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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통제 문건’파문 각계 반응

    “언론이 정치적 음모의 발생지라니…”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등은 27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했던 ‘성공적 개혁 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 방안’ 문건을 중앙일보 기자가작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명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언론의 자기 반성 및철저한 개혁을 촉구했다. 이들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리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언론이 사주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정치권과 유착,국민의 불신을 사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번 기회를 언론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김유진(金有珍·여·29) 간사는 “언론장악 음모설과조작설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얼마나 파행적이었는 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철저한 언론개혁을 통해 언론과 권력,언론과 사주와의 관계가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시민감시국장은 “공공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에서 문건을 만든 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라도 용납될 수 없다”면서 “검찰 수사를 통해 문건의 작성 배경과 의도,전달 경위 등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국민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언론 탄압설을 주장해 온 중앙일보가 속으로는 정치권과 담합해 음모적 공세를 펴온 증거로,언론윤리 차원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바른 언론을 위한 시민연합 강기태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은 언론이 정치에 개입하려는 언론의 권력적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흥사단 박성규(朴聖圭·48) 사무총장은 “이유야 어떻든 언론에서 그런 문건을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민가협 남규선(南奎先·36)총무는 “정 의원이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선에서 끝낸 것은잘못”이라면서 “국민회의도 언론사 간부가 개입된 것을 확인한 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해 의혹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승관(朴乘寬) 교수는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언론이 정치기관화되거나 정치집단에 이용돼서는 안된다”면서 “정치권과 언론의 흙탕물 싸움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적 무관심과 함께 언론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게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현석 김재천 전영우기자 hyun68@
  • 6·10항쟁 기념 ‘민주대합창’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 민주항쟁 12주년인 10일 음악회와 기념식 등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6월 민주항쟁 12주년 행사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대한매일신보사가 후원한민주항쟁기념 음악회인 ‘민주대합창 1999’가 저녁 7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각계 인사와 시민 1만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에는 민주화운동에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유가협과 민가협 회원들과 김중배(金重培) 참여연대 공동대표,이창복(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의장,문익환(文益煥)목사 부인 박용길(朴容吉)장로 등이 참석했다. 신동호·김은주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열린 음악회에서는 안치환,꽃다지,양희은,김경호,윤도현밴드 등 가수들과 바리톤 고성현씨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마른 잎 다시 살아나’,‘상록수’,‘늙은 군인의 노래’ 등 80년대 민중들이 불렀던 운동·노동가요를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으며 음악회는 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범국민준비위’ 민주열사 추모주간 선포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사업회 준비위는 7일 낮 12시 서울 명동향린교회에서 이날부터 오는 13일까지를 제 10회 범국민추모 및 기념주간으로 선포했다. 준비위는 선포식에 이어 오후 명동성당에서 의문사 진상규명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촛불미사를 가졌다.이어 12일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에서 추모식을 연 뒤 서대문 독립공원까지 가두 행진을 하는 등 13일까지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에서 목요기도회,천도제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추모주간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과 광주 망월동 묘역등 민주화 성지를 순례하며 민주화운동에 자신의 삶을 바친 희생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7일 선포식 행사에는 이창복(李昌馥) 자주평화통일민주회의 상임의장,권오현 민가협 공동의장,이창수 한국국제문제연구소 대표,성유보(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정광훈(鄭光勳) 한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비롯,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鄭亨根의원 유엔인권위 참석 강행

    ‘왜 하필 정형근(鄭亨根)의원인가’ 유엔 인권위 참석을 둘러싸고 정치권 안팎에서 ‘자격론’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정 의원이 17일 마침내 제네바행 비행기에 오른다.예정대로 같은 당 소속 이신범(李信範)·김영선(金映宣)의원과 함께 떠난다. 민가협·유가협 회원 등 30여명은 16일에도 한나라당사로 몰려와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정 의원에 대한 면담을 요청하며 항의의 뜻을 전했다.이들은 이 총재와 정 의원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발에 그치자 “고문전문가 정형근을 유엔 인권위에 보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도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당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사건 등으로 시민·사회단체와의 갈등이 적지않은 시점에서 또다른 악재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 의원은 “불참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 시점에서 포기하면 현 정권의 협박에 굴복하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어 참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여권의 이런 행태는 정치적 폭력”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지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특별한 계획은 없으나 인권법률가협회 관계자를 만나고 인권법 자료를 수집하는 수준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유엔 인권위 총회 발언은 동행한 이신범 의원이 할 예정이다. 정 의원은 원래 참석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처음에는 조웅규(曺雄奎)·김기춘(金淇春)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참석하지 못할 사정이 생겨 당 인권위원 중 한명인 정 의원으로 교체됐다는 후문이다.당 관계자들은무심코 결정한 문제가 뜻밖에 반향이 커지자 당혹스런 표정이다.“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 몰랐다”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난감해 했다. 박준석기자 pjs@
  • ‘鄭亨根 인권’ 유엔까지 확산 조짐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유엔 인권위 참석 정당성을 둘러싼 여야간시비가 유엔에까지 옮겨지게 됐다. 국민회의는 15일 당 3역회의를 마친 뒤 “안기부 재직 당시 ‘고문 연루’혐의로 고소된 정의원의 유엔 인권위 참석의 부당성을 직접 유엔에 직접 호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정의원 참석의 부당성을 지적한 자료를 유엔 인권위 고등판무관실에 보냈다.또 양성철(梁性喆) 당 국제협력위원장등 대표단을 16일 제네바에 직접 보내 부당성을 설명할 방침이다.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고문과 인권 탄압의 장본인이 NGO대표로 참석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인권에 대한 모독이자 국가망신”이라고 공세를 폈다. 국민회의는 또 정의원등이 한국 NGO 사칭행각을 하고 있다며 자격문제를 걸고 나왔다.정대변인은 “정의원등은 한국NGO가 아닌 미국 국제교육발전위원회 회원으로 유엔에 가는 것”이라며 “이들은 단지 유엔에 가기 위한 편법으로 회원자격을 급조했다”며 가짜 NGO대표라고 몰아 세웠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은 “정의원이 문제가 있다면 사법절차에 의해 유죄 선고를 내려야 한다”면서 “야당의원을 외국에까지 비방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이고 인권유린”이라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들도 공방에 가세했다.민가협등 10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한국인권단체협의회는 이날 정의원의 유엔인권위 참석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서경원(徐敬元)전의원도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정보원 시절 정의원의 행적에대한 입장을 밝히고 유엔 참석의 부당성을 강조한다. 오풍연 최광숙기자 bori@
  • 민가협 등 인권단체서 생활 후원/출소 장기수 쉼터 만남의 집

