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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콜롬비아 FTA 정면돌파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의회에 미국과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행처리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하고 신속한 비준 동의를 요청했다. 미 의회는 무역촉진권한법(TPA)에 따라 90일 회기 이내에 미·콜롬비아 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찬반 표결을 마쳐야 한다. 미·콜롬비아 FTA의 처리 향방에 따라 비준동의를 기다리고 있는 한·미 FTA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그러나 다수당인 민주당 지도부가 콜롬비아의 노동·환경 기준이 미흡하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미 행정부의 일방적인 비준동의안 제출이 의회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 난항이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콜롬비아와의 FTA는 안보에 긴급한 사안이며 이번 협정은 중남미 지역에서 국가 안보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의회에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미 의회는 올해 대선 일정 때문에 8월2일부터는 장기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FTA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하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부시 행정부가 힘으로 콜롬비아와의 FTA를 밀어붙일 경우 역풍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펠로시 의장은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인 찰스 랭글과의 공동 성명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미-콜롬비아 FTA를 지지할 수 없다며 무역으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확대를 규정한 무역조정지원법(TAA)의 개정을 촉구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이날 “법안 제출은 의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FTA를 재임 중 최대 치적으로 남기려는 부시 대통령이 콜롬비아 FTA 처리를 위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한·미 FTA의 처리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TAA 개정에 합의해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롬비아 FTA 처리를 놓고 미 행정부와 의회가 극단적으로 대치할 경우 쇠고기와 자동차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미 FTA 처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kmkim@seoul.co.kr
  • ‘티베트 불똥’에 불붙은 성화봉송 폐지론

    ‘티베트 불똥’에 불붙은 성화봉송 폐지론

    |워싱턴 김균미·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지구촌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는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급기야 ‘봉송 폐지’논쟁을 불러 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는 8일(이하 현지시간) “차기 올림픽대회부터 해외 성화봉송 폐지 여부를 이번 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성화 봉송을 둘러싼 시비와 시위가 올림픽 정신을 오히려 퇴색시키고 지구촌의 갈등 요소로 돌출되고 있는 탓이다. 게다가 정치쟁점과 외교 문제로 불거져 나오면서 화합이 아닌 지구촌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7일 조시 부시 대통령에게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힐러리 의원의 발언은 개막식 참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발언보다 수위가 높은 것이다. 토니 프라토 백악관 대변인은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 변한 게 없다며 개막식 참석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반대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런던에서 발생한 격렬한 시위로 37명이 연행되고, 파리에서는 성화가 3차례나 꺼졌다 켜진 뒤에도 28㎞를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연출되자 급기야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반중국 시위에 대해 직접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IOC위원장이 “티베트 사태가 신속하고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나서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다음 봉송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봉송 행사 축소와 거리 단축 등을 고려하고 있으며 일본도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이날 요미우리신문 등이 전했다. 일본 경찰 당국은 당초 교통 통제 정도로 성화 봉송을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인근 지역 경찰력의 지원을 요청키로 했다. 일본올림픽위원회는 성화봉송 방해 행위가 발생할 경우의 대응 지침을 담은 ‘위기관리 매뉴얼’제작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중국은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성화 봉송 구간과 일정에 변화없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왕후이(王惠) 신문선전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성화 봉송은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승인된 대규모 스포츠 문화행사로 전 세계인들과 이를 공유하기 위해 일정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외교부는 파리 봉송 도중 성화가 꺼졌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성명을 내고 이를 부인했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새벽 긴급 성명을 통해 “성화의 안전과 존엄성 보호를 위해 봉송 과정에서 전달방식을 바꾼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jj@seoul.co.kr
  • 美 “용산·2사단 이전비 75% 한국부담”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3일(현지시간)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비용 100억달러(10조원) 가운데 미국이 부담할 비용은 24억달러(2조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샤프 지명자는 이날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 용산기지 이전 비용은 한국 정부가 대부분 부담할 것이며, 미국은 주한미군 2사단 기지 통폐합 이전비용을 미 의회의 세출예산과 한국의 방위비 분담비용에서 충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부담액은 당초 예상했던 55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75억달러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우리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에 의해 미국이 2사단 이전비용을 전액 부담키로 했다.”는 것으로, 한국이 제공하는 방위비 분담비용을 전용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2일 하원 청문회에서 버웰 벨 사령관의 같은 취지의 발언이 나왔을 때 국방부는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샤프 지명자는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어 체계적인 미사일 방어대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열린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칼 레빈 미 상원 군사위원장과 존 워너 의원 등 중진의원들이 오는 2012년 4월로 예정된 주한미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시기를 앞당기라고 촉구해 주목된다. 이에 대해 샤프 지명자는 “인준을 받으면 한국측과 협력해 한국군이 전작권 이양에 필요한 훈련과 능력을 확보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kmkim@seoul.co.kr
  • “맥주회사 상속녀가 매케인 키웠다”

    맥주회사 자산이 오늘날 미국 공화당 대권후보를 키웠다? AP통신은 3일(현지시간) 민주·공화 양당 주자들의 ‘배우자 복(福)’을 알리는 기사를 올렸다. 먼저 존 매케인(사진 오른쪽·72) 공화당 상원의원과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부인 신디(왼쪽·54)는 1980년 하와이 칵테일 파티에서 서로 만났다. 버드와이저를 판매하는 세계적인 맥주유통 업체 헨슬리의 공보담당으로 있던 매케인은 유부남이었고, 신디 헨슬러는 당시 3800만달러(약 370억원)에 이르는 재산상속을 예약받은 터였다. 신디에게 한눈에 끌린 매케인은 이혼을 선택했으며, 같은해 결혼에 골인했다. 그 뒤 언론들은 그가 야망 때문에 조강지처를 버렸다고 때렸다. 그러나 이처럼 특별한 신디와의 인연이 매케인에게 정치적인 ‘날개’를 달아줬다는 게 AP의 분석이다. 매케인의 초기 후원자였던 버드와이저 제조업체 앤호이저 부시의 정치활동위원회와 얽힌 인연도 신디 때문에 맺어졌다. 애리조나 신설 지역구의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매케인은 장인 회사의 컴퓨터와 복사기 등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사용했으며 신디는 청구서를 처리해줬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부인에게 돈줄 노릇을 하고 있다. 미 ABC뉴스 인터넷판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뒤 강연료 등으로 4700만달러(약 450억원)를 벌어들였다고 전했다. 그는 앞서 골드만삭스에서 네 차례 강연을 하고 65만달러를 받았으며 2005년 남미에서 잇달아 강연에 참석,80만달러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美 FRB 권한강화 논란가열

