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민간인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60억원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거액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사업장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100만 돌파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012
  • [사설] 총 들고 대화하자는 北, 진정성부터 보여야

    북한이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인 그제 남북 당국 간 대화 의지를 강하게 밝혔지만 우리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 권위의 성명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전제조건을 내건 데다 정작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야간 해상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등 무력강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대화를 거론하면서도 손에는 총을 든 형국이라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북한의 이런 ‘이중 플레이’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대화를 하자고 너스레를 떨면서 뒤로는 잠수함을 보내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에 포격을 퍼부어 민간인들을 살상한 그들이 아닌가. 남북 대화나 6자회담 재개, 대북 제재 완화 등의 분위기를 탐지하면서도 여의치 않자 미리 준비했다는 듯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실험을 한 것도 그들이다. 비정상적 남북 관계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어떤 형태의 대화든 일단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은 분명하다. 대화가 없을 때 우발적인 충돌의 가능성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계속해서 북한을 상대로 대화의 장(場)에 나오라고 손짓한 까닭도 그래서일 것이다.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고, 상대방에 갖고 있던 의구심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화의 긍정적 효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대화 촉구 성명은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내건 조건이 너무 많다.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전단살포 등 비방 중단, 5·24 조치 해제와 대북 정책의 한·미 간 협력 중단 등을 요구했다. 더욱 뜨악한 것은 김 제1위원장의 행보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이 해군과 지상 포병의 야간 해상 화력타격 연습을 참관했다고 어제 전했다. 불과 하루 전 그의 지시로 남북 대화 재개와 관련한 정부 성명을 발표하더니 하루 만에 군사훈련 참관 동정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산이다. 결국 대화 재개 성명은 대화 불발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기 위한 ‘내부용’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진정 대화를 원한다면 전제조건 없이 대화의 테이블로 나와야 하는 것이 도리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그의 ‘통 큰’ 결단으로 그렇게 남북 대화가 열린 전례도 있다. 북한은 조건을 내걸기 앞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림그룹] 김 회장의 나폴레옹 사랑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림그룹] 김 회장의 나폴레옹 사랑

    “나폴레옹의 모자가 경매에 나온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데 순간 ‘내가 사야 하는데’ 했다.” 2014년 11월 16일(현지시간). 김 회장은 25억 8000만원(188만 4000유로)에 나폴레옹 이각 모자를 낙찰받았다. 1주일 전 우연히 경매 소식을 듣고 프랑스 파리 퐁텐블로 오세나 경매소에 직원을 급파했다. 경매는 처음이었다. 김 회장은 진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카탈로그나 포스터 보는 걸 더 좋아한다고 했다. 중학교 때 나폴레옹 황제 전기를 읽고 크게 감탄했다는 그는 “모자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쓸데없는 돈을 들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김 회장은 “기업가는 나폴레옹처럼 긍정적이어야 한다.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면서 “나폴레옹의 도전 정신은 기업가 정신이 절실한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가 많다”고 말했다. 비버의 털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은색 펠트 모자인 나폴레옹 이각 모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나폴레옹의 19개 모자 가운데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개 중 하나다. 그동안 모나코 왕실이 구입해 소장해 오다 경매에 내놨다. 김 회장은 현재 프랑스에서 낙찰받은 모자에 대한 반출 통관 절차를 밟고 있다. 하림은 우선 올 하반기 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NS홈쇼핑 복합건물에 모자를 전시할 계획이다. 이후 모자는 2016년 완공 예정인 서울 논현동 하림그룹 본부 사옥에 옮겨질 예정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여군 하사 격리 이어 감염의심자 또 발생…메르스 軍 확산 우려

    여군 하사 격리 이어 감염의심자 또 발생…메르스 軍 확산 우려

    ‘여군 하사 격리’ 여군 하사 격리에 이어 군에서 5일 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또 발생해 격리됐다. 이에 따라 군이 메르스 확산을 막고자 격리한 인원은 모두 171명으로 늘었으며 메르스 환자를 가까이 한 ‘밀접접촉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군 관계자는 이날 “해군 소속 여군 A 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격리 조치를 받았다”며 “A 하사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83명은 예방관찰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A 하사는 이날 새벽 군 병원에 입원해 메르스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는 6일 나올 예정이다. A 하사는 아직 발열과 기침 같은 메르스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육군에서는 이미 메르스 의심자가 발생해 격리 조치를 받았지만 해군에서도 의심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하사의 조부는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A 하사는 지난달 29일 대전 모 병원에 입원한 조부를 문병한 것으로 확인됐다. A 하사의 남자친구로 문병을 함께한 해군 B 하사도 격리됐다. 해군에서도 메르스 의심자가 나옴에 따라 군의 격리 대상자는 모두 17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6명이며 나머지는 장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간인 1명 사망, 나물 캐다가 軍사격장에서…‘충격’

