 맞불을 놓았다. 심 최고위원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국민여론조사에서 과반수의 국민들이 오픈프라이머리에 찬성한 바 있다.”면서 “새누리당이 연말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 당의 기반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장단점에 대한 실무 검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 최고위원은 경선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도덕성 문제도 관리 차원의 문제라고 봤다. 그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도덕성 문제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면 야당과 같은 사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 최고위원은 친박계에서 지적하는 역선택의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가 동시에 실시하면 역선택 문제는 풀어지는 것”이라면서 “다만 인기투표로 흐르지 않도록 정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 등 객관적인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을 감안해 대선 승리를 위해 경선 시기를 다소 늦출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충청은 대선 블루오션”

    민주통합당은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의석을 많이 내준 충청권이 대선에서는 ‘블루오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자유선진당의 몰락으로 새누리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는 만큼 앞으로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16일 민주정책연구원이 지난 총선을 자체 분석한 ‘4·11 총선평가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면서 충청권에서 새로운 1대1 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충청권 표심 전략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선전을 단순한 반사이익으로 규정한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평가라는 지적도 있다. 강원권에서 민주당이 전멸한 원인에 대해서는 선거 기간 중 강원에 대한 특화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강원권은 최근 두 차례의 도지사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이 당선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MB 심판론’에만 기댈 뿐 강원권만을 위한 정책 제시는 등한시했다. 이는 9석 가운데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서는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승리라고 볼 수 있으나, ‘강남벨트’ 진입에 실패하는 등 압승 목표에는 미달했다고 분석했다. MB 심판론과 야권연대 등이 주효했으나, 추가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압승 목표 실패에는 6·2 지방선거 때보다 이번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이 낮아진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범보수 진영의 정당 득표율은 46.97%에서 49.44%로 상승한 반면, 범진보 진영은 53.02%에서 49.01%로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권에서는 ‘낙동강 벨트’에서 3석을 건진 것을 두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야권 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영남권 민심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 점만으로도 대선 국면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남권 민심이 대선에서 얼마나 변화할지는 미지수다. ‘텃밭’인 호남권에서는 전체적으로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이 하락한 대신 통합진보당이 대안세력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호남 지역에 대한 선거전략을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경선과 폭력사태로 이러한 분석도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주권에서는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전 석(3석)을 확보해 전략 지역으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이슈화한 점이 주효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총선 구원등판 승리… 이젠 대권 레이스

    총선 구원등판 승리… 이젠 대권 레이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당의 새 지도부 선출과 동시에 비대위원장 직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 19일 자리에 오른 지 149일 만이다. 5개월 남짓 강도 높은 쇄신책을 선보이며 당을 정상궤도로 이끌었던 박 전 위원장은 이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게 된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당이 존립조차 어려웠던 벼랑 끝 위기에서 비대위가 출범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말 위기의 수렁에 빠진 당의 구원투수로 전면에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등 악재가 잇따랐다. 당 지지율이 바닥으로 치달았고 4·11 총선 전망은 암담했다. 박 전 위원장은 당내외 인사 11명으로 비대위를 꾸린 뒤 과감한 쇄신책을 선보였다. 경제민주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정강·정책을 내놨고 당명과 당의 로고, 상징색도 바꿨다. 박근혜식 복지모델을 중심으로 정책방향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보수에 치중됐던 지지층을 중도·서민층으로 옮기기 위한 방안이었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은 거듭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명박 정부와도 점차 선을 그어갔다. 이러한 박 전 위원장의 강도 높은 쇄신은 4·11 총선에서 성과를 거뒀다.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지켜냈고 특히 취약 지역이었던 충청·강원에서 크게 선전했다. 다만 총선에서 드러난 수도권 및 2040세대의 표심은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에 과제로 주어졌다. 의석수로는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야당에 내줬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비록 승리했지만 민심의 무거운 경고 또한 확인했다.”면서 “왜 우리에게 마음을 다 주지 못하셨는지, 부족했던 몇 퍼센트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149일의 박근혜 체제를 매듭지은 새누리당은 정상궤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날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 결과 새누리당과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모두 40%를 뛰어넘었다. 박 전 위원장은 이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6월쯤 대선 출마 선언을 염두에 두고 당분간 물밑 구상에 전념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위원장은 최근 출마 시점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전당대회에 모인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7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언급하며 “우리에게는 나라를 살리고 국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다.”고 설명한 뒤 “저 박근혜, 그 길에 여러분과 항상 함께하겠다.”면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지방선거 참패… 메르켈도 긴축심판 못 피했다

