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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혼모 생계비 지원 추진

    미혼모가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교육비와 생계비를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미혼모 종합지원대책’을 정부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당정은 미혼모가 학교에 복귀하거나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취업교육기간에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교육비와 생계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당정은 또 미혼모들이 모여 살며 아이를 키우는 ‘양육모 그룹홈’을 지원할 수 있도록 ‘모부자복지법’을 개정해 지원 근거를 만들고, 입소기간도 현행 1년3개월에서 3년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현재 전국에 12곳의 미혼모 입소시설이 있지만 법적인 지원 근거가 없어 예산 지원이 빈약한 상황이다. 전세자금을 싼 이자로 빌려주거나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미혼모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비용 조차 부담스러운데

    Q남자친구 때문에 카드빚 3000만원을 졌고, 지금은 미혼모로 두살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1년 정도 이자라도 갚아 왔는데, 직장이 문을 닫아 그마저 어렵게 됐습니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기초생활대상자로 선정돼 월 50만원 정도 보조금을 받아 생활합니다. 이제는 이자도 갚지 못할 지경입니다. 파산신청도 생각하고 있는데, 변호사 비용뿐 아니라 법원에도 50만원을 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가난한 제가 의지할 곳이 없나요. -김다미(28) A21세기 대한민국은 가난하다고 국민을 절망에 빠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김다미씨에는 세가지 길이 열려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편한 쪽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김다미씨가 아이를 데리고 살아주는 것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고마워한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우선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 채권 금융기관들은 추심을 자제합니다. 기초생활수급을 벗어날 때까지는 원리금 상환을 독촉하지 않겠다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이는 사실 당연한 것입니다. 국민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돈을 수급자가 빚을 갚는 데 쓴다면 세금으로 채권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추심 행위 자체가 약해질 뿐 빚을 언젠가는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이 방법은 일시적인 미봉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두번째로 법원의 소송구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원래 민사소송에서 활용되는 것인데, 최근 대법원이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에서도 소송구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결정했습니다. 예산이 아직 확보되지 않아 다음달부터 서울 지역에서 실시하고, 예산이 배정되는 내년부터는 전국에서 실시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배우자 없이 혼자 아이를 부양하는 부모, 고령자 등은 법원에 신청해 지정 변호사를 배정받은 뒤 소송구조 및 파산신청을 위한 상담을 받습니다. 변호사는 실비를 국고에서 지원받습니다. 이때에도 법원 비용은 소송구조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신청인이 내야 합니다. 그러나 내년 4월부터는 면책결정에 대한 신문공고가 폐지될 것으로 보이므로 법원비용도 송달료만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지막으로 법률구조공단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공단은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공적인 조직입니다. 설립취지 자체가 어려운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법률구조공단의 자체적인 심사를 통과하면 개인파산 또는 개인회생 제도를 신청하는 데 따르는 변호사 비용이 지원되거나 외상으로 해결됩니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절차에 따른 비용까지 공단이 지원하게 됩니다.
  • [눈에 띄네 이 얼굴] ‘소년, 천국에 가다’ 박해일