    “반갑습니다.잘 오셨습니다” 25일 오후 미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사는 서울 관악구 봉천6동 ‘만남의 집’에서는 기쁨과 착잡함이 교차된 ‘만남’이 있었다.오전 10시 41년만에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난 禹用珏씨(71)와 朴旺奎(70) 등 미전향 장기수 2명이 당분간 머무르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만남의 집에는 지난해 광복절 43년만에 풀려난 세계 최장기수 金善明씨(72)등 미전향 장기수 9명이 모여 산다. 만남의 집은 89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등 인권단체들이 미전향 장기수 李鍾씨(87)를 위해 구로구 구로동에 1,500만원을 주고 얻은 단칸 셋방에서 출발했다. 생활비는 구에서 나오는 1인당 월 17만원의 거택보호자 생활보조금과 민가협과 성공회의 후원금,그리고 金善明씨가 중구 중림동의 치과 기공소에서 일해 받는 50만원으로 충당한다. 만남의 집이 봉천동에 자리잡은 것은 94년.대지 100평에 건물면적이 50평남짓한 2층의 붉은 벽돌 건물이다.1·2층에는 방이 3개씩 있고 상추,고추 등을 키우는 텃밭이 딸린 작은 마당도 있다. 그러나 만남의 집은 남쪽에도 북쪽에도 속하지 못한다.정부가 미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을 검토한다는 발표에 金錫亨씨(86)는 “조건없는 북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이번에 북한에서 요구한 송환대상에서 빠져 있다.대부분 북한에 가족이나 연고자가 있지만 한국에서 남파 공작원이나 빨치산으로 체포돼 북한당국이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만남의 집 식구들은 통일이라는 진정한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全永祐 ywchun@
  • 우용각씨 북송 인도적 차원서 해결을/2.25 특별사면 이모저모

    25일 오전 10시 형집행정지 등으로 사면돼 교도소를 나온 禹用珏씨(71) 등미전향 장기수 17명의 표정은 비교적 밝고 건강해 보였다. ▒41년동안 복역한 禹씨는 검정색 바지와 점퍼차림에 뿔테안경을 쓰고 대전교도소를 나왔다.교도소 정문에는 오전 8시쯤부터 민가협 회원과 대학생 100여명이 나와 禹씨 등의 출소를 반겼다. 禹씨는 감정이 벅차오른 듯 눈물을 비치기도 했으며 “북송문제는 개인적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어 “변화한 사회환경에 적응해나가며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며 생활하고 싶다.미력하나마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78년 재일 조총련 간첩단사건으로 21년동안 복역한 趙相綠씨(53)도경북 안동교도소를 나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趙씨는 남파간첩 이외의 최장기 복역수였다.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의 姜용주씨(37)의 어머니(74)는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아들을 말릴 수 없어 늘 가슴을 졸인 채 지켜만 봤다”며 눈시울을붉혔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高永復 전 서울대교수(71)는 “독방의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 기쁘다.건강이 허락하는 한 학계에 끼친 피해를 회복하는데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소 7개월만에 공주치료감호소를 나온 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志晩씨(41)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2시간 빠른 오전 8시 치료감호소를 퇴원했다.李世宗감호소장(55)은 퇴원전 志晩씨가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志晩씨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삼양산업 직원이 몰고 온 회색 BMW 승용차를 타고 감호소를 빠져나갔다. 志晩씨의 누나인 朴槿惠 한나라당 부총재(47)는 24일 오후 4시30분쯤 志晩씨를 30분동안 면회했다고 감호소 관계자가 전했다. ▒대전교소소 출소자 중에는 92년 3월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용의자로 체포돼 93년 3월 사형선고를 받은 파키스탄인 무하마드 아자르씨(38)와 아미르 자밀씨(31)가 포함됐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끈질긴 석방 노력으로 특사에 포함된 아자르씨와 자밀씨는 출소 직후 金壽煥 추기경과 金大中 대통령을 연호하며 사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중나온 천주교인권위 吳昌翼사무국장(34)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다고 판단한 인권위는 두 사람의 석방 탄원을 계속,오늘과 같은 기적을 이뤘다”며 “이들은 오늘 저녁 8시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10돌 맞은 인권콘서트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오늘 장충체육관… 실직자도 함께하는 무대로/10년 개근 정태춘씨·김창완·안치환과 자유·꽃다지 출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해마다 세계인권선언일(12월10일)을 즈음해 열어온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12일 오후6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첫해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개근’한 가수 정태춘씨를 비롯해 안치환과 자유,꽃다지,사랑과 평화,김창완씨 등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공연을 갖는다.올해는 특히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이 겹쳐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될 전망.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양심수를 통해 인권회복과 인권실현이라는 전인류의 공동목표를 실천하려는 취지로 지난 89년 겨울 첫공연을 가진 이래 진정한 ‘인권콘서트’로 자리매김돼왔다.지금까지 가수,배우,시인등 수많은 예술인이 참여했으며,공연을 보고 간 관객만도 10만명에 달한다.올해는 양심수뿐만 아니라 IMF한파로 힘겨워하는 모든 실직자와 소시민들도 함께 어울리는 무대로 꾸몄다. 1부 시극 ‘98겨울 감옥’에서는 문성근과 가극단 금강 배우들이 박노해 시인등 석방된 양심수들과 함께 시극을 펼친다.이어 김창완이 양심수 자녀들과 ‘개구장이’를 부르고,10년 개근생 정태춘씨와 관객 등에게 개근상이 수여된다. 문호근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과 김정환 시인이 연출을 맡고,주철환 MBC PD와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등이 음악을 담당하는 등 문화계 인사들이 한마음으로 무대를 만든다. 하루빨리 전국 33개 교도소에 수감중인 양심수가 모두 석방돼 ‘양심수 없는 나라’로 10주년 공연을 맺는 것이 민가협의 진짜 바램이다.(02)763­2606
  • 민주열사열전:17/88년 투신·분신3명의대학생(정직한역사되찾기)