    민간인 1명 사망, 나물 캐다가 軍사격장에서…‘충격’

    민간인 1명 사망, 나물 캐다가 軍사격장에서 ‘충격’ 민간인 1명 사망 6일 오후 1시 35분쯤 강원도 철원군 도창리 군 사격장 피탄지에서 불발탄이 터져 A(59)씨가 숨졌다. A씨는 경기도 포천시에 거주하는 민간인으로 다른 주민 1명과 함께 사격장 피탄지 (타깃으로 탄이 떨어지는 지점)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은 나물을 캐기 위해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넘어 사격장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군 하사 격리 이어 메르스 감염의심자 또 발생해 격리

    여군 하사 격리 이어 메르스 감염의심자 또 발생해 격리

    ‘여군 하사 격리’ 여군 하사 격리에 이어 군에서 5일 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또 발생해 격리됐다. 이에 따라 군이 메르스 확산을 막고자 격리한 인원은 모두 171명으로 늘었으며 메르스 환자를 가까이 한 ‘밀접접촉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군 관계자는 이날 “해군 소속 여군 A 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격리 조치를 받았다”며 “A 하사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83명은 예방관찰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A 하사는 이날 새벽 군 병원에 입원해 메르스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는 6일 나올 예정이다. A 하사는 아직 발열과 기침 같은 메르스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육군에서는 이미 메르스 의심자가 발생해 격리 조치를 받았지만 해군에서도 의심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하사의 조부는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A 하사는 지난달 29일 대전 모 병원에 입원한 조부를 문병한 것으로 확인됐다. A 하사의 남자친구로 문병을 함께한 해군 B 하사도 격리됐다. 해군에서도 메르스 의심자가 나옴에 따라 군의 격리 대상자는 모두 17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6명이며 나머지는 장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군 하사 격리 이어 메르스 감염의심자 또 발생…여군 하사 남자친구

    여군 하사 격리 이어 메르스 감염의심자 또 발생…여군 하사 남자친구

    ‘여군 하사 격리’ 여군 하사 격리에 이어 군에서 5일 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또 발생해 격리됐다. 이에 따라 군이 메르스 확산을 막고자 격리한 인원은 모두 171명으로 늘었으며 메르스 환자를 가까이 한 ‘밀접접촉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군 관계자는 이날 “해군 소속 여군 A 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격리 조치를 받았다”며 “A 하사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83명은 예방관찰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A 하사는 이날 새벽 군 병원에 입원해 메르스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는 6일 나올 예정이다. A 하사는 아직 발열과 기침 같은 메르스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육군에서는 이미 메르스 의심자가 발생해 격리 조치를 받았지만 해군에서도 의심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하사의 조부는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A 하사는 지난달 29일 대전 모 병원에 입원한 조부를 문병한 것으로 확인됐다. A 하사의 남자친구로 문병을 함께한 해군 B 하사도 격리됐다. 해군에서도 메르스 의심자가 나옴에 따라 군의 격리 대상자는 모두 17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6명이며 나머지는 장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군 하사 격리 이어 감염의심자 또 발생…메르스 군 확산 우려

    여군 하사 격리 이어 감염의심자 또 발생…메르스 군 확산 우려

    ‘여군 하사 격리’ 여군 하사 격리에 이어 군에서 5일 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또 발생해 격리됐다. 이에 따라 군이 메르스 확산을 막고자 격리한 인원은 모두 171명으로 늘었으며 메르스 환자를 가까이 한 ‘밀접접촉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군 관계자는 이날 “해군 소속 여군 A 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격리 조치를 받았다”며 “A 하사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83명은 예방관찰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A 하사는 이날 새벽 군 병원에 입원해 메르스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는 6일 나올 예정이다. A 하사는 아직 발열과 기침 같은 메르스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육군에서는 이미 메르스 의심자가 발생해 격리 조치를 받았지만 해군에서도 의심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하사의 조부는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A 하사는 지난달 29일 대전 모 병원에 입원한 조부를 문병한 것으로 확인됐다. A 하사의 남자친구로 문병을 함께한 해군 B 하사도 격리됐다. 해군에서도 메르스 의심자가 나옴에 따라 군의 격리 대상자는 모두 17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6명이며 나머지는 장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간인 1명 사망, 나물 캐다가 軍사격장에서 ‘충격’