    美 FRB 권한강화 논란가열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슈퍼 FRB 시대 열리나.’ 미국 정부가 제시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감독 권한 강화와 모기지 감독 기관 신설 등을 골자로 한 금융개혁안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형 은행과 대기업들은 무한경쟁시대에 맞춘 시의적절한 조치라며 환영하는 반면 대다수 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기업·은행 “글로벌 금융환경에 맞다” 환영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금융감독체제 개편안 내용 대부분이 입법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모기지 감독기관 설립을 제외하고는 연내 시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임기를 10개월여밖에 남겨놓지 않고 레임덕 현상까지 겪고 있으며,8월 이후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 의회마저 개점휴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대규모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주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존 카스텔라니 사장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금융규제를 손질하는 적절한 조치”라며 반겼다. 뉴욕 월가의 주요 투자회사 티모시 라이언 CEO도 대공황 시대에 틀을 갖춘 금융감독체제는 급변하는 현재의 글로벌 금융환경에는 적합하지 않다면서 이번 개편안은 사려 깊고 현명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등 “투자자 아니라 월가 보호” 비판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이번 개편안에 주택압류 피해자에 대한 지원대책이 빠진 것은 비판하면서도 전체적인 개편방향에 대해서는 맞는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안에 대한 반대의 소리는 금융기관과 소비자단체뿐 아니라 개편으로 영향을 받는 연방관리, 로비스트 등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도드(민주당 코네티컷주)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폴슨 장관의 개혁안은 폭투”라고 평가하며 FRB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대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정부의 금융감독 당국자들도 “이번 개편안은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월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며 반대했다. 이번 개편안에서 증권거래위원회(SEC)로 통합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월트 루켄 회장대행은 위원회의 전문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크레디트유니언(소비자신용조합)도 단일 규제 당국이 출현한다면 전통 은행구조를 강요해 결국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줄일 것이라며 반대했다.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FRB가 금융시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 유동성 공급을 책임지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경우 금융기관들이 투자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투자하는 모럴해저드를 조장, 금융시장의 부실만 구조적으로 더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편안 실행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개편안이 조기에 추진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재정분석 전문가인 카렌 쇼 패트로는 “개편안은 법 제정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11월 선거에서 뽑힌 새 대통령과 새롭게 구성된 의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면서 내년 이후에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개편안의 골격이 어느 정도 유지될지도 불투명하다. kmkim@seoul.co.kr
  • “우리도 테러와 전쟁이다”

    티베트(시짱·西藏) 분리주의 세력들이 테러조직을 만들어 자살 테러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며 중국이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공안부 우허핑(武和平) 대변인은 1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티베트 분열주의자들의 다음 계획이 자살테러를 감행할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이들은 어떤 유혈 사태나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 대변인은 지난달 15일 이후 공안당국이 조사를 벌인 결과 시위 주동자들이 중국 밖의 달라이 라마 집단 간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했던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이 달라이 라마가 이번 시위를 선동하고 배후조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이끌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AP통신이 이날 전했다. 삼동 린포체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는 “우리는 전적으로 비폭력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중국측의 주장을 부인했다. 린포체 총리는 “중국이 티베트인인 것처럼 가장해 이 같은 공격을 벌임으로써 티베트인들의 이미지를 훼손하려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1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맞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미국이 올림픽 경기 자체를 보이콧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단독]한·미 FTA 비준 새 복병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의 무역조정지원법(TAA) 개정작업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미 의회 비준의 새 복병으로 등장했다. 우리 정부가 미 의회 비준의 걸림돌이 돼 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전면재개를 결정하더라도 미 의회에서 TAA가 개정되지 않으면 한·미 FTA 의회 비준절차를 현실적으로 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내 비준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 민주당 상·하원 지도부는 최근 무역자유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TAA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어떠한 FTA도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미 행정부는 지난 주 미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었던 미·콜롬비아 FTA 이행법안의 제출을 미루고 의회와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고 30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제조업에만 국한돼 있는 지원대상을 서비스업으로 확대하고 피해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실직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실업보험 확대 등이 포함된 TAA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톰 엥겔하트 지음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톰 엥겔하트 지음

