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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부, 태국 체류 미얀마 난민 30명 직접 데려온다

    정부가 태국 난민캠프에 머무는 미얀마 난민 30여명을 한국에 직접 데려온다. 법무부는 태국·미얀마 접경 부근 매솟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인 중 한국행을 희망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사를 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을 받아 심사 및 수용을 하는 ‘재정착 난민 제도’를 통해서다. 난민법의 ‘재정착 난민’ 개념 도입(2013년 7월) 이후 국내에서 실제로 이 제도가 시행된 건 처음이다. 미국, 호주, 일본 등 28개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 유엔난민기구에서 재정착 대상자를 추천받은 정부는 서류 심사와 신원 조회를 하고 있다. 다음달 태국 현지 난민캠프에 직원을 보내 면접, 건강검진 등을 할 계획이다. 최종 대상자는 올 12월쯤 한국에 들어온다. 재정착 난민으로 입국하면 난민 인정자의 지위를 부여받고 국내에서 거주자격(F2) 비자로 체류하게 된다. 입국 난민들은 초기 6∼12개월간 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에서 한국어·취업 교육 등을 받고 퇴소한 후 정착 지역이 결정된다. 미얀마 난민이 선정된 이유는 문화적 배경이 유사하고 국내에 미얀마인 커뮤니티가 이뤄져 있어 사회 적응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법무부 측은 설명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간통죄도 없는데 여성 보호장치 부족… 캐스팅보트 던진 양승태

    간통죄도 없는데 여성 보호장치 부족… 캐스팅보트 던진 양승태

    50년 동안 유지돼 온 ‘이혼 소송의 유책주의’가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 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배우자의 이혼 소송의 허용(파탄주의) 여부를 두고 열린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불허’ 쪽에 캐스팅보트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적 논란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찬반 양측의 주장과 논리가 치열하게 맞붙은 사안이었다. 통상 대법원장은 기존 확정 판례를 변경하거나 판결의 파장이 큰 사건 등을 판단하기 위해 열리는 대법관 13명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다수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더해 왔다. 그러나 유책주의 유지와 파탄주의 전환을 놓고 대법관들의 의견이 6대6으로 갈리자 유책주의 유지에 의견을 더했다. ●파탄주의 유력했지만 공개변론서 뒤집힌 듯 1976년 B씨와 결혼한 A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았다. 2000년 집을 나온 A씨는 2011년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1965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A씨의 이혼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전원합의체로 회부되고, 지난 6월 공개변론까지 열리면서 50년 만에 판례가 변경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대법관의 상당수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파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대법관들은 공개변론에서 파탄주의 도입 측의 논리가 허약하자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이 혼인 파탄 책임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여성을 보호할 사회 제도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특히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사법부가 파탄주의까지 도입하면 민법으로 금지한 ‘중혼’(重婚)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쌍방 책임 경중 무의미 땐 이혼 가능하게 해야” 유책주의 유지 배경으로 ▲지금도 유책 배우자의 협의이혼 가능 ▲파탄주의 도입 때 상대 배우자 일방의 희생 ▲상대 배우자 보호장치 미비 ▲간통죄 폐지 등도 꼽혔다. 대법원은 “스스로 혼인 파탄을 야기하고서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는 데다 여성 배우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현행 판례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반면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은 “실질적인 이혼 상태에 있는 부부의 이혼을 인정, 법률 관계를 확인·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이혼에 따른 배상책임 및 재산분할 등으로 상대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다”며 파탄주의 채택 의견을 냈다. 다만 대법원은 혼인 생활의 파탄 책임이 이혼 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유책 배우자라고 해도 예외적으로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상대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 등이 약화해 쌍방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면 이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난민에 철조망 친 헝가리, 국가비상사태 선포

    난민에 철조망 친 헝가리, 국가비상사태 선포

    헝가리가 난민들의 입국을 전면 차단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헝가리 당국은 15일 난민들의 주요 경로인 남부 로츠게 지역에서 60명의 불법 월경자를 검거했으며 곧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오르기 바콘디 헝가리 총리실 수석 보좌관은 “오늘 철조망을 자르거나 훼손한 용의자 60명을 체포했다”며 “경찰이 국경에서 45명, 헝가리 영토에서 15명을 각각 체포해 사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경찰서에 유치돼 있으며 새로운 이민법으로 처벌될 예정이다. 헝가리는 지난 7월 개정한 이민법에서 안전한 국가로 분류된 제3국을 통해 헝가리에 도착한 난민들의 난민 신청을 거부하고 추방할 수 있도록 난민 신청자격을 제한했다. 이를 위해 헝가리는 지난달 28일 세르비아 국경 175㎞ 전 구간에 가시 철조망 설치를 끝냈으며, 4m 높이의 추가 철조망 건설은 10월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새 이민법 시행으로 헝가리는 불법 이민자 대량 유입에 따른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불법 이민자 규모가 수용 한도를 넘으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국경을 통과하면 징역 3년형, 철조망을 훼손하면 5년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비상사태 선포로 경찰은 국경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군을 동원할 수 있고, 불법 입국자가 숨은 것으로 의심되는 주택은 영장이 없어도 수색할 수 있도록 했다. 헝가리 경찰이 국경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난민 신청을 원한다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방송하자 난민들이 ‘국경 개방’이라고 외치며 야유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 국경관리기관인 프론텍스는 8월 한 달간 유럽으로 입국한 난민은 15만 6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프론텍스는 2차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유입사태로 올해 들어 이미 50만명 이상이 유럽으로 들어왔다고 전했다. 지난달까지 난민 유입은 지난해 전체 입국자 28만 명을 훨씬 초과한 것이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 총리는 이날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난민위기를 다룰 특별 EU 정상회의를 다음주 개최하라고 촉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는 EU 전체의 문제이며 따라서 내주 중 EU 특별 정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며 “도널드 투스크 의장이 특별 정상회의 소집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선진국 대부분 가혹조항 두고 파탄주의 선택

