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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플러스] 서울시 미혼모 임대주택 확대키로

    미혼모를 위한 임대주택이 확대·운영된다. 서울시는 6일 “미혼 양육모들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와 협의하고 있다.”면서 “미혼 양육모 그룹홈을 시내 동·서·남·북 4개 권역에 1곳씩 확충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선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미혼 양육모 시설을 다음달 중 임대주택으로 옮기고, 수용 인원도 미혼 양육모와 자녀 5가구(10명)에서 13가구(26명)로 늘릴 예정이다. 또 서울시는 미혼 양육모에게 자녀 양육비, 의료비,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비를 매월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유건봉 가족보육담당관은 “자녀를 양육하려는 미혼모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안정된 환경에서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출산·분만 지원 위주의 지원을 자녀 양육을 위한 환경 조성으로 폭넓게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 [커리어 우먼] 김선주 SC제일은행 상무

    [커리어 우먼] 김선주 SC제일은행 상무

    34년 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농구단의 전도유망한 한 선수가 갑자기 농구를 그만두고 은행 업무를 보겠다고 나섰다. 은행 인사부는 운동만 해 온 여고 졸업생이 얼마나 버틸지 반신반의했지만 의지가 워낙 강해 심사부로 보직을 바꿔줬다. 이 여성은 제일은행 역사상 첫 여성대리, 첫 여성차장, 첫 여성지점장, 첫 여성 임원이라는 ‘최초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었다.SC제일은행 소매영업운영부 김선주(53) 상무는 여성이라는 장벽과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고, 지금은 행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장부’로 통한다. ●“자서전 써 주고 싶은 상사” 김 상무를 만나기 전에 부하 직원들을 먼저 만나봤다. 소매영업운영부에서 5년째 함께 일하는 손경화 부장은 “자서전을 대필할 능력이 된다면 내가 꼭 써주고 싶은 분”이라고 말했다. 여성 행원들이 김 상무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자신이 나갈 ‘좌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같은 부의 조종복 팀장은 “휘하에 500여명을 거느린 김 상무는 부하 직원의 이름은 물론 집안 사정이나 특기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서 “한 번 통화한 사람의 목소리도 죄다 기억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지점 이름을 바꾼 지점장 부하 직원들의 이런 칭찬에 김 상무는 “‘뻥’이 심하다.”며 웃었다. 그러나 걸어온 길을 보면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농구명문 숭의여고를 졸업한 김 상무는 청소년대표를 지낸 유망주였다.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옥자씨 등이 그와 한솥밥을 먹었다. 배구계의 ‘대모’ 조혜정씨와 ‘탁구영웅’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도 숭의여고 동창생들이다. 1년 반을 농구부에서 뛰던 김 상무는 ‘평생 직장’을 갖기 위해 전직을 결심했다. 당시 여성행원들은 ‘전직고시’를 거쳐야만 남성과 같은 ‘행원’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결혼과 동시에 퇴사한다는 ‘결혼 각서’를 써야 했다. 김 상무는 전직고시에 합격해 남성들과 동일한 ‘신분’을 확보한 뒤 입행 10년차이던 1981년에 남자 동기들을 제치고 대리가 됐다. 남자 동기들이 노조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1995년 김 상무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고덕출장소 소장에 임명됐다. 출장소는 분양도 안돼 텅텅 비어 있는 상가 2층에 있었고, 오전 내내 고객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김 상무는 출장소 위치가 그려진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 부녀회를 찾아다녔고, 자영업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적립식 신탁대출’을 판매했다.1년 뒤 출장소를 동종 그룹군 경영평가 1위에 올려 놓았다. 2001년 신사 중앙지점장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신사동에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제일은행 지점이 서너개나 됐다. 고객들이 비슷비슷한 지점 이름으로 혼란을 겪자 김 상무는 7개월 동안 본사를 설득해 이름을 ‘로데오 지점’으로 바꿨다. 제일은행 76년 역사상 지점장이 점포 이름을 바꾼 것은 김 상무가 유일하다. ●“기회되면 결혼하고 싶다.” 김 상무는 36년 은행 생활 대부분을 고객들과 함께 현장에서 보냈다. 일선 지점 근무 때 만난 인연으로 아직까지 자산을 관리해 주는 고객도 많다.“고객을 거래 대상이 아니라 가족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들이 감동을 합니다.”김 상무는 10만원을 예치한 고객 100명이 1억원을 거래하는 고객 1명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금액보다 사람을 확보해야 고객을 더 많이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93년부터 골프를 하기 시작한 김 상무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230야드가 넘는 장타자이다. 남성 고객들과 허물없이 만나기 위해 골프를 배웠고, 남성과 같은 티잉그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50대인 그녀는 ‘미혼’이다. 일부러 안한 게 아니라 바빠서 못했다고 한다.24평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김 상무는 “기회가 되면 꼭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주 SC제일은행 상무 경력 ·1953년 충북 옥천생 · 71년 숭의여고 졸업, 제일은행 입행 · 95년 고덕출장소장 · 96년 가락본동지점장 · 98년 반포지점장 · 99년 로데오지점장 ·2001년 고객서비스팀장 · 02년 서울CS센터부장 · 04년 운영지원단 상무 대우 · 05년 소매영업운영부 상무 글 이창구 사진 정연호기자 window2@seoul.co.kr
  • [여담여담] 김주하·이금희 그들은 행복할까/김미경 문화부 기자

    여성 아나운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최고의 인기 직업임에 틀림없다. 특히 뉴스 앵커로 활약하거나 토크쇼 사회를 본다면 더욱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MBC 간판 아나운서 김주하 앵커와 KBS를 떠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이금희 아나운서는 그런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김 아나운서는 6년째 9시 뉴스 앵커를 맡아왔고,2004년 아나운서국에서 보도국으로 옮겨 취재활동도 벌여왔다. 그만큼 앵커로서의 근성이 남달라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인물’ 등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런 그녀가 최근 임신으로 인해 앵커 자리를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6월이 산달이지만 4월 봄개편 전에 앵커직을 반납하겠다는 것이다. 출산 후 앵커로 컴백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 김 앵커가 임신으로 하차할 것이라는 둥, 미혼 아나운서로 바뀐다는 둥 각종 소문이 나돈 상황에서 그녀의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넉넉한 옷차림의 임신한 여성 앵커가 뉴스를 맡으면 안 되는 것일까? 심각한 저출산시대,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는데 모범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최근 10㎏ 이상을 감량하고 TV에 모습을 드러낸 이금희 아나운서도, 여전히 외모로 평가받는 여성 아나운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드러운 진행에 푸근한 인상이 장점인 그녀는, 지난해 퀴즈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뚱뚱한 아나운서는 프로근성이 없다.’는 공격을 받아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살을 뺀 뒤 ‘그녀가 변했다.’라는 카피와 함께 백화점 CF에도 출연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들을 질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미국 연수차 들렀던 NBC방송사의 한 여성 앵커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이 됐는데도 당당히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또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여전히 건강한 외모에서 뿜어나오는 파워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 않은가.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는 여성들이 외국 방송사엔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출산을 4개월 남짓 앞두고 앵커에서 물러나겠다는 김 아나운서와,“어떻게 살을 뺐어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만 하는 이 아나운서. 그녀들은 지금 과연 행복할까?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남과여] ‘청순한’ 여자 ‘백마 탄 왕자’ 환상이 깨질때

    [남과여] ‘청순한’ 여자 ‘백마 탄 왕자’ 환상이 깨질때

    남자라면 한번쯤 청순하고 단아한 여인이 자기 곁에 있기를 꿈꿔본다. 약간의 가련미(可憐美)까지 갖추면 금상첨화겠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키 크고 잘 생기고 돈 많고 성격·매너 좋은 ‘백마 탄 왕자’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재주건 재수건 용케 그런 사람을 만났다 치자. 얼마나 오래 갈까. 내 남자, 내 여자에 대한 환상의 포말이 부서지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 “이 황당함을 어째?” 남자들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옷차림이나 외모에서 허점이 발견될 때 여성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고 말했다. #“앗, 겨드랑이 털이 보이는 민소매” 김성국(28·회사원)씨는 현재 외모가 예쁜 여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 김씨가 보기에 여자친구는 예쁘면서 착하기도 해 1년 넘게 사귀면서 단 한번도 황당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새로 산 치마를 입고 나타난 여자 친구의 스타킹 사이로 삐져나온 다리털을 보고 말았다.“얘기해 주기도 어렵고, 또 신경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와 비슷한 경험 때문에 청순한 여자 친구의 이미지가 깨진 20대 남자들이 많았다. 회사원 백민기(29·가명)씨도 겨드랑이 털이 듬성듬성 보이는 민소매 옷을 입은 여자친구를 본 순간 눈에 씌인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머리를 감지 않아 냄새가 날 때, 손톱이 지저분할 때 등도 ‘내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의 사례로 지목됐다. 결혼 상담업체 ㈜선우의 연애컨설턴트 정미지씨는 “외모를 단정히 하는 것은 남녀관계를 떠나서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면서 “기본을 지켜주지 못할 때 상대방에 대해 황당한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뉴스에도 관심 필요…전혀 모르면 황당해요.” 30∼40대 남성들은 사회·정치·경제 문제 등 기본적인 시사에 전혀 관심없는 애인이나 아내에 대해 ‘황당’하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회계사 황모(34)씨. 굳이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뉴스에 관심이 많다. 대학생 때부터 신문을 읽어오던 버릇이 몸에 배어 있기도 하거니와 각종 모임에서 시사상식이 없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황씨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시사문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내는 신문도 보지 않을 뿐더러 TV에서 뉴스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것이다. 박민수(41·회사원)씨도 TV 드라마에만 열광하는 아내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박씨의 아내는 드라마가 아니면 홈쇼핑만 시청한다. 박씨는 홈쇼핑을 보다가 갑자기 주문전화를 거는 아내를 보면 애정지수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극성맞고 호들갑 떠는 것도 싫어요.” 여자의 단아한 이미지에 환상을 가진 남성들은 극성맞고 호들갑스러운 자기 여자의 모습을 볼 때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웃거나 떠든다든지, 화장을 하는 행동을 보면 환상이 깨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기 모습을 시도 때도 없이 찍어대는 ‘셀카 공주’의 모습도 별로 맘에 안든다는 사람이 있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자기야, 새해에는 제발… “난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 올해에도 우리 예쁜 사랑 계속 잘 키워나가자∼”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야 이런 ‘닭살’ 돋는 말이 별로 어색하지 않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무리 잘나고 나에게 잘해준다 해도 어찌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없을까. 새해를 맞아 으레 스스로에게 하는 ‘작심삼일용’ 소원 못지않게 애인에게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마련. 여성포털사이트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가 최근 미혼 남성 198명, 미혼 여성 236명을 대상으로 ‘새해 내 애인에게 바라는 점’을 설문조사한 결과 남자는 여자친구의 외모를, 여자는 남자친구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길 가장 원했다. 남성 응답자의 70%인 138명은 여자친구에게 새해에는 여성스럽게 꾸미기를 바랐다. 반면 여성의 67%인 158명은 남자친구가 능력을 좀더 개발하길 원했다. 남자에게는 능력, 여자에게는 외모를 바라는 통속적인 잣대가 이미 사랑에 빠진 연인 사이에서도 유효한 셈이다. 두번째 바람으로 남자들은 애인의 금연(11%)을, 여자들은 남자친구의 금주(17%)를 꼽았다. 연애하기 전 혹은 초기에는 눈에 꽁깍지가 씌어 뭐든 예쁘게 보이고 참을 수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술, 담배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남성의 경우 외모에 이어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 금연을 꼽았다. 겉으로는 여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며 ‘쿨’한 남자친구 역할을 했지만 내심 애인이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3위는 남녀 똑같이 각각 10%가 ‘운동하기’를 꼽았다. 애인이 요즘 유행하는 몸짱이 되길 원해서인지 건강하게 생활하길 원해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밖에 남자들은 애인에게 술 끊기와 자신에게 더 관심 가져주길 원했으며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담배를 끊고 관심을 좀더 가져주기를 새해 애인에게 바라는 소원으로 택했다. 여자친구의 능력이 높아지길 바라는 남자는 6%, 남자친구 외모가 깔끔해지길 바라는 여자는 단 3%밖에 없어 일반적인 예상과 차이가 났다. 사랑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지만 연애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입맛에 맞도록 바꾸는 것은 이기적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습을 바꾸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2006년 새해에는 애인을 위해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일년’의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뻑이 가요 뻑이 가” 여성들은 남성들의 비상식적인 생리현상을 볼 때 ‘백마 탄 왕자’의 환상이 여지없이 산산조각난다고 말했다. #“우렁찬 트림은 화장실에서나 하시죠.” 20대 초반 회사원 박은영(여)씨는 직장의 남자 동료·선후배들이 식사만 하고 나면 왜 그렇게 트림을 우렁차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트림하는 얼굴과 소리만 듣게 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후덕함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그는 “어떤 남자 동료에 대해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트림 한 방에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렸던 적도 있다.”고 했다. 트림뿐 아니라 남자 친구나 남편의 방귀 또한 여성의 환상을 깨는 데 즉효다. 전업주부인 김모(43)씨는 남편이 방귀를 뀌고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자기 쪽으로 휘휘 날려보내는 행동을 할 때 겉으론 웃고 말지만 속으로는 ‘왜 저럴까.’ 싶다. 조금만 움직여 화장실이나 베란다로 나가면 될 것을 항상 이런 식이다. 김씨는 “여자 앞에서 트림을 크게 하는 것이나 소리가 큰 방귀를 뀌는 것이 혹시 자기의 우월함을 증명해 보이려는 유치한 태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김씨의 남편은 자기 아내의 짐작과 달리 단순히 재미삼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삐져나온 코털 어찌하오리까.” 여성들 역시 깔끔하고 청결하지 못한 남자의 모습에서 환상의 붕괴를 느낀다. 회사원 정모(27)씨는 올 10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보면서 가끔 ‘이걸 얘기해야 하나.’라며 망설인다. 깔끔한 성격이라 나름대로 청결을 유지하지만 가끔 염치없이 불쑥 나와있는 코털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떨 땐 애인이 보는 앞에서 코털을 잡아 뽑기도 한다. 정씨는 코털 깎는 가위는 여성 전유물이 아닌데도 잘 이용하지 않으려는 애인에 대해 황당했다고 한다. 주부 김모(32)씨는 결혼 후 남편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했다. 출장을 다녀온 뒤 가방을 정리하는데 넣어준 속옷이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그렇게 깔끔하던 남편이 알고 보니 씻기 귀찮아 하고 속옷도 잘 안 갈아 입는 스타일이었던 것. 두루마리 화장지를 쓰고 나서 휴지통에 버리는 대신 두루말이 안쪽 홈에 밀어 넣는 것을 보면 ‘정말 깬다.’는 생각이 든다. #“쪼잔한 모습, 충격 또 충격” 결혼 4년차 이모(여)씨는 과자봉지, 커피봉지에 붙어 있는 포인트적립 쿠폰을 너무 기뻐하면서 오리는 남편을 볼 때 환상이 깨졌다고 했다. 우리 남편이 이렇게 좀스럽다니. 어떨 땐 세살배기 아이 먹으라고 사둔 과자를 자기가 다 먹고 애한테 먹인 척 시치미 뗄 때도 있다. 시댁 가서는 있는 어리광 없는 어리광 다 피우고, 처가집 가서는 어른스러운 척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여자 연예인의 싸이월드나 홈페이지에 몰래 들어갔다 들켰을 때, 유치한 만화를 보며 낄낄거릴 때도 부인이나 애인을 실망시키는 경우로 꼽혔다. 김기용 나길회기자 kiyong@seoul.co.kr
  • “형식보단 의미… 이런 명절 어때요”