    명분을 잃은 채 세계의 냉소 속에 끝없는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라크 전쟁, 국가경제를 바닥부터 흔들어 놓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날이 갈수록 더 깊이 골을 파가는 사회 양극화…. 오늘, 미국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미국 사회가 거치는 변화의 한 단계일 뿐일까, 아니면 ‘아메리카 제국’ 몰락의 한 과정일까.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톰 엥겔하트 지음, 창비 펴냄)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지은이는 미국의 대표적 대안언론 블로그인 ‘톰디스패치’의 운영자. 그가 2005년부터 2년 동안 10여명의 미국내 비판적 지성들과 가진 블로그 인터뷰를 모았다. ●美 비판적 지성인 10인 심층 인터뷰 미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에 참여한 진보인사들의 면면은 다양하고 화려하다. 컬럼비아대 역사학 명예교수이자 ‘미국 민중사’의 저자로 유명한 하워드 진을 비롯해 2005년 이라크전을 반대하며 조시 부시 대통령의 별장에서 시위를 벌였던 반전운동가 신디 시핸, 캘리포니아대 역사학 교수 마이크 데이비스,‘빈곤의 경제’를 쓴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히 등이다. 책은 하워드 진이 포착한 미국내 저항의 목소리들을 들려주며 곧바로 본론에 들어간다.‘베트남:철군의 논리’(1967년)를 저술한 반전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이라크의 미군이 완전지원병으로 이뤄진 태생적 속성을 들며 미국내 반전운동은 유례없이 부모들의 몫이 돼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러고는 부시 행정부를 이라크에서 빠져나오게 할 방법으로는 “군대에서의 반란이 그 하나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쟁을 야기한 통치세력의 행위를 결코 범죄로는 몰아붙이지 않는 독특한 미국문화의 특성을 짚기도 했다. 미국문화가 어떤 경우에건 대통령과 통치세력을 매우 특별한 사람들로 보는 군주제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명백히 잘못된 리더십이 전쟁을 불렀다고 한들 그들을 ‘전쟁범죄’나 ‘전범’ 등으로 압박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식 제국주의’를 기획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솔직한 견해도 밝혔다. 이라크 전쟁을 “(더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미 제국의 가장 바깥쪽 경계”라고 전제한 그는 “언젠가는 벌어질 이라크 철군은 곧 미 제국의 축소로 가는 첫째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훗날 9·11테러 역시 미 제국 붕괴의 시초로 간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안 블로그답게 주류 언론 현실도 파헤쳐 경제위기에 관해서는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 버클리) 일본정책연구소장인 찰머스 존슨의 견해를 집중소개했다. 미국경제가 도달한 위기의 본질을 군산 복합체에 의존하는 기형적 경제구조에서 찾은 존슨은 미국 경제의 파산을 조심스럽게 예견했다. 그는 “미국의 불황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미국 이외의 세계도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겠지만 그들은 아마도 훨씬 빠르게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재 진행중인 민주당 경선에 대한 의미해석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인이 민주당에 보이는 태도를 ‘비판적 수용’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보스턴 글로브’지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캐럴은 “민주당이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사회를 냉소주의에 빠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네이션’지 발행인인 카트리나 밴든 회블도 “민주당의 이러한 처신이 부시 행정부의 자멸을 바라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면서 “그러나 다수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철군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시각을 현 상황에 적용해 보면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선전은 매우 유의미한 결과이다. 유권자들이 이라크전 등으로 보여준 부시 행정부의 실정을 막지 못한 민주당의 한계는 따갑게 비판하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안언론 블로그답게 비판의 촉수를 전방위로 뻗쳤다.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중매체와 주요 텔레비전의 뉴스가 약 5개 기업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 언론의 현실을 신랄히 까발리기도 했다.1만 7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탄 민주주의 첫걸음 ‘성공적’

    부탄 민주주의 첫걸음 ‘성공적’

