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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리, 캘러웨이와 100만달러 용품계약 곧 체결

    박세리(22·아스트라)가 미국의 골프클럽 제조업체인 캘러웨이와 조만간 100만달러(약 11억원)의 용품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박세리의 매니지먼트사인 IMG코리아는 “연간 수십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캘러웨이와 골프클럽 사용계약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IMG코리아 관계자는 “계약이 성사될 확률은 50%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캘러웨이는 용품계약 체결 조건으로 캐디백에 대한 로고 사용권과 퍼터를 포함한 모든 골프클럽을 캘러웨이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박세리의 캐디백과 모자 셔츠 등에 대한 로고 사용권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 아스트라는 “계약이 성사되면 캐디백에 대한 로고 사용권을 양보할 수 있다”며 “그러나 가장 큰 장애는 퍼터 사용 문제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박세리는 미국투어에 데뷔한 이래 지난 2년동안 아이언과 우드는 캘러웨이골프클럽만 사용했으나 퍼터는 그린 상태에 따라 미즈노와 캘러웨이 등을 번갈아 써왔다.박세리는 캘러웨이 퍼터가 다소 가벼운 감이 있어 미즈노 퍼터의 포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해옥기자 hop@
  • 박세리·김미현 시즌 마지막우승 도전

    ‘진정한 골프여왕을 가리자’- 박세리(22·아스트라)와 김미현(22·한별텔레콤)이 올시즌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마무리하는 왕중왕전에 출전,마지막 진검승부를 펼친다. 이들이 명실상부한 골프 여왕 등극을 노릴 무대는 11∼14일 미국 네바다주라스베이거스의 데저트인골프장(파72)에서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벌어질 페이지넷선수권대회.이 대회는 99LPGA투어 마지막 공식대회로서 시즌 상금랭킹 30위 이내의 선수들만 출전하는데다 100만달러의 총상금(우승상금 21만5,000달러)이 걸려 있어 메이저대회 못지 않은 비중을 갖는다.그런 만큼 손목부상중인 도티 페퍼(8위)를 제외한 상금랭킹 30위 이내의 선수가 총출동한다.페퍼가 비운 자리는 상금순위 31위인 제니 리드백이 메운다. 박세리·김미현은 각각 상금랭킹 3위와 9위 자격으로 이 대회에 출전한다. 그러나 펄신(37위)은 자격요건에 미달돼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박세리는 특히 일주일간 충분한 휴식을 취한데다 평소 큰 대회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우승(시즌 4승째)을 추가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박세리는 지난 9월에도 2주간의 휴식 뒤 톱스타 20명만이 출전한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 있다. 지난 7일 끝난 미즈노클래식에서 공동 28위로 저조했던 김미현도 이 대회에서 우승,최근의 부진을 털어내겠다는 각오다.김미현은 이번에 시즌 3승과 상금랭킹 ‘톱10’ 굳히기를 노린다. 박해옥기자 hop@
  • 고우순 5언더 공동2위

    고우순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미즈노클래식에서 첫날 공동 2위에오르는 선전을 펼쳤다.그러나 김미현 펄신 한희원은 모두 중하위권으로 처졌다.일본에서 주로 활약하고 있는 프로 15년차의 노장 고우순은 5일 일본 시가현의 세타골프장(파72)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쳐 선두 신디 매커디를 2타차로 추격했다. 펄신은 이영미와 나란히 1언더파 71타로 공동 30위,김미현은 이븐파 72타로김만수 등과 공동 42위에 그쳤다.
  • 김미현·펄신 “日그린서 축배”

    김미현과 펄신이 한희원 구옥희 등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의 주역들을상대로 일본 무대 평정에 나선다. 김미현(22·한별텔레콤)이 시즌 3승과 함께 일본무대 공략에 나설 무대는 5일부터 3일 동안 일본 시가현 세타골프장(파72)에서 열리는 미즈노클래식.총상금 80만 달러(9억6,000여만원)가 걸린 이 대회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일환이지만 미국-일본 투어간 교류전 성격을 띠고 있어 김미현으로서는 사실상 두개 투어를 동시석권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올시즌 LPGA 신인왕을 확정한 김미현은 특히 JLPGA 신인왕 출신의 한희원(21),일본 투어의 터줏대감인 노장 구옥희(43) 등 한국선수들을 상대로 이색대결을 펼치게 된다.이밖에 LPGA에서 막판까지 신인왕 다툼을 벌였던 후쿠시마아키코와의 대결도 흥미거리다. 한국에서 스포츠서울 바이코리아 여자오픈 우승컵을 차지한 뒤 일본으로 간펄신(32·랭스필드) 역시 LPGA 스타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통산 2승에 도전한다. 반면 지난해 JLPGA 신인왕에 이어 올시즌 2승을 올리며 일본 투어의 주역으로 떠오른 한희원은 홈에서 우승컵을 내줄 수 없다며 기세등등하게 맞설 태세다.미국 진출을 노리는 한희원으로서는 이번 대회 우승이 내년 LPGA 풀시드를 보장하기 때문에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한편 김미현은 5일 오전 9시48분 LPGA 노장 로라 데이비스,오카모토 아야코와 조를 이뤄 1라운드 1번홀을 출발하고 펄신은 오전 9시12분 레이첼 헤더링턴 등과 1번홀에서 티오프한다. 박해옥기자 hop@
  • 의열 독립투쟁-日 ‘조선인 폭동설’로 수천명 살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만 4년 뒤인 1923년 9월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때 의외의 후유증으로 불거졌다.당시 일본 치안당국은 혼란을 틈타 도쿄시민들이폭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 폭동설’을 유포했다.이 때문에 수천명의 죄 없는 조선인들이 학살당하였다.그런데 이 유언비어를 유포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사이토와 함께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부임하다가 서울역에서 폭탄세례를 받은 미즈노(水野鍊太郞)였다. 당시 일본 내각 내무상(내무장관)으로 있던 미즈노는 강 의사의 의거사건때받은 충격과 원한이 사무쳐 귀임 이후 줄곧 조선인들을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지진이 터지자 이 기회를 이용,조선인들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엉뚱한 ‘조선인 폭동설’을 꾸며낸 것이다.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은 지진 발생 이틀 뒤인 9월3일 한밤중부터 7일까지나흘간 계속됐다.당시 이를 목격한 한 조선인은 “처음부터 주소·성명도 묻지 않은 채 불문곡직하고 차례차례 끌어내 죽였다.처음에는 총으로 죽이다가총성이 인근 일대의 민가에 들릴 것을 우려해 나중에는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이렇게 해서 학살된 조선인의 숫자는 최대 1만명이 넘는다는 주장도있다. 미즈노 한 사람의 사적 원한이 수많은 선량한 조선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셈이다.