    “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봉사활동을 하면 차례 못 지내는 것을 조상님이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요.”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이신애(가명·29·여)씨는 설날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에 지난해부터 온 가족들이 모여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명절 음식을 나눠주며 봉사활동을 한다. 이씨는 일곱자매 중 막내로 미혼이지만 언니들은 모두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이 때문에 설날에 차례 지내기가 어렵다. 특히 3년 전 부친이 세상을 뜬 뒤에는 차례 지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명절만 되면 고민하던 이씨는 언니·형부들과 상의한 끝에 형식적인 데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설날 봉사활동’이다. 이씨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 대신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어 모든 가족들이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가족간 ‘종교갈등’ 해소를 위해 형식을 버리는 집도 있다. 전북 전주에 사는 김석태(30)씨는 2003년부터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장남인 김씨 아버지는 종교가 없어 차례를 고집하지만, 작은 아버지 3명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작은 갈등이 있어 왔던 게 사실. 절을 하거나 차례를 지내지는 않지만 반대로 기도나 찬송가도 없다. 일가친척이 모여 조촐하게 차린 명절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형식이라면 형식이다. 김씨는 “명절이면 종교 때문에 갈등을 겪는 집이 적지 않은 것 같다.”면서 “형식에 연연하지 않으면 서로 자기 가치관에 맞는 절충점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설 연휴 ‘맞선데이’

    설 연휴 ‘맞선데이’

    ‘설날=선날?’나이가 꽉찬 미혼남녀들은 설날이 싫다.‘싱글 스트레스’는 명절이 되면 최고조에 이른다. 가족이나 친지들이 무심코 건네는 “올해는 결혼해야지.”라는 덕담은 덕담이 아니다. 싱글들의 명절 스트레스 해소책이 바로 설 연휴를 이성과 만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일이 바빠 이성을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명절 연휴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확인되지 않은 속설일 수도 있지만 ‘명절 맞선’은 성사율도 높다고 한다. ●연휴 내내 맞선만 보기도 대기업 연구원 박모(29·여)씨는 설날인 29일 맞선을 본다. 평소 바쁜 직장생활로 남자 소개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박씨는 “가족모임에 빠지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설날에는 유명 맞선장소들이 덜 붐빌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A(32)씨는 박씨보다 더 적극적이다. 부모와 명절을 보내지 않고 연휴 첫날부터 3일간 내리 맞선을 볼 계획이다. 다음달 임용이 되면 바쁠 것 같아 맞선에 ‘올인’하기로 했다. 명절을 가족과 지내지 못해도 빨리 결혼하는 게 더 효도라고 생각한다. ●원정 맞선도 ‘연휴 맞선’의 또다른 장점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북 전주에 사는 대학원생 권모(31·여)씨는 서울 남자와 맞선을 본다. 서울 사람을 원했던 그는 결혼정보업체쪽에 특별히 설날 ‘서울 맞선’을 부탁했다. 마침 특수 전문직이어서 평일에는 시간을 좀체 낼 수 없는 남자가 있어 ‘택일 궁합’이 일치했다. 권씨는 설 전날인 28일 맞선을 본 뒤 서울 사는 작은아버지댁에서 명절을 보낼 계획이다. 강원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원모(38)씨도 ‘서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상경한다. 원씨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 사는 여성을 만나고 싶다. 연휴기간에 맞선을 보면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명절 맞선이 결혼골인 가능성 높아” 명절을 ‘결전의 날’로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혼정보업체도 호황이다.㈜듀오의 경우 설 연휴를 앞두고 상담건수가 평소보다 30%가량 늘었고 실제 가입자 수는 10%가량 증가했다.㈜선우 등 다른 업체도 문의전화가 평소보다 50∼100% 늘었다. 커플매니저 백경선씨는 “주위의 압박 때문에 빨리 짝을 찾고 싶다는 심리적 조바심이 강해져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마음에 들면 그 다음날 바로 또 만날 수 있는 점도 연휴 맞선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2006년 띠별운세 보세요

    올해의 운세가 궁금하시지요. 독자 여러분을 위해 ‘We팀’ 기자들이 운세 전문가들과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 봤습니다. 잘맞고 안맞고를 떠나 설 연휴에 심심풀이로 들여다 보면 기분이 썩 좋아질 것입니다. 부자되세요~ # 쥐띠, 만사 형통 계획하는 일이 착착 진행되는 운이며 부부가 화목하고 가정이 화평하니 사업가는 일취월장하겠다.2월에는 혼자 생각으로 고집부리지 말고 윗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면 더욱 좋다.5월이 제일 길하다. 운이 매우 좋아 모든 일이 크게 이루어진다.9월에는 서두르지 말 것.10월은 생각지도 않았던 화를 당할 수. 남과 언쟁을 피하는 것은 물론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라. 36년생은 올해 건강에 매진해야. 무리하지 않는 가벼운 운동이 좋다.48년생은 가정이 화목하니 이보다 더 좋은 운은 없다. 무리한 재물의 이득이나 투자는 피해야.60년생은 돈이 여기저기서 굴러 들어오나 빠져나가는 데도 만만치 않다.72년생은 정해진 순서와 절차를 무시하면 훗날에 화의 근원이 된다. # 소띠, 실업자는 취업의 즐거움 신년 초에는 일이 잘 안 풀려서 답답하고 초조하겠으나 선후배의 도움으로 일이 성사된다. 실업자는 스카우트 제의나 취업의 즐거움이 있다.1월에는 거래에 조심해야.7월은 집안에 경사가 있으니 자식이나 벗을 얻는다.10월에는 사업확장을 신중하게.11월은 몸도 마음도 지쳤으니 휴식을 취하면서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을 것. 37년생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실천이 중요.49년생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이니 과욕을 버리고 편하게 지내라.61년생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좋은 해. 긍정적인 가능성이 많아 재물도 따른다.73년생은 앉아서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무조건 도전해야 성취한다. # 범띠, 대박운 가정이 편안하고 활력이 넘치며 재물의 이익이 발생하는 좋은 운이다. 구직자는 일할 기회가 생기며 직장인은 팀과 의논하고 연구하면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다.3월은 가망 없어 보이던 일이 조금씩 나아지고,4월에는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귀인의 도움까지 가세한다.8월은 심신이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윗사람이나 주위사람들의 자문을 얻어라.12월은 별 무리 없이 거래가 성사된다. 돈도 들어오고 조건이 좋아 뒤탈이 거의 없다. 38년생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나 형제, 자매 혹은 자녀의 도움으로 거뜬히 해결.50년생은 동업자나 친구와의 결별수가 있으니 조심. 신용과 의리가 재산임을 잊지 마라.62년생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한 해. 예기치 않은 경사가 생긴다.74년생은 도전과 모험이 성공의 지름길이니 과감한 결단 필요. # 토끼띠, 시작은 어렵지만 갈수록 운이 좋아진다 어려움이 가고 한결 마음이 가볍고 의욕이 넘친다. 전반기는 남의 일로 분주하고 별 소득도 없지만 후반기는 새로운 사람과 계획한 일이 착착 발전하는 운.2월은 분발하는 달로.8월은 하늘도 당신의 뜻을 알고 돕는 형국. 소망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행해야 좋다.10월은 한 번 걸린 병이 만성이 된다. 미리 주의하는 것이 좋다.11월은 작은 거래부터 시작하여 차츰 신용과 믿음이 생기면서 큰 거래가 이루어진다. 39년생은 급하다고 우물에서 숭늉을 찾으면 무슨 소용인가. 자중하고 때를 기다림이 좋을 듯.51년생은 직장 동료나 후배의 도움으로 인기가 상승하고 승진의 수가 있다.63년생은 추진하는 일에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다.75년생은 눈 앞에 이익을 좇아 행동하면 발전이 없으니 숲을 보고 움직여라. # 용띠, 뜻하면 이루어진다 유통업자는 투자하고 실행하면 재물에 이득이 있다. 뜻이 있는 사람은 좋은 자리나 취업 혹은 전근과 전직에 명예가 올라가는 해. 4월은 희망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바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라.8월은 상한 음식을 특별히 주의할 것.9월에는 귀인이 도와주고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룬다. 40년생은 생각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일자리가 생겨 취업의 즐거움이 있다.52년생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태양이 빛나는 즐거운 한 해가 약속된다.64년생은 미루어 왔던 일을 추진하는 계기가 된다.76년생은 마음을 비워야 큰 복이 온다. # 뱀띠, 많이 베푸세요 평소의 선행으로 좋은 덕이 쌓인다. 전반기는 다소 달갑지 않은 일을 겪으나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6월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9월에는 뜻을 이룬다고 해서 멈추지 말고 항상 초심을 잊지 말자.10월은 바쁜 날이 계속된다.12월은 지나치게 신경쓰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 41년생은 여유로운 마음이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53년생 사업가는 자금의 여유와 재물의 이득을 볼 수 있으나 사소한 일로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다.65년생은 마음이 들뜨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성심을 가지고 일에 임하면 만사형통.77년생은 일이 순조롭게 풀리니 마음의 풍요롭고 지갑도 두둑해진다. # 말띠, 상사나 윗사람의 도움으로 대성한다 자신을 믿고 행하면 일이 서서히 해결되며 막강한 실력자가 당신편에 있다.4월에는 적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7월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가족들의 기도가 필요하다.8월은 평소 하던 방식대로 정직하게 사업을 꾸려 나가면 주변의 도움을 받게 된다.11월은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42년생은 어지럽고 힘든 마음이 친구와 동료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는다.54년생은 베푼 만큼 돌아온다.66년생은 실패의 원인은 과욕에 있음을 알아야.78년생은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 등 좋은 일이 따라온다. # 양띠,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각은 많아도 눈앞은 안개가 낀 것 같아 잘 안 보인다. 모험과 도전정신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승산이 있으면 밀어붙여라. 횡재가 따른다. 3월은 귀인의 도움으로 뜻밖의 재물을 얻는다.5월은 기초체력을 보강해야.9월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는 좋은 시기이다.12월은 손익을 냉철하게 따져 보고 일을 추진하라. 실패할 확률이 높다. 43년생은 지나친 친절을 삼가야. 괜한 구설수가 있다.55년생은 무조건 일을 벌여라. 문서 유통 등 새로 투자한 일에 재물이 따라온다.67년생은 근심이 떠나가고 즐거움만 남는다.79년생은 중요한 일은 꼭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야. # 원숭이띠, 후반기 큰 이득 올초에는 금전적인 지출과 손실로 인해 마음이 흐려진다. 하지만 미혼자는 뜻밖의 인연을 만나며 실업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개척하는 운. 후반기는 재물운이 강하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1월은 불의의 사고 주의. 골절상이나 타박상 등을 당할 수 있다.4월은 재물이 들어와도 나가는 일이 자꾸 생긴다. 새로운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7월은 도와 주는 사람이 생긴다.9월에는 작은 것부터 이루려고 노력해야.44년생은 사회와 직장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잠시 쉴 때다.56년생은 형제자매 친구 가정이 다 화목하다.68년생은 동업자는 관계를 재정립할 때이며 독립을 해도 성공한다.80년생은 시행착오를 통해 성공의 길로 간다. # 닭띠, 무슨 일이든 앞장서야 가정에는 근심은 사라지고 행복의 나날이다. 세상일이란 항상 준비한 자에게 행운이 오니 기다림보다는 직접 나서서 진두 지휘하면 명예와 부가 따른다.2월은 무리하지 말고 기다리는 시기이다.7월은 타인의 도움을 잠시 받는다. 귀인은 남쪽에.9월은 음해하려는 자로 인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12월에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이겨내면 반드시 이익이 뒤따른다.45년생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인생의 활기를 되찾게 한다.57년생은 손재수가 있으나 새로운 투자는 이득으로 돌아 온다.69년생은 신의와 노력이 있어 덕이 쌓인다.81년생은 배우는 자세로 모두에게 신망을 받는다. # 개띠, 돈이 보인다 하는 일에 확신을 가져야 좋은 결과가 온다. 결국에는 재물과 권세를 얻는다.3월은 강이 모여 바다가 된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4월은 어려운 일도 술술 풀리고 불경기도 헤쳐 나가니 좋은 결과가 기다린다.8월은 좋은 약보다도 적당한 운동이 더 효과가 크겠다.11월은 좋은 거래가 성사된다. 46년생은 좋은 가치를 스스로 지키는 노력이 필요.58년생 친하더라도 함께 일을 도모하지 마라. 끝이 좋지 않다.70년생은 정도를 지키고 행할 때 일취월장한다.82년생은 신뢰가 최고의 자산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 돼지띠, 소신껏 밀고 나가라 재물의 근심은 완전히 면할 수 없으나 침체기를 벗어 나는 운세이다. 후반기에는 즐거운 소식이 있으니 재물과 명예가 동시에 따라온다.1월에는 비록 이루지 못했으나 6월에는 이익이 온다. 직접 거래가 중요하다. 귀인은 동쪽에 있다.7월은 술 때문에 병이 끊이지 않는다.11월에는 협조자가 생기니 어려운 문제도 해결된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47년생은 자리를 옮기거나 직장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에는 정열이 필요하다.59년생은 길을 잃어 헤매는 수이나 귀인의 도움으로 전화위복 된다.71년생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은 꾸준히 한다면 좋은 결과가 기다린다.83년생은 공부와 놀이를 정확히 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 설날 강추 DVD 10선

