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정부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쌀 생산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혈류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천정배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고종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3
  • 제헌국회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29)

    ◎헌법·각종 기본법률 제정… 민주주의 토대구축/일제잔재 청산 미비·농지개혁 실패 등 실정도 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는 두번째 정기회기를 마침으로써 2년여만에 막을 내렸다.이 날은 마침 제2대 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한 날이었다.대한민국 출범이후 지금까지 14대의 국회가 구성됐지만 제헌국회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초대 대통령 선출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또 일제 잔재 청산등 묵은 시대를 정리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대단하다.물론 새로 도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사회에는 생소한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일제 청산이 미흡한 점 등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헌국회 2년을 수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선거에서 의원 1백98명이 선출됐다.회기는 그해 5월 31일 개막해 2백3일동안 계속된 임시회를 비롯,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 6차례,6백40일동안 문을 열었다.임기 7백30일 가운데 90일을 제외하곤 늘 개회 상태였으니 신생국가의 첫 의회답게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실제로 첫 임시회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48년 12월 18일 폐회,하루만 쉬고 다시 회기에 돌입할 정도였다. 이같은 열의로 제헌국회는 2백34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또 2백26건의 청원을 접수해 65.5%인 1백48건을 처리했다.국회 자체의 건의·결의안은 모두 1백45건이나 됐으며 1백1건을 가결했다. 이같은 활동 중에서도 제헌국회가 다룬 주요 의제로는 반민족 친일파의 처벌,미군 철수대응,국가보안법 제정,농지개혁과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꼽을 수 있다.특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최대 현안이었다.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분단은 곧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더욱이 북한의 군사력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필요했고,만약 미군이 떠난다면 그에 앞서 자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물론 미국 정부가 쥐고 있었던 만큼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미 정부는 1947년 9월 말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하지만 미 국무성과 육군성,그리고 주한 미 군정 사이에는 입장에 따른 견해차가 있었다. 육군성은 『한국에 대해 군사전략적인 이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합동참모부(JCS)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미 군정도 군정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철군을 지지했다.국무성도 철군주장에는 동의했다.다만 한국이 공산화하지 않도록 철군에 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미정부는 1948년 4월 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NSC 8)」이라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했다.이 문서에는 주한미군이 그해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하지만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남북한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철수는 계속 연기됐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반대하지만 일단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더 많은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미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다.이에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설치하고 국방경비대를 강화하는 등 철군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헌국회 내에서도 미군 철수는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다.1948년 10월 13일 제87차 본회의에서 의원 46명은 「외군철회 요청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다.그들은 『자주국가로서 자율권이 엄연한 이상 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유엔을 겨냥,『유엔은 총회에서 19 47년 11월 14일 결의한 기록을 회상해』외군철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공산당 모략」이라고 흥분했고 양쪽 의원들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국회의장이 경위를 출동시키기 까지 했다. 이어 11월 19일에는 최윤동 의원 등 99명이 『대한민국의 방위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남한주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이 결의안은 약간의 논란을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가 재석 1백13명 가운데 찬성 88,반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외군철회 동의안」이 나온 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급격히 사그라든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친일파를 처벌코자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제헌국회는 48년 9월 친일파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곧 이어 이를 실행할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반민특위」는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고 중앙과 지방에 사무국을 설치했다.또 친일파를 기소·재판할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도 정하는 등 발빠르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위원회는 넉달동안 3백5명의 친일분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지만 곧 활동이 벽에 부딪힌다.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부가 시국이 불안정한데 사회지도급 인사를 대량검거하면 사회불안을 가중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 49년 6월에는 친일파의 조정을 받은 사회단체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특위 소속 사법경찰관이 습격을 받는 등 온갖 행패가 자행됐다.국회는 그해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행정부에 굴복했고 친일파 처리는 흐지부지돼 아직도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리에 좌절한 것은 당시 국회·행정부를 차지한 계층의 본질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제헌국회는 이밖에도 국가보안법·농지개혁법·지방자치법등을 제정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국헌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은 48년 11월 19일 통과됐다.이 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고 일부 문구의 수정이 있었지만 투표에서는 찬성 84,반대 3으로 가결됐다.남북이 대치하고 「여순반란사건」등 공산주의 폭동을 여러차례 겪은 그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법」은 49년 6월 21일 제정됐다.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소유의 한도,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위법으로 마련된 이 법은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 했다.농지개혁법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대농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전문/이 대통령,49년4월11일 미군철수 동의/1년간 강력반대… 미,계획 수차례 연기/무기이양·군사고문단 설치 조건 수락 대한민국 수립직후부터 한국과 미국 양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싸고 협의를 계속했다.한국은 철군을 강력하게 반대한 반면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한 보완책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미 정부는 1948년 4월 2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정리한 「한국에 관한 미국의 입장 (NSC 8)」을 미군철수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그 내용은 49년 3월 31일까지 철군을 끝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국이 계획한 철수 일자는 점차 늦어졌다. 시한은 5월 10일로 한번 수정됐다가 49년 3월 23일 채택한 「NSC 8­2」에서 그해 6월 30일로 최종 결정됐다.따라서 49년 4월 미국으로선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당시 양국에서 오간 문서 가운데 한국측 입장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전문을 발굴했다.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이 문서는 주한미군사령부가 49년 4월 12일 미 국무성에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날 미군철수에 마침내 동의했으며 며칠안에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철군에 앞서 미군이 한국의 육군,해안경비대,경찰에 장비를 이양하며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 조건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대통령은 합의에 따라 4월 18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했으며,주한미군 1천5백여명은 49년 6월 27일 인천항을 통해 철수했다.
  • 미,최근 핵실험 검토/미 군축협회장 폭로

    【워싱턴 연합】 미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미국의 주도로 무기연장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핵실험을 일부 허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모색하다가 국내외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자 그 결정을 미뤄놓은 상태라고 미 고위 인사가 비판했다. 군축 문제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미민간기관인 군축협회(ACA)의 스퍼진 키니 회장은 협회간행물인 격월간 「오늘의 군축」 7∼8월호에 기고한 「핵실험전면금지협정(CTB)에 비난 집중」이란 글에서 이같이 폭로했다.
  • 서방기업/북한진출 물밑 추진

