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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다金에 거액 대출보증섰다 피해”

    무기상 로비스트 린다 김(47·한국명 金貴玉)이 미국에서 전 남편 가족을보증인으로 내세워 거액을 빌린 뒤 갚지않아 전남편 가족이 대신 물어준 것으로 밝혀졌다. 린다 김 전 남편 김모씨(53)의 형(55) 부부에 따르면 린다 김은 경북 월성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 8군에서 가수생활을 하던 중 김씨를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79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린다 김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같은해 ‘토니 정유김’이라는 한국 출신 미국 국적자와위장결혼했다. 이후 김씨와 결합해 ‘리코아’라는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두 딸을 낳았다. 이들은 미국에서만 혼인신고를 해 한국 호적에는 아직까지 ‘토니 정유김’이 린다 김의 남편으로 등재돼 있다. 평범한 생활을 하던 린다 김은 90년 ‘밴콤’이라는 회사를 통해 반도체칩수출업을 한다면서 외환은행 로스앤젤레스 지점에 신용장 개설시 김씨 형에게 보증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린다 김은 은행에서 20만 달러를 대출받았다.하지만 한푼도 갚지 않아 김씨 형은 92년 원금과 이자를 합쳐 3억원을 은행에 갚아야 했다. 93년 린다 김이 김씨와 이혼하자 김씨 형은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승소했으나 린다 김이 ‘파산을 해 돈이 없다’고 버텨 돈을 받아내지 못했다.이후린다 김은 무기상 로비스트를 해 큰 돈을 번 것으로 교포사회에 알려졌지만정작 자신 명의로 된 재산은 하나도 없어 지금까지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 형 부부는 “린다 김은 거짓말이 몸에 밴 사람”이라며 “근본적으로질이 안좋아 언젠가는 큰 일을 저지를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hjkim@. *백두사업 로비의혹 이모저모.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무기거래 로비스트 린다 김 로비의혹사건은 의혹의핵심은 밝혀지지 않은채 성의혹만 무성할 뿐이다. 금품수수,정보누출 등 무기도입과 관련된 뒷거래를 뒷받침할 만한 물증 등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이에따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과 국방부의입장도 판이하다. □재수사 착수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검찰은 8일 린다 김과 이 전장관의‘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검찰이 재수사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보도방식이 처음에는 주간지 기사 일색에서 월간지 형식으로 바뀌더니 또다시 주간지로 돌아왔다”면서 “지극히 사적인관계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라는 요구는 적절치 않다”며 재수사 압력에 대한짐을 완전히 벗은 듯한 표정. □서초동 법조타운은 이양호(李養鎬) 전 국방부장관이 린다 김과 두차례에걸쳐 ‘부적절한 관계’를 시인했지만 몸로비의 사법처리 가능성에 대해서는회의적인 반응. 검찰 내부에서는 “몸로비도 뇌물공여의 일부분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대가성이 확인돼야 관련자들을 사법처리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두사람 사이에 오간 연서 내용을 볼때 뇌물죄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전 국방장관이 성추문을 시인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방부는 조찬회의를서둘러 끝내는 등 침통한 분위기.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이 전장관이 백두사업 기종선정 결재를 앞둔 시점에서 로비스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인정한 마당에 우리가 사업의 투명성을 아무리 강조한들 국민들이 믿어주겠느냐”고 반문. 또 다른 장성은 “별판이 붙은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기가 창피하다”면서 “이번 사건은 국가수호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현역 장성은물론 예비역 장성들의 명예까지 땅에 떨어뜨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인천에서 손자들과 어렵게 지내고 있는 린다 김의 어머니 정재임씨(68)가생모가 아니라는 린다 김의 주장과는 달리 친어머니로 밝혀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씨가 살고 있는 인천 계양구 효성1동 동사무소에 따르면 정씨는 1953년현재의 남편 김무준씨와 혼인한 것으로 호적등본에 등재돼 있으며 배우자가사망했거나 이혼했을 때 나타나는 호적변동사유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 주변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언론에 불거져 나왔을 때 정씨가 딸 걱정을많이 했다며 생모를 친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노주석 이종락기자 인천 김학준기자 joo@
  • 주말엔 남산서 ‘문화 향기’를…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남산자락에서 주말 저녁을 보내세요” 중구(구청장 金東一)와 국립극장(극장장 金明坤)이 매주말 저녁 6시 공동으로 운영하는 올해 토요문화광장이 지난 6일부터 시작됐다. 개막 첫 공연으로는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국립발레단의 ‘청소년을 위한 5월 발레축제’가 국립극장 앞 분수대광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서울의 유일한 자연녹지벨트인 남산을 무대로 하는 토요문화광장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지난 93년 여름.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탓에 마땅한 놀이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구와 일반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해 위기감마저 느끼던국립극장이 가족 단위의 문화마당을 마련해 보자는 공감대를 가진 것이 계기가 됐다. 올해로 8년째를 맞은 가운데 그동안 토요문화광장을 찾은 관객은 모두 30여만명.관람료를 받지 않는데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야외무대 형식의 공연이 이루어져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으며 특히 가족단위의 나들이객과청소년,연인들이 객석 대부분을 채워 건전한 문화공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공연예술단체와 시인,연극인,음악가,무용가 등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출연해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는 등 살아있는 문화채널로서의 전통을 쌓아왔다. 개막공연 외에 현재 계획된 상반기 프로그램으로는 ▲서울풍물단의 ‘새 천년 두드락 콘서트’(13일)▲유복성·정말호 재즈그룹의 ‘올스타 재즈콘서트’(20일)▲국립무용단의 ‘시와 춤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무대’(27일)▲솔리스트 앙상블의 ‘김용우와 아카펠라’(6월 3일)▲미8군 군악대의 ‘군악대 콘서트’(10일)▲전미례 재즈발레단의 ‘스페인 플라멩코의 밤’(17일)▲국립창극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풍자와 해학의 코믹창극’‘퓨전,블루스와음악’(24일) 등이 마련돼 있다. 김재순기자
  • 살인혐의 美軍 영내탈출 소동

    서울 이태원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하던 미 2사단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 상병(22)이 28일 오전 8시50분쯤 미 8군 영내에서 감시 소홀을 틈타 달아났다 8시간여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매카시 상병을 상대로 도주 경위 등을 조사한 뒤 이날 오후 7시쯤미군 범죄수사대(CID)에 신병을 인도했다. 매카시 상병은 이날 오전 8시50분쯤 용산 미군기지 법무감실에서 변호사를만난 뒤 방충망을 뜯고 달아났다가 오후 5시쯤 용산구 이태원동 H의류상가지하 1층에서 서성거리다 이를 수상히 여긴 가게 주인 전모씨(45)의 신고로경찰에 붙잡혔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지방자치단체·美軍부대 갈등 심화

