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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B를 열다] 1964년 손님 없어 한산한 서울의 어느 이발소

    [DB를 열다] 1964년 손님 없어 한산한 서울의 어느 이발소

    1964년 1월 21일에 촬영한 서울 시내의 어느 이발소다. 이발료가 오른 뒤 손님이 없어 한가한 모습을 취재한 것이다. 이즈음 물가는 급등하고 있었다. 이발료는 50원에서 80원으로 60%나 올라 서민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요즘은 목욕탕 이발관이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으니 옛날 이발소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변두리로 나가야 가끔 눈에 띌 뿐이다. 옛날 이발소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사진에도 보이듯이 우선 벽 위쪽에는 ‘이발소 그림’이 걸려 있다. 주로 값싼 풍경화나 물고기 그림이 벽면을 장식한다. 태극기를 걸어놓은 이발관을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다. 손으로 움직이는 이발기에 머리카락이 끼여 고통스러워할 때도 잦다. 그래도 이발사들의 구수한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용서가 된다. 이발이 끝나고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놓으면 수염은 부드러워져 깎기 좋은 상태가 된다. 길이 20㎝가 넘는 이발소 면도칼은 가죽띠에 쓱쓱 문지르면 날이 선다. 비누거품을 바르고 면도를 마치면 수건들과 함께 빨랫줄에 수십 장씩 걸어놓은 신문지 쪼가리 중에서 하나를 떼어 칼에 묻은 거품을 닦아 내버린다. 이발소 한쪽에는 타일을 붙인 세면대가 있다. 머리를 박박 감겨주고 나서는 작은 물뿌리개로 시원하게 물을 부어준다. 그 옆에는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연통이 밖으로 연결된 연탄 난로가 있어 물을 데우고 공기도 훈훈하게 해준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잘난 척, 자조해도 예술이 되니… 거참 신통방통

    잘난 척, 자조해도 예술이 되니… 거참 신통방통

    #1. 유화 하나가 걸려 있다. 하얀 벽면에 네모난 틀, 딱 떨어지는 조명까지. 일반적인 미술관의 FM에 맞춰 전시된 그림이다. 들여다보면 추상화다. 노란색과 갈색 느낌이 강한 색들이 한 방향으로 쭉 그려져 있다. 제목을 보니 ‘노란 비명’. 이건 뭘까. 그 옆에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이 작품의 제작 과정 동영상이 있다. 제목이 노란 비명인 이유가 확연히 드러난다. 화가(실제로는 배우)가 근엄하게 ‘썰’을 풀어대면서 붓을 물감에 담가 찍은 뒤 캔버스에 굵은 선 하나 쭉 그리면서 붓 움직임에 맞춰 “아악~!” 고함을 지른다. 그래서 노란 비명이다. 누군가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겼을 때 나는 비명, 어두운 방 안에서 무릎을 부딪쳤을 때 나는 비명 등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김범, ‘노란 비명’과 ‘노란비명 그리기’, 2012년. #2. 외부인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는 식사 자리. 먹고살기 바빴던 압축성장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드러내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안온한 중산층을 드러내는 미장센으로 많이 쓰인다. 취향과 교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취향과 교양이란 놈은 언제나 그렇듯 노출증 환자다. 이걸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tvN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풍 내레이션으로 풀어냈다. “집주인으로서, 언제나 손님을 잘 파악하고 손님끼리 잘 어울리도록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관심사를 공유하고 지위가 같은 사람만 불러야 할까요? 이 또한 똑같이 현명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기자나 의사, 세무관 세 명이 저녁 내내 일 이야기만 한다면 다른 손님들은 기분이 상하고, 사실 괴로워할 것입니다.” 아나 휴스만, ‘점심식사’, 2008년. #3.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저쪽 벽에는 교회 안에 늘어선 사람들이 보인다. 반대쪽 벽엔 하나의 입술이 있다. 이 입술이 질문한다. “평상시 또는 전쟁 때 전쟁범죄,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 혹은 학살에 관여했거나 관여했다고 의심받은 적이 있습니까?” “어떤 수단과 매체를 통해, 테러리스트의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찬양하는 관점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까?” “예”라고 대답하는 게 진짜 테러다 싶을 질문들이다. 이 입술 건너편에 서 있는 동유럽풍 공간 속 사람들은 경건하게 “아니오”를 외친다. 입술은 목사의 설교 투로 질문하고, 사람들은 신도들이 ‘아멘’을 복창하듯 답한다. 나디아 카비-린케, ‘아니오’, 2012년. 지켜보고 있노라면 크하하 웃음이 터져나온다. 오는 6월 16일까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기획전 ‘끈질긴 후렴’(Tireless Refrain)에 나온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문턱’ 혹은 ‘의례’에 대한 얘기다. 예술에도 문턱와 의례의 문제는 고스란히 적용된다. 미술, 디자인, 건축? 그거 안 좋아할 사람 어디 있던가. 예쁘고 멋지고 폼 난다는데 그거 마다할 사람 어디 있던가. 그런데 어디서부터가 예술인가. 같은 붓질을 해도 어느 대학 미대를 졸업했는지, 혹은 미국 영국의 내노라하는 곳에 유학을 갔는지, 아니면 해외 어느 유명한 갤러리에서 작품을 샀는지 기타 등등, 그때부터 예술이요 영감이요 천재던가. 이 답은 함께 진행되는 상설전 ‘부드러운 교란’(Gentle Disturbance)전에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쇤베르크에 심취해 음악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던 백남준의 행적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백남준의 친구이자 설치예술가였던 크리스토의 인터뷰 영상이다. 여기서 크리스토는 예술가란 기존 자본주의적 행태에 일침을 가하지만 결국 자본주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예술가도 땅을 임대하고 엔지니어들을 동원해 작품을 제작하는 일종의 비영리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라는 얘기다. 자본주의의 괴력이란 자본주의를 비아냥대는 전위적 힘마저 상품화하는 데 있지 않던가. 체 게바라가 티셔츠와 배지에 박혀 팔려나가듯 말이다. 거기서 나온 게 크리스토의 말이다. 예술가의 파격적인 그 무엇이란, 무지하게 거창한 게 아니니 그냥 ‘부드러운 교란’ 정도로만 불러두자고. 잘 걸어가다 발목 한번 삐끗하는 정도가 예술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예술, 거참 신통방통하다. 목에다 힘주고 잘난 척해도 예술이 되고, 축 늘어져 자조해도 예술이 되니 말이다. 4000원. (031)201-8512.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팍팍한 삶, 꿋꿋한 아이들의 뭉클한 이야기

    제 손으로 상수리를 주워 할아버지 내복을 사준 남수, 들일 하러 가는 엄마 대신 동생을 등에 업고 공부하는 정임이, 우리 오빠는 장애인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초등학교 1학년 민지, 조금 모자란 친구 곁에서도 자연스럽게 함께 놀고 장난치는 형범이…. ‘우리 반 일용이’(양철북 펴냄)는 아동문학가인 고(故) 이오덕 선생이 설립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창립 30년 만에 처음 펴낸 글 모음집이다. 그동안 회보에 실린 글을 가려 뽑아 교사들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로 꾸몄다. 1부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는 중·고교생 이야기이고, 2부 ‘달팽이’는 초등학생 이야기다. 아이들이 뿜어내는 선한 마음이 언 가슴을 따뜻하게 녹인다. 초등학교 1학년 유경이 이야기를 살펴보자. “‘우리 엄마’란 책을 읽었다. 진짜 우리 엄마는 병원에 있지만 내 엄마다….” 유경이의 어머니는 수개월째 서울의 큰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다른 곳에 머무른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유경이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꾹 참고 씩씩하게 ‘비오는 미장원 놀이’를 한다. 중학생 남수는 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홀로 남은 남수는 먼 친척뻘 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추석을 얼마 앞두고 남수는 여러 날 조퇴를 했고, 뒷산 상수리를 땄다. 할아버지께 내복 한 벌을 사드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같은 동네 아이가 남수의 돈을 훔쳐 서울로 도망가고 나서 남수는 눈물만 줄줄 흘린다. 황금성 부여여고 교사는 “남수는 성인이 돼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지금도 내게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저자인 김중미 작가는 “아이들에게는 아직 순정이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1만 2000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2. 의술로 인술 실천하는 김희수 건양대 총장 (상)