    해외에서는 혼인 관계가 파탄 나면 어느 쪽이든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파탄주의’를 택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도 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가혹조항’은 대부분 갖고 있다. 대법원이 15일 ‘유책주의’를 유지한 것은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가혹조항 등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日 28년 전부터 파탄주의… 축출 이혼 방지 우리가 당초 유책주의 유지의 모델로 삼았던 일본은 이미 28년 전부터 파탄주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만 ▲상당 기간 별거 중일 것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 ▲피고가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아닐 것 등을 단서로 달아 잘못이 없는 배우자가 ‘축출 이혼’을 당하는 사태를 막고 있다. 3년 이상 별거하면 원인과 관계없이 이혼을 허용하는 독일, 5년 이상 별거하면 혼인이 파탄 났다고 보는 영국도 가혹조항을 두고있다. 상대방에게 경제적 고통을 주는 결과를 낳거나 자녀를 위해 혼인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美·유럽, 배우자 부양 책임 엄격 독일과 프랑스는 이혼 뒤 상대 배우자에 대한 부양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도 거의 모든 주에서 부양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의 경우 민법에서 부양 의무를 져야 한다고 규정한 대상은 직계혈족과 배우자, 친족 등에 그친다. 이혼하면 부양 의무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파탄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잘못이 없는 배우자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부양조항이나 일정한 경우 이혼을 제한하는 가혹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간통죄도 없는데 여성 보호장치 부족… 캐스팅보트 던진 양승태

    간통죄도 없는데 여성 보호장치 부족… 캐스팅보트 던진 양승태

    50년 동안 유지돼 온 ‘이혼 소송의 유책주의’가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 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배우자의 이혼 소송의 허용(파탄주의) 여부를 두고 열린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불허’ 쪽에 캐스팅보트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적 논란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찬반 양측의 주장과 논리가 치열하게 맞붙은 사안이었다. 통상 대법원장은 기존 확정 판례를 변경하거나 판결의 파장이 큰 사건 등을 판단하기 위해 열리는 대법관 13명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다수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더해 왔다. 그러나 유책주의 유지와 파탄주의 전환을 놓고 대법관들의 의견이 6대6으로 갈리자 유책주의 유지에 의견을 더했다. ●파탄주의 유력했지만 공개변론서 뒤집힌 듯 1976년 B씨와 결혼한 A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았다. 2000년 집을 나온 A씨는 2011년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1965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A씨의 이혼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전원합의체로 회부되고, 지난 6월 공개변론까지 열리면서 50년 만에 판례가 변경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대법관의 상당수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파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대법관들은 공개변론에서 파탄주의 도입 측의 논리가 허약하자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이 혼인 파탄 책임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여성을 보호할 사회 제도가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특히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사법부가 파탄주의까지 도입하면 민법으로 금지한 ‘중혼’(重婚)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쌍방 책임 경중 무의미 땐 이혼 가능하게 해야” 유책주의 유지 배경으로 ▲지금도 유책 배우자의 협의이혼 가능 ▲파탄주의 도입 때 상대 배우자 일방의 희생 ▲상대 배우자 보호장치 미비 ▲간통죄 폐지 등도 꼽혔다. 대법원은 “스스로 혼인 파탄을 야기하고서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는 데다 여성 배우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현행 판례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반면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은 “실질적인 이혼 상태에 있는 부부의 이혼을 인정, 법률 관계를 확인·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이혼에 따른 배상책임 및 재산분할 등으로 상대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다”며 파탄주의 채택 의견을 냈다. 다만 대법원은 혼인 생활의 파탄 책임이 이혼 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유책 배우자라고 해도 예외적으로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상대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 등이 약화해 쌍방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면 이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씨줄날줄] 바람과 이혼/김성수 논설위원

    “우리는 대단한 일을 했기 때문에 웃고 있다. 결혼을 끝냈다. 해피 디보스(Happy Divorce)!” “모든 게 끝나서 웃는 게 아니다.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혼 서류에 사인한 젊은 부부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들이다. ‘이혼셀카’다. 캐나다를 비롯한 외국 얘기다. 이혼한 부부가 해맑게 웃으면서 이혼 서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법원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낯설다. 이혼 후 원수가 되기 십상인 우리로서는 문화 차이를 느끼게 된다. 부부가 갈라서려면 서로 합의해 협의이혼을 하거나 재판을 해야 한다. 재판까지 가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민법 840조에서는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등 5가지 이혼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제약은 또 있다.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 파탄의 원인 제공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유책(有責)주의다. 1965년 ‘첩을 얻은 잘못이 있는 남편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첫 판결을 한 뒤 50년간 이 같은 원칙을 유지해 오고 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적반하장 격으로 부인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축출이혼’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가부장적 사회였기 때문에 최근 현대적 가족 개념에 맞춰 결혼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을 따지지 말고 누구나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파탄(破綻)주의’다. 이미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운 부부에게 고통만 더 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62년 만에 사라지면서 “간통을 했더라도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파탄주의로 바꿔 유책주의 이혼제도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유일하다. 미국은 1969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1985년 모든 주에서 파탄주의 이혼을 도입했다. 영국도 1969년에, 일본도 30년 전부터 파탄주의로 바꿨다. 하지만 부정행위로 결혼을 깨 놓고 배우자의 뜻에 반해 해방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건 권리남용이라는 반론도 여전하다. 서울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파탄주의 채택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85.5%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법원도 어제 바람을 피운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심리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중 유책주의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7명,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6명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잘못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이혼을 강요당하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여성이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대책 등 입법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성수 논설위원 sskim@seoul.co.kr
  • 외국은 잘못 없는 배우자 보호