    유럽 내 긴축정책을 주도하는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가 ‘안방’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여당인 기독민주당(CDU)이 13일(현지시간) 실시된 독일 최대 선거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주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이다. 내년 9월 총선에서 3선을 노리는 메르켈 총리의 정치 행보에 큰 타격이 될 듯하다. 반면 사회민주당(SPD)의 여장부인 하넬로레 크라프트(51)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정치적 입지를 더욱 탄탄히 했다. 이날 투표 마감 직후 독일 공영 ARD방송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주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한 사민당과 녹색당은 각각 39%, 12%를 득표해 과반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민당은 26% 득표에 그쳐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득표율(34.6%)을 크게 밑돌았다. 기민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에서 거둔 최악의 성적표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이 보도했다. 기민당의 참패는 앞선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선거 등에서처럼 ‘긴축 심판론’이 힘을 발휘한 결과로 보인다. 기민당 주 총리 후보인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 환경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쪽은 메르켈의 유럽 정책이 아니라 현직 주 총리인 크라프트의 대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긴축 일변도에 지친 민심은 크라프트의 손을 들어줬다. 메르켈 총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쓰리고 고통스러운 패배”라면서도 “그러나 유럽 정책은 이번 선거 결과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역사적으로 독일 정치·정책 흐름의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 독일 전체 인구의 5분의1가량인 1780만명이 이 지역에 거주하며 유권자 수만 1320만명이다. 독일 대표 공업 도시인 뒤셀도르프가 주도(州都)로 독일 최대 산업 기반을 갖췄다. 이 지역 투표 결과가 독일 전체 표심을 대변해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2005년 사회당·녹색당 연정은 이 주 선거에서 패배한 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메르켈 총리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사민당이 완승한 데는 현직 주 총리인 크라프트의 높은 인기 덕도 컸다. 크라프트는 통합과 실용적 스타일 때문에 “마치 메르켈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곧잘 받는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교사와 경찰 고용을 늘리는 등 연방정부의 긴축 노선과 각을 세워 왔다. 한편 선거에서 패한 메르켈 총리는 15일 프랑스의 새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와 베를린에서 만나 회담한다. 외신들은 자국에서조차 ‘긴축의 역습’을 당한 메르켈 총리가 ‘긴축 대 성장’을 논의할 이번 회담에서 다소 난처한 처지에 몰릴 수 있다고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Weekend inside] “긴축은 실패했다” 스페인 분노의 시위 재점화