    24일 치러진 부탄 총선에서 ‘평민의 당’이 ‘귀족당’을 누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출신의 유학파 지그미 틴리가 이끄는 부탄통일당(DPT)이 예상을 깨고 왕실 외척인 상가이 응게덥이 이끄는 국민민주당(PDP)에 압승을 거뒀다. ●“DPT, 총 47석중 44석 차지” 지난 1월 선거로 상원(25석)을 구성한 데 이어 이번에 하원(47석) 선거로 ‘은둔의 왕국’ 부탄은 100년 동안의 절대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 군주제 민주주의 국가로서 첫 걸음마를 시작하게 됐다. 25일 BBC는 부탄 선거관리위원회 쿤장 왕디를 인용해 “DPT가 총47개 하원 의석 가운데 44개 의석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탄리는 부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왕정시절 두 차례 총리와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총선 압승으로 세번째 총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팔덴 체링 DPT 대변인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라면서 “국민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기뻐했다.DPT 후보 가운데 한명인 우엔 티셔링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라며 “이번 승리는 당이 아닌 국가의 승리”라고 진단했다. 반면 예상과는 반대로 참패한 PDP 총수인 응게덥은 일가에서 4명의 왕비를 배출한 귀족이다. 그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역구에서도 탈락해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부탄 전문가들은 “탄리가 서민층과 지식인층의 표심을 사로잡은 것이 압승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총선은 부탄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있어 또하나의 전향적인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투표 참관인인 일본의 다키오 야마다도 “부탄 국민들의 위대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히말리아의 작은 나라인 부탄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전 국왕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기로 결정한 이후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피플파워에 의해 국왕이 축출된 이웃나라인 네팔과 달리 부탄은 국왕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소리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것이다. ●現 국왕은 국가원수 영향력 유지할 듯 전세계 독신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 5걸에 드는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28) 현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부탄 국민들은 급속한 변화를 염려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부탄은 1인당 GDP 1400달러의 가난한 나라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 국민들의 마음이 넉넉해 지난해 영국 레스터대가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8위에 올랐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티베트진압 규탄 국제사회 나서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21일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만난 뒤 국제사회가 중국의 티베트 지배와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티베트 사태 이후 달라이 라마를 면담한 첫번째 외국 고위급 인사다. 펠로시 의장은 “국제사회가 중국의 티베트 지배에 맞서지 않을 경우 인권에 대해 논할 모든 윤리적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또 이번 유혈사태의 배후에 달라이 라마가 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독자적인 조사를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0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에게 티베트 시위 진압을 자제하고, 달라이 라마와 대화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티베트 사태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올림픽에 예정대로 참석할 것이라고 백악관이 밝혔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8) F. 루스벨트 전 美 대통령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8) F. 루스벨트 전 美 대통령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올해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발표, 시행한 지 75주년이 된다. 미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미국인들은 경제적 수렁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21세기의 루스벨트’를 고대하고 있다. 루스벨트가 제32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1933년 3월 미국의 경제상황은 최악이었다.1929년 10월24·29일 뉴욕증시의 폭락은 대공황의 신호탄이었다.1929∼1933년사이 실업률은 4%에서 25%로 급등했다. 산업생산은 35% 줄었다. 농산물가격도 60%나 급락, 농업의 근간이 흔들렸다.200만명이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로 문을 닫는 은행들이 속출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라며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1차 뉴딜(1933∼1934) 미국 역사가들은 뉴딜정책의 핵심을 ‘구호(relief), 회생(recovery), 개혁(reform)’으로 정리한다.‘100일 계획’은 1단계 구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루스벨트는 취임 닷새째인 3월9일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6월16일까지 100일 동안 15개의 긴급구제·경제개혁 법안을 마련했다. 학자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Brain Trust)’는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자유방임주의 대신 연방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그는 첫 조치로 부실은행을 정리했다. 취임 다음날인 5일 전국 은행들에 ‘휴업(bank holiday)’명령을 내렸다.9일 은행들을 재무부의 감독 아래 두고, 필요할 경우 연방은행에서 자금을 지원토록 한 긴급은행법이 통과됐다.12일 일요일 루스벨트는 유명한 ‘노변정담(fireside chats)’을 시작했다. 라디오 앞에 앉아 국민들에게 ‘은행권 위기’에 대해 설명하며 은행에 돈을 맡기라고 당부했다.3일 뒤 75%의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자 미국인들은 은행으로 몰려들었고 은행들은 빠르게 안정됐다. 연방예금보호공사(FDIC)를 설립,1인당 5000달러까지 보호해 주었다.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연방긴급구호청을 신설했다. 민간자원보호단(CCC)을 만들어 청년실업자 25만명을 고용, 전국 국립공원에 나무를 심고, 다리를 놓았다. 농가 소득을 끌어올리기 위해 농업조정국(AAA)을 만들었다. 균형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경제법이 1933년 3월14일 제정됐다. 균형예산을 달성하기 위해 참전군인 연금을 40% 삭감하고, 연방공무원 월급도 줄였다. 국방비도 대폭 삭감했다. 경제회생을 위해 공공사업청(PWA)을 신설,33억달러의 예산으로 다리·도로 등 공공시설에 투자했다.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도 그 일환이다. 댐을 건설해 홍수를 방지하고 전기를 공급하며 가장 가난하고 낙후한 테네시강 유역 일대와 남부를 현대화했다. 개혁은 경제공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장기적인 작업이다.1933년 전국산업부흥법(NIRA)의 제정으로 시동을 걸었다. 기업들에 제품가격 인상을 허용하는 대신 최저임금(시간당 20∼45센트)과 노동시간제한(주당 35∼45시간), 아동노동 금지 등을 다룬 협약을 체결토록 했다. 이 법은 노조를 활성화했다. 1933년 은행구조개혁 관련 법들이 통과됐고,1934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월가를 감독하게 됐다. ●2차 뉴딜(1935∼1936) 루스벨트는 193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상·하원 양원을 장악하자 본격적인 사회·경제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중요한 법안들이 이때 통과됐다. 역사학자들은 2차 뉴딜정책이 1차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친노동·반기업적이라고 평가한다. 공공사업진흥국(WPA)을 만들어 200만명에게 다리와 도로, 공항, 공원 건설 등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뉴딜정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인 사회보장법도 이때 통과됐다. 연금제도와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노인과 극빈자, 장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틀을 갖췄다. 노동관계법(이른바 와그너법)을 제정, 노조결정·단체협상·파업권을 인정했다. 뉴딜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1933년 25%였던 실업률은 1937년 10%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고,2차 대전이 발발한 뒤에야 한 자릿수로 내려갔다.1937년 경기침체에 다시 빠지자 루스벨트는 50억달러를 투입, 경기부양에 나섰다. 연방정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29년 3%에서 1937년 9%로 늘었다. 국가부채비율도 20%에서 40%로 높아졌다. ●엇갈리는 평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후한 점수를 주는 반면 경제학자들은 평가가 엇갈린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뉴딜정책으로 경제공황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연방정부의 개입과 각종 규제정책의 도입으로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 다른 경제학자들은 뉴딜정책 때문에 경제회복이 오히려 더뎌졌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루스벨트가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확립했고, 부의 공평한 분배에 노력했으며, 정치·경제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kmkim@seoul.co.kr ■리치 美상원 역사전문위원이 말하는 루스벨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도널드 리치 미국 상원 역사 전문위원은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것은 “확실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뛰어난 대의회 설득력과 강력한 정책 추진력, 탁월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구축으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과 뉴딜정책에 관한 책 ‘FDR 대통령’을 펴낸 루스벨트 대통령 전문가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열린 루스벨트 대통령 토론회에서 루스벨트가 성공한 이유와 지도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루스벨트가 가장 성공한 경제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역사상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인 대공황 때에 취임했다. 루스벨트는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대공황을 불러온 경제·사회적시스템을 개혁했다. 또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고, 최저임금을 보장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뉴딜정책과 같은 방대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루스벨트 개인의 능력도 출중했지만 주위에 강력한 지지자들과 뛰어난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루스벨트는 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도록 만드는 데 달인이었다.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결론을 도출해 내라고 다그쳤고, 결국 이들은 타협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루스벨트는 상당히 인간적인 면이 강했던 대통령이다. 특히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했다. 매주 일요일 대국민라디오 담화, 이른바 ‘노변정담’이 대표적이다. 국민들은 경제건 전쟁이건 루스벨트만 믿고 따르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현재 경제상황이 매우 나쁘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사람들은 루스벨트 같은 지도자를 열망하는데. -그는 보통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들의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애썼다. 부자들로부터 떼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 루스벨트는 매우 창조적인 인물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방안을 강구했다. 그는 뭔가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가 정책을 추진하다 실패하면 비판에 직면하는데 루스벨트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유럽인들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루스벨트식 실험’이라며 매우 관심있게 지켜봤다. 당시 유럽은 극좌·극우의 이념적 틀에 얽매어 있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이념적 차이를 뛰어넘어 절충을 모색했다. 변화를 시도하다 실패하면 이를 솔직하게 알리고 대안을 찾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안겨줬다. kmkim@seoul.co.kr
  • “MB, 주한미군 감축 중단 요구할 듯”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2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이명박 대통령이 (다음달)미국을 방문, 주한미군 감축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럴 경우 미국은 한국과 마주 앉아 토론을 거쳐 (감축)휴지기를 갖는 데 동의하는 게 신중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미군 전문지 성조지(紙)가 20일 보도했다. 올해 말까지 3500명을 추가로 감축하기로 한 주한미군 감축 계획의 중단을 한국이 요청할 경우 미측은 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한미군 병력은 4년간 1만 2500명을 감축한다는 계획 아래 지난 3년 동안 3만 7500여명에서 2만 8500여명으로 감축됐으며 올해까지 예정된 감축계획이 완료되면 2만 5000여명 수준으로 유지된다. 벨 사령관은 또 “2012년 4월17일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노무현 정부와 합의한 전작권 전환 프로그램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으로 낙관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용산기지 이전비 10조원 한국부담”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김미경 윤설영기자|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최근 미 의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비용이 100억달러(약 10조원)에 이르고 한국이 대부분을 부담할 것”이라고 증언한 것이 15일 뒤늦게 밝혀졌다. 벨 사령관은 또 당초 미국측이 전액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강 이북의 미군 2사단 이전비용도 50대50 배분 원칙에 따라 50%는 미국이,50%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벨 사령관의 발언은 오는 5월쯤 시작될 2009년 이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한국측의 분담금 증액 및 분담금 전용 허용을 요청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벨 사령관은 지난 12일 미 하원 세출위원회에 출석,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 2004년 한·미간 합의된 용산기지 재배치 계획에서 한국은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것과 관련된 비용을 대부분 부담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한국은 이미 이 가운데 20억달러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벨 사령관은 대신 “미국은 평택 캠프 험프리내 미군 가족 및 장병 주거시설을 15년간 임차하기로 했다.”며 그 비용이 14억달러(약 1조 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의정부 2사단 이전비용은 미국이,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한국이 각각 분담한다는 ‘원인제공자 부담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벨 사령관의 발언을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및 외교부 당국자도 “한·미 정부간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전용을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벨 사령관은 방위비 분담금의 일부를 기지이전 비용으로 돌려 쓰면 50%만 부담하면 된다는 뜻에서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금을 기지 이전비용으로 전용하는 것에 대해 국회와 시민단체들이 ‘원칙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또 이 경우 우리 정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동맹 차원뿐 아니라 실익과 투명성을 고려해 방위비 분담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kmkim@seoul.co.kr
  • “美, 이공계 인재 취업비자 확대를”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한다. 하나는 수학과 과학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능한 외국인 인력을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비자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비자 제한으로 우수인재 영입 막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급 두뇌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 하원 과학기술위원회에서다.1958년 옛 소련이 미국에 앞서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한 데 자극받아 구성된 과학기술위원회는 이날 설립 50주년을 맞아 게이츠 회장을 초빙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수학·과학 교육 발전 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기부한 게이츠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초연구 분야에 대한 연방 예산 증대와 세제 우대책 마련 등에 대해 역설했다. 또 전문직 외국인의 취업비자 발급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전문직 외국인 근로자에게 발급하는 ‘H-1B’비자는 연간 6만 5000명으로 한정돼 있다.의회가 지난해 비자 발급 확대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일자리 감소와 급여 하락을 우려한 노조 등 반대 세력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는 “이같은 제한이 미국 기업이 원하는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의 영입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우 지난해 ‘H-1B’신청자의 3분의1만 비자를 발급받는 데 성공했다.그는 “외국인 과학·공학 박사 학위자의 59%만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는다.”면서 “우리가 교육시킨 인재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 회장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배럿 회장은 이날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문직 외국인의 비자발급 제한이 외국으로의 사업 이전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에 본사가 있는 인텔사는 기업 활동의 80%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美이공계 전문직 인도인 싹쓸이” 한편 미국 내 과학자, 의사, 수학 및 공학계열 교수 등 이공계 분야 전문직들을 인도인들이 싹쓸이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인도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의사 가운데 38%,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 35%, 미국 전체 과학자 12%를 인도인이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고 IT업체에서 인도인 직원 비율도 두드러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 38%,IBM 28%, 인텔 17% 수준이다.신문은 D 풀란데시와리 인도 인적자원개발부(HRD) 부장관이 지난 10일 상원에 나가 보고한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첨단과학·산업분야에서 미국의 부족한 고급인력들을 인도인 등 외국인 두뇌들이 메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하원 외교위원장 버먼 의원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하워드 버먼 민주당 하원의원이 11일(현지시간) 톰 랜토스 의원의 사망으로 공석 중인 미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 버먼 위원장은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 제28선거구(로스앤젤레스)를 지역구로 하고 있는 변호사 출신 중진 의원이다. 미 UCLA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3년 캘리포니아주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 82년까지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다 그해 연방 하원의원에 진출했다. 그는 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지속적인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큰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kmkim@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하여/박홍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하여/박홍기 도쿄 특파원