    [명사가 걸어온 길] 2. 의술로 인술 실천하는 김희수 건양대 총장 (상)

    1950년 세브란스 의대(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자그마한 안과 개원의로 시작해 예순셋에 건양대학교를 설립하고, 일흔셋에 800병상 규모의 건양대 병원을 일군 사람. 3년 대학 총장 임기를 두 번이나 채우고도 모자라 임기를 4년으로 늘려 12년째 총장직을 지키는 사람. 사람들은 그를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에 견줘 결코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부도옹’(不倒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부도옹은 무슨…. 난 그처럼 대단하지 않아. 그는 천하의 경륜을 논했지만 난 고작 대학 하나잖아. 그렇지만 듣고보니 그럴 법도 하네” 김희수. 올해 여든다섯이지만 “꿈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그에게서 물리적인 나이를 읽기란 쉽지 않다. 주변에서는 이런 그를 두고 “너무 오래 거머쥐고 있는 게 아니냐”거나 “이제는 자리 내려놓을 때도 됐다”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다 이유가 있어. 나는 지금도 더 일하고 싶어. 열정도, 건강도 문제가 없거든. 나도 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세월 거꾸로 사는 사람 없잖우.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 ‘그러니 내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김 총장에게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정색하고 말문을 열었다. “뭐 내세울 게 있어야지. 그렇지만 내가 헤쳐온 삶이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용기를 부추기는 자극은 될거야. 결코 쉬운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한 번도 내가 이뤄야 할 것들을 잊어본 적이 없거든. 뭔가 성취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그걸 말하고 싶어. 목표를 갖고 살라는 거지” 그가 삶의 지표로 삼아온 원칙 같은 게 궁금했다. “좌우명이라는 게 너무 평범해서 실망할거야.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처럼 함축적으로 내 삶을 표현한 말이 없어. ‘정직’은 사람의 기본이고, ‘노력’은 성공의 기본이며, ‘치료’는 병원, ‘교육’은 학교의 기본이잖우. 이런 기본만 지키면 뭐든 다 돼. 공자도 그랬잖아 ‘군자무본 본립이도생’(君子務本 本立而道生·군자의 본연은 근본을 닦는 것이며, 근본이 바로 서야 도가 생긴다)이라고.”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그의 성장기는 그 시절의 대부분이 그랬듯 가난과의 동거였다. “가난했지.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는데, 30∼40마지기 정도였으니 중농쯤 되나 그랬어. 농사뿐이 아니야. 소, 돼지는 물론 양봉에 누에까지 쳤어. 한 방의 반은 누에 잠틀이었는데, 까만 누에 똥 속에서 먹고 자고 했지, 뭐. 내 형제가 3남 4녀였는데, 형들 꼼짝 못하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도 막내라 사랑 좀 받고 자랐어요.” 그렇지만 성장기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그는 주저없이 형을 꼽았다. “아, 나완 나이가 열여덟살이나 차이가 나니 형이 아니라 아버지 같았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땐 다 그랬지. 가난하지, 애들은 생기는 족족 많이 났지, 그래서 젖먹이 동생을 손 위 형이나 누나가 맡아서들 키우던 그런 시절이었잖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남았나 싶지만, 그때는 다들 그러니 그게 궁핍하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살았지. 그러려니 하고.” 평생 애써 일군 부를 악다귀처럼 그러쥐지 않고 대학 설립에 쏟아부은 데서 보듯 그는 청년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1950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도미, 뉴욕 프랜시스 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마친 그는 일리노이주립대 안과대학원과 시카고 안과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1959년에 귀국했다. 전쟁으로 피폐하고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이 미국에서 겪은 경험은 충격이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살던 때,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이라는 나라는 온갖 물산이 넘치고, 큰 집에 차량이 즐비한 도로, 자유분방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우러진 유토피아였다. 그런 미국을 보면서 도미 후 처음 형님한테 쓴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하느님이 계신데,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그런 미국을 보면서 그가 가슴에 새긴 것은 ‘잘사는 나라, 건강한 국민’이었다. 이미 결혼해 고국에 처자식을 두고 홀로 이국으로 떠나온 그에게 ‘남다른 노력’은 숙명이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대학원을 학비 부담없이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육영 의지를 키우는 자극제가 됐다. “생각해 봐. 전쟁통에 피죽 먹기도 어려운 때잖어. 우리 마누라가 조그만 미장원을 해서 번 돈으로 유학와서 공부하는 내가 한눈을 팔 수가 없지. 그땐 공부밖에 할 게 없었어.” 이로부터 3년 뒤인 1962년 서울에서 그의 꿈의 모태인 김안과를 개원했다. 당시 미국의 선진 의료를 체험한 그는 국내에서 안과 분야의 독보적 의사로 인정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돈 엄청 벌었지. 진료비를 전부 현금으로 받던 시절인데, 병원이 자리를 잡은 뒤에는 하루 3000명까지 환자를 봤어. 일과를 마치고 나면 자루에 가득한 돈을 셀 수가 없는거야. 그래서 은행원에게 정산을 맡기기도 했는데, 매일 500만원씩 그러모았지. 요샛돈으로 치면 그게 얼마야.” 그러나 그는 결코 돈의 미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벌었지만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달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공의 기억을 묻자 뜻밖에 그는 ‘치료의 기쁨’을 말했다. “난 돈보다 내가 치료한 환자들이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가 제일 기뻤고, 그걸 성공이라고 믿었어. 어떤 이는 두고 두고 내게 인사를 오기도 해. 의사로서 그 이상의 성공이란 게 있을 수 없잖아요.” 그는 돈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일제 때 의학을 공부해 공의로 일한 큰형님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된 그가 말하는 바람직한 의사상은 ‘질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의사’였다. “요새 어떤 병원은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성 안질환자가 오면 치료 못 한다며 다른 병원으로 보낸대. 그게 뭐야. 그건 의사가 할 일이 아니지. 내 큰형님이 공의로 일할 땐 치료비가 없어 돈 대신 달걀이나 참깨를 가져온 사람도 많았는데, 한번도 형님이 그걸 타박하지 않아. 그걸 보며 나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그렇게 일한 그가 많은 돈을 번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를 주시했다. ‘저 많은 돈을 어떻게 쓸까’하는 호사가적 관심이었다. 이 무렵, 그는 사람들이 놀랄만 한 결정을 한다. 그가 오랜 고민 끝에 찾은 부의 용처는 육영사업이었다. 1983년 그의 육영의지가 얻은 첫 결실은 고향인 충남 논산에 양촌고등학교를 설립한 것이었다. 작다면 작은 그 실천이 30여년 뒤 거대한 교육사업으로 결실을 맺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육영이라는 게 이를테면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일인데,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이 어딨겠어. 고향 유지들이 찾아와 면리에 하나뿐인 중학교가 운영난이 심각하니 인수해달라는 거야. 고민 끝에 부채를 떠안고 1억 2000만원에 인수했지. 어쩌겠어. 애들 공부는 시켜야잖어. 그게 지금의 건양중·고등학교야.” 그렇다고 그의 시선이 우뚝하고 걸출한 인재만 바라보는 건 아니다. 딱히 분별하자면 그는 열정이 있는 청년을 좋아한다.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가 펴낸 자서전 제목도 ‘여든의 청년이 스무살 청년에게’다. 여기에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힘겨워하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그의 고언이 담겨있다. “나도 하는데, 나보다 훨씬 젊고, 힘세고, 시간 많은 너희가 왜 못하겠는가. 해보지 않으면 잘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너는 분명 할 수 있다.” 이런 그를 두고 이어령 교수도 “그 분이 평소 얼마나 젊은이들을 사랑하는지를 알면 그 분을 다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육영사업이라는 게 돈욕심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잠깐은 몰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런 육영사업에 그가 생애를 투자한 것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젊은이들에게 꼭 주고 싶은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가 1986년이었지.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던 신극범 박사가 하루는 고향에 전문대학 하나 세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처음엔 망설였지. 지금도 벅찬데 대학이라니….” 고민이 깊었다. 주변 의견도 찬반으로 갈렸다. 나이도 있고, 병원 경영에다 중고등학교도 만만찮은 일인데, 한 술 더 떠 당시 대학가는 온통 민주화 바람으로 학교마다 재단들이 곤욕을 치를 때였다. 당연히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발 들여놓으면 뼈도 못 추린다는 거였다. 그러나 찬성 쪽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육영사업이라는 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봐야 하고, 지역사회를 보더라도 중고등학교를 대학으로 확장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계속>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서울은 매일이 장날이다 ④재미있는;시장, 놀이터가 되다