    ◎최근 GM·로열 더치 셸사 등 극비 평양방문/인프라 열악·정권 신뢰못해 투자까진 “먼길” 세계의 거대기업 중 일부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희망속에 북한에 대한 진출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다. 로열 더치 셸사와 제너럴 모터스(GM)사 등 서방의 거대기업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자동차부품과 극동아시아산 원유정제시설의 최적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은밀히 방문했다. 북한을 두차례나 방문했던 GM사의 찰스 랜돌프는 『북한이 경제를 대외에 개방할때 우리를 선구자로 기억할 것이며 자동차산업과 관련,GM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서방기업들의 이같은 장밋빛 희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북한은 그리 안전하고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되지는 않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정부가 지난 1월 미­북간 핵협정 타결 이후 40여년간 지속돼온 대북한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발표하자 AT&T사가 미­북간 장거리통화 서비스를 즉각 개시하고 미네랄스 테크놀로지사가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수입협상에 나서기도 했으나 북한의 전반적인 투자조건은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북한이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려면 열악한 도로와 식량부족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으며 미네랄 테크놀로지사의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수입을 중재했던 짐 영 전주한미대사관 무관은 『북한은 입장을 자주 바꾸는 매우 힘든 상대』라고 협상과정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또 정치적인 면에서 북한이 한국과 대립하고 있다는 점과 미국기업들이 한국기업보다 앞서 북한에 진출한다면 한­미관계에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북한에 대한 외국기업의 진출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미,대한 차 개방 압력 본격화/미 제조업협

    ◎일 문제 일단락… 다음은 한국”/최근 양국 통상 협상서도 거론 【워싱턴 연합】 미국이 대일 자동차 마찰을 일단락지은데 이어 그간 예상돼온대로 한국에 대한 이 부문의 압력을 서서히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미소식통들은 미 통상 당국자들간에 한국 자동차시장에 또다시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소재 미자동차 제조업협회(AAMA)의 한 관계자는 지난주 『일본 문제가 일단락 된만큼 다른 문제도 본격적으로 다루게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공세가 재개되리란 점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AAMA 주관으로 미업계가 또다시 한국에 대표단을 보내는 문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다른 미관계자는 미정부와 업계가 그간 다각적으로 한국에 자동차 시장 추가개방을 촉구했으나 이렇다할 대응 조치가 없다면서 따라서 또다른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미측은 최근 서울에서 이뤄진 한미간 통상 실무접촉에서도 자동차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미­베트남 수교/동아시아에 미칠 파장

    ◎냉전 마감… 미 영향력 대폭 증대/아세안과의 경제·안보협력 가속화/또다른 전략축 미북 관계에도 영향 미국과 베트남간의 국교정상화는 인도차이나반도에도 마침내 냉전의 잔해가 사라지고 동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됨을 의미한다. 양국의 국교정상화는 냉전의 이념적 대결 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제가 중심이 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경제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정치·안보적 측면도 중요하다.국교정상화가 아시아주둔 미군의 감축을 둘러싼 국내의 많은 논란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서둘러졌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냉전후 세계적인 군축흐름에 따라 아시아주둔 미군도 감축시켜 왔다.그러나 클린턴 정부내에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미군의 아시아주둔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조셉 나이 미국 국방차관보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군의 아시아주둔은 국익을 위해 필요하며 걸프지역에서의 미국 이익도 보호할 수 있는신속한 대응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군의 아시아주둔은 이 지역에서의 패권주의 세력의 부상을 억제한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아시아에서 계속 지도력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미국은 아시아에서 힘의 공백상태가 생길 경우 일본과 중국간에 지역 패권쟁탈전이 전개될 것으로 우려해 왔다. 정치평론가들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베트남과 국교정상화를 서두른 것은 중국을 견제하며 크게 포위하려는 전략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한다.중국은 경제·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되고 있으며 더욱이 지금은 양국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다.양국의 국교정상화는 이 때문에 중국을 자극,단기적으로는 미·중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미국은 그러나 중국을 당장 봉쇄한다든가 하는 강경책은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비록 지금은 관계가 악화돼 있지만 미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베트남과의 국교정상화는 중국을 견제하는 유효한 카드라 할 수 있다.베트남도 미국과의 우호관계가중국을 견제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더욱 활발한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베트남은 또 28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정식 가입한다.베트남의 아세안가입은 미국과 아세안과의 경제·안보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미­베트남 국교정상화를 클린턴대통령의 최대 결단이라고 평가한다.클린턴 대통령의 이러한 결단은 아시아전략의 또다른 중요한 축인 북한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고지­경제실리 확보 “양면전략”/적대관계 청산 배경/관계악화 “중국에 압력” 포석도 12일(한국시간)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미국과 베트남간의 국교재개 발표는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전이후 양국간 2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미국이 이미 지난해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었고 또 금년초에는 연락사무소까지 개설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는그 발표시기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었다.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 자체보다도 서둘러 결정된 수교 시점의 선택에 있다. 그같은 측면에서 현재는 클린턴이 대내외적으로 「베트남카드」를 가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시점으로 분석되고 있다. 먼저 대내적으로는 1년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을 향해 뛸 클린턴 대통령이 경제적인 실리를 얻고 또 그동안 미국행정부들을 줄곧 괴롭혀온 실종미군(MIA)문제등 베트남전의 망령들을 청산해버리자는데 있다. 미국 국무부의 번스 대변인은 10일 정례브리핑에서 베트남과의 국교재개의 첫번째 이유를 양국간 경제관계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교를 통한 양국간의 경제적 실리는 크다. 또한 그동안 베트남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짐이 되어온 MIA문제등을 공식적인 외교문제로 격상시키고 보수세력들이 문제삼고 있는 자신의 베트남전 반전운동 경력등을 희석시킴으로써 재선가도를 출발하려는 클린턴 행정부의 각종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 이후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차제에 베트남카드를 이용,중국 길들이기를 본격화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시민권자인 중국인권운동가 해리 우(중국명 오홍달)에 대한 중국정부의 전격 구속과 그 과정에서의 국제관례 무시로 미·중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남사군도의 영유권분쟁등 역사적으로 중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 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우회적인 압력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략은 특히 최근 깅그리치 미국하원의장이 중국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대만과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과 함께 중국측에 상당한 압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의 이같은 베트남카드 사용에는 신중할 것을 촉구하는 의견들이 많다.그동안 베트남의 태도가 아직 수교에 이를만큼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차기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유력시 되고 있는 돌 상원의원등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베트남이 MIA문제를 해결하는데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외교관계 수립에 따른 각종 자금지원을 봉쇄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해놓고 있기도 하다. ◎워싱턴­하노이 경협 전망/항공·인프라분야 협력 본격화/「낙후된 산업시설」 미 기업에 “기회”/베트남,최혜국지위 획득 발판 마련 20년만에 미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재개함으로써 양국 경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이번 조치로 대중시장과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베트남은 미국 시장 진출에 필요한 최혜국지위 획득에 유리한 고지를 점유했다. 양국 관계정상화는 또 이중과세방지협정등 미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위한 안전판을 마련,미 기업 진출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아시아의 새끼 호랑이 경제로 발돋움하려는 베트남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연쇄적인 외국인투자가 이뤄질 경우 멀지 않아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신4룡」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양국간 경제협력은 지난해 2월 미국이 20년동안 베트남의 목을 죄어온 경제제재(엠바고) 해제를 계기로 전환기를 맞이했다.코카와 펩시 등 미국의 두 음료회사는 엠바고 해제발표와 거의 동시에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서 치열한 판촉전을 벌여 미국 기업이 베트남에 대해 가진 높은 관심을 반영했었다. 현재 양국간 교역규모는 극히 미미하다.베트남은 미국에 약간의 섬유를 수출하는 것이 고작이다. 파상적인 시장개방 공세를 펴 아시아 시장 대부분에 진출한 미국은 「국교정상화」라는 걸림돌에 봉착,베트남 진출이 늦었지만 곧 빠른 속도로 자기몫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대만,홍콩,싱가포르 등은 대만을 대중투자의 전초기지로 인식,일찍부터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한국과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투자규모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훨씬 앞지른다. 투자 순위 1위인 대만이 총 1백76건에 2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으로 미국은 36개 프로젝트에 불과 5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TV와 각종 전자제품은 한국과 일본이 점령했고 자동차는 일본의 마츠다,도요타를 비롯,독일의 BMW,다이믈러 벤츠 등이 이미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대부분은 베트남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이다.장거리 통신은 이미 호주의 수중에 넘어간것과 다름없다. 뒤늦게 인도차이나 반도에 상륙한 미국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노린 베트남의 배려덕에 에너지,항공 및 인프라스트럭쳐 분야에서 사업권을 따냈다. 캐터필러와 제너럴 일렉트릭은 고속도로 재건에,모빌은 석유탐사에,유나이티드 항공사는 베트남의 국제노선에 취항해 있다.이밖에 IBM,시티뱅크,비자,AT&T등 미국 굴지의 기업이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투자지로서 베트남은 월평균 35달러남짓한 임금과 각종 세제혜택과 기업에 우호적인 외국인투자법 등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잘살아보자」는 부자의 꿈으로 똘똘뭉친 7천4백만의 인적자원을 빼놓을 수 없다.어떤의미에서 낙후된 인프라와 산업시설은 그 자체 투자대상이다.그러나 금융·법률제도가 부족한 점이 흠이면 흠이다. ◎미­베트남 30년 일지 ▲64.5=미국,월맹의 월남침공으로 월맹에무역제재 ▲65.3=첫 미군 전투부대 월남 도착 ▲75.4=사이공 함락.월남정권 붕괴.무역제재 확대 ▲79.1=미국,대베트남 금수조치 확대.일본등 서방국가 동조 ▲79.2=중국,베트남 침공 ▲86.12=베트남,6차당대회서 「도이 모이」(쇄신)노선 발표. ▲88.9=베트남,외국인투자법시행령 제정.미국과 첫 합동실종현장조사 ▲91.4=베트남,실종미군수색 위한 미정부 사무실 하노이 개설 허용 ▲91.10=베이커미국무,베트남과 관계정상화 위한 조치 준비 발표 ▲91.11=베트남,중국과 관계 정상화 ▲92.3=솔로몬 미국무 차관보,베트남에 최소한 3백만달러 지원 약속 ▲92.12=부시대통령,미회사베트남사무소 개설 허용.한·베트남 수교 ▲93.7=클린턴,대베트남 IMF차관 1억4천만달러제공 불반대 표명 ▲93.9=클린턴,미국기업의 베트남내 국제개발계획 참여를 허용 ▲94.2=클린턴,대베트남 금수조치 해제 발표 ▲95.1=미·베트남 상호연락사무소 개설 ▲95.6=레둑안 베트남 대통령,유엔행사 참석차 10월 방미발표 ▲95.7.11=클린턴,베트남과 관계정상화 공식발표
  • 미­중 관계 급속 악화/「해리 우」 구속 파장