    어떤 포지션에 서 있어도 관객을 안심시키는 배우 가운데 하나가 박해일(28)일 것이다. 살인사건을 미궁에 던져 놓는 용의자(살인의 추억), 연상의 여인을 연모하는 숫기없는 청년(질투는 나의 힘), 섬마을 순정파 우체부(인어공주), 여교생을 추근거리는 비행(?)교사(연애의 목적)…. 특별히 강렬할 것 없는 캐릭터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박해일의 것’에 소속시키는 신통한 재주가 그에겐 있다. 그러고 보니, 팬터지 멜로 ‘소년, 천국에 가다’(감독 윤태용, 제작 FNH)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캐릭터가 독특한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한국판 ‘빅’인 영화에서 그는 열세살 소년에서 어느날 갑자기 서른세살로 건너뛰는 남자 ‘네모’가 됐다. 엄마처럼 미혼모인 여자 ‘부자’(염정아)에게 순정을 바치는 팬터지 순애보를 위해 주름투성이의 90세 노인까지 연기했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 사진 속 아버지를 흉내내며 담배를 피워 물어도 그의 화면들은 결코 순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박해일이 뿜어내는 맑은 기운에 관객들은 꼼짝없이 몽상가가 되고 말 것 같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흔히 고음(高音)을 잘 내는 사람을 ‘신이 내린 목소리’에 비유한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 그 자체다. 또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 태너도 고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고, 고음에 도전하다 죽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너 임웅균(5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악가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대학시절 찬송가의 높은 ‘라’음을 내다가 숨이 콱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심청전’ 연습 도중 ‘농부가’에서 또한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 교수는 요즘에도 여전히 고음을 낸다. 공연장에서는 물론 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다. 특히 학생들에게 야단칠 때면 음악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에서 “성악가는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목소리를 강철처럼 단련시키고 싶어 그런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인다. 지난 주 음악원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쩌렁쩌렁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펄쩍펄쩍 신나서 뛰기도 했다. 임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신건강 지킴이’로 위촉돼 정신건강 전령사로 또다른 역할에 나섰다.“나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건강이 아니냐.”면서 노래로 정신건강을 지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며 크게 웃는다. 이어 대뜸 “내가 (국회)출마하면 어떻겠소, 할 일이 꼭 있거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국 60개도시에 사랑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재활프로그램, 즉 세계 최고의 휴먼센터를 설립하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에 휴먼센터에서 보름 동안 재활프로그램을 거쳐 퇴학여부를 결정하자는 것. 이를 위해 매년 1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끝냈다고 했다. 자기 적성과 자아를 파악한 사람은 결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휴먼센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나라는 교과목이 너무 많아요. 학생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어디 노벨상 하나 제대로 나오나요.6,7개 과목으로 팍 줄여야 해요. 그리고 책가방을 왜 들고 다닙니까. 책은 학교에 보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로 공부하면 돼요. 왜 그 흔한 CD 제작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해요.” 임 교수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가 끓는 다혈질의 사나이기에 정 안되면 국회진출이라도 해서 그런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연장 밖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3년전부터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를 담은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68개 어린이단체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국무총리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담판을 지어 원점으로 되돌리게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오른손 문화에서 양손문화로 바뀌어집니다.30대 이상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20대는 양손을 쓰거든요. 컴퓨터 자판도 그렇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다 양손으로 휙휙 날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 정말 중요합니다.” 임 교수는 또 유학시절 유상근 전 명지대 이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 뒤, 한 사람의 투자로 이렇게 성악가와 교수로 성장해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자신했다. 따라서 재벌들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들은 따지고 보면 농민과 서민들이 물건을 사 주니까 재벌이 된 거 아니냐면서 우리 농산물이 무너지면 암 발생 등 만병의 근원이 생기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야 음악얘기가 나왔다. 인간은 음악과 스포츠 두가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면서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작곡 시 노래 무용 등 네가지뿐입니다.”고 했다. 시나 무용도 음악이 있어야 하고 무용 역시 결국은 체육이 아니냐는 것. 예로부터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사람은 음악을 들어야 과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밀양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하얀손수건을 꺼내는 이유를 물었다.“다윗창법을 쓰지요. 다윗은 노래로 신과 대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목소리가 어린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린이들은 고음에서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목이 잘 쉬지 않지요. 그래서 아 이게 바로 벨칸토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했다. 임 교수의 성악적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숙대 성악과에 입학 등록을 한 어머니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수학을 포기했고,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임 교수. 아버지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고교 교사로 있었으나 여섯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곧 실패했다. 임 교수는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성적도 별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때 너무 크게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음악점수는 ‘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중2때 음악선생님한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 ‘고성방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뚝섬 동네 밖에서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웅균이가 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실력은 별로였다. 경기중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고교 역시 1,2차에 거푸 떨어져 대구로 내려갔다가 우여곡절끝에 명지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랐다. 고3때 육사를 지원, 군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와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 집중적인 레슨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대학때에는 문화촌 달동네에 살면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당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무대에 오르기 일쑤였다. 결국 달동네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린 것. 병원비가 없어 작은형의 대영백과사전을 가져다 팔아 겨우 해결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3년 동안 화곡고 음악선생으로 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37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했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인 파바로티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85년 11월 귀국,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연세대 강사로 채용됐고,1년 뒤 ‘KBS콘서트홀’이라는 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 교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열린 음악회’.93년 10월 첫 출연하면서 ‘두만강’‘타향살이’‘밀양아리랑’ 등 클래식과 대중가요, 민요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두가지, 즉 완전한 낙원이거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일 때 그렇지요.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웅변이 곧 금입니다.” 요즘에는 실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 이유에 대해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예의 주시해 왔으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껄껄 웃는다.“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6만,7만명을 끌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6000여명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외국의 노예로 다 팔아 넘겼어요.”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75년 명지고 졸업 ▲75년 연세대 성악과 수석 입학 ▲79년 연세대 성악과 학사졸업 ▲79∼81년 군입대 ▲81년 화곡고 음악교사 ▲83년 이탈리아 유학,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수학(석사) ▲85년 귀국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부교수, 성악과 과장 역임 ▲2002년 5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5년 10월 서울시 정신건강 지킴이 위촉 ▲그외 로마 밀라노 등 이탈리아 17개 도시,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19개 도시 순회연주. 오페라 ‘사랑의 묘악’ 등 국내 30여회 공연 ■ 주요 상훈 만토바 국제콩쿠르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 메리토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성악가상(95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2000년) ■ 음반 선경 한국가곡 4,5집(CD), 독집음반 사랑하는 마음(99년), 태너 임웅균의 클래식 가요(2001년) km@seoul.co.kr
  •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소재 측면에서 볼 때 1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제작 싸이더스FNH 등·감독 윤태용)는 그대로 한국판 ‘빅’이다.13세 주인공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33세 어른으로 건너뛰어, 사랑과 감동이 어우러진 해프닝을 엮어간다. 키치적 냄새를 마구 풍기는 시중의 포스터 앞에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맨먼저 요약해줄 이 영화의 정보는, 시간에 최면을 걸어 순정한 사랑을 웅변하는 팬터지 멜로라는 사실이겠다. 80년대로 시계바늘이 옮겨간 화면 속 주인공은 시계수리점을 꾸려가는 미혼모 엄마(조민수)와 단둘이 사는 열세살 소년 네모. 아버지의 존재조차 모르는 네모는 장래희망을 “미혼모한테 장가드는 것”이라며 능청 떠는 밝고 장난스러운 아이이다. 영화는, 어딘가에 살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서러운 젊은 엄마와 철부지 네모의 동거를 전반부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넘어간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네모는 시계점에다 새로 만화방을 차린 미혼모(염정아)에게 마음을 뺏기고,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생떼를 쓴다. 나른한 동심의 팬터지에 진중한 무게중심의 추를 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네모가 만화방 여자의 아들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든 이후부터 드라마의 시계는 마법에 걸린다. 저승 문턱에 간 네모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조건으로 어른(박해일)이 되어 현실로 되돌아온다.‘좋은 세상을 만들려다’ 뇌사상태에 빠져 저승을 넘나드는 네모 아버지의 분열적 존재는 왜곡된 80년대 정치현실을 발언하려 고민한 설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감각을 무시했다는 인상이 짙다. 하루를 1년처럼 살며 90대 노인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네모의 순정이 구체적인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어로 부각되는 데는 실패했다. 동화를 뛰어넘은 사려깊은 팬터지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끝내 ‘그냥 동화’로만 주저앉은 빈약한 드라마는 난감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형식 쪽에 놓였다. 시간을 변주한 과감한 소재적 접근(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만화방이 있는 공간적 배치까지 신경썼다.)에 에밀 쿠스트리차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색감 등 어떤 영화보다 강력한 은유 능력을 자랑하는 건 사실이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돌아온 ‘원조 에로스타’ 안소영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돌아온 ‘원조 에로스타’ 안소영씨