    서울은 매일이 장날이다 ④재미있는;시장, 놀이터가 되다

    재미있는; 시장, 놀이터가 되다 굳이 뭘 사지 않아도 장터에 나와 반가운 이들을 만나고 소식을 주고받았던 그 옛날처럼 시장에 나와 주변을 기웃거리며 눈요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놀이터 같은 시장이 있다. 6. 창신동 문구완구 종합市場 주소 서울 종로구 창신동 390-29 찾아가기 1호선 동대문역 4번 출구 또는 1·6호선 동묘역 6번 출구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완구와 문구 도매상들이 밀집한 창신동 문구완구 종합시장은 ‘완구거리’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이야말로 산타클로스의 선물꾸러미 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은 곳이다. 어린 시절 가지고 싶어 어쩔 줄 몰랐던 로봇 장난감과 바비 인형, 레고 등의 완구에서부터 교구, 화구, 문구 등 학습용품들까지 가게마다 빼곡하게 쌓여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 도매상이지만 시중보다 30~40% 저렴한 가격으로 낱개 구입이 가능해 아이 손잡은 알뜰 주부는 물론 차곡차곡 모은 용돈을 들고 찾아온 아이들, 손자손녀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오는 어르신들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 생일파티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야 할 때 창신동을 많이 찾아요. 값도 저렴하지만 정말 다양한 재료들이 많아서 좋아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알뜰 주부의 말씀이다. 여름에는 물놀이용품,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용품이 대세인데 요즘 대세는 누가 뭐래도 브라우니다. 가게마다 브라우니 인형이 줄을 서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품에 꼭 껴안을 수 있는 브라우니부터 열쇠고리 등 다양한 형태의 액세서리로 변신한 브라우니까지 가게마다 수북하다. 엄마 손 붙잡고 나온 꼬마 아가씨는 바비 인형을 앞에 두고 용돈 모은 것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옆에서 조금 보태 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에도 꿈쩍 않고 조금 더 모아서 자기 힘으로 사겠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못 들은 척 바쁘게 일하던 주인아저씨도 빙그레 웃음 짓게 만드는 장면들이 드물지 않게 연출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뭐니 뭐니 해도 요즘 대세는 브라우니 2 바비인형은 창신동문구완구종합시장의 스테디셀러 3 놀이용 장난감은 물론 교육용 완구들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4 차곡차곡 모은 용돈을 들고 신바람 나게 달려오는 아이들도 꽤 많다 5 할머니에게 선물받은 장난감에 혼이 팔려 콧물이 흐르는 줄도 모르는 꼬마 신사 6 필기류 코너에는 색연필, 크레파스, 물감 등 채색도구들이 무지개를 만들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7. 동대문 봄場 위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일대 개장시간 토요일 오후(2012년은 종료, 현재 2013년 개장 준비 중) 홈페이지 bomjang.net 따뜻한 봄과 선선한 가을이 되면 찾아오는 조금 특별한 시장이 있다. 봄·가을 토요일 낮 시간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동대문 봄장 이야기다.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들이 직접 장을 꾸리는 봄장은 공연, 영화, 캠페인, 워크숍, 놀이, 음식, 여행, 재활용,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의 작은 시장이 하나의 장터를 만든다. 지난 11월3일에 연 2012년 마지막 봄장은 다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무지개장과 독립출판물들을 만날 수 있는 독립책장을 중심으로 재활용품과 직접 만든 작품을 사고파는 꾸러미장, 공공성을 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알림장, 음악,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자랑장 그리고 체험활동이 이루어지는 만들장이 한데 모여 가을장터를 펼쳤다. 푸른시민연대의 어머니들은 몽골인형극 <여우와 두루미>를, 베트남 어머니들은 주전부리로 베트남 커피와 함께 베트남식 만두 ‘짜냄’을 정성껏 준비했다. 안양대학교 경영학과 학생들은 경기도 평택의 영세농민들이 도정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 착안, 도정을 돕고 농민들에게 얻은 햅쌀과 흑미로 주먹밥을 핫도그 형태로 만든 밥도그를 직접 요리해서 파는 맛장을 꾸렸다. 창업경영 수업의 ‘5달러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그들은 수익 일부는 기부를 하고 나머지는 농민들에게 돌려줄 계획으로 봄장을 찾아온 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문신도, 바로그찌라시, 냄비받침, 그린마인드, 김이글 등 제목만으로도 독특한 감성이 묻어나는 독립출판물도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최근 독립출판물 커뮤니티 ‘페이퍼살롱’을 조직하였는데 독립책장과 같은 오프라인 활동을 병행하며 앞으로 독립출판이 무엇인지 알리는 활동을 더욱 넓혀 갈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캘리그라피 작가 사공혜지의 조명컵도 눈에 띈다. 원하는 문구와 그림을 그 자리에서 캘리그라피로 그려 주는데 컵 바닥에 LED조명을 달아 수은 건전지 하나로 어두운 곳을 따스하게 밝혀 준다. “동대문 봄장은 비단 물건만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에요. 서로의 경험과 기술과 생각을 나누고 그 속에서 서로 도우며 삶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동대문 봄장이 꿈꾸는 시장입니다. 장터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도 봄장의 기분 좋은 규칙이죠.” 봄이라는 글씨가 인상적인 나무 목걸이를 건 동대문 봄장의 자원봉사자 ‘자발장’의 씩씩한 한마디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새싹 돋아나는 봄에 다시 찾아올 동대문 봄장엔 또 어떤 장이 펼쳐질까, 아직 겨울이 한창이지만 벌써 봄장이 기다려진다. 1 문화로 소통하는 장터, 동대문 봄장이 꿈꾸는 장터이다 2 흥겨운 버스킹에 시장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들썩 3 주성치를 좋아하는 영화학도 친구 둘의 작은 상점 ‘초우상회’의 베스트 아이템들 4 밝게 빛나는 불빛처럼 캘리그라피 작가 사공혜지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조명컵 5 평택지역 농민들의 일손을 돕고 받은 쌀로 만든 밥도그. 봄장의 대표 먹을거리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프리뷰]영화 ‘호빗’, 판타지가 더욱 판타스틱 해졌다