    ◎‘허울뿐인 민주’ 항거… 생명의 불꽃 살라/조성만­민주화운동 통일논의 새장 열어/최덕수­광주항쟁 진상규명 국조권 요구/박래전­“양심수 석방… 죽음 더 없어야” 유서 16년만에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함께 1988년 6공화국이 시작되었으나 진정한 민주정부를 갈망하던 국민들은 허탈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직선제란 모양을 갖췄을 뿐 6공 盧泰愚 정권은 5공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인식이었다. 6공은 공식 출범 전부터 민주화추진위원회 등을 구성하며 ‘민주화’ 정책을 차례로 발표했다.군사독재 정권인 5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언인 셈이었다.그러나 6공 출범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5월 중순부터 20일간에 걸쳐 3명의 대학생들이 ‘노태우정권 타도’를 부르짖으며 젊은 목숨을 잇따라 내던졌다. 87년 12월 대선 때 문민정부의 도래를 꿈꾸었던 많은 사람들은 체념과 함께 6공 출범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나아가 일말의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80년 5·18 광주학살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민주화추진위에서 증언하기도 했다.그러나6공이 요란한 선전과 함께 내놓은 민주화정책들은 군사정부의 연장이라는 정권의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진정한 개혁이 절실한 때에 어설픈 개랑주의의 깃발만 펄럭이는 모습이었다.세 젊은 학생은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세 대학생의 잇따른 투신·분신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운동권의 좌절감과 방향감각 상실을 웅변해준다며 냉소적으로 바라보았고 정권도 이런 쪽으로 몰고갔다.그러나 수십,수만명의 시민·학생들이 이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세 학생은 직선제 정부의 출현에 만족해하려는 현실순응의 추세를 질타하면서 우리에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해결해야만 하는 민주 현안이 산적해있음을 죽음으로 일깨웠다.이에 많은 국민들이 각성하고 공감을 표한 것이었다. ○시청앞 장례식 노제 30만 인파 운집 88년 5월1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민가협 등 재야 민주단체 주최로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다른 한쪽에서는 100여명의 청년들이 참가한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명청) 주최 ‘광주항쟁계승 마구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출발신호를 기다리던 오후 3시38분.서울대생(화학과 2년)으로 명청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인 趙城晩이 구내 교육관 4층 옥상에 나타나 핸드마이크로 사이렌을 울린 뒤 “양심수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말이냐”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민족통일 앞당기자” “광주학살 진상규명 노태우를 처단하자”는 구호를 1분여 동안 외쳤다.이어 흰색 농민복을 입은 조성만은 오른손에 든 칼로 복부를 찌르고 몸을 뒤로 날려 마당으로 떨어졌다.투신 직후 인근 백병원으로 옮겨진 조성만은 이날 저녁 7시쯤 운명했다. 5월19일 낮 서울시청 앞에서 치뤄진 조성만의 장례식 노제에 3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1년전 시민항쟁 당시의 열기가 느껴지는 군중모임으로 4월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룬 당시 야당의 金大中 평민당총재와 金泳三 민주당총재도 참가했다.조성만이 중고등학교를 다닌 전주 도심을 지날 때와 망월동 묘역으로 떠나기 전 광주 도청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도 수만명의 시민들이 장례 행렬을 뒤따랐다. 전북 김제 농촌에서 하급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조성만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대학을 졸업하는 대로 신부의 길을 걸을 계획이었다.그는 투신 오래전에 일기에서 ‘10년 세월에 휼륭한 사제가 되어 교회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하느냐 한순간에 나의 진실된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자문했다.조성만은 투신 당일 아침 작성한 유서에서 특히 한반도 통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자유로운 통일 논의를 소리높여 요구했다. 민주화 운동에서 통일논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통일 전사’로 불리는 조성만은 유서 말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어머님 얼굴,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그리스도가) 고행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오월항쟁 계승 군부독재 타도” 외쳐 조성만의 장례식이 있기 하루전인 5월18일 오전 10시30분 단국대 천안 캠퍼스 시계탑 밑에서 이 학교 법학과 2학년에 다니다 휴학중인 崔德秀가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했다.성명서를 통해 ‘광주학살 비리주범 노태우를처단하자’‘오월항쟁 계승하여 군부독재 타도하자’‘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라’고 주장한 최덕수는 천안 순천향병원에 이어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분신 9일만인 26일 운명했다. 빈한한 가정사정으로 학교를 쉬고 공장과 고향 농촌을 오르내려야 했던 최덕수가 분신할 당시 정가는 4월 총선후 국회개원을 앞두고 광주항쟁 진상조사 특위구성을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그의 30일 서울역 노제에는 1만5,000여명의 시민 학생들이 참가했고 광주도청 분수대 노제에는 3만여명이 모였다. ○“안일과 비겁을 깨뜨리고 투쟁” 호소 그리고 6월4일 오후 4시30분 대학생들의 통일논의가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던 朴來佺(국문3)이 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했다.박래전은 이미 분신 이틀전에 작성한 유서에서 ‘학살원흉 노태우 처단’ ‘통일논의 자유보장’ ‘양심수 즉각석방’ 등을 주장했다.그는 특히 학생들과 사회인 모두에게 안일과 무감각 그리고 분열의 씨앗을 제거하고 단결의 투쟁 대오를 갖추어 나갈 것을 호소했다. “저의 뒤로 저와 같은 죽음이 뒤따라서는 안됩니다.이제 더 이상 죽음은 우리의 손실일 뿐입니다.”“어두운 시대를 열정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한 인간이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87년 6월 투쟁을 기억하십시오.그리고 개량의 환상,안일과 비겁을 깨뜨리고 투쟁의 대오를 굳게 하십시오.”“지금은 슬프시겠지만 제가 원하는 그날이 오면,두분 부모님,아니 그날이 오기까지 힘드시더라도 눈감지 마세요.” 분신 이틀 뒤인 6일 운명한 박래전의 장례식은 12일 수천명이 참가한 시청앞 노제와 함께 치뤄졌다. ◎박래전의 형 박내군씨/인권운동 사랑방 사무국장 활동/동생보다 먼저 민주화운동 투신/유가협 일맡아 희생자 50여명 처리 인권 ‘지킴이’로 이름높은 인권운동 사랑방의 朴來群 사무국장(37세·연세대 국문과졸)은 분신자살한 숭실대생 박래전의 바로 윗형이다.민주 열사 가족들 가운데 스스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그들이 세상을 뜬 다음이다.그러나 박래군 사무국장은 동생보다 먼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형이 동생을 의식화(?)한 것은 전연 아니다.그는 “대학 학회장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을 뿐이며 동생은 스스로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수원에서 버스로 한시간 달려가야 하는 남양반도 끄트머리 시골 출신으로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어렵게 대학에 보낸 두 아들이 모두 민주운동을 한다면서 감옥에 가고 그러다 끝내 분신하는 아들까지 나오게 된 시골 부모의 마음을 이리저리 헤아릴 필요는 없을 터이다.박래전이 유서에서 염려했던 부모는 지금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박래전이 대학 1학년 때인 82년 가을부터 가두 시위에서 형제는 서로 마주치곤 했다.박 사무국장이 86년부터 2년형을 살고 있던 감옥에서 87년 6월 항쟁으로 석방돼 나온 뒤에 형제는 자취방에서 같이 살았다. “그때 래전이는 특히 몇몇 운동한다는 사람들의 불성실 무책임에 가슴아파했다.” 동생이 죽은 후 그는 유가협 일을 맡아 5년동안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50구가 넘는 민주화 희생자들의 시신을 처리해야 했다. 그는 동생의 분신이 갖는 의미에 대해 따로 덧붙일 말이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같은 무렵 통일논의에 물꼬를 튼 조성만의 분신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연보 ◆박래전 63년 경기 화성 출생 82년 숭실대 국문과 입학 83년 휴학,입대 86년 제대 87년 복학 12월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선전국장 88년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 88년 6월4일 학생회관 분신 88년 6월6일 운명 ◆최덕수 68년 전북 정주시 출생 87년 단국대 천안캠퍼스 법학과 입학 88년 휴학 88년 5월17일 교내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성명서 낭독 88년 5월18일 분신 88년 5월26일 운명 ◆조성만 64년 전북 김제 출생 83년 전주 해성고 졸업 84년 서울대 화학과 입학 85년 군입대 87년 제대,복학,명동성당 가톨릭 민속연구회 회장 87년 12월 대선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데모 관련 구류 10일 88년 5월15일 명동성당내 교육관 옥상 투신,운명
  • 8·15 사면 가족·각계 반응/“국민화합·제2 건국 계기로”