    우리나라 최초의 심야 상영 영화를 아시나요. 시곗바늘을 2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자.1982년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한 해였다. 자정까지 제한된 통행금지가 해제됐고 두발 자유화가 실시됐다. 또 전국적인 교복 자율화 조치도 이때 결정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3S(Screen,Sex,Sports) 정책에 의해 일련의 문화적 잠금장치를 푼 것. 따라서 성 묘사에 대한 까다로운 검열장치도 자연스럽게 완화됐다. 이때 깜짝놀랄 영화 한 편이 등장한다. 바로 ‘애마부인’이다. 우리나라 에로영화의 효시로 지난 54년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장면이 나오는 ‘운명의 손’(한형모 감독) 이후 가히 혁명적 사건일 만큼 과감한 노출로 영화 팬들을 흥분시켰다. 그해 3월27일 자정, 서울극장에서는 ‘애마부인’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심야 상영하게 된다. 이날 밤 좌석수 1500석인 극장에 5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매표소가 박살나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이처럼 당시 ‘애마부인’은 통금해제에 편승, 수많은 청춘들을 심야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뿐만 아니다. 개봉 첫해에 31만명의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개봉작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애마부인’은 한국 영화 사상 최다인 무려 13편의 속편이 제작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아울러 숱한 ‘애마걸’이 등장하면서 갖가지 스캔들까지 뿌렸다. 또 ‘산딸기’‘빨간앵두’‘뼈와 살이 타는 밤’ ‘피조개 뭍에 오르다’‘어우동’‘변강쇠’‘뽕’ 등의 에로영화가 봇물처럼 스크린을 장식했다. ‘애마부인’은 이래저래 우리 사회의 변천사와 궤적을 같이했고 추억의 팬들에겐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제목의 ‘애마’는 ‘愛馬’가 아니라 삼베를 사랑하는 ‘愛麻’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마부인’이 다시 거론된다. 그 주인공이 컴백하기 때문이다. 안소영(46·본명 안기자)씨. 미국에서 살다가 지난 5월 7년 만에 귀국했다. 최근에는 누드화보집을 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프랑스 영화 ‘엠마뉴엘’과 ‘차탈레 부인의 사랑’의 실비아 크리스텔이 떠오른다. 이른바 한국의 실비아 크리스텔로 비유되는 안소영.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영화에서 적극적인 섹스를 추구하는 여인으로 파격 등장했다. 이로 인해 나름대로 한(恨)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다. 늘 벗어야 하는 배우로, 또 ‘큰 가슴’이라는 고정된 시선과 굴레를 동시에 안고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안씨는 지난 76년 연기 인생을 시작해 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또 98년 미국으로 훌쩍 떠나 뉴저지주에서 ‘황부자 순두부집’을 운영하며 아들과 둘이 외롭게 지냈다. 틈틈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의 본능을 참지 못했고 결국 귀국을 결심했다. 돌아오자마자 KBS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출연했고, 지난 8월에는 누드화보를 찍었다. 서울여대 사진학과 교수인 안씨의 동생과 함께 서울과 제주에서 촬영했다. 안씨는 요즘 ‘내나이 마흔일곱’을 위해 특별한 것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에 데뷔 30년을 맞는다. 그래서 뮤지컬과 영화출연을 위해 차분히 준비 중이다. 뮤지컬 제목은 ‘뜨거운 홍차를 같이해’이며 내년 3월 대학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서 주인공 히피소녀를 맡아 노래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 각오다. 영화는 ‘안소영 세대에 바친다’는 주제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이 다 끝났다. 벗는 배우의 굴레를 벗고 나이에 걸맞은 제2의 배우인생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커피숍에서 안씨를 만났다. 머플러와 체크무늬 상의가 가을날 햇살과 잘 어울렸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일주일에 3일은 서초동의 예술의 전당을 찾아요. 뮤지컬 자료를 얻기 위해서지요.”라고 대답했다. 뮤지컬은 목소리도 따라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지체없이 “옛날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었어요. 성대가 약하긴 하지만 폐활량을 높이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통해 체력훈련하고 있지요.”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청계산을 찾는다는 것. 때마침 아들한데 전화가 걸려온다. 숙제가 끝나면 할머니를 모시고 공원 산책을 나가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아니, 아직도 그런 질문 하나요. 그냥 미혼모로 알아주세요.”라고 하면서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잘 살고 있거든요.”라고 약간 역정을 낸다. 이어 미국 생활 얘기가 나왔다. 그는 97년 미혼모가 됐고 ‘안소영 컬렉션’이라는 의상실 경영도 어려워져 미국 뉴저지로 떠났다. 아는 사람이라곤 동생 지인들이 전부. 처음에는 의류명품점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아들이 워낙 순두부를 좋아해 순두부집을 2년 동안 운영하게 됐다. 아들 이름이 황도연. 부자되라는 뜻에서 ‘황부자∼’로 지었다. 운동화끈을 조여매고 주방이며 손님 접대며 밤 10시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다보니 힘들어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고백했다. 안씨에게 ‘애마부인’은 어떤 모양으로 남아 있을까.“어쩔 수 없이 출연했고 그로 인해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왔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애정보다는 ‘애증’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했다. 자신의 본질적 연기는 그게 아닌데 늘 ‘애마부인’으로 고정시선을 받는 게 정말 싫었고, 또 행복보다는 시련과 굴곡이 더 많았다고 했다. 아이에게도 배우라는 점을 당당히 얘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건만 ‘애마부인’이란 족쇄로 얻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안씨는 “그 영화 이후에는 감독마다 다들 벗으라고 해 정말 싫었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만큼은 달랐다고 했다. 추억 한토막.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촬영현장을 따라다니던 안소영은 중학교때 처음 임 감독을 만났다.“소영이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어.”라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애마부인’을 찍고 나서 “너무 어이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86년 임 감독의 ‘티켓’에 출연한 안씨는 “감독님 제발 벗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원래 저는 순수 연극을 좋아했어요. 이해랑 선생님의 연극 ‘죄와벌’(극단 신협)에서 노주현씨랑 처음 연기를 했거든요.” 안씨는 어릴 적 원로 배우 김지미씨를 좋아했다. 김씨가 웃을 때 입이 약간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울 앞에서 흉내를 내곤 했다. 중학교 때부터 서울 충무로의 배우전문학교에 다니며 영화계 사람들과 자주 만났다. 고교 졸업 때에는 기자가 되려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응시했으나 떨어져 인생팔자가 연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자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요. 어떤 기대감도 없고요. 아이와 살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얻으면 되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한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성격상 맞지 않는다는 것. 안씨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미국이나 타이완에서 순두부집을 곧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순두부는 보통 한국식이 아니라 양념이나 재료에 많은 정성을 쏟아붓는 특별 순두부라고 했다. “제게 연기를 위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요.‘독짓는 늙은이’의 편안한 시골여인처럼 살고 싶어요. 화려함이 아닌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말입니다. 또 나이 60에는 제 인생의 누드화보 전시회를 꼭 열 생각입니다.”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59년 서울 출생 ▲78년 정화여자상고 졸업 ▲76년 ‘내일 또 내일’로 영화 데뷔 ▲77년 연극 ‘죄와 벌’ ▲주요 출연작 오늘밤은 참으세요(81년) 애마부인(82) 달빛 멜로디(84) 여자가 두번 화장할 때(84) 자유처녀(85) 합궁(88) 그 섬에 가고 싶다(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 등 17편
  • [유망 자격증 20선] 임상심리사