    민선시대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주한미군 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군사시설 자체가 이제는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로 인식될 뿐 아니라,미군을 치외법적 존재로 규정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이 정치·사회적 문제를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치행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서 미군과 직·간접으로 이해관계를 형성한 자치단체는 서울 용산구를 비롯해 90여 곳.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들의 입장은 한결같다. 1966년 체결돼 이듬해 발효된 “불평등한 SOFA 규정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지역별 쟁점을 짚어 본다. ◆서울 용산구 최근 관내 미8군이 영내에 건축중인 드래곤 힐 로지호텔이 협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라며 자체 시정조치를 하지 않으면 최악의경우 강제 철거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미군들의 차량 주·정차위반에 따른과태료 상습 체납과 공여부지의 영리 목적 사용문제도 거론했다.미군은 지난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9,540건 3억8,588만원의 주·정차 위반 과태료중 4%인 386건 1,558만원만 납부했다. 성장현(成章鉉) 구청장은 최근 미군 문제를 해결해 지방자치의 본뜻을 살리겠다며 SOFA 개정을 외교통상부에 공식 건의했다. ◆수도권 의정부·동두천·파주시 등은 관내 미군부대 때문에 도시기반시설확충 등에 애를 먹고 있다. 의정부시는 지난해 도심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서울 도봉∼녹양동간 우회도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캠프 레드클라우드가 점유지 할애를 거부해 마찰을빚고 있다.파주시 역시 캠프 게리오웬,캠프 자이언트와 하천부지 반환협상이진전되지 않아 상습 범람천인 동문천 제방공사에 차질을 겪고 있다. 동두천시도 수해 예방을 위해 시내 신천 정비공사를 하면서 하천부지에 터를 잡은캠프 님블과 갈등 상태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한결같이 상·하수도료를 대부분 받지 못해 세수 결손을빚는가 하면 끊임없는 미군 관련 사건·사고로 지역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며 개발 촉진과 미군범죄 근절이 가능하도록 SOFA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산 지난 53년 들어선 부산진구 연지동의 하얄리아부대 이전문제가 수년째 답보상태다.부산시는 서면 도심권에 위치한 16만여평 규모의 이 부대를옮겨 도시 개발의 숨통을 틀 계획이나 미군은 요지부동이다.부산시는 지난 95년 아시안게임 유치가 결정되자 이곳을 선수촌과 테마공원 조성 적지로 보고 미군측과 부대 이전을 논의했다.그러나 기지 건설에 따른 공사 계약권과공사의 연속성을 보장하라는 등 미군측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상수도요금 징수문제도 잠재적 갈등요인이다. ◆대구 대구 남구는 캠프 워커측이 A3비행장 주변 3만9,000평을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고도제한 등으로 주민 재산권을 제한하자 이곳에 항공기지법을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최근 이 구역에서의 건물 신·증축을 전면 허용하기로 결정했다.제한조치로 인해 봉덕3·대명5동 주민들은 30여년간 불편을겪어왔다. 이재용(李在庸) 구청장은 최근 미군부대와 마찰을 빚고 있는 전국16개 자치단체에 공동협의체 구성을 제안,SOFA 개정에 앞장설 방침이다. ◆강원 춘천시 도심지 30여만평을 차지한 캠프 페이지와 작년 말부터 수도요금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당연히 업무용 요금을 내야 할 미군측이 ‘가장낮은 금액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SOFA 규정을 들어 가정용 요금 적용을주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용으로 일단락됐으나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시는 또 온종일 이·착륙하는 전투용 헬리콥터의 굉음에 시달리는 인근 근화동 등지 주민들의 민원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원주시도 캠프 롱이 상수도요금을 상습 체납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 군산시 관내 미군 전투비행단측과 쓰레기 위탁처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미군측이 사설 청소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는 다른 지역과 달리 군산시는 직접 계약을 통해 92년부터 1일 10.5t에 이르는 부대 쓰레기를 연간 2억20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처리하고 있다.그러나 4년전 책정된 위탁수수료를 조정하자고 지난 2월 군산시가 협의를 요청한데 대해 미군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종량제 봉투 사용도 ‘군 부대’의 특성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이곳에는또 지난 98년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이 결성돼 SOFA 개정,미군범죄근절,점유지 임대료 징수,미군 점유 무상 공여지 해제,항공기 소음피해 보상 등을주장하고 있다. 심재억기자·전국종합 jeshim@
  • 비밀해제 美軍문서로 밝혀진 경북 덕천리 학살

    [덕천AP연합] 한국전쟁 초기에 한국 군경이 경북 달성군 덕산리 덕천마을등에서 2,000여명의 좌익정치범을 재판없이 처형했으며 당시 미군이 이를 알고 있었음이 비밀에서 해제된 미군 문서들과 목격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정부가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면서 남한내의 좌익들이 공산 침략자들과 협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당수 좌익 죄수들을 비밀리에 처형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 역시 남한 지역을 점령했을 때 많은 우익 인사들을 처형했다.AP 통신은 한국전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의 미군에 의한 학살사건을 조사하는과정에서 덕천마을 총살사건 관련 미군 보고서 2건과 이와 관련된 고위층들의 서신이 포함된 미군 문서들을 찾아냈다. ‘최고 비밀’로 분류됐다 해제된 이 문서들에 따르면 당시 최고 사령관인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이런 대량 총살 사건들 가운데 최소한 한 건은 알고있었다. AP 조사결과 당시 덕천 학살사건들에 대한 미군 보고서가 맥아더 장군에게 전달됐다.맥아더 장군은 미 외교관들에게 “검토해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존 무초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나중에 쓴 보고서에서 그가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즉결처형을 그만둘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무초 대사는 50년 8월25일 맥아더의 참모장인 미8군 사령관 월튼 L 워커 중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이대통령에게 한국 군경과 청년들이 게릴라를포함한 적군 포로들을 처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당한 법절차를 밟은 뒤에인도적 방법으로 처리하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미군 헌병대 수사관이었던 프랭크 피어스 1등상사를 비롯한 미국인 목격자들은 12∼13세 정도의 소녀 1명이 포함된 여성 등 모두 200∼300명의 죄수들이 50년 8월10일 덕천 마을 인근산에서 남한 경찰에 의해 처형됐다고 보고했다.피어스 상사는 1쪽짜리 보고서에서 “처형이 끝난 지 약 3시간 뒤에도 일부는 살아서 신음했으며 (신동재) 골짜기에 쌓인 시체더미 어디선가에서 비명소리들이 들렸다”고 썼다. 무초 대사의 최고위 측근인 에버릿 드럼라이트는 한 문서에서 그가 6월 초에 대전에서도 유사한 총살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 항의한 바 있다고 대사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 미군현행범 한국서 구금 검토

