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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정조9년(1785) 봄이었다. 그 무렵 서울에서는 천주교인 수십 명이 오늘날의 명동천주교회를 결성했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이른바 을사박해가 일어났다. 마침 전국적인 지하조직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된 또 한 번의 ‘정감록’ 사건까지 발생해 세상인심이 뒤숭숭했다. 결국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 몇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형채(朱炯采)라는 평민지식인이 끼어 있었다. 당시 심문 기록에는 주형채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실로 구슬을 꿰듯 주워 모아보면 주형채의 일생은 역사상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조선후기의 허다한 평민지식인 또는 술사들의 삶을 대변한다. 더욱이 그들은 체제에 저항한 일부 양반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점에서 주형채의 삶은 더욱 관심을 끈다. ●주형채의 ‘범죄행위’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문양해는 동지 주형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함경도 영흥이 고향인데 향악선생(香嶽 속명은 김정 또는 김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흉악한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편지에 쓰인 흉악한 구절을 문양해는 자기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며, 예를 든다.“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시국의 변천이 이와 같으니 이제 진인(眞人)이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고, 우리들은 사람들을 모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반정(反正)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향악선생은 이 편지를 상자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언젠가 향악선생이 외출한 틈을 타서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문양해는 몰래 편지를 꺼내 보았다고 했다. 문제의 편지가 지리산에 도착한 것은 아마 사건 발생 한 해 전인 정조8년 정월로 짐작되는데, 주형채가 하필 왜 그 시점에 이런 편지를 보내왔는지 문양해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했다. 주형채가 향악선생과 교제를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었다. 적어도 사건 발생 15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주형채는 얼굴 생김이 괴상하고 못났지만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여 사람을 쏘아보듯 하였다. 주형채와 향악선생 사이에는 오랫동안 편지가 오갔다. 지리산에서 함경도 영흥까지는 근 2000리나 되는 먼 길인데도 서로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편지 심부름을 한 이는 혜준 스님이었다. 혜준은 오래 전 함경도의 어느 사찰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주형채와 친해졌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함경도를 자주 왕래하였다. 사건 당시 혜준은 경상도 하동에 있는 영원사에 몸을 담고 있었다. 향악과 ‘괴이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 외에도 주형채는 여러 차례 불온 문서를 조작했다고 한다. 그는 “멀리 귀양가는 노래”를 지어 조정의 잘못을 비난하고 민심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주형채는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했다. 그 노래는 충신이 멀리 귀양 갈 때 지은 시라고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저 베껴두었을 뿐,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뺌이 용이하지 않았다. 주형채는 장차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주장을 동지들 앞에서 서슴없이 했던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함경도의 평민지식인 주형채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불순세력’과 연합해 조선왕조의 전복을 꾀했다.‘정감록’ 사건을 종결짓는 마지막 확정 판결의 일절은 이랬다.“이율,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 여러 역적들이 반역을 음모해 여러 도에서 거사를 도모하면서 주형채를 북도의 원수로 정하였다. 그들이 서로 왕복하며 주도면밀하게 반역죄를 꾸민 사실은 여러 죄수들의 심문과정에서 샅샅이 드러났다. 대역부도(大逆不道)한 죄인들을 군율에 의거하여 한강 모래밭에서 효시(梟示)하라.”(실록, 정조 9년 3월22일 신미) ●천문과 점술의 대가 주형채 정감록 사건에서 “북도 원수”로 거론된 주형채에게는 사실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이웃사람들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아리송한 일이 생기면 주형채를 찾아갔다. 주형채의 집은 함경도와 평안도 두 도가 만나는 접경지대에 있어 양도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주형채는 이를 테면 ‘만물박사’였으며, 여러모로 평민들의 교사역할을 담당했다. 정감록 사건이 발생하기 일년 전인 정조8년 12월 초7일부터 사흘 동안 별자리에 이상이 있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주형채에게 물어왔다. 당시 주형채가 관찰한 바로는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었다. 그 가운데 붉은 기운이 있어 상서롭지 못했다. 특히 여러 별 가운데서도 장군성(將軍星)과 태백성(太白星)이 서로 사흘 동안 싸우다 1도(度) 거리로 멀어졌다. 그 때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부딪쳐 여러 번 이겼다 졌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흉한 조짐이었다. 주형채는 이같은 현상이 조선이나 중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해로울 일이 조금도 없다고 주민들을 달랬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난리를 염려해 피란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만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조정의 심문관들은 주형채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관리들이 보기에 주형채는 민심을 선동해 피란행렬을 조장한 혐의가 짙었다. 실제로 그 무렵 함경도에는 남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정감록’에 예언된 십승지가 모두 남쪽에 있는 관계로, 북도 사람들은 여차하면 남쪽으로 옮길 태세였다. 그들의 상당수는 이미 십승지를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 주형채와 같은 평민지식인들은 이주운동에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주형채는 관리들의 문제제기를 부정했다.“저는 주민들을 타일렀습니다.‘현명한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 어찌 피란가는 일이 있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평민 주형채는 본래 고향 사람 장진익에게서 글을 배웠다. 그의 스승은 사건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오래 되어 화를 면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은 물론이고 천문과 점술까지 통달한 주형채는 향악선생과 같은 도사는 물론이고 점술인들과도 친한 사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형채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함구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제게는 제자나 동문생도 전혀 없었으며, 도사나 점술인은 원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주형채는 의리가 무척 강했던 사람이며,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주형채는 대단한 악질이었다.“주형채는 본래 흉악하고 요사스러운 놈으로 천문 역법과 점술, 둔갑술 등 갖은 술수를 써서 백성들을 속이고 인심을 선동하는 것을 일삼았다. 몰래 역적이 될 마음을 먹고 밤낮으로 기회를 엿보았으며, 스스로 ‘대장’이라 떠들기도 하고, 혹은 ‘도원수’라고 칭했다. 더러는 10만의 군사를 모을 수 있다고 했고, 혹은 영흥(永興)의 군사용 창고를 접수하겠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제가 세울 나라의 국호를 제(齊)나라라고까지 했다. 놈은 마음속으로 이것도 작다고 생각했던지 중국 황제를 만나 추천을 받아 자기가 임금이 될 거라고 했다. 또한 꿈의 해몽을 빙자해 신하로서는 감히 꺼낼 수도 없는 말을 멋대로 지껄인 편지가 남아 있다. 지극히 흉악한 죄상이 지금까지 압수된 문서 중에 이미 역력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기 죄를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조정의 판단이었다. 평민지식인 주형채의 생각으로는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때의 부정 불의한 세상이요, 조정이었다. 자기와 자기 동료들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따라서 썩어빠진 관리들이나 임금 앞에서 죄를 인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살점이 떨어지는 혹독한 고문을 묵묵히 견디면서 주형채는 단 한마디도 잘못을 빌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주형채가 지하조직에 편입된 계기 ‘정감록’ 역모사건의 소용돌이에 주형채가 휩쓸리게 된 것은 물론 그가 지하조직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하조직에 가입하게 된 데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 주형채는 이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문양해 일가와 인연이 깊었다. 문양해의 삼촌 문광도는 함경도 문천에서 잠시 감목관(監牧官 목장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곳을 여행하던 주형채가 천문에 관한 일로 문광도와 토론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여러 문씨들을 사귀게 되었다. 문씨 일가는 충청도 공주의 평민으로 학식이 뛰어났다. 그들은 홍국영의 가까운 친족 홍낙순이 충청감사가 되었을 때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홍 감사가 충청도 감영(監營)에 계실 때 많은 은혜를 입었고, 감사께서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만났습니다.” 문양해의 아버지의 진술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평민 문광도 역시 홍낙순의 후원으로 감목관 벼슬을 얻은 게 틀림없다. 주형채는 이런 문광도와 서로 기맥이 통하게 됨으로써 장차 문양해 및 홍복영(홍낙순의 아들)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둘째,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역 양형과도 깊이 사귀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형채의 사촌 주형로는 이미 양형을 알고 지냈다. 주형로(일명 주형일)는 사건 당시 충청도 단양에 머물고 있었다. 양형은 주형로를 통해 주형채란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자기 친척 문광도에게서 주형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게 되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양형과 주형채는 서로 연락해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사이는 곧 절친한 관계로 발전했다. 양형은 서울 입동에 사는 중인이었다. 낮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글재주가 출중했던 그는 서울의 양반 홍복영 및 이율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정조 초년, 홍복영은 충청감사로 임명된 아버지 홍낙순을 따라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그 때 의약에 관한 일로 홍낙순은 고민을 하던 중 양형이 의술에 밝다는 소문을 듣고 불러 상의한 적이 있었다. 양형의 처방이 적중했던지 의술을 매개로 그들은 서로 친해졌다. 홍낙순 일가가 서울로 돌아온 뒤 양형과 홍씨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홍복영은 양형의 살림이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은 때때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나중에 함께 공모해 하동에 지하조직의 거점을 마련했다. 양형과 가까워진 주형채 역시 이 조직에 포섭된 것은 물론이었다. 셋째, 주형채와 홍복영은 끝까지 그 점을 부인했지만, 주형채는 여러 해 전부터 홍복영 일가와 알고 지냈다고 봐야 한다. 홍복영의 삼촌 홍낙빈은 주형채와 친밀해 편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정조 5년(1781) 세도정치가 홍국영이 실각하자 가까운 친척 홍낙빈도 함경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그 때부터 주형채는 홍씨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들 왕조의 전복을 꾀하였다. 위에서 살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주형채는 ‘정감록’ 사건의 주역들과 마음을 합친 것으로 생각된다. 주형채와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이 지하조직을 형성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두 가지 사실이 부각된다. 하나는 18세기 조선사회에서 중인 또는 평민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지리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주형채처럼 고향을 지키고 사는 경우에도 자주 이웃 지방을 여행해 사교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둘째, 평민 또는 중인 지식인들은 계층을 뛰어넘어 양반들을 사귀는 데 열심이었고, 양반들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하층지식인들과 접촉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은 같은 신분층에 속하는 식자들만 사귀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달랐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은 그것이 비록 평교(平交 평등한 교제)는 아니었다 해도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서 서로 만났던 것이다. ●주형채가 속한 전국규모의 지하조직 주형채는 조직의 상층부를 상당히 잘 알고 있었으나 하부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조직원들은 지하조직의 일부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던 지도층 인사는 문양해 정도였다. 문양해는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지하조직의 얼개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북도의 원수는 주형채였지만 그 밑에 여러 명의 두목이 활동했다. 함경도 안변에는 조상호와 유덕휘가, 그리고 강원도 통천에는 유경일이 대도독(大都督)이라 불렸다. 고성의 칠송정에 사는 권생만 역시 대도독으로 통했다. 그들은 일단 유사시 지역사령관으로 능력을 발휘할 참이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유경일과 권생만은 지리산의 향악선생과 가끔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문양해는 사건 발생 2년 전에 그들이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밖에 황해도 봉산에 있는 이형윤과 황주에 사는 정몽로도 해서지방의 괴수로 손꼽혔다. 고위간부는 아니었지만 평안도 곽산에 살던 박필현도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 주형채 등의 명단은 지리산 거점에 보관 돼 있던 두루마리에 모두 적혀 있었다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울 사는 양반들도 이 지하조직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앞에서도 이름이 언급된 이율과 홍복영이었다. 진사 이율은 한양 이현에 살았는데 홍씨 일문에 보낸 편지에서,“이 세상을 보지 아니 할 때는 언제입니까? 제 뜻을 온 세상에 널리 펴지 못하게 된다면, 한탄한들 무엇 하겠습니까?”라며 반역의 뜻을 비쳤다. 서소문 밖에 살던 진사 정래정과 정래익도 지리산의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조정을 비방하였다.“우리가 비록 재주가 없고 불민하지만 거사하는 날에는 조영흥(趙永興 이름은 미상)이나 주공(朱公 주형채)의 부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보듯 주형채는 조직 내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식되었다. 물론 지하조직을 총괄한 이는 향악선생이었고,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이가 문양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향악선생이 끝내 체포되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은 종결된다. 어쩌면 향악선생이란 인물 자체가 허구였을 수가 있다. 문양해가 가공의 향악선생 노릇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문양해야말로 실은 지하조직의 괴수였던 셈이다. 문양해는 문장에 능한 미혼의 노총각으로 비승비속의 도사였다. 지하조직에서는 충청도출신 인사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다. 특히 공주지방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으며, 내포지방의 양반들도 여러 명이 관여했다. 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문양해 일족이 공주 출신이었던 데다, 조직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홍복영의 아버지 홍낙순이 충청감사를 역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공주 효포 출신의 권우는 지하조직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향악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생님의 재간은 천고에 뛰어납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마땅히 보내서 글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훗날 거사할 기일을 정확히 알려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밖에 공주의 상대장리에 사는 진규도 향악선생과 함께 흉악한 묘책과 비밀스러운 계책을 짰다고 한다. 공주 유구역의 홍정유, 한산의 정탁 3형제, 태안의 조수정과 조수인 형제, 역시 태안에 사는 가명정(賈命正) 등도 조직에 합류했다. 당진의 조두진, 서홍기, 한제만, 대흥의 이인치도 관련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전라 경상 양도의 참여도는 무척 낮았다. 전라도 광양의 오성겸과 이춘홍이 군비 조달에 기여하기로 내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특히 경상도 쪽은 조직원이 아예 전무했다. 그것은 이 지하조직이 노론 출신의 홍국영 잔당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인의 세력근거지인 경상도 인사들은 이 조직을 외면했던 것이다. 국가전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으면서도 이 조직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었다. 하필 그 거점을 지리산에 둔 것은 안전은 물론 신비스러운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조직의 실체는 문양해의 진술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밀스러운 조직이었던 만큼, 그리고 심문과정에서 마지못해 털어 놓은 이야기란 점에서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다. ●동학의 원조 지하조직에 가담한 사람은 다양했다. 이율과 홍복영 등 실세한 양반이 한 축을 이뤘다면, 지하조직의 운영을 직접 담당한 실질적인 주도층은 중인 이하의 평민지식인들이었다. 주형채, 양형 및 문양해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정치 종교적인 성격을 띤 전국규모의 민중운동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실례다. 이런 운동 경험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갔다. 그 결과,19세기 말 동학이 대두하자 각지의 농민은 순식간에 동학의 기치 아래 모여들어 거대조직을 만들어냈다. 빗방울이 바로 바다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인 빗물은 어디엔가 웅덩이를 이룬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혁신 공기업탐방](31)이용오 한국동서발전 사장