  • 의열 독립투쟁(2)-강우규 의사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가운데서 의사(義士)라고 하면 흔히 20∼30대 열혈청년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실제로 윤봉길(尹奉吉)·조명하(趙明河)의사는의거 당시 24세였고,이봉창(李奉昌)의사는 32세, 김상옥(金相玉)의사는 33세,그리고 나석주(羅錫疇)의사는 36세였다. 1924년 일황의 궁성 정문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金祉燮)의사가 의거 당시 44세로 드물게 40대에 속하는 정도다. 그런데 환갑이 넘은 60대 나이로 의거를 행한 의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지.그러나 실제 우리 의열투쟁사에는 60대 노(老)투사의 의거기록이 있다. 1919년 9월2일 오후 5시경.서울의 관문인 남대문역(현 서울역) 주위에는 일본 군경이 삼엄한 경계를 펼친 가운데 어느 고관의 도착을 기다리는 준비가부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이윽고 5시가 되자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신임 총독 일행을 태운 열차가 플랫폼으로 도착하였다.사이토 총독 내외와 일행은출영나온 내외 인사·신문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이내 귀빈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사이토가 귀빈실에서나와 입구에 마련된 쌍두마차에 오르려 하자인근 한양공원(현 남산공원)에서는 그의 부임을 축하하는 21발의 예포(禮砲)소리가 울려퍼졌다.예포가 끝나고 사이토가 마차에 오르는 순간 사이토가 탄마차 인근에 폭탄 한 발이 굉음을 울리며 작렬하였다. 마차를 호위하던 호위병을 비롯해 신문기자 등 30여명이 일순간 현장에서 고꾸라졌다.폭탄이 떨어진 곳은 사이토가 탄 마차로부터 불과 7보(步)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3·1의거 후 격앙된 조선민족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소위 ‘문화통치’라는 허울을 내걸고 부임한 신임 총독 사이토.그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디딘후 받은 첫번째 선물은 ‘폭탄세례’였다.이날 신임 총독이 부임하는 자리에폭탄을 던져 조선인의 기개를 만천하에 드높인 의사가 바로 강우규(姜宇奎)의사다.강 의사의 그때 나이는 64세,이미 환갑이 지난 노인이었다.일제하 숱한 의·열사 가운데 강 의사는 가장 고령에 속한다. 1855년(철종 6년) 평안남도 덕천(德川)에서 태어난 강 의사는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망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모두 보고싶지 않은 사람,보고싶지 않은 물건”이라며 이듬해 봄 가솔(家率)을 이끌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만주길림성에 정착하여 신흥촌을 건설하고 동광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 진력해온 강 의사는 1919년 국내에서 3·1의거가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만주·노령(露領)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해 5월 노령의 ‘노인동맹단’에 참가,노인단을 대표하여 조선총독을 폭살키로 작정한 강 의사는 시베리아에서 러시아인으로부터 러시아 돈 50원을주고 영국제 폭탄 한 개를 구입한 후 6월1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배를타고 원산을 거쳐 8월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국내로 들어와 안국동 김종호(金鍾鎬)의 집에 머물면서 최자남(崔子南)·허형(許炯) 등과 거사 계획을 세운 강 의사는 마침 하세가와(長谷川好道)에 이어 사이토가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남대문역에서 그를 처단키로 결심했던 것이다. 9월2일 의거 당일 강 의사는 폭탄을 명주수건에 싸 허리춤에 차고 그 위에저고리와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또 시골영감 티를 내기위해 파나마 모자에 가죽신을 신고 양손에는 양산과 수건을 하나씩 들고 남대문역으로 향했다.이런 강 의사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역 구내 다방에서 군중 틈에 끼여 기회를 엿보고 있던 강 의사는 사이토가 귀빈실에서 나와 마차에 오르려하자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강 의사가 던진 폭탄은 투탄거리가 불과 6∼7m 정도에 그쳐 사이토가 탄 마차에는 미치지 못한데다 폭탄의위력이 약해 사이토를 처단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이토는 폭탄의 파편이 혁대를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고 같이 부임한 정무총감 미즈노(水野鍊太郞)는 경미한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그러나 성과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이 사건으로 현장에서 총 37명의 부상자를 냈는데 이 가운데 스에히로(末弘又二郞) 경기도 경시(警視)는 파편이 왼쪽 엉덩이를 관통하는 상처를 입어 9일 후인 9월11일 사망하였다.또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의 다치바나(橘)특파원은 파편이 복부를 뚫고 들어가 11월1일 사망하였으며야마구치(山口諫男)특파원은 오른쪽 어깨에 중상을 입고 결국 팔을 절단 하였다. 한편 사건 직후 일경·헌병들은 남대문 일대에 비상령을 선포하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돼 수색을 벌였다.그러나 60대 노인인 강 의사는 별다른 검문도받지 않은 채 무난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며칠간의 수소문 끝에 투탄자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일경은 의거 보름 만인 9월17일 가회동 하숙집에서강 의사를 체포했다. 강 의사를 체포한 사람은 조선인 경찰 가운데 애국지사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김태석(金泰錫)이었다. 강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도 의연함과 당당한 기개를 잃지 않아 일본인 재판장이 ‘영감님’ ‘강선생’으로 호칭하였다고한다.고등법원의 항소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자 강 의사는 면회온 장남중건(重健·작고)에게 “사람은 한번 나면 죽는 것이다.네가 나의 사형을 슬퍼한다면 내 아들이 아니다.나는 내가 우리 민족을 위하여 아무 일도 이루어놓지 못하였음을 슬퍼할 뿐이다.내가 이때까지 자나깨나 잊지 못하는 것은우리나라 청년들의 교육이다.내가 이번에 죽어서 우리 청년들의 가슴에 어떠한 감상과 인상을 주게 된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없겠다…”고 하고는그 뜻을 전국 13도의 각 학교와 교회에 알릴 것을 부탁하였다. 노 투사는 최후까지 조국을 걱정하였다.1년간의 옥고를 치른 강 의사는 이듬해 11월29일 오전 9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그때 나이 65세였다. 