    [프리뷰]영화 ‘호빗’, 판타지가 더욱 판타스틱 해졌다

    전 세계에 숱한 마니아를 낳은 블록버스터 영화 ‘반지의 제왕’의 60년 전 이야기를 다룬 ‘호빗 : 뜻밖의 여정’(이하 호빗)이 베일을 벗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모두 연출한 피터 잭슨 감독이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은 ‘호빗’은 이미 흥행에 성공한 블록버스터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 외에도 판타지를 더욱 판타스틱하게 만들어줄 기술의 접목이 관객들을 한층 더 기대감에 들뜨게 한다. ●‘반지의 제왕’보다 더 버라이어티한 스토리, 더 스펙터클한 화면 ‘호빗’은 사악한 용 스마우그에게 자신의 왕국과 가족, 보물을 빼앗긴 난쟁이족과 이들을 돕는 회색마법사 간달프, 호빗족 빌보 배긴스의 모험을 담았다. 전설의 용사 ‘소린’이 이끄는 이들 원정대 앞에는 반지 원정대가 그러한 것처럼 많은 난관이 도사린다. ‘호빗’의 특징 중 하나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보다 훨씬 다양한 적군의 종류와 무기, 언어 등이다. ‘호빗’은 판타지의 제왕이라 불리는 ‘반지의 제왕’의 또 다른 시리즈인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원정대의 앞을 막아선 적들의 무리 역시 이를 방증하는 예다. 전작에서도 활약을 펼친 바 있는 오크와 고블린 뿐 아니라 흉악한 괴수 와르그, 간달프와 사뭇 다른 또 다른 마법사들의 등장과 생김새, 움직임은 그야말로 ‘상상력의 끝판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위에서 언급했듯 판타지를 더욱 판타스틱하게 만들어주는 하이프레임레이트(HFR)기술은 ‘호빗’이 ‘반지의 제왕’보다 한 수 위의 새로운 영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HFR은 1초에 프로젝터에서 영사하는 이미지의 개수(프레임)가 현재 통용되는 표준 포맷인 24프레임이 아닌 2배에 달하는 48프레임으로 구현되는 영상을 뜻한다. 사람들의 눈이 실제 영상을 바라보는 것과 매우 가까운 기술이기 때문에 기존 3D보다 눈의 피로감이 덜하다. 또 화면이 내 눈 앞에 직접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유독 전투신이 많은 ‘호빗’에 매우 적합하다. 4D가 아님에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호빗’은 24프레임으로 제작된 ‘반지의 제왕’의 영상과 비교해 ‘형보다 나은 아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 볼까? 말까? ‘호빗’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 마니아라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블록버스터다. ‘아바타’ 이후 제대로 된 판타지를 보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 역시 실망하지 않을 작품이다. 그러나 2시간 50분이라는 러닝타임의 압박은 쉽사리 견디기 어렵다. 집중력이 좋지 못하거나 또는 미장센보다 탄탄한 스토리를 더 중점적으로 보는 관객이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호빗’(총 3부작)은 본격적으로 모험을 겪는 2, 3부를 위한 워밍업 단계인 만큼, 다소 지루한 스토리가 가장 큰 약점이다. 2012년 마지막 블록버스터 영화 ‘호빗 : 뜻밖의 여정’은 13일 개봉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파트단지 상가 ‘추락’

    아파트단지 상가 ‘추락’

    “어린이 대상 학원을 제외하고는 아파트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죠. 슈퍼마켓, 세탁소, 문방구, 미장원 모두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 들어가 있으니 모두 거기서 해결하는 거죠.” 3일 서울 송파구 잠실의 T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김모(42)씨는 한숨을 내쉰다. 김씨가 입주한 T아파트 상가는 5년 전 분양을 진행했지만 아직도 비어 있는 점포가 많다. 1층에는 대부분 점포가 들어왔지만 지하층과 최상층에는 빈 점포가 태반이다. 한때 ‘알부자’의 상징인 아파트 슈퍼마켓 사장님이었던 김씨는 편의점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점포를 줄였지만 그대로다. 김씨는 “처음 분양가가 너무 비싸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비싼 분양가로 피해를 본 상인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때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부동산 투자의 대명사로 불리던 아파트 단지 상가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에프알인베스트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국에서 공급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의 단지 내 상가 가운데 준공한 지 2개월 이상 지난 480실을 조사한 결과 21.6%가 빈 점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점포의 평균 연 임대수익률은 4.47%로 조사됐다. 공실률은 토지주택공사 단지 내 상가가 17%, 민간 아파트는 26%로 나타났다. 부동산 관계자는 “상인과 임대업자 모두에게 아파트 상가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상가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비싼 분양가에 있다. T아파트의 경우 2007년 분양 당시 1층 전면을 기준으로 분양가가 3.3㎡당 1억 3500만~1억 5000만원이었다. 실제 분양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 할인 분양을 하거나 임대로 전환했지만,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많았다. 부동산 관계자는 “너무 비싼 분양가가 상가가 활성화되는 것에 발목을 잡았다.”면서 “일반적으로 아파트 상가는 1~2년이 지나면 자리를 잡는데 T아파트는 아직 상가를 채우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1년 뒤에 인근에 분양된 E아파트 상가는 T아파트보다 가격을 20% 이상 낮춰 1억 700만원대에 분양을 진행했고 첫 3개월 만에 60%를 팔았다. E상가에서 수입식품점을 하고 있는 윤모(40)씨는 “초기에 상가가 활성화된 것이 현재 상권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 동탄 일대 상가도 마찬가지다. 2005~2006년에는 3.3㎡당 6000만~7000만원대에 분양을 했으나 미분양이 나면서 최근에는 3.3㎡당 3000만~4000만원대로 내려간 상태다. 젊은 주부들의 소비 패턴 변화도 한 원인이다. 잠실에 사는 주부 권모(44)씨는 “대단지라 아파트 상가가 집에서 그리 가깝지는 않다.”면서 “아이들을 대치동 학원으로 데려다 주면서 그쪽에 있는 대형 마트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아파트 상가 이용 빈도가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단골 장사를 통해 아직 예전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었다. 재건축을 앞둔 잠실 J아파트의 한 상인은 “40년이 다 된 아파트라 손님의 90%가 단골”이라고 전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근린 생활시설에 들어가는 세탁소나 편의점 등으로는 상가 임대료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면서 “또 주변에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 상업시설이 충분히 갖춰진 것도 단지 내 상가에는 독”이라고 설명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커버스토리] 고독한 무연고 죽음

    [커버스토리] 고독한 무연고 죽음

    세상 떠나는 마지막 잔칫상조차 차려줄 사람 없는 쓸쓸한 죽음. 다른 사람들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했던 이승에서의 행적이 완전히 혼자된 죽음으로 잊히는 무연고 사망자가 최근 5년간 전국적으로 2939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서울신문이 2007~2011년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 현황 자료를 받아 집계한 결과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 단지. 신문지, 박스 등을 모아 팔던 서영호(가명·52)씨 집 앞에 평소와 달리 폐지 더미가 높이 쌓여 있었다. 서씨는 일주일 가까이 눈에 띄지 않았다. 혼자 어렵게 지내는 그에게 평소 쌀과 반찬을 챙겨주던 마을통장은 불안한 마음에 그집 문을 열었다. 서씨는 숨진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에 통장은 코를 막았다. 경찰에 신고하고 며칠 후 통장은 병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분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유족이 없네요….” 유족에게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돈이 없다며 시신 포기 각서를 썼다고 했다. 서씨의 장인을 수소문해 찾았지만 그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결국 시신은 구청에 인도됐고 구청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 공고를 냈다. 공고 기한인 12월 7일이 지나면 그의 시신은 화장돼 경기 파주시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치된다. 서씨의 지인들은 그의 삶이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 1997년 외환위기 때라고 했다. 그는 잘나가는 미장이였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한달에 보름 정도는 일했다. 하루 10만원 이상 너끈히 벌었다. 번듯한 집도 마련했다. 그러나 경기가 속절없이 곤두박질하며 살림이 어려워지자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는 술에 손을 댔고 자식들에게도 소홀해졌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지자 지난해 자식들마저 그를 떠났다. 주변에선 서씨에게 폐지라도 팔라고 권했다. 하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고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통장은 “집을 팔아 병원비라도 마련하라.”고 했지만 서씨는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집만은 남겨주고 싶다.”며 버텼다. 그가 숨진 채 발견된 지 한달 만에 찾은 빈집은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이 열려 있었다. 전기계량기는 멎어 있었고 전기요금 등을 내라는 우편물들이 죽은 집주인을 독촉하고 있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부동산플러스]