    법무부는 지난달 1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외국인전용 술집 여종업원김모(32)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미군 피의자의 신병 관할권 등을 불평등하게규정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등 관계부처와협의를 거쳐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법무부는 미군 피의자에 대한 우리측의 신병관할권 행사 시기를 현행 판결확정후에서 기소후 또는 구속영장 발부후로 앞당기고 현행범으로 체포됐을경우에는 처음부터 우리측이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인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지검 외사부는 이날 김씨를 살해한 미8군 47기갑대대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22) 상병에 대한 재판권(소추권)을 행사하기 위해 매카시 상병을 불구속기소키로 했다. 검찰은 현재 경기도 평택 미군 구치소에 수감된 매카시 상병을 국내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한뒤 형이 확정되면 국내 교정시설에서 복역시킬 방침이다. 이종락기자
  • [기고] 병역비리 척결 빠를수록 좋다

    지난 새해 첫날,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두는 병역에 관한 것이었다.우리 근대사에서 요즘처럼 군 복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적은 없었다는 얘기들이다.남자는 이제 ‘국방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어디가서도 발붙이지 못할거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군대를 가고 안 가는 걸 두고 ‘어둠의 자식’이니,‘신의 아들’이니,또는 ‘유전면제,무전입대’란 해괴한 자조어가 나돌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지난번 대선에서 ‘대쪽’ 이미지로 참신성을 내세우던 대통령 후보의 집안이 온통 병역미필로 밝혀져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데 이어,수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병역미필자이고,그들의 자녀들이 병무 부정과 연루돼 매스컴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국민을 분노케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군대 생활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적어도 직업군인을 제외하고선 말이다.자유분방한 젊은 날을 24시간 영내에서 통제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먹는 것,입는 것,잠자는 것등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엄한 조직의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명령과 복종의 상하관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집단.한달에 1만원,2만원의 봉급을 받고도 영하의 설원을 달리며 호된 훈련을 받고,밤잠을 설치면서 전선을 지켜야 하는 고달프고 무거운 책임.뭍에서,바다에서,공중에서 조국을 보위하는 사명을 다하는데 한눈을 팔 짬이없다.그런 날이 910일간이나 쉼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주를 이루는 귀족이나 상류층은 전쟁이 나면 먼저 전장으로 달려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지’,그리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형 존 F.케네디1세가 공군조종사로 최전방에 나가 싸우다 전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외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었으며,모택동의 아들도 중공군으로 참전해 사망한 사례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우리에게 병역문제는 여러 갈래의 자취를 남겼다.고구려의 상무정신은 북방대륙을 우리 손아귀에 들게 했으며,신라 화랑도의 군사력은 3국을 하나 되게 하였다.그런가하면,조선조의 무반천시 풍조와 국방홀시정책,병역제도의 모순·비리는 나라를 망국의 길로 내몰았다.사대부나 양반의 자식들은 제외하면서 강아지와 절구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를 받아내는 관리들의 가렴주구를견디지 못한 양민들은 토호들의 종이 되거나 중으로 신분을 바꾸어 군역을면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그러나 ‘호국의 얼’이 숨쉬는 자랑스런 일화도 있다.백제와 싸움에서 16세의 아들을 최후의 격전장인 황산벌에 내보내 전세를 역전시킨 신라 화랑관창의 아버지 품일장군이 있었는가 하면,임진왜란때 자식과 함께 목숨을 걸고 왜적을 물리친 고경명 같은 명장이 있다.낮은 시력으로 군 면제 판정을받았음에도 입영해 훈련을 마친 현역장군의 아들 얘기는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정보화시대에 시민을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병역을 마쳤는가’가 될 것이라 한다.특히 지도층이 되려는 사람,선거로 입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2년반의 세월이 결코 헛된 시간낭비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헌법이 정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수행하는 일이 건전한 시민,애국하는 국민의 기본요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하물며 병역비리의 척결에 있어서는 어떠한 구실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선거철이라 피하고 정치적 탄압이라는 공세에 밀린다면 이 고질병은 어느 세월에 바로잡힐 것인가. 군입대 희망자가 몰려 입영원을 6개월 전에 내야 하고,입영이 선착순이 아니라 성적순이라는 말이 들리는 이즈음의 사회 분위기가 일과성이 아닌 건전한 병역문화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그런 뜻에서 병역비리 척결은 엄정하고 빠를수록 좋다. 정영휘 수필가·예비역 육군준장
  • “이태원 여종업원 살해” 미군 자백

    지난 19일 발생한 서울 이태원 외국인 전용 술집 여종업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미8군 47기갑대대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상병(22)이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용산경찰서는 22일 “매카시상병은 21일 오후 미군 범죄수사대(CID)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여종업원 김모씨(32)를 목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면서 “23일 미군측으로부터 매카시상병의 신병을 넘겨 받아 본격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매카시상병은 사건 당일 술집 내실에서 김씨와 한차례 성관계를가진 뒤 변태적 성행위를 요구하다 김씨가 거절하자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밝혔다. 매카시상병은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신병인도후 한국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지만 재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 있는 구치소에 수감된다. 한편 시민단체인 주한미군범죄 근절운동본부(상임대표 文大骨)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해마다 600∼700건의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으로 우리나라는 초동 수사단계에서 배제돼 많은 문제점이생기고 있다”면서 “한미행정협정을 개정해 미국인 범죄도 내국인 범죄와같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현석기자
  • 이태원 외국인 술집 여종업원 한밤 피살

    19일 오후 11시4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외국인 전용 M주점에서 여종업원 김모씨(32·서울 용산구 보광동)가 얼굴과 목 등에 타박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것을 업주 배모씨(57·여)가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배씨는 “오후 9시쯤 출근한 김씨가 백인 남자와 홀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보았다”면서 “2시간이 지난 뒤 두 사람이 홀에 없어 내실로 가보니 김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미군에게 지급되는 속옷이 발견됐고 김씨와 함께 술을 마신 백인 남자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주인의 말에 따라 미군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미8군 범죄수사대(CID)와 함께 키 173㎝ 가량의 20대 용의자를 찾고 있다.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김씨가 얼굴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목이 졸린 흔적이 있다”면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속옷과 정액이 묻어 있는 침대시트에 대해 DNA분석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새천년엔 통일의 종소리를”