교수형이 집행되기 직전 형 집행자가 “유언이 없느냐”고 묻자 대답 대신사세시(辭世詩) 한 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사형대에 홀로 서니(斷頭臺上) 춘풍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요(豈無感想) 강 의사의 유해는 처음에는 현 은평구 신사동 소재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54년 수유리로 이장됐다가 67년 다시 국립묘지(애국지사 묘역)로 이장됐다.1962년 정부는 강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하였다.강 의사의 의거현장인 서울역 역사(驛舍) 앞에는 강 의사의 의거를 알리는 기념표지석이 오가는 행인들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쓸쓸히 서 있다. 한편 강 의사의 직계 후손은 대가 끊긴 상태다.장남 중건씨는 연해주에서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친손녀 영재(榮才)씨도 수년 전 작고했다.영재씨의부군은 도쿄제대 출신의 농학자로 수원농사시험장장을 지낸 최병석씨.현재강 의사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는 조카 항렬의 강영복(姜榮福·72·서울 거주)씨로 강씨가 강 의사의 훈장과 훈장증을 보관하고 있다.그러나 직계 후손이 아니어서 연금수령은 못하고 있다.강 의사의 제사는 평안남도 중앙도민회에서 매년 순국일인 11월29일 지내고 있다.변변한 일대기 한 권도 없고 그흔한 추모사업회,기념사업회 하나 없는 것은 대가 끊겨 돌보는 이가 없는 탓이다.강 의사가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고적(孤寂)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정직한 역사 되찾기](33)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조선내는 물론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 수립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나 일본 본토도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이들은 대개 군부나 행정기관 등 일제의 권력기관에서 일제통치의 수족으로 활동하였다.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나와 고급장교로 활동한 친일 군인들이 이에 속하며 또 일본이나 만주국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고급엘리트 관료로 활동한 자들을 들 수 있다.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는 밀정이나 행동대원 등 앞잡이로 활동한 자들을 거론할수 있겠다.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박춘금(朴春琴·1891∼1973)을 들수 있다.그는 조선인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두 번씩이나 대의사(代議士·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그의 친일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력 친일파 가운데 일제말기 일제가 임명한 귀족원 의원을 제외하면 일제통치 전 기간을 통해 일본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박춘금은 여러 형태의 친일파 가운데서상당히 드문 유형에 속한다.친일파 가운데는 지식을 팔아 일제에 아부한 집단이 있는가하면,경제적 기반을 일제통치에 제공한 대가로 기득권을 보전하고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부류도 있다.그러나 박춘금은 그도저도 없는 자였다.그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친일대열에서 성공한 자였다.그는 수하에 폭력조직을 거느린 소위 ‘정치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폭력집단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식민지시절에도 이같은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주먹으로 친일배의 정상에 오른 그의인생역정을 더듬어 보자.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도 밀양이다.부 박금득(朴今得)과 모 박차연(朴且連)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청년시절 그는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본말을 배운 것을 밑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일본으로건너간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가 않다.다만 그가 한 연설에서 토로한 말에 따르면,일본에 도착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원 49전뿐이었으며 당시 일본에는 관비유학생 50명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했다. 1920년경 그가 이기동(李起東) 등과 함께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아 ‘상구회(相救會)’라는 단체를 조직한 사실은 확인된다.이기동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재일 친일파다.상구회는 1921년말 ‘상애회(相愛會)’라는 사회사업단체로 개편되는데 23년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에 지부를 조직,조직을 확대하였다.그럴듯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이 ‘상애회’가 바로 박춘금 일당의 일본내 친일활동의 모태가 된다. 막노동판의 주먹패 박춘금이 일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지역을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었다.수 십만 명의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엄청났던 이 천재(天災)를 맞아 일제는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탄압할 목적으로 당국의 개입하에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거나 방화를 일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미즈노(水野鍊太郞) 당시 내무상의 조선인에 대한 개인감정이 개입됐다는 지적도 있다.미즈노는 1919년 9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따라 정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첫 발을 디뎠다가 강우규(姜宇奎)의사의폭탄세례를 받은 인물).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관헌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와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최소 6,000명이 이때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로 이때 박춘금은 상애회 회원 300여명을 동원,‘노동봉사대’를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시체처리와 복구작업을 자청하였다.