    [혁신 공기업탐방](31)이용오 한국동서발전 사장

    한국동서발전 이용오 사장은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종종 듣는다. 지난 2001년 한국전력에서 분사한 6개 발전회사 가운데 재무구조와 인력구조가 가장 열악했고, 노동조합도 강성이었던 이 회사를 불과 4년 만에 최고의 발전회사로 키워 놨기 때문이다. 신용등급도 최근 A3에서 A2로 1단계 올려놨다. 이 사장은 14일 “경영혁신을 이루려면 평가 결과 잘하는 직원은 보상하고, 못하는 직원은 퇴출시키는 구조가 선행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과거 공기업이 성과에는 인색하고, 실패에는 가혹해 결국 성과는 못내더라도 실패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인재양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이유도 직원들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이 사장을 만나 동서발전만이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국내기업중 최초 디지털 채권 발행 ▶분사 초기 열악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6개 발전회사 경영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동서발전이 2001년 한전에서 분사할 때 재무여건과 설비구성이 가장 열악해 한전에서 동서발전으로 전직을 꺼리는 직원이 많았다. 부채규모를 줄이는 것이 최대 현안이었다. 국내 기업 중 최초로 변동금리 채권인 디지털채권을 발행하고, 또 발전회사 최초로 글로벌채권을 발행하는 등의 노력으로 부채규모를 분사 당시 2조 3051억원에서 현재는 1조 2598억원으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동서발전은 ‘외환 및 부채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지난달 특허출원하기도 했다. 비록 비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다른 기업들이 우리가 개발한 부채관리 시스템을 사고 있다는 점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 ●‘외환·부채관리 시스템´ 특허출원 ▶재무구조 개선 노력에는 발전원가를 낮추는 노력도 있었다고 들었다. -발전원가의 60%가 원료비다. 원료비를 낮추면 그만큼 발전원가를 내릴 수 있다. 원료비를 줄이기 위해 2002년 연간 30만t을 쓰고 있던 알래스카 석탄의 단가를 낮춰 다시 계약했다. 단가를 낮추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은근한 압력도 있었지만 회사를 위해 밀고 나갔고, 결국 단가를 낮춰 연간 50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또 연간 250만∼300만t의 호주산 석탄을 수입하기 위해 종전에 썼던 12만t급의 전용선을 17만t급으로 바꿨다. 석탄수송 전용선을 대형화해 해양수송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인재를 키우기 위해 열정을 쏟는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한전에서 분사할 때 인력구조가 취약했다. 회사 자원 가운데 핵심은 역시 사람이다. 인재들이 있을 때 회사 경영이 제대로 될 수 있다. 초창기에는 당기순이익의 2%를 사람을 키우는 데 썼다. 지금은 5%로 늘렸다. 대략 50억원을 인재양성하는 데 투입하고 있다. 이같은 투자로 직원의 45%가 해외연수를 했다. 넓은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라는 취지다. ●발전원가 낮춰 年 50억원 절감 ▶신입사원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뽑는 것도 인재양성 차원인가. -물론 인재양성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공기업의 책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2002년부터 매년 70∼8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다. 이처럼 매년 젊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다 보니 현재 2000명이 조금 안 되는 전체 임직원 가운데 70%가 주임 이하 젊은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동서발전이 소유하고 있는 당진화력발전소는 발전소가 아니라 마치 오피스텔처럼 보인다. -당진화력발전소를 처음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외국 신용평가회사에서도 당진화력발전소를 견학하고 놀랍다고 말한다. 동서발전은 발전소를 공원같이 조성해 환경오염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 기업의 이익을 지역주민들에게 환원해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발전회사 최초로 ‘발전소 공원화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공원화는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전소별로 지역 특색을 살린 식재계획을 반영해 독특한 경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밖에도 석탄의 분진을 방지하기 위한 비탄방풍림을 조성하는 등 친환경적인 발전소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매년 70~80명 신입사원 뽑아 ▶혁신경영 차원에서 추진하는 ‘TORSIM’ 체제는 어떤 것인가. -TORSIM은 ‘Total Reliability & Safety Innovation Management’의 첫 글자를 딴 합성어다.‘전사 설비·안전 혁신경영’을 뜻한다. 이는 수십년 동안 운영돼온 발전소 업무 전반의 과거 관행과 타성을 과감히 버리고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영혁신체제를 만들자는 의미다. ▶TORSIM 추진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사장이 직접 주도하는 전사적 미래성장 프로젝트로 추진하기 위해 사장 직속의 전문가 그룹인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지난달 발대식을 가졌다. 팀은 10명의 전담요원과 6명의 겸임요원으로 구성했다. 특히 우리 회사를 퇴직한 5명을 포함한 외부전문가를 자문단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발전소 정비, 운전, 운영제도 및 안전 분야에 대해 전사업소의 실태를 점검하고 국내외 유수기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필요하면 외부전문기관 용역도 시행해 발전설비 및 안전 분야에 대한 최적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전사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해외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발전분야도 국가간 장벽이 없어지고 글로벌화되고 있다. 동서발전이 갖고 있는 역량을 모회사인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결집해 한전과 동반자 입장에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지난달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무연탄 순환유동층보일러와 관련해 국내외 학계, 제작사, 전력그룹사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 워크숍도 이러한 관점에서 추진됐다. 앞으로도 전력그룹사간 유기적 공조로 해외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다.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38년 전력맨’ 이용오 사장은 이용오 사장은 38년 동안 전력사업에 몸담아온 ‘전력맨’이다. 이 사장의 혁신은 발전소처럼 멈추지 않는다. 한국전력 평사원에서 시작해 전력회사 최고경영자(CEO)로 자기 혁신을 했고,2001년 한전에서 분사할 당시 재무구조가 꼴찌였던 동서발전을 2004년 6개 발전회사 경영평가에서 1등으로 변신시켜 놓았다. 공기업 사장으로서 드물게 연임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장은 인재양성을 기업의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한다.1993년 한전 도쿄사무소장 시절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깨달아 CEO가 된 뒤부터 직원 해외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중국 칭화대 법학박사와 미국 MBA 수료자를 배출했다.1명은 인디애나주립대학 법학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4명은 미국 MBA 과정을 이수 중이다. 이 사장은 전직원의 배우자와 미혼직원들의 생일날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내고, 자녀들에게는 직접 고른 책을 보낸다. 불쑥 찾아온 꽃다발과 케이크에 부하 직원이자 후배들이 기뻐할 생각에 이 이벤트를 계속 하겠다고 말한다. ▲전주(62) ▲전주고·전북대 상경대 ▲한국전력공사 경영정보처장·인력관리처장·서울지역본부장 ▲동서발전 사업단장·관리본부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저금리채권 활용 부채비율 100% → 68%동서발전이 지난 2001년 4월 한국전력에서 분사했을 당시의 차입금 규모는 2조 3051억원으로, 부채비율이 100.4%에 달했다. 부채비율을 줄이지 않으면 갈수록 늘어만가는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에 따라 동서발전은 즉시 부채비율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2002년 5월 3년 만기의 디지털채권 12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일반 채권은 발행 전에 지급금리와 만기가 정해지는 반면 동서발전이 국내 최초로 발행한 디지털채권은 일정 조건에 따라 금리수준이 달라지는 채권이다. 발행 당시 조건은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기준으로 3년 동안 이 선을 넘지 못하면 일반 고정금리채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를 보장하고, 이 선을 넘을 경우 매우 낮은 금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디지털채권 발행으로 들어온 자금으로 2001년 당시 IMF때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차입한 9.4%의 고금리 차입금을 갚았다. 이를 통해 33억원의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2003년 6월에는 발전사 최초로 5년만기인 사무라이 채권 2030억원어치를 발행했다.5년 엔화 리보(0.23%)에 가산금리 1.10%를 더한 1.33%로 발행한 초저금리 채권이다. 이같은 저금리채권으로 부채를 갚아 380억원의 금융비용을 줄였다. 지난해 4월에는 7년 만기 글로벌채권 2890억원어치를 다른 회사보다 0.11% 싼 4.85%에 발행했다. 이때 발행한 글로벌채권은 철저한 기업설명회(IR)를 통해 발행금액의 8배인 2조원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같은 인기 때문에 동서발전은 다른 회사보다 0.11% 싸게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동서발전 박현철 자금팀장은 “획기적인 금융기법을 동원한 부채개선 노력으로 현재는 분사 당시 100% 웃돌던 부채비율이 68%로 줄었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어린이 ■ 하마가 난다 13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 형제와 조선시대 발명가 정평구의 이야기.(02)382-5477. 클래식■ 요요마 첼로 독주회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50대에 들어간 첼리스트의 거장 요요마의 원숙미를 느낄 수 있는 콘서트.‘첼로의 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5,6번을 연주할 예정. (02)543-1601. ■ 청소년 음악회 19일 성남문화재단 콘서트홀(031)729-5615. ■ KBS 제581회 정기연주회 10일 KBS홀,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781-2246. ■ 안지윤 바이올린 독주회 14일 금호아트홀(02)587-5961. ■ 이재은 첼로 독주회 12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02)586-0945. 미술■ 신동권전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 더 스페이스. 그의 풍경화는 다분히 신화적이다. 오로라를 거느린 둥근 해와 달이 나무와 함께 공중에 장엄하게 펴져 있는 모습에서 일상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의 독특한 색채원근법으로 인해 해와 달 등의 모티브가 동일한 평면에 놓이면서도 공간감을 준다.(02)514-2226. ■ 프로망제전 프랑스 신구상주의 대표적인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 당대의 사회·정치적인 면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그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 등을 담은 작품 등을 선보인다.(02)2188-6063. ■ 아시아큐비즘전 한·중·일 등 아시아 11개 국가에서 큐비즘(입체주의)이 어떻게 수용됐는지를 비교·감상할 수 있다. 서구가 정물을 다룬 반면 아시아에서는 가족과 자연을 주제로 다소 서정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년 1월30일까지.(02)2022-0613. ■ 우영자전 순수함과 자비로움이 자연 풍경속에 담겼다. 극단적인 명도대비, 선명한 명암대비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14∼20일 서울 광화문 서울갤러리.(02)2000-9736. ■ 박경호전 추상표현주의를 버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비탈길에 활짝 핀 배꽃, 구름 등이 향수를 자아낸다.14일까지. 서울 광화문 서울갤러리.(02)2000-9736. ■ 애족 보석전시회 보석 디자이너 장현숙·홍성민이 쥬얼버튼에서 애족으로 이름을 바꾸어 선보이는 첫번째 전시회.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검정 애족.(02)3216-1583.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11~13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 미혼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 여성가극단 ‘다카라즈카’의 내한공연. 순정만화의 대표작 ‘베르사유의 장미’와 ‘소울 오브 시바’등 2편을 선보인다.(02)2113-6856. ■ 디아볼로 13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에 영감을 준 연출가 자크 하임의 아크로바틱 서커스극.(031)729-5615. ■ 나비의 현기증 13일까지 극장 용. 연극, 무용, 아크로바트가 결합된 종합예술로 벨기에 서커스극단 페리아 뮤지카의 아시아 초연작.1544-5955. ■ 헤드윅 무기한 라이브극장.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성 정체성 고민을 강렬한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 록 뮤지컬. 이지나 연출, 송용진 김다현 엄기준 서문탁 출연.1588-7890. ■ 아이 러브 유 무기한 연강홀. 사랑에 관한 스무개의 에피소드를 엮은 로맨틱 뮤지컬.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오나라 정상훈 출연.(02)501-7888. 연극 ■ 시라노 드 베르쥬락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낭만 희극. 기형적으로 큰 코때문에 연인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인 검객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김철리 연출, 최규하 이안나 출연.(02)580-1300. ■ 굿킬 10∼27일 블랙박스시어터. 킬러 지망생의 청부살인교육원 수련기. 차근호 작·김정훈 연출, 선욱현 최명숙 출연.(02)762-0010. ■ 갈매기 30일까지 정동극장. 지루하고 어려운 체호프 대신 쉽고 재밌는 체호프를 표방한 새로운 해석의 무대. 전훈 연출, 송옥숙 남명렬 김호정 출연.(02)751-1500. ■ 고양이늪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혀 파멸로 치닫는 여인의 이야기. 마리나 카 작·한태숙 연출, 서이숙 지현준 공호석 출연.(02)744-7304.
  • [눈에 띄네 이 얼굴] ‘소년, 천국에 가다’ 박해일