    ◎全·盧씨 “5·18 12·12 관련자 포함 잘된 일”/朴노해씨 부인 “8년 수발 짐 벗어 기뻐”/민가협 “양심수 360여명 대상 제외 유감” 모두 7,007명의 사면 대상자 명단이 발표된 14일 국민 대다수는 “사면을 계기로 화합을 다지고 제2의 건국을 맞는 계기로 삼자”면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張世東·鄭鎬溶·安賢泰씨 등 12·12 및 5·18 관련자와 全斗煥·盧泰愚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연루자 등 14명이 특사에 포함되자 두 전직 대통령측은 “잘된 일”이라며 환영. ○…權魯甲 전 의원은 복권사실이 발표되자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짤막한 소감만 밝혔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 朴노해씨(본명 朴基平)의 부인 金眞珠씨(43)는 사면 소식에 “지난 8년동안 옥바라지를 하면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었다”면서 기뻐했다. 金씨는 “최근 면회 때 朴시인이 ‘그동안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국민의 정부는 한번 믿어볼 만한 정부’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친딸과 친인척을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남편을 청부살해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林順蘭씨(46)도 형기를 1년4개월 앞두고 15일 가석방된다. 林씨는 “부모 탓에 불행하게 자란 자식들과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석방소감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사면 대상자 중 93년 5월 살인죄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아미르 자밀씨(30) 등 파키스탄인 2명이 무기로 감형되는 데는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金亨泰 변호사)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한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단행한다면서 455명의 양심수 가운데 최장기수 등 360여명을 사면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 “헌정질서 파괴나 비리사범을 사면·복권한 조치는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반개혁적 행위”라고 주장.
  • 양심수 석방/임수경 통일운동가(굄돌)

    탤런트 김혜수 박광정,그리고 영화배우 명계남이 푸른빛 죄수복을 입고 감옥에 갇혔다. 화면에서 보는 극중 상황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이들은 단 몇시간의 체험이지만 무척 힘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6∼8일 양심수의 전원석방을 촉구하는 캠페인 행사의 하나로 명동성당 입구에서 열린 ‘하루 감옥 체험’에는 양심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각계 인사 21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갇힌 모형감옥은 실제 교도소의 독거 수용방과 같은 크기인 0.75평의 공간으로 지었다. 민가협에서 집계한 양심수의 숫자는 7월말 현재 455명이다. 이 중에는 41년째 구금 중인 초장기수 17명,박정희 정권 때 구속된 3명,5·6공화국 당시 구속된 42명의 양심수가 포함돼 있다. 내란·부정축재 등의 혐의로 수감되어 2년만에 석방된 두 전직 대통령은 청와대에 초청되었지만 이들에 의해 갇힌 사람들은 10여년의 세월동안 여전히 감옥에 있다. 정부수립 50년,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으며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한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양심수가 계속 존재하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태어난 지 4일만에 구속된 아빠와 놀이동산에 가보고 싶다는 일곱살 짜리 명지,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구속되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빠를 기다리는 명완이(13세),일하러 나간 엄마 대신 두 동생들을 씻기고,밥을 차리고,살림을 해야 하는 하나(10세),공부하러 가신 아빠가 8월에는 꼭 오실 거라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는 준홍이(6세). 감옥에 있는 엄마·아빠를 기다리는 수많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안겨주는 일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사면의 의미는 단순히 시혜나 은전이 아니라 과거 분단과 독재의 역사가 만들어 낸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 있다. 이번 사면이 진정한 국민 대화합과 인권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2(정직한 역사 되찾기)

    ◎잘못된 법 적용/간첩누명 복역수 가족 비탄의 나날/새법 재정 재구금… 가정 풍비박산/정권안보차원 범죄 날조 처형/김 대통령 한때 사형선고 받아/고문조작으로 10여년째 구금도/심장병·신경질환 등 후유증 심각 비가 오는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한 남자가 푸른 수의를 입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 앉아 있다.그는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사내에게 연신 무죄를 호소한다.그러나 전기스위치가 올려지고,그의 코에 물주전자의 물이 거듭 부어진다.그는 눈동자가 풀어진 채 옆의 사내가 불러주는 대로 횡설수설 따라 읊는다. “북한의 우순학이 제 처입니다”“저는 30년간 북한의 공작원이었습니다”. 탑골공원을 무대로 지난 9일(목요일)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건장한 사내는 고문기술자 李根安이고 초췌한 남자는 16년째 간첩죄로 복역중인 咸珠明씨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갖는다.이날 집회의 주제는 ‘고문조작 간첩사건 피해자의 석방’.이 자리에는 군사정권 아래서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복역하고있는 14명의 가족들과 민가협 회원 등 50여명이 참가해 새정부의 조속한 석방조치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법과 동일시되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악법 논란’은 지난 50년간 끊일 날이 없었다.대부분이 아는 것과 틀리게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적이 없다.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전하고자 한 것은 ‘법에 대한 사전 합의와 동의의 중요성’이었다. 지난 61년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유신시절의 비상국무회의,80년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은 국회가 아닌 비정통적인 대의기구들이다.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서 이런 기구가 쏟아낸 법률들이 사전동의나 합의의 절차를 충실히 거쳤다고 하기는 어렵다.또한 본인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는,고문에 의한 조작 논란이 많았던 사건들도 정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71년 통일사회당 위원장 金哲씨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북괴를 북한으로 불러야한다’는 발언을 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당시 혐의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인데 이조항은 국가보안법 7조에 그대로 편입됐다.그러나 남북한 동시가입은 수년후에 이뤄졌고,지금 북한을 공식적으로 북괴라고 호칭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돼왔다는 논란 속에 숱한 인권침해와 위헌시비를 일으켰다. 이종·최남규·김중종씨 등은 50∼60년대 남파돼 체포된 뒤 10여년간 복역을 마쳤으나,75년 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재구금됐다가 89년 이 법의 폐지로 다시 석방된 이들이다.출소후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새 법이 제정돼 느닷없이 다시 갇히는 사람들의 황당함은 어떤 것일까. 정권안보차원에서의 범죄의 날조·조작은 법 자체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 李承晩 정권은 야당당수였던 曺奉岩 진보당위원장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고,金大中 대통령도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가지 받았었다. 고문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수십년째 갇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함주명·이장형씨 처럼 고문기술자 李根安으로부터 취조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함씨는 남파된 뒤 즉시 자수했으나 30년후 재구금되어 20년형을 선고받고 16년째 복역중이다. 이씨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14년째 구금돼 있는 상태다. 함씨의 누나 함주옥씨(73)는 “너무 억울하다.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하루빨리 재심절차가 있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74년 일본 유학때 조총련계 인사를 접촉한 것이 빌미가 돼 23년간 복역하다가 올 3월 특사때 나온 유정식씨. 南奎先 민가협 총무는 “현재 유씨는 심장병과 신경질환 등 극심한 고문후유증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함께 나온 재일동포 손유형씨도 후두암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다가 현재 일본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고 전했다. ◎張俊河·白基玩씨 악법철폐 앞장/학생들 민주화투쟁 전위대 역할… 3·4·9차개헌 견인/80년대 후반 민가협 등 수백개 민주단체서 주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1974년 1월에 발표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이렇게 시작된다.朴正熙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긴급조치를 발동했다.정권유지를 위한 강경책이었다.과거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과 법을 고치고 그를 정권유지에 이용했다.그러나 온갖 탄압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법과 헌법에 대한 저항과 투쟁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긴급조치가 발표되자 張俊河·白基玩씨 등은 ‘반유신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였다.그러나 서명운동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두 사람은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당시 판결은 구형과 판결이 일치하는 이른바 ‘정찰제 판결’로,이후 많은 공안사건의 판결 기준이 됐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그들은 민주화운동과 악법철폐운동에 앞장섰다. 일부 판·검사들의 ‘정의 투쟁’도 있었다.지난 64년 1차 인민혁명당사건에서 이용춘·장원찬·김병리검사는 중앙정보부에서 넘어온 공안사건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지난 96년 유원석 판사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충렬·허인회씨에게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공안사건에서도 ‘증거재판주의’원칙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지난해 2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을 벗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의 타락에 맞서 싸운 주체는 학생들이었다.그들은 왜곡된 헌법과 법을 바로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지난 60년 이루어진 3·4차 개헌과 87년 민주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개헌도 사실 학생들이 이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은 법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제도권에 몸담은 기성세대들이 하기 어려웠던 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전위대’ 역할도 담당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역할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 수백여개에 달하는 민주시민단체와 비영리전문단체들이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인권운동사랑방 등이 대표적 단체.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운동과 악법철폐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으며,매주 목요일 주제를 정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민변 또한 지난10여년 동안 文益煥 목사 방북사건,姜基勳씨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진상조사 및 변론을 맡았고,국가보안법 개정·폐지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지를 통해 법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 공론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간첩 불고지혐의 무죄판결 받은 咸雲炅씨/“명예실추·정신적 피해 상상 초월 보안법 자의적 적용 빨리 고쳐야”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실추된 명예와 정신적·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습니까.”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咸雲炅씨(34).“재판중에는 모든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돼야 하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당하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咸씨는 지난 95년 ‘남파간첩 김동식 사건’과 관련해 불고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지난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남북분단 상황에서 일단 간첩사건에 관련돼 체포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생활에는 족쇄가 채워집니다.그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지요.” 지난 96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咸씨는 “선거를 불과 몇개월 앞두고 이 간첩사건에 관련돼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그것은 선거에 치명타를 가했다.”고 말했다. 咸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일부 언론사와 국방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고 피해보상도 요구할 방침이다.언론사에는 재판중인 사건임에도 자신을 완전히 범죄자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한 책임을,국방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 등을 사병들의 정신교육 자료에 사용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수년전보다는 많이 완화돼 과거의 ‘막걸리 보안법’수준은 벗어났다는 점은 인정했다.그러나 여전히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친척까지도 신고해야하는 불고지죄는 반인륜적이라고 비판했다.유교적 윤리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친척과 친구를 신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이적단체 찬양고무죄나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죄 등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제의 조항이라고 했다.그는 “새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자의적 해석에 의해 보안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수사기관에 시정을 촉구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양심수에 햇볕을(金三雄 칼럼)