    [유망 자격증 20선] 임상심리사

    임상심리사의 활동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심리학적 접근법이 조명을 받으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임상심리를 통한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무청에서 오는 2008년부터 임상심리사를 배치, 징병 신체검사의 인성검사를 강화키로 한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또 경찰수사에 임상심리사 등의 심리전문가를 동원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아동성폭력 전담센터에서는 지금도 임상심리사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밖에 일선 학교에서도 임상심리사의 전문상담을 통해 학교폭력 해법을 찾는 등 임상심리사의 역할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때문에 관련 자격이 주목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이 대표적이다. ●고도의 전문성 요구… 한해 합격자 50명 내외 국가기술자격인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시험은 1급과 2급으로 나뉘지만, 현재는 2급 시험만 개설됐다. 신설된 지 3년째로 아직 2급 임상심리사도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 임상심리사 자격은 응시자격도 까다롭고, 시험 역시 만만찮아 심리학 전공자 외에는 접근이 어렵다. 공단 관계자는 “임상심리 실습수련 과정을 1년 이상 받은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하기 때문에 많게는 몇 천명씩 몰리는 다른 자격시험에 비해 지원자는 연간 300∼400명 정도로 적은 편”이라며 “합격률도 15% 정도로 낮아 합격자는 한 해 50명 내외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전문자격으로서의 가치가 두드러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필기시험은 ▲심리학개론 ▲이상심리학 ▲심리검사 ▲임상심리학 ▲심리상담 과목에 대해 객관식으로 치러진다. 실기시험은 주관식 필기시험 형식을 띤다. 상담사례를 제시하고 실제 임상실무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험시간만 3시간에 달한다. 시험 수준에 대해 공단측은 “임상심리를 전공하지 않은 응시자는 힘들다.”고 귀띔했다. ●월 평균임금은 331만원… 경력 쌓은 후 교수로도 임상심리사는 심리적·정신적 문제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심리검사나 상담, 심리재활, 심리교육 등을 실시하는 심리전문가다. 정신과 의사와의 차이는 약물치료를 할 수 없다는 점이며, 상담전문가와의 차이는 임상심리사가 보다 심각한 심리장애나 정신병리를 다룬다는 점이다. 전망은 밝은 편이다. 임상심리사의 입지가 탄탄해진 데다 진출분야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임상심리상담소를 운영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비행, 약물오남용, 성폭력, 미혼모, 가족문제 등 영역별 전문 임상심리상담소가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그밖에 각종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거나 경력을 쌓은 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입직하는 경우도 많다. 중앙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임상심리사의 월 평균임금은 331만원으로 집계됐다. 하위 25%는 100만원, 상위 25%는 500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인생은 둥글다고 했던가. 그래서 가운데와 언저리가 있단다.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기왕이면 가운데에서 살아봄이 어떨까. 문득 ‘니나 붓슈만’이란 여인이 생각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생의 한가운데 서서 삶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인다. 파란과 곡절의 인생항로, 우수와 슬픔,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하는 자기 신념이 강한 여성이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70·한국명 許滿理) 이사장. 스물한 살 꽃다운 처녀 때부터 동방의 나라, 낯선 한국땅에서 ‘입양과 장애’라는 두 단어를 어깨에 모질게도 짊어지고 꼭 반세기를 걸어왔다. 어렵고 고달픈 생의 그늘에서도 자신보다 버려진 아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더 소중하게 온몸으로 맞이하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말리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자인 홀트 부부의 딸. 지난 50년을 입양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와 우리나라 입양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버지 해리 홀트(1964년 작고)와 어머니 버서 홀트(2000년 작고)가 떠나간 뒤인 요즘도 24시간 장애인들과 지내며 묵묵히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해외에 입양된 아이만 해도 9만 5000여명.6·25 전쟁의 폐허 속에 시작됐기에 초창기에는 전쟁고아와 혼혈아가 대다수였으며 최근에는 미혼모 아이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타운’을 찾았다. 본관 건물 바로 옆에 ‘말리의 집’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었더니 5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바닥에 앉아 있다. 한 아이는 불편한 몸 때문인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흘리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외출 나갔던 말리가 들어왔다.“미안해요. 미국에서 친구가 와서 보내느라고 조금 늦었어요.”라고 했다. 인터뷰는 마당의 의자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5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한국도 지난 세월만큼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입양아들이)정상적으로 자라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고 피력했다. 때마침 한국인 아가씨로 보이는 두 명이 지나가면서 영어로 인사한다.“어릴 적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 한달 전 자원봉사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온김에 생부모를 만날 생각도 있습니다. 다 커서 저렇게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저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 등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합니다.”면서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놀아주고 일년에 4∼5명 정도는 본가족과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고 부연했다. 50년 세월이면 강산이 다섯번 변했다고 하자 “56년 10월3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을 때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곳곳에 총알이 박혀 있는 건물이며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서울시청 마이크로버스로 고아들을 잔뜩 실어오곤 했는데 워낙 못 먹고 며칠씩 씻지를 못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노인네 모습과 영락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경우에는 버스 안에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 영아들이 보자기나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전구로 보온을 시키는 등 응급조치로 살려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죽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61년 부친이 일산 현 위치에 3만 3000여평의 땅을 사서 복지타운을 건립할 때까지 서울 효창동과 녹번동의 임시 수용시설에서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단다. 지금은 전국 11개지부를 둘 만큼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했더니 “어쩌다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 때 좋은 환경의 집안에 입양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많이 힘들어집니다.”라고 토로했다. 결혼을 안한 이유를 묻자 “신앙심이 있으면 굳이 안해도 됩니다. 고아 장애인들이 있는데 곧 그들의 어머니가 아닙니까.”면서 “꼬마들은 자신에게 할머니 누나 언니 등으로 곧잘 부릅니다.”라며 웃는다. 하루 일과에 대해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경책을 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고 했다. 이어 전날의 일을 깨알같이 메모한다. 아침 7시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할머니가 된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손 훈련을 꾸준히 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온몸에 잼과 밥풀떼기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을 정도. 간단히 샤워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체크한다. 요즘도 미국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메일이 자주 온다.9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평상의 일과를 시작한다.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줄 잼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한국어를 틈틈이 공부한다. 한국말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읽고 쓰기에는 아직도 서툴다. 때문에 영자신문이나 TV를 통해 돌아가는 세상사를 접한다.“한국인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고 했다. 아울러 “중국이나 필리핀을 왔다갔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빨리 달라졌습니다.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었는데….”라고 한국의 발전상에 새삼 놀라워했다. 말리가 한국에 오게 된 연유는 아버지인 해리 홀트의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본인 자신도 평소에 불우아동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잠시 집안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 버서 홀트는 원래 간호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농부인 해리 홀트를 만나면서 농부의 아내가 됐다. 그러나 결혼 직후인 29년부터 대공황이 이어지자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해리는 이곳에서 목재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던 54년 홀트 부부는 우연히 한국전쟁 고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선 한국인 고아 8명을 입양하려고 했으나 당시 미 연방법에는 2명 이상 입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홀트 부부는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의회는 두 달 만에 ‘홀트법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55년 10월12일 8명의 전쟁 고아를 입양한 것을 시작으로 해리는 한국에서, 버서는 미국에서 입양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최대의 시련은 88년 서울올림픽 때. 정부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해외입양 금지령을 내렸던 것. 홀트아동복지회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금지령을 취소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찍부터 부모의 뜻을 이어받은 말리는 그동안 부산 광주 전주 등지의 고아원과 예수병원 등에서 활동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의촌 진료에도 앞장서는 등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은 혈통주의가 강해요. 그러다 보니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입양은 불행한 아이나 아이를 원하는 가정을 위해 서로 좋은 일입니다. 낳은 부모나 기르는 부모나 사랑은 다 똑같죠.” 전문 장애인병원을 건립해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말리는 현재 일산타운에서 주로 입양이 힘든 고아 장애인 270명을 돌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 땅에는 부모가 묻혔고 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곳이기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말리의 어머니는 오리건주 자택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에 따라 현재 일산타운내의 남편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파이어스틸 출생. ▲53년 오리건주 크레스웰고교 졸업 ▲56년 새크래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졸업 ▲64년 오리건대학 간호학과 졸업 ▲91년 노스콜로라도 주립대 특수교육학과 졸업(석사) ▲56∼65년 홀트아동복지회, 부산 이사벨영아원, 우정보육원, 미국 오리건 병원, 전주 예수병원 간호자문역 ▲65∼78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67∼74년 홀트일산원 원장 ▲92∼현재 나사렛대학 재활학과 교수 ▲98∼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2000∼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수상경력 국민훈장 석류장(81년), 로버트 피어상(84년) 세계성령봉사상(98년) 적십자 인동장 금장(00년) 일가상(01년) 비추미 여성대상(03년) 등.
  • [혁신 공기업탐방(27)]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