    5년 전의 일이다. 집권 초기인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 일본을 찾았다. 만찬장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향해 “처음 만난 날부터 마음이 통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한·일 관계의 발전을 중시하는 총리의 진실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국민이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을 접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친밀감이 커지기를 바란다.”고 답례를 했다. 두 정상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위해 손을 잡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진실도, 노 대통령의 매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 측이 독도의 날 조례 확정,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주변의 조사 등 한국인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를 서슴없이 보란 듯이 도발한 탓이다.‘셔틀 외교’도 합의 이후 단 한차례 성사된 뒤 중단됐다. 관계는 급속히 경색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와는 상관없이 일본은 고무됐다. 일본은 역사의 ‘면죄부’라도 받은 양 환영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한·일 간의 ‘새로운 시대’로 규정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봄이 왔다.”고 했다.5년 전과 별다름없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자리를 이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도 후쿠다 야스오 총리로 교체됐다. 한·일 환경은 거의 변한 게 없다. 민감한 현안이 상존하고 있다. 일본 위정자들의 돌발적인 망언 한마디에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일본은 야스쿠니참배·교과서·위안부 문제 등의 역사문제를 놓고 ‘3점 세트’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독도 문제까지 포함하면 ‘4점 세트’다. 냉랭한 관계는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 후쿠다 총리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총리가 아닌 개인의 자격”이라고 둘러대던 고이즈미 전 총리와는 다르다. 후쿠다 총리는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공언했다. 아시아 외교에도 각별하다. 후쿠다 체제에서는 일단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마찰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미 하원에서까지 결의한 위안부 문제의 사과 요구에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독도 문제에 대한 억지는 계속되고 있다. 시마네현의 주민 100여명은 지난달 23일 주일 오사카한국총영사관 앞에서 노골적으로 “독도를 돌려달라.”며 집단 시위까지 벌였다. 초유의 일이다.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쪽에는 버젓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난을 띄워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가야 함은 물론이다. 동북아의 화해와 협력·안정을 위해서도 맞다.1998년 한·일 공동선언에 명기된 ‘파트너십’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일본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분위기가 조성될 때가 적기다. 미래는 무(無)가 아닌 과거라는 유(有)의 기반 위에 현실이 쌓인 모습일 뿐이다. 후쿠다 총리는 최근 한국특파원들과 만나 “한국민의 심정을 이해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건실한 한·일 관계를 위한 진정성을 보일 행동에 나설 차례다. 일본은 당장 3월 말쯤 발표될 교과서 검정부터 확실히 짚고 가야 한다. 정부의 권한밖이라고 발뺌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이미 오키나와 집단자살에 대한 검정과정에 정부가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제 일본 정부가 나서서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토록 이끌어야 한다. 기존의 뒤틀린 역사교과서에 대한 바로잡기도 마찬가지다. 한·일 정상은 올해 최소한 5차례 정도 회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만남은 잦을수록 좋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정리할 기회도 많아지는 까닭에서다. 실용에 입각, 과거사를 덮어둘 수는 없다. 튼실한 한·일 관계의 구축을 위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고 가야 한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李글리시