    ‘성남 중앙동 힐스테이트’ 잔금 60% 유예 현대건설은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앙동에서 ‘성남 중앙동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분양한다. 1차 356가구에 이어 2차분 751가구로 일반분양은 310가구. 전용면적 59~120㎡로 선 시공 후분양 아파트이다. 계약금과 중도금만 내면 잔금 60%는 2년 뒤 내면 된다. 분양가는 84㎡의 경우 3.3㎡당 1200만~1300만원. (031)736-2020. ‘군산 미장 아이파크’ 1078가구 분양 현대산업개발은 전북 군산 미장동에서 ‘군산 미장 아이파크’ 아파트를 이달 말 분양한다. 주거 중심지인 수송지구와 가깝다. 전용면적 59~112㎡ 1078가구. 수요층이 두꺼운 84㎡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실내골프연습장, 피트니스클럽도 들어선다. 분양가는 3.3㎡당 700만원 후반대. 2014년 12월 입주 예정. (063)468-0029. ‘안동 센트럴자이’ 주거편의성 극대화 GS건설은 경북 안동시 당북동 393-15에 짓는 ‘안동 센트럴자이’를 21일부터 분양한다. 안동 센트럴자이는 23층 11개동 952가구로 전용면적별 65㎡ 178가구, 84㎡ 718가구, 101㎡ 50가구, 120㎡ 6가구 등으로 구성된다. 안동시 구도심에 위치해 편리한 주거생활이 가능하다. 단지 인근에는 4개 초·중·고교와 경북도립안동도서관, 안동시립도서관, 예술의전당 등이 있다. 견본주택은 16일 문을 열었다. (054)857-0123. ‘안산 레이크타운 푸르지오’ 녹지공간 인접 대우건설은 경기 안산시 고잔동에 ‘안산 레이크타운 푸르지오’의 견본주택을 16일부터 열고 분양을 시작한다. 1569가구가 공급되는 안산 레이크타운 푸르지오는 59㎡ 295가구, 84㎡ 1150가구, 98㎡ 112가구, 111㎡ 3가구, 120㎡ 6가구, 124㎡ 3가구로 구성된다. 분양가는 3.3㎡당 최저 980만원대부터 책정됐다. 주변에 안산천, 별빛광장, 고잔공원, 민속공원 등 녹지공간이 풍부해 주거환경이 쾌적하다. 입주는 2016년 2월 예정이다. 1899-4131.
  • 양학선과 어머니의 스토리

    MBC는 15일 오후 6시 50분, 파란만장한 과거를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휴먼스토리 덤벼라! 인생’을 첫 방송 한다. 1회에선 가난 속에서도 대한민국 체조 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을 획득한 양학선 선수와 1등 조력자인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는다. “가난은 장애물이 아니라 구름판”이라는 양학선에게는 공장의 야간 일용직으로 일하는 어머니와 건설 현장 미장 기술자인 아버지가 있다. 그는 달동네 단칸방에 살며 아이스크림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었던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0) 인천 배다리와 우각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0) 인천 배다리와 우각로

    인천 배다리와 쇠뿔고개길(우각로)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근대사 전면에서 밀려나 주변부를 형성했던 조선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일제 침략이 진행되면서 인천 개항장에 일본인들이 밀려들어와 번화한 상업 중심지와 주택가를 차지했다. 조선 사람들은 외곽으로 떠밀려났다. 배다리는 일본인과 조선 사람들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가 됐다. 개항장에서 배다리 사거리까지는 은행과 관공서, 호텔과 상점가, 병원과 일본인 주택가들로 메워졌다. 배다리를 넘어서 조선인들의 집거지와 공간이 형성됐다. 1899년 개통된 경인선은 번화한 개항장과 주변부인 배다리 마을, 쇠뿔고개길을 갈라놓았다. 당시 언론들은 배다리 안과 밖을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나누듯 확연하게 구분했다. 예전에는 배다리 사거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나 찾아볼 길 없다. 배를 맞대어 임시 다리로 만들어놓은 곳이란 뜻으로 배다리라 불렸다. 경인선 도원역과 동인천역 사이의 배다리 사거리 일대는 해방직후 한동안 노천 장터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경인선은 사거리 위에 세워진 철교를 지나 인천 방향으로 향한다. 사거리 헌책방 거리 옆으로는 성냥공장, 간장공장 등 조선인 노동자들의 애환이 스며있는 노동현장과 도축장, 도쿄대학 전염병시험소 등이 있었다. 헌책방 거리 서쪽편으로는 2차선 도로가 경인철도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나 있는데 이 길이 쇠뿔고개길로 불리는 우각로다. 우각로는 개항장에서 소와 말을 타거나 걸어서 서울로 가던 경인가로였다. 개항과 함께 북적였고, 개항의 변천과 함께 굴곡을 겪는다. 1920년대 중반 경인철도를 따라 신작로가 생기기 전까지 이 길은 개항장에서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개항장과 신흥동 등 신흥 개발지역 신작로들은 곧게 뻗어있지만, 이곳은 자연발생적인 길 그대로의 구불구불함도 함께 지녔다. 쇠뿔고개길을 따라 조선인 집거지역으로 형성된 이 일대는 우각동으로 불리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식 이름인 창영정(昌榮町)으로 바뀌었다. 해방후 창영동으로 불리다 지금은 행정안전부의 새 주소 사업으로 우각로란 이름을 되찾았다. 고갯길을 향해 길을 재촉하다 골목길에서 쏟아져나오는 어린이들을 만났다. 1907년 인천 최초로 문을 연 인천공립보통학교 후신 창영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우각로 15번길 16. 1922년 지어진 빨간 벽돌 본관은 반아치형 현관과 1층 창문, 2층 수평아치의 초기 근대건물로 시 유형문화재 16호다. 배다리 안쪽 인천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신흥초등학교)가 일본인 학교였는데 비해, 이곳은 조선인들의 배움의 요람이었다. 인천에서 3·1 만세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난 곳임을 일깨워주는 비석과 건학 100주년 기념비가 본관 앞에 서 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 경제학자 신태환 전 서울대총장, 조진만 전 대법원장, 수류탄을 몸을 던져 막아 중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개항시대 연륜을 보여주는 이정표적인 건물들이 쇠뿔고개길을 따라 이어졌다. 창영학교에서 담 하나 건너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영화초등학교와 영화관광경영고가 나왔다. 우각로 39번지. 미국 감리회 선교사 G.H 존스가 1893년 세웠다. 1910년에 세워진 3층 건물은 시 유형문화재지만 지금도 쓰이고 있었다. 운동장에선 초가을 투명한 햇살아래 고사리 손의 초등학생들이 금발의 외국인 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릴레이를 하며 즐거운 함성과 웃음을 쏟아냈다. 한국 여성교육의 선구자 김활란, 서은숙 전 이화학당 이사장, 영화배우 황정순 등이 이곳 출신이다. 학교 옆으로 1938년에 자리를 잡은 창영감리교회가 나란히 서 있었다. 우각로 43번지. 에즈베리 동산으로 불리는 교회 뒤쪽 언덕에는 감리교 여선교사 기숙사가 감춰져 있다. 지금은 주말 청소년 교육장으로 쓰이는 북유럽 르네상스식 건물. 파란색 지붕에 빨간 벽돌, 흰색 창문과 현관문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자태를 뽐냈다. 언덕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감리교 남자 기숙사 건물터엔 인천세무서가 들어서 있었다. 세무서를 지나면 쇠뿔고개길은 가파라지고, 쇠락해진 모습도 확연했다. 빈 가게들, 조그마한 미장원과 분식집, 우유 대리점, 점집, 문닫은 목욕탕, 열쇠로 잠겨진 대문, 길가 평상 위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 1990년대 중반부터 인접한 개항장 지역에 있던 시청 등 주요시설들이 남동구의 신도심으로 빠져나가면서 우각로의 조락도 더 역력해졌다. 세무서에서 쇠뿔고개길을 10여분 오르다 보면 언뜻 체육관처럼 보이는 퇴락한 대형 건물이 길을 가로막는다. 고종황제의 어의로 광혜원을 세운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알렌의 별장터다. 1950~60년대 한 기독교 종파가 예루살렘교회란 이름으로 운영하다 떠나, 지금은 지역주민들과 구청 측이 우각로 문화마을 만들기의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전도관으로 불리는데 남쪽으로 인천항이 보이고, 날씨 좋은 날에는 동쪽으로 관악산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빼어나다. 알렌 별장터에서 내리막길로 10분가량 가다보면 서울로 이어지는 신작로인 새천년로가 우각로 진행을 동서로 갈라놓았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가 끝난 지점에서 시작해 2㎞ 남짓 이어진 뒤 우각로란 지명은 숭의동 진로아파트 직전에 막을 내리지만 개항기 우각로는 조선인들에게 한양길로 이어지는 길이란 의미로 마음속에 새겨져 왔다. 글 사진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도움말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과장 ●21회는 전남 목표시 영산로를 소개합니다
  • [프리뷰]’광해’ 이병헌이 전하는 진정한 왕이란?