    [Weekend inside] “긴축은 실패했다” 스페인 분노의 시위 재점화

    지난해 5월 15일. ‘분노한 사람들’(로스 인디그나도스)이라는 청년 시위대가 스페인 거리를 점령했다. 성난 젊은이의 역습이었다. 경제·재정위기 여파로 청년실업률은 40%를 웃돌았고, 긴축정책 탓에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의 희생이 가중됐다. ‘청년층의 반란’으로 집권 사회당이 몰락한 틈을 타 마리아노 라호이(57) 국민당 당수는 승자가 됐다. 그러나 총리 자리는 ‘독이 든 성배’였다. 재정 위기 속에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변화를 기대했던 청년층과 노동자의 바람은 분노가 돼 라호이 총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1년 전 유럽 전역으로 옮겨 붙었던 분노의 불길이 재점화할지 주목된다.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 긴축 정책을 철폐하라.” 1년 만에 스페인의 ‘분노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섰다. 라호이 정부에 5개월간 기회를 줬지만 긴축 이외에 별다른 경제위기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서 대학생 수백명이 거리시위를 벌였고, 수많은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12~15일에는 노동계 등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다. 그리스 총선 이후 스페인 등 남유럽국 경제가 다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라호이 총리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놓였다. 스페인 시위대는 “라호이 정권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났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권이 바뀐 뒤 사정이 더 나빠졌다고 여긴다. 라호이 정부가 매주 금요일 긴축정책을 1개 이상씩 내놓으면서 학생들의 어려움은 더해지고 있다. 교육 지원금이 깎여 대학 평균 등록금은 1000유로(약 150만원)에서 1500유로(약 220만원)로 급등했고 교사 연구비는 삭감됐으며 중·고교 학급당 학생 수도 크게 늘었다. 심지어 일부 공립학교에는 화장실 휴지 사용을 줄이라는 공문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실업률 등 각종 지표가 악화된 것도 민심을 들끓게 한다. 올해 1분기 실업률은 24.4%로 지난해 평균(21.5%)을 넘어섰다. 청년실업률은 52.0%로 더 심각했다. 시위대의 빅토르 안드레우(21)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수천만 유로를 은행에 빚질 순 없다.”며 높은 실업률과 정부의 긴축정책을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라호이 총리는 긴축은 불가피하다며 당혹스러워한다. 재정적자를 유럽연합(EU)과 약속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3%로 맞추려면 올해에만 재정적자를 300억 유로(약 44조원) 이상 줄여야 한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재정위기를 겪는) 유럽 각국에서는 누가 정권을 잡든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폭탄 돌리기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경제 체질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여서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제조업보다 건설업과 관광업 등 경기에 민감한 산업이 경제를 지탱했는데 이들 산업은 2008년 세계 경기침체 때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또 ▲은행권의 부실 ▲부동산 가치 하락 ▲지역 경제와의 마찰 등도 라호이의 중앙정부를 괴롭히는 3대 악재라고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위기의 라호이 정부가 국민적 불만을 달래려면 현재의 긴축 일변도 노선을 수정해 성장에 좀 더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성장을 강조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새 대통령과 긴축을 역설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는 15일 첫회담을 갖고 합의점을 찾으면 스페인 정부도 정책적 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올랑드 “내 급여부터 30% 깎을 것”