    민간인 1명 사망, 나물 캐다가 軍사격장에서 ‘충격’

    민간인 1명 사망, 나물 캐다가 軍사격장에서 ‘충격’ 민간인 1명 사망 6일 오후 1시 35분쯤 강원도 철원군 도창리 군 사격장 피탄지에서 불발탄이 터져 A(59)씨가 숨졌다. A씨는 경기도 포천시에 거주하는 민간인으로 다른 주민 1명과 함께 사격장 피탄지 (타깃으로 탄이 떨어지는 지점)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은 나물을 캐기 위해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넘어 사격장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군 하사 격리 이어 메르스 감염의심자 또 발생…조부 문병 갔다가 감염 의심

    여군 하사 격리 이어 메르스 감염의심자 또 발생…조부 문병 갔다가 감염 의심

    ‘여군 하사 격리’ 여군 하사 격리에 이어 군에서 5일 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또 발생해 격리됐다. 이에 따라 군이 메르스 확산을 막고자 격리한 인원은 모두 171명으로 늘었으며 메르스 환자를 가까이 한 ‘밀접접촉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 군 관계자는 이날 “해군 소속 여군 A 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격리 조치를 받았다”며 “A 하사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83명은 예방관찰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A 하사는 이날 새벽 군 병원에 입원해 메르스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는 6일 나올 예정이다. A 하사는 아직 발열과 기침 같은 메르스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과 육군에서는 이미 메르스 의심자가 발생해 격리 조치를 받았지만 해군에서도 의심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하사의 조부는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A 하사는 지난달 29일 대전 모 병원에 입원한 조부를 문병한 것으로 확인됐다. A 하사의 남자친구로 문병을 함께한 해군 B 하사도 격리됐다. 해군에서도 메르스 의심자가 나옴에 따라 군의 격리 대상자는 모두 17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6명이며 나머지는 장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군 여군 하사 감염 의심 격리

    국방부는 5일 해군 소속 여군 하사 1명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군에서 메르스 환자를 가까이 한 밀접 접촉자는 10명으로 집계됐고, 격리한 인원은 장병 165명과 민간인 6명으로 늘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해군 소속 여군 A 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 격리됐고 이 여군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같은 부대 사람들 83명은 예방관찰 대상이 됐다”고 밝혔다. A 하사는 이날 군 병원에 입원해 메르스 검사를 받았다. 아직 발열과 같은 증상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결과는 6일 나올 예정이다. A 하사의 조부가 지난 2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A 하사는 지난달 29일 대전 모 병원에 입원한 조부를 문병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관계자는 “확진 환자는 현재까지 공군 원사 1명이고, A 하사를 포함한 밀접 접촉자는 10명”이라며 “실질적으로 메르스 증세가 의심되거나 확진 판정을 받은 장병은 모두 11명이고, 나머지는 감염 가능성이 낮은 예방관찰 대상자”라고 설명했다. 한편 군 당국은 환자 발생 지역 인근 부대 장병들의 휴가, 외박, 외출 등을 통제하되 전역 전 마지막 휴가인 말년 휴가는 예정대로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휴가에서 복귀할 때는 체열 측정을 받고 전역할 때까지 부대원들과 격리시킨다는 방침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메르스 공포] 軍, 장병 80여명 격리… 휴가·외박 부분 통제