    ◎깅리치 의장 “대만 승인하라”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중국이 중국계 미국인권운동가 해리 우(중국명 오홍달)를 전격 구속한데 대해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강력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미·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미정부는 해리 우의 구속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데 이어 10일 그가 구속돼 있는 무한으로 특사를 보내 면담을 시도하고 있다.의회에서도 뉴트 깅리치 미하원의장은 9일 대만 승인을 촉구하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주)이 중국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 베트남과 공식 수교할 것을 주장,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깅리치의장은 9일 미CBS­TV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유국가로서 대만을 승인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면 (미·중갈등등)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깅리치 의장은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이 대만에 대해 사소한 우호조치를 취할 때마다 과잉반응을 보여 왔다고 비난하고 대만승인을 통해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남전 당시 포로로 잡힌뒤 6년간 억류되어 있다 석방된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날 NBC­TV 「언론과의 만남」 프로에서 중국의 독단적인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 베트남을 대항세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의회는 해리 우의 체포와 관련,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연장문제에 관한 토의를 연기하고 중국 정부의 티베트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하기 위한 특사 임명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씨 구속사건은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를 계기로 악화되기 시작한 미·중관계가 더욱 나빠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뉴욕에 본부를 둔 「워치 아시아」등 인권단체들은 우씨의 접견은 희망적이지만 그가 혐의를 쓰고있는 간첩죄가 중국에선 「반혁명죄」로 분류돼 극형에 처하도록 돼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미의원들의 잇따른 이같은 대중국 강경발언은 인권운동가 해리 우를 중국 당국이 체포한 것과 끊임 없이 제기 되고 있는 미·중간의 무역 분쟁 및 인권 문제 제기,중국의 대파키스탄 미사일 기술 제공 의혹,그리고 남중국해의 남사군도 영유권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 워싱턴의 북경정책 저변/전직 미 외교관 레빈 분석