이 무렵 박춘금 일당은이미 일제당국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상호 자연스레 교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박춘금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애회 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입지를 넓혀갔다.28년 박춘금은 상애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고는 이사장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의 마루야마(丸山鶴吉)를 영입했다.회장에는 이기동을 앉히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였다.이 무렵 상애회는 일본내 주요도시에 지방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원수도 2만명을 헤아렸다.이듬해 29년 상애회관을 지어 사무실도 독립하였고 마루야마 취임 1주년때는 사이토를 기념식 행사장에 초청하는 등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세력가로 부상한 그는 상애회 조직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을 추진하였다.32년 2월 실시된 제18회 총선때 그는 도쿄 5구(區)에 출마,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놀라운 것은 조선인 유권자가 1,236명뿐인 이곳에서 6,966표를 얻었다는 점이다.그의 열렬한 친일성이 일본인 유권자들을 설득시킨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정계 실력자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직후인 2월 23일자로 그가 사이토 전 조선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불초 이번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의 영관(榮冠)을 얻게 된 것은 모름지기 귀대(貴台,손위사람의 높임말)의 두터운 정과 성원을 입은 것이라 여기며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한데서 이같은 점을 엿볼 수 있다.이후 그는 한 차례 낙선했다가 40년 제20회 총선에서 재선하였으나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이후 그는 활동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친일대열의 선봉장을자처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친일활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학도병 징집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에 참석하여 “고이소(小磯)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절 군사령부를 방문,내선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도인에 대한 병역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밝히고는 “(학도병)4천이나 5천이 죽어 2천5백만 민중이 잘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고 외쳤다(매일신보 1943.11.19). 당시 일제가 학도병을 전선으로 내몬 것은 그 이면에는 조선의 미래의 지식분자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었다.그가 이같은 일제의 의도를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에게는 그런 혐의를 둘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8·15 해방을 불과 50일 앞둔 1945년 6월 25일.그는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친일파들을 동원,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하고 그 자신이 당수에 취임하였다.당시 전세는 이미 기울어 일본은 패퇴를거듭하였고 미군의 일본 본토공격이 임박한 시기였다.대의당은 바로 이 때‘최후결전’의 자세로 결성된 것이다. 대의당은 ‘강령’에서 “모든 비(非)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해서는 단연이를 분쇄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비결전적 사상’이란 ‘반전·반일’의 총칭이다.해방후 친일파들의 죄상을 조사,폭로한 ‘민족정기의 심판’에따르면 대의당은 항일·반전 조선민중 30만명을 학살하려 했던 ‘살인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당시 총독부 경무국이 세운 ‘요시찰인에 대한조치계획’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방후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수하를 시켜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돈봉투를보내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이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의 체포,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특위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를 송환하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두 3번 결혼했는데 첫째,둘째 부인은일본여자였고 66년 75세때 세번째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60세의 한국여자(82년 사망)였다.두번째 일본인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장남 박춘남(朴春男·89년 일본에서 사망)은일본 릿교(立敎)대학 3학년 재학중 자진하여 학도병에 출진했었다. 일제당시 일본에서 박춘금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한 일본군 장교출신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마약중독으로 거의 폐인이돼버렸다고 한다.73년 3월 31일 박춘금은 일본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사망,현지에 묻혔다.친일 반민족자 박춘금의 일생은 그제서야 막을 내렸다.죽어서도 그는 고국보다 일본을 택한 것인가,아니면 죽어서도 고국으로 올 수가 없었던 탓일까. 정운현기자 jwh59@
  • 「항암효과」 아가리쿠스 버섯 화제

    ◎브라질 장수촌 피에나테에서 자생/고분자 다당체가 인체 면역력 높여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장암 면역치료에 효과를 봤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아가리쿠스(Agaricus)버섯」이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가리쿠스 버섯은 장수촌으로 유명한 브라질 산간지역인 피에다테에서 자생한다.