    제 2건국을 표방하는 金大中정부가 8·15 건국 50돌을 맞아 단행할 특별사면과 복권에 많은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전히 8·15는 우리에게 억압과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출발로 다가온다. 그런 뜻에서 국민정부 출범의 의미를 함께하지 못한 양심수들에게 뒤늦게나마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양심수’를 거론하면 용공으로 몰렸다. 정권교체로 이런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양심수의 사면 복권을 색깔론과 연계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불행한 우리 정치사는 좌우 이념대결과 함께 독재와 반독재의 정치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양심수는 바로 이런 대결과 대립 과정에서 생긴 ‘아웃사이더’들이다. 앰네스티가 정의한대로 “신념 종교 성별에 상관없이 비폭력 수단으로 자신의 사상과 의사를 표현하다 실정법에 의해 탄압받는”사람이 양심수다. 우리의 특수환경과 관련,국내 인권단체들은 “정의 평화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이라 말한다. 군사독재시절 金대통령도 ‘양심수’였고 새정부에는 상당수 양심수 출신이 요직에 앉았다. 따라서 정부는 누구보다 양심수와 그 가족의 아픔을 헤아릴 처지다. ○우리 체제 우월성으로 포용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에 한명의 양심수도 없다고 한다. 어느 시대 관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구정권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지난 2월 앰네스티는 한국내 양심수 명단 100여명을 대통령직인수위에 전달한 바 있고, 민가협 등에서는 지난 3월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때 전체 양심수 478명 가운데 15%에 불과한 74명만 석방되었다고 국민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인권단체들의 조사로는 현재 437명의 양심수가 수감중이란 주장이다. 양심수 석방을 둘러싸고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국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나 대남파괴 활동을 벌인 간첩까지 양심수로 부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여전히 분단과 무력대치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금 햇볕론을 통해 대북포용정책을 펴고 있다. 북쪽을 포용하면서 남쪽의 반체제를 배제한다면 그건 모순이다. 해외 반체제 망명객들도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전향제 폐지와 함께 우리 체제에서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여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이것은 金대통령 햇볕론의 정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전향제 폐지와 함께 ‘준법서약’을 둘러싼 불필요한 공방으로 햇볕정책을 방해하려는 세력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일부 수구세력은 반공을 독점하는 체하면서, 필요하면 적과도 내통하고 개혁세력을 색깔론으로 매도하려 든다. 정부의 전향제 폐지 조처도 이들에게는 다시없는 색깔론의 대상이다. ○과격한 요구 일 그르쳐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엄격한 ‘준법서약’을 통해 우리 체제에 흡수하고 순수한 양심수는 과감한 사면 복권조치로 해방의 기쁨을 안겨줘야 한다. 준법서약제는 ‘서약’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서 정부나 양심수측이 너무 극단적 고집을 부려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총련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구속자가 바로 한총련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한총련 수감자들은 이번 기회에 가정과 학원으로 복귀돼야 한다. 다만 탈냉전의 물결에 휩쓸려버린 사회주의의 허상, 굶주림의 동토로 변해버린 주체왕국의 실상을 꿰뚫는 인식의 전환이 따라야 한다. 젊은이들이 지난 우리 역사가 남긴 모순구조와 현실의 부조리로 자칫 극단의 모험주의 관념과 허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허망과 절망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정부와 기성세대의 포용력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땅에 양심수가 존재하지 않도록 화해 정의 평화 인권 같은 보편가치가 더욱 신장돼야 한다. 개혁은 바로 이런 가치구현을 위해 필요하다.
  • 양심수 사면 길 열었다/8·15사면 특징