    ◎뿌리깊은 미의 대중 오해 전 미국외교관이자 아시아협회 홍콩지국장인 버튼 레빈은 최근 미국이 중국을 오해한 데서 대중국정책이 잘못돼왔다고 비판하고 중국 인권문제 개선요구도 경제적 관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지적했다.다음은 그의 기고요약. 지난 세월동안 미국은 줄곧 중국에 대해 잘못 이해해왔다. 이같은 오해는 지난 19세기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당시 중국내 미국의 활동은 주로 선교와 관계가 깊었다.이후 미국인은 자신들을 중국에 대한 시혜자로 여겨왔다.미국은 중국에 종교·의료적 도움,교육·경제적 및 기술적 지원 등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와는 달리 중국의 영토를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워싱턴은 중국을 구하기 위해 일본과 싸우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은혜의 보답을 바라다가 실망만 갖게 됐다.사실 중국에서 일어난 첫 공식적 시위는 지난 1905년 배타적인 미국의 이민정책을 반대한 반미시위였다. 국민당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이 49년 권력을 장악했을 때 미국의 반응은 일종의 불신이었다.미국에 신세진 국민이 어떻게 공산주의로 돌아설 수 있는가.이에 대해 미국이 생각해낸 정답은 다음과 같다.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국민이 아니라 인민을 속인 반역적인 지도자일당이라는 것. 이 엉터리 같은 생각은 그후 미국의 국내및 국외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이는 매카시즘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미국은 중국의 지도자들을 악마로 만듦으로써 전략이나 외교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중국을 소련의 앞잡이로만 보는 워싱턴의 시각,공산주의정부는 인민의 대표가 아니라는 미국의 불신 등은 현대 중국역사의 역동성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중국은 베트남에서 미국이 겪은 불운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워싱턴측은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중국 팽창주의의 일환으로,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중국의 시녀로 보았다.미국은 베트남을 「민족해방」전쟁을 통해 세계를 제패하려는 중국의 시험장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미정부가 이처럼 무시무시한 혁명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중국은 사실자신의 나라도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다.대약진운동·문화혁명을 통해 자국에 생채기만 냈을 뿐이다. 미국사회에 혼란을 일으켰던 베트남은 미국이 중국을 오해함으로써 낳은 비극적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었다.이는 미국인이 중국을 판단하거나 대응함에 있어 겸손하고 용의주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중국의 인권문제를 취급하면서 또 중국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89년 천안문사태의 유혈진압은 끔찍했다.워싱턴이 중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북경을 비난한 것은 옳았다.반면 곧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고위급 비밀특사를 중국에 보내 양국간 관계에는 실질적으로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밀담을 나누게 한 것은 큰 실수였다. 당시 미 정책입안자들은 천안문사태 이후 일어난 일들이 모택동주의자들의 복귀가 아니라 중국정부에 의해 잘못 취급된 불행한 일이었으며 중국내에 개방사회를 향한 움직임과 개혁이 재개됐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냈어야 했다. 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한 뒤 그가 중국외교정책의 초석으로 인권문제를 삼은 것도 현실을 잘못 이해한 본보기다.클린턴 행정부가 인권문제에 집착하고 있을 때 중국인은 지난 50년동안 어느 정도 나아진 자유와 높은 생활수준을 즐기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무역거래에서 최혜국대우를 해주지 않겠다고 위협하면서 큰 총을 꺼내 중국에 들이대며 경고했다.『인권문제를 개선하라.그렇지 않으면 쏘겠다』그러나 북경은 개선하지 않았고 워싱턴은 총을 내렸다.중국은 이미 이를 알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인권문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미국을 과민하게 만들었으며 이제 미·중관계를 괴롭히는 사안이 됐다.인권문제에서 퇴각한 미국의 굴욕감은 복수심에 불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의 경제적 관계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개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중국을 민주주의로 전환하게 하는 것은 미국 사업가들과의 접촉이 아니다.미·중 경제관계는 중국의 삶에 수천명의 홍콩거주 중국인과 대만인을 끌어들인다.이들은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중국에 살거나 방문할 것이고 무역을 증진시키려 할 것이다. 이들은 힘있는 전보세력이다.이들은 다른 사상·행동·가치 등을 심게 되며 권위를 파괴한다.가라오케·디스코 등 쓸모없는 것을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이는 자유를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의 인권상황은 즉시 개선돼야 한다.죄수에 대한 고문을 비롯해 심각한 학대,즉결사형집행 등이 비일비재하다.그러나 중국은 이제 겨우 자급자족 경제상태다.모든 사람이 살기 위해 동물처럼 일하고 있다.산업혁명 이전에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태가 지배했다. 자급자족의 낮은 경제상태에서는 개인의 존엄에 관한 관심은 별로 없다.사회적인 부가 증가해 교육이 확대되고 여유가 생겨야 이런 생각이 싹튼다.그때 가서야 개인이나 국가가 존경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국가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 중국군의 대공세(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16)