    “새 천년에는 통일과 민족 번영을 축하하는 종소리를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싶습니다”5대째 서울의 상징인 보신각(普信閣) 종을 지키고 있는 종지기 조진호(趙珍鎬·72)씨의 새해 소망이다.지난 62년 타계한 아버지 조한이(趙漢伊)씨의 뒤를 이었으니 올해로 39년째다. 종은 조씨 가문의 집안 신앙이다.조씨는 보신각 종을 ‘종님’이라고 높여부른다.매일 아침 5시면 일어나 정성스레 청소를 하고 종이 취객들로부터 수난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밤에도 집에 가지 않는다. 조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종지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해방 뒤 미8군 트럭운전수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이 5,400원이었다.이에 반해 종지기는 2,700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평생 아무 말이 없었던 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3일 전 스스로 종지기에서 물러난 뒤 조씨를 추천했다.그리고 “네가 맡으면 5대째다.종님은 도성4대문을 여닫는 분이니 잘 지켜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작고한 어머니김부전(金富田)씨의 “가업을 이어달라”는 간곡한 당부도 있었다. 조씨의 출생지는 옛 보신각 주소인 서울 종로구 종로2가 102번지이다.아버지가 가업을 잇게 하려고 출생지를 옮긴 탓이다. 구한 말 궁궐 관리였던 할아버지 조영희(趙永熙)씨와 영친왕의 근위대장이었던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도 보신각을 지켰다.당시 두사람은 일제가 보신각 바로 뒤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자 5년 동안 철거투쟁을 벌였다.결국 일제도 손을 들고 말았다. 6·25 때도 아버지는 “종님을 모셔야 한다”며 피난을 가지 않았다.어머니는 9·28 서울 수복 때 보신각에 난 불을 끄다 유탄에 맞아 한쪽 팔을 잘라야 했다. “우웅-,우웅-,우웅…” 서기 2000년 1월1일 0시.새 천년을 여는 33번의 종소리가 울렸다.이날도 어김없이 고건(高建)서울시장과 최종오(崔鍾午)서울시의회 의장 뒤에서 타종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 조씨는 “새 천년에는 우리 겨레가 웅장하면서도 평화스런 종소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며 맑게 웃었다. 전영우 류길상기자 ywchun@
  • [제5권력 NGO] 21세기 슈퍼파워는 시민단체

    “새 세기는‘제5의 권력’이 지배한다”입법,사법,행정,언론에 이어‘제5의 권력’으로 불리는 시민사회단체(NGO). 20세기가‘폭력’과 ‘강제성’에 바탕을 둔 국가권력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NGO가 세계를 주도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실제로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시민단체가 중요한 몫을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거대한 손으로 작용하고 있고최근 미국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협상에서 보듯 국제협약의채택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정부와 유엔 모두 NGO의 협력을 정책 성패의 관건으로 삼을 정도다. 1863년 스위스의 국제적십자운동에서 출발한 NGO는 현재 전세계에서 유엔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움직이는 단체만 해도 1만5,000개,회원수가 3,000만명을 웃돈다.한국은 이같은 수준의 단체는 극소수지만 시민사회단체로 등록된 단체는 무려 4,023개.중복 난립의 문제까지 지적될 만큼 급속한 발전을거듭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100여년전 설립된 독립협회와 YMCA,흥사단에서 NGO의 뿌리를 찾을수 있다.그러나 실제로 시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87년 민주화항쟁 과정을 거치면서.재야세력이 합법적인 활동공간을 갖게 되면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최근에는 경실련 참여연대 등과 같은 종합적 성격의 NGO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띤 단체로 세분화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NGO들은 서울NGO세계대회(지난해 10월10∼15일)를 개최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질적인 성숙은 이루지 못한 편.무엇보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있듯 시민참여의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재정 자립기반도 허약하다.대부분의 NGO들이 재정의 절반이상을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정부·기업에 대한 정상적인 감시와 견제가 어려워 지고 있다.또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채 당파성을 띠고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은 결국 “시민단체가 또하나의 권력이 돼간다”는 일부 NGO관계자들의반성을 낳게 됐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우선 NGO에 대한 정부와 일반인들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NGO는 정부의 역할을 보완하는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아울러 NGO자체의 혁신도 요구된다.NGO라면 ‘민주성’을 조직운영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인건비와 사업 자체에 투입되는 비율을 겸허하게 따져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예산전액을 사업비로 쓰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NGO들이 국제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는 유엔의 협의지위(Consultative Status)를 부여받는 일도 중요하다.협의지위를 부여받으면 유엔회의 참석과 발언,의제제안 뿐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유엔 공식문서로 배포할 수 있다.현재 세계적으로 약 2000개의 단체가 이 지위를 획득했으나 우리나라는 이웃사랑회와 ‘밝은사회국제본부’ 등 두곳에 불과하다. 결국 NGO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전문성의 확립,재정적 취약성의 극복으로 귀결된다.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조희연교수는 “상당수의 단체가 상근자와 임원,일부 열성회원만으로 운영되는 전근대적인 틀을 보이고 있으나 이로서는NGO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으며 자칫 이용당할 위험성마저 있다”고 지적하고 “참여적 시민문화및 기부문화의 확대를 통해 회비에 의한 재정충당이나공익재단의 간접적 지원체제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NGO와 대학을 잇는다’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소장 주성수교수·46).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NGO(비정부기구) 세계에선 매우 유명하다.지난 97년말 발족한 국내 유일한 NGO연구소로써,대학교수들이 NGO 지도자들과 함께 연구·교육활동을 벌이는 ‘산학협동기구’이다. 현재 국내 NGO관련 대학 학부강의는 한양대에 마련된 ‘한국과 세계의 NGO’가 유일하다.이는 주 교수가 학부생을 위해 설치한 교양과목.환경이 이렇게 척박한 터라 이 연구소는 NGO관계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모태는 지난 94년 설립된 한양대 사회봉사단.사회봉사단이 추천하는 시민사회단체에서 학생이 봉사를 마치면 한 학기당 1학점을 인정해주었다.학교 차원의 이같은 사회실험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연구소의 설립토대가 마련된 것. 연구소는 봉사단에서 출발한 만큼 직접 프로그램을 짜 ‘자원봉사 NGO운동’‘사이버 자원봉사지도자과정’‘시민사회리더십 과정’을 운영한다.한마디로 대학과 시민사회단체의 가교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자원봉사지도자과정은 98년 9월부터 지금까지 3기에 400명을 배출했고 시민사회리더십과정도 9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3기에 걸쳐 100여명을 졸업시켰다.이 과정은 NGO지도자 교육담당으론 유일한 것이다.10주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NGO지도자들이 수시로 자문을 요청해와 자연스럽게 네트웍이 형성된다. 이 연구소의 최근 관심분야는 중앙의 NGO를 지역 차원의 NGO로 확산시키는일.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NGO를 활성화한다는 것인데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이나 읍면동 사무소를 NGO 센터로 활용하자는 취지이다.연구소는 이의 지원을 정부에 정식 건의할 예정이다. 주 교수는 앞으로 NGO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무엇보다도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탈피해야 한다”면서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 보다는 일반 시민들을많이 참여시키고 전문가들이 호흡을 맞추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美軍범죄 근절본부 정유진 사무국장 지난해 11월말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일본 오키나와 사시키 후생연금복지센터.동아시아 인권운동가 300여명이 참석한이 대회에서 단연 화제는 ‘주한미군에 의한 인권유린 행위’였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정유진(鄭柚鎭·31)씨의 열기에 찬 목소리가 30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그 때 “미군 범죄가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더이상의 피해를 막고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외쳤고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511호 주한미군근절운동본부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정씨 등 상근자 4명이 전화상담과 방문객 면담,강의·캠페인 활동 등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1년 365일 계속되는 이같은 북새통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씨가 있다. 정씨가 주한미군범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세종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91년.월간 ‘말’지를 통해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의 실상을 안뒤 동두천 여성 봉사자들의 모임인 두레방을 찾았다. 2년간 혼혈아 놀이방 보조교사,상담,빵 판매 등 봉사활동을 하면서 밤낮을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러던중 미군 사병에 의한 윤금이씨 살인사건이 터졌다.동두천 민주시민회가 적극적으로 사태규명을 위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이어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등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국 48개 인권·종교·여성·청년단체가 모여 만든 대책위원회에서 1년간 활동을 벌이던중 또다시 미군 강간사건이 발생했다.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상설기구의 필요성이 거론됐고 마침내 92년 10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발족,정씨가 간사로 초빙된 것. 운동본부 발족 이후 정씨와 그의 동료들이 해낸 일은 엄청나다.미군부대가주둔한 동두천 의정부 평택 송탄 군산 대구 등 전국 10개 지역에 주한미군범죄 신고센터가 설치됐고 윤금이씨 기일에 맞춰 한해도 빠짐없이 주한미군 범죄 희생자추모제를 열고 있다.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운동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운동본부 산하에 한미행정협정개정위원회가 설치돼 지난 95년 개정안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10여차례의 공청회·토론회를 갖고 현행 협정의 부당성을 홍보하고 있다.정부에서도 이 개정안을 토대로 협정을 연구할 정도다.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 용산 미8군 정문 앞에서 ‘미군범죄 근절과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위한 금요집회’를 갖는다. 지금까지 250여차례나 열었다.그런가 하면 주한미군 범죄 신고내용과 재판과정,환경오염 사례 등을 기록해 단행본 3권도 냈다.자료집도 15종이나 된다. “피해자들이 저희들을 찾아와서는 ‘하소연을 할 수 있어 고맙다’고 합니다.비정부 단체들은 이처럼 억울한 약자를 위해 세상의 부정부패,불필요한폭력과 강제성을 깨나가는 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정씨는 대학에도 불려다니고 인권단체 등에서 청탁해오는 원고 건수도 감당하기가 벅찰 정도이지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피해자들에게 ‘깃발같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가장 흐뭇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NGO활동을 하면서 인간의 행복과 무폭력상태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는 그는 국내 NGO들에 대해 “당장 빛이 나진 않아도 일반인들의 손이닿지 않는 일에 희생적으로 앞장서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 미국영내 슬롯머신 룸내국인만 “북적북적”