    [혁신 공기업탐방(27)]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

    대한주택공사가 변하고 있다. 단순히 서민주택 공급 전문 공기업이 아닌 주거복지 실천 전담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취임 1주년을 앞둔 한행수(60) 주공 사장은 17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주공은 단순히 집 짓는 회사가 아니다.”면서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를 개발하는 전문 기업인 동시에 새로운 주거문화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사장은 “판교 신도시를 파주 신도시와 함께 ‘U(유비쿼터스)-CITY(도시)’ 시범도시로 개발, 쾌적하고 편리한 신도시 모델로 만들겠다.”며 “주거복지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다가구 매입임대, 전세주택 임대사업 등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판교 신도시 미래 모습과 관련해서는 “판교는 전체 주택 2만 9000여가구 가운데 주공이 2만여가구를 공급해 사실상 ‘주공시(市)’나 다름없다.”며 “기존 신도시와 달리 명실상부한 유비쿼터스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비쳤다.U-CITY는 단순히 아파트 내부 홈네트워크 수준을 벗어나 도시 전체를 첨단정보통신기술로 묶는 것으로, 홈네트워크와 도시네트워크가 통합구축된 미래도시라고 할 수 있다. # 편리하고 쾌적한 도시 건설 ▶판교 신도시 개발안이 거의 확정 단계다. 어떤 식으로 개발할 것인지. -개발 구상은 U-CITY다. 택지를 공급하고 도시의 틀을 짜는 데는 토공, 경기도와 함께 지혜를 모으고 있다. 주택 공급부터는 공영개발이 적용돼 사실상 주공이 주도해야 한다. 가장 편리하고 쾌적한 신도시로 조성할 것이다. 세계적인 신도시 개발 모델이 될 것이다. 첨단 인프라를 깔아 신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IT(정보통신)기술과 접목된다. 주거·업무·교통·문화·행정 기능이 네트워크화돼 지금보다 훨씬 진보된 도시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도시 전역에 유·무선 통신망을 깔아 언제, 어디서, 누구나 다양한 IT기능을 이용할 수 있어 도시 경쟁력도 한층 커진다. 앞으로 주공이 건설하는 신도시나 대단지 공영개발에는 U-CITY 개념이 적용될 계획이다. ▶주택건설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더 이상 밋밋한 아파트 단지는 자제해야 한다. 단지 중심의 개발에서 벗어나 미래 도시개발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21세기는 50% 이상이 재택근무를 할 것으로 본다. 결국 도시 전체를 첨단 정보통신기술로 묶어야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재택근무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U-CITY라고 본다. 이미 파주 신도시를 U-CITY 시범도시로 선정, 추진하던 중이었다. 때마침 판교 신도시 개발에서 주공이 차지하는 역할이 커져 파주와 동시에 판교도 U-CITY로 개발할 계획이다. # 주거복지 기관으로 자리매김 ▶‘그룹홈’ 사업을 활발히 펼치겠다고 했는데. 의의와 확대 계획은. -주택건설이라는 종래의 주공 고유 업무에 대한 일대 혁신이다. 주거복지 실천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서민 주택만 많이 공급한다고 주거복지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좀더 소프트한 부분을 주공이 직접 챙겨주는 정책을 펼 생각이다. 그룹홈은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가족적인 보호를 통해 지역사회에 적응하고 자립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주공이 주관이 돼 사회단체 등과 손잡고 소외계층에 삶의 터전을 제공한 뒤 이들을 돌보는 사업이다. 그룹홈 대상을 정신지체 장애인에서 취약 계층 아동, 노인, 미혼모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다가구 4350가구를 사들여 그룹홈 임대사업으로 내놓고, 오는 2015년까지 5만가구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 주택을 전세로 계약한 뒤 이를 저소득층에게 다시 공급하는 전세임대도 2015년까지 1만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주공이 벌이는 주거복지 사업이 지자체와 중첩되지 않는지. -주공이 벌이는 주거복지는 기업성만 따진다면 손을 댈 수 없는 사업이다. 돈 남기자고 하는 사업이 아니다. 지자체가 주택공급이라는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데 비해 주공은 다양한 수단으로 집을 내놓을 수 있다. 여기에 복지 서비스만 더하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주공이 사업을 펼치는 것이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전세지원 사업이 좋은 예다. 지난해 지자체가 수행할 때는 전국에서 고작 9건에 그쳤는데, 올해 주공이 시작하자마자 1100건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올해 말까지 목표를 1500건으로 다시 수정할 정도다. 부도 임대주택 임차인 지원사업,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전세주택 지원사업 등 주거약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주택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올해 시범사업 2곳을 추진하고 있다. # 공급대책 핵심은 공영개발 확대 ▶‘8·31대책’이후 주공의 역할이 커졌는데. -주택공급 측면에서 주공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책임도 느낀다. 공급 대책의 핵심은 공공영개발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라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주공은 공영개발의 성공이 이번 대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상징성이 있다고 보고 사운을 걸었다. 민간업체와 국민들에게 꼭 부탁드릴 것이 있다. 공영개발은 주공 단독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아니다. 민간 기업의 협력이 바탕돼야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민간의 창의성과 다양성, 주공의 주택건설 노하우를 접목시켜 사업을 추진이다. 주공아파트 품질이 민간아파트에 비해 뒤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공이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주택만 짓다 보니 마감재를 고급화하는 데 한계가 따랐다. 막연히 주공아파트는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공영개발, 주거복지사업 등으로 조직과 인원 보강이 필요하고 주공 조직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주공 주택건설 물량이 10만가구이다. 웬만한 대기업 10여개 업체의 1년 건설 물량과 맞먹는다. 인원·조직보강 수요가 따르고 있으나 현재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규 업무를 감안, 본부 단위의 임원 1명 정도는 최소한 보강돼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깥에서 걱정하는 조직의 급격한 비대화는 없을 것이다. # 투명경영으로 ‘비리´ 추방 ▶임직원들이 아직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행동으로 사회적인 비난을 받은 적도 많았다. 투명 경영을 위한 혁신 방안은. -부패방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난해 청렴도 측정에서 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어렵게 입사, 사회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공기업 직원으로서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직원들을 다그쳐서 많이 바뀌었다고 평가한다.18개 공기업이 참여하는 ‘공기업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았다. 주공은 비리가 드러나면 ‘징계’가 아니라 바로 ‘도태’시킨다. 직원들도 잘 따라주고 있다. 주공이 국민에게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투명하고 깨끗한 경영에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글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직원 청렴도 제고 ‘CZ’운동 주공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크다.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주공의 혁신 방향은 고객만족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청렴도 평가라는 잣대로 보면 주공은 아직도 고객들로부터 비리의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한행수 사장은 ‘비리 발견 즉시 퇴출’이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를 위한 투명경영 실천 프로그램이 바로 ‘CZ’이다. CZ(Corruption Zero·부패 제로)는 직원 모두가 함께 부패를 파멸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패의 뿌리가 깊고 끈질기면 척결(剔抉·뼈를 발라내고 긁어낸다)하는 수밖에 없다. 조직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고객만족 경영을 저해하는 관행과 문화는 모조리 날려버리는 운동이다. 그래서 감사실에 CZ팀을 두어 청렴도 제고 및 부패 방지를 전담토록 했다. 이 운동에는 예외가 없다.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도 동참하고 있다. 감사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상임감사에게 감사인의 승진·전보권을 부여했다. 윗물 맑기운동 차원에서 간부 청렴도 평가를 실시한다. 자율적인 반부패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내부경영평가점수 상향 조정, 청렴도 우수 사원·부서 포상 등을 실시 중이다. 부조리 징계 관련 승진 제한, 내부 공익신고 포상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변화·혁신’ 이끄는 한행수 사장 한행수 사장은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처음 공기업 CEO로 왔을 때는 가치관의 혼란도 많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주공 사장 취임 1년만에 그는 주공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파악했다고 한다.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고, 참여정부와 ‘코드’도 잘 맞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사장에게 “주공이 짓는 중형 임대아파트를 추천해달라.”고 했을 정도다. 주공에 와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일감 확보에 안주하지 말자며 주공 경영의 방향타를 주거복지로 돌렸다. 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빼고는 모두 다 바꾸자는 ‘삼성식’ 경영을 도입,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1945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상고·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그룹에 공채 11기로 입사했다. 삼성전자 관리본부장, 삼성건설 주택사업본부 부사장,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 삼성홈 E&C 회장,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근대5종연맹 회장, 아시아근대5종·바이애슬론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다.
  • 미국인 초혼연령 ‘동고남저’