    ◎중,핵전초기 소총 실탄 모자라 고전/36개 사단에 6개사단 분량뿐… 모,소에 지원 요청/주소 중대사­그로미코 「38선 재돌파 여부」도 논의 중국군 파병문제를 논의키 위해 모스크바로 극비 파견된 주은래는 10월15일 모택동 앞으로 다음과 같이 짧막한 전문을 보내왔다.『필리포트 동지는 조선에 군사적 개입을 결정한 중국공산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10월18일.노신이 고강의 말을 인용해 스탈린에게 보고한 전문) 이 전문을 보낸 이후 중국지도부 내에서는 한국전 참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당시 러시아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던 고강이 이같은 사실을 목단 주재 소련총영사관 직원들에게 알렸다.중공당정치국 내에서 이같은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목단의 소련총영사관 직원인 레도프스키,바즈노프장군은 이를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다음은 10월25일 레도프스키 총영사가 모스크바에 보고한 전문. ○“즉각 조선파병” 주장 『조선전쟁 참전과 관련한 주은래의 전문보고가 있은 뒤 중국의 참전 여부를 놓고 중국지도부내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다고 함.고강은 팽덕회에게 즉각 조선파병을 실행할 것을 모택동에게 함께 청하자고 주장했음.두사람은 당장 중국군을 파병치 않으면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해 중국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고 말했다고 함.두사람은 첫째로 미군이 조선전역을 차지한 뒤는 중국군 파병명분이 없어진다는 점과 둘째로 미군이 국민당을 무장시켜 조선·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나아가 중국까지 공격할 것이라며 즉각 파병을 주장했음. 다른 중공당 지도자들도 고강·팽덕회 두사람의 입장에 동조해 당정치국은 조선파병을 결정했다고 함』 한편 노신 대사가 입수해 보고한 이날의 회의 분위기는 파병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보다 뜨거웠음을 보여준다.『10월24일 조선파병 문제를 논의키 위해 민주 제정당 대표와 정부대표가 참석한 특별회의가 열렸고 주은래가 공식보고를 했다.참석자 다수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하지만 일부는 미국이 강한 반면 중국은 약하기 때문에 미국과 싸우면 중국이 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어떤 참석자는 미국이 조선,나아가 만주까지 점령하더라도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그 경우 소련과 미국이 전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참석자들은 왜 소련이 중국과 함께 조선파병을 않는가고 따졌다.회의 끝 무렵에 모택동이 발언을 했다.그는 조선은 중국의 관문이며 일본도 과거에 조선을 점령,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을 공격했다고 말했다.따라서 중국정부는 미국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중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모는 또 소련은 중국과 매우 우호적이고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직접 병력을 조선에 보낼 필요가 없으며 1950년 2월1일 체결한 중·소조약에 의거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최종결정은 이렇게 내려졌고 이어서 중국군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노신 대사는 10월27일 인민해방군이 조선에서 참가한 최초전투에서 남조선군 1개 대대를 궤멸시키고 수개 산봉우리를 점령했다고 보고했다.평양의 슈티코프 대사도 같은날 같은 내용의중국군의 최초전투 참가를 보고했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스탈린과 김일성은 크게 고무됐다.중국군이 전선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면서 스탈린은 매우 의기양양해 했다. ○스탈린,중 참전에 고무 시일이 지나면서 중국군은 무기,특히 탄약부족으로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다.11월7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전문을 보내 소총·자동소총 실탄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6 637) 『조선에 파견된 우리 군은 주로 적에게서 노획한 무기를 갖고 싸우고 있음.따라서 무기의 종류와 구경이 각양각색이라 탄약 생산에 큰 어려움이 있음.특히 소총과 자동소총의 탄약 공급이 문제임.중국의 군수공장은 필요한 탄약의 생산능력이 매우 낮음.…중략…현재 중국의용군은 36개 사단으로 편성된 2개 병단임.그러나 확보된 탄약은 6개 사단이 쓸 분량밖에 없음.51년1월∼2월까지 36개 사단이 쓸 무기를 공급해주기 바람』 이와 함께 장황하게 쓴 필요 무기목록이 첨부됐다. 12월1일 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격려전문을 보냈다.이 전문에서 그는 중국군의 선전을 치하하고 『현대장비를 갖춘 미군과 싸우는 기회를 통해 중국군도 현대화된 강한 군대로 거듭 태어날 귀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는 등 장황한 칭찬을 늘어놓았다.(전문번호 N97 68.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 50년 12월4일 모스크바주재 중국대사 왕자향이 그로미코 외무차관을 면담했다.중국정부의 입장을 대신해 왕대사는 한국전 상황을 전하면서 계속되는 패배로 미국·영국 진영에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고 특히 미정부의 입장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왕대사가 그로미코를 찾은 목적은 연일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는 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남으로 진격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의논키 위함이었다.그로미코가 기록해 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는 이날 대화내용 일부를 소개한다.(문서번호 N517.그로미코와 왕자향대사의 대화 비망록) 『나(그로미코)는 외국 언론매체들에도 영국과 미국간 불화에 관한 보도들이 있다는 그(왕자향)의 분석에 동의했음.그리고 최근 들어 맥아더가 취하는 행동과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점을 나는 지적했음.본인은 또 미국은 한반도에서 이같은 불리한 상황 전개로 인해 매우 당황해하고 있다고 말했음.왕대사는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소·중과 한반도문제와 관련,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는지 나의 견해를 물었음.나는 아직 미국측으로부터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어떤 협상 제의도 없었다고 답했음.미국의 본심을 알 수는 없다고 본인은 말했음. 왕대사는 철저히 비공식적인 사견임을 전제,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전진하는 게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 역시 사견임을 전제,중국은 현재의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답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음』 개전 초기 때처럼 38도선을 돌파해 남한 전역을 점령하자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일치한 것이다. ○유리한 상황활동 공감 두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왕대사는 본인(그로미코)에게 예를들어 미국이 장개석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든지 아니면 장개석군과 함께 남조선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물었음.본인은 이에 대해 그와 관련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편지내용을 인용해 미군병사들은 일본군보다도 더 형편없는 군대라고 혹평했음』 12월7일 스탈린은 주은래 앞으로 전문을 보내 향후 휴전협상과 관련 중국이 취할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전문번호 N23343) 『휴전과 관련 귀하가 내건 조건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함.이 전제조건들이 충족되기 전에 군사행동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음.동시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3개국(영국·스웨덴·인도를 일컬음) 대표 앞에서 우리의 카드를 너무 솔직하게 펴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서울이 해방되기 전에 중국이 카드를 먼저 내보여서는 안됨.더구나 미국이 중국이 내건 이 조건들을 유엔의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이용할 수도 있음.미국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됨.따라서 현상황에서 우리는 다음의 2가지 카드만 내보여야 함. (1)중국정부는 영국·스웨덴·인도대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군사행동 종식을 환영함.중국은 남조선과 중국이 관련된 군사행동을 가능한한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음. (2)따라서 우리는 휴전에 관한 유엔과 미국의 입장을 알고 싶음』 ○“서울 점령선 협상말라” 스탈린의 의도는 중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섣불리 휴전협상에 임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새해를 맏은 51년 1월4일 모택동은 팽덕회가 1월3일자로 전선에서 보내온 전문사본 1부를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중국군의 대공세와 국군의 후퇴를 담은 전선상황 보고였다.(전문번호 N15120.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 『우리 군은 동부전선의 양강에서 서부전선의 문천에 걸쳐 공세를 계속해 적의 수비선을 돌파했음.저항은 강하지 않음.적은 신속히 남으로 후퇴해 큰 손실은 입지 않았음.51년 1월3일 낮 12시까지 우리는 포로 3천명,1백50대의 차량과 탱크,포 1백문 이상을 노획했음.…중략…이같은 공세작전으로 서울·제물포·수원·홍천 등을 재점령한 다음 아군은 일단 공세를 멈추고 휴식을 취해 전력을 재정비,강화하겠음』 중국군의 의도는 휴전이 아니라 38도선 이남으로 공세를 계속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국 참전」 주도인물은 고강·팽덕회/모,전선상황 스탈린에게 직접 통보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내부의 논의와 관련하여 누가 과연 참전을 주도하였느냐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이번 자료는 이에 대해 고강과 팽덕회가 그 중심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앞으로 중국측의 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더 상세한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또한 이번 자료에는 소련은 왜 중국과 함께 파병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중국내에서 상당했었으며,이를 소련이 이미 알고 있음도 공개되어 있다. 이번 회의 내용에서 또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 뒤에도 스탈린이 무기를 별로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11월7일의 모택동 전문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36개사단병력에 고작 6개사단분량의 무기,즉 필요량의 6분의 1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이는 소련이 실제의 약속과는 달리 적어도 초전에는 무기를 거의 대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의 주소대사가 중국군의 38선 월경을 문의하고 있음도 처음으로 밝혀졌다.이는 중국군의 38선 월경이 소련과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리고 당시 일부에서 운위되고 있던 휴전논의에 대해서조차 스탈린은 직접 개입하여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뒤에 이에 응할 것을 주은래에게 권고하고 있음도 밝혀졌다.이러한 권고와 함께 모택동이 전선의 상황을 직접 스탈린에게 통보하는 데서 우리는 스탈린이 이 전쟁의 전개에 얼마나 깊숙이 직접 들어와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이번 회를 통해볼 때 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이 공동으로 치르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박명림
  • 미,지하핵실험 재개 곧 결정/페리 국방

    ◎금주 백악관서 고위급회의… 2∼3주내 확정 【팰러앨토(미 캘리포니아주) 로이터 연합】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18일 미국은 지하 핵폭발 실험을 재개할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미 국방부는 곧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리 장관은 이날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참석후 핵실험 재개에 관한 언론보도와 관련,기자들에게 『국방부는 어떤 방안을 취할지 최종결정은 아직 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2∼3주일 이내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리 장관은 또 『앞으로의 논의는 미국 보유 핵무기들의 완전성과 확실성을 현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어떤 유형의 실험이 필요한지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하고 전혀 실험을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전면적인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선택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페리 장관은 미국방부는 고성능 폭탄 4파운드 규모의 파괴력을 가진 소규모 핵실험이나 고성능 폭탄 1백∼2백t규모 파괴력을 가진 약간 더 큰 규모의 실험중에서 중도의 방안을 선택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는 지난 17일 익명의 정부관리들을 인용,핵실험 재개에 관한 백악관 고위급회의가 빠르면 이번주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이같은 핵실험 재개 논의는 프랑스가 오는 9월부터 내년 5월까지 8차례 지하 핵폭발실험을 하기로 최근 결정한데 뒤이은 것이며 미정부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에 관해 핵보유국들과 협상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미국의 지하핵실험 재개는 핵폐기 움직임과 핵무기 확산 억제 노력에 큰 후퇴로 비판되고 있다. ◎일,반대입장 표명 【도쿄 교도 연합】 일본은 미국이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핵실험 중지정책을 고수하기를 희망한다고 이가라시 고조 관방장관이 19일 밝혔다. 이가라시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지하핵실험 재개를 고려하고 있다는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의 18일 발언에 언급,『물론 일본은 미국이 핵실험 중지정책을 유지할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 경수로부지 10개월간 조사/북미합의이후 후속조치