    어떤 포지션에 서 있어도 관객을 안심시키는 배우 가운데 하나가 박해일(28)일 것이다. 살인사건을 미궁에 던져 놓는 용의자(살인의 추억), 연상의 여인을 연모하는 숫기없는 청년(질투는 나의 힘), 섬마을 순정파 우체부(인어공주), 여교생을 추근거리는 비행(?)교사(연애의 목적)…. 특별히 강렬할 것 없는 캐릭터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박해일의 것’에 소속시키는 신통한 재주가 그에겐 있다. 그러고 보니, 팬터지 멜로 ‘소년, 천국에 가다’(감독 윤태용, 제작 FNH)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캐릭터가 독특한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한국판 ‘빅’인 영화에서 그는 열세살 소년에서 어느날 갑자기 서른세살로 건너뛰는 남자 ‘네모’가 됐다. 엄마처럼 미혼모인 여자 ‘부자’(염정아)에게 순정을 바치는 팬터지 순애보를 위해 주름투성이의 90세 노인까지 연기했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 사진 속 아버지를 흉내내며 담배를 피워 물어도 그의 화면들은 결코 순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박해일이 뿜어내는 맑은 기운에 관객들은 꼼짝없이 몽상가가 되고 말 것 같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씨줄날줄] 허리비율/이상일 논설위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외국 영화에서 하녀가 여주인공의 코르셋을 죄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허리를 가늘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가슴과 엉덩이를 더 풍만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데벤드라 싱’이란 학자는, 남성은 각각 다른 체격의 여성을 좋아하더라도 허리-엉덩이 비율이 가장 낮은 여성에 가장 매력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 비율이 낮다는 것은 여성의 건강과 생식 가능성 등을 드러내는 신호란 설명이다. 남자의 허리가 가늘면 성적매력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없어 성차별 냄새는 난다. 다만 굵은 허리는 남녀 모두 건강에 적신호로 통한다. 최근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의 ‘살림 유수프’ 박사는 허리둘레를 엉덩이 둘레로 나눈 비율이 남자의 경우 0.9이상, 여성은 0.85이상이면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이 아주 높다고 발표했다. 조사대상자들의 평균 허리-엉덩이 비율은 0.90이었으며 중국이 0.88로 가장 낮았고 동남아 0.89, 북미 0.90순이었다. 한국판 허리둘레 기준도 나왔다. 남자는 35.3인치(90㎝), 여자는 33.4인치(85㎝)가 넘으면 복부비만에 해당한다고 대한비만학회는 얼마전 밝혔다. 키와 몸무게에 관계없이 이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허리비만이 문제되는 것은 허리의 지방세포는 인슐린 분비 시스템을 해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조성해 엉덩이 지방보다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이나 몸무게 차이를 막론하고 미인들의 허리-엉덩이 둘레비율은 0.7로 알려져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 20대 여성은 모두 미인형에 속한다.2년전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한국 20대 미혼여성의 표준체형을 보면 허리둘레는 25.9인치(66㎝), 엉덩이 둘레는 35.4인치(90㎝)로 허리-엉덩이 비율이 0.73이다. 한국 20대 체형을 유지하면 금상첨화인데 뱃살이 늘면 어떻게 할까. 허리를 줄이려면 누워서 발을 들어올리고 빨리 걷는 운동이 좋다. 스포츠댄스와 밸리댄스가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이유중 하나는 허리를 많이 이용하는 춤이기 때문이라던가. 섹스 어필은 못해도, 또 엉덩이-허리비율은 따지지 않아도 허리에 가려 발을 내려다볼 수 없는 사태는 답답해서라도 막아야 할 것 같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34세 한인 美시장됐다

    34세 한인 美시장됐다

    ‘세탁소 집 아들이 미국 시장(市長)으로.’ 31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평범한 집안의 한국계 ‘청년’이 미국에서 당당하게 시장으로 선출됐다. 8일(현지시간) 미 뉴저지주 에디슨시 시장선거에서 재미동포 최준희(34·미국명 준 최)씨가 1만 2126표를 얻어 1만 1935표를 얻은 무소속 빌 스테파니 후보를 191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여행과 독서를 즐긴다는 미혼의 최 당선자는 내년 1월1일부터 4년 동안 시장으로 일하게 된다. ●본토서는 첫 쾌거 지난해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한인 2세 해리 김(65)씨가 시장으로 당선됐지만, 한국계가 미국 본토에서 직선으로 시장에 선출된 것은 처음이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 당선자는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최상영(65)씨와 어머니 홍정자(62)씨는 이민 뒤 1975년부터 99년까지 24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웠다. 그는 에디슨 JP스티븐스 고교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재학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최 당선자는 전공을 바꿔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공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존 F 케네디 전기를 10가지 종류는 읽었을 것”이라며 케네디 전 대통령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연방정부 예산관리국 조사관, 뉴저지주 학업성취도 측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6월 민주당 시장 예비선거에서 12년 동안 재임해온 현직 시장 조지 스파도르에 1028표 차로 승리, 본선에서의 돌풍을 예고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그는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 당선자는 선거 홈페이지(www.junchoi.com)를 통해 “공교육을 통해 모든 기회를 얻었고 삶을 바꿀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공교육 시스템 개선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기회를 주려 한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이어 “효율적 행정으로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과 노인을 보호하고 지나친 납세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인구 10만… 뉴저지주 5대도시 개표가 끝난 뒤 최 당선자는 “미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원래 꿈은 우주비행사였는데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시장에 출마했다.”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어 “부모님이 이민 초기에 많은 희생을 하셨다.”면서 “부모님들로부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서비스 정신을 배웠고, 낙관주의도 배웠다.”고 덧붙였다. 최 당선자가 뉴저지주 5대 도시에 들어가는 인구 10만명의 에디슨에서 승리한 것은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인 데다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가출 며느리, 아들 유산 달라는데…