    올랑드 “내 급여부터 30% 깎을 것”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이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에서 가장 먼저 서명하는 안건은 ‘대통령 임금 삭감안’일 것으로 보인다. ‘무슈 노르말’(평범한 남자)로 불리는 올랑드는 대선 유세 기간 자신의 급여부터 깎아 모범을 보이겠다고 공약하면서 ‘서민 배려, 부자 희생’을 강조해왔다. 올랑드 측의 피에르 모스코비치 선거본부장은 8일(현지시간) 현지 TV에 출연해 “대통령·장관 급여 30% 삭감안을 15일 취임식 직후 대통령령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휘발유 가격 동결, 빈곤층에 대한 학교 보조금 인상, 41년 이상 근속 직장인의 60세 은퇴 허용 등도 바로 실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올랑드가 유세 때 대통령의 임금 삭감을 약속한 대로 급여가 30% 삭감되면 매달 1만 3000유로(약 1900만원)를 받게 된다. 올랑드 당선인은 ‘자진 연봉 삭감’으로 전임자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대조되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듯 보인다. 사르코지는 사치스러운 생활로 악명 높았다. 5년 전 대통령 취임 뒤 자신의 연봉을 무려 170%나 올렸다. 또 고급 롤렉스 시계를 찼고 엘리제궁 차고에 차량 121대를 보유 중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한다며 국민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강요하면서 정작 대통령은 혈세를 펑펑 쓰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올랑드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출 삭감’을 택했던 사르코지와 달리 ‘증세’ 카드를 빼 들겠다고 약속했다. 연간 100만 유로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에게 최대 75%의 세금을 물릴 계획이다. 또 대기업 법인세는 올리고 중소기업 법인세는 삭감하는 등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 한다. ‘프랑스 갑부들이 집단적으로 이민을 떠날 기미가 보인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부유층의 불만이 높다. 이 때문에 올랑드는 선제적 자기 희생을 통해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듯하다. 올랑드 당선인은 푸근한 외모와 소탈한 이미지 덕에 민심을 얻었다. 의원 시절 스쿠터를 타고 곧잘 출근하던 그는 “엘리제궁에도 스쿠터를 타고 가면 안 되느냐.”고 측근들에게 물었다는 후문이 있다. 이런 평범한 이미지와는 달리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국립행정학교(ENA)와 파리정치대학(IEP) 등을 졸업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유대근기자 dyhnamic@seoul.co.kr
  • 오바마, 동성결혼 공개지지… 진보성향 표심잡기 승부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동성(同性) 결혼 합법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지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동성 결혼 합법화를 공개 지지한 것은 처음으로,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동성애에 대한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는 역사적 전기로 평가된다. 오바마는 ABC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 결혼에 대해 ‘시민적 결합’(civil union)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조금은 주저해온 게 사실”이라면서 이렇게 밝혔다. 시민적 결합이란 동성 커플을 법으로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부부로 인정하는 것으로 2000년 버몬트주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그동안 동성 결혼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피해온 오바마는 이날 두 딸인 말리아와 사샤의 친구들도 동성 부모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부인 미셸도 그의 결정에 관여했으며 동성 결혼을 지지하기로 의견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전날까지 유보입장서 급선회 오바마의 발언이 나오자 동성 결혼 지지 단체는 즉각 환영하고 나섰고, 반대론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등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CNN방송은 “오바마 대통령이 폭탄을 터뜨렸다.”면서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도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결혼은 남녀 간의 관계”라면서 동성 결혼 반대 입장을 확인했다. 이날 오바마의 동성 결혼 합법화 찬성 표명은 전혀 의외였다.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동성애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는 데다, 바로 전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동성 결혼을 불허하는 주헌법 개정안이 주민투표에 의해 큰 표차로 가결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바마의 이날 선택은 오는 11월 대선의 승부처 중 한 곳인 노스캐롤라이나의 민심과 반대로 간 셈이다. 오바마가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이렇게 과감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은,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동성애자와 강경 진보그룹의 지지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벌써부터 일부 언론은 동성애자들의 선거 후원금이 오바마에게 폭주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내주 여론조사 민심 확인될 것” 좀더 넓게 보면, 선거를 보혁구도로 가져가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성 결혼 허용 찬반 여론은 50%대48%다. 특히 연말까지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전선(戰線)을 ‘경제’에서 ‘사회’로 옮기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기 침체에 대한 비판 여론을 사회적 이슈로 전환해 진보성향 표를 묶어두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보수층은 공화당 표여서 잃을 게 별로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하지만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이날 입장 표명이 ‘위험한 도박’이라고 진단했다.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노스캐롤라이나와 같은 부동층주(swing state)는 근소한 표차로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바마 지지 성향인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 중 이 문제 때문에 이탈 표가 나올 수도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1주일 쯤 지난 뒤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민심이 확인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보수정당의 40대 대표 그 자체로 표심 움직여 세대·계파 용광로 될 것”

    “보수정당의 40대 대표 그 자체로 표심 움직여 세대·계파 용광로 될 것”