    ◎한·미·일서 40명 차출 KEDO 정비/공급협상은 「부대시설」로 논란예상 콸라룸푸르 북미합의에 따른 경수로 사업의 후속조치가 구체화되고 있다.지난 4월21일까지 경수로공급협정을 체결하기로 예정했던 당초의 제네바합의 이행 일정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콸라룸푸르 합의 이후 ▲경수로 부지조사단 방북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 ▲KEDO의 자체조직 확립 ▲중유전용 감시단 방북 ▲사용후연료봉의 처리협의단 방북등 5가지가 한꺼번에 이뤄지고 있다. ▷경수로 부지조사단◁ 한·미·일 3국의 기술진으로 구성된 KEDO의 1차 부지조사팀 3∼12명이 일주일간 북한에 들어간다.파견시기는 현재 북한과 절충중이며,준비하는데 3∼4주가 소요될 것으로 보여 7월 중순쯤으로 예상된다.1차 조사가 끝나면 앞으로 10개월에 걸쳐 대규모 추가 조사팀이 2∼3차례 더 파견된다.경수로 건설 부지로는 현재 함경남도 신포가 유력하지만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신포는 지난 85년 러시아가 원자로를 세우기 위해 부지조사를 실시한 바있기 때문에,경수로 건설지로 확정되면 그 자료가 참고가 될 만하다. ▷KEDO 조직◁ 정비 스티븐 보스워스 미일재단총재가 사무총장에,최영진 전외무부국제경제국장과 일본의 이타루 우메즈 전외무성심의관이 사무차장에 내정된 상태.조만간 총장과 차장에 대한 정식 임명절차를 거친뒤 40명 정도의 사무국 요원을 한·미·일 3국에서 차출할 계획이다.이달안에 KEDO 사무국이 설치될 뉴욕에서 참가국 전체가 참석하는 총회가 개최돼,조직 정비를 완료할 계획이다.KEDO에 참가할 나라를 선별하는 작업도 진행중인데,한국정부가 16일 서울에서 개최한 관련 설명회에는 모두 25개국에서 참여,직접 참가와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중유전용감시단◁ 미 국무부의 피어스 핵대사 보좌관과 에너지부 직원,민간 기술자등 3명이 오는 6월18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 북한의 실무자들과 중유의 전용 감시 방안에 대해 회담을 갖는다.또 선봉의 화력발전소를 직접 방문,계측장비를 설치하는등 중유 전용 감시체계를 확보한다. ▷사용후 연료봉처리단◁ 미 군축처의 노먼 울프핵비확산국장을 비롯한 국무부와 에너지부의 직원 9명이 이달말 평양을 방문한다.처리단은 이번 방문 동안 북한이 영변 5메가와트급 원자로에서 추출한 사용후연료봉을 보관중인 저수탱크에 냉각장치를 설치하고,냉각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발전기도 설치하게 된다.핵연료봉은 미국회사가 제조한 통속에 집어넣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갈루치­허바드 「경수로 공급」 문답/중유전용 막을 장치설계후 제공­갈루치/한국기술자 방북 아무 문제없어­허바드 북·미 콸라룸푸르 준고위회담의 미측대표인 토머스 허바드 부차관보와 로버트 갈루치 핵대사는 15일 국무부 브리핑에 함께 참석,콸라룸푸르 합의 이후 북한에 대한 경수로 공급문제를 비롯,여러 현안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미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 콸라룸푸르 합의가 북·미연락사무소개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허바드=북·미양측은 작년 10월 기술적인 현안들을 타결하는 즉시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키로 합의한바 있으나 우리는 아직 모든 기술적인 현안들을타결하지 못했다.경수로 사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진만큼 우리는 북한측과 연락사무소개설에 관한 추가회담을 진행하기를 희망한다. ­폐연료봉 전문가들은 언제 방북하고 어떻게 폐연료봉을 처리하나. ▲허바드=우리는 가급적 빨리 대표단을 파견할 것을 제의했으나 북한측으로부터 명확한 응답을 아직 받지 못했다.북한측도 폐연료봉팀이 가급적 빨리 도착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폐연료봉의 처리는 먼저 폐연료봉을 담고 있는 수조의 온도를 낮출수 있도록 일부 냉각장치를 그곳(영변을 지칭)으로 보내는 것이다. ­타결해야할 남은 현안은 무엇인가.또한 경수로사업의 금액은 어느것이 정확한가. ▲허바드=약45억달러가 최근의 추정치이다.북한은 여러곳에서 경수로사업에 관한 추가분을 요구했으며 때로는 10억달러라는 수치를 추가로 제시했다.정확한 공급범위,원자로의 안전문제등 남은 현안들에 대한 협의는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간에 이뤄질 것이다.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이게된 요인은 무엇인가. ▲허바드=한국회사가 주계약자가 되어야한다는 한·미·일 3국의 입장이 확고하다는 것을 북한측이 인지한 것으로 본다.북한은 나름대로 손익계산을 한후 결국 한국형을 수용키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한국기술자들이 방북하려할때 북한측이 합의하지 않았다고 거부할 가능성은 없는가. ▲허바드=경수로 사업은 턴키베이스이다.북한측은 일단 KEDO와 공급협정을 맺은 후에는 더이상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KEDO와 북한간 공급협정 협상은 언제 시작되나. ▲허바드=공동성명에서 밝힌 바대로 가급적 빨리할 것이다.특정한 날짜가 결정된 것은 아니나 양측은 할수 있는한 빨리 움직이기를 바란다고 본다. ­중유제공문제는 어떻게 되나. ▲갈루치=중유제공분의 처리를 감독하는 방법등에 관해 북한측과 협의할 팀이 오늘 아침 평양으로 떠났다.중유의 전용을 막을수 있는 감시장비설치등 검증절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재원조달문제등이 결정되면 오는 10월21일까지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따른 추가 중유를 제공할 계획이다.
  • “재처리 플루토늄 전술핵 제조 가능”/미 국립연구소 보고서