    주한 미군이 영내 슬롯머신 룸에 출입이 금지된 내국인들의 출입을 사실상허용하고 있다. 내국인 출입을 묵인하는 것은 그만큼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하루에 수천달러씩 돈을 잃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지난 17일 오후 8시 서울 용산 주한 미8군 사령부 한 클럽의 슬롯머신 룸. 국내 오락실에서는 볼 수 없는 사행성 오락기 등이 60여대나 길게 늘어서 있다. 10평 남짓한 룸에는 내국인들이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미군은 거의찾아 볼 수 없었다. 입구에는 ‘내국인은 출입을 금지한다’ ‘한국 돈은 환전을 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하지만 말뿐이었다.한국 돈을 내밀면 쉽게 환전해줬다. 40대 후반의 여자가 12만5,000원을 건네자 25센트(한화 약 300원)짜리 동전40개 묶음,10개를 건네주었다.그녀는 동전 묶음을 풀어 한 구석에 있는 25센트 전용 슬롯머신에 연신 쏟아 넣었다.동전 40개는 불과 1분 남짓만에 없어졌다. 한 시간도 안돼 돈을 모두 잃은 그녀는 슬롯머신 동전 투입구에 열쇠를 꽂고 일어섰다.한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동안 동안 다른 사람이 자리에 앉지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5센트짜리 슬롯 머신을 하고 있던 30대 초반의 남자는 “하루 3,000∼4,000달러씩 잃는 것은 보통”이라면서 “재산을 탕진한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 미군 기지 안에 영업을 하는 슬롯머신 게임장은 6곳인데 한국인이 없으면 장사가 안된다”고 설명했다. 상당수의 내국인은 ‘슬롯머신 중독자’이다. 밤 11시에 영업장이 문을 닫으면 24시간 영업을 하는 드래곤호텔 카지노로 자리를 옮겨 밤을 샌다. 40대의 한 남자는 “한 때 내국인의 게임장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으나 장사가 되지 않자 사실상 허용한 것으로 안다”면서 “기지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하거나 미군이 일부 내국인들에게 발급한 출입증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드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hyun68@
  • 한·미行協委 합의…京畿도심 미군부대 이전

    한국과 미국은 17일 서울 용산 미8군 기지에서 한·미 행정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경기도 지역 일부 미군부대를 도시 외곽으로 이전키로 합의했다.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북미국장과 주한미군 부사령관 헤플 바우어 중장이 대표로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이전 부대와 대토(代土) 선정 문제는 추후 SOFA 시설구역분과위에서 협의·결정키로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이 사용중인 토지 7,400만평 가운데 도심 기지에 있는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이전을 추진키로 했다”며 “대토 선정을 놓고 이견이 큰 서울 용산 기지와 부산 하야리아 기지 이전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측은 또 미군부대의 환경오염 사건 발생시 피해 주민은 해당 자치단체에신고토록 하고 미군부대 내에도 담당부서를 지정,지자체와 공동으로 문제를해결토록 했으며 매년 2차례 SOFA 환경분과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오일만기자
  • 신중현,30년만의 단독무대 ‘너희가 록을 아느냐’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거리에 있는 록클럽 우드스탁.이 작업실에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씨(61)가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오는 29일 오후 3시와 8시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자신의 30년만의 무대,‘너희가 록을 아느냐’를 준비하고 있다.편곡을 새롭게 하고 한동안 노래를 쉬었던 만큼목소리를 가다듬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 지난 62년 한국 최초의 록그룹 ‘애드포’(Add4)를 시작으로 ‘더 맨’(71)‘엽전들’(74)‘뮤직파워’(80·84)‘세 나그네’(83) 등의 그룹을 결성해‘봄비’‘님은 먼곳에’‘미인’‘아름다운 강산’ 등을 발표해 우리 록역사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그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콘서트는 30년만의 단독 공연인데다 20세기를 보내는 마지막 무대가 되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3시간이 넘는 공연에 체력이 달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힘으로 하는 젊은이들에 비해 나는 자연의 힘을 빌려 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씨는 이번 무대에서 알려진 히트곡 외에 5년 걸려 작곡했다는,연주시간만15분이 걸리는 ‘너와 나의 노래’를 처음으로 발표한다.록과 국악,재즈,랩등 모든 장르가 뒤섞인 곡으로 아들 대철·윤철 형제는 물론,시나위 윤도현밴드 이은미 이승환 봄여름가을겨울 박기영 등 후배들과 대규모 오케스트라,합창단 등 100여명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는 지금의 음악무대에 대해 “80년대 댄스뮤직의 도래 이후 확고한 정체성 없이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과도기”라고 정리하고 “후배들에게 뮤지션으로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의무라고 느껴 이번 무대에 서게 됐다”고덧붙였다. 38년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난 그는 15살때 독학으로 기타를 깨우쳤으며 음악학원 강사로 일하다 우연히 미8군 무대에 들어간 이후 트로트 일색이던 당시 가요계를 재편,록의 토양을 개척한 인물.이화여대 이교숙 교수로부터 음악이론을 사사받은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75년 대마초로 인해 활동규제를 당하고 ‘미인’ 등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80년 규제가 풀린 뒤에도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에 가려져 그의 존재는 미미하기만 했다.따라서 이번 공연으로 2000년대에 그가 대중음악계에발언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할 수 있을 지 기대된다.(02)585-2396∼8. 이에앞서 조용필은 10일부터 사흘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밀레니엄 콘서트’(02-580-1300)를 갖고 통기타 문화를 주도했던 양희은이 7일∼29일 서울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에서,듀엣 ‘해바라기’출신의 유익종은 6∼12일 중구 제일화재세실극장에서 콘서트를 갖는 등 노장들의 금세기 마지막 콘서트가 줄을 잇고 있다.(02)3272-6747. 임병선기자 bsnim@
  • [대한광장] 기록과 국가