    새누리당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원유철(경기 평택갑) 의원은 ‘40대 수도권 당권주자’론을 내세우고 있다. “세대·계파를 아우르는 융화·소통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젊은 당 대표론’인가.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 민심, 젊은 층의 표심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권 재창출에 수도권 젊은 층의 표심은 필수다. 2040 유권자 비율이 높은 수도권 출신 4선으로서 역할을 해 내겠다. 총선 때 정당 지지도는 48%였지만 개인 지지도는 60%였다. 젊은 층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 대표’만으로 충분한가. -물론 그렇지 않다. 실질적인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28세에 지방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30대에 국회에 진출한 이후 젊은 층과의 교감에 누구보다 강점을 보여 왔다고 생각한다. 보수정당에서 40대 대표가 나온 적이 있나. 40대 대표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이 새로운 관심을 보일 것이다. 젊은 시절 지방에서 정치를 시작한 정치인이 단계를 밟아 당 대표가 된다면 젊은이들이 정치에 많은 희망을 갖지 않겠나. →어떤 대표가 필요하다고 보나. -관리형 대표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동적이다. 젊은 표심, 수도권 표심을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득점 가능한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용광로 같은 대표가 되겠다. 계파를 아우르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을 다해 왔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화합과 융화에 관한 한 특별한 성과를 실질적으로 내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당위원장을 맡으며 계파를 초월한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잡음 없는, 성공적인 공천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이·친박 어느 쪽에서도 인정하는 모범사례였다. 당시 최초의 다문화 가정 출신 도의원 비례대표로 몽골 귀화여성을 1번으로 공천한 것도 그런 합의의 결과였다. ‘천안함 규탄 결의안’ 등 국방위원장을 하면서 두 차례 대북결의안을 의결했다. 야당과 충분히 소통한 결과다. 쌍용차 해고 사태 때 정장선·권영길 의원과 중재단을 만들어 노사 간 타협을 이끌어 냈다. 또한 지방정치와 중앙정치와의 연계에도 특별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앞으로 4주… 메르켈 운명 갈린다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지방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둔 데다 같은 날 프랑스 대선 및 그리스 총선에서도 독일에 협조적이던 집권 세력이 패배한 탓이다. ‘의사’를 자처한 메르켈은 재정위기를 겪는 유럽 전역에 ‘긴축정책’을 처방했지만, 각국 국민은 투약을 거부하고 성장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 9월 3선을 노리는 메르켈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선거 및 정상회담 등 각종 이벤트가 몰린 4주 안에 ‘뿔난’ 자국민과 다른 유럽인들을 모두 달래야 한다. 메르켈 총리 측은 6일 이후 매일같이 유럽 국가의 경제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고 8일 AP 등 외신이 전했다. 프랑스와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선거에서 드러난 “긴축정책 탓에 당장 경기가 살아나지 못한다.”는 민심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의 한 관계자는 7일 “메르켈이 (긴축을 강조하는) 수사법을 구사하지만 성장 정책과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쪽에 마음이 열려 있다.”고 전했다. 기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도 6일 “유럽 경제를 위해 성장 협약을 만드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내 민심을 보면 메르켈이 ‘긴축 우선 철학’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독일 여론과 투자 전문가들은 긴축에서 성장으로 정책적 방점을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분석했다. 긴축을 통해 체질을 개선 중인 그리스 등 재정위기 국가에 ‘방만한 지출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칫 남유럽발(發) 재정위기가 재확산될 수 있다. 유럽 내 재정위기국 구제를 위해 자신들이 낸 세금 2100억 유로(약 310조원)가 투입되는 것을 지켜본 독일인들에게 더 이상 인내를 요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결국 메르켈은 ‘긴축’ 노선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내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재정적자 감축 목표기일을 다소 늦추고, 고용 등 반드시 필요한 부분의 지출을 보장하는 등의 중재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다음 주로 예정된 독·불 정상회담에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유럽 내 정권교체 등에 따른 초반 판세가 정해질 것으로 본다. 또 13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지방선거에서 집권 기민당의 선전 여부도 메르켈의 입장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한·일 군사협정 체결되나