    ◎「원전 폐연료 군사용 불가」 견해 뒤집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이 끝난 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갖고도 소형 전술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미국립연구소에 의해 마련돼 미국 정부에 제출됐다고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이 11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일본과 유럽은 원전에서 사용이 끝난 연료에서 나오는 플루토늄은 군사용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갖고 있으나 보고서는 이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미소식통을 인용,미국은 「필요 이상으로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재검토를 촉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랭크 폰 힛팰 전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차장(현 프린스턴대교수)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로스아라모스·로렌스리베모아 국립연구소의 핵무기설계 전문가그룹은 작년 9월 사용이 끝난 핵연료에서 핵탄두 제조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벌여 그 결과를 미정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힛팰 교수는 원자로급 플루토늄을 사용하더라도 설계를 변경하지 않고 핵무기개발이 가능하다는것이 핵무기 설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밝혔다.
  • 중 땅돌린 대만 로비력/이등휘 방미성사의 저변

    ◎막대한 외화 무기로 미사회·경계 지속공략/대학에도 거액 기부… 현대만인사 수두룩 대만의 이등휘 총통이 마침내 미국방문길에 올랐다. 이 총통의 방미는 미국과 대만간에 새로운 외교적 유대가 맺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나타내는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사실 미행정부는 이제껏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염려해 이총통의 방미를 한사코 막아왔으나 지난달 의회의 압력에 밀려 마지못해 방미를 허락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이것은 최근 들어 대만이 거둔 가장 중요한 외교적 승리다.그러나 한편에선 이번 승리야말로 대만 로비력의 승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만의 막강한 대미 로비력은 여기저기에서 확인되고 있다.최근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일단의 대만 출신 미국인들이 이곳 출신 피터 도이치 하원의원(민주당)을 설득,미국 여권관련 공법조항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이 법조항의 내용은 대만태생 미국시민이 출생증명서에 「대만출생」이라고 쓰도록 하듯이 미국여권에도 마찬가지로 기재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대만의 이런 로비력은 그만한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막대한 돈이 있다는 이야기다.대만의 현재 외환보유액은 9백80억달러에 이른다.이 돈이 로비자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주의 코넬대학은 지난 68년 이등휘 총통이 학위를 받은 곳이다.이 총통의 친구가 지난해 이 대학에 2백50만달러를 기부해 이 총통의 이름으로 석좌교수를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뒤이어 대만정부는 2백만달러를 더 기증했다.이에 감복한 대학측이 이 총통을 두번이나 초청했다.미정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이번 미의회가 이 총통의 방미허락을 촉구하고 행정부가 이를 수용한 데는 바로 코넬대측의 집요한 노력도 한몫을 했다.코넬대 말고도 대만은 몬태나대 아시아연구소에 12만8천달러,조지타운대에 1백만달러를 기증했고 이들 대학은 각각 이 총통을 초청했다. 대만의 로비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대만은 미정계의 실력자들,주지사 및 관리들을 대만으로 초청해 최고급 호화유람을 시켜주면서 이들을 친대만맨으로 만들고 있다.물론 여기에도 큰 돈이 들어간다. 대만의 로비력은 유태인 다음으로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한국형원칙 수용/미 소식통

    【워싱턴 교도 연합】 북한은 그동안 쟁점이 돼왔던 한국형 경수로를 「원칙적으로」 수용키로 합의했으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절충이 계속되고 있다고 미정부 소식통들이 1일 밝혔다. 이들 소식통은 그러나 북한이 그들에게 제공될 경수로가 한국형임을 계속 인정하지 않는한 북한의 원칙적인 합의는 미국측으로선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 중,대미 「미사일 협상」 연기/에너지 협상·미국무부 차관보 방중도

    ◎이 대만총통 방미 허용에 보복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은 28일 이등휘 대만총통에 대한 미정부의 미국 방문 허용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28일 미사일기술 통제및 원자력 협력에 관한 미국과의 협상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의 한 대변인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또 각각 6,7월로 예정된 미 군비관리군축국장및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부차관보의 중국방문 역시 연기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등휘 총통의 방문을 허용한 미정부의 결정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했고 또 중·미 관계에 심각한 피해를 안겨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어 『중국 정부는 따라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와 핵협력에 관한 양국간 전문가 회담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북 동결핵 가동댄 북·미 합의 무효”/「대북타협배제」법안 제출

    ◎미 하원 공화의원들… 곧 가결될 듯 【도쿄 연합】 북·미 핵합의와 관련한 클린턴 행정부의 타협배제를 요구하는 일련의 법안및 결의안이 미하원에 제출됐다고 산케이신문이 26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현재 미 하원에서 심의중인 「해외국익법안」의 추가 또는 수정안 형태로 제출된 이들 법안 등은 북한이 특별사찰 수용,사용후 핵연료 전체의 해외처리 등에 응하지 않는 한 미정부도 북한과의 핵합의를 이행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법안 등은 특히 북한이 동결시킨 원자로 가동을 재개하면 북·미 합의는 무효가 된 것으로 하며,비무장지대의 군사력 삭감,중거리미사일의 배치 중지 등을 실행하지 않으면 북·미 수교도 추진하지 않는 점을 명기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산케이는 이들 일련의 법안과 결의안이 공화당의원들에 의해 제출됐기 때문에 조만간 하원에서 가결될 것이 확실시 된다고 덧붙였다.
  • 미·일 이번엔 필름 분쟁/코닥사,301조 발동요구

    【도쿄 연합】 미 코닥사는 일본시장의 경쟁제한적 거래관행으로 사진필름과 인화지 판매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통상법 301조(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보복조치)에 의거한 조사와 구제를 미정부에 요청했다고 교도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코닥사는 이와관련,지난 70년대이후 일본시장에는 유통업자에 대한 리베이트관행등이 횡행,미제품의 거래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관행은 일본정부도 관여 또는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미무역대표부는 45일이내에 정식조사 착수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미일 양국은 지난 86년 미 반도체업계가 이같은 절차를 밟아 일본국내시장의 유통규제를 문제삼은 것을 계기로 반도체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 미국의 속셈/불붙은 미·일 자동차전쟁… 양국의 입장