    해외에서는 혼인 관계가 파탄 나면 어느 쪽이든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파탄주의’를 택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도 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가혹조항’은 대부분 갖고 있다. 대법원이 15일 ‘유책주의’를 유지한 것은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가혹조항 등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日 28년 전부터 파탄주의… 축출 이혼 방지 우리가 당초 유책주의 유지의 모델로 삼았던 일본은 이미 28년 전부터 파탄주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만 ▲상당 기간 별거 중일 것 ▲미성년 자녀가 없을 것 ▲피고가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아닐 것 등을 단서로 달아 잘못이 없는 배우자가 ‘축출 이혼’을 당하는 사태를 막고 있다. 3년 이상 별거하면 원인과 관계없이 이혼을 허용하는 독일, 5년 이상 별거하면 혼인이 파탄 났다고 보는 영국도 가혹조항을 두고있다. 상대방에게 경제적 고통을 주는 결과를 낳거나 자녀를 위해 혼인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美·유럽, 배우자 부양 책임 엄격 독일과 프랑스는 이혼 뒤 상대 배우자에 대한 부양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도 거의 모든 주에서 부양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의 경우 민법에서 부양 의무를 져야 한다고 규정한 대상은 직계혈족과 배우자, 친족 등에 그친다. 이혼하면 부양 의무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파탄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잘못이 없는 배우자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부양조항이나 일정한 경우 이혼을 제한하는 가혹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열린세상] 법의 여신은 눈물을 모른다/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법의 여신은 눈물을 모른다/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그들로부터 배상을 받아 낼 수도 없었다. 문제는 ‘법’이었다. 그 ‘법’ 때문에 가해자들을 정의의 법정에 세울 수 없었다. 피해 여성은 자살하고, 그 여동생마저도 자살하고, 아버지는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고, 남은 이라고는 어머니뿐인, 이 풍비박산 난 가정을 두고 법의 여신 ‘디케’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여신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정의인가. 아니면 법 자체인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피해 여성은 2004년 여동생의 권유로 드라마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현장반장, 부장, 캐스팅 담당자 등 12명의 방송 스태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여동생을 팔아넘기거나 어머니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며 피해 여성을 모텔에 감금해 성폭행하고, 변태 성행위까지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고소했지만, 2년 만에 고소를 취하하게 된다. 가해자들의 완강한 부인 속에 “사건을 다시 기억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성폭행 관련 법률은 친고죄여서 수사는 중단됐고,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적 단죄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결국 피해자는 자살에 이르고, 여동생 역시 자살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버지도 충격에 휩싸여 뇌출혈로 세상을 하직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민법상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소를 기각하기에 이른다. 약 2주 전 내려진 민사재판의 결론이다. 어떤 법체계가 정의를 수호하지 못한다면 그 법체계는 권위를 잃고 말 것이다. 정의를 외면하는 법은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이 수호해야 할 정의란 무엇인가.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죄가 있는 곳에 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법체계가 고차원적인 도덕률이 아닌 이상 죄를 눈감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용서, 화해 등과 같은 일들은 인간의 도덕적 수양의 문제이지 현실 법의 문제는 아니다. 옳은 일은 보호하고, 그른 일은 단죄하는 것이 현실 법이 추구해야 할 바인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이고도 오래된 정의관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체계를 갖춘 최초의 법전 중 하나로 알려진 함무라비법전은 기원전 17세기 바빌로니아의 제6대 왕 함무라비가 제정한 것인데, 2m가 조금 넘는 돌기둥에 새겨진 282개 법조문 중에서 특히 다음의 두 조항, 즉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했을 때는 가해자의 눈도 상해져야 하고’(196조), ‘다른 사람의 이를 상하게 했을 때는 가해자의 이도 상해져야 한다’(200조)는 것이 유명하다. 유사한 내용이 우리나라 최초의 법으로 알려져 있는 고조선 시대의 팔조금법(八條禁法)에서도 발견된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여서 다스린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동태복수법(同態讐法)의 정의관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도 발견된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만 4세 이전의 아동은 상대방으로부터 가해를 당했을 때 동일한 형태의 보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즉 누군가가 자신을 발로 찬다면 자신 역시 상대방을 발로 차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처지나 사정을 헤아리거나 하는 등의 좀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사고는 한참의 발달 과정을 거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정의의 여신이기도 한 ‘디케’의 양손에는 저울과 칼이 들려져 있고, 두 눈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엄정한 정의의 기준으로 추상과 같이 정의를 실현하되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정의의 본질에만 입각한다는 것을 이 여신은 상징한다. 이 비극적 사건에서 법의 보호를 받은 것은 누구인가. 친고죄라는 형법적 조항과 3년의 소멸시효라는 민법적 근거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12명의 가해자는 세 명의 목숨을 연이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한 가정을 완전히 파탄 내버린 범죄를 저지르고도 단 하루의 감옥 생활과 단 1원의 손해배상을 하지 않았다. 최소한 이 사건에서만큼은 법은 가해자 편이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법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정의는 살아 있는가’라고. 법의 여신 ‘디케’의 두 눈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정의를 갈망하는 우리들의 눈에서만 눈물이 흐른다.
  • [단독] [커버스토리] 올 국내 난민 신청자 2669명… 출입국장서 90명 신청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대규모 난민이 몰려드는 일이 거의 없다. 3면이 바다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2013년 7월부터 난민법(6조)을 만들어 공항이나 항만 등의 출입국장에서 긴급하게 발생하는 난민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이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 1~7월 출입국장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90명으로 전체 난민 신청자(2669명)의 3.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단 국내에 들어온 뒤 일반 출입국사무소에서 난민 신청을 한다. 법무부는 난민 신청자 대다수가 항공기를 이용해 입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을 경유해서 온다. 우리나라 난민신청자의 특징은 ‘생계형’이 다수라는 점이다. 올해는 전체 신청자의 41.6%인 1111명이 불법체류 상태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난민을 신청한 경우도 572명(27.4%)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법무부는 난민 심사를 좀더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엔 이집트에서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12명을 모집해 1인당 5000~1만 달러를 챙긴 ‘난민 브로커’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난민법은 난민 인정 사유를 국적·인종·종교·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1994년부터 올 7월 말까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시리아인은 760여명이다. 이 중 85%가 내전 이후 3년간 집중됐다. 이 가운데 3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570여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강제 송환도 되지 않고 취업도 가능하지만 난민과 달리 기초생활·교육·직업훈련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심사에 불복해 법원으로 가서 판단을 구하더라도 결정이 잘 바뀌지 않는다. 법원이 난민법상 ‘박해’를 ‘생명·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국내외 난민 현실] 국내 난민 522명… 난민 보호율 18%