    “당신은 무척 인기가 좋습니다(You are very popular).” 지난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웬디 커틀러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수석대표에게 한 말이다. 미국 취임축하사절단으로 함께 자리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추운 날씨에 연설이 길어서 힘들지 않았나 모르겠다.”고 하자 “전혀 그렇지 않다(Not at all).”고 응수하기도 했다. 영어 몰입교육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이 서울에서 펼친 외교무대에서 영어로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26일 오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를 만나 “굿 모닝. 하우 아 유?”라고 했고, 젠킨스 호주 하원의장을 만나서는 “나이스 투 미트 유(Nice to meet you)”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회담 중에도 “생큐(Thank you)”“OK” 등 짧은 영어를 간간이 섞어 가면서 대화를 나눴다. 현대건설 재직 때부터 해외 현장에서 체득한 영어 실력이다. 그러다 보니 “유 아 베리 웰컴(You are very welcome)” 등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를 구사하기도 하지만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다. 오랫동안 보좌해 온 측근은 “현장에서 익힌 살아 있는 영어”라면서 “듣기 실력은 매우 뛰어나 통역이 없어도 대화가 가능한 정도”라고 전했다. 통역은 외교통상부 3등서기관인 김일범씨가 맡고 있다. 당선인 시절 여러 사람에게 통역을 맡겨 보고 이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경제살린 세계의 지도자] (2) 로널드 레이건