    지난 9월말께 미국 AP통신사는 추적취재를 통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6일 미군이 무차별 포격과 사격으로 500명 가량의 양민을 학살한 이른바‘노근리사건’의 사실성을 확인해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렀다.이 사건은 그간 피해자 가족들이 한국과 미국 정부에 여러차례 진상조사를 확인했으나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하여 묵살돼 왔던 터라 AP의 기사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가 있자 국내의 언론이나 일반의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났다.‘군사작전 지휘권’이 미국에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되새기면서 ‘반미구호이유있다’는 독자투고가 있었는가 하면,이미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이제까지 꾸준히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통신사가 보도하니까 대서특필하는 국내 언론의 ‘사대주의’를 꼬집는 한 언론인의 자기반성이 있었고,도대체 반세기가 다 되도록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의 자세조차 보여주지 못한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주위의 탄식도 있었다. 필자가 보도를 접하면서 받은 감상은 역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AP통신사가 입수해 공개한 문서는 한국전 당시 미1기갑사단의 명령서와 25보병사단의 명령서,미8군 본부의명령서 등 4가지다. 1기갑사단은 양민학살 당시 현장에 배치돼 있었고,25보병사단은 1기갑사단의 오른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으며,8군은 한반도에 투입된 모든 부대를 관할하고 있었다.특히 1기갑사단 휘하 8연대의 통신문은 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 7연대 2대대가 발포명령을 받고 있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중요한 것은놀랍게도 이 모든 문서를 미군이 급격하게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간수해 이제까지 보관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같으면 ‘전통’으로 처리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을 왜 미국은 자신에게도 불리한 이 문건들을 다른 엄청난 규모의 전사자료와 함께문서고에 유지해온 것일까.이는 기록의 작성과 유지가 연속성을 보장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며 근본적으로는 역사의식을 확보해주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근대국가만이 아니라 왕조국가에서도 나라다운 나라가 서게 되면 통치자는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려고 노력했다.주권자의속성에 따라 기록작성 의도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그것은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며보겠다는 의지의 한 강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러했다.국왕은 사관이 입석하지 않은 채 신하를 독대할수 없었으며,사관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만이 아니라 국사와 관련한 모든자료를 사초에 기록해 실록에 전했다.왕실은 ‘규장각’을 만들어 문서고로서 기능하게 했다.조선왕조의 이런 행위가 프랑스혁명 직후 의사록 작성과국립문서고 설치를 결정한 혁명의회의 조치와 일정한 차이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문화적 자존과 역사적 주체의식이 양자에 공통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부끄럽게도 조상들이 지녔던 기록문화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복원하는 데도 이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최근 정부문서기록보관소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중요한 사항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반문화가 건재하고 있다.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하면 재임시에 지녔던 문건들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함부로 가져 나오거나 없애는 일이 아직도 다반사인 듯하며,국회나 지방의회에서만 속기록이 작성될 뿐 정작 중요한 국무회의는 간단한 회의록만을 남기고 있다. 모든 중요한 공적 회의에서는 속기록이 작성돼야 한다.자신의 모든 언행이남김없이 기록돼 진정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어찌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둘러댈 것이며,‘역사’ 운운하며 진실을 호도할 수 있겠는가.속기록이 작성되는 회의에서 발언의 무게가 어떨 것인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수 있다. 우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아직도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렸던 역사적경험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기록문화의 복원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崔甲壽 서울대교수·서양사]
  • [대한광장] 대한민국의 침묵

    한국전쟁 발발 직후 피란지 대전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주한미대사를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무초는“각하,이제 전쟁은 당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이 되었습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곧이어 7월12일 한국전쟁의 작전권은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에게 이관되었고,이승만은“대한민국에 있어서 UN의 공동 군사노력에 있어 한국 내 또는 한국 근해에서의 작전중인 유엔군의 모든 부대가 귀하에게 통솔되고 귀하가 그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있는 사실을 감안하여 본인은 현재의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지휘권을 위촉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으면서도 주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계속 직면하였다.유엔군 병력의 반수 이상을 차지한 한국측은 부사령관 지위도 얻을 수 없었고,38선 수복 후 북으로의 진격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휴전선을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었다. 전쟁 중 마셜 미 국방장관이 내한하였으나 대통령은 물론 육군참모총장도만나지 않은 채 미 8군의 벤플리트 장군과 요담하고 떠난 일도 있다.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일권은 “섭섭하다 못해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하면서 “원조받는 입장의 참모총장이 겪어야 했던 이 섭섭함은 지금껏 커다란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은 군지휘관이 입은 정신적 상처와는 비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이후 겪게 되었으며 ‘우방’이라는 논리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상황만큼 무초의 말을 실감케 해주는 일은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1949년 6월21일에 이미 미 극동군사령부는 유사시에대비하여 480명의 미 군사고문단을 포함한 2,000여명의 재한 미국인 철수계획을 미리 짜놓고 있었다.‘한국전쟁’에서 스톤은 자신이 만난 보좌관이 남한의 미군 장교 가족들과 그외의 사람들을 후송하기 위한 선박들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증언을 한 사실을 중시하였다. 실제 미국은 전쟁이 발발하자 단 3일 동안에 1명의 실종자만 냈을 뿐 전원을 일본으로 무사히 철수시켰다.26일부터 29일까지 도합 2,000여명의 미국인이 수송기와 배편으로 한국을 떠났다.미 CIA 요원을 지낸 박 하리마오는 이러한 철수가 아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물론 자국민 보호를 위한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전쟁 중미군 3만명이 전사한 일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노근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우방’인 미군의 총탄에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내맡기고도 지금껏 제대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우리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형식상으로 한국전쟁은 한국과 유엔,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미국의 확고한 동맹 속에서 치러진 전쟁이었다.그러나 사실 ‘우방’,‘동맹’이라는것은 냉엄한 국제질서 속의 대등한 지위에 있는 국가간의 관계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무초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애초부터 솔직하게 한국전쟁이 자신들이 주도한 전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된다.오직 한국정부만이 그러한 주장을 ‘천기 누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억제해온 것이다.그렇다면 역대 정부가 피학살자들의 ‘진상규명’요구를 ‘국가안보’ 혹은 ‘한·미우호’의 명분으로 금기시해온 사실이야말로 여전히 ‘진실’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한국 정치를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뒤늦게나마 미국측에 의해 확인되고 있는 도처에서의 양민학살건과 한국인을 사실상 적으로 취급한 그러한 행동이 한국인에 대한 멸시와 ‘인종적 편견’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 미국은 양심과 정의라는 또 한번의 강자의 포용력을 과시하면서 한국전쟁을 뒷수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우방’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어 무고한‘국민’의 희생에 대해 항의 한번 해보지 못한 한국의 시계는 50년 동안 멈추어 서있다.침묵의 세월은 너무나 길었다.한국정부가 이 긴 침묵을 거두고 당당하게 나서서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설 때만이 한·미간에 진정한‘우리’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으며,지금도 ‘청심환을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는’ 피해자들이 국가의 품안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동 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 99년 국방백서로 본 北군사력