    차린 거는 많은 데 마땅히 손 가는 데가 없다. 설날 연휴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극장에 가자니 명절 내내 친척들과 실랑이를 한 뒤라 복작거리는 극장 의자를 비집고 들어가 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 편안한 휴식과 놓치고 있던 숨은 영화 감상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리스트를 공개한다. 양질의 편성표이니 취향대로 골라 볼 수 있으며 비교적 최신작들을 모아 막 쪄낸 만두처럼 따끈따끈하다. mlue@naver.com ● 사랑해, 말순씨 감독 박흥식 | 출연 문소리, 이재응, 윤진서 ‘인어공주’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솜씨 좋게 엮었던 박흥식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때는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가파른 변화를 겪던 시대에 중학교 1학년이었던 광호는 사춘기와 개인사적 비극을 동시에 맞는 성장통을 겪는다.‘행운의 편지’를 받은 주변 인물들은 오비이락처럼 잇따른 불행에 빠진다. 첫사랑인 옆방 누나는 고향인 광주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광호를 유일한 친구로 생각하던 철수는 도둑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쫓겨나며 엄마는 큰 병을 앓는다. 문소리의 농익은 아줌마 연기를 비롯해 아역배우들과 조연들의 걸출한 연기는 영화에 윤기를 더한다. 당시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세트와 햇살이 드는 집의 색감 등 영화의 따뜻함과 애잔함을 반영하는 영상이 아름답다. 초기 편집본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 특색 있다. 삭제장면,NG장면, 코멘터리 후기, 영화제작 과정 다큐멘터리 등 연출진과 출연진의 애정이 녹아 있는 다양한 부가영상을 만날 수 있다. ● 불량공주 모모코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 출연 후카다 쿄코, 쓰치야 안나 일본식 코미디에선 가끔 예상치 못한 황당한 상상력과 엽기적인 시추에이션이 벌어진다. 로코코 양식에 빠져 사는 소녀 모모코는 프릴 달린 양산, 부푼 소매의 블라우스, 레이스 치마를 입기 위해 아버지가 팔던 ‘짝퉁’ 명품을 인터넷으로 팔기 시작한다. 이 광고를 본 스쿠터 폭주족 이치코는 특전사 복장에 검은 눈 화장을 한 채 모모코를 찾아온다.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은 서로의 개성을 죽이거나 어줍지 않은 화해를 시도하지 않으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불연속적인 편집, 말풍선 등의 만화적 영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녀들의 엉뚱한 이야기에 동력을 제공한다. 여기에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을 맡았던 간노 요코의 스코어가 어우러져 독특한 개성을 배가시킨다.CF 출신 감독이 만든 쨍하고 원색적인 영상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는 것처럼 화려한 이미지를 보여 준다. 부가영상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과 삭제장면 역시 코믹하다. ● 소년, 천국에 가다 감독 | 출연 박해일, 염정아 어린 시절 빨리 어른이 되길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숙한 소년의 이야기는 종종 등장해왔지만, 저승사자의 실수로 인해 60년이나 먼저 죽게 된 네모는 하루를 1년처럼 60일간 사는 운명을 맞는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나중에 크면 미혼모와 결혼하겠다는 이 엉뚱 소년은 어머니가 죽자 만화가게를 운영하는 미혼모 부자를 향해 연정을 키운다. 극장 화재로 부자의 아들과 영혼이 바뀌어 급하게 어른이 된 네모는 천진함과 유머로 부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급속도록 늙어가자 이별 또한 급하게 다가온다. 아역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의 연습과정과 촬영장면, 감독과 배우들의 코멘터리,16개의 삭제장면, 부자의 춤추는 장면 모음, 키스 장면 모음, 메이킹 필름을 부가영상에서 볼 수 있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감독 민규동 | 출연 엄정화, 황정민, 김수로, 임창정, 주현, 오미희 명절을 맞아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되짚고 싶다면 이 DVD가 제격이다. 여섯 커플이 일주일 동안 벌이는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면서도 토막토막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전개된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을 토스하듯 가볍고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러나 그저 달콤할 것 같은 제목과 달리 인생의 면면은 때로 잔인하다. 아이를 지우러 간 아내가 걱정된 남편은 지하철에서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아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1분 동안 만이라도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한다. 산다는 것은 때로 이렇게 절박하고 간절하다.‘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던 민규동 감독은 사려 깊게, 우리 안에 이런 인연들이 얽혀 있으니 좀 더 따뜻하게 세상을 살자고 에둘러 말한다.2.35:1의 아나몰픽 영상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참여한 OST도 DTS 사운드로 담백하게 표현되었다. ● 이터널 선샤인 감독 미셸 공드리 |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이 이야기는 기가 막히다.‘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등 기발한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만과 미셸 공드리의 합작품으로 실연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우는 라쿠나사와 기억의 삭제를 의뢰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최근 기억부터 점점 처음 기억을 잊어가던 남자는 소중한 기억을 삭제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다른 기억으로 도망친다. 사랑했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어린 시절의 수치스러운 기억들 속으로 숨어들지만 결국은 라쿠나 직원들에게 제거 당하고 만다. 모든 기억을 잊어도 사랑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영화의 명쾌한 결론이다. 미셸 공드리의 재기발랄한 연출력은 부가영상에 실린 메이킹 필름과 제작진과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벽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지는 ‘새러토가 애비뉴’의 촬영과정이 자세하게 실려 있으며 흥미로운 삭제장면도 볼 수 있다.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확인할 수 있는 깔끔한 화질과 공간감이 충실하게 표현된 사운드가 돋보인다. ● 헐리우드 엔딩 감독 우디 앨런 | 출연 우디 앨런, 테아 레오니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지만, 우디 앨런은 관속에 들어가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떨 인물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을 소재거리 삼아 뉴욕에 묻힌 유태인 뉴요커가 겪는 부조리한 상황들을 속사포처럼 쏴 댈 것이다. 한국인 입양아 순이와 결혼한 것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그의 촌철살인의 유머와 철판을 깐 블랙코미디는 일흔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오스카를 두 번 수상했으나 예전 명성 같지 않고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살고 있다는 것 등 자기 자신을 빗댄 것이 분명한 이야기를 순진하고 연약한 얼굴로 쉬지도 않고 떠들어댄다. 블록버스터 재기작의 메가폰을 잡은 ‘왕년의 명감독’은 크랭크인과 동시에 시력을 잃고 급기야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연출하기 시작한다. 화질이나 사운드는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할리우드를 향해 서슬 퍼런 조소를 날리는 노장의 블랙유머에 빠지다 보면 그런 것쯤 별 문제 되지 않는다. ● 야수와 미녀 감독 이계벽 | 출연 류승범, 신민아, 김강우 시각장애인 소녀와 별 볼일 없는 총각의 러브스토리는 이미 ‘안녕,UFO’에서 한 차례 본 적이 있다. 내용상으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자유자재로 슬랩스틱을 구사하는 류승범이 가세했다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범수가 가짜 라디오 DJ였던 것처럼 류승범 역시 목소리를 쓰는 성우로 등장한다. 괴물 소리만 전문으로 내는 단역 성우인 동건은 자신의 차를 택시로 오인하고 탄 시각장애인 소녀를 날마다 태워준다. 그러면서 자신을 고등학교 시절 킹카였던 동창 녀석의 외모로 설명한다. 문제는 소녀가 안구기증을 받으면서 불거진다. 그 동창 녀석과 소녀가 우연한 기회에 만난데다 킹카 동창이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가영상에 제작일기, 감독과 배우 인터뷰, 삭제장면 등이 실렸다. 개그맨 안상태와 류승범의 촬영분이 별도의 클립에 담겼는데 애드리브와 NG 장면이 코믹하다. ● 미스터 소크라테스 감독 최진원 | 출연 김래원, 오광록 조직원 하나를 경찰로 만들어 조직의 끄나풀로 이용한다? 이거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다.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에서는 조직에서 경찰로 보낸 유덕화와 경찰에서 조직으로 보낸 양조위의 극적인 만남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선 그렇게 날선 구도가 긴장감 있게 전개되기보다는 코믹한 면이 부각된다. 조직 안에서도 내놓은 망나니를 데려다 검정고시를 보게 하고 경찰 시험에 응시에 합격하게 만드는 과정이 코믹하다. 기존 영화들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준 김래원의 변신에도 주목할 만하다. 부가영상으로 최진원 감독, 김래원, 강신일, 이종혁이 참여한 코멘터리와 메이킹 다큐, 김래원의 액션 연기,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모은 일문일답, 감독의 해설과 함께 볼 수 있는 삭제 장면, 포토 갤러리, 뮤직 비디오 등이 수록되었다. ● 형사 감독 이명세 | 출연 하지원, 강동원, 안성기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였지만 영상미만큼은 관객들에게나 평단에게 최고 점수를 받았다. 스타일리스트로 명성이 드높은 이명세 감독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뒤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드라마 ‘다모’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접근 방식은 다르다. 가짜 돈과 모반을 꾸미는 역적 무리를 건드리면서도 적일 수밖에 없는 두 남녀의 로맨스를 진하게 그렸다. 달밤 아래 펼쳐지는 환상적인 검술은 탱고를 차용한 춤사위로 강렬함을 더했고 장면마다 등장하는 완벽한 미술과 세트, 의상, 배우의 동선 등은 찬사가 나올 정도로 화려하다. 극장에서 명료한 대사를 듣기 어려웠다면 DVD에서 한층 더 또렷해진 배우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새소리, 발자국 소리, 원근을 조절하여 나는 웅성거림, 사방에서 몰아치고 휩쓸어나가는 듯한 섬세한 사운드도 감상할 수도 있다. 세 개의 디스크로 구성된 이 DVD에는 배우와 감독, 제작진이 함께 한 음성해설을 비롯해 화려한 영상에 대한 비밀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 판타스틱 4 감독 팀 스토리 | 출연 이안 그루퍼드, 제시카 알바, 크리스 에번스 우주 탐험을 하던 4명의 탐사원이 우주 폭풍에 접근하는 계산 오류로 방사선 구름에 뒤덮인다. 이 사고로 그들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초인의 능력을 얻게 된다. 처음엔 이 능력을 재앙이라고 생각하지만 예기치 않은 활약으로 이들은 영웅으로 변신한다. 코믹스가 원작인 만큼 시각효과 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무채색에 가까웠던 영상이 돌연변이 초인들의 활약이 전개되면서 드라마틱하게 변모한다. 화려한 영상의 장점을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는 2.35:1 아나몰픽 영상은 시각적인 청량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며 DTS 음향은 예리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영화의 볼거리가 많은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다. 영화제작 다큐멘터리, 메이킹 필름, 애니매틱 분석, 삭제장면 등 본편 못지않은 흥미로운 영상이 대거 수록되었다.5월 개봉 예정인 ‘엑스 맨 3’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도 있다.
  • [세이프 코리아] ‘악몽’ 된 설 명절 사례