    미국인 초혼연령 ‘동고남저’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결혼을 늦게 하고, 미국서 태어나는 신생아 3명 중 한 사람에 해당하는 29%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 인구조사국이 13일(현지시간) 2000∼2003년 300만 가구 이상을 조사, 처음으로 결혼과 출산을 통한 주(州)별 사회·경제적 차이를 밝혀냈다. 미국인들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26.7살, 여성 25.1살이었다. 북동부 주는 다른 주에 비해 결혼이 늦었다. 뉴저지·코네티컷·매사추세츠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29살, 여자가 26∼27살로 아칸소·아이다호·켄터키·오클라호마·유타주보다 4살쯤 늦었다. 유타주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23.9살, 여성 21.9살인 반면 워싱턴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녀 모두 약 30살이었다. 미 전체에서 초혼 연령은 1970년대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늦게 결혼하는 남녀는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북동부와 서부는 남부보다 동거 가구수가 많았다. 메인·뉴햄프셔·버몬트의 동거 가구 비율은 7%로 앨라배마·아칸소·미시시피보다 두배나 많았다. 십대 출산도 북부와 남부의 차이가 뚜렸했다. 미 전체 출산에서 십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7.7%로 뉴저지·매사추세츠 등 북부지역의 십대 출산이 5%인 반면, 아칸소·조지아·루이지애나·미시시피·몬타나·뉴멕시코·텍사스·와이오밍 등에서는 10%가 넘었다. 전체 출산의 29%를 차지하는 미혼모도 남부에서 월등히 많았다. 특히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미혼모 비율이 53.4%로 가장 높았다. 미국 시민이 아닌 여성이 전체 출산의 15%를 기록했으며, 캘리포니아주 산모의 5분의1은 영어를 잘 못하는 이민자였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럿거스대학의 데이비드 포페뇌는 “만혼은 높은 교육 수준과 관련이 있는데 북동부 지역의 교육받은 남성일수록 결혼은 늦게 하고 동거를 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깔깔깔]

    ●조기 성교육 미혼모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현실에서 교육부는 특단의 조치로 유아 때부터 성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시범차원에서 한 유치원을 선정했다. 유치원생들을 모아놓고 막 성교육을 실시하려는데 갑자기 한 남자아이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어떻게하면 아이가 생기는지 벌써 다 알아요.” 남자아이의 말에 선생님과 교육부 관계자들은 기가 막혔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남자아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소리치는 게 아닌가. “나는 어떻게하면 아이가 안 생기는지도 알아요.”●상담 문 : 고3인 남자친구 선물로 뭐가 좋을까요? 전 고2거든요.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 선물로 추천해주세요. 답 : 고3 남자친구라… 헤어지는 게 최고의 선물 아닐까요?
  • [책꽂이]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안성호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2000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저자의 첫 소설집. 아내와 불륜 남자를 동시에 살해한 남편이 주인공인 표제작을 비롯해, 나비를 먹는 여자의 이야기(‘나비’)등 몽유병자의 백일몽 같은 환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가득한 단편 8편이 실렸다.8500원.●통역사(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한국어 통역사로 일하는 재미교포 수지 박이 부모님 살해에 관련된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눈부신 아메리칸 드림 이면의 끔찍한 이민 생활상을 생생하게 드러낸 장편소설. 한국계 작가 수키 김의 데뷔작으로 출간과 동시에 미국 최대 서점 반즈앤노블의 ‘올해 주목할 작가 10명’에 선정됐다.1만 2000원.●휘트먼의 천국(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홍엽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퓰리처상 수상작 ‘세월’의 작가 마이클 커닝햄의 신작. 내성적인 소년 루크, 세상에 찌든 미혼모 캐서린, 잘 생긴 청년 사이먼 등 세 명의 인물이 뉴욕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교묘하게 얽히는 독창적인 서사구조를 선보인다.1만 2000원.●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이명원 지음, 새움 펴냄)한국문학에서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자연스레 묻혀진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한 문학평론서. 김수영의 시 ‘풀’의 이미지를 ‘여성의 성욕’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문단 권력다툼의 아귀에서 잊혀져간 평론가 최일수를 불러내는 등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길어올린 21편의 글을 실었다.1만 7000원.●고욤꽃 떨어지는 소리(유재영 지음, 시학 펴냄)시인이며 북디자이너인 저자가 ‘한 방울의 피’‘지상의 중심이 되어’에 이어 등단 32년만에 내놓은 세번째 시집.‘잠을 이룰 수 없는/밤이었다/고향집에 와서/오십살이 넘어서야/비로소 듣는//고욤꽃 떨어지는 소리,’(‘득음’전문)등 40여편 수록.7000원.
  • 10대 미혼모 하루 2.6명꼴

    올해 상반기 동안 최소한 하루 6명꼴로 미혼모가 생겨난 것으로 나타났다.10대 미혼모는 하루에 2.6명꼴 이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은 2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미혼모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6월 말까지 전국 16개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미혼모는 1120명으로 집계됐다. 입소하지 않은 미혼모는 수치에서 빠진 만큼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미혼모는 16세에서 20세 사이가 전체의 40.5%인 454명으로 가장 많았다.21∼25세가 428명(38.2%)으로 뒤를 이었으며,15세 이하도 15명이나 됐다.미혼모가 출산한 1120명의 아이들 중 73.6%인 824명은 국내 또는 해외로 입양됐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부자가정/박홍기 논설위원

    가시고기라는 작은 민물고기가 있다.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가 버리면 수컷이 혼자 남아 알이 부화할 때까지 보호한다. 먹지도 않고 새끼를 돌보다 새끼마저 떠나면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는다. 그래서 ‘부정(父情)’을 상징하는 동물이 됐다. 한때 소설 ‘가시고기’가 수많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적이 있다. 이혼한 뒤 혼자 백혈병에 걸린 10살 난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다 암으로 죽음을 맞는 아버지를 다루었다. 애틋한 자식사랑이 가시고기의 생태와 비슷했다. 소설 ‘가시고기’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사정은 다르지만 혼자 자녀들을 키우는 아버지들이 해마다 늘고 있단다. 이른바 ‘부자(父子)가정’이다. 워낙 모정(母情)에 익숙해져 있는 세상인 탓에 왠지 낯설고 부담스러운 용어이기는 하다. 지금껏 사회 분위기는 남자가 자식을 키운다고 하면 ‘글쎄…, 재혼하지 않겠어, 할머니에게 맡기겠지.’라며 미심쩍어하는 수준이다. 전통적인 성 역할 인식도 한몫해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과부 삼년이면 은이 서말, 홀아비 삼년이면 이가 서말’이라는 속담은 사회의 인식을 나타내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자가정은 1995년 15만가구에서 2000년 22만 5000가구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24만가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미 또 하나의 가족 형태로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자가정에 대한 정부나 사회적 관심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아예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모자(母子)가정 시설은 모자보호, 모자자립, 모자임시보호에서부터 미혼모 시설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70여곳이나 되지만 부자가정 시설은 단 한 곳도 없다. 특히 저소득층 부자가정의 처지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부자가정의 증가는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현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전통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모자가정에 비해 부자가정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부자가정을 정책적, 사회적 배려 대상에서 홀대해서는 안 된다. 자칫 우리 사회의 엄연한 한 부분이 소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5) 성적소수자의 권리(네덜란드)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5) 성적소수자의 권리(네덜란드)