    북한은 올들어 미사일여단을 미사일사단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전체 병력을1만명 가량 증강하고 상어급 잠수함 10여척을 새로 전력화한 것으로 드러났다.또 화학탄 2,500∼5,000t과 탄저균 등 생물학 무기 10여종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12일 국방부가 발간한 ‘99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 이처럼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발간된 국방백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방위력 개선사업과 관련한 투자비 내역과 사업진행 과정 뿐 아니라 북한의 화생전 능력과우리 군의 대비책,북방한계선(NLL) 수호의지,주한미군의 전력 등을 자세히공개했다. ■98 국방백서와의 차이점 국방정책의 기조가 북한의 위협 뿐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도 대비하는 정책으로 전환됐다.국방획득 5대 정책방향을포함,2000∼2004년 국방 중기계획,올해 방위력개선 투자비 내역,올해 주요군사장비 전력화 계획,차기전투기사업 진행과정,주요 무기의 국외도입 현황등을 새로 담았다.주한미군의인가병력 및 미8군·주한 미공군 주요 장비 등의 종류,대수와 함께 신속억제방안,전투력 증강,시차별 부대전개 등으로 나누어진 증원전력의 종류를 수록했다.이밖에 북한 미사일 개발연표,주요 무기체계 전력화 현황,주요국의 군사혁신 현황 등 52종의 부록을 첨부했다. ■북한의 군사력 북한은 올해의 군사비를 총예산의 14.5%인 13억6,000만달러로 공표했지만 실제로는 3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남한은 총예산의 16.4%인 13조7,490억원이다. 실질구매력 측면에서 비교하면 우리보다 3배 이상 전력증강의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최근 중국 국경지역에 미사일 발사기지를 건설했으며 AN-2기 및 상어급소형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했다.이밖에 주변국 위협 및 대외협상용 수단으로 1∼2개 정도의 초보적인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대 사거리 2,500㎞,6,700㎞인 대포동 1,2호 미사일을 중점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득정기자 djwootk@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체들 (5) 5‘16 막후

    케네디는 죽기 전 마지막 국무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민주주의가 만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당시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필자는 그 한마디에 흥분하여 “박정희 쿠데타는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단정하는 기사를 본사에 송고했다.케네디가 결코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당시 30대 초반의 나로선 젊은 케네디의 이상,정의감,프런티어정신,그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미국의 국익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5·16 당시 미국의 행적에는 의문스런 점이 한두 가지가아니다.주한 미 대사관의 대리대사로서 맥그루더 유엔군사령관과 함께 5·16 반대성명을 발표했던 마셜 그린은 그후 미국으로 돌아와 케네디 행정부의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필자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물은 적이있다. “왜 미국은 5·16을 진압하지 못했나요?” “코리안 전체가 한물 갔어요.모두 기회주의자요.내가 쿠데타군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자고 하니까 윤보선(尹潽善·작고)대통령이 ‘우리 군끼리 충돌하면 언제 북괴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며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쿠데타와 같은 국가위기의 순간에 총리라는 사람이 수녀원에 숨어서나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5·16은 장면(張勉)정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지난 95년 위컴 당시 주한미군 부사령관의 측근으로부터 5·16 당일 반도호텔에 있던 장면을 지프에 태워 혜화동 깔멜수녀원으로 이동시킨 것이 바로 위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는 직책은 부사령관이었지만계통은 정보라인이었다.박정희의 쿠데타를 뒤에서 봐줄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이다.위컴은 당시 반도호텔에 장기투숙하고 있었는데, 5·16 직후 반도호텔에 피신한 장면으로 하여금 반도호텔 뒷문으로 나가서 준비된 지프에 타고깔멜수녀원으로 옮겨가게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장면이 미8군이 아닌 깔멜수녀원으로 간 것이 누구의 의사였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필자는 어쨌든 위컴이 장면을 미8군으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미국측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그 사실은 미국측이장면을 그리 달갑게여기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위컴의 측근에 의하면 5·16직후 당시 연평도에주재하며 사목하던 한 유명한 미국인신부를 가톨릭신자인 케네디에게 보내 5·16군사쿠데타 세력들을 인정해주라고 호소하게 한 것도 바로 위컴이었다. 바로 그런 위컴의 행적을 미 국무부 사람들이 몰랐을까? 미국이란 나라의생리상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결국 표면적으로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8군 사령관은 쿠데타 반대성명을 내 합헌정부인 장면 정부를 지지했다는 명분을 확보하는 한편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은밀히 쿠데타세력을 지원했다고 볼수밖에 없다.이제와서 돌이켜보면 5·16을 둘러싸고 미국인들이 서로 짜고쇼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정부가 장면 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미 국무부는 ‘부산정치파동’ 이전부터 장면을 지지했으며 4·19혁명으로 장면이 집권한 이후에도 장면을 도와주었다.그런데 5·16후 미 국무부의 한 관리가 “장면 박사가 무력했기 때문에 한국내에서 쿠데타를 꾸미던 세력이 다섯이나되었다”고 말한 것을 볼 때 미국은 5·16직후 장면 정권에게 쿠데타 기도에 맞서 내부를 단합시킬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주는 동시에 그렇게 안될 경우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인사들과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워싱턴에서 5·16군정 승인문제,공석이던 주한 미대사 부임(새뮤얼 버거),박정희 장군 방미 등 주요 외교문제가 거침없이 수행된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63년 11월 케네디 암살후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나의 기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언젠가 나는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딘 러스크에게 “한국이 언제 통일되겠는가”라고 질문한일이 있다.그는 “당신이 살아서는 못 본다”고 대답했다.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그로부터 45년이 지났다.그의 말이 사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그와 얘기중에 ‘38선’문제가 나왔다.놀랍게도 그는 “38선은 내가 그었다”고 말했다.그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1944년 나는 미 전쟁성 작전국 전략정책단 정책과에서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었다.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날 밤 일본군에 제시할 항복문서중 한반도와 극동지역 부분들에 대한 초안을 작성해서 30분 안에 올리라는 긴급과제가 정책과에 떨어졌다.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일은 소련이 수용할 수 있는 선을 그어 그 이남으로는 소련의 진주를 저지하는 것이었다.나는 정책과장 본스틸 대령과 상의한 끝에 38도선 정도라면 (한반도)절반을 공평하게 분할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경성(서울)과 미군포로수용소,주요 항만시설이 (38선 이남에) 있다는 것이 유리한 점이라고 판단,38선을 그어 전략정책단에 보냈다.그런데 소련이 그걸 수용해 뒷날 38선이 됐다” 엄청나고도 어이없는 얘기였다.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분단문제를 일개 미 육군 대령들이 30분만에 처리했다는 것이다.뒤에 이와 관련된 국무부 문서가 공개돼 당시 내가 소속됐던 동아일보에 이를 송고했던 기억이 난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노근리 사건’ 풀리지 않는 의문들