    Q얼마전에 장남(44)이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아들은 시가 5억원 정도인 아파트 한 채를 남겼습니다. 또 생명보험금으로 2억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3년 전 가출했던 며느리와 손녀가 나타나 장남의 상속재산을 모두 가지겠다고 합니다. 집에는 미혼인 저의 차남과 장손자만 남아 있습니다. 자식까지 버리고 가출했던 며느리에게 장남이 남긴 재산을 모두 주어야 하나요. -고영희(가명·65) A돌아온 며느리와 손녀의 상속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민법은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인 자격에 대해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피상속인 등의 생명을 위협한 사람과 유언서를 위조하는 등 유언을 방해한 사람을 결격자로 규정해 상속자격을 박탈합니다. 즉 고의로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인 직계존속·배우자 등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사람들은 모두 상속자격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상속순위의 사람에게 단순히 상처를 입혀 숨지게 했을 때는 상속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부모나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행패를 부리는 등의 행동을 일삼는 ‘패륜’을 저지른다고 상속인 자격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상속자격이 없어지는 경우는 ‘고의’로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상해치사한 경우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고의’는 살해나 상해에 대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상속과 관계없는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상속자격이 없어집니다. 손자가 외할머니를 살해하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하지만 피상속인 등을 살해하면 자신이 상속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는 상속인 자격 상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1992년 대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던 남편이 자동차 사고를 내 동승한 아내가 사망했습니다. 고의로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편은 상속인 자격을 잃지 않았고, 보험금을 청구해 아내의 재산을 상속 받았습니다. 두번째로 유언행위에 대한 부정행위 부분입니다. 피상속인을 속이거나 협박해 유언에 영향을 미치거나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하면 상속자격이 없어집니다. 만일 유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면 상속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에 열거된 상속 결격사유는 제한적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설명한 사유가 아닌 경우라면 가출했거나 불륜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상속 결격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고영희씨 장남의 경우처럼 오래 전에 가출해 이혼한 것과 다름없는 배우자가 상속이 개시된 뒤 나타나 자신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상속인의 자격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설명드렸던 결격자를 용서해 상속인 자격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피상속인을 살해해 상속 결격이 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없기 때문에,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살해가 미수에 그친 경우나 유언서를 위조한 경우에만 용서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부정행위를 하는 자를 응징하는 차원에서 “결격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게 다수설입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흔히 고음(高音)을 잘 내는 사람을 ‘신이 내린 목소리’에 비유한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 그 자체다. 또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 태너도 고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고, 고음에 도전하다 죽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너 임웅균(5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악가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대학시절 찬송가의 높은 ‘라’음을 내다가 숨이 콱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심청전’ 연습 도중 ‘농부가’에서 또한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 교수는 요즘에도 여전히 고음을 낸다. 공연장에서는 물론 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다. 특히 학생들에게 야단칠 때면 음악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에서 “성악가는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목소리를 강철처럼 단련시키고 싶어 그런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인다. 지난 주 음악원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쩌렁쩌렁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펄쩍펄쩍 신나서 뛰기도 했다. 임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신건강 지킴이’로 위촉돼 정신건강 전령사로 또다른 역할에 나섰다.“나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건강이 아니냐.”면서 노래로 정신건강을 지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며 크게 웃는다. 이어 대뜸 “내가 (국회)출마하면 어떻겠소, 할 일이 꼭 있거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국 60개도시에 사랑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재활프로그램, 즉 세계 최고의 휴먼센터를 설립하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에 휴먼센터에서 보름 동안 재활프로그램을 거쳐 퇴학여부를 결정하자는 것. 이를 위해 매년 1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끝냈다고 했다. 자기 적성과 자아를 파악한 사람은 결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휴먼센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나라는 교과목이 너무 많아요. 학생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어디 노벨상 하나 제대로 나오나요.6,7개 과목으로 팍 줄여야 해요. 그리고 책가방을 왜 들고 다닙니까. 책은 학교에 보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로 공부하면 돼요. 왜 그 흔한 CD 제작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해요.” 임 교수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가 끓는 다혈질의 사나이기에 정 안되면 국회진출이라도 해서 그런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연장 밖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3년전부터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를 담은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68개 어린이단체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국무총리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담판을 지어 원점으로 되돌리게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오른손 문화에서 양손문화로 바뀌어집니다.30대 이상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20대는 양손을 쓰거든요. 컴퓨터 자판도 그렇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다 양손으로 휙휙 날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 정말 중요합니다.” 임 교수는 또 유학시절 유상근 전 명지대 이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 뒤, 한 사람의 투자로 이렇게 성악가와 교수로 성장해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자신했다. 따라서 재벌들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들은 따지고 보면 농민과 서민들이 물건을 사 주니까 재벌이 된 거 아니냐면서 우리 농산물이 무너지면 암 발생 등 만병의 근원이 생기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야 음악얘기가 나왔다. 인간은 음악과 스포츠 두가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면서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작곡 시 노래 무용 등 네가지뿐입니다.”고 했다. 시나 무용도 음악이 있어야 하고 무용 역시 결국은 체육이 아니냐는 것. 예로부터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사람은 음악을 들어야 과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밀양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하얀손수건을 꺼내는 이유를 물었다.“다윗창법을 쓰지요. 다윗은 노래로 신과 대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목소리가 어린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린이들은 고음에서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목이 잘 쉬지 않지요. 그래서 아 이게 바로 벨칸토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했다. 임 교수의 성악적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숙대 성악과에 입학 등록을 한 어머니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수학을 포기했고,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임 교수. 아버지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고교 교사로 있었으나 여섯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곧 실패했다. 임 교수는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성적도 별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때 너무 크게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음악점수는 ‘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중2때 음악선생님한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 ‘고성방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뚝섬 동네 밖에서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웅균이가 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실력은 별로였다. 경기중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고교 역시 1,2차에 거푸 떨어져 대구로 내려갔다가 우여곡절끝에 명지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랐다. 고3때 육사를 지원, 군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와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 집중적인 레슨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대학때에는 문화촌 달동네에 살면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당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무대에 오르기 일쑤였다. 결국 달동네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린 것. 병원비가 없어 작은형의 대영백과사전을 가져다 팔아 겨우 해결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3년 동안 화곡고 음악선생으로 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37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했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인 파바로티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85년 11월 귀국,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연세대 강사로 채용됐고,1년 뒤 ‘KBS콘서트홀’이라는 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 교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열린 음악회’.93년 10월 첫 출연하면서 ‘두만강’‘타향살이’‘밀양아리랑’ 등 클래식과 대중가요, 민요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두가지, 즉 완전한 낙원이거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일 때 그렇지요.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웅변이 곧 금입니다.” 요즘에는 실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 이유에 대해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예의 주시해 왔으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껄껄 웃는다.“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6만,7만명을 끌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6000여명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외국의 노예로 다 팔아 넘겼어요.”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75년 명지고 졸업 ▲75년 연세대 성악과 수석 입학 ▲79년 연세대 성악과 학사졸업 ▲79∼81년 군입대 ▲81년 화곡고 음악교사 ▲83년 이탈리아 유학,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수학(석사) ▲85년 귀국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부교수, 성악과 과장 역임 ▲2002년 5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5년 10월 서울시 정신건강 지킴이 위촉 ▲그외 로마 밀라노 등 이탈리아 17개 도시,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19개 도시 순회연주. 오페라 ‘사랑의 묘악’ 등 국내 30여회 공연 ■ 주요 상훈 만토바 국제콩쿠르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 메리토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성악가상(95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2000년) ■ 음반 선경 한국가곡 4,5집(CD), 독집음반 사랑하는 마음(99년), 태너 임웅균의 클래식 가요(2001년) km@seoul.co.kr
  •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소재 측면에서 볼 때 1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제작 싸이더스FNH 등·감독 윤태용)는 그대로 한국판 ‘빅’이다.13세 주인공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33세 어른으로 건너뛰어, 사랑과 감동이 어우러진 해프닝을 엮어간다. 키치적 냄새를 마구 풍기는 시중의 포스터 앞에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맨먼저 요약해줄 이 영화의 정보는, 시간에 최면을 걸어 순정한 사랑을 웅변하는 팬터지 멜로라는 사실이겠다. 80년대로 시계바늘이 옮겨간 화면 속 주인공은 시계수리점을 꾸려가는 미혼모 엄마(조민수)와 단둘이 사는 열세살 소년 네모. 아버지의 존재조차 모르는 네모는 장래희망을 “미혼모한테 장가드는 것”이라며 능청 떠는 밝고 장난스러운 아이이다. 영화는, 어딘가에 살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서러운 젊은 엄마와 철부지 네모의 동거를 전반부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넘어간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네모는 시계점에다 새로 만화방을 차린 미혼모(염정아)에게 마음을 뺏기고,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생떼를 쓴다. 나른한 동심의 팬터지에 진중한 무게중심의 추를 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네모가 만화방 여자의 아들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든 이후부터 드라마의 시계는 마법에 걸린다. 저승 문턱에 간 네모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조건으로 어른(박해일)이 되어 현실로 되돌아온다.‘좋은 세상을 만들려다’ 뇌사상태에 빠져 저승을 넘나드는 네모 아버지의 분열적 존재는 왜곡된 80년대 정치현실을 발언하려 고민한 설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감각을 무시했다는 인상이 짙다. 하루를 1년처럼 살며 90대 노인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네모의 순정이 구체적인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어로 부각되는 데는 실패했다. 동화를 뛰어넘은 사려깊은 팬터지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끝내 ‘그냥 동화’로만 주저앉은 빈약한 드라마는 난감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형식 쪽에 놓였다. 시간을 변주한 과감한 소재적 접근(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만화방이 있는 공간적 배치까지 신경썼다.)에 에밀 쿠스트리차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색감 등 어떤 영화보다 강력한 은유 능력을 자랑하는 건 사실이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시사 키워드] 저출산 고령화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아이는 낳지 않고 노인인구는 계속 늘어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고 있다. 인구가 적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제가 활력이 떨어지고 정체된다. 일할 사람은 없고 부양해야 할 사람만 많다면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두고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 포인트 아이를 낳지 않으면 국가발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고, 원인 분석을 통해 어떤 대책이 있는지 알아본다. ●저출산 고령화, 얼마나 심각한가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바람에 우리의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임여성 1명당 평균자녀수는 2004년 1.16명으로 1.6명 수준인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1970년 4.53명에서 줄곧 감소해 오다 세계 최저 수준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2.08명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도 출산 장려정책을 꾸준하게 펴서 이 수준까지 올렸다. 출산율이 떨어져 가장 왕성하게 일할 연령인 25∼49세 인구가 2007년 2082만명으로 정점에 이른 뒤 줄어든다고 한다. 또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현재 3467만명으로 총인구의 71.8%지만 2050년에는 2275만명(53.7%)으로 감소하게 된다. 반면 노령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2018년이면 우리나라의 65세 인구가 총인구의 14%를 넘어 고령 사회에 들어선다.2026년이면 노년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왜 아이를 낳지 않나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먼저 출산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이 변화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기혼여성 가운데 91%가 ‘자녀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난해에는 54.5%로 급격히 줄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이혼이 늘어나는 것도 출산율 하락의 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교육비와 양육비에 대한 부담을 꼽을 수 있다.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교육비 비중은 너무 높다. 지난해 월평균 자녀 양육비가 가구당 132만원이 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월평균 소득의 56.6%에 해당한다. 양육에도 어려움이 많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겨놓고 일할 탁아·육아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미혼 남녀 네 명중 한 명이 ‘자녀가 없어도 된다.’고 응답했는데 양육비 부담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인구는 국력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인구가 많은 중국은 1인당 소득은 낮아도 전체 국력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본다. 인구가 줄면 성장 동력이 약해져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 이대로 가다간 100년 뒤 우리 인구는 1620여만명으로 감소한다. 인구가 줄면 내수가 축소돼 기업들의 판매 기반이 없어진다. 노동력의 양적 감소와 함께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노동력의 질적인 저하를 불러 경제성장률이 2030년 이후에는 1∼2%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입대할 젊은이들도 줄어 징집대상 인원이 현재의 32만여명에서 2050년에는 절반인 16만여명으로 줄 것으로 보인다. 노령화가 가속화되면 부양부담이 커진다.202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고 2040년으로 가면 2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재정, 사회보장 예산이 증가해 세금이 늘어나고 나라재정이 악화된다. 이에 따른 세대간의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출산율을 높이려면 우선 여성들이 마음놓고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탁아소를 늘리고 자녀를 많이 낳으면 세금은 줄여주되 수당과 연금을 많이 줘야 한다. 공무원 채용 때 자녀를 가진 여성을 우대하는 방법도 있다. 아기를 낳으면 출산보조금을 주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해 줘야 한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런 내용과 비슷한 중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5년간 28조 5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보육료 지원,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 아동ㆍ청소년의 방과후 활동 지원,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확대 등이 내용이다. 고령화와 관련해서는 국민연금의 부담은 늘리되 급여는 줄이고 정년은 보장하되 임금은 서서히 줄이는 임금피크제 시행을 지원하며 건강보험료를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시트콤 새 바람몰이