    [세이프 코리아] ‘악몽’ 된 설 명절 사례

    “다 잊고 싶어요. 오죽하면 이사까지 갔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광주에 사는 주부 강순임(36·가명)씨에게 설은 더 이상 기쁜 날이 아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미영(당시 12살)이는 지난해 설 연휴가 시작되던 2월8일 액화석유가스(LPG) 중독 사고로 곁을 떠났다. 강씨는 딸을 가슴 속에 꼭꼭 묻었다. 악몽의 발단은 식혜였다. 밤 11시부터 식혜를 끓이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깜박 잠이 들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약하게 불을 켜 놓은 가스레인지는 불꽃은 사라지고 가스만 조금씩 내뱉고 있었다. 가스는 미닫이문 틈으로 방까지 스며들었다. 침대에는 강씨 부부와 아들, 바닥에는 딸이 잠들어 있었다. 아침 7시, 가스 냄새 진동하는 가운데 심한 두통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부부는 바닥에서 자고 있던 딸아이를 흔들었다. 그러나 미영이는 미동조차 없었고, 동공도 이미 풀려 있었다. 공기보다 무거운 가스가 침대 밑에서 자고 있던 딸 아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119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강씨 가족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남편은 딸을 잃은 충격으로 한동안 일도 제대로 못했다. 강씨는 “사고 직후 동구에서 북구로 집까지 옮겼지만 그날의 고통은 여전히 생생하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부주의로 가족을 잃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은 기쁨 대신 고통이 더해지기 일쑤다. 명절 분위기에 들떠 화재 등 각종 재난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명절 때는 평소보다 20% 가까이 각종 재난 사고가 늘어난다. 지난해 2월8일부터 10일까지 3일 동안의 설 연휴 기간에 발생한 화재 등 재난사고는 모두 305건. 하루 평균 102건이 일어난 셈이다. 설 연휴의 대표적인 재난사고는 교통사고. 지난해 2월7일부터 10일까지 4일 동안 1589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나 50명이 사망하고 3083명이 다쳤다. 즐거운 귀성·귀경길이 자칫 ‘황천길’이 될 수 있고, 가족이 함께 참변을 당할 가능성도 높다. 지난해 2월7일 오후 8시쯤 경북 울진군 삼율리 도로에서 이모(62)씨가 술에 취한 채 오토바이에 아내와 손자, 손녀를 태우고 가다 승합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이씨는 아내와 손자를 한꺼번에 떠나보내야 했다.2월8일 오전 1시 쯤에는 충북 괴산군 동부리에서 승용차 2대가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9일 오후 9시쯤에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전주~순창 도로에서 부부를 포함해 3명이 한꺼번에 승용차에 들이받혔다. 빙판길 접촉사고로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던 길이었다.30대 초반이던 부부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떴다. 명절 교통사고에는 ‘주마(酒魔)’가 끼어든다. 명절 제사상의 음복(飮福)이 자신과 가족을 파괴하는 독약이 된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설 연휴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음주운전으로 비롯되곤 한다.”고 아쉬워했다. 화재도 명절을 악몽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재난이다. 지난해 2월10일 오전 2시쯤 전북 정읍시 내장동의 한 음식점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일어났다. 정읍소방서 소방차 12대와 소방관 44명이 출동했지만 외진 곳의 80평짜리 목조 건물은 순식간에 타버렸다. 새벽 시간이라 사상자는 없었지만 가게 주인은 설에 1억 6000여만원어치의 재산손실을 봐야 했다. 연휴 기간 관리의 손길을 받지 못한 공장도 화마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해 2월10일 오후 9시쯤 경북 칠곡군 중리의 섬유염색공장에서 일어난 불로 원단과 기계, 그리고 공장 1층 400여평을 다 태웠다. 이에 앞서 2월8일 오후 5시 쯤에는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한 돈사에서 전기합선으로 불이 났다. 돼지 500여마리가 죽고, 돈사 270여평이 잿더미로 변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연휴 때면 사람의 손길이 끊기는 상점이나 공장은 쌓인 먼지가 작은 불꽃에도 발화돼 큰 불로 번지곤 한다.”면서 “설 이전 전기, 가스, 보일러 등을 점검해야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연휴 119신고전화 백태 온갖 사건 사고들이 다 몰려드는 119 신고. 설 연휴 때는 어이 없는 전화가 쏟아져 고생하는 일선 근무자들을 애먹이기도 한다. ●생활민원형 설 연휴에 가장 많이 쏟아진다. 귀성 길 도중, 집의 가스 밸브나 수도꼭지를 잠가달라는 것이다.“음식을 만들다가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가스레인지를 켜 놓고 온 것 같아요. 집에 가서 대신 좀 잠가주면 안될까요.”하는 식이다. 위험이 있다는데 119 대원들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로는 곡예하듯 집안으로 들어가지만, 절반 이상은 허탕치기 일쑤다. 애써 들어간 집에 가스밸브는 얌전히 잠겨 있다. ●얌체형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보다 휴양지로 놀러간 부류에 많다. 대부분 부모님에게는 “급한 일이 있어 이번 설에는 못내려간다.”고 둘러댄 사람들이다. 그러나 휴양지에 있으면서 고향에 전화를 걸었을 때 부모님이 “몸이 좀 안좋다.”고 하면,119에 전화해서는 “고향집에 가서 부모님 상태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막상 대원들이 고향 집에 가 보면 아프다던 부모님들은 대부분 멀쩡하다. 자식들이 거짓말을 한 것을 눈치 채고 “관심 좀 가지라.”는 뜻에서 그런 전화를 한 것이다. ●읍소형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심심찮게 걸려오는 전화내용이다. 신고자는 대부분 취객이다.“사고를 당했다.”고 신고한 뒤 대원들이 달려가보면 멀쩡한 상태다. 이들은 “고향에 좀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쓴다. 형편이 어려워 고향 갈 사정은 안 되고, 홧김에 술을 마시니 고향집에 모여있을 일가친척 생각이 간절하다. 이런 사람들은 살살 달래서 집에 곱게 모시는 게 상책이다. ●불륜형 명절 때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부분 유부남·미혼녀 커플이 주인공이다. 유부남은 평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만큼, 명절 때라도 고향에 내려가려고 한다. 미혼녀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만무한 일. 당연히 유부남의 팔을 붙들고 늘어진다. 이렇게 되면 십중팔구 싸움이 일어난다. 평소의 ‘불안정한’ 관계에서 시작되어 말싸움의 수위가 높아지면 폭력 사건이나 자살, 분신 소동 등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명절연휴 재난원인과 대책 설 연휴에 사고가 몰리는 것은 아무래도 명절을 맞아 분위기가 들뜨기 때문이다. 경각심이 느슨해지면서 안전사고가 증가한다. 시장이나 상가, 역 등 다중이용시설의 이용객도 늘어난다. 재난이 발생할 위험요인이 높아지는 셈이다. 폭설과 한파 등의 피해도 작지 않다. 소방방재청은 이번 설 연휴에도 특별 경계근무에 들어간다. 중앙·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을 보강하고, 폭설을 대비해 비상연락체제도 구축한다. 백화점, 재래시장, 터미널, 레저시설 등에 대한 안전관리도 강화한다. 제설대책으로는 제설차, 염화칼슘 살포기 등 장비를 철저히 정비하고 대설·한파로 인한 상습결빙 및 교통두절 예상구간을 특별 관리한다. 교통사고는 대표적인 명절 재난.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은 겨울철 눈이 내릴 때는 운전자들에게 ▲되도록 큰 길로 다니며 ▲절대감속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 고속도로나 시가지 중심도로는 제설제를 자주 뿌리기 때문에 결빙되는 일이 드물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큰 길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 또 빙판에서 급가속, 급브레이크는 금물이다. 귀성 전 차량 점검도 필수다. 타이어 공기압, 오일, 냉각수, 제동장치 등을 살펴야 한다. 스노타이어나 체인도 미리 준비해야 고생하지 않는다. 고향 가는 길은 장시간 운전이 불가피하다. 한두시간에 한번씩은 반드시 쉬고, 차안에서라도 몸을 자주 움직여주는 것이 좋다. 운전을 할 때 의식적으로 몸을 앞으로 당겨 앉고 등과 허리는 바로 세워야 오랜 운전으로 인한 피로도 줄일 수 있다. 특히 명절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귀경길에 집중되는 만큼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귀성길, 집을 나서기 전에는 가스 기구 접속부분에 가스가 새는지 비눗물로 점검을 해본다. 가스레인지는 중간밸브를 잠가둔다. 불필요한 전기 플러그나 콘센트는 뽑아둔다. 누전차단기가 정상작동하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그러나 가스보일러는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얼지 않을 만큼 가동이 되도록 해두어야 한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실내에서 가스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대성그룹 고 김수근 회장가(家)의 혼맥은 매우 단출하지만 3남3녀 모두 경영에 참여할 만큼 2세들의 대외 활동은 왕성하다. 무엇보다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딸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는 고 김 회장가(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다. 독실한 기독교 가풍이 남녀 평등으로, 정략결혼에 대한 거부감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또 통혼(通婚) 과정에서 ‘교회 인연’이 적지 않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며,2세들의 화려한 학벌도 이 집안의 자랑이다. 대성은 고 김 회장이 연탄사업을 기반으로 성장시킨 그룹이다. 한때는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기업으로 손꼽힐 만큼 재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초엔 국내 10대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었다. 그러나 연탄산업의 몰락과 이에 따른 변신이 늦어지면서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으며,2000∼2001년 사이엔 연이은 계열 분리로 그룹 규모가 더욱 줄었다. ●에너지 산증인 김수근 창업주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김수근 대성 창업주가 운명하기 며칠 전 병상으로 그룹 임·직원을 불러 남긴 필담 유언의 한 토막이다. 그의 기업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91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창업주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삼국석탄 대구지점에서 연탄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일본인만을 채용하는 원칙이 있어 취직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회사에서 입사를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여 취직한 뒤, 성실함과 정직으로 내부 업무는 물론 외판 업무도 맡았다. 당시 김 창업주는 일에 대한 집념과 노력 등으로 일본인으로부터 ‘가죽고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4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47년엔 “연료 대책이 시급하고, 더 이상 산림이 황폐화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대구 칠성동에서 연탄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했다. 김 창업주의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대성그룹이 보유한 경북 문경새재 주흘산 수백만평을 관광지역으로 개발하자는 권유가 많았었지만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연탄사업을 벌인 것은 황폐화하는 삼림을 보호하자는 뜻이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주흘산 입구엔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는 내용의 푯말이 있다. 또 김 창업주는 출장을 갔다 오면 영수증 한 장까지도 빠짐없이 챙기고, 경비가 남으면 회사에 고스란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외국 호텔 객실에서 쓰고 남은 일회용 비누를 “집에서 면도할 때 쓰면 좋겠다.”며 가방에 넣어 오기도 했다. 정치권 압력에도 초연했다고 한다. 대성이 정치적으로 스캔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창업주는 친구였던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의 정치헌금을 거절해 세무조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경영철학도 남달랐다. 그는 무엇보다 ‘번 만큼만 투자한다.’는 경영론을 일관되게 지켰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는 경영이 가능했다.“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그의 경영철학은 ‘대기만성’의 약자인 ‘대성’이라는 그룹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아들 3형제에게 ‘투명 경영’을 유훈으로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기업이 내 소유란 생각을 버려라. 또한 이사회를 사장의 들러리로 만들지 마라.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죄악이니 이익을 못낼 때는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써라. 국민의 사랑을 못 받을망정 지탄받는 기업은 되지 마라.” 이런 김 창업주의 철학은 대성을 남의 돈을 안 쓰는 튼실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조촐한 혼맥의 ‘교회 인연’ 김 창업주가(家)의 혼맥은 한때 내로라했던 재벌가(家)치고 매우 단출하다.2세들 가운데 중매 결혼이 적지 않았지만 정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방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영훈 회장은 이와 관련, “지인들을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덕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부친의 확고한 뜻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1942년 여귀옥(83)씨와 혼례를 치렀다. 이들의 인연은 대구 ‘남산교회’에서 맺어졌다. 김 창업주의 모친인 기묘임(작고) 여사와 여씨의 모친인 최성연(작고) 여사가 대구 남산교회의 신도였다. 그렇다고 결혼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 창업주는 당시 대구상고를 중퇴해 가족 생계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반면 여씨는 당시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하고, 평양여자신학교를 수료한 ‘신 여성’이었다. 또 여씨 집안은 대구에서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자, 명망가(家)였다. 그러나 여씨의 모친인 최 여사는 “내가 딸이 둘이면 하나는 부잣집에, 하나는 인격을 보고 하겠는데 단 하나밖에 없으니 인격을 보아야겠다.”면서 주변의 반대를 물리고 김 창업주를 사위로 맞았다고 했다. 김 창업주와 여씨는 슬하에 4남3녀를 뒀다. 이 가운데 4남 영철군이 73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장남 김영대(64) 회장은 모친의 친구 소개로 71년 법조인 차영조 변호사의 딸 정현(57)씨와 결혼했다. 정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김 회장 부부는 정한(34)-인한(33)-신한(31) 등 3형제를 두고 있다. 