일본에서는 92년부터 브라질에서 극소량만 채취되던 이 버섯의 인공재배에 성공하면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아가리쿠스 버섯의 「항암효과」에 관해 쓴 일본 시즈오카대 명예교수 미즈노 다카시 박사의 저서 「먹으면서 치료하는 암 특효식」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버섯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버섯속 베타­글루칸의 일종인 고분자 다당체가 인체 면역력을 높여 암세포 증식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암세포가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그 세포를 공격하는 항종양효과,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제암효과,발암물질과 맞붙어 배출하고 암세포의 전이를 막는 예방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 건강식품 업체들은 이 버섯엑기스를 추출,상품으로 내놓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신문,잡지등에서도 갖가지 질병치료 성공사례를 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주)한국협화(02­514­3358),(주)누가물산(02­538­2888)에서 이 제품을 일본에서 수입,「선생로」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고 있다.회사관계자는『90% 이상 위를 제거한 위암환자가 결장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됐는데 이 제품을 두달간 집중복용한 뒤 장에 붙어 있던 악성종양이 모두 제거되는 놀라운 치료효과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 시중 외제골프채 70% “가짜”/서울지검

    ◎100억대 조립·판매 20명 적발… 6명 구속/캘러웨이­혼마 등 유명상표 붙여/1만세트 제작… 2∼3백만원 받아 「캘러웨이」,「혼마」 등 해외 유명상표를 불법 부착한 가짜 외제 골프채 1백억원 어치를 제조,시중에 판매한 골프채 수입 및 제조업자 등 모두 20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 4부(신건수부장·이창재검사)는 19일 유명 외제상표를 불법 부착한 골프 부품을 밀수입한 연송훈(34·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씨 등 골프채 부품수입업자 2명과 국내에서 부품을 제조한 박용관(39)씨 등 부품제조업자 2명,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해 시중에 팔아온 문성영(34)씨 등 조립업자 2명 등 모두 6명을 상표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이들로부터 골프채를 공급받아 판매한 정우용(40)씨 등 11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하고 달아난 대만인 골프채 부품 밀매상 왕승리씨(33) 등 3명을 수배했다. 연씨등은 지난해 2월부터 대만에서 제작된 가짜 유명 골프채나 머리(헤드)손잡이(그립)부분의 부품 1만7천4백여개를 밀수입해 조립업자 문씨등을 통해 완제품으로 만든뒤 세트당 2백만∼3백만원에 판매해 14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함께 구속된 박씨등은 지난해 2월 경기 김포군에 골프채 부품 제조공장을 차려놓고 몸체(샤프트) 2만여개를 만들어 외제상표를 부착해 조립업자들에게 판매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이들은 대만에서 제작된 「캘러웨이」「혼마」「미즈노」등 가짜 유명 골프채 부품을 이용,완제품을 만들어 중국인 밀매상을 통해 밀수입하거나 상표가 없는 상태로 정식 수입해 영세공장등에서 조립한뒤 유명제품 라벨을 붙여 골프상이나 골프 실내연습장의 직원을 통해 판매하는 수법으로 지금까지 모두 1만세트(12만개)를 판매해 1백억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외제 골프채의 70%가 가짜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이 만든 골프채는 외관상으론 진품과 구분이 안되나 무게 중심과 균형이 안맞아 장시간 사용할 경우 「골프 엘보」등의 부상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일본에선…/한국의 무역적자(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5)

    ◎수교후 대일적자 총 1천억불 육박/기계 등 자본재 수입이 90%이상 차지/최근 중화학분야 수출 신장… 개선 조짐/경쟁력이 관건… 기술개발에 과감한 투자 시급 지난해 주일대사관 국정감사장.국회의원들이 나날이 늘어가는 대일무역적자 문제에 대한 대사관 차원의 대책을 물었다. 대사관측은 우선 김영삼정부가 대일무역적자를 경제논리로 풀어 나가기로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대일적자는 한국의 산업구조상 불가피한 면이 있으며 당분간 개선은 힘들 것이라는 내용의 경제논리에 따른 설명을 덧붙였다. ○흑자기록 「전무」 즉각 의원들의 호통이 잇달았다.「엄청난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는 말인가」라는 질타에 대사관측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극구 해명했다.하지만 감사장을 나서는 의원이나 대사관 직원이나 모두 대일무역적자가 쉽게 줄어들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수긍하고 있었다. 대일무역적자.우리 경제를 오랫동안 짓눌러 온 문제다.한·일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65년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2억8천8백만달러 적자.이가운데 대일무역적자는 1억2천2백만달러로 전체의 42.4%를 차지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는 단 한번도 대일무역흑자를 거두지 못했다.지난해 적자는 1백19억달러.전체 무역적자의 1백89%나 된다. 65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일누적적자는 9백44억7천9백만달러.우리나라 외채는 지난해 말 5백68억달러.대일무역적자는 우리 경제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인 것이다.올해 대일적자는 1백5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왜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해야만 하는가. ○일본시장 폐쇄적 우선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액을 품목별로 보자.지난해 총수입액 2백53억9천만달러 가운데 기계류 및 운반기계가 91억5천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자본재·원자재·부품 등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산업을 육성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설비재 등을 수입했다는 이야기다.좋게 보면 사치품·소비재가 적은 만큼 수입구조가 매우 건전한 것이고 뒤집어보면 우리 산업구조가 일본에 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투자의 위험이 높고 자본회수가 오래 걸리는 자본재산업 등은 일본에 의존하면서 산업개발에 나섰다.그 뒤에도 이런 손쉬운 성장전략이 지속됐다.성장하면 할수록,수출이 늘어나면 늘수록 대일무역적자는 커져갔다. 주일대사관의 신동오상무관은 『왜 일본탓은 안하느냐라는 분위기가 있지만 경제관점에서만 보면 일본을 탓할 것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수입액만큼 수출 할 수 있는 우리의 대일본 수출 경쟁력이다. ○적자 요인들 여전 폐쇄적인 일본시장과 복잡한 일본의 유통구조도 수출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특히 김 등을 비롯한 농수산물의 경우 수입쿼터제라든가 행정규제로 수출이 막혀있는 품목들이 꽤 있다.하지만 대일무역적자를 말할 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제조업 상품의 경쟁력이다.농수산물의 수입제한조치를 통상외교를 통해 풀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대치는 불과 수억달러에 불과하다. 