    올해 7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522명이며 인도적 체류자 876명을 포함하면 국내 난민 보호율은 18.1%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이집트인이 568명으로 가장 많았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 출신은 204명으로 파키스탄인(386명)과 종교적 이유로 한국의 문을 두드린 중국인(360명)에 이어 네 번째다.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한 정부는 난민 신청자를 심사해 기초생활과 사회적응교육 등이 보장되는 난민과 난민의 혜택을 지원하지는 않지만 국내 체류를 허가하는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해 관리한다. 법무부는 심사를 통해 고국에서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자는 사유가 해결될 때까지 국내 취업 활동도 가능하다. 법무부가 난민 업무를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 7월까지 1만 2208명이 정부에 난민 인정을 신청했다. 외국인이 정부에 난민 신청을 하면 6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고 확정될 때까지 6개월씩 연장할 수 있다. 난민 신청 6개월 이후부터는 취업이 가능하며 난민 신청일로부터 6개월 동안은 월 40만원 수준의 정부 지원금이 제공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국내 난민 신청자 3000명 시대… 법안은 낮잠

    난민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난민 신청자 3000명 시대’가 임박했는데도 의원들이 이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 사태를 계기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8개의 난민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에도 불이 붙을지 주목된다. 한국은 2013년 7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다. 법안은 ‘난민의 권리 보장’, ‘난민 가족에 대한 보호’, ‘인도적 체류자(난민과 비교해 보호와 권리 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자)에 대한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의된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안은 난민 인정 심사 기준의 공정성을 보장하도록 했다. 지난 3월 제출된 이원욱 새정치연합 의원안은 난민의 미성년자(민법상 만 19세 미만) 자녀에게 영·유아 보육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 난민법이 교육의 보장 범위를 초·중등교육으로 한정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지난 6월 발의된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안은 자녀는 물론 배우자에게도 의료 지원 또는 생계비 등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홍익표 새정치연합 의원안은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난민법 처리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법제사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8일 “현재 8개 법안 모두 제대로 논의가 진행된 게 없다. 의원들의 무관심이 문제”라면서 “우선 난민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하고 예산 정책 부분과의 연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난민에 대한 지원 범위도 입법 논의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난민은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 범위를 두고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6월 이자스민 의원이 난민에 대한 생계비 지원 대책을 내놓자 일각에서는 “국가 예산을 엉뚱한 데 쓴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형 유언 따라 형수와 합방해 아들 낳았지만…