    [경제살린 세계의 지도자] (2) 로널드 레이건

    1980년 12월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날 축하 파티에서 참석자들은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얼굴이 새겨진 넥타이를 맸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라디오 방송자 폴 하비가 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빗댄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의 뿌리가 바로 애덤 스미스에 있음을 상징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레이건은 1979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연방정부의 재정지출을 축소해 정부 개입을 줄이고 감세를 통해 민간의 활력을 제고하겠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당시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파격적인 공약이었다.1920년대 경제공황 이후 70년대까지 미국 경제를 이끈 원동력은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케인지언식 경제정책이었다. 왜곡된 자원 배분을 국가가 개입해 조정하고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수요를 늘리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자 임무였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모순은 누진적 과세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보편화했다. 하지만 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이런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친시장 정책으로 전환 경제학자들이 끙끙 앓던 해결책을 경제학의 문외한인 레이건이 제시했다. 그는 1980년 대통령직 수락 연설에서 “정부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을 압축한 말이다. 정부가 성장의 주역이 아니라 지나친 간섭과 조직의 비대화로 시장의 비효율성만 키웠다는 지적이다.200여년 전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보이지 않는 손(시장기능)’의 부활이자 공급경제학이 비로소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레이거노믹스는 ▲연방정부의 기능축소 ▲감세정책 ▲규제철폐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량 조절 등을 강조한다. 이같은 신자유주의식 공급경제학 이론은 시카고 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했지만 정책에 반영되기는 레이건 정부가 처음이다. 또한 높은 세금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통화팽창에 따른 지나친 저금리는 경쟁력없는 기업들의 퇴출을 지연시킨다는 논리도 폈다. ●숱한 비난에도 정책의 일관성 유지 레이건 정부 초기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9.5%이던 정책금리를 1981∼84년에 평균 12%를 유지했다. 물가안정 차원이었다. 경쟁에 뒤처지는 기업들의 불만이 터져나왔고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늘면서 실업률은 급등했다. 레이건 지지율은 73%에서 42%로 급락했고 1982년 말 중간선거에서도 하원 26석을 잃는 등 패배를 자초했다. 하지만 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물가가 안정되면서 통화공급이 늘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자 시중금리는 점차 안정됐다. 또한 82년과 88년 두차례에 걸쳐 소득세율은 70%에서 28%로, 최고 법인세율은 46%에서 34%로 떨어뜨렸다. 저금리로 인한 투자증대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 세금을 낮춰 생산의욕을 높인 것이다. 탈세 등을 방지하기 위해 1110억달러 규모의 비과세·감면을 축소했다. 부자들의 세금만 깎아준다는 비난을 무마시키지 위한 조치이다. 그 결과 레이건이 재임한 1981∼88년 평균 물가상승률은 3.8%로 안정을 찾고 경제성장률은 3.5%로 견실해졌다. 집권 초기 물가상승률은 10%를 오르내리고 성장률은 2% 안팎에 그쳤다. ●17년 대세 상승의 시발점 레이거노믹스의 다른 축은 규제 완화다. 수송·에너지·통신 분야의 규제를 풀고 독점을 사후관리 체제로 전환, 자본의 대형화를 유도했다. 금융분야에선 은행과 증권의 분리원칙을 세워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했다. 불법 파업 등에는 엄격한 법 집행으로 강력히 대처,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키웠다. 기업간 인수·합병(M&A)이 봇물을 이뤘고 대형 다국적 기업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업사냥꾼이 등장하고 헤지펀드가 유행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등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중산층도 적잖이 무너졌다. 하지만 미국 증시의 다우지수가 1982년 1000포인트에서 2000년 1만포인트까지 오르는 대세상승의 밑거름이 됐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용어클릭]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미국의 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8년 임기 동안 추진한 ‘작은 정부’와 ‘시장중심적 경제정책’이다. 레이건(Reagan)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말로 수요보다 생산을 중시하는 공급경제학을 대표한다. ■레이거노믹스 엇갈린 평가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당시 우파 정권이 레이거노믹스를 보수정책의 어젠다로 활용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성장잠재력 확충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1990년대 미 IT산업의 활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경제학은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니라 외생적 요인에 의한 공급애로와 생산비 부담을 규제완화 등 제도적 개선으로 낮추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감세정책 효과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초기 통화긴축으로 물가를 잡고 안정적 성장의 발판을 이룬 노력은 높이 사야 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위대한 미국 건설’을 내세우면서 파격적인 개혁조치를 일관되게 추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광수경제연구소측은 “감세정책으로 기업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레이거노믹스의 효과는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감세 효과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만 집중돼 미 전체 기업의 실효세율은 오히려 올라갔고 재정적자 확대로 미 국가채무는 1980년 9000억달러에서 86년 2조 1000억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물가 안정은 달러화가 고평가된 상황에서 유가가 하락했고 값싼 외국상품이 물밀듯이 들어온 부수적 결과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평론가 윌리엄 그레이더는 “부자와 기업, 금융집단은 엄청난 혜택을 봤으나 중산층과 근로자는 물을 먹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필립 블론드 영국 컴브리아대 교수도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1%의 부유층 재산이 미국 전체의 74%를 차지하는 ‘부의 집중’ 현상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레이건의 대중적 인기가 레이거노믹스의 실패를 덮었다는 평가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당시 미국과 현재 한국의 다른점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미 ‘레이거노믹스’에 근거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작은 정부와 감세 정책, 규제 완화 등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한 미국과 지금 우리 상황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지만 성장은 고물가에 따른 소비 감소 등으로 2%를 밑돌았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진행되는 상태였다. 우리 경제도 물가가 불안하고 성장 동력이 떨어지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물가를 잡으려고 당장 고금리 정책을 펼 상황도 못 된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과 경기침체를 감안하면 금리를 더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레이건 정부의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은 미국내 산업의 비효율성을 겨냥했다. 일본 기업보다 설비가 낡았고 고물가·고임금으로 생산성이 떨어졌다. 특단의 ‘공급경제학’을 들고 나왔지만 당시로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었다. 반면 우리는 국가경쟁력 제고와 외자유치 차원에서 글로벌 추세인 세금감면과 규제완화를 따르고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 등 경기부양적 수요 진작책을 함께 추진, 공급 위주의 레이거노믹스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레이건도 출범시에는 감세정책과 더불어 재정지출 삭감을 내세웠다. 하지만 옛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면서 재정적자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인하 등 감세정책과 동시에 예산 10% 삭감을 약속했다. 조세전문가들은 현재의 세입·세출 구조를 감안할 때 재정지출을 급격히 늘리지 않는 한 미국과 같은 대규모 재정적자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레이건은 연방정부의 기능 가운데 복지, 지역개발, 의료, 교육사업 등을 지방정부에 대거 이양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의 고용은 총 고용의 2.5%에서 2.3%로 낮아졌고 GDP 대비 지방정부 지원금도 2.3%에서 1.8%로 줄었다. 우리는 정부조직을 18부·4처에서 15부·2처로 줄였지만 중앙정부의 기능 이양은 거의 없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평균 18%에 불과, 아직은 중앙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특별기고] 브루스 클링너 美헤리티지 선임연구원