일본시장의 유통구조가 복잡하다고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중국은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복잡한 유통구조를 극복한 섬유류의 수출에 힘입어 지난해 89억달러,올해 5월까지 55억달러의 대일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경제로서 돌파구는 역시 고부가가치 제조업 상품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자본재 부품산업 육성을 통해 수입의존도를 줄이고 고도기술산업 분야의 일본투자를 유치할 것 등을 목표로 설정했다.이와관련,아시아경제연구소의 미즈노 준코(수야순자)연구원은 『기계설계능력이 떨어지면 산업전체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 『한국은 독자적인 기계설계능력을 갖추기 위해 적극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일부 희망적인 조짐도 있다. 대일본수출을 보면 주요 품목이 점차 전자·전기와 철강 등 중화학분야로 옮아가고 있다.특히 올해들어 5월까지 반도체 등 전자·전기분야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4.3%,철강은 53.1%의 대일수출신장세를 보이고 있다.엔고 현상에 힘입은 바 크다.때문에 엔고의 메리트가 가시면 또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통상산업부 등 정부는 최근 추세가 이어지면 대일무역적자가 장기적으로 양국 산업의 수평분업화,무역의 확대균형화를 이루면서 개선돼 나갈 것으로 희망반 분석반의 전망을 하고 있다. ○산업구조 일 의존 일본 아세아대학의 노조에 신이치(야부신일)교수도 『반도체 등의 수출증가가 대일적자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적자 가중요인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환경산업분야도 곧 유망산업으로 등장할 전망이지만 한일간 기술격차가 현격한 실정이다.또 97년 건설시장을 상호개방할 경우 성수대교 추락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낸 한국 건설업체의 일본진출보다는 일본 업체의 한국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와함께 자동차 시장이 개방돼 나가면 한국차의 일본진출보다 일본차의 한국진출이 더 활발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유력하다.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해 나가는 열쇠는 기계 등 자본재의 경쟁력에 있다.이들 분야가 수입대체 나아가 수출유망품목으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한일국교정상화 30년.엄청난 누적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대일본 교역을 바람직한 상태로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제2 중흥의 각오로 기술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미즈노 준코/일 아시아경제연 연구원(인터뷰)

    ◎“기기 설계 능력 키워야 대일적자 해소”/한국산 아시아 시장서 경쟁력 충분/기술제휴 탈피,자체개발 노력 절실 『한국은 기계류,특히 공작기계의 설계능력을 키워야 합니다.국제 경쟁력이 강해지려면 기계류의 독자적인 설계 능력이 아킬레스건입니다.기술제휴로 상품을 생산할 경우 짧은 기간 안에 제품생산에 이를 수 있지만 기술을 제공하는 쪽에서 수출시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휴에만 안주하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일무역 적자.지난 해에는 1백10억달러를 돌파했다.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이 가운데 94% 정도가 기계류 수입으로 인한 것이다.개발도상국 연구에 명성을 쌓고 있는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에서 한국의 기계공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미즈노 준코(수야순자·43)연구원에게 우리의 기계류 대일 무역적자 해소책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미즈노씨는 『한국이 일본과 똑같은 길을 걸어서 성장하겠다는 현재의 성장전략을 유지하는 한 기계류를 비롯해 많은 것을일본에서 수입해야 할 것』이라면서 『성장을 하려 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한국이 기계류 교역에서 적자를 보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인다.수입한 기계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일본에 수출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일본도 1백년 동안 기계,특히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나라였다』면서 『아직도 일부 공작기계는 스위스나 독일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즈노씨는 한국 김치의 경쟁력을 예로 들면서 『일본이 하지 않는 것,예를 들면 항공기산업과 같은 것을 시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성장가도를 달리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기계류 수출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일본과 똑같은 기계를 만들어 일본에 수출하는 한 한국은 일본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막대한 자본이 투하되는 기계공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수출시장이 필요한데 한국산 기계는 아시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최근의 엔고현상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 시장진출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기계류는 애프터 서비스가 대단히 중요하다.고장이 나면 즉각 고쳐준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일본 기계는 적어도 10년은 고장이 안 난다는 믿음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시장에 진출할 경우 애프터 서비스망을 먼저 구축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 기계류 수출은 대만에 뒤져있는데 한국과 대만의 기계공업을 비교한다면. ▲설계능력과 경영전략의 차이다.애초에는 설계능력면에서 중국,대만,한국의 순이었다.중국은 사회주의 경제로 경쟁력을 잃었다.대만은 한국보다 설계능력면에서 10년쯤 앞서 있다.또 대만 기업들은 설계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한국기업은 스스로 개발하고 설계하겠다는 의욕이 약하다. ­한국의 기계공업이 비관적이라는 말인가. ▲아니다.짧은 시간에 기술제휴를 통해 생산기반과 숙련기능공을 확보한 저력이 있다.지난해 한국의 기계류 수출은 러시아에 대해 60%,남미에 30.7%,싱가포르에 34%,중국에 94.1%,동유럽에 32%나 증가했다.한국의 산업구조는 일본의 80년대 초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반도체 등 고도 기술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이제부터는 설계능력과 마케팅이 중요하다.