장남인 정한씨는 현재 대성산업 기계사업·해외자원개발부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97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대원외고 동창인 전성은(33)씨와 결혼했다. 성은씨의 부친인 전경호 서한모방 회장은 김 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기동창이다. 차남 인한씨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과 후배인 이내리(28)씨와 2002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막내 신한씨는 지난해 말 병역특례를 마치고, 현재 경영수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이다. 차남 김영민(61) SCG그룹 회장은 79년 친지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성악과)를 나온 민명옥(51)씨와 인연을 맺었다. 명옥씨의 부친은 전 유화증권 사장을 지낸 민유봉씨이다. 김 회장 부부는 은혜(26)-요한(24)-종한(17)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3남 김영훈 회장은 93년 박영창 목사의 소개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3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의한(12)-은진(9)-의진(6) 등이 있다. 장녀 김영주(58) 대성닷컴 부회장은 75년 서울대 의대 출신인 내과전문의 신현정(61)씨와 인연을 맺었다. 현정씨는 현재 도시가스서비스회사인 ㈜알파서비스를 경영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기업인이자 화가로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정희(30)-명철(29)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차녀 김정주(57) 대성닷컴 사장은 하버드대 신약학 박사 출신으로 연세대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독신이다.3녀 김성주(50) 성주인터내셔날 사장은 하버드 동창생인 딘 고달드와 결혼해 딸 지혜(17)씨를 두고 있다. 김 창업주의 동생인 김의근(작고) 회장가(家)와 김문근(작고) 회장가(家)도 정·관계와 그다지 인연이 없다. 굳이 꼽는다면 재계에서 중견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고 김의근 모토닉(옛 창원기화기공업) 회장은 양제선(81)씨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장남인 영준(작고)씨를 통해 대한모방 회장을 지낸 김성섭가(家)와 사돈지간이다.3남인 김영목(50) 모토닉 부사장은 산업은행 부총재를 지낸 홍대식의 딸 홍은주(43)씨를 배필로 맞았다. 차남인 김영봉(53) 모토닉 사장은 평범한 은행원의 딸인 김혜옥(46)씨와 혼례를 치렀다. 김문근(작고) 전 대성광업개발 회장은 김정희(작고)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영범-영돈-은주-영천-영석 등 4남1녀를 뒀다. 장남인 영범씨는 최근 대성광업개발 회장직에 올랐다. 형제 모두 대성광업개발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성그룹의 분가는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매출 2조원을 넘는 대성은 고 김 창업주 생전에 동생인 김의근 회장이 2000년 7월 대성정기와 창원기화기공업의 경영권을 갖고 가장 먼저 ‘대성의 품’을 떠났다. 김의근 회장은 사실상 김 창업주와 동업 관계였다. 그는 김 창업주가 47년 연탄사업을 시작할 때 석탄 생산을 맡았고, 김 창업주는 제조와 판매를 책임졌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김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김문근(작고) 회장이 대성광업개발을 맡아 분가했다. 대구공고 출신인 김문근 전 회장은 대한중석 등에서 일하다 1950년대에 대성에 합류했다. 김 창업주 사후인 2001년 6월엔 영대·영민·영훈 등 아들 3형제가 다시 2차 세포분열을 통해 분가했다. 장남 김영대 회장이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인 김영민 회장이 서울도시가스 계열을,3남인 김영훈 회장이 대구도시가스 계열을 각각 맡았다. 그러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있었다. 주식 평가를 놓고 형제간 잡음이 일면서 재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김영대 회장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8월엔 막내 김성주 사장이 이끄는 성주인터내셔날도 대성에서 떨어져 나갔다. 장남과 3남은 현재 ‘대성그룹´ 사명을 같이쓰고 있다. ●김영대 회장의 ‘인재론’ 김영대 회장은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사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잘 나서지 않고 매우 조용하다. 그는 또 학구파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월·수·금요일은 일본어, 화·목·토요일은 중국어를 공부한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안정과 보수로 대변된다. 이 때문에 간혹 김 회장 주변을 ‘경로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회장의 비서인 전성희(63) 이사는 국내 비서계의 대모다. 김 회장을 모신 지 28년째다. 그의 비서 입문은 우연이었다고 한다.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남편의 대학 친구였던 김 회장은 “미혼 비서를 뒀는데 모두 1년 정도하고 그만두더라. 어디 오래 근무할 아줌마 없느냐.”며 추천을 부탁했다. 결국 남편의 권유로 전 이사는 당시 세브란스 병원 약사모집 면접을 포기하고 대성에 들어가게 됐다. 전 이사는 이화여대 약대 출신이다. 김 회장의 운전기사인 정홍(64) 차량관리 과장도 40년 이상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환갑 기념 유럽여행을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상 신분을 넘어 지기(知己)인 셈이다. 또 대성 임직원들은 다른 그룹과 달리 60대 이상이 유난히 많다. 김 회장의 인재를 아끼는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샌님(?)같은 김 회장도 무서울 정도의 강한 집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90년대 초 씨티은행으로부터 5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가로챈 뒤 미국으로 도주한 직원을 직접 추적해 붙잡은 경험이 있다. 그가 쓴 ‘구름 속의 구만리’라는 추적기에서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당시 10개월 동안 출장 9차례, 미 체류기간 200일, 미대륙 종횡단 9000마일, 만난 사람만도 10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50억원의 돈도 돈이지만 회사의 신용과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그 직원을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고 했다. 더욱이 일개 직원에게 거액의 수표를 무책임하게 내준 은행측으로부터 음모론까지 흘러나오면서 ‘대추적’을 결심했다. 대성그룹은 현재 3세 경영이 닻을 올렸다. 장남인 김 상무가 2002년 연구개발실장으로 입사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대성 부활’ 노래하는 3남 김영훈 회장 김영훈 회장은 조용한 말소리와 차분한 몸가짐, 설득조의 언어 구사 등에서 CEO보다 목사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릴 적 꿈이 목사였다.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했으며, 영락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늦장가를 갈 정도로 공부에 푹 빠져 살았다. 그가 받은 학위만도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에 이어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하버드에서 신학과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다.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그는 늘 책과 씨름하는 것이 취미다. 김 회장은 1988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대성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경영의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경영인보다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지만 부친의 ‘SOS’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계열분리 이후 대구도시가스를 주력으로 경북도시가스와 바이넥스창업투자 등 1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당시 에너지사업 일변도에서 지금은 문화사업을 차세대 ‘먹을 거리’로 마련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그는 창립 60주년을 한 해 앞둔 올해 201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0억달러를 목표로 한 ’10·10·10’ 전략을 내놓았다. 옛 대성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김 회장의 야심찬 청사진이다. 2남 김영민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스포츠 마니아이며 유머러스하다.ROTC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역사 교관으로 근무했다. 경북사대부고와 미국 댈러스대, 남가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공주의 길’ 포기한 김성주 사장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별종’이다. 가문에서 그렇고, 사업에 있어서도 그렇다. 다른 형제들이 부모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반면 김 사장은 부모가 반대하는 일들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혹독한 고생을 경험했다. 송금이 끊겨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으며, 직장 생활도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사업에서도 ‘봉투’와 ‘접대’라는 그간의 사업 상식을 깨고 투명경영으로 남성 세계를 하나씩 깼다. 김 사장은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일군 여성 CEO가 드문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는 훗날 성주인터내셔날을 창업한 배경에 대해 “살찐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golders@seoul.co.kr ■ “우리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우리 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대성가(家)의 2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김영훈 회장은 대성의 차세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는 문화사업을 이른바 ‘효자 사업’이 아니라 ‘효녀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여성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성가(家)의 딸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 장녀 김영주 화백의 또다른 ‘명함’은 대성닷컴 부회장이며,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대성닷컴 사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자매가 최고경영자(CEO)직을 맡은 것은 문화사업에 여성 특유의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회장의 요청 때문. 김 부회장은 화가로서의 재능을 대성닷컴 출판사업에 톡톡히 쏟아내고 있다. 김 부회장이 책 표지 디자인을 혼자 다할 정도다. 김 사장은 그룹의 문화사업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김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오브 아트 대학원을 나왔다. 김 교수는 미시간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매는 모친에 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절제회’ 활동에도 열심이다.1983년부터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부회장을 번갈아가며 맡아오고 있을 정도다. 절제회는 종교를 초월해 각종 절제 운동을 펼치는 여성 단체. 국내에선 국산품 애용과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운동을 벌였고, 최근엔 금연 운동과 임산부와 청소년 음주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자매 가운데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성공한 여성 CEO로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 사장은 199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 세계여성지도자총회의 아시아 대표 연설자,2004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의 ‘주목할 만 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명’에 선정되는 등 글로벌 CEO으로서 명성이 매우 높다. golders@seoul.co.kr ■ 2세들 ‘화려한 학벌’ 고 김수근 회장가(家)는 재계에서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3남3녀 모두 명문대 출신으로 2개 이상의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다. 3남 김영훈 회장은 “모친 여귀옥 여사의 남다른 자식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과 절제 등을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모친은 ‘공부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으며, 제가 미국에 유학갈 때도 편안하게 ‘놀다 오라.’는 당부까지 하셨다.”면서 “그러나 우리 형제는 모친의 바른 생활과 이웃사랑 등을 보면서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여 여사는 임신 중엔 태교를 위해 잡지나 신문을 보지 않고, 오직 성경만 보고 지냈다고 한다. 또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했으며, 꾸지람보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했다. 대성가 2세들은 모두 대단한 학벌의 소유자이며,‘수석’을 곧잘 했다. 법학을 전공한 장남 김영대 회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차남 김영민 회장과 3남 김영훈 회장, 장녀 김영주 화백도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특히 김영훈 회장은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 석사 학위가 무려 4개다.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이화여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막내 김성주 사장은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앰허스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김영훈 회장은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 학업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낸 편은 아니었다.”면서 “특히 정주 누나는 중학교 때 반에서 40등까지 했지만 우리 형제 가운데 공부를 가장 잘 했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 아래 자녀를 키운 여 여사의 가르침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3세들도 부모 못지 않은 학구파다. 한편 여 여사는 결혼 후에도 영락교회 권사로서 활동했으며,52년에는 초교파적 기독교 여성단체인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를 설립했다. 현재 35개국이 가입해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Doctor & Disease] 엔제림성형외과 심형보 원장