    [메르스 공포] 軍, 장병 80여명 격리… 휴가·외박 부분 통제

    국방부는 4일 경기 오산 공군기지 소속 A 원사가 현역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메르스 양성반응이 나오자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90명에 가까운 장병을 격리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재 민간인 2명을 포함한 91명이 군 시설에 격리돼 있다”면서 “이 중 오산 공군기지 소속 A 원사와 관련된 인원은 본인을 포함해 75명”이라고 밝혔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던 A 원사는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했던 평택의 모 민간 병원에 지난달 14일 입원해 치료를 받고 27일 퇴원했다. 이후 자택에 머물렀으나 보건소의 권고에 따라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던 중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격리된 장병은 대전국군병원 10명, 국군수도병원 13명(2명은 민간인), 병영생활관 27명, 자택 41명 등이다. 대전국군병원에 격리된 장병 중에는 메르스 양성 판정을 받은 오산 공군기지 소속 A 원사를 병문안하기 위해 찾아갔던 장병 6명도 포함됐다. 국방부는 메르스가 병영시설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병의 외박, 외출, 면회, 입영 행사 등을 부분 통제하는 지침을 하달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역이나 그 인접 지역 군부대에서는 장병의 외출, 외박을 통제하고 환자가 발생한 지역에 거주하는 장병도 경조사에 따른 청원휴가를 제외하고는 당분간 거주지로 휴가를 갈 수 없도록 했다. 한편 오산 주한 미7공군도 이날 미군 장병의 메르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미군 기지 출입 감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주한 미7공군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미군) 병원은 오산 공군기지로 들어오는 인원에 대한 검사를 포함한 미군 보호 대책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송하진 전북지사, 가고시마현에 위로 서한문 보내

    송하진 전북지사가 화산 분화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 가고시마현지사에게 지난달 29일 위로 서한문을 보냈다. 송 지사는 서한문을 통해 “가고시마현민들의 무사와 평안을 빌며, 부디 분화 활동이 속히 진정되어 모두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200만 전라북도민과 함께 기원한다”고 전했다. 가고시마현 구치노에라부지마섬에서 일어난 이번 화산 분화의 경계단계는 ‘주민 피난’ 수준인 ‘레벨 5’까지 격상됐다. 현재 섬주민 130여명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는 가고시마현과 1989년 우호 증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가고시마현은 아시아청소년예술제에 매년 전북도 청소년 예술단체를 초청하고 있다. 또 건축가, 변호사, 사진가 등 민간인 교류도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가고시마공항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 총 7명의 전북도 출신 인재를 채용하기도 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아시아 안보회의] 北 겨냥 공격 적용엔 딴소리…韓 “동의 필요” 日 “추후 논의”

    [아시아 안보회의] 北 겨냥 공격 적용엔 딴소리…韓 “동의 필요” 日 “추후 논의”

    한국과 일본은 지난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 한국의 동의 없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에 구두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공격 등 각론에 있어서는 여전히 이견이 표출됐다. 중국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를 반대하며 미·중 갈등 구도가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앞으로도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좌우할 주요 의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4년 만에 성사된 이번 회담이 3각 안보협력에 매달리는 미국이 우리 정부에 종용해서 이뤄진 결과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은 미군 함정을 호송하거나 한국 내 일본 민간인을 소개하는 작전, 유사 시 한국에 증원되는 주일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에 파병되는 경우 등이 예상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유사 시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파병되는 문제는 한·미연합방위체제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31일 “일본 집단 자위권 행사와 관련 법제 개정 시 평화헌법 정신을 반영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가지고 절차와 범위에 대한 실무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회담에서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이기 때문에 일본이 북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려면 우리 측 요청이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추후 기회에 다시 논의하자”며 즉답을 피해 실무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이 북한 지역까지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할지에 대해 회의적임을 보여준다. 국방부는 일본 측이 이번 회담에서도 강력히 요구했던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뤄뒀던 한·일 국방교류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게 됐다. 일본은 오는 10월 요코스카에서 열리는 관함식에 한국 함정이 참가해줄 것을 요청했고 국방부는 이를 수락했다. 우리 군이 일본 관함식에 참석하는 것은 2002년 이후 13년 만이다. 한편 나카타니 방위상은 지난 3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열린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에게 “카터 장관이 최근 한국 방문에서 내가 한국 국방장관을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면서 “그래서 오늘 그것(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실현됐고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도 열 수 있게 됐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국방부는 한·일 국방장관 회담 개최 배경에 대해 “안보와 역사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만 설명했었다. 한편 카터 장관은 이날 한 장관과의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최근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 탄저균이 배달된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해 한·미 갈등의 불씨를 제거하고자 했다. 싱가포르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미국인 최소 4명 억류 “예맨 후티 반군 피해 탈출 못한 이유는?”