    ◎준법서약제 도입 혜택범위 넓혀/사상처음 선거사범도 대상 포함 1일 법무부가 金大中 대통령에게 건의한 ‘8·15 사면 기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양심수’에 대한 사면의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또 사면사상 처음으로 선거사범을 포함시켰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미전향 장기수·국가보안법 사범 등 양심수에 대한 사면은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등이 한국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요구해온 단골 메뉴였다. 이번에 도입한 준법서약제는 전향제도와는 달리 헌법 19조에 규정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취지를 살려 사상·양심의 자유를 한층 끌어올린 제도라는 게 법무부측의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쓰고 검사를 통해 신뢰성 여부를 검증받으면 가석방·사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정부 당국도 이들의 신념을 존중,최소한의 요구를 한 셈이다. 때문에 사상과 신념을 바꾸라는 전향제도와는 실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향제도의 폐지와 준법서약제의도입은 공안사범에 대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밝혔다.이어 ”金 대통령이 ‘행동과 언어로 대한민국을 부인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공안사범을 선처할 수 있다’는 지침을 가시화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따라서 사노맹사건의‘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朴노해씨와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白태웅씨 등을 비롯해 민가협이 주장하는 650명의 양심수 가운데 상당수가 8·15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8·15 사면 기준에는 전례가 없었던 선거사범도 들어있다.3·13 대사면 당시 정치권에서 ‘표적수사’등을 이유로 선거사범에 대한 사면을 요구했으나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자칫 공명선거 풍토를 해치고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에도 배치된다고 판단해 사면대상에서 제외했었다. 법무부는 앞으로 1년6개월 동안 선거가 없어 사면된 선거사범이 정치를 다시 한다하더라도 유권자가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 양심수 등 8·15 大赦免/공안사범 사상전향제 폐지/朴 법무

    ◎朴노해·白泰雄씨­權魯甲·洪仁吉 전 의원 포함 오는 8·15 광복절에는 건국 50주년을 맞아 공안사범과 선거사범,한보사건 등 대형 비리사건 연루사범 등이 대거 사면된다. 특히 金和男 전 의원과 李麟求·辛卿植·邊雄田 의원 등 선거사범이 사상 처음으로 사면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한보사건으로 각각 징역 6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權魯甲·洪仁吉 전 의원과 申光湜·禹贊穆·李喆洙씨 등 전직 은행장 3명도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전향 장기수·남파간첩·국가보안법 사범 등 공안사범에 대한 전향(轉向)제도가 폐지되고 ‘준법(遵法)서약제’가 도입됨에 따라 사면 대상에 朴노해·白태웅씨를 비롯,상당수의 공안사범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1일 하오 金大中 대통령에게 ‘국정과제 추진실적 및 계획’을 보고하면서 이같은 내용의 8·15사면 기준을 건의했다. 이에 따르면 미전향장기수 등 공안사범은 ‘사회주의 또는 공사주의 사상을 버렸다’는 전향서를 제출해야 가석방·사면 등의 혜택을 받았으나 앞으로는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상과는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내면 사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민가협 등 재야단체들은 미전향 장기수 17명을 포함,650여명의 ‘양심수’가 수감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등 중요 공안사범 외에도 폭력시위 혐의로 사법처리된 대학생들도 사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특히 이번 8·15사면 대상에 선거사범을 비롯,한보사건 등 3·13 대사면에서 제외된 정치·경제계의 주요 인사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 민주화 희생자 재조명 활발

    ◎고귀한 희생에도 300여명 아직 ‘범법자’ 낙인/추모단체 학술토론·대학 명예졸업장 추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민주열사’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분신이나 투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죽음을 당한 민주화 희생자는 300여명에 이른다.이들의 재조명 작업은 ‘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상임의장 李昌馥)와 80여개의 추모사업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희생자들이 아직도 범법자로 낙인 찍혀 있다”면서 “5·18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유공자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희생자 가운데는 노동운동 분야가 85명으로 가장 많고 학생운동 81명,재야·빈민·농민분야 및 일반시민 41명,사형·옥사하거나 출옥 뒤 사망한 장기수 등이 83명이다. 추모 단체들은 올초부터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서명운동을 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연대회의는 지난 4월 ‘민주열사 정신 계승을 위한 학술제’를 개최하고 한달동안 5만여명의 서명을받았다. 서울대 국민대 숭실대 전남대 등은 재학 중 희생된 학생들에게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하고 있다.서울대는 87년 6·10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됐던 朴鍾哲씨를 비롯,75년 유신반대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金相眞씨 등 재학중 숨진 10여명에게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 중이다.국민대도 학교를 중퇴하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 89년 노조탄압에 맞서 분신자살한 金윤기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줄 계획이다. 88년 5월 ‘군사독재타도’를 외치며 숭실대에서 분신 자살한 朴래전씨의 추모사업회는 지난 1일부터 1주일 동안 숭실대에서 10주기 추모제를 열고 그의 뜻을 기려 동화(冬花)문학상을 신설했다. 서울 평화시장의 노조 투쟁과정에서 분신자살한 全泰壹씨 추모사업회는 지난달 23일 고려대에서 민가협 및 민주노총 등이 참석한 가운데 ‘98 다시 만나는 全泰壹’행사를 열었다. 88년 ‘조국통일과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할복·투신자살한 趙城晩씨 추모사업회와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며 88년 분신자살한 崔덕수씨 추모사업회,91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姜慶大씨의 추모사업회 등도 명예회복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87년 8월 ‘노동자 대투쟁’ 당시 시위를 하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李錫圭씨 추모사업회를 결성했다.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며 80년 서울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자살한 서강대 金의기씨에 대해서는 학교민주동우회에서 추모 활동을 펴고 있다.
  • 지방선거 대비 당직 ‘중폭’ 개편/국민회의 청와대 당무보고

    ◎시국·선거사범 4백여명 주가 사면·복권/실업문제는 차관들여와서라도 꼭 해결 19일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과 당4역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는 몇가지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조율이 이뤄졌다. 우선 그린벨트의 전면 재조정이 현실화 될듯하다.김대중 대통령은 “환경영향 평가 등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뒤 해결하라”며 준비작업의 착수를 지시했다.그린벨트는 30년 전에 확정된 만큼 현실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따라서 불합리한 그린벨트때문에 고통받는 많은 주민들을 위해 재조정은 시급하다는 인식이다.대선공약을 실현한다는 의미와 함께 부동산 거래의 활성화 등 경제회생을 위한 이중포석의 의미가 있다. 주례보고에서는 또 당8역체제 출범과 함께 내주초 당직개편 방침을 최종확정했다.“분위기를 쇄신해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당의 건의 형식이다.구체적인 인선 폭은 확정하지 않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중폭’선으로 가닥이 잡힐 듯하다.조총재권한대행도 “현재의 10역이 자리를 옮기는 연쇄이동도 가능하다”고 방향을 내비쳤다.양심수에 대한 추가 사면복권도 건의했다.조대행은 “정권교체의 정신을 살려 다음 경축일 쯤에 시국사범과 선거사범에 대한 사면복권을 건의했다”며 “김대통령도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시기는 석가탄신일이 유력하나 8·15 광복절로 순연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분위기다.대상자는 민가협 등에서 요구하는 362명의 양심수를 비롯,구야권 인사 중 표적수사 의혹이 있던 75명의 기소자 등이 포함될 것이라는 후문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실업자 대책에 초미의 관심을 표명했다.“앞으로 1백만이 될지 2백만명이 될지 모른다”고 심각성을 피력한뒤 “세계은행 등에서 차관을 끌어와서라도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총력전을 촉구했다. 당은 조직강화특위에서 사고지구당으로 판정한 40개 지구당에 대한 ‘물갈이 방침’도 보고했고 오는 25일부터 위원장을 공모한다는 계획도 전달한것으로 알려졌다.내달 2일 실시되는 4개지역 국회의원 재·보선에 대한 당의대책 등 준비현황도 보고했다.
  • 3·13 대사면 이모저모