    이달 말 한·일 국방장관 회담 개최가 유력시됨에 따라 우리 정부가 1년 이상 끌어온 일본과의 군사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정부가 독도나 과거사 문제로 껄끄러운 일본과 오랜 금기였던 군사교류의 빗장을 푸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 관망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 문제 등을 계기로 성급히 추진해 결과적으로 일본 측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8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이달 말쯤 일본을 방문해 다나카 나오키 방위상과 회담을 갖고 군사협정을 체결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양국의 군사 실무자들이 이달 말 회담을 목표로 일정과 의제를 확정하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일 양국은 북한과 관련한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인도적 차원의 재난구호 등을 협의하는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 1월 서울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두 협정에 대한 체결을 논의해 왔으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하는 등 동북아의 불안정성이 높아져 이를 조기 체결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두 가지 협정이 한꺼번에 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양국의 군수품과 장비들을 품목별로 확인해야 하기에 기술적으로 협의해야 할 사안이 많은 ACSA보다는 GSOMIA를 먼저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협정은 주로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공유가 주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에 따르면 일본은 최첨단 레이더 시스템을 갖춘 이지스함 6척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0여대를 보유해 정보자산에서 강점이 있다. 한편 이번 협정이 별 실익이 없음에도 우리 정부가 민심의 눈치를 보다 결국 일본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은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북한의 은하 3호 로켓 발사 당시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등 한계를 보이자 우리 정부와 손을 잡고 대북 정보를 보강하겠다는 것”이라며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이를 성급히 추진하는 것은 독도 등 현안이 얽힌 한·일관계에서는 시기 상조”라고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김정은, 놀이공원 찾아가 잡초 뽑으면서…

    김정은, 놀이공원 찾아가 잡초 뽑으면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1비서가 평양의 놀이공원인 만경대유희장을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관리자들에게 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이 부족하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관영 매체가 김정은의 이러한 지적사항을 이례적으로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9일 김 1비서는 유희장 구내도로가 심하게 깨진 것을 보고 “도로관리를 잘하지 않아 한심하다.”고 지적했는가 하면 유희장 내부에 심은 측백나무와 향나무들의 밑정리를 잘하지 않았다며 “나무 주위에 조약돌을 박아놓으면 보기에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그는 공원 구내를 돌아보며 “2중 회전관성열차(청룡열차)의 출입구 마당을 타산없이 크게 정했다.”라는 등 질책을 이어갔다.  이 통신은 김 1비서가 보도블록 사이로 잡풀이 돋아난 것을 보고 직접 잡풀을 일일이 뽑으며 “설비갱신은 몰라도 사람의 손이 있으면서 잡풀이야 왜 뽑지 못하나. 유희장이 이렇게 한심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고 격한 어조로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 매체가 최고지도자의 현장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현장에서 간부들을 질책했다고 보도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 매체들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장시찰을 보도할 때는 김 위원장이 현장을 찾아 일꾼들의 성과를 치하하고 간부들을 독려한 내용만 전했다.이런 점에서 북한이 이를 보도한 것은 김 위원장이 간부들의 기강을 엄하게 다스리는 지도자 이미지를 굳히고 ‘인민애’를 부각해 민심을 얻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정책의 세부적인 것까지 챙기는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고 주민들이 가진 체제불만을 관료들에게 돌리려는 의도가 있는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새누리당 대권주자 3색 행보] 김문수 민심잡기 드라이브 “朴心만 완전국민경선 문제 삼아”

    [새누리당 대권주자 3색 행보] 김문수 민심잡기 드라이브 “朴心만 완전국민경선 문제 삼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일요일인 6일 ‘일일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택시기사 면허를 갖고 있는 김 지사는 이날 한 택시회사의 협조를 얻어 수원에서 택시를 몰며 민심잡기 활동을 펼쳤다. 김 지사의 택시운전은 이번이 네 번째로, 지난해 2월 이후 15개월, 그리고 지난달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처음이다. 오전 9시 택시 운전을 시작한 김 지사는 낮에 여의도에서 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것을 빼고 오후 4시까지 택시를 몰았다. 김 지사는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일부 당권주자들이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부정적인 데 대해 “‘박심’(박근혜 마음)이 동의하지 않는 것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고 비판한 뒤 “당심과 민심이 일치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거듭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촉구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현직 유지에 대해서는 “계엄사령관 같은 엄청난 권한으로 대선이 7개월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비대위원장을 하고 있고, 공천을 통해 자파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을 유례없이 몰아내는 상황”이라며 “당헌 정신에 따라 (박 위원장은) 대선후보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기 정부에서의 국가 청렴도 제고 방안으로 ▲청와대 수석제 폐지 ▲대통령 직속 고위공직자·친인척 측근 비리수사처 상설 특검화 등을 제시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새누리당 대권주자 3색 행보] 정몽준 ‘안보’ 들고 버스투어 “전작권 전환등 전면 재검토해야”