    미국인 최소 4명 억류 “예맨 후티 반군 피해 탈출 못한 이유는?”

    미국인 최소 4명 억류 “예맨 후티 반군 피해 탈출 못한 이유는?” 예멘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시아파 후티 반군이 적어도 4명의 미국인을 억류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미국 정부 관리를 인용해 예멘 수도 사나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미국인이 모두 민간인이며, 그중 한 명은 미국과 예멘 이중국적자라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올해 초 후티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정이 불안해지자 현지 대사관을 임시 철수하면서 미국인과 미군 병력을 철수시켰지만, 현지 잔류를 택했거나 탈출 방법을 찾지 못한 수십 명의 미국인이 아직 예멘에 머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후티 반군과 직접적인 협상 창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탓에 예멘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을 통해 억류 미국인들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멘 반군의 미국인 억류가 확인될 경우 예멘 사태 해결 과정에서 미국의 활동 반경이 위축될 전망이다. 후티 반군에 밀려난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미국에서 진행한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조한 반면 후티 반군은 반미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CNN방송은 미국 국적 민간인 1명이 예멘의 쿠데타로 야기된 무력충돌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심야에 일어난 입법권의 남용/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심야에 일어난 입법권의 남용/홍복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29일 새벽 국회는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을 개정했다. 야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의 전제조건으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개정을 요구했고, 여야는 이를 담보하려고 국회법을 우선 개정한 것이다. 이날 통과된 국회법(98조의2 제3항) 개정내용은 “국회는 정부의 시행령(대통령령·총리령 및 부령) 등이 법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이를 처리한 뒤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규정은 국회는 시행령이 법률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정부에 내용을 통보하고 정부는 처리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정법과 현행법의 차이는 법률에 위반되는 행정입법(시행령)에 대하여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권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법 개정에 대하여 정부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며 행정부의 행정입법권과 법원의 사법심사권을 동시에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야 대표는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구현하면서 깨져 있는 권력분립의 균형을 복원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여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행정부도 법률에 위반되는 행정입법을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국회가 행정입법을 심사하여 이를 강제적으로 수정·변경을 요구할 권한은 없다. 우리 법의 체계상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반되는가의 심사권(행정입법심사권)은 사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 국회법상의 수정·변경 요구권과 정부의 보고 의무가 결합한다면 단순 요구를 넘어서 강제성을 가지게 되며 행정입법권과 행정입법심사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권력분립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위헌적 입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야 합의로 법안이 통과되었음에도 위헌 문제가 제기된다면 아무리 입법 취지가 좋더라도 이해 관계자 간의 갈등으로 법의 권위와 실효성만 떨어뜨릴 뿐이다. 시행령이 법에 위반된다면 모법을 개정하여 위임된 권한을 수정하든가 박탈해야지 행정부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더욱이 국회법 개정의 동기가 세월호조사위의 과장 한 명을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바꾸려고 하였다는 것은 입법의 일반성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는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반되면 수정할 것을 강제할 권한은 없지만 국정조사,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탄핵소추권 등을 통하여 견제할 수 있다. 지난 3월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세칭 김영란법)이나 이번 국회법 개정처럼 위헌 시비가 일어나는 것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막판 타협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입법이 ‘여야 타협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타협은 헌법 내에서 법안의 내용을 대상으로 해야지, 전혀 다른 것을 발목 잡기나 끼워넣기로 재갈을 물리면 부실 입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심신이 지친 심야에 회기 마지막 날 통과되는 법일수록 문제투성이의 법이 될 수 있다는 게 경험칙이다. 사회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복잡화·다문화·계층화될수록 법률의 제정과 행정입법이 많아진다. 권력분립의 원리에 따라 국회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행정과 사법을 행함에는 그 내용과 절차가 헌법상의 원리와 합치해야 한다. 또한 입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제정된 법은 잘 지켜져야 한다. 졸속 입법으로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조령모개식으로 법이 개정된다면 누가 법을 신뢰할 것인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유독 헌법소송이 많은 것도 입법의 부실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법치주의가 선진화되려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입법 관련 종사자들이 청렴·공평하고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의 규범력과 준법의식이 높아진다. 법의 형성, 집행, 운영과 관련하여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일수록 부강한 나라는 없다. 부강한 나라이면서 법 규범을 엄하게 지키지 않는 나라도 없다. 심야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대기시켜 놓고 국회 본회의를 여는 관행을 없애는 것도 법치주의의 선진화인 동시에 국회의 의사일정을 지켜보는 국민을 위하는 정치이다.
  • 누가 어린이들에게 폭격을…시리아군 ‘통폭탄’ 투하