    [특별기고] 브루스 클링너 美헤리티지 선임연구원

    미국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고, 상·하원에서는 이 당선인의 취임을 축하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한국 대통령의 취임에 대해 미국이 이보다 더 많은 축하를 보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같은 분위기는 그동안 묻혀 있던 양국관계의 거대한 잠재성을 현실화시키는 굳은 터전이 될 것으로 믿는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실용적으로 가져가고, 한·미 동맹관계를 더한층 공고히하고, 비즈니스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 발표된 이명박 정부의 외교·국방·통일 장관 지명자들은 일단 미국에 가깝고 북한에 비판적인 인물들로 보인다. 그 가운데 남주홍 통일부장관 지명자는 벌써부터 한국의 진보세력들로부터 ‘냉전의 전사’나 ‘북한 붕괴론자’로 공격까지받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이 통일부를 없애려 했던 것은 남북관계를 한·미관계보다 우선하려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뒤바꾸려는 의도에서 나온 ‘시위’였다고 해석된다.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의 등장에 따라 향후의 한·미관계가 지난 5년간의 한·미관계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확실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미국도 한·미관계를 복원시키려는 이명박 당선인의 노력에 적극 호응할 것으로 믿는다. 미국은 이명박 당선인의 대북 정책을 전반적으로 환영하지만 약간 혼란스러운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대북지원을 북핵 문제 등과 연계시킨다는 선거공약 등이 그런 사례다. 이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강경파들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 워싱턴에서는 이 당선인이 남북관계의 현상유지를 바라면서 던진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이 당선인의 공약은 흥미롭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그같은 제안을 했다면 보수주의자들은 불필요한 ‘퍼주기’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공약은 보수적인 측면과 진보적인 측면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결정자들은 한국의 현재 및 미래의 대북 경제협력을 북한의 핵 합의 이행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를 빠른 시일 안에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1000명에 이르는 국군포로 송환을 포함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제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뤄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데 미·일 동맹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한·일관계의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국이 동북아 안보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한·미 양국은 경제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인이 오는 4월 워싱턴을 방문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 국회는 FTA협상안을 비준동의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도 한·미관계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한·미 FTA를 승인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임을 보여 줬고, 이는 앞으로 한국에 더많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정리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월드이슈] 각국 대통령 취임식 어떻게

    [월드이슈] 각국 대통령 취임식 어떻게

    오는 25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내외인사 4만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치러진다.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임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는 상징적인 자리다.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 프랑스 등에서 대통령의 취임식을 어떻게 치르는지 살펴보았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국의 역사와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포함해 모두 55번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1789년부터 55번의 취임식 열려 미 대통령 취임식 날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다음해의 1월20일.1933년까지는 취임식 날짜가 3월4일이었지만 그 해 발효된 수정헌법 20조에 따라 날짜가 변경됐다. 바뀐 날짜에 따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7년 최초로 1월20일에 취임했다. 취임 선서는 초기에 상원이나 하원 회의실에서 거행됐다. 그러나 1829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부터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의사당 밖에서 하게 됐다. 대통령의 취임선서는 주로 대법원장이 주재한다. 제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DC의 하숙집에서 의사당까지 걸어갔다.1921년 워런 하딩 대통령부터 승용차로 취임식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 대통령들이 취임식 참석 때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제조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의 캐딜락 최신형 모델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다.2004년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5년 1월20일 취임 당시 이용했던 캐딜락 리무진은 미사일 공격에도 견딘다는 최첨단 방탄장치와 통신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취임식이 끝난 뒤 펜실베이니아 가에서 벌어지는 축하 퍼레이드는 1809년 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 때 처음 생겼다. 취임연설 최초 라디오 중계는 1925년 존 캘빈 쿨리지 대통령 때.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TV로,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은 인터넷으로도 중계됐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은 추위와 바람 때문에 퍼레이드가 취소되고 선서도 의사당 안에서 했다.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재선 취임식 때는 흑인이 처음으로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취임사에 명연설 많아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취임식의 ‘하이라이트’. 미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과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중요성을 반영하듯 명연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 그는 “횃불은 이제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에게로 넘어왔다.”면서 “국가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라.”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또 대공황 시절인 1933년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난의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인에게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연방주의와 공화주의로 분열됐던 1801년 취임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우리 모두는 공화주의자이고 우리 모두는 연방주의자”라며 단결을 호소했다. 가장 짧은 취임사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1793년 재선 취임사로 135단어로 이뤄졌다.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은 8500여 단어로 된 가장 긴 연설문을 약 2시간 동안 읽었다. 강추위 속에서 2시간 동안 연설한 해리슨 대통령은 폐렴에 걸려 한 달 뒤 사망했다. ●갈수록 성대해지는 취임식 행사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갈수록 성대해지고 있다. 2005년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과 축하행사는 4일 동안 이어졌으며, 무려 4000만 달러(약 380억원)가 사용됐다. 대부분 부시 지지자들의 모금으로 충당됐으나 차라리 그 예산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라는 비판도 있었다. 해외 각국에서 1000명이 넘는 축하사절단이 몰려왔으며,50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취임식과 축하행사를 보기 위해 수도로 몰려들었다. 미 의사당 앞부터 워싱턴기념비까지 이어진 잔디광장인 ‘내셔널 몰’은 25만명에 이르는 취임식 참관객들로 가득 찼다. 취임식 이후 20일 밤부터 21일 새벽까지 워싱턴컨벤션센터와 유니언스테이션 등 9곳에서 축하 무도회가 열렸다. 무도회에는 주로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선거운동에 10만∼25만 달러의 정치헌금을 낸 인사들이 초청됐다. 이와 함께 취임식에 맞춰 연주회 등 크고작은 각종 행사와 모임이 열렸고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은 정치적 시위의 장이 되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 취임식 때도 이라크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상징하는 500여개의 마분지 관을 든 시위대가 반전 구호를 외쳤다. 시위와 테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워싱턴 주변에는 1만 3000명이 넘는 군과 경찰이 배치됐으며 군 특수부대도 경호에 투입됐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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