    [Doctor & Disease] 엔제림성형외과 심형보 원장

    ‘치료(재건)성형’이라는 분야가 있다. 콧대를 높이거나 쌍꺼풀을 만드는 미용성형과는 구별되는, 이를테면 신체의 문제를 해소하고 교정하는 성형의학 분야이다. 당연히 이 분야에 대한 의학적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예전에야 기형 등 문제가 있어도 ‘팔자소관’이라며 체념하고 살았지만 요즘에 그런 생각이 가당키나 할까. 국내 유방성형 분야에서 첫 손에 꼽히는 권위자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는 엔제림 성형외과 심형보(47)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여성성의 상징인 유방만 해도 간단치 않습니다. 거대유방증, 함몰 유두, 선천성 기형유방, 유방암 재건 등이 있고 남자의 여성형 유방도 치료성형의 대상이니까요.” 그를 만나 가슴 부위의 치료성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가슴 치료성형이란 어떤 치료인가. -재건성형으로도 불리는데, 비정상적인 유방을 정상으로 복원하거나 바로잡아 주는 수술이다. 정상적인 유방을 다듬는 미용성형과 달리 치료성형은 비정상적인 형태 때문에 일상적인 고통을 겪는 환자를 치료해 정상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치료 목표로 한다. ▶어떤 환자가 주요 대상인가. -대표적인 문제는 거대유방증이며, 함몰 유두, 남성의 여성형유방증, 선천성 기형유방, 유방암 수술 후 재건 등을 들 수 있다. ▶치료성형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유방이 비정상적으로 큰 거대유방증은 어깨, 목, 허리 통증과 사회생활 부적응, 심리적 열등감을 초래한다. 보통은 정상 여성에 비해 400g 이상 유방이 크고 무거운 경우를 말한다. 서구형 식생활 등의 영향으로 현재 가임 여성의 5%가 이 질환을 갖고 있다. 함몰 유두는 유두에 연결된 젖관이 유두를 안으로 당겨 젖꼭지가 유방조직 속에 묻히는 질환으로, 우리나라 여성 3%가 갖고 있다. 여성형 유방증이란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성의 유선조직이 발달해 여성형 유방을 가진 경우로, 사회·심리적 열등감과 부적응을 초래하는데, 청·장년기 남성 7∼30%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밖에 폴란드증후군, 발육부전, 비대칭 등 선천기형과 유방암 수술로 없어진 유방을 복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각 질환의 특정 증상은 무엇인가. -10∼60대에 걸쳐 분포하고 전체 환자의 90% 이상이 어깨와 목의 통증을 호소하며,60% 이상이 비만인 거대유방증은 심한 경우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통상 정상 여성보다 400∼600㏄가 넘으면 중등도 비대,600∼800㏄면 비대,1500㏄ 이상은 거대유방으로 분류한다. 이 경우 어깨·목·허리통증, 두통, 피로감,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 유방 밑의 튼 살, 유방통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의 증상이 확인되면 거대유방증으로 진단한다. 함몰유두는 20∼30대 미혼 여성들에게 많으며, 악취와 때가 끼고, 수유가 불가능하며, 유방확장증 등 합병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질환의 최근 추세와 경향상의 특이점은 무엇인가. -거대유방증은 비만인구의 증가와 맞물려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가족력도 크게 작용을 한다. 우리나라 여성 3%가 가진 함몰 유두는 대부분 선천성이지만 유방암 등 종양이나 유방질환으로 생기기도 한다. 유방암 수술 후 재건의 경우 현재는 유방절제 환자의 10% 정도가 수술을 받지만 여성들의 의식이 변하면서 치료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성별 혹은 연령대별로 특이성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가. -다른 특이성이 있다. 거대유방증은 20∼30대 환자가 60%를 차지하며, 함몰 유두는 미혼 여성이 출산 후 수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받는 경우가 많다. 유방암재건술은 유방암이 많은 30∼40대 여성 환자가 많다. ▶수술 판정 기준은 무엇인가. -치료성형 수술은 ‘재건’과 ‘미용’의 양면성을 갖고 있어 이를 조화시킬 수 있는 객관적 판정이 필요하다. 형태를 개선해 일상적 불편이 해소되고 심리적·사회적 안정이 예상된다면 좋은 수술 대상이다. ▶질환별 수술 내용을 소개해 달라. -거대유방증은 유방축소술을, 함몰유두는 쌈지봉합술이라는 교정수술을, 여성형유방증에는 지방흡입술을 이용한 교정수술을 각각 적용한다. 선천기형이나 암 수술 후 재건에는 보형물이나 자가조직치환술을 이용한다. ▶치료성형의 현실적 한계는 무엇인가. -거대유방증의 경우 환자가 원하는 크기나 모양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지만 흉터 자국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며, 함몰유두는 부분적으로 수유기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선천기형이나 유방암 재건의 경우 비슷한 형태로 만들지만 완벽한 복원이 어려울 수도 있다. ▶수술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나 후유증은 무엇인가. -심한 함몰의 경우 재발이나 제한적인 수유기능의 문제 등이 있을 수 있으나 개인별 특성이 다른 만큼 후유증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특별히 수술이 어려운 경우라면. -드물지만 선천기형 중 폴란드증후군의 경우 갈비뼈와 근육이 없고 유방 발달이 미숙해 완벽한 복구가 어렵다.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치료성형의 경우 의료보험 등 제도적인 문제로 환자들이 곤란을 겪기도 한다. 그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심 박사는 “치료성형과 미용성형이 어차피 형태 개선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문제는 이런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만족감과 자신감을 갖는다면 이런 정서 자체가 곧 삶의 질의 향상인 만큼 문제가 있다면 전문의와 상의해 보라.”고 권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가임여성 5%가 거대유방증 방치땐 합병증” 심형보 박사는 우리나라 가임 여성의 5%에 해당하는 여성이 가졌다는 거대유방증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평생 실컷 고생하다가 환갑이 다 돼서 유방 축소수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지요. 일찍 수술 받았더라면 수십년을 편히 살았을 텐데….” 이렇듯 유방이 비정상적으로 큰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심 박사가 지난 93년부터 2003년까지 거대유방증으로 수술 받은 환자 317을 조사한 결과, 거대유방의 병증은 어깨통증 92%, 목·허리통증 78%, 유방 아래의 살이 허는 증상 58%, 유방통 42%, 피로감 41%, 두통 38%, 손저림 14% 등으로 나타났다. 병증의 고통이 심한 만큼 치료효과도 극명해 치료성형 후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가 ‘유방 아랫부분의 살이 허는 증상이 없어졌다.’고 답했으며, 어깨통증과 흉통 및 손저림 해소 95%, 목·허리통증 해소 91%, 두통 해소 80% 등으로 답했다. 문제는 최근의 비만인구 증가세와 맞물려 거대유방증 환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도 이를 질환으로 여기지 않고 방치하거나 쉬쉬하며 숨기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심 박사는 “거대유방증을 장기간 방치하면 척추디스크는 물론 피부질환 등 갖가지 합병증에 시달리게 된다.”면서 “일단 합병증이 나타나면 그만큼 치료가 어려운 만큼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면 서둘러 병원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심형보 박사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유방성형 부문 패널리스트▲미국미용성형학회 유방성형 부문 연자(98,2002년)▲한·일 성형외과학회 유방성형 부문 연자(2002)▲동양성형외과학회 유방성형 부문 연자(2002)▲‘미용성형수술-어디를, 어떻게’ 등 저술▲현, 서울아산병원 외래교수, 서울대병원 자문의▲엔제림성형외과 원장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전통 살아숨쉬는 일본 새해 풍경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전통 살아숨쉬는 일본 새해 풍경