    ◎미전향 장기수 신인영씨 31년만에 90 노모와 재회/황석영씨 “많은 집필 구상… 창작활동 전념”/민가협선 모든 양심수 석방요구 성명도 13일 대사면 조치에 대해 민주화실천 가족운동 협의회 등 인권·시민단체들은 기대에 다소 못미친다는 반응를 보인 반면 노동계는 환영일색이어서 대조를 보였다. ○…이날 공주교도소에서 풀려난 소설가 황석영씨는 “수감중에는 집필권이 없어 책을 쓰지 못했으나 많은 구상을 했다”면서 “건강부터 추스르면서 사람도 만나고 창작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진주교도서에서 풀려난 서경원 전 의원은 “나보다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먼저 출감해 송구스럽다”면서 마중나온 부인 임선순씨(50)와 아들 정훈씨(23),여동생 은녀씨(50) 등과 반갑게 포옹.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하다 31년만에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난 신인영씨(68)도 마중나온 노모 고봉희씨(90)와 눈물로 재회. 6·25 때 의용군으로 입대,월북했던 신씨는 6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가 체포됐으나 북에 두고온 아내와 아들,딸이 잘못될 것을 걱정해 지금까지 전향을 거부해왔다. ○…박상천 법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 중간중간에 “건국 이후 최대규모”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는 등 의미 부여에 신경을 썼다. 박장관은 사면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일순간의 잘못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국민들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힘찬 출발로 국난을 극복,민주발전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소개. ○…민가협은 이날 성명에서 “정부의 사면대상에 포함된 양심수는 전체 양심수 478명중 15%에 불과한 74명”이라면서 “김대통령은 약속대로 양심수 모두를 석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
  • 전씨 비자금 공판­재판 열리던 날

    ◎점심 휴정때 검사들과 일일이 악수/“주소는 안양교도소…” 대답에 방청객 폭소/법정분위기 의식한듯 꼿꼿한 자세유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1차 공판이 구속 86일만인 26일 서울지법 4백17호 대법정에서 열려 재판부의 인정신문과 검찰의 직접신문 순서로 두차례 휴정 끝에 하오 5시쯤 끝났다. ▷공판◁ ○…전피고인은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주소 및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주소를 「안양교도소」라고 대답해 방청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전피고인은 곧 『안양교도소에 있다가 경찰병원으로 옮겼으며 현주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2동 95의4 입니다』고 정정. ○…전피고인의 변호인 전상석 변호사는 김성호 부장검사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이 끝나자 『공소장에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희박하게 기술됐기 때문에 뇌물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공소기각을 10여분에 걸쳐 주장. 변호인단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어린애들 말처럼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라고 반박해 방청객들이 실소.검찰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뇌물성이라고 하더라』고 다그치자 전씨는 『그 사람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겠다』라고 말해 다시 폭소. ○…전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1시간15분 가량 진행된 상오 11시30분쯤 전변호사는 『신문이 길어지면 피고인의 건강상태로는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며 재판부에 전피고인이 쉬게 해달라고 요청. 이에 김부장판사는 『힘이 드느냐』고 전피고인에게 묻고 『약간 힘든다』고 대답하자 10분간 휴식을 허용. 낮 12시10분쯤 상오 공판이 끝나자 전피고인은 옆자리의 안현태씨 등 피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김부장검사 등 공판담당 검사들과도 웃는 낯으로 악수했다. ○…전피고인은 하오에 이어진 검찰신문에서 『기업인들의 성금 기부는 모두 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나중에는 『재임 때 정치자금을 받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소신을 번복. 전피고인은 『기업이 돈을 냈기 때문에 정치가 가능했다』며 『기업인들은 정치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또 세금을 낸다는 사명감으로 돈을 냈다』고 주장. ○…전씨 비자금 사건 2차 공판이 50일 뒤인 4월15일로 늦춰진 것과 관련,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는 『전피고인 등이 관련된 12·12 및 5·18 사건의 심도깊은 재판을 위해 기일을 늦춰잡았다』고 설명하고 『두 사건은 수사기록이 워낙 방대해 재판부와 변호인단이 수사기록을 검토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하오 5시쯤 공판을 마치면서 『전피고인의 건강이 매우 부실하다는 사실이 오늘 드러났다』며 전씨를 향해 『전피고인,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입니다.건강에 유의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입정◁ ○…재판부가 상오 10시에 입정,『96고합 12호,병합 96고합 95호,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하자 전피고인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 전피고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어깨에 힘을 주고 가슴을 편 자세를 유지.가끔 법정분위기에 위축되지 않으려는 듯 다리를 흔들거나 몸을 뒤로 젖히기도. ▷병원·법원 주변◁○…경찰은 법원과 경찰병원 주변에 모두 17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물샐 틈 없는 경비.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방청권 구하기 전쟁」도 노씨의 첫 재판 때보다 치열해 노씨 재판 때 최고 30만원에서 이 날은 50만원에 거래됐다. ▷구치감 도착◁ ○…전피고인은 경찰병원을 출발한지 20분만인 상오 9시17분쯤 앰뷸런스를 서울지법 청사 구치감에 도착. 이어 엷은 하늘색 수의 왼쪽 가슴에 미결수 번호 「3124」번을 달고 차에서 내려 교도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 구치감으로 이동. 전피고인은 지하 구치감 바로 앞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왼손을 치켜올리는 등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출정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과시. ▷방청석◁ ○…법정 방청석에는 재국·재용·재만씨 등 전피고인의 세 아들과 김진영 전 육참총장 등 측근 몇명이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재국씨 형제는 9시15분쯤 법원청사로 들어오다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로부터 계란세례를 받기도. 「민가협」 등 재야단체 회원들이 대거 방청석을 차지했고 지난 91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도 방청했다. ▷연희동◁ ○…전피고인의 아들 삼형제는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상오 8시30분쯤 연희동 집을 출발.그러나 부인 이순자씨는 첫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방청을 포기.연희동관계자는 『이씨가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이 핼쑥해졌다』고 귀띔.
  • “피고인 노태우”에 들릴듯 말듯 “예”/노씨 재펀­공판 이모저모