    [프리뷰]’광해’ 이병헌이 전하는 진정한 왕이란?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수많은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을 배려하고 보살필 줄 아는 지도자를 갈망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왕의 대역이 된 광대를 통한 정치적 메타포가 짙은 작품이다. 영화는 조선 15대 왕으로 16년간의 짧은 재위기간 동안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된 왕 ‘광해’와 15일간 독살 위기에 놓은 광해를 대신해 왕 노릇을 한 천민 ‘하선’을 통해 타인이 기록한 광해의 또 다른 면을 그린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그저 왕을 조롱하는 광대노릇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하선이 왕의 꼭두각시에서 진짜 왕이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왕의 말투와 걸음걸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소한 일상부터 국정 업무에 이르기까지 생전 처음 접하는 왕의 법도와 하선 특유의 인간미와 소탈함은 관객들에게 의외의 웃음 포인트를 선사한다. 그리고 왕 광해와 달리 정치를 알지 못하지만 사람과 백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아는 하선의 모습에서 절대 넘볼 수 없는 왕의 모습이 비칠 때, 조선시대와 현 대한민국의 모습은 서서히 오버랩 되기 시작한다. 무릇 지도자란 엘리트 정치교육 코스를 밟은 사람이 아닌 진정으로 만민의 입장에서, 만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라는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병헌이라는 믿음직한 배우의 1인 2역 역시 포인트다. 영화 전반 분량으로 보면 광해와 하선의 분량은 2대 8 정도로 하선이 월등이 앞선다. 때문에 평소 관객에게 익숙한 묵직한 배우 이병헌이 아닌 인간미 넘치는 순수한 캐릭터의 이병헌을 볼 수 있다는 점은 관객에게 또 다른 신선함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점차 왕의 목소리를 내는 하선에게서 천민 이상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과 최근 사극영화의 트렌드이기도 한 화려한 미장센이 이병헌이라는 배우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광해’는 과거를 빗대 이 시대가 원하는 이상적인 정치, 만민이 원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13일 개봉.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체조 양학선 비닐하우스 터에 새집 선물

    체조 양학선 비닐하우스 터에 새집 선물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수상한 양학선 선수가 부모에게 번듯한 집을 선물하고 싶다던 꿈이 전북 고창에서 이뤄지게 됐다. 전북지역 중견 건설회사인 성우건설은 16일 전북도청에서 양 선수의 어머니 기숙향(43)씨와 김완주 전북지사, 이강수 고창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러브 하우스 기증 협약식’을 가졌다. 성우건설은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남동마을에 100㎡ 이상 규모의 단독주택과 농자재 창고 1동을 건립해 양 선수 부모가 올해 안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양 선수는 고향은 광주지만 공사장 미장기술자였던 아버지 양관권(53)씨가 일을 하다 어깨를 다쳐 2년 전 전북 고창으로 이사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강동범 성우건설 대표이사는 “열악한 환경에서 불굴의 의지를 꽃피운 양학선 선수의 부모를 향한 효심에 깊은 감동을 받아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불량 대출자 1년새 80만명 쏟아져… 신용회복委서 만난 안타까운 사연들

    불량 대출자 1년새 80만명 쏟아져… 신용회복委서 만난 안타까운 사연들

    금융회사에 제때 빚을 갚지 못해 ‘불량 대출자’가 된 사람이 최근 1년간 약 80만명이나 된다는 한 신용평가회사의 통계가 16일 나왔다. 이날 오후 이런 우울한 통계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서울 중구 남대문로 신용회복위원회 서울중앙지부를 찾은 사람들의 표정은 평소보다 어둡기만 했다. 박진수(54·가명)씨도 마찬가지였다. 신복위를 찾은 사연을 묻자 박씨는 답답한 듯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박씨의 벌이는 나쁘지 않았다. 박씨는 하루 14만원을 받는 잘나가는 미장이였다. 건설업이 호황이어서 한달에 적어도 보름은 일거리가 있었다. 건설 경기를 타고 2000년대 초반 강북구 미아동에 5000만원짜리 집도 샀다. 2000만원짜리 담보 대출이 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뒤 사정은 달라졌다. 집값도, 일거리도 떨어졌다. 박씨는 한달에 서너번 일하기도 어려워졌다.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박씨는 카드 7개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다달이 7번의 변제 독촉 전화를 받아야 했다. 생활비가 쪼들리자 노름에도 손을 댔다. 주택담보 대출을 제외하고도 카드빚과 증권사 대출이 3000만원에 가까워졌다. 박씨의 아내는 “이럴 거면 나가라.”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박씨의 미장일이 줄자 아내는 하루 13시간씩 봉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박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에게 빚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이곳을 찾게 됐다.”고 털어놨다. 박씨처럼 신복위를 찾은 이는 올 상반기에만 4만 5505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9명 늘었다. 신복위 관계자는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만 30~40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개인 워크아웃 등을 통해 채무감면이나 분할상환 등의 채무조정을 받으려는 이들이다. 박씨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많다. 지난 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45·여)씨는 15층 베란다 창문에서 세살짜리 아들을 안고 화단으로 뛰어내려 숨졌다. 아들은 엄마 옆 2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엄마 품에 안겨 떨어진 탓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이씨 가족은 아파트 월세가 몇 달간 밀려 이날 오전 일산동구 장항동의 한 오피스텔로 이사 중이었다. 지난 14일 0시 경기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 중년 남자가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에 구조됐다. 사업실패로 아내와 이혼하고, 채무로 의료보험마저 해지돼 위암치료조차 받지 못하던 정모(45)씨였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부인과 딸을 둔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5년 전 사업 실패와 더불어 빚더미에 내몰려 길거리로 나앉았고, 부인마저 떠났다. 생활고는 청춘에게도 예외가 없다. 지난달 4일 울산 중구 다운동의 한 원룸에서 혼자 살던 김모(30)씨는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 김씨는 방안 운동기구(철봉)에 노끈으로 목을 맸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아들이 궁금해 원룸을 찾았던 아버지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늙은 아버지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라고 쓴 한 줄짜리 유서를 읽어야 했다. 김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대학을 중퇴하고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마음고생을 많이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종합·서울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52년만의 체조 금메달 양학선의 부모 ‘비닐하우스 집’ 관심 폭발