    형 유언 따라 형수와 합방해 아들 낳았지만…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9. 형의 유언 따라 형수와 부부생활…아들을 낳았건만 출생신고 할길 몰라 (선데이서울 1973년 4월 29일)   4년 전이었다. 김이주(29·가명)는 그때 26살. 군에서 제대하고 직장을 구하던 때라 용돈에도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형님 집에 얹혀지내며 세끼 밥을 얻어먹는 것조차 미안하기만 했던 그는 그래서 감히 용돈 얘기를 꺼내지도 못 했다. 그런 눈치를 잘 알고 있던 형수 강숙자(31·가명)는 가려운 곳을 골라 긁어 주듯 시동생에게 가끔 용돈을 쥐어 주곤 했다. 몇 푼 되지 않았지만 형수의 그 자상한 배려는 김이주에게 눈물이 날 만큼 고마운 것이었다. 어느 회사의 자가용차를 몰고 다니는 형 김일주(34·가명)는 대범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나이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고, 비극은 일어났다. 그는 성 불구자였던 것이다. “총각시절에 고약한 성병을 앓았던 모양이에요. 수술 끝에 겨우 완치되긴 했는데 결국 성 불구자가 되었던 거예요. 물론 임신도 시킬 수 없는….” 형수가 이주에게 들려준 말이다.   ●천애 고아로 자라온 형제, 서로를 극진하게 보살펴 이주가 겨우 취직이 되어 출근하기 시작한 지 열흘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거래처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는 청천벽력의 메모지가 있었다. ‘형수의 전화. 형이 사망했으니 즉시 집으로 와 달라’고 메모지에 적힌 간단한 내용이었다. 허둥지둥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방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형수는 조용히 머리를 푼 채 시체 앞에 앉아 있었다. 시체에는 담요가 덮여져 있었다. “형님”하고 이주는 시체 위에 엎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오열이 엄습해 왔다. 그에게는 형이자 부모이기도 했었다.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형제가 천애 고아로 어려운 세상을 살아왔었다. 아침에 출근시간이 되도록 일어나지 않고 있던 형은 9시쯤에서야 아침 식사를 하고 아내에게 목욕을 하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든 그녀는 함께 목욕 가자고 했으나 어제저녁 목욕을 했노라면서 어서 다녀오라고 했다. 1시간 만에 돌아와 본즉, 이미 형은 죽은 뒤였다고 했다.   ●성불구를 비관, 자살하며 “집안의 혈통 이어 달라”고 “여보, 당신을 사랑하오. 사랑하기 때문에 결심을 내렸소. 비록 내가 먼저 간다고 하지만 항상 지하에서라도 당신을 보살피겠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마지막 수단을 택하오. 용서하시오. 이주에게 따로 남긴 유서는 한 달 뒤쯤 당신과 이주가 함께 읽어 보시오. 그리고 꼭 그대로 실행하시오. 절대로 유서에 당부한 것을 위반하면 안 되오. 안녕. 당신의 영원한 사람으로부터” 형수가 보여 준 유서였다. 사흘 만에 장사를 모두 치른 이주는 형이 재직했던 회사에 나가 퇴직금 20만원과 위로금 10만원을 받아다가 형수에게 주었다. “형수님,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이걸 받아 주세요. 그리고 아직 젊으시니까 개가하실 수 있잖아요? 지금 당장에는 안되겠지만 일단 그렇게 마음의 준비는 해 두세요.” “도련님, 개가 문제는 우리 당분간 입에 올리지 말기로 해요. 그리고 이 많은 돈을 나는 쓸 데도 없으니까 도련님 막 취직해서 어려울 게 아녜요? 10만원쯤 가져다가 쓰세요.”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숙자와 이주는 형이 남긴 유서를 개봉했다. “이주야, 우리 외롭게 살다가 내가 먼저 간다. 너무도 너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윤리에 어긋나는 부탁이지만 들어다오. 형수는 아직 젊다. 개가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형수가 나의 뜻을 받들어 너와 결혼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 집안의 혈통은 이제 너에게 달렸다. 형수를 아내로 삼아 우리 혈통을 이어 주기 바란다. 형수와 너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부탁을 하나 네가 거절하면 할 수 없지. 그러나 가능할 것이다. 나의 마지막 부탁이니 들어다오. 내가 편한 잠을 잘 수 있도록 부탁한다.” 숙자와 이주는 서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실현 불가능한 부탁, 그러나 고인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이주는 형수를 형처럼 존경해 왔다. 다정다감했고, 경우가 밝았으며 가려운 곳을 척척 알아 긁어주던 눈치 빠르고 인정 많은 여자였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형수 같은 여자를 얻겠다”고 농담처럼 뇌까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두 사람이 결합한단 말인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그것은 안될 일이었다. 도덕이 있고, 남의 이목이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은 묘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형의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마음과 그리고 형을 비롯한 3명은 어떤 관계를 초월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형과 동생, 동생과 형수 등의 그런 현실적인 명칭과 관계 따위를 벗어난 혼연일체가 되어 버린 묘한 느낌. 그리하여 1973년 1월, 숙자는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숙자와 이주라는 이 기묘한 부부는 단란하게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도덕이니 법률의 문제는 관심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출생신고가 문제였다. 이 엄청난 고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 [이런 경우는] 사실혼 확인 소송을 먼저 우리나라 민법상 아무리 형의 유언 사항이라 해도 형수와의 부부관계를 인정해주지 못 합니다. 그러나 귀하의 경우는 이미 기정 사실화 되었으므로 사실혼이라 보겠습니다. 출생신고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인데 우선 강숙자 여인과 김이주씨 사이의 사실혼을 인정받는 ‘사실혼 확인청구의 소송’을 제기하시어 사실혼 관계임을 인정받고, 이에 따라서 ‘친생자 확인 청구의 소송’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관계는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사실혼 관계임을 확인받고 아울러 새로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용태영 변호사>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공무원 친목단체도 정부가 감독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친목단체 지도·감독에 관한 지침’을 국무총리 훈령으로 신설했다고 2일 밝혔다. 친목단체란 구성원 사이에 상부상조와 친목도모를 위해 특별법, 민법(비영리법인) 또는 자체 정관·회칙 등에 따라 설립된 단체를 말한다. 특별법상 법인으로는 한국교직원공제회(교육부), 지방행정공제회(행정자치부), 민법상 법인으로는 나라사랑공제회(국가보훈처), 세우회(국세청) 등이 조직돼 있다. 최근 국회나 언론 등에서는 일부 공무원 친목단체의 지나친 수익사업의 불공정성과 불투명한 운영을 지적해 왔다. 지금까지 공무원 친목단체들은 고액의 퇴직부조금을 지급할 요량으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특혜성 임대사업을 감독 대상인 기관을 상대로 벌이는가 하면 주무 관청에선 근거도 없이 선심성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다. 정부는 1994년 공무원 친목단체 수익사업을 아예 금지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그러나 곧장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친목단체의 수익사업이 본래의 설립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원칙과 기준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공무원 친목단체가 수익사업을 운영하거나 투자하는 경우 주무 관청과 관련된 사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공무원이 공무원 친목단체의 임원 자리에 오르려면 미리 소속 기관장으로부터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주무 관청은 연 1회 이상 공무원 친목단체의 운영 실태 및 공무원의 겸직허가 현황을 점검, 그 결과를 인사혁신처에 통보하도록 못 박았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공무원의 영리업무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공무원 친목단체의 수익사업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내연녀에 준 돈은 ‘불법자금’ 못 돌려받아