    ◎“재협상 앞서 한로차단”전략/내년 대선 앞둔 강공… 소비자 반발 미국이 일본산 고급자동차에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키로 한 것은 여러가지의 수사적 용어에도 불구하고 시장개방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는 혼다,도요타 등 일본의 5대 자동차메이커의 13개 모델에 대해 이같은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리스트를 발표했지만 적어도 오는 6월 28일까지는 시행이 되지않는데서도 알 수 있다. 보복조치가 발표된 16일 클린턴대통령은 『실제로 제재조치가 발효되기 전에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또 미키 캔터 무역대표부(USTR)대표도 이날 보복조치 리스트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제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말함으로써 일본의 응답에 따라 추후 협상에 나설 것임을 비쳤다. 이날의 보복관세대상 리스트의 공표는 협상에 앞서 일본의 퇴로를 차단해놓겠다는 뜻이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기 앞서 미국은 301조의 관계규정에 따라 해당 리스트를 30일간 공고해야 하며 이 기간중 소비자나 기타 이해관계자가 의견을 제시하면관계규정에 따라 이를 수용해야 한다.오는 6월 8일엔 한차례 공청회를 개최,관련업계와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관세부과조치가 공청회 등을 거쳐 실제로 시행될 경우엔,5월 20일 현재 통관을 기준으로 관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캔터 대표는 이날 보복 리스트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친다해도 보복대상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는 일본이 자동차시장을 개방하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해답이 되지,다른 어떤 것도 해답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보복조치를 받게 되는 13개 차종의 미국내 판매고는 연간 59억달러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자동차시장의 비관세장벽과 각종 규제로 인해 미국이 손해보고 있다고 계산된 62억달러의 벌충수단이 되는 셈이다.미국과 일본은 WTO바깥에서 쌍무간이든,또는 WTO의 분쟁절차에 의한 우선 당사자간의 긴급협의방식이든 재협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내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최대무역적자국인 일본에 대해 강공책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일방적인 보복에 대해 미국내 6백17개 해당 일본 자동차판매대리점들을 중심으로 반발을 보이고 있고 이번 조치가 결국은 문제해결보다는 미국소비자들의 부담증가와 함께 유럽고급자동차메이커들만 앉아서 이득을 보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대응/“강경 대응”외치며 신중자세/미 최종제재따라 보복조치 검토 미국정부가 16일 대일 제재리스트를 발표하자 일본정부는 17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으로 제소하는 등 강경대응 자세를 굽히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대응조치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 통산상은 이날 『영향은 미국에도 부메랑처럼 돌아갈 것』이라고 미국정부를 견제했다.일본 정부가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서는 과거 농산물 특히 쌀개방에 약점이 있어 양보가 불가피했지만 WTO출범으로 쌀을 비롯한 농산물시장 개방으로 약점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정부는 그러나 대응제재조치의 실시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다.하시모토 장관은 이날 대응조치와 관련,『최종리스트를 보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고 말해 다음달 말 미정부가 결정하는 최종적인 제재내용에 따라 보복관세를 포함한 조치를 검토할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정부가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동차마찰로 미·일관계 전반에 악영향이 미쳐서는 안된다는 것과 아직도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때문이다.일본정부는 수치목표만 아니라면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정부는 특히 WTO에서 미국의 일방적 조치 부당성을 호소,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기로 했다.통산성은 이미 호주에 담당자를 파견,WTO에서 일본 지지를 호소했다. 미국정부에 의해 제재대상이 된 일본의 고급자동차는 전체 대미자동차 수출대수 가운데 16%인 22만대 수준이지만 대미자동차 수출 이익의 절반이상을 점하는 달러박스이다.미국의 제재가 모두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일부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자동차 각사의 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은 뻔하다. 자동차업계는 특히 제재가 실현될 경우 미국내 판매망이 고용하고 있는 2만여명의 고용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미국내 일본 자동차 판매업자 2천여곳의 딜러들을 동원,대일자동차 제재가 미국내 고용문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제재 저지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일본 재계는 이번 미국의 제재리스트 발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지지를 보내는 한편으로 양측의 불신감이 증폭되지 않으려면 일본도 흑자감축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나가노 다케시 니케렌 회장은 『미국이 부당하지만 일본도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았다』며 흑자감축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 아주국 미·일 차분쟁 불똥 우려/WSJ지/미의 중 제재 가능성 커

    【뉴욕 연합】 미·일간 자동차 분쟁사태에 대해 한국을 비롯,중국·말레이시아등 여타 아시아국가들은 그 여파가 미칠 것을 우려하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 저널지가 1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자동차시장 개방에 관한 한·미 협상이 다음달 열릴 예정이라면서 한국내에서는 미정부가 일본의 경우처럼 무역제재를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과의 무역에서 두번째로 많은 흑자를 보고있는 중국이 일본에 이어 미정부의 무역제재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일부 경제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저널지는 그러나 미·일 자동차분쟁이 여타 아시아국가들에 무조건 나쁜 뉴스는 아닐지 모른다면서 일례로 이미 미국시장에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미정부가 일제자동차 부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판매가 늘어나는 반사이익을 보게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19일의 북­미 회담 관련/미 국무부 대변인 문답

    ◎“콸라룸푸르회담서 경수로 타결 최선”/군사접촉문제는 정전위서 다뤄야 닉 번스 미 국무부대변인은 15일 미북한간의 경수로회담이 오는 19일부터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있은 번스대변인과의 일문일답. ­콸라룸푸르에서 회담이 열리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회담이 제3국에서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평양의 경우 미국대사관 및 통신시설이 없다는 점에서 여러 수도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던 끝에 콸라룸푸르로 최종 결정했다. ­회담은 어느 정도 계속될 것인가. ▲우리는 토의가 수일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그러나 회담이 얼마동안 계속되어야 한다고 사전에 못박지는 않았다.회담은 경수로 문제에 관해 매우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항에까지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갈루치­강석주간의 고위회담이 열릴 것인가. ▲미·북한간에 회담을 갖기로 한 것 이외는 잘 알지 못한다. ­허바드­김계관 회담이 경수로문제를 도맡아 타결하는 것인가.아니면 고위급회담에 앞서 전주곡을 울리는 것인가. ▲이번 회담은 결코 다른 회담을 위한 전주곡이 아니다.우리는 회담일정을 짜면서 경수로 문제등 당면문제를 가급적 해결하고자 한다. ­허바드 부차관보는 작년에 북한과 군사적 접촉을 하기로 동의했다.콸라룸푸르회담에서 경수로문제 이외에 군사적 접촉이나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할 것인가. ▲허바드 부차관보는 대북한관계를 책임지고 있는 미 고위관리중의 한사람이다.비록 의제가 아니더라도 그가 이 기회에 여타 현안들을 논의하더라도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이행 이외에 판문점주변의 문제도 의견을 나눌 것인가. ▲그의 경험과 책임에 비춰 시간여유가 있을 경우 여타협의를 갖는다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물론 허바드 부차관보와 무슨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에 대해 내가 대화를 가진 것은 아니다. ­콸라룸푸르회담에서 허바드 부차관보가 한반도의 평화정착문제라든가 미 북한간의 군사접촉문제도 논의할 것인가.(이 질문은 정례브리핑이후에 번스 대변인의 답변이 자칫 확대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를감안,보완적인 입장을 밝히기 위한 추가질문임) ▲북한측과 평화협정체결문제를 직접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정부의 기본입장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우리는 군사정전위가 적절한 채널이라고 생각한다.
  • 북,새달 핵연료봉 이전/미,기술자 파견/비용 천만달러도 부담

    【뉴욕 연합】 북한은 다음달 5㎽ 실험용원자로에서 인출한 뒤 냉각조에 보관해온 핵연료봉을 밀폐된 용기에 옮기는 작업에 들어가며 이를 위해 미국 민간업체 기술자들이 평양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소식통은 핵연료봉 이전작업이 약 6개월정도 걸릴 것이며 이에 소요되는 비용 1천만달러는 미정부가 부담한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