    지상파 3사에서 무려 6∼7개나 한꺼번에 방영될 정도로 시트콤에도 호시절이 있었다.2003년까지만 해도 개그 프로그램과 함께 드라마 다음으로 쳐주는 인기 장르이기도 했다. 최근 편성된 시트콤은 모두 3개. 숫자가 말해주듯 침체된 상태. 그렇지만,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오후 11시 대 방송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올해 내내 식지 않는 열기를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 MBC,KBS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 바람몰이를 할지 기대된다. 지난달 24일(매주 월∼금 오후 6시50분)부터 시작한 MBC ‘레인보우 로망스’는 아직 2% 부족한 상태다. 첫 방영에서 전국 시청률 10%를 넘어서며 연착륙했지만,‘논스톱’ 시리즈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었고, 그나마 회가 거듭할수록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캠퍼스 중심의 설정을 가진 ‘논스톱’과 차별돼 참신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캐릭터 소개 위주로 이야기가 펼쳐진 탓인지 산만하다는 지적과, 연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2주차 방영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 후속으로 오는 7일부터 출발하는 KBS 2TV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매주 월∼금 오후 9시25분)는 돌아온 싱글, 전업주부, 미혼의 커리어우먼 등 세 자매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거짓과 진실을 풀어나가게 된다. 요즘 봇물처럼 다뤄지고 있는 여성의 일과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진부하지 않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 어느덧 ‘중견’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변우민 변정수 김태연 등이 출연해 연기력 논란에서는 비켜갈듯 하다. 또 가수 이소라와 컬투의 정찬우,SS501의 김현중이 고정출연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종교계 ‘가족사랑’행사 풍성

    종교계 ‘가족사랑’행사 풍성

    종교계에 가족 및 청소년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가 풍성하다. 청소년만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고 ‘가족가치상’을 제정하는가 하면 미혼 남녀를 위한 중매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오는 12일 서울 명동성당 부근에 청소년만을 위한 문화공간 ‘주’(ju)를 개관한다.‘주님’을 뜻함과 동시에 ‘세계와 교회의 주인이자 기둥인 청소년들의 공간’,‘매주일 청소년들이 가고 싶은 곳’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배 모양의 건물 외관은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분기별로 요리·마술·마임·북아트·전시회 등 테마 체험과 단편영화 상영, 콘서트 등 문화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도서·잡지와 유기농 간식도 제공된다. 김영국 신부(서울대교구 교육국장)는 “잊혀져가는 청소년 문화를 일으켜 명동을 찾는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젊은 교회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입양을 알선하는 가톨릭사회복지회 성가정입양원은 입양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만화로 엮은 책 ‘다시 찾은 행복-어느 아기의 길고 긴 여행’을 펴냈다. 윤영수 원장은 “입양을 통해 가족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는 최근 가족 가치 증진에 기여한 지역사회 지도자에게 수여하는 ‘가족가치상’을 제정,1회 수상자로 이근후·이동원 이화여대 명예교수 부부를 선정했다. 이들 부부는 1995년부터 가족과 연관된 연구조사 및 사회교육을 제공하는 ‘가족아카데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미혼 남녀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도록 돕는 중매 프로그램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천주교 구의동본당은 처녀·총각의 짝을 찾아주는 ‘예비 아담·하와 맺어주기’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동안 70여명으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결혼상담소인 ‘청실홍실’을 운영하는 불교조계종 조계사도 부부연(夫婦緣) 맺어주기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보살(여신도) 10여명이 요일별로 돌아가며 결혼상담을 받는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돌아온 ‘원조 에로스타’ 안소영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돌아온 ‘원조 에로스타’ 안소영씨

    우리나라 최초의 심야 상영 영화를 아시나요. 시곗바늘을 2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자.1982년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한 해였다. 자정까지 제한된 통행금지가 해제됐고 두발 자유화가 실시됐다. 또 전국적인 교복 자율화 조치도 이때 결정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3S(Screen,Sex,Sports) 정책에 의해 일련의 문화적 잠금장치를 푼 것. 따라서 성 묘사에 대한 까다로운 검열장치도 자연스럽게 완화됐다. 이때 깜짝놀랄 영화 한 편이 등장한다. 바로 ‘애마부인’이다. 우리나라 에로영화의 효시로 지난 54년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장면이 나오는 ‘운명의 손’(한형모 감독) 이후 가히 혁명적 사건일 만큼 과감한 노출로 영화 팬들을 흥분시켰다. 그해 3월27일 자정, 서울극장에서는 ‘애마부인’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심야 상영하게 된다. 이날 밤 좌석수 1500석인 극장에 5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매표소가 박살나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이처럼 당시 ‘애마부인’은 통금해제에 편승, 수많은 청춘들을 심야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뿐만 아니다. 개봉 첫해에 31만명의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개봉작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애마부인’은 한국 영화 사상 최다인 무려 13편의 속편이 제작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아울러 숱한 ‘애마걸’이 등장하면서 갖가지 스캔들까지 뿌렸다. 또 ‘산딸기’‘빨간앵두’‘뼈와 살이 타는 밤’ ‘피조개 뭍에 오르다’‘어우동’‘변강쇠’‘뽕’ 등의 에로영화가 봇물처럼 스크린을 장식했다. ‘애마부인’은 이래저래 우리 사회의 변천사와 궤적을 같이했고 추억의 팬들에겐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제목의 ‘애마’는 ‘愛馬’가 아니라 삼베를 사랑하는 ‘愛麻’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마부인’이 다시 거론된다. 그 주인공이 컴백하기 때문이다. 안소영(46·본명 안기자)씨. 미국에서 살다가 지난 5월 7년 만에 귀국했다. 최근에는 누드화보집을 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프랑스 영화 ‘엠마뉴엘’과 ‘차탈레 부인의 사랑’의 실비아 크리스텔이 떠오른다. 이른바 한국의 실비아 크리스텔로 비유되는 안소영.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영화에서 적극적인 섹스를 추구하는 여인으로 파격 등장했다. 이로 인해 나름대로 한(恨)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다. 늘 벗어야 하는 배우로, 또 ‘큰 가슴’이라는 고정된 시선과 굴레를 동시에 안고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안씨는 지난 76년 연기 인생을 시작해 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또 98년 미국으로 훌쩍 떠나 뉴저지주에서 ‘황부자 순두부집’을 운영하며 아들과 둘이 외롭게 지냈다. 틈틈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의 본능을 참지 못했고 결국 귀국을 결심했다. 돌아오자마자 KBS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출연했고, 지난 8월에는 누드화보를 찍었다. 서울여대 사진학과 교수인 안씨의 동생과 함께 서울과 제주에서 촬영했다. 안씨는 요즘 ‘내나이 마흔일곱’을 위해 특별한 것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에 데뷔 30년을 맞는다. 그래서 뮤지컬과 영화출연을 위해 차분히 준비 중이다. 뮤지컬 제목은 ‘뜨거운 홍차를 같이해’이며 내년 3월 대학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서 주인공 히피소녀를 맡아 노래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 각오다. 영화는 ‘안소영 세대에 바친다’는 주제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이 다 끝났다. 벗는 배우의 굴레를 벗고 나이에 걸맞은 제2의 배우인생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커피숍에서 안씨를 만났다. 머플러와 체크무늬 상의가 가을날 햇살과 잘 어울렸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일주일에 3일은 서초동의 예술의 전당을 찾아요. 뮤지컬 자료를 얻기 위해서지요.”라고 대답했다. 뮤지컬은 목소리도 따라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지체없이 “옛날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었어요. 성대가 약하긴 하지만 폐활량을 높이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통해 체력훈련하고 있지요.”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청계산을 찾는다는 것. 때마침 아들한데 전화가 걸려온다. 숙제가 끝나면 할머니를 모시고 공원 산책을 나가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아니, 아직도 그런 질문 하나요. 그냥 미혼모로 알아주세요.”라고 하면서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잘 살고 있거든요.”라고 약간 역정을 낸다. 이어 미국 생활 얘기가 나왔다. 그는 97년 미혼모가 됐고 ‘안소영 컬렉션’이라는 의상실 경영도 어려워져 미국 뉴저지로 떠났다. 아는 사람이라곤 동생 지인들이 전부. 처음에는 의류명품점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아들이 워낙 순두부를 좋아해 순두부집을 2년 동안 운영하게 됐다. 아들 이름이 황도연. 부자되라는 뜻에서 ‘황부자∼’로 지었다. 운동화끈을 조여매고 주방이며 손님 접대며 밤 10시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다보니 힘들어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고백했다. 안씨에게 ‘애마부인’은 어떤 모양으로 남아 있을까.“어쩔 수 없이 출연했고 그로 인해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왔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애정보다는 ‘애증’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했다. 자신의 본질적 연기는 그게 아닌데 늘 ‘애마부인’으로 고정시선을 받는 게 정말 싫었고, 또 행복보다는 시련과 굴곡이 더 많았다고 했다. 아이에게도 배우라는 점을 당당히 얘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건만 ‘애마부인’이란 족쇄로 얻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안씨는 “그 영화 이후에는 감독마다 다들 벗으라고 해 정말 싫었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만큼은 달랐다고 했다. 추억 한토막.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촬영현장을 따라다니던 안소영은 중학교때 처음 임 감독을 만났다.“소영이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어.”라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애마부인’을 찍고 나서 “너무 어이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86년 임 감독의 ‘티켓’에 출연한 안씨는 “감독님 제발 벗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원래 저는 순수 연극을 좋아했어요. 이해랑 선생님의 연극 ‘죄와벌’(극단 신협)에서 노주현씨랑 처음 연기를 했거든요.” 안씨는 어릴 적 원로 배우 김지미씨를 좋아했다. 김씨가 웃을 때 입이 약간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울 앞에서 흉내를 내곤 했다. 중학교 때부터 서울 충무로의 배우전문학교에 다니며 영화계 사람들과 자주 만났다. 고교 졸업 때에는 기자가 되려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응시했으나 떨어져 인생팔자가 연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자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요. 어떤 기대감도 없고요. 아이와 살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얻으면 되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한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성격상 맞지 않는다는 것. 안씨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미국이나 타이완에서 순두부집을 곧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순두부는 보통 한국식이 아니라 양념이나 재료에 많은 정성을 쏟아붓는 특별 순두부라고 했다. “제게 연기를 위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요.‘독짓는 늙은이’의 편안한 시골여인처럼 살고 싶어요. 화려함이 아닌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말입니다. 또 나이 60에는 제 인생의 누드화보 전시회를 꼭 열 생각입니다.”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59년 서울 출생 ▲78년 정화여자상고 졸업 ▲76년 ‘내일 또 내일’로 영화 데뷔 ▲77년 연극 ‘죄와 벌’ ▲주요 출연작 오늘밤은 참으세요(81년) 애마부인(82) 달빛 멜로디(84) 여자가 두번 화장할 때(84) 자유처녀(85) 합궁(88) 그 섬에 가고 싶다(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 등 17편
  • 1명의 처녀와 68명의 이혼녀