    [새누리당 대권주자 3색 행보] 정몽준 ‘안보’ 들고 버스투어 “전작권 전환등 전면 재검토해야”

    정몽준 의원은 6일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한미연합사 해체, 전시작전권 전환, 전술핵의 재배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대착오적인 것은 북한의 세습체제이며 이를 변호하는 국내의 종북좌파들”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 유엔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북한의 군사 도발시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외교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정부가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국민에게 상황의 위중함을 설명해야 한다.”면서 “우리 국회는 북의 군사 도발시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북한은 유엔 가입국으로 교류·협력의 대상이지만 군사적으로 우릴 위협하는 세력이며 김정은 체제 이후 상황은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전 협의로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가능다면 북의 도발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 경선 출마 선언 이후 전국 민심경청 버스투어를 이어가고 있는 정 전 대표는 7일 강원도 춘천과 평창, 강릉 등을 방문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박근혜 “선거 끝났다고 내부 문제 몰두해선 안돼”

    박근혜 “선거 끝났다고 내부 문제 몰두해선 안돼”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고향인 대구·경북(TK) 지역을 방문했다. TK는 4·11 총선 당시 물갈이 공천 논란 속에 잠시 민심이 들썩이기도 했으나 결국 모든 선거구에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준 텃밭 중 텃밭이다. 예상대로 대구·경북 총선공약실천본부 출범식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환호와 함성 속에 마이크를 잡은 박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대구·경북 시·도민들이 새누리당에 과분한 지지를 보내주셨다.”며 “이는 대구·경북을 제대로 발전시키라고 한번 더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지금은 새누리당에 정말 중요한 시기”라며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국민에게 절실한 문제보다 우리 내부의 문제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새 지도부 구성과 대선후보 경선을 겨냥한 비방 등 당내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오후 박 위원장은 대구 중구 약령시장 앞 삼계탕 식당에서 지역 당직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이후 바로 이동한 약령시장에는 박 위원장을 보려고 구름 인파가 모였다. 박 위원장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려는 주민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은 “대통령 박근혜”, “대구가 낳은 대통령”이라며 박 위원장의 이름을 연호했다. 투호 행사에 참여한 박 위원장은 “저의 모든 정성을 다 바쳐 대구시 발전과 나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또 한 번 TK의 발전을 다짐했다. 한편 약령시장에서는 대구 영남대 의료원 해고자들이 피켓을 들고 복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경호를 받으며 바로 지나갔으나 이후 해고자들과 경찰 및 주민들 간에 충돌이 있었다. 사복 경찰들이 피켓을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도 가세해 박 위원장을 옹호하며 해고자들의 피켓을 부러뜨리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경북 영천시 완산시장으로 이동, 민심을 살핀 뒤 울산시당 총선공약 실천본부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후에는 울산 중구의 임신·출산·육아 박람회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날 일정을 마쳤다. 대구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정쟁 아니라 민생에 집중할 것 새 정치 기본은 약속 지키는 것”