    [뉴욕 AP 연합] 한국판 ‘킬링 필드’ 노근리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많은 의문들로 가득차 있다.미 국방부 내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피란민들에게 발표 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누구인가.피란민들이 미군에게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는가.미군 지휘계통의 어느 선까지 노근리의 진상이 보고됐는가. 육군 진상조사단은 이와 같은 풀리지 않은 의문들의 답을 구하기 위해 참전용사들로부터 보다 상세한 증언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이 모든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확보한다 해도 국방부가 왜 노근리 사건의 기초적인 사실들을 더 이전에 적발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답변은 국방부만이 할수있다. AP통신은 지난달 말 수개월간에 걸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10여명의 참전용사들로부터 한국전쟁 초기인 50년 7월말 미 육군 제1기갑사단 제7연대가노근리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는 증언을 얻어내 보도했다.일부 제7연대 출신 참전용사들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중대장이었던 멜번 챈들러 대위가 현장에서 “모두 없애버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증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챈들러 대위가 무전을 통해 연대본부와 사전협의를 했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한 참전용사는 대대 수준의 장교가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그렇다면 더 윗선의 지휘계통,예를 들어 제7연대와 제1기갑사단 지휘부는 과연 노근리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그리 용이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현장 지휘관이었던 챈들러 대위는 70년 숨졌고 다른 대대 장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챈들러 대위의 상급 대대를 지휘했던 허버트 헤이어 대령은 88세 고령인데다 병을 앓고 있고 “학살사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말하고 있어 육군 조사관들이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1기갑사단 복무규정은 피란민을 포함,방어선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장병들이 발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다른 이웃 사단에서는 한 장군이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한국 전선을 책임지고 있었던 미8군 사령관 월튼 H 워커 중장이,나아가서 도쿄에 체류하면서 한국 전쟁을 총괄했던 2차대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이 그같은 불법적인 명령을 재가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대두된다.또한 사후보고도 어느 선까지 올라갔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노근리 피란민 학살사건 규명에 나선 미 육군은 증언 확보에 앞서 먼저문서 검토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잘못은 없었는지를 엄정히 물어야 한다.
  • ‘우리의 화가 박수근’ 展

    흰색·갈색·회색·검정색의 절제된 사용,그리고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마티에르.‘민족의 화가’‘서민의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조형세계는우리 화단의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나의 그림은 유화이지만 동양화다”라고 스스로 말했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소박한 한국미가 느껴진다. 박수근 예술의 독자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그가 당대의 동료 화가들이 교육기관을 통해 아카데미즘을 답습한 것과는 달리,독학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의 화가 박수근’전의 관람 포인트는 이러한 박수근 예술의 독자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박수근은 회화의 재현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제하고 대상의 본질만을 잡아내묘사한다. 또 서양화 기법을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깃든 독자적인 마티에르 감각으로 소화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제시한다.박수근은 황갈색 톤의 중간색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의 그림 색깔을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그림 밑바닥에서부터 번져 올라온 복합적인 색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그는많을 땐 열 번까지 물감을 겹쳐 올리고 지우고 긁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평면적인 느낌보다는 부각(浮刻)세공 같은 느낌이 강하다.그는 또한 서양화의 전통적인 기법인 원근법을 즐겨 쓰지 않았다.그래서 ‘그림 못 그리는 화가’란 소리도 들었다.그의 ‘소와 유동(遊童)’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림 윗부분에 있는 소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박수근의 그림 작업은 크게 젯소층,바탕칠하기,재질감 만들기,마무리 작업등 4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그는 젯소(gesso)가 미리 발라져 있는 상품화된캔버스를 주로 사용했다. 젯소는 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로,유화물감의 기름성분이 천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발색효과를 높이기 위해 바르는 흰색 물감을 가리키는 말.이 젯소층 위에 모노톤의 물감을 바르고,화면에다시 물감을 칠한 뒤 붓으로 데생을 한다. 그 위에 붓과 나이프로 작업을 반복하면서 점차 두터운 화면을 만들어간다.그리고 끝으로 동양화에서의 갈필(渴筆)처럼 붓을 이용해 작품의 톤을 조정한다. 박수근 작품의 독자성은 이같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일관된 소재의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한다는 예술적 신념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모습을 반복해 그렸다.그럼으로써 그들을 우리 민족의 집단초상화로 거듭나게 했다.아이를 업고절구질하는 여인, 좌판을 벌리고 행상하는 아낙,헐벗은 나목처럼 황량하기만했던 시대 풍경은 50∼60년대 그가 경험한 일상이었지만,돌이켜보면 그것은곧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저력이자 우리 민족의 초상화이기도 하다.그는 인고의 생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그것에 주눅들지 않는 강인한 한국의 여인상을 그렸다.반면 남성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무룡태 정도로 묘사해 대조적이다. 1914년 강원도 양구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정 형편상 보통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미8군 영내매점에서 관광용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소설가 박완서는 당시 미8군 매점 초상화부에서 ‘간판쟁이 박씨’로 불리던 그를 소재로 처녀작 ‘나목’을 썼다.박수근은 수술비용이 없어 백내장 치료를 미루다가 1963년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그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도 실명에 따른 충격으로 폭음하다가 간과신장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유화 82점과 수채화 8점,스케치 35점 등 모두 125점이 나와있다.‘소와 유동(遊童)’‘나무와 두 여인’‘시장의 여인들’ 등 중·고교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비롯 ‘귀가’‘아기보는 소녀’‘시장’등 대표작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9월 19일까지 (02)771-2381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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