    흔히 네덜란드를 ‘성적소수자의 천국’이라 부른다. 세계 최초로 동성간 결혼을 인정해 동성애자들도 드러내 놓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다. 성전환자에 대한 의료 지원도 철저하다. 성(性)에 대한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오랜 과정을 거쳐 법과 제도로 반영된 결과다. 네덜란드 성적소수자들의 생활을 현지 취재로 생생히 살펴본다. ■ 세계 첫번째 레즈비언 부부의 삶 |암스테르담(네덜란드) 이효용특파원|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0㎞ 떨어진 한적한 동네의 한 아담한 복층 아파트. 곳곳에 걸린 가족사진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지극히 평범한 두 ‘아줌마’가 기자를 맞았다. 지난 2001년 ‘세계 최초의 합법적 동성부부’로 외신을 장식했던 헬레네 파센(38)과 안느-마리 튀스(36) 부부다. ●두 아이 낳고 완벽한 가족으로 “이쪽은 우리 엄마고요, 이쪽도 우리 엄마고요, 얘는 내 동생이에요.” 2층에서 쪼르르 뛰어 내려와 조잘조잘 가족을 소개하던 나탄(5)이 수줍은 듯 헬레네 뒤로 숨는다. 나탄은 이들이 인공수정을 통해 얻은 아들이다. 헬레네와 마리는 1998년 12월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 한눈에 서로 ‘인생의 동반자’라고 느꼈다.1주일 만에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동거에 들어갔다.2001년 4월1일,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동성커플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던 날 0시를 기해 결혼식을 올렸다. 나탄에 이어 딸 미르틀러(3)를 낳고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헬레네는 사실 마리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몰랐었다. 명문 프리예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공증인으로 일하던 그는 공부와 일에 바빠 31살이 되도록 연애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리를 처음 본 순간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으며, 그것은 동성이건 이성이건 상관없는 사랑 자체였다.”고 말했다.15세 무렵 성 정체성의 고민을 시작한 마리는 19세 때 동성애자임을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둘 다 가족의 반대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이 문제는 녹록지 않았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입양과 인공수정 두가지. 마리가 아이를 낳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으로 2000년 첫 아들 나탄을 낳았다. 생모인 마리는 출산과 동시에 부모의 자격을 얻었지만, 헬레네가 나탄의 부모로 인정받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네덜란드 현행법은 출산이든 입양이든 일단 한명만 부모로 인정하고, 동성 배우자는 3년이 지나야 ‘입양’ 형식으로 부모가 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둘째 미르틀러까지 모두 입양 절차를 마쳤다. 여느 부모와 다른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고민스러웠다. 아이가 물으면 “너는 아빠가 없고 엄마가 둘이다.”라고 말해줬다. 혹여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편부모나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일 뿐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둘 다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남매는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가족이니 행복한 게 당연하죠.”라며 활짝 웃던 헬레네는 “네덜란드에서도 불과 30∼40년 전에는 동성 커플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이성애와 동성애가 적어도 법적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 인정 후 편견 극복을”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동성애정보자료실에서 책과 뉴스 수집을 담당하는 김혜진(21)씨는 3개월에 한번씩 진료와 호르몬 치료를 위해 프리예 대학병원을 찾는다. 벨기에 입양아인 김씨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성 정체성이 여성이며, 성적 지향 또한 여성인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다. 성적으로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인형놀이를 좋아하던 김씨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늘 헷갈렸고, 부모는 그를 게이(남성동성애자)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성이 되고 싶으면서도 자꾸 여성에게 끌렸다.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임을 깨달았다.“입양이 실패했다.”며 냉랭하게 등을 돌린 양부모를 떠나 2002년 암스테르담에 와서 동성애 자료실에 일자리를 구했다. 다행히 네덜란드는 성전환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수술 및 평생 해야하는 호르몬 치료까지 모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까다로운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통과해야 한다.18세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김씨는 내년 10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동양인이며 트랜스젠더에 레즈비언이라는 3중의 핸디캡과 싸워온 김씨는 “특히 소수자에게 인권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면서 “우선 솔직하게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 다음 편견과 싸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를 위한 15년의 노력 네덜란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헌법 1조에 따라 단계적으로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갖춰 왔다.1980∼90년대에 유명 연예인들과 몇몇 정치인들이 커밍아웃하면서 꾸준히 이슈를 만들어 나갔다.1991년 동성애자였던 당시 내무장관이 기반이 되는 법안을 만들었고,1998년 동성간 ‘등록 파트너제’가 합법화된 데 이어 2001년 동성간 결혼과 동성부부의 입양이 허용됐다. 스작 얀슨 법무부 법률고문은 “성적 정체성이 다름을 이유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의 기본 정신”이라면서 “올 가을 동성부부의 입양 때 한쪽이 3년 뒤에야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약을 수정하는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최대의 동성애 운동 단체인 COC의 아르요스 벤드리그(30)는 “지난 4월 ‘여왕의 날’ 행사를 취재하던 미국인 동성애 운동가이자 기자인 크리스 캐인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등 아직 차별이 남아 있다.”면서 “법적으로 보장됐다 하더라도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려면 지속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utility@seoul.co.kr ■ 동성애자 정치인 디트리시|암스테르담(네덜란드) 이효용특파원|“동성애자니 이성애자니 하는 성 정체성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입니다.” 네덜란드 연립 여당 가운데 하나인 D66의 당대표 보리스 디트리시(50)는 잘 알려진 동성애자 정치인이다. 암스테르담 한 노천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코멘트할 수 없다.”고 예의 정치인다운 첫마디를 날리면서도 “결국 동성애자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955년 유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레이든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뒤 1981년 중도진보 성향의 D66에 입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고연방에서 망명해 레이든대에서 동유럽학을 가르친 교수였다.20세를 전후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그는 1981년부터 25년째 한 남성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는 처음엔 놀라고 슬퍼했지만 언젠가부터 파트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인 그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것은 1993년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할 때였다. 평가가 엇갈렸지만 “본인에게 솔직하다면 국민에게도 솔직할 것”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무난히 당선됐다. 국회의원으로는 첫 커밍아웃이었다.1993년 동성결혼허용 법안을 제안했고,2003년 당 대표가 됐다.151석 가운데 6석을 차지, 제1·2당인 CDA·VVD와 연립여당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보수 성향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1996년 기독연합당 대표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보리스가 사는 방식은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니며 동성애는 이성애보다 열등하다.”라고 비난했다. 일부 의원들이 “정당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 끝에 결국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결론났다. 그는 “수치심과 모욕을 느꼈던 순간이지만 결코 커밍아웃한 것을 후회하거나 불편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면서 “오히려 누가 뭐라고 하든 정치인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나 능력이 억압받아서는 안된다.”면서 “동성애운동단체, 언론, 정치인 등이 꾸준히 동성애 문제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tility@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토론카페(EBS 오후 10시50분)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와 권력 그리고 지위를 독점한 특권층에 대해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1%에 해당하는 소수가 과연 한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진정한 엘리트 계층인인지, 아니면 특권을 독점하는 신귀족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특권층인지를 두고 토론한다.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4.0%에 못 미치는 성장률을 전망함에 따라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토론해 본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MBC 오후 9시55분) 경이적인 시청률 40%를 넘기고 또 하나의 ‘국민 드라마’로 자리잡은 ‘내 이름은 김삼순’. 대한민국이 김삼순을 사랑하는 이유와 그 인기 비결을 전격 해부한다. 김선아 현빈 정려원 다니엘 헤니 4명의 개성있는 배우들을 쫓아가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그들의 모습을 공개한다.   ●특명!아빠의 도전(SBS 오후 7시5분) 우치현씨가 가족을 위해 도전할 과제는 바로 ‘디아볼로 줄넘기’. 개인택시 경력 15년, 하루 평균 15시간을 근무해 오다 급기야 허리와 무릎에 고장이 생긴 우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 처음 줄넘기에 도전한 우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연습에 최선을 다한다. 과연 그는 이 미션을 이룰 수 있을까?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술에 취한 기준은 선미에게 죽을 때까지 인영을 잊지 못할 거라며 괴로워하고, 선미는 차라리 깨끗이 잊어주는 게 인영이를 위하는 길이고,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충고한다. 기준은 괴로운 마음을 안고 인영의 아파트 앞에서 배회하다가 마침 귀가하던 인영과 재민의 포옹 장면을 보게 된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결혼 전에 창호를 가진 미연은 아이 아빠가 죽으면서 미혼모 신세가 된다. 이대로 딸을 내버려 둘 수 없는 어머니는 아이가 없던 미연의 오빠 부부에게 창호를 입양시킨 뒤 미국으로 보낸다. 결혼을 위해 귀국하게 된 미연은 창호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데….
  • “동거는 필수… 결혼은 선택”