  • 일 야당연합/보선승세 타고 신당 박차/「아이치현 보선」이후의 풍향

    ◎대야 국민기대 확인… 통합기회로/여선 예상밖 참패에 불안감 증폭 일본 아이치현 참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당연합이 추천한 후보가 압승함에 따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의 연립정부는 정치적 타격을 받고 야당진영의 신당결성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치현 보궐선거는 물론 한 지역구선거에 지나지 않지만 무라야마정권 발족 이후 최초의 국정선거로 앞으로 정국향방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이번 선거는 내년 여름의 참의원선거와 소선거구제의 다음 총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와 함께 자민·사회당 연립에 대한 국민의 평가,야당의 신당결성 등 여러가지 정치적 움직임과 연계되어 있어 연립여당과 야당진영의 2대 세력은 총력전을 폈다. 선거전은 사실상 신생,공명,민사,자유,일본신당을 비롯한 10개 당·파의 야당진영이 추천한 스즈키 유즈로 후보(전노동성과장)와 연립여당이 추천한 미즈노 지로 후보(전유엔직원)의 대결로 연립여당과 야당진영의 「대리전」 양상을 보였다.그 결과야당진영의 스즈키 후보가 93만1천9백36표를 얻어 여당후보와 38만여표차로 압승했다. 야당후보의 압승은 전통적으로 민사당의 아성이었던 지역으로 노조가 야당후보를 지지했고 자민당을 탈당,야당진영에 합류하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아이치현 출신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전총리의 영향력 및 여당에 대한 불신과 신당에 대한 기대때문이라고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 연립여당은 그러나 아이치현선거는 어디까지나 한 선거구 선거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쓰고 있다.무라야마총리는 『선거결과가 정국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그러나 여당은 내면적으로는 예상밖의 참패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자민당과 사회당의 선거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의 선거에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정권에서 물러난 후 구심력을 잃고 있는 신생,공명,일본신당 등 야당진영은 이번 선거의 압승을 신당결성을 가속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실제로 신당결성에 탄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당수들은 11일 국회에서 공동기지회견을 갖고 선거결과를 최대한 활용,정권탈환을 위한 신당결성 움직임을 전국적으로 과시하는 자세를 보였다.하타 쓰토무(우전자) 신생당당수는 『야당후보의 압승은 자민·사회당의 연립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신당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 것』이라며 신당결성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 일 연정/참의원 보선 참패/야 공동후보 당선/야당통합 박차 예상

    【도쿄 연합】 자민당과 사회당,사키가케 연립으로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내각이 출범한뒤 일본에서 처음 실시된 국정 선거에서 현 연립여당측이 구연립여당측에 대패했다. 11일 실시된 아이치(애지)현 참의원 보궐선거에서 구연립여당 10개 정파의 추천을 받은 쓰즈키 유즈루(도축량) 후보는 92만4천5백1표를 얻어 54만7백12표에 그친 현 연립여당 추천후보 미즈노 지로(수야시낭)를 30만표 이상의 차로 눌러 압승했다. 이번 보궐선거는 무라야마 내각이 들어선뒤 첫 중앙선거로 양측은 향후 정국운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수급이 총동원되는등 연일 치열한 선거운동을 벌여 귀추가 크게 주목됐었다. 구연립여당측은 선거 압승을 계기로 새 통합야당 창당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현 연립여당측은 내각구성후 첫 국민심판에서 패배함에 따라 향후 정국운영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국산위장 수입품 많이 나돈다/인기상품 변조실태를 보면

    ◎「순창 고추장」등 알고보면 중국산이 둔갑/원산지 뒷면에 작게표시… 소비자 눈속여/한약재 경유 아예 구분없이 유통… 당국 단속 강화나서 「순창 고추장」「펭귄 황도」「민속당면」「비비안 스타킹」…….당연히 국산품으로 여길만큼 눈에 익은 상표들이다.그러나 요즘 시중에는 이런 상표로 「국산을 가장한」 수입품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수입 한약재는 아예 국산과 구분없이 팔리며 미제나 일제 브랜드로 팔리는 골프채중에도 변조된 것들이 적지 않다. 원산지 표시를 위·변조하지 않는 한 불법은 아니다.수입품의 대부분은 중국산,호주산,인도네시아산 등으로 원산지를 제대로 밝히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일부러 소비자의 눈에 안 띄도록 원산지를 표시하고 상표는 국산으로 오인하도록 크게 하는 데 있다. 상공자원부는 지난 연말 관세청·서울시·소비자보호원과 합동으로 원산지 표시실태를 조사해 이러한 사례들을 많이 찾아냈다.물론 대다수의 수입품은 규정에 따라 한글로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다.그러나 국내에서 재포장할 때 포장을 국산처럼바꾸고 원산지 표시는 상품 뒷면 등 잘 안 보이는 곳에 깨알 만한 글씨로 「중국○○공사」 등으로 적는다.당면류가 이런 사례이다. J종합식품의 경우 중국에서 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펭귄 황도」를 들여오면서 뒷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제조원을 표시했다.국내에서 자사가 생산한 「펭귄 백도」와 함께 선물용 세트(각 3개)로 팔고 있다.소비자로선 「황도」나 「백도」가 모두 이 회사가 직접 만든 제품으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순창 고추장」도 상표등록이 안 돼있어 국내 제조회사가 여러 곳인데다 중국에서만 7곳에서 만들어져 국내로 반입된다는 게 상공부 분석이다. 의류업체도 대부분 인도네시아 중국 등 동남아 현지공장에서 제품을 생산,역수입하면서 원산지 표시를 「부실」하게 해 소비자의 눈을 속인다.OEM으로 들어오는 N사의 「비비안 브래지어」나 「팬티 스타킹」도 소비자가 주로 확인하는 「꼬리표」에는 원산지가 표시되지 않아 국산으로 오인될 소지가 크다. 골프채도 원산지 표시의 변조사례가 심한 품목.국내 조립인 「던롭」 채를 「메이드 인 저팬」으로 판매하는가 하면 H백화점에서는 「미즈노」「리니」「야마하」「테일러 메이드」 등 유명 브랜드의 골프채가 원산지 표시 없이 팔리고 있다.일제 골프채가 수입선 다변화 품목으로 묶여 수입이 안 되자 미국의 하와이 공장에서 조립한 「혼마」 채도 대거 수입되고 있다. 수입면장이 없는 골프채도 상당수이다.이사화물로 들어와 시중으로 풀렸거나 클럽헤드만 여행용 가방에 담아와 국내에서 조립한 것들이다. 원산지 표시는 수입질서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운영하는 제도이다.최근 표시의무를 위반하거나 원산지 표시를 교묘히 하는 사례가 부쩍 늘자 정부도 새해부터 「상품 앞면에 잘 보이게」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이제까지는 지도위주의 단속을 폈으나 앞으로는 통관불허 외에 대외무역법에 따라 「3년이하징역」이나 「3천만원이하벌금」을 물리는 등 제재도 강화하기로 했다.