    내연녀에 준 돈은 ‘불법자금’ 못 돌려받아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불륜 상대에게관계 유지를 위해 건넨 돈은 돌려받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 이우철)는 A씨가 재일교포 B씨를 상대로 최근까지 교제를 하면서 전달한 약 5억원을 돌려달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고 31일 밝혔다. 2005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돼 불륜 관계가 된 A씨와 B씨는 둘 다 기혼자였다. A씨는 일본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B씨를 만나기 위해 수년간 한 해에 적게는 3회에서 많게는 10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했다. B씨 역시 A씨를 만나기 위해 한 해 2~3회 한국을 찾았다. 밀회를 이어가면서 B씨는 급기야 A씨에게 “한국에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은 A씨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B씨에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모두 약 4억 2000만원을 보냈다. 특히 2009년 8월에는 서울 영등포구의 오피스텔 1가구 소유권을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지극정성에도 B씨가 영구적으로 한국에 넘어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A씨는 2013년 11월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한국에서 살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며 현금과 오피스텔 시가를 합한 약 5억 1000만원을 돌려 달라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B씨가 A씨를 속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일방적으로 경제적 이익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B씨의 작품을 여러 점 가져 가 보관하거나 전시했고, A씨가 2013년 12월 B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지만 정작 경찰 조사에서는 ‘연인 사이라서 돈을 줬을 뿐 B씨의 거짓말에 속아 돈을 준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 “A씨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A씨가 B씨에게 지급한 돈과 오피스텔 소유권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급된 것으로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므로 원고는 피고로부터 배상받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민법 746조는 선량한 풍속 또는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한 불법 행위로 재산 또는 노무를 제공한 경우 그 이익(불법원인급여)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B씨의 사기 혐의가 입증됐으면 정반대의 결론이 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김보람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불법원인급여를 따질 때는 두 사람의 불법성 여부를 고려한다”며 “B씨가 A씨를 상대로 사기 행위를 했고, B씨의 불법성이 더 크다는 점이 인정됐다면 A씨가 돈을 돌려받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난민인 척 불법입국… ‘위장 난민’ 브로커 첫 적발

    난민인 척 불법입국… ‘위장 난민’ 브로커 첫 적발

    2013년 7월 아시아 최초로 난민과 난민 신청자의 처우 개선을 뼈대로 한 난민법이 시행됐다. 지난 2년 동안 난민 신청자는 법 시행 이전의 2~3배 수준으로 늘었지만 법을 악용한 난민 위장 브로커가 등장하는 등 부작용도 불거지고 있다. 일부 불법 세력 때문에 난민 심사과정이 더 엄격해져 애꿎은 사람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전성원)는 한국 취업을 원하는 이집트인들에게 허위 초청서류를 보내고 불법으로 입국시킨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 이집트 국적 H(29)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국내에서 난민 브로커가 적발된 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H씨는 안모(구속기소)씨 등과 짜고 올 초 이집트 현지에서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집한 뒤 중소기업 대표 명의의 허위 초청서를 발송해 12명을 불법 입국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입국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1인당 5000∼1만 달러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 들어온 12명 중 9명은 본국의 박해를 피해 떠나온 것처럼 위장해 우리 정부에 난민 신청을 냈다. 나머지 3명은 입국과 동시에 종적을 감췄다. 서울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난민 신청만 해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출국 조치하지 않는다는 난민법 규정을 악용한 사례”라고 말했다. 현행 난민법상 난민 자격은 국적이나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 탓에 귀국하면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부여된다. 해당 외국인이 신청하면 출입국관리소가 이를 심사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1011명, 2012년 1143명 수준이었던 난민 신청인은 난민법 시행 이후인 2013년 1573명, 지난해 2896명, 올해 1~7월 2669명 등으로 크게 늘었다. 법 시행 이후 난민 신청이 급증한 것은 과거에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난민 신청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공항이나 항만에서 바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민심사 기간이 6개월을 넘기면 취업도 가능하다. 난민으로 인정되면 기초생활보장, 교육보장, 직업훈련, 주거·의료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 때문에 난민 신청인 중 ‘가짜’가 80%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출입국관리본부는 분석하고 있다. 불법 체류 중이거나 고용허가 기간 만료 뒤 체류 기간을 연장하는 등 원래 목적에 맞지 않는 신청인들이다. 난민 인정 심사도 한층 엄격해졌다. 2009년 20%를 웃돌던 난민 인정률은 최근 3년간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올해 1~7월 난민 신청자 2669명 중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은 51명(1.9%)에 불과하다. 미국(33%, 2011년 기준), 캐나다(40%) 등과 비교할 때 턱없이 낮다. 다만 난민으로 인정되진 않지만 귀국 때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을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땐 인도적 체류자로 구분된다. 인도적 체류자는 2013년 6명에서 지난해 539명(올 7월까지 16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최근 이집트인 난민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취업이나 장기 체류를 위한 위장 신청자”라고 말했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돈을 가로채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지금도 엄격한 이집트 등 비영어권 난민에 대한 심사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제각’·‘궁박’ 등 어려운 한자·일본식 표현 민법서 사라진다