    1명의 처녀와 68명의 이혼녀

    미용연구가 임형선(林亨善)씨와『이혼연구』로 얼마 전 석사학위(이화여대)를 받은 박상옥(朴商玉)씨는 친구 같은 모녀다. 그런데 이 친구 같은 모녀 사이에도 모녀다운 사연이 있었다는 뒤늦은 소식. 세상의 모든 어머니 얘기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다음은 그래서 수소문한 임형선씨의 어머니 노릇 1년의 얘기. 딸의 논문자료 수집 나서, 이혼의 사연을 듣다 보니 『미혼여성에게 누가 이혼 같은 쓰라린 경험을 마구 털어 놓고 싶어 하나요. 보다 못해 나이 많은 내가 대신 나섰던 거죠. 그게 어떻게 소문이 났을까… 』 임형선씨는 딸을 돕던 일을 이렇게 핑계 댄다. 『도왔다고 만도 할 수 없어요. 한여름 내내 이혼한 여성들의 사연을 듣다 보니 이젠 가정불화 문제에는 권위가 된 기분이니까. 가정불화 상담역을 부업으로 하고 싶어졌어요. 딸의 논문치다꺼리 때문에 나 자신에게도 한 가지 자산(資産)이 생겼으니까요. 피장파장이죠』 딸 상옥씨의『이혼연구』는 처음부터 난관투성이였다. 우선 조사방법이「케이스·스터디」였던 탓도 있다. 면담자가 마음을 털어 놓고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정확한 실태파악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대상을 잡는 일조차도 힘들었다. 68년 봄부터 1백여 개의 질문들을 만들고 1백명 쯤의 이혼녀를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가정법원, 서울시 부녀과를 다녀 보았지만 자료를 얻지 못했다. 사생활에 관한 비밀보장 때문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이런 자료원에도 신통한 자료는 없었다. 자료에 따라서 찾아낸 상대자들은 또 이혼경험 같은 것은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낙망한 딸을 보고 임형선씨가 모정에 발동을 건 것이 지난해 6월이었다. 좀 알려진 지면 여류(女流)인 것을 이용해서 서울시 부녀과며 다른 자료원을 뒤졌다. 기초자료를 얻은 다음에는 일일이 찾아가서 면담을 청했다. 딸 상옥씨 때보다는 약간 성과가 있었지만 십중팔구는 잡아떼었다. 『궁즉통(궁하면 통한다)이래죠. 거절을 자꾸 당하고 나니까 꾀가 생겨요. 어디 이혼녀가 있다는 소문을 캐서는 그 일가나 친지의 연줄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어요』 여심에 새겨진 깊은 상처, 슬픈 얘기에 함께 울기도 차나 식사를 대접하면서 그 연줄들에게 이혼녀들을 소개해 달랬다. 이러는 데는 이혼 사실 자체를 부정할 도리가 없었다. 얽혔던 실뭉치가 한번 풀리니까 줄줄이 잘도 풀렸다. 『6, 7월을 줄곧 학교일도 버리고 딸 대신「인터뷰」하는 일에 보냈어요. 둑이 터지면 푸념이 시작되죠. 남편에게 상처받은 얘기들을 모두 합니다. 아주 구체적인 사소한 일을 울면서 들려줘요』 하루에 한 사람 이상은 만날 수가 없었다. 결혼부터 이혼에 이르는 그 많은 곡절을 다 듣는 데는 서너 시간도 모자랐다. 게다가 사연들이 너무 절실하고 극적이었다. 자기 자신의 얘기들이므로 더할 수 없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니 매일같이「슬픈 여인의 인생」한 가지씩을 살았던 셈이에요. 나도 상대방도 같이 실컷 울면서』 울다 울다 보니 골치가 아파서 상비약으로 진정제를 가지고 다녔다. 저녁에 지쳐서 들어오면 딸 상옥씨에게「브리핑」을 한다. 『딸은 이제 겨우 스물 여덟 살이지만 어엿한 사회학도거든요. 내가 감정에 치우쳐서 상대방의 말, 표정을 부실하게 파악하면 큰일 난다고 다짐이 대단했죠』 우선 1백여 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적어 넣고는 답변을 듣는 것이 면담의 순서. 『이상한 것이 설문에 대한 대답과 나중에 풀어놓은 사연이 모순투성이라는 거예요』 설문에 대한 답변에 나타난 것만 보면 하나같이『남편이 나쁘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푸념에서는『그런데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하면서 미련을 보인다. 면담조사에서는 이런 모순의「캐치」가 가장 중요하다. 이혼요인 첫째는 인텔리 아내의 자존심(自尊心) 그러니까, 『같이 울어주고 진정제를 먹어야 할 만큼 흥분을 해도 면담자의 말을 한 마디도 빼놓으면 안돼요. 그래서 팔이 떨어지도록 속기를 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한여름을 울면서 지내고 나니 가정불화 조정에는 자신이 생겼어요』 이혼 가능성이 많은 부부의 속성을 자기 나름대로 알게 됐다. 첫째,「인텔리」층에 이혼 가능성이 많다는 것. 아내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가정은 결국 불화한다. 둘째, 싸움이 잦으면 결국 어느 세월에 가서는 이혼한다는 것. 셋째, 아내가 너무 애교 없고 이해심 없을 경우도 이혼 가능성이 많다는 것. 『또 아내를 울리고 결국은 이혼하기 쉬운 지경으로 몰고 가는 남성형도 대강 짐작이 가요』 첫째, 너무「젠틀」한 남성. 『자기도 배알이 있을 텐데 그처럼 지나치게「젠틀」할 때는 딴 속셈이 있는 법』이 보통. 둘째, 남편쪽에 열등의식이 있을 경우. 셋째, 너무 심하게 무뚝뚝할 경우. 68명의 조사대상자가 규탄하는 전(前)남편상(像)은 대개 그렇게 좁혀질 수 있다. 『가정불화 연구라면 우습지만 딸의 이혼연구를 거들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가봐요』 임여사가 예림여자고등기술학교를 세운 것이 1956년. 미용사에서 미용실업주가 되기까지 15년간 이미 손님들의 사연을 듣다 보니 아내들의 불행을 수없이 보았다. 『한 남자가 세 여자를 버리는 걸 목격한 일도 있어요. 세 여자가 다 신부화장을 내게 했답니다』 여자에게도 기술이 있으면 불행에서 진창으로 떨어지지는 않겠거니 하는 신념이 늘 있었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6·25 수복 후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웠다. 기술학교니까 예상대로 학생 중에는 불행해진 여인들도 많았다. 한국 여인의 이혼은 아직, 불행한 결혼보다 불행해 『10여 년 동안 드문드문 학생들의 불화상담을 해온 것이 지난번 이혼녀「인터뷰」에 도움이 됐을까요. 68명째의「인터뷰」를 마치고 상옥이에게 보고서를 넘겨주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혼은 아직도 불행한 결혼보다 불행하다는 것이었어요』 설문에는 이혼한 사실을 수치로 알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몹시들 숨기는 것이 그 증거다. 젊은층이 더 숨기는데, 재혼에 영향을 미칠까봐서 그런다고 공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죽어도 총각 결혼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여성도 있다. 『지옥 같은 결혼은 깨뜨릴 용기가 있지만 주위의 눈초리를 견딜 용기까지는 없나 봐요. 불화요인을 철저하게 알았으니까 저 애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죠』 바로 2주일 전 3월 8일 딸 상옥양은 같은 사회학도 김영기씨와 결혼했다. 30년 미용사, 미용업주, 미용교사 노릇을 하느라고 돌보지 못하던 딸이었다.「이혼연구」의 조역(助役)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 정말 흐뭇하다고 한다. [ 선데이서울 69년 3/23 제2권 12호 통권 제26호 ]
  • [깔깔깔]

    ●사랑 고백 한 남자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사귀는 여자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했다. “지금까지 흠모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친구 철수처럼 잘 생기지도 못했고, 부자도 아니고, 그 친구처럼 자동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은 진심입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상대방 여자가 바로 대답하길, “그 철수라는 친구 아직 미혼이면 전화번호나 알려 주세요.”●똑똑한 개 어느 주말 아침에 아내가 남편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우리 강아지는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 아침마다 신문을 물고오지 뭐예요.”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음, 그런 개들은 많지 않나?”“하지만 우리 집은 구독하는 신문이 없는 걸요.”
  • 한국엔 여성국극단 日엔 다카라즈카 가극단

    한국엔 여성국극단 日엔 다카라즈카 가극단

    지금은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여성국극이 인기절정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을 전후해 성황을 이룬 여성국극은 임춘앵, 박옥진, 김경애 등 남장 여배우들을 스타로 만들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 여성국극단이 있다면 일본에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있다.1960년대 이후 쇠퇴일로를 걸어온 여성국극과 달리 90년 전통의 다카라즈카는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도쿄와 다카라즈카 시에 4000석 규모의 전용극장을 보유한 다카라즈카는 연간 930회 공연, 연평균 관객 200만명을 자랑한다. 해외 18개국 120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11∼13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1940년 첫 방문 이후 65년만의 한국 나들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국내 공연이 추진됐지만 제작비가 높아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한·일 공동방문의 해’를 맞아 양국 의원연맹의 후원으로 성사됐다. 공연작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이케다 리요코 원작의 ‘베르사유의 장미’. 프랑스 혁명시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웨덴 귀족 페르젠의 사랑 이야기다. 단원 450명이 모두 미혼 여성인 다카라즈카의 배우들은 완벽한 남성연기로 정평이 자자하다. 이번 공연에서 주역을 맡은 고즈키 와타루(페르젠), 시라하네 유리(마리 앙투아네트), 다쓰키 요(앙드레), 스즈미 시오(오스칼) 등은 열광적인 여성 팬들을 거느린 인기배우들이다.2부에선 탭댄스와 블루스 등으로 구성된 댄싱 쇼 ‘솔 오브 시바’를 선보인다. 1914년 창단된 다카라즈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최초로 일본식으로 소화해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폭풍의 언덕’등 고전 문학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5만∼12만원.(02)2113-685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유망 자격증 20선] 임상심리사