  • 물저항 줄여 신기록 도전/고분자 소재 수영복 개발

    ◎일 도레·미즈노사,올림픽앞두고 공동제조/폴리우레탄·폴리에스테르 섞어 압축가공/“표면요철줄어 1백미터 0.1초 단축” 장담 운동선수들에게 운동복은 기록 경신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최근 일본에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고분자 신소재의 수영복이 개발돼 1백m 자유형 경기때 10㎏정도 물의 저항을 적게 해 0.1초정도의 기록단축을 할수 있다고 장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수영복은 지난 88년 서울 올림픽때도 수영복을 만든 바 있는 도리사와 스포츠 의류메이커인 미즈노사가 공동 개발한 것.소재는 신축성이 큰 폴리우레탄 20%와 섬세한 폴리에스테르사 80%를 압축 가공한 것.표면은 피부보다 매끄럽고 4년전 서울올림픽때 양사가 공동개발한 것보다 요철이 반정도로 줄었으며 물의 저항 역시 5% 정도 줄어들어 1백m 자유형 경기의 경우 0.1초 단축이 가능하다는 것.서울올림픽때의 수영복 소재는 폴리우레탄 20% 나일론 80%의 조직이었으나 이보다 더섬세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진 고분자 소재인것. 나일론 수영복은 물에 들어가면 수영복이팽창해 저항이 증가한다.또한 나일론은 염소계 소독약에 약하다.그래서 이번에는 내열성및 특수 가공등으로 요철이 적어 물을 그대로 통과시키며 염소 소독약에도 강한 폴리에스테르를 쓴 것.수영복 개발팀은 수영복을 만들면서 인간공학적인 면의 실험도 했다.즉마네킹에 수영복을 입혀 회전 수조에서 실험도 가져 수영복 형체 재단도 한것.이 과정에서 가슴과 등으로 물이 들어가 저항이 크게 되는 것을 발견,가슴이나 어깨 밑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일반의 수영복보다 커팅을 훨씬 적게했다.
  • 중국 자동차 「산타나」 일 시장 첫 상륙(해외정보)

    ◎일 노무라연,소 경제개혁 입안에 참여/“중에 흡수 임박”… 홍콩자본 가 대거 유입 ○3년간 4조1천억 ◇…중국계 이민이 급증하고 있는 캐나다에 최근 홍콩자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머니」가 대거 유입되고 있다. 캐나다에 들어오는 홍콩 자본의 루트는 화교재벌을 통한 대규모 자본유입과 이민에 의한 자산 이전으로 분류할수 있는데 최근2∼3년간 홍콩으로부터 유입된 자본총액은 연간 40억∼65억캐나다달러(2조5천6백억∼4조1천6백억원)에 이르고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오는 97년이후 홍콩의 장래에 대한 불안이 홍콩주민들 사이에 고조되는데 따른 현상으로 재벌들은 자산의 일부를 해외로 분산시키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도 소유자산을 처분,이민을 떠나고 있다. ○여객기 5대 미 수출 ◇…중국이 자동차 항공기등 공업제품의 대선진국 수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상해 해방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독일의 폴크스바겐사와 합작으로 개발한 승용차인 산타나 30대의 대일 선적을 마쳤다. 산타나는 금년들어 주로 동남아시장에 6백대가 수출됐는데 선진국에 대한 수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상해 항공기제조회사는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사와 합작으로 중형여객기 MD83형기(1백55인승)5대를 조립생산,내년 말까지 미국에 수출키로 계약을 맺어 최근 이 공사의 상해공장에서 MD83형기의 조립생산작업에 들어갔다. ○햇빛차단 섬유 개발 ◇…태양광선을 차단해 피부로 느끼는 의복내의 체감온도를 낮게 유지하고 땀을 최대한 빨리 흡수,뙤약볕 아래서도 쾌적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신소재 스포츠웨어가 일본에서 개발됐다. 일본의 스포츠용품메이커인 미즈노사는 태양광반사형의 소재를 야구유니폼용등으로 개발해 금년시즌부터 판매에 들어갔다.세라믹 소립자를 사용하는 폴리에스터사로 만든 이 소재는 태양광선을 효과적으로 반사시켜 일사에너지의 흡수를 최대한 억제,종래의 유니폼에 비해 의복내의 온도를 날씨가 맑은날 약3도까지 낮게 할수 있다. 이 신소재는 「아그아슈팔」로 명명됐는데 이는 포르투갈어로 물을 흡수한다는 뜻이다.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소와 소련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가 제휴,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계혁 추진을 위한 공동연구에 나선다. 이들 두연구소는 앞으로 소련경제의 실태조사등을 통해 경제개혁 추진 방법을 모색,소련의 경제정책에 반영할 계획인데 경제분야에서 양국의 유력 싱크탱크(두뇌집단)간에 처음으로 제휴가 이루어진 것. 노무라종합연구소와 IMEMO는 연2회 도쿄와 모스크바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하며 소련의 기업경영자를 일본에 초청,일본 경영자와의 간담회를 통해 경영의 비법을 전수토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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