    ‘제각’·‘궁박’ 등 어려운 한자·일본식 표현 민법서 사라진다

    ‘최고’(催告·촉구), ‘제각’(除却·제거) 등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어 표현들이 민법 조항에서 싹 사라진다. 민법은 국민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기본법인데도 용어들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무부는 민법의 주요 용어 133개와 문장 64개를 순화하는 등 조문 1057곳을 정비한 민법 개정안을 26일 입법예고한다. 개정안은 ‘최고’ 등을 비롯해 ‘궁박’(窮迫·곤궁하고 절박한 사정), ‘요(要)하지 아니한다’(필요하지 않다), ‘비치(備置)하여야’(갖춰 두어야) 등 일본식 표현을 바로잡았다. 넓이 단위인 ‘정보’와 ‘평’도 제곱미터(㎡)로 통일했다. ‘몽리자’(蒙利者·이용자), ‘구거’(溝渠·도랑), ‘언’(堰·둑), ‘후폐(朽廢)한’(낡아서 쓸모없게 된)’,‘해태(懈怠)한’(게을리 한) ,‘인지’(隣地·이웃 토지)’ 등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한자어도 개선했다. ‘상당한’(적절한), ‘이의를 보류한 때에’(이의를 단 경우에는)처럼 뜻이 불분명하거나 ‘표의자’(의사표시자), ‘복임권’(복대리인 선임권)처럼 지나치게 축약된 용어도 쉽게 쓰기로 했다. 남성 중심적 표현인 ‘친생자’와 ‘양자’를 ‘친생자녀’와 ‘양자녀’로 바로잡고 ‘소송의 각하, 기각 또는 취하의 경우’는 ‘소가 취하, 각하되거나 청구가 기각된 경우’로 정확하게 바꿨다. 새 민법은 원칙적으로 조문 전체를 한글로 표기했지만 ‘추인’(追認), ‘소급’(遡及), ‘부종성’(不從性)처럼 한글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혼동될 우려가 있는 경우는 한자를 함께 적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씨줄날줄] 불효자 방지법/박홍환 논설위원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오맹(吳猛)은 겨우 8살 때 이미 효자의 열공에 올랐다. 그가 행한 효는 이른바 ‘자문포혈’(恣蚊飽血). 한여름밤 일부러 맨몸으로 잠들어 모기가 마음껏 자신의 피를 빨도록 함으로써 아비에게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니 이만한 효자가 또 있을까.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가난한 부친과 함께 지내던 중 여름마다 부친이 모기의 성화에 잠을 못 이루자 기꺼이 자신을 모기의 먹잇감으로 내던졌다고 한다. 제(齊)나라 사람 강혁(江革)의 효행도 남달랐다. 머슴살이를 하면서까지 홀로 된 모친을 평생 극진히 봉양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홀로 계신 어머니를 누가 모시겠느냐”며 산적들까지 감동시켰다. 삯일을 해 어머니를 봉양한다는 ‘행용공모’(行傭供母) 고사의 주인공이다. 이 밖에도 어머니 모시는 데 소홀해질까 봐 갓 태어난 자식을 묻어 버리고 어머니 봉양에만 매진했다는 ‘매아봉모’(埋兒奉母), 늙은 모친에게 죽순 탕을 대접하기 위해 대나무를 붙잡고 통곡해 죽순이 나오게 했다는 ‘곡죽생순’(哭竹生筍) 등 중국에는 대표적인 효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24효(孝)’라는 책이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대접하기 위해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연못에 들어가 잉어를 잡거나 어머니 약재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으나 거센 강물에 막혀 안타까워하자 호랑이가 나타나 강을 건너게 해 줬다는 등 다양한 효자·효부(孝婦) 이야기들이 전래되고 있다. 불효자에 대해서는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엄한 사회적 처벌이 내려졌다. 옛 신문을 뒤적이니 이런 기사도 눈에 띈다. 1964년 2월의 일이다. 경북 경주의 한 마을 주민 300여명이 추방대회를 열어 재산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때리고 내쫓은 불효자 최모씨를 마을에서 영구 추방했다. 주민들은 ‘수화불통’(水火不通)이라는 결의문까지 채택해 최씨와 말을 섞는 주민들까지 함께 처벌하기로 했다니 불효자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던 셈이다. 사회가 점점 빨리 고령화되면서 노인 봉양 문제가 커지고 있다. 국가의 사회보장이 100%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 각 가정 스스로 해결할 몫이 크다. 최근에는 미리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가 자식들이 서로 부양을 외면하는 바람에 낭패를 겪는 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그 때문에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돈을 수중에 남겨 둬야 대접받는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돈으로 효를 산다는 슬픈 이야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도 같은 맥락이다.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녀를 상대로 부모가 증여나 상속한 재산을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민법과 형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효도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것인데 효와는 담을 쌓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씁쓸하기만 하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서울광장] ‘맥도리아 청춘’과 로스쿨 엘리베이터/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맥도리아 청춘’과 로스쿨 엘리베이터/황수정 논설위원

    학원가 근처에 살고 있어 주변의 밤 풍경을 자주 본다. 밤 10시 언저리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일대가 한낮처럼 북적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패스트푸드점. 출출해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 야식을 찾는다. 또래의 아이를 두고 있어서인지 패스트푸드점의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주문을 받고,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고, 포장을 하고. 능숙한 손놀림도 있고 딱 봐도 초보티가 나는 친구도 있다. 늦은 밤 학원 공부를 하고 나온 또래에게 (어떤 이유에서건)공부 대신 알바를 선택한 또래들이 서비스를 해 주고 있다. 턱걸이 최저임금, 시급 5580원. 이 대목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여당의 거물 정치인이 일자리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위로라고 했다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란 말은 더더구나 하고 싶지 않다. 교육의 기회균등 차원에서 따지면 한밤의 알바 청년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가 있다. “어서 오세요, 맥도리아입니다!”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는 알바생이 지금 일하는 곳이 맥도날드인지 롯데리아인지 헷갈려 둘을 섞어 외쳤다. 유머일 수 없는 유머다. 시간을 쪼개 알바로 학비를 벌어도 결국 빚쟁이로 전락하는 청년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취업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겠다고 허드레 알바를 견디는 청춘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안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아들 딸이 아버지 후광으로 누렸다는 취업 특혜에 국민적 분노가 걷잡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버지의 권세로 좋은 자리에 취업했다는 아들 딸은 모두 로스쿨 출신이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있었다. 이번 문제들은 우연히 겹쳐 터진 일이 아니라고 본다. 입학, 변호사 시험, 채용 과정까지 모두 깜깜이로 이뤄지는 로스쿨 제도의 한계가 동시다발로 드러났을 뿐이다. 깜깜이 장치의 뇌관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그 주장들이 어느 때보다 지금 설득력이 커졌다. 몇년 전 출입처의 차관급 공직자는 문학을 전공한 아들이 유명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했노라며 자부심이 그득했다. 순수문학 전공자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로스쿨 제도가 요구하는 다양한 스펙까지 쌓아가며, 그 방대한 법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수수께끼다. 3년을 매달려도 민법 한 과목조차 제대로 섭렵하기 벅차다는 법조계 안팎의 회의론은 여전히 높다. 성적과 등수를 일절 공개하지 않은 변호사 시험은 어떤가. 기초 과목인 민법 시험을 직접 채점한 중견 법조인에게서 “100점 만점으로 치면 10점이 안 되는 답안이 수두룩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해 합격률은 90%에 육박했다. 법무부는 대체 실력 아닌 무엇을 따져 법조인을 뽑아 양성하는지, 근원적 불신을 떨칠 수 없다. 등수가 노출될 걱정이 없으니 실력자 아버지는 얼마든 자식을 위해 ‘기획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다. 특혜 취업은 물론이고 판검사 임용에까지 입김을 미치지 못할 게 없다. 사법시험 제도에서는 시험 합격 점수와 등수,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과 등수가 환히 공개돼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그런 상황에서는 짬짜미 취업, 깜깜이 임용은 원천적으로 힘들다. 감사원마저 특혜 채용 잡음을 빚고 있다. 원내 변호사를 전직 국회의원과 간부의 로스쿨 출신 자식들로 계속 채우자 청년 변호사들이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코미디를 지켜보면서 그 고위 공직자의 아들은 지금쯤 어디서 일하고 있을지 왜 궁금해질까. “실력 앞에 부모 있다.” “취업하는 것보다 금수저 물고 환생하는 게 더 빠르다.” 인터넷 공간을 달구는 청년들의 분노와 자조는 안쓰럽다. 금배지 음서제 논란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자녀의 취업 현황을 공개하도록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겠다고 한다. 낯부끄럽고 졸렬한, 궁여지책이다. 자율로 이뤄질 수 없는 정의는 타율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성난 청년들은 기다렸다는 듯 답하고 있다. “억울하면 금수저 내려놓고 환생하라”고. sjh@seoul.co.kr
  • 법정 기록 통해 본 클래식 거장의 민낯