    [유망 자격증 20선] 임상심리사

    임상심리사의 활동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심리학적 접근법이 조명을 받으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임상심리를 통한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무청에서 오는 2008년부터 임상심리사를 배치, 징병 신체검사의 인성검사를 강화키로 한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또 경찰수사에 임상심리사 등의 심리전문가를 동원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아동성폭력 전담센터에서는 지금도 임상심리사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밖에 일선 학교에서도 임상심리사의 전문상담을 통해 학교폭력 해법을 찾는 등 임상심리사의 역할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때문에 관련 자격이 주목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이 대표적이다. ●고도의 전문성 요구… 한해 합격자 50명 내외 국가기술자격인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시험은 1급과 2급으로 나뉘지만, 현재는 2급 시험만 개설됐다. 신설된 지 3년째로 아직 2급 임상심리사도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 임상심리사 자격은 응시자격도 까다롭고, 시험 역시 만만찮아 심리학 전공자 외에는 접근이 어렵다. 공단 관계자는 “임상심리 실습수련 과정을 1년 이상 받은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하기 때문에 많게는 몇 천명씩 몰리는 다른 자격시험에 비해 지원자는 연간 300∼400명 정도로 적은 편”이라며 “합격률도 15% 정도로 낮아 합격자는 한 해 50명 내외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전문자격으로서의 가치가 두드러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필기시험은 ▲심리학개론 ▲이상심리학 ▲심리검사 ▲임상심리학 ▲심리상담 과목에 대해 객관식으로 치러진다. 실기시험은 주관식 필기시험 형식을 띤다. 상담사례를 제시하고 실제 임상실무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험시간만 3시간에 달한다. 시험 수준에 대해 공단측은 “임상심리를 전공하지 않은 응시자는 힘들다.”고 귀띔했다. ●월 평균임금은 331만원… 경력 쌓은 후 교수로도 임상심리사는 심리적·정신적 문제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심리검사나 상담, 심리재활, 심리교육 등을 실시하는 심리전문가다. 정신과 의사와의 차이는 약물치료를 할 수 없다는 점이며, 상담전문가와의 차이는 임상심리사가 보다 심각한 심리장애나 정신병리를 다룬다는 점이다. 전망은 밝은 편이다. 임상심리사의 입지가 탄탄해진 데다 진출분야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임상심리상담소를 운영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비행, 약물오남용, 성폭력, 미혼모, 가족문제 등 영역별 전문 임상심리상담소가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그밖에 각종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거나 경력을 쌓은 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입직하는 경우도 많다. 중앙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임상심리사의 월 평균임금은 331만원으로 집계됐다. 하위 25%는 100만원, 상위 25%는 500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인생은 둥글다고 했던가. 그래서 가운데와 언저리가 있단다.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기왕이면 가운데에서 살아봄이 어떨까. 문득 ‘니나 붓슈만’이란 여인이 생각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생의 한가운데 서서 삶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인다. 파란과 곡절의 인생항로, 우수와 슬픔,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하는 자기 신념이 강한 여성이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70·한국명 許滿理) 이사장. 스물한 살 꽃다운 처녀 때부터 동방의 나라, 낯선 한국땅에서 ‘입양과 장애’라는 두 단어를 어깨에 모질게도 짊어지고 꼭 반세기를 걸어왔다. 어렵고 고달픈 생의 그늘에서도 자신보다 버려진 아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더 소중하게 온몸으로 맞이하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말리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자인 홀트 부부의 딸. 지난 50년을 입양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와 우리나라 입양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버지 해리 홀트(1964년 작고)와 어머니 버서 홀트(2000년 작고)가 떠나간 뒤인 요즘도 24시간 장애인들과 지내며 묵묵히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해외에 입양된 아이만 해도 9만 5000여명.6·25 전쟁의 폐허 속에 시작됐기에 초창기에는 전쟁고아와 혼혈아가 대다수였으며 최근에는 미혼모 아이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타운’을 찾았다. 본관 건물 바로 옆에 ‘말리의 집’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었더니 5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바닥에 앉아 있다. 한 아이는 불편한 몸 때문인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흘리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외출 나갔던 말리가 들어왔다.“미안해요. 미국에서 친구가 와서 보내느라고 조금 늦었어요.”라고 했다. 인터뷰는 마당의 의자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5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한국도 지난 세월만큼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입양아들이)정상적으로 자라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고 피력했다. 때마침 한국인 아가씨로 보이는 두 명이 지나가면서 영어로 인사한다.“어릴 적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 한달 전 자원봉사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온김에 생부모를 만날 생각도 있습니다. 다 커서 저렇게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저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 등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합니다.”면서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놀아주고 일년에 4∼5명 정도는 본가족과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고 부연했다. 50년 세월이면 강산이 다섯번 변했다고 하자 “56년 10월3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을 때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곳곳에 총알이 박혀 있는 건물이며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서울시청 마이크로버스로 고아들을 잔뜩 실어오곤 했는데 워낙 못 먹고 며칠씩 씻지를 못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노인네 모습과 영락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경우에는 버스 안에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 영아들이 보자기나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전구로 보온을 시키는 등 응급조치로 살려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죽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61년 부친이 일산 현 위치에 3만 3000여평의 땅을 사서 복지타운을 건립할 때까지 서울 효창동과 녹번동의 임시 수용시설에서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단다. 지금은 전국 11개지부를 둘 만큼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했더니 “어쩌다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 때 좋은 환경의 집안에 입양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많이 힘들어집니다.”라고 토로했다. 결혼을 안한 이유를 묻자 “신앙심이 있으면 굳이 안해도 됩니다. 고아 장애인들이 있는데 곧 그들의 어머니가 아닙니까.”면서 “꼬마들은 자신에게 할머니 누나 언니 등으로 곧잘 부릅니다.”라며 웃는다. 하루 일과에 대해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경책을 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고 했다. 이어 전날의 일을 깨알같이 메모한다. 아침 7시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할머니가 된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손 훈련을 꾸준히 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온몸에 잼과 밥풀떼기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을 정도. 간단히 샤워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체크한다. 요즘도 미국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메일이 자주 온다.9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평상의 일과를 시작한다.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줄 잼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한국어를 틈틈이 공부한다. 한국말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읽고 쓰기에는 아직도 서툴다. 때문에 영자신문이나 TV를 통해 돌아가는 세상사를 접한다.“한국인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고 했다. 아울러 “중국이나 필리핀을 왔다갔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빨리 달라졌습니다.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었는데….”라고 한국의 발전상에 새삼 놀라워했다. 말리가 한국에 오게 된 연유는 아버지인 해리 홀트의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본인 자신도 평소에 불우아동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잠시 집안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 버서 홀트는 원래 간호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농부인 해리 홀트를 만나면서 농부의 아내가 됐다. 그러나 결혼 직후인 29년부터 대공황이 이어지자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해리는 이곳에서 목재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던 54년 홀트 부부는 우연히 한국전쟁 고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선 한국인 고아 8명을 입양하려고 했으나 당시 미 연방법에는 2명 이상 입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홀트 부부는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의회는 두 달 만에 ‘홀트법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55년 10월12일 8명의 전쟁 고아를 입양한 것을 시작으로 해리는 한국에서, 버서는 미국에서 입양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최대의 시련은 88년 서울올림픽 때. 정부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해외입양 금지령을 내렸던 것. 홀트아동복지회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금지령을 취소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찍부터 부모의 뜻을 이어받은 말리는 그동안 부산 광주 전주 등지의 고아원과 예수병원 등에서 활동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의촌 진료에도 앞장서는 등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은 혈통주의가 강해요. 그러다 보니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입양은 불행한 아이나 아이를 원하는 가정을 위해 서로 좋은 일입니다. 낳은 부모나 기르는 부모나 사랑은 다 똑같죠.” 전문 장애인병원을 건립해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말리는 현재 일산타운에서 주로 입양이 힘든 고아 장애인 270명을 돌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 땅에는 부모가 묻혔고 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곳이기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말리의 어머니는 오리건주 자택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에 따라 현재 일산타운내의 남편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파이어스틸 출생. ▲53년 오리건주 크레스웰고교 졸업 ▲56년 새크래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졸업 ▲64년 오리건대학 간호학과 졸업 ▲91년 노스콜로라도 주립대 특수교육학과 졸업(석사) ▲56∼65년 홀트아동복지회, 부산 이사벨영아원, 우정보육원, 미국 오리건 병원, 전주 예수병원 간호자문역 ▲65∼78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67∼74년 홀트일산원 원장 ▲92∼현재 나사렛대학 재활학과 교수 ▲98∼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2000∼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수상경력 국민훈장 석류장(81년), 로버트 피어상(84년) 세계성령봉사상(98년) 적십자 인동장 금장(00년) 일가상(01년) 비추미 여성대상(03년) 등.
  • [서울이야기] (26) 여성의 문화·여가활동