    “동거는 필수… 결혼은 선택”

    서른살 동갑인 제나와 세바스찬은 10년째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 결혼할 계획은 없다.2년반 동안 동거해온 32살 동갑내기 킴과 트래비스는 최근에야 내년 3월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결혼 및 가정 ‘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결혼보다 동거를 택하는 미국인 커플들이 늘고 있다. 미국의 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성인 남녀 100쌍 중 8쌍은 동거 커플이다. 북유럽, 특히 스웨덴을 닮아가고 있다. 결혼 대신 동거하는 커플이 늘면서 세계에서 이혼율이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인 미국에서 최근 들어 이혼이 줄고 있다고 미국 럿거스대학 부설 ‘전미결혼프로젝트’가 18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연구소의 데이비드 포페노 교수는 그러나 동거 커플이 결혼한 부부보다 갈라설 가능성이 훨씬 높고,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자녀를 두고 있어 동거의 증가는 이혼율 증가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美, 지난해 결혼율 1970년대 이후 최저 지난해 이혼율은 결혼한 미국 여성 1000명당 17.7로 2000년의 18.8과 1980년의 22.6보다 크게 떨어졌다. 반면 결혼율도 급감했다.1970년 미혼 여성 1000명당 결혼한 비율은 76.5였으나 지난해에는 39.9로 거의 50% 낮아졌다. ●동거 커플 급증 지난해 미국의 동거 커플은 500만쌍을 넘어섰다. 이는 전체 미국 가구수(이성간 결합)의 8.1%에 해당한다.1960년 43만 9000쌍과 비교할 때 거의 10배나 급증했다. 결혼 적령기의 20∼30대 남녀에게 동거는 경제적 또는 감정적 이유에서 보편화돼 가고 있다. 결혼한 미국인 중 절반 이상은 결혼 전 동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거 커플이 늘면서 이들 사이에서 출생하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신생아의 35%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이 가운데 40%는 동거 커플의 자녀였다. ●동거가 이혼보다 큰 문제 될 수도 동거하는 커플이 느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의 경우 결혼한 커플보다 헤어질 가능성이 2배나 높고, 자녀를 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또 결혼한 부부라도 이전에 동거한 적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이혼할 확률이 더 높다고 바버라 화이트헤드 박사는 지적했다. 포페노 교수는 “한 사회가 결혼에서 동거로 (남녀간 결합 형태가) 옮겨갈 경우 가정의 불안정이 커지게 된다.”며 부작용을 지적했다. 비록 이혼율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이혼하는 부부가 많고 동거했다가 헤어지는 커플까지 늘면서 친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서구 국가들 중에서 아이들이 친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63%로 가장 낮다. 이는 높은 동거비율에도 불구하고 이혼율은 낮고, 아이들이 친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높아 ‘안정적인 가정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안젤리나 졸리, 에티오피아 고아 입양

    |로스앤젤레스 연합|인기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에이즈로 고아가 된 에티오피아의 신생아를 입양한다고 미국 대중잡지 피플이 5일 보도했다. 이 잡지는 이미 캄보디아에서 사내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졸리가 ‘자하라 말리 졸리’로 이름지은 에티오피아 태생의 여자아기를 입양하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다고 소개했다. 피플은 졸리가 새 가족을 맞이하게 돼 매우 기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지만 입양될 아기의 건강상태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소식통들도 이전부터 새 식구를 맞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졸리가 자하라 입양으로 꿈을 이루게 됐다며 매우 기뻐하고 있다면서 졸리는 계속 미혼모로 아이들을 키울 것이며 일각의 추측처럼 브래드 피트와 가정을 이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25일 TV 하이라이트]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25분) 이순신은 우선 탐망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방침을 정한다. 탐망을 하던 어영담은 기나긴 전란 속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인육을 먹고 있는 백성들을 체포한다. 그날 이후로 통제영에는 붉은 반점이 생긴 채 쓰러져가는 병사들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하고….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7시) 횡단보도에서 난 사고라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무조건 거액의 합의금을 계속 줘오다가 이들이 자해공갈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증거를 잡았을 때 이제껏 줘온 합의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아이를 입양한 미혼모가 나중에 자수성가해 이 아이를 찾을 수 있는지도 알아본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남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답고 소박한 마을들이 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 유서 깊은 명승지들이 많아 볼수록 보석처럼 빛나는 섬이다.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독일인 마을과 해오름 예술촌 등 볼거리가 가득한 푸른 섬 남해로 떠나본다. ●문화사시리즈(EBS 오후 10시50분) 1970년대, 가속화된 경제개발의 열풍으로 ‘새마을’ 노래를 합창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사람들은 자꾸 서울로 몰려들었다. 주택보급은 인구증가폭을 따르지 못했고, 주거 대책은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 건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용빈이 문서를 보여주며 따지자 정국주는 야릇하게 웃으며 모든 사실을 시인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김약국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정국주는 “아직도 내가 머슴으로 보이느냐.”며 “세상이 변했는데 언제까지 폼만 잡고 앉아있을 거냐.”고 힐난한다. ●스펀지(KBS2 오후 6시45분) 우리나라 성인들이 즐겨먹는 커피. 대중적 음료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해외 커피 전문점에서는 그들만의 독특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해외 커피 전문점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에도 유통기간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스펀지에서 알아본다.
  • “입양도우미 되어 고국땅 밟습니다”

    태어난 지 7개월만에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 여성이 우리나라의 입양 활성화를 위한 도우미가 돼서 다시 한국을 찾는다. 오는 12일 한국을 방문하는 멜라니 정 셔먼(한국 이름 정채희)씨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6층 하늘공원에서 열리는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바자회’에 참가한다. 정씨는 사회복지법인 동방사회복지회와 미국 입양기관인 딜런 양자회가 국내 입양 발전 기금과 미혼모 아동들을 도우려 마련한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정씨는 “입양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에게 보여줄 계획이며 이로써 한국에서도 입양이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77년 1월 6일 서울 영등포구 시흥동(현재 금천구 시흥본동)에서 정모씨 가족의 넷째딸로 태어난 정씨는 같은 해 8월에 미국으로 보내졌다. 아들을 바랐던 정씨의 친아버지는 딸이 태어나자 입양시킬 마음을 먹었고 생후 2개월째에 정씨의 입양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정씨는 20대 초반 대부분의 입양인이 경험하는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난해 3월 결혼한 남편 그렉 셔먼(물리학 교수)씨와 함께 방한하는 정씨는 양어머니가 결혼식 때 신랑·신부 부모 촛대 이외에 친부모 촛대를 하나 더 마련했고 그 촛불은 입양기관 직원이 밝혔다는 가슴 뭉클한 소식도 전했다. 미국에서도 입양인을 돕기 위해 입양 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정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친부모를 찾을 계획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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