    여권 잠룡들의 ‘박근혜 때리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인천과 경기 수원, 시흥을 찾았다. 지난달 23일 강원을 시작으로 충청, 부산·경남, 제주에 이은 다섯 번째 민생 탐방으로, 비박(비박근혜) 진영의 공세에 일절 대응하지 않는 ‘마이웨이’를 이어간 셈이다. 박 위원장은 수원에서 열린 총선공약실천본부 출범식에 참석한 뒤 인근 시장을 찾아 주민들과 만났다. 출범식에는 이주영 정책위의장과 심재철, 남경필, 김학영, 노철래, 이규택, 김영선 등 경기지역 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출범식에서 박 위원장은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도민 여러분께서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정쟁이 아니라 민생에 집중하고 선거가 끝나도 선거 때 한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한 분, 한 분이 땀으로 경기도를 적셔 나갈 때 주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평가해 주실 것”이라며 민생 정치를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비박 진영 주자들과 거리를 뒀다. 박 위원장은 이후 인천으로 자리를 옮겨 인천시당 총선공약실천본부 출범식에 참석해 “정치와 국민은 약속과 실천을 통해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며 “새로운 정치의 기본은 약속을 지키는 정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 및 인천의 해양 관광지화를 약속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시흥의 한 상가와 인천 남구 용현시장도 방문해 민심을 살폈다. 2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박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하는 주민들로 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박 위원장 역시 손목 통증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악수를 하며 밝은 얼굴로 화답했다. 박 위원장은 4일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와 울산을 잇따라 방문하며 민생 행보를 이어간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열린세상] 위기의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체제/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위기의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체제/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위기의 중국 공산당은 어디로 갈까. 보시라이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데, 중국 공산당은 쉽사리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외신은 연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당 중앙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보시라이 부인의 영국인 사업가 살인혐의 외에도 당 지도부 통화내역 감청, 부정부패로 축적한 1조 2000억원 규모 재산의 해외 은닉, 쿠데타 시도설, 100명의 여성과 염문설 등등. 4월 30일 관영 신화사는 보도를 통해 보시라이 스캔들 관련 외신 보도는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외신보도를 더 신뢰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보시라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은 외신이 먼저 터뜨리고, 얼마 후에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양상이었다. 중국 정부의 정보통제력은 상실되었고, 중국 공산당은 국내외적으로 조롱거리가 되는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사실 중국 최고지도부의 부패혐의 숙청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장쩌민 시대에는 천시퉁 베이징시 당서기와 양바이빙 중앙군사위 비서가 숙청되었고, 후진타오 시기에는 천량위 상하이시 당서기가 숙청되었다. 이들 역시 정치적 비중에서 보시라이에 뒤지지 않는 거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보시라이 사건은 그때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대량의 내부정보를 유출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정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시라이가 ‘충칭 모델’이라는 친서민 정책을 통해 대중적 스타 정치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보시라이의 신병처리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요구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이미 알려진 범죄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보시라이는 사형이 불가피한데, 그럴 경우 그의 대중적 인기 때문에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1989년 톈안먼 사건도 개혁적 지도자인 후야오방의 무리한 숙청이 발단이 되었다. 중국 사회에 누적된 다양한 불안 요인이 일거에 중앙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만으로 폭발하는 사태가 최악의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고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미 시기도 놓쳤고, 정보 통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상당 정도 확보한 미국의 물밑 협조 여부가 사태해결의 관건일 수도 있다. 내부문제 해결에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은 중국의 위신과 국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보시라이 사건의 마무리 과정은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가을에 열릴 18차 당대회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올가을에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이다. 민심을 달래고 정치적 동요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나올 수 있지만,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15일 전국인민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보시라이 문책을 시사하면서 강조했던 것도 바로 정치개혁의 중요성이었다. 보시라이 사건을 정치개혁 추진의 동력으로 삼아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진핑 체제의 통치 정당성은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가 그 정도 수준의 정치개혁을 단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 비전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 지도부가 제시한 정치개혁의 방향은 서구식 다원주의와 극좌적 회귀를 배격한다는 원칙하에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를 실현한다는 것인데, 그 알맹이가 공허하기 그지없다. 일반적인 관측으로는 시진핑 집권 3년차 정도에 정치개혁 의제를 당의 공식방침으로 제기하고, 집권 2기에 본격적인 정치개혁이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중국 공산당이 처한 급박한 위기상황을 이런 일정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올가을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는 시작부터 당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을 돌파해야 하는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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