    [서울이야기] (26) 여성의 문화·여가활동

    # 사례 1 세 살된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 김미란(30)씨는 친구와 전화통화 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미혼인 친구들이 모처럼 모여 음악회를 가기로 했다며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지휘자에 즐겨듣는 곡들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결혼전에는 곧잘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녔던 김씨이다. 문화예술에 별 관심이 없던 남편도 이런 김씨 덕분에 연애시절에는 공연이나 전시장에 종종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 낳고 키우느라 직장까지 그만 둔 김씨는 공연장과 미술관은커녕 동네 가까운 영화관에 가 본 기억도 아물아물하다. 김씨의 남편은 간혹 직장 동료들과 함께 화제작인 영화를 보러가기도 하는데 회사에서 영화비를 주고, 관람 후에는 동료들과 한잔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서울 여성의 문화생활 수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여가문화활동에 대한 관심은 더 크나, 현재 자신의 여가문화활동에 대한 불만족은 남성에 비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2004년). 서울 남성과 여성 모두 문화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편은 아니다. 연극의 경우 서울 여성의 26%가 일년에 한편 이상 연극을 보며, 서울 남성은 이보다 약간 낮은 22%이다. 미술전시회의 경우, 서울 여성의 27%가 1년에 한번 이상 전시장을 찾은 적이 있으며, 남성은 이보다 적은 21%가 전시장을 갔다. 음악 공연의 경우 장르별로 대중음악공연을 일년에 1회 이상 본 서울 여성은 19%, 서울 남성은 20%로 별 차이가 없다. 뮤지컬의 경우 서울 여성의 12%가, 서울 남성의 10%가 일년에 일회 이상 관람하였다. 클래식, 오페라는 이 보다 저조하여 서울 여성의 8%, 서울 남성의 7%가 일년에 한번 이상 클래식, 오페라를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민이 가장 적게 접하는 공연은 무용으로 서울 여성의 3%, 서울 남성의 4%만이 일년에 한번 이상 무용 공연을 관람했다. 서울 시민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문화활동은 역시 영화 관람으로 여성과 남성 74%는 일년에 한편 이상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행사 참여도만을 볼 때 서울 여성은 서울 남성에 비해 근소하나마 문화생활을 더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여성의 60%는 왜 현재의 문화여가생활에 불만족한 것일까. # 사례 2 토요일 오후 집안일을 겨우 끝낸 이미경(42)씨는 서둘러 쇼핑길에 나섰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아이를 둔 이씨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결혼 후 집 장만을 위해 힘들기는 했으나 맞벌이를 했는데,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이제 만만치 않아 당분간 맞벌이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올해 들어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었으나, 이씨는 오히려 주말에 더 바빠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최근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집안일을 봐주던 파출부를 그만 오게 하고, 대신 자신이 주말에 밀린 집안일들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일요일마다 병문안을 간다. 만약 여가시간이 나면 집에서 TV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한다. 앞으로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가고 싶고, 연극도 보러가고 싶다. ●서울 여성의 여가생활 양식 서울 시민은 남녀 모두 약 60%가 여가 시간을 주로 TV 시청과 잠자는 것으로 보내고 있어 일반적으로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시민이 문화예술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녀 모두 시간이 없어서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녀와 부모를 돌보느라, 또는 돈이 없음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30∼40대 여성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더하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어린 아이가 있는 취업여성들이 문화여가생활에서 더욱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의하면 맞벌이 가구의 주부는 남편에 비해 평일 가사노동시간이 약 1시간 많으며, 취업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주말에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취학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은 평일 9시간 50분을 일하고, 일요일에도 6시간 56분을 일하고 있어,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에 대한 이중 부담을 크게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활용방법에서 여성과 남성간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가사와 스포츠 활동이다. 여성의 경우 여가시간에 46%가 주로 가사를 하며, 스포츠를 주로 한다는 여성은 4%에 불과하다. 반면 남성은 여가시간에 주로 가사를 한다는 경우는 13%이며, 스포츠를 주로 하는 사람은 15%였다(통계청,2002). 서울 여성의 대부분은 여가를 주로 집에서 TV를 보거나 휴식, 가사 등으로 소극적으로 현재 보내고 있으나, 여가를 여행이나 스포츠 레저활동, 공연관람으로 적극적으로 보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 사례 3 이번 토요일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동호인 그룹 전시회를 갖게 될 박정란(35)씨는 마음이 약간 들떠 있다. 첫 전시회라 긴장도 되지만, 성취감과 함께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2년전 구민문화예술회관이 완공되면서 여러가지 강좌가 개설됐다. 마침 평소에 박씨가 하고 싶던 유화 실기가 교육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취학전인 둘째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서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초 여성이 구민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오면서, 구민문화예술회관 내에 어린이 놀이터와 독서실 공간을 만들었다. 박씨가 유화 실기를 하는 동안 둘째아이는 어린이 놀이터 내에서 보내고 있다. 저렴한 수업료에 강좌시간에는 아이까지 돌봐주는 구민문화예술회관이 없다면 자신에게 이 처럼 투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부들이 집에서 자신의 작업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을 배려하여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작지만 공동작업실을 제공해 주었다. 공동작업실을 꾸준히 이용하던 몇몇 여성들이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작업을 하다 뜻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이들에게 흔쾌히 전시공간을 대여해 주기로 했다. 박씨는 첫 전시회 작품을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자화상으로 구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작품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박씨는 새로운 삶의 자신감이 생겨남을 느끼고 있다. # 사례 4 요즘 최정아씨 가족은 대화가 많아졌다. 가족들이 최근 각자 좋아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어제 구민문화예술회관의 국악 공연을 보고 오셨는데,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국악 공연은 빠지지 않고 이제 가겠다고 하신다. 중학교 다니는 딸은 오늘 저녁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청소년 연극제에 가기로 되어있다. 내일은 초등학교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저녁 시간에 요가반이 개설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씨 같은 여성들도 드디어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일요일 가족음악회에는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최씨가 특히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성을 배려해 시설물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우선 여자화장실이 넓고 아이를 동반한 여성을 배려하고 있다. 가족음악회 중간 휴식시간에 이곳은 다른 문화시설과 달리 여자 화장실의 줄이 짧은 편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위한 놀이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를 탄 채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통로도 계단이 아닌 나지막한 경사로 되어 있다.1층 로비에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고, 음료를 파는 작은 매점도 있다. 구민문화예술회관 주변은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아름답지만 밝은 조명으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여름에는 매점이 밖으로 나와, 저녁 늦게까지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최씨도, 딸아이도 저녁 시간에도 안심하고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과 운영 방식 1998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정책회의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문화권(Cultural Rights)이 인권만큼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문화예술을 향유하거나 문화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데 장애요인이 많으므로 여성의 문화기관 접근성, 여성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 장려하는 정부 차원의 문화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럼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과 문화정책으로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여성들은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문화시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여성의 경우 서울 남성에 비해 지역사회 문화시설인 구민회관, 공공도서관, 구민체육센터, 구민문화예술회관, 문화의 집 등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가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문화여가시설이 교통이 불편하거나 외진 장소에 있다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시설 이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울시가 목표로 하고 있는 지역문화예술회관 건립 지원, 소규모 공공도서관 확충사업, 학교시설에 체육스포츠센터나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은 여성친화적인 문화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 문화시설을 여성이 많이 이용하는 만큼, 시설 설계나 운영이 이를 고려해서 건립될 필요가 있다. 최근 여성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 직장 여성을 위한 운영 방안이 필요하다. 영국의 글래스고시는 시민조사를 통해 여성의 72%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낮 시간에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시에서는 취업여성들을 위한 저녁 스포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부 시설에서는 저녁시간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혼취업여성들을 위해 다림질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자 청소년과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문화여가시설의 쾌적함과 안전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따라서 시설이나 주변환경이 쾌적하거나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을 경우, 이용을 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스포츠 시설의 경우 탈의실 같은 남녀별 이용시설 표식을 분명하게 하거나, 시설 안팎으로 조명을 밝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여성과 여자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체육시설을 조사하고, 여성친화적 시설운영지침을 만들기도 하였다. 유럽, 캐나다, 미국의 문화시설에서는 전통적으로 무시되거나 과소평가 받아온 여성예술가나 여성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국립여성미술관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세계 최초의 여성 전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가족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어린 관람객에게 여성 예술가의 공헌에 대해 교육하며,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성공한 여성들과 여자 청소년 여성을 연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이밖에 문학, 음악, 영화, 무용 등의 분야별로 여성 예술가 중심의 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유네스코는 한 사회의 문화적 창의성은 문화 다양성에서 나오므로 여성 예술가와 여성 작품을 재평가하며, 여성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정책에 각 정부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 운영과 관련해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의 경우 정책적으로 문화시설의 운영위원이나 고위직의 경우 여성과 남성의 참여율이 50대50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동작구에는 여성을 위한 문화복지시설인 서울여성플라자가 있다. 이곳은 여성들이 문화 및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들을 위한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여성 관련전문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2003년부터 서울여성플라자에서는 유쾌한 치맛바람이란 주제로 서울여성문화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2005년 5월에는 유쾌한 치맛바람 가족風(풍)을 주제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를 했다. 여성문화예술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문화생활에 빠져 들고 싶다면 서울여성플라자의 행사일정을 찬찬히 챙겨 본다면 유용할 것이다. 서울여성플라자의 프로그램은 홈페이지(www.seoulwome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경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 [구정이삭]

    ●서울 금천구 구청과 보건소 민원실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했다. 한국농아인협회가 추천한 수화통역사는 연말까지 매주 월·화요일 오전에는 구청 민원실에서, 목·금요일 오전에는 보건소 민원실에서 청각장애인에게 민원업무 안내를 한다.(02)890-2355∼9.●서울 강서구 28일(금) 방화1동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미혼 장애인들의 이성교제를 지원하는 ‘장애인 숨겨진 보석찾기’행사를 연다. 남녀 각 10명씩 선착순 접수하며 참가비는 없다. 복지관으로 전화 또는 방문 신청하면 된다.(02)2661-0670∼3.●서울 성동구 보건소 11월 한달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5층 보건교육실에서 ‘당뇨교실’을 운영한다.3일(목)에는 당뇨 환자에게 알맞은 열량의 식단을 알려주고, 직접 시식해보는 기회를 갖는다.4회 이상 참석자에게는 무료 체지방 검사도 해준다.(02)2286-7033.●서울 동대문구 11월21(월)∼22일(화) 경기도 양평에 소재한 중미산천문대에서 초등학교 3∼6학년 80명을 대상으로 별자리 캠프를 연다. 천체관측법 교육 및 별자리관찰 실습, 숲생태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한다. 오는 31일(월)까지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무료.(02)2127-4251.●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 내 창업보육센터 입주자를 11월1(화)∼15일(화)까지 모집한다. 입주자로 선정되면 7평의 사무실에 행정 장비와 법인이나 공장설립 등에 관한 정보와 법률자문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모집업체 수는 4곳이며 6개월에서 2년까지 입주가 가능하다.(02)2289-1572.●서울 마포구 망원1동 소재 망원 월드컵시장이 17일(월) 시설현대화사업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열었다. 아케이드가 설치됐고 간판 및 좌판이 정비됐다. 보행이 편리하도록 통로를 정비하는 한편 소방도로 진입로, 우수관로 등 기반 소방시설도 정비했다.(02)322-6757.●경기 성남시 21일(금)까지 야탑동 코리아 디자인센터에서 ‘2005 성남우수상품 박람회’를 개최한다. 중소·벤처기업의 판로개척을 지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디지털 IT 제품·우수발명품 등이 소개된다. 수출상담회·채용박람회·구매상담회 등도 마련된다.(031)729-3832.●인천 남동문화원 29일(토) 경기도 화성 일대 문화유적에 대한 답사를 실시한다. 오전 8시30분 남동구청을 출발해 정조대왕 융건릉, 화성 창용문, 연무대, 장한문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참가자는 선착순(40명)으로 모집한다. 참가비 1만원.(032)431-1717.●경기 과천시 31일(월)까지 시 청소년상담실 위탁운영기관을 모집한다. 위탁 대상은 경기도 내에 주 사무소를 둔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다. 위탁 기간은 내년 1월1일부터 2008년 12월31일까지.(02)3677-2217.●경기 부천시 31일(월)까지 시립 ‘범박 어린이집’을 운영할 단체나 법인을 모집한다. 신청 대상은 보육을 목적으로 한 사회복지법인이나 학교법인, 비영리법인, 영유아 보육 관련 단체, 시설운영자 자격을 갖고 있는 개인(60세 이하) 등이다. 위탁 기간은 내년 1월부터 3년간이다.(032)320-2364.●경기 시흥시 11월 말까지 만 60세 이상 노인, 희귀 난치성 질환자·기초생활수급자·국가유공자·차상위계층·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유행성 독감(인플루엔자)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한다.(031)310-3551,310-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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