    법정 기록 통해 본 클래식 거장의 민낯

    클래식 법정/조병선 지음/뮤진트리/428쪽/2만 2000원 전혀 연결 고리가 없을 것 같지만 법과 클래식은 해석이 필요하고 그 뿌리에 인간의 삶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은 KBS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방송된 ‘법과 음악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형법학 박사이자 대학 교수인 조병선 교수는 해박한 음악 지식과 법학 이야기를 버무려 거장들의 삶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44개의 법정드라마로 재구성했다. 저자는 음악가들의 삶과 당시 사회를 법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음악가들이 사생활에서 혹은 음악작품 때문에 겪어야 했던 송사와 그 사건이 음악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들의 음악 안에 담긴 당시의 사회상과 법률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당시 법정 기록을 샅샅이 뒤져가며 모은 자료를 근거로 민법, 상법, 형법뿐만 아니라 당시의 종교법과 국제법은 물론 현재의 저작권법까지 38명의 음악가에 대한 44개의 사례들을 각각 다른 주제들로 구성했다. 책장을 넘기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유명 음악가들의 삶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파가니니의 유해가 종교법 때문에 사후 55년 동안이나 묘지를 구하지 못해 떠돌게 된 사연, 지나치게 원론적으로 해석한 저작권법으로 라벨의 막대한 저작권료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넘어간 배경 등을 보다 보면 당시의 법이 얼마나 음악가의 삶에 그늘을 드리웠는지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지만 무덤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궁핍하게 죽은 모차르트, 끊임없이 현상수배 명단에 오르고 야반도주를 일삼았던 바그너 등을 통해 음악가가 창조한 예술이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강조한다. 음악에 얽힌 시대의 이야기와 음악가의 삶에 대해 알고 나면 어느덧 익숙했던 선율에 새로운 이야기가 겹쳐 들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재혼 자녀 입양해놓고 이혼땐 파양 안 돼”

    2011년 남성 A(48)씨는 여성 B씨와 재혼을 하며 B씨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C(12)양을 친양자로 입양했다. 친자식으로 키우겠다는 A씨의 뜻을 법원이 인정한 결과다. 그러나 A씨 부부의 재혼 생활은 2년여 만에 파탄에 이르렀다. A씨와 B씨는 서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4월 이혼을 결정했다. 법원은 C양의 친권자를 어머니 B씨로 지정해 A씨가 양육비로 매월 150만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그러나 A씨는 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며 C양을 상대로 파양(罷養) 소송을 냈다. C양과의 친양자 관계를 끊게 해 달라는 소송이다. “B씨와의 혼인 관계가 이미 파탄돼 이혼에 이르렀고 C양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B씨가 지정될 것이 명백한 데다 자신과 C양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도 충분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파양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박성만 판사는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는 민법이 정한 재판상 파양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민법에서는 양부모가 친양자를 학대·유기하거나 복리를 해했을 때, 친양자가 양부모에게 패륜 행위를 저질렀을 때에만 친양자를 파양할 수 있다. 친양자제도는 혼인 기간 등 일정 요건을 갖춘 부부가 양자를 친자식과 같은 친양자로 입양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친양자로 입양되면 양친의 성과 본을 따르고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친자로 기재된다. 재혼 가정에서 주로 활용한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처리된 친양자 입양 청구는 2012년 180건에서 지난해 266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도 이달까지 172건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재혼 부부가 쉽게 친양자 입양을 했다가 이혼하면서 파양 소송을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친양자 파양 소송은 29건, 올해는 8월까지 22건이 접수됐다. 이번에 친양자 파양 청구가 기각된 것은 당사자인 딸 자신이 파양을 원하지 않은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관계자는 “재혼할 때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친양자 입양을 해 놓고 부부 관계가 깨졌다고 파양을 청구하면 결국 자녀의 상처와 혼란만 커진다”며 “친양자 입양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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