    52년만의 체조 금메달 양학선의 부모 ‘비닐하우스 집’ 관심 폭발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양학선(20·한국체대) 부모의 비닐하우스 집이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양학선은 6일(한국 시간) 영국 런던에 있는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체조 도마 결선에서 1·2차 시기 평균 16.533점을 얻어 한국 체조 52년만에 정상의 자리에 섰다.  7일 트위터 등 SNS상에는 양학선의 부모가 사는 비닐하우스 집 사진이 올라와 수없이 리트윗 되고 있다. 양학선의 집은 그간 몇 차례 방송에 소개됐지만 양학선이 금메달을 따면서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양학선의 부모는 전북 고창 석교리에서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집에 살고 있다. 양학선이 태릉선수촌에서 외박을 얻어 집에 오면 부모와 함께 함께 자던 곳이다. 양학선은 광주광역시의 달동네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공사장 미장일을 하던 아버지가 어깨를 다쳐 가세가 기울면서 지금의 비닐하우스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비닐하우스 집안의 구석에는 양학선이 받은 상패와 메달이 잘 정돈돼 있다. 어머니 기숙향씨는 “학선이를 가졌을 때 도랑에 흘러들어온 붕어가 비단잉어로 변해 높은 곳에서 재주를 넘으며 갈채받는 꿈을 꿨다.”고 태몽 이야기를 전했다.  양선수는 그동안 하루에 4만원 남짓한 태릉선수촌 훈련비를 모아 매달 집에 80만원 가량을 부쳐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올림픽 전에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안전하고 따뜻한 집을 지어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양학선은 금메달을 목에 걸어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대한체조협회가 주는 1억원의 추가 포상금을 받는다. 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주는 연금 100만원(금메달)을 매달 받지만 본인이 원하면 6720만원을 일시불로 받을 수 있다. 네티즌들은 “금메달을 따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양 선수의 약속이 지켜지게 됐다.”며 축하 글을 올리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주학살 주범 26년만에 단죄”

    “광주학살 주범 26년만에 단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만화가 강풀의 인기 웹툰 ‘26년’이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사 청어람은 13일 “미술감독 출신인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혜진과 진구, 임슬옹, 변희봉씨 등을 캐스팅해 7월 첫주에 크랭크인한다. 9월까지 촬영을 끝내면 12월에는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달 크랭크인… 12월 개봉 예정 서울대 미대 출신 조근현 감독은 ‘후궁: 제왕의 첩’을 비롯해 ‘마이웨이’ ‘형사 Duelist’ ‘장화, 홍련’ 등에서 감각적인 미장센을 선보인 실력파다. 진구는 5·18 당시 아버지를 잃은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을 맡았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은 한혜진이 연기한다. 학살 주범을 직접 처단하려는 극비 프로젝트에서 저격수로 활약한다. 아이돌 그룹 2AM의 멤버 임슬옹은 현직 경찰 권정혁으로 분한다. ‘26년’은 2008년부터 수차례 영화화가 시도됐다. 하지만 광주의 비극을 겪은 국가대표 사격선수, 조직폭력배,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 등이 26년 후 그날, 학살 주범 ‘그 사람’을 단죄한다는 민감한 내용 탓에 번번이 투자가 무산됐다. ●민감한 내용 탓에 번번이 영화화 무산 지난 3월에는 시민들에게 3만~5만원씩 소액 투자를 받는 소셜 필름 메이킹(Social Film Making)을 도입했지만, 목표액 10억원을 채우지 못했다.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제작비 46억원 중 15억원이 부족하지만, 크랭크인까지 3주 남았고 크라우드 펀딩도 재개할 계획이다. 용기를 내어준 투자자들과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권도엽 “분양가상한제 개정, 국회가 도와야”

     “사람이 시체가 되면 마약을 써도 되돌릴 수 없다.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거래세를 아예 없애는 것과 같은 특약처방도 필요하다.”(이종술 공인중개사협회 송파지회장)  부동산 주무부처의 수장인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난 7일 밤 서울 서초동의 한 한정식집에서 7명의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시장 회복에 대해 고민했다. ‘5·10 부동산대책’이 나온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이렇다 할 전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개업자들은 “지난달 10일 대책을 발표하고 오히려 거래가 감소했다.”면서 “집을 팔아야 가계부채가 없어진다.”며 추가 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권 장관은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는) 국회의 지원이 없었기에 못 했다.”면서 “(시장의) 심리가 중요한데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절적으로 주택거래 비수기인 데다 대내외적인 침체요인까지 겹쳤고 거래를 유인할 확실한 금융대책이 빠졌다는 분석이지만 이들의 대화는 절절했다. 최현진 대치부동산랜드 대표는 “DTI를 풀어도 (당장) 폭등은 없을 것”이라며 “현 정부에서만 무려 17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찔끔찔끔 약만 올렸다.”고 힐난했다.  권 장관은 “양도세 중과 적용을 받지 않는 일시적 2주택 기간을 늘렸다.”면서 “최근 세수가 많이 떨어졌다.”고 대응했다. 또 “거래가 잘 돼야 서민경제가 줗아지는데 이삿짐센터, 미장원, 자장면가게까지 내수가 안 좋아 걱정”이라며 “지난달 15일 강남 투기지역이 해제되는 등 앞으로 거래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부고] ‘꼬방동네 사람들’ 실제 모델 허병섭 목사 별세

    [부고] ‘꼬방동네 사람들’ 실제 모델 허병섭 목사 별세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실제 모델로 평생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허병섭 목사가 27일 오후 4시30분 패혈증으로 별세했다. 71세. 1941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고인은 70년대 빈민선교단체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동대문구 신설동 꼬방동네에서 빈민 사역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월곡동 달동네에 ‘동월교회’라는 민중교회를 세우고 1982년 교회 안에 탁아소 ‘똘배의 집’을 만들었다.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어둠의 자식들’에 등장하는 공병두 목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허 목사는 1988년 빈민과 함께 하고자 목회자의 직분을 벗어버리고 공사판 미장이로 변신해 1990년 노동자 공동체 ‘건축일꾼 두레’를 만들었다. 긴 노동시간과 절반에 가까운 노동 알선비 등 노동자의 부당한 대우를 직접 목격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만든 것. 1996년 무주로 내려온 허 목사는 생태운동과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진 씨와 딸 미라·기옥·현옥씨와 아들 동섭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29일 오전 10시. 장지는 모란공원묘지. (02)2072-2020.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23일 TV 하이라이트]