    새해 첫 참배(하쓰모우데), 장식나무 세우기(카도마쓰), 설 전통 음식(오세치 요리), 각종 축제(마쓰리), 연하장 보내기 등 일본의 새해는 전통적인 세시풍속으로 분위기가 고조된다. 여러 신사나 절을 돌며,7가지 복을 비는 순례도 널리 행해진다. 백화점이나 가전제품 할인점 등 대형 매장들은 일본인 특유의 상술로, 복주머니(후쿠부쿠로)를 팔아 돈도 챙기고 재고도 처리한다. 손님에게 복전 주기 등 새해 상술도 다양하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새해는 세시풍속으로 분위기가 떠들썩하다. 동구지역 한 외교관은 “일본의 고유한 세시풍속에 놀랐다. 산업화속에서도 이처럼 많은 세시풍속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부럽다.”고 말했다. ●신사·절에서 소원 빌기 일본 사람들은 원단인 지난 1일을 전후해 도쿄시내 주택가 대부분의 집 대문앞에 소나무·대나무 등을 이용한 ‘카도마쓰’라는 장식을 했다. 조상신을 부르고 건강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다. 가족·친지들이 모여 신사를 찾기도 했다. 신사참배는 이웃들과 새해 인사를 교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지난 1∼3일 일본 전국의 주요 신사와 절에서 하쓰모우데를 한 사람은 9373만명. 신사 가운데 가장 큰 메이지 신궁에만 305만명이 참배했을 정도였다. 회사원 마쓰무라(지바시)는 세자녀, 부인과 함께 1일 0시 인근 절에 가 백팔번뇌에서 벗어난다는 취지의 타종식에 1인당 3만엔(약 2만 5000원)씩을 내고 참여하기도 했다. 미혼인 20대의 아들, 딸이 있는 다카하시(55·여)는 1월에 영험하다는 신사나 절 7곳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7복’을 빌고 있다. 정직·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신, 재물의 신, 지혜의 신, 장수의 신 등이 모셔진 신사·사찰을 순례하는 것이다. ●기발한 상술로 새해를 달군다 지난 2일 오전 10시.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게이오·다카시마야 등 대형 백화점 앞에는 수백∼수천명의 고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일부 백화점은 고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개점 시간을 20분 정도 앞당기기도 했다. 이날 게이오 백화점에서 첫 판매된 복주머니는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두 가지 부류다. 상품내역이 안 보이는 복주머니로는 운수를 점치는데, 판매가격 보다 3배정도의 재고 상품들을 넣어 땡처리를 한다. 내용물에 따라 운수를 점친다는 것이다. 잠깐 사이에 매진되는 상품도 적지 않았다. 백화점입구에서는 청주를 고객들에게 대접하는 행사도 벌였다.50여명의 손님에게는 특별히 제작한 고급 나무잔으로 마시게 한 뒤 이를 선물로 줬다. 상당수 신사들은 효험을 부각시키며 1년수입을 좌우하는 하쓰모우데 광고를 했다. 고급식당이나 서점 등에서는 고보센(御寶錢)이라는 5엔짜리 새동전이 들어있는 복돈을 고객에게 선물도 했다. 나카자와 준코는 “어른은 세뱃돈이 없기 때문에 세뱃돈을 주는 의미와,5엔은 인연을 나타내는 ‘고엔’으로 발음돼, 인연을 소중하게 하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급속한 서구화로 세시풍속 잠식 하지만 일본의 새해맞이 문화도 잠식되고 있다. 전직 기자 이시즈카는 “오세치 요리는 백화점이나 슈퍼에서 많이 산다. 일본은 서양 문화를 빨리 흡수했기 때문에 개인주의 등으로 전통 문화가 많이 약화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온가족이 따로따로 새해를 보내는 가족도 늘었다. 교사 사치코는 지난 연말부터 이달초까지 호주여행을 했다. 지방에서 근무중인 미혼인 오빠도 개인행동을 했다. 할머니 역시 친구들과 온천여행을 했다. 해외여행, 온천여행이 성해지면서 전통적인 새해맞이 문화가 시나브로 약화되고 있다. 도쿄의 관문 나리타공항에 따르면 연말연시 나리타공항을 통한 출입국 여객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0.8% 늘어난 143만 1000여명이었다고 한다. taein@seoul.co.kr ■ 설날음식 ‘오세치 요리’ 숨은 뜻 |도쿄 이춘규특파원| 일본인들은 1월1일 허리가 휠 때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소망을 담은 새우, 앞날을 밝게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해달라는 소망의 연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흑콩, 자손번영을 비는 소망의 토란 등으로 설음식인 오세치 요리를 만들어 부러지기 어려운 버드나무로 만든 새해젓가락으로 식사한다. 찰떡(모치)을 먹는 문화도 번성하고 있다.12월 말 가족이나 동네사람들이 힘을 모아 찰떡을 만든다. 이때문에 해마다 찰떡이 목에 걸려 숨지는 사고도 많다. 지난 1일 간토지역에서만 노인이 4명이나 숨졌다. 일본인들은 음식을 눈으로 보면서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양을 중요시한다는 의미다. 지난 14일 도쿄시내의 죠시에이요대학에서는 외국특파원들을 상대로 한 전통 신춘 음식 만들기 교실이 열렸다. 가가와 요시코 대학장은 “일본의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유학생도 더 많이 유치, 세계에 확산시키고 싶다고 했다. 시메야 홍보부장은 “일본음식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세계에 유행중인 지적재산”이라고 자랑했다. 좋은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게 해 노인들의 의료비를 줄이는 것도 일본 전통음식 만들기가 추구하는 목표라고도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장미 모양과 나비 모양의 ‘말이 스시’를 만드는 시범과 실습이 4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우리의 김밥과 유사하지만 일본식으로 변형된, 화려한 장미 모양의 말이 스시였다. 음력설에 주로 지바 지역에서 먹는 음식이다. 이런 음식을 음력설이나 춘분 전날 제대로 먹으면 “1년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민중 사이에서 유행했었다고 한다. 강사 도야마 이사무(56)는 “음식은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 여유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좋은 음식이 되지만, 짜증스러운 상태로는 좋은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일본인의 음식관을 설명했다. taein@seoul.co.kr ■ 연하장 37억장 팔려…100통 쓰는 일 예사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인들의 연하장 쓰기는 유별나다. 새해에 100통 정도의 연하장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초등학생부터 노인들까지 쓰는 층도 다양하다. 일정기간내에 보내면 복권식의 번호가 주어지며,1월 중순 추첨해 하와이 여행권 등 상품도 푸짐하게 준다. 일본우정공사에 따르면 올 1월1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배달된 연하우편물은 20억 5200만통(1인당 약16통)으로, 지난해에 비해 173만통이 줄었다. 이후 배달된 연하장은 오히려 예년보다 늘었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 50대 쓰보는 “예전에는 1월1일날 꼭 배달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많았지만 지금은 늦어도 성의있게 쓰는 추세”라며 “과거엔 50장 정도 썼지만 지금은 20∼30장이다. 대신 1년간의 안부를 꼼꼼히 전해 내용을 충실히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연하장 쓰기는 여전히 일본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해마다 일본우정공사의 판매량이 줄고 있다.1999년 42억통정도를 정점으로, 줄어드는 경향이다. 이에 따라 2006년 판매매수는 전년비 2∼3% 정도 준 37억통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일본도 전자메일에 의한 새해인사 풍조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를 이용한 전자메일이 빠르게 늘어나 올해는 지난해보다 50%정도 늘었다.NTT도코모의 경우 2004년에는 전년대비 1.6배, 지난해는 1.4배로 증가했고, 최대의 경우 시간당 무려 1억통 전후의 양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된 것도 연하장을 줄이는 요인이 됐다. 정치인이나 회사 상·하간에 주소를 파악, 의례적으로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주소 등 개인정보의 엄격한 관리 전환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연하장 감소 경향에 일본우정공사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우정공사는 연간 연하장으로 1조 7000억원 정도의 판매수익을 올려왔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중이다. 올해는 ‘○○시,○○정’ 등이라고 주소를 지정하면, 그 지역의 전원에게 연하장이 보내지는 신상품을 개발, 실험적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연하장 배달사고도 새해의 단골메뉴다. 유난스럽게 많은 눈이 내렸던 올 겨울, 동북부 야마가타현에서는 우편배달 아르바이트 남자 고교생(18)이 연말연시 5일간 연하장 437통을 포함한 627통의 우편물을 “힘들다.”며 눈속에 묻어버린 것이 발각돼 징계면직됐다. taein@seoul.co.kr
  • “엄마나 딸이나 사랑은 아프죠”

    “차갑고 엄한 인상과 달리 참 순수하고 순진하세요. 지난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시죠.”(예랑) “나도 처음엔 깍쟁이인 줄 알았어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데 자꾸 만나다 보니 진짜 딸처럼 느껴지더군요.”(손숙) 60대 중견 배우 손숙과 30대 드라마작가 예랑. 엄마와 딸처럼 허물없이 지내온 두 사람이 30여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사랑을 주제로 한 공동에세이집 ‘사랑아 웃어라’(이미지박스)를 펴냈다. 딸이 엄마에게 묻듯, 엄마가 딸에게 답하듯 진솔한 대화체로 씌어진 글은 사랑과 연애, 행복한 결혼의 조건, 이별과 이혼 등 사랑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에 관한 두 사람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사랑에 대해 뭘 알까’싶은 걱정에 처음엔 망설였다는 손씨는 “예랑 작가와 수다를 떨면서 어느 순간 사랑에 메말랐던 내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다.”면서 “이 책이 그런 사랑을 나누는 작은 불씨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예씨는 “사랑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오히려 선생님이 사랑학 박사다. 정작 본인은 못 하시지만 말이다.(웃음)선생님과 얘기하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어쩜 이렇게 생각이 똑같을까’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두 사람이지만 세대차를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책에서 10년간 별거해온 사실을 밝힌 손씨는 “여자가 참고 사는 시대는 지났지만 요즘은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는 책임감이 뒤따른다.”고 언급했다. 반면 ‘마지막전쟁’등 이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드라마를 집필해온 미혼의 예씨는 “여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결혼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랫동안 사랑을 잃고 삭막하게 살아왔는데 이제 또다른 사랑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손씨는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손씨는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토크콘서트 ‘사랑아 웃어라’를 2월8일부터 4월9일까지 코엑스아트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책과 공연 수익금의 일부는 아름다운재단, 사단법인 이프에 기부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30세 여성사무관 정부 최연소팀장에