    누가 어린이들에게 폭격을…시리아군 ‘통폭탄’ 투하

    누가 이 어린이들에게 폭탄을 던졌을까? 지난 30일(현지시간) 시리아 알레포와 인근도시 알바브에 '통폭탄'이 투하돼 72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측은 시리아 정부군으로 이날 폭격이 비난을 받고있는 이유는 어린이들이 포함된 한 가족 등, 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감시단(SOHR) 측은 이날 "시리아 정부군 측이 헬리콥터로 반군 장악 도시들에 통폭탄을 투하, 3명의 어린이와 4명의 여성을 포함 총 70여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집권이래 최악의 학살로 기록된 이번 폭격은 민간인 살상과 더불어 통폭탄이 사용됐다는 사실에 큰 비난을 받았다. 3년 전 시리아 내전에서 처음 사용된 통폭탄은 사제 폭탄물 같은 무기다. 드럼통 속에 폭발물과 함께 볼트, 너트 심지어 화학무기까지 넣어 만든 후 헬기 등을 이용해 공중에서 투하한다. 조잡하게 제작됐지만 제작비용이 저렴하고 특히 살상력이 뛰어나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대해 UN 시리아 특사인 스테판 드 미스투라는 "시리아 정부군 측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시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면서 "헬기를 동원해 이루어지는 이같은 폭격은 용납될 수 없는 일" 이라고 비난했다.   이번에 시리아 정부군에 공격받은 알레포는 현재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가 장악 중이며 알바브 역시 IS가 점령하고 있다. 해외언론은 시리아 정부군이 지상전에서 IS에 패퇴하자 이처럼 헬기를 동원해 무차별적인 폭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진= ⓒ AFPBBNews=News1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공무원연금법 통과 후폭풍] 국회 시행령 수정권 “위헌” “아니다” 팽팽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함께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내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국회 상임위원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법 국회가 통제 의도… 위헌” 즉 세월호특별조사위 조사1과장을 검사로 임명토록 한 현행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고쳐 야당의 요구대로 민간인을 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등 삼권분립 침해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강욱 법제처 대변인은 “행정부에 재량권을 주기 위해 국회는 정부에 시행령 제정을 위임했다”고 말했다. 최진녕 전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결국 모든 법을 국회가 통제하겠다는 것은 입법부가 행정부에 하위 시행령 제정의 권한을 위임하도록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권 사후 감시… 위헌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의 행정입법 제한 논란에 대한 헌법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자가 입법권에 대한 사후 감시의 의미를 가진다”며 “위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권한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의 소지 있다”고 밝혔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공무원연금법 통과 후폭풍] “발목 주의자”… 강성의 위기

    [공무원연금법 통과 후폭풍] “발목 주의자”… 강성의 위기

    이종걸 원내대표 체제의 첫 시험대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 내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결과적으로 야당으로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의 약속을 지키고, 조건부이지만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의 가능성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이 원내대표 체제는 ‘평타 이상’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당내에서는 전임 원내지도부가 여야 합의라는 명분 아래 정부·여당에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향후 정국에 대한 부담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 원내대표의 ‘연계 전략’ 등 여당의 발목을 계속 잡는 ‘강성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하는 여론이 당내에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원내 지도부의 한 인사는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책위의장 등이 당 안팎의 부담 여론을 전달했지만 정작 이 원내대표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전날 대책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 특별조사위원회의 핵심 보직인 조사1과장에 검찰 서기관이 아닌 민간인이 임명돼야 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협상을 주도한 이 원내대표는 정작 29일 새벽 본회의에서 기권표를 던지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 개인적인 신념으로 볼 때는 공무원연금개혁을 제기한 방법과 취지가 적절치 않았고 이 시기에 우선순위로 할 과정이 아니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공무원의 사기가 떨어지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진다. 연금법 개정안은 소탐대실”이라고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9월 정기국회와 내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국에서 야당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당 관계자는 “9월 국회와 연말이 지나면 여야 관계에서 원내대표의 역할이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야당 원내지도부로서는 지금이 하나라도 더 얻어낼 수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