    ●아비정전(KBS1 밤 12시 20분) 마음 둘 곳 없어 방황하는 아비(장궈룽)는 전형적인 건달이다. 그는 본능적인 사랑만 추구한다. 아비는 축구장 매점에서 일하는 수리진에게 접근해 특유의 감언이설로 꼬드긴다. 순진한 수리진은 결혼을 생각하지만, 아비에게 한마디로 거절당하고 발길을 끊는다. 한편 거리를 순시하던 경찰이 수리진을 만나게 된다. ●VJ 특공대(KBS2 밤 9시 55분) 싸고 푸짐하고 맛좋은 대학가의 대단한 맛집들의 총 집합이다. 경기도 안성의 한 대학교 앞 맛집은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해체하여 항정살, 목살 등 각종 부위를 4~5인용 기준으로 2만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여기에 학생우대 5000원을 할인받고 나면, 2만원에 두루두루 배 터지는 만찬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위험한 여자(MBC 오전 7시 50분) 지원은 중국 지사로 가지 않기로 하고, 유라와 함께 작은아버지를 만난다. 유라는 지원의 작은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낙담한다. 강 회장은 도희를 불러들여 동민의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다시 못박는다. 그러나 도희는 자신이 동민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한편 동민은 강 회장에게 중대한 결심을 이야기한다. ●궁금한 이야기 Y(SBS 밤 8시 50분) 강남경찰서 유치관리계로 날아든 한 통의 편지. 발신자는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감번호 3394번, 34살의 남기석씨다. 편지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절도, 사기, 공문서 위조 등 갖가지 죄목으로 이미 12년 6개월째 수용생활 중인 남씨. 그가 보낸 편지에는 2살 때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져 있었다. ●헤어드레서(EBS 밤 12시 5분) 고도비만인 카티는 남편과 헤어지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직업소개소에서 헤어드레서로 일을 소개받지만, 미장원 원장은 카티를 보고 아름다움을 다루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며 퇴짜를 놓는다. 카티는 새로운 직업을 찾느니 창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미용실을 차리기 위한 카티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박종호의 오페라 글라스(OBS 낮 12시 10분) 오페라 해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박종호. 그가 최고의 예술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서 왕의 암살 뒤에 숨겨진 비련의 이야기를 통해 오페라 이면에 있는 인간의 모습 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그의 해설과 함께 소프라노 김은주, 테너 이정원 등이 실제 오페라 속의 장면들을 선보인다.
  • 영화 ‘청춘그루브’ 변성현 감독 “나의 영화그루브, 이제 시작”

    영화 ‘청춘그루브’ 변성현 감독 “나의 영화그루브, 이제 시작”

    좀 놀았을 법한 인상이다. 옆과 뒷머리는 바짝 깎고 윗머리만 남긴 머리 모양, 가죽 재킷에 국방색 ‘야상’을 덧입은 모습은 기자의 판단에 색을 덧입혔다. 영화 ‘청춘그루브’(15일 개봉)의 잔상이 강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F워드’를 달고 사는 걸진 입담에 욱하는 성질, 여자만 보면 건드리려는 사고뭉치 래퍼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인디영화판의 재능있는 신예로 소문난 그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다. ‘청춘그루브’의 변성현(32) 감독을 지난 7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지성·김아중 주연의 ‘마이 PS파트너’를 준비 중이다. ●“힙합영화도 아니고 힙합퍼도 아니다” ‘청춘그루브’는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 램페이지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래퍼 민수와 래퍼 겸 프로듀서 창대, 보컬 아라의 꿈과 사랑, 엇갈린 운명을 그린 청춘영화다. 대형기획사에서 잘생긴 민수와 따로 계약하면서 찢어진 세 친구가 3년 만에 재회하면서 영화는 강한 비트에 따라 ‘그루브’를 탄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4억원을 지원받아 만든 영화지만 봉태규와 이영훈(‘후회하지 않아’ ‘GP506’), 곽지민(‘사마리아’) 등 제법 쏠쏠한 캐스팅을 했다. 그럼에도, 신인감독의 저예산 영화가 개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애초 예상한 개봉시기인 2010년 가을을 두 해나 넘겨서 극장에 걸리게 됐다. 그 심정이 궁금했다. 죽었던 자식이 살아돌아온 것만큼이나 지각개봉이라도 반가운 일일까. “늦게라도 개봉해 기분 좋다. 미성숙하지만 솔직한 청춘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라고 그는 말했다.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 같은 영화를 찍고 싶었던 변 감독은 다른 저예산 영화보다는 빠른 편집 호흡을 가져가고 싶었다. 기획단계에서 소설을 소재로 취했다가, 힙합을 끌어들인 것도 강렬한 비트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 아쉬움은 남는다. 가수 타블로의 최근 앨범인 ‘열꽃, Part2’ 가운데 ‘고마운 숨’에서 수준급 랩 실력을 뽐냈던 봉태규의 캐스팅은 이 영화를 주목받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그는 “코믹배우 봉태규가 아니라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1)에서의 태규 느낌이 좋았다. 엇비슷한 역할을 되풀이하면서 그가 저평가됐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내면서도 거절당할 거로 생각했는데 첫 미팅을 하고서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청춘영화를 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마케팅을 하는 분들이 힙합영화처럼 포장했는데 그건 본질이 아니다. 음악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배신감이 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알려진 것처럼 실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 출신도 아니라고 했다. “집구석에 들어앉아 비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뿐인데 심하게 와전됐다. 영화사 관계자들에게 수차례 얘기했는데 홍보자료가 안 고쳐지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숨 걸고 하지 않아… 감독은 내 직업일 뿐” 그는 ‘할리우드 키드’와는 거리가 멀다. 중·고교 때는 물론, 20대 중반까지도 ‘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는 “부모님이 대학에 가기를 원했는데, 서울예대 영화과는 수능 점수가 필요 없었다. 연출은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연기 전공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사회화가 덜된 탓에 면접에서 거침없이 대답한 걸 교수님들이 좋게 본 것 같다.”며 웃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연기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연출전공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무슨, 무슨 스키(동유럽의 유명감독 이름들) 얘기를 하는 건 어려워 보였는데, 곁에서 보니 할 만하겠더라.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도 모르던 내가 동네친구들과 함께 막무가내로 덤벼 단편 ‘REAL’(미장센영화제 출품작·KBS 독립영화관 상영)을 완성했는데, 교수님들이 ‘네가 갈 길은 연출’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워낙 귀가 엷어서 그때 혹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0년 봄 ‘청춘그루브’의 후반작업이 끝나고 나서 그는 다시 백수가 됐다. 밤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시놉시스를 끼적거렸다. 그 무렵 ‘청춘그루브’의 조감독이 권한 영화가 ‘500일의 썸머’. 그는 “원래 로맨틱코미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500일의 썸머’는 아주 좋더라. 섹스코드를 조금 입히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보다가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회사에선 싫어할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영화를 잘 ‘베끼는’ 편이다. 물론 가져다 쓰되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버무린다.”고 덧붙였다. 자기만의 세계관에 함몰된 영화광 감독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된 ‘마이 PS파트너’는 CJ문화재단의 콘텐츠 발굴프로그램 ‘CJ아지트’에 채택됐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약하던 힙합 가수가 하루아침에 대형기획사와 계약을 한 셈. 하지만 “좋긴 한데 미쳐 날뛸 만큼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작 기뻐한 건 평생 그를 걱정스럽게 지켜본 어머니였다. “명절에 CJ에서 선물세트가 오고, 감독이라고 명함도 파주니까 어머니는 내가 대기업에 입사한 줄 아시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했지만,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달라질 게 없다. “감독은 현재 나의 직업일 뿐이다. 한 번도 영화를 목숨 걸고 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들을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찍을 뿐이다.” ‘청춘그루브’에는 ‘디제이가 비트를 만들면 MC(래퍼)들은 그 비트 위에 랩을 해.’란 대사가 나온다. 어쩌면 영화란 비트에 얹힐 변성현만의 랩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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