    30세 여성사무관 정부 최연소팀장에

    공직 경력이 4년9개월에 불과한 국정홍보처의 여성 사무관이 정부 부처 최연소 팀장으로 발탁됐다. 국정홍보처는 핵심 보직인 홍보기획팀장에 이선영(30) 행정사무관을 임명했다고 17일 밝혔다. 행정고시 44회 출신인 이 팀장은 2001년 11월 국정홍보처 자료지원담당관실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미혼인 이 팀장은 1999년 5월 국정홍보처가 발족한 이후 최초의 여성 팀장이자, 전 정부 부처의 사무관급 팀장 가운데서도 최연소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처는 그동안 전략기획팀에서 해외홍보 총괄기획업무를 맡아온 이 팀장의 뛰어난 업무성과와 기획능력을 높이 평가해 발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연기군 이주’ 비상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이 지난 12일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에 문을 열면서 직원들의 주거대책이 과제로 떠올랐다. 건설청은 ‘4본부 1단 15팀 1사무소’ 체제로 정원은 147명이다. 서울사무소 직원 5명을 빼고는 모두가 본청에서 일한다. 직원 구성은 건설교통부 출신이 50%, 다른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출신이 50%를 차지한다. 혼자이든, 가족과 함께이든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주가 불가피하다. 건설청은 가족이 모두 이주하는 직원에게는 24평형 임대아파트를 배정하고, 보증금의 일부를 정착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입주했거나 입주를 기다리는 직원은 35명이다. 미혼이나 주말부부에게는 대전 노은지구에 임대주택 40가구를 확보,3명까지 공동생활을 하도록 했다. 대전 노은·대덕지구에 짓는 아파트의 특별분양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청 안팎에서는 가족 단위로 이주할 직원이 전체의 50%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우자의 직장이나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가족 단위 이주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조치원이나 공주는 집값은 다소 저렴하나 사회적 인프라 수준이 떨어져 정착 대상지로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대전은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른 집값이 부담스럽다. 주거가 안정되지 못하면서 생활 불편을 호소하는 직원도 생겨나고 있다.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등 혼자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반면 퇴근한 뒤 끼리끼리 어울리며 술자리는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서 건설청으로 옮겨온 여성공무원 한모(38)씨는 16일 “가족들과 일단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 상황이 나아지면 아파트를 구입할 계획”이라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완성될 때까지는 편치 않은 근무여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금감위 “출산장려형 보험 개발 지원”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12일 보험개발원이 주최한 ‘보험최고경영자 신년 조찬회’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자녀출산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보험상품 등 출산장려형 금융상품 개발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생명은 미혼 고객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최대 2명까지 1명당 보험료를 1% 깎아주는 ‘싱글라이프’ 보험상품을, 우리은행은 출산한 여성고객에게 0.1%의 우대금리를 주는 ‘미인통장’을 판매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 계약자간 형평성과 상품을 출시했을 때의 시장성 등이 있어야 한다.”며 “업계 의견을 모으고 있으며, 올해안에는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보험료 할인이나 자녀 출산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의 다양한 인센티브가 검토되고 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가서 살고 싶어요』-「미스·코리어」진(眞)을 자퇴한 김지연양은 이마를 짚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녀의 경우는 가인박복(佳人薄福)이라고나 할까. 거국적인 미녀뽑기에서 아무튼 제1위를 차지한 여자다. 진을 자퇴하고 주최자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한 이유가 응모자격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지, 그 자태나 용모에 있어서 모자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 본명 김정혜(金正惠), 마감 이틀 전 미장원 마담 권유로 응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러쿵 저러쿵 풍문이 시끄럽게 나돈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요즘 자택(서울특별시 갈월동)에서 바깥 출입을 일절 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방 한구석에 박혀 산다. 일이 모두 수습이 되고 잠잠해질 때까지 얼굴을 내놓기가 싫은 심정이다. 자퇴한「미스·코리어」김지연양의 본명은 김정혜. 1949년 6월 30일 생이니까 만 20세.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287의 1. 평소 자주 드나들던「센추리」미용실「마담」의 권유로「미스·코리어」서울 예선에 응모한 것이 대회 이틀 전인 4월 25일. 응모자「프로필」난에 소개된 金양은 - . 『 … 현재 숙대(淑大) 가정과에 재학 중인 金양은 서울 태생으로 올해 나이 20세 … . 결혼문제엔「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엉뚱하게도「40세가 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신장 166, 무게 51, 36-23-36』으로 되어 있다. 4월 27일 상오 10시 대한체육회관에서 열린 서울예선대회에서 金양은「미스·서울」9명 중에 뽑혔다. 전국 결선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운명의 5월 1일 밤 9시 35분. 장충체육관에서 1만여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미스·코리어」진으로 선발되는 순간 金양은 정신이 아찔했다. 당선의 감격은 벅찼는데 그날부터 소문나기 시작 『뜻밖의 영광에 뭐라 할 말을 잊었다』며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감격은 잠깐, 다음날부터『「미스·코리어」진은「미스」가 아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입이 빠른 미용실, 양장점 사이로 소문은 삽시간에 확산. 이렇게 되자 金양은 5월 7일자로「미스·코리어」진 사퇴서를 냈다. 심사위원회의 재심이 있고 5월 9일자로 주최측 지상을 통해『1969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된 김지연양은 본 대회 선발규정에 의하여 그 자격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며, 이에 따라 본인이 자퇴하였으므로 당선을 취소합니다』로 정식 발표되었다. 金양은 감격 9일만에「미스·코리어」의 왕관을 되돌려 주어야 했던 것이다. 취소되자 숙대선 “그런 학생 없다” 공한(公翰) 이렇게 되자 金양의 출신교로 알려진 풍문(豊文)여고와 숙대측에서도 해명공한을 냈다. 金양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닌 사실이 없다는 것. 먼저 숙대측이 재학한 사실이 없음을 10일자 공한으로 각 신문사에 밝혔다. 다음은 숙대측 공한 전문. 『1969년「미스·코리어」당선자에 대하여 금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되었다가 그 자격이 취소된 김지연양에 대하여 그가 자칭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이라고 보도된 바 있으나 본 대학교에서는 그의 학적을 둔 사실이 전혀 없사옵기 이에 알려드리오니 보도에 정확을 기하는데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선에서 진으로 당선된 임현정양은 본명이 임희선으로서 본 대학교 영문과 3학년에 재학 중임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1969년 5월 9일.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처장』 당사자인 金양과 그 가족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 공한 낸 풍문여고엔 고3까지 다닌 것은 사실 그러자 이번엔 金양이 다녔던 풍문여고측에서도 공한을 띄웠다. 다음은 공한 전문 - . 『「미스·코리어」진 김지연의 학력사항 정정의 일 - 금번「미스·코리어」진에 당선되었다 취소된 김지연이 본교 졸업생인양 보도된 바 있으나 본교 졸업한 사실이 없음을 통보하오니 학력사항을 정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69년 5월 10일. 풍문여자고등학교장』 알고 보면 金양이 풍문여고를 다닌 것은 사실. 그러다 고3 되던 해인 67년 5월 가발을 쓰고 어떤 군인과 극장에 갔다가 여선생에게 적발되어 자퇴형식으로 제적을 당한 것이다. 한편 金양은 여고시절부터 사귀어오던 김태문(23·무직)씨와 그 해(67년) 10월 31일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화촉을 밝혔다. 金양이 정식으로 김태문씨의 호적에 결혼신고 된 것은 그 이듬해인 68년 10월 28일자. 이런 金양은 왜「미스·코리어」선발대회에 출전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9일만의 여왕」金양이 밝히는 그 전모는 다음과 같다. 요정 나간다는 건 뜬소문, 그 집 마담과 친한 사이뿐 - 추천자인「센추리」미용원의 유숙자「마담」과 알게 된 것은? 『제가 그곳을 단골로 다녔거든요. 「미스·코리어」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 집에 다니고 있었어요』 - 소문으로는 거의 매일 다녔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나요? 『1주일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이었어요. 매일 나갈 돈도 없었구요』 - 듣기로는「바」에도 나갔다느니 혹은 한남동에 있는 간판 없는 고급요정에 나갔다는 말도 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취소가 되니깐 별의별 말이 다 나오는 거예요. 그 집「마담」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잘 어울려 다녔어요. 그 소문이 난 것이겠죠. 저의 집은 그런 장소에 안 나가도 괜찮을 만큼은 삽니다. 무슨 필요가 있어서 술을 따르러 나가겠어요?』 그녀의 조부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있는 일간신문 C일보의 초대편집국장을 지냈다. 아버지 金씨는 현주소에 대지 280평의 4층짜리「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땅값이 평당 10만원은 되는 곳. 그 부동산 값만 해도 2천 8백만원은 된다. 딸에게 충분한 용돈은 안 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색하게 딸의 벌이로 살아나가야 하는 그런 가정은 아니다. -「콘테스트」에 나가는 것을 부모님들이 알고 있었어요? 『전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예선에 당선된 뒤 신문을 보고 부모님이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최자측은 제가 고아가 아닌가라고 몇 번이나 묻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결승날에 겨우 2백원짜리 표를 사서 입장했습니다』 막상 진으로 뽑히고 보니 미녀를 낳은 모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취소가 되었을 때의「쇼크」와 집안 체면 걱정이 컸을 것이다. 金양의 어머니는 지병인 고혈압이 도져 요즘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다. - 이미 기혼자이고 숙대에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미스」로 둔갑하고 숙대 재학 중이라고 학력을 속였습니까? (응모요령 중의 자격규정에는「1951년 7월 1일 이전에 출생한 미혼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저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예선이 박두해서 미용원측에서 자꾸 나가라고 부채질 했어요. 저는 숙대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콘테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미용원에서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어물어물 숙대에 다닌다고 했구요, 여자가 또 자기가 기혼여성이라고 미용원에서 밝힐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딱 잘라 말하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었어요. 「마담」이 다 적당하게 적어 넣으면 된다기에 맡겨버렸죠』 - 학교관계는 결격이유가 안되겠지만 호적에 버젓이 기혼녀로 되어 있는 것을 몰랐나요? 『호적에까지 그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결혼을 한 일은 있었죠. 그렇지만 입적은 하지 않았고 사실상 별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는 미혼일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저는 67년 10월 31일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4개월 뒤에는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 계속 별거 중입니다. 그리고 저와 김태문씨와는 이혼하기로 서로 서약서까지 쓴 것이 있어요』 그 서약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1968년 10월 21일 이후에 본인 김태문은 김정혜와 해어질 것을 약속함. 21일까지 김정혜는 김태문과 같이 있어야 됨. 만약 이 약속을 이행치 않을 시는 모든 것이 무효임. 헤어지지 않을 시는 내 목숨을 끊음. 1968년 10월 18일. 본인 김태문(지장), 김정혜(지장)』 이러한 서약서를 교환한 뒤 10월 28일에 남자쪽이 멋대로 입적시켰다는 것이며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다. - 학력관계는 어떻든 결혼문제에서는 법률적으로「미스」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군요. 『네, 그런데 제가 호적상 기혼자로 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호적을 펴 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 있어요.』 -「미스·코리어」로 당선되면 외국에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다는 소문인데. 『별의별 소문이 다 나죠. 세상사람들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지금 심경은 외국에 나가고 싶습니다』 - 진으로 뽑혔다는 자부 같은 것은 있겠죠? 『네, 거기 나온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제가 진으로 뽑혀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 세상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배운 점이 있다면? 『저를 뽑아주신 주최자에게 감사드리고 싶구요. 그 다음에는 어린 제가 앞으로는 만사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찮은 저로 인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점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 시아버지는 “며느리 잘못 둔 덕에 기막혀” ◇ 김태문씨 아버지의 말 창피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며느리 한번 잘못 둔 덕택에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둘이 서로 알기는 우리애(태문)가「카투사」로 미8군에 근무할 때부터다. 둘이 좋다는데 부모가 어쩔 도리가 있는가? 정혜가 학교를 그만두던 해인 67년 가을에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주었다. 혼인을 끝내곤「벌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68년 2월) 둘이 따로 나가서 살아보겠다기에 다 큰 애들을 굳이 시부모 밑에 잡아둘 생각도 없었기에 살림을 내보냈다. 처음 저희들 말로는 신촌 어디다 전세방을 얻는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집에 가서 같이 산 모양이다. 「미스·코리어」로 뽑힌 다음 친정집 두 처남이 찾아와『제발 이혼을 해주어야 이번 일이 무사해진다』면서 이혼하자기에 너무 어이없는 일이 되어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은 어떤 회사에서 찾아와 또 그런 이야길 하길래『며느리한테 속은 것도 괘씸한데 당신네 사업을 위해 이혼하라니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 호적만 해도 그렇지 양가 부모가 다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까지 올려놓고서 시집에서 결혼신고한 게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결혼식 직후에 호적에 안올린 것이 차라리 글렀지, 안그래요?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서로 마음잡고 잘 살기를 빌 뿐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자살하기 직전의 상태이니 그 애를 만나야 더 충격을 줄 뿐이다. 제발 애비로서의 부탁이니 우리 아들을 만나는 것만은 그만둬 주시오. [ 선데이서울 69년 5/18 제2권 20호 통권 제34호 ]
  • 미팅 주선이 저출산 대책?

    “서울시는 중매쟁이?” 서울시는 11일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미혼 남녀 90명씩 모두 180명을 모집해 다음달 8일 ‘사랑의 미팅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랑의 미팅 페스티벌 참가자들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 ‘라이어’를 관람한 뒤 배우들과 ‘만남’,‘이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서울역∼의정부역을 오가는 전세기차를 타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시는 행사 뒤에도 인터넷카페 등 소모임 운영을 통해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커플이 된 참가자들에게는 시나 자치구 공공시설을 결혼식장으로 제공하고 자치구별 건강가정센터를 통해 출산과 건강한 가정 등에 관한 컨설팅을 해줄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이달 31일까지 인터넷(cafe.daum.net/lovetrains)으로 받는다. 대상은 서울에 살거나 직장을 둔 40세 미만 미혼 남녀이며 참가비는 없다. 이같은 행사에 대해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서울시가 저출산 사회에 대한 준비가 아닌 개별 남녀의 결혼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려 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면서 “결혼을 강요하는 분위기보다는 아이를 낳아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보육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이에 대해 서울시 마채숙 미래사회준비팀장은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과 서울 거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혼 사유 가운데 ‘사랑하는 상대가 없어서’가 상위에 올랐다.”면서 “보육환경 개선 등 하드웨어적인 정책과 병행해서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데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시가 지난해 11월 시 공무원 2002명과 25∼39세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가·및 자유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사랑하는 상대가 없어서 ▲혼자 사는 생활이 편해서 등이 상위에 올랐다.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명문 의대 졸업장 위조…간큰 ‘카사노바’

    국내외 명문 의대 출신의 의사라고 속이고 미혼 여성에게 접근, 결혼을 미끼로 성관계를 갖고 돈을 뜯어낸 혐의로 30대 남성이 구속됐다. 5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박모(34)씨는 지난해 4월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L(여)씨에게 “S대병원 신경외과 의사인데 내년에 미국으로 유학갈 예정이니 결혼해서 함께 가자.”고 유혹,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박씨는 L씨와 L씨의 모친으로부터 결혼비용 등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260여만원을 받아 챙겼고, 지난해 8월에는 서울 모처에서 돈을 주고 가짜 하객을 동원해 결혼식까지 그럴듯하게 올렸다. 그러나 박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10월부터 K(여)씨,11월부터는 J(여)씨 등 다른 여성들을 만나며 똑같은 수법으로 결혼을 빙자해 이들로부터 440여만원을 뜯어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씨는 고졸 출신 무직자이지만 명문 S대 총장의 직인을 위조해 가짜 S대 졸업장과 성적표, 장학금 수령영수증 등을 만들어 갖고 다니며 자신의 신분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S대 또는 미국 하버드대학 출신 의사라고 거짓말한 것 외에도 S대 강사, 의약업체 연구원 등을 사칭했으나 피해 여성들은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체를 눈치챈 L,J,K씨의 고소로 지난달 말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행각이 탄로났다. 경찰은 여성 40여명의 이름이 적힌 박씨의 수첩으로 미뤄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들이 고소를 꺼리고 있어 수사 확대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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