    ◎헌정사상 첫 사건… 긴장의 대법정 6시간/한보 정태수 회장 직업 묻자 “회사원” 답변 18일 상·하오에 걸쳐 6시간여동안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대통령이 법정에 선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은 팽팽한 긴장으로 일관했다.노태우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의 답변은 물론 일거수일투족에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법정안 표정◁ ○…노씨를 비롯한 관련피고인 15명에 대한 공판은 상오10시1분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 김영일 부장판사의 사건이름과 노씨에 대한 호명으로 시작. 재판부는 노씨를 호명한데 이어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을 노씨 옆에 서도록 지시. 이 사이 노씨는 다른 피고인들이 모두 입정하고 난뒤 착석해야 하는 법정규칙을 몰라 자리에 앉았다가 『노태우피고인 일어서십시오』라는 제지를 받고 기립. 이어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최원석 동아그룹회장,장진호 진로그룹회장,이준용 대림그룹회장 등 3명이 둘째줄에 섰고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이건 대호건설회장,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금진호(신한국당)의원,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이원조 전의원,이경훈 주식회사대우회장,이태진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은 피고인석 맨 뒷줄에 착석. ○…피고인들이 모두 서자 재판장은 보도진에게 40초동안 피고인들의 뒷모습을 촬영하도록 허가한뒤 10시6분쯤 인정신문에 돌입. 인정신문은 재판부가 『피고인 노태우』라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 재판장과 노씨간에 짤막한 문답이 오갔고 인정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노씨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일관. 재판장은 노씨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데다 주소마저 명확하게 밝히지 않자 딱딱한 목소리로 직접 주소를 호명하며 재차 질문. 15명에 대한 인정신문에서 노씨의 목소리가 가장 작았고 뒷줄에 선 피고인가운데 몇몇은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자 9번째 이현우피고인부터는 마이크를 사용. 또 삼성 이피고인은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신문에 『삼성그룹 본사에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비교적 길게 서술형 답변을 했고 다른 재벌총수들도 「○○그룹 회장」이라고 밝혔으나 휠체어를 타고 나온 한보 정총회장만 유독 「회사원」으로 말해 눈길. 김부장판사는 인정신문이 끝난뒤 『피고인들의 모두진술은 공판이 진행되면서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모두진술 생략을 주문. ○일부러 눈길 돌려 ○…10시26분쯤부터 시작된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노씨는 뇌물수수사실 추궁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란 답변으로 일관.검찰이 구체적인 정황을 대며 공격하면 『그런 것같습니다』로 후퇴.『이제는 기억이 납니까』란 질문에는 『어렴풋이 생각납니다』라고 답변. ○…낮 12시10분쯤 상오공판을 마치고 재판부가 퇴정하자 삼성그룹회장 이피고인은 옆자리에 선 노피고인에게 『건강은 어떠냐』는 듯한 요지의 인사말을 잠시 건네기도. 노피고인은 이에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또 노피고인 주변의 대우 김회장과 동아 최회장등 다른 재벌총수와 금진호·이원조피고인등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일부러 눈길을 돌리는 모습. ○…이현우 전경호실장은 이날 검찰신문에서 지난 93년8월 금융실명제 실시발표직후 금진호의원등과 모여 가·차명계좌로 예금된 비자금의 실명전환에 대해 숙의한 적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전실장은 『금의원의 제의로 기업인들을 통해 실명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진술하면서 『금의원이 상공부장관,무역협회고문등을 역임해 기업인들을 많이 알고 있어 이를 맡기로 결정했다』고 소개. 이전경호실장은 또 『지난번 검찰조사에서는 장시간의 조사로 정신이 복잡해 자포자기상태로 제대로 진술을 하지 못했다』며 상당부분의 범행사실을 부인. ○…삼성 이피고인은 김진태 검사의 신문말미에 『다른 그룹과 비교할때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김검사님이 원망스럽다』고 억울한 심정을 표출. 이피고인은 또 『개인적인 얘기지만 삼성은 전통적으로 뇌물성 기부를 한 예가 거의 없었으므로 부당하게 손해를 끼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하는등 강도높은 항변을 제기. 또 재벌총수들은 노씨에게 돈을 준 이유에 대해 한결같이 『선처를 바라고 준 것은 아니며 단지 사업을 경영하는데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위해 어쩔 수 없이 주었다』고 주장. ○…이날 검찰측으로부터 가장 강도높은 신문을 받은 동아그룹의 최피고인은 『근로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노피고인에게 준 이유가 무엇이냐』는 신문에 『국가가 있어야 해외공사수주에 보증이 되므로 국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줬다』고 답변. ○…하오 6시25분쯤 재판부가 공판 종결을 선언하자 노피고인 주변으로 이원조·금진호피고인이 서둘러 다가가 목례를 하면서 『건강조심하라』는등 안부인사. 이에 노피고인은 여전히 그늘진 얼굴이었으나 『내걱정 말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뒤 법정경위의 안내로 피고인출입문으로 퇴정. ○엉뚱한 답변 웃음 ○…한보그룹 정피고인은 이날 마지막으로 10여분동안 검찰신문을 받으면서 시종 억센 경상도사투리로 예상외의 답변을 해 법정의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기도. 정피고인은 검찰이 『총회장과 회장의 차이점이 뭐냐』고 묻자 『대충 같지요』라고 대답한데 이어 수서택지분양이 실패로 돌아간데 대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이만저만 손해를 본게 아닙니다』고 큰소리로 대꾸해 일순 방청석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 ▷법정주변◁ ○…불구속 피고인들은 낮 12시 휴정시간에 담당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도시락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하오 2시부터 2∼5명의 비서진을 대동한채 법정으로 입정. 한보 정총회장을 시작으로 줄을 이어 법정에 도착한 이들은 소감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은 표정에 침묵으로 일관. ○…이에앞서 9명의 재벌총수들중 동아그룹 최회장이 상오 9시42분 가장 먼저 법원청사 서쪽현관을 통해 법정에 들어간 것을 비롯,9시50분쯤 삼성그룹 이회장을 끝으로 입정을 완료. 이들 대부분은 「법정에 서는 심정이 어떤가」「재판준비는 잘 되었는가」등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대답하지 않았으나 구속됐다 풀려난 한보 정총회장의 변호인인 이석형(47) 변호사는 『재판준비를 많이 했다』『자신있다』고 말해 눈길. ○…노씨의 아들 재헌씨는 상오9시35분쯤 법원청사 서쪽현관을 통해 박영훈 비서관·서동권 전안기부장등과 함께 재판정에 도착,사진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말에 『이미 밑에서 찍었다』고만 말한뒤 긴장된 표정으로 검색절차를 기다리는 모습. 노씨의 변호사인 한영석 전법제처장과 김유후 전청와대 사정수석은 각각 상오9시35분과 40분쯤 상기된 표정으로 입정했으며 최석립전 경호실장도 9시35분쯤 법정에 도착. ○민가협회원 시위 ○…노씨의 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 정문앞에는 이날 아침일찍부터 5·6공시절 민주화시위를 벌이다 숨진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인 「민가협」소속 회원 50여명이 나와 재판방청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 87년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57)씨는 『노씨가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려고 새벽 첫차로 광주에서 올라왔다』며 오열했고 지난 91년 교내시위도중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54)씨는 『어제 밤 11시부터 방청권을 얻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